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늘 미안하다
김용태 지음 / 생활성서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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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엇갈린 폰트를 보고 한참 생각에 잠겼습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어려운 말은 ‘사랑한다’가 아니라 ‘미안하다’라는 한 마디라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건네기 힘든 말이라며 덤덤하게 고백했던 영화 평론가가 떠올랐습니다. ‘더 주지 못해서, 이것밖에 해 줄 수 없어서, 이 정도밖에 안돼서’(p.9) 그저 미안한 마음, 그 진심을 마주보고 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표지에서 느껴져 마음이 저렸습니다. 온전히 전하지 못한 진심의 무게가 버거워서, 엇갈린 사랑의 타이밍이 아파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제때 건네지 못했던 마음을 헤아리고 감싸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담긴 책 <사랑은 늘 미안하다>는 세상에서 소외된 작은 이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말하면서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책입니다. 저자인 김용태 신부님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과 안타까움은 적극적인 행동으로 드러나야 하며 작은 이들을 지나치지 않는 예수님의 사랑에서 깨달음을 얻을 것을 설파하십니다. 영적인 갈증에 시달리는 사마리아 여인과 가장 높은 직급의 세관장이었으나 볼품없는 용모와 세속적 기질 때문에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았던 자캐오에게 다가가 그들의 공허와 결핍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채워주셨던 예수님. 세상의 변방에 머물러 빛으로 나아갈 수 없던 작은 이들, 그들의 아픔에 귀 기울기고 공감하며 진정한 연대의 길을 걸으셨던 예수님의 삶을 따를 것을 신부님은 말씀하십니다.

죄인을 추궁하고 단죄하기보다 그들의 나약함을 끌어안아주셨던 예수님의 마음은 베드로를 대하는 태도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자신의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마음이 ‘악惡’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에서 기인한다는 걸,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라는 걸 알면서도 예수님은 베드로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극명히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자신의 아들을 배신한 제자를 내치기는커녕 따스한 손길로 다독여주시며 부활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간직하셨던 성모님 또한 하느님 사랑의 분명한 징표였습니다. 십자가의 어둠을 극복하는 부활의 빛은 이미 성모님 안에 내재해 있던 것.(p.63) 사람들의 멸시와 천대 속에서 하루하루 고통으로 신음했던 작은 이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 그들의 아픔을 보듬고 헤아리셨던 예수님의 삶은 삼위일체 정신의 발현, 그 자체였습니다.

책을 덮고 다짐했습니다. 비록 녹록치 못한 여정이 될지라도 예수님과 성모님의 삶을 가슴에 새기며 살겠노라고. 최고선이신 하느님을 향한 사랑(Caritas)을 지향하며 나의 작은 것부터 봉헌하는 삶을 살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어긋난 타이밍으로 전할 수 없던 진심이 후회와 회한으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소중한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그분 안에서 부활의 빛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도하며 사랑, 그 자체로 우리를 용서하고 매 순간 새로운 존재로 각성시키는 그분의 뜻이 드러날 수 있기를 기도하며 부족한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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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사랑으로 가는 길
윤해영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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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기 전 말씀 한 구절을 묵상해본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마르 6,34-

가톨릭 신앙의 본질이 누군가를 불쌍하고 가련하게 보는 마음, 연민이란 감정에서 기원한다는 걸 안다면 인간을 바라보는 하느님의 시선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고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놓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마음 한 켠 내놓을 여유조차 없던 시절, 순수하게 베풀었던 친절이 외려 생각지 못한 상처로 돌아와 인간에 대한 환멸만 키워갔던 내 마음엔 도저히 연민이란 감정이 스며들지 못했다. 윤해영 수녀님의 <연민, 사랑으로 가는 길>이란 책은 마음의 빗장을 단단하게 걸어 잠근 채 사람들과 소통 자체를 거부했던 과거를 반추하며 상처에 매몰되어 주변을 보지 못했던 내 모습을 따뜻한 손길로 어루만져주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입니다. 세상의 중심이 조금씩 밖으로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남도 보이기 때문이지요. (중략) 인간에 대한 연민만이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인간에 대한 연민만이 이 세상을 살리고 인간에 대한 연민만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p.134~p.135

