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배운다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6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너무 사랑하지 말라는 말은 지나치게 큰 사랑이 압박으로 느껴졌기 때문에 되돌릴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사랑이라는 핑계를 대고 우리는 상대에게 압박을 가할 수도 폭력을 가할 수도 있다. 또한, 사랑이라는 이유로 상대의 삶에 당연하듯 개입하려고 하기도 하고. 내가 가는 방향이 옳고 내 생각이 맞다는 확신으로 내가 사랑하는 상대 역시 이 길로 가고 바로 이것을 선택하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자기 확신이 가져온 오만일 것이다. 그 사랑은 상대를 향한 사랑이라기 보다는 자신을 향한 사랑일 것이고.


몇 번 언급한 적 있지만, 영화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 언니는 여동생에게 학교의 킹카인 그 남자아이와 사귀지 말라고 조언한다. 본인이 사귀어봤는데 진짜 영 아닌 남자였다고. 그러나 동생은 언니에게 대꾸한다. '언니도 해보고 알았잖아, 나도 내가 알아서 할게' 라고. 나는 그동안 동생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바로 저 언니 같은 태도로 대했던 것은 아닌지, 그 영화를 보고 한참을 생각해야 했다. 그 뒤로 그런 태도를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어쩌면 또 그런 태도들이 나왔을런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건 아니야. 그건 잘못됐어 틀렸어, 이게 더 좋아. 나는 그런 식으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대했을까봐 두렵다.


나이들수록 그것이 정말로 지양해야 할 태도라는 것을 더 깨닫게 된다. 언제 더 절실하게 깨닫느냐면, 누가 내게 바라지도 않은 조언을 했을 때. 내가 상대에게 조언을 해달라고한 게 아닌데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이것이 낫다 저렇게 살아라 말하는 것은, 듣는 이에게는 강압이고 폭력이다. 그런 일들이 닥칠때마다, '아, 역시 남의 삶에 함부로 개입하려하지말자, 조언은 누군가 요청했을 때만 조언이 될 수 있다' 라고 깨닫고 또 깨닫는다. 내 행복은 당신의 행복과 다르다.




'로라'는 자신의 동생인 '셜리'가 행복하기를 바랐다. 로라의 생각은 그저 셜리의 행복, 셜리의 행복. 로라의 좋은 친구인 여성혐오자 '존'은 그런 로라에게 '네 생각을 하라'고 매번 조언하지만, 로라는 셜리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빠져나올 수가 없다. 셜리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내가 너무 셜리에게 집착하나'를 생각한다. 셜리가 데려온 남자가 셜리를 불행하게 만들 것 같은데, 아무리 봐도 이 남자는 아닌 것 같은데. 로라가 셜리와 셜리의 애인 헨리에게 1년간의 약혼기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하자 셜리와 헨리 모두 투덜대고 언니가 동생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것이라 한다. 내가 정말 그런걸까, 내가 집착하는 걸까, 내가 동생을 빼앗기기 싫어서 그러는걸까, 내가 동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걸까...


로라가 정말 동생에게 집착하는 것일 수도, 동생을 누구에게도 보내고 싶지 않은 걸 수도 있다. 다 가능성 있는 얘기다. 그럴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건, 내 눈에도 헨리는 '아니올시다'의 님자였다. 만약 이 남자를 내 여동생이 데려왔다면... 그러면 나는 어쩔것인가. 아아, 헨리, 내가 너무 싫어하는 캐릭터..



"제대하면 무슨 일을 할 거예요?"

"사실 모르겠어. 변호사가 될까 생각해봤지만."

"그런데요?"

"너무 힘든 일이야. 사업을 해볼까 싶기도 하고."

"어떤 사업이요?"

