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충무로에 불고 있는 1930년대 복고 바람이 드라마로도 이어진다.


6일부터 시작하는 한국방송(2TV) 새 수목드라마 〈경성스캔들〉(연출 한준서, 극본 진수완, 밤 9시55분·사진)은 낭만과 비밀이 공존했던 1930년대 경성의 두 얼굴을 다룬다. 영화 〈모던 보이〉 〈라듸오 데이즈〉 등 1930년대로 관심을 돌린 영화계와 비슷한 행보다. 〈불멸의 이순신〉을 연출했던 한준서 피디는 “영화 〈아나키스트〉처럼 1930년대가 배경이면 암울한 역사나 투쟁의 어두운 면만을 조명해 왔으나 그 시대에도 연애는 있었을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이선미의 소설 〈경성애사〉가 원작인 〈경성스캔들〉은 1930년대 중반 경성을 배경으로 위장 연애하는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밝게 그려나간다. 경성 최고의 바람둥이 선우완(강지환), 비밀을 간직한 조선 총독부 보안과 엘리트 형사인 이수현(류진), 독립운동을 하는 고전적인 신여성 나여경(한지민), 최고급 요릿집 명빈관의 유명 기생 차송주(한고은)가 극의 중심이다. ‘스캔들’이란 제목에서도 읽을 수 있듯이 극단적인 윤리관과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펼치는 위장 연애가 진짜 연애가 되는 과정에서 웃음을 이끌 예정이다.

시대극인 만큼 제작진은 1930년대의 화려한 의상과 소품, 네온사인을 환하게 밝혔던 카페가 있는 거리 재현에도 신경을 썼다. 〈서울 1945〉 때 만들어진 경남 합천 세트장을 중심으로 경기도 부천과 평택, 수원 세트장을 오가며 세트를 부수고 세우기를 여러 번 하는 중이다. 한 피디는 “다른 드라마에 든 미술 비용의 3배가 들었다”며 “〈불멸의 이순신〉 때도 여러 세트를 세우고 부수기를 반복했지만 이번 드라마만큼 부수는 게 아까울 때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극중에서 한고은이 입은 4천만원을 호가하는 기모노도 화제가 됐다. 조선총독부의 근거지인 동시에 근대적 욕망에 불타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의 놀이터였던 경성을 재현한 〈경성스캔들〉이 스크린에 앞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관심을 모은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사진 한국방송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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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아시아 관련 다큐멘터리로 한류 붐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한국방송(1TV)은 외국시장 판매를 겨냥해 만든 〈유교, 2500년의 여행〉4편을 26일부터 2주간(토·일 저녁 8시) 방송한다. 한국방송이 국제 공동제작 유치 및 콘텐츠 국외 수출을 목표로 시작한 ‘인사이트 아시아’ 프로젝트의 첫번째 결과물이다. 〈유교 …〉는 유교의 4대 핵심가치라 할 수 있는 ‘인의예지’를 편당 주제로 삼아 아시아인들의 삶 속에서 유교란 무엇인가를 살펴본다. 유교문명의 탄생과 부활, 경직된 해석으로 국가 통치 이데올로기로 사용되며 유교가 낳은 폐단, 국가에 대한 맹목적 복종, 남존여비 등을 짚으면서 현대사회에서도 실현 가능한 유교적 자본주의와 교육의 의미 등을 찾는다. 중국, 일본, 베트남 등 유교 문명권을 폭넓게 취재하면서 1년6개월 동안 제작비 6억원을 투입했다. 김무관 책임피디는 “한류를 일으킨 드라마 〈겨울연가〉도 유럽의 벽을 넘지 못하고 중동에서 멈췄다”며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아시아를 다룬 소재로 세계 어디서나 공감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공영방송의 위상을 높이려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 왜 유교일까? 김 피디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관련 아이템이 국외 방송시장에서 입도선매되는 경향이 있다. 현대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교와 마오쩌둥주의를 알아야 하기 때문에 서구에서도 충분히 소구력이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도 ‘공자 2.0’이란 내용을 표지기사로 다루며 중국에서의 유교 부활운동을 특집으로 다뤘다. 문화대혁명 당시 유교를 봉건적 전제주의의 주축으로 매도했던 중국이 경제발전에 따른 빈부격차와 지역갈등을 무마하는 수단으로 유교를 되살려 21세기 전략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 내용이다. 실제로 2003년 국가 주석이 된 후진타오는 공자 탄생일을 국가 주관으로 챙기고 인민대학에 공자연구원을 설립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출을 맡은 한창록 피디는 “복고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유교에 대한 오해와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25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전통적 가치를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번 방송과 때맞춰 책 〈유교, 아시아의 힘〉도 동시 출간한다. 지난 4월에는 프랑스 칸에서 열린 영상 프로그램 견본시장(MIPTV)에서 브로슈어를 통해 프로그램을 홍보하며 본격적인 판매에 나섰다. 제작진은 “9월에 방송 예정인 〈차마고도〉가 이미 대만, 스페인, 일본 등에 선판매됐다”면서 ‘인사이트 아시아’ 기획이 다양한 사업 구상으로 한류 붐을 이어갈 장기적인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한국방송은 내년에는 〈인간의 땅〉과 〈누들로드〉를 ‘인사이트 아시아’ 기획으로 방영할 계획이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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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정부의 ‘취재지원 시스템 선진화 방안’이 논란이 되면서 새삼 언론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일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 방안에 반대하는 언론들의 보도행태를 두고 “비양심적 태도”라고 날을 세웠다. 포털 사이트의 댓글들을 보면 “특권을 누려온 기자들이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식의 곱지 않은 시선이 드러난다. 언론은 과연 우리 사회에 어떤 존재일까?