이 구절에서 몇 달 전 버스에서 만난 할머니 한 분이 떠올랐다. 퇴근길 버스 안은 승객들로 가득했고 사람들의 표정은 대부분 피로로 지쳐있었다. 아무도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없어보였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루 동안 누적된 스트레스 때문에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할 여유가 나에겐 없었다. 하지만 내 앞에 서계신 할머니의 구부정한 등과 마스크 밖으로 보이는 지친 눈빛, 손잡이를 잡고 겨우 몸을 지탱하고 계신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할머니의 주름진 손등을 조심스레 두드리며 자리를 양보했다. 고맙다며 연신 고개 숙여 인사하시는 할머니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잔상이 되어 내 가슴에 자리 잡았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을 때마다 홀로 골방에 틀어박혀 나는 매일 똑같은 생각만을 반복했다.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내가 그렇게 호구 같은가?” 부당한 처사에 목소리를 높일 수 없던 처지를 한탄하며 자기 연민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던 과거. 상처에 매몰되어 주변을 보지 못했던 내 시야에 하느님의 빛이 닿기 시작했다.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했던 순간, 내 마음 한 귀퉁이를 물들이며 영혼을 휘감던 따스한 물결은 나를 세상으로 이끄는 그분의 손길이었다.

사람아!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오죽했으면 너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이렇게 네 곁에 있기를 원했겠느냐? p.168

6월 도서는 고전 문학을 읽으려고 생각했지만 ‘연민’이란 단어에서 연상되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에 이 책을 선택 했는데 소소한 일상의 순간마다 관여하시는 하느님의 섬세함에 나도 모르게 눈가가 시큰했다. 인간에 대한 한결같은 사랑,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매 순간 우리를 향하시는 그분의 뜻을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 단 하나의 진실만이 선명한 울림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연민은 가톨릭 신앙의 단초이며 그분을 닮아가려는 사랑의 몸짓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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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뤼기에르 주교 바로 알기 - 이 시대에 왜 브뤼기에르 주교인가? 브뤼기에르 주교 시리즈
조한건 지음 / 생활성서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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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제주도에서 사목하는 외국 신부님의 일상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지긋한 나이의 신부님은 할머니들과 제주 방언까지 구사하며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셨는데 자연스레 신자들 사이에 스며들어 그들과 공동체를 이루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지만 외모 뿐 아니라 언어, 문화적 가치관 모든 것이 우리들과 대조적인 서양인 성직자가 한국, 그것도 작은 섬 제주도에서 선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면서도 인종과 언어, 문화를 초월하여 현존하는 하느님의 사랑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이국의 땅에 사목하며 신자들과 하나를 이루는 성직자들의 순명엔 분명 하느님의 신비로운 섭리가 작용했을 것이다. 목자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양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간직한 채 조선을 향한 거룩한 여정을 감행했던 브뤼기에르 주교의 짧은 생애 역시 하느님 뜻에 맞갖은 순명과 사랑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냈던 총명함과 남다른 신앙심, 어떤 상황에도 휘둘리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까지 겸비했던 브뤼기에르 주교는 26세란 젊은 나이에 교수와 학장직을 역임했으며 절제와 인내, 희생을 통한 금욕적인 삶을 추구했던 하느님의 충실한 종이였다.
평생 존경과 명예를 한 몸에 받으며 성직자로서 최고 지위까지 오를 수 있는 역량을 소유했음에도 주교는 사적인 야망을 품지 않았다. 눈앞에 펼쳐진 탄탄대로의 인생을 스스로 거부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비워냈던 주교의 가슴엔 오직 목자의 부재로 방향을 잃어버린 조선대목구에 대한 연민과 사랑만 가득했다. 서양 문물에 대한 거부감을 온몸으로 드러내며 천주교를 박해했던 조선 왕실과 세간의 눈을 피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믿음을 키워갔던 신자들.
목자 없이 방황하는 가련한 양들을 향한 주교의 사랑은 나날이 깊어져갔고 결국 조선 선교를 향한 여정으로 이어진다. 선교사와 자금 부족, 폐쇄적이며 전근대적인 조선 왕실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드러내며 주교의 결심을 꺾으려 했던 파리외방전교회의 간곡한 서한에도 꺾이지 않았던 열망, 그 마음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걸까.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알리실 때 우리는 그 계획을 실행하는데 있어서 주저함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p.63)

