혁명의 영점 - 가사노동, 재생산, 여성주의 투쟁 아우또노미아총서 44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황성원 옮김 / 갈무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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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 전에 읽으면 좋을 책들과 이 책을 읽고난 후에 읽으면 좋을 책들이 있어 더 좋은 독서가 된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이 책에서도 예외없이, 기존의 남자 작가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들, 부러 말하지 않았거나 혹은 놓친 것들‘에 대해서 냉철하게 꼬집어낸다.

세상 똑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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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자평] 악인
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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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던 남동생은 이 책을 읽고 화를 냈었다. 뭐 이런 책이 있냐, 읽고나서 기분 너무 나빴다, 고 한거다. 그 말에 바로 처분할까 하다가, 남동생과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독자이니,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단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고, 음, 역시 남동생 말이 맞다는 걸 확인해버리고야 말았다. 이런 건 확인하지 않았어도 됐을텐데...



여자 등장인물인 '요시노'는 부잣집 남자랑 사귄다고 친한 직장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데이트앱으로 남자를 만나놓고는, 길에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게다가 그런 요시노가 원하는 건, '마스오 게이고 같은 남자의 차에 타고 시원스레 하카타 거리를 내달리(p.50)'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남자를 이용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자랄까. 이 책이 국내에 나온 게 2008년이니, '요시다 슈이치'가 써낸 건 그 이전일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물론 '부자 남자 만나서 신분 상승하려는'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런 욕망에 있는 여자가 '부자 남자랑 사귄다'고 친구들에게 '거짓말'까지 하는 건 도대체 이 여자 캐릭터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걸까. 게다가 동료중 한 명인 '마코' 역시, 짝사랑만 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잘생긴 남자랑 연애하다 헤어졌다'고 하는거다. 도대체 왜 이들은 하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말하는걸까. 요시노, 마코를 제외한 다른 친구는 남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고 거기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지만, 남자 만나서 시집 잘 가는 게 꿈이다. 하아- 사람이 끼리끼리 만난다지만 어떻게 하나같이 여자들이 죄다 이런 캐릭터들인지... 어쩌면 하나같이 이래, 하나같이.



보험회사 직원이었던 요시노가 살해당한다. 그녀가 사귄다고 주장했던 '마스오'가 살인범일지, 그녀에게 지독한 쾌락을 주는 '유이치'가 살인범일지 알 수 없다.



정확한 숫자는 밝히지 않았지만, 형사들은 그녀와 관계가 있는 몇몇 남자들을 이미 만나봤다고 말했다.

심심풀이 삼아 등록한 사이트에서 알게 된 여자가 어느 날 갑자기 살해되는 바람에 궁지에 몰린 사내들이다. 자기 자신도 그렇지만, 여자를 살해할 마음으로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살해당했다.

창녀 하나가 사악한 손님을 만나 살해당했다고 하면 얼마간 틀에 박힌 스토리라는 느낌이라도 있을까. 그러나 살해당한 사람은 창녀가 아니다. 밝히진 않았지만, 견실하게 생명보험 영업을 하며 살았던 젊은 여성이다. 창녀인 척했지만 창녀가 아닌 아닌 여자였다. (p.166)



그전에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을 안읽어본 게 아니었는데, 요시다 슈이치, 이런 사람이었던건가?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생각하는 여자란 어떤건지 심히 의심스러웠다. '견실하게 살았던 창녀가 아닌 젊은 여성'은 창녀보다 '더' 죽어서는 안되는가? 초반부터 '머릿속에 있는 여자들'에 대해서 얘기하는 것 같아서 불쾌했는데, 그러나 불쾌함은 책을 읽을수록 더해진다.



소설속에서 언제나 정의롭고 선한 캐릭터만 나와야 한다는 게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상 혐오를 하는 인물, 나쁜 인물은 당연히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인물이 어떤 식으로 등장하든간에, 우리는 그 안에서 '결국은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읽어낼 수밖에 없고,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냐에 따라 우리는 어떤 등장인물이든 소설 속의 캐릭터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또 받아들여야 한다. 중요한 건 그거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가'.




내가 얼마전 읽은 '사토 쇼고'의 《달의 영휴》를 싫다고 했던 건,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소아성애에 대한 변명'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작가는 사랑을 지켜가는 굳은 인물들의 입을 빌어 결국은 소아성애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었던 거다. 이 책, 《악인》이 싫은 건, 작가가 결국은 '꽃뱀에게 당하는 불쌍한 남자'들에 대한 변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는 진실한 사랑을 원했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않아, 결국 그런 여자들이 남자를 지옥으로 떠밀어버려, 라는 얘기.



