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로 사는 건 결코 편한 길이 아니다. 일상의 사사로운 수많은 불편함에 노출되는 일이다. 게다가 아주 자주 모순에 맞닥뜨리게 되고. 친하게 지내는 남자사람들과 다투고 사이가 틀어지는 일들도 그렇고, 이성애 연애를 함에 있어서도 그렇다. 내가 이 남자 앞에서 이렇게 행동하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 과연 괜찮은 것인가. 나아가서, 내가 이 '남자'와 연애를 해도 되는 것인가.. 까지. 남자 앞에서 사랑받고 싶다, 예뻐보이고 싶다는 욕망은 나의 자연발생적인 것인가 이 세상이 내게 강요한 것인가 .. 한 인간이 완벽한 존재일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주 나의 부족함에 고통스럽다.
이성애 앞에서의 갈등도 많겠지만 직장 내에서의 갈등은 또 어떠한가.
나는 오늘 이 갈등 앞에 처절하게 무너져내릴 것만 같다.
내가 하는 일은 페미니즘과 가장 거리가 먼 일이고, 성적대상화에 쉽게 오르내리는 직업군에 있다. 또한, 하아- 내가 그토록이나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늙고 돈많고 지위 있는 남자'와 함께 일하고 있다. 게다가 그 특징상 가부장제와 권력에 쩔어있어... 화를 참지 못하고 툭하면 소리 지르는 것이 특징인 사람....이세상 하등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존재. 있으면 그저 유해한 존재.. 그런 존재와 일하려다 보니 속이 타들어갈 때가 한두번이 아니고, '원래 저런 사람이다' 라고 무심히 넘기려고 해도, 그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나도 사람인데 어떻게 무심할 수가 있어. 물론 예전보다, 이 일을 처음 시작할 때보다야 훨씬 강해지고 단단해졌지만, 그렇다고 내가 늘상 잘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늙은 남자의 사소한 짜증이 나의 화를 너무나 불러일으켜. 내 스트레스를 지켜본 회사 동료가 '차장님같은 꼴페미가 그 사람과 같이 일을 하려고 하니 극과극의 상황에서 진짜 버티기 힘들겠어요' 라고 말한다. 하아-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왜 이곳을 박차고 나가지 않는것인가...
지금으로서는 1년만, 길어도 2년만 더 버티자 싶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면서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꿔 나가자고. 아르바이트까지 포함하면 20년이상을 돈을 벌기 위해 일했다.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여자로서 일하는 것의 참담함'에 마주쳤는가. 게다가 '을로서의 참담함'까지...
그렇게 오늘은 상사 앞에서, 직업 앞에서 자꾸만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내가 바란 직업은 이게 아니었고, 내가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도 나는 이 일을 하는게 아니었다. 다만, 더 높은 연봉을 받아들이며 이 부서에 불려왔을 뿐인데, 그 연봉은 나의 스트레스 비용이었어.
이 부서로 옮김으로써 그리고 이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써 그간 들어온 무수한 말들도 생각난다. 일전에 구남친 중 한 명은 '니 직업에 대해 가족들한테 말하지 못했어, 그러면 너 예쁘고 날씬한 줄 알까봐' 라고 말을 했었고, 또 어떤 남자는 '그 직업이라고 다 그런 건 아닌가 보네' 라고도 했었다. 그들도 세월만큼 더 늙었을텐데, 하등 쓸모없는 남자가 되어있겠지, 그 때처럼....
앞으로 일 년, 길면 이 년. 나는 무사히 이 날들을 참아낼 수 있을 것인가.
왜 참는 것은 내 몫이어야만 하는걸까. 내가 을이니까 그런건가...
출근길에 도넛츠를 잔뜩 사왔지만 위로가 되지 않는다. 오늘 너무 힘드네. 여자인것도, 을인것도 힘들어...
어제 출글길에 읽었던 혁명의 영점에서 '우편주문 신부'라는 단어를 보았다. 어휴, 한숨부터 나오는데, 자, 우리 다같이 깊은 한 숨 쉬고 읽어보자.
특히 일부 아시아(태국, 한국, 필리핀) 지역에서 섹스산업과 섹스관광이 대중화되어, 베트남전 이후로 이런 국가들을 휴양 및 레크리에이션 지역으로 이용해 온 미군을 비롯한 국제 고객들에게 봉사 하고 있다. 1980년대 말 태국 한 곳에서만 5천2백만 명의 인구 중 백만 명의 여성들이 섹스산업에 종사했다. 그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 일본 등지에서 종종 노예에 가까운 조건에서 매춘부로 일하는 "제3세계"또는 그사회주의 국가 출신 여성들의 수가 어마어마하게 늘고 있다.