교육방송이 지난 28일부터 1일까지 매일 한 편씩 잇따라 방송하고 있는 〈다큐 10〉 ‘뉴스 전쟁’ 시리즈(사진)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법도 하다. 미국 사례를 중심으로 급격하게 변화하는 언론의 위상을 집중 조명한 다큐멘터리 5부작이다. 여기서 ‘전쟁’은 언론사끼리의 특종 싸움을 뜻하는 게 아니다. 한때 이상적인 영웅으로 그려지기까지 했던 전통적 의미의 언론인들이 맞닥뜨리게 된 새로운 적들과의 싸움을 뜻한다.

적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언론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오히려 교묘하게 언론을 통제하려는 정부,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언론사 경영에도 도입되고 있는 시장 원리, 뉴스 소비 패턴을 완전히 뒤바꿔버린 새로운 매체 인터넷이 바로 그들이다.

1부 ‘언론 대 정부’ 편에서는 ‘리크게이트 사건’을 통해 정부와 언론의 싸움을 다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정보요원의 기밀정보를 고위 관료가 의도적으로 일부 언론에 흘린 것을 두고 논란이 일면서 발설자를 밝히기 위해 특별검사까지 임명됐다. 기자들이 줄줄이 소환됐고, 〈뉴욕 타임스〉 주디스 밀러 기자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증언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구금되는 초유의 사태마저 벌어졌다. 방송은 언론과 정부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지형도와 갈등을 생생한 인터뷰로 재구성했다.

2부 ‘언론 대 안보’ 편은 흔히 ‘국가 안보’로 대변되는 국익과 국민의 알 권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언론인을 집중 조명했다. 미국 국가안전보장국이 테러 용의자 감시를 이유로 법원 승인 없이 미국 내 모든 전화통화를 도청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기자들은 국가 안보를 내세우는 정부의 거침없는 질주에 제동을 걸고 국민 스스로가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3부 ‘언론 대 인터넷’ 편과 4부 ‘언론 대 시장’ 편에서는 새로운 매체 인터넷의 위력과 무한경쟁 시장의 압력 속에서 이중고를 겪는 언론계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1일 방송되는 5부 ‘언론 대 이념’ 편에서는 〈알 자지라〉의 성공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아랍 방송매체들과 여전히 언론인이 국가 폭력 앞에서 위협당하고 있는 러시아 등의 현실 조명을 통해 ‘과연 중립적인 언론이 가능한가’라는 본질적인 문제를 파고든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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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국내 최초의 대안영상 전용 극장인 ‘미디어극장 아이공’이 지난 11일 문을 열었다.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홍대 부근에 연 이 극장은 50석 규모로 작지만 영상물 상영은 물론 전시관, 강연장 등으로도 쓰일 수 있는 다목적 공간이다. 이 극장을 만든 ‘아이공’은 문화예술단체나 여성단체는 물론 대안영상 활동가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운영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아이공’은 1999년부터 ‘여성주의, 소수자, 비주류’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에서 미디어 아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실험영상을 소개하며 꾸준한 활동을 펼쳐온 영상문화운동 단체다. 그런 ‘아이공’이지만 대안영상을 마음 편하게 상영할 수 있는 터를 마련하기까지 9년이 걸렸다. 다른 예술 극장을 빌리거나, 대학 강의실, 홍대 부근의 카페 등을 전전하며 상영회를 열었다.

