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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의 비오 신부
존 A. 슈그 엮음, 송열섭 옮김 / 가톨릭출판사 / 2025년 2월
평점 :
고해성사는 내게 항상 불편한 성사였다. 정확히는, 고해소 특유의 숨 막히는 공기가 버거웠다. 세상과 차단된 밀실에 갇혀, 그간 저지른 죄악과 오류를 낱낱이 고백해야 하는 행위 자체가 나를 짓눌렀다. 가톨릭 신자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라는 걸 알면서도, 선뜻 고해소를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세례 받은지 이십 년이나 흘렀음에도 좀체 지워지지 않은 기억 때문일까. 반 평도 되지 않은 좁은 공간에서 두 손을 맞잡은 채, 더듬더듬 말문을 여는 내게 신부님들은 항상 자상하셨고, 보속도 대부분 가벼웠다.
그러나 때론 버럭 역정을 내며 혼을 내는 분들도 더러 계셨다. 눈물이 쏙 나올만큼.
살면서 항상 따뜻한 위로만 받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땐 그저 서럽고,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리고 참담했다. 반복되는 죄의 굴레에 갇혀 관성대로 살아가는 나 자신이.
참회와 성찰의 본질을 알지 못했던 어린 날의 나에게, 그 독설은 오래도록 사무치는 상처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그날을 떠올리면 나도 모를 웃음이 입가에 번진다. 그날 내가 흘렸던 눈물은, 돌이켜보면 은총의 또 다른 빛이었으니까.
상처로 남은 고해성사
존 A.슈그의 <오상의 비오 신부>는 생전의 비오 신부님을 만났던 성직자와 신자들의 증언을 기반으로 그분이 남기신 놀라운 행적들을 기록한 책이다. 동시에 두 장소에 나타나는 빌로케이션을 비롯해 사람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통찰력과 치유의 기적들, 쉽사리 범접할 수 없는 심오한 영적 깊이. 사후 성인의 반열에 오를 만큼 대단한 업적을 쌓았지만, 비오 신부님은 마냥 친절한 사제는 아니었다. 다소 냉정하고 단호한 태도는 때때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고해 성사 중 그분의 무뚝뚝한 말투에 상처를 받았다는 수녀님의 증언을 읽어보면, 신부님은 틀에 박힌 친절한 위로보다는 철저한 회개와 정직한 고백을 원하셨던 듯하다.
상처로 남았던 고해성사였지만, 시간이 흘러 신부님의 본심을 헤아린 수녀님은 다시 그분께 돌아와 또 한 번 고해를 청하셨다. 구체적인 해결책 대신 '기도하고 또 기도하라'는 신부님의 조언을 가슴에 새기면서.
하느님께서는 비오 신부님을 내 인생에서 도구로 사용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느님께서 계속 나를 인도하시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p.288
비오 신부님을 흠모해 '비아'라는 수도명을 택했던 수녀님. 그녀는 깨달았다. 거룩함이란 항상 부드러움이나 고요함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때론 서늘하고 예리한 영성으로 영혼을 일깨우는 것이 진정한 회개의 단초라는 걸. 오래전 고해소에서 내가 흘렸던 눈물처럼.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티모2, 4장 7절-
인간적인 온기를 초월해, 하느님의 사명을 완수한 비오 신부님. 그는 죄 앞에 무너지는 인간의 나약함을 알았기에, 그들을 무작정 감싸지 않으셨다. 때론 비수 같은 말로 영혼 깊은 곳을 자극하며, 진정한 회심을 촉구하셨던 신부님. 오상을 지닌 육체로 매일 그리스도의 수난을 되새겼고, 고해소라는 좁은 공간에서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셨던 그분의 삶은 치열한 전투와도 같았다. 오직 하느님을 향한 믿음으로 그는 맹렬히 싸워냈다. 불처럼 타오르되, 얼음처럼 정제된 영성. 그 거룩한 온도의 신비를 더듬으며, 조심스레 이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