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뉴욕 수업 - 호퍼의 도시에서 나를 발견하다
곽아람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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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부터 뉴욕에서의 삶을 꿈꾸었다. 


그건 영화들 때문이기도 했고 책들 때문이기도 했으며 팝송들 때문이기도 했다. 미국에 가고 싶었는데 그렇게도 꼭 뉴욕엘 가고 싶었다. 내가 뉴욕에서 살아볼거야, 꼭 그러고 싶어. 한결같은 그 꿈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로서는 미국에 가는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았고 그 서류들이 통과되면 대사관에 가 인터뷰를 보고 비자를 받아야 했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드디어 처음 뉴욕에 가게 된 때가 내 나이 스물아홉이었고, 그것은 나의 첫 해외여행이기도 했다. 여행 자체에는 큰 흥미가 없었고 관심도 없었는데 뉴욕에 가는 것은 꼭 내갸 해봐야 할, 해보고싶은 일이었다. 그렇게 처음 뉴욕을 방문했을 때 내 목적지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센트럴 파크였다. 겨울이면 그 오리들은 어딜가는걸까, 궁금해하던 홀든을 생각하며 센트럴파크의 호수를 보았고, 뉴욕시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찬양하는 익스트림은 그 이유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처음으로 키스를 했기 때문이라고 했잖아? 내가 본 영화나 책 그리고 들었던 노래들을 나는 내가 직접 경험하고 싶었다. 그 첫여행에서 엘리스 아일랜드를 갔고 자유의 여신상도 보았다. 월스트리트 에도 가 사진을 찍었다. 친구랑 맨하튼을 돌아다니면서 우리 몇 년후에 이곳에 꼭 다시 오자고 했더랬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뉴욕에 다시 갔다. 이번에는 우리 미술관들에 가보자, 뉴욕에 그렇게나 미술관이 많대. 이번 목적지는 뉴욕의 미술관을 다 돌아다녀보는 거였다. 우리는 모마를, 메트로 미술관을, 구겐하임을 갔고 자연사 박물관을 갔다. 가기 전에 미술 관련 그림책들을 보았다. 매그놀리아에 가서 컵케익을 사먹었다. 뉴욕의 외곽에 숙소를 잡아 뉴욕의 야경을 감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 이렇게 다시 왔네, 우리 몇 년후에 또 다시 오자.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나 뉴욕에 다시 갔다. 이번엔 다른 친구와 갔고 나에게는 세번째 방문이었다. 우리는 911 메모리얼 기념관을 함께 갔고 그곳에 한참 머물렀다. 그 후에는 서로 다른 일정으로 움직였다. 친구는 브로드웨이로 가 며칠 연속 연극을 보았고 나는 휘트니뮤지엄을, 구겐하임을, 노이에 갤러리를 갔다. 성패트릭 성당엘 갔다. 모마 앞에서는 길거리에 서서 샌드위치를 사먹기도 했다. 센트럴 파크를 한참 걸었다. 나는 여기 세번째 왔는데 계속 또 오고 싶네. 그러나, 


나는 세번의 뉴욕 방문 후, 내가 뉴욕에서 거주한다는 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라는 걸 알았다. 식당에서의 높은 팁도 그리고 숙박비도 감당하기 힘들었다. 내가 여행객으로서 며칠 방문하는 건 즐거운 경험이지만, 이것이 일상이 된다면 버티지 못할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뉴욕이 좋지만, 그러나 뉴욕에서 사는 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뉴욕에서 살진 못하겠어, 그러나 나는 뉴욕이 좋아, 여행으로 오는 것만 하자. 그렇게 내 오린 뉴욕의 거주 꿈은 절반은 여행으로 이뤄졌고 절반은 현실자각으로 포기했다.



조선일보 기자생활을 하던 곽아람이 뉴욕에 갔다. 

본인은 프로 '놀러' 라며 자신이 이렇게 잘 노는지 몰랐다고 얘기하지만, 그러나 내가 보기에 곽아람은 공부를 하는 사람이었다. 학위를 따려는 게 아니어도 그녀는 미술 관련 강의를 듣고, 다른 시간들에는 부지런히 그림들을 보러 다닌다. 센트럴파크를 지나 구겐하임을 갔다고 곽아람이 썼을 때는 아, 나 역시 그랬기에 그 풍경이 눈앞에 선했다. 휘트니 미술관에 가 호퍼 그림을 봤다고 했을 때는, 나 역시 휘트니 미술관에 가서 에드워드 호퍼 그림은 몇 층에 있냐고 직원에게 묻던 내가 겹쳤다. 성패트릭 성당에 가 미사를 드렸다는 글에서는 나 역시 성패트릭 성당에 가 가만 앉아 기도하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매그놀리아 컵케익을 먹고 911 메모리얼 기념관에 가고 모마와 메트로 미술관에 가는 곽아람의 문장들은 계속해서 내가 뉴욕에 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내가 이미 눈으로 보았던 곳 내가 이미 걸었던 곳을 다른 사람의 글로 읽는 것은 나를 감상에 젖게 했다. 911메모리얼 기념관에 길게 줄을 서 대기하다 들어갔던 일도 떠올랐다. 엘리스 아일랜드 방문기를 읽을 때는, 친구와 내가 배를 타고 그곳에 갔던 것도 떠올렸다. 그뿐인가.


곽아람에게도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는 예외가 아니었다.