재원은 뜻밖의 곳에서 마련됐다. 지난해 기획한 ‘제6회 서울뉴미디어페스티벌’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는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해 상금으로 받은 3천만원이 극장의 설립자금이 됐다.

‘미디어극장 아이공’은 개관 첫 기획전으로 탈식민주의 작가이자 영화제작자인 트린민하의 전작을 17일부터 30일까지 상영한다. 〈내 이름은 베트남〉으로 이름난 트린민하의 전 작품이 국내에 상영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6월에는 린다 벵글리스 전이, 7월에는 차학경 전이 차례로 열린다. ‘아이공’은 대안영상문화를 후원할 회원들을 모집하고 있다. 문의 (02)337-2870. www.igong.org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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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간DVD)

Hip Hop 'Flims': 다섯 편의 힙합 DVD
양재영 cocto@hotmail.com

흔히들 힙합 음악과 문화의 정수는 '배틀(battle)'에 있다고 얘기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전투', '투쟁' 그리고 '투쟁에서의 승리'가 모두 이 단어 속에 녹아들 것이다. 말하자면, 힙합 음악과 문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전장에 나가 장렬한 한판 승부를 벌이는 전사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힙합의 4가지 요소를 이루는 '엠씨잉(MCing)' 혹은 '래핑(rapping)', '디제잉(DJing)', '브레이크댄싱(breakdancing)'과 '그래피티 라이팅(graffiti writing)'은 모두 개인간의 혹은 집단간의 지속적인 경쟁과 대결을 통해 발전해왔다. 4반세기전 뉴욕 브롱스의 게토 흑인들을 중심으로 싹이 텄던 이 언더그라운드 문화와 음악이 오늘날 전세계 젊은이를 사로잡는 보편적인 문화 아이콘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힙합 특유의 배틀이 자양분 역할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힙합의 핵심 요소들을 거대한 문화상품으로 변모시킨 치밀한 문화산업의 전략이 없었다면 이 모두가 무용지물이었겠지만 말이다.

그간 힙합에 아예 무관심했거나 혹은 힙합을 그저 장신구나 주렁주렁 달고 랩을 도구로 욕설이나 퍼부어 대는 마초들의 표현물 정도로 생각해왔던 이들에게 아마도 당대 최고의 래퍼 에미넴(Eminem)이 주연한 [8 Mile]은 신선한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밑바닥 생활과 지역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의 치열한 엠씨잉 배틀에서 생존해 그가 오늘의 위치에 이르렀음을 상상하면서 힙합 문화와 음악의 새로운 매력에 빠져든 이도 상당수였으리라. 물론 [8 Mile]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본격 힙합 영화이긴 하지만, 최초의 힙합 무비는 아니다. 힙합 문화와 음악의 오랜 역사와 광범위한 인기를 상기한다면 힙합이 꾸준히 영화의 소재 혹은 주제로 다루어져 왔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치열한 배틀이 힙합의 정수이기에, 힙합만큼 '극적인(dramatic)' 이야기 거리도 드물지 않나 싶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힙합을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는 의외로 많지 않은 편이다. 특히 극영화에 한정한다면 말이다. 물론 갱스터 래퍼로 명성을 떨치던 아이스 큐브(Ice Cube)나 DMX가 영화배우로도 어느 정도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최근에는 뉴욕의 대표적인 언더그라운드 엠씨 모스 데프(Mos Def)까지 할리우드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아쉽게도, 다수의 힙합 뮤지션이 영화판을 기웃거리지만, 이들이 출연한 영화는 대부분 힙합을 직접 다루지는 않는 것 같다. 이제는 전설이 된 갱스터 래퍼 투팍(Tupac)이 주연한 [Juice](1992)나 [Above The Rim](1994) 같은 영화가 비교적 힙합 냄새가 물씬했지만, 이 또한 본격적으로 힙합을 파고든 영화들은 아니었다. 그나마 그래피티를 소재로 한 [Beat Street](1984), 브레이크댄스를 다룬 [Breakin'](1984), 마리오 반 피블스(Mario Van Peebles)가 '정의의 래퍼'로 등장하는 [Rappin'](1985) 같은 극영화가 초창기 힙합을 직접적인 소재로 다루긴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너무 감상적이고 겉 핥기 식으로 힙합 문화를 보여줄 뿐이었다. [8 Mile] 이전에 힙합을 제대로 다룬 극영화는 없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은 바로 이런 연유다.