하느님의 계획은 때론 지극히 초라하고 협소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진정한 순명은 그분의 계획에 동참할 때 이루어진다는 걸 주교는 자신의 생애로 증명한 것이다. 열악한 교통수단과 갈증과 배고픔, 가톨릭 성직자라는 정체성을 철저히 숨겨야 했던 상황 속에서도 오직 하느님의 뜻만을 바라보셨던 브뤼기에르 주교. 1832년 페낭을 시작으로 긴 여정을 감행했던 주교의 삶은 안타깝게도 조선 땅을 밟기도 전에 중단되고 만다. 열병으로 인해 악화된 건강 상태 때문에 잠시 체류했던 마가자 교우촌에서 주교는 급작스런 선종을 맞게 된다. 숨을 거두기 전 극심한 고통 속에서 남겼던 마지막 말은 유언이 돼버렸다. ‘예수 마리아 요셉.’

하느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삶은 세속과 타협하지 않고 묵묵히 십자가를 향해 걸어가는 것, 그 고독한 여정을 브뤼기에르 주교는 완수하고 하느님 품에 안긴 것이다. 비록 중단된 선교였고, 그토록 염원하던 조선 사목에 대한 열망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간직했던 주교의 생애는 땅에 떨어진 한 톨의 밀알을 연상시킨다. 추락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결국엔 풍부한 결실을 이뤄내는 밀알. 브뤼기에르 주교는 한 번도 본 적 없고 대화조차 나눈 적 없는 우리에게 신앙의 신비를 열어준 것이다. 하느님의 신비스런 중개를 통해 지금 이 순간에도 낯선 이국땅에서 묵묵히 사목하시는 외국인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에게 브뤼기에르 주교의 은총과 사랑이 스며들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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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in 말 - 예수님처럼 말하기
로랑 데볼베 지음, 권새봄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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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매일미사를 구입하러 바오로딸에 들렸다. 아침부터 저조한 컨디션 때문에 누가 말이라도 걸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기에 내 표정은 어두웠고 시선은 바닥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탁자 위에 매일미사를 올려놓고 지갑을 꺼냈을 때 수녀님 한 분이 웃으며 말을 건네셨다. “산책하다 들리신 거예요?” 순간 어둠으로 막혀있던 시야가 환해지며 짜증과 불안으로 초조했던 마음이 조금씩 평정을 찾기 시작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방에 누군가 작은 촛불을 켜놓고 다정한 온기로 나를 위로하는 느낌. 지극히 단순한 말 한 마디에 내 마음이 반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수녀님의 표정과 말투에서 나는 예수님의 온화함과 사랑을 느꼈다. 수녀님께선 당신 안의 그리스도를 내게 내어주신 것이다. 말씀으로 육화하시어 매 순간 현존하는 그리스도, 그분의 신비를 묵상하며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것, 로랑 데볼베의 <마음 in 말>에서 권장했던 삶의 양식이기도 하다. 법률이란 딱딱한 분야에 재직하고 있는 변호사지만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하고 자신의 삶에 투영시켰던 저자는 구체적 사례와 법조인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에 대한 깨달음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그에게 말이란 단순한 소통 차원을 초월하여 내면의 그리스도를 타인에게 내어주는 행위였으며, 더불어 삼위일체의 신비를 구현하는 지극히 거룩한 신앙의 표현이기도 했다. 순간을 넘어 영원으로 회귀하는 말, 공중에 휘발되지 않고 누군가의 가슴에 오랫동안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말이란 대체 무엇인가. 진심을 담은 말의 힘과 본질은 대체 어디에서 기원하는 것인가. 저자의 대답은 단순하다. 예수님을 롤모델로 삼을 것. 인류의 구세주였지만 절대 권력으로 사람들을 압박하지 않고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권위로 소외되고 약한 이들에게 먼저 말을 건네셨던 예수님. 풍부한 비유를 통해 말씀하셨던 예수님은 타고난 달변가였고 사람들과 같은 눈높이에 머무르시며 오직 본질에 충실하셨던 분이기도 했다. 사람의 마음을 날카롭게 꿰뚫어보시며 거짓과 기만을 경계하시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실만을 전달하셨던 예수님. 저자는 예수님의 공생활 이면에 존재했던 ‘침묵’을 누차 강조한다. 가끔 제자들을 떠나 홀로 외딴 곳에 머무르셨던 예수님. 침묵은 경청의 원천이며 우리의 말이 태동하는 곳(p.180), 침묵은 말의 자궁과도 같다는 것을 예수님께선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오직 하느님의 뜻만을 바라보셨기에 십자가의 고통까지 감수하셨던 예수님은 침묵 또한 자신의 사명이라는 걸 깨닫고 계셨다. 하느님의 아들을 품고도 침묵으로 순명하셨던 성모님의 자세가 그대로 예수님께 이어져 온 것이다. 