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조선)

갤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
“공동체 의식이 현대의 불확실성 덜어줘”

‘사회를 보는 거울을 가지고 있던 경제학자(Economist held a Mirror to Society).’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John Kenneth Galbraith)가 97세로 사망했다는 기사(2006년 4월 30일자)를 쓰면서 뽑은 제목이다. 아울러 뉴욕타임스는 갤브레이스를 ‘전통과 인습을 타파하고자 했던 경제학자’ ‘자신의 주장을 굽힐 줄 모르는 자유주의자’로 표현하고 있다.

왜 갤브레이스가 이 같은 평가를 받게 되었을까? 무엇보다 대다수 경제학자들이 사회적 통념이라고 믿고 있는 부분에 대해 현실적·비판적 시각을 들이댔고 이를 현실 경제에서 실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경제학자로서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생산에 대해서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케인스의 주장처럼 수요가 공급(생산)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생산자)의 광고와 판매 기술이 수요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소비자의 필요에 따라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공급자가 소비자의 욕구를 충동시키고 그 충동을 만족시키는 상품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류 경제학자들이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 것과는 달리 ‘공공(公共)’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정부의 개입과 역할을 주장한 케인스보다 한 걸음 더 나간다. ‘선한 의도를 가진 큰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고 그들의 삶을 잘 돌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1958년에 쓴 ‘풍요한 사회(The Affluent Society)’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제목이 풍기는 느낌과는 달리 풍요한 사회가 가져오는 어두운 면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케네디 대통령의 ‘가난과의 전쟁’,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의 기본철학을 제공했다. 
 
갤브레이스가 자신의 거울을 통해 지난 200여년 동안의 세계 경제와 경제학자를 들여다본 것이 ‘불확실성의 시대(The Age of Uncertainty·1977년)’이다. 서문에 나오는 것처럼 하버드대에서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그에게 영국의 BBC가 TV 경제 프로그램을 맡아줄 것을 의뢰하자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방송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다. 방송 당시의 제목도 ‘불확실성의 시대’였는데 지난 시대의 경제사상이나 현상 속에 있었던 확고한 확실성을 현대의 온갖 문제가 직면하고 있는 엄청난 불확실성과 대비한다는 의미에서 붙인 제목이었다. 이후 ‘불확실성의 시대’는 ‘풍요한 사회’와 함께 갤브레이스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됐을 뿐 아니라 30여년이 지난 지금의 우리도 직면하고 있는 살아있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 갤브레이스는 현대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 토머스 멜서스와 같은 고전학파 경제학자와 그들이 경험했던 영국과 유럽 경제, 칼 마르크스와 레닌의 혁명, 화폐의 발명과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탄생, 대공황과 존 메이너드 케인스 등을 다루고 있다. 왜 당시의 경제상황에서 그 같은 경제학과 경제학자가 태어났으며, 새로 태어난 경제학이 불확실성을 어떻게 제거하거나 줄여나갔는지를 짚어주고 있다.

