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욕 - 바른 욕망
아사이 료 지음, 민경욱 옮김 / 리드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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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성욕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주류 사회에서 자신이 얼마나 배제되는지를 얘기하는 건, 현재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고 성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거야 뭐 너무나 당연하지만, 그런데 그들이 그토록 힘들다는, 소수자라는, 연대를 말하는 사람들의 안중에도 없는 훨씬 뒤에 숨겨진 사람들이라는 주장에는 수긍이 가지 않는다. 그들이 소수가 아니라는게 아니라, 그들이 가진 이상 성욕이 그렇게나 숨겨야 할 일인가, 그게 그렇게 이 세상에 나 혼자야 할 일인가 싶은거다. 책 속 등장인물들의 주장대로, 어쩌면 내가 가진 페티시즘은 그 역시 너무나 주류이기 때문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일 수 있다. 나는 기껏해야 뭐 전완근이나 등근육이니까. 그들은 자신의 이상 성욕으로 인해 친구도 없고 연애도 할 수 없다고 수도없이 반복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성격 문제인 것 같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인간에게 하다 못해 동물에게도 해를 입히는 이상 성욕이 아니라 생명도 없는 거잖아? 물론 그 이상 성욕 실현을 위해 과도한 행동을 취하다가 법을 위반하게 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그건 벌을 받는게 마땅한 것이고. 


작가가 주장하는 바는 '사람좋은 너희들이 연대를 주장하지만, 감히 너희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소수자들이 존재한다'인데, 주장 자체는 참이지만 소재에 딱히 그 주장을 뒷받침할 타당함이 나로서는 딱히 안느껴지고, 무엇보다 조금만 삐끗해도 아동성애 역시 이상 성욕의 하나인 것처럼 포장하는 걸로 들릴 수 있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내가 아동 성애자들에게는 너희들이 모르는 다른 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 같은 책, [달의 영휴] 졸라 싫어했는데, 이 책에서도 '아동성애자로 오해받을 수 있지만 그게 아니야' 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아서, 게다가 '그렇게 보이지만 그들에겐 그게 아니라 다른 사정이 있다니까' 하는 것 같아서 나로서는 영 찜찜하다.


그들의 이상 성욕이 그동안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주류에게 '이상' 성욕인 건 맞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해서 내가 '으.. 이상해 사람들 제정신 아니야' 라고 하지 않는다니까? 오히려 동물 성애가 더 받아들이기 힘들다. 뭐가 그렇게 불안한지 계속 반복해 얘기한다. '연대를 부르짖는 너희들이 상상 못하는 존재가 있다는 걸, 너네들은 모르지!!' 


내게 이 책은 과하다.

이 책을 읽기 전으로 결코 돌아갈 수 없다는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나에게는 지나친 과장이다. 

이 책은 여자사람들에게는 딱히 영향을 미칠 게 없을 것 같고, 그러나 남자 사람들은 한 번쯤 읽는게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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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4-04-03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만 더 기다릴 걸.. 지금 오고 있어요. 흑

잠자냥 2024-04-03 10:43   좋아요 0 | URL
조금만 더 기다릴 걸.. 이미 와 있어요. 흑

다락방 2024-04-03 11:39   좋아요 1 | URL
다른 분들 리뷰는 다 좋으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저는 뭐랄까, 그렇게 징징대지 않아도 되는데 너무 징징대는 느낌이랄까요? 다른 사람들이 짐작도 못하는 이상 성욕에 대한 스스로의 불안과 고통은 알겠지만, 아니 그런데 그 이상성욕이 이렇게 자기 자신을 몰아붙일 일인가 싶었어요.
작년엔 동물 성애에 대해 알게 됐다면 올해엔 또 다른 이상 성욕을 알게 되었다는 게 수확.. 이라면 수확일 수 있을까요..

blanca 2024-04-03 12:13   좋아요 1 | URL
소설에서 작가가 자신만의 주장을 강요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 저는 확 거부감이 들더라고요. 아, 요새 인내심이 바닥인데...

다락방 2024-04-03 12:15   좋아요 0 | URL
블랑카 님은 저보다 더 잘 읽어내시고 좋은 글 쓰실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제가 도무지 좋아할 수 없는 성격의 인간들이 여기 너무 나와서 싫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orgettable. 2024-04-03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소재였군요….

다락방 2024-04-03 11:40   좋아요 0 | URL
저도 이런 소재인줄 모르고 봤고 확실히 제가 생각하기에 광고는 지나치게 과장되었습니다. 으..
그런데 뽀는 나랑 대부분의 독서에서 감상이 다르잖아요? 그러니 읽으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건수하 2024-04-0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을 뒤흔든 화제의 베스트셀러 라는게 그런 뜻이었군요...
이상성욕이라고 말하는 것부터가 좀 꺼려지긴 했었어요.

그렇지만 중간값이라면 어디든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아요.

잠자냥 2024-04-03 11:02   좋아요 1 | URL
건수하 님도 이상성욕 아닌가요?
이상하게 성욕없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건수하 2024-04-03 11:03   좋아요 1 | URL
이상하지 않고 그냥 성욕없음. 😸

다락방 2024-04-03 11:41   좋아요 1 | URL
이성애 혹은 동성애등의 인간에 대한 성욕 없음은 이상한 게 아니라고,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회 때문에 이들이 힘든거라고 작가는 계속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귀기울여 들을만하지만, 여하튼 과합니다, 제게는. 으..
이거 도대체 왜 일본을 뒤흔든 베스트셀러... 일본 도대체 이걸로 왜 뒤흔들림? 잘 모르겠습니다. 저라는 인간도 뒤흔들지 못하는 책입니다.

은오 2024-04-03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하다”ㅋㅋㅋㅋㅋㅋㅋㅋ깔끔하고 확실한 제목!! ㅋㅋㅋㅋㅋㅋㅋ
휴... 저도 이 책 담아놨는데 아직 안 사서 다행이네요. 다른 평 더 올라올 때까지 기다려봐야겠어요.
근데 다락방님 리뷰 읽으면서 아니 그니까 그 이상성욕이 뭐길래?! 하는 궁금증은 좀 생기네요?! 또 한편으론 이런 주제에 대해선 제가 다락방님이랑 비슷하니까 저도 다락방님이랑 비슷한 느낌을 받을 것 같기도 하고요.

잠자냥 2024-04-03 10:47   좋아요 1 | URL
내가 읽어볼게~ ㅋㅋㅋㅋ (근데 지금 읽는 거 다 읽어야 함;)

건수하 2024-04-03 11:03   좋아요 1 | URL
이런 주제에 대해서 다락방님과 비슷하다는게 무슨 뜻인지…. 은오님은 무성애자고 다락방님은….??

다락방 2024-04-03 11:42   좋아요 2 | URL
그 이상 성욕이 뭔지는 책을 읽어봐야 알 것이고 여하튼 특이(?)하긴 하기 때문에 제가 괜히 스포일러 하지 않으려고 쓰진 않았습니다만, 그런데 그 이상 성욕이 그렇게 자기 자신을 좀먹을 일인가 싶긴합니다. 여하튼 여러가지로 과해요. 등장인물 중 마음에 드는 인물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4-04-03 12:36   좋아요 1 | URL
수하 님/ 페도필리아나 트젠 말하는 거 같은데… 트젠에 대해서는 은바오 다락방 급진적인 두 여성이 통합니다. ㅋㅋㅋㅋㅋ

건수하 2024-04-03 13:06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굳이 분류가 필요하지 않다-인 줄 알았는데.... 여튼 읽어보기 전까진 뭐라 말하기 어렵네요. 잠자냥님의 리뷰도 기대합니다~

은오 2024-04-04 05:33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 댓글이 맞읍니다 수하님~!!
그리고 다락방님도 s/m플레이 이런거 싫어하셨던 거 같은데 아닌가...?! 아무튼 저는 항문성교도 싫읍니다~!! 제가 하는거뿐만아니라 이런건 여자한테 유해한 성문화라 싫어요ㅠ

다락방 2024-04-04 09:1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은오 님과 저는 싫어하는 성적 행위가 같습니다. 흠흠.

잠자냥 2024-04-04 10:26   좋아요 1 | URL
아니 그건 대부분 싫어하잖아?! ㅋㅋㅋㅋㅋㅋ(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안 되지... 음)
암튼 그런데 은오야 넌 왜 BL마니아야??? 항문성교 싫다면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4-04-04 10:34   좋아요 1 | URL
대부분 싫어하지만 그걸 또 옹호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니 그래서 제가 bl도 섹스보다 서사 위주인걸로 골라봤다고요!!!! ㅋㅋㅋㅋㅋㅋ
bl은 근데 이성애로맨스물보다 소재가 다양하고 ㅋㅋㅋㅋ 한쪽이나 둘다 게이가 아니었는데 둘이 사랑하게되는 그런 과정 보는 재미가있읍니다ㅋ 남-녀라고 생각하면 빻은 소재도 남-남이라 안거슬리는것도 좀 있고요. ㅋㅋㅋㅋ
bl 잠깐 본 시기가 있는거지 마니아는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4-03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찜찜하다!! 딱 그럴 것 같아요!

