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의 삼십대 독신 남자들은 우아하고 젊은 싱글을 넘어서서, 동안 컴플렉스와 나르시시즘으로 가득한 도리안 그레이로 진화하고 있는 걸까. 거울을 들여다봤다. 자기애라는 버릇에 도취된 서른세 살 아저씨가 보였다. 어른은 아니었다."

(한겨레 ESC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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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그만큼 사랑의 합일성과 완전성을 신화화해온 덕이다. 그래서 사랑한다면 둘 사이에 어떤 ‘별개’도 존재해선 안 되고, 사랑한다는 자신의 감정은 만유인력에 필적할 무슨 우주적 정당성이라도 되는 줄 아는 거다. 하지만 오해는 풀고 가자. 사랑한다는 자신의 감정은 그저 다른 모두의 감정만큼만, 딱 그만큼만 중요할 뿐이다. 게다가 완전하기는커녕 가장 불완전한 감정이 바로 사랑이다. 그러니 사랑한다고 제발 유난 좀 떨지 마시라. 사랑이 때때로 위대해지는 건 완전해질 때가 아니라, 서로 불완전한 걸 당연한 걸로 받아들일 때니까.

(한겨레 ESC,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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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60이 되어서도 어떤 고정관념에도 자신을 내팽개치지 않고 날선 자아를 가지고 싶다. 열망의 진화 자체가 중심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목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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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다. 만약 당신 주위에 섹스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암스테르담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자기 신체를 사용한 놀이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스포츠 관람에만 넋을 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관음증 환자다.
스포츠가 개인의 건강과 육체를 향상시키려는 것이라면, 관음화된 현대의 스포츠는 그 정의에 맞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육체가 제거된 관음화된 스포츠는 구경꾼을 잡담가로 타락시킨다. 스포츠 경기란 사익에 충실한 극히 개인적인 활동임이 분명한데도, 스포츠 잡담가들은 그걸 국력과 연관지으며 공적인 화제인 양 기만한다. 올림픽이 시작되고 대통령의 지지율이 30%에 육박한 이유다.

(한겨레, 장정일의 '책 속 이슈'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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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에 대한 그의 졸렬한 태도는 상처의 이기심을 먹고 살아가는 남자의 허영(내 상처는 보다 깊고 독창적이라는 허영)에 특징적인 것이다. (중략) 수현과의 합일을 통해 그가 또다시 증명한 진실은, 그의 현재를 구성하는 그 낡은 버릇 이외에 아무런 진실이 없다는 진실이다.

가족이나 연인과 같은 근본적·1차적인 사랑과 신뢰의 관계가 제공하던 정서적 지지가 없어지거나 훼손될 경우 그 당사자는 이후 단발적이며 피상적인 애정관계를 전전하게 된다고 한다. 그는 깊고 지속적인 정서의 관계를 믿지 않거나 혹은 아예 회피하는 쪽을 택한다. 세속에서 성숙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곧 1차적 애정관계에 대한 근본적이며 진득한 신뢰에 의지한다는 주장이다.

(한겨레, 김영민의 '영화와 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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