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서 껴안았는데, 왜? - 2021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도서관 어린이인권도서 목록 추천, 2021 경기도학교도서관사서협의회 추천 바람그림책 40
이현혜 지음, 이효실 그림 / 천개의바람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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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서적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성적 대상화'란 말이 쉽게 와닿질 않았다. 일상적으로 늘 겪고 있는, 경험하고 듣고 보는 일이면서도 그 용어 자체는 어려웠다. 그래서 조금 더 쉽게 쓰여진, 더 잘 읽히는 페미니즘 서적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다. 성적 대상화, 가시화 등의 용어들을 처음 접했을 때, 책을 읽지 않았던 사람이라면 '아 페미니즘은 어려운 거구나' 라고 자칫 관심을 닫아 버릴까봐 조금 더 쉽게 쓰여진 책을 원했던 거다. 훅- 다가설 수 있도록. 나처럼 생각했던 사람이 많았는지 이제는 쉽게 쓰여진 페미니즘 책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전에, 그러니까 아주 어린 아이들에게 페미니즘이란 용어 자체의 설명도 어려울 때, 그때는 어떤 책이 좋을까? 



어릴 적에 누구나 초등학교를 다니면서(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 남자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을 견뎌야했던 적이 많을 거다. 수시로 치마를 들추고 머리를 잡아당기고 끌어안고 뽀뽀하고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기고... 내 경우엔 지금 언급한 모든 일들을 수차례 당했는데, 사실 나는 가만있는 성향의 사람이기 보다는 해결해보고자 하는 타입이었다. 선생님께 일러바친 적도 있었는데(선생님, 쟤가 저 껴안아요!), 그때 선생님은 내게 '너 좋아해서 그러는건데 그런걸로 이르지마라' 고 했더랬다. 여자 선생님인데도 그랬다. 그래서 그 뒤로는 선생님이 안계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 숨었던 적도 있더랬다. 종치면 나가야지, 하고. 머리를 잡아당기거나 치마를 들출 때도 마찬가지. 선생님한테 일러봤자 해결되는 건 없었다. 오히려 소문만 무성해진다. 쟤가 쟤를 좋아한대요~ 하고. 다른 반 남자아이가 쉬는 시간에 찾아와 공개적으로 날 좋아한다고 말하고 가기도 했다. 그 때 내가 얼마나 얼굴이 시뻘개졌는지는 어휴- 말해 다 무엇해. 한 번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칠판에 판서를 하는 틈을 타 내 앞자리 남자아이가 내 다리를 만지면서 니 속을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수업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러지마 개새끼야!



하고 소리를 질렀더랬다. 휴- 이런 일화야 셀 수 없이 많다. 



나는 선생님에게 일러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냈는데, 그게 폭력이었다. 크- 나는 나를 괴롭히는 남자아이들을 때렸다. 나를 안을라 치면 주먹으로 때리고 또 안으려고 다가오면 필통을 들고 때렸다. 그냥 막 때렸다. 내 옆에 오지 못하게 저리가! 이러면서 맨 손을 때로는 무기를 휘둘렀다. 체육 시간에 한 번은 몸이 아파 교실에 혼자 남아 있었는데, 혼자서 칠판에 낙서를 하고 있었는데 같은 반 남자아이가 뭔가를 가지러 교실에 들어왔다가 내게 다가왔다. 아무도 없을 때 안아보자며 내게 다가오길래, 나는 거침없이 녀석의 뺨을 때렸다. 꺼져, 라고 하면서. 언제였더라, 수학여행 때는 내가 자고 있는 여학생들 방에 다른 반 남자아이들이 떼로 몰려왔다. 밤이었고 우리는 불을 켰는데, 찾아온 남자아이들 중에 대장은 일전에 우리 반에 와서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 놈이었다. 여자아이들이 꺅 소리를 지르며 애들에게 나가라고 하는데도 애들은 히죽거리면서 방안으로 들어왔고, 나는 자다 깨서는 그 애들을 향해 말했다.



야, 죽고 싶지 않으면 나가라.