다락방 2024-04-03 11:42   좋아요 0 | URL
너무 과하고 너무 징징대요. 으..

잠자냥 2024-04-03 10: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두껍던데 금방 읽었네요? 성욕이란 단어에 꽂혀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페티시즘˝이라고 해봤자.. 별 거 없을 거 같기는 한데, 뭔가 색다른 페티시즘이 있는걸까??
일단 페도필리아는 나오는 것 같군요? 그건 좀 싫은데.... 흠..

다락방 2024-04-03 11:43   좋아요 0 | URL
색다른 페티시즘이긴 합니다만, 근데 이렇게 괴로워한다고? 싶습니다. 제가 보기엔 동물이나 아이에 대한 거에 비한다면야 완전 깔끔하고 건강한데요.
이거 완전 책장 잘 넘어가요. 잠자냥 님 하루만에 끝내실듯요.

에디터D 2024-04-03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못 돌아갈까봐 안읽고 있었는데 읽어봐도 되겠군요^^;;

다락방 2024-04-03 11:44   좋아요 0 | URL
그런 걱정 내려두시고 읽으셔도 됩니다!! 돈 워리!!

단발머리 2024-04-03 15: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간의 다른 사정....에 대해 궁금하기는 한데, 아무래도 예상이 되기는 합니다. 다른 분들 평을 좀 더 기다려봐야겠어요.
제목이 다 한 페이퍼 <과하다>!!! 다락방님 바로 퇴근하시도록!!!

다락방 2024-04-04 09:15   좋아요 1 | URL
음 예상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기는 합니다만(아마도??), 그게 그렇게 뭐 치명적으로 숨겨야할 것인가 싶기는 합니다. 저는 그래서 그들의 소수자성에 대한 압박감도 지나치게 과했다는 생각이 들고 이야기가 전반적으로 다 과하게 느껴집니다. 아무튼 과합니다. 제목은 근사했는데 말이지요. 하하하하하.

blanca 2024-04-05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락방님 리뷰 읽고 다 읽고 나서 과했다 생각에 동의하게 됐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인 건 맞는데... 위험한 메시지가 숨어 있네요. 작가의 나이를 확인하고... 필력도 인정하고 상상력도 인정하지만, 균형을 잡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는 우려가 들었어요.

다락방 2024-04-07 22:00   좋아요 0 | URL
제가 과했다고 생각하는 지점에는 작가의 여러번 반복과 강조하는 말하기가 포함됩니다. 뭐랄까, 자기 메세지를 전하기 위해 지나치게 반복한다고 할까요. 독자가 한 번 말하면 이해하지 못할거라 생각하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러가지로 과한 책이었습니다. 블랑카 님 글 읽으러 가야겠어요.
 
유대인의 역사
폴 존슨 지음, 김한성 옮김 / 포이에마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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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기원, 그에 앞서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는 것은 도움이 될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팔레스타인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읽는데 오래 걸렸지만 읽기를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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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3-29 16: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천페이지 책 뽀개버린 다락방 입니다. 훗.

햇살과함께 2024-03-30 09:17   좋아요 1 | URL
역시 멋지십니다!! 완독 축하드려요 저희집에 폴 존슨의 기독교의 역사 있는데 독서대 받침용으로 잘 쓰고 있어요 ㅋㅋ 이제 듄 가시나요?

단발머리 2024-03-30 09:29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 제가 오래전부터 찜해둔 책입니다. 두꺼운건 저도 알고 있었는데, 우아.... 천페이지에요? 저, 그럼 한 번 더 생각해보는걸로 할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님 / 다정한 분이신줄 알았는데 의외입니다ㅋㅋㅋㅋㅋ 이제 막 <유대인의 역사> 끝낸 사람에게 ‘듄 가시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빡센 자세 저도 배워야겠어요. 다락방님, 얼른 듄 읽으세요! 촤락!

잠자냥 2024-03-30 09:50   좋아요 1 | URL
이제 듄 가니?! 🤣🤣🤣

햇살과함께 2024-03-30 10:04   좋아요 0 | URL
주말엔 쉬고요 1일부터!! ㅋㅋㅋㅋ

다락방 2024-03-30 11:39   좋아요 2 | URL
저기 얘들아? 좀 진정해줄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행선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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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살 대학생 '앙주'는 16살 소년 '피'의 프랑스어 과외 선생님이 된다.

피의 아버지는 벨기에에 거주하는 피가 프랑스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프랑스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봐야 하는데 독서장애가 있어서 프랑스어 과외가 필요하다며 앙주를 고용한거다. 그렇게 앙주는 피에게 문학 작품을 읽도록 시키고 그동안 책을 읽어본 적 없었던 피는 이 과외 덕분에 책을 읽으며 그 책에 대한 감상을 앙주와 나누고 둘은 친밀한 관계가 된다. 앙주는 우정이라고 계속 강요하지만 피는 자꾸만 사랑을 이야기한다. 


19살과 16살 사이에는 고작 3년이라는 나이차이만 존재하지만, 그러나 어떤 경험치냐에 따라 그 차이는 아주 크게날 수 있다. 처음 책을 읽어보는 피에게 책은 싫은 것이었다가 재미있는 것이었다가 이제 앙주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을 자꾸 만나러 오게 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아, 문학 작품에 대한 얘기로구나, 하고 이 책을 읽어나가다가 세상에, 이 짧은 책 한 권에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책장을 넘기면서 놀라게 된다. 그러니까 앞부분만 읽었을 때, 과외를 시작하고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한 얘기들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그 나름대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잔뜩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이를테면, '만약 내가 책을 읽어본 적 없는 사람에게 책을 추천한다면, 그 책은 어떤 책이어야 할까' 하는 것들. 그러나 그것 외에 아니 그것보다 더 많은 할 이야기가 이 책으로부터 나온다.


-책 이야기

물론, 당연히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교사라고 해봐야 고작 19살이고 책을 읽어야 하는 학생은 16살이다. 그런데 이들이 읽는 책의 목록이 대단하다. 시작이 '스탕달'의 [적과 흑]이며 그 다음 읽는 책이 세상에 [일리아스] 라니까? 독서인생이 그들의 두 배가 넘는 나도(계산하지 말도록 하자) 아직 일리아스를 안읽었는데? 게다가 그들이 나누는 대화도 심오하다. 단순히 재미있다 재미없다 정도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뜻을 분석하면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넌 모든 것에 답을 갖고 있구나」 내가 웃으며 말했다.

「나쁜 거예요?」「그보다는 네 한계를 보여 주지. 오류가 있을 수 없는 추론은 스스로를 유효화해 추론 그 자체 속에 닫혀 있는 것, 그게 바로 우매함의 정의야.」 -p.96


아니, 이 젊은이들이 나누는 대화 이게 대체 무슨일이야.  조금 더 볼까?


「실망스럽긴 했겠지만, 그렇다고 그딴 걸로 엄마에대한사랑을 접다니, 정말이니?」「누군가를 업신여기면서 사랑하긴 어려워요.」 -p.99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이 열여섯살 소년이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누군가를 업신여기면서 사랑하기 어려워요, 라니. 그러네, 정말 그러네. 업신여기는 사람을 사랑할 순 없지. 이 소년, 책 한 번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삶을 알아? 대단하다.. 그래서일까, 책 읽기 시작하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책 속에 담긴 뜻을 그 재미를 깨닫는다. 이들이 나누는 책들에 대한 이야기, 적과흑, 일리아스, 변신, 육체의 악마, 클레브 공작부인에 대한 감상들이 너무 재미있다. 육체의 악마가 여기에 나오는구나. 내가 또 다 사놨지.



-(남)교수와 (여)제자

그러나 책 이야기만이 이 책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다. 책 이야기만으로도 사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은 재미있게 읽을 순 있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 그런데, 아멜리 노통브는 남교수와 여제자의 사랑 이야기를 여기에 집어넣었다. 불러들였다, 는 편이 더 좋을 것이다. 다른 학생들이 싫어하는, 이 친구 하나 없는 '앙주'를 비교신화학 교수가 눈여겨보고 접근하는거다. 따로 만나 이야기를 나누자고 불러내는데, 그의 유혹에 나는 가슴 졸였다. 안돼, 허락하지마. 오십대 남자교수를 네 인생에 들이지마, 라고. 

그런데, 우리의 앙주, 교수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자를 유혹하는 건 비열한 짓이에요. 나쁜 학점을받을까 봐 겁이 나서 거절할 수가 없잖아요. 게다가 공개적으로 모욕당한 제자를 유혹하는 건 더 나빠요. 상대가 취약한 상태에 빠져 있을 때 공략하는 거니까.」「왜 그런 말을 하니?」 그는「그렇게 생각하니까요.」-p.107


아아, 앙주, 너무 기특하다. 이렇게 말하는 거, 아무리 유럽에 거주하는 여성이라 해도 쉽지 않았을텐데. 그런 한편 이렇게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건, 앙주가 엄마와 아빠를 사랑하고 그것이 앙주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부분에서 어김없이 한나 아렌트 생각이 났거든.