1980년대에 국제적으로 성행했던 "우편주문 신부"라는 이름의 "밀매"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 한 곳에서만 매년 약 3천5백 명의 남성들이 우편주문으로 여성을 선택하여 결혼한다. 신부들은 동남아시아나 남아메리카의 최빈지역에서 온 젊은 여성들이며, 러시아 같은 구사회주의 국가 출신 여성들 역시 이를 이민의 방법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1979년에는 7,759명의 필리핀 여성들이 이 방법을 이용해서 필리핀을 떠났다. "우편주문 신부"라는 이름의 밀매는 한편으로는 여성들의 빈곤을, 다른 한편으로는 유럽과 미국 남성들의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이용한다. 이런 남성들은 고분고분한 아내를 원하고, 해당 국가에서 머물기 위해 자신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의 취약점을 쥐고 흔든다.(p.132-133)
이 페이지를 읽다가 구석에 작게 '버스데이 걸' 이라고 메모를 해두었다. 까먹지 않고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였는지 아니면 졸업 후였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아주 오래전에 '니콜 키드먼' 주연의 《버스데이 걸》이 바로 그 우편주문 신부가 나온 영화인 것 같은 기억이 퍼뜩 떠올랐기 때문이다. 러시아 여자로 가장하고 신부가 되기 위해 주문되어온 여자, 그래서 할 줄 아는 말은 'yes' 밖에 없었는데, 알고보니 이 여자가 사실은 러시아 여자가 아니라 영어를 잘하는 여자였다... 뭐 이런 흐름이었던 것 같다. 하도 오래되어 기억이 이정도밖에 안나는데, 내 기억이 맞나 싶어 나는 니콜 키드먼을 검색창에 넣고 검색해 보았다.
줄거리를 읽다보니, 맞아, 그러고보니 마지막에 남자가 살인 사건의 포로가 되는 것도 같았던 것도 같다..
[작품 소개]
평범한 소시민 존 버킹검은 근소한 차이로 과장 승진에서 누락되지만, 은행 금고 열쇠의 보관자로 임명된다. 언젠가 곤란에 처한 상황에서 훌륭하게 접객한 일도 있고, 소위 10년 근속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맡겨진 업무인 셈이다. 평소 말수가 적어 가깝게 지내는 동료도 없다. 태어나 자란 곳에서 줄곧 생활하고 있어 주민들에게 인지도는 높지만, 적극성의 결여로 호감도는 낮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개척 정신은... ‘0점’에 가깝다. 런던에서 60킬로 정도 떨어진 교외 센트 올반즈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고, 현재 사귀는 여자 친구도 없다.
지극히 단조로운 나날을 보내던 존은 문득, 삶의 변화를 결심한다. 어찌 보면 비참할지도 모르지만, 한편으론 용기있는 행동이기도 한 “러시아로부터 사랑을"이란 웹 사이트를 통해 신부를 주문한 것이다. 모스크바발 236편으로 도착한 신부를 본 순간, 존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된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아름다운 러시아 여성 나디아. 하지만, 황홀한 순간도 잠시. 그녀는 사이트에서 보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한마디도 못한다. 무조건 ‘YES’만을 중얼거리며, 연신 담배를 피워댈 뿐이다. 무엇보다도 대화를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의 열쇠라고 생각하는 존에게 나디아는 부담스러운 존재일 뿐이다. 날이 밝기 무섭게 그녀를 반품하려던 존은 갑작스레 덮쳐오는 그녀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그녀의 현란한 ‘바디랭귀지’에 완전히 포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두 사람은 자신들만의 색다른 로맨스를 만들어가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나디아의 생일을 맞아 러시아에서 사촌 오빠라는 유리와 그의 친구 알렉세이가 들이닥치기 전까지는. 무례하고 폭력적인 그들로 인해 존의 평화로운 일상은 뒤죽박죽이 된다. 급기야 참다못한 존의 집에서 나가달라는 요구가 엉뚱하게 꼬이면서, 두 사람은 나디아를 인질로 존을 협박하기 시작한다. 나디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10년간 근속해온 은행을 털어야 하는 상황까지 몰리게 된 존. 대체 나디아의 정체는 무엇일까...?
