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경제학
하노 벡 지음, 박희라 옮김 / 더난출판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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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상의 경제학>은 ‘일상에 숨겨진 경제학의 수수께끼를 푼다’ 고 합니다. 경제학이라고는 한번 공부해 본 적이 없는 평범한 우리의 일상 속에 경제학적인 판단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경제학적 판단‘ 이란 다름 아닌 ‘효율성’에 있습니다. 일상 속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매순간 어떤 선택을 내릴지는, 비록 사람마다 다를지언정 스스로에게는 가장 합리적이고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죠. 정의하자면, “주어진 수단을 갖고 가능한 한 최고의 결과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효율성이란 ‘완전경쟁의 시장경제’를 의미합니다. 아담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 의 비유를 들었듯이, 경제주체들이 굳이 남을 의식하지 않아도 스스로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려 한다면, 시장은 일시적인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곧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는거죠.

저자는 경제학자의 효율성과 정치인의 효율성을 대비시킵니다. 소위 ‘시장의 실패’ 를 보완해야 할 역할을 맡은 정치인들이 정책적 규제를 남발하면서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농업보조정책이기도 하고, 복지정책이기도 합니다. 그는 독일 대통령 라우가 “우리는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이 경제성과 효율성이라는 패턴에 각인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합니다.” 라고 말했던 것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합니다. 그는 대통령이 ‘효율성’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생각에, 효율성이란 “최고의 결과에 도달하는 것”을 의미할테니, 공공부문에서 만큼은 효율성을 배제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공공부문에서는 최고의 결과에 도달할 필요가 없다” 는 것으로 해석될법 합니다.

저자는 대통령의 발언을 오해했거나 오해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의 발언이든 주어진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를 잊지 않는다면, 대통령의 발언은 공공부문의 민영화를 경계한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테니까요. 결국, 공공부문의 민영화는 효율적이냐 그렇지 않으냐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하노씨가 지적하고 있는 농업보조금이나 복지정책의 실패, 즉 과도한 공급의 유지로 농산물 가격이 떨어진다던지, 획일적인 공공정책으로 복지예산이 낭비되는 문제는 객관적으로 발생하는 ‘낭비’ 내지 ‘손실’ 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시장의 실패, 즉 급격한 산업구조의 변화나 사회양극화에서 ‘사회적 갈등’ 이라는 낭비와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줄이기 위해서 고안되는 것이죠.
하노씨가 소위 ‘시장만능주의자‘ 가 아니라면 후자의 비효율성도 마저 계산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셈을 제대로 한다 하더라도, 문제는 만만치 않습니다. 같은 조건과 입장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최고의 결과’ 는 각자의 가치판단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왜 우리는 선행을 베푸는가」에서 말했듯이, 자신에게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이 되는 것만이 ‘결과’ 는 아닙니다. 직접적인 경제적 이득이 아닌 경우에 그 가치를 수치로 바꾸기란 만만치 않은 것이고, 이것이 또 한번의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이를테면 몹시 흥분한 나머지 상대가 인질에게 실수를 할 경우도 계산할 수 있고 (「갱 영화는 왜 현실적이지 못할까」), 자국 선수가 출전하는 국가별 경기에서는 내기와 상관없이 응원 자체에 큰 가치를 둘 수도 있으며 (「내기는 도박일까 보험일까」), 가사노동에 대한 시장에서의 저평가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가치를 둘 수도 (「절약하고 싶으면 가사도우미를 써라」)있으니까요.

더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저자의 ‘효율성 경제학’ 은 아쉽게도 소소한 일상의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주요 재화나 서비스들은 ‘완전경쟁 시장경제’ 가 아닌 ‘독점 시장경제’ 를 통해 생산되고 소비됩니다. 그리고, 독점 시장경제는 ‘동등한 기회의 제공‘ 과 ’보편적인 삶의 권리‘ 를 의미하는 공공의 영역을 상관하지 않고 침투하면서, ’완전경쟁 시장경제‘ 를 스스로 파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보니, <일상의 경제학>은 기가 막힌 제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할인가격은 교모한 상술이다」, 「정품 청바지와 할인매장 청바지에 숨겨진 비밀」, 「상업지구와 카고컬트의 닮은 꼴」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가격을 흥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 나머지 다소 비싸더라도 군말 없이 소비하는 저에게는, 12000원의 효율성을 발휘한 내용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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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츠 고우 재테크
양맹수 지음 / 블루패밀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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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상품, 유가증권, 부동산까지 재테크의 세가지 종목에 대해서 각각의 노하우(Know-how)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종목별 뿐만 아니라, 연령별, 직종별로도 분류하였구요.