한나 아렌트는 이미 결혼해 아이가 있고 애도 있는 늙은 교수 하이데거의 접근을 두 팔벌려 환영하며 그와 연인이 된다. 한나 아렌트의 엄마는 한나 아렌트에게 다정하지 않았고, 한나 아렌트의 아버지는 매독으로 한나 아렌트가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 그런 한나 아렌트에게 다정하게 접근하는 성인 남성, 게다가 한나 아렌트의 영특함을 알아보고 지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다니, 한나 아렌트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대학생 한나 아렌트에게 접근하는 하이데거에게는 당시 가진 것이 많았다. 사랑은 결핍을 채워주는 것이라면, 한나 아렌트에게 있던 결핍을 당시에 하이데거는 채워줄 수 있었던 거다.


그러나 결핍이란 무엇인가.

나이가 어리면 어릴수록 아직은 결핍이 더 많지 않은가. 살아가면서 알고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차곡차곡 하나씩 채워지는 것일텐데, 어릴 때에는 부족한 게 얼마나 많아. 그만큼 그 부족을 채워주기도 싶다. 샴페인만 해도 그렇다. 고작 나이 스물이 샴페인에 대해 어떻게 취향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앙주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도미니크는 앙주에게 샴페인을 사준다.


「정말 빨리 마시는군!

「그러네요.」「늘 이렇게 마시나?」리우스 카이사「누가 날 위해 샴페인을 주문한 건 처음이에요. 그래서 당연히 습관 같은 건 없어요.」-p.138


스무살에게 누군가 샴페인을 주문해주지 않았던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건 서른이 되도 경험하기 쉬운게 아니다. 글쎄, 마흔쯤 되면 자기 돈으로 사먹을 수 있겠지만, 스물에 그것이 처음이라면, 그걸 해줄 수 있는 상대는 당연히 나보다 가진게 많은자일 것이다. 나에게 학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에게 샴페인도 사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이것은 얼마나 큰가. 앙주는 자신이 가는 길을 알고 있었고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자기 감정을 돌이켜보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앙주와 교수의 관계가 안타까웠다. 그러나,


나라고 해서 안타까운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던가. 

누군가 뜯어말리고 싶었던 관계가, 나라고 없었을까. 그리고 나 역시 그 때, 나에게 있던 결핍을 상대로부터 채우려고 했던거라는 생각을,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했다. 돌이켜보면 '그러지말았어야' 했던 일이지만, 그래서 아주 많이 내 자신을 원망하고 살기도 했지만, 그러나 지금은 그 당시 내 나이가 젊었다는 것, 철없다는 것 때문에 나를 조금 용서하고 싶어진다. 문제는, 내가 너무 철이 늦게 들었다는 것이지만..


그런 한편, 앙주의 저 말, 제자를 유혹하는 건 비열한 짓이라는 말에, 나는 어김없이 존 쿳시의 소설 [추락]을 떠올린다.

추락에서의 남교수도 예의 자신이 가르치는 여자 제자들을 여러명 사귀었다. 젊고 예쁘고 똑똑한 여자 대학생들. 그러나 그가 교수의 권위를 잃게 되었을 때, 그가 만날 수있었던 건 비슷한 나이대의 예쁘지도 않은 여자였다. 제삼자가 '교수이고 돈도 많아서' 그를 사귀었다고 여자 제자들을 욕할 수도 있겠지만, '교수이고 돈도 많아서' 남자 교수야말로 젊은 여자들을 사귈 수 있었던 거다. 그 관계에 사귄다는 단어를 적용하는 건 적합하진 않지만. 그러나 앙주는, 뚜벅뚜벅 제 발로 알면서 걸어 들어갔고, 나는 타인의 사랑에 혹은 그 관계에 딱히 더 말을 얹고 싶지 않다. 앙주는 열아홉살이고, 앙주에게도 스물아홉, 서른아홉이 찾아올 것이며, 앙주가 선택한 것에 대한 결과는 다 앙주가 감당할 몫이다.



-벨기에

뜻밖에 벨기에를 만난다.

나는 벨기에의 브뤼셀을 두 번 갔었다. 사실 갔다는 말이 부끄러울만큼 잠깐 들렀던 것에 불과하다. 한 번은 해가 쨍쨍했고 한 번은 비가 내렸다. 아직도 브뤼셀 기차역에서 번화가로 걷던 그 순간의 장면들이 생생하다. 길을 아름다웠고 몇 번이나 멈춰서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도 선하다. 그러나 내가 고작 그만큼의 시간을 머물고서 벨기에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 내가 모르는, 내가 보지 못한 벨기에를 앙주가 말해준다.


「브뤼셀은 예쁜 도시야.」 내가 말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날씨가 좋아야 그게 보여.」

「왜 그런데요?」처음이「거의 모든 집이 양방향으로 트여 있거든. 그래서 날씨가 화창할 때는 빛이 집들을 관통해서 지나가지. 그러면 브뤼셀은 마치 광선으로 지어진 것처럼 보여. -p.116~117


브뤼셀의 집이 양방향으로 트여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야 알았다. 날씨가 화창할 때는 빛이 집들을 관통해서 지나간다니, 그러면 브뤼셀은 마치 광선으로 지어진 것처럼 보인다니, 이거야말로 내가 몰랐던, 보지 못했던 브뤼셀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 번 브뤼셀에 가고 싶어졌다. 간다고 해서 내가 광선으로 지어진 브뤼셀을 보고 느낄 수 있을까?



-그리고 관계

그렇다. 관계다.

단순히 스승과 제자일 수 있었던 앙주와 피는 특별한 관계가 된다.

그 집구석 이상한 집구석이야, 애도 이상하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이상해, 라고 하면서도 앙주는 그 집에 가는 것을 끊어내지 못한다. 피가 어쩐지 마음이 쓰여서. 으리으리한 집, 거대한 서재를 갖췄지만 그 책을 읽는 이는 하나도 없었던 집에 사는 피가 어쩐지 애틋하다. 과외수업이 있을 때마다 염탐하는 아버지라니, 얼마나 변태적인가. 앙주는 돈을 받으면서 언제나 그것에 대해 비난하고 자신이 그만둘 수도 있음을 얘기한다. 그러나 피의 아버지는 앙주의 교육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붙잡는다. 아들인 피가 의지하는 사람은 앙주가 유일하다는 걸 알고 있어서.


「당신이 피에게 얼마나 절실한 사람인지 당신도 알잖소.」-p.122


김혜리 기자의 <조용한생활 3월호> 에는 경제학자 '홍기빈'이 게스트로 나왔다.

그는 대가족보다는 핵가족이 핵가족보다는 1인 가족이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는 것을 얘기한다. 뭐가 됐든 다 돈을 써야만 하는 거라고.

아이를 키우는 예를 들면서, 대가족일 때는 모든 가족들이 양육에 참여하지만, 핵가족이 되면 아이를 돌보는 일에 돈을 써야 한다고.


과외 선생에게 많은 돈을 들이면서 아이에게 책을 읽도록 하고 또 아이의 대화상대가 되도록 하는 일이, 피의 아버지가 하는 일이었다. 피의 아버지라면, 그보다는 피에게 절실한 사람이 그가 되어줬어야 하는게 아닐까. 그 서재의 많은 책들을 읽도록 독려하는게 아버지인 그가 해야 하는일 아니었을까. 아들을 염탐하는 게 아니라 아들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게 그가 해야 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피와 피의 아버지도 핵가족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지도 않고 대화도 하지 않게된 건 아닐까. 다른 가족이 그 큰 집에 더 있었다면 피도 조금 달라졌을까? 아버지와도 어머니와도 사랑을 그리고 대화를 나누지 않는 피는, 친구도 없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었던 사람이 앙주였던 거다. 그러니 앙주가 계속 이 집에 찾아오게 하고 싶다. 앙주를 계속 만나고 그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 그러나,


절실한 사람이라니.

누군가에게 절실한 사람이 되는거, 나는 피하고 싶다. 



-잔혹동화

책과, 관계와, 브뤼셀을 얘기하는 것 같았던 이 책은,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잔혹동화가 된다. 아니, 본래부터 잔혹동화였는데, 내가 그걸 모르고 읽었다는 게 더 맞을테다. 이 잔혹동화에 대한 결말은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될테니, 이렇게만 말하겠다.


책을 읽으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도 있고 더 좋은 사람이 될 가능성도 열리지만, 그러나, 꼭 그런 것도 아니고 모두 그런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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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3-27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 책 참 잘 읽는다~!! 아마도 아맬리 노통브가 이런 독자를 기다리고 썼울 거 같은 그런 책.