"글쎄, 어떤 사업이든 시작을 도와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난 은행에 다니는 지인이 한두 명 있고 실업계 거물도 몇 알아. 내가 밑바닥부터 시작한다고 하면 그들이 기꺼이 도와줄거야." 그는 말을 이었다.  (p.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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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진짜 너무 싫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변호사 될까? 아이 그건 힘드니까 안돼, 사업할까? 사람들이 도와줘야지........ 너무 한심하잖아. 이런 생각을 가진 남자가 청혼을 하는데 어떻게 예스를 하나요, 셜리여......... 내가 봐도 너무 쎄한데........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너무 여자 돈 잡아먹을 남자잖아...... 여자 고생시키고 여자 돈 다 긁어갈 남자잖아. 하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혼자 살자, 셜리여..... 너무 딥빡 오는 것이다. 이런 남자라는 것에 대해.



셜리와 헨리는 결혼하게 되고, 예상한대로 헨리는 자꾸 직장을 때려치고 나와서 마땅한 직업을 갖지 못하고, 예상한대로 헨리는 여기저기 빚을 지고, 예상한대로 헨리는 바람을 피고. 게다가 성매수를 하고 성매매 여성을 창녀라고 욕하는 남자들처럼, 헨리는 자신이 바람핀 여자를 '암캐'라고 칭한다. 사업할 때 도와줄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것처럼, 헨리는 무조건 남탓이 먼저인 사람.



"이 주 정도 수전에게 푹 빠졌지. 잠도 안 올 만큼. 얼마 동안은 멋진 여자라고 생각했어. 그러다가 조금 지루하다고 생각했고, 얼마 안 가 아주 확실하게 지겨워졌어. 최근에는 완전히 골칫거리가 됐고."

"너무하네요."

"당신이 수전 걱정을 왜 해? 그 여자는 도덕관념도 없는 순 암캐야." (p.144)






게다가 예상한대로 헨리는 처형에게 돈을 빌려 다른 빚을 막고........그리고 불구의 몸이 되어 셜리에게 매달리며 온갖 짜증을 낸다.... 모든 걸 다 잃고 로라의 집에 들어와 살게된 셜리 부부. 하루종일 짜증을 내는 신랑의 옆에 있어주는 셜리를 보며 로라는 너무 슬프다. 셜리는 더 자유로워져야 하는데, 저 불행한 생활로부터 빠져나와야 하는데. 마침 그런 셜리에게 돈 많고 자상한 남자가 다가온다. 아아, 셜리는 저런 남자와 결혼했어야 하는데. 로라는 그런 셜리 보기가 너무 안타깝다. 셜리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셜리를 저 불행으로부터 빠져나오게 해야 해.




문제는 그거다.

셜리는 그 삶이 언니가 생각한만큼 불행했을까? 셜리는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을까? 셜리는 로라가 생각한 것처럼 책임감 때문에 계속 그러고 살았던걸까? 셜리가 원하는 건 뭐였을까?

로라는 셜리가 원하지 않았지만, 셜리가 불행할 것이라는 본인의 생각으로,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고 결정한다. 그렇다면, 그 결정이 셜리를 행복하게 만들었을까?





아니.




소설의 마지막에야 다른 사람이 해주는 말을 통해 로라는 알게 된다. 자신이 생각한 셜리가 셜리의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자신이 생각한 셜리의 행복이 셜리가 생각한 셜리의 행복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로라는 셜리의 삶을 행복해지도록 본인이 결정해서는 안되었다는 것을. 그 일은 로라를 아프게 하고 죄책감에 시달리게 하지만, 어쨌든 이제 로라는 자신의 남은 생을 살아내야 한다.




얼마전 텔레비젼에서 노르웨이의 산악철도에 대해 보게됐다. 홍콩에 여행가 맛있는 걸 먹는 장도연을 보면서, 나는 자연스레 내 조카를 떠올렸다. 저기 타미랑 가면 어떨까, 그런데 저건 맵겠지? 저기 아이들 먹을 만한 메뉴도 있을까? 그랬던 것처럼 노르웨이의 절경, 피오르드를 보면서도 감탄하며 또 타미를 떠올렸다. 저렇게 웅장한 자연이라니, 한 번쯤 보고 싶지만 으앗, 너무 무섭다. 만약 타미가 저기 간다고 하면 나는 가지 말라고 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한것이다.