다행히 힙합의 본고장 미국에서는 근년에 실로 시, 공간을 초월해 다양한 내용과 형식을 담은 힙합 DVD들이 꾸준히 출시되고 있다. 이 중에는 20여 년 전의 고전을 재 포장한 것도 있고, 최신 힙합 트렌드를 직설적으로 다룬 기록영화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물론 다큐라마(docurama)나 애니메이션 형식의 독특한 힙합 영화들도 눈에 띤다. 쉴 틈 없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힙합 DVD 중에서, 힙합 음악과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보고 듣는 재미도 쏠쏠한 DVD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그래서 즐거운 고민이었다. 어쨌든, 갈등에 갈등을 거듭한 끝에, 다소 무리하고 주관적인 기준으로 근래 미국 시장에서 발매된 5편의 볼만한 힙합 DVD를 골라보았다. (앞서 언급한 이유로 픽션 극영화는 이 선정에서 제외되었고, 아울러 뮤직 비디오를 잔뜩 담은 음악 DVD들도 논외로 했음을 우선 밝혀둔다.)

1. [Wild Style](2002/Rhino)



힙합 사가들은 대부분 1982년을 힙합 역사의 가장 중요한 해로 꼽는다. 1970년대 후반 뉴욕 브롱스의 게토에서 막 싹이 텄던 힙합은 1980년대 초반, 정확히 말해 1982년에 미국 청년문화의 최전선인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까지 진출해 새로운 청년 하위문화로 꽃피기 시작한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힙합이 대중 친화적인 대중음악 상품으로 변모하기 직전의, 소위 뉴욕 '올드 스쿨' 힙합의 모든 것을 담은 영화가 바로 찰리 애헌(Charlie Ahearn) 감독의 [Wild Style]이다.

1982년에 16mm 필름으로 처음 제작된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형식이 중첩되는 일종의 다큐라마 성격을 띤다. 주인공인 그래피티 청년 조로(Zoro)와 레이디벅(Ladybug)의 로맨스, 그리고 힙합 브로커 페이드(Phade)의 종횡무진 활약상을 기본 골격으로 다양한 볼거리와 음악으로 살을 붙였다. 브롱스의 낡은 지하철로에서 맨해튼 다운타운 클럽에 이르는 변화무쌍한 공간을 배경으로 그래피티, 브레이크댄스, 엠씨잉과 디제잉에 이르는 힙합 문화의 초기 풍광을 80여분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실제로, 전설적인 힙합 디제이 그랜드 마스터 플래쉬(Grand Master Flash), 환상의 코러스를 들려주는 엠씨 패거리 콜드 크러쉬 브라더스(Cold Crush Brothers), 브레이크댄스의 최고봉 록 스테디 크루(Rock Steady Crew)의 라이브 공연 장면을 한꺼번에 감상하는 것은 이 영화가 아니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영화 마지막의 대규모 야외 잼(jam)은 단연 압권이다. 이들 올드 스쿨 힙합 명인 외에, 뉴 웨이브 밴드 블론디(Blondie)의 여걸 데보라 해리(Deborah Harry)의 젊은 시절을 지켜보는 것도 즐겁다. 한편 그래피티 아티스트로 이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리' 퀴넌스('Lee' Quinones)와 산드라 '핑크' 파바라(Sandra 'Pink' Fabara)가 이후 뉴욕 아트 시장에 진출해 '스타급' 화가가 되었다는 얘기는 익히 알려진 일화다.