저는 마지막 결말 상징으로 읽었습니다. 책을 통해 자기 세계를 구축한 자의 갇힌 세계 탈출 뭐 그런 거요.

다락방 2024-03-28 08:44   좋아요 2 | URL
마지막 결말은 피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지만,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선으로 가진 않았고 가족과 스스로에게 그리고 앙주라는 타인에게까지 결코 좋은 영향을 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저는 어떤 사람이 어떤 수단과 만나느냐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이 책 처음부터 좋진 않아서 리뷰까지 쓸 줄 몰랐는데 점점 더 좋아져서 결국 할 말이 많아져버리고 말았어요. ㅎㅎ
덕분에 책 잘 읽었습니다, 잠자냥 님. 오래되어 기억 안나긴 하지만, 제가 읽은 아멜리 노통브 책들 중에서 이 책이 제일 나은 것 같아요.

잠자냥 2024-03-27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헐 너무 진지하게 달았어~!! ㅋㅋㅋㅋ 난 다락방 안 업신여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3-28 08:53   좋아요 1 | URL
잠자냥 님이 저를 업신여기지 않는다는 건 제가 잘 압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달자 2024-03-29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타고난 재능과 다독으로 단련된 훈련이 만나 이런 리뷰가 나오는 군요 정말 다락님 리뷰를 읽을 때 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 정말 다락방님의 팬이어요...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후기를 남기는 게 전 그렇게 쉽지 않더라구요. 가슴 저릿한 책을 읽으면 그거대로 뻐렁찬 제 가슴을 조리있게 설명해 줄 말을 찾지 못해 남기지 못하고, 그저 그런 책은 또 그거대고 딱히 뭐라고 써야할 지 모르겠고.. 그냥 언어화되지 않은 감정들이 몽글몽글 가슴과 머리 주변만 멤돌다가 증발되어버리는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이 책!
아멜리 노통브 책 중에 일본 회사에서 벌어지는 소설 두권 (제목이 기억이 안나네요) 읽었는데 한권은 재밌었고 그래서 읽은 두번째 책은 그저 그래서 그냥 그렇게 끝나버린.. 특히 제가 사는 곳에선 너무나 자주 지하철 광고판에 보이는 작가 얼굴과 이름인데, 오히려 그래서 관심을 덜 갖게 되나봐요. 그런데 이 책은 다락방님 후기를 읽으니 읽어보고 싶어져요!!

다락방 2024-04-03 08:13   좋아요 1 | URL
아 달자 님. 달자 님은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입니까? 아, 프랑스에서 오신 천사입니까? 타고난 재능이라뇨. 과찬이십니다. 저는 언제나 저의 재능 없음을 탓합니다. 저에게 재능이 있는건 아니지만 달자 님이 제 팬이라고 말씀해주신다면, 그건 아마도 제 글이 달자 님께 재미있게 읽히기 때문이겠지요. 재능이라요 ㅠㅠ 없습니다ㅠㅠ 다만 열심히, 좋아서 읽고 쓸 뿐.. 그러나 말씀은 정말 감사합니다. 팬이라니 흑흑흑 ㅠㅠ

저는 아멜리 노통브 처음 나올 때 살인자의 건강법인가, 그거랑 적의 화장법 읽었던 것 같은데 딱히 강하게 기억되진 않고요, 그런데 이 책은 결말 때문에 좀 놀라버렸네요. 아니, 그럴 것까진 없지 않았나 싶기도 하면서...
제가 읽었던 아멜리 노통브 중에서는 이 책이 제일 좋았습니다. (세 권정도 밖에 안읽은것 같지만요 ㅋ)

건조기후 2024-03-30 1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나 책을 당장 읽고 싶게 만드는 다락방님ㅎㅎ 오늘도 뽐뿌질에 넘어가고 맙니당!

다락방 2024-04-03 08:14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시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건조기후 님! ㅎㅎ

단발머리 2024-04-02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말 때문에 꼭 읽어보고 싶어요. 저 아멜리 노통브 책은 한 권도 안 읽었는데... 이름도 어렵군요. 아멜리 노통브.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잔혹동화라니요...... 궁금궁금!

잠자냥 2024-04-02 09:23   좋아요 1 | URL
결말 제가 알려드릴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4-04-02 09:24   좋아요 0 | URL
네네넨넼ㅋㅋㅋㅋㅋㅋ 저 결말 미리 알아도 되는ㅋㅋㅋㅋㅋ아 그래도 남겨둘까요? 아…. 어쩌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4-04-03 08:15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 님,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도서관에 없다면 희망도서로 신청하시고요. 전 요즘 희망도서 신청하는게 너무 좋아서 막 신청하고 도착했다 하면 가서 찾아오고 그럽니다. 읽고 가져다줄 때도 있지만 안읽고 가져다줄 때는 더 많다는 사실도 고백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말은 미리 알고 보지 마시고요, 책으로 확인하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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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진짜 너무 좋다. 책장을 넘길수록 아 내가 하루키를 좋아햇던 그 오랜 시간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인터뷰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를 보면 그는 '결국은 선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했었는데, 이 책,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면서 하루키의 그 말, '결국은 선한 이야기'를 계속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선한 이야기, 이 이야기는 선한 이야기이다.


'나'는 열여섯살 에 열다섯살 소녀가 만나 우정을 나누고 사랑을 나눈다. 그들은 매주 만나면서 다른 사람들과는 하지 않았던 대화를 나누며 교감하고 만나지 않는 동안에는 서로에게 장문의 편지를 쓰며 대화한다. 자연스레 소년은 소녀를 사랑하게 되고 연인이라 생각하며 소녀 역시 온전히 네 것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지금은 그러지 못하지만 그렇게 될 거라고. 소년은 이에 기다린다. 응, 너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내 육체도 뜨겁게 반응하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게 아니야. 너와 함께라는 게 중요해.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품었던 소녀가 그러나 어느 순간 소년의 인생에서 사라진다. 한마디 말도 없이. 소녀가 나를 좋아했던 건 틀림없는 것 같은데, 도대체 왜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졌을까. 그녀는 어디로 간걸까. 우리가 만나는 동안 소녀가 얘기했던 '그 도시'로 간걸까? 나는 소녀의 편지를, 그리고 소녀가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고 동료도 만나고 연인도 있었지만 그러나  그 관계들 중 어느것도 소녀에게 품었던 만큼의 격렬한 애정을 갖게 하진 않았다. 마음 속 저 깊이 누군가를 품고, 그 사람을 계속 기다린다는 걸 알면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성실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그의 연애는 결혼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그는 그것에 대해서는 이제 더이상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의 나이 마흔다섯이 되어도 그는 변함없이 마음 속 성소에 소녀를 둔 까닭이다. 그러던 그가 그 소녀가 있는 그 도시에 들어가게 된다.


이 얼마나 바라왔던 순간인가. 그는 그 도시로 들어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곳에서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이곳'에서 소녀가 늘 말해왔던 '꿈을 읽는' 직업을 갖게 되고 그리고 매일 꿈을 읽는 도서관에서 소녀와 만날 수 있다. 비록 소녀는 자신과 헤어졌던 열여섯 살의 모습 그대로이지만, 그러나 눈앞에 그토록 그리던 그녀가 있다. 매일 그녀를 만나 꿈을 읽고 그리고 도서관이 문을 닫으면 그녀를 집앞까지 바래다주고 돌아가는 일이 그의 일과가 되었다. 그러나 이 행복한 순간을 위해 그는 자신의 그림자를 떼어버려야 했다. '나'와 떨어진 나의 그림자는 시름시름 앓는다. 그는 다시 나와 하나가 되고 싶다고 한다. 그 도시에서 떨어져 사는게 아니라 그들이 원래 함께했던 현실 세계-그것을 현실이라 불러야 한다면-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다.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림자를 현실 세계로 돌려보내고 자신은 여기에 남겠다고 한다. 여기는 그가 그토록 오고 싶어했던 , 그토록이나 그리워했던 소녀가 있던 곳이니까. 그렇게 자신의 그림자와 작별을 하고 여기에 남고자 결심했는데, 눈을 떠보니 그는 다시 바깥-현실-으로 돌아와 있다. 그 도시를 떠나서. 그리고 이제 다시 이곳 생활을 해나가야 한다. 내가 왜 여기에 왔을까, 나는 거기에 남기로 결심했었는데. 그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의 도서관 관장으로 취직해서 새로운 루틴을 만들고 새로운 사람들과 알고 지내게 된다. 