혼자 살기 위한 숙소를 구하는 것이 비용 문제로 힘겨워지자 투룸 아파트에서 네 명이 함께 셰어하며 공간을 사용해야 했던 일, 그러니까 내가 비용 때문에 포기한 일을 곽아람은 기어코 해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쾌적하고 독립적인 공간을 포기해야 했던 거다. 나는 이게 자신이 없었는데 그런데 곽아람은 그렇게 했다. 일년간 뉴욕에 거주하면서 곽아람은 듣고 싶은 강의를 듣고 많은 오페라를 보고 미국과 미국 바깥의 여러 곳을 여행했다. 좋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만났고 타지인에게 혹독한 텃세로 인해 마음 고생도 했다. 춤도 배우고 요가도 했다. 


무엇보다, 긴 직장생활에 잠깐의 멈춤을 갖고 이국에서 공부하기를 했다. 

뉴욕에 갈 당시에 곽아람의 나이는 삼십대 후반이었고 십년 이상의 직장생활을 한 뒤였다. 늦은 나이가 결코 아니지만, 나는 그게 참 좋더라. 내가 살고 싶은 삶 역시 직장 생활 그만둔 뒤에 이국에서 공부를 하는 삶이었으므로 곽아람의 뉴욕에서의 시간을 읽는게 즐거웠다. 뉴욕에 대한 향수로 아련했다면 직장 생활을 경험한 뒤의 공부로 인해 힘을 받았다. 내가 지금 퇴사를 한 뒤 이국에서의 삶을 경험한다면 아마도 그 뒤에 다시 취업은 좀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한 번은 그렇게 살고 싶다. 


내가 좋아하고 바라는 세가지가 이 책에 모두 있었다. 뉴욕, 이국에서의 삶, 직장생활 후의 공부. 


어떤 책도 지극히 읽는 사람의 몫이다. 나라는 사람에게 이 책은 혼자 조용히 앉아서 읽을 때 극도의 행복을 주는 책이었다. 지난 월요일에는 퇴근 후에 버거킹에 가 불와퍼셋트를 먹고 가만 앉아 이 책을 읽었다. 그 시간이 그렇게나 좋더라. 혼자 책 읽는 시간을 좋아하는데 세상에, 거기에 내가 원하는 쓰리콤보가 다 담긴 책이라니. 어떤 책은 이렇게나 인생의 찰나에 행복을 준다. 그리움과 추억과 아련함이 이 책안에 있었다. 바라는 삶도 이 책안에 있었다.


어제 이 책을 다 읽은 후, 나의 인스타그램을 한없이 위로 올려가며 저기 밑에, 뉴욕에 갔던 사진들을 끄집어냈다. 내가 갔던 곳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이제 진작 사두고 읽지 않았던 곽아람의 다른 책, [공부의 위로]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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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4-25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참 좋네요.

근데...

불와퍼셋트 맛 어때요? 버거킹이 와퍼 이제 판매 안 하다고 해서 너무 웃겼는데...(뻥을 치네 이놈들이, 다른 와퍼 내놓을 거면서... 싶었더니 역시)

다락방 2024-04-25 11:35   좋아요 1 | URL
저는 치즈와퍼가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딱히 불맛 스럽지도 않아요. 쿠폰 있어서 사용해봤는데 쿠폰 아니면 저는 제값주고 사먹진 않을듯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oonnight 2024-04-25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미국에 못 가 봤지만 곽아람 작가의 책으로 만족했어요ㅎㅎ 특히나 숙소 문제로 맘고생하는 대목에서 -_- <공부의 위로> 참 좋아요. 다락방님 좋아하실 듯 합니다^^

단발머리 2024-04-25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곽아람 작가 참 좋더라구요. 잘 모르는데 ㅋㅋㅋㅋㅋㅋ 책도 안 읽어봤구요. 그 똑! 부러진 태도가 좋았어요. 말투도 그렇잖아요. 약간 쎈언니 느낌인데.... 온 세상 착한 언니가 한가득인 이 세상에서, 이런 쎈언니 있어줘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퇴근 후의 책읽기에 대해서, 전 최근에 자주 생각합니다. 저는 퇴근 시간이 매우 이르거든요. 그런데도 집에 가면 책을 펴지 못하겠더라구요. 치우고 정리하고 하다보면, 아홉시 반.
전 다른 건 따라하기 어려울 테지만, 버거킹 불와퍼셋트 먹기는 따라하기 가능합니다. 일단 이걸 해치우고, 다음에 뉴욕 여행하기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악의 유전학
임야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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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이 필연적으로 불러오는 우생학과 대량 학살.
그리고 악에 대해 읽는 것의 불유쾌함.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인줄 모르고 읽었다가 놀라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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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미제 사건 전담반
조 캘러헌 지음, 정은 옮김 / 북플라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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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이 빨리 넘어가는 재미도 있지만 생각할 거리도 던져준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소수의 사람을 희생하는 것은 과연 옳은것인가.
그나저나 이 책 속의 AI 같은 것이 내게 있다면 사랑에 빠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건 수사를 위해 내 사랑을 양보하게쒀!! (뭐래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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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4-15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래 증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4-16 09:0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웬만한 인간 남자보다 AI 가 낫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 날의 비행일지
오수영 지음 / 고어라운드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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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낯선 도시에 머물기도 하면서 글도 쓰는 삶이라니. 부럽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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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의 살인 첩혈쌍녀
아라키 아카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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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인간은 모두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기적 행동을 하고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돕기도 하는게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들 역시 그렇게 행동을 한다.
젊은 작가가 다 망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인간을 위해 애를 쓰는 이야기를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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