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지하철안에서 이런 부분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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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6-18 0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복잡다단한 , 늘 그렇지만 그러면서 아들을 놓고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품는 모정의 세월을 보면 인간은 연구 대상감..

다락방 2015-06-20 17:38   좋아요 0 | URL
네. 한명한명이 또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세상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화날 일도 많지만요 ㅠㅠ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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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통틀어 가장 어려운 부분은 '성매매'에 관한 부분이었다. 이건 아마도 나 스스로도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아 그런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정리되길 바랐는데 책에서도 이렇다 저렇다 한 쪽으로 결론을 내려주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은 아직도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어느 한쪽의 편에 선다는 게 때로는 꽤 어려운 일이라는 걸 실감한다. 성매매에 대해서 '안되는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면서 '정말?' 혹은 '그렇지만 왜?'라고 묻고는 스스로 대답을 내릴 수 없었는데, 이 책을 읽어도 여전히 같은 고민을 하게 된다. 






가부장제(인종주의, 계급 차별‥‥‥)는 일종의 색안경이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육안이 되어버린 그 색안경을 벗어야, 여성의 현실이 보인다. 눈을 감아야 보인다. 나는 갑자기 색안경이 `벗겨져서` 눈이 먼 상태인데, 그는 이제 다 보이니 얼마나 좋으냐, 그러니 그만 보라고 말한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는데, 내가 연단으로 나오는 사이, 세상은 내가(여성이) 말하려고 폼 잡는 것 자체에 이미 충격받은 듯했다. 나는 깊은 상처를 받았다. 평소 여성주의를 이해하는 동료라고 믿었던 그에게마저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이지 절망스러웠다. (p.21-22)

여성주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더욱이 편안할 수는 없다. 다른(alternative)렌즈를 착용했을 때 눈의 이물감은 어쩔 수 없다. 여성주의뿐만 아니라 기존의 지배 규범,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지지해준다(empower). 여성주의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의문을 갖게 하고, 스스로 자신을 정의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대안적 행복, 즐거움 같은 것이다. (p.23)

여성주의는 우리를 고민하게 한다. 남성의 경험과 기존 언어는 일치하지만, 여성의 삶과 기존 언어는 불일치한다. 남성 중심적 언어는 갈등 없이 수용된다. 하지만 여성주의는 기존의 나와 충돌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여성주의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남성에게, 공동체에, 전 인류에게 새로운 상상력과 창조적 지성을 제공한다. 남성이 자기를 알려면 `여성 문제(젠더)`를 알아야 한다. 여성 문제는 곧 남성 문제다. 여성이라는 타자의 범주가 조재해야 남성 주체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p.23)

모든 물음은 질문하는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질문 내용은 질문자의 입장과 관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물음에는 이미 특정한 형태의 답이 전제되어 있다. (p.26)

물론, 남성들도 같지 않다. 남성들 중에는 좌파도 있고 우파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고, 지식인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남성들은 개인 혹은 인간으로 간주되지만, 여성들은 여성으로 여겨진다. 여성이나 페미니즘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타자 내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억압이다. 여성들 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여성 해방이다. 여성을 여성으로 환원하는 것이 가부장제이기 때문이다. (p.29)

˝남성적이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라는 질문에, ˝당연하지요, 세상에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라고 답한 프랑스의 철학자 뤼스 이리가레(Luce Iregaray, 1932~, 서구 전통 철학의 `남근이성중심주의` 사유를 비판하는 프랑스의 페미니즘 철학자)의 말대로, 세상에 하나의 목소리만 있을 때는 다른 목소리는 물론이고, 그 한 가지 목소리마저도 알기 어렵다. 의미는 차이가 있을 때 발생하며, 인식은 경계를 만날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p.44)

하지만 여성들은 안다. 장애인이나 노동자가 인간으로서 권리를 주장할 대와는 다르게, 자기 권리를 외치는 여성을 사회가 얼마나 싫어하는지를. 여성에게는 언제나 권리보다 도리(의무)가 우선적으로 요구된다는 사실을‥‥‥. (p.47)