무엇보다 [Wild Style]은 당시 힙합 문화가 흑인 뿐 아니라 라틴계 이민이나 백인까지 포용하는 다인종적인 문화 현상임을 생생하게 증명한다는 점에서, "힙합은 흑인들만의 고유한 발명품이다"라는 편견을 지우기에 더할 나위 없는 영화다. 그간 거친 화질과 사운드의 VHS 비디오로만 접할 수 있었던 이 영화는 작년에 라이노(Rhino) 레이블을 통해 마침내 DVD로 발매가 되었다. 원작의 풀 스크린 포맷을 유지하고 있지만 화질이 훨씬 선명해졌고, 5.1채널 서라운드 오디오는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클럽이나 야외 무대 공연의 현장감을 살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포토 갤러리 말고 건질게 없는 서플리먼트(supplement)가 아쉽긴 하지만, 본 영화 자체로도 구매가치는 충분한 셈이다.

2. [Downtown 81](2000/ZeitGeist)



기왕 올드 스쿨 힙합 얘기를 꺼낸 김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 보자. 1980년대 초 뉴욕 힙합에 대한 또 다른 소중한 기록물로 [Downtown 81]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이 영화는 힙합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다. 정확히 얘기한다면, 1980년대 초 뉴욕 맨해튼 다운타운의 청년문화 전반에 대한 간접적인 보고서에 가깝다. 감독인 에도 베르토글리오(Edo Bertoglio)는 포스트 펑크, 노 웨이브와 뉴 웨이브 그리고 힙합이 제각기 뉴욕 청년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던 시절에 이 모든 것이 공존하는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1981년의 뉴욕 맨해튼을 휘젓고 다니는 이는 그 유명한 장 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다. 28세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화가, 시인, 뮤지션 혹은 그래피티 아티스트 장 미셀 바스키아가 이 영화에 출연했을 때 나이는 불과 19세였다. 자신의 그림을 팔고자 맨해튼의 로어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 거리와 클럽에 나선 그가 래퍼, 스트리퍼, 예술상, 모델들을 만나며 겪는 에피소드들이 영화의 주 내용인데, 솔직히 다소 지루한 감이 있다. 하지만 [Downtown 81]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희귀' 게스트와 까메오들을 연쇄적으로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는 충분하다. 가령 온갖 흑인 음악과 라틴 리듬을 자유로이 섞어내던 퓨전 마술사 키드 크레올(Kid Creole)의 공연 장면을 어디서 다시 볼 수 있겠는가. 물론 당시 맨해튼 다운타운 클럽 가를 풍미했던 노 웨이브 혹은 뉴 웨이브 아티스트들의 모습 역시 그 자체로 '감동'이다. 플라스틱스(Plastics), 턱시도문(Tuxedomoon), 라운지 리저드(Lounge Lizards), 그리고 DNA... 무엇보다, 지금은 음반조차 찾을 수 없는 그레이(Gray)의 쇼케이스는 압권이다. 10대 시절의 쟝 미셀 바스키아와 빈센트 갈로(Vincent Gallo)가 함께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느덧 전설이 되어버린 이 밴드가 들려주는 "Drum Mode"는 전율마저 느끼게 한다.

