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의 창조
거다 러너 지음, 강세영 옮김 / 당대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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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다 러너가 이 책의 서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성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행위자이자 주체였으나, 역사가 없는 주변인으로 살아왔어야 했다. 여성들은 남성들의 재산이었고 노예였는데, 이 남성에게서 저 남성에게로 옮겨가는 과정의 기원을 밝히면서 이 책은 시작된다. 저기 오래전 메소포타미아 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역사에 무지한 나로서는 낯선 용어들의 숱한 등장에 방황해야 했고 어지러웠으며, 그래서 어려웠기에, 굳이 그 오래전부터의 역사를 아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수시로 질문해야 했다. 가부장제가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으리라는 것은 여성주의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인데, 그걸 굳이 알아야 할까?


그러나 알(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희망을 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종국에는 했다. 거다 러너가 보여주는 그 오래전의 역사들, 그러니까 상징과 은유와 그리고 기록된 법전들과 신화들은 그 자체의 내용만으로는 절망적이지만-여자는 노예이며 첩이며 남성의 소유재산이었다 하는 것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이곳에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 때와는 또 다른 삶을-나아진 삶을-살고 있지 않은가, 떠올리게 된것이다. 


성서를 비롯한 신화에서 여성은 신에 의해, 그러나 남성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였고 먹지 말란 걸 먹으면서 죄를 범한 존재가 되어 벌을 받게 된다. 그 벌은 거다 러너가 지적한 것처럼, 남성에게는 땀 흘리는 노동이었으되 여성에게는 재생산에 대한 섹슈얼리티적 벌이었다. 왜? 

게다가 고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여성은 '불완전한 남성'이라 정의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들어보면 정말이지 여성의 신체나 생물에 대한 지식이 없는 채로 머릿속 상상을 진실인양 하기 때문에 어처구니 없지만, 그래서 더, 아니 그러니까 온갖 신화와, 법전과, 철학자의 말들이 이렇게나 여성이 열등하다고 하고 속박되어야 하고 너희들의 섹슈얼리티는 사물화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여성들이 투표권도 가지고 경제력도 가지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것들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말하고 연구하고 이렇게 써낼 수 있었을까? 결국 인간은-여성은-진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희망이 생겨버리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여성작가들을 떠올렸다.


이 책의 4장 <여성노예> 부분에서는 부부에게 자녀가 없으면 첩을 들여 보완하고, 그 첩은 주인남자를 위해서는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주인여성을 위해서는 하인이 되었다는 기록을 언급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바로 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 생각이 났다. 시녀이야기 속 시녀들은 남자주인들과 성관계를 맺고 여자주인들의 심부름을 한다. 그렇게 시녀라는 계급이 되기 전, 그녀들에게는 먼저 경제력을 박탈하는 것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동결시킨 거야. 그녀가 말했다. 내 것도 마찬가지야. 여성 단체의 카드도 마찬가지야. M(남성, male-옮긴이)이 아니라 F(여성, Female-옮긴이)라는 글자가 박힌 계좌는 전부 그래. 몇 번 단추만 누르면 되는 일이야. 우리는 철저히 차단당한 거야.

하지만 은행에 2000달러나 입금해 두었는데, 나는 말했다. 세상에 중요한 게 내 계좌밖에 없다는 듯이.

여자들은 더 이상 재산을 가질 수 없게 됐어. 새로 입법된 법이야. 오늘 TV 켜 봤어?

아니.

TV에 나와. 하루 종일 나오고 있어. 모이라는 나처럼 경악하고 있지 않았다. 이상하지만 어떤 면에선 들떠 있었다. 자기는 오래전부터 이런 일을 예상하고 있었는데 보란 듯이 들어맞았다는 것처럼.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더 생동감 넘치고 결연해 보였다. 루크가 너 대신 '컴퓨터카운트'를 사용할 수 있어. 적어도 그들 말로는 그래. 남편이나 가장 가까운 친척이. -《시녀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p.306


재산이 남성에서 남성에게로 상속되는 것, 그로 인해 여성들은 남성의 노예(그리고 사유재산)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서 마거릿 애트우드는 이미 소설로 지적했더랬다. 또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는 남성들에게 제공된다. 


그이는 마음에 걸리지 않는 거야. 그이는 전혀 마음 쓰지 않아. 어쩌면 오히려 잘됐다고 여길지도 몰라.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것이 아니야. 이젠, 내가 그의 것이 되어 버린 거야.

무가치하고 부당하고 비현실적이었다. -《시녀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p.313


무가치하고 부당하고 비현실적인 역사가, 여성들에게 있었다. 서로의 것이 아니라 '그의 것'이 되어야 하는 역사가.



가부장제의 창조의 백미는 마지막 11장에 있다. 거다 러너 는 자신들의 경험이 세상의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믿음이 전부라고 믿는 남성들은, 다른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내가 경험하는 것이 세계의 전부라고 받아들인다면 바로 그게 한계가 된다는 것. 이 사고는 남성들이 고쳐야 하는 것이지만, 여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가부장제를 유지하는 데에는 여성들도 기여를 하였고 또 여성들이 그 뒤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교육을 받았다고 해도 그 스승이 남성인 경우가 허다했다. 우리의 의식 속에도 일반화와 고정관념은 자리잡았을 것이고,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사고를 재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너무나 당연한 주장이고, 그리고 이 주장에서 좀 더 뻗어가 우리가 SF 소설을 읽고 상상력을 가지려고 노력해야하며 그래서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디 그레이엄'  생각이 났다. 


상상력과 용기는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굳세게 사회적 행동에 나설 수 있도록 해준다. -《여자는 인질이다》, 디 그레이엄, P.349


길먼과 티트리의 작품에서 여자 등장인물들은 근거 없이 남자를 깎아 내리지도, 그렇다고 용납해서는 안 되는 남자의 행동을 용납하지도 않는다. 이들은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만큼 다른 이들에게도 행동의 책임을 묻는다. 그렇기에 자신이 남자에게 느끼는 공포를 인정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자아 성찰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세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본인을 믿기에 적절한 순간에 타인을 불신하기로 선택할 수 있다. 이 불신 덕분에 무력하게 변화에 몸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힘을 보탤 수 있게 된다. -《여자는 인질이다》, 디 그레이엄, p.354



이 길고도 긴 그리고 절망적인 가부장제의 역사 속에서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와 해방을 주장하고 경제력을 가지고 임신을 선택할 수 있게 된 지금이 가능해진 것은 결국 인류가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가. 철학자와 성경과 법전이 모두 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거부하고 현재에 이른 데에는 얼마나 많은 용기와 지식과 상상력이 필요했을까. 거다 러너가 가부장제의 창조를 쓴 것처럼 마거릿 애트우드는 소설을 썼고 디 그레이엄은 여성학 이론을 썼다. 여기까지 이르는 데에는 수많은 여성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깨닫고 무엇보다 자기가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했던-글을 쓰는!- 시간들이 있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은 희망이 되었다. 무엇보다 여성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가부장적 사고의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다 러너에게 가슴 벅차게 동의한다. 

내내 절망적인 글을 읽었는데 결국 희망을 갖고 책장을 덮었다.


교정을 위해 요구되는 것은, 인간성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평등한 부분들 속에 존재하며 인간존재에 대해 내려지는 모든 일반화 속에 양성의 경험, 사고, 통찰력이 반드시 재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단호하게 받아들이도록 사고와 분석을 근본적으로 재구축하는 것이다.


오늘날 역사적 발전에 의해 처음으로 대규모 집단의 여성들이-마침내 모든 여성들이- 스스로를 종속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필요조건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의 생각은 그동안 제한적이고 오류에 가득 찬 가부장적 틀 내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 자신과 생각에 대한 여성들의 의식(consciousness)을 바꾸는 것이 변화를 위한 선결조건이다. -P.385

 


우리는 의식의 변화를 두 단계에서 일어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최소한 당분간은 여성중심적(woman-centered)이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가능한 한 가부장적 사고를 떠나야 한다.


여성중심적이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즉, 만일 여성이 이 주장의 중ㅇ심이 된다면 이 주장은 어떻게 정의될 것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성이 주변적인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조차 여성의 주변성(marginality)에 대한 모든 증거들을 무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여성의 주변성은 가부장적 개입(patriarchal intervention)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종종 그것은 단순히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기본 가정은 여성들이 강요와 억압에 의해 참여하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여성이 관련되지 않은 세상에서 일어났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P.395~396




남성처럼 여성은 역사 속에서 언제나 행위자이자 주체(agent)였다. 여성은 인류의 절반이거나 때로는 절반 이상이었기 때문에 세상과 세상의 일을 남성과 평등하게 공유해왔다. 여성은 사회를 만들고 문명을 형성하는 데 주변이 아니라 언제나 중심이었고, 또 여전히 중심이다. 또한 여성은 과거를 문화적 전통으로 만듦으로써 세대를 연결하고,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집단기억을 보존하는 데 남성과 함께하였다. 구전의 전통은 여성과 남성 모두가 창조하고, 민속·예술·의례를 통해서 보존해 온 시와 신화 속에 살아 있다. - P16

여성은 ‘역사를 만들었지만‘ 자신의 대문자 역사를 알지 못하게 방해받았으며, 자신 혹은 남성의 소문자 역사에 대해 해석을 못하게 방해받았다. 여성들은 상징체계나 철학, 과학, 법률을 만드는 일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되어 왔다. 여성들은 알려진 모든 사회에서 모든 역사시기에 걸쳐 교육적으로 박탈당했을 뿐 아니라 이론형성에서도 제외되었다. 여성의 실질적인 역사적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해석으로부터의 배제 사이의 긴장을 나는 ‘여성역사의 변증법‘(the dialectic of women‘s history)이라 불렀다. 이 변증법은 역사적 과정에서 여성을 앞으로 전진시켰다. - P18

여성들과 남성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역할을 같은 중요성으로 연기하는 무대 위에 산다. 그 연극은 두 종류의 연기자 없이는 계속될 수 없다. 그들 중 누구도 전체에 대해 더 혹은 덜 ‘기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중 누구도 주변적이거나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중략)
엄청난 투쟁 후에 여성은 평등한 역할배정 권리를 얻어내지만, 먼저 ‘자격을 갖추어야만‘ 한다. 여성들의 ‘자격‘ 요건 또한 남성에 의해 정해져 있으며, 남성은 여성을 평가하는 심판이다.
(중략)
대본, 소도구, 무대세팅, 연출을 남성이 꽉 잡고 있는 한 ‘평등한‘ 역할을 얻는 것이 자신들을 평등하게 해주는 것이 아님을 여성들이 이해하는 데는 엄청난 시간이 걸린다. - P28

결국 지난 50년 동안 일부 여성들은 대본을 쓰는 데 필요한 훈련을 받았다. 대본을 쓰면서 그들은 여서을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 더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남성스승들로부터 잘 훈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들도 역시 남성들이 하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며, 과거에 여성들이 맡은 역할을 격상시키려는 욕망에서, 남성들이 했던 일을 한 여성들을 열심히 찾았다. 그래서 보완적 역사가 탄생하였다.
여성들이 해야 하고 페미니스트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은, 동화 속의 어린이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알아냈듯이 무대·세트·소도구·연출자·대본작가를 지목해 내고 우리들간의 기본적 불평등이 이 틀 속에 놓여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것을 파괴해 버려야만 한다. - P30

시작하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알 수 없다. 과정 그 자체는 방법이며 목적이다. - P31

과거에 대한 어떤 이론화에서도 우리는 반드시 여성과 남성이 문명을 함께 건설했다는 가정으로 시작해야 한다. - P69

생산에 관한 지식이 계속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남성 연장자들은 이 ‘비밀‘을 신비화하고, 식량·지식·여성을 통제함으로써 젊은 남성들에게 권력을 행사한다. 그들은 여성교환을 통제하고 여성들의 성적 행위에 제한을 가하며, 여성들을 사유재산으로 취득한다. 젊은 남성들은 여성에 대한 접근기회를 얻는 특권을 갖기 위해 나이든 남성들에게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한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들은 전사들을 위한 전리품이 되며 그 공동체에 대한 연장자 남성들의 지배를 장려하고 강화시킨다. 결국 모계제와 모처거주의 전복을 통해 ‘여성의 세계사적 패배‘가 가능해지고, 이는 그것을 달성하는 부족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메이야수의 설계 속에서 재생산(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는 사유재산의 획득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 P89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여성의 지위에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는데, 구체적으로 가족에 대한 여성들의 종속이 제도화되고 법에 명문화되었으며, 매춘이 정착되어 규제를 받게 되고, 일의 전문화 정도가 높아짐으로써 여성들은 점차 특정 분야나 직업에서 배제되었다. 쓰기가 발명되고 공식 교육이 확립된 후 여성들은 교육에 대한 평등한 접근에서도 배제되었다. 고대국가의 종교적 지주인 우주발생론(cosmogohy)은 여신들을 주요 남신들에게 종속시키고, 남성의 우위를 합리화하는 기원(起源) 신화들이 특징을 이룬다. - P99

여성들은 가장 안전하고 고위층 출신이고 자신감에 차 있을지라도 스스로 남성의 보호에 의존하는 존재로 생각하였다. 이것이 사회계약의 여성세계이다. 자율을 거부당한 여성들이 보호에 의존하고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가능한 최선의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투쟁하는. - P130

다른 인간존재를 잔인하게 대하고 그‘그녀에게 자신의 의지에 반하여 노동을 하도록 강제하는 것보다 한수 높은 중요한 발명은, 지배당하는 집단을 지배하는 집단과 완전히 다른 집단으로 지정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물론 그런 차이는 노예가 될 사람들이 타지방 부족구성원, 말 그대로 ‘타인들‘일 때 가장 명백하다. 그러나 그 개념을 확장하고 노예화된 사람들(the enslaved)을 어떤 며에서 인간이 아닌 다른 것, 노예로 만들기 위해서, 남성들은 그런 지정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정신적 구성물은 대체로 어떤 현실 속의 모형들에서 나오며, 과거경험을 새롭게 정렬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그 경험은 노예제가 발명되기 이전에 남성들에게 주어졌던 것인데, 그것은 바로 자기 집단의 여성들을 종속시켰던 경험이다.
여성억압은 노예제보다 먼저 일어나 노예제를 가능하게 만든다. - P138

