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 3부작
막상스 페르민 지음, 임선기 옮김 / 난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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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날 아침 유코는 은빛 강가에서 말했다.

"아버지, 저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지만 승려의 미간이 깊은 실망을 나타내며 찌푸려졌다. 태양이 물결무늬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개복치 한 마리가 자작나무들 사이를 지나 나무다리 아래에서 사라졌다.

"시는 직업이 아니야. 시간을 흘려보내는 거지. 한 편의 시는 한 편의 흘러가는 물이다. 이 강물처럼 말이야."

유코는 고요하게 슬러 사라지는 강을 깊이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겁니다. 시간의 흐름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p.11)




열일곱 유코는 눈(雪)에 반하고 숫자 7에 반한다. 그래서 눈에 대한 시를 쓰기로 한다. 승려인 아버지는 그것이 마땅찮았지만, 유코는 매 겨울마다 일흔일곱편의 시를 쓰기로 한다. 겨울이면 아침에 눈을 보러 가 눈에 대한 시를 쓰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삶을 살게 된다. 그의 시가 너무 아름답다고 소문이 나 궁정에서 사람이 오지만, 그는 자신이 7년간 시를 더 써야 시를 잘 쓸 수 있다며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그가 궁정에 가서 왕에게 시를 지어주고 읊어준다면, 그는 대단한 월급을 받게 되는걸까?


눈을 얼마나 아름답게 보고 있는지 잘 알겠고, 그 순백을 찬미하는 것도 잘알겠다. 그래서 유코는 우물가에서 물을 긷던 여인의 '눈같은 한쪽 가슴'에 반해 그녀와 사랑을 나누고, 피부가 투명한 여인에게 미움과 사람을 동시에 느끼며 반하고, 얼음속 흰 얼굴 여인에게 감탄한다.



책 띠지에는 '한 권의 소설이면서 한 편의 시가 되는 이야기'라고 적혀 있는 '막상스 페르민'의 이 책, 《눈》은 그 찬사가 어긋나지 않을만큼 아름답다. 이 짧은 소설 한 권 내내 눈앞에 설경이 펼쳐져있는 것 같고, 그 안에서 차분하게 시를 짓며 살아가는,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과 일평생을 아름답게 보내기로 약속하는 청년 유코를 만날 수 있다.



유코는 시를 쓰고 싶다고 하고 그렇게 한다. 겨울이면 77편의 시를 쓰겠다 하고 그렇게 한다. 그러면 그는 봄,여름,가을엔 무얼할까?



봄이 오자 유코는 약속을 지켰다. 그는 시를 한 편도 쓰지 않았다. 그는 초록으로 물든 정원에서 벚꽃 잎의 향을 맡는 것으로 만족했다.

여름이 오자 그는 산월山月이 내려다보는 숲에서 꿀 향기를 맡았다.

우기가 시작되자 강가 이끼 속에서 버섯을 하나 발견했다.

한 해 내내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향들을 맡으며 지냈다. (p.30-31)






하아-


아름답다. 물론 아름답다. 여름과 우기, 초록으로 물든 정원.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게다가 그걸 관찰하고 향기를 맡는 청년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니, 그런데 그 아름다운 봄,여름,가을을 볼 동안, 그리고 겨울에 일흔일곱편의 시를 쓰는 동안, 그의 밥은 누가 해주었을까? 매일 외출하고 돌아오는 그의 옷은 누가 빨아주었을까? 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다.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그의 엄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는 나에게 '이 아름다운 소설에서 그런 생각하지마, 작가가 쓴 것만 보고 생각해' 라고 자꾸 되뇌었지만, 그러다가, '아니 어떻게 그래? 어떻게 여자가 드러나지 않아? 이 생활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데?' 라고 불쑥불쑥 화가 나는 거다.


이 짧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유코에게 레몬같은 젖가슴을 내주거나, 그를 반하게 만드는 여자들 뿐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성적대상이 되는 여성. 그가 사시사철 놀고 먹으면서 시를 쓰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빠져있을 동안 집에서 가사노동을 하는 여자가 없고, 그의 아버지 역시 승려로서 그에게 '너 앞으로 뭐할거야' 몇 번이고 되뇌지만, 재생산노동에 관여하는 여성도 등장하지 않는다.



유코가 시를 쓰는 동안, 우기구나 얼씨구나 좋다 아름다워 샤라라랑~ 할동안, 밥과 설거지는, 빨래는 누가 했을까? 그가 외출하고 돌아온 뒤에 벗어둔 옷과 신발은 누가 빨았을까? 그가 나가기 전에 먹는 밥은 누가 차려줬을까? 그런 것들에 대한 일절의 생각없이 더 깊은 시를 배우겠다고 훌쩍 떠나다니...



물론 이 소설의 시작이 유코의 열일곱이니 지금으로 보면 청소년이다. 아직 부모님으로부터 교육에 대한 지원을 받아야 할 때. 이 책은 1999년에 지어졌고, 일본인 유코가 주인공이지만, 프랑스 알베르빌에서 태어난 '막상스 페르민'이 지어낸 이야기이다.


나는 그런 이 책에서 한가롭게 자연을 관찰하고 앞으로는 시인이 될거야, 라고 생각하고, 더 깊은 시를 쓰기 위해 공부하러 갈거야, 하고 길을 떠나는 이 삶. 야... 진짜 팔자가 늘어졌구나... 라는 생각을 해버리고야 만것이다.


아아, 눈이여.


니가 나를 잘못만나 고생이 많다.


글쎄 모르겠다. 내가 몇 해전에 읽었다면, 아아, 이것은 정녕 한 편의 시로구나, 하면서 감탄하고 아름다워 했을지. 그러나 지금의 내게 와서 고생이 많아. 지금은 이 아름다움은 다 무어야, 모든 고통들은 뒤로 숨어버린, 고통과 노동을 뒤로 넘겨버린 아름다움이잖아, 하게 된달까.


눈이 아름답고 초록이 아름다운 거 누가 모르나. 우기의 빗소리 같은 거 가만 듣고 있는 거 얼마나 여유로운가. 그걸 어느 한 사람만 알 수는 없다. 나도 알고 너도 알고 모두가 아는데, 왜 어떤 이에겐 한가로이 즐길 것이고 어떤 이에겐 그렇지 않은가. 보이지 않은 그 곳에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길래 유코는 딩가딩가딩~ 할 수 있을까. 입맛이 쓴 것이야, 나는.



내가 아무리아무리아무리아무리 오늘 출근길에도 '이건 그냥 한 편의 시같은 소설이야' 라고 나에게 말했지만, 그래서 그래 아름답게만 보면 되는거야, 라고 생각하려고 했지만, 나는 잘 모르겠소. 그래, 왜 사람들이 이 소설은 한 편의 시야, 라고 하는지 알겠어, 그렇지만 눈같은 젖가슴 가진 여자를 보고 발기하는, 시만 쓰는 청년이라니. 글쎄. 뭐랄까, 앞으로의 유코는 노동에 참여할까? 아내가 물을 긷고 밥을 하는 동안 먼 산만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답답해지는 것이다.



당신이 시를 쓰는 동안,


밥은 누가 하나요?



리뷰대회에 참가하려고 이 책을 사서 오늘 출근길에 펼쳤는데 첫 장을 읽자마자 내가 읽었던 책이라는 걸 알겠더라. 검색해보니 처음 이 책을 2019년에 읽었다. 그렇지만 책장을 덮지 않고 끝까지 다시 읽었다. 리뷰를 쓰기 위해서, 게다가 그 사이에 시간이 흘렀으니까 내가 그 때 놓친걸 이번 재독에서 발견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이번 재독에서 나는 지난번의 별 셋에서 별 하나를 더 깎아내야 했다. 처음 읽었을 때 리뷰에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 책에는 시체에 반한 유코가 나오기 때문이다. 누구 시체냐? 백인 여성의 시체인거다. 예술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스승을 찾아 떠나는 길에 예의 금발의 백인 여성 시체를 맞닥뜨리는데 그 시체 보고 너무나 아름답다고 감탄하며 그 시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룻밤을 꼬박 새운다. 진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싸이코패스야 뭐야? 


게다가 유코는 하얀 젖가슴의 여자에게 반해서 그 여자의 젖꽂지를 밤새 빨아놓고 다른 아름다운 여성에게 반해서 밤새 젖꼭지 빨았던 여성이 찾아오자 거절을 말한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하고 헤어지는 일은 일상다반사 이지만, 눈의 아름다움에 미치듯이 여성의 아름다움에 끌려 젖꼭지만 빨다 내팽개치는 게-하룻밤에 일곱번의 사정을 했단다. 대단해요!!- 영 꼴보기 싫단 말이지. 


읽으면서 내내 놀고들 있네, 했다. 

진짜 이 책속의 남자들, 놀고들 있다.




(사진은 오늘 아침의 캐나다 202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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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3-01-12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책은 여러 나이에서 봐야 하는 거 같아요. 우리가 아름다움을 몰랐나 삶을 알아서 그렇지? 이젠 요런 거죠^^ 놀고들 있네라는 말이 콕 맘에 드네요 ㅋㅋㅋㅋㅋㅋ 근데 캐나다????

다락방 2023-01-12 09:07   좋아요 1 | URL
남자의, 남자에 의한, 남자를 위한 소설이에요. 저는 이 책에서 주는 아름다움이 세상에 무슨 쓸모가 있나 싶어요. 물론 아름다움은 쓸모로 존재하는 게 아니지만 불편한 아름다움 입니다. 아흑.

캐나다뷰를 가진 양재동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혜윰 2023-01-12 09:57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편의점 빵 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3-01-12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급 읽기 싫어지네요. 저도 이거 같은 이유로 읽어보려고 (이 색깔 시리즈 세 권 다) 준비했는데 ㅋㅋㅋㅋㅋㅋㅋ 다행스럽게도 이건 빌려오긴 했어요. 최근 나온 책은 샀지만- 암튼 이 책 짧으니까 읽긴 읽어야지. 하-

다락방 2023-01-12 09:09   좋아요 1 | URL
저 리뷰대회 망했네요. 리뷰 대회 굿바이~ ㅋㅋㅋㅋㅋ

이 책 짧고 페이지에 여백도 엄청나서 출근 시간동안 다 읽을 수 있는 그런 책입니다. 빌린 책이고 또 짧으니 잠자냥 님 읽어보시고요, 리뷰도 써주세요! ㅎㅎ

저는 이 작가의 다른 책을 도전해볼 생각이긴 한데 사실 마음이 많이 상해서 의욕은 생기질 않습니다. 이런 책을 두 번이나 읽다니, 나도 참... ㅠㅠ

단발머리 2023-01-12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도 강의에서 일본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언급을 들었어요. 제가 모르는 일본은 넓고 깊겠죠.
하지만 그래도 제 맘 깊은 속의 거부감을..... 박경리 선생님은 이렇게 표현하셨더랬죠. 일본은.... 야만의 나라다....

캐나다뷰 아름다워요. 저도 아침 일찍 일어났거든요 ㅋㅋㅋㅋㅋ 제가 보는 풍경이랑 사뭇 다르네요. 키 큰 나무 때문인가 봅니다ㅋㅋ

다락방 2023-01-12 09:11   좋아요 1 | URL
이 책은 참.. 뭐랄까요. 일본 남성의 한심함과 싸이코패쓰적인 면이 나오는데 작가는 프랑스 남자입니다. 복합적으로 짜증나는 소설이죠. 프랑스 남자가 일본 남자를 주인공으로 해서 백인 여자 시체에 아름다움 느끼는 거, 그런거 막 표현해도 되나 싶고 말이지요. 막상스 페르민의 아름다움은 뭘까 싶어요. 먹고 사는 걱정 없는 남자같아요. -.-

그래도 리뷰대회니 아름다운 사진 하나는 찍어주자, 해서 캐나다뷰를 배경으로 찍어보았습니다. 연세우유 황치즈생크림빵이 빛납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3-01-12 09:14   좋아요 0 | URL
앗! 저자가 프랑스 남자에요? 우아… 미안타 일본… 으윽, 프랑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빵이 요즘 그렇게 핫하다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01-12 14:31   좋아요 0 | URL
네 저자가 프랑스 남자입니다. 왜 일본 남자 주인공으로 썼을까요? 아마도 하이쿠 짓는 주인공을 만들기 위해서인드스 합니다만, 여러가지로 저는 좀 별로입니다. 흥!!

미미 2023-01-12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ㅋㅋㅋㅋㅋㅋ초반에 음...좋은 시군...했다가 이어지는 일들이 너무 당황스럽네요.
말씀드렸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저는 나름 성공했다는 남자들이 인터뷰하러 나왔는데 흰 양말을
신고 있으면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저 흰양말을 누가 빨았을까? 본인이 빨았을까? 아내가?
요즘 기술이 발달했어도 흰양말 그 백색의 온전함을 유지하려면 손빨래하거나 한번씩 삶아야 하잖아요? (아닌가?)
저는 그래서 흰양말은 사절입니다. 겨울, 백인, 흰양말ㅋㅋㅋ아웅...그나저나 빵 주문은 해야겠네요ㅋ

다락방 2023-01-12 14:33   좋아요 1 | URL
풍경이나 시나 다 아름다운데 이 아름다운 걸 남자들의 한심함이 다 잡아먹어 버려요. 근데 작가가 이 소설로 크게 성공해서 작가 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사람들의 읽기란 역시 다양한가 봅니다. 저랑 이렇게나 다르게 읽네요. 여하튼 지금을 사는 아시안 여성인 저는 이 책을 싫어합니다. 으하하하.

양말은요, 본인이 빨기는 커녕 양말서랍에서 꺼내주는 것도 누가 대신해주지 않았을까요? ㅎㅎ

로제트50 2023-01-12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른바 유서깊은 집안의 자식이 아닐까욤? ㅋㅋ 때가 되면 배당금이 들어오고~ ㅋㅋㅋ
오늘따라 뷰가 멋져요, 몽환적 느낌...
황치즈생크림빵, 맛있겠다요!

다락방 2023-01-12 16:55   좋아요 0 | URL
네 아마도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자제인듯 합니다. 가사노동을 해주는 사람도 따로 있을테고요. 저는 노동하지 않고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사람들을 보면 열등감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하하.

황치즈생크림빵 하나 다 먹었더니 느끼하더라고요. 다음부터는 조금씩만 먹어야겟어요. 안먹겠다는 말은 안할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01-12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 인의 일본인에 대한 편견이 많이 들어가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_@

눈같은 가슴에 반하다니, 그 분은 상체 탈의하고 있었던 것인가...
게다가 시체가 아름다워 반하다니 정말 ㅂㅌ같고요...

다락방 2023-01-12 16:56   좋아요 0 | URL
이 프랑스 작가가 하이쿠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나름의 머릿속 아름다운 장면들을 소설에 녹여낸 것 같은데, 남자 작가의 한계는 분명한 듯 합니다. 2019년 처음 읽었을 때도 싫었지만 이번엔 더 싫으네요. 으...

은오 2023-01-12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아악 진짜 넘 시러...... 남작가들 그놈의 젖가슴 집착좀 버려라

다락방 2023-01-12 16:57   좋아요 1 | URL
그치요? 정말 이상하지요? 엄마젖 먹었던 시절은 여자 남자 모두 있는데 왜 유독 남자들만 젖가슴에 정신줄 놓는건지.. 웩!

