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열두 방향 어슐러 K. 르 귄 걸작선 3
어슐러 K. 르 귄 지음, 최용준 옮김 / 시공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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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으로, 그리고 거기에서 또 섬으로 간다.


어떤 책을 갖고 갈까 하다 르 귄의 책 두 권과 아직 안 읽은 해러웨이 책 하나만 챙기기로.

작년엔 혼자 보내는 시간이 길어서 <트러블과 함께 하기>를 다 읽고, 정리도 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그 정도의 시간은 없을 것 같아 해러웨이 책은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바람의 열두 방향>은 처음 읽는 르 귄의 단편집.

휴가 출발보다 앞서 읽기 시작했다.

르 귄의 부모가 인류학자였다는데, 서로 다른 행성 존재들 간의 만남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도 그 영향이 보인다. 물론 탈식민주의적 성찰도 보인다. 


이 단편선을 다 읽고 나면 르 귄에 입덕할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 



2022. 7. 21.

그 섬에는 가지 못해 이 섬에만 머무르기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DARK의 동굴을 연상시키는 태평양 전쟁 시절의 동굴들이 있는 숲을 거쳐 나오는 도서관에서 목을 축이고 책을 폈다. 약속은 오후 네 시... 

이 책은 무슨 베스트 앨범 같다. 

재미있지만 빨리 읽고, 르 귄의 장편을 제대로 보고 싶다.

원서를 보지 않아도 되고, 줄을 안 쳐도 되고... 

책읽기가 원래 이런 거였구나 재미있는 거였구나 새삼 깨닫는다.


2022. 7. 25. 

여행 마지막 밤. 

많이 걸었고, 마셨고, 먹었고, 웃었고, 고기는 한 마리밖에 못 잡았고, 그래서 별로 못 읽었다.

여행 내내 날씨가 좋았다. 

인상적인 술집이 하나 있었고, 이 나이에 처음 먹어본 음식도 있었다.

죽을 때까지 계속 처음 먹게 되는 훌륭한 음식을 만나면 행복할 것 같다.

오랜 친구들과 함께 놀고 먹어서 더 좋았다.


세 군데의 도서관에 들렀다. 이 섬은 참 도서관들이 별나게 좋다. 

백 페이지쯤 남았는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맛있는 메뉴와 함께 하는 혼술은 옛 생각에 젖게 했다. 

그러나 혼술을 멋지게 만드는 것은 맛있는 안주가 아니라, 역시 좋은 음악이다. 

훌륭한 요리는 친구와 먹는 것이지, 친구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음악은 다르지. 친구가 될 수 있지.


2022. 7. 27.

다 읽었다. 


주요 모티브:

심리신화(psychomyth 11, 306, 364), 나무(306), (진짜) 이름(150), 이야기(292)

마굴리스: 가이아(354~362), 과학과 예술(364)

해러웨이: SF(80, 306 364), 타자(227, 258, 354, 362), 진흙(493), 이원론 비판(481)

열두살 때는 게재를 거절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도 마냥 기뻐했고 서른둘이 되어서는 수표를 받고 매우 기뻐했다. ‘전문가주의‘는 미덕이 아니다. 프로란 아마추어가 열정 때문에 하는 일을 돈을 받고 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 P54

"... 어린이 여러분이 학교를 졸업하고, ‘통로‘를 통과하게 되면, 여러분은 지금의 이름을 버리고 여러분의 참이름을 갖게 돼요. 절대 물어서도 안 되고 함부로 알려줘서도 안 되는 이름을 갖게 되지요. 왜 이런 법칙이 생기게 됐을까요?"
어린이들은 조용해졌답니다. 양들은 부드러운 소리로 메에하고 울었지요. 언덕아래씨가 수줍어하며 부드러우면서도 쉰 목소리로 그 질문에 대답을 했어요. "왜냐하면 이름은 사물 그 자체니까요. 그리고 참이름은 사물의 참된 본질이에요.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 사물을 통제하는 것과 같습니다. 제가 맞게 말했나요, 선생님?" - P150

낯선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 낯선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을 만나는 이가 세상에서 가장 외향적인 사람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어떤 두려움이 있기 마련이다. 비록 스스로는 그런 두려움을 느낀다는 걸 모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저 사람은 나를 놀리고 나 자신에 대한 인상을 망가뜨리고 날 간섭하고 파괴하고 바꾸려는 게 아닐까? 저 사람은 나와 다르지 않을까? 그래, 그럴 거야. 그리고 그게 무서운 일이다, 낯선 사람이 낯설다는 것. - P227