수많은 요인들의 집합이 성적 비대칭과 여성과 남성에게 불평등한 비중으로 부과되는 노동분업의 원인이다. 그로부터 친족관계는, 결혼에서 여성들이 교환되고 여성은 남성에 대해 일정한 권리를 갖지 않지만 남성은 여성에 대해 일정한 권리를 갖는 사회적 관계들을 구축하였다.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능력은 가족을 위한 서비스를 위해 교환되거나 획득되는 물건이 되었으며, 따라서 집단으로서 여성은 남성보다 자율성을 덜 갖는 집단으로 생각되었다. 중국과 같은 일부 사회들에서 여성은 친족집단에게 주변적인 국외자로 남아 있었다. 남성이 가구와 혈통에 ‘속해 있었다면‘, 여성은 그들에 대한 권리를 취득한 남성에게 ‘속해 있었다.‘ - P139

노예의 사회학에 대한 자세한 연구에서 지적했듯이, 노예화의 기술은 세가지 특징적 양상을 가진다. 첫째, 노예제는 보통 폭력적 죽음의 대체물에서 비롯되었으며, 그것은 ‘특히 형벌의 조건부 감면‘이었다. 둘째, 노예는 ‘태생적 소외‘(natal alienation)를 경험하였다. 즉 그‘그녀는 ‘출생에 따른 모든 권리로부터‘ 그리고 사회질서 내에서 그‘그녀 자신의 권리에 의한 적법한 참여로부터 ‘파문당하였다.‘ 셋째 "노예는 어떤 보편화된 방식으로 불명예를 당했다(dishonored)." 역사적 증거는 이와 같은 노예화 과정이 처음에는 여성전쟁포로들을 대상으로 발달하고 완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이미 알려진 관습인 결혼교환과 축첩풍습에 의해 강화되었다. - P140

가부장적 사회에서 부인과 누이·자녀들의 성적 순결을 보호할 수 없는 남성들은 실로 성불능자이며 불명예를 당한다. 피정복집단의 여성들을 강간하는 관습은 기원전 두번째 천년부터 오늘날까지 전쟁과 정복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죄수들에 대한 고문처럼 ‘빈보‘나 휴머니즘적 개혁, 복잡한 도덕적·윤리적 동정에 대항해 온 사회적 관습이다. 나는 피정복 여성들에 대한 강간이 가부장적 제도의 구조 속에 구축된 필수적 관행이며, 가부장제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장 순수한 상태 속에서 이러한 관계를 볼 수 있는 것은 계급관계가 형성되기 전에 가부장제 체계가 시작되는 바로 그 시점이다. - P143

우리의 논의에서 이 관행이 흥미를 끄는 것은, 그것이 영구적인 노예임을 표시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주변화하고 눈에 띄는 표시를 할 필요가 있었음을 설명해 준다는 것과, 성적 통제를 사용해서 어떤 사람의 노예상태를 영구화하고 강화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 P146

아가멤논은 여성의 노예상태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는데, 그것은 다름아니라 남성들 사이에서는 더 나은 지위와 명예를 획득하는 것이었다. 아킬레스가 그의 막사에서 화를 내고 싸움에서 후퇴하게 만든 그 사건에서, 아가멤논은 아킬레스를 위협하고 무력으로 브리세이스를 강탈한 뒤로는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는 실제로 그녀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아킬레스에 대항해서 명예를 얻고 싶었던 것이었다-이것은 여성의 사물화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 P149

자유민을 노예로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인 신체적 공포와 강압은 여성에게는 강간의 형태로 나타났다. 여성들은 강간에 의해 신체적으로 제압되었고, 일단 임신이 되면 아마도 심리적으로 자신의 주인에게 애착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노예제에서부터 축첩(蓄妾)의 제도화가 시작되었으며, 그것은 포로 여성들을 포획자의 가구에 통합시켜서 포획자가 그 여성들의 충성스런 서비스와 그 자손들을 확보하는 사회적 도구가 되었다.
노예제에 대해 저술한 역사가들은 모두 노예가 된 여성들의 성적 사용에 대해 설명한다. - P154

분명히 가부장적 소유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사유재산의 가족 내 관리가 중요해진 것은 축첩제도를 하나의 제도로 발달시키는 견인차가 되었다. 부부에게 자녀가 없다는 것은 남성혈통 쪽에서 볼 때 재산상실을 의미하였으나, 이는 첩을 들이는 것으로 보완될 수 있었다. 바빌로니아의 한 매매계약서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다.

함무라비 12년에 부네네-아비(Bunene-abi)와 그의 아내 베렛수누(Belessunu)는 은 5셰켈의 가격으로 샤마시-누리(Shamash-nuri)를 그녀 아버지에게서 사왔다. …그녀는 부네네-아비에게는 부인이고, 베렛수누에게는 노예다. - P160

페넬로페는 기술과 끝없는 노고로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지만, 그녀의 노예여성들이 살육되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거니와 막을 수도 없었다. 계급의 장벽이 페넬로페를 남편 그리고 아들과 함께 뭉치게 하였다. 강간의 희생자는 죄인이며, 그들은 불명예를 당할 만하기 때문에 불명예를 당했다. 그들에게 가해진 범법행위는 강간이나 성범죄가 아니라 그들을 소유한 주인에 대한 재산범죄로 간주되었다. 결국 모두 노예들인, 종속된 여성들은 서로 분리된다. 즉 농예 에우리클레이아는 단순히 주인의 의지를 실천하는 도구이며, 전적으로 그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행동한다. 그리고 ‘착한‘ 노예여성들은 ‘나쁜‘ 노예여성들로부터 분리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자매애는 전혀 형성될 수 없다. 주인의 사랑은 폭력과 소유욕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에게 살인과 달콤한 갈망은 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며, 또 아들은 노예여성들에 대한 폭력에 가담함으로써 남자가 된다. - P170

여성을 열등한 집단으로 보는 선례는 노예가 될 수 있는 다른 집단에게 그러한 낙인을 옮기는 것을 허용하게 되며, 여성의 가내종속은 그것으로부터 노예제가 사회제도로 발달하게 된 모형을 제공하였다. - P172

언제나 종속시킬 수 있었던 여성은 이제 노예와 비슷하기 때문에 열등한 것처럼 보였다. 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과정에 대한 남성 혹은 남성지배적 제도의 통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다는 사실 속에서 여성의 종속과 노예제는 연결되어 있다. 노예여성에게 경제적 착취와 성적 착취는 역사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결코 남성의 자유와 같지 않았던 다른 여성들의 자유는 일부 여성들의 노예화에 달려 있었고, 그것은 그들의 이동성과 지식·기술에 대한 접근성에 가해진 속박으로써 제한되었다. 반대로 남성에게 권력은 개념적으로 폭력 및 성적 지배와 관련되어 있다. 남성권력은 군대병력의 확보와 그들의 원활한 임무수행에 달려 있는 것만큼이나, 가내영역에서 여성의 성적·경제적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느냐에 좌우된다.
둘 다 노예제의 제도화에서 처음으로 명백해진 계급과 인종의 구분은 가부장적 가족과 고대국가에서 드러난 성적 지배와 경제적 착취의 불가분의 연계에 기반을 두고 있다. - P173

일반적으로 법은 법이 다루고자 하는 삶의 조건들보다 앞서 제정되지 않으며, 법이 인도하고 통제하고자 하는, 실제로 존재하는 조건과 상황에서 나온다고 말할 수 있다. (포위스 스미스J. M. Powis Smith) - P182

여성들은 주로 자손을 생산하는 사람으로서 가치가 부여되었으며, 한 남성에 대한 평생에 걸친 종속이 제도화되었다.
동종결혼과 상향결혼에 대한 똑같은 열망이 가난한 가족들에게는 사뭇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아들의 부인을 얻을 신부값으로 충당할 현금이 부족하면 딸을 결혼시켜 보냄으로써 상쇄할 수 있었다.
(중략)
재산이 충분치 못하거나 없는 하층계급 가족에게 개인들(남녀 자녀들)은 재산이 되었고, 노예나 하향결혼으로 팔려갔다. 중요한 것은, 그럼으로써 그들이 출생가족에서의 모든 재산권을 포기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같은 계급 소녀와 아들의 결혼이 아들의 여자형제를 팔아서 가능해짐으로써 이런 혼사는 사실상 그 여자형제에게는 구매에 의한 결혼을 만들어냈다. - P196

강간을 금한 여러 가지 법들에는 모두 피해를 본 측은 남편 혹은 강간당한 여성의 아버지라는 원칙이 들어 있다. 피해자는 버둥거리거나 소리를 질러 강간에 저항했다는 것을 증명할 의무가 있었다.
(중략)

강간이 도시 내에서 범해졌건, 트인 벌판에서 일어났건, (공공의) 거리에서 밤에 일어났건, 혹은 도시의 축제에서 일어났건, 처녀의 아버지는 처녀를 범한 남자의 붕니을 취해서 그녀를 불명예스럽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부인을 남편에게 (돌려)보내지 않고 자기가 취할 것이다. 아버지는 능욕당한 딸을 그녀를 능욕한 남자에게 배우자로 줄것이다. (MAL§55) - P203

강간이 희생자의 아버지와 남편에게 해를 입힌다는 개념이, 고통받은 여성들에게는 절망적인 결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강간피해자는 강간한 자와 해소할 수 없는 결혼을 할 작정이고, 전적으로 무죄인 강간자의 부인은 매춘부로 전락할 것이다. 법의 언어는 우리에게 그의 딸들에 대해 아버지가 가지고 있는 절대적 ‘처분 권력‘을 느끼게 해준다. - P203

사원매춘부는 사회가 인정한 역할이다. 그녀의 역할은 영예로운 것이다-사실상 야성의 남성을 문명화시키기 위해 선택된 사람이 바로 그녀이다. 여기서의 전제는, 섹슈얼리티는 문명화시키는 것이며, 신들을 기쁘게 한다는 것이다. 매춘부는 ‘여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직업으로 인해 다른 여성들로부터 구분당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야성의 남성을 길들이는 일종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 그는 그녀가 인도하는 대로 문명의 도시로 따라온다. - P237

한 남성의 보호 아래 그를 위해 성적 서비스를 하는 여성들은 여기서 베일이 씌워지는 ‘존중받을 만한‘ 여성들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한 남자의 보호와 성적 통제 아래에 있지 않은 여성들은 ‘공공의 여성들‘(Public women)로 지정되고 따라서 베일을 씌우지 않는다. - P241

그들의 성적 능력과 재생산 능력은 남성 가족원들의 이익 속에서 상품화되고, 거래되고, 대여되고, 그리고 매매되었다. 모든 계급의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군사적 권력에서 배제되었고, 공식교육에서의 여성 배제가 이미 제도화되어 있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기원전 첫번째 천년 무렵까지 여성들은 공식교육을 받지 못했다. - P254

현대의 형식비판(form-criticism)에 의해 확립된 엄청난 규모의 내부적 증거 위에서 ‘증거서류 가설‘(documentary hypothesis)이 수용됨으로써, 창세기의 저자가 모세라고 하는 오래된 전통은 영향력을 상실했다. 그것은 성서가 신에 의해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믿고 싶건 아니건 간에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친 저작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 P286

모든 이스라엘 여성들은 당연히 결혼해야 했었고, 그에 따라 아버지(그리고 남자형제)의 통제를 받다가 남편과 시아버지의 통제를 받았다. 부인이 죽기 전에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남자형제나 또는 다른 남자친척이 그녀를 통제하거나 그녀와 결혼하였다. 이같은 수혼관습은 흔히 과부를 위한 ‘보호‘수단으로 해석되었지만, 실제로는 가족 내 세습재산을 보전하기 위한 남성들의 관심사를 가장 강력히 대변하는 것이다. - P297

그 레위인(자신의 첩을 윤강당하도록 내버려둔)의 태도는, 그녀를 윤간당하도록 내어주려는 뜻에서뿐만 아니라 그녀가 고통을 당하는 밤 내내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음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의 행동에 따라 레위인을 비난하거나, 혹은 손님의 명예와 생명을 구하기 위해 처녀인 딸을 제공한 주인을 향해 비난하는 말은 찾아볼 수 없다. - P304

우리는 심지어 딸들이 강간당하도록 내놓을 수도 있는, 딸들을 처분할 롯의 권리가 당연시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설명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 P302

창세기 이야기의 상징적 의미는 둘 다 야훼의 개입을 통해 신성한 물질들이 스며들었지만, 흙에서 창조된 아담과, 인간 몸의 일부에서 창조되었으며 고대 다산 여신들의 후계자인 이브로 양분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이분법은 야훼가 벌로써 노동의 성별분업을 명한 타락 이야기 속에서 강화된다. 아담은 그의 이마에 흐르는 땀 속에서 일할 것이며, 이브는 고통 속에서 생명을 낳고 후손을 키울 것이다. 부과된 처벌이 남성에게 일을 부담으로 만들지만, 여성을 고통과 괴로움에 빠지도록 한 벌은 여성의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여성의 섹슈얼리티의 자연적 결과인 여성의 출산하는 몸에 대해서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 P323

"누가 세상에 죄와 죽음을 가져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창세기는 "여자가, 자유로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의미하는 뱀과 그녀의 동맹 속에서"라고 대답한다. 그것은 여성들이 언약의 공동체와 그 공동체의 상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게 해야 하며, 하느님과의 계약은 남성적 상징이어야 한다는 사고와 상당히 부합한다. - P342

나는 계급사회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와 함께 시작되었으며, 다른 남성들과 모든 여성들에 대한 일부 남성들의 지배로 발달하였다고 주장해 왔다. 따라서 계급형성 과정 자체는 이전부터 존재해 온 여성에 대한 남성지배의 조건을 끌어들였으며, 상징체계들의 형성에서 여성을 주변화시켰다. 그러나 우리가 보았듯이, 더 오래된 종교적·은유적 설명체게들은 수세기 동안 지속되었으며, 그 체계들 속에서 여성들은 그들 몫의 재현과 상징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상징체게의 창조에서 여성을 배제한 것은 일신사상의 발달과 함께 비로소 완전히 제도화되었다.
(중략)
하느님은 오직 남성들과만 언약을 맺고 계약을 하였으며, 언약의 상징인 포피절제는 그런 현실을 표현하였다. - P351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곳에서 훨씬 더 분명하게 말한다.