(출처: 투어2000 블로그)



너무 무섭잖아, 저기 타미를 보내기엔 위험해, 라는 생각을 저절로 한 것이다. 이 생각은 한참이나 내게 '그래도 되는가?'를 묻게 했다. 나는 나라는 한 인간으로 '저 곳에 가보고 싶다' 라고 생각했고, 또 내가 절실히 가고자 했다면 가려고 할것이다. 만약 누군가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했다면, 나는 정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고, 내 의지대로 할것이다. 그런데 내가 타미에게 '위험하니 가지말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미를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보지 못하는 게 아닌가. 지금이야 타미가 혼자 간다고 말하지 않겠지만, 성인이 되고 저런 곳을 알게 되고, 나 저기 갈거야, 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혼자이든 친구들과 함께이든, 그것이 그 아이의 선택이라면, 그것이 그 아이의 바람이라면, 그 아이가 독립적인 한 존재인만큼, 내가 가지말라 할 순 없는 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서 위험한 곳에 보내고 싶지 않아' 라고 하는건, 상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 불안함을 먼저 생각하는 게 아닌가, 게다가 상대가 그런 상황에서 취약할 거라고 내 멋대로 약한 존재로 결정지어 버린 게 아닌가 싶어지는 거다. 그렇다면, 내가 로라랑 다를게 뭐지? 나는 타미를 셜리 취급하고 있는 거잖아?




홍콩 디즈니에 갔을 때 그런 경험을 했었다. 아홉살 조카와 롤러 코스터를 탔는데, 타는 내내 나는 한 팔로 아이의 안전바를 잡고 어서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혹여라도 아이가 떨어질까봐 안절부절. 멈추고 나서야 이제 끝났다는 안도감이 찾아왔고, 롤러 코스터에서 내리는 순간, 아이가 무사히 내려서 다행한 마음에 엉엉 소리내어 울었다. 이런 나를 모르는채로 조카는 '한 번 더 타자!' 하는거다. 어찌나 야속하던지. 진짜 너무 괴롭고 힘든 시간이었다.


이것이 위험하고, 무섭고, 떨어질까 두려워하는 건 내 생각, 내 감정이었다. 아이는 놀이동산의 놀이기구를 좋아해서 바이킹도 네 번씩타고 그러는 아이인데, 나는 아이가 떨어질 것을 두려워해서 아이가 다시는 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아이는 더 타기를 원한다. 이게 아이에게는 신나는 일이야.


엉엉 소리내어 한참을 울고, 그런 나를 여동생과 조카가 달래고, 울고나니 기운이 쫙 빠져 있었다. 퍼레이드를 보고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조카는 놀이기구를 한 번 더 타고 싶다고 말했다. 조카가 한 번 더 타자고 한 건 그런 스피드 있는 게 아니어서, 언제 또 올지 모르고 이 아이를 위해 온것이니만큼, 그래 한 번 더 타자, 했다. 아아..그러나 지나는 길에 더 무서운 롤러코스터가 보였고,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조카는 방방 뛰며 타겠다고 했다. 이모는 무서워하니 타지마, 나 혼자 탈게, 라고 조카는 말했는데 도저히 혼자 태울 수는 없고 그렇다고 내가 기꺼이 같이 타겠다고는 못하겠어.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던 여동생이 자신이 타겠다고 말하는데, '아니야, 내가 탈게' 라고 나는 도저히 말을 못하겠는 거다. 그렇게 여동생과 조카가 롤러코스터를 타러 가고 나는 제부에게 전화를 해서 이 일에 대해 말했다. 내가 엉엉 운 것 까지도. 그러자 제부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내게 말했다.



"타미는 놀이기구 타는 거 되게 좋아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맞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이는 좋아한다. 아이는 좋아하는데, 아이는 신나서 즐기고 있는데 나는 아이가 타는 걸 두려워했어. 내가 두렵다고 아이에게 타지 말라고 하면 안되는 거잖아. 마찬가지로 아이가 노르웨이에 피오르드 보러 가겠다고 하면, 나는 두렵지만, 내가 두렵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가지 말라고 하면 안되는 거 아닐까. 내 두려움과 다른 사람의 두려움이 다르고 내 바람과 다른 사람의 바람이 다르다. 우리는 그걸 계속 염두에 두어야 하는게 아닐까.