이 친군 전에도 다른 사람은 볼 필요가 없었어. 한 번도 외로운 적이 없었거든. 자기 자신만 보면 됐어. 평생 다른 아홉 개의 자아와 말하고 살면 되었단 말이야. 이 친구는 외로울 때 어떻게 하는지 몰라. 이제 그걸 배워야 해. - P258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한 체념의 삶을 살아간다"(소로, <월든>). 그리고 몇몇 이야기들은 그런 삶에서 비롯된다. - P292

"내 식물 같은 사랑은 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 자라겠지요..."
<아홉 생명>과 마찬가지로, 이글은 심리신화를 다룬 것이 아니라 보통의 SF 단편이다. 하지만 나는 액션이나 모험을 다루는 대신 심리학적 측면에서 내용을 전개했다. 육체적 행동이 정신적 행동을 가져오지 않는 한, 행동이 인간을 표현하지 않는 한, 나는 모험 이야기를 무척 지루해한다. 액션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럴 듯하지 않아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내가 관심 있는 건 인간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이다. 정신세계 같은 것 말이다.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숲이, 아직 아무도 탐험하지 않은 끝없는 숲이 있다. 우리 각자는 매일 밤 홀로 그 숲에서 길을 잃어버린다. - P306

"똑같아." 오즈딘이 말했다. "같은 생각을 하는 커다란 녹색 덩어리야. 너의 두뇌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생각이 전달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생각이 아니야. 저것은 생각을 하지 않아." 하펙스가 무기력하게 말했다. "저것은 그냥 일련의 작용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에 불과해. 가지, 기생 성장, 개개 사이에 있는 마디와 뿌리. 이 모두 전기 화학 충격 전파를 낼 게 틀림없어. 그러므로 정확히 말하면 개개의 식물은 없는 거지. 꽃가루조차 연결고리 하나로, 바람에 실려 바다 너머를 연결해주는 인식체인 게 분명해. 하지만 그것들은 생각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이 행성의 생태계 전체가 의사소통을 하는 단일한 연결체이며 비이성체이고 감각 있으며 영원하며 고립된 ..."
"고립." 오즈딘이 말을 가로챘다. "바로 그거야! 그게 공포야. 우리가 움직인다거나 파괴를 할까 그런 게 아니야. 원인은 바로 우리 자신인 거지. 우리는 타인이야. 이곳에는 타인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고." - P354

불사의 무신경체에 대한 견디기 힘든 경험을 한 후 도미코는 합리적으로, 철저히 원인 규명을 해 오즈딘이 행한 일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오즈딘은 두려움을 자기 안에 받아들여 초월해버렸다. 오즈딘은 자신을 외계에 스스럼없이 내던져버렸고 거기에 악한 것이 들어찰 수 없었다. 오즈딘은 다른 존재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그러므로 자신을 내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이성의 어휘로는 쓸 수 없는 이야기 였다. ...
행성이 햇빛과 위대한 어둠 사이에서 돌았다. 겨울의 바람 그리고 여름이 고운 꽃가루를 불어 조용한 바다 위로 날려보냈다. ...
손실 기록: 생물학자 하펙스, 공포로 인해 죽음. 감지인 오즈딘, 식민지 개척자로 정착함. - P362

<명인들>과 마찬가지로 이 글(<땅 속의 별들>)에서 나는 어떠한 장치나 도구, 가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과학 그 자체, 즉 과학의 개념에 대해 이야기했다. 또한 이 글은 17세기 교황에 대항했던 천문학이나 1930년대 스탈린의 생각과 상반된 유전학처럼 만약 과학의 개념이 정부가 주입한 완전히 상반되고 강력한 다른 개념과 만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다룬 이야기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실제 시간대의 과거나 또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심리신화로 다루었다(But all this was cast as a psychomyth, a story outside real time, past or future,). 그 이유 중 일부는 과학을 일반화하기 위함이고, 다른 일부는 내가 과학을 예술과 동의어로 여기기 때문이다(in part to generalize it, and in part because I was also using science as a synonym for art.) - P364

"눈을 떴을 때, 당신이 알고 있는, 예를 들어 당신 손 같은 물체가 눈앞에 있을 경우엔, 뭐가 보이나요?"
"‘꽃이 만발하고 윙윙거리는 혼란‘이요."
"윌리엄 제임스로군요." 만족스러운 목소리로 셔피어가 말했다. "갓난아이가 세상을 어떻게 감지하는가에 대한 표현이었죠. ..." - P415