최성환 대한생명 경제연구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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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제2의 성'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수컷이 사회에서 취하고 있는 형태는 생리적, 심리적, 경제적 숙명에 의해서가 아니다. 문명 전체가 수컷과 거세체와의 중간 산물을 만들어내어, 그것에다 ‘여성’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만약 여자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부터, 또 때로는 아주 어린 유년기부터 이미 성적으로 우리 눈에 별개의 것으로 비쳐지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본능이 여자 아이를 태어날 때부터 수동성, 교태, 모성애에 어울리게 해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아이의 생활에 타인의 개입이 거의 당초부터 존재하며, 아이는 처음부터 강제적으로 그 인생의 직분을 떠맡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1908~1986)가 1949년에 내놓은 책, ‘제2의 성(Le Deuxi♥me Sexe)’의 제2부 ‘체험’의 첫 부분에 나오는 글이다. 특히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은 사실상 ‘제2의 성’ 전체를 요약하는 말이기도 하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 의해 회자된다. 이 말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니며 어디까지나 문화적, 사회적 영향 때문에 생겨난 결과라는 걸 뜻한다. 요컨대 여자는 여자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여자로 길러진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와 문화도 여성에 대해 여성다움을 요구한다. 보부아르가 말했듯이 그 여성다움이란 수줍어하면서 좀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수동성일 수도 있고, 남성에게 교태와 아양을 떠는 것일 수도 있으며, 지극한 모성애일 수도 있다. 흔히 부모가 여자 아이에게 인형 장난감을 쥐어주고 남자 아이에게는 트럭 장난감을 쥐어주는 것도, 보부아르 식으로 말하면 여자 아이에게 여성다움을 강요하는 것, 다시 말해서 여성으로 만들어버리려는 행동이며, ‘여성다움’이라는 것 자체가 남성들이 여성에게 덧씌운 굴레, 만들어진 굴레에 불과하다.

그런 굴레의 사례는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찾을 수 있다. 여성 운전자를 향해 이렇게 말하는 남성 운전자가 있다. “집에서 밥이나 하고 아이나 돌보지 왜 차를 끌고 나와 가지고 도로를 혼잡하게 만들어!” 이런 말 한마디에서 우리는 여성의 구실에 대한 고정관념, 이를테면 자동차라는 기계를 다루는 건 본래 남성의 일이라는 것, 여성의 본질적인 구실은 양육과 가사라는 것 등의 고정관념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고정관념이 오늘날에도 깨지지 않고 있는데 ‘제2의 성’이 처음 출간된 20세기 중반에는 얼마나 강했을까. ‘제2의 성’은 출간되고 나서 몇 주 만에 2만2000부가 팔리며 큰 화제와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남성을 조롱했다”며 이 책을 비난했으며, 로마 교황청은 위험한 책으로 지목하기까지 했다. ‘제2의 성’으로 인해 생물학적인 성(sex)과 사회적 성인 젠더(gender)가 구분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20세기 후반 여성주의 사조, 즉 페미니즘의 사실상의 출발이었다.

어떤 남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여성도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열려 있다. 그런데도 여성은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 성공하기 힘들다고 핑계를 댄다.’ 그런데 보부아르가 ‘제2의 성’을 출간할 당시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남자가 많았나 보다. 보부아르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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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우주로 향한 지적인 여행의 안내서
 
너무나도 광대한 우주 그리고 그 한구석에 자리한 초라한 행성 지구. 그러나 이 행성에는 우주 모든 것의 과거와 미래를 인식하고자 하는 인간의 용감한 노력이 있으며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우리의 진정한 가치이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ㆍ1934~1996)이 그의 명저 ‘코스모스(Cosmos)’를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칼 세이건은 20세기 천문학과 행성탐사의 새로운 성과들을 매개체로 삼아 과학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우리가 과학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가장 성공적으로 대중과 교감을 나눈 학자다. 1980년 ‘코스모스’ 책과 짝을 지어 방송된 같은 이름과 구성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시리즈는 방송계 최고의 상이라는 에이미상을 받았으며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60여개 국가에 소개되어 6억명이라는 엄청난 시청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코스모스’ 책 또한 20세기에 가장 많이 읽힌 과학도서라는 영예를 갖게 되었다. 이미 또 다른 저작인 ‘에덴의 용’(1977)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는 20여권의 도서를 포함하여 일반인을 위한 수많은 글을 남겼으며 그가 저작한 과학소설인 ‘콘택트’(1985)는 이후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달착륙에 이어 우주탐사의 열기가 한껏 고조되었던 1970년대 미항공우주국(NASA)의 마리너, 바이킹, 보이저 그리고 갈릴레오 계획의 책임과학자로서 활약한 칼 세이건은 연구자와 교육자의 틀에 묶여있지 않고 과감하고도 끊임없이 대중과의 대화를 시도한 과학사상가이자 계몽가였다. 과학은 소수 연구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오랜 기간에 걸쳐 함께 이루어온 발전의 과정이자 동력이었으며 인류의 미래는 우리 모두에게 과학에 대한 이해와 과학하는 심성을 요구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코스모스’는 마치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우주입문서다. 당시의 천문관측과 우주탐사로 알려진 놀라운 사실과 화려한 화보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 책이 흥미롭고 신기한 새로운 지식들의 조각으로만 구성된 것은 아니며 또한 단편적 지식의 일방적 전달을 목적으로 쓴 책이 아니라는 것을 독자는 금방 알 수 있다. 
 
