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 그림책 다락방 4
상드라 푸아로 셰리프 글.그림, 문지영 옮김 / 한겨레아이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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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이 jtbc 뉴스에 나와 손석희와 대화 하면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는 이미 시작된 사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그 과정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다고. 정확한 문장은 기억나지 않지만, 보통이 말한 요지는, 이 세상에 사랑이 시작되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은 많지만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그 사랑의 상태에 대해 말하는 이야기는 적다, 사람들이 별로 관심없어한다, 는 거였다. 그래서 그걸 자신이 해보겠노라고. 나는 그간 보통의 책을 여섯권 정도 읽었고, 그 여섯권들중 어떤 책에서도 보통의 매력을 느끼지 못해, 앞으로는 보통의 글을 안읽어도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인터뷰를 보며 앞으로 보통이 자신이 말한 바로 저 책을 쓰게 된다면, 그 책은 반드시 읽어보겠노라고 생각했다. 사랑이 시작되기 전의 그 설레임이 아닌,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혹은 아주 오래 진행되고 있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면, 나는 관심이 많다. 사실 그 관심은 '그게 정말 가능할까?' 라는 의심에서 시작됐다고 하는 게 솔직하며 정확할 것이다. 


사랑에는 유통기한이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물론 그 기한이 2년인지 3년인지는 모르겠다. 2개월인지 15년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설레임으로 시작된 사랑이 설레임으로 계속 지속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혹여 오래 지속된 사랑이 있다면, 그 사랑의 속성은 설레임이 아닌 무엇, 이를테면 익숙함이나 습관 같은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내 사랑이 늘 짧았던 이유였을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부모와 지내고 있으면서도, 실상 내 부모의 관계를 받치고 있는게 '이성간의 사랑' 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들의 의리, 정, 신뢰, 습관, 연결. 그런 것들이 내 부모를 지금에 이르게 한 게 아닐까. 물론 의리나 정, 신뢰등을 사랑의 또다른 이름이라 부른다면 그들의 바탕이 사랑이라고 해도 부인할 수 없겠지만, 여전히 내게는 사랑은 설레임이나 긴장이라는 생각이 강한 까닭이다. 나는 사랑은 지속될 수 없다는 현실성을 충분히 인식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사랑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는가보다. 아니, 그렇다. 그래서 나는 길고도 긴 사랑은 무섭다. 변질되는 감정일까봐 두렵다. 그런 것들이 내것이 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런 한편, 길고 긴 관계를 유지하는 연인들 혹은 부부를 보는 것은 존경심을 자아낸다. 아, 어떻게 저렇게 지낼 수 있을까, 어떻게 저렇게 오래 함께하지? 관계를 유지하는 게 열정이라고 내가 믿는다면, 아직 내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 열정이 아닌 다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책,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을 보면,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는 것 정도가 아니라,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란 생각마저 든다. 나는 어쩌면, 사랑이란 것에 대해 정말 쥐뿔도 모르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기, 기억을 잃은 할머니가 있다. 오랜 시간 할아버지랑 함께 살아온 할머니. 피자를 먹고 싶으니 피자를 사오겠다고 했지만, 그 말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할머니, 자동차 열쇠가 어디있는지 통 찾을 수가 없는 할머니, 그래서 먼 길을 오랜 시간을 걸려 집까지 걸어가야 했던 할머니.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할아버지가 있다. 결국 할머니가 언젠가 자기를, 그리고 그들의 자식에 대한 기억마저 잃을까 두려워하는 할아버지. 그녀를 위해 내가 무얼 할 수 있을까? 를 고심하는 할아버지. 그리고, 이런 문장.




정말이지 예쁘구나, 하고 할아버지는 생각합니다.



이건..뭐지? 잠든 아내의 모습을 보며 정말이지 예쁘구나, 하고 생각하는 할아버지라니. 이건 뭐지? 이건 사랑이잖아. 이건 애정이잖아. 그렇다면 사랑이란 게, 유통기한 따위, 없는 거 아니야? 정이나 신뢰 혹은 의리 같은 거 말고, 그런거 말고 더한 무엇이 거기 있는 거잖아.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와도 질리지 않고 지치지 않는 거, 그게 사랑 안에 있는 거잖아. 그리고 이들은 지금, 그걸 하고 있는 거잖아.


이 사람을 위해서 무얼 할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할아버지라니. 이런 사람들이 하고 있는게 사랑이 아닐 리가 없잖아. 밤중에 잠을 못이루고 옆에 잠든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는 거, 이게 사랑이 아닐 리가 없잖아? 