…불구인 부모의 자식이 때로는 태어날 때부터 불구이기도 하고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여성의 어린 자녀는 때로는 여성이고 때로는 남성이다. 말하자면, 여성은 불완전한 남성이며(mutilated male), 월경은 정액이지만 단지 순수하지 않을 뿐이다. 월경이 가지지 못한 것이 오직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영혼의 원리(principle of soul)이다. - P362

우리가 ‘여성교환‘이라는 개념을 빌려온 레비-스트로스는 교환의 결과로 발생한 여성의 사물화(reification)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사물화되고 상품화되는 것은 여성들이 아니라 그렇게 취급받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재생산능력이다. 그 구분은 중요하다. 여성들은 결코 ‘물건‘(things)이 된 적이 없으며, 그렇게 인식되지도 않았다. 아무리 착취당하고 학대당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종종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자기 집단의 남성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선택할 권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성들은 항상,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남성보다도 상대적으로 더 큰 부자유(unfreedom)의 상태에서 살았다. 그들 몸의 한 측면으로서의 섹슈얼리티가 다른 사람들에 의해 통제됨으로써 여성들은 실제로 불이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매우 특수한 방식으로 제약을 받았다. - P375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여성 지위의 상대적 개선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가부장제 체계 내에서 부분적으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그들에게 주어진 기회 안에서의 개선일 뿐이라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여성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경제적 권력을 갖고 있는 곳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보다 자신의 삶에 대해 더 많은 통제력을 가질 수 있다. - P380

가부장제 체제는 여성의 협조가 있어야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여성의 협조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수단에 의해 확보된다. 그 수단들은, 성별교의의 주입(gender indoctrination), 교육기회의 박탈, 여성의 역사에 대해 알지 못하게 하는 것, 여성의 성적 행동에 따라 ‘존중받을 수 있음‘(respectability)과 ‘일탈‘(deviance)을 규정함에 의해, 제재와 노골적 강압에 의해, 경제적 자원과 정치적 권력에의 접근 차별에 의해, 그리고 동조하는 여성들에게 포상으로 계급적 특전을 줌으로써 여성들을 분리하고 서로 반목하게 하는 것이다. - P380

서구문명의 기초가 된 그리스철학, 유대-기독교 신한, 법적 전통에 체화된 그같은 상징적 구성물을 토대로, 남성들은 그들만의 용어로 세계를 설명하였고, 자신들을 언설의 중심에 놓는 중요한 질문들을 정의하였다.
‘남자‘라는 용어가 ‘여자‘를 포섭하도록, 그리고 억지로 그 용어가 인류의 대표성을 갖는다고 사칭함으로써 남성ㄷ르은 그들의 모든 사상 속에 막대한 분량의 개념적 오류를 구축하였다. 반쪽을 전체로 간주함으로써 남성들은 비단 자신들이 설명하는 것에서 본질을 빠뜨렸을 뿐만 아니라 올바르게 볼 수 없을 정도로 그것을 왜곡시켰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한 남성들은 그것의 실제, 기능, 우주 속에서 다른 물체들과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경험·시각·관념이 인간의 모든 경험과 사상을 대변한다고 남성들이 믿는 한, 그들은 추상적인 개념을 올바르게 정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도 없다. - P384

교정을 위해 요구되는 것은, 인간성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평등한 부분들 속에 존재하며 인간존재에 대해 내려지는 모든 일반화 속에 양성의 경험, 사고, 통찰력이 반드시 재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단호하게 받아들이도록 사고와 분석을 근본적으로 재구축하는 것이다.

오늘날 역사적 발전에 의해 처음으로 대규모 집단의 여성들이-마침내 모든 여성들이- 스스로를 종속에서 해방시킬 수 있는 필요조건을 가지게 되었다. 여성의 생각은 그동안 제한적이고 오류에 가득 찬 가부장적 틀 내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여성들 자신과 생각에 대한 여성들의 의식(consciousness)을 바꾸는 것이 변화를 위한 선결조건이다. - P385

쓰기의 출현과 함께 인간의 지식은 엄청나게 도약하였으며, 이전에 비해 훨씬 빠르게 전진하였다. - P385

왜 체계 건설자 중에 여성은 없는가? 그 이유는 자신의 자기(self)가 일반칭(generic)에서 배제되어 있을 때 그 사람은 보편적인 것들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391

우리는 의식의 변화를 두 단계에서 일어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최소한 당분간은 여성중심적(woman-centered)이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가능한 한 가부장적 사고를 떠나야 한다.

여성중심적이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즉, 만일 여성이 이 주장의 중심이 된다면 이 주장은 어떻게 정의될 것인가?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성이 주변적인 것처럼 보이는 곳에서조차 여성의 주변성(marginality)에 대한 모든 증거들을 무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여성의 주변성은 가부장적 개입(patriarchal intervention)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또한 종종 그것은 단순히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기본 가정은 여성들이 강요와 억압에 의해 참여하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도 여성이 관련되지 않은 세상에서 일어났다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 P396

전통적 사고 체계에서 나온 방법과 개념을 사용할 때, 여성중심적이 된다는 것은 여성의 중심성(centrality of women)이라는 우월한 지점에서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들이 가부장적 사고와 체계들의 빈 공간 속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중앙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그 체계를 변형시킨다.

가부장적 사고의 바깥으로 나가기가 의미하는 것은, 사고(thought)의 모든 알려진 체계를 향해 회의적이 되는 것이며, 모든 가정들과 서열짓는 가치와 정의들에 대해 비판적이 되는 것이다.
(중략)
그것은 우리 머릿속에 있는 위대한 남성들을 없애고, 그 남성들을 우리 자신으로, 우리의 자매들로, 익명의 선대여성들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 P396

모든 언어들 중에서 가장 비열한 모욕은 여성의 신체부분이나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지칭한다. - P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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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6-29 12: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설과 여성학 이론을 통한 책으로 인용문을 제시해주셔서 더욱 좋네요~ 저도 마지막 11장을 읽으며 희망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여성들이 걸어온 길이 쉽지 않았지만 여성 스스로가 박차고 일어나 이 가부장의 구조와 틀을 깨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해주어서 좋았어요~ 저조차도 너무나 옛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는걸 점점 깨닫고 있습니다.

다락방 2022-06-29 13:55   좋아요 1 | URL
거다 러너 너무 좋아요, 거리의화가 님. 사람이 되게 강한 느낌이더라고요. 나중에 역자의 말을 들어보면 그런 거다 너러 조차도 가부장제의 사고방식을 온전히 벗어나진 못했다는 비판을 듣기도 하는 모양이던데, 비판이라는 것은 액션이 우선한 뒤에 나오는 것이라 저는 그것에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연구, 생각, 주장 이 모든것들을 여성들이 해서 보여주는건 그 자체로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 역사를 너무 모르고 딱히 관심있어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처음에 읽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읽고 나서는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특히 성서에 대한 비판을 하는게 좋더라고요. 롯의 당시 상황이 어떠했든 어쨌든 롯이 ‘나는 딸을 내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걸 지적해준 부분 같은 거요.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너무 싫어요 ㅎㅎ

잠자냥 2022-06-29 13: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인용문만 읽어도 이 책 다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와... 근데 저 인용문 다 자판으로 투닥투닥투닥 쳤어요? 쟝쟝이가 알려준 방식으로 올림???

다락방 2022-06-29 13:52   좋아요 2 | URL
제가 다 자판으로 투닥투닥투닥투닥투닥............... 복습하는 마음으로 직접 치자, 했다가 너무 많아서 후회했어요. 휴...

잠자냥 2022-06-29 13:5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그런 의미로 오늘은 세 가지 메뉴 도전합시다. 에너지를 넘 많이 썼네 ㅋㅋㅋㅋ

다락방 2022-06-29 13:56   좋아요 1 | URL
저 오늘 에이스를 먹고 나갔더니 김치볶음밥 하나로 배불렀어요. 사실 김치볶음밥 시켜두고 ‘라면도 옆에 두고 먹을까‘ 엄청난 내적 갈등을 하다가 꾹 참았습니다. 엣헴-

공쟝쟝 2022-06-29 15:2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복습하는 다락방! 후회하는 다락방 ㅋㅋㅋㅋ 라면 참는 다락방 ㅋㅋㅋ 한편의 만화같은 모습이 그려집니다..*

다락방 2022-06-29 15:22   좋아요 1 | URL
내 안엔 내가 너무 많아..................

독서괭 2022-07-01 14:08   좋아요 1 | URL
와 진짜 이걸 다 치셨어요? 대단.. 전 최근 쟝쟝이님 방식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도 가끔은 투닥투닥 치지만 ㅋㅋ

다락방 2022-07-01 14:14   좋아요 1 | URL
진짜 치다가 엄청 후회했잖아요. 사진 찍어서 밑줄긋기 할걸.. 하고 말이죠. ㅋㅋㅋㅋㅋ 그래도 결국 해냈습니다!!

공쟝쟝 2022-07-01 18:17   좋아요 0 | URL
다부장님 문진대신 또 펀치 쓰시면서 책 누를 생각하니 또 제 마음이 애잔해집미다…

다락방 2022-07-01 18:40   좋아요 1 | URL
이번엔 독서대를 이용했어요. 후훗 😉

hellas 2022-06-29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며칠 전 몇달에 걸쳐 이 책 다 읽었는데요. 사실 너무 고대사 이야기라 조금 당황했고 ㅋㅋㅋ 일장과 마지막장 말고는 이야기속으로 여성 고구마편 느낌으로 읽었네요. 메소포타미아와 성서 파헤치기는 사실 너무 취향이 아니라서..그렇지만 책 덮으면서 거다 러너라는 사람이 존경스럽기는 합디다;) ㅋㅋㅋ

다락방 2022-06-29 14:37   좋아요 2 | URL
저는 1-3 장까지가 특히 더 힘들더라고요. 이 부분은 진짜 너무 메소포타미아 역사의 기술 같아서요. 너무 집중도 안되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용어 다 낯설고... 그런데 4장부터는 좀 이야기가 펼쳐져서 그나마 읽기에 좀 나았어요. 물론 그렇다고 재미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뒤로 갈수록 더 현재에 가까워지기 때문인지 괜찮더라고요. 마지막장은 정말 좋았어요. 거다 러너 대단하죠. 정말 대단합니다.

단발머리 2022-06-29 15: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시녀 이야기> 생각 많이 났어요. 생각하고 계속 쓰고 목소리를 내는 일이 중요하다는 의견에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결국 답은 정치에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요. 이번에 미국 대법원 판결도 따져보면 트럼프가 임명한 대법관들의 의견이 반영된 결과잖아요. 우리 나라도 앞으로 걱정스럽고요. 국민들이 직접 대법관을 뽑을 수는 없으니까요. 나랑 생각이 비슷한 대법관을 임명할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데... 참, 암담하기는 합니다. 더 많은 여성이 정치의 자리, 법의 자리에 위치하기를 바랍니다.
읽느라 수고하셨어요, 다락방님. 이제 홀가분하게 소설 읽으시겠네요^^

다락방 2022-06-29 15:22   좋아요 2 | URL
애트우드가 굉장히 영리한 작가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했어요. 경제권 박탈, 성적 노예와 하인. 이 모든 것들을 소설 한 권에 집어넣었잖아요. 게다가 책도 읽지 못하게 하니 그것은 교육에서 배제되었던 여성들의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애트우드는 정말이지 대단한 작가에요. 시녀 이야기에서 그 모든걸 집어넣었어요. 대단한 작가입니다.

맞아요, 단발머리 님. 왜, 가부장제의 창조에서도 나오잖아요. 여성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을 때에도 그 스승은 다 남성들이었다고. 우리에겐 여자 스승과, 여자 법관과 여자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여자 대통령도요. 그걸 위해서는 부지런히 공부해야 해요, 단발머리 님. 단발머리 님.. 법대 가시면 제가 매주 밥 사드리겠습니다. 응원하겠습니다!!! 제발요..

홀가분하게 소설 읽고 싶지만 저 일단 샐리 루니가 저를 기다리고 있네요. 아, 벌려놓은게 많아서 삶이 진짜 빡세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06-29 15: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애트우드의 시녀이야기와 연결되는 지점이 절묘하네요. 저는 시녀 이야기 읽었어도 연결 못시켰는데 말입니다. ㅎㅎ 가부장제가ㅠ만들어지던 시기로부터 시작하면 몇천 년이니 진짜 암담하지요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럼에도 갈길이 멀다는데 희망과 암담함을 같이 느낍니다. 다락방님 리뷰를 감명깊게 읽었으니 저도 빨리 이 달이 가기 전에 리뷰쓰러 고고~~~~
그나저나 마지막 사진 완전 멋집니다

다락방 2022-06-29 16:56   좋아요 2 | URL
저는 워낙 역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지라 거다 러너의 글들을 초반에 읽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노예, 첩, 가부장제 얘기들은 그나마 좀 나았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시녀이야기 생각이 나더라고요. 제가 시녀이야기 읽을 때 진짜 감탄에 감탄을 했었거든요. 시녀이야기가, 애트우드가 유명한 이유가 다 있구나. 제가 읽으면서 막 천재 천재!! 이랬어서 저는 더 기억에 남는 것 같고 그래서 연결이 바로 됐던 것 같아요. 경제력의 박탈-의존-성적 노예(소유) 에 이르는 흐름요.