칼 세이건은 이 책에서 독자의 손을 잡고 우주의 다양한 모습과 지구와 태양계 여러 행성의 신기한 특징을 하나씩 보여주는 여행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생명체의 발현과 진화에서부터 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은하와 우주의 거대한 구조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한 주제를 차근차근 소개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놀랍고도 매우 매력적인 것은 칼 세이건의 친절한 설명이 갖는 폭과 깊이가 대단하다는 사실이다. 이들 주제 하나하나에 대해 그는 과거 고대인과 선현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그러한 생각을 하게 한 문화적·역사적·사상적 이유는 무엇인지, 또 그와 같은 과거의 생각에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이 나중에 획기적인 인식의 발전으로 연결되었는지를 논리정연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우주탐사선이 찍은 한 장의 천체사진은 그 자체로도 멋진 작품이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과학적 의미와 해당 주제에 대한 인류지식 증진과정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게 될 때 그 아름다움이 더욱 깊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책은 그러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20세기 과학대중도서의 가장 훌륭한 역작으로 여겨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변용익 연세대 교수ㆍ천문우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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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케인스의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 근거를 마련

“이자(利子)가 뭔지 아니?”
“만약 제가 아버지에게 반 페니(half penny)를 빌려드리고, 아버지가 그것을 오랫동안 가지고 계시면 아버지는 저에게 반 페니와 또 하나의 반 페니를 돌려주셔야 해요.”
경제학자인 젊은 아버지와 네 살짜리 아들의 대화였다. 이 아들이 약 40년 뒤인 1936년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책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이하 일반이론)’을 쓰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닐 듯싶다. 게다가 제목에도 이자라는 말이 들어 있으니 말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1946년)가 쓴 일반이론은 이름만 일반이론이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특별한 이론이었다. 책이 발간된 1930년대는 그때까지 현실경제를 잘 설명해 오던 정통파라고 할 수 있는 고전학파 경제학이 크게 흔들리고 있던 시절이었다. 고전학파 경제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와 ‘보이지 않는 손’ ‘세이의 법칙(Say’s law)’으로는 전 세계적인 대공황과 그에 따른 장기대량 실업사태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으로 대표되는 고전학파 경제학은 개인이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야말로 사회적 부(富)를 창출하는 근원이고, 그 같은 사적(私的) 이익 추구에 의해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공정하면서도 효율적인 부의 배분을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또 세이의 법칙에 따르면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하므로 과잉생산 또는 과잉공급이라는 단어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시장은 완전히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저절로 최고, 최선의 상태를 이룬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대공황 이전까지는 고전학파의 주장에 큰 무리가 가는 경제적 상황이 거의 없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대공황과 그에 따른 실업은 고전학파의 존립 자체를 위협했다. 보이지 않는 손(=시장)에 자유롭게 맡겨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엄청난 불황(=대공황)과 실업이라는 과잉생산이 발생했을 뿐 아니라 장기화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황은 생산해 놓은 상품이나 서비스가 팔리지 않고 남아도는 것이고, 실업은 노동을 공급하고자 하는 사람이 원하는 직장(수요)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세이의 법칙이 전혀 먹혀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일반이론의 시작은 “왜 대량으로 실업이 발생할까?”일 것이다. 이에 대한 케인스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기업이 일하기를 원하는 노동자를 충분히 고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왜 기업은 고용을 않거나 심지어 줄이기까지 하는 것인가? 노동자를 고용하는 이유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서인데 생산한 상품이나 서비스가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질문은 이렇게 이어질 수밖에 없다. 왜 상품이나 서비스가 팔리지 않는 것인가? 이에 대한 케인스의 대답도 단순하면서도 명쾌하다. 소비와 투자 같은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면 무조건 팔리는 것이 아니라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개인(소비)이나 기업(투자)의 수요 정도에 따라 기업이 생산을 늘리거나 줄인다는 것이다. 케인스는 이 같은 수요를 ‘유효수요(effective demand)라고 불렀다. 뒤집어 보면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던 시대’에서 ‘수요가 공급을 창출하는 시대’로 바뀐 것이다.