마흔다섯이 되고 일흔둘이 되어도 연애를 즐기며 살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사랑이 일시적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는 한다. 이미 나보다 더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 내게 그렇다고 말한다. 줄리언 반스가 그랬고, 까치가 물고 간 할머니의 기억속,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그렇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들의 말은 옳았던 것 같다. 나보다 더 오랜 시간을 살아왔던 사람들의 말. 그들이 사랑에 대해 하는 말 역시 옳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여든다섯 살이 되어, 나보다 훠어어얼씬 젊은 이들에게 말할런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단다, 라고. 

사랑은 이토록 오래 지속되는 것이야, 라고.



이 책의 모든 책장은 덤덤하게 넘길 수 있다. 요란하지 않게 그저 묵묵히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맨 마지막장까지 그렇게 볼 수는 없다.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 손수 만든 것들을 펼쳐 보면서는 울컥, 하는 마음을 덤덤하게 누를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게 사랑인 것이다. 그들이 사랑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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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4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04-14 17:32   좋아요 0 | URL
어디를 말하는지 몰라서 처음부터 다시 읽었네요. ㅋㅋㅋㅋㅋ 땡큐요!

웽스북스 2015-04-14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 글 참 좋네요! :)

다락방 2015-04-14 17:33   좋아요 0 | URL
좋다니 다행입니다.
:)

레와 2015-04-14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한다고 말해줘. ^^

다락방 2015-04-14 17:33   좋아요 1 | URL
누구한테? 레와님한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nomadology 2015-04-14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린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들일 뿐이죠. 저는 보통은 좋아해요. 그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노래도 좋아하고.

다락방 2015-04-15 14:04   좋아요 0 | URL
크- 뭔가 술 한잔 하면서 읽어야 되는 댓글 같아요. 우린 사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들... 크- 뭔가 인생의 진리를 한 수 배운듯한 느낌입니다. 헤헷

cocomi 2015-04-15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마다 사랑에 대한 정의가 달라서 이건 사랑이고 이건 아니다라고 규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에로스적인 사랑도 있고 자식을 향한 무한 사랑도 있고 생물학적 본능을 넘어서는 다른 종류나 차원의 사랑도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전 개인적으로 한순간에 불타오르는 감정 보다 권태나 다른 삶/사랑의 굴곡을 이겨내거나 지나가고 난 후에도 이어지는 사랑, 상대의 모든 것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하며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사랑하는 것이 이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게 쉽지 않으니까.. 그래서 노년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더 큰 감동을 주는 것 같아요.

다락방 2015-04-15 14:06   좋아요 1 | URL
네, 최근에야 저도 그런 생각을 합니다. 권태나 다른 삶의 굴곡을 이겨내고 지나간 후에 이어지는 사랑. 그런 사랑의 숭고함이랄까요. 그런 게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제 나이 먹어가며 저도 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함께 봐오고 겪어오며 서로에 대해 나만큼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것 말예요. 끄덕끄덕. 네, 그 쉽지 않은 것이 그래서 아름다운가 봅니다.

nomadology 2015-04-15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낮술 고고, 라고 적었더니 너무 체신머리 없이 보이네요. 오늘 날씨가 무척 좋아요.

다락방 2015-04-15 16:25   좋아요 0 | URL
오늘 날씨가 무척 좋아서 저도 낮술 고고, 하고 싶지만 일단 직딩이므로 꾹꾹꾸우우우우우우우욱 참았다가 퇴근후 슝- 술 마시러 갑니다! ㅎㅎ

salt23 2015-04-22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페북에 공유했습니다.

다락방 2015-04-22 09:37   좋아요 0 | URL
네~
 
혼불 4
최명희 지음 / 매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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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도 이런 민폐가 없다. 강모 이 새끼는 진짜 여러 여자 신세를 조져놨다. 강모가 너무 싫어서, 실제로 4권에는 강모가 그렇게 많이 나오지도 않는데, 강실이가 나올때마다 강모 생각에 부르르 떨었다. 이새끼..너무싫어.. 청암부인 얘기 나올때도 강모가 싫고, 효원 얘기 나올때도 강모가 싫다. 


강모가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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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5-03-31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익은 이름!! 다락방님 읽고 계시는군요. 은근 나쁜 남자 캐릭터예요.