[Downtown 81]은 디제이, 엠씨, 브레이크댄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 미국 청년문화의 최전선 뉴욕 맨해튼에서 다양한 백인 예술가, 뮤지션들과 어울렸던 짧고 굵은 역사를 제대로 포착해낸 몇 안 되는 기록물 중 하나다. 앞서 말했든 비록 '정통 힙합'을 다룬 영화는 아니지만, 뉴욕 올드 스쿨 힙합 성장기의 사회 문화적 공간과 그 맥락을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지침서로 전혀 손색이 없을 것이다. 20여 년간 사장되어있던 [Downtown 81]은 지난 2000년에 뒤늦게 대중들을 위해 다시 개봉되었고 DVD로도 재빨리 발매가 이루어졌다. 투박한 2채널 오디오가 다소 아쉽지만, 원본에 충실한 와이드 스크린 화면은 꽤 만족스럽다. 일견 조잡해 보이는 서플리먼트 역시 의외로 속이 알찬 편인데, 1980년대 초 맨해튼을 조감한 인터액티브 지도나 뉴욕 아트 씬 갤러리는 특히 흥미롭다. 아마도 마돈나(Madonna), 빈센트 갈로, 데보라 해리, 앤디 워홀(Andy Warhol) 같은 이들의 당시 모습은 또 다른 즐거움을 안겨 줄 것이다.

3. [Biggie And Tupac](2003/Lafayette Films)



힙합에 문외한이라도 1990년대를 풍미했던 갱스터 래퍼 투팍과 노토리어스 바아이지(Notorious B.I.G.)의 이름은 아마 친근할 것이다. 그리고 1996년 가을과 1997년 봄, 6개월 간격으로 이들 슈퍼스타가 차례로 살해를 당했다는 얘기도 여러 차례 접했을 것이다. 사실 이들이 죽은지 벌써 6년이 지났지만 그 사인과 진상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그저 당시 미국 웨스트코스트를 대표하던 래퍼 투팍과 이스트코스트 간판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양측이 증오와 복수를 이유로 서로 상대방을 살해했다는 추측만이 떠돌 뿐이다.

커트 코베인(Kurt Cobain)과 커트니 러브(Courtney Love)를 다룬 다큐멘터리 [Kurt And Courtney](1998)로 성과를 높였던 영국 출신 감독 닉 브룸필드(Nick Broomfield)의 최신작 [Biggie And Tupac]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이들 슈퍼스타의 죽음을 본격적으로 파헤친 기록영화다. 브룸필드는 홀로 카메라를 매고 미국 동부와 서부를 오가며 이들 래퍼의 사망과 직, 간접으로 관련 있는 이들에게 마구 마이크를 들이민다. 부모, 보디가드, 당시 사건을 담당한 LA의 형사와 경찰 뿐 아니라, 투팍이 당시 소속된 음반회사 데쓰 로(Death Row) 사장 슈즈 나이트(Suge Knight)와 그의 '잔당'에게도 과감히 접근한다. 때론 위험스러워 보이는 이 취재과정에서 그간 공공연한 비밀로 치부되거나 감춰졌던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는 과정은 참으로 흥미롭다. 특히 갱 조직과 연계된 LA 경찰의 부패한 모습이나 슈즈 나이트의 의문스러운 범죄 행적들을 보고 있노라면, 재능 있는 청년 투팍과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의 죽음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실 투팍이나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에 관한 DVD는 이외에도 다수가 출시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들의 뮤직비디오를 담고 있거나, 이들의 삶을 영웅적으로 포장하는데 급급하다. 최근 DVD로 출시된 [Biggie And Tupac]은 이들의 비극적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뿐 아니라, 이들의 개인사에 대해서도 보다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소중한 영화다. 물론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가족의 입장이 많이 반영되었다는 편견을 지울 순 없지만 말이다. 또한, 생생한 와이드 스크린 화면으로 담은 작품 자체는 탁월하지만, 부실한 서플리먼트와 2채널 오디오는 여전히 불만스럽다. 더욱이 다수의 흑인들이 인터뷰 대상으로 출연한다는 점에서, 영어 자막이 없는 것은 감상에 치명적인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4. [Scratch](2002/Palm Pictures)