바람돌이 님 리뷰도 얼른 써주세요. 가부장제의 창조는 다른 책들도 물론 그랬지만, 다른 분들의 글을 읽는 재미가 정말 큽니다. 제가 너무 힘겹게 읽어서 더 그런것 같아요. 얼른 써주세요, 얼른요!! ㅎㅎ

syo 2022-06-29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도 오랜만에 봐서 반갑지만, 저 책장에 꽂으면 처참하게 접히고 말 플래그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도 오랜만이라 반갑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6-30 08:56   좋아요 0 | URL
사람이 어디 안가. 잘 안변하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6-29 20: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이제 부랴부랴, 미친 듯이 읽고, 저녁 먹으려고 미친 듯이? 100자평 쓰고, 다락방님 리뷰 읽으러 왔어요.
<시녀 이야기> 저도 읽었지만, 연결 지어보진 못했네요??ㅋㅋㅋ
전 그저 고대 모습 비춰지던 옛 영화 몇 편 계속 떠올리며...에혀~ 에혀~ 하며 읽었네요ㅜㅜ
어젯밤엔 마지막 편 읽는데 ‘여성들은 역사를 갖지 못했다‘라는 문장에 꽂혀 괜히 울컥ㅜㅜ
(요즘 보는 드라마들이 죄다 암울하고 슬퍼서 눈물 찔찔 짜고 있었던 탓이 컸나 봐요^^)
다락방님 리뷰 읽으니 아...맞다, 맞어!! 하면서,
앞부분들 읽었던 것들 새록새록 기억이 떠올라 좋았어요.
읽으면서 분명 쉬운 책은 아녔구나? 차차 깨달았는데요...아마 지난 달, 도나 해러웨이 작가의 책을 읽은 탓에 이 책이 좀 더 읽기 쉽다! 라고 착각하며 읽은 것 같아요ㅋㅋㅋ
덕분에 30 일 넘기지 않고 겨우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락방님도 읽고, 좋은 리뷰 쓰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다락방 2022-06-30 09:40   좋아요 2 | URL
저는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면 이 책 읽기가 이렇게 어렵진 않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보통 어려운 책을 읽을 때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기초지식이 너무 없는건가.. 싶어서 말이죠.
저는 도나 해러웨이 어려웠지만 그런데 도나 해러웨이가 가부장제의 창조 보다는 더 받아들이기가 쉬웠던 것 같아요. 가부장제의 창조는 뭔가 일어난 일들의 기술이라서 저는 재미가 없더라고요 ㅠㅠ 그런 반면 도나 해러웨이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글이라 오히려 따라가기가 더 낫지 않았나 싶은데, 이게 다 지난 일이라 이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얼마전 잠자냥 님 상반기 도서에 선정된 도나 해러웨이의 나뭇잎.. 그 책도 좀 읽어봐야 겠어요.

책나무님, 매달 열심히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힘내서 7,8 월도 함께 가요!!

독서괭 2022-07-01 14: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도 <시녀이야기> 생각나더라구요. 저는 <시녀이야기>가 진짜 현실 공포로 느껴졌는데, 그 이유가 거다 러너의 지적대로 우리가 아직 가부장제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인 것 같아요..ㅠㅠ 우리 머릿속에 남자 한명 들어있다는 말도 넘 공감 가고요.
저 아리스토텔레스 부분 읽으면서 옆에 ‘망언 모음집‘이라고 써 놨잖아요 ㅋㅋㅋ 아놔 이 인간.. 니가 월경에 대해 뭘 알아!! 꽥!!
거다러너가 여성간의 연대, 역사의식을 강조하는 게 참 좋더라구요. 11장에서 최종정리 해주는 친절함도 ㅋㅋ 다락방님 덕에 이런 책도 완독하고, 참.. 고맙습니다!!^^

다락방 2022-07-01 14:18   좋아요 2 | URL
맞아요, 독서괭 님. 시녀이야기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게 아니었어요. 역사속에서 일어난 일을 재현해 보여준거죠.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짜 ㅋㅋㅋㅋ 저는 정말 아리스토텔레스 부분 읽으면서 ‘알지도 못하면서 입만 터네‘ 라고 생각했다니까요? 너모 빡침요.

내내 어렵고 힘들게 읽어오다가 11장에 최종정리해주고 우리 생각을 바꾸자!! 이렇게 해주는데 진짜 너무 좋더라고요. 11장은 전체가 다 밑줄이에요. 1장 부터 10장까지 읽었기 때문에 11장이 더 짜릿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렵지만 즐거운 독서가 되어버렸답니다.

독서괭 님, 7월에도 우리 힘냅시다!!

공쟝쟝 2022-07-07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부장제의 창조를 다 읽고 나서 다시 읽는 시녀이야기가 어떨지 궁금해졌어요! 시녀이야기 다시 읽어야겠어요!! 하!! 영생해야하나봐 ㅠㅠ 읽을 거ㅠ너무 많아 아아아아아 나 이렇게 똑똑해져서 후후후후후후 너무 좋네…?
 
당신이 숭배하든 혐오하든 - 몸 페미니즘프레임 2
김명희 지음 / 낮은산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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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털, 눈, 피부, 목소리, 어깨, 유방, 심장, 비만, 자궁, 생리, 다리, 목숨 등에 대해서 그간 사회에서 여성의 것을 어떻게 다르게 취급했는지 그래서 결과적으로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얘기해준다. 그간 다른 페미니즘 서적들을 읽어온 사람들이라면 이 책이 말하는 바에 새로운 내용은 없다. 여기에서 더 깊게 들어가 더 풍부한 사례를 가져온 책이 아마도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이 될 것이고, 이 책에서 주장하는 여러가지 부분에 대해 의학적으로 가져온 것은 '마야 뒤센베리'의 《왜 의사는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가 될 것이고, 자신의 몸을 굳이 학대해가며 성적 대상화 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쉴라 제프리스'의 《코르셋》이 될 것이다. 


도대체 왜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페미니스트가 되는지, 그리고 이미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정체화한 사람이 왜 어쩔 수 없이 래디컬이 되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그런데 막 두껍고 복잡한 책 읽기는 싫다!! 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면 될 것 같다.



각 꼭지마다 생각할 지점들이 당연히 있지만 특히나 아프리카의 여성 생식기 절단, 한국의 소음순 성형 파트 읽을 때는 진짜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았고, 《여성 괴물》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생식력 없어서 열등감에 쌓인 개새끼들이(니가 낳은 애가 내 애인걸 확실히 하려면 너는 정절을 지켜야 해, 쾌락을 느껴선 안돼!) 세상을 똥판쳐놨다는 생각 밖에 들질 않는다. 


주목할 점은 남성의 경우, 포르노그래피 접촉이 많을수록 제모 비율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남성의 패션 트렌드와 섹슈얼리티 규범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 P39

특히 구강성교를 선호하는 이들에게서 음모 다듬기/제모 비율이 높았다. 여성의 경우에는 특정한 성교 행태보다는 ‘파트너의 선호‘가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반드시 실제 파트너의 선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여성들은 현재 파트너뿐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잠재적‘ 파트너에게 매력적으로 비칠 것을 기대하며 제모를 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 남녀 상대 성별에 대한 체모의 승인 정도를 실제로 조사한 적이 있다. 그 결과를 보면 정작 남성은 여성의 음모에 대해 그다지 부정적이지 않았다. 이런 면에서 여성의 음모 다듬기/제모는 남성 요구에 대한 직접적 부응이기 이전에, 스스로 가상의 남성 시선을 내면화한 행도이자, 스스로에 대한 ‘성적 대상화‘로 볼 수 있다. - P40

일반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는 톤이 높아야 매력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그 매력이란 어디까지나 성적 존재로서의 매력이지, 공적 영역에서 그러한 목소리는 핸디캡이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영국 신자유주의의 선봉장 마거릿 대처는 선거를 앞두고 로열국립극장의 스피치 코치를 영입하여 목소리를 낮추는 레슨을 받았다. 그녀의 설득력 있는 목소리는 이후 커다란 정치적 장점으로 평가받았다. - P82

여성이 필요 이상 높은 톤으로, 멀쩡한 성인 여성이 아기 같은 목소리로 말하도록 요구하는 사회는 제정신이라 볼 수 없다. 또한 목소리의 높낮이에 대한 편견이나 선호야 어쩔 수 없다 해도, 그것이 실제 공적 영역에서의 차별적 결과로 이어지도록 방치하는 사회도 제대로 된 사회는 아닐 것이다. - P83

도대체 왜 이런 시술(생식기 절단술)을 하는 걸까? 여성생식기의 일부, 특히 성감의 중추인 음핵을 제거하지 않으면 여성이 성적 탐욕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혼전 순결과 이후 정절을 보장하는 수단이라는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 금속으로 만든 정조대를 여성에게 씌웠다면, 이 방법은 여성의 성기 입구를 문자 그대로 ‘꿰매 버려‘ 일탈을 원천 봉쇄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여성의 외부 생식기를 불결하고 추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위생과 심미적 이유로 절제를 하기도 한다. 생식기 절제는 공동체에서 소녀가 여성이 되는 일종의 ‘의식‘으로 간주되는가 하면, 결혼을 위한 전제 조건인 경우도 있다. 과학적 타상성이 없음은 물론이거니와 보건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아동 학대 행위이다. - P149

(소음순 성형)광고들은 공통적으로 부인과 질환에 탁월한 효과, 여성의 성감 회복을 위한 방법이라는 소개로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에는 파트너 남성의 만족으로 귀결된다. 표준적 혹은 적절한 사이즈와 모양, 색깔을 지니지 못한 성기는 비정상이다. 그러면 남성 파트너의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헤픈 여자‘로 오해받을 수 있다. 그런데 성기 성형 시술이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결혼 준비 단계에서 웨딩플래너가 소개해 주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 P152

국가, 시장, 종교, 전통문화(?)가 연합군을 결성하여 엄밀하게 통제하고, 남성 권력이 호령하는 이곳, 여성생식기. 빼앗긴 들에도 봄은 기어이 올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 P161

정신질환자의 망상 또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법이다. 예컨대 조선시대 조현병 환자가 ‘독재 정권이 나를 미행하고 있다‘,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는 망상에 빠질 수는 없지 않은가. 당대의 사회적 관습 안에서 망상의 내용도 구성된다. 그것이 정신질환자의 망상일지라도 불특정 여성을 증오하여, 여성을 표적으로 삼아 범죄를 저지른 이 사건(2016년 강남역 살인 사건)은 개인적 수준에서는 아닐지라도 사회 수준에서 여성혐오 범죄임이 분명하다. - P194

예전에 한국과 일본의 자살 비교 연구를 진행하면서, 세계가치조사의 젠더 역할 설문 결과를 살펴본 적이 있다. ‘일자리가 부족할 때, 여성보다는 남성이 더 많은 일자리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는 비율이 일본보다 한국에서 10% 포인트 이상 높았다. 그런데 ‘남편과 아내는 둘 다 가구 소득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견 또한 한국이 일본에 비해 거의 20% 포인트 가량 높았다. 대체 어쩌라는 건가? 남자한테 일자리는 양보하되, 돈은 벌어 와야 한다는 것이 한국 여성들이 직면한 ‘사회적 기대‘이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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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6-2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성 제모와 망상의 사회적 구성이 특히 놀랍네요!! 조선시대에 없었을 ‘내 귀에 도청장치‘로 단박에 이해가되는.
여성에게는 늘 이중적 요구가 있는것 같아요. 어디선 하이톤이어야하고 또 어디선 남성과 비슷한 톤으로 낮출수록 신뢰도를 높이고요.

다락방 2022-06-24 11:04   좋아요 1 | URL
사람은 다른 사람 그리고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인스타에 맛집 포스팅이 주르륵 올라오면 맛집 가보고 싶다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처럼 포르노를 반복해 보면 포르노에서 추구하는 것에 자신의 가치관 역시 물들지 않겠습니까. 너무 싫어요. 그래서 덩달아 여성들도 포르노 세계를 살아가는 현실이요. 아아 포르노 너무 싫고 포르노 중독인 남자들도 너무 싫어요 ㅠㅠ

공쟝쟝 2022-06-24 11: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상을 똥판쳐 놓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이고 시원해라 ㅋㅋㅋ

다락방 2022-06-24 11:48   좋아요 1 | URL
절반 이상이 사라져도 아깝지 않을 존재들이여, 저쪽 성별은..

공쟝쟝 2022-06-24 11:5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일단 절반은 사라져도 된다는 데에는 동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지들이 망쳐놓고 지들이 구원하는 줄 아는 데 ㅋㅋㅋ 그것 제대로 못해서 여자들이 저리 비켜 ㅋㅋㅋ 했는데 안비킬라고 ㅋㅋㅋㅋ 징징대 ㅋㅋㅋ 아휴 ㅋㅋㅋ

다락방 2022-06-24 13:11   좋아요 0 | URL
세상은 여자 죽이는 데에만 진심이야. 아오 빡쳐라..
 