독서괭 2023-01-12 17: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야! 이책, <설국>아니예요? 왜이렇게 비슷한 느낌이죠? 제가 몇년 전에 설국 읽고 까는 글 썼었는데.. 제목도 <눈>이고 이 저자가 혹시 설국에 영감을 받아 쓴 건가.. 근데 더 싫어요. 최소한 설국의 주인공은 시체를 보진 않았어요 ㅠㅠ

다락방 2023-01-13 08:42   좋아요 1 | URL
그쵸, 설국하고 비슷하죠! ㅋㅋㅋㅋ 일본에 눈이 많이 오는 지역들이 있어서 이런 작품들이 나오는가 봅니다. 설국이며 눈이며.. 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도 설국 안좋아했는데 이 책 <눈>도 싫고. 남자 작가들 아름다움에 취하는 거 꼴보기 싫어요. 뭔가 일상의 고단함은 자기 몫이 아니라는듯.. 으...

공쟝쟝 2023-01-12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은 누가하냐몈ㅋㅋㅋㅋㅋㅋㅋ 놀고들 있네ㅋㅋㅋ 진짜 ㅋㅋㅋ 아 진짜 넘 싫다. 패미니즘 하기 전에 책 많이 안읽기를 넘나 다행이예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3-01-13 08:43   좋아요 1 | URL
아름다움에 취한 남자들은 정말 꼴불견인것 같아요. 으.. 먹고살만하니까 아름다움만 좇는것 같고 말이지요. 으.. 싫어요...

공쟝쟝 2023-01-13 08:55   좋아요 0 | URL
빙고! 먹고 살만하니까 아우 별!!! 이런 생각은 나도 들어요 ㅋㅋㅋㅋ 굶겨서 노동 교화 ㅋㅋㅋ 쌀알 한톨 한 톨이 아름답고 신성해지도록 ㅋㅋㅋ 고추는 커녕 밥숟갈 들 힘도 없도록 ㅋㅋㅋ아름다움이란 밥이여 ㅋㅋㅋ 쌀이여 ㅋㅋ

다락방 2023-01-13 09:10   좋아요 0 | URL
지들이 지들 손으로 밥도 해먹고 반찬도 해먹고 빨래도 빨아보고 그런 다음에 아름다움을 찾아보라고 해야죠. 그러면 그 때 보게 되는 아름다움은 다를 것이다.. 흥!!
 
마틴 에덴 2 - 추앙으로 시작된 사랑의 붕괴
잭 런던 지음, 오수연 옮김 / 녹색광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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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에덴》1권에서는 마틴과 루스의 만남이 시작된다. 항해하는 남자, 그래서 육체적으로 탄탄한 마틴이 자신과는 완전히 정반대의 세계에 살고 있는 루스를 만나 반하게되는 만남. 루스 역시 마찬가지. 부잣집에서 교양있는 가족들과 함께 대학 교육까지 받아가며 살아온 루스는 자신이 그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던 남자의 출현에 심장이 벌렁거린다. 세상에, 너같은 남자는 너가 처음이야! 루스는 그것이 사랑인지도 모르는채로, 자기에게 찾아온 감정이 뭔지도 모르는채로 속절없이 그에게 끌려간다. 매력적이야 너무 매력적이야, 그는 그녀에게 마치 동물처럼 느껴진다. 그의 뿜어져나오는 남성미는 그녀를 감싸고 돌아.. 라는 내용만으로도 사실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데, 그런 후에는 세상 짜릿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마틴이, 자신이 흠뻑 빠져들게 된 루스의 세계로 진입해 그녀의 옆에 당당하게 서기 위해 그들과 같아지기로 결심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그들의 옷차림을 관찰하고 식사 예절을 관찰하고 그들의 청결을 관찰한다. 그의 생활 방식 자체가 더 나아진 것은 물론이요, 무엇보다 그는 지식을 향한 열망에 휩싸인다. 자신이 제대로 된 문장을 혹은 단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루스로부터도 배우지만 수많은 책들을 읽어가면서 점점 더 나은 문장을 갖게 되고 그리고 지식을 차곡차곡 쌓게된다.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 다르게. 그는 세상에 읽을 책이 너무 많고 알아야 할 것도 너무 많아서 가족들 모두의 이름으로 대출카드를 만들어 도서관에 틀어박히고 책을 빌려오면서 읽고 또 읽는다. 그가 단순히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고, 네이버 지식인에 답하기 위해서도 읽은게 아닌, 그는 그 자체가 정말로 그 지식을 원해서 탐구했으므로 누구보다 더 빨리 많이 아는 사람이 되고, 예전에는 감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던 지식인들과의 사이에서도 이제는 어떤게 엉터리인지-사실 대부분 다 엉터리-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가 맹렬하게 지식을 탐구해가는 과정은 너무너무 짜릿했는데, 아마도 한 인간의 성장을 보고 싶은 사람들, 노력해서 무언가를 얻게 되는 과정을 얻는 걸 보는게 좋은 사람들은 마틴 에덴의 이런 부분에 끌리지 않을까 싶다.


그런 마틴이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그는 글을 쓴다. 맹렬하게 책을 읽고 공부했듯이 맹렬하게 쓴다. 쓰고 쓰고 또 쓴다. 그가 항해하면서 모아뒀던 돈은 다 바닥났지만 그래서 그는 굶으면서도 쓴다. 자신이 쓴 에세이와 소설과 잡문을 잡지사에 보내고 또 보내고 또 보내지만 모두들 그에게 원고를 돌려보낸다. 그는 내 글이 팔리면 얼마의 돈이 들어올건지 나름 계산하며 외상도 졌었는데, 아무 원고도 채택되지 않으니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다. 그는 자신의 자전거를, 외투를, 정장을 전당포에 맡긴다. 그의 모습이 점점 더 빈곤에 가까워지는 것도 당연한 수순. 그러나, 그 가난에 대해 루스는 이해할 수 없고 알아채지도 못한다. 루스가 살아온 삶은 그런게 아니었으므로 마틴의 달라진 외양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 그녀는 그 안까지 볼 순 없었다. 대신, 세 아이를 홀로 키우고 있으며 마틴에게 방을 빌려준 마리아는 그를 궤뚫어본다. 저 사람, 굶고 있구나. 가난은 가난의 흔적을 재빠르게 캐치한다. 고된 노동을 하며 벌어들이는 돈은 별로 없는 마리아이지만, 굶는 마틴을 그대로 둘 수 없어 그녀는 자신의 음식을 내어주고 그가 아파 몸져 누웠을 때는 그를 간호해준다. 마틴은 그런 마리아에게 네가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이냐 묻고 농장을 갖고 싶다는 그녀의 말에 네 말대로 될거라고, 당신은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한다.    



마틴은 열심히 썼다. 어디서도 마틴의 원고를 실어주지 않았는데도 돌려보내기만 하는데에도 열심히 썼다. 쓰고 쓰고 또 쓰고 보내고 보내고 또 보내고 그렇게 그가 써둔 원고가 쌓여갔고, 그러다 더러 잡지에 실린 적도 있지만 잡지사는 원고료를 주지 않거나(떼먹는다) 소액만 주었다. 간신히 먹고 사는 삶을 유지하던 그를 루스가 그리고 마틴의 가족이 곱게 볼 리 없다. 루스는 제발 일자리를 가지라고 애원한다. 마틴은 자신이 쓴 글을 언제나 루스에게 읽어보라 주지만 루스는 읽고 좋은 글이지만 그런데 팔리지는 않잖아, 하며 자신의 아버지 회사에서 월급 받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마틴은 잠자는 시간까지 아까워하며 읽고 썼는데 마틴의 매형은 지독한 게으름뱅이라고 마틴을 욕한다. 마틴은 그 누구보다 깨어있는 시간 맹렬히 자신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 일을 했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때 그는 일자리도 마다하는 사람이었다. 루스의 가족은 처음부터 루스와 마틴의 사랑을 반대했지만 이제 더이상 두고볼 수 없다 하고 루스는 그에게 이별을 고한다.



자, 그러나 마틴의 노력은 보상받는다. 아니 그것을 보상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마틴이 원하던 때에 주지 못하는데 그것은 과연 만족할만한 보상일까. 그의 원고 하나가 책으로 나오고 초판은 1,500부 였는데 서평들이 쏟아지더니 미친듯이 팔려 재인쇄 재인쇄.. 그러다가 다른 나라에서도 막 앞다투어 번역하기 시작한다. 그의 이름은 이제 누구나 알 수 있는 이름이 되고 그의 원고를 달라고 출판사들마다 요구한다. 마틴은 이미 써둔 원고들을 슝 슝 보내고 그의 통장에 돈이 쌓인다. 그는 명실공히 엄청난 작가가 되었고 출판사에서는 그에게 줄 인세를 높이고 선인세를 주는등 마틴 모시기에 급급하다. 그의 명예가 더욱 무게를 더할수록 당연하게도 그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는데, 그를 어리석은 사회주의자라고 욕하던 판사도 그를 우리랑 다르다 무시하던 루스의 가족도 그외 다른 모든 사회 각계 인사들이 그를 정찬에 초대한다. 그를 무시하던 매형도 매제도 그를 식사에 초대한다. 일도 하지 않는 천하의 게으름뱅이이며 쓸모 없는 놈이었던 마틴은 세상 모두가 어떻게든 알고 지내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는 거다. 



마틴은 이런 일들에 혐오감을 느낀다. 나는 하나도 달라진 게 없는데, 나는 그냥 나인데. 하물며 지금 계속해서 책으로 나오고 잡지에 실리는 그 모든 글들은 뭔가 달라진 마틴이 쓴 게 아니라 게으름뱅이에 쓸모없는 놈이란 욕을 듣던 바로 그 당시에 썼던 바로 그 글들인데, 자기가 잠도 줄여가며 썼던 그 글들을 썼을 때는 세상 쓸모없는 놈이 이제는 누구나 함께 밥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되다니. 그런걸 보는게 너무 역겹다. 나는 변한게 없는데? 왜 내가 굶주려서 그 무엇보다 식사가 하고 싶을 때는 아무도 나에게 밥을 주지 않았지? 왜 내가 내 돈주고 밥 사먹는게 충분해진 지금은 모두들 밥을 주겠다고 하지? 왜 가장 절실했을 때는 아무도 없었던거지? 그리고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밥을 먹자고 하는데 나는 외롭지?



그는 정찬 초대를 무수히 받았고 일부에 응했다. 사람들은 그를 정찬에 초대하기 위해 그와 안면을 텄다. 사소한 일이 큰일이 되어 그는 어리둥절했다. 버나드 히긴보삼이 그를 정찬에 초대했다. 그는 더욱 황당했다. 자신이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는데 아무도 정찬에 초대하지 않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 시기는 저녁 식사가 절실하고, 식사를 하지 못해 몸이 허약해지고 현기증이 나며, 순전히 굶어서 체중이 빠지던 때였다. 역설이었다. 그가 저녁 식사를 원할 때는 아무도 주지 않았는데, 이제 수십만 번이나 외식을 할 수 있게 되어 식욕을 잃은 판국에 사방에서 저녁 식사를 들이밀었다. 그런데 왜? 이건 공정하지 않은 일이며, 그가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한 모든 일은 그 일을 수행하던 시기에 이루어졌다.

그때 모스 부부는 마틴이 게으름뱅이에 뺀질이라고 비난하면서, 루스를 통해 사무실의 직원이 되라고 몰아쳤다. 더군다나 그들은 그가 해 놓은 일을 알고 있었다. 그의 원고는 쓰는 족족 루스의 손을 거쳐 그들에게로 넘어갔다. 그들은 그 원고들을 읽었다. 그의 이름을 모든 신문지상에 올려놓은 것은 바로 그 작품들이었는데, 그들은 그의 이름이 모든 신문지상에 올랐다는 사실 때문에 그를 초대한 것이었다.

한 가지는 분명했다. 모스 가 사람들은 그라는 사람 자체나 그의 작품 때문에 그를 만나려 한 적이 없었다. 따라서 지금 그들이 그를 원하는 이유는 그라는 사람 자체나 그의 작품 때문이 아닌, 그가 가진 명예 때문이었다. 그가 발군의 인물이고, - 왜 아니겠는가? - 또수십만 달러쯤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부르주아 사회가 사람을 평가하는 방식이니, 어떻게 그렇지 않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2권, p.206~207



그는 자기에게 들어온 돈으로 자신이 은혜를 입었던 마리아에게 집을 사주고 낙농장을 마련해준다. 자신에게 돈을 바라고 접근하는 가족들에게도 원하는 만큼의 돈을 준다. 이 모든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진 원고도 이젠 다 돈으로 받고 없겠다, 배나 타고 섬으로 가야겠다, 생각하는데 그의 과거 연인 루스가 온다. 그토록 사랑했던 그녀가 그에게 온다. 자신의 사랑은 변한게 없다고 자신은 용기를 내어 이제 마틴과 사랑하겠다고 하는거다. 



"그런 짓을 왜 전에는 저지르지 않았어?" 그는 거칠게 물었다. "내가 일자리가 없을 때는? 내가 굶고 있을 때는? 남자로서 또 예술가로서, 내가 지금과 똑같은 마틴 에덴이었던 그때, 당신은 왜 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 숱한 날을 나는 그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해 왔어…당신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 관해서. 당신도 보다시피 나는 달라지지 않았어. 나에 대한 평가가 급상승하는 바람에 나 스스로도 내가 달라지지 않았는지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하지만 말이야.

나는 예전과 똑같은 살을 뼈에 붙이고 있고, 예전처럼 열 개의 손가락과 열 개의 발가락을 달고 있어. 나는 똑같아. 없던 능력과 장점을 새로 개발하지도 않았어. 내 뇌는 예전의 그 뇌야. 그 이후로는 문학이나 철학에 새로 덧붙인 말조차 없어. 나라는 개인의 가치는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던 예전과 똑같아.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이제 왜 나를 원하는지 영문을 모르겠어. 그들이 나 자체 때문에 나를 원하는 건 분명히 아니야. 왜냐하면 나 자체는 그들이 원하지 않던 예전의 나와 똑같으니까. 그들은 뭔가 다른 것, 내 외면의 어떤 것 때문에 나를 원하는 게 틀림없어. 무엇인가 내가 아닌 것 때문에! 그게 뭔지 당신한테 얘기해 줄까? 내가 얻어 낸 명성이야. 그 명성은 내가 아니지. 그건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거니까. 또 내가 벌었고 지금도 벌고 있는 돈 때문이야. 그런데 그 돈도 내가 아니야. 돈은 은행과 이 사람 저 사람의 호주머니 속에 있잖아. 당신이 나를 이제 원하는 것도 그것, 명성과 돈 때문인가?"

"당신은 말로 내 가슴을 후벼 파고 있어." 그녀는 흐느꼈다. "내가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당신을 사랑해서 내가 여기 왔다는 걸, 당신은 알잖아."