이 책의 원제는 '짐The Burden' 이라고 한다. 그러나 번역된 제목처럼, 나는 사랑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재작년에는 사랑하는 남자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사랑을 공부하고 싶었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힘들지 않으려면 더 사랑을 알아야 하고, 더 배워야 해, 생각했던 것. 그러나 애인에 대한 사랑이 아닌, 가족과 조카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사랑을 배운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조카보다 네 배를 살았는데도, 나는 아직 사랑에 대해 배울 게 더 많은 것 같다. 여전히 잘 모르고 여전히 부족한 어른인 것 같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삶을 이루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공부해야 한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랑을 배워야지, 계속해서 사랑을 배워야지.




엊그제 만난 친구와 소설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서로 좋아하며 얘기했었다. 소설이 이렇게나 좋다. 내가 배우고자 하는 것들이 그 안에 있어서, 나로 하여금 또 생각하게 한다.



배워야지.

사랑을 배울것이다.




˝지나친 연민이에요.˝
˝그럴 수도 있나요?˝
˝네, 그건 현실을 똒바로 보지 못하게 만들죠.˝
루엘린이 덧붙였다. ˝연민은 모욕입니다.˝
˝대체 어떤 의미에서요?˝
˝바리새인의 기도가 이를 그대로 암시하고 있죠. ‘주여, 제가 그 사람과 다르다는 데 감사합니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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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9-03-20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와르와 마플이 없는 크리스티 소설이라니 색다른 느낌이 드네요.코난 도일이 추리소설 작가라기 보다는 역사소설가로 불리우기를 평생 바란것처럼 크리스티 여사도 포와르와 미스 마플에서 벗어나고파서 이름도 바꿔 새로운 장르의 소설을 쓴것이 아닌가 싶은데 작가의 바램과 달리 독자들에게 크게 반향을 얻진 못한것 같습니다^^

다락방 2019-03-21 10:54   좋아요 0 | URL
반향을 일으켰는지 안일으켰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읽기에는 이 시리즈가 다 좋습니다.

얼룩말 2019-03-21 1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시리즈 좋아해요.

다락방 2019-03-21 11:50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시리즈를 네 권 밖에 못읽었는데 며칠전에 갑자기 읽고 싶어지더라고요. 재미있게 읽었어요. 훗.
 
귀신나방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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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한 번 펼치면 쭉쭉 빨려들어가면서 읽게 되는데, 물론 그 뒤를 짐작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재미있다. 요즘 독서의욕 떨어진 사람들이라면 이 책으로 다시 불붙일 수 있을 듯. 확실히 재미있는데, 그렇다고 ‘으앗 좋아~‘ 이런 건 아니다. 굳이 별로 치자면 3.5. 알라딘은 반 개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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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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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청춘만 공허한 것이 아니었구나.
2. 청춘의 공허함이란 핑계로 그 시절의 나를 좀 더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다 그런거야.
3. 그건그렇고, 여자들은 대체 얼마나 힘들게 살아온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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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19-03-14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사 놨어요. (당연히-_-)아직 안 읽었지만요^^;. 뭔가 읽기 두려워지네요ㅠㅠ;;,

다락방 2019-03-15 09:16   좋아요 0 | URL
얇아서 금방 읽으실거에요. 저는 신형철이 극찬하는 만큼 좋진 않더라고요. 걍 보통...
 
창비어린이 2019.봄 - 통권 64호
창비어린이 편집부 지음 / 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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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차별의 당사자이므로 나는 여성주의에 대해 관심을 갖고 공부하게 되었다. 열심히 책을 읽고 강의를 따라 다니고 또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글을 쓰고. 그렇게 점점 더 여성주의에 대해 알아갔고 그리고 또 앞으로도 더 많이 알고 싶다. 알면 알수록 더 목이 마르다고 생각하고 또 내가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나 생각하며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고 있다.