두 생애 - 정찬 소설집
정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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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마다 모두 천착하는 주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예술로 표현할 것이고 정치를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정치로 드러내려 할 것이다. 정치도 예술도 하지 않는다면 일상을 사는 중에 드러날 것이고, 혹여라도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내내 머릿속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표현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나와 함께 살아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찬 의 소설집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이승우가 떠올랐다. 책의 말미 '홍정선'의 해설을 읽노라면, 정찬은 국내 다른 소설가와는 다른 소설을 쓴다고 했는데, 나 역시 그 해설에 적극 동의한다. 내게는 그런 작가가 정찬으로 인해 둘이 생긴 셈이다. 국내의 여느 작가들과는 다른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나는 이승우만 생각해오고 있었는데 정찬 역시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다르다'는 것은 내게는 좀 더 긍정적 평가다. 나는 이승우를 많이 읽어왔고 앞으로도 계속 읽을 것인데, 이 작가는 다르다, 는 생각을 그의 책을 읽을 때마다 하기 때문이다. 정찬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이 작가는 다르다, 마치 이승우 같다, 했다. 글을 쓰는 것, 글에 담는 생각, 그것을 표현하려는 것이 모두 독보적인 것에서도 그렇지만, 이 둘이 뭔가 한가지에 천착하는 것도 그렇고 깊이 생각하고 공부하다보니 그것은 단순히 자기들이 먹고 사는 일에 관련된 문학 뿐만이 아닌 신앙까지 닿는 것, 들이 그렇다. 이승우야 신앙인이 되려고 했던 사람이지만 정찬의 약력을 보니 딱히 그렇진 않았다. 공부라는 건, 그것이 어떤 분야가 됐든 결국에는 철학에 닿는 것이고 그러다보면 종교(신앙)도 지나칠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이승우가 '아버지와 나'에 대해 천착하며 그것을 놓지 못하고 있다면 처음 읽는 정찬은 그것이 '폭력'이었다. 정찬은 계속해서 폭력에 대해 말한다. 폭력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계속해서 말한다.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처음 읽었던 단편 <희생>은 한 여성이 국가로부터 당한 폭력을 얘기하고 있다. 1980년대가 배경이고 사랑하는 남자가 수배중인데 경찰들은 여자를 잡아가 그 남자의 행방과 평소 태도를 묻고 잘 모른다고 대답하는 여자를 잔혹하게 고문하며 강간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임신을 하는데, 그래서 사랑하는 남자에게 갑자기 자기 행방을 알리지 않은 채로 이별을 고한다. 그 아이를 낳기로 하고 의학을 공부하고 난민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은, 그녀가 자신이 당한 폭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많은 희생자와 피해자들의 곁에 서서 다른 사람들은 이런 아픔을 겪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작품 속 여자는, 인간이란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행동하는 거다.



슬픔이 폭력에 대한 분노를 지운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분노와 원한은 달라요. 폭력에는 분노해야 해요. 폭력에 분노하지 않는다는 것은 폭력을 인정하는 행위나 마찬가지예요. 그 분노를 껴안으면서, 분노를 넘어서는 감정이 슬픔이에요. 분노가 또 다른 폭력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 고귀한 감정이지요. 세상은 폭력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럼에도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슬픔에 감싸여 있기 때문이에요. 예수를 보세요. 예수가 가시 면류관을 쓴 순간 그는 여성적 존재로 변화했어요.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순간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성적 존재로 변화 했어요. 그 여성적 존재에서 흘러나오는 슬픔의 눈물이 세상을 적셨어요. 그러니 세상이 아름다울 수밖에요. -<희생>, p.120



내가 정찬이란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건 '정희진' 선생님 때문이었다. 워낙 극찬을 하시고, 심지어 절판될까봐 같은 책을 몇 권씩 사둔다고 하셨던 바다. 도대체 그 작가가 왜? 하는 마음으로 정찬의 소설을 한 권 사두고 미루었다가, 이번에 이 《두 생애》를 사서 먼저 읽게 된 것. <희생>이란 작품을 읽으면서, 아, 이래서 정희진 쌤이 정찬을 좋아하는구나, 했다. <희생>은 세번째 단편이었는데 그 후에 바로 읽은 첫번째 단편 <두 생애>는 늙어가는 교황과 아무 이유없이 고통에 희생된 어린 소년의 삶을 대비시키며 고통에 대해 얘기한다. 와, 이 작가는 폭력과 고통을 놓지 않는구나. 그런 한편 어떤 '간절한 마음' 같은 것도 역시 놓지 않는다. 이해하려고 하고 받아들이려하고 깊이 보려고 하는 시선이 있구나, 했다. 그 뒤에 차례대로 읽은 다른 단편들은 좀 애매했고, 마지막에 읽은 <폭력의 형식> 에서 나는 너무나 끔찍함을 느끼고 만다 ㅠㅠ


<폭력의 형식>은 위의 인용문에서 지칭한 '분노가 다른 폭력으로 치닫게'된 경우를 썼다고 할 수 있다. 얼마전 뉴스에서 보았던 기사가 바로 오래전의 이 소설에 담겨 있었다. 보육원에 맡겨진 어린 손녀를 데려다 성폭행 한 사건이 뉴스에 나왔다면, 이 <폭력의 형식>에서는 보육원에 맡겨진 어린 남매들중에 여자 조카만 데려온 이모와 이모부가 있다. 그 뒤의 이야기는 기사에 대해 언급했으니 짐작 가능할 것이고, 보육원에 어린 여동생보다 좀 더 머물렀던 소년도 결국 이모부 집에 가게 되는데 그 사이에는 몇 년의 시간이 있었고, 낯선 이모부는 자신에게 검정고시로 교육을 좀 받으면 어떻겠느냐 제안한다. 어릴 적에 부모를 잃고 따뜻하게 감싸주는 어른들이 없던 소년에게 이건 너무나 감사한 제의였고 그는 눈물을 흘리며 이모부를 존경한다. 그러다 이모부가 어린 자신의 여동생에게 계속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걸 알게 되는데, 이 때 그의 분노는 그 가해자인 이모부를 향하는 게 아니라 어린 희생자이자 피해자인 여동생을 향한다. 이 소년에게는 자신에게 따뜻하게 해줬던, 자신에게 공부를 하라고 해줬던 저 어른을 미워할 의지와 마음이 좀처럼 생겨나질 않는 거다. 미워해야 하는 건 저 가해자인데 그걸 알지만 미워할 수 없고, 그러나 일어난 이 일은 너무나 부조리하고 분노해야 할 일이고, 그렇게 소년 안에 자라게 된 폭력적인 성향은 절대 그렇게 나와서는 안되는 방향으로 나오게 된다. 


나는 이 단편이 너무 읽기에 힘들었고, 와 이 책을 내 책장에 꽂아둬야 하나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앞의 <두 생애>를 두고 다시 읽어보고 싶어지는데 이 <폭력의 형식>이 너무 힘든 거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폭력적인 환경이 주어지고 부당한 폭력이 그 아이에게 연속해 가해지고 그런 아이가 자라는 과정에서 그리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폭력을 제 안에서 숨길 수 없게 되는 이야기는, <희생>에서 용서하고 세상을 바꿔보려는 여자와는 다른 결로 흘러가지만, 그러나 폭력이 허용되는 안된다는 이야기의 맥락은 같다. 그렇지만 이건 읽기에 진짜 너무 힘들었다. 만약 정찬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읽는 단편이 <폭력의 형식>이었다면, 나는 다른 작품들을 읽지 않았을 것 같다. 이 단편을 읽고서는 '정희진 쌤은 어느 지점을 좋아한걸까' 하고 생각해보았지만 답은 찾을 수 없었다. 이 단편은, 읽을 때 주의를 요한다. 



왜 우리가 천착하는 주제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살아오면서 어떤 일이 우리에게 있었기 때문인건지 도대체 왜 어떤 것에 그렇게 집착하면서 파고 들어가고 계속 알아보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는 결국엔 어떤 말을 해야 한다고, 계속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듯하다. 정찬에게 그것은 폭력이었던 것 같다.



읽기에 쉬운 소설은 아니다. 읽기 전에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할 소설이다.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도 없다.




어머니의 빈소는 쓸쓸했어요. 생전에 어머닌 외로운 분이었지요. 삶이 쓸쓸해으니 죽음의 자리도 쓸쓸할 수밖에요. 저는 산 자로서 죽어 누운 어머니를 내려다보았어요. 산 자가 아무리 몸을 낮추어도 죽은 자와 나란히 할 수 없어요.-<희생>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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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2-05-31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궁금한데 너무 힘들까 봐 망설여지고...저는 이승우 작가에 대한 다락방님 마음을 그의 인터뷰를 읽고 정말 십분 이해하게 됐어요. 정말 정말 다른 사람(좋은 의미에서)이구나...이런 사람도 있구나...이승우 같은 작가라니 정말 끌리네요.

다락방 2022-05-31 09:40   좋아요 0 | URL
네 그렇지만, 저는 거침없이 둘 중 누구냐 물어보면 이승우라고 답할 겁니다. 저에게는 이승우의 문장이 더 좋고 뭐랄까, 이승우의 문장이 더 고급져요. 그리고 저를 더 깊은 내면으로 끌어들이는 것도 이승우인것 같아요. 이승우 같지만, 그러나 이승우가 더 좋다, 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일단 다른 단편들을 읽고난 뒤에 <폭력의 형식>은 읽을지를 결정하셔도 될 것 같아요. 다른 단편은 그렇게 막 힘들진 않거든요. 좀 가라앉아 있긴 하지만. 그런데 폭력의 형식은 정말 힘들었어요 ㅠㅠ

라파엘 2022-05-31 09: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은 다 좋은데, 특히 소설을 읽고 써주시는 글이 진짜 좋아요. 항상 더 생각하게 되고 많이 배우게 됩니다 😊

다락방 2022-05-31 09:49   좋아요 3 | URL
아이고, 라파엘 님 감사합니다. 어휴 ㅠㅠ 칭찬은 다락방을 춤추게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춤을 추지는 않습니다. ㅎㅎ

잠자냥 2022-05-31 11:17   좋아요 2 | URL
칭찬은 다락방을 먹게 할뿐..... :p

다락방 2022-05-31 11:24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은 생선까스를 좀 먹어야겠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05-31 13:13   좋아요 1 | URL
제가 아는 다락방님은 춤을 추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면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춤을 추고 있었다에 제가 100원 걸어요~

잠자냥 2022-05-31 1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찬이라는 작가는 정희진 쌤 때문에 알게 되었고, 정희진 쌤 때문에 읽어보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아직 읽지 못했어요.
<폭력의 형식>은 정말 이야기가 괴롭네요... 그런데 <희생>에서도 강간당해서 임신한 아이를 낳는다는 설정이.... 걸립니다. -_-;;; 이것은 결국 남 작가의 한계인가 뭐 이런 생각이 얼핏 들었습니다(작품을 읽지 않았으므로 제 짧은 생각일 수도 있지만).

다락방 2022-05-31 11:28   좋아요 2 | URL
정찬 작가는 폭력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안된다는 메세지를 던지지만, 남자라는 종에 대해서도 그 한계를 인식하고 있는 걸로 보였어요. 발기된 성기가 폭력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강간 설정이 다른 남자 작가들이 그러는 것처럼 어떤 ‘빻음‘으로 이해되지는 않기는 하지만, 그래도 괴롭긴 괴로워요. 특히 <폭력의 형식>은 너무 괴로워요 ㅠㅠ 저는 정희진 선생님이 도대체 이 작가를 왜그렇게 좋아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이래서 그런가‘, 하다가 ‘도대체 왜그러지‘ 하고 있어요. 정찬의 다른 책을 더 갖고 있으니 더 읽어봐야 알 것 같아요. 확실한 건, 현재의 다른 국내 작가들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줍니다. 확실히요.

근데.. 음.. 좀 오글거리는 게 있어요. 이렇게나 폭력적이고 우울한 글인데 이상하게 오글거리는 지점들이 툭툭 튀어나와요. 그 부분이 더 적응이 안돼요 ㅎㅎㅎㅎㅎ

잠자냥 2022-05-31 12:07   좋아요 1 | URL
아, 제가 도서관에서 정찬 작가 책 빌려 읽다가 우울하기도 한데, 오글거려서 다 읽지 못하고 반납했거든요.... 다락방 님이 말씀하신 그게 무엇인지 대충 알겠습니다.

암튼 도서관에 반납하면서 정희진 쌤하고 나랑 소설 취향은 안 맞나보다 ㅋㅋㅋㅋ 했습니다.

희진쌤 강연에서 정찬 작가는 고통에 끊임없이 사유하는 점이 좋았다고 말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다락방 2022-05-31 12:33   좋아요 2 | URL
네, 맞아요. <희생>도 오글거리는 지점들이 있어서 ㅋㅋㅋ 아니 이건 뭣이람? 했답니다. 제가 별 하나 뺀 게 오글거림 때문이었어요. 아놔 ㅋㅋㅋ 저만 느끼는 게 아니었군요!
저는 정희진 선생님 때문에 더 읽어볼 생각이 있는 작가입니다.

공쟝쟝 2022-05-31 13:41   좋아요 2 | URL
ㅇ ㅏ.... 그거 오글거리는 거.... 촌스러운 거.. 그거 저 좀 고통인.... 데..... 저 MZ라서 좀 그런거 용납못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이 리뷰 참 좋아요.. 책도 읽어보겠사옵나이다..
천착...... 맞아요. 천착하는 주제.... 다 포기해도 포기가 안되는 어떤 지점이 있고, 거기서 사유가 나오고 문학이 나오고 창작이 나오고 철학이 나오고 그런 것 같아요. 그것이 나를 찾아가는 것일지도 모르겠고 나를 고유하게 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 합니다. 다정한 이웃들의 각자의 천착 지점에 대해 둥근 물음표가 지어지는 점심먹고 아메리카노 타서 앉은 화요일. 콜드블루 냠!ㅋㅋ

잠자냥 2022-05-31 14:22   좋아요 3 | URL
요즘 천착에 굉장히 천착하고 있는 공천착

다락방 2022-06-02 08:20   좋아요 3 | URL
맞아요, 우리는 각자가 다 자기만의 과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걸 풀기 위해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니고 그러는게 아닐까 합니다. 좀 더 정확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이 인생이 아닐까..
저는 다시 작업실에 나와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오늘도 월급 루팡!
 