"당신은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내 말은 이거야.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지금은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이 나를 사랑하게 된 거야? 그때는 당신의 사랑이 나를 거부할 정도로 약했잖아." -2권, p.226-227



나는 마틴의 울분을 이해한다. 그가 이제야 비로소 알게된 사람들의 속물적인 면에 대한 경멸 역시 이해한다. 자신이 그렇게 동경했던 그 위치가 굉장히 보잘것 없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의 허무를 이해한다. 또한 그가 그렇게나 책을 읽고 알고자 노력하며 결국 이전과 달라진 사람이 된 것에 대해서라면 너무 좋다. 현실에서의 내가 마틴 친구라면 그를 응원해 주었을 것이다. 굶주리는 그를 위해 가끔은 밥을 사주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험한 일을 겪었고 육체적 으로 탄탄하면서 이제 지식까지 갖춘 그를 좋아하지 않기란 불가능하겠지만, 그러나 나 역시 루스가 된다. 나는 루스다. 내가 상류층 여성이란 얘기가 아니라, 만약 내가 마틴의 매력에 빠져 그와 사랑하고 연애하게 되었다면, 나 역시 계속해서 돈을 벌지 않고 자신의 글이 잘 될거라는 장담만 하는 그를 기다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의 글을 읽고 그 글이 좋다고 감탄한다 한들, 그 글이 돈을 벌어다주지 않음에 나는 '그런데 말야, 일단 일자리를 잡아서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글을 쓰면 어떨까?' 를 결국엔 말했을 것이다. 아니야,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내가 글로 돈을 벌거라고! 그가 장담한다해도 번번이 퇴짜맞아 돌아오는 원고를 앞에두고, 그러면서 굶주리는 그를 보고 나는 마냥, 계속해서, 내 사랑 뽀에벌~ 하면서 기다릴 순 없었을 것이다. 마틴은 왜 명예가 없는 내 옆에서는 떠나고 명예가 있는 내게로 돌아오냐고 루스를 원망하지만, 그 원망은 마틴으로서는 너무나 타당하고 당연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나였어도 마틴을 떠났을 것이다. 일을 하라 젊은이여,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 나는 그렇게 말했을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글을 쓰는 그를 보면서 결국은 고개를 젓고 돌아섰을 것이다. 내가 지금 당장 재벌이 되어 나를 호강시켜달란 말을 하는게 아니라, 매달 이백만원이라도 네 손으로 벌라는 말이야, 라고 돌아섰을 것이다. 사실 이 책 속의 루스는 그와 결혼하게 되면 그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해야 하므로 그의 노동이 절실했다. 너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잖아, 가 루스의 답답한 지점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기를 살고 있는 나는 조금 다르다. 그가 이백만원씩이라도 꼬박꼬박 번다면, 그와 내가 함께 산다고 했을 때 일상의 고단함이 조금 더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이백만원씩이라도 꼬박꼬박 번다면, 설사 나와 헤어졌어도 그는 자신을 챙기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원하는 건 돈을 벌어'오라'가 아니라, 돈을 '벌어'라는 것이다. 



루스가 마틴에게 일자리를 갖길 원하는게 잘못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마틴의 생각대로 루스에게는 시야가 좁았던 지점이 있다. 루스는 가난을 모르니까. 누구나 노력하면 돈을 벌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순진하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고된 노동에 시달려도 루스의 아빠만큼은 결코 벌 수 없다. 그렇다면 마틴에게 일자리를 구하라고 말하는 나는 마틴을 사랑하는게 아니었나? 사랑했다. 사랑했지만, 내 사랑은 그런 식이었던 거다. 그러니까 내 사랑은 꼬박꼬박 이백만원을 벌고자 하는 사람에게 향하지 번번이 퇴짜맞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향하지 않는다. 문제는, 내가 그 글을 읽었고 그 글이 좋다는데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팔리지 않는다면, 내가 볼 때 훌륭하므로 그 글이 잘될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마냥 기다릴 수 있을까? 아니. 나는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다. 내가 읽고 좋았어도 지금 세상이 원하지 않아, 게다가 내가 기다리지 않았던 것도 아니야. 나는 얼마간 그를 지켜봤고 또 얼마간 그가 일하기를 바라면서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더이상 못하겠다, 하고 돌아섰다면,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는가? 


나는 결국 사랑은 머리로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는 '나만' 사랑을 머리로 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나의 속물된 지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머리로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것을 알거나 인정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가 있다는 것. 그리고 상대를 사랑하는 기준이나 원인이 나랑 달랐다는 거지, 나는 사랑에는 머리가 관여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주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한다. 내 사랑은 그렇다면 그 기준을 노동하는 삶에 둔 것일테다. 물론, 


마틴은 노동했다. 글을 맹렬하게 썼다. 그가 노동하지 않은게 아니었다. 그는 게으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말처럼 그렇게 일자리가 있는데 박차고 굶주림을 선택한 사람이 아니다. 마틴은 글을 쓰는 삶을 선택했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과 삶에 대한 기준이 달랐다. 루스, 루스의 가족들, 마틴의 가족들, 마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살고 그 눈높이로 보고 있을 때 마틴은 그런것과는 다른 방향을 보고 다른 삶을 살고자 했던 거다. 나는 그런 마틴의 방향성과 삶의 태도를 받아들일 수도 있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내 곁에 두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된다. 가끔 만나 밥을 사줄 순 있지만 그와 사랑하고 함께할 순 없다. 그는 그의 의지대로 삶을 선택한 것이고 그가 선택한 삶이 내가 선택한 삶과 다르다면 세이 굿바이 해야 하지 않겠나. 마틴 에덴의 루스에 대한 원망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그리고 그 원망 나 역시 받아 마땅하지만, 그러나 그렇다해도 나는 나의-루스의-그런 선택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잭 런던은 마틴 에덴을 통해 계급을 드러낸다. 저기 저 멀리 신기루처럼 보이는 잘 사는 사람과 바로 여기에서 오늘 먹을 밥을 궁리하는 고된 노동의 삶. 그 격차를 과연 사랑으로 메꿀 수 있을까? 메꿀 수 있다고 맹목적으로 믿으며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젊은이인 마틴 에덴을 보여줌으로써 사랑은 믿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준다. 현실의 간극은 이렇게나 크다. 나는 잭 런던이 보여주는 이 간극이 아프지만 너무 좋다. '좋다'는 표현은 이럴 때 적절한 표현이 아닌 것 같지만, 잭 런던의 마틴 에덴을 읽으면서 가난의 이쪽과 부유함의 이쪽에 있던 사람들이 만나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 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다른 작가들을 생각해본다. 샐리 루니가 그랬고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그랬다. 아, 진짜 자지러지게 좋다. 그런 한편 나는 현실에서 한 번도 상대와 빈부격차로 인해 괴로웠던 적이 없다는 것도 깨닫는다. 한마디로 돈 많은 남자와 연애해본 적은 없다는 거다. 아마, 내가 앞으로 연애한다고 해도 그럴 일은 없겠지.


다른 계급의 사람들이 사랑하게 되는 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책은 재미있는데, 그 다른 계급 속으로 기어코 향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뛰어난 점이다. 그러나, 그토록 맹렬히 필사적으로 자신을 불살랐던 젊은이에게 필연적으로 닥쳐올 시간은 어떤 것이었을지, 책장을 덮으며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하면서도 씁쓸해진다. 나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좋다고 살고 있고 돈이 세상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돈이 나에게 해주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지만, 그러나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행복해지는 일은 분명 없을 거라고도 생각한다.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역시나 씁쓸한 결론을 맞이하게 될 수밖에 없을거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자본주의를 박차고 나갈 수 없다는 것 역시도 알고 있고, 그러므로 나는 마틴 에덴을 이해하지만 루스가 될 수밖에 없다. 아, 


한가지 루스와 내가 다른게 있다면, 나는 내가 돌아선 남자가 내가 떠난 뒤 명예를 얻고 부자가 됐다고 해서, 그를 다시 찾아가지는 않을 거라는 거다. 그가 그렇게 된 뒤에 나를 찾아와 '이런 나를 받아주면 안되겠니?' 한다면, 웃으며 받아줄 순 있지만, 내가 찾아가서 '나는 너를 잊을 수 없어'라고 그의 명예 뒤에 말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것은 나의 자존심이며 그것이 나의 인간된 도리이다.



이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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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12-08 10: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다락방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이 작품에서 루스가 돈을 ‘벌어‘라고 말한 것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돈을 벌어서 ‘오라‘가 덧붙여져 있었지만 그건 그 당시 사회 상황이 여자가 돈을 벌기 어려운 구조였으니까 그랬던 것이고... 현재로 치환해 생각해보면, 돈은 벌지 않은 채 언제 채택되거나 출판될지 모르는(심지어 출판되고도 1쇄에서 끝나는 책이 부지기수인 이 마당에), 글을 계속 써대면서 나는 ‘노동‘하고 있다고 자위하는 남자나 여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떠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사랑이라고 그 무책임을 받아준다는 것은...... 결국 이 작품에서도 마틴은 주변의 도움을 얻게 되잖아요? 요즘도 마틴 같은 사람이 있다면 결국에는 당연히 주변 사람에게 손을 벌리게 되겠죠(특히 연인에게) 오........... 그런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도망가야해요!

마틴이 꾸준히 일하면서 글을 썼다면 그것이야말로 금상첨화였을 거예요- 현재의 마틴들도 그렇고요.
남자나 여자나 일(노동)은 중요합니다.

다락방 2022-12-08 11:54   좋아요 1 | URL
제가 보기에 제 연인의 글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일단 그것이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면 저는 정말로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런 제가 연인에게 야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저이므로.. 그리하여 우리는 헤어지게 되겠죠? 하하하하하. 돈을 벌면서 쓰란 말이다!! 나 봐라, 돈 벌면서 쓰잖아! 왜냐, 글이 돈을 벌어다 주질 않아서!!

아무튼 제가 마틴 에덴 읽으면서 생각한 것이, 엉뚱하게도, 나도 투고를 하자!! 입니다. 저 이제 투고하면서 살아볼까 싶어요. 말리지마세요, 투고합니다. 그러다가 제가 투고한 글이 잠자냥 님께 닿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틈에 나도 마틴 에덴처럼 글로 재벌이 되는 일이....

없겠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일단 회사를 열심히 다니는 걸로... (눈물을 닦고)

2022-12-08 14: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08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2-08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2-12-08 10: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아무튼 루스 굴욕...... 돈과 명예가 생겼다고 그 남자 다시 찾아가고 그러지 마.......... 진짜 굴욕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정말 너무 싫은 여주인공........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12-08 11:51   좋아요 1 | URL
저는 루스가 싫지 않고요 이해가 되더라고요. 다시 돌아간 지점에 대해서도 말이죠. 그러니까 저라면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루스에게는 딱 그만큼의 용기가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 가난한 남자를 내 연인이다, 그를 믿고 살아보겠다 라고 할만큼의 용기까지는 없었던 거고, 그게 너무 당연한건데, 그런데 이제 그 남자가 부자가 되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견딜 수 있겠다! 하는 그 간극만큼의 용기가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쳐나갈 용기는 부족했지만 명예를 가진 남자에게 다시 찾아가는 굴욕을 견딜만큼의 용기는 있었던.. 저는 루스를 보면서 ‘제인 오스틴‘의 <설득> 속 여주인공 ‘앤‘이 생각났거든요. 그걸 쓰면 리뷰가 너무 엄청나게 길어져서 확 빼버리긴 했는데, 앤도 가족들이 말리는 바람에 가난한 연인과의 사랑을 끝내버려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그 남자가 부자가 되어 쨘- 나타났는데 앤은 그렇다고 그 남자에게 다시 사귀어달라고 하지는 않죠. 그러면서 다시는 자신의 사랑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선택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앤이 있죠. 그게 앤과 루스의 차이일텐데 그 지점은 제인 오스틴과 잭 런던의 차이이기도 할 것이고요.

아무튼 저는 저런 굴욕을 감내하는 것도 루스의 어떤 용기 같은 것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굴욕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2-12-08 11: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은 현실이니까요... 그리고 자신의 이상도 좋지만 상대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상만 바라보는 남자와 헤어져본 사람으로서)

저는 오늘 <제인 에어> 에 대해 글을 썼는데 <제인 에어>에도 계급과 사랑 그리고 극복(?)이 나와서...
다락방님 글을 읽으니 왠지 조금 ‘찌찌뽕‘ 하고 싶었습니다. (수줍)

다락방 2022-12-08 11:56   좋아요 1 | URL
마틴에게 자신이 굶는 일보다 자신의 글을 써내는 일이 더 중요했고 그것이 마틴의 가치이며 마틴의 방향이었겠지만, 그렇게 사는 삶은 혼자일때에만 가능한 것 같아요. 먹고 살아가는 일은 아무래도 현실에서는 돈이 필요한 일이고 그걸 내가 하지 않는다면 나 대신 누군가가 해야하는 거겠죠. 저는 마틴이 가진 마틴의 가치관을 이해하지만 그러나 그런 마틴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성공할 사람의 옆에서 함께 고생하며 인내하는 일.. 저는 반대합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오오, 저는 수하 님의 제인 에어에 대한 글을 읽으러 가도록 하겠습니다. 슝=3

단발머리 2022-12-08 11: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이 리뷰 너무 가슴 절절하네요. 다락방님이 나는 루스다... 하는게 너무 잘 이해되고 사실... 저도 루스입니다. 못 기다려요.

저는 ‘다른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을 때 몸을 숨겼다가 연인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나타난 스웨덴 귀족 이야기‘를 읽고 있습니다.
루스와 반대죠. 연인이 잘 나갈 때는 뒤로 물러섰다가 친구들이 다 떠났을 때 곁을 지켜주는.... (저 눈물 좀 닦을게요.....)

다락방 2022-12-08 11:58   좋아요 1 | URL
저는 아무래도 현재를 사는 사람이기 땜시롱 언젠가 잘 될 그날을 위해 함께 기다리는.. 건 못할 것 같아요. 언젠가 빵터질 미래가 올거라는 믿음에 기대기 보다는 현재에 소박하게 양꼬치 먹으면서 살고 싶습니다.. 음.. 양꼬치는 소박한가 아닌가...

그나저나 연인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나타난 스웨덴 귀족... 은 뭐죠? 어떤 이야기죠? 알려주세요!! 너무나 궁금하네요. 또 제가 그런거 좋아하잖아요. 위험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재이슨 스태덤... 같은 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12-08 12:08   좋아요 0 | URL
스태덤은 아니에요. 쫌만 더 궁금하세요. 나는 울고 있어요 😭😭

독서괭 2022-12-08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 읽으니 마틴도 루스도 이해가 됩니다. 각자의 입장에서.. 루스가 돈 벌라고 한건 합리적인 요구이고.. 굶어가며 글 쓰는 사람을 어떻게 기다리나요 에혀 ㅠ
이책 끝까지 좋으셨군요. 내년에 읽을 소설로 찜입니다^^

다락방 2022-12-08 12:00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독서괭 님. 저는 마틴 을 완전히 이해합니다. 그리고 그를 격려하고 응원하고요. 그가 잘되는 걸 보면 저도 기쁠 것 같아요. 그렇지만 그런 그랑 삶을 함께 하느냐.. 는 완전히 다른 것 같아요. 저는 그냥 제 삶을 사는 걸로.. 사실, ‘내가 언젠가 글로 재벌이 될거야‘ 를... 어떻게 믿나요? 못믿습니다...

독서괭 님, 저는 마틴 에덴 너무 좋습니다. 오늘 잭 런던의 다른 책도 한 권 구입했어요. 네, 책 샀다는 이야깁니다. 다음주 월요일의 책탑 사진을 기대해주세요. 샤라라랑~

다락방 2022-12-08 11:4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나 글 너무 잘썼다.. 나야말로 글로 돈을 쓸어담아야 되는데 세상이 내 글을 보는 눈이 없네. 마틴 에덴이 그랬듯이.. 어리석은 세상이여.....