'하퍼 리'의 소설《앵무새 죽이기》에서 작가가 왜 하필이면 '거짓강간 신고'에 대해 얘기해야 했는지 유감이라는 글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나 역시 요시다 슈이치에 대해서라면 '왜 하필이면', 이라는 말을 안할 수가 없다. 작가는 왜 하필이면 거짓으로 강간 신고를 하겠다는 여자를 그려냈는지, 그래서 남자로 하여금 그 여자를 죽이게 했는지, 천 번 생각해도 나는 너무 유감인거다. 이 책이 만약 지금 나왔다면, 그야말로 미투 폭로에 대한 가해자들의 변으로 들리지 않겠는가. 소위 말해 '판결 나오기 전까지는 중립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바로 그 입장에 대한 이야기.






"우리? 알잖아, 우린 오래 전부터 여관 하는 거"라고 내뱉듯 말했다.

"여관 하는 게 어떻다고?"

"여관에는 여종업원이 많지."

게이고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난 어릴 때부터 여러 번 봤다. 아버지가 여관 종업원들을 데리고 안쪽 방으로 들어가는 모습. 어땠을까? 그 여자들, 싫었을까? …… 그랬겠지, 분명히 싫어했겠지. 그런데 말이다, 내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이더라."

포장마차를 나오면서 게이고는 가게 주인에게 "잘 먹었습니다. 근데 맛은 영 아니네요." 라고 말했다.

그 순간, 포장마차에 있던 손님들의 손동작이 일시에 멈췄다. 껄끄러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쓰루다는 게이고의 그런 점이 좋았다. 실제로 그곳은 관광객을 상대로 돈만 많이 받는 포장마차였다.(p.114)




아버지가 데리고 들어가는 여자들이 싫어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이고는, 식당에서 할 말을 하는 남자다. 그래서 쓰루다는 그런 얘기를 들어놓고서도 '네가 잘못 생각했어' 라는 말이 아니라, '게이고의 그런 점이 좋았다'라고 말을 한다. 위의 장면에서 독자는 무엇을 느껴야 할까?



가장 어이없는 건, 요시노가 살해된 이유다. 요시노는 게이고가 타라는 말에 게이고의 차에 타는데, 게이고는 그런 요시노에게 남자가 타란다고 타냐고 너같은 천박한 여자가 싫다며 한적한 밤에 그녀를 떠밀듯이 차에서 내쫓는다. 요시노와 만날 약속에 요시노를 기다리고 있던 유이치는 요시노가 자신이 뻔히 기다리는 앞에서 다른 남자 차를 타고 가는 것에 대한 사과를 받으려고 요시노가 탄 차를 따라갔다가 그녀가 차에서 내쫓기는 걸 보고 그녀를 집에 데려다주고자 한다. 그런데 요시노는 그런 자기의 모습을 유이치가 본 게 싫어서 그를 강간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한다. 강간은 없었는데.



"살인자! 경찰에 신고할 거야! 성폭행했다고 신고할 거야! 여기까지 납치했다고! 납치해서 강간했다고! 우리 친척 중에 변호사도 있어! 우습게보지 마! 난 너 따위 남자랑 사귈 여자가 아니야! 살인자!"

요시노가 소리쳤다. 모두 다 거짓말인데도 유이치는 자기도 모르게 무릎이 떨렸고, 떨림은 멈출 줄을 몰랐다. (p.345)



부자 남자 친구가 있다고 거짓말했던 요시노는, 강간했다고 거짓으로 신고할거라고 악을 쓰고, 그러다 살해당한다. 목격자도 없는 상황에서 강간범으로 신고당하면 자신이 그 다음을 살아나갈 수 없을 거란 두려움에 유이치는 그녀를 죽여버린다. 왜냐하면, 자기는 강간범이 아닌데, 자기를 강간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했으니까.

그런 유이치를 사랑하게 된 여자는, 자수를 하겠다며 경찰서 앞까지 찾아간 유이치에게 같이 도망치자고 한다. 결국 유이치는 자수를 하는 대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와 도망치며 보낸다. 유이치를 살인으로 유도한(?) 것도 여자고, 그런 유이치에게 삶의 기쁨을 주며 그러나 벌 받으러 가는 길을 막는 것도 여자고.



