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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하루 - 언젠가 그리울 일상의 기록 ㅣ 하재욱의 라이프 스케치 1
하재욱 지음 / 헤르츠나인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언젠가 그리울 일상의 기록 안녕하루
지하철에 앉아있는 시커먼 아저씨.
그의 일상, 하루를 들여다보는 것이 뭐가 흥미롭고 재미있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삶에 찌들어 지독하리만큼 쓰디 쓴 술에 하루를 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한편으론 마음이 답답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왠걸! 사람을 아주 들었다 놨다하는 그림과 글입니다.
이 야밤에 식구들 모두 자는데 혼자서 눈물 질질 흘렸다가 피식 피식 웃었다가 미친X이 되었습니다.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는 책이었어요.
생약 성분 자양 강장 캡슐!
글만 보고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그림을 보고 나니 아아~라는 탄성이 나옵니다.
이 책은 지각할까봐 방금 떠난 전철의 뒷통수가 미워지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월급봉투 앞에서 무릎을 꿇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아저씨. 아이 셋 아빠의 이야기입니다.
남자는 아저씨는 감정이 참 메말랐다고 생각했어요.
아내에게 표현도 제대로 안하고 야근을 핑계로 회식에서 거하게 취해 술냄새 귀가하는 아저씨.
이상하게도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꽉 채우는데요.
이 책을 보고 나니 아주 그냥 마음이 짠한걸 넘어섭니다.
아저씨도 아빠임을 그리고 감정이 있는 존재라는 너무도 당연한 걸 떠올리게되네요.
새벽에 가끔 눈을 떴을 때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아이가 자신의 얼굴을 베고 잠들어 있는 것을 보고
눈물 난다는 사람.
한 집안의 가장의 삶과 함께 드러내놓고 표현은 못하지만 뜨끈한 아버지의 사랑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꼭 남편의 일기를 몰래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남자도 여자가 표현을 하지 않으면 모르듯이 아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책을 보며 내 남편을 생각하게 하네요.
내 옆지기도 우리 아이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겠구나.
아이들과 집에서 지지고 볶고 힘들게 산다고 육아스트레스라며 투덜거리지만 이 사람은 그런 것도 못했겠구나.
이런 마음 들여다봐주질 못했구나.
요즘 넘쳐나고 있는 엄마들의 고군분투 육아일기에서 남편들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것을 보고
마냥 좋다고 웃고 있어서는 안되겠단 생각마저 들었어요.
가끔씩 무뚝뚝한 남편이 못마땅해질 때, 아이들이 힘들게 해서 머리가 폭발하려고 할 때,
신데렐라도 아니면서 12시맞춰 들어오려는 남편을 기다릴 때,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싶어질 때
이 책을 살포시 꺼내들면 저절로 힐링이 될 것 같습니다.
남편의 마음 들여다보기는 제대로 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엄마와 아이들이 하루를 함께하지 못하는 아빠,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꼭 봤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빠는 잠든 나를 보며, 학교 가는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내 남편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를 새삼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점점 커가는 아이들을 보며 예전처럼 살갑지 못하다고 느끼는데 남편은 그 느낌이 저보다 더 할거란 생각도 들어요.
아이뿐아니라 저도 그러니 그 허전함이 오죽할까 싶습니다.
그러면서 왠지 또 짠해지고.
회사에서 잠시 짬을 내서 담배를 피고 있는 그림을 보니 옆지기가 떠오르네요.
힘들게 땅만 보고 연기를 뿜을 지 이렇게 하늘 한번 보고 기지개라도 펼지.
오늘따라 남편 어깨의 짐이 참 무거워보입니다.
저거 내가 들어줘야햐는데. 내 짐만 보고 살고 있었나봅니다.
"어느 날 문득 오늘이 떠오른다면 참 질투 나는 하루일 거야"
질투 나는 하루! 나도 그런 하루 좀 살아봐야겠습니다.
오랜만에 아주 마음이 뜨끈뜨끈해지는 이야기를 만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