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안건모 지음 / 보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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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알라딘 회원 로쟈님의 서재를 통해서 안건모씨의 인터뷰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지식인들의 어려운 글쓰기와 <좋은 생각>의 나쁜 글쓰기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비판' 보다 '통렬한'이 더 인상적이었습니다. 누구나 비판을 하지만, 그 처럼 통렬하게 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었죠.

"<작은책> 작업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뭔지 아나? 철학사상연구회에서 항상 글을 연재하는데, 원고를 받아서 쉽게 고치는 게 제일 어렵다. 엄청 어렵게 쓰니까, 무식한 노동자들도 그냥 술술 읽을 수 있게 애를 쓰는데 힘들다."

"<좋은 생각> 같은 잡지도 있는데, 그건 전혀 아니다. 그 잡지는, 내가 '조선일보하고 비슷하다'고 욕을 할 정도다. 그 책에 따뜻한 글들이 많지만, 거기에는 현실이 없다. 내가 양보하면 세상이 다 따뜻해진다는 게 결론이다. 그렇게 사람 생각을 마비시키는 글이다. 그런 잡지는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많이 나오고 잘 팔린다. 그런데 그 책들은 결론이 없고 현실이 없다. 아빠가 택시기사인데, 아빠가 어렵고 힘들고 고생하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왜 힘들고 고생하는지는 안 나온다. 비정규직 엄마가 일하는데, 비정규직이 만들어지는 그 구조가 있지 않나. 그런 건 안 나온다.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행복했다, 그런 내용이다. 저런 책이 널리 퍼지면 안된다고 본다."

-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를 통해, 그가 그동안 <작은책>과 <한겨레21>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두어 읽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20년간 줄곧 시내버스를 몰아온 한 노동자의 인생과, 내림과 동시에 잊혀져버리던 시내버스 안의 사람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시내버스 회사의 부조리, 또 그것을 바꾸기 위한 저자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습니다.

- 그는 아무런 기교 없이도, 유쾌하지 않은 일상을 유쾌하게 써냅니다. 20년간의 소외된 노동도, 막히고 덥고 짜증나는 시내버스 안의 풍경도, 불법과 합법의 폭력이 난무하는 노사 대립의 현장도, 어둡고 외로운 노동자로서의 외침도, 그의 글 안에서 만은 어둡고 칙칙하지 않습니다.

- 그 모든 일상에 저자 안씨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온갖 공장과 노동일을 전전긍긍하다가 시내버스를 만나 비로소 안착했다는 버스 노동자 안건모, 당골 손님들을 기억해두었다가 정겹게 인사하는 안건모, 회사의 불법적인 착취와 부당노동행위, 게다가 뒤통수까지 때리는 어용 노동조합 앞에서 "내일부터 월차 적치하세요."라고 던지고 나와버릴 수 있는 안건모, 불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버스일터 모임을 통해 동료들의 목소리를 모으고자 노력하는 안건모. 그런 안씨가 있기 때문에, 일상은 새롭게 다가옵니다. 

- 이제는 <작은책>의 편집장이 된 안씨. 그가 더 많은 '안씨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쉽고, 자신있고, 당당한 '안씨들'의 목소리가 더욱 울려퍼지도록, <작은책>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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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7-02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쓴 안건모입니다. 리뷰를 쓴 분들에게 뒤늦게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 책을 좋게 평가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책이 나오자마자 읽으신 분 같습니다.
저는 지금은 월간 <작은책>이라는 진보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에서 언론 운동, 문화운동으로 바꾼 셈이지요. 노동자들 소식을 전하는 책입니다. 사이트에도 들어 오셔서 구경하시고 작은책도 널리 퍼뜨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www.sbook.co.kr
02-323-5391
 
백수생활백서 - 2006 제30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박주영 지음 / 민음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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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읽고싶어서 백수가 된 여자' 의 근황이 궁금해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이것저것 재지 않고 호기심에 책을 구입하는 것은 제 오래된 습관이지만, 이번 만큼은 거기에 더해 동질감에서 비롯되는 반가움이 있었죠. "너도 백수니? 나도 백순데."

사실, '반가움' 에는 약간의 기대가 숨어있었습니다.
반쯤은 만족하지만 반쯤은 불만족스러운, 오늘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근거없는 기대감이죠. "그래도, 명색이 백서인데."