우연한 생 - 우리가 살지 않은 삶에 관하여
앤드루 H. 밀러 지음, 방진이 옮김 / 지식의편집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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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지금의 내 마음가짐이나 생각을 그대로 간직한 채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공부를 열심히 할 것 같다고, 정말 열심히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를 열다섯살로 돌려놓으면, 아마도 내 정신상태 역시 딱 그 때의 나일 것이고, 그렇다면 나는 그때 내가 행동했던 대로 공부하지 않는 삶을 살아오다가 결국 지금에 이르게 됐을 것이다.


만약 몇 년전 그때, 내가 그의 손을 놓기 싫어서 그에게 안녕을 말하는 대신 그의 손을 잡고 있기를 선택했다면, 그 당시에는 그를 내 옆에 두었다는 안도감을 가졌을지 몰라도 결국 이틀 뒤나 한달 뒤, 혹은 일년 뒤에 결국 안녕을 말했을 것이다. 나는, 그런 종류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그 당시의 선택을 바꿀 수 있다 해도 결국 그 선택으로 돌아올것이었다. 다만, 이별의 순간을 좀 늦췄을 뿐, 결과는 같을 터였다.


나는 수많은 선택들에 있어서 뒤를 돌아보곤 한다. 만약 그 때 그랬다면, 그랬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러다가도 이내 '나는 나'이기 때문에 결과들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마찬가지로 하게 된다. 순간의 선택은 미래를 크게 바꾸기도 하지만, 그러나 결국 같은 방향을 보게 된다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애초에 완전히 다른 인물이 되는 게 아니라, 그저 나인데 그 상황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다른 선택을 했다 해도 결과적으로 인생의 이 시점에는 이 정도의 모습으로 와있을 것 같다. 그러니 나는, 내 동생이 내게 늘 말하는 대로,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상, 최선의 모습일것이다.



인생은 수많은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 가능성 이라는 것은 그 단어가 미래를 뜻한다. 만약 내가 로또에 당첨된다면, 하는 가능성. 그것은 희박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면 내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가능성이 또 미래에 있기도 하다. 그 날 그 시간에 너를 거기서 우연히 만나게 되다니. 그것은 그야말로 '앤드루 H.밀러' 가 말한 '우연의 필연성'(P.100) 이겠지. 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이루거나 이루지 못한 채, 그리고 미처 상상해보지도 못했던 일을 수없이 맞닥뜨린 채 지금의 내가, 우리가 되었다.


그러나 가능성은 과거에 대한 것을 돌이키게도 한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것이 아닌, 훌쩍 저 과거로 넘어가 '그 때 내가 그랬다면' 하고 조건을 바꾸며 그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 상상하는 것. 앤드루 밀러는 이 책에서 그 과거의 조건에 대한 가능성을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만약 내가 이 남자랑 결혼했다면 지금쯤 웃으면서 살겠지? 하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상상. 그렇게 상상해볼 수 있는 건, 혹은 상상해보고자 하는 건, 지금의 내 삶이 아닌 다른 삶 그리고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나를 생각해보기 때문이다. 앤드루 밀러는 이 책에서 중년의 관심사가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 말하는데, 정말 그렇다. 앤드루 밀러가 말한 것처럼 '살지 않은 삶이 있으려면 먼저 삶을 어느 정도 살아야만'(P.47) 하기 때문에 중년의 이 시점에 우리는 과거의 선택들을 꺼내 보고 이리 바꾸고 저리 바꿔보기도 하고, 그렇다면 지금은? 하고 자꾸 묻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한 번이상씩 해보았을 상상, 가능성에 대해 앤드루 밀러는 이 책에서 소설과 시를 통하여, 그리고 영화를 통하여 얘기해준다. 앤드루 밀러가 소개해주는 작품들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이 살지 않았던 삶, 선택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언급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나 소설이라는 수단 자체가 원래 그렇게 다른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게 아니던가. 소설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나의 것이 아니다.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하는 일이라고는 그들의 삶을 상상하고, 그리고 '만약'을 덧붙이는 일이다. '만약 나라면' 을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안나 카레니나라면 나는 기찻길에 내 몸을 던졌을까?' 는 물음. 


안나 카레니나의 삶은 내 것이 아니다. 브론스키는 나의 연인이 아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초반으로 가면, 사실 나는 브론스키랑 사랑에 빠졌을지도 확신이 없다. 그 사랑은 내 것이 아니므로. 그러니 나는 안나가 될 수 없고 안나는 내가 될 수 없지만, 그러나 소설을 읽으면 언제나 그런 일들이 가능해진다. 


만약, 나라면?



앤드루 밀러가 들려주는 수많은 문학 작품과 영화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이 미국인의 삶This American Life> 이라는 라디오쇼 를 통한 것이다. 1990년대 보스니아 전쟁이 터졌을 때 사라예보를 탈출한 소년 '에미르'가 운이 좋아 미국에 정착하게 되지만 학교에서 차별을 당했고, 영어에 서투른 그가 에세이 숙제에 보스니아 책의 에세이를 영어로 번역해 냈더니 선생님이 너는 이 학교에 있기 아깝다며 사립학교로 전학 시킨다. 그 소년은 그렇게 하버드에 들어가고 박사 학위를 따고 결혼을 하고 대학 교수가 되었다. 라디오쇼 진행자는 표절 에세이가 그의 미래를 바꾼거라고 얘기하는데, 그렇게 에미르의 당시 선생님을 찾아 얘기를 들어보니 이야기는 아주 달랐다. 다른 선생님들도 에미르의 학업 성적이 뛰어남을 얘기했고 그 에세이에 대해서는 기억나지 않으며, 워낙 우수한 아이었으니 설사 사립학교로 전학가지 않았어도 어떻게든 성공했을 거라는 거다.


에미르에게는 인생을 바꾼 에세이, 그리고 선생님인데 선생님에게는 다른 기억으로 적혀 있었다. 그러니 돌이키는 것 역시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에미르는 '만약 내가 그 에세이를 내지 않았다면', '만약 그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다면'으로 조건을 바꿔볼 수 있을 테지만, 선생님의 기억에서는 굳이 그 에세이를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거다. 아예 기억에도 없으니까. 



앤드루 밀러는 책의 마지막 즈음, 다시 댈러웨이 부인을 소환한다.



그런 것이 우리 시각의 방식이다.

클라리사다, 그는 말했다.

왜냐하면 거기 그녀가 있었으니까.

그래, 여기 있었네. -댈러웨이 부인 中


글쓰기를 가르치는 여느 선생들처럼 나도 학생들에게 "있다be" 동사 사용을 피하라고, "있다", "있었다"를 사용하지 말라고 말한다. "진짜 동사를 쓰세요!"하고 나는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있다'가 무슨 말을 하나요? 아무것도 안 합니다! 그냥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게 전부예요!" 그런데 거의 25년 동안 그렇게 말해오다 올해 들어 갑자기 이런 말을 덧붙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하지만 그게 모든 것일 수도 있긴 하죠." -p.269

 


우리의 선택과, 그 선택으로 인한 삶과, 그리고 돌이켜보는 인생과, 다를 수 있었던 선택들이 가져올 삶과, 그런 상상을 하는 지금의 우리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있다. 세상의 시인들과 소설가들이 가보지 않은 길과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면, 앤드루 밀러는 그 작품들을 통해서 덧붙인다. 우리가 지금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하나를 얻기 위해 하나를 내려놓았음을. 우리의 선택이 우리를 만들었다면 또한 우리의 포기가 우리를 만들었다. 지금의 우리를. 우리는 지금의 삶을 바꿀 수 없고 우리 자신을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끊임없이 가지 않았던 길에 대해 떠올리며 결국 해야 할 일은 지금의 삶을 더 잘 들여다보고 현재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일테다.



소설을 읽으면 그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만으로도 좋은데, 앤드루 밀러는 이 책을 통해서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이야기까지 들려준다. 게다가 그걸 쪼개서 동사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나는 '있다'는 동사가 그 자체로 완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런게 바로 책을 읽는 재미가 아닌가 싶다. 아쉬운 건, 예시로 들었던 수많은 시에 대한 것. 시이니만큼 원문도 함께 실려있었다면 더 이해하기가 쉬었을텐데.


문득,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오거나 상상했던 것들 그리고 느끼거나 깨달은 것들이 중년에게 다가오는 당연한 수순의 것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존 치버는 중년이 되니 인생은 외로움이 전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데, 어느 순간 나도 나의 외로움을 인지하고 받아들였던 말이다. 아아, 중년이란 이렇게 오는 것이다. 나는 중년인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 이 중년의 내 모습은, 내가 만들어온 나다. 이 삶은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최상의 삶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는 매우 만족스럽다. 

나는 나 자신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친밀하고, 그 친밀함 안에서 나는 혼자다. 내 기억은 나만의 것이다. 그해 초봄 어느 저녁에 리치먼드가家의 들판을 가로질러 막 꽃망울을 터뜨린 개나리들을 헤치고 달렸고, 친구가 바로 등 뒤까지 바짝 따라붙었고, 종아리가 터질 것 같았고, 휘어진 가지가 날아들어 온몸을 때렸고,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굴렀고… 나 이외에는 그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은 기억들이다. 그런 경험들이 곧 나다. 그렇게 말하고 싶다. - P18

그런데 그 경험들은 아주 다를 수 있었고, 그랬다면 나도 지금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은 수도 없이 많다. 그중 하나만 달랐어도 나는 다른 방향으로 굴렀을 것이다. 나는 지금 여기로, 이 도시로, 이 집으로, 이 방으로, 이 책상 앞으로, 이 문장으로 이어진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걸었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의 내 삶은 기막힌 우연이면서도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삶이다. - P18

프로이트와 릴케는 그날 산책을 하면서 인간의 필멸성과 그런 필멸성이 우리가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엇다. - P20

성공한 예술 작품이란 아무리 손을 봐도 지금보다 더 좋게 만들 수 없는 작품을 의미한다. 어떻게 바꿔도 현재보다 못한 작품이 되는 상태에 이르면 그 작품은 완성된 것이다. - P39

완성된 예술 작품에는 더 바랄 것이 없다는 주장은 매력적이다. 그런 작품에서는 전혀 부조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에는 성공적인 예술 작품 뒤에는, 마치 수도 없이 버려진 옷이나 연인들처럼, 버림받은 가능성들의 잔해가 수도 없이 쌓여 있을 거란 생각이 뒤따른다.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뭔가를 잃어버림으로써 아름다움이 완성된다고 생각하고, 상실을 뭔가 아름다운 것으로 만든다. - P39

이런 말을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살지 않은 삶은 중년의 관심사다. 살지 않은 삶이 있으려면 먼저 삶을 어느 정도 살아야만 한다. - P47

중년에는 불가해함이, 당혹스러움이 있다. 이 시간 내가 가까스로 알아낸 것은 일종의 외로움이 전부다.
(존 치버, 존 치버의 일기 中 재인용) - P47

버지니아 울프의 『파도』에서는 한 등장인물이 이렇게 논평한다. 젊은 시절에는 "모든 것이 부글부글 끓고 요동쳤다.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변화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우리는 묶였다…. 우리는 지금을 선택했다. 때로는 누군가 우리를 대신해서 선택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집게 같은 게 목 아래쪽을 꽉 잡고 있는 게 느껴진다." - P49

화자도 신과 같은 역할을 한다. 화자의 관심에서 의미가 생겨난다. 어떤 참새가 떨어졌다면 화자는 반드시 그 참새를 기억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화자가 하늘에 띄운 참새였으니까. - P60

「당신을 사랑하는 신」의 결말에서 편지를 쓰라는 데니스의 호소와 함께 나는 다시금 살지 않은 삶은 이야기로 이어진다는 나의 주제로 돌아온다. - P63

한 주 한 주 클라리사는 그녀의 삶을 살았고, 그는 바다 너머에서 그의 삶을 살았다. 이제 나란히 앉아 있는 그들은 밀접하게 분리되어 있다. 각자의 울타리 안에 있지만, 그러면서도 최대한 붙어 있다. 서로 닿아 있지만 분리되어 있다. 서로에게 닿으려면 분리되어 있어야만 한다. - P66

살지 않은 삶에 대한 생각은 우리 언어의 가장 작은 단위조차 문제를 만들고 대명사를 혼돈에 빠뜨린다. - P76

물론 아무도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신이 되겠냐고 묻지 않았고, 라이프니츠에게 중국의 왕이 되겠느냐고도 뭊디 않았다. 귿르은 아무도 주겠다고 하지 않은 역할을 거절하고 있다. 사실 철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런 모습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진짜 가능성이 아닌 진짜 현실, 즉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현실에 대해 그들이 내놓은 답변 이라고 생각한다. - P78

철학 저술가 윌리엄 해즐릿William Hazlit은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리인으로 존재하기"가 돼버릴 테니까. 과연 그 누가 "선택할 수 있다면 당장 내일 대천사 가브리엘이 되겠는가? 가브리엘은 단지 멋진 광경에 불과하지 않은가?"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가진 어떤 특성을 가지고 싶어할 수 있다. 이 사람의 예술적 감각이나, 저 사람의 통찰력을 부러워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인 채로 이를 소유하고 그런 특성과 재능을 누리고 싶어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해즐릿은 행복과 불행 등 모든 감정들보다 우리에게 더 근원적인 감정은 우리 자신에 대한 원초적인 애착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허영심과는 달라서 더 근본적이며 더 뿌리가 깊다. - P79