다락방 2015-03-31 09:38   좋아요 0 | URL
은근 나쁜 남자가 아니라 대놓고 찌질이에요. 형편이나 상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주변 여자들에게(그 여성들 모두 자신들이 그렇게 태어나고 싶어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니라는 상황은 같은) 엉망진창 삶을 살게하죠. 아..싫어요, 진짜. ㅠㅠ

blanca 2015-03-31 09:54   좋아요 0 | URL
실시간 ㅋㅋ 다락방님 이거 완결이 아니잖아요. 마지막권 보면 정말ㅡㅡ 앞으로 어떻게 됐을 지를 알 수가 없으니 너무 마음이 괴롭더라고요. 황당한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작가의 죽음이 어찌나 안타깝던지요.

다락방 2015-03-31 09:55   좋아요 0 | URL
아 저 이거 3권까지 읽다 중단했었거든요. 그리고 엊그제부터 4권 읽기 시작한건데..강모 보니까 처음에 열받았던 그 감정이 다시 후르르 타올라요. 하아- 마지막권에선 대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ㅠㅠ
강모는 진짜 친구하기도 싫은 스타일이에요. 아우, 쥐어박고 싶어요. ㅠㅠ

무스탕 2015-03-31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랑 비슷한 삘로 읽고 계시는군요. 저도 강모를 없애고 다시 시작해야 해, 그러며 읽었었죠. ㅎㅎ

다락방 2015-03-31 09:48   좋아요 0 | URL
강모가 처한 상황, 입장이라는 것이 꽤 힘든 자리라는 걸 알아요. 그건 자기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도 알고요. 시대를 잘못 만났다는 생각도 해요. 그렇지만 이해한다고 용서 되는 건 아니네요. 어휴, 정말 싫어요, 무스탕님. 혼사가 들어오지 않는 강실이를 보노라면 정말이지 부들부들해요. 강모 이새끼..하면서요. ㅠㅠ

무스탕 2015-03-31 09:51   좋아요 0 | URL
근데요, 나중에 보니 이게 다 소설이더라구요. 으하하하~~~

다락방 2015-03-31 09:54   좋아요 0 | URL
그쵸 소설이죠..
하아- 어머니 신분 따라 노예가 되고 귀족이 되고 .. 이런 계급사회인 게 너무 싫어요. ㅠㅠ

무스탕 2015-03-31 09:57   좋아요 0 | URL
갑자기 딴 얘기입니다만..
계급사회일때 어머니의 계급을 따라간게 아니고 낮은 계급을 따라 간거 아니었나요?
엄마가 양반이고 아빠가 상놈이라고 아이가 양반이 되진 못했을텐데..
아빠가 양반이고 엄마가 상놈이면 당연 아이도 상것이 되는데 이것이 엄마의 계급을 따랐다기 보다 낮은 계급으로 편입되는 제도 아니었나 해서요

다락방 2015-03-31 10:00   좋아요 0 | URL
아뇨. 엄마 계급을 따라가요. 그래서 노비인 춘복이가 강실이를 호시탐탐 노리죠. 속으로 생각해요. 나한테 양반 아들 하나 낳아주소, 라고 말이지요. ㅠㅠ 자기는 노비 자식을 낳을거라면 아예 안낳고 말겠다고 다짐하거든요. 그래서 강실이만 노립니다. ㅠㅠㅠ

Jeanne_Hebuterne 2015-03-31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모 이름조차 싫을만큼 머저리 상등신같아요. 제게 강모는 한국소설 찌질이 대망의 일 위의 아이콘입니다.

다락방 2015-03-31 15:10   좋아요 0 | URL
네. 찌질이 중에서도 상찌질이에요. 등신에 민폐쟁이. 아 너무 싫어요. 진짜 싫어요. ㅜㅜ

singri 2015-03-31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강모가 어떻길래싶어 혼불 읽어봐아되나 하는중 ㅋㄱㄷ

다락방 2015-03-31 15:50   좋아요 0 | URL
아주 썩을놈이에요, 그냥!!! ㅎㅎㅎㅎㅎ
 
















내가 무언가에 겁 먹었을 때, 겁먹지 말라고, 다 지나갈거라고 하는 말들보다는, 누군가 다른 일들에 겁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더 힘을 얻고 위로를 얻을 때가 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뱃속에 나비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끼는 가르만은, 할머니들과 아빠 그리고 엄마에게 겁나는 게 있는지 물어본다. 그리고 그들 모두 저마다의 겁나는 상황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것은 가르만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묘하게도 힘이 되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각자의 이유로 겁먹고 있구나, 하면서. 그래, 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어린아이에게 학교 가는 게 아닌 죽음이나 미끄러운 눈길이 두려울 일이 뭐란 말인가. 그러나 할머니들에게는 학교 가는 것은 죽음이나 눈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 다른 두려움에 맞닥뜨리고, 그걸 경험해가면서 한 해 한 해 더 자라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림도 생동감 있고, 대화들도 따뜻하다.