자, 나는 내 입장에서 이야기속 주인공이 되어본다. 그러니까 한 사람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일에 대해서. 누구나 그렇게 사는 건 아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마음 속 성소에 누군가를 품고 산다. 그 사람과 함께하지 못하면서, 그러나 마음속 성소에 누군가를 품고, 그런채로 직장을 다니고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책도 읽고 친구들을 만나고 또 연애를 하며 결혼에 이르기도 한다. 내 마음 저기 저 한구석, 저기에 있는 그 사람을 그대로 둔채로. 그런 상태의 나를 누군가는 '어딘가 비어있다'고 눈치챌 지도 모른다. 혹은 '도저히 다가갈 틈이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 안에는 누군가가 분명히 계속 존재하고 있고, 아주 단단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를 형성하는 하나의 축이기 때문에. 함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의 함께함, 부재하면서 그러나 동시에 강한 존재, 그렇다면 내 마음속 성소의 사람과 지금은 함깨하지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함께할 거라는, 함께하고 싶다는 강한 갈망이 있지 않을까? 그것이 소년을 결국 싱글 중년이 되게한 것일테다. 그런데 마흔다섯, 그토록이나 바라던 상대를 만나게 됐고 심지어 매일 함께할 수 있게 됐다. 이게 얼마나 꿈같은 일이냐, 얼마나 달콤한 일이냐, 결국 이 순간을 위해 삼십년을 기다린건데. 


그런 상대는 여전히 열여섯살의 소녀다. 게다가 그 도시에서의 소녀는 내가 현실이라 부르는 바깥세계에서 나와 만났었다는 사실을, 나와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내게 '온전히 네 것이 될게' 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자, 그렇다면, 그것을 소녀에게 알려야 할까? 마흔다섯인 내가, 열여섯의 너에게, 너랑 나랑 바깥 세게에서 사랑했어 우린 연인이었어를 말해야 할까? 나라면?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를 계속 사랑하면서.


사실 내 나이 열일곱에 열여섯 남자를 사랑해본 적은 없어서(여중여고여대..), 그리고 나의 강한 무의식은 미성년자를 성애의 대상으로 보기를 거부해서, 아무리 입장을 바꿔보려고 해도 열여섯 소년을 떠올리게 되진 않는다. 대신, 나는 이 모든 이야기에 실감적으로 나를 넣어보기 위해, 상대의 나이를 스물일곱으로 설정했다. 자, 그와 내가 만나 뜨겁게 사랑하고, 내가 그에게 반하고, 그리고 그가 온전히 내것이기를 강하게 바랐던, 그 때 그의 나이 스물일곱. 그러나 그가 홀연히 내 앞에서 사라진다. 나는 그가 어디로 갔는지 짐작은 가지만 그러나 그곳에 가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나 그 당시 그가 나에게 보여줬던 마음은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내가 그를 사랑했던 만큼 나를 사랑했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니 언젠가는 그가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까. 결국 우리는 함께하지 않을까. 그로부터 소식이 오기를, 그와 함께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고 나는 직장 생활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고 취미활동을 하고 연애도 한다. 몇 번의 연애를 거듭해도 나는 정착하지 못한다. 그렇게 마흔 다섯이 되었고, 어느날 갑자기 나는, 그가 있는 곳에 닿게 된다. 눈을 떠보니 내 눈앞에 그가 있다. 그런데 그는 스물 일곱의 모습이다. 아이고야. 나는 드디어 그를 만나게 되어 너무나 행복하지만, 그런데 그는 다른 곳에서 나와 사랑했던 기억이 없다. 나를 모른다. 그저 자신의 눈앞에 내가 나타났고 함께 일을 하면서 매일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와 나는 함께 일을 하면서 서로에게 무리 없이 잘해주지만, 나는 그를 매일 볼 수 있어서 기쁘지만, 그런데, 그에게 말을 할 것인가? 있지, 저기 다른 세상에서 우리가 연인이었어, 라고. 그는 여전히 스물일곱 나는 마흔다섯인데? 이 나이 차이가 뭐 감당하지 못할 나이차이도 아니고 상대가 미성년자인 것도 아니지만, 나는 '아니',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내 마음에 품은 채로 그를 계속 사랑하면서, 말하지 않고 좋은 동료가 될것이다. 그러다보면 그가 다른 여자와 사랑하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르고 그가 아이를 낳고 아이 아버지가 되는 걸 보게 될지도 모르지만,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다. 


또하나, 하루키 이야기 속의 '나'는 그림자만 바깥 세상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여기 남기로 결심한다. 다른 사람들과는 교류하지 않는 적막한 도시. 내가 만나는 사람이라고는 출근해서 나와 함께 일하는 그만 있는 도시. 나는 내가 마음 속 성소에 품었던 사람이 이 도시에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여기에 남기를 선택할 것인가? 역시 '아니' 라고 확고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내 그림자와 함께 바깥으로 돌아갈 것이다. 비록 바깥으로 가면 내 마음 속 성소에 있는 스물읿곱의 그를 만날 수 없겠지만, 그러니까 그와 함께할 수 없겠지만, 나라면, '그와 함께 적막한 곳에서 둘이서만 사는 삶' 보다는 '그가 없는 바깥 세상에서 내 그림자와 그리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살기'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그를 다시 내 옆이 아닌 내 마음 속에 넣어야겠지만, 나는 그 삶을 선택할 것이다. 나는 그 없이는 살 수 있지만, 내 그림자 없이는 살기를 원하지 않으므로. '내'가 믿어야 할 건 바로 '나 자신' 이므로. 낙하할 나를 받아줄 이는 결국 나이고, 나에겐 그 누구보다 내가 필요하다. 그리고 나에겐 그도 필요하지만, 세상이 필요하다. 그만 있는 세상 보다는 그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많은 세상을 나는 선택한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해줘서 하루키의 이야기를 읽는게 즐거웠다. 게다가 선하기까지 하다. 눈앞에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야 유령이라고 할 수 있지' 라는 존재가 나타나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 나는 섹스를 할 수 없는데 나에게 성애를 품고 있는 너는 그럼에도 나를 만날거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말해줄 수 있는 인간이 하루키의 이야기 속에 있다. 집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와인을 따라주고, 그리운 사람의 묘지에 매주 방문하는 인간이 여기 있다. 다른 사람의 안부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여기 있다. 믿을 수 없는 세상의 이야기를 믿을 수 있을 것 처럼 만들어내는 것이 하루키의 능력인 것 같다. 책속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인용하며 '그가 사는 세계에서는 리얼과 비리얼이 기본적으로 이웃하며 등가적으로 존재했'(p.672)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하루키가 사는 세계 역시 바깥 세계와 그 도시가 기본적으로 이웃하며 등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나는 기다림이 나의 선택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가져간다. 선택이 아니라 그것만 주어진 것이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나는 기다리는 것에 익숙한 게 아니라, 그저 기다리는 것 말고는 아무런 선택지도 주어지지 않았던 게 아닐까? (p.681)



자, 나는 떠난다. 나를 받아줄 이가 나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이 도시를 떠난다. 이 도시는 어떤 도시냐, 내가 그토록이나 원하던 바로 그 사람이 있던 도시, 삼십년을 기다렸다 만난 그 사람이 있던 도시, 그런데 그 도시에 그 사람이 있음을 알고도 나는, 나를 찾으러, 나를 믿으며 떠난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나를 믿는 것, 나를 찾는 것. 그 사람보다 원하는 건, 바로 나였다.




시간은 몹시 느릿느릿하게, 그래도 결코 뒷걸음치지 않고 내 안을 통과해 갔다. 일 분에 정확히 일 분씩, 한 시간에 정확히 한 시간씩. 느리게 나아갈지언정 거꾸로 가는 법은 없다. 그것이 내가 몸으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때로는 그 당연한 것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 P138

누구를 위한 비밀 공간을 확보해둔 채 다른 사람과 연인 관계가 된다-그런 게 가능할까?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이어가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상처를 주고, 그 결과 나 자신에게도 상처를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더욱 고독해진다. - P192

여성과의 관계로 말하자면 거의 똑같은 문제의 반복이었다. 남들이 그러듯 몇 명을 만나 사귀었고, 진지하게 결혼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절대 반쯤 노는 기분으로 그런 건 아니다. 하지만 결국 그녀들과 진정한 의미의 신뢰 관계를 쌓진 못했다. 그럴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어떤 경우도 잘되지 않았다. 마지막에 꼭 무슨 일이 터져서 매번 그르치고 말았다-그르치다라는 표현이 실로 딱 맞았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내게 항상 네가 있었기 때문이다. 너의 존재가, 너의 이야기가, 너의 모습이 내 마음을 도저히 떠나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의식의 깊은 곳에서 너를 생각했다. 짐작건대 그것이 가장 큰 이유다. - P193

매일 먹을 음식을 직접 만들고, 헬스장에 가서 선강을 챙기고, 일상을 청결히 유지하고, 남은 시간에는 책을 읽는다. 독신 생활에는 규칙성을 중시하는 것이 제일이다-규칙성과 단조로움 사이에 선을 긋기가 가끔 어렵다 해도. - P194