최성환 대한생명 경제연구소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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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
“인간의 본성은 진화와 유전자가 결정”
 
20세기 가장 걸출한 과학저술가를 들라고 하면 아마도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을 꼽아야 하지 않을까? 매년 그 해에 미국에서 출판된 책 중에서 가장 뛰어난 저작자에게 부여하는 퓰리처상을 그것도 문학이나 인문학이 아닌, 생물학을 전공하는 과학자가 두 번이나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으니 말이다.

1929년생의 에드워드 윌슨은 소년 시절부터 개미 탐구에 열심이었지만 본격적인 개미 연구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는 1953년에 이루어졌다. 당시 하버드대학의 대학원생이었던 윌슨은 그즈음 유행하던 동물행동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대다수 쟁쟁한 연구자들이 새와 포유동물의 의사소통에 관심을 가졌던 점에 착안해서 자신은 개미들의 의사소통 방법을 밝혀보고자 노력했다고 자서전에서 밝힌 바 있다.

1955년 윌슨은 하버드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자마자 조교수로 발령을 받는다. 개미들에게서 여러 종류의 페로몬을 발견하고 그것들의 역할을 성실히 규명했던 학문적 업적이 높게 평가된 결과였다. 이후 10여년 동안 윌슨은 개미 연구로, 또 원숭이와 기타 동물의 습성과 사회적 행동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 전 세계를 누볐다.

그런데 1960년대에 이르자 미국 생물학계의 분위기는 점점 더 분자생물학이 각광을 받게 되고 또 그만큼 동물행동학이나 진화생물학 등은 홀대 받는 경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하버드대학의 젊은 조교수 윌슨은 그런 와중에서 원숭이와 까마귀와 개미의 생활 습성을 대상으로 삼는 자신의 연구 분야가 점차 쇠퇴하는 것에 크게 자극을 받게 된다. 그는 그간의 동물행동학적 연구 결과들을 종합하고 다듬어서 새로운 이론으로 발전시켜 보고자 하는 강력한 충동에 사로잡힌다.

타고난 종합가라고 할 수 있는 윌슨은 그때까지 동물행동학 연구가 동물행동의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데에 치중했던 나머지 어느 누구도 그런 행동의 저변에 깔린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점에 먼저 주목하였다. 자연에서는 침팬지들이 사냥에서 획득한 먹이를 집단 내의 다른 침팬지들에게 나누어준다든지, 또는 적의 출현을 처음 발견한 새 한 마리가 경고음을 발산해서 다른 새들을 보호하는 대신 자신은 희생의 제물이 된다든지 하는 이타적인 행동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동물행동학은 기껏해야 그런 행동이 전체 집단를 위한 개별 개체들의 희생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윌슨은 이런 동물들의 이타적인 행동이야말로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그들의 유전자 속에 각인된 본능적 행동이라고 해석하였다. 요컨대 동물의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진화와 유전자의 영향력에 주목했던 것이다.

홍욱희 세민환경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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