공쟝쟝 2022-12-08 14:36   좋아요 1 | URL
현실을 사는 다락방은 미래가 알아볼 글을 쓴다… 🥲는 비극

다락방 2022-12-08 15:01   좋아요 2 | URL
이 세상엔 내가 너무 아까워.....

물감 2022-12-08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다락방 님이 보시기에 이 작가가 저랑 맞을 것 같으신가요?
그렇다고 하시면 도전해보게요 ㅎㅎㅎ

다락방 2022-12-08 15:36   좋아요 2 | URL
저는 물감님도 마틴 에덴을 아주 재미있게 읽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보세요!!

새파랑 2022-12-08 16: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마틴이 다시 돌아온 루스를 거부한게 약간 아쉽더라구요. 그렇게 좋아했었고, 루스 때문에 미친듯이 글도 쓴건데~

뭐 원하는대로 되지않은 비극적 결말이었기 때문에 더 재미있게 읽은것 같아요.

그런데 마틴은 양치질을 했던가요? ㅋ

다락방 2022-12-08 17:35   좋아요 2 | URL
마틴은 루스를 알게된 후부터 양치질을 시작합니다. 샤워도 시작합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사랑은 시작되고 사랑을 알고부터 그대만을 느꼈어요... 샤라라랑~

2023-02-08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2-27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래비티
알폰소 쿠아론 감독, 조지 클루니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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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내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달에 가는 것도 역시 내 관심사가 아니었고, 그러니까 그런 식의 일에 대해서라면 내 흥미를 전혀 끌지 못했다. 다만 어떤 사람들, 그러니까 나와는 다른 사람들은 우주에 관심을 갖기 때문에 우주에도 다녀오고 그러는가보다, 그래서 인류는 계속 앞으로 가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지구를 건너 저기 다른 행성으로 가는 일이 여행으로 가능해진다고 한다는 말이 들려와도 나는 그런가보다 했다. 나는 딱히 그런 곳에 가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우주라니. 나는 우주 배경의 소설도 영화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관심있는 곳은 지금 여기, 내가 사는 세상이고,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우주는 그야말로 내 관심 밖의 대상이다. 


영화 《그래비티》에 대해 좋다는 얘기를 수천번도 넘게 들은것 같은데, 나는 볼 생각이 전혀 없었다. 우주에 혼자 남겨진 여자의 이야기라니, 여기에서 어디 무슨 재미가 있단거지? 나는 영화를 보지도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한 극찬을 해도 전혀 흥미를 가지지 않았다. 우주에 혼자 남겨진 인간의 이야기가 딱히 재미있을 리 없잖아? 내 취향은 아닐 거야. 윌이 클래식 음악을 클라크에게 추천했을 때 그건 내 취향이 아니에요, 라고 듣지도 않고 선을 그었던 것처럼, 나 역시 보지도 않고 그래비티에 대해 선을 그었다. 우주에 혼자 남겨진 사람의 이야기라니.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아무리 사람들이 좋다고 해도 그게 나한테 까지 좋을 리 없어. 편견덩어리 내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다 정희진 선생님의 신간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에서 그래비티를 다시 만났다. 정희진 선생님은 자신의 책에서 그래비티를 얘기하며 우주 쓰레기, 중국(아시아) 우주선 그리고 우울증에 대해 얘기했다. 그리고 그 우주에 혼자 남겨진 여자 '산드라 블럭'이 아이를 잃었다는 것도. 그러니까 내가 정희진의 책에서 파악하게 된 그래비티의 우주에 혼자 남겨진 인간에게는, 그 인간 고유의 사연이 있었다. 사연이라니까 감성팔이 같은데, 사정, 사정이 있었다. 그 사람 하나 그러나 그 사람에게만은 온전히 전부인 고유한 세계가 있었다. 당연하지, 그것이 있을 것이었다. 나는 우주에 혼자 남겨진 인간 에서 그 인간을 그저 평면적으로 어떤 개념적으로만 생각했다가 비로소 입체적 인물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 같은 인간, 살아 숨쉬고,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형성한 하나의 인간. 인간이 혼자 라고 지루할 리가. 그 하나의 인간이 안에 품고 있는 것은 얼마나 무궁무진한가!



일전에 나는 친구와 그런 대화를 나눴었다. 내가 연애중일 때였는데, '친구야, 나는 이 연애가 끝난다면 더이상 연애하지 않고 살거야, 그러지 않아도 돼, 충분히 했고, 이거면 됐다. 남은 시간들은 이 연애에서 발생했던 것들을 추억하고 곱씹으면서 평생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다른 친구를 만났을 때도 나는 그랬다. '나는 지금 이 사람 정말 좋아하는데, 설사 지금 헤어져도 크게 다치지 않을 것 같아. 되게 충만했고 모든게 충족됐어, 더이상 아쉬움이 없어' 라고. 나는 정말 그랬다. 그 연애에서 발생한 일들만으로 내 남은 시간들을 추억하며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다못해 연애, 그 연애 하나만으로도 내게는 많은 것들이 쌓인 것이었다. 그런데 나라는 인간에게 연애만 일어났는가 하면, 그건 작고도 작은 일이었다. 나에게는 내 나름의 학교 생활과 직장 생활과 친구들과의 우정과 그리고 가족들 사이에서의 일들, 또 여행과 산책과 요가와 전시회 관람과 기타 등등 많은 것들이 와 부딪혔고 쌓여있었다. 거기에 나는 책을 읽고 영화도 보면서 또 쓰기도 하면서 나라는 사람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내 안에는 내가 만든 고유한 그러나 충만하고도 풍부한 세계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런 인간이 혼자일 때, 그 공간이 좀비가 창궐한 시대거나 우주라고 해도 텅 비어있거나 지루할 리 없었다. 나라는 인간은 나 자체로 온전할 것이니까.



우주에서의 첫번째 임무를 맡게된 '라이언 스톤(산드라 블록)'은 폭파된 인공위성의 잔해 때문에 임무를 제대로 마치지도 못했고 함께 한 동료들은 대부분 잃는다. 그녀에게 남은 건 수다스럽고 밝은 동료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뿐이었는데, 타고온 우주선도 망가지고 둘 다 살아 돌아가는 것조차 불가능해지고 만다. 맷은 임무 중 그녀에게 여러차례 말을 걸면서 '저 아래에서 네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누군가가 있느냐' 라고 물었고 이에 라이언은 없다고 말한다. 딸아이가 있었는데 네 살 때 사고로 죽었다고. 맷은 둘다 살아 돌아갈 수 없다는 걸 파악한 순간 '너라도 살아 돌아가라'면 자신이 지구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한다. 그는 우주를 이 우주의 아름다움을, 우주에서 내려다보는 지구를 사랑했는데, 저 아래에서 자신을 기다려주는 사람도 있었는데, 그런데도 너라도 살아돌아가, 라며 그녀와 자신에게 얽혔던 끈을 풀어버리는 거다. 



나는 이런 맷의 행동에서 이것이야 말로 '내적 동기' , '기여'로구나 생각했다. 



얼마전 친구를 만났을 때 친구와 나는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때 친구가 한 이야기 중에 내적 동기가 있었던 거다. 외적 동기는 외부의 동기로 무언가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고 내적 동기는 기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이를테면 '설거지 하면 만원 줄게' 는 외적 동기가 될 것이고, '설거지를 함으로써 이 집에 기여하고 싶다'고 행동하게 되는 것은 내적 동기에 의한 것이라는 거다. 친구는 이걸 내게 말하면서 자신이 보았던 영상을 소개해주었다. 공유해본다.






지나영 교수가 지적한 건 현재 우리의 교육이었다. 공부 열심히 하면 서울대 갈 수 있어, 서울대 가면 대기업 갈 수 있어, 대기업 가면 연봉 높을 수 있어, 하는 외적 동기들만이 지금의 젊은 사람들을 움직인다는 것.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그 사람이 더 행동하게 할 수 없다는 거였다. 기여하고 싶다는 내적 동기로 움직여야 하는데 자꾸 외적동기를 주기만 하면 내적동기가 다 사라져버린다고. 결국 사회에 나가서 외적 동기 없이는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거다.

나 역시 동의하는 바, 지나영 교수는 이 내적 동기가 충만하면, 그러니까 내가 뭔가를 알고 싶고 기여하고 싶어서 행동하기 시작하면 그 작은 기여가 좀 더 큰 기여가 되고 결국 다른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고 싶어지며 그러다가 자기 초월로 넘어가게 된다고 얘기했다. 

이 영상을 본 뒤에 내가 본 그래비티 에서 맷은 자기 초월의 상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사는게 즐거운 사람인 맷이, 지구에 돌아가는 일을 라이언에게 양보한다. 라이언은 임무를 맡기 전 했던 비상 탈출 훈련에서 항상 실패했었다고 말하는데, 끊임없이 용기를 주는 것도 맷이다. 너 할 수 있다고, 너는 살아 돌아가야 한다고. 자기는 살아돌아가지 못할거면서도 다른 사람의 삶을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맷은 그야말로 자기 초월의 상태가 아닌가.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어떻게. 


자, 이제 라이언은 혼자 남았다. 기어코 우주정거장의 소유즈 탑승에 성공하지만 그마저도 오래 가지 못하고 그렇게 중국 우주정거장의 우주선에 탑승하게 된다. 자, 나는 이제부터가 경이로웠다.


라이언은 삶에 큰 재미가 없었다. 딱히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혼자서 딸아이를 키우고 있었지만 그 딸마저 잃은 상황이었다. 저 지구에서 네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사람이 있니? 라는 말에 아무도 떠올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우주에서의 임무는 실패했고 동료들은 죄다 잃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가장 하기 쉬운 선택은 '삶을 포기하기' 아니었을까. 삶을 포기하기는 쉬웠을 거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있으면 됐을 테니까. 실제로 그녀는 살기를 포기하려고 산소를 없애는 우주선 안의 버튼을 누르기까지 한다. 버튼 하나면 살아나가고자 하는 애씀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다. 자식을 잃은 고통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다. 동료를 잃은 슬픔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자신을 둘러싼 이 모든 외로움과 고통과 우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저 버튼 하나 누른 채로 눈 감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삶을 포기하려던 그녀는 자신을 살리고자 했던, 격려했던, 응원했던 맷의 말들을 떠올린다. 나는 탈출 훈련에서 항상 실패했었는데, 하는 떠올림도 맷의 말들 앞에서는 부질 없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것, 별 것 아닌 것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삶을 '포기하기' 대신 삶을 '지속하기', '계속 가기'를 선택한다. 삶을 지속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그녀는 자신이 읽지 못하는 중국어로 쓰여진 많은 버튼들을 눌러 시도해야 했고, 배운 것들을 떠올려야 했고, 지구에 계속해서 통신을 시도해야 했다. 살기를 선택한 순간 그녀가 시도해야 할 것, 기억해야 할 것, 행동해야 할 것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살기를 선택하는 순간 지금 그녀 앞에 닥친 건 극도의 애씀 이었다. 그녀가 애를 써야만, 기어코 애를 써야만 사는 일이 가능해질 터였다. 


나는 삶을 사랑하고 살기를 선택할 것이라고 늘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그러나 라이언이 닥친 상황앞에 어떤 선택을 할지는 나 역시 닥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우주 미아가 되어버렸다, 통신은 두절되어 버렸다, 내가 조작해야 할 우주선은 읽을 수 없는 언어로 써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 지구로 내려가봤자 나는 혼자다, 내가 계속 살아야 하는가, 내가 살기 위해 애써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자문하면서 내리는 결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일 수 있을까. 그 선택은, 살고 싶은게 인간의 당연하고도 기본적인 본능이라 해도 쉽지 않을 터였다. 가만 있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훨씬 쉽고 간단하잖아. 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애씀이 필요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는 라이언이 기어코 살기를 선택해서 애를 쓰는 게 경이로웠다. 그녀가 시도를 하고 이제 도킹도 해제되고 어쨌든 이 작은 우주선이 움직이기 시도했을 때, 그녀 앞에 남은 결과는 두가지였다. 그녀의 시도가 성공해서 계속 살게 되든가 아니면 실패해서 살지 못하든가. 그녀는 이제 결과만 앞에 둔 상황에서 웃는다. 자신의 애씀을 후회하지 않는다. 애를 썼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결국 두 발로 단단한 땅을 밟게 된다. 내내 둥둥 떠다니다가. 그렇게 둥둥 떠다니기 전에 밟아본 적 있던, 숱하게 밟았던 땅이지만, 그러나 지금 밟는 이 땅은 그전보다 훨씬 단단할 터였다. 아니, 그녀의 근육이 더 단단해진 것일테지. 나는 그녀가 기어코 애를 써서 살기를 선택했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좋았다. 




전 인류가 바이러스로 사망해서 덩그러니 '로라' 혼자만 남았던 책, '케빈 브록마이어'의 《로라, 시티》가 떠올랐다. 로라, 시티 는 로라 혼자 남아 그동안 살았던 일들과 과거의 사람들을 계속해 기억해내는 거라면, 그래비티에서의 라이언은 앞으로의 삶을 위해 지금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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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11-01 09: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 오늘 글 좋네요. 좋아요를 마음으로 10개 더 추가합니다. ㅎ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 이야기가 눈에 띕니다. 내적동기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래비티> 저도 다시 보고 싶네요.

제가 그 편견 때문에 이 영화랑 어쩐지 비슷할 거 같은 <마션>은 안 봤는데요. 이건 그 편견의 선을 넘어볼 만한 영화일까요? 흠.. (왠지 부장님도 안 봤을 거 같습니다만)

다락방 2022-11-01 10:56   좋아요 4 | URL
딩동댕동~ 잠자냥 님의 짐작대로 저는 마션 영화를 보지 않았습니다. 저는 책으로 읽었는데요, 책으로 엄청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럼에도 우주에 혼자 있는 인간 보고 싶지 않아서 영화는 안봤어요. 제 여동생은 봤는데 재미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언젠가 꽂혀서 보게 될진 모르겠지만, 현재는 볼 생각 또 없다능 ㅋㅋㅋㅋ
산드라 블록 그래비티에서 근육있는게 너무 좋더라고요! 어쩌면 저 근육이 살고자 하는 의지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라는 생각도 들어서 저도 근육운동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 하고 있어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흠흠.

친구랑 외적 동기 내적 동기 이야기가 나온게 제가 젊은이들하고 일하면서 그들이 시키는 일만 하는 것, 시켜야만 하는 것에 대해 얘기했기 때문이거든요. 가성비만 생각하는 것 같다, 이 연봉엔 이만큼만! 딱 이런 생각만 하는 것 같다 라고 얘기했는데 친구가, 그건 교육의 문제라고 자기도 생각했는데 그게 외적동기로만 살아왔기 때문에 내적 동기가 자라지 못하고 사라졌다, 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영상을 준건데 저는 영상 보고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요. 그리고 동의하고요. 계속해서 외적 동기로만 움직였던 사람에게는 내적 동기가 잘 작용이 안되고, 실제로 ‘기여‘라는게 뭔지 받아들이질 못하는거죠.

공쟝쟝 2022-11-01 15:47   좋아요 0 | URL
두 분 여기서 사랑하고 계시네요? 음 역시 삶을 사랑하는 여자들이롤세.
우주 물 좋아하는 저는 <마션>봤습니다. 정확히 <그래비티>와의 대척점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마션>은 서양 백인 남의 우주에 덩그러니고 (ㅋㅋㅋㅋ) <그래비티>는 돌아갈 곳이 없는 여성의 우주에 덩그러니죠. 그런데 마션이 재미가 없냐? 아닙니다... 매우 매우 재밌습니다(그래서 역시 난 서양남 못 잃어인가...). 킬링타임용으로 적절하고, 아 맞다. 나는 남자들의 이런 면을 좀 좋아했던 것 같아!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그게 앞으로의 인류에게 도움이 되는 태도일지는 여전히 미지수...