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이라 시기성은 다소 떨어집니다. 요즘에는 일간지에서도 재테크를 고정적으로 다루고 있고, 관련 서적도 물밀듯이 쏟아져나오니까요. 인터넷 상의 커뮤니티(Community)까지 광범위하게 활성화되어 있는만큼, 몰라서라기 보다는 (초기자본이) 없어서 재테크를 못한다고 봐야겠습니다.

20대에 모아서 30대에 결혼하고, 30대에 모아서 자녀 양육 및 교육비로 사용하고, 40대에 모아서 노후준비를 하는,
그래서 "인생은 60세부터" 라고 하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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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13억 경제학 - 상하이 특파원의 중국경제 현장 리포트
한우덕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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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이 명확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어요. (1) 위기의 중국경제, 그 실상 (2) 슈퍼 파워를 향한 도약, 그 에너지 (3) 중국의 길, 그리고 한국의 길. 첫번째 장에서는 중국경제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점에 대해서, 두번째 장에서는 중국경제가 가진 장점과 잠재력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세번째 장에서는 중국경제의 변화에 대응해야 할 한국경제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학자가 아닌, 기자가 쓴 책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방향을 살펴보는 수준입니다.

중국경제의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특별화 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장점이라면 모르겠지만, 단점이라면 더더욱 그렇죠. 특히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중국경제의 문제들, 이를테면 소비가 투자를 쫓아가지 못하는 현상, 도시와 농촌의 지대한 격차, 안정적 노사관계의 균열, 정부관리들의 부패, 부동산 투기, 외자의 함정, 등은 중국경제 고유의 문제가 아니라, 초기 자본주의의 그것이기 때문이죠.

자본주의가 봉건사회를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원대한 생산력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산력이란 하루 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기술의 발달과 집약적인 대량생산에서 나오는 것이죠.

기술의 발달이야 둘째 치더라도, 집약적인 대량생산에 필요한 조건들을 갖추는 것 자체가 사회 갈등의 출발입니다. 어떤 자본주의 국가도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생산을 집중한다는 것이, 단순히 개별 생산자를 한곳에 모으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개별 생산자들의 집합체였던 봉건사회의 질서와 완전히 다른, 대규모적인 생산시설과 다수의 노동자라는 새로운 질서를 의미합니다.

결국, 어떻게 생산자본을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와, 어떻게 다수의 노동자를 만들 것인가 하는 두가지 문제가 발생하는겁니다. 비약하자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는 생산자본과 노동자의 분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차이입니다. 거대하게 집약된 생산자본을 개인의 소유로 할 것이냐 생산자 전체의 공동소유로 할 것이냐의 차이이죠.

중국은 생산자본의 사적 소유를 이미 인정했으니, 향후 중국의 권력이동은 필연적일겁니다. 지금은 형식적으로 국가관료들이 소유하고 있지만, 사적 자본이 생산자본을 형성하고 소유한 이상, 실질적인 지배력은 후자에 있다고 봐야합니다. 국가관료들은 과거 자신이 가지고 있던 국가기구의 권력으로 간신히 방어전을 하고 있는 셈이죠.

갈등은 국가관료들과 사적 자본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닐겁니다. 이들은 권력의 소유를 두고 갈등하겠지만, 권력에 대한 침범에 대해서는 한편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권력으로부터 완전히 소외되어 있고, 경쟁적인 생산자본의 축적을 통해서 고통받아야 하는 중국의 노동계급이죠. 중국의 노동자들이 광범위한 사회투쟁을 시작하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입니다. 기술의 비중이 낮은 산업일 수록, 그런 산업 위주로 경제가 구성된 국가일 수록, 노동자들의 힘은 더 막강합니다.