그분에게 침묵이란 절대고독의 요새가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기거하는 영혼의 성전과도 같았다. 예수님이 건네시는 말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신비가 담겨있었으며, 군중을 몰입시키는 힘이 있었다. 하늘로부터, 하늘을 찾아, 하늘을 향해 말하시는(p.125) 예수님은 군중과 서로 일치를 이루었고 소중한 친구에게 말을 건네듯 그들과 눈높이를 같이 하셨다. 청자를 존중하되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지 않고 상대가 사용하는 말과 내가 사용하는 말을 조율하여(p.134)하느님의 뜻을 관철하셨던 예수님. 눈높이에 맞게 말을 건넨다는 건 자신의 중심을 잃지 않고 오직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현재를 살아갈 때, 모든 것이 가능해지고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다.(p.170)
순간을 영원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 작은 존재 안에서 큰일을 이루어내시는 하느님에 대한 확신(p.147)을 가지고 눈앞에 당면한 어려움과 연약함,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야 한다. 나 자신의 공허, 결핍, 부족함을 그대로 인정하고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 내 안의 사막을 하느님께 내어드리고 그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을 때 말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말은 사람의 혀끝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 안의 사막을 가로질러 그리스도에게 닿으려는 열망이 하느님께 닿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권위가 부여되며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진심이 드러나지 않는 말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감언이설로 포장된 말들에 순간 미혹당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알게 된다. 온기를 담아 건넨 사소한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주는지. 매 순간 그리스도와 함께 머무르며 그분의 사랑을 내어주려는 시도가 있을 때, 내가 건네는 말은 은총과 축복이 되어 사람들에게 닿는다. 내면의 공허와 결핍을 정직하게 바라보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나의 수많은 결점과 상처를 타인에게 들키지 않으려 전전긍긍했던 날들, 그럴수록 점점 위축되고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기가 두려워 소통 자체를 거부했던 과거가 떠올라 괴롭고 사람들 틈에서 열패감에 시달릴 때마다 나는 이 책을 펼치며 힘과 위로를 얻을 것이다. 온화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을 건네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어주셨던 수녀님을 떠올리며.

당신은 당신의 약점과 결핍을 알고 있지만 주님을 믿는다. 자신의 말을 통해 초라해지는 것은 ‘하느님의 부유함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정한 가난함은 오로지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영혼은 오로지 하느님 안에서 쉬며, 나의 안녕은 그분에게 있다. 오로지 주님 안에.’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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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존재한다 - 루르드에서 일어난 기적에 관한 최초의 증언
베르나데트 모리오 지음, 조연희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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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루르드>를 보면 단 한 번의 루르드 방문으로 치유의 은사를 체험한 크리스틴을 향한 분노와 질투를 주체하지 못해 한 신자가 신부님께 힐난하듯 따져 묻는 장면이 등장한다. “숱한 세월 고통으로 신음하며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아온 우리에겐 왜 어떤 기적도 일어나지 않나요? 주님께선 대체 뭘 하고 계신 거죠?” 신부님은 별다른 동요 없이 대답한다. “그분께선 자유 그 자체로 존재하십니다. 걷잡을 수 없는 바람처럼 존재하는 동시에 사소한 순간마다 은총의 숨결로 살아계시는 분이지요.” 다소 선문답처럼 느껴지던 신부님의 대사를 시간 날 때마다 곱씹으며 신앙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내게 한 권의 책이 찾아왔다. 42년 째 좌골 신경통으로 투병하며 힘겹게 수도자의 길을 살아왔던 베르나테트 모리오 수녀가 루르드에서 체험한 치유의 은총이 고스란히 담긴 <기적은 존재한다>를 통해 나는 십 년이 넘도록 매달려왔던 신앙적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었다.