"네, 고독이란 참으로 무정하고 쓰라린 것이랍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뼈와 살을 깎는 그 무정함, 쓰라림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편 제게는 과거에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기억이 강렬하고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 감촉이 양 손바닥에 짙게 배어 있어요. 그리고 그 온기의 유무에 따라 사후 영혼의 상태가 크게 달라진답니다." - P441

다만 당신의 이야기에서 제가 추측할 수 있는 바는, 사실 그 모두가 당신의 마음이 원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는 겁니다. 당신 마음이(당신은 모르는 곳에서) 그러기를 원했다-그래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하실지도 모르겠군요. 그 수수께끼의 도시에 남겠노라 오롯이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하셨다고요. 하지만 당신의 진정한 의지는 달랐는디조 모릅니다. 당신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는, 그 도시를 나와 이쪽으로 돌아오기를 원했는지도 모르지요." - P444

"살면서 몇 명의 여자를 만났고,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제법 진지하게 사귀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소녀만큼 누군가를 열망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머리가 텅 비어버릴 것 같고, 대낮에 깊은 꿈을 꾸는 것 같고, 다른 생각은 하나도 할 수 없는, 그런 순수한 심정을 품은 적은요. - P447

"여기서는 나이 차이도 시간의 시련도, 성적 경험의 유무도 대단한 요건이 되지 않습니다. 나 자신에게 백 퍼센트인가 아닌가, 중요한 건 그뿐입니다. 당신이 열여섯에서 열일곱 살 때 상대에게 품었던 사랑은 실로 순수했으며 백 퍼센트의 마음이었지요. 그래요, 당신은 인생의 아주 이른 단계에서 최고의 상대를 만났던 겁니다. 만나버렸다, 라고 해야 할까요." - P449

"지금 여기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오직 하나-믿는 마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강하고 깊게 믿을 수 있으면 나아갈 길은 절로 뚜렷해집니다. 그럼으로써 이다음에 올 격렬한 낙하를 막을 수 있을 겁니다. 혹은 그 충격을 크게 누그러뜨리거나요." - P452

"아무래도 우린 해가 진 뒤에 만나는 수밖에 없겠네요."
"두 마리 부엉이처럼."
"어두운 숲속 깊은 곳, 두 마리 부엉이처럼." - P572

나는 눈을 감고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예전에는-이를테면 내가 열일곱 살일 때는-시간 같은 건 말 그대로 무한에 가까웠다. 물이 가득찬 거대한 저수지처럼. 그러니 시간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 P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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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12-31 18: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다락방님의 진심이 담긴 리뷰를 쓸 수 있게 해준 리뷰이벤트 도서 간만에 등장!!👏👏👏👏👏 어떤 지점이 다락방님 마음을 움직이는지 알 것 같아요. 소설에 아주 푹 빠져서 읽는 다락방님의 독법도 도드라지고요^^ 즐거운 독서하셨군요~~!

다락방 2024-01-02 08:45   좋아요 0 | URL
어휴 하루키가 하는 이야기가 이야기 자체로 제 마음에 이렇게 훅 들어온적은 또 처음인 것 같아요. 그간 하루키의 유머를 제가 엄청 좋아했거든요? 찰떡같은 비유도 좋아했고요. 그런데 이번엔 이야기 자체가 저를 움직이네요.
ㅋ ㅑ - 역시 독서 만세입니다. 만세!!

단발머리 2023-12-31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다락방님 너무 좋은 리뷰 잘 읽었어요. 같은 책을 읽었을 때 겹치는 지점과 다른 지점을 발견하는게 이렇게나 즐겁고 행복한 일이네요.
저도 그 사람에게.... 이제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그 사람에게.... 내가 너를 사랑했던 그 사람이다, 라고 말하지 못할거 같고, 그리고는 그렇게 그 사람 곁에 남기 보다는 그 사람을 두고 도시를 떠나 나의 또 다른 현실로 돌아올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또 다른 나를 그 사람에게 남겨두고 싶기도 해요.
나의 일부를요.

전 하루키를 많이 안 읽어서요. 인제서야 조금씩 좋아져요. 이 책도 궁금해서 나오자마자 샀는데 이제 막 읽었네요.
좋은 시간이었어요, 그죠? 하루키를 읽는 시간이라니.....근사하다!!!

다락방 2024-01-02 08:47   좋아요 0 | URL
게다가 상대가 미성년자인데 내가 성년이라면 더 말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건 말하는 순간 범죄가 되지요. 아무리 내 안에 사랑 있어도.. 그리고 어쨌든 저는 현실로 돌아올 겁니다.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둔 채로 삶은 현실에서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걸 선택할 것입니다. 크- 어쩐지 마음이 살짝 아프지만, 삶이란 건 결국 모든 걸 다 가지면서 살아갈 순 없는 것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해야겠지요.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야겠고요.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처음에 오글거려서 이걸 어쩌나 했는데, 좋은 독서였습니다!!

햇살과함께 2023-12-31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글거렸지만 결국엔 좋았군요! 저도 언젠가 하루키를 좋아할 날이?!

다락방 2024-01-02 08:48   좋아요 0 | URL
하루키 안좋아하는 사람들도 엄청 많잖아요. 저도 제가 지금 하루키를 알았다면 좋아했을지 모르겠어요. 제 경우에는 <렉싱턴의 유령> 이라는 단편집 읽고 훅 빠졌는데, 어쩌면 책과의 궁합도 필요한 일인것 같습니다!

persona 2023-12-31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 읽겠다고 안 읽고 있었는데 끝까지 읽어봐야겠네요. ㅎㅎ 완독 축하드립니다.

다락방 2024-01-02 08:48   좋아요 1 | URL
저도 초반에 엄청 갈등했어요. 그냥 팔아버릴까,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나 즐거운 독서를 하였습니다. 페르소나 님, 도전!! ㅎㅎ

루피닷 2024-01-01 0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24-01-02 09:09   좋아요 1 | URL
루피닷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미미 2024-01-01 1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완전 초반 재미없어서 던져두었다가 다락방님의 ‘아오 진짜 너무 좋다‘보고ㅋㅋㅋㅋㅋ
지금 400쪽까지 읽었어요 정말 좋네요. 마저 읽고 리뷰 읽어보렵니다. 다락방님은 한 문장조차 영향력!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락방 2024-01-02 09:09   좋아요 0 | URL
저 막 읽다 보니까 ‘아오 좋아‘ 이런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지금쯤은 다 읽으셨을까요? 미미 님께도 어느 부분에서든 좋은 독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미미 님, 해피 뉴 이어!!

느긋느긋 2024-01-17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1등 축하드려요!
이게 바로 호텔에서 쓰여졌다는 전설의 리뷰!!
읽고있으니까 책 다시 읽고싶어지는걸요, 읽으면서 무척 좋았던 그 시간을 다시 만들어봐야곘어요,

저도 돌아간다면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한채 말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 나이간격은 너무한 듯 ㅠㅠ 그걸 떠나서라도
오래 그리워한 사람을 갑자기 볼 수 있게 됐을때는 그냥 매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 같은 느낌.

마지막 문장도 새롭네요, 그 사람보다 원하는 건 바로 나, 진심으로 원하는 건 바로 나.
역시 외로움지수 0인 락방님다운, ㅎㅎ
그러고보니 다들 궁극적으로는 그럴 것 같아요.
선한 리뷰 잘 읽고갑니다~
 















이 책에는 우리가 익히 이름을 들어본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들이 시, 소설, 에세이로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펼쳐나갔는지,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싶어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서문을 힐러리 로댐 클린턴 으로 시작하는데, 당시에도 그 후에도 어떻게 힐러리가 아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 기가 막히다. 개인적으로는 비욘세 보다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들어가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지만, 내가 하려는 얘기는 그 얘기가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훌륭한 인물로 다뤄지지 않는, 그러나 슬쩍 스쳐지나가며 언급된 여자의 얘기를 하고 싶다. 


모니카 르윈스키.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르윈스키가 클린턴과 불륜이라고 했을 때, 그 당시에 자세히 알고 싶어 시사 주간지를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자기 시선에서 바라본 칼럼을 적어내곤 했다. 아마 여성잡지였을까, 어딘가에서는 '구강성교는 남자가 그만큼 상대 여자를 믿고있다는 증거'라는 글을 보기도 했다. 여자의 입속에서 여자가 물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자기 고추를 맡긴다는 건 그만큼 그여자가 나를 물지 않을 거라는 신뢰가 있다는 거였다. 아마 대학생이던가 졸업후 얼마 안됐을 때였던 것 같은데, 그거 읽고 너무 충격받았던 기억이 있다. 연애 남들보다 늦게 하고 페미니즘에 대해 쥐뿔도 몰랐지만, 어떻게 고추를 여자 입안에 넣는게 여자를 신뢰하는 걸로 표현되냐. 이거 너무 고추 넣는 입장에서 넣는거 핑계 대려고 별 거 다 가지고 오는거 아닌가 싶었던 거다. 