다락방 2022-11-02 10:03   좋아요 0 | URL
저 마션 책으로 재미있게 읽었거든요. 그러니 재미있다는 거 아니까 보기만 하면 되는데 참 볼 마음 너무 안생겨버리는 부분... 음.. 넷플에 있나 보고 시간 되면 봐야겠어요. 아니 마음이 동한다면.....

mini74 2022-11-01 10: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쉬운 결정보단 어려운 결정을 하는데는 내적 동기가 필요하단 생각도 들고 ㅎㅎ 뭐 세상에 쉬운 결정은 없지만요 ㅎㅎ 자냥님 댓글처럼 좋아요 마구마구 눌러드리고 싶어요 ㅎㅎ 누군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감자를 키우고. ~ 저도 이 영화 좋아해요 ~

다락방 2022-11-01 10:58   좋아요 3 | URL
사람들이 그렇게 입을 모아 좋다고 말하는 영화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나 그래비티에 대해서라면 정말 그랬어요. 제 생각보다 훨씬 좋은 영화였어요. 기어코 살아가기를 결정하는 한 인간을 보는게 정말 너무 경이로웠습니다. 그래서 삶이 더 의미있는거 아닌가 싶고요. 이제 지구의 땅에 두 발 딛고 살아가는 그녀는 예전과는 또 달라진 그녀죠. 살기를 선택하고 애썼던 바로 그녀인 것입니다. 진짜 너무 좋아요!!

공쟝쟝 2022-11-01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적 동기/외적 동기...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하는 주제네요. 저는 .. 도장 집착녀로... 뭔가 목표가 있고 그걸 잘 해내거나 하고나면 다음 목표를 세우는 방식으로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ㅠㅠ (그리고 지금은 제가 세운 어떤 미션들은 다 이룬 상태?ㅋㅋㅋㅋ) 그래서 뭘 자꾸 또 하려드는 데...(-_-;;;) 그런 내가 너무 지겹고 안하려고 했다가 막 그러더라고요. 암튼 최근에 상담 샘이랑 다뤄보자고 한 것들이랑 좀 겹쳐서 생각하게 되어요. 어떤 태도를 고치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운 상태....인것 같다고 잠정적으로 가설을 세우고 접근하기로 했는 데.... 댓글에서 이야기 해주신 것 처럼 저 역시 내적동기를 키워내고 있는 과정 중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좀 들기도 해요.!!...

다락방 2022-11-02 10:09   좋아요 1 | URL
삶이 지속될 수 있는 이유 혹은 삶이 지속되게 하는 가장 큰 동기는 작은 목표들을 세우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걸 하나씩 해 나가면서 성취감도 느끼고 그래야만 지속 가능해지지 않나 싶고 말이지요. 지속 가능하면서 동시에 보람도 느낄 수 있고요. 저마다 추구하는 목표들도 다를 것이고 또 추구하는 방법도 다르겠지만, 저는 삶에서 작은 목표들을 세워두는게 더 낫다고 보고요 물론, 큰 목표도 있으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일단 큰 목표 하나가 똭- 자리 잡힌다면 내 작은 일상의 결정들은 한 방향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사 비틀거리고 잠깐 다른 길로 새기도 해도 저기 굵은 목표가 있다면 어쨌든 거기로 가지 않겠는가 말입니다. 왜, 그 유명한 이야기 있잖아요. 눈길에서 똑바로 걸으려면 내 바로 앞을 보고 걸어야 되는게 아니라 저기 목표물을 보고 걸어야된다고요. 내 바로 앞만 보면 발걸음은 기울지만 저기 목표물을 보면 방향이 일정하게 난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친구들을 잘 사귄다거나 인기가 많다거나 회사에서 일을 잘한다거나 하는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공통적으로 내적 동기가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적 동기가 주변에 관심을 갖게 하고 행동을 하게 하거든요. 제가 싫어하는 사람은 그야말로 외적동기로만 움직이는 사람들이죠. 외적동기로‘만‘ 움직인다는 건 제가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자기 스스로 생각하지 않는것, 그러므로 행동하지 않는 것, 그러므로 결국은 악.... 으로 말입니다.


내적동기는 결국 계속 발전시키다 보면 자기초월 과정에 이른다는데, 자기 초월까지는 아니더라도 내적 동기를 키우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은 결국 나를 좋은 사람이 되게 만들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에도 이바지 하게 됩니다. 내적 동기 없는,외적 동기로만 움직이는 대표1인 이 누구냐, 현 대통령 입니다.

그럼 이만.

공쟝쟝 2022-11-02 10:52   좋아요 0 | URL
아 엄청난 통찰이다!!!!! 진짜 다락방님은 일관된 분석의 틀을 가진 분!! 그리고 굥은 외적동기의 화신 ㅋㅋ 그것의 체현자 ㅋㅋㅋㅋㅋ 어휴 으으으윽 윽 ㅋㅋㅋㅋ 아 징그러 진짜 ㅋㅋ 넘 맞는 말 입니다!!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지 절대 네버…

잠자냥 2022-11-02 10:53   좋아요 1 | URL
ㅋㅋㅋ 쟝쟝, 도장 집착녀 ㅋㅋㅋㅋㅋ 극공감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전국 곳곳 자전거 타고 다니는 게, 국토종주 도장 찍으려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난번에 금강 종주할 때도 경치고 뭐고 계속 달리니까 같이 간 사람이 ˝너 진짜 도장에 미쳤구나?˝ ㅋㅋㅋㅋ

부장님, 근데 현 대통령이 외적 동기로 움직인다고요? ㅋㅋㅋㅋㅋㅋㅋ 동기가 있나 그 인간이?! 그냥 누가 하라니까 귀찮아 죽겠는데 하는 듯 ㅋㅋㅋㅋ 집구석에서 술이나 처먹고 싶은 인간이.

공쟝쟝 2022-11-02 10:58   좋아요 1 | URL
도장에 미친 잠자냥 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쩐지 ㅋㅋㅋ 그날 매우 고생하시고 저녁을 많이 매우 많이 드신 것 같더라니 ㅋㅋ
굥……. ㅋㅋㅋㅋ 에 대해서 잠자냥님이 어떤 인간인지 파악하기도 싫은게 느껴짐 ㅋㅋㅋ

다락방 2022-11-02 11:19   좋아요 2 | URL
외적 동기는 그야말로 윤대통령을 움직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은 그를 지금처럼 움직이게 하는 동기이고 힘이죠. 그가 대통령이 되어있기 때문에 한심한 짓을 아무리 저질러도 돈은 돈대로 들어오고 힘은 힘대로 생기지요. 윤을 대통령으로 만들고자 했던 대통령의 아내도 그리고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그 본인도 모두 외적동기로만 움직입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애도하는 마음이 생겨서‘ 행동하는게 아니라, ‘어휴 애도해야 그나마 대통령 유지할 수 있다니까‘ 라고 애도하는 흉내를 내는게 바로 외적동기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잠자냥 님도 언급하셨지만 ‘누가 하라니까‘ 하는 거요. 아주 잘못된 삶의 바로 살아있는 표본!! 진짜 너무 싫어요, 너무 싫습니다. 너무 싫은 인간의 바로 그 전형!! 아 진짜 어떡하죠 너무 싫은데 ㅠㅠ

 
케이크를 자르지 못하는 아이들 - 모든 것이 왜곡되어 보이는 아이들의 놀라운 실상
미야구치 코지 지음, 부윤아 옮김, 박찬선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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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정신과 의사인 이 책의 저자 미야구치 코지는 소년원에서 상담일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 과정에서 죄를 저지르고 소년원에 들어온 이 소년들의 아주 많은 경우가 인지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된다. 아이들에게 원형의 케이크를 그려주고 '자 이걸 세 명이서 똑같이 나누려면 어떻게 잘라야 할까?' 물어보았는데, 제대로 자르는 아이들이 없었던 거다.



초등학생이 아닌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의 소년인데 위의 그림 두 개처럼 균등한 삼인분을 해낼 수 없었던 것.


밑에 그림 두 개는 '다섯명이 나눠 먹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질문에 소년들이 그린 그림이다. 동그란 원을 세개(벤츠 마크처럼)로 나누는 걸 생각해내지 못하는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숫자 계산 능력도 떨어지고 글을 읽는 능력도 서툴렀다. 하나의 원을 세 개로 나누는게 부족한 아이들, 즉 인지 부족인 아이들은, 그래서 보통의 다른 아이들처럼 생각하지를 못했다. 돈이 필요하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물음에 남의 것을 훔친다는 답도 그냥 나오는 거다. 이런 아이들에게 '너희가 저지른 것은 범죄다'라고 말을 하며 혼내고 반성문을 쓰라 하고 혹은 소년원에서 시간을 보내게 해도, 다시 사회로 나왔을 때 또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반복된다. 공평하게 나눈다는 개념 자체가 없고 남을 해치면 안된다는 인지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소년원에 잇는 아이들 중 어떤 아이들은 '그냥 사람을 죽여보고 싶어서'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거다. 그 다음 과정 '그러나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까지 나아가지를 못하는 거다.


다만 이렇게 자른사람이 강도, 강간, 살인 등의 흉악 범죄를 저지른 비행 소년들이라는 것, 그리고 이들이 중학생, 고등학생 연령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이들에게 잘못된 행동에 대한 반성과 피해자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하는 지금까지의 교정 교육을시행해봤자 대부분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릴 것임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저지른 범죄에 대한 반성 이전의 문제인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케이크를 제대로 나눌 수없는 소년들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경험했을지, 사회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지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학교에서 이런 아이들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알아채지 못하고 특별한 배려를 해주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비행을 저지르고, 마지막으로 도달한 소년원에서도 이해받지 못하고 ‘비행에 대한 반성만 끊임없이 강요받았다는 점‘이었다. -p.58 



나는 최근에 범죄자는 무식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다고 생각해왔는데, 이 책을 읽노라면 정말 지적 능력이 떨어져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일 때 지적 능력이 떨어지면 자꾸 선생님에게 혼나고 다른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고 성적도 제대로 안나오고 그런 상태로 그 다음의 학습 자체가 가능해지지 않는 거다. 게다가 아이큐가 현저히 떨어지는 지적장애가 아닌 지적 장애의 경계에 있는 아이들의 경우에는 그 아이의 잘못이 조금 낮은 아이큐 때문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는 일은 거의 없다는 것. 그 아이들이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이렇게 소년원에 들어오고 나서야 많은 의사와 상담선생님들이 상담한 후에 발견되는 거다. 



미야구치 코지는 이미 범죄와 지적능력 부족의 연관성을 파악한 박사들이나 교수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자신 역시 그 뒤를 따르게 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미 유명한 뇌의 일정부분 손상에 따른 범죄에 대한 사례도 들려준다. 그래, 미야구치 코지가 하는 말은 모두 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인지 능력을 포함한 지적 능력이 부족하면 내 기분과 욕망만 들여다보게 되고 학습능력도 사회성도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아이들이 그 상태로 어른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학습능력이 저절로 좋아질 리도 없고 인지가 발달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어릴 때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어린 시절 시간을 많이 보내는 부모님의 관심이 필요하고 그리고 학교 교육이 중요하다는 거다. 지금이야 매 학습 시간에 인지 능력 훈련을 하기가 어렵게 느껴진다 해도, 미야구치 코지는 자신의 책에서 매일 수업 시작하기 전 조회시간 5분만 투자해서 아이들에게 인지 능력을 길러주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많은 범죄가 인지 부족을 포함하는 지적장애로부터 온다는 것은 매우 날카로운 지적이고, 그걸 알았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일어날 범죄와 또 재범을 예방하기 위해 인지능력을 교육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적합한 방법이다. 그것만이 답이라고 나 역시 생각한다. 내가 생각했던 '무식함(생각하지 못함)은 악으로 연결된다'는 그러니까 정말로 생각하지 못한다는 현상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그것을 교육할 수 있고 그렇게 세상의 범죄를 줄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이 책을 읽고 학교에서 수업 시작 전에 오분씩, 저자도 언급하지만 매일이 아니라 일주일에 세 번이라도 할 수 있다면 확실히 사회가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몰라서' 혹은 '부족해서' 저지른 범죄의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갑자기 책을 읽던 내가 튕겨져 나온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인지 능력이 부족해서 학습도 사회성도 부족한 아이들은 따돌림의 대상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런데 그 따돌림에 대한 현상으로 아동 대상 성범죄가 벌어지는 거다. 인지 능력 부족이 벌어지는데 그것이 왜 아동대상 성범죄로 이어져야 하는가. 그리고 그 범죄의 피해자는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어서 내가 갈 곳을 잃는 거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가 세상을 왜곡되게 보고 있기 때문에, 보통의 사람들만큼의 사고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래서 피해자의 피해에 대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걸까. 그 많은 아동성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이 성인 포르노를 보고 저지르기도 하지만 왕따를 당해서 저질렀다고 답하는 데에는, 도대체 내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다. 나는 집단 따돌림을 당한 아이들이 성범죄 가해자가 된다고, 가해자들의 말을 빌어 얘기하는 지점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성범죄를 저지르는 부분에 대해 뇌의 어떤 특정부분이 영향을 준 것이 아닐까에 대해서도 가설을 세우고 있다. 실제 범죄자들 중에는 뇌에 문제가 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뇌에 이상이 있다고 해도, 피해자에 대해서라면 역시 가해자의 무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어진다. 아, 노파심에 얘기하자면 저자 역시 



아무리 범인이 뇌 기능에 이상이 있다고 해도 심각하고 중요한 사건에 대해서는 진지하고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p.225)



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재차 인지 기능 트레이닝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감수자 역시 책의 중간 중간 인지 기능 트레이닝과 그걸 할 수 있는 공간과 지원이 필요함을 언급하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이고 꼭 필요하기 때문에 이 책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지만, 그러다가 자꾸 '몰라서 저질러진 범죄'의 피해자는 도대체 어쩌라는건가, 싶어지는 거다. 그걸 방지하자고 우리가 아이들을 어릴 때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고 교육하자고 말하고 있는데, 그걸 맞다고 듣고 있다가도 자꾸만 억울해지는 거다. 



아래에 밑줄긋기도 했지만, 전두엽의 손상이 범죄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이에 대한 더 많은 책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미야구치 코지가 보여주는 인지 기능 트레이닝은 분명 필요한데, 전 세계 어린이들의 교육 과정중에 반드시 포함되었으면 하고 바라본다. 그러기 위해서 저자는 이 책을 쓴 것이고 나는 읽은 것일테다. 