아시아의 경제지도는 변할 것입니다.
한국의 노동자들도 중국 노동자들과의 만남과 교류를 준비해야합니다. 기업가들이 국가 간 장벽을 뛰어넘는 그 만큼, 노동자들도 장벽을 없애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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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로 아저씨의 세계화에서 살아남기 - 만화로 보는 자본주의와 세계화의 역사
엘 피스곤 지음, 김명신 옮김 / 부광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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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미FTA가 화두입니다. 한국과 미국의 시장을 통합하겠다는 한미FTA.
통합된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들을 만나야 하는 양국의 사업가들과 이들의 이해를 반영해야 하는 양국의 정부가 한참 협상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한미FTA라는 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멀리 WTO까지는 올라가야 합니다. WTO란 전 세계의 시장을 한번에 통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인데, 언뜻 봐도 그리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지방에서 줄곧 1등을 해왔던 우등생이 전국수학능력시험장으로 나서는 두근거림이라고나 할까요.

WTO 협상이 만만치 않으면서 등장하는 것이 FTA입니다. 한번에 전 세계의 시장을 통합하긴 어려우니, 평소 교역이 많았거나 지리상 가까운 국가들 사이에서 먼저 시장을 통합해보는 것이죠. 엊그제 한칠레FTA 협상을 했던 것과 같이, 한미FTA는 전세계의 시장을 거미줄처럼 엮어들어가는 수많은 FTA 중 하나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두고 '세계화'라고 합니다. 굳이 한미FTA가 아니라도, 우리 일상에서 외국의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은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죠. 한미FTA는 그것을 더 활발하게 만들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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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계화'라는 낭만스러운 표현에는 약간의 함정이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시장의 세계화' 내지는 '자본의 세계화' 라고 불러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계화를 통해 세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죠. 각국의 사업가들이 좀 더 나은 투자 조건을 찾아 국경을 넘나들게 되는 것 처럼, 노동자들 역시 더 나은 노동조건을 찾아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얼마 전, 미국이 멕시코와의 국경 검문을 강화했던 것이나, 그 전에 유럽의 흑인 젊은이들이 폭동을 일으켰던 데에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각국 정부의 각박한 태도가 깔려있는 것이죠.

세계화를 둘러싼 이런 모순적인 풍경은, 우리가 세계화를 너무 단순하게 단편적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켜줍니다. 한미FTA가 WTO라는 국제무역협정에서 부터 비롯되었듯이, 국제무역협정은 왜 갑자기 시작되었는지, 더 넓고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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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초로아저씨의 세계화에서 살아남기>는 멕시코의 정치풍자만화가 엘 피스곤의 풍자만화집입니다. 한미FTA협정에 반대하는 분들이 종종 멕시코 사례(미국-멕시코FTA)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데요, 막상 자국에서 FTA를 경험한 그는 미국-멕시코FTA에 국한해서 얘기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멀리 돌아 자본주의의 기원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세계화, 아니 정확하게 시장의 세계화는, 200여년 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죠. 그것이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지 정책과 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고, 복지국가와 사회주의국가의 탄생, 냉전의 와중에서 한숨 돌렸다가, 1970년대 인플레이션을 기점으로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세계화라는 것은, 끊임없이 시장을 세계화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기본 운동법칙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군대를 동원해 공공연히 시장을 개척했다면, 1970년대의 그것은 돈을 이용합니다. 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에 대한 상상을 초월한 채무와 이것을 빌미로 한 해당국 시장의 개방입니다. 칠레의 독재자 피노체트, 영국의 노동조합운동을 억눌렀던 대처, 미국의 레이건을 시작으로 해서, 아르헨티나, 멕시코, 페루, 브라질과 같은 남미 국가 뿐 아니라, 프랑스, 스페인과 같은 유럽권 국가들의 정부가 등장합니다. 저자의 시각이 좀 더 넓었다면, 한국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들어갔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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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자체를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제는 '시장의 세계화'일 뿐이죠. 즉, 누구에 의한, 무엇을 위한 세계화인지가 중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한미FTA와 같은 시장의 세계화로 인해 고통받을 이들, 그래서 이에 반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큰 시사점을 남겨줄 것입니다.

단순히 한미FTA에 대한 찬반논쟁은 정말 중요한 논점을 흐릴 수 있습니다. 예상되는 협상의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할 사람인지, 아니면 협상의 결과에 상관 없이 시장의 세계화에 의해서 고통받는 사람인지 잘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세계화 시대에 아무렴, 국적은 상관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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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제도론
이방식 / 법문사 / 199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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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보다 재밌는 속편, 경제

음모론으로 익히 알려져있는 <그림자 정부>(이리유카바 최) 는,
정치편과 경제편 두편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정치편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역사의 사건에 대해, 그림자 정부의 개입을 오버랩(overlap)하며,
'그림자 정부'라고 속칭되는 조직에 대해서, 기원과 조직형태, 활동방식, 인물의 면면을 알리고 있습니다.