자, 이 책에서는 아까 언급했듯이 힐러리 로댐 클린턴이 어린시절부터 매우 똑똑하고 능력도 있었으나 정치에 입문하며 남편 발목잡는 여자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의 주장 혹은 신념을 굽혀야 했던 이야기들도 언급한다. 클린턴이라는 성을 굳이 같이 쓸 수밖에 없었다거나 얌전한 옷을 입어야 했다거나 쿠키를 구워야 했다거나 등등. 그리고 힐러리가 감당해야 하는 것 중에는 대통령인 남편의 성추문이 있었다. 그러나 백악관 인턴과 성관계(가 아니라고 클린턴은 말했다)를 가진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이병헌, 장동건, 엄태웅 등 자신의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추문이 있었던 남자 배우들이 여전히 잘 사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쨌든 세상이 다 아는 내 남편이 세상이 다 아는 불륜 혹은 성매매를 저질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남편의 아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얼마만큼의 용서와 사랑과(이건 아닐듯) 각오와 다짐이 필요한 일일까? 어제도 엄마랑 와인을 마시면서 힐러리 클린턴 과 르윈스키 얘기를 했는데, 같이 살긴 살아도 살아야 하니까 사는거 아닐까, 하는 짐작을 감히 해보았다. 


자, 이 책에서 힐러리의 얘기중 언급된 모니카 르윈스키 얘기를 잠깐 함께 보자.



그러나 클린턴의 대통령직을 두고 일어났던 켄 스타 검사의 청문회 조사보다 이 저질스럽고 조잡한 법안에 더 들어맞는 사례는 없었을 것이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청문회 보고서의 초안은 상당 부분 한 젊은 변호사에 의해 작성됐는데, 그는 나중에 성폭력 가해로 큰 논란을 일으키는 대법관 브렛 캐버노였다. 이 음란한 보고서의 한가운데에 매춘부, 바람난 여자, 섹시한 여자, 그리고 (가장 유명한 호칭으로) "나는 그 여자와 성관계를 갖지 않았습니다"라는 발언에서처럼 "그 여자"라는 호칭으로 낙인찍힌 스물두 살의 젊은 독신 여성 모니카 르윈스키가 등장했다. 클린턴 대통령의 억지 궤변에 의하면 구강 성교는 성적인 것이 전혀 아니었다.

모니카 르윈스키는 이 발언이 계기가 돼서 결국 보스와의 사랑을 끝내버린 것이라고, 바버라 월터스와의 장시간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인정했다. 르윈스키는 이 시점에 대통령은 그들의 성애적 관계를 부인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을 소중한 친구로 부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그보다 클린턴의 보좌관 한 명이 그녀가 대통령을 스토킹했으며 섹스를 요구했고 그의 거부를 조롱했고 그를 협박했다고 증언하는 모습을 보고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위험한 정사>에 나오는 가정파괴범으로 바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일은 칼럼니스트 모린다우드 같은 사람만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  P411~ P412




그 당시의 일에 대해 잘 모른다면-그러나 당사자가 아니면서 잘 알 수 있을까?- 르윈스키는 자신의 보스와 사랑을 했다는 걸 위 인용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르윈스키는 사랑을 했는데, 그런데 그녀는 자신이 사랑한 보스로부터 '그 여자' 라고 불렸고, 그리고 보스의 측근으로부터 '스토킹한 여자'가 되어 있었다. 그 때 이 젊은 여자가 느꼈을 충격과 배신감은 어떤것일까. 그녀는 스물두살의 인턴이었고 세상의 비난을 고스란히 받아야 했는데, 자신이 사랑이라고 생각한 남자 역시도 자신을 내팽개쳤다. 직업을 그만두고 백악관 바깥으로 걸어나가 그녀가 가야할 곳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였을까? 대통령과 인턴 사원인데, 어째서 세상은 그녀를 비난했을까? 왜 그 젊은 여성은 가정파괴범이 되어 있었을까? 가정 파괴범은 클린턴이 아닌가? 나는 '그 여자' 라는 호칭이 너무 모욕적으로 느껴진다. 스물두살의 그녀는 분명 어리석은 관계를 맺고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그러나, 그건 끝나봐야 아는 일이다. 그 관계에 그리고 상대에 푹 빠져있었을 때에는 자신이 어리석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집중했을 것이다. 나는 모니카 르윈스키가 궁금했다. 모니카 르윈스키의 말을 듣고 싶었다. 물론 그 관계가 르윈스키가 정말 원했고, 스스로 하는 일이 어떤건지 알고 있었다고 해도, 정말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 해도, 그들 사이에 권력은 분명히 존재했다. 스물두살의 여성에게 상대는 스무살 이상 차이나는 대통령이었다고. 



나는 모니카 르윈스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때 어쨌든 그녀가 잘못된 관계를 맺고 끝냈을 때가 아니라, 그 후에,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세상 모두가 어떤 남자와 어떤 식의 관계를 맺고 어떻게 팽당했는지 알고 있는 이 여성은 그 후로 어떤 삶을 살았을까? 나는 모니카 르윈스키가 하고자 하는 말을 듣고 싶었다. 모니카 르윈스키는 그 때의 일에 대해 혹시 책을 내지는 않았을까? 검색해보니, 오래전에 자서전을 내긴 했더라. 내가 궁금한 건 자서전이 아닌데. 

















나는 일전에 읽었던 김형경 의 책에서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언급됐던 게 생각이 났다. 당시에도 읽으면서 이게 뭔소리야, 했던 구절이었다.




미국 정신분석가 호르게 드 그레고리오는 《나의 이성, 나의 감성》이라는 책에서 클린턴 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관계를 애도 관점에서 분석한다.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에 들어간 다음 해인 1994년 1월 6일 그의 사랑과 열정의 원천이었던 어머니 버지니아 캐시디 클린턴이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예전에 간호사였고 빌이 네 살 때까지 함께 산 할머니 역시 간호사였다. 어머니 사망 후 애도 과정을 거치면서 클린턴 대통령의 감성 안에 상당한 변화가 발생했던 것으로 보인다.

모니카 르윈스키의 아버지는 항암 치료사였다. 그는 젊은 간호사와 사랑에 빠져 아내와 딸을 떠났다. 아버지가 가정을 떠날 즈음 르윈스키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었고, 당시 학교 연극 무대 설치 기술자였던 앤디 블레일러와 첫사랑에 빠졌다. 앤디는 결혼 2년차 유부남이었지만 르윈스키는 앤디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의 아내의 친구가 되었고, 때로 그들의 아이를 돌봐 주기도 했다. 그 이상한 관계에서 르윈스키는 아버지의 욕망 대상인 간호사 역할을 맡으며 다시 아버지와 연결되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은 서로를 "첫눈에 알아보았다"고 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본 배경에는 '간호사'가 있었다. 빌 클린턴은 자신의 상실감을 돌봐 줄 간호사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알아보았고, 르윈스키는 아버지의 내연녀인 간호사가 되어 돌봐 줄 만한 아버지 대체물을 찾아냈다. 저자는 그 만남이 빌 클린턴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만남이 아니라, 그의 어머니와 그녀의 아버지의 만남이라고 분석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서 무의식 속에서 추구하고 있던 원초적 사랑의 대상을 만난 것이다. 잃은 대상을 추구하는 행위가 무의식 차원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pp.104-105)



내가 이 책 2014년에 읽었는데, 2014년에 읽으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다. 거기에 무슨 그의 어머니와 그녀의 아버지의 만남이 나올까. 르윈스키에게 아버지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그건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늙은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클린턴과 르윈스키가 만나 사랑한 것이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만남이라니, 대체물이라니. 그런 식으로 이 관계를 깊게 이해할 수 있는걸까? 그건 단지 권력을 가진 나이 든 남자가 자신의 젊은 직원 데리고 재미 좀 본게 아닌가. 물론, 이 관계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복잡해 보이기는 한다. 당시에 르윈스키는 자신들의 관계를 '합의'하에 한 관계라고 했으니까. 합의했다고 말했을 당시의 르윈스키는 인턴이었고 스물두살이었으며 상대는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모니카 르윈스키가 미투 운동이 활발했던 당시에 했던 인터뷰도 읽어 보았다.



르윈스키 "미투 계기로 다시 보니...클린턴과의 관계는 권력 남용" - 머니투데이 (mt.co.kr)



르윈스키는 그때의 자신에 대해 굳이 변명을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그러나 거기에 분명 권력이 있었다는 걸 지금은 알고 있다고 말한다.



르윈스키의 그 후의 삶에 대해 궁금해한 건 나만은 아니었다. 개브리얼 제빈이 있었다. 그녀는 르윈스키의 사건을 보고, 그 후에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그녀의 엄마라면 딸을 어떻게 대해줘야 했을지 궁금해하며 책을 써냈다.















자, 책소개는 이렇다.


정치 지망생인 20대 여자 아비바 그로스먼은 하원의원 에런 레빈의 인턴이 되어 일하던 중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른다. 하원의원과 불륜관계가 된 것. 우연한 사고로 그 불륜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그녀의 인생은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만큼 무너져버린다.