그러나 충만한 마음이 때로는 갈구하는 마음이 되기도 한다. 기분이 살짝만 가라앉아도 내가 상상한 삶들이 지금 이 삶을 부족하다고 느끼게 한다. 살지 않은 삶이 내 세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대신 내 세계를 갉아먹는다. - P86

앤절라는 피부가 하얗고, 지니는 검다. 앤절라는 어머니를 닮았고, 지니는 아버지를 닮았다. 앤절라는 무신론자이고, 지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독자는 두 사람이 다르다는 사실을 즉시 알아챌 수 있지만, 자매들이 그런 차이점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린다. "너와 내가 별개의 두 사람이고, 각자 떨어져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는 것뿐이야." 지니가 말한다. "샴쌍둥이도 아니잖아. 우리는 각자가 선택한 길을 가야만 해." (제시 레드먼 포셋, 「플럼번Plum Bun」 - P89

『설득』은 다른 모든 소설과 마찬가지로 우연의 필연성에 관한 소설이다. - P100

포터의 휠체어가 영화감독의 의자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한 세계의 모든 사항을 지휘하지만 그 세계 안에서 활동하지 못하는 사람의 의자라는 것이다. 체험을 포기하는 대신 권력을 얻은 셈이다. (영화, <멋진 인생>) - P108

<멋진 인생>은 「당신을 사랑하는 신」처럼 한 사람(어떻게 보면 조지도 중개업자라고 할 수 있다)에게 다른 삶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자신의 삶에 안주하도록 권한다. 칼 데니스처럼 카프라는 대안을 떠올리고 우리에게 그 대안을 맛보게 한 뒤 그 대안을 잊으라고 말한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과 화해하라고 권한다. 조지의 과제는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스크루지와는 다른 과제를 받았다. 조지는 이미 선한 사람이며, 그래서 자신이 선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 P118

순서가 주어지면 우리는 일반적으로 앞서 일어난 일보다는 나중에 일어난 일을 바꾸려고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다른 논문들은 우리가 실행에 옮기지 않은 일보다는 실행에 옮긴 일을 후회하고, 우리가 머릿속으로 통제할 수 없었던 측면보다는 통제할 수 있었던 측면을, 그리고 일상적인 사건보다는 예외적인 사건을 되돌리려 하고, 적절하다고 여기는 행동보다는 부적절하다고 여기는 행동을 바꾸려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한다. - P127

우리는 과거 사건을 아무렇게나 바꿔서 상상하지 않는다. - P128

"나라면, 내가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절대로 남자에게 모든 것을 맡기라는 유혹에 빠지는 일은 없을 거야." 그러나 당연한 말이지만 에밀리는 인생을 다시 살 수 없다. (앤서니 트롤럽, 『그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 P155

리처드 카스톤이 죽기 전까지 다양한 직업을 넘나든 반면, 그가 사랑한 여자 에이다 클레어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결혼을 하느냐 안 하느냐, 두 가지뿐이었다. 물론 19세기에는 이런 선택 기회 조차 없는 여자들도 있었다. 아마도 에이다는 중산층 여성에게 열린 몇 안 되는 길인 가정교사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 P166

"남자는 직업을 선택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나이에 직업을 선택한다"라고 니체는 말했다. "그는 다양한 직업에 대해 알지 못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런 다음 그 직업에 온정신을 집중해 경험을 쌓으면서 가장 활동적인 시기를 낭비한다." 우리는 무지한 상태에서 선택한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과 비교해보면 직업을 선택할 당시에 우리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시피했다. 니체는 이런 점에서 직업은 사랑과 같다고 말한다. "성공적인 결혼생활 같은 성공적인 사례는 예외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런 예외조차 이성적인 선택의 결과는 아니다." - P170

어째서 그를, 지금,
내가 알 수 없고, 내가 볼 수 없고,
내가 들을 수 없고, 내가 만질 수 없는데,
다른 사람은 알 수 있고, 다른 사람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걸까. (샤론 올즈, 「2001년 9월, 뉴욕September 2001, New Yokr City」 - P171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하면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다. 결혼하거나 결혼하지 않거나, 어느 쪽이든 후회할 것이다." - P175

모든 좋은 길은 나머지 길을 배제한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매기 넬슨Maggie Nelson이 말한다. "나는 글을 쓰면서 동시에 아이를 안아줄 수 없다." 그녀가 쓴 모든 문장은, 내가 읽는 그녀의 모든 문장은 그녀가 아이를 안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암묵적으로 전달한다. 결과물을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바로 내려놓기인 듯하다. (넬슨의 저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내 책을 한 줄로 요약했다고 느꼈다.) - P186

줄리엣 미첼Juliet Mitchell은 형제자매가 "자신이 유일하지 않으며 누군가 자신과 똑같은 자리에 서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 P209

비교는 울프에게 다른 세계를 욕망하게 만들었다.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를 원한 것이 아니라, 이 세계에 더해진 다른 세계를 원한 것이다. 이것 대신 저것이 아니라, 이것과 저것이다. 나는 다른 세계에 대한 그녀의 갈망이 이 세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 P263

글쓰기를 가르치는 여느 선생들처럼 나도 학생들에게 "있다be" 동사 사용을 피하라고, "있다", "있었다"를 사용하지 말라고 말한다. "진짜 동사를 쓰세요!"하고 나는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있다‘가 무슨 말을 하나요? 아무것도 안 합니다! 그냥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게 전부예요!" 그런데 거의 25년 동안 그렇게 말해오다 올해 들어 갑자기 이런 말을 덧붙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안 하지만 그게 모든 것일 수도 있긴 하죠."
- P269

가능성이 무한하다는 관념은 청소년기의 고통이자 위안의 출처다. 어른이 되어서 얻는 유일한 이득은, 그런 가능성의 세계를 포기함으로써 얻은 유일한 정의는 실재, 현실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유일한 세계의 진실, 그 세계가 존재하며, 내가 그 안에 존재한다는 것이 주는 고통과 위안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스탠리 카벨, 『눈에 비치는 세계』) - P282

나는 하나의 삶, 이 삶을 산다. 이 삶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삶 이외의 다른 삶도 없다. 나는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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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2-05-30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어떤 책들은 독자로
하여금 물들게 해서 책만큼
좋은 리뷰를 쓰게 하나봐요.
다락방님의 글은 항상 근사한
에세이들이지만 이 글은 유독 마음을 울리네요! 잎사귀랑 이책 땡투했어요~♡♡

다락방 2022-05-30 12:12   좋아요 2 | URL
저는 리뷰 써놓고 아 무슨 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엉망인 글이다 ㅠㅠ 하고 있었는데 이런 다정한 댓글이라니, 위로와 힘이 됩니다, 미미 님.
미미 님도 이 책 좋아하실 것 같아요. 그리고 아마도 책들을 또 사게 되겠죠. 저는 그렇게 댈러웨이 부인을 샀거든요. 껄껄.

공쟝쟝 2022-05-30 1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리플 후감상) 길어서 밥먹으면서 읽겠습니다. 오늘 점심은...... 순대국밥입니다.

다락방 2022-05-30 12:11   좋아요 3 | URL
긴 페이퍼도 하나 또 썼다. 내가 오늘 올린 글 두 개 다 읽으면 밥도 다 먹을듯요. ㅋㅋㅋㅋㅋ
저는 마라탕 먹을 거예요!

공쟝쟝 2022-05-30 12:30   좋아요 2 | URL
저는 제 외로움이 좋아요.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삶은 어느 정도 살아’서 획득한 살아보지 않은 삶들에 대한 희구를 이해할 수 있어서 제 나이들어감이 좋고요, 무엇보다 커서 내가 될 사람이 자기 삶이 최상이라고 말하는 내 안목이 좋습니다. ㅋㅋㅋㅋ 그러므로 내가 짱이다!!!! 💕

다락방 2022-05-30 15:26   좋아요 3 | URL
쟝님은 나이 들어서도 인생에 만족하게 될거예요. 지금 성실히 살고 있으니까요. 제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깨달은 건, 성실한 인생은 후회할 리 없다...는 것입니다. 성실히 살면 결국은 만족이 오는 것 같아요.
공쟝쟝 님의 인생 화이팅!!

mini74 2022-06-10 0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사해서 우와!! 했던 글이네요 ㅠㅠ 다락방님 축하드려요 *^^*

새파랑 2022-06-10 1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옆에 메달이 화려하네요~!! 축하드립니다~!!
 
레이디 크레딧 - 성매매, 금융의 얼굴을 하다
김주희 지음 / 현실문화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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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내가 만약에 결혼을 해서 애를 낳았는데 그 애기가 백혈병이나 무슨 병에 걸려서 막 되게 아파요. 그런데 내가 만약 업소 생활이나 이런 생활을 모르면 그런 쪽으로 생각도 하지 않을 테지만 내가 이미 이런 거를 알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을 때는 분명히 그쪽에서 돈을 벌려고 생각할 거란 말이죠. 그럼 '나, 참 내가 몰라도 될 거는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하고 그러는데. <다혜> -p.282



김주희는 이 책의 끝을 맺으며 '성매매는 당사자 여성들에게 언제나 경제 문제였다'(p.390) 고 주장한다. 만약 그들이 돈이 필요하지 않았다면,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이었다면 성매매 당사자 여성들은 부러 성매매를 선택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며,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하다 성매매가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성매매 당사자들중 많은 여성들이 돈 때문에 이 일을 선택했다. 아직 성인이 되기도 전 자립할 수도 없을 나이에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렵거나 가정 폭력에 시달린다면, 성매매는 대안이 되었다. 살 곳을 마련해주기도 했고 당장 필요한 돈을 먼저 현금으로 주기도 했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아 갚을 수 있다는 어떤 것도 증거로 내밀지 못해도 성매매 세계 안에서는 얼마든지 필요한 돈을 한 번에 융통해주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모두 계속 굶거나 아프거나 힘들게 살거나 할 때도 마찬가지. 성매매 속으로 들어가면 당장 살아갈 수 있는 돈을 단번에 내주었다. 당사자 여성은 그 돈을 들고 가 내 쉴 곳을 마련하거나, 식구들의 병을 치료하거나, 언제나 고생만하고 가난하게 살아온 가족들에게 밥을 차려줄 수 있었다. 그런 일이 한 번 시작되면 처음에 받았던 그 현금, 그것은 이제 고스란히 그녀에게 빚으로 남는다. 자신들을 '믿고' 자신들에게 '신뢰'를 갖고 빌려준 이 돈을 이들은 갚아야 했다. 도덕경제적 실천에 의한 의지가 있었던 그들은 그래서 그 돈을 갚기 위해 그 세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높은 금리로 빌리고 이자가 다시 원금에 덧붙여지고 여기에서 저기로 더 큰 금액으로 빚이 불어나 이동하게 되어도, 그녀들은 그것을 갚고자 했다. 갚으려면 열심히 일해야 했는데, 얼굴이 못생기거나 뚱뚱하면 '초이스' 되지도 못해서 다시 돈을 빌려 성형 수술을 하거나 다이어트를 해야 했다. 예쁜 옷도 사입어야 했다. 돈은 다시 불어난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예전처럼 부담스럽진 않다. 업주가 얼굴을 마주한 상태로 돈을 빌려주는 게 아니라 눈에 보지 않는 상대가, 은행이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늘 가난했던 여성들은, 학비를 마련할 수 없었고 밥 먹는 것조차 힘들었던 여성들은, 이제 먹고 싶은 걸 먹고 대학도 갈 수 있는 돈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그녀들에게 '자유'다. 자유로 느껴진다. 갚아야 할 돈이 몇 백, 몇 천, 혹은 억대로 넘어가도, 그들은 이제 자유롭다. 



자살하는 사람들 많아요. 저는 실제로 목매달고 죽은 애 보기도 했고. 그냥 항상 하는 얘기가 그거에요. '살려고 온 바닥인데 너가 인생이 너무 힘들고 죽기 직전에 썩은 동아줄이라도 한번 잡아보려고 온 곳이 여기인데 여기서 살려고 왔는데 왜 결국에 죽냐' 그렇게 하늘로 편지를 보낸 적도 있어요. 제 정신에 할 수 있겠어요? 낵 몸을 파는 건데? (…) 그러니까 여기는 다 정신병으로 얽히고, 얽히고. 굉장히 많아요. 돈 때문에 와서 결국 자기가 영혼까지 팔아버렸는데 죽어버리는 애들이 수도 없이 많아요. 여기가, 강남구가 세계에서 자살 비율이 전 세계 1등이에요. 시제 저 이사 갈 때도 조심조심 가요, 귀신 사는 집 안 가려고. 실제로 귀신하고 살아보기도 했으니까요. 여기는 되게 슬픈 동네에요. 진짜 죽어나가는 애들이 다 어마어마해요. 살인 사건도 많고. 그 살인 사건들이 대부분 다 화류계에서 나는 것들이니까. 뉴스에서 나오는 역삼동, 애인이 어쩌구, 다 화류계. 재작년에 크게 난 것도 저희 가게였거든요. 불과 몇 달 전에 여자친구 목 졸라 죽여서 자수한 사람도 저희 가게 영업진이었고. 되게 많아요. <박팀장> -p.353~354



그러나 내 몸이 상품화 되는 일이 비록 '나는 자유롭다'고 말하거나 생각할지언정 결코 유쾌한 일이 될 수는 없다. 여자친구나 아내에게는 요구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성매매 여성들에게는 요구된다. 내가 원하는 상대가 아니라, 나의 겉모습을 보고 나를 선택한 남성들로부터 나는 원하는 것을 해줘야만 하는 상품 취급을 당하게 된다. 하루에도 몇 명을 상대해야 하고 그러다 몸이 축나기도 한다. 같이 일하는 여성들과는 외모로 비교를 당하기도 한다. 도저히 할 수 없는 요구에도 응해야 하고, 폭력과 강간에 노출되어 있어 늘 안전이 염려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이 우울증 약 없이, 정신과 치료 없이 될 리가 없다. 성매매 여성들의 업소에는 언제나 어디서나 우울증 약을 빌리고 얻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런 여성들을 그렇게 많이 죽음으로 걸어간다. 한 업소에서 연달아 몇 명이 자살한 일도 있었다. 스스로의 삶을 그만두기를 선택해 죽기도 하고 누군가로부터 살해를 당하기도 한다. 살아볼라고, 비참한 삶에서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걸어 들어간 길이었지만, 그 길은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목적지로 그녀를 데려갔고, 그렇게 죽음을 선택하는 일들이 그 안에서 일어난다.