그런 참에 이 계간지, 《창비어린이》를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내가 그간 여성혐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는 있었지만, 아동 혐오에 대해서는 무지했다는 걸 알게 되어서다. 어린이 역시 약자였고, 이 사회의 혐오는 언제나 약자를 향해 일어나는 것이니만큼, 그들이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것. 게다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위치에 그들이 있었다.

아, 나는 이렇게 읽고 쓰고 말할 수 있을만큼 나이들었지만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게 없겠구나, 그저 사회가 굴러가는대로 내동댕이쳐질 수 밖에 없겠구나. 그리고 나는 그들에 대해 너무나 무심했구나.



이런 자각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공존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런 한편, 이 책속에 글을 실은 저자들이 있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아,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미처 내가 신경쓰지 못한 부분에 대해 신경쓰고 생각하고 말하고 있구나. 그 점이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나는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갑자기 아동의 권리를 위한 운동을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그들 덕분에 하던 걸 계속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계속 공부하고 생각하고 읽고 말하고 쓸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건, 내가 없는 자리에서 누군가가 또 다른 일들에 힘을 쏟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직 이 책을 다 읽진 않았지만 모든 어른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모든 어른들이 이 책속의 글들처럼 그렇게 좋은 글을 쓸 순 없더라도 읽으면서 신경을 쓸 수 있다면,  '아, 그렇구나' 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하게 된다면 세상의 혐오는 조금씩 지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일독을 권한다' 라는 표현보다 이 책은 책장에 꽂아두고 재차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밑줄을 박박 긋고 가끔 꺼내어 밑줄 그은 부분들을 읽다보면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찬성과 반대로 입장을 나누어 토론을 진행하는 수업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양측의 관점이 모두 타당한 명분과 가치를 지닌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섣부른 토론은 혐오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내가 이끌어 온 수업이 또 다른 혐오를 정당화한 것은 아닌지 불안했다. 그날 아이들이 낸 결론을 보고 나서야 이제까지의 교실이 어떠했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교실 안의 아이들을 살펴보았다. 아이는 권력자인 어른의 발화에 동조하고 따르는 것으로 차별과 배제에서 벗어났다는 착가에 빠지곤 한다. 이러한 착각은 먼저 나서서 노키즈존을 옹호하는 아이와, 스스로를 '급식충'이라고 칭하며 웃는 아이, "제가 맞을 짓을 하긴 했어요."라며 부모의 체벌을 변호하는 아이를 만들어 낸다. (이신애, 어린이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려면, p.43-44, )



아이들이 스스로의 힘만으로 차별과 혐오에 대항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별과 혐오는 모두 논리적이었고, 타당해 보였고, 정의와 사랑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가게 운영에 방해가 되니 손님을 가려 받겠다는 운영 방침, 아이는 미숙하니 어른들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말, 널 사랑해서 때렸다는 체벌과 같은 것들은 모두 그럴듯한 명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 명분이 당사자의 눈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신애, 어린이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려면, p.44)




어느 작품이든 주연은 서사의 맨 처음부터 주인공이다. 유예 기간을 거쳐 주인공이 되는 등장인물은 없다. 소설이 아닌 현실 세계에서는 누구나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다. 아동은 어른의 삶을 위한 조연이 아니다. 아동과 청소년 역시 어른과 마찬가지로 '내일의 주인공'이 아닌 '오늘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아이는 어른이 된다. 그리고 자신이 겪은 유년기를 그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이다. 더욱 강력한 관용과 존중을 바탕으로. (이신애, 어린이가 '오늘의 주인공'이 되려면, p.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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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폭력으로서 ‘몰카‘와 성폭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첫째,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어 피해여성이 ‘죄인‘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강간 범죄에서나 ‘몰카‘ 범죄에서나 문제화되는 것은 ‘가해자가 왜 그런 범죄를 저질렀는가‘가 아니라 피해자의 처신이다. 둘째,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범죄 사실 자체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지만, 피해자는 오히려 피해 사실을 숨긴다. ㅂ씨 피해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스스로 ‘ㅂ씨와의 성관계를 찍은 몰카를 가지고 있다‘며 언론에 범죄 사실을 알렸으며, ㅂ씨는 사건 발생 초기에 ‘절대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는 강간범이 강간 피해여성에게 ‘강간 사실을 가족·주변 등지에 알리겠다‘며 협박하고, 피해여성은 이를 숨기기 위해 가해자의 요구에 끌려 다니는 메커니즘과 똑같다. 범죄는 가해자가 저질렀으되, 사회적 처벌은 피해여성을 향한다. (강김아리, p.135)