작가는 처음부터 왜 요시노를 그렇게 거짓말하는 캐릭터로 만들어서는, 그렇게 거짓말하다 살해당하게 만들었을까? 왜 하필이면 그녀를 죽음으로 이끈 거짓말은 '성폭행당했다고 (거짓말)할거야!' 일까? 토할뻔했다. 혹여 거짓미투일까봐 두려워하는 남자들을 대신해 변명해주는 것 같았다.


일전에 '트레버 노아'가 자신의 토크쇼에서 관객들을 향해 '여기에 거짓 성폭행 신고를 당했던 사람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 아마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이중에 성희롱이나 성추행이을 당한 사람은 많을 것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요시다 슈이치는 대체 누구의 편에 서서 어떤 변명을 하고 있는가. 요시다 슈이치가 이 책을 통해 계속해 하는 말은, '응 나쁜 여자들 많아', '응 남자로 팔자 펴려는 여자들 있지', '응, 남자 엿먹이려고 거짓 성폭행 신고하는 사람 있어' 밖에 없다. 게다가 그녀가 성폭행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했던 그 남자는 자신으로 하여금 신음 소리를 참지 못하게 했던 쾌락을 준 남자이고, 자신의 상반신 누드를 찍었기에 돈을 요구했던 남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를 이용하려는 나쁜년이 얼마나 해로운가'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정말이지, 이런 소설은 도대체 왜 쓴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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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인 오늘의 일본문학 6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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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분의 일정도 읽은 지금 그만 읽을까 고민하다 계속 읽는다.
딱 기다리고 있어라.
다 읽으면 진짜 대차게 까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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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런 소설은 도대체 왜 쓴건지 모르겠다.
    from 마지막 키스 2019-03-04 14:15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었던 남동생은 이 책을 읽고 화를 냈었다. 뭐 이런 책이 있냐, 읽고나서 기분 너무 나빴다, 고 한거다. 그 말에 바로 처분할까 하다가, 남동생과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독자이니, 나에게는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단 생각으로 읽기 시작했고, 음, 역시 남동생 말이 맞다는 걸 확인해버리고야 말았다. 이런 건 확인하지 않았어도 됐을텐데...여자 등장인물인 '요시노'는 부잣집 남자랑 사귄다고 친한 직장 동료들에게 거짓말을 한다. 데이트앱
 
 
2019-02-28 1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02-28 12:53   좋아요 0 | URL
네네 조금 기다려 주세요. 다음 주 중에 받으실 수 있도록 보내드릴게요! :)
 
여성이라는 예술 - 우리는 각자의 슬픔에서 자란다 아르테 S 1
강성은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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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책은 의미는 있긴 하지만 시류에 편승한 기획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기획된 책이라서인지 글쓴이들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글쓰기도 아니었던 것 같다. 가독성이 떨어짐. 특히 박연준 글 보면서 ‘흠, 왜 이정도인 거지..‘ 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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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열등감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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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일날 아침 유코는 은빛 강가에서 말했다.

"아버지, 저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승려의 미간이 깊은 실망을 나타내며 찌푸려졌다. 태양이 물결무늬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개복치 한 마리가 자작나무들 사이를 지나 나무다리 아래에서 사라졌다.

"시는 직업이 아니야.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지.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흘러가는 물이다. 이 강물처럼 말이야."

유코는 고요하게 슬러 사라지는 강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겁니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p.11)




열일곱 유코는 눈(雪)에 반하고 숫자 7에 반한다. 그래서 눈에 대한 시를 쓰기로 한다. 승려인 아버지는 그것이 마땅찮았지만, 유코는 매 겨울마다 일흔일곱편의 시를 쓰기로 한다. 겨울이면 아침에 눈을 보러 가 눈에 대한 시를 쓰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삶을 살게 된다. 그의 시가 너무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 궁정에서 사람이 오지만, 그는 자신이 7년간 시를 더 써야 시를 잘 쓸 수 있다며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가 궁정에 가서 왕에게 시를 지어주고 읊어준다면, 그는 대단한 월급을 받게 되는걸까?


눈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고 있는지 잘 알겠고, 그 순백을 찬미하는 것도 잘알겠다. 그래서 유코는 우물가에서 물을 긷던 여인의 '눈같은 한쪽 가슴'에 반해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피부가 투명한 여인에게 미움과 사람을 동시에 느끼며 반하고, 얼음속 흰 얼굴 여인에게 감탄한다.