성을 팔 수 있다, 여자는 자신의 몸을 담보로 내걸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도 그것이 하나의 길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제 여유롭게 살게 된 여성이 있다 하더라도 만약 위급한 일이 생기거나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다시 성매매를 해볼까'를 생각해 볼 수밖에 없게 되고, 설사 성매매를 해보지 않았던 여성이라도 가난에 허덕이게 되면, 혹은 학업을 이어나가고 싶으면, '성매매로 돈을 벌 수 있다는데' 라고 염두에 두게 되고 그들중 일부는 '그래도 그러지는 말자' 하고 돌아서겠지만 '좋아 이번 한 번..' 하고 그 길로 들어서게 된다. 


맨 위, '다혜'의 말처럼, 그것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놓여 있는 삶. 성매매 자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세상 모든 여성들에게 가능성이 되는 삶. 그것 자체가 위험하다. 이것이 '너의 선택'이라고 말하는 것은, 순전히 책임을 그 여성 개인의 문제로 여기도록 한다. 아니다. 세상이 그렇게 만들었다. 성을 팔 수 있는 것이라고, 네 몸뚱아리가 자산이 될 수 있다고 세상이 말했기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판다. 네 몸뚱아리가 담보가 될 수 있다고 말했기 때문에 여성들은 자신의 몸을 담보로 건다. 네게 돈을 지불해서 네 몸은 상품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여성들의 몸은 상품이 된다. 예쁜 외모는 더 가치있다 말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성형수술을 하고 다이어트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아니면 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그렇게 자신의 몸을 상품화 하고 담보화 하면서, 숱한 우울과 죽음 앞에 직면하면서도, 자신이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내린 결론은 그것이다. 성매매를 가능한 방법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 어렵고 힘들 때 성매매를 하나의 경제적 해결 방법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것. 성매매가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는 사회. 그것은 성매매 비범죄화 나 합법화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사회이다. 필연적으로 포르노랑 연결되어 있는 성매매를 여성들이 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길로 여기지 않는 사회. 그걸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내 와이프는 임신하면 내 욕구 성매매로 해결하고 오래, 를 자연스레 말하는 사회에서, 성매매 후기를 공유하는 사회에서, 텐프로를 여자에 대한 칭찬으로 쓰는 사회에서, 지나다니는 여자들에게 몸값을 매기는 사회에서, 데이트 비용을 내가 냈으니 섹스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드라마나 영화에서 모두 룸살롱을 보여주는 사회에서, 회식후 2차를 룸살롱으로 가는 사회에서, 아가씨 대출이 가능한 사회에서, 성매매로 쉽게 돈을 번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어떻게 성매매가 방법이 되지 않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떻게 여성들로부터 성매매를 차단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김주희는 성매매 문제를 이 시대의 '여성 문제'로 적극적으로 구성해야 한다(p.397) 고 말한다. 여성은 전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성매매 당사자는 성매매 속에서 상품화 되는 여성만인 것은 아니다. 돈을 지불하고 그것을 사는 남자들, 중개를 하는 남자들, 그것이 살아갈 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모두 성매매 사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리고 너무나 급진적이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여자도 인간이다. 이것은 이 시대의 여성 문제로 적극적으로 구성하기보다는 이 시대의 인간 문제로, 이 사회의 커다란 문제로 구성해야 하는게 아닐까. '여성' 문제라고 하면 입에 피를 토하면서 왜 우리가 자기 좋아서 창녀짓을 하는 여자를 도와야 하냐고 하는 남자들이 수두룩할테니까.


성매매는 이 시대의 우리 문제이며, 이 사회의 문제이며, 이 시대의 문제다. 우리는 이걸 알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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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4-27 09:1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이 글 읽고 있는데 코 끝이 찡하네요.
성매매 문제를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문제로 끌어올려야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했어요. 내 수중에 돈이 있고 내 가족이 위협을 받지 않는다면 누가 성매매 산업에 들어갈까요. 저는 결코 그렇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 문제인데 이것을 뒷받침해주는 은행, 고리대금업자, 그리고 룸살롱 업체들이 있고 여기에 뛰어든 여성들은 철저히 자신의 몸을 내던져 담보가 되는 세상. 너무 슬프고 화가 납니다.

다락방 2022-04-27 10:50   좋아요 5 | URL
저도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성문제‘라고 하는 순간 이 나라 인구의 절반인 남성들은 어차피 ‘내 문제 아니야‘로 할 것 같아서요. 이것은 전 국민의 문제라고 분명히 인식시켜야 할 것 같아요. 그러나 그렇게 인식시키기는 힘들겠죠. 성매수자 남성들은 돈을 지불하고 변태적 행위를 취함으로써, 명령을 하거나 요구함으로써 그 돈이 주는 억압적이고 권력적인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고 싶을테니까요. 자신이 가진게 무엇인지 인지를 한 남성들은, 거기로부터 빠져나올 생각 자체를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주 멀고도 먼 길이 될 것 같습니다. 탈성매매 사회는요.

얄라알라 2022-04-27 13:28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저는 오늘 [레이디크레딧] 들고 외출했어요. 산에 올라가서 읽으려다가 미세먼지 빨감이라 편한 곳에서 음악들으며 책 펴려는데, 다락방님의 페이퍼 읽으니 거리의화가님 말씀처럼, 감정이 확 올라옵니다.

어제 읽은 [엄마가 되기 위해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에서도 ˝돈˝의 문제를 명확하게 대놓고 다뤄줬어요.

마지막 문장, 선언문 삼겠습니다!

다락방 2022-04-27 14:26   좋아요 3 | URL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 뻔히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길이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그 길을 살아갈 해결방법으로 고려하기도 한다는게 너무 마음이 아픈거예요, 얄라알라님.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가능성으로 보지 않게끔 해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고요.

이 책을 읽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겁니다, 알라 님. 힘내서 읽으셔요!!

단발머리 2022-04-27 10:32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으면서 자유와 선택의 문제에 대해 자주 생각했거든요.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그녀들이 말하고 싶은 건 뭘까. 그런 생각을 자주 했어요. 성매매 관련 도서는 전 <페이드 포> 밖에 안 읽어서 아직도 저의 생각이 도덕적인 기준, 통념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의심도 많이 했구요.
근데 다락방님이 인용해주신 글 다시 읽어보면서 어쩌면 그들의 진심은 다른데 있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삼백만원이 필요해서, 오백만원이 급해서 어쩔 수 없이 그쪽 일을 시작한 여성들이 그 곳에서 빠져나오는게 거의 불가능한 이런 구조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요.
이 문제 역시 당사자성을 고려할 수 밖에 없을테고, 그런 상황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조심스럽지만...
이게 그녀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여성만의 문제도 아니고, 바로 이 사회의 문제라는 다락방님의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만약 이 책 읽기 힘드신 분들이 계시다면 다락방님의 이 글만 읽어도 충분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글 감사해요, 다락방님. 수고많으셨어요.

다락방 2022-04-27 10:55   좋아요 7 | URL
단발머리 님, 저도 성매매 당사자들의 자유에 대한 인터뷰를 읽으면서 정말 자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억압적이고 가난한 환경에서 돈을 써보지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돈을 빌리고 갚고 소비하는 것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됨으로써 그것을 자유롭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 사람들에게 정말 자유인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이 ‘그건 자유가 아니야!‘ 라고 할 순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것을 자유라고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 빚에 허덕이는 생활은 결코 끝나지 않을거고요. 몸을 갈아 노동하고 인격적으로도 모욕을 받으면서 우울증에 허덕이며 살아가는 삶이 계속 이어질텐데, 그러면 어쩌면 좋을까. 우리는 다른 식으로 그 자유가 아닌 ‘다른 자유‘에 대해 자연스레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건 또 어떻게 보여주고 어떻게 알려주나. 저 역시도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저는 이것이 곧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해결이 쉽지는 않을 거라고 보여요. 위에 거리의화가 님께도 답글 달았지만, 저는 많은 성구매자 들이 성을 구매하는 그 권력을 포기할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쪽으로는 전혀 희망이 없다고 보입니다. 그래서 노르딕 모델은 지금 현재 취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일 것 같아요. 성구매자에 대한 처벌이요.

언제나 그렇듯 좋은 독서였어요, 단발머리 님. 인사도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5월 도서 때문에 한숨을 쉬게 되네요? ㅋㅋㅋㅋㅋ

미미 2022-04-27 12: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남성인 박팀장이 저런 말(제 정신에 할 수 있겠어요? 내 몸을 파는 건데?)을 하는 것 자체가 관련된 남성들 모두가 제 정신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다는 증거같아요. 밝은 곳에서는 불법이지만 어두운 곳에서는 합법인 문제들은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위선을 잘 드러내고요. 다락방님 4월도 훌륭한 선택이셨습니다. 항상 감사하고 완독 수고하셨어요!! 다음달도 기대됩니다.*^^*

다락방 2022-04-27 14:22   좋아요 3 | URL
그러니까요, 미미님. 곁에서 여자들이 힘들어하고 죽어가는 걸 봤으면서도 그 일을 계속 하면서 그런걸 계속 보고 있다는 것은 무얼 뜻하는걸까요, 미미님? 어쨌든 죽음을 맞이하는 당사자는 본인은 아니다 라는 거겠죠. 저는 다 알면서도 저 일을 계속하고 여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게 너무 화가 나요. 모두들 하나가 되어서 여자들을 죽이고 있는 것 같아요. ㅠㅠ

휴.
미미 님, 우리 5월에도 힘냅시다. 5월 책은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일찍 시작해야겠어요!

바람돌이 2022-04-27 13:2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성매매를 가능한 방법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말이 팍 꽂히네요. 4월이 다가는데 이제 시작해야 하는 저같은 사람에게 아주 훌륭한 길잡이 글입니다. ^^

얄라알라 2022-04-27 13:30   좋아요 3 | URL
1부 읽고 있는 저에게도 이 글 찐한 에스프레소같이 진액입니다. 바람돌이님 화이팅!!!!얍!!!! 완독!!! 4월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라고 저도 스스로 세뇌중!

다락방 2022-04-27 14:24   좋아요 4 | URL
네, 바람돌이 님. 읽다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여성이라면 살아갈 일이 막막하게 느껴질 때 성매매를 하나의 가능성으로 놓아둘 수 있겠다고요. 이 책에 보면 일흔이 넘어서도 성매매를 하는 여성의 사례도 나오는데, 어린 여성들은 물론이거니와 나이가 많은 여성도 너무 삶이 힘들면 하나의 가능성으로 생각할테고, 가능성이 된다면 실행을 할 수도 있겠죠. 아예 이런 일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데 세상이 하나로 똘똘 뭉쳐 여자는 성을 팔아 쉽게 돈 벌수 있다고 얘기하잖아요. 아주 징그럽습니다.

자, 바람돌이 님, 얄라알라 님! 힘내세요!! 빠샤!!

mini74 2022-04-27 14: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읽으면서 난자 판매 관련글도 떠오르더라고요 결국 젊고 가난한 여성들이 착취대상이 되며 그 부작용은 숨긴체 자행되는 ㅠㅠ 성매매가 여차하면 가능한 경우의 수가 되지 않는 사회 !! 가 되길 바랍니다 ~

다락방 2022-04-27 14:57   좋아요 3 | URL
부작용이 드러나도 결국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묵인해버리는 것 같아요. 이 책에서 박팀장 이란 사람은 자살하는 여성들을 보아왔고 이 일이 힘들다는 걸 본인도 인지하고 있잖아요. 그러면서도 이 일을 계속하고 있죠. 어휴..
성매매를 한 순간이라도 답으로 떠올리지 않을 수 있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미니 님. ㅠㅠ

2022-04-27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28 08: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28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22-04-27 20: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말씀이 일침을 가합니다.
여성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문제라는 제목이 와 닿습니다.
저 다혜씨의 인용문 참 아프게 읽혔었는데...
다락방님의 책을 고르시는 안목 덕분에 늘 한 달, 한 달 새롭게 눈을 뜨는 시간들인 것 같습니다. 몰랐던 성매매 문화와 금융권의 부채 자본으로 덩치를 부풀리는 상황들...이 책이 아니었음 계속 모른채로 살아가고 있겠죠?
알게 된 것이 결코 자랑이 아닐진대ㅜㅜ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바뀌어가게 될지 관심을 가지는 계기는 분명할 것 같습니다.
암튼 모두들 분노하고 고민하는 글들을 읽으면서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니구나! 싶어 되려 힐링되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암튼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가들이 더 많이 나왔음 싶어요. 더 많이 알아갈 수 있게 말이죠^^

다락방 2022-04-28 08:44   좋아요 2 | URL
책나무 님, 저도 책 속의 현실이 여성들에게 너무 가혹해서 차라리 이걸 모르고 사는게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수시로 들었어요. 차라리 모를걸, 차라리 모를걸.. 하고요. 알고 나니 너무 괴로워요. 안다고 해서 제가 어떻게 바꿀 수도 없기 때문에요. 다만 앞으로 성매매에 있어서 성매수자만 처벌하자는 노르딕 모델을 지지하는 걸 제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게는 이런 책을 읽고 널리 알리는 것도 있을테고요.

책나무 님, 한달간 또 같이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우리 5월달에도 (어렵겠지만) 열심히 가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