셋째, 강간과 ‘몰카‘의 정치적 효과는 일반 여성으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 일상적으로 여성의 몸을 규율, 통제한다. 이제 여성들은 공중 화장실이나 공중 숙박 시설을 이용할 때 ‘몰래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범죄에 대한 주변의 반응과 처벌 과정은, 잠재적 피해여성들에게 ‘이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 기제가 없으며, 당하는 사람만 피해를 보는 것이니, 미연에 알아서 조심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즉 ‘ㅂ씨 비디오‘의 존재 자체가 일반 여성들에게 일종의 ‘경고‘이자 ‘본보기‘인 것이다.
강간 문제에서 감시와 통제의 대상이 ‘남성의 폭력성‘이 아니라 ‘여성의 몸‘이었듯이, ‘몰카‘ 역시 여성의 몸을 감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만든다. 강간과 ‘몰카‘, 그것은 여성들 스스로 종속을 체화하게 하는 가부장제적 공포와 통제의 수행자이다. (강김아리, p.136)





내가 읽은 건 2003년에 나온 구판이고, 링크된 책은 2018년 개정판이라 쪽수가 일치하는지는 모르겠다. 어제 승리와 정준영 사건을 보면서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났다.


2016년 정준영 동영상 사건이 드러났을 때 정준영은 무혐의라고 계속 예능에 나왔고 또 지금도 나오고 있다. 그때 내가 인터넷 기사의 댓글들을 읽으며 다니진 않았지만, 아마 많은 남자들이 정준영이 '당했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나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여자들은 '무혐의가 무혐의가 아닐 것이다'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불법촬영의 피해자가 괜히 그걸 고소할 리가 없으니까. 불법촬영 당했다는 혹은 성추행, 성폭행 당했다는 고소를 여자들이 대체 무슨 '이익'을 보자고 괜히 하겠나. 그 무혐의를 지켜보며 피해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러고도 정준영은 예능에 계속 나와서 웃으며 돈을 벌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피해자는, 아니 피해자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피해자 중에는 자신이 찍힌 걸 뒤늦게 알고 '고소안할테니 유포만 하지 말아라'고 말하기도 했던데, 그렇게 말을 하는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정말이지 분해서 미치겠다. 왜 피해자가 범죄 사실을 드러내기 겁내야 하고 숨어야 하는가. 그동안 이 사회는 어떻게 유지되어온 것인가.



그나마 이렇게 심각하게 인식될 수 있었던 건, 지난해 나를 비롯한 많은 여자들이 불법촬영 하지 말라고 길에 나가 크게 소리질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에 이른 게 아닐까. 세상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아마 저런 단톡방은 숱하게 많을 것이다. 불법촬영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공유하는 단톡방. 남자 연예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학생들 사이에도 숱하게 존재하는 단톡방이겠지. 부디 이번에 저 단톡방에 있던 그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붙잡아 죄에 맞는 벌을 받는 걸 보고싶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지금 이 나라에 존재하는 수백 수천개의 단톡방들을 더이상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저 단톡방에 있던 그 누구도 텔레비젼에 더이상 얼굴을 드러내서는 안된다. 나와서 반성했다며 눈물 흘리고 또다시 웃으며 돈을 잘 벌어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노래가 좋아서', '연기를 잘해서'라는 핑계로 그들이 여전히 잘 살 수 있음을 보여줘서는 안된다. 우리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열심히 노래하고 연기하는 이들을 살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그만큼 연기하고 그만큼 노래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들이 아니면 안되는 게 아니다. 범죄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피해자들이 보는 텔레비젼에 나와서 재능을 뽐내는 일따위 해서는 안된다. 사실 뭐 재능 따위, 남자라는 것 말고 별 거 있는 것 같지도 않지만.