책 띠지에는 '한 권의 소설이면서 한 편의 시가 되는 이야기'라고 적혀 있는 '막상스 페르민'의 이 책, 《눈》은 그 찬사가 어긋나지 않을만큼 아름답다. 이 짧은 소설 한 권 내내 눈앞에 설경이 펼쳐져있는 것 같고, 그 안에서 차분하게 시를 짓며 살아가는,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과 일평생을 아름답게 보내기로 약속하는 청년 유코를 만날 수 있다.



나는 몇 해전에(먼댓글 링크 걸었지만 찾아보니 2013년 이더라)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늦여름》이란 소설을 읽다가 깊은 열등감을 폭발하는 페이퍼를 쓴 적이 있다. 주인공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여행을 다니고 공부를 하면서 그런데도 재산이 늘어가는 내용이 나오는 거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유산을 은행에 넣었는데 이자가 불고 불고 또 불어서, 그는 생계를 위한 어떤 노력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자신이 다니고 싶은 곳을 여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우연히 여행중에 만나게 되는 노인은 또 '여기부터 저어어어어어어어기 까지가 내 땅이네' 라고 할만한 땅부자이고. 이 책은 문학동네에서 총 1,2권 두 권으로 나와있는데, 나는 화딱지가 나서 1권만 읽고 2권은 읽지 않았다. 일하지 않고 땀흘리지 않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바를 다 할 수 있는 청년을 보는 것이 내게는 기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 역시 묘사가 뛰어나고 아름다운 이야기라 하는데, 나는 묘사와 아름다움 보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갖고 태어난 청년에 대한 열등감이 폭발해 소설에 몰입할 수가 없었다. 뭐? 가만 있어도 돈이 불어나? 나는? 나는 티끌모아야 티끌인데??

이 책은 2권에 그 노인의 젊은 시절 사랑이야기가 나온다고 해 어쩌면 그 부분에서 나를 몰입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끝까지 읽어야지, 하고 2권을 사두었지만 나는 읽기를 멈췄다.



갑자기 왜 뜬금없는 독일소설 얘기를 꺼냈냐면, 이 책, 《눈》을 읽다가 그 늦여름을 읽었을 때의 화가 또다시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유코는 시를 쓰고 싶다고 하고 그렇게 한다. 겨울이면 77편의 시를 쓰겠다 하고 그렇게 한다. 그러면 그는 봄,여름,가을엔 무얼할까?



봄이 오자 유코는 약속을 지켰다. 그는 시를 한 편도 쓰지 않았다. 그는 초록으로 물든 정원에서 벚꽃 잎의 향을 맡는 것으로 만족했다.

여름이 오자 그는 산월山月이 내려다보는 숲에서 꿀 향기를 맡았다.

우기가 시작되자 강가 이끼 속에서 버섯을 하나 발견했다.

한 해 내내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향들을 맡으며 지냈다. (p.30-31)



하아-

아름답다. 물론 아름답다. 여름과 우기, 초록으로 물든 정원.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게다가 그걸 관찰하고 향기를 맡는 청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니, 그런데 그 아름다운 봄,여름,가을을 볼 동안, 그리고 겨울에 일흔일곱편의 시를 쓰는 동안, 그의 밥은 누가 해주었을까? 매일 외출하고 돌아오는 그의 옷은 누가 빨아주었을까? 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다.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그의 엄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는 나에게 '이 아름다운 소설에서 그런 생각하지마, 작가가 쓴 것만 보고 생각해' 라고 자꾸 되뇌었지만, 그러다가, '아니 어떻게 그래? 어떻게 여자가 드러나지 않아? 이 생활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데?' 라고 불쑥불쑥 화가 나는 거다.

이 짧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유코에게 레몬같은 젖가슴을 내주거나, 그를 반하게 만드는 여자들 뿐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성적대상이 되는 여성. 그가 사시사철 놀고 먹으면서 시를 쓰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있을 동안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여자가 없고, 그의 아버지 역시 승려로서 그에게 '너 앞으로 뭐할거야' 몇 번이고 되뇌지만, 재생산노동에 관여하는 여성도 등장하지 않는다.