경제편은 속편치고는 내용의 깊이가 더 있죠.
체계가 없어 다소 산만한 듯한 인상을 주는 정치편과는 달리, 구체적이고 일관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경제편은 영국의 모건가(家) - 후일, 미국 월스트리트의 J.P.모건 - 에서 시작합니다.
그림자 정부와 동격으로 놓일만한 이 신흥집단이 노리는 것은 '화폐의 발행권'.

읽은지가 꽤 되어 기억이 희미합니다만,
영-프 전쟁과 독립전쟁, 남북전쟁,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과 같은 굵직한 역사에서부터 오늘날의 금융위기까지,
화폐의 발행권를 사이에 두고 두 세력 - 공공세력과 그림자 정부 - 간의 힘겨루기로 일관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 세련된 음모론

음모론 치고는 좀 세련되었었나요.

어쨌든, 저는 이리유카바 최의 음모론 덕분에 경제사와 화폐제도, 중앙은행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역사 몇권과 경제사 몇권, 환율과 화폐제도와 관련해서 몇권의 책을 더 보게됩니다.

여차여차하여 이제 중앙은행에 대해서는 처음 보는 셈입니다만,
글쓴이 - 김O주 한국경제신문사 정치부 부장 - 의 서문과 목차를 보니, 깔끔한 중편논문입니다.

글쓴이는 한국의 중앙은행제도의 허와 실을 조명하기 위해서 각국의 중앙은행제도와 운영를 조사한 모양인데,
'중앙은행의 권력구조'에 대해서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 중앙은행은 공공기관일까?

다시 음모론으로 돌아가서요,
<그림자 정부> 경제편에서 이리유카바 최가 던지는 첫 질문이 바로,
'중앙은행은 공공기관인가, 사기업인가' 입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중앙은행을 공공기관으로 오해하고 있다고 일갈합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한국의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은 공공기금을 출자해서 만든 공공기관이 아닙니다.
특정의 주주와 소유지분이 엄연히 존재하는 사기업이죠.

<중앙은행>은 세계 최초의 은행인 릭스은행(스페인, 1668)을 시작으로, 각국의 은행사를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각국 고유의 역사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오늘날의 각국 중앙은행은 사기업에서 시작했고, 오늘날도 사기업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이는 물론 상식에서 어긋나는 일이기도 하죠.
한 국가의 공식화폐를 발행하고, 외환을 관리하며, 통화신용정책을 수립 집행하고, 일반은행의 은행으로서 對은행 대출업무, 심지어 은행업무의 감독까지를 하고있는 기관이 대체 사기업이라니.

분명 사기업이 맞습니다.
최초의 중앙은행으로 알려져있는 영국의 잉글랜드은행을 보면,
1694년 민간출자로 설립되었고, 발권업무와 예금은행의 기능을 가지게 된 것은 18세기 초. 그것도 국왕의 특허를 받아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것도 잉글랜드 은행권만이 영국의 공인화폐가 된 것은 1833년, 그러니까 은행의 기능을 갖추고도 100년이 지난 후에 가능했던겁니다.

물론, 말씀드렸다시피, 이는 국가마다 약간의 차이를 무시했을 경우입니다.
프랑스처럼, 정부와 민간이 공동출자 - 물론, 정부는 일부였지만 - 한 경우도 있었고, 일본처럼 그 탄생부터 국가에 의해 이루어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1909년에 설립된 한국최초의 중앙은행인 舊한국은행의 역사는 일본과 굉장히 흡사합니다.)

하지만, 대체적인 흐름 면에서 대략 일치하며,
설립초기만 해도 여타 은행과 다를바 없이 제각각의 화폐를 찍어내는 기관에 불구했지만,
공식화폐를 발행하는 발권은행의 지위와 함께 점차 책임과 의무를 함께 지며 국가의 힘에 강하게 붙들렸다고 하는 것이 가장 그럴싸한 표현이겠습니다.

책임과 의무.
우리는 의무 - 발권의 막강한 권한과 맞바꾼 - 에 좀 더 초점을 두도록 하죠. 정부와 중앙은행간의 묘한 연관관계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니까요.

# 공통화폐의 필요성 하나 - 상업 나고 금융 나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금융업의 필요야 상업이나 무역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화폐'라는 것 자체가 교환의 용이성이라는 기능에 초점을 맞춘 것이니까요.

