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구가 아프다
니콜라이 슐츠 지음, 성기완 옮김 / 이음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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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꺼지는 세계에서 태동하는 생태계급과 지배계급 탈출자의 생존 정치. 이 새로운 계급투쟁의 상은 아직 모호하다. 처음에는 ‘뭐 이렇게 얇아?‘ 생각했는데, 책값 하는 얇은 책이다. 번역은 올해 읽은 책 중 최고! Smoke hot coffee refill, 달이 뜨지 않고 니가 뜨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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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역자의 번역을 신뢰하지 않는다. 한 번 마음이 삐딱해졌기 때문일까? 


"가슴풍만하고 성기당당한"... 원래 이런 말이 있나? 나만 모르나?

여러분, 이 말의 영어가 짐작이 되나요???


내 대안적 번역이 물론 틀릴 수도 있다.




19쪽 18행: 전문가 회의 -> 학회 학술대회(professional meetings)


23쪽 17행: 가슴 풍만하고 성기 당당한 존재를 -> 좋은 신체(능력, 재능)를 타고난 존재를


가슴 풍만하고 성기당당한? "well-endowed"가?

이 뭔 변태적 번역인가? 



41쪽 13행: 그는 더 나아간다. -> 그녀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44쪽 15행: 그러나 늑대와 개의 대립은 농담조가 아니다. -> 그런데 이 늑대와 개 대립 이야기는 재미없다 (농담인 것 같은데 거슬린다). 


47쪽 19-20행: 지상의 생명체는 형상으로든 일시적 존재로든 -> 지구 생명체의 형태와 시간성(temporality)은

=> 역자가 temporal과 temporary를 혼동했음; temporal이라는 말을 모를 수도.. 


63쪽 16-17행: 먼지를 -> 오물을


63쪽 24행: 살아있는 자본의 체제에 -> 생명자본 체제(the regime of Lively Capital)에


74쪽 22행: 인간의 노예가 -> 인간 노예가


123쪽 2행: 검증된 삶 -> 검사되는/시험되는 생명(examined lives)


131쪽 16행: 개 이빨을 -> 송곳니를


139쪽 1행: 개 활동가들이 있는 광경이나 -> 개활동가들의 현장이나


141쪽 16행: 리스트서버 -> 리스트서브


196쪽 6행: 책략가 -> 트릭스터(trickster)


315쪽 2행: 사체-절도는 -> 신체 강탈/전용(body-snatching)


341쪽 1행: 시골 캘리포니아주 -> 캘리포니아주 시골


348쪽 1-2행: 떠돌이 고양이들이 추적용 번호를 부여받고 백신 접종 의무가 있다는 것 외에 커뮤니티 칼리지[전문대학]의 학생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우선 간단한 대답으로는 양쪽 모두 역사적인 상황 속의 테크놀로지 속에서 내부-작용을 통해 "교육"된다는 점이다.


What do feral cats have to do with community college students, besides having numbers assigned to them for tracking purposes and being required to get vaccinations? The short answer is that both classes of beings are "educated" through their intra-actions within historically situated technology. (281)


추적용 번호가 부여된다는 것과 백신 접종 의무가 있다는 것 말고도 길고양이와 커뮤니티칼리지 학생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우선 간단한 대답으로는 두 집단 모두 역사적으로 위치지어진 테크놀로지 내부에서 발생하는 내부-작용을 통해서 "배우는" 존재라는 것이다. 


348쪽 6행: 가축 -> 집에서 키우는 동물(domestic animals)


350쪽 11-12행: 분리주의자와 미국이 지원하는 마닐라 혁명운동 양쪽 모두의 억압에 의해 죽었다.


... students who were mostly dead a few years later from the repression of both separatist and revolutionary movements by the US-supported regime in Manila. (p. 283)


-> 미국이 지원하는 마닐라 정부가 분리주의 운동과 혁명운동 양자 모두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살해당했다.


360쪽 2~12행: 나는 이 대리자를 ... 열림 속에 있는 것이기도 하다.