<비바, 제인>은 그렇게 자신에게 몰아닥친 상황에 좌절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하는 한 여성의 선택들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설은 많은 질문을 던지고 답한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여자는 어떤 피해를 입는가? 세상은 그녀에게 어떻게 반응하는가? 그녀의 부모는, 남자의 아내는, 주위의 사람들과 대중은, 그리고 미디어는? 후폭풍의 끝은 어디이며, 궁극적으로, 성추문에 휩쓸린 여자에게 새로운 인생이 가능하기는 할까?


이 책을 쓰기까지 개브리얼 제빈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그녀의 인터뷰도 가져온다.


르윈스키가 내 딸이라면… 엄마 시각에서 본 스캔들 (naver.com)



나는 르윈스키가 그 후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개브리얼 제빈은 비바, 제인에서 그 후의 삶은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하며 살아냈다고 주인공의 입을 빌려 얘기한다. 르윈스키의 삶이 그랬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르윈스키의 삶도 그러했기를 바랐던 게 아닐까.



당신은 그녀에게 다가가 조언을 구했다. "하나만 물어도 될까?" 당신이 말했다. "어떻게 그 스캔들을 극복했어?"

그녀가 말했다.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어떻게?" 당신이 물었다.

"사람들이 덤벼들어도 난 가던 길을 계속 갔지." 그녀가 말했다. -《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p.395



넷플릭스에 클린턴의 성추문 사건을 다룬 <탄핵>이란 드라마가 있는 것 같은데, 이걸 한 번 봐야겠다. 제작에 르윈스키가 직접 참여했다고 한다. 



이렇게 이번 12월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도 다 읽었다.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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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2-26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바, 제인> 책소개를 보고 르윈스키가 생각나긴 했는데 그게 모티브가 된 소설이었군요.
<섬에 있는 서점>은 재미있게 읽었는데, 한국계라니 작가가 궁금해지고 (사실 이미 책도 갖고 있음) 이 책도 찾아둬야겠어요.

<여전히 미쳐있는> 다들 술술 잘 읽어내셨네요. 축하드립니다 :)

다락방 2023-12-26 12:32   좋아요 0 | URL
비바, 제인 저 출간 당시에 급박하게 사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에 여성들의 연대를 느껴서 좋았더랬어요. 사랑인지 아닌지는 사랑이 끝난 다음에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지금 내가 빠진 관계가 어리석은건지 아닌지도 역시 그렇고요.

여전히 미쳐있는 다 읽어서 너무 좋고요,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건수하 님. 만세!!

잠자냥 2023-12-26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근데 연애 늦게 했다고?!?!?! 그게 더 놀라움 ㅋㅋㅋㅋ

르윈스키와 클린턴 사이 애도의 관계라고 본 저 정신분석가에게 애도를….. 호르게 드인지 호로개 드인지 원… 저런 소리할 때 보면 정신분석이란 무엇인가 참…..

다락방 2023-12-26 12:34   좋아요 1 | URL
저 첫 연애가 스물다섯이었어요. 넷이었나? 남들보다 늦었는데 ㅋㅋㅋ 한번 사귀고 나니까 남자들이 막 들러붙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봤자 지금 연말 다가오는데 약속 못지키는 다락방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책의 저 부분 읽으면서 클린턴이랑 르윈스키에 간호사를 가져다 붙인다고? 진짜 징하다 싶었어요. 해석을 위한 해석 분석을 위한 분석이 아닐까 싶습니다. 으..

잠자냥 2023-12-26 12:38   좋아요 0 | URL
첫 연애 후 팜파탈 변신 다락방…. 그러나 2023년은 이제 오늘까지 6일 남았을 뿐이고…. ㅊ침대여, 들리는가! 다락방 울부짖는 소리가….

햇살과함께 2023-12-26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쳐지나가듯 나오는 르윈스키를 잡아내신 다락방님!
완독 축하드립니다!
<비바, 제인> 궁금하네요.

다락방 2023-12-26 12:36   좋아요 1 | URL
저는 빌 클린턴은 그 후로도 속 끓이지 않고 살았을 것 같고요 힐러리는 아주 속 끓였을것 같거든요. 지금도 앙금이 남아있을 것 같고요. 그런데 르윈스키도 그래요. 일정부분 그녀 스스로 한 행위라고 해도 시간이 지난후에 그 때 내가 왜그랬을까, 나를 그렇게 취급하는 사람한테, 하는 마음과 또 사람들의 시선을 견디며 살아와야 했을텐데 싶어서, 르윈스키가 아픕니다. 그런데 이렇게 르윈스키를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르윈스키가 가장 원하지 않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ㅜㅜ

단발머리 2023-12-26 10: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구야.... 르윈스키와 클린턴 사이를 애도 관계로 보다니요.. 제가 이 분 책 안 읽은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애도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클린턴이 그 많은 선거 때마다... 선거 운동 기간 중에 젊은 여성들에게 성적으로 접근해서 문제 생긴 거, 힐러리가 그 뒷처리 하느라 고군분투한 거, 그걸 책으로 내도 책 한 권이 나오는데, 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간호사 역할을 찾았다고요? 진짜 어이가 없네요.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본건 맞는거 같아요. 요는 그걸 ‘합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는가의 문제인데, 그 당시에는 르윈스키가 잘 몰랐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근데 이 남자가 나를 사랑하는 거는 아니다...를 못 알아본거는 좀 아쉽구요. 원래 눈이 확 돌아가면 그걸 알아채기 쉽지 않죠. 하지만.... 워낙 그쪽 분야에 악명 높은 사람 아니었습니까.

완독 축하드립니다. 저 부지런히?ㅋㅋ 읽고 있어요. 책탑 페이퍼 쓰고 계시는 거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3-12-26 12:40   좋아요 1 | URL
김형경이 그렇게 본 건 아니고 ‘미국 정신분석가 호르게 드 그레고리오‘가 그렇게 봤다고 합니다. 김형경 님도 정신분석 본인이 공부하기도 하면서 다른 책들도 열심히 읽은 것 같아요. 아무튼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간호사라는 매개, 어머니와 아버지.. 이모든 것에 대해 저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과도한 분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으..

사랑은 당시에는 상대에 대해 잘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주변에서 그 남자(여자) 아니야 라고 아무리 말해도 안들리잖아요. 그러다 끝나고 나서야, 끝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하게 되지요. 그렇지만 저는 르윈스키에게도 어느 순간 ‘어 이건 아니지 않나‘하는 감각이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조카들에게도 하는 말인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순간, 그건 아닌게 맞다는 겁니다. 그 감각을 무시하면 안돼요. 에휴..

저 애도로 본 관계가 왜 말이 안되냐면, 클린턴이 르윈스키랑만 성추문이 있었던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 정신분석의는 여성들마다 다 어떤 이유를 갖다 붙이게 될까요?

책탑 페이퍼는 썼습니다. 점심 시간이 다가와서 급박하게 마무리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12-26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다양한 페이퍼가 나오는 것이 역시 여성주의책함께읽기 모임의 묘미 아닌가 싶습니다. 당시 르윈스키에 대해서 만 질타하는 분위기가 기억나네요! 둘의 사랑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어쨌든 권력 관계의 힘이 작용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락방님 완독 축하드려요!*^^*

다락방 2023-12-27 07:40   좋아요 0 | URL
저는 당시에 르윈스키에 대한 외모 평가도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이번에 르윈스키 검색하면서 알았는데 클린턴이 르윈스키랑만 불륜관계였던 것도 아니더라고요 ㅠㅠ 힐러리 클린턴이 진짜 빌 데리고 사느라 마음 고생 많았겠구나 싶습니다. 어휴 남편이란 뭘까요? ㅜㅜ

완독 축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 해에도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님!! 내년에도 잘 부탁합니다!!

독서괭 2023-12-26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구강성교는 여자를 믿어서 하는 거고, 불륜은 어머니아버지 가족관계로 인해 하게 되는 거고 ㅋㅋㅋㅋ 포장 장난 아니네요 ㅋㅋㅋㅋ
다락방님은 이 책 술술 읽어내실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읽으면서 제가 읽어야 할 게 너무 많구나 싶더라고요;; 꾸준히 읽어야겠습니다.

다락방 2023-12-27 07:42   좋아요 1 | URL
독서괭 님, 진짜 너무 요점 정리 잘해주시는 분. 구강성교는 여자를 신뢰해서, 불륜은 가족관계로 인한 트라우마로 ㅋㅋㅋㅋㅋㅋㅋㅋ포장을 위한 포장입니다. 불륜마다 사연 있어 거룩합니다. -.-
저는 그런데 여러분들이 그렇게 좋게 읽으셨던 것만큼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어요. 대단한 인물들을 역사속에서 만난다는 건 좋았는데, 저한테는 뭔가 큰 각성을 주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는 레이첼 모랜이 좋습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