여기서 영국 잉글랜드 은행의 역사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잉글랜드 은행이 18세기 초에 발권업무를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공식화폐가 되기까지 100여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는 것은,
한세기도록 어떤 은행이든 발권을 할 수 있었다는거니까요.

쉽게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우리화폐, 국민화폐, 조흥화폐, 기타 등등.
황당한건 둘째 치고라도, 오늘과 같은 질서잡힌 교역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상상할 것입니다.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금융 나고 상업 난 것이 아닙니다.
상업 나고 금융 났죠. 100여년의 시간동안 식민지 시대를 거치며 발달한 교역의 규모가 규정된 공통화폐의 필요성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 공통화폐의 필요성 둘 - 명백한 거래

이제부터는 제 추측이지만, 공통화폐의 탄생배경은 비단 그것, 그러니까 교역의 규모를 감당하기 위해서 만은 아니었을겁니다.
은행은 '자본'이 있는데 시장을 독점할 '권한'이 없었고, 정부는 '권한'은 있었지만 '자본'이 없었던거죠.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하는 묘한 결합이 공인화폐의 탄생배경이 됩니다.

그리고, 화폐라는 상품의 시장을 독점할 권한(공인화폐발행권)를 주는 대신 은행의 자본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은행으로부터 국가로 들어가는 자본. 이것이 오늘날 각국 중앙은행의 국고금 관리업무일 것입니다.

한국은행의 경우, 세금과 같은 국가수입을 국고금으로 보관하는 것 이외에도, 정부의 자금이 부족할 경우 국회에서 미리 정한 한도 내에서 국가에 대출을 해주기도 하니까요. 이른바 국채발행이죠.

여기서 당장 돈이 필요한 것은 정부입니다. 더구나, 근대적인 개발이 한창이던 시절은 말할 나위 없겠죠.
한국은행의 금고를 가운데 놓고 보면, 지출의 압력은 정부가 가지고 있는겁니다.

# 전장의 이름은 '통화신용정책'

지출의 압력이 정부라면, 은행은 인플레이션의 압력을 받습니다.
정부가 필요로하는 만큼의 화폐를 발행하게되면, 실물가치보다 화폐량이 많아져 화폐가치가 떨어지게되니까요. 인플레이션입니다.

화폐 역시도 상품인 것을, 인플레이션은 화폐가치의 하락, 상품가격의 하락을 뜻하죠.
은행으로서는 좌시할 수 없는 현상인 것입니다.

결국, 인플레이션과 정부지출의 압력.
이 힘겨루기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중앙은행의 업무를 또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이른바, '화폐가치(물가)의 안정' 입니다. '통화신용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을겁니다.

통화신용정책이란, 한마디로 통화량을 알맞은 수준으로 조절하는 것입니다.
통화량이 경제규모에 비하여 지나치게 많으면 경기가 과열되고 물가는 상승, 온갖 투기가 일어나게 되고,
반대로 통화량이 지나치게 적으면 경기는 침체하고 실업이 발생하니까요.

중앙은행의 통화신용정책으로 익히 알려져있는 세가지는,
바로 대출정책(재할인정책), 공개시장조작 및 지급준비율정책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기회가 있을 때 자세히 얘기하기로 하죠.

# 전장 중의 전장, 정책기관 금융통화위원회

이제 본격적으로 힘겨루기의 면모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힘겨루기의 한복판에 통화신용정책이 있는데, 이 정책을 결정하는 실제 기구를 보겠습니다.

우선, 정부 팀(Team)은 한 국가의 재정정책을 결정하는 주무부서인 재무부가 대표입니다.
은행 측이야 말할 것도 없이 중앙은행일 것이구요.

그럼, 재무부장관과 중앙은행총재와의 싸움으로 비화되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어느 국가든 재무부서와 중앙은행 사이에는 정책기관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그 역할을 하고있구요.

살피고 살펴 들어간 전장의 한복판에 금통위가 있는 것입니다.
대략 대여섯명 정도가 되는 금통위의 위원을 누가 할 것이냐. 그리고, 의장은 누가 할 것이냐.

# 금통위 둘러보기

다시 한국의 경우를 살펴보죠.
제가 본 <중앙은행>은 워낙 오래된 책 - 88년 판본 - 인데, 그간 관련법제들이 많이 변경되었더군요.