그러자 남자 아이들은 '나가자' 이러면서 다같이 나갔다. 나는 하도 폭력을 휘둘러서, 당시에 깡패로 소문이 나있었다. 깡패로 소문나기 전까지의 나는, 전교부회장 선거에 후보로 나갔었고(떨어졌지만), 신문과 티비에 나온 적도 있었으며, 공부잘하고 예쁘기로(응?) 소문이 났었더랬다. 그런데 깡패...로 바뀌어 있었다. 그나마 6학년이 되어서는 남자아이들 때리는 걸 멈출 수 있었는데, 그때는 남자아이들이 안는다는 식으로 내게 접근하지 않았었다. 


내게 다가오는 남자아이들을 때리면서 나는 진짜 피곤했다. 어린 나이에 피곤했어 ㅠㅠ 아이들과 맞서 싸우면서 피곤한 게 아니라, 그냥 그 상황 자체가 피곤했던 것 같다. 나는 싸워서 피곤했지만, 나처럼 남자아이들을 때리지 못하는 아이들은 또 그 아이대로 피곤했을 것 같다. 싫은데 어쩔 수가 없으니까. 이게 좋아해서, 예뻐서라고 하니까 다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아 자신만의 소극적 저항을 하면서 얼마나 피곤했을까.




일전에 조카가 아래 위로 까만 색을 입었는데 너무 잘 어울려서 예쁘다, 귀엽다 했더니 조카는 그렇게 입기 싫다고 했다. 아빠가 자꾸 놀린다는 거였다. 나는 조카의 그 말을 듣고 '아빠가 타미 귀여워서 그러는거야' 라고 했는데, 그때 조카가 그랬다.


이모, 귀여우면 귀엽다고 해야지 놀리면 어떡해!



아!! 내가 지금 이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거지? 무심결에 내가 어른들로부터 그토록 듣기 싫어했던 말을 해버렸어! 문제 해결엔 아무것도 도움이 안되는 말을 내가 했어! 그 때 진짜 내가 무서웠다. 나는 얼른 아이에게 사과했다. 아 미안해 타미야. 타미 말이 맞아. 귀여우면 귀엽다고 해야지 놀리면 안되는거야, 타미 아빠가 잘못한거네, 라고. 이 일이 내게 오래 남았다.





'좋아해서' 여자아이를 끌어 안던 남자아이들은 자라서 '좋아하니까' 성희롱을 하는 남자 어른이 된다. 여자들이 싫다고 해도 그것을 '에이 좋으면서 뭘그래' 라고 받아들인다던가, '이렇게 좋아하는 데 내 마음 왜 몰라줘' 라고 하면서 강제적으로 스킨십을 시도한다. 진짜 씨발스러운 경운데, 이건 헤어지고 나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가 하나씩은 갖고 있는 찌질한 전남친들의 경우, '연락하지마' 라고 하는데도 계속 연락하고 찾아오고를 반복하지 않나. 새벽 두 시에 '자니?' 라는 것도 싫고, 나한테 연락하지 말라고 차단을 걸어도 계속 다른 식의 접근을 시도하는 그 행위는 폭력이다. '너를 잊지 못해서' 라고 상대에게 그 이유를 덮어 씌우지만, 그건 실제로 자기 자신을 위한 거다. 너를 잊지 못해서 '나는' 너를 다시 가져야겠어, 다시 내 옆에 두어야겠어, 라는 이유. 그래놓고 '너를' 잊지 못한다고, 너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왜 받아주지 않느냐고 징징댄다면, 그건 상대의 의도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다. '안돼' 라고 하면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은 상대를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고서를 떠나, '안되는'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너를 받아들이지 않겠다, 라고 한다면, 그 말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안돼 라는 말은 안된다는 거다. 