-> 사실 나는 이 대리자를 "퀴어"라 부르고 싶고, 보통의 이성애자들에게도 이게 별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사실에 약간의 전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거기에서 그친다면, 피치니니는 자신의 작품 이미지 사용을 허가한 것을 분명히 철회할 것이다. 여전히 이 대리자는 소화불량에 양분을 공급하는 창조물로 남아있다. 그것은 적절한 장소와 기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종의 소화불량이다. 사실 퀴어 이론이 말하는 전부가 장소와 기능의 적절성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제자리에서 벗어난 양육의 속삭이는 달램(mutter)/문제(matter)이다. 이 양육의 달램/문제가 바로 소위 재생산이라는 여성을 정의하는 기능의 (충분조건은 아닐지 몰라도) 필요조건의 조각(cut)이다. 제자리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대개는 위험에 처하는 것임을, 그러나 때로는 개방된 공간, 그러니까 아직은 가치와 의도가 대못을 쳐서 폐쇄하지 않은 공간에서 자유롭다는 것임을 뜻한다.  (p. 292)




380쪽 27행

백정 -> 정육업자(butcher)


butcher는 오늘날 정육점 주인이나 점원을 다 가리키는 말인데...

프랑스 센강 하류에서 고기 잘라 파는 사람을 "백정"이라고 번역하면 어떡하나? 그 사람이 도살을 하건 안 하건, 이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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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비 2024-02-07 0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well-endowed 번역에 웃고 갑니다. 오래 기다리던 번역인데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로군요.

에로이카 2024-02-08 03:48   좋아요 0 | URL
네, 여러모로 아쉬운 번역입니다.
 
종과 종이 만날 때 - 복수종들의 정치 아우또노미아총서 80
도나 해러웨이 지음, 최유미 옮김 / 갈무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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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오랫동안 힘들게 읽었다. 그런데 공들인 만큼 얻은 것은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이전에 읽은 해러웨이의 글들 - 두 선언문, 트러블과 함께 하기, “상황적 지식” -만큼의 감동이 없다. 이제 조금은 해러웨이의 글쓰기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었는데, 고생한 만큼의 보람은 없는 읽기였다. 좀 지친다. 리뷰를 쓰기로 한 것은 나의 이 아쉬움의 실체가 무엇일지 생각해보기 위함이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보통 논평은 그 평을 듣는 작자의 마음을 고려해, 혹평의 경우는 처음에는 미덕을, 찬사의 경우는 앞에서 아쉬운 점을 먼저 이야기하고 나중에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을 전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작자의 마음을 고려하기보다 해러웨이에 대한 내 마음이 급격히 식는 것을 막아보기 위해서 그나마 좋았던 점을 먼저 써보고자 한다. 근데 좀 한참 생각해야 할 것 같다.

 

1. 그나마 있는 미덕들

미덕을 꼽자면, 무엇보다도 이전의 글에 나왔던 캐릭터들(characters)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의 반가움과 익숙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등장인물이라고 썼다 지우고 캐릭터라고 썼다. 이제 character등장인물로 번역하는 것은 인간중심주의적 편견이 반영된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 크리터(critter)를 조금은 더 잘 알게 된다는 것. 이전의 글에 잠시 얼굴을 비추었던 이들 해러웨이의 아버지, 남편, 카옌, 롤랜드, 나바호-추로양, 개 훈련사 비키 헌, 믹소트리카 파라독사 등 의 이야기가 이전 에피소드의 전편(prequel)과 속편(sequel)을 제공해준다.

 

각 캐릭터는 혼자 등장하지 않고 언제나 누군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들의 형상(figure)으로 등장한다. 해러웨이는 이 형상을 복수의 신체들과 의미들이 서로를 형성하는 물질-기호론적 결절점 내지는 매듭으로 규정한다(13). 이렇게 적고 보니, 정말 좋은 서술이다. 이 형상은 언제나 몇 개의 것들이 얽혀 있는 모습이며, 어떤 서사(narrative)를 통해 상호작용 또는 내부작용하는 그 얽혀 있는 것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며 그들을 함께 형성한다. 그 형상은 언제나 특정한 상황에 위치지어져 있다(situated).

 

해러웨이의 논의를 잘 따라가려면, 이 형상, 내부작용하는 몸들, 그것들이 공구성하는 세계, 의미, 그것이 처해져 있는 상황을 잘 파악하면 된다.