"지금 가지고 있는 돈이 얼마 없어요. 그런데 일주일 후까지 10만 엔(약 110만 원)을 준비해야만 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방법이라도 상관없으니 생각해보세요."
‘어떤 방법이라도 상관없다‘는 말이 나왔으니 친척에게 빌린다, 소액 대출을 받는다, 훔친다, 남을 속여서 돈을 빼앗는다, 은행을 턴다와 같은 대답이 나온다. (친척 등에게)빌린다‘는 선택지와 ‘훔친다‘는 선택지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란히 나오는 것이다. ‘훔치는 것‘과 같은 선택을 하게 되면 나중에 심각한 상황을 겪을 수 있고, 무엇보다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유추할 수 있는 예측력이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을 헤아려 계획을 세우는 힘이 약하면, 즉 실행 기능이 약하면 과정이 더 간단해 보이는
‘훔친다‘ ‘속여서 빼앗는다‘와 같은 방법을 선택하기도 한다.
- P61

세상에는 "어쩌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질렀을까?" 하는 사건이 많은데, 그런 짓을 저지른 사람들에게는 ‘앞뒤를 생각하는 힘이 약하다‘라는 문제가 숨어 있다. 비행 소년들 중에도 이렇게 앞을 내다보고 계획을 세우는 힘이 약해서 과정이 간단해 보이는 방법을 택해 나쁜 짓을 저지른 소년들이 많았다. - P61

성인 영상물로부터 영향을 받은 케이스도 많다. 발달 장애가 있는 청년에게서도 가끔 듣는 건데, 성인영상물을 보면 처음에는 싫어하던 여자가 나중에는 좋아하는 장면이나오는데 그걸 보고는 "사실 강간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고 자신의 범죄 이유를 말하는 소년도 있었다. - P70

하지만 소년원 등 교정 시설에 있는 지적 장애 및 경계선 지능 청소년을 위한 지원책은 아직 미흡한 형편입니다. 2010년연세대 의대 신의진 교수를 중심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82명의 성폭력 가해 청소년의 지능을 검사한 결과 26.5퍼센트에 해당하는 19명이 지적 장애(IQ 69 이하 4명)이거나 경계선 지능(IQ 70~79에 해당 15명)에 해당하는 지적 수준을 보였다는 점이 제기되었습니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3월을 기준으로 전국 10개 소년원에 있는총 1018명의 보호 소년 중 정신 질환, 품행장애(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사회적 규범을 어기는 행위가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증상) 등으로 정신건강 치료가 필요한 보호 소년은 230명으로전체 인원 대비 22.6퍼센트를 차지하는데, 이 중 37퍼센트가지적 장애 및 경계선 지능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감수자 노트 中) - P138

이에 한국에서도 보호 소년에 대한 약물 치료 및 심리 치료등 전문적인 의료 지원을 할 수 있는 의료 보호 시설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현재 각 시설에 속속 부설 의원이 개설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낮은 인지 기능을 보완하여 이들의 잠재적 기능을 높임으로써 도덕의식 회복 및 바른 삶에 대한 의지를 제대로 갖도록 하는 교육 프로그램은 아직 부족한 실정입니다. (감수자 노트 中) - P138

일반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소년은 유소년기에 성적 학대 같은 피해를 당한 경우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연구자가 적지 않다. 그런데 내가 만난 성범죄 소년들은 이 경우에 해당하지는 않았다. 본인이 성적피해를 당했다고 말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집단 따돌림 쪽 피해가 더 많았다. 95퍼센트 정도가 심한 따돌림을 당하다가 그 스트레스로 유아를 상대로 일을 저지른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에게 분명한 장애가 있었다면 주위 사람들이 알아보고 따돌림당하지 않도록 어떤 지원을 해주었을 가능성이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해서 잊혀지고 ‘경도‘라는 이유로 방치된다. 그 상태로는 공부를 따라가지 못해서, 인간관계가 서툴러 친구를 사귀지 못해서, 운동을 잘하지 못해서 등의 이유로 따돌림을 당할 위험이 높아지고, 그렇게 따돌림을 당하면 이번에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찾아 성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 그야말로 피해자가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도 있는 상황이다. - P160

1966년, 미국 텍사스 대학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총기 난사 사건으로 17명이 죽고 32명이 다친 것이다. 용의자는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던 찰스 휘트먼(Charles Whitman)이었다. 그는 사건을 벌이기 전날 편지를 썼다. 거기에는 공포와 폭력적 충동에 시달리며 심한 두통을 앓았던 것과 자신이 죽고 나면 시신을 해부해서 어떤 신체적 질환이 있었는지 조사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의 시신을 부검한 결과,
뇌의 심부에 호두알 크기의 악성 종양이 발견되었다. 이에 폭력적 충동을 억제하는 능력이 저하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현재도 논의되고 있지만, 뇌종양이 폭력적 충동 행위를일으킬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사형수 다쿠마마모루가 뇌종양 진단을 받은 것도 단순한 우연일까? - P221

뇌 기능, 특히 전두엽의 기능 저하와 반사회적 행동의 연관성을 알아졸 수 있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 사례다. 1800년대 미국의 철도 공사 현장 감독으로 일하던 스물다섯 갈의 피니어스 게이지는 유능하고 인망 있는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런데 1848년 9월의 어느 날, 불의의 화약 폭발 사고로 쇠막대가 왼쪽 눈 밑에서 정수리(전두엽)를 관통하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왼쪽눈은 손상되었지만, 다행히 부상은 빠르게 회복되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이후로 12년을 더 살았다.
하지만 게이지의 인격은 완전히 변했다. 제멋대로고 예의를 모르며 때때로 모욕적인 말을 하기도 했다. 동료에게 경의를 표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게다가 욕망을 억제하지 못하고 집요할 정도로 완고하며 장래계획을 세우지도 못했다. - P221

그가 죽은 후그의 두개골과 쇠막대는 미국 보스톤에 있는 하버드 대학의 워렌 해부학 박물관에 안치되었다.
100여 년이 지나고 1994년 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가 보관되어 있는 게이지의 두개골과 표준적인 사람의 뇌 MRI 영상을 비교해본 결과, 좌우의 전전두엽˚이 손상되었고, 그로 인해 합리적 의사결정이나 감정 장애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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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2-10-28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범죄를 저지른 소년이 어린 시절 집단 따돌림을 받은 경우가 많다는 연구결과가 좀 놀랍네요. 어렸을 때 성적학대를 받은 사람에게 이런 범죄 양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저도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피해자가 피해자를 만드는 상황에 대해서는 그래도 좀 이해가 가는데, 피해자가 범죄자가 된 경우에 새로운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하면, 너무 억울할 거 같아요. 누가 보상해줄 수 없는 문제이구요. 중대한 사건이라면 진지하게 논의하겠다지만, 최근에도 심신미약 혹은 술에 취한 상태를 이유로 감형이 되기도 해서요. 범죄자라면 누구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이런 변명을 가져올 수 있겠네요. 이런저런 강박 증세 하나 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요?ㅠㅠ

다락방 2022-10-31 09:18   좋아요 2 | URL
왜 따돌림이 성범죄로 나타나는지 저는 이 책을 읽었으면서도 그건 잘 이해가 안돼요. 따돌림은 자기 통제의 밖에 있었고 아동 대상 성범죄는 그러나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주체가 되기 때문일까요? 저자는 신중하지만 저는 자꾸만 ‘몰라서‘ 저지른 가해에 대해 피해자들은 그렇다면 어째야하나 생각하게 되어서 불편하더라고요.
그런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것도 역시 사실이라서 이걸 어째야 할지 모르겠어요. 저자가 주장하는대로 일단 어릴 때부터 인지교육을 한다면 예방확률이 매우 높아질 것은 분명해 보이고요, 케이크를 똑같은 3등분으로 나눌 수 없는, 그런식의 사고(인지)가 안되는 사람이 다른 사회적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런걸 생각하면 역시 교육이 답이다 싶고 그러다가 또 답답해지고 그럽니다 ㅠㅠ

blanca 2022-10-28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읽어볼게요. 관심 있는 분야예요.

다락방 2022-10-31 09:19   좋아요 1 | URL
블랑카 님, 꼭 읽어주세요. 이 책은 블랑카 님이 읽으신다면 정말 아주 좋은 글이 나올 것 같아요!

mini74 2022-10-30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이코패스의 뇌가 일반인과 다르다는 글 읽었던 기억납니다. 뇌기능의 이상에 대해 연구해서, 예방하고 교육이 필요하지만 면죄부가 되는 것엔 다락방님 말씀처럼 피해자들 억울할거 같아요. 지금도 자주 꺼내는 변호사들의 카드란 생각도 들고요. 4명 살해한 애가 부자병?이라 우기고 2년만에 출소한게 제일 어이없었던거 같아요.

다락방 2022-10-31 09:20   좋아요 1 | URL
뇌 기능이 이상해서 저지른 것은 악의를 가지고 저지른게 아니니 감형을 해준다.. 무슨 말인지 알겠지만, 그러나 그 사람의 뇌 기능 자체가 달라지지 않는한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너무 큰 거잖아요. 그렇다면 감형이 정말 옳은 일인가 싶고요. 이 책의 저자는 소년원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는데, 그렇게 이미 죄를 저지르고 온 자들에 대한 교육이 절실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미 어른이 된 사람에게 그 교육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싶고.. 여러가지로 답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릴 때부터의 인지 교육은 반드시 더해져야 할 것 같아요.
 
포르노랜드 열다 페미니즘 총서 5
게일 다인스 지음, 신혜빈 옮김 / 열다북스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이 책의 저자 게일 다인스는 포르노 연구를 30년간 해왔고 그에 따른 연구를 비롯 학생들과 상담도 해왔다.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부터가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그 숱한 폭력적 영상들을 보고 또 그 영상에 대한 후기까지 읽으면서 어떻게 건강한 멘탈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한편 게일 다인스는 포르노가 분명 영향을 미치는 성범죄 사실까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나 남자들 역시도 포르노의 피해자라는 시선을 버리지 않는다. 포르노라는 거대한 산업에 노출되었고 그 세계를 살고 그러다보니 자극에 무뎌지고 범죄에 영향도 받는. 지금의 포르노는 기성세대가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포르노와는 그 내용이라든가(없지만) 영상이 더 폭력적이지만 그러니 그걸 보는 남자들이 어떻게 되겠느냐, 그런데 그건 누가 만들었냐 이 사회가 만들었다, 이익을 보기 위한 포르노 산업은 거대한 손길을 여기저기 뻗치고 있다고 밝히는 거다. 그렇게나 폭력적인 영상과 여성을 물화시키는 후기까지 접하면서도 진짜 문제가 뭔지 보려고 하고 그래서 해결하고 싶어하는 데에서는 정말이지 그 정신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일 다인스, 아주 강한 사람이구나 하는. 


일전에도 언급한 적 있지만 포르노에 대해서는 페미니스트들 조차 의견이 갈린다. 표현의 자유로 허락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고 그것이 여성들에게도 성적 자유를 가져다준다는 거다. 우에노 치즈코도 자신의 책을 통해 포르노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단, 아동 포르노는 안된다'고 했던 적이 있다.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포르노 자체가 허락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아동 포르노는 안된다는 전제는 그렇다면 그 아동은 몇 살부터 몇 살까지를 말하는 걸까? 18세는 안되지만 19세는 되는 걸까? 그 둘은 한 살 차이인데? 30세지만 아동처럼 차려입고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 아동을 연상시키는 외모와 포즈로 찍는 영상은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아동을 출연시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괜찮은가? 아동 포르노는 안된다는 것의 명확한 선을 어떻게 정할 것이며 그 선의 바로 옆에 있는 선은 그렇다면 아주 작은 차이로 되는 것으로 넘어가버린다면, 결국 그 경계는 불분명해지지 않을까. 게일 다인스가 밝히는 이 거대한 포르노 산업에서도 '아동 포르노는 안된다'는 것은 모두에게 공통적 전제다. 하다 못해 허슬러 잡지를 만든 래리 플린트 조차도 아동 포르노는 안된다는 편에 서있단 말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은 아동을 성적대상화 시켜버린 엔번방 이고, 아동을 성애화 시킨 성인용 옷이며, 성인을 아동처럼 꾸민 옷차림들이다. 



이 책의 결말에 가까워지면 아주 중요한 단어가 나온다. 스펙트럼. 



이같이 성인 포르노에서 아동 포르노로 넘어가는 현상은 기존의 통념과 정면으로 위배된다. 사람들은 흔히 아동을 보고 성적으로 흥분하는 남자들이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과 행동을 보이며, 다른 남자들과는 별개의 집단을 형성하는 소아성도착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다이애나 러셀Diana Russell과 내털리 J. 퍼셀Natalie J. Purcell 의 철저한 실증적 문헌 분석 결과, 소아성도착자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집단 모델이 두 가지(소아성도착자와 비소아성도착자)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으며, 그보다는 스펙트럼의 형태로 존재한다. 일부 남자는 확실히 한 쪽 극단에 위치하지만, 다른 이들은 다양한 지점에 분포되어 있다. 게다가 이 스펙트럼상에서 남자의 위치는 바뀔 수 있는 데, 특정 시점에 그의 삶의 경험이 어떻게 조합을 이루는지에 따라 이동한다. 러셀과 퍼셀에 따르면, 과거에는 연구자들이 특수한 삶의 경험, 예를 들면 배우자의 상실, 약물 남용, 실직 등을 관련 요인으로 꼽았다면, 최근 연구는 지속적 포르노 이용이 스펙트럼상의 이동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p.313~314



소아성도착 포르노를 보고 소아대상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모두 소아성도착 증상을 가지고 태어난 게 아니었다. 나는 살면서 소아대상 포르노면 볼거야, 나는 그게 취향이야, 그거 보고 아동 대상 성범죄를 저질러야지, 나는 그렇게 태어났어, 가 아니란 말이다. 아동 포르노를 보는 사람들중의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야 그건 아니지'를 생각했던 남자들이라는 거다. 주류  포르노를 보다가 자극에 무뎌지니 곤조 포르노로 옮겨가면서, 처음에는 곤조 포르노의 폭력적인 영상(학대 및 구토)을 보고 뭐야, 이런 걸 왜 봐, 했던 남자들이 결국 곤조 포르노를 보고 흥분했다는 후기를 남기고, 그 자극에도 무뎌지다 보면 '야 아무리 포르노를 좋아해도 아동 포르노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지!' 라고 했던 남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 포르노를 소비하고 만드는 남자들이 되는거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분명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한 그리고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가 나타난다. 게일 다인스도 조심스레 말하고 있지만, '모든 포르노 이용자가 반드시 성범죄자가 된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성범죄자와 대화를 해보면 그들이 성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포르노가 있었음이 밝혀지는 거다. 포르노를 보고 흥분을 하고 포르노를 보면서 강간에 더 힘을 싣는 거다. 나는 그런 포르노 유저들과 달라, 나는 도덕적이며 경계를 분명히 해, 라고 자신하는 남자들이라 하더라도 러셀과 퍼셀이 말하는 바로 그 스펙트럼 내에 있는 남자들이다. '절대 그러지 않을거야'라는 양극단의 끝쪽에 있는게 아니라, 그러지 않는 남자와 성범죄를 저지르는 남자를 끝에 두고 그 사이에 스펙트럼처럼 분포해있는 그 어느 한 지점, 포르노를 보는 당신은 지금 바로 거기에 있다. 그 스펙트럼 내에서 당신은 자칫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분명 '이건 아니지'라고 생각했다가, 감옥에 가는 범죄자가 된다. 