나는 아무리 친한 사람,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과도 거리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늘 그렇게 주장해왔다. 물론,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야 매번 든다. 누군가에게는 아주 밀착되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나의' 마음이지 상대의 마음이 아니다. 그렇기에 매번, 좋아하면 할수록, 가까이 다가가고 싶으면 그럴수록, 더 조심하게 된다. '조심하지좀 마' 라는 말도 들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조심하려고 노력하는데, 그건 아마도 내 스스로가 내 경계선 안으로 침범하려는 것을 지독하게 싫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내가 허락한 적 없는데 밀고 들어오는 거 진짜 너무 싫고 소름 돋는다. 나한테 밀착하려는 것도 싫고, 내가 싫다고 하는데도 밀고 들어오려는 거 싫고, 나를 열 번 찍는 것도 싫어한다. 그럴수록 정나미가 떨어진다. 이 사람들(대체적으로 남자사람들)은, 왜 내가 싫다는데도 이렇게 밀고 들어오지? 싫다고 하면 '너는 왜이렇게 자신을 압박하냐' 등의 개소리를 하기도 하더라. 좀 더 마음을 열어야 되지 않겠냐 등등.... 내 마음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열겠다는데 지들이 뭔상관? 나는 이 남자들이 다들 경계를 모른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쳐둔 경계선을 멋대로 무시하려 드는 거라고 생각한다. 얼마전에 글 썼던 것처럼, 상대의 허락받지 않고 상대 얼굴 사진을 전시하는 일 따위, 그런 건 상대가 쳐둔 경계를 완전히 무시한 처사이며 상대의 몸을 상대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들에게 '경계'라는 게 무엇인지 처음부터 교육시켜야 하지 않을까. 그들 모두에게 이 책을 읽어보라 하고 싶다.




'준수'는 '지아'가 너무 좋아서 껴안았는데 지아가 싫어한다. 준수로서는 좋아서 끌어안았는데 왜 지아가 싫어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선생님은 경계선에 대해 설명한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도 나라를 구분해주는 선이 있고, 인도와 차도처럼 차와 사람 사이에도 선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허락없이 넘어서는 안되며, 그럴 경우 다칠 수도 있고 위험할 수도 있다고 말해준다. 친구의 장난감을 내 마음대로 갖고 놀지 않아야 하고 친구의 과자를 내멋대로 먹어서도 안된다. 친구의 공간에 들어갈 때, 친구의 장난감을 갖고 놀고 싶을 때, 우리는 반드시 친구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다. 몸도 마찬가지. 지아의 몸은 지아의 것이다. 그런데 지아의 몸을 '내가' '좋아한다'는 이유로 끌어안아서는 안된다. 지아에게 묻지 않고서는 지아에게 무엇도 해서는 안된다. 친구를 놀리는 것도 마찬가지. 상대가 '싫어, 하지마' 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을 '해도 된다'고 허락하는 게 아니다. '안돼'라고 말하지 않았어도 나쁜 짓은 나쁜 짓이다. 이 경계선에 대해 이해하게 된 준수는 지아에게 사과의 편지를 쓴다. 네 몸은 네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겠어, 라고.



우리에게 어릴 적이 필요했던 교육은 이런 것이 아니었나 싶다. 세상의 모든 찌질한 전남친들, 잘 헤어지지 못하는 옛 연인들과 또 세상에 모든 '성적대상화에 익숙해진' 성인남성들에게 부족했던 게 바로 이런 게 아니었나 싶다. 내 몸은 내 것이듯이, 다른 사람의 몸 역시 다른 사람의 것이다. 그것을 상대의 허락도 없이 품평하고 대상화 시켜서는 안된다. 이 가장 기본적인 내용을 우리는 어릴 적에 교육받지 못했던 것같다. '좋아해서 그래'라니, 이 말은 얼마나 많은 성희롱과 성폭력을 잠재하고 있는가. 더이상 '아이스케키~' 가, 끌어안는 일이, '좋아서 그래'로 덮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누구나 자기 몸의 주인은 자기라는 것을, 다른 사람이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어릴 적부터 알고 자랐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렇게 말해주고 있고,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도 필요하지만 쥐뿔도 모르고 마음대로 경계를 넘으려 하는 성인들에게도 필요한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싫다고 했으면 싫은 거다.

안된다고 했으면 안되는 거다.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내 의사에 반해 네 마음대로 행동하면 안되는 거다. 내 몸의 주인은 나니까. 나의 주인은 나니까. 당신은 내 경계선을 내 허락없이 넘어서도, 지워서도 안되는 거다. 이 단순하고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면서 살자. 