가난하지만 신앙심 깊은 부모님 곁에서 성장했던 저자는 루르드 발현의 목격자 베르나테트를 수호성인으로 정하고 11세의 나이로 수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성모님에 대한 각별한 공경과 사랑을 마음에 품고 떠난 길이었지만 그 여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28세 무렵 찾아온 좌골 신경통으로 그녀는 기약 없는 투병 생활을 연명해야 했고 가족들의 급작스런 사망까지 마주하며 삶의 의욕이 꺾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큰 물고기 배 속에서 3일을 버텼던 요나처럼(p.21)그녀의 삶은 어둠에 갇혀 있었으나 오직 믿음만으로 살아왔던 그녀를 하느님은 외면하지 않으셨다. 한 줄기 빛으로 찾아온 기적, 루르드 순례를 통해 그녀는 치유의 은총을 경험했고 오랜 세월 그녀의 삶을 좀먹었던 병마를 떨쳐내게 된다. 칠흑 같은 어둠을 극복하고 세상과 마주한 요나처럼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 교구와 의료국의 철저한 검증 끝에 2018년 2월 11일 베르나테트 수녀는 70번째 기적의 치유자로 공식 인정받게 된다. 교구와 장상 수녀에게 강요받았던 침묵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오랫동안 곱씹었던 의문이 내 안에서 다시 한 번 고개를 들었다. 매해 수많은 인파가 루르드 성지를 방문하고 있고, 치유를 향한 간절한 열망을 하느님과 성모님께 바치고 있는데 어째서 기적은 그토록 가뭄에 콩 나듯 간헐적으로 발생하며, 하루하루 고통스런 삶을 연명하며 살아가는 이들의 기도는 쉽게 묻히고 마는지, 결국 치유의 은총은 특별한 이들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닌가? 라는 내 의문에 이 책은 명징한 답으로 응수한다. 기적에는 자격이 없으며 특권 의식의 상징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 그리고 자신의 오랜 지병, 좌골 신경통은 하느님 계획의 일부였다고 말한다. 아픈 사람들과 연대하며 그들의 고통과 절망을 공유하며 하느님의 은총과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하느님은 결코 강자, 권력자, 슈퍼맨 같은 이를 선택하시지 않는다는 것.(p.199) 나자렛의 평범한 소녀였던 성모님께서 인류의 구세주를 잉태하셨듯, 은총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것이며(p.199) 하느님 현존에 대한 의심과 불안을 떨쳐내라고, 한 줄기라도 빛은 존재하며(p.177) 우리의 수많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우리 존재 자체를 사랑하시고 그 안에서 일상의 신비를 일으키시는 분이라는 걸, 우리 자체가 본질이라는 사실(p.178)매 순간 복기하며 살아갈 것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루르드 기적을 떠나 삶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했더라도 소소한 일상에서 하느님 은총과 사랑을 확신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베르나데트 수녀는 말한다. 베르나데트 수녀처럼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지는 못했지만 눈에 보이는 결과에 급급해 본질을 보지 못했던 나는 항상 하느님을 원망했고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하는 내 삶을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고립과 방황을 반복했다. 그분께서 내 안에 심어두신 씨앗을 보지 못하고 살았던 눈 먼 시간들을 돌아보며 십자가의 길을 걷기로 다짐한다.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그리스도의 삶을 성모님과 함께 묵상하고 걸어갈 것을...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요한 3,8) 바람의 방향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분의 계획은 가끔 혼란과 두려움으로 다가오지만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섭리 앞에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셨던 성모님처럼(p.200), 나도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걷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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