유코가 시를 쓰는 동안, 우기구나 얼씨구나 좋다 아름다워 샤라라랑~ 할동안, 밥과 설거지는, 빨래는 누가 했을까? 그가 외출하고 돌아온 뒤에 벗어둔 옷과 신발은 누가 빨았을까? 그가 나가기 전에 먹는 밥은 누가 차려줬을까? 그런 것들에 대한 일절의 생각없이 더 깊은 시를 배우겠다고 훌쩍 떠나다니...


물론 이 소설의 시작이 유코의 열일곱이니 지금으로 보면 청소년이다. 아직 부모님으로부터 교육에 대한 지원을 받아야 할 때. 이 책은 1999년에 지어졌고, 일본인 유코가 주인공이지만,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태어난 '막상스 페르민'이 지어낸 이야기이다.


나는 그런 이 책에서 한가롭게 자연을 관찰하고 앞으로는 시인이 될거야, 라고 생각하고, 더 깊은 시를 쓰기 위해 공부하러 갈거야, 하고 길을 떠나는 이 삶. 야... 진짜 팔자가 늘어졌구나... 라는 생각을 해버리고야 만것이다.



아아, 눈이여.

니가 나를 잘못만나 고생이 많다.

글쎄 모르겠다. 내가 몇 해전에 읽었다면, 아아, 이것은 정녕 한 편의 시로구나, 하면서 감탄하고 아름다워 했을지. 그러나 지금의 내게 와서 고생이 많아. 지금은 이 아름다움은 다 무어야, 모든 고통들은 뒤로 숨어버린, 고통과 노동을 뒤로 넘겨버린 아름다움이잖아, 하게 된달까.

눈이 아름답고 초록이 아름다운 거 누가 모르나. 우기의 빗소리 같은 거 가만 듣고 있는 거 얼마나 여유로운가. 그걸 어느 한 사람만 알 수는 없다.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아는데, 왜 어떤 이에겐 한가로이 즐길 것이고 어떤 이에겐 그렇지 않은가. 보이지 않은 그 곳에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길래 유코는 딩가딩가딩~ 할 수 있을까. 입맛이 쓴 것이야, 나는.



내가 아무리아무리아무리아무리 오늘 출근길에도 '이건 그냥 한 편의 시같은 소설이야' 라고 나에게 말했지만, 그래서 그래 아름답게만 보면 되는거야, 라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나는 잘 모르겠소. 그래, 왜 사람들이 이 소설은 한 편의 시야, 라고 하는지 알겠어, 그렇지만 눈같은 젖가슴 가진 여자를 보고 발기하는, 시만 쓰는 청년이라니. 글쎄. 뭐랄까, 앞으로의 유코는 노동에 참여할까? 아내가 물을 긷고 밥을 하는 동안 먼 산만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답답해지는 것이다.



당신이 시를 쓰는 동안,

밥은 누가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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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9-02-27 0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러니까!!!!요!!!!

제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다 말다 하는 게 그래서에요. 아름답긴한데 이 사람들이 계속 놀고 고민하고 먹고 그래요. 일은 안해요. 일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그들을 천대하죠. 귀족이고 (귀족 따라하는) 브루주아들이라 그게 인생이고 시간인 거죠. 그래서 다 잃어버렸나. 아, 서민 독자가 읽자니 울컥....

다락방 2019-02-27 09:36   좋아요 1 | URL
너무 한량인거에요. ㅋㅋㅋㅋㅋ 누가 자연 아름다운 거 모르나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팔자 좋게 나갔다가 들어오고 나갔다가 들어오고 그러는데, 그 때마다 빨래는 집에서 다른 사람이 했을 거 생각하니 빡치고요. 그렇게 다니라고 밥 차려주는 것도 다른 사람이 햇을 걸 생각하니 또 빡치고요. 저 놈이랑 결혼한 여자는 앞으로 저 놈 시 쓰게 밥 해주고 빨래 해주겠구나 생각하니 빡치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름다움은 개뿔이죠 정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9-02-27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그래도 시같은 소설이라 하여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는데....
저도 읽으면 화딱지 날까봐 다락방님 리뷰로만 만족할래요. ㅋㅋㅋ


다락방 2019-02-27 10:53   좋아요 1 | URL
저는 읽으면서 이 책을 아름답다 여길 사람들의 확률은 남성이 훨씬 많을것 같단 생각을 했어요. 저는 이 아름다움에 푹 빠질 수가 없어요. 다른 생각이 너무 많네요. 여기에 이대로 푹 빠지려면 그 다른 생각이 없는 사람이어야 가능할듯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