무대 전면에서 랩을 하는 엠씨들과 온갖 묘기를 벌이는 브레이크댄서들을 보노라면, 이들이 진정한 힙합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열혈 힙합 팬들은 무대 뒤켠에서 묵묵히 이들을 위한 사운드를 주조하는 디제이를 숨은 영웅으로 칭송할 것이다. 항상 그림자처럼 조연에 머물던 이들 힙합 디제이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스타로 부상하고 있다. 이미 디제이 섀도(DJ Shadow) 같은 슈퍼스타의 이름은 익숙할 것이고, 보다 관심이 높다면 디제이 큐버트(DJ Q-Bert), 컷 케미스트(Cut Chemist) 같은 디제이에 대한 소문도 접했을 것이다. 이들은 더 이상 무대 뒤에 머물지 않고 스테이지 전면에서 턴테이블을 '연주'하거나 스튜디오에서 프로듀서로서 음악작업을 전두 지휘하며 새로운 디제이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이미 악기로서 턴테이블의 판매량이 전기기타 판매를 능가한지 오래일 정도다.)

디제이 중심의 이 새로운 힙합 음악 경향 그리고 관련 현상들을 통틀어 흔히들 '턴테이블리즘(turntablism)'이라 칭한다. [Scratch]는 바로 힙합 디제잉의 역사와 턴테이블리즘을 본격적으로 고찰하고 있는 다큐멘터리다. 1990년대 초 시애틀 그런지 씬을 담은 기록영화 [Hype!](1996)으로 익히 알려진 덕 프레이(Doug Pray)가 감독한 이 영화는 실로 올드 스쿨과 뉴 스쿨의 거물 디제이들이 총 망라되어 인터뷰와 실제 연주를 통해 힙합 디제잉의 모든 것을 낱낱이 드러낸다. 디제잉 기술의 핵심 요소라 할 수 있는 스크래칭(scratching)을 우연히 개발한 그랜드 위자드 테오도르(Grand Wizard Theodre)나, 비트 저글링(beat juggling)이라는 혁신적인 기법을 디제잉에 도입한 롭 스위프트(Rob Swift) 같은 이의 사연은 그 자체로 흥미만점이다. 물론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나 그랜드 믹서 디엑스티(Grand Mixer DXT) 같은 전설적인 디제이의 모습을 보는 것도 가슴 뭉클하다.

무엇보다 당대 턴테이블리즘을 주도하는 스타 디제이들의 연주 모습과 디제잉에 대한 생각을 한꺼번에 살필 수 있다는 점은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인 듯하다. 믹스 마스터 마이크(Mix Master Mike), 디제이 바부(DJ Babu), 컷 케미스트와 누 마크(NuMark)를 무대에서 한꺼번에 보기가 쉽지 않기에, [Scratch]는 마치 힙합 디제이들의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공연을 방불케 한다. 특히 당대 최고의 디제이인 디제이 섀도와 디제이 큐버트의 잼 세션 장면이나, 디제이들이 중고 음반가게를 뒤져가며 레코드판을 수집하는 모습은 디제이 지망생 누구에게나 큰 감흥을 줄 것이다.

그간 힙합 디제잉에 관한 DVD는 다수가 있었지만, 대부분은 디제이 지망생을 위한 유명 디제이의 학습용 실습과 강연이거나 ITF, DMC 같은 디제이 경연대회를 다룬 게 주를 이루었다. 따라서 힙합 디제잉의 대한 본격적인 기록영화라는 점만으로도 [Scratch] DVD는 매력적인 상품임에 틀림없다. 더욱이 역동적인 와이드 스크린 화면과 5.1채널 서라운드 오디오는 실제 공연장에서 디제이들의 연주를 보고 듣는 듯한 현장감을 제공하며, 보너스 디스크의 다양한 서플리먼트는 구매가치를 배가한다. 특히 디제이 큐버트의 디제잉 독학 레슨, 디제이 지트립(DJ Z-Trip)의 파티 디제잉 요령에 대한 인터뷰는 꽤 유익한 부록들이다.