어제 저녁 퇴근 무렵만 해도, 사랑의 묘약 다 읽었고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말랑해진 마음으로 페이퍼써야지, 했는데, 저 지독한 한남들의 뻔한 단톡방 불법촬영 사건을 보고 너무 미쳐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최근 책읽기에 또 집중 못하는 타이밍이구먼, 하고 있었는데, 더 가열차게 읽어야겠다. 작년에 친구와 나는 성폭력에 대해 더 파고들어보겠다, 라는 얘길 나눴더랬는데, 더 열심히 읽고 더 열심히 말하고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만큼 힘을 보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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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9-03-12 0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준영이 그런일이 있었군요. 그럼에도 계속 TV에 나올 수 있었다니요....

메모해 둡니다.
˝젠더 폭력으로서 ‘몰카‘와 성폭력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첫째,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어 피해여성이 ‘죄인‘으로 ‘용서‘를 구해야 한다. ...둘째, 피해자와의 관계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범죄 사실 자체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지만, 피해자는 오히려 피해 사실을 숨긴다....셋째, 강간과 ‘몰카‘의 정치적 효과는 일반 여성으로 하여금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 일상적으로 여성의 몸을 규율, 통제한다.˝

다락방 2019-03-12 08:37   좋아요 2 | URL
네, 정준영을 티비에서 보는 피해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그것만 생각하면 진짜 가슴이 폭발할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9-03-12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용해주신 두 번째 문단이요.
강간과 몰카가 여성들에게 ‘공포‘를 조장해 여성의 몸을 규율, 통제한다는 문단 읽으면서 <캘리번과 마녀>가 다시 떠오르네요. 마녀사냥의 대상은 대부분, 사실은 거의 전부가 여자였고, 마녀=여성 이었기 때문에, 마녀가 고문당하고 공개적으로 참수되고 화형당할 때 여성들이 겪었을 공포와 두려움이 여성들을 얼마나 압박했을지 말했던 그 문단이요.

특별히 나쁜 놈이었다기 보다는 보통의 나쁜 놈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쉽게 꼬시고 여자에게는 사귀는 거라 말하면서 관계를 갖고.
그 이야기를 단톡방에서 나누고, 자랑하고, 동영상을 공유하고. 그 친밀함과 우정에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에요.
다시는 못 나오게 해야지요.

다락방 2019-03-12 11:37   좋아요 1 | URL
맞아요. [캘리번과 마녀]에서는 그런 말도 했죠. 마녀를 숨겨주거나 편을 드는 사람까지도 벌을 내렸기 때문에 다들 하나같이 마녀몰이에 열중할 수밖에 없었다고.

단톡방에서의 그들은 모두들 하나되어 여자를 물화해 줄겼어요. 너무나 자연스럽게 늘상 일어나는 일이라는 듯, 잤어, 라는 말에 ‘영상은?‘ 되묻는 그 대화라니. 자신들이 지금 여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 없이, 자기들끼리 낄낄거렸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 화가 나요, 단발머리님.

저 역시 그들이 ‘특별히‘ 나쁜 놈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보편적 나쁜놈이었을 거예요. 자기들끼리는 나쁜놈이라는 생각도 안했을 거고요. 그냥 평범한 놈들. 그런 놈들은 아직 많고도 많을 거에요.

2019-03-12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랙겟타 2019-03-12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우연히 sbs뉴스를 보다가 정준영사건을 접했어요.
1박2일에서 그의 모습을 봤던게 불과 이틀 전입니다.

단발머리님 말대로 이 친구가 특별한 쓰레기라고 생각되지 않고 ‘보통’쓰레기라는 것이에요.

보통의 남자들까지 만연한 이 풍토(친구들끼리 여자들 상대로 얼평, 몸평하며 낄낄거리는 것)가 결국 지금 살고 있는 남성중심주의의 현실입니다. 그점에선 저도 이 굴레에서 벗어나 살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순 없네요.