나는 그간 이성애 연애를 해오면서 내 연애 상대들이 그 모두가 포르노를 봤다는 것을 확신한다. 나에게 '포르노를 봤다'고 말해서가 아니라, 내게 했던 말과 행동들 그리고 어떤 요구들은, 내가 그 때 말하지 않았어도 '이 새끼 포르노 보는구나'를 생각하게 했다. 그 당시 생각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들에 대해서도 이 책을 읽다가 여러차례 떠오르면서 '그 새끼도 포르노 본거였네'라는 생각을 했고. 그랬더니 어떤 결론이 내려졌냐면, 내가 만났던 모든 남자들이 포르노를 본거였다. 섹스를 잘했던 놈이나 못했던 놈, 근육이 있거나 살만 피둥피둥하게 있던 놈, 그 모두가 포르노를 보았고 가끔 나와 혹은 나에게 그 영상들 중 어떤 것들을 해보고 싶어했다. 그중에는 '이래도 되는걸까'를 순간 생각하게 할만한 요구들이 있었고, 지금은 나에게 가장 끔찍하게 생각되는 어떤 놈에 대해서는 일부 멘탈이 찢어져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도 하게 만들었다. 어쨌든 확실한 건 그들 모두가, 백프로가 보았다는 거였고, 나는 그런 포르노를 본 적 없었으나, 그들과 함께 포르노 세상에 살고 있었다는 거다. 물론, 


연애하지 않아도 살고 있고. 



'데릭 젠슨'은 자신의 책 《문명과 혐오》에서 자신이 포르노를 잠깐 보고난 후 여자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음을 얘기했더랬다. 알지도 못하는 여자의 음모 색깔에 대해 상상하는 자신이 싫어서 어서 빨리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고백을 했더랬는데, 그 자각이 과연 포르노를 보는 남자들 중에 몇 프로에게나 찾아들까. 이 책에서도 숱하게 언급되지만 남자들이 자신이 끔찍하게 생각했던 성학대 포르노나 아동 포르노를 보면서 '이걸 보는 내가 싫다'고 생각하다가,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시는 안봐' 했다가 결국에 또 보고야 마는 사람이 되어가는데, 그렇게나 인간은 약하고 약한 존재인데, 도대체 그 지독한 포르노를 보면서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얼마만큼이나 타당한 것일까. 그동안 읽어온 책에서 포르노 편에 드는 사람들은 반포르노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성엄숙주의자 나 성보수주의자라고, 성적 자유를 옹호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욕을 한다. 나는 그런 주장들에 '나는 성엄숙주의자가 아니야'라고 반박하고 싶은 마음은 정말이지,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나를 부르는 걸로 내가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깨달은 게 있다면, 나를 정의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나를 혐오자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불러라.

나를 성엄숙주의자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불러라.

나를 고루한 사람, 고지식한 사람, 꽉 막힌 사람, 성적 자유에 반대하는 사람,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면, 그렇게 부르면 된다. 그건 내게 아무런 영향도 없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나만큼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나는 내가 아는 내가 옳으며, 나는 내 편이 될 것이다. 나는 내가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보면서 갈것이다. 포르노가 표현의 자유이고 그걸 보는 것은 성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야말로 성적 자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게 옳다고 믿는다면, 그러면 계속 포르노 보고 살면 된다. 포르노 보는 자신 자랑스러워하면서, 그런 자신을 사랑하면서, 포르노 보고 행복해하면서, 포르노 보고 정액 싸대면서, 그러면서 살면 된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계속 내가 옳다고 믿는 바대로 행할 것이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스펙트럼 내에 존재할텐데, 포르노를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을 양끝으로 놓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이에 스펙트럼으로 존재한다면, 나는 어쨌든 그 스펙트럼에서 반대하는 사람들 쪽으로 사람을 더 끌어오기 위해서 책을 읽을 것이고 글을 쓸것이다. 특히나 젊은 여성들을 위해서 그렇게 할것이다. 지금의 나는 힘이 세지만, 아직 나이도 어리고 사회적 지위도 제대로 얻지 못한 여성들이 강간 문화속에 살고 있는 거 너무 싫어서, 그게 왜 안되는건지 계속 말하고 쓸것이다. 다소 속도가 느려도, 결국은 그렇게 되지 못할지라도, 포르노 멸망하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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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금, 여기에서 생각하기
    from 뒤죽박죽 뒹굴뒹굴 2022-10-25 11:53 
    정리한 책 중에 포르노에 도전한다,(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53926)라는 책이 있다. 스무살 무렵에 구해 읽은 책은 묘한 동감과 또 다른 생경함이 있었다. 자유를 누리려는 사회에 진입한 여자인 내가 가지는 불만들-뭘 그렇게 다 하지 말래!!!짧은 옷도 입지 말고, 담배도 피우지 말고, 남자들이랑 놀지도 말고-과 충돌하고 무언가 삐걱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책 속의 어조의 강경함에, 그
 
 
등롱 2022-10-25 08: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좋은 리뷰예요, 다락방님!
포르노랜드 일찍 읽기 시작했는데 읽기가 힘겨워서 쉬고 있었지 뭔가요. 그런데 이걸 쓰고 연구까지 한 저자는 정말 대단하다고 동감합니다.
마지막 문단에서 보이는 단호한 결의에 박수를 치고 싶네요 ㅠㅠ

데릭 젠슨의 책이 궁금해져서 장바구니에 담으러 갑니다.

다락방 2022-10-25 09:34   좋아요 3 | URL
데릭 젠슨의 책은 무척 좋아요, 등롱 님. 쉬이 책장이 넘어가는 책은 아니지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생각할 게 많은 좋은 책입니다. 좀 두껍지만 천천히 읽어보시길 권해드려요. 두고두고 이렇게 데릭 젠슨의 책을 언급하게 되네요. 후훗.

포르노 연구를 하기 위해 영상도 보고 후기까지 찾아보면서 인류애를 잃지 않고 오히려 이 사회를 어떻게 바꿔나갈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는 저자가 너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저도 멘탈 단단히 붙들어매고 씩씩하게 옳다고 믿는 쪽을 보면서 가야겠다고 새삼 다짐합니다.

미미 2022-10-25 0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영상을 추구하는 포르노사업이 아동을 연상하게 하는 복장을 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아동‘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 전반이 그런 부분을 외면하기 때문에 수많은
아동유괴,성폭력 사건이 가능하지 않나(범죄자들 상당수가 포르노를 봤을것 같은 의혹)싶구요.
다락방님 재독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저에게도 힘든 읽기였지만 문제를 직시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읽기였다고 믿습니다.

다락방 2022-10-25 09:36   좋아요 2 | URL
분명 남자들도 처음에는 학대 영상 보면서 이건 좀 아니다 생각했잖아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그 영상에 대해 끝내준다고 후기를 달게 되고.. 자극에 무뎌져서 더 큰 자극을 찾게 되는 건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성향은 아닐거예요. 누구든 보게 된다면 그렇게 되겠죠. 결국 포르노 시장이 더 학대적이 되고 지금처럼 산업이 커지게 된것도 그런 영향일테고요. 더, 더, 더 큰 자극을 원하는 욕망이요. 물론 그 욕망에 부응하는 영상을 제작하고 유포하는걸 하지 않아야 하지만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돈을 좇다 보니 .. 하아- 포르노를 보는 자들의 멘탈은 찢어지고 포르노를 만드는 자들의 통장은 두둑해지고... 너무 싫어요 미미님 ㅠㅠ

책읽는나무 2022-10-25 09: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곳도 ‘좋아요‘ 백 개를 누르는 곳이 따로 없군요??
예전에 다락방님의 포르노 안돼!!!! 내용의 글을 읽었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이었는데, 포르노를 왜 봐?? 보면 안되지!! 그냥 막연하게 생각만 했었어요.
헌데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아니!!! 포르노를 보는 사람들은 자신도 가학적인 학대를 즐기는 똑같은 부류라는 걸 모르고 보는 것인가?‘
생각이 있는 것인가? 분노의 포르노 금지 🚫 그래서 시선 자체가 바뀌게 되었네요.
그 내막을 자세히 알고 나니 정말, 더욱, 이것은 안될 일이다!!! 정확한 인식이 자리잡힌 계기가 되었습니다.
읽는 동안 멘탈을 바로 잡기가 힘들었는데 다락방님과 얄라님 말씀처럼 이 책을 쓰기 위하여 연구한 작가와 그리고 번역가 모두가 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속이 속이 아니었겠구나!! 그런 생각이 여러 번 들었습니다ㅜㅜ 그래서 어쩌면 이 책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야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비위가 약한 사람들은???-.-;;;;

다락방님의 리뷰는 늘 좋지만,
오늘은 각성도 되고, 더 좋네요^^

다락방 2022-10-25 09:39   좋아요 2 | URL
누군가가 학대당하는 영상을 보고 흥분할 수 있다니, 그 뇌는 얼마나 찢어진걸까요.
인간이란 무릇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면 공감하는거 아니었나요. 그런데 포르노 산업은 여성을 물화시키고, ‘이 여자는 이런 대우가 마땅한 사람이야‘를 주입하면서 강간 문화가 형성되고, 결국 이 시대를 사는 남자들은 여자를 성적대상화 시키는게 체화되어 있죠.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너무 싫고 끔찍해요. 정말이지 그 영상을 보고 누군가 눈물 흘리며 괴로워하는 게 싫어서 ‘이런 영상을 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자각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수두룩하다는게, 결국 더 큰 학대로 흘러 들어간다는게 저는 징그러워요, 책나무 님. 그런 와중에 작가처럼 멘탈을 단단히 붙잡고 해결방법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힘이 됩니다. 저는 그런 힘이 되는 쪽에 서고 싶어요.

책나무 님, 우리는 옳다고 믿는 방향을 보고 또 행동하는 사람이 됩시다!!

거리의화가 2022-10-25 09: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펙트럼이라는 단어 다시 되새기고 갑니다. 읽으면서도 생각했지만 과연 분명한 경계가 존재할까요? 말씀처럼 그렇지 못할 거라고 봅니다. 아동 포르노를 포는 이들이 모두 소아 성애자가 되고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중 그쪽으로 가는 이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시작은 재미? 단순하게 주변 이들이 대부분 보니까 가볍게 시작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요즘 포르노는 결코 가볍지 않고 사람을 자극시키는데 주목적이 있으므로 빠져들겠죠. 이후로는 점점 더 윗 단계를 찾게 될테구요.
저도 스쳐간 남자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남자가 포르노를 당연히 볼거라 생각해요. 어휴. 마음이 갑갑합니다ㅜㅜ
한 번 읽는것도 무척 힘들었는데 재독이셔서 더 힘드셨을 것 같아요. 완독 고생하셨습니다.

다락방 2022-10-25 09:43   좋아요 2 | URL
저는 한 번 읽었으므로 담담히 읽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와 재독도 너무 힘들어서 깜짝 놀랐어요. 이거 .. 활자로 봐도 이렇게 힘든데, 남자들은 어떻게 심지어 영상으로 수차례 볼 수 있을까? 어쩌면 그건 영상속에서 ‘당하는 쪽‘에 이입하기보다 ‘가하는 쪽‘에 이입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이 책에서도 예로 들어지지만, 만약 백인 남성이 흑인 남성을 그렇게 구토가 나올 정도로 학대한다면 어떨까요? 한 남성이 다른 남성을 그렇게 성기가 찢어지고 피가 날 정도로 학대하는 영상이라면, 남자들이 그렇게 중독되어서 볼까요? 결국 나보다 약한 자를 학대하는 쪽에 이입하기 때문에 볼 수 있는게 아닌가 싶어요. 저는 영상 속에서 학대 당하는 쪽에 이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영상이 그저 성적 자유, 표현의 자유를 위한 것이라고 결코 생각할 수가 없어요. 결국 영상 속의 저 학대가 실생활의 여성들에게 고스란히 올 걸 생각하면, 저는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영상 보고 그걸 실제에서 하려는 남자가 극히 일부라고 해도, 우리가 만나는 남성이 그 일부일지 아닐지 어떻게 아나요?

포르노 산업을 망하게 하는 방법을 찾고 싶네요. 포르노에 투자했다가 쫄딱 망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ㅠㅠ

공쟝쟝 2022-10-25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속 시원히 터지는 글 잘 읽었어요! 저는 중독 문제 관심 많아서 중독이랑 연결해서 읽고 페이퍼 남기려고 하는 중인데 … 모든 것은 중독이 될 수 있고 중독은 한번 망치기 시작하면 돌이켜지지 않아 뇌에 치명적이며 특히 청소년 뇌에 치명적이라는 거에요. 포르노에 찌든뇌는 혼자 힘으로 해결 하기 힘들어요 ㅠㅠㅠ
책 카피처럼 그남들은 포르노로 학습하고 엔번방을 만들었고 아주 뇌가 어떻게 썩어서 여자들은 어떻게 대하는지 이젠 경험적으로 똑똑히 알아요. 인간을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지 말고 어떤 기준은 사회가 더 나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과감히 버리고 뜯어고쳐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런 목소리도 내야 하고요. 이번달도 고생 많으셨씁니다!

다락방 2022-10-25 10:46   좋아요 2 | URL
포르노에 찌든 뇌가 어떻게 혼자 힘으로 해결되겠어요. 포르노에 찌든 뇌는 그야말로 멍청함과 게으름이 가득한 뇌이고 그것은 결국 악을 불러오겠지요. 더 큰 자극을 주는 영상을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것, 그리고 폭력으로 이어지는 악으로요. 영화 <돈 존>보면 포르노에 찌든 남자 나오는데 이 책에서 언급하는 바로 그런 전형적인 남자예요. 결국 여자친구와 섹스도 제대로 못하고 포르노를 봐야만 섹스하는 남자가 되지요. 그런 남자가 그것은 제대로 된 섹스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여자를 만나면서 달라지게 돼요. 저는 이것은 좀 지나치게 긍정적인게 아닌가 하는데 어쨌든 남자가 여자와 나누는 교감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고 그걸 좋아하게 됩니다. 감독도 조셉 고든 래빗 주연도 조셉 고든 래빗. 우리 조 토끼..

이 포르노 세계를 부숴버리고 싶은데 정말 너무 거대한 산업이라서(책 읽다 보면 아마존도 언급됩니다..) 도대체 개인인 내가 어떻게 부술수 있단 말인가 싶거든요. 어쟀든 이런 책을 써주는 사람이 잇으니 저는 이런 책이 있다는 것만이라도 알려야겠죠. 사실 저는 제일 좋은 방법은 여자들이 비혼,비연애,비섹스에다가 모두 탈코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게 일단 가장 눈에 보이는 효과를 만들지 않을까 싶어요. 노출 심한 옷 입고서 이건 내 자유야~ 해봤자 남자들은 그런 여자를 성적 대상으로만 보지 ‘아 자유로운 영혼이다‘ 보지 않을테고요, 결국 우리 여자들이 남자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섹시하고자 하는 그 욕망 자체를 내던져야 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래디컬 화이팅임요!!

라파엘 2022-10-25 1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해요. 교육의 영역에서, 학습이 목적이고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성적인데, 학습이 아니라 성적이 목적이 되면서 교육 자체가 엉망이 되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성의 영역에서도, 사랑이 목적이고 사랑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게 쾌락인데, 사랑이 아니라 쾌락이 목적이 되면서 성의 영역 자체가 엉망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해요. 즉, 단순히 포르노 산업을 제재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효과만을 추구하도록 하는 현대 사회의 주류 이념에 대해 직접적인 문제 제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락방 2022-10-25 10:41   좋아요 3 | URL
라파엘 님의 댓글을 읽으니 어제 친구가 보내줘서 보게된 영상이 생각나네요. ‘지나영‘ 교수의 내적동기와 외적동기에 대한 영상이었거든요. 공부를 하는 것이 나의 내적동기가 작용해야 하는 것인데 지금 우리 교육은 외적동기만으로 움직인다는 거죠. 성적 오르면 뭘 해줄게, 대기업에 가면 고액연봉이 와. 이런 식이면 그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이 외적동기 뿐인건데 인간 누구에게나 내적 동기-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거였어요. 이 가족내에서 그리고 이 조직에서 나는 조금이나마 내 역할-기여를 하고 싶다는 게 작용해야 하고 결국 인간의 행동은 그것으로 발단되어야 하는것인데 계속해서 외적동기로 푸시하면 내적 동기는 사라지게 된다는 거죠. 결국 그것은 성인이 되었을 때 외적동기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만들고요. 제가 친구를 만나 젊은 친구들이 입사하면 자신이 생각하는 가성비로만 일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을 했거든요.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가르친 일만 딱 하는 것이 전부인 것에 대해서요. 그러다보니 친구가 외적동기 내적동기 영상을 보내주더라고요. 라파엘 님의 댓글에서 학습이 목적이 되는 것은 내적동기가 작용해야 하는 부분인데 성적을 목적으로 만들어버리면 외적동기로 움직이게 되는거잖아요.