여성이 자궁이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면 성대가 있는 사람은 모두 오페라 가수가 되어야 하는가? 성대를 가진 사람이 가수가 되는 것은 선택과 노력의 결과이듯이, 어머니가 되는 것 역시 개별 여성들의 선택에 따른 문제이다. (p.58)

남성 중심 사회에서 개인으로서 여성의 차이는 의미가 없다. 모든 여성은 어머니라는 생각 대문에 여성은 다 같다고 간주된다. 그래서 한 여성의 실수나 무능력은 언제나 전체 여성을 욕 먹이는 일이 된다. (p.59)

모든 여성이 어머니의 의무나 재능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출산은 전쟁에는 미달하되 전쟁만큼 사망률이 높은 유일한, 위험한 사회 활동일 뿐이다. (p.61)

우리 사회가 여성을 그토록 어머니로 호명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머니로 간주되는 여성은 성적 주체가 될 수 없고, 자신의 몸을 가질 수 없다. 그녀의 몸은 남성만이 주체가 되는 가족과 국가의 소유다. (p.65)

문제는 어머니의 권력과 여성의 권력은 정반대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지위가 높은 사회일수록 여성의 지위는 낮다. 어머니는 아들의 대리인이다. 고부 갈등은 여성과 여성의 갈등이 아니다. 시어머니/며느리는 여성의 관점에서 비롯된 정체성이 아니라, 여성이 남성과 맺고 있는 힘의 관계를 설명할 뿐이다. 어머니의 권력은 결국 출세한 아들의 권력에서 나온다. 어머니의 행복한 삶은 잘난 아들을 통해서(정확히 말하면 아들의 아내의 노동을 통해서) 보장된다. 그런 어머니가 남녀고용평등법을 찬성할 리 없다. (p.70)

대개 남성들은 인과 관계나 의사 전달 위주의 말하기 방식(report-talk)에 익숙하지만, 여성들은 원칙적이기보다는 맥락적이고 공감하는 말하기 방식(rapport-talk)에 능하다. 이제까지 여성들의 말하기 방식은 열등하거나 비논리적, 사적이라고 비하되어 왔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여성적 방식`이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용, 민주주의에 훨씬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84)

만에 하나 그녀가 당선되더라도, ˝최초의 여성 대통령˝ 운운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녀의 정체성은 공주이지, 여성도 시민도 아니다. 아무리 과거사 `해결책`을 제시한다 해도 진정성 시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녀의 대권 도전 자체가 `충과 효의 갈등`이라는 시대착오적 틀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인간 박근혜`의 불가능성. 이것이 그녀의 실존이자 한국 현대사다. `대통령 박근혜`는 여성도 새통령이 될 수 있다는 근대 민주주의의 성과가 아니라 신분 사회의 부활이다. (p.100)

《남자-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의 저자 디트리히 슈바니츠는 많은 여성들이 남자와 연애할 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상대방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들은 자신 속에 내재된 풍부한 감성과 사랑의 능력을, 상대 남자의 매력으로 오인한다는 것이다. (p.104)

남성은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성욕이 생기지만, 분노했을 대 성 욕구가 일어나는 여성은 거의 없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가 남성의 입장에서 해석된다는 데 있다. 남성은 성폭력 상황에서 여성의 목숨을 건 저항을 `자극`으로 이해하고 수용한다. 가정폭력의 경우,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들은 자기가 아내를 `힘들게 가르쳤다`고 생각하고, 아내에 대한 폭력을 남편의 성역할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가해자인 남편은 `부부 싸움 후 섹스로 화해` 했다고 만족하지만, 피해자인 아내는 `구타 후 강간` 당했다고 생각한다. (p.108-109)

섹스와 음식 만들기는 가부장제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여성에게만 부과되는 노동이다. 즉, 음식과 성을 노동으로 강요받는 사람은 여성이지만, 여성은 음식과 성을 즐길 수도 없고 욕망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남성은 수천 년 전부터 생식이나 쾌락, 자기 실현 등 다양한 차원에서 성을 즐겨왔지만, 여성의 성은 지금까지도 출산의 영역에 한정할 것을 강요받는다. 여성의 성욕이 부계 가족 유지-아들 낳기만을 위해 허용되듯, 여성의 식욕이 찬양되는 시기는 임신했을 때뿐이다.
남성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것은 동시에 달성하기 힘든 이중 메시지인 경우가 많다. 음식을 만들되 먹지 말라, 말라갱이가 되되 가슴과 엉덩이는 풍만하라, 정숙하면서도 섹시하라 ‥‥‥. 식욕, 성욕, 수면욕은 인간의 3대 욕구가 아니라 남성의 3대 욕구인 셈이다. (p.112-113)