엄마의 두려움 앞에서-가르만이 차길을 건너는 것에 대한 두려움-, 당연하게도 아홉살 소년 오스카가 생각났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의 그 오스카. 잘 살피겠지만, 그래도 더 잘 살피면서 차길을 건넜으면 좋겠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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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6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6 14: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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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장애인 비하와 서울 중심적 표현을 써서 지적받고 사과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p.140)



몇해전에 《페미니즘의 도전》으로 정희진을 처음 만났었다. 하도 오래전의 일이라 사실 그 책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지금 이 책, 《정희진처럼 읽기》를 읽기 시작하면서, 아 그녀가 이렇게 '센' 글을 썼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문에서 거부감이 들었다.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을 때는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은데, 왜이렇게 거부감이 들까. 정작 본문이 시작되고 나서는 거부감이 사라졌지만, 서문에서의 거부감은 정말 컸다. 나는 그녀처럼 읽지도 쓰지도 않을 것이라고, 나는 계속 내 식대로 할 거라고 욱, 하는 마음에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본문을 읽으면서 그런 거부감은 어쩌면 '내가 행동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 에서 초래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위에 인용한 문장, 저 문장을 보면서 빳빳한 긴장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얼마나 많은 말실수를 하고 행동의 실수를 할까, 안그러려고 하고, 그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은연중에 내게 잠재해있던 차별과 편견 그리고 학대는 얼마나 많이, 빈번하게 입 밖으로 터져나왔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사로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희진조차, 이 무지한 나조차도 차별을 공부하는 이름으로 알고있는 정희진조차, 여전히 지적받고 사과를 한다는 게 아닌가. 아, 인간은 이토록 불완전한 존재인가. 이렇게 지적받으면서 그리고 스스로를 되돌아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완전한 인간이 해야할 일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 어떤 사람들은 반드시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게 반드시 읽어야할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고 달라질지는 모르겠다. 특별히 저격하자면, 홍준표가 그렇다. 내가 지금은 홍준표를 저격하지만 그건 이 책의 인용문이 홍준표를 지칭하고 있기 때문이고,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예외가 될 순 없겠다. 뿌리 깊은 사고는 책 한 권으로 달라지지 않겠지? 그래도 뭔가 자꾸자꾸 권하고 싶다. 밑에 인용한 283페이지에서도 나오는데, 그들에게 이해를 권하고 싶다. '이해의 영어 표현(under/standing)이 좋다. 이해햐려는 대상 아래 서 있으려는 겸손한 마음, 이것이 첫 번째 자세다.' 라는 문장이 유독 눈에 들어오는 까닭이다.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공공 의료는 '좌파 정책'이다. '우파 민중'은 안 아픈가? 공공 의료는 국가의 기본 역할인데? 그는 아나키스트인가? 내가 분노하자 주변에서는 '뭘 기대하냐'는 반응이다. 일부 지도층의 이런 발상에 대한 현저한 면역 결핍이 내 지병이다.

질병은 삶의 부작용이 아니라 본질이다. 의료는 복지 이슈가 아니다. 쌀 수급을 복지 정책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질병은 비정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용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다. 홍 지사의 사고는 철학의 문제, 그것도 '국정 철학'의 오류다. 그는 '좌파의 국가관'을 의심하기 전에 자신의 공동체관부터 검증받아야 한다. (p.270)

누구의 인생도 피해 경험이 없는 경우는 없으며 동시에 평생 피해자인 사람도 없다. 피해는 상황이지 정체성이나 지칭이 될 수 없다. 타자화는 나를 기준으로 타인을 정의하는 것. 그 자체가 폭력이다. 내용의 호오가 본질이 아니다. 어머니 숭배와 `창녀`혐오는 모두 남성 사회의 판타지다. 섹슈얼리티를 기준으로 여성을 이분하여 시민권 박탈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남성은 `아버지와 남창`, `곰과 여우`로 구분되지 않는다. (p.70)