쾌락도 마찬가지죠. 내가 너랑 사랑하면서 따라오는 게 쾌락이고 그것은 내적동기죠, 그 내적 동기를 기여라고 봤을 때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감정, 너를 사랑하고 사랑받고 쾌락을 주고받고 싶다는 것은 나의 내적동기의 움직임인데, 쾌락이 목적이 되는 것은 그야말로 외적동기가 될테고요. 교육에서부터 성적인 쾌락까지 전부 외적동기로만 흘러가고 있네요, 세상이.

라파엘 님, 댓글 참 좋아요. 그리고 고마워요!

라파엘 2022-10-25 10:58   좋아요 1 | URL
제가 경제적 영역까지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만, 직업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도 다락방님께서 말씀해주시는 게 정말 맞아요. 그것을 철학에서는 내재적 목적과 외재적 목적이라고 표현하고, 심리학에서는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라고 표현합니다. 다락방님, 좋은 글 항상 감사해요.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항상 건강 잘 챙기시고 좋은 한 주 보내세요!! ^^

다락방 2022-10-25 12:38   좋아요 3 | URL
아! 내적 동기 외적 동기가 심리학 용어였군요! 저는 그런 줄은 몰랐고 지나영 교수가 자신의 철학을 말하는데 나오는 용어라고 생각했어요. 오, 이렇게 알고 갑니다.

그런데 저는 왜이렇게 라파엘 님이 예쁠까요?

이만 총총.

건수하 2022-10-25 1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 읽는 것도 힘들었지만, 어떤 글을 써야할지 어려워서 계속 글을 미루고 있어요.
이 책이 아무에게나 권하기에는 부담이 되지만.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데.. 뭘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어요.
보통 그럴 땐 다시 읽어보기도 하는데 다시 읽기에는 좀 지쳤구요.

성학대 포르노나 아동 포르노를 보면서 ‘이걸 보는 내가 싫다‘고 생각하다가, ‘이번이 마지막이야 다시는 안봐‘ 했다가 결국에 또 보고야 마는 사람이 되어가는데, 그렇게나 인간은 약하고 약한 존재인데

에서 포르노를 로맨스로 바꾸면 얼마 전의 제가 되어서.. (그렇게까지 싫어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인간이 나약한 존재라는 것에 동의해요. 그래서 자본주의를 마구 미워하다가.. 자본주의가 아니라 무엇이라도 언제나 거대한 악이 존재하겠지 하며 다른 생각을 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다락방님 글은 언제나 참 좋아요. 제가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이유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아직 나이도 어리고 사회적 지위도 제대로 얻지 못한 여성들이 강간 문화속에 살고 있는 거 너무 싫어서‘ 가 하나의 긍정적인 원동력이 된답니다.

공쟝쟝 2022-10-25 11:0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 수하님 로맨스 끊으면 포르노 못 끊어낸 남성들 더 잘 팰 수 있다 ㅋㅋㅋ (어이, 쟝쟝 그거 아니야 ㅋㅋㅋㅋㅋ) 저는 무럭무럭 자라서 저의 원한과 복수심을 내려놓고 수하님 말마따나 긍정적 원동력 찾는 일에 매진할래요~💕 수하님 고생 많았어요!

다락방 2022-10-25 11:15   좋아요 4 | URL
이 책이 다시 읽기에는 지치는 책임에는 틀림없습니다. 2년 후에 재독하는 저도 재독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런데 재독을 하니까 처음보다 더 잘 읽히기도 하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더 잘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이 책 재독하고 이 리뷰를 쓰면서 ‘사실 모든 책은 재독해야 하는거 아닐까‘라는 생각도 잠시 했습니다.

저는 로맨스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포르노가 남성의 성문화를 대표하는 것처럼 로맨스가 여성의 성문화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로맨스를 좋아하는 이유중에 가장 큰 이유가 거기에는 상대의 마음을 얻고자 하는 인물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 마음과 그리고 그 과정의 애씀이 성인 여성과 남성 사이에 애정으로 표현된거긴 하지만, 저는 궁극적으로 느껴야 할 성적인 쾌락이 로맨스로부터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성애 로맨스를 보는 자신에 대해서 약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인간의 모순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저는 그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사실은 포르노를 보는 남자들이야말로 로맨스를 봐야 하는건 아닌가 생각하고 있어요. 네가 원하는 궁극적인 쾌락은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 사랑을 나누면서 발생될 때 극대화된다, 그리고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쓰는 시간과 노력은 설사 상대로부터 보상받지 못한다 해도 내 자신에게 축적된다, 이런 메세지를 충분히 받아내야 할것 같고요. 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영화 보면 그 유명한 대사 나오잖아요.

˝당신은 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어요.˝

저는 로맨스가 가져오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로맨스가 추구하는 것도 이것이고요. 그러나 포르노는 나를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들게 하는게 아니라 상대를 침략할 생각을 하게 만들죠. 결국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이 행복한 끝이다, 라는 결말은 옳다고 할 수도 없고 그런 환상을 주입시키는 것도 좋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로맨스를 좋아하는 자신에 대해서 본인을 미워하진 않아도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로맨스를 보지 않아야 포르노 유저를 팰 자격이 주어진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저는 이미 이 나이가 되었고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위치에 있고 .. 무서운 게 별로 없어요. 그렇지만 이런 저도 어린 시절을 거쳐 대학생 그리고 사회 초년생일 때 아주 많은 것들을 참아야 했고 견뎌야 했어요. 또 웃어 넘겨야 했고요. 그런 세상을 지금의 젊은 여성들은 살지 않을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저에게도 그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랍니다, 수하 님.

건수하 2022-10-25 13:3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댓글에 제 마음이 조금 약간 편해졌어요. 저도 ‘마음에 관한‘ 것이라서 로맨스를 좋아해요. 그렇지만 로맨스에서는 여성들이 수동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고, 그것이 여성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는 생각에 불편할 때가 있어요.

제가 오늘 <노생거 사원>을 다 읽었는데 이 구절에 마음이 좀 걸렸다가.. 다락방님 댓글을 보니 이 구절이 다시 생각나서 적어봅니다.

사실 그의 애정이 고마운 마음에서 비롯되었음을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오로지 그를 향한 캐서린의 각별한 애정에 설득당해서 그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로맨스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며, 여주인공의 품위가 끔찍하게 손상된다는 점은 나도 인정하는 바이다. 만약 이게 평범한 삶에서도 새로운 일이라면, 터무니없는 상상을 펼친 책임은 전적으로 작가인 나의 몫이 될 것이다.

연애 관계에 있어 왜 사람들은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만만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을까요. 나를 좋아해주는 감사한 사람인데. 사실 사람들이 진짜 그런 건지는 모르겠고 드라마나 영화나 그런 곳에서 더 부추기는 느낌이 있어요. 포르노에서도 비슷한 것 같아요. 마음대로 되는 사람은 쉽게 생각하고 무시하는.

다락방 2022-10-25 14:12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수하 님. 제가 고등학교 시절 한참 읽었던 할리퀸 로맨스에서는 남자는 성경험이 풍부하고 여자는 죄다 처녀였어요. 한 번도 섹스해보지 않은, 그건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남자는 우위에 있었죠. 그런 남자 앞에서 수동적인 여성인 것도 그러했고요. 멋진 남자는 구릿빛 피부의 단단한 근육을 가진 부자 남자.. 라고 생각했는데 로맨스는 바로 그 지점에서 판타지였죠. 그런 남자는 없. 다.

시간이 흐르면서 로맨스에서도 여성들이 자기 입장과 권리를 알고 당당하게 주장하기도 하면서 더 나아지고 있지만(정말 많이 나아졌어요), 그래도 제게는 여전히 부족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남자의 사랑을 원하고 남자가 사랑해주는 것만이 행복한것처럼 그려지는 건 정말 별로죠. 그런 점에서 이성애 로맨스는 세뇌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로맨스에서 발생하는 오해, 이해, 공감, 서운함 같은 것들을 좀 지금의 남자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감정이 있고 당연하게도 여자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사람이고, 그러므로 우리가 나누어야 할 것은 교감이지 쾌락만이 목적이어서는 안된다!! 하는 걸 좀 알았으면 좋겠어요.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을 만만하게 여긴다는 건 유구한 전통이랄까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잡은 고기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 라고요. 아 너무 구역질 나는 말 아닙니까.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그리고 나와 다정하게 지내는 사람에게 더 잘하려고 애쓰고 노력해야죠. 그렇게 관계를 유지해야죠. 저는 어느 한 쪽만 다정한 관계가 오래 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인간은 그런 걸 그렇게 오래 견딜 순 없는 것 같거든요. 포르노는 그런 모든 감정, 애씀을 모두 배제하고 다만 학대 당하는 성적 대상이 있을 뿐이죠. 어느 순간 그것이 잘못인줄도 모르는채로 무감각해진 그걸 보는 남성들과. 교감을 바라는 여성들은 포르노에 중독된 남자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요? 휴..

단발머리 2022-10-25 12: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번에 재독이었는데 새롭게(?) 발견한게 아동 성도착자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라는 거였어요. 그 때도 놀랐을텐데 그 때는 워낙 충격적인 장면들의 연속이어서요. 이번에는 확 다가오더라구요. 더 큰 자극을 원하는건 인간의 본성이고 멈출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럼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고요. 포르노 관련 여성주의내의 다툼에서 결국 포르노 지지 쪽이 승리했잖아요. 성과 관련된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는 쪽이 ‘자유‘라는 기치 아래, 성을 향유할 수 있는 여성의 권리를 강조했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고 보는데요. 성을 누리는 것을 넘어서, 성관계하는 사람 간의 복잡한 역학 관계 속에서 ‘유해하다‘는 기준을 우리가 어디쯤에 두어야 하나, 폭력의 하한선을 어디까지 둘 수 있는가,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이야기 나누는 동안 성착취물들이 계속 만들어지고 유포되고 하니까요. 돈의 미친 질주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을지.... 그게 참 어렵습니다. 우리 다 망했어,라는 친구의 말도 메아리쳐 들려오고요.

읽기 힘든 책을 두 번이나 읽고 이런 페이퍼까지 쓰시느라 수고많으셨어요. 댓글들까지 모두 배울게 많아서 한줄한줄 천천히 읽었습니다.
포르노 없는 세상을 위해서 우리 같이 힘내보자고요.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행복하고 진지한 인간간의 사귐에 대해서도 우리 더 많이 이야기하고요.

다락방 2022-10-25 13:56   좋아요 3 | URL
성엄숙주의도 성자유주의도 결국 여성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던것 같아요. 엄숙주의라고 한다면 함부로 남자들하고 섹스하고 다니지 마라, 순결을 지켜라가 될테고 자유주의라고 한다면 섹스를 거절하는 것에 대해 너 왜 그렇게 꽉 막혔어 너 설마 혼전순결이야? 하며 자유롭게 섹스하는 방향으로 억압하고요. 그 자유는 그렇다면 누구를 위한 자유일까. 가장 중요한 건 여성들 스스로가 주체적이 되는 것,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욕망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지금과 같은 포르노 월드, 강간문화의 월드에서는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겠죠.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내가 사랑하는 그리고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남자의 관점을 내재화 해 바로 그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분해하고 타자화하는 것 같아요. 저도 이 큰 세상,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리고 포르노 월드에서 제가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어떻게 이 엄청난 포르노 산업과 싸울 수 있겠습니까. 게일 다인스도 책에서 그러잖아요. 개인적으로 맞서는 것 말고는 사실 자기도 방법을 모르겠다고요. 저는 제가 혼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한다고 해도 포르노 산업을 멸망시킬 순 없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한다면 엔번방은 계속 만들어지고 디지털성폭력 피해자 역시 끊이지 않겠죠. 저도 어느 한 순간 인류가 모두 죽고 사라져야만 이 비극이 끝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저는 살아 있고 그리고 저보다 젊은 여성들이 살아 있으니, 그렇다면 좀 더 안전하게 살게 하고 싶어요. 게일 다인스는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고, 저는 그렇다면 이런 책을 소개하고 제 생각을 쓰고 그렇게 사람들에게 전달하면서 현실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에만 하더라도 이 책을 함께 읽었더니 그동안 막연하게 포르노를 생각했던 분들이 포르노의 잔인한 현실을 알게 되셨잖아요. 모르는 것보다 아는게 낫고 안다면 또 어떤 부분은 행동으로 이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저는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면서 서로 사랑하고 진지하고 또 쾌락까지 가져오는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또 믿고 있습니다. 힘내서 나아갑시다, 단발머리 님!

독서괭 2022-10-26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재독하고 이런 멋진 리뷰도 써주시고,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어요!
저도 스펙트럼이라는 말이, 특히 아동포르노에 있어 그렇다는 말이 충격적이었어요. 여기까지는 되고 저기부터는 안 된다는 말이 얼마나 경계해야 하는 것인지 깨달았어요. 전반부의 노골적인 묘사를 보는 괴로움을 넘고 나니 중,후반부는 저자가 글을 설득력 있게 잘 썼다는 것에 집중하게 되네요. 남성들도 포르노산업의 피해자로서 진술하는 내용도 인상 깊었어요. 저자의 노력이 널리널리 영향을 미치면 좋겠습니다.

다락방 2022-10-27 15:40   좋아요 1 | URL
우리가 간신히 붙잡고 있는 윤리의 선이 자칫하면 부서지거나 지워지기 쉬운 것 같아요. 인간은 자기중심적이기 마련이니, 이정도까지는 그래 이만큼은.. 하고 풀어놓는 건 순간일 것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에 자각이 들어 와 이건 아니지, 했다면 다시는 그 길로 가지 않는게 맞지요. 모두가 그렇지 않은거야 너무 당연하지만 그러나 우리가 어떤 지점에서 약한지를 우리는 끊임없이 들여다봐야 할 것 같아요. 포르노를 보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밖에 보지 않는게 자연스러워지고, 그건 결국 여성과의 관계맺기에 애를 쓰지 않는걸 뜻하는 것 같아요. 애를 쓰지 않음, 애 쓸 필요가 없다는 것, 여성의 성은 그저 내가 갖고 싶다면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 사고의 멈춤을 어떻게든 열리게 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요. 그건 어떤 식으로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답답하고 갈 길도 멀고, 게다가 그렇게 생각이 멈춘 상태로 살아가라고 포르노 산업이 거대한 힘을 쏟아붓네요.

답답한 읽기 였지만 정말 잘한 읽기였어요. 독서괭 님, 우리는 우리가 옳다고 믿는 방향을 보고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