(혹시 위의 인용문이나 위 작품소개를 읽고 '여자들도 자기가 원하니까 신부로 팔려가겠다고 등록한 거 아니냐'라고 반박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런 거 어디가서 반박하지 말고 조용히, 구석에 찌그려저서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를 읽자. 모르면 막 말하면 안되고, 알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 게 먼저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때 신부를 주문한 남자가 도착한 신부인 니콜 키드먼을 보고 너무나 아름다워 놀라며 좋아했던것 같다. 기대했던 것보다 더 예뻤던 외모에 놀랐겠지. 만약 이것이 영화가 아니라 정말 있는 현실 그대로를 반영한 것이었다면 영화는 어땠을까. 우편으로 주문한 신부가 자기 생각과 달리 못생겼다면? 그랬다면 그들은 '반품'을 요청했을까?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영화에서는 신부를 주문한 남자가 착하고 순한 남자였던 걸로 나오고, 운좋게(?) 예쁜 여자를 신부로 맞아 들이게 나오는데, 나중에 사건이야 어떻게 흘러가든, 그러니까 인질이 되고 뭐 그렇든말든, 이 영화는 현실을 지나치게 미화해서, 아니 미화라기 보다는 구라에 가깝지 않나... 머릿속 '신부 사기'로 만들어낸 영화가 아닌가 싶다. 지금 기억이 안나서 이렇게 얘기하지만, 막상 보고나면, '아 이것은 우편주문 신부라는 제도를 까기 위해 만든 영화구나' 라고 생각하게 될까? 그것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보여주기 위해 만든 영화인걸까? 아아, 기억이 안나 모르겠다.
영화속 주인공도 그렇고 그리고 현실에서도 그렇고, 남자는 '여자 없이' 못사는걸까? 외롭고 힘들면 여자를 만나야만 하는걸까? 너무 혼자 못서는 거 아닌가? 외국에서 신부를 '사와서' 결혼하는 남자들은 정말 '사랑을 하고 싶었으나 짝을 찾지 못해'라기 보다는 집에서 밥 차려주고 아이 낳아줄 여자를 원하는 것 같다. 그것이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거야? 뭐 그렇게 잘난 씨라고 퍼뜨리길 원해. 밥 스스로 해먹으면 되잖아. 요즘 전기밥솥이 밥 맛있게 잘해준다. 먹자마자 설거지하면 설거지 쌓이지 않고.
그러고보면 오래전에도 '술마시자'고 전화하는 남자들 보면 '다른 여자애들 데리고 나와'라는 말을 많이 했다. 그리고 '나 지금 내 친구들하고 술마시는데 너도 술마시면 다같이 이리로 와' 라고 했었고. 무수히 들었던 말 중에는 '남자끼리 영화를 왜 보러 가', '남자들끼리 어떻게 노래방을 가' 였는데, 남자끼리 영화도 못보고 노래방도 못가면 어디 가요? 안마방? 룸싸롱? 어휴.. 여자 만나 술마시는 거 말고는 문화생활을 전혀 안하니... 남자들끼리 영화도 못보고 노래방도 안가면... 뭐해? 술 마시는데 꼭 여자들 부르려고 하는 것도 '남자들끼리 술마시면 무슨 재미냐'는 거였는데 ㅎㅎ 니네는 니네끼리 만나서 술마시면 재미도 없는데 뭐하러 만나서 그렇게 술 많이 마시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니들끼리 재미없으면 재미있는 다른 친구를 사귀면 되잖아. 뭐 자기들끼리 할 줄 아는 게 없어. 아니, 여자 만나면 왜 갑자기 재미있어지는거야? 여혐을 스포츠로 즐기니까?
위에 인용한 우편 주문 신부에 대한 내용은 이 책의 <6장 신국제노동분업에서 재생산과 여성주의 투쟁> 에 나온다. 책 한 권에 죄다 밑줄 긋고 싶을만큼 명징한 내용들로 가득한데, 실비아 페데리치님, 앞으로 님의 모든 작품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책을 써주셔서 감사해요. 이토록이나 날카롭고 지성적인 여자분이라니, 나는 또 넘나 좋은 것이다.