 

2. 종과 종이 내부작용하는 형상들

이 책은 바로 서로 다른 종들이 몸을 함께 휘감고 얽히면서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는 과정들에 대한 서술이다. 형상들을 책에 나오는 순서대로 한 번 꼽아보자. 짐의 개와 레오나르도의 개(15), 통신장비를 단 암컷 늑대(24), 카옌과 도나, 데리다와 고양이, 스머츠와 개코원숭이, 위아래로 겹쳐 있는 거북이(48-49), 혈우병 걸린 개(77-78), 감옥 수형자와 개(82), 기니피그와 체체파리와 바바 조셉(91), 앙코마우스(99), C. A. 샤프와 오씨 커뮤니티(138~169), 간질 걸린 개(161), 프랭크 해러웨이와 목발(6), 어질리티하는 인간과 개들(7, 8), 크리터캠을 장착한 바다 동물(9), 구조된 길고양이(341), 북쪽털코웜뱃(northern hairy-nosed wombat), 믹소트리카 파라독사(352), <(앉아있는) 제임스>(358), 태반 먹기, 멧돼지 바베큐 등...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잠재적 애독자라면 아마도 여기에 제시된 형상들의 상황에 어떤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나로서는 위의 형상들에 사실 별 흥미가 없다. 억지로 꼽자면 멧돼지 바베큐 정도? ㅋㅋ 혹시나 이 책을 읽을까 말까 하는 사람이 이 리뷰를 읽는다면 위의 형상들에 자신이 얼마나 흥미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독서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개와 매일 산책을 하거나 길고양이를 사랑하면, 또는 실험실에서 동물을 다루는 일을 한다면 좀더 관심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해러웨이는 맑스의 잉여가치이론이나 푸코의 생명정치에 대한 이론적 논의가 자신과 자신의 개가 처한 구체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쳐 새로운 이론화를 시도한다. 맑스의 자본은 오늘날 자본주의 세계에 완전히 통합된 개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 부적절하고, 푸코의 임상의학의 탄생이나 성의 역사도 개의 신체 규율과 생명의 통제·조절에 대해 설명할 수 없다. 그래서 해러웨이는 맑스와 푸코의 통찰을 자신과 개의 상황에 맞게 가공하여 생명자본개집의 탄생을 쓰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 종과 종이 만날 때는 그러한 의도가 돌연변이된 알이라고 한다(79). 같은 맥락에서 시드니 민츠의 설탕과 권력설탕의 공생발생적인 자연문화를 상세히 탐구하고 있지만, “민츠의 인류학이 가진 휴머니즘적인 프레임 때문에 다른 많은 생명체들(과 다른 비인간들)이 적극적으로 거기에서 관계되고 있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고 평한다(450).

 

그런데 이게 이론화냐? 아니다. 이론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너무 부족하고, 그냥 조크(joke) 같다. 좀더 진지하게 제대로 쓰던가 아니면 아예 출판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사실 맑스와 푸코 이야기가 나왔을 때 기대했다. 그리고 실망했다. 나머지 나오는 여러 형상들... 특히 해러웨이가 열심히 참여하는 개 커뮤니티 이야기는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내가 이 바쁜 와중에 도대체 왜 이런 책을 읽고 있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이론화라면 좀더 엄밀해야 했고, 조크라면 좀더 재미있어야 했다.

 

그렇다고 개나 고양이를 키운다면 이 책이 재미있을까? 글쎄... 반려종과 함께 산다고 해러웨이를 좋아하라는 법도 없고, 해러웨이가 불만족스러워 하는 맑스, 푸코, 들뢰즈와 가타리의 논의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해러웨이 말을 알아듣고 말고는 그 다음 문제일 것이다.

 

3. 해러웨이의 동맹자들

비판대상이 있다면 동맹자도 있다. 해러웨이의 다른 저작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와 빵을 함께 먹는 관계인 동맹자들이 등장한다. 거의 매번 등장하는 마굴리스, 라투르, 배러드, 스탕제르 이야기가 되풀이된다. 가장 의외의 인물은 데리다였다(1). C. A. 샤프에 대한 4장은 오스트레일리안 셰퍼드 종에 대한 의학적 진실이 어떠한 네트워크 확장과정과 함께 생산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내가 읽은 해러웨이의 글 중에 라투르의 ANT 접근방식을 가장 충실히 구현한 글인 것 같다. 캐런 배러드의 내부-작용(intra-action)”과 이사벨 스탕제르의 코스모폴리틱스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이 중에서는 스탕제르 이야기가 좀더 궁금하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찾아봐야 하겠다.