소설을 펼쳐놓고 분석이라는 것을 시작합니다.
'음.. 그녀는 하루에 1권 이상의 책을 비타민처럼 복용하고, 책을 모으는 것 만이 유일한 관심사이며, 정말 먹고사는데 필요한 만큼의 일만 하는군.'
물론, 주변환경에 대한 조사도 놓치지 않습니다.
'그녀의 주변에는 별다른 간섭을 하지 않는 아버지와, 한편의 소설을 써낸 적이 있는 외할머니, 수차례 직장과 연애상대를 갈아치우는 친구 유희와 더 나은 로맨스를 꿈꾸는 친구 채린이 있구나.'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과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하루 대략 1권 정도의 책을 읽고, 옷이며 최신 전자제품 보다는 책을 선호하며, 먹고사는데 필요한 만큼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주변에는 공무원 시험을 종용하는 아버지와, 저를 무던히 답답해하는 공무원 누나,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친구녀석들이 대거 포진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주변환경의 차이인가?"

이제 다시 그녀에게 돌아갑니다.

그녀는 '신세한탄'을 하지 않습니다. 가끔 '평범한 삶'을 잠시 상상하는 듯 하지만, 그녀에게 별다른 감흥을 일으키지 못합니다. (책 속에서 몇 문장 차지하지 못하죠.)
대신, 그녀는 '백수로서의' 자신의 삶을 규정하고 또 규정합니다. "내 꿈은 무엇이다" 부터 "올해의 계획은 무엇이다" 까지, 자기 삶에 대한 크고작은 의미 부여와 방향의 설정, 계획의 수립이야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닙니다만, 그녀는 좀 다릅니다. 이런 얘기들을 두번이고 세번이고 반복하는데에는, 뭔가 구린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백수의 표본으로서 그녀를 분석하고자 했던 저는, 결국 수사의 단서를 찾지 못하고 책장을 덮고 말았습니다. 근거 없는 추측만 남아있죠.
설마, '오늘의 작가상'까지 수상한 작가께서 글줄이 궁했을리는 없는데.. 대체 무엇일까요? 단서가 없는 것인지, 찾지 못하는 것인지.

백수로서의 삶은 단 한번만 긍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못해 반복되는 긍정은, 일종의 자기암시이고, 자기암시란 곧 불안함을 뜻하니까요. 백수에게 불안함이란, 감점요인입니다.

백수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입니다.
삶에 대한 많은 기준에다, '자기만족'이라는 중요한 기준 하나를 덧붙여주고 증명해보이는 것이죠. 그러기 위해서, 백수는 진정으로 행복해야 합니다. 자신을 속이는 순간, 감점입니다.

물론, 야박하지만은 않습니다. 조금 불안하다고 상담해오는 백수님들에게, 생계유지형 아르바이트를 소개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백수님들에게는, 더 이상 백수로서의 자격을 유지시켜드릴 수가 없는 것이죠.

자격유지를 못하게 된 백수님들에게는 두가지 진로가 있습니다.
한가지는 직업세계로 진출하는 것이요, 또 한가지도 직업세계로 진출하는 것인데요, 전자와 후자는 분명히 다른 세계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두 세계의 차이점에 대해서는, 백수에 입문하신 분들께만 말씀드려야 할 것이라, 부득이하게 말을 아끼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한가지! 불안해하는 백수님들이여, 최선을 다하시라. 그대 어느 길이든, 직업세계에는 당도할지니.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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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을 희망의 이름으로 기억하리라 - KTX 여승무원 문집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 엮음 / 갈무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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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섯 스물일곱, 내 또래의 그녀들 KTX승무원.
파업투쟁 100여일을 훌쩍 넘기며 내어놓은 한권의 문집에는, 그녀들의 꿈과 노력이, 기쁨과 자부심이 담겨있습니다.

"너무나도 하고 싶었던 승무원의 꿈을 이뤘다는 기쁨에 하루에도 몇 번씩 합격자 발표 한에 찍힌 내 주민번호를 보고 또 보며 행복해 했다."

그래서 더 많이 화나고, 속상하고, 억울하고, 힘들었을 그녀들이지만,
그녀들은 너무나 너그럽습니다. "잘 다녀와 다음에는 꼭 같이 할께" 주인공이 빠진 'KTX 개통 2주년 기념행사' 에서 떠나고마는 KTX를 보며, 그녀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승무원으로서의 자부심이 '꿈의 속도로' 추락했지만, 지금 'KTX 열차'와 '고객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있지만,
KTX 열차에 대한 가장 순수하고 애틋한 마음이 그녀들의 글에 곱게 배어있습니다.