여성들은 이미 이른 나이부터 여성주의 책보면서 스스로 공부하고 있는 반면, 남성들은 어릴때부터 이런 카톡방에서 여자를 주제로 히히덕 거리는 이 현실에서 남성과 여성의 생각의 갭은 쉽사리 좁혀지기 어렵다고 생각이 드네요.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이 더더욱 공부해야한다고 보지만....;;;
어쨋든 결론은 죄값을 확실하게 받는 것부터 출발이라고 봅니다. 뭐 자숙하다가 쳐 나와서 노래로...연기로..보답하겠습니다. 라는 개소리는 더이상 보기 싫네요.

다락방 2019-03-13 08:08   좋아요 1 | URL
오늘 은퇴한다고 하는 입장문을 읽었어요. 죄송하다는 사과가, 정말 죄송해서 본인이 쓴 건지는 모르겠네요. 맞아요, 블랙겟타님. 보편적 놈들이죠, 보편적 남자들. 그런 남자들이 아마 수두룩 하겠죠. 저런 단톡방은 한두개가 아닐거에요.

여자라고 해서 사실 자유로울 순 없어요. 저 역시도 일전에 유행하던 *양 비디오 같은 거 본 적 있고요, 직장동료가 자기 핸드폰에서 재생시켜서 보여준 유포된 불법영상도 본 적 있어요. 다만 그 때 뭔가 남자들처럼 낄낄거릴 순 없었죠. 무엇이 잘못됐는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러나 어딘가 이상한.. 되게 부끄러운 그런 기억이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그러나 스스로 여성주의를 공부하게 되면서 무엇이 잘못됐고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를 알게 됐어요. 다음번에 같은 직장 동료가 또 보여주려고 할 때는 말할 수 있었습니다. 너는 불법촬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걸 찍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이걸 소비하고 있으면 어떡하냐, 이렇게 소비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찍는 사람이 어떻게 사라지겠냐, 이것을 유포하는 것 역시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 아니겠냐, 하고요. 제 말에 동료는 금세 알아듣더라고요. ‘아 정말 그렇네요‘ 하더니, 앞으로 보지도 유포도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며 폰에서 그 영상을 지우더라고요.


부끄러운 기억은 아주 많죠.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러나 이제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기 때문에 자꾸 바꿔나가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변하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말하게 되고, 그렇게 주변 사람들도 변하게 되면 점점 더 변할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이것이 지나치게 여성들 쪽에서만 가능하다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저만해도 이제는 시위에 나가 불법촬영 해서는 안된다고 소리치는 사람이 되었지만, 수만명의 여자들이 그곳에 모여들게 되었지만, 남자들은 여전히 변할 생각 없이 불법촬영을 하고 유포를 하고 성매매를 하고 강간을 하고 있네요.

그나마 지금은 목소리 내는 여자들이 많아져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 싶어요.


정준영과 승리도 이제 보여서는 안되겠지만, 지금껏 얼굴 잘 들고 다니는 다른 많은 남자 연예인들도 제발 꺼져줬으면 좋겠어요.

공쟝쟝 2019-03-14 17:49   좋아요 1 | URL
남성연대 진짜 오지는게 이수근?도 그렇고 이미 성폭력으로 물의 일으킨 자들., PD들이 막 다독여서 복귀시켜주고 그러는 것도 진절나요. 여배우였으면???? 진짜 꼴보기 싫습니다.

다락방 2019-03-15 09:21   좋아요 2 | URL
진짜 토나오는 알탕카르텔이죠. 여자들은 나가서 안된다고 소리지를 동안 지들은 낄낄거리며 불법촬영하고 돌려보고 있었다니. 진짜 토할것 같아요. 그 단톡방에 있던 남자들 죄다 감방에서 모여야해요. -_-

차트랑 2019-03-13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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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9-03-13 18:29   좋아요 0 | URL
ㅎㅎ 차트랑님, 오랜만입니다! 써주신 댓글만으로도 뜻이 전달되네요. 좋아요 열 개 받은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