성 판매는 당연히 노동이다. 그것도 위험한 중노동이다. 그러나 나는 `성 노동`에 반대한다. 노동이되 `어떤 노동`인가, 수천 년간 왜 `여성 직종`인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너무 오래된 노동을 두고 `노동이다 vs 아니다`를 논하는 이 사회의 지성이 민망하다. (p.71)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이 내내 흐르는 1940년대 영화, <밀회(Brief Encounter)>의 우리말 제목은 교양이 없다. `몰래 만난다`는 시선부터 한심하다. 조우(遭遇), 정도가 맞지 않을까. 이 영화에서 생면부지의 남녀는 기차역에서 몇 시간 만나고 헤어지지만 평생 두근거릴 가슴을 얻는다. (p.76)

인맥 관리, `밀당`, 포커페이스‥‥‥몸 사리고 계산해봤자다. 남김없이 준다고 해서 바닥나는 마음은 없다. 인간이 바닥을 드러낼 때는 따로 있다. 그러니, 목숨처럼 해 다오. (p.77)

사랑한다는 것은 약점이다. 사랑이 내 몸에 거주하는 것은 축복이지만 연결되고 싶은 욕망은 지옥이다. 이 마음 자체가 `을`인데 만일 성별, 나이, 계급, 외모 같은 자원에서도 차이가 난다면‥‥‥. 그 괴로움,그 부끄러움,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견딜 수 없다. (p.80)

상대방에게 떠난 이유를 따지는 것은 젼혀 효과가 없다.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실리 측면에서도 그렇고, 사실 진짜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오하지 않다. `피해자`에게 관심도 없다.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쪽이 약자가 될 뿐이다. 그들은 단지 할 수 있으니까 그런 것이다. (They do because they can.) 인간은 누구나 그들이 될 수 있다. (p.95)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진보 개념은 근대화 시각에서 발전주의(progress)를 의미한다. 민주주의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는 적대하거나 논쟁하는 세력이 아니다. 정상적인 국가 건설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추구하되 방법이 다를 뿐이다. 공통점은 성 차별과 주류 지향이고, 차이는 `종북`이라는 기이한 용어에서 보듯 제대로 된 국가를 만드는 일에 통일을 포함하는가 여부와 그 방식일 것이다. (p.122)

여성 상위?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 역할(노동량)이 많아진 것이다. 100퍼센트 주부로만 사는 전업주부도 없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이들도 재테크부터 인형에 단추 달기까지 부업을 하거나 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는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남성의 가사 노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여성의 취업은 평등이 아니라 이중 노동이다. (p.142)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대가 오랜 동안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지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유명한 글귀의 출처가 바로 이 책(선악을 넘어서-프리드리히 니체)이다. (p.214)

우리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사람으로 태어났다. 원래 남녀 차이보다 여성과 여성의 차이, 남성과 남성 간의 차이가 더 큰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이러한 법칙을 왜곡하여 인간을 남녀로 분류한 제도가 가부장제다. (p.247)

자신이 누군지 모를 수밖에 없는 남성들에게 이 책(남성성/들-R.W. 코넬)의 일독을 권한다. 여자는 자기를 잘 아냐고? 인종 차별 사회에서 유색 인종은 자기 처지를 알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말로 답을 대신하겠다. (p.248)

술, 담배, 도박, 초콜릿, 관계, 섹스, 쇼핑, 미디어(스마트폰), 게임‥‥‥. 사람들은 다양한 대상에 중독되어 있다. 중독되지 않은 몸은 드물다.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긍정적 중독(일, 운동, 공부‥‥‥)인 경우 문제가 덜 될 뿐이다.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중독자의 의지 부족이나 인격적 결함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대상이 위로와 즐거움을 주거나 삶의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중독은 생존을 도와준다("‥‥‥없이는 못 살아.") 그러니 지나친 수치심이나 굴욕감, 좌절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런 감정을 강요해서도 안 된다. 중독은 누구나 겪는 삶의 고단함에 대한 일시적이고 불완전한 대응일 뿐, `문제가 아니다`. (p.255-256)

확실성의 볼모가 된다는 것. <기차는 슬프다>가 바로 그것이다. "단 하나의 목소리와 단 하나의 노선으로/정해진 시간에 떠나야 하는 기차보다/더 슬픈 게 있을까?/그 어떤 것들도 이보다는 더 슬프지 않다." 이 구절을 읽을 때 내 시간이 멈췄다. 행복할 때, 정지했으면 하는 그 시간이 실현되었다. 우리는 기차역에 함께 앉아 있었다.
목적이 분명한 기차가 정시에 출발한다는 확실성. 기차역(삶)에 끌려온 사람들은 살아 있는 죽음을 산다.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시를 쓰는 사람도 있지만 누구나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를 이해하는 만큼 기차가 오기 전에 죽는 이들에게도 그런 마음을 품으면 안 될까. (p.275)