그래서, 그녀들은 잘 싸워나갈 것입니다.
당장의 비용절감에만 눈이 멀어버린 경영진 어느 누구보다도, 'KTX 열차' 라는 일터에서의 자기 삶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지 '철도공사의 정규직 승무원'이란 단순화된, 대표화된 요구만은 아니다. 해준 약속은 지켜주고, 한 만큼 알아주고, 되돌려주며 사랑과 책임감 있는 삶을 누리게끔 해달라는 것이다. (중략) 아직도 내 바람은 헛되지 않았다는 믿음과 믿음에 대한 순수를 버리지 않는다."

능력과 열정을 가진 이들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의와 순수함을 가지고 있고 지키려는 이들은 그리 많지 못합니다.
100여일 동안, 정부, 철도공사 경영진과 경찰은, 그녀들에게서 아무 것도 빼앗지 못했습니다. 그녀들은 지금 모든 것을 쥐고 당당하고 아름답게 서있기 때문입니다.

철도노조 KTX 승무지부 동지들이, 더욱 당당하고 아름다워지기를 응원합니다. 화이팅!

"시간과의 싸움에서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안달하는 것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다. 시간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만큼, 나도 흔들리지 않고 정해진 만큼 넉넉히 기다려 주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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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 실천문학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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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학에서 분단문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번 소설을 지었다.”
조정래 선생께서 <인간연습>을 내어놓으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4년 만에 출판되었다는 선생의 소설은, 30년의 옥고를 치루고 출옥한 한 비전향 장기수의 말년을 다루고 있습니다. 선생이 전향을 했다는 자극적인 보도기사도,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거창한 소개글도 그리 마땅치가 않습니다.

소설은 사회주의의 몰락을 배경으로 시작합니다.
30년의 옥고를 마치고 출옥한 두 노인은 소련의 해체 소식에 “이거 우리 헛산 것 아니오?” 라며 허탈해합니다. 오랜 친구의 고발과 체포, 사상전향을 목적으로 한 경찰 검찰 교도관의 폭력, 연좌제로 인한 가족들의 고통과 외면, 몸과 마음의 병환을 이기지 못한 전향의 아픔으로, 이미 반쯤 무너져있는 그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련의 해체는, 그들이 그동안 겪어온 고통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무엇이었죠. 그것은 살아가기 위해 감내해야 할 고통이 아니라, 살아갈 이유의 상실이었으니까요.

같은 무게의 고통 속에서, 한 사람은 죽었고, 한 사람은 죽지 못해 살아갑니다. 그리고 소설은 박동건의 장례식에 참석하는 윤혁의 뒤를 쫓기 시작합니다. <태백산맥>과 <한강>이 분단 현실에서의 고통을 짚어왔다면, <인간연습>은 고통 이후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박동건의 죽음이든 윤혁의 삶이든, 고통 이후를 말합니다.

윤혁을 보호감찰하는 형사와의 대면에서, 우리는 소설이 쫓아온 윤혁의 삶을 찾을 수 없습니다. 윽박지르고 비꼬는 형사에게, 윤혁은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할 뿐입니다. 소설은 다시 그를, 어떻게든 살고있는 윤혁의 삶의 자취를 쫓습니다. 그리고, 이제 등장하는 두 사람과의 관계는 윤혁이 살아가는 이유, 즉 선생이 말하고자하는 사상 이후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기준과 경희. 부모를 잃은 이 아이들은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훔치다 윤혁의 도움을 받으며 인연을 맺게 됩니다. 이들은 몇일에 한번씩 윤혁 할아버지를 찾아와 함께 식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손주 노릇을 톡톡히 합니다.

강민규. 노동운동을 하다 투옥되면서 윤혁을 만나게 된 그는, 간간히 일거리를 구해오거나, 보호관찰중인 윤혁이 접하기 힘든 사회의 소식을 전해줍니다. 그가 자연스레 전하는 소련의 해체와 관련한 토론회 내용 - 공산당의 일당독재, 이기적인 인간 본성에의 어긋남, ‘무오류’라는 당의 독선 - 이나 시민단체의 활동 - 진보와 보수의 균형 - 이, 사상 이후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윤혁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죠.