현재 금통위는 한국은행 총재 및 부총재, 국민경제 각 분야를 대표하는 5인 등 총 7인의 위원으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의장을 겸임하게 되는 한국은행 총재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고, 부총재는 총재의 추천에 의해 대통령이 임명.
다른 5인의 위원은 각 추천기관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이렇듯, 금통위 위원을 결정하는데 있어 정부(대통령)의 권한이 어느정도는 막강한 셈이죠.
물론, 결론은 금통위가 내는거니까, 위원이 누구이냐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금통위 내의 의사결정과정일겁니다.

즉, 선임상의 문제 뿐만 아니라,
구성원은 몇명으로 하며, 의결권 부여의 문제, 재의 요구권(금통위의 결정에 대한 번복 가능성) 여부, 등등이 함께 교려되어야 한다는겁니다.
실례로, 한국처럼 대통령이 최종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미국ㆍ독일ㆍ필리핀ㆍ오스트리아 정도이고, 노르웨이ㆍ스웨덴ㆍ핀란드와 같은 나라들은 의회가 임명권을 갖고있기도 합니다.

# Joker, 중앙은행의 독립성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란 여기서 던져지는 일종의 뿅카드(Jocker)입니다.
정부의 지출압력 앞에서 화폐가치의 안정성을 고수할 수 있다는 것이 중앙은행 독립성의 대의가 되는겁니다.

금통위에 대해서 대통령이나 행정부의 임명권한이 클수록,
한 나라의 금융정책이 소수에 의해 좌지우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그어지는 행정부-입법부 라는 대립구도를 보면 아시겠지만,
이는 행정부를 장악한 집권당을 견제하는 야당의 단골메뉴가 될 가능성이 지극히 농후한 것이구요.

이제 이 대립구도까지 찾아왔다면,
다시 처음 - 중앙은행의 탄생 - 에 제기한 자본과 권한의 묘한 관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권한이란 행정부에 있는 것이고,
자본이란 행정부에도, 입법부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요.
한국의 정치구도를 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저도 한국의 경제사 몇권을 끝으로 여정을 일단락지을까 생각중이구요.

# 보태어 - 흥미진진한 미국 중앙은행의 역사

전쟁에서 고지에 깃발을 꼽는 것이 승리를 상징한다면,
사실, 금융전쟁에서 나부끼는 깃발은, 다름아닌 '공식화폐의 발행권'일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중앙은행의 역사 중에서 뺏고 뺏기는 깃발 싸움이 가장 치열했던 곳이 다름아닌 미국이라는겁니다.

미국의 금융제도에서 한국의 금통위와 같은 정책기관의 역할을 하는 곳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가 될겁니다.
경제기사를 들춰보시는 분들은 잘 아실겁니다. 연준의 회의결과, 연준 의장의 한마디 한마디에 얼마나 많은 세계의 눈과 귀가 쏠려있는지를.

그 의장자리에 앨런 그린스펀이라는 거물이 있습니다. '경제대통령'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연준은 한국의 금통위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대부분 국가의 중앙은행 설립역사는 공통화폐의 필요성을 정부가 제기하는 형태에서 시작했지만,
미국은 그럴 필요도 없이 충분히 상업이 발달되어 있었던겁니다. 이미 은행업 자체가 자리를 잡고 있었죠.
참고로, 연준이라는 중앙은행의 역사는 1913년에야 시작된 것이구요.

성행한 은행업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주립은행입니다.
미국은 독립전쟁을 전후로 해서 주에 흩어진 주립은행을 통일시키기 위한 국법은행을 설립하려고 노력하지만,
국법은행의 공식화폐 발행권이란 1791년에 미합중국 제일은행(First Bank of th United States)이 쥐었다가 20년 기한을 채우고 돌려주고, 1816년에는 미합중국 제이은행(Second Bank of th United States)이 쥐었다가 1836년 다시 해체되는 등, 뺏고 뺏기는 싸움이 계속됩니다.

다른 국가의 경우 자본과 권력이 서로를 필요로 하고 있었지만,
미국의 경우 자본이 권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주(州)에서의 권한이 막강했던겁니다. 국립은행은 은행의 형색만 갖춘 보릿자루가 되어버린겁니다.

아무튼 이 흥미진진한 역사는,
주립은행의 위세가 20세기초의 금융공항을 계기로 가라앉으며 연방준비법을 끝으로 마감하게 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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