조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그래서 이 책은 조카에게 선물할 것이다.

조카야, 누가 네 경계선을 넘으려 하면 안된다고 말해주고, 너 역시 다른 사람의 경계선에 들어가고 싶다면 반드시 노크를 하도록 해. 

이 말을 내 대신 이 책이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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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7-02-20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고!!

이 책 보관함에 넣고, 선물할 리스트에도 넣을게요.

참 좋은 글이다. 다락방! 땡큐!!

다락방 2017-02-20 10:19   좋아요 0 | URL
히힛. 좋다고 말해주니 기분이가 참 좋으네요. ㅎㅎ
고마워요!
:)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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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중인데)

.......나 이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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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7-02-1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아, 다락방님 입에서 이런 말도 나올 수 있군요!^^ 왓~~ 신기 신기!!!

다락방 2017-02-16 21:02   좋아요 1 | URL
저 끝까지 못읽겠어요, 그장소님. 어떡하죠? ㅋㅋㅋㅋㅋ ㅠㅠ

[그장소] 2017-02-16 22:04   좋아요 0 | URL
대체 얼마나 시끄럽길래...하하핫~ 누군가의 고독이 말그대로 농도 짙은 독인 모양입니다~^^

수평선 2017-02-16 2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저랑 똑같은 생각을!!!

다락방 2017-02-17 09:40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하도 좋다고 하길래 읽어보려 한건데 저는 ??????????????????????????? 이렇게 되었어요. ㅎㅎ

hellas 2017-02-17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인지 알것만 같은 그 기분ㅋㅋㅋㅋㅋ 힘내세요:)

다락방 2017-02-17 09:40   좋아요 0 | URL
힘내려고 어제 더 읽기를 시도했지만 끝에 조금 남겨두고 아아, 이걸 계속 읽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글읽기연습인가...했습니다. Orz

고양이라디오 2023-07-06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 다락방님 100자평에 위안을 얻습니다. 지금 반쯤 읽었는데 재미가 없네요. 계속 읽어도 똑같을 거 같네요ㅠ

다락방 2023-07-06 18:2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전 이게 뭔소리여~ 이러면서 읽었던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ㅋ
 
혼자를 기르는 법 1
김정연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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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고 아름다운 책이다. 특히나 자신이 기르는 햄스터를 보며 ‘어떻게 하면 너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부분은 내내 기억에 남는다. 물론 주인공이 가끔 쌍욕하는 것도 아주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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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2-15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하면 너의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을까?‘
사랑할때 그런 생각 많이 했던것 같아요..

다락방 2017-02-15 16:02   좋아요 0 | URL
맞아요, 나와같다면님! 실제로 사랑을 하게 되면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인 것 같고요. 상대로 인해 나의 마음이 충족되고 또 나로 인해 상대의 시간들이 행복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삶의 질은 쑥 올라가잖아요. 사랑을 한다면 자존감도 높아지고 또 삶의 질도 높아지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사랑하면서 그런 생각 했어요. 우리는 서로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사람이구나, 하는 거요.

:)
 
토니와 수잔 버티고 시리즈
오스틴 라이트 지음, 박산호 옮김 / 오픈하우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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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초반 흡입력이 대단하다. 그나마 수잔이 책을 읽다가 중단하고 일상으로 돌아올 때, 그때야 비로소 나도 함께 일상으로 돌아오는 게 가능해진다. 독서에 재미를 잃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으로 다시 흥미를 갖게 될거라고 장담한다. 그 흡입력이 끝까지 지속되는 건 아니지만 이걸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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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20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영화에선 토니가 너무 찌질 섬뜩 한남으로 나온대서 보지않았는데 책은 좀 덜한가요? 톰 포드의 문제인거신지...
장르는 너무 제 스타일이라 혹했거든요ㅠㅠ 다락방님 이거 다읽으시면 꼭 자세한 후기 남겨주세요😍