소설은 결국, 기준과 경희, 강민규와의 관계 속에서 윤혁이 새로이 선택하는 삶을 통해서 보여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는 결국, 한 보육원에서 기준과 경희를 비롯한 아이들을 돌보는 삶을 선택하죠. 강민규를 통해서 ‘모색’되었던 사회주의 몰락 이후의 삶의 방식은 대화와 독백에서 더 나아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육원에 자리잡은 이후 윤혁을 찾아온 강민규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죠. “나 자네 보고 싶은 적 한 번도 없었어.”

저는 이것이 선생이 말하는 ‘분단문제의 마무리’인 것 같습니다. <태백산맥>에서도, <한강>에서도, 그리고 <인간연습>에서도, 선생께서는 삶을 모습을 통해서 시대의 아픔을 비출 뿐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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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거짓말 같을 때
공선옥 지음 / 당대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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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은 좀처럼 가까이 하기가 힘들었다.
넓은 자간과 행간, 넉넉한 여백, 구성진 말투.. 산문집이 풍기는 조금은 느리고 여유로운 모습 때문이었다.
몇일 전 한 친구가 굳이 소개해주지 않았다면, 아니 소개만 하고 선물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산문집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표지에 실려있는 그녀의 투박한 외모와 이력, 그리고 "예술가가 해야 할 일 중에는 풍경을 기록하는 것뿐 아니라 그 시대의 상처를 기록하는 일도 포함된다."는 다짐도, 오래 자리잡은 산문집에 대한 인상이라는 것을 바꾸기는 힘들었다.
소외를 기록하는 일이 무에 힘들다고.. 우리 시대의 상처를 기록하는 일은 솔직하면 될 일이지, 다짐까지 해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공선옥도 소외를 말한다.

돈이 없어 아이를 아동일시보호소에 내맡기는 아비「내 이웃의 통곡소리가 그치지 않는데」
천연조미료 만들어 먹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한 이들 「뉴-슈가와 맛나니」
나이가 조금 많거나 조금 적은 이들의 사랑이야기 「사랑은 가고 러브만 남은 이 휘황한 밤에」
공중전화통을 붙들고 있는 어린 군인들  「어떤 쓸쓸함에 대하여」
김선일씨의 죽음 「행복할 자신이 있는가」
쓰나미가 할퀴고 간 상처 「새해에 비는 소망」
기회의 불균등에 상처받는 아이들 「서울대 진학확률 0%인 사람들의 원죄는?」
억지로 아이 젖을 떼야 하는 여성노동자들 「젖 주는 사회」

하지만, 공선옥이 전하는 소외는 특별하다. 소외와 더불어 '근본' 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중요한 것은 본질이다. 왜 사는가. 왜 돈을 버는가. 왜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는가. 왜 정치를 하는가. 나는 왜 인간인가."  「본질을 망각한 사회」
"지금 우리는 확실히 가난은 없고 빈곤만이 남아 있는 시대를 살고 있다. (중략) 가난은 그대로 어느 정도 숨 쉴 구멍이라도 있지만, 빈곤은 도대체 그 어떤 대책도 없는, 가난은 가난해도 어딘가 따스한 기운이 묻어나기도 하지만 빈곤은 그야말로 삭막 자체인 것 같은." 「가난과 빈곤」
"차마 말로는 다할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을 요구하는 노동현실이 지금 이 땅 건설현장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런 현실에 있는 이들에게 책읽기로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 운운하는 것은 또 하난의 폭력이요, 기만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는 지금 통렬한 심정으로 고백하는 것이다."「말할 수 있음의 폭력」


그녀의 항변에는, 소외를 기록하고자 하는 한 예술가의, 근본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이것이, 공선옥의 글이 칼럼이라기에는 날카롭지 못하고, 산문이라기에는 보드랍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는 아직 "아름다운 노래 따위 부를 수 없는" 것이다.

소외에 다가가는 법은 제각각이 아닌가. 어떤 이들은 자신의 동정심과 인간미를 십분 발휘하기 위해, 어떤 파렴치한 이들은 밥벌이 수단으로, 그리고 공선옥은 근본에 대한 열망으로 소외에 다가간다. 공선옥에게 소외란, 이미 남의 것이 아니다.

소외는 솔직함을 간직하는 이상 우리 모두의 것이다. 소외가 더 이상 소외라고 하기 무색한 사회, 소외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치는 이들과, 소외를 해결하기 위해 팔 걷어 붙이고 달려드는 많은 이들에게, 아직 예술가이기를 거부하는 글쟁이 공선옥은 말한다.

"왜 사는가. 왜 돈을 버는가. 왜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는가. 왜 정치를 하는가. 나는 왜 인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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