언론은 우리가 그렇게 믿기를 바라지만, 끝나지 않는 전쟁, 학살, 자신의 땅에서 쫓겨나 난민으로 전락한 모든 사람들, 기근 등, 이 모든 것이 인종적, 정치적, 종교적 갈등을 강화한 극적인 빈곤화의 결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같은 참혹한 상황은 그 무엇도 이윤의 논리를 벗어날 수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도와 토지관계의 사유화를 위해 필요한 보완장치이고 최근까지 토지와 자연자원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들로부터 이를 빼앗아 다국적 기업들에게 넘기기 위한 최고의 수단이다. (p.127)
몇 해전에 홍콩을 처음 갔을 때, 그곳에서 가사노동을 하던 외국인 여성들을 보고 엄청 놀랐었던 기억이 있다. 다같이 바깥에서 한 데 모여 나와 쉬던 장면. 처음에는 그 장면이 뭘 의미하는지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기사들을 보고 알게됐었다. 그리고 실비아 페데리치는 '신시아 인로'의 관찰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신시아 인로Cynthia Enloe 의 관찰처럼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은 이민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경제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유럽, 미국, 캐나다의 정부들이 여성운동의 기원과 맞닿아 있는 가사노동위기를 해결하고, 수천 명의 여성들을 "해방시켜" 가외家外 노동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었다. 그리 많지 않은 정도의 급료에 집을 청소하고 아이를 돌보며 음식을 만들고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필리핀 또는 멕시코 여성들 덕분에 많은 중산층 여성들이 생활수준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원치 않는 또는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는 노동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같은 "해법"은 여성 내에 "하녀-주인여성"관계를 만들어내고, 이 관계는 가사노동을 둘러싼 편견, 즉 가사노동은 진정한 노동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돈을 적게 지불해야 하고 가사노동에는 분명한 경계가 없다는 등등의 가정 때문에 더욱 복잡해진다는 점에서 상당히 문제적이다. 게다가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국가가 아닌) 여성이 재생산노동을 전담하게 되기 때문에 남성파트너와 가사노동분담 문제를 놓고 왈가왈부할 일이 사라지면서 가족 내 노동분업에 저항하는 투쟁이 약화된다. 이민자여성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가사노동자는 월급이 박한데다, 자신의 가족을 남겨두고 온 입장에서 다른 이들의 가족들을 돌봐야 한다는 점에서 가사노동자로 취업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선택이다. (p.130-131)
책을 읽는 다는 것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지만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내가 순간적으로 스쳐지나갔던 것들이 책을 읽다 보면 '아, 이게 그거였구나' 하고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모든 경험들은 의미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처음 홍콩에 갔을 때 마주친 풍경들이 오래 남았고 그래서 오래 홍콩을 싫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홍콩만의 문제일까. 나는 세계 어디를 가도 빈부차를 눈앞에서 목격했더랬다. 싱가폴에서 호텔에 들어와 틀어둔 텔레비젼에서는 명품 광고를 해댔지만, 내가 바깥으로 나가서 만나는 풍경은 그렇지 못했으니까. 물론, 그건 내가 이 나라에 오래 살면서 스스로 실감하는 바이기도 하고.
내가 살아가는 삶과 내가 보았던 나와는 다른 삶이 결국은 여성혐오라는 것에서 하나로 만나게 되는 것 같다. 빈곤이 어디에나 있듯 여성혐오도 어디에나 있으니까. 또한 빈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공격하는 대상이 바로 여성이니까.
꼭꼭 씹어가며 읽느라고 읽고 있지만, 내가 이 책을 좀 더 잘 읽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똑똑해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째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똑똑하지 않다는 것만 이렇게 더 잘 인식하게 될까. 그래도 똑똑한 여자들의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어떻게든 도움이 된다. 내가 세상의 모든 강간범을 없앨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똑똑한 여자의 글을 읽고 쓰면서 그리고 또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내가 인용하면서 여성 작가가 한 번 더 언급된다. 그 말은 누가 한 말이야, 누가 그렇게 했는데, 라고 하는 것들의 많은 퍼센테이지를 여성들의 것으로 바꾸고 싶다. 결국은 그렇게 하는 것이 여성혐오에서도 더 멀어질 수 있는 길이란 생각이 든다. 알쓸신잡에 남자들만 수두룩하게 나왔던 것처럼, 그런 것들만 많이 보고 읽다보면 인용하는 것들이 죄다 남자들의 입을 빈 것이니까. 나는 세상에 더 많은 여자들의 생각과 사고가 스며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 좀 더 여성의 이야기를 읽고 말하여야 하고.
2월이 어느틈에 사흘 밖에 안남게 되었을까.
오늘 출근길도 그리고 회사에서도 너무 힘들어서, 얼른 가버려랴 2월, 했다. 그래도 가장 짧아 아쉬운 달인데, 이러면 안되는 거겠지. 남은 날들 잘 지내보자, 2월. 그리고 내가 이번 달 안에 혁명의 영점 다 읽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