... 아이를 직접 본 사람들은 화를 내고, 분노를 느끼며, 무력감에 빠져든다. 그 비참한 아이를 위해 뭔가 해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아이를 그 지독한 곳에서 밝은 햇살이 비치는 바깥으로 데리고 나온다면, 아이를 깨끗하게 씻기고 잘 먹이고 편안하게 해준다면 그것은 정말로 좋은 일이리라.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한다면, 당장 그날 그 순간부터 지금껏 오멜라스 사람들이 누려왔던 모든 행복과 아름다움과 즐거움은 사라지고 말게 된다. 그것이 바로 계약인 것이다. 단 한 가지 사소한 개선을 위해 오멜라스에 사는 모든 이들이 누리는 멋지고 고상한 삶을 맞바꾸어야만 한다는 것, 한 사람이 행복해질 기회를 얻기 위해 수천 명의 행복을 내던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하실 골방 안에서 벌어지는 죄악을 방기하게 만드는 이유다.
계약은 엄격하며 절대적이다. 그 아이에게는 친절한 말 한 마디조차 건네면 안 된다. - P464

지하실의 아이를 본 청소년들 중에는 눈물을 흘리거나 분노에 차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아이들도 있다. 사실, 아예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 이들은 한참을 걸어 오멜라스의 아름다운 관문을 통과해 도시 밖으로 곧장 빠져나간다. 이들은 오멜라스의 농장들을 가로질러 계속 걸어간다. 성인이든 청소년이든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그 사람들은 모두 혼자서 간다. 밤이 찾아오면 이런 여행객은 마을의 길을 따라, 창문으로 노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들 사이를 지나 들판의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렇게 그 사람들은 혼자서 서쪽으로 북쪽으로, 산으로 향한다. 그들은 계속 걸어간다. 그들은 오멜라스를 떠나 어둠 속으로 들어가서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들이 가는 곳은 우리들 대부분이 이 행복한 도시에 대해 상상하는 것보다 더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다. ... 그러나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을 알고 있는 듯하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은. - P466

오도주의는 무정부주의다. 하지만 주머니 속에 폭탄을 넣고 있다 던지는 부류는 아니다. 그런 행동이 옳다고 믿는 견해는,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그럴싸하게 이름 붙이든 상관없이, 테러주의다. 극우파 사회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경제적 ‘자유지상주의‘도 아니다. 초기 도교 사상가들이 구상한 바 있고 셀리와 크로포트킨, 골드맨과 굿맨이 소상히 설명했던 무정부주의인 것이다. 무정부주의의 주된 표적은 (그것이 자본주의 국가든 사회주의 국가든 상관없이) 권위주의적 국가이고 주된 도덕적, 다시 말해 실제적 주제는 협력, 즉 연대와 상호부조다. 무정부주의는 모든 정치 이론 가운데 가장 이상주의적이고, 가장 내 흥미를 끄는 정치 이론이다. ... 이 이야기(<혁명 전날>)는 오멜라스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 P470

<감옥에서 보내는 편지>, 사람들은 그걸 이제 이렇게 불렀고, 서로 다른 판본이 열두 가지는 있었다. 사람들이 라이아에게 ‘영적 활력‘이 넘친다고 말하던 그 편지들. 그건 아마도 라이아가 그 편지들을 쓸 당시 얼굴에 우울을 가득 담고 자신을 계속 격려하려 애쓰며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뜻일 것이다. - P479

... 라이아는 어떤 것도 절대 보관하는 일이 없었다. 몇 년이 지나도록 소유해본 적이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생각나는 게 없었다. 있다면 이 덜컹대는 낡은 몸뿐이었고, 라이이는 이 점에 충격을 받았다. ...
또다시 이원적 사고를 하고 있었다. ‘그녀‘와 ‘그것‘. 나이와 질환은 인간을 이원론자로 만들고 현실 도피주의자로 만든다. 정신이 말했다. ‘내가 아냐, 그건 내가 아냐.‘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아마도 신비주의자들은 신체에서 정신을 떼어낼 수 있을 것이고, 라이아는 신비주의자들의 그런 가능성을 다소 동경하며 부러워해오긴 했어도 닮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도피가 라이아의 전략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라이아는 지금, 이곳의 자유를, 몸과 마음으로 추구해왔다. - P481

혁명이 성공하게 되면 이 같은 빈민가는 없어질 터였다. 그러나 고통은 남을 터였다. ...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이런 것들이었다. 처음으로 팸플릿을 쓰기 전에, ... ‘자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기 전에, ... 라이아는 이미 알고 있었다. ... 리버 거리에 사는 모든 사람이 무언가의 가장 밑바닥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것이 시작이었고, 현실이었고, 원천이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문명을 다시 진흙으로 되돌리잔 말인가? 고상한 사람들은 충격에 휩싸여 소리 질렀고, 이후 라이아는 오랜 세월 동안 그런 사람들에게 설명하려 애썼다. 하느님이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듯, 당신이 사람이라면 그리고 가진 것