다락방 2017-02-20 17:26   좋아요 1 | URL
롸님, 저 이거 다 읽었어요. 다 읽고 백자평 쓴거고요 ㅎㅎ
책에서도 토니는 좀 찌질해요. 이해가 되기도 하면서 찌질해요. -_-
책의 초반 흡입력은 대단한데 그게 끝까지 이어지진 않고요. 어쩌면 토니 안의 찌질함, 나약함을 우리 모두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뭐 그런 이야기를 좀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끝에 가서는 힘이 빠지더라고요. 초반의 그 어마어마한 재미남을 끝까지 유지하지는 못해요. 지금 제 주변에 두 명이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둘다 멈출 수가 없다고 했지만, 한 명은 중간을 넘겨가면서는 점점 별로가 되어간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토니 별로에요 -_-

2017-02-20 18:39   좋아요 0 | URL
제가 너무 흥분해서 읽고 계신 중이라는 말로 오독했네요 ㅋㅋ 하긴 다 안읽으셨는데 백자평 쓰셨을 리가ㅠㅠ
다락방님은 계속 토니 별로라고 하시는데 왠지 더 읽고싶어져요ㅋㅋㅋ 책 읽고 제안의 찌질함도 돌아보겠습니다🤔

다락방 2017-02-21 09:39   좋아요 1 | URL
롸님도 읽고 어땠는지 꼭 알려주세요!
분명한 건, 초반에 진짜 엄청나게 빨아들인다는 거예요. 책 읽는데 방해하는 모든 것들에 짜증이 날만큼요! ㅎㅎ
 
동사의 맛 -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한국어 품사 교양서 시리즈 1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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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치다

깁다



바늘과 실이 있다. 실을 바늘귀에 꿰고 옷감을 꿰맨다. 굵고 큰 바늘에 굵은 실을 꿰고 두꺼운 헝겊을 맞댄 뒤 이불 홑청을 호듯 듬성듬성 꿰매기도 하고, 가늘고 작은 바늘에 가는 실을 꿰고 바짓단을 접은 뒤 바늘땀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꿰매기도 한다. 옷감을 이어 붙인 뒤 바지 안쪽에 세로로 난 바늘땀처럼 안쪽에서 마치 용수철을 꿰듯 감아 꿰매기도 하고, 해진 자리에 다른 옷감을 대고 꿰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천 사이에 솜을 넣고 죽죽 줄이 가게 박음질하드 ㅅ꿰맬 때도 있다. 순서대로 쓰면 시치고, 공그르고, 감치고, 깁고, 누빈 것이다. 시치는 일은 시침질, 공그르는 일은 공그르기, 감치는 일은 감침질, 깁는 일은 기움질, 누비는 일은 누비질이라고 한다. 

바늘과 실이 지난 자리엔 바늘땀과 함께 이렇듯 낱말도 남는다. 하물며 사람이 지난 자리야. 시친 듯 지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친 듯 지난 사람도 있고, 공그른 듯 지나는가 하면 기운 듯 지나기도 하며, 때로는 온통 누비고 다니는 사람도 있으리라.

드물지만 바늘과 실이 사람 몸을 지난 자리도 있다.

어머니의 가슴과 왼쪽 종아리에는 각각 스무 땀과 서른 땀의 꿰맨 자국이 남아 있다. 꽉 막힌 관상 동맥 대신 다리의 혈관을 떼어 내 심장에 연결한 흔적이다.

"사람 몸을 이렇게 누더기처럼 만들어 놓고, 의사들은 참……." 하면서 어머니는 고개를 젓는다. 목숨을 건졌는데 그깟 바늘땀이 대수냐고 나는 무심히 대꾸해 버리지만, 생각해 보면 기가 막히기도 하다. 남이 입을 옷을 짓느라 평생 바느질을 해 온 양반이, 누군가 당신 몸에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리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 아닌가.

어머니 몸에 남은 바늘땀을 보고 "바느질 솜씨가 영 형편없네." 하고 내가 짓궂게 놀리면 "그러엄, 이게 누더기처럼 기운 거지 무슨 바느질이니. 이렇게 해 가지고는 밥 먹고 살기 힘들어야." 하며 어머니는 언제 시무룩했냐는 듯 깔깔 웃는다.