이해(理解)는 읽는 이의 이해(利害)관계와 관련이 있다. 그러니 이해는 난이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영역이다. 이해의 영어 표현(under/standing)이 좋다. 이해햐려는 대상 아래 서 있으려는 겸손한 마음, 이것이 첫 번째 자세다. 이해는 사랑과 지식을 아우른다. 사랑은 수용이다. 상대를 수용할 때 이해는 따라온다. (p.283)

몇 해 전에 성별을 기준으로 하여 10대에서 70대까지 열네 개 그룹으로 나누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무엇인가라는 설문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거의 모든 연령과 성별에서, "다시 태어난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내 대답 역시 그렇다. 여기서 `공부`는 10대를 억압하는 입시 공부가 아닌 뭔가 `의미 있는 인생`을 원한다는 뜻일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내가 필요한 존재였다는 것, 무엇인가를 추구했다는 것, 나만의 세계가 있었다는 것 등으로 다양할 것이다. (p.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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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3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3 1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5-03-23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분 강연을 듣고 짧은 시간에 참 많은 것을 깨달았어요.
평생 존경할만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락방 2015-03-24 11:09   좋아요 0 | URL
네, 존경할만한 분이고 이런 분이 계셔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세상이 조금 더 살기 좋아진다면 아마도 이런분들 덕일테고요. 그렇지만..전 감히 이렇게 될 순 없을 것 같아요. 휴..

아무개 2015-03-23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우리가 이런책좀 읽었으면 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런책을 안읽겠지요?
누가 그러더라구요, 공부 잘하는 수재들이 정치하면 홍준표 처럼 된다구요.
자기 생각만 옳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2.이 책의 문제점이랄까, 아니 읽고 난후의 문제점은,
안그래도 삐딱한 관점이 더 삐딱해져서 완전 획~ 돌아가버린거 같다는거...
<미움받을 용기>를 읽고, 흠....이건 백인남성들에게만 해당되는거 잖아
이러고 있어요... ㅡ..ㅡ:::::::::::::::::::


다락방 2015-03-24 11:11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차피 이 책을 읽을 사람들은 그동안 이런 생각을 해왔던 사람일 거라고. 갑자기 생뚱맞게 위에 언급한 사람들이 읽고 아, 삶은 그렇게 살아야하는구나! 하고 깨닫는 일은 없을거라고 생각해요. 하아.

전 이 책을 읽고 더 삐딱해지진 않았어요. 제 자신을 좀 더 단단히 매야 겠다고 생각을 했죠. 조금더 신경써서 말하고 조금더 신경써서 행동하자고요.

푸른알밤 2015-03-23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의 도전 읽고 무심결에 표현하는 편견을 반성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다 잊고 있었네요. 이 책 한 번 봐야겠습니다..

다락방 2015-03-24 11:11   좋아요 0 | URL
네, 푸른알밤님. 읽으면서 뭔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7층
오사 게렌발 지음, 강희진 옮김 / 우리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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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엄청나게 좋아할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그가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가 담배를 피운다고 해도 싫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가 푸쉬업을 한 손으로도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그러나 그가 푸쉬업을 하지 못했어도 그를 똑같이 좋아했을 것이다. 나는 그의 웃음소리가 좋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웃지 않았어도 그를 많이 좋아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공부를 잘했던 게 좋다, 그러나 그가 공부를 못했다고 해서 그에게 실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가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게 좋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해도 좋아했....을까? 뭐, 아마 좋아했을 것이다. 나는 그를 좋아했으므로 그에게서 아주 여러 개의 장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내 눈에는 그의 모든 것들이 장점으로 보였지만, 그가 또한 많은 단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에게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라고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네가 나를 좋아한다면 그렇게 머리를 자르지 말고, 그런 옷을 입지 말고, 그렇게 운전하지 말고, 그렇게 먹지 말고, 그렇게 웃지 말고, 그렇게 하지말고, 하지말고, 하지말고...