5. [Style Wars](2003/FlexiFilm)



[Scratch]가 디제이를 소재로 한 영화인데 반해, [Biggie And Tupac]의 주인공 노토리어스 비아이지와 투팍은 래퍼였다. 그럼 브레이크댄서나 그래피티 아티스트를 집중적으로 다룬 기록영화도 있을까? 물론 몇 편의 영화들이 이미 DVD로 출시되었다. 가령 [Freshest Kids](2001)는 브레이크댄서 혹은 비보이의 생생한 거리 생존 역사를 담고 있다. 그리고 지난 4월에 DVD로 출시된 [Style Wars]는 그래피티 아티스트에 대한 최상의 기록영화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토니 실버(Tony Silverz)와 헨리 챨펀트(Henry Chalfant) 콤비가 1983년에 만든 [Style Wars]는 당시 미국 교양방송 PBS에서 방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킨바있다. 뉴욕의 그래피티 청년들과 그들의 문화를 집중적으로 다룬 이 영화는, 힙합이 여전히 소수 집단의 하위문화로 간주되던 시대에 그 실상을 제대로 보고한 최초의 공식 기록물로 평가된다. 제목이 암시하듯 지하철과 거리를 전전하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작업 대부분은 개인간 혹은 집단간의 지속적인 '전쟁' 혹은 배틀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가령 그래피티 청년들에 대한 공적 기관의 탄압과 그에 대한 이들의 비폭력적인 역공이나, 백인 아티스트와 흑인 아티스트간의 미묘한 갈등 장면은 흥미를 고조시킨다. 더불어, 당시 뉴욕 시장이던 에드 코치(Ed Koch)가 인터뷰에서 그래피티를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탄압을 정당화하는 모습 역시 자못 인상적이다. 그래피티 청년들과 뉴욕 시장이나 경찰의 엇갈린 주장들은 실제 미국 대도시의 사회 문화적 지형 변화와 그래피티 행위간의 상관관계를 자연스레 반영한다.

결국, 뉴욕의 지하철 시스템을 자신들의 전장이자 캔버스로 삼아 자기 자신과 공동체를 표현했던 이들 그래피티 청년의 작업은 힙합 문화의 진정한 본질을 대변했다고 볼 수 있다. 최초 방영 20주년을 기념해 발매된 2장 짜리 [Style Wars] DVD는 원작의 이러한 매력을 그대로 보전한 풀 스크린에 생생한 5.1채널 서라운드 사운드와 다양한 서플리먼트를 보강한 알찬 기획물이다. 특히 영화의 제작자와 감독 뿐 아니라 이 영화에 출연했던 그래피티 청년들 대부분을 20년 후에 다시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근황을 살피는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출연진 중에 '메어139(Mare139)'처럼 지금 잘 나가는 상업 예술가로 변모한 이가 있는 반면, 그래피티 아티스트들 사이에 '바밍(Bombing: 이미 완성된 다른 이의 그래피티에 몰래 덧칠 그래피티를 하는 행위)으로 악명 높던 '캡(Cap)' 같은 인물은 별 볼 일없는 부랑아 신세로 전락해 보는 이를 애처롭게 한다. 꼼꼼하게 보관해놓은 당시 그래피티 작품 사진들을 갤러리 형태로 다시금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 DVD의 또 다른 매력일 것이다.

소개한 5편의 DVD는 힙합 팬 뿐 아니라 힙합에 관심을 막 갖게 된 '초보자'에게도 길라잡이로 손색이 없는 영화들이다. 물론 이 밖에도 찾아보면 볼만한 힙합 DVD는 얼마든지 더 있다. 가령 미국 언더그라운드 래퍼들의 음악과 생각을 동시에 담은 [Crooked](2002), 대도시의 힙합 마케팅 과정을 치밀하게 묘사한 기록영화 [King Of The Streets](2002), 턴테이블 마법사 디제이 큐버트의 재기 넘치는 애니메이션 [Wave Twisters](2001)도 힙합 문화와 음악의 다양한 면모를 이해하는데 도우미 역할을 충실히 해줄 것이다.

근년에 미국 시장에서 출시되는 힙합 영화 DVD들을 보노라면 괜히 배가 살살 아파 온다. 이들 힙합 DVD 대부분이 아직 국내에서는 공식적으로 출시가 되지 않은 것들이라 여전히 그림의 떡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이런 힙합 DVD들이 발빠르게 소개되고, 아울러 국내의 힙합 문화를 본격적으로 다룬 영화들까지 DVD로 감상할 수 있는 날이 서둘러 찾아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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