4. 후주

난 후주(endnote)보다 각주(footnote)를 선호한다. 그런데 해러웨이의 책은 영어로 나온 책들도 다 후주를 달아놓았다. 해러웨이의 어떤 주는 매우 전문적이고 장황해서 각주로 두기가 좀 힘들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본문 읽다가 후주 찾아 읽다가 다시 본문으로 오는 게 참 쉽지 않다. 더구나 영어책이랑 같이 볼 때 이 수고는 두 배 이상이다. 그런데 또 막상 후주 내용이 쌈박하거나 그렇지도 않다. 아마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불만을 들었던 적이 있는 것 같다(371).

 

5. 맺으며

아무튼 난 이 책이 별로였다. 절판되었던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황희선, 임옥희 옮김, 아르테)가 새로운 번역으로 곧 출판 예정이다. 오늘날의 해러웨이를 있게 한 사이보그 선언상황적 지식이 실려 있는 훌륭한 책이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옮긴이 중 한 분은 해러웨이 선언문의 번역자기도 하다. 난 그 번역자를 신뢰한다. 그러나 난 올해 더 이상 해러웨이를 읽지 않겠다.

 

해러웨이는 내게 라투르와는 다른 하이브리디즘의 가능성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정말 고맙게도 르 귄을 알게 해준 사람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책에서 르 귄은 안 보인다. 책 한 권 읽고 실망했다고 손절하거나 그럴 일은 없다. 미심쩍은 번역은 따로 정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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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과 종이 만날 때 - 복수종들의 정치 아우또노미아총서 80
도나 해러웨이 지음, 최유미 옮김 / 갈무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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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웨이를 처음 읽는다면 이 책부터 읽지 마세요. 해러웨이의 다른 좋은 글들을 먼저 읽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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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고원 - 자본주의와 분열증 2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지음, 김재인 옮김 / 새물결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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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도 못하고 그렇기 때문에 본격적인 시비가림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돈 주고 책 산 독자의 불평쯤 될 것이다.


어려운 책이라 번역이 어려웠겠지만, 용어 선택에 있어서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예컨대, progression을 "진보", regression을 "퇴행", involution을 "역행"이라고 옮겨 놓았는데(446~453), 각각 "전진", "후퇴", "연루/엮임/얽힘/관계맺음"으로 옮겨야 말이 된다.


"진보"는 말 그대로 "시간의 화살"을 전제하는 근대주의적 개념이다.

이 책 <천 개의 고원>에서 progression은 "무엇을 향해 더 앞으로 나가다/전진하다"라는 공간적 이동의 의미이지, 시간의 흐름을 전혀 지시하지 않는다. 

한편으로 <자연>은 단계적인 닮음에 의해 계열의 모델과 근거로서 존재자들 모두가 모방의 대상으로 삼는 신이라는 최고항을 향해 나아가면서 진보적이거나 퇴행적으로 끊임없이 서로를 모방하는 존재자들의 사슬이라는 형식으로 고려된다.

"나아가면서 진보적이거나 퇴행적으로" -> 전진하거나 후퇴하면서 - P446

우리들로서는 이처럼 이질적인 것들 간에 나타나는 진화 형태를 "역행(involution)"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단 이 역행을 퇴행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되기는 역행적이며, 이 역행은 창조적이다. 퇴행한다는 것은 덜 분화된 것으로 향해가는 것이다. 그러나 역행한다는 것은 자신의 고유한 선을 따라, 주어진 여러 항들 "사이에서", 할당가능한 관계를 맺으면서 전개되는 하나의 블록을 형성하는 일을 가리킨다.

1. 역행 -> 엮임, 휘감김
2. 마지막 문장 (영어본, p. 239)
But to involve is to form a block that runs its own line "between" the terms in play and beneath assignable relations.
그러나 연루된다는 것은 서로 관계하는 항들 "사이에", 그리고 할당가능한 관계들 밑에 나있는 자신의 선을 달리면서 한 덩어리를 형성하는 것이다. (연루된다는 것은 복수의 항들이 한 덩어리가 된다는 것) - P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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