사랑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폭력이 가해질 수 있는지를 대부분 인식하지 못하는 채로 산다. 분명 폭력적인 말과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사랑해서 그래'라고 하면 그런가, 하고 갸웃해서 그대로 따르게 된다. 나중에, 자신이 아예 망가지고 부숴지고나서야 '그때 그게 사랑이 아니었구나, 그건 사랑이란 이름의 폭력이었어' 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되지만, 그때는 이미 내 안에 커다란 상처가 자리잡고난 후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사랑이란 그 말 하나면 모든 걸 다 내어줄 수 있을 것처럼 되어버리고 만다. 사랑한다니까, 그게 사랑이라니까 견디고 참고 지탱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많은 사항들에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다. 그래서 반짝거리는 섀도우를 사고 싶고, 핑크빛 볼터치를 사고 싶다. 목에 두를 예쁜 스카프를 사야겠다고 생각하고, 예쁜 원피스도 여러벌 장만하고 싶다. 구두도 샌들도 다 새로 사고 싶고, 더 예뻐지고 싶다. 이건 상대가 내게 요구한 게 아니다. 섀도우를 사라고, 원피스를 사라는 말을 들은 게 아니라, 내가 그에게 잘 보이고 싶기 때문에 내가 선택하고 내가 나를 가꾸고 싶은 것이다. 나는 최상의 사람의 되고 싶고 이것이 내가 그를 좋아하는 데서 나오는 당연한 현상이다. 최상의 나는 그를 좋아하는 나의 마음이자 나의 의지의 발현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것이 '그의 요구'여서는 안된다. 그의 요구로 인해 내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폭력일 확률이 매우 높다. 



이 책의 '오사'는 대학에 들어가 남자친구를 사귀게 된다. 그는 학교내 모두에게 인기가 많고 잘생겼다. 이런 남자가 나를 좋아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근사한 남자다. 그러므로 오사도 그에게 푹 빠진다. 그와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녀는 그에게서 이상한 점들을 보게 된다. 그는 그녀에게 키스할 때는 눈을 꼭 뜨라고 말한다. 감고서 니가 무슨 생각을 할지 어떻게 아냐며. 또한 다른 남자들이 옆에 지나갈 때 본인에게 애정 표시를 하지 말라 말한다. 니가 저 남자를 원해서 나에게 애정을 표현하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이 모든 질투들을 단순히 사랑하는 감정에서 비롯된 거라 여겨 그녀는 그냥 넘긴다. 때로는 너무 심한 말들도 그녀는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는 그녀에게 모든 친구들을 끊을 것을 요구한다. 그녀의 친구들은 최소한 남자 다섯명하고는 자봤을텐데 그런 여자들은 창녀라면서. 그녀에게도 화장하지 말고 다니라고 하고 그런 옷차림으로 다니지 말라고 한다. 창녀같다고. 문신도 지우라고 말한다, 창녀같다고. 그녀는 자신이 그간 사귀었던 남자들을 세어보며 잠들기 전, 나는 창녀인가 아닌가를 고민한다. 그녀의 방에 있는 모든 그림 액자들은 치워져야 했다. 불결해서 못오겠다고 그가 말했으므로. 그가 요구하면, 그녀는 가족과 통화를 하다가도 전화를 끊어야 했고, 그녀의 방에는 그가 아닌 다른 누구도 와서는 안되었다. 여자 친구일지라도.


그러다 그녀는 급기야 '맞는다'. 그가 무릎으로 그녀의 배를 때리고, 그녀는 '맞는다'는 데서 온 충격에 휩싸인다. 그녀의 머릿속에도 맞는 순간 그에게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녀는 체념한다. 그녀에겐 이제 친구도 아무도 없고 그에게 길들여졌기 때문에. 한 번 시작된 폭력은 멈출 줄을 모른다. 그녀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로 그에게 잘못했다고 말해야 하고, 운전하는 차 안에서 그로부터 험한 말들과 주먹을 받아내야 한다. 그는 그녀를 혼내줄 장소로 차 안을 선택했다. 그는 운전하지 못하므로 운전은 그녀의 몫이고, 차 안에서 운전중인 그녀의 반항력은 힘을 잃고, 차 안에서 그와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러다 최종적으로 그는 차 안에서 그녀의 손가락 살점을 물어 뜯는다. 살점을 물어 뜯긴 그녀는 그로부터 도망치기로 결심한다. 멀리 떨어져있던 아버지에게 달려가 이 일을 말하고, 학교의 여자 교수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 일을 말한다. 