현행 성폭력 특별법에서 강간은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에 삽입되었을 경우에 한정된다. 성폭력을 피해자의 인권 침해가 아니라 `임신 가능한 부녀자 보호`라는 가부장적 시각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대에서 남성 간 성폭력, 성 전환자에 대한 강간, 여성 성기에 이물질 삽입 등은 강간이 아니라 추행죄가 적용되어 강간보다 형량이 낮다. 피해자가 여성이든 남성이든 성 전환자든, 성기 삽입이든, 이물질 삽입이든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면 모두 인권 침해이고 성폭력이다. 가부장제 사회가 `임신 가능한 부녀가`만을 `여성`으로 볼 때, 성폭력은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범죄가 아니라 남성 각자가 소유한 `임신 가능에 대한 부녀`에 대한 침해죄-`사유재산권` 침해-가 된다. 이러한 문화적 규범 때문에 성폭력 특별법이 있어도 아내나 성판매 여성에 대한 강간은 처별하기 어렵다. 자기 아내나 성판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다른 남성의 `가임 가능한 부녀자`가 아니므로 남성 연대의 가부장제 질서를 위협하지 않기 때문이다. (p.172)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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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04 1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5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6 0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06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립간 2015-05-06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性매매의 논란은 이전 대부분 사람이 성을 인격으로 즉 도덕의 기준을 보다가 현재에는 비非인격, 즉 노동으로 간주하면서 의견 차가 발생했죠. 기본적으로 도덕의 기준의 임의적이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락방 2015-05-06 18:13   좋아요 0 | URL
당사자가 아닌 상황에서 찬성과 반대를 말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립간 2015-05-07 07:46   좋아요 0 | URL
이번 대화/논란과 관련하여 다락방 님께는 좀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엉겁결에 엉켜 들어오셨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다락방 2015-05-07 11:33   좋아요 0 | URL
아뇨, 저도 관심이 있었는걸요. 괜찮습니다.
 

계속해서 세상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나는 늘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다.

혼불7권을 다 읽지도 못했는데 이 책을 꺼내들었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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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스탕 2015-04-27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 다락방님. 이런 어려운 말을 다 알아 들으세요?
전 밑줄 그어주신 몇 줄을 몇 번을 읽어도 이게 먼 말인가 싶으니 이를 어쩌죠? ㅠㅠㅠㅠㅠ

건, 글코, 즐점 하셨는지요? :)

다락방 2015-04-27 14:02   좋아요 0 | URL
아마도 제가 요즘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기 때문에 저는 밑줄을 그을 수 있었는가 봅니다, 무스탕님. ㅎㅎ

완전 즐점했지요, 무스탕님!
밥이 너무 맛있어서 같이 식사한 동료에게 `아 밥은 왜이렇게 맛있지?` 하고 물었다니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스탕님은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날씨가 좋아요! >.<

여름 2015-05-19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 기억나시나요? 김해 분성고 교사 고영아입니다. 작년에 담임할 때 학급문고를 운영한다고 하니 책을 보내주셨죠. 정말 감사했어요. ㅎ 허리디스크 수술로 인해서 요즘 휴직하고 책도 못읽고 서재 관리도 못하다 오늘 문득 들어와 살펴보는데 다락방님 서재 보고 반가워서 이렇게 글 남깁니다.
저도 이 책 정말 인상깊게 읽었어요. 그래서 두 번 읽고, 밑줄 긋고 읽고, 노트에 옮겨 적어가며 읽었는데 서평 쓸 엄두가 안나더라구요. 뭔가 좀 더 공부하고 써야할 느낌. 근데 허리가 안좋아 그러지도 못하고 있네요. ㅠㅠ
슬쩍 서재 둘러보니 좋아하는 책들에 관해 가득 적혀 있어서 너무 즐거웠습니다. 1월에 수술하고 재활한다고 책에 손도 못댔는데 이제 한 두권씩 읽고 있어요. 종종 책에 대해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하게 즐거운 독서 하시면서 보내시길 바랍니다. -멀리서 여름 드림-