'감치다'는 '감쳐, 감치니, 감치는, 감친, 감칠, 감쳤다'로, '깁다'는 '기워, 기우니, 깁는, 기운, 기울, 기웠다'로 쓴다. (p.36-37)




총 302페이지의 책인데 62페이지까지만 읽고 쓰는 리뷰임을 먼저 밝힌다. 대체적으로 책을 읽을 때 앞부분이 좋아도 뒤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보아왔으므로 이만큼만 읽고 리뷰를 쓰는 건 지양하는 편인데, 이 책에 대해서라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확신이 든다. 제목 그대로 동사에 대해 마치 국어사전을 펼치듯 설명해 놓았는데, 거기에 대해 저자는 에세이와 또 (본인이 쓴)소설(이라기 보다는 가상의 이야기라고 해야할까-그는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 얘기를 자주 풀어놓는다)로써 예를 든다. 동사의 뜻과 활용을 이렇게 맛깔스럽게 풀어놓다니, 이 책은 책장에 반드시 꽂아두고, 동사를 찾아보고 싶을 때 국어사전보다 먼저 꺼내들어야 할, 그런 책이다. 동사의 '맛'이라는 제목은 어찌나 적절한지! 다루는 동사마다 감칠맛나는 글을 덧붙여 두었는데, '감치다'와 '깁다' 편의 저 이야기는 특히나 좋았다. 어머니와의 대화가 완전 생생하지 않은가. 

이것은 사전이면서 동시에 에세이이며 소설이다! 게다가 글을 진짜 지독하게 잘썼어!! 아름다워!!



책 뒷편에 '서평가 로쟈 이현우'가 '바라건대 한국어의 모든 맛을 다시 일깨워 주기를!' 라고 추천사를 썼는데, 완전 공감한다. 나 역시 김정선이 한국어의 모든 맛을 다시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여러분, 이 책 진짜 좋다. 읽자. 그리고 책장에 꽂아두자. 동사의 활용이 헷갈릴 때 펴들면 유익할 것이고, 잔잔하고 차분하며 아름다운 글을 읽고 싶을 때 펴들면 또 그대로 만족할 것이다. 진짜 질투나게 글 잘 쓴다.



부르르(질투에 떨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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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2-07 1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02-07 14:02   좋아요 0 | URL
아 저 아닙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이란 닉네임을 쓰는 다른분 인듯 합니다.

이진 2017-02-07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왜 같이 소개를 안 해주셨나요 다락방님!!

다락방 2017-02-07 14:28   좋아요 1 | URL
소이진님, 안녕?

동사 하나하나에 대해서 짧은 에피소드들이 나오는데, 거기에 종종 도서관에서 만난 남자와의 대화가 들어가 있어요. 소이진님, 이 책 꼭 읽어보세요. 소이진님은 꼭 읽어보셔야 해요. 글 쓰는 분이시라, 이거 진짜 도움 많이 될 거예요!

아무개 2017-02-07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임호부님 글 참 좋죠?
저는 소설의 첫 문장을 읽고 있는데 왠지 소설 준비중이신게
아닐까 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ㅎㅎ

다락방 2017-02-07 14:36   좋아요 0 | URL
글 정말 질투나게 잘 쓰시더라고요.
게다가 단어에 대해서도 이렇게 잘 알고 계시니, 이런 분이 소설을 쓰신다면 어떤 소설을 쓰실지 너무나 기대 됩니다. ㅎㅎ
소설의 첫문장도 좋은가요? 저도 봐야겠어요.
이 분이 [이모부의 서재]내신 후로 그냥 줄기차게 쭉쭉 책을 뽑으시네요.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ㅎㅎ
그렇지만 이 분에겐 기본기가 너무 탄탄해서...
정말 질투나고 기죽어요ㅠㅠ

2017-02-08 1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8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8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심야 2017-02-16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옹 그렇군요!! 다락방님께서 질투까지 나실 정도면 정말 얼마나 글을 잘 쓰시는건지 궁금하네요!! 갑자기 읽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군요!! 장바구니에 넣어둬야겠어요 ㅎㅎ

다락방 2017-02-17 09:41   좋아요 0 | URL
심야님, 에피소드나 예문 자체도 가만가만 좋고요 동사에 대해 정리도 잘 되어 있습니다. 읽으시면 후회하지 않으실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