아버지와 교수는 그녀를 돕는다. 교수는 그녀에게 재차 병원에 꼭 가라고 권고했으며, 그녀는 병원에 가서 말하지 못할 줄 알았지만 울음을 터뜨리며 의사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얘기한다. 이 일로 남자는 벌을 받게 되었고, 그녀는 점차로 안정을 찾게 됐다.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힘이 세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아름답다고 말하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한심하다고 하면,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한심한 사람이 되어 절망하고 좌절하게 된다. 예전에 읽은 책,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에서는 '울면서 잠들게 하는 사람을 친구라 할 수 있을까?' 라는 말이 나온 적이 있었는데, '나는 한심하고 찌질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랄 수 없다. 그러나 이 사실을 그 안에 있을 때, 사랑-이라 생각하는 바로 그 감정-의 중심에 있을 때는 들지 않는다. 다만 상대의 말만이 아주 강하게 나를 후려칠 뿐이다. 이 책 속의 여자도 창녀가 되었고 값싼 여자가 되었다, 그로 인해서. 머리 색을 바꾸고 화장을 안하고 옷을 전혀 다르게 잆어야 했던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서 자기 자신을 잃었다. 


사람은 힘을 가질 수 있고, 그 힘은 제대로 발휘 되어야 한다. 그의 말이 내게 아주 강한 것이 되고 나의 말이 그에게 아주 강한 것이 되는데, 거기에 대고 상대를 깔아뭉개는 발언을 함으로써 상대의 인격을 바닥으로 가라앉게 만든다면, 그건 힘을 가진 자의 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이라면, 우리는 그 감정 혹은 그 관계로 인해서 더 나은 방향을 볼 수 있어야 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쪽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잃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외로워지고 힘들어지고 내가 한심해진다면, 그것은 사랑이 만든 것이 아니다. 폭력이 만든 것이다.



무엇보다, 체념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제 주변에 아무도 없고 그에게 길들여졌어, 이게 어쩌면 사랑일지도 몰라, 다른 사람을 만난다고 별 수 있겠어?, 그는 때때로 잘해주기도 하잖아, 등으로 내가 나 자신을 이 폭력의 상태에 두어서는 안된다. 그를 사랑한다고 생각했지만 가슴 속에 의혹이 자라난다면, 주의 깊게 그와 나를 들여다봐야 할 일이다. 또한 맞기 시작했다면, 그간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반드시 돌이켜보자. '때리는 남자는 절대 안된다'고 분명히 생각해왔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한번 뿐' 이라든가 '실수겠지' 라는 말로 이 사건을 덮어둬서는 안된다. 힘들고 아프고 두려움이 찾아오겠지만, 사랑이란 감정이 나를 그렇게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행복은 나의 최면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나의 강요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저절로 우러나는 감정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내가 여기서 더 어떤 말을 보태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너무 이상적인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책 속의 여자가 그 상황에서 뛰쳐나왔고, 그걸 이렇게 책으로 써낼 수 있었으므로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을거라고 내가 막연히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엘리자베스 헤인스'의 데이트 폭력을 다룬 소설, 《어두운 기억속으로》에서도 여자를 사랑하는 완벽한(줄로만 알았던) 남자는, 여자를 친구들로부터 고립시켰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 그는 그녀의 친구들마저 통제한다. 그녀를 고립시키는 것이 자신의 힘을 그녀에게 더 잘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때문일텐데, 그렇다는 건, 남자 역시 그들의 그런 성향을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된다는 걸 이미 자각하고 있다는 뜻일테다. 


어떻게 그 상황에서 빠져나와야 할지, 도망쳐야 할지, 이 책속의 작가는 결국 해냈지만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다른 사람들이 혹여라도 연애를 하면서 어떻게 '그런 남자'인지 알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겟다. 그렇지만, 어쩌면 이렇게 시작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를 세상과 격리시키면서부터. 그녀의 옆에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나만'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폭력의 시작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녀로 하여금 대화를 하고 웃고 의지하게 되는 사람이 '나 하나여야만 한다'는 생각이 데이트 폭력의 시발점이 아닐까. 그래야 온전히 자신의 힘을 그녀에게 쏟을 수 있을테니. 그러므로 의혹은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만약 데이트를 시작하게 된 남자가 차츰차츰 내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한다면, 온전히 자신에게만 의지하기를 원한다면, 그때부터 나는 그를 경계하기 시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사랑'이라는 감정이 줄 수 있는게 뭔지, 무엇을 줘야하는지를 자주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이 감정이 나를 결국은 행복하게 하고 웃게 하는지. 사랑이란 단어를 듣는 데 흥분이 되는 게 아니라 무섭고 외롭다면, 그건 이미 사랑이 아닐 것이다.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말하는 사람이라면, 그런 관계속에 있다면, 그 관계 역시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사랑은, 상대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고, 아프게 하는게 아니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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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5 18: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8-26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