다락방 2015-05-19 09:29   좋아요 0 | URL
기억하죠, 여름님! 학급문고에 맞는 책을 보낸다고 생각했는데 유용했는지요? 후훗.
그나저나 수술 받으셨군요. 몸조리 잘하세요. 몸조리 잘하시면서 책도 천천히 읽으시고, 말씀하신대로 종종 이야기 같이 나누어요. 언제나 환영하겠습니다! 헤헷 :)
 
그저 좋은 사람
줌파 라히리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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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일들을 바로 잡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 (뭍에 오르다, p.378) 라는 문장을 오래 생각했고, 여전히 가끔 생각나기에 다시 꺼내들은 책인데, 다시 읽는 <뭍에 오르다>는 그전과는 또 다르게 다가왔다. 이 소설을 슬픈 소설로 기억하지만, 다시 읽는 이 소설은 '아주 많이' 슬픈 소설이었다. <지옥-천국>을 가장 좋아했고, 그 소설을 여러번 읽었는데, <뭍에 오르다>를 자꾸 떠올렸다.



"그런데 왜 약혼반지는 안 끼고 있어?"

"없으니까."

그는 팔찌를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돌렸다. "어떤 남자가 반지 없이 청혼을 하냐?"

그때 그녀는 청혼은 없었고, 네빈을 잘 알지도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테라스에 놓인, 말라버린 화분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호기심에 가득 찬, 겁내지 않는 그의 눈빛은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 왜 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야?"

그녀는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진실이었다. "여러 가지 일들을 바로 잡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 (뭍에 오르다, p.378)



나도 꼭 저렇게, 헤마와 같은 진실을 품고 있었던 적이 있었다. 헤마는 코쉭에게 말했고, 시간이 오래 지난 후에, 나 역시 친구에게 내 진실을 말했다. 진실은 때로 지나치게 가혹하고 잔인하기도 하다. 어떤 진실은 차라리 모르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그들이 아직 헤어질 수 없는 건 서로에게 분명했다. 몇십 년 동안 보지도, 생각지도, 찾지도 않았지만 뭔가 귀중한 게 거기 있음을 느꼈다. 이 새롭게 생긴 감정이 그대로 방치되어서는 안 되고, 분명 정성을 다해 돌보아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뭍에 오르다, p.376)

어느 날 그에게 웹사이트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그가 보여주었다. 그는 보라고 하고서 저녁거리를 사러 나갔다. 헤마는 침대 위에서, 침대보를 몸에 두른 채 작게 윙윙거리는 그 노트북을 맨다리 위에 올려놓았다. (뭍에 오르다, p.380)

그녀는 그가 이제 다른 일을 할거라는 사실에 기뻤다. 코쉭의 어머니가 그랬을 것처럼, 홍콩에서 회의나 주재하면서 책상에 앉아 일을 하면 더 이상 위험한 일은 없을 거란 사실에 몰래 기뻐했다. (뭍에 오르다, p.381)

아주 처음부터 몇 주가 지나면 이 관계는 끝날 거라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2주가 더 지나면 모든 건 깨끗한 백지 상태로 돌아갈 테고, 그들은 각자 다른 나라에, 코쉭과 조반나 아파트의 열쇠도 각각 다른 사람들의 손에 있을 터였다. (뭍에 오르다, p.383)

심지어 코쉭이 매번 콘돔을 낀다는 사실에도 벽을 느꼈다. 그 작은 포장을 뜯느라고 잠시 멈출 때마다 지금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결국 합칠 수 없다는 사실을 예감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건 줄리안 때문이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을 그렇게 오래 사랑하고 난 후에 배운 몇 가지 중 하나였다. (뭍에 오르다, p.384)

˝나랑 함께 가자.˝ 코쉭이 말했다.
˝어딜?˝
˝홍콩에.˝ 그러고는 말했다. ˝그 사람이랑 결혼하지 마, 헤마.˝
그녀는 걸음을 멈췄다. 길가에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계단 길 위였다. 밑으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뒤에서 걸어오던 사람들이 `실례합니다`라고 작게 말하며 지나갔다. 그녀는 갑자기 아찔해서 비틀거렸다. 자기에게 무관심하던 그 소년, 자기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정사를 시작한 이 남자, 바로 그가 마지막 순간에 그 이상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로 그녀는 뛸 듯이 기뻤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이기적인 말에, 그녀에게 어떻게 하라고 말하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네빈과는 달리, 그녀가 있는 곳으로 오겠다고 하지 않았다.
˝지금 대답하지 마.˝ 이렇게 말하며 그녀의 허리에 손을 둘러 자기 쪽으로, 계단 몇 개 아래로 끌어내렸다. ˝먼저 인도에 가서 생각을 해보라고. 내가 기다릴게.˝ (뭍에 오르다, p.389)

그는 그런 말을 미리 했어야 했나, 혹시 늦게 말해서 건성으로 들리지 않았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녀가 거절했을 때 퉁명스럽게 대해 후회가 됐다. 어른이 되어 그의 과거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을 만난 건, 또 지속적인 관계를 갖고 싶은 감정이 들게 한 여자는 처음이었다. 다시 우연히 만날 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고, 다른 남자와 공유하고 싶지도 않았다. (뭍에 오르다, p.393)

하루 종일 정신이 없었어. 어머니와 이모들이랑 나가서 블라우스를 가봉하고 장신구들을 골랐어. 사리 상점에서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얇은 푸통 위에 앉아 콜라를 마시고 양고기 롤을 먹으면서 남자들이 보여주는 물건들을 구경했어. 나는 다 좋았지만 빨간색 베나사리를 입겠다고 했어. 하지만 그러는 동안 나는 네 생각만 했어. 내가 실수를 하고 있다는 생각에 두려워하면서. 아직 약간 시차가 있었고, 우리 둘이 함께 먹던 음식들과 좋은 커피와 와인이 너무 먹고 싶었어. 트라이앵굴라 공원에 있는 부모님의 아파트로 돌아오면서,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난 바보처럼 네 얼굴을 찾았어. (뭍에 오르다, p.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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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2-12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들로 붐비는 거리에서 난 바보처럼 네 얼굴을 찾았어.

다락방 2015-02-12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단편 참 좋다. 좋으네.

피오나 2015-02-12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너무 좋아해요!! 다락방님이 옮겨주신 글을 보니 다시 꺼내서 읽어보고 싶어지네요ㅎㅎ

다락방 2015-02-12 17:02   좋아요 0 | URL
아, 너무 좋죠, 피오나님! 줌파 라히리 같은 글을 쓰고 싶어요. 참 좋아요. 오늘 다시 읽은 뭍에 오르다는 참 좋습니다. 지옥-천국도 짱인데..

moonnight 2015-02-12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이런. ㅠ_ㅠ; 여기저기서 좋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지만 어쩐지 자꾸 외면하게 되었던 작가인데 다락방님이 불을 지피시네요. +_+;;; 너무 슬플까봐 두렵. ㅠ_ㅠ;;;

다락방 2015-02-12 18:04   좋아요 0 | URL
책과 내가 만나는 것은 정말이지 타이밍인 것 같아요, 문나잇님.
다시 읽은 이 단편은 처음과는 아주 많이 다른 느낌을 주네요. 아 슬퍼요. ㅠㅠ
줌파 라히리를 외면하지 마세요, 문나잇님.
제 생각에 문나잇 님이라면, 이 단편집의 가장 첫번째 단편인 <길들지 않은 땅>을 좋아하실 것 같아요.

moonnight 2015-02-12 18:09   좋아요 0 | URL
네 이제는 만나야 할 시간인가봐요. 읽어볼께요. 불끈!

에르고숨 2015-02-12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 더 슬픈 소설이라면 정말 슬픈가봅니다.ㅜㅜ 저는 `지옥-천국`까지 읽고 `읽지 않은 책` 코너에 꽂아뒀;; 문장 하나가 계속 생각나 다시 찾아보는 독서 참 좋네요, 다락방 님.

다락방 2015-02-12 18:13   좋아요 0 | URL
어떤 책은 내가 읽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또 어떤 책은 `읽었다`는 것만 기억하게 되는데요, 아주 가끔 어떤 책들은 문장들이 기억나요. 외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대략적인 뉘앙스와 내용 같은 거요. 그건 그 책과 내가 만난 타이밍이 맞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 책보다는 기억나는 책을 다시 읽게 되는 것 같아요. 다시 읽으면서 참 좋았어요. 흣 :)

2015-02-14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2-16 1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와 2015-02-16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줌파 좋다..
나도 다시 읽어봐야지.

다락방 2015-02-16 15:20   좋아요 0 | URL
좋죠 좋죠. 좋더라고요..
 
수학자들 - 세계적 수학자 54인이 쓴 수학 에세이
김민형 외 지음, 권지현 옮김 / 궁리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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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중 누군가가(그는 가장 뛰어난 학자 중 한 사람이었다) 사진들을 훑어보더니 "각자 짧은 글을 쓴다면" 책으로 엮을 수 있으리라 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은 모두 게임에 동참해주었다. 짧고, 위대하고, 격렬하고, 미묘하며, 암시적이기도 하고 직설적이기도 한 글들이 가을 낙엽 떨어지듯 속속들이 도착했다. 잠시 거쳐 가거나 더 오래 머물고 있는 수학자, 이론물리학자, 생물학자, 박사 논문 준비자, 명망 있는 연구자들로 이뤄진, 본질적으로는 허물어지기 쉬운 이 인간 집단은 망망대해에 수많은 작은 병들을 던졌다. 그 병들은 이 해안가에 발을 들여놓을 기회가 없었던 친애하는 독자 여러분과 우리 같은 육지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다. - 프롤로그 中 (장 프랑수아 다르스, 아닉 렌, 안 파피요)

 

 

이 책에 실린 글들은 모두 프랑스의 '고등과학연구소'에 적을 둔 적이 있었던 수학자들의 것이다. 그들은 그 하나의 공통 분모로(수학을 사랑한다는 공통분모도 있지만) 각자 글을 쓰기로 하고, 그렇게 이 책은 태어났다. 나는 이 프롤로그를 읽으면서 이것이 꽤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되어졌으며, 이걸 다른 식으로도 응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졌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 아니 유일하게 생각난 것이 바로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의 글' 이었다. 이를테면,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읽고 그 책이 좋았던 사람들의 글들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내는 것이다. 그 책은 아직 '새벽 세시'를 읽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지침이 되어줄 것이고, 이미 '새벽 세시'를 읽은 사람들을 위한 의견 교환의 매개가 되지 않을까. 혼자 이런 생각으로 신났다가,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매니아'스러운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팔리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책이 아닌가, 싶어졌다. 아마..많이 안팔릴거야. 1쇄나 고작 다 나가는 정도가 아닐까...

 

 

이 책을 읽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고, 글자들을 다 읽어내긴 했지만 사실 이 책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90프로 정도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정신 빡 집중해서 미간에 힘 빡 주고 읽어보았지만, 그건 내가 힘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더라. 뭐, 그렇다는 거다.

 

내가 이해한 10프로에서 수학자들은, 수학이 우리 모두의 삶을 개선시켜주리란 점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대여섯 살 때부터 음악을 듣기 시작한 아이는 지력에서 시감각이 차지하는 부분의 균형을 조금이나마 더 잘 맞출 수 있다. 시감각은 보이는 것에만 의존해서 얻는 놀라운 감각으로 아주 어렸을 때 익히는 것이며 기하학과 관련이 깊다. 음악은 대수학을 통해 시감각의 균형을 맞춘다. 음악이 대수학과 마찬가지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이다. 수학에는 뇌의 시각 영역에 해당하며 즉각적인 직감을 따르는 기하학과 대수학을 나누는 이분법이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다. (알랭 콘, p.22)

지난 20년간 나는 유럽, 미국, 그리고 개발도상국에서 활동하면서 북반구의 동료들이 누리는 수준으로 지식을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는 수학자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늘 간직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개발도상국의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그들 중 절반 이상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아 두뇌유출에 한몫한다는 것이다. 나머지 중 일부는 의욕이 고취되어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몇 년이 채 지나지 않아 연구는 저지되고 만다. 능력이 있으니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하고, 가르친 학생 중 최우수 인재들은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계속한다. 이렇게 악순환의 고리는 좀처럼 끊을 수 없다.
빈곤과 보건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개발도상국 정부는 연구를 할 여유도 없고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없다.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나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천재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로 인한 손실은 또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다면 인류 전체가 과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알리 샴세딘, p.115)

고등과학연구소는 방문학자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강의도 행정업무도 맡기는 법이 없고, 심지어 연구 실적을 강요하지도 않는다(적어도 단기간에는). 방문학자나 박사후연구원 선발 때문에 `가끔` 보고서를 주문하는 것이 고작이다. 단독으로 그리고(혹은) 다른 방문학자들과의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자유로운 연구와 사고가 전적으로 보장되는 지구상의 외딴섬과 같은 곳이다. 시끌벅적한 외부세계와 단절된 평화의 항구인 셈이다. 연구소내 연구평의회(Conseil scientifique)의 지지 덕분에 5년 동안 로랑 라포르그(Laurent Lafforgue)와 나는 이곳에서 앞으로 오랫동안 함께 일하게 될 열다섯 명 이상의 연구자들을 만났을 뿐만 아니라 파리 지역의 여러 단체들과 공동 세미나를 기획할 수 있었다. 국립과학연구원의 연구자라는 신분 덕북에 `랭글란즈 p진 프로그램`에 관한 연구를 순조롭게 진행시킬 수 있었다. 독자들을 위해 `랭글란즈 p진 프로그램`이 무엇인지는 생략하겠다. (크리스토프 브뢰유, p.117-118)

이제 알레고리는 필요 없다. 따뜻한 차와 건강한 음식이 있다면, 새로운 방문객이 길을 잃지 않고 연구실을 찾을 수 있다면, 대강당의 마이크가 잘 작동된다면, 인터넷 접속이 완벽하게 작동된다면, 글들이 TeX로 잘 바뀐다면, 잔디가 아름답다면, 공원에 꽃이 피었다면, 수학은 더 잘될 것이다. 이 조건들이 충족되면 또 다른 차원 앞에 모습을 감출 것이다. 그것은 바로 매력이다. (p.163)

우리의 추상적 개념을 자연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얼마나 큰 즐거움인가.

무지개와 쓰나미에서 발견하는 그래디언트의 특수성.
동양의 요술거울에서 발견하는 라플라스 연산자.
파란 하늘의 편광 현상에서 발견하는 타원적분.
양자학의 식별 불가능성에서 발견하는 비틀림과 곡선의 기하학.
필름의 후방 투영에서 발견하는 행렬의 퇴화.
작은 회절격자에서 나오는 빛에서 발견하는 가우스합. (마이클 베리,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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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고숨 2014-11-24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댓글에다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써도 될지, 쓰게 될 줄이야.ㅎㅎ 근데 뭔가 달라졌네요? 알라딘이? 이제 `공감`하지 않고 `좋아`해야합니까?;;

다락방 2014-11-25 08:45   좋아요 0 | URL
아마도 북플이 생기면서 바뀐 것 같네요. SNS화 되는 느낌...이게 좋은건지 싫은건지 잘 모르겠어요. 전 여전히 SNS 알라딘 보다는 이렇게 우리가 피씨 앞에 앉아 찾아 들어와야 하는, 긴 글이 적힌 알라딘을 좋아합니다.

여튼, 저 이 책 읽는 거 정말 수고했어요. (응?) ㅎㅎ

서니데이 2014-11-24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이 좋아요가 되었네요.
두번 누르니까 처리중이라는데요. ^^

다락방 2014-11-25 08:45   좋아요 0 | URL
한 번만 누르세요, 서니데이님. ㅎㅎㅎㅎㅎ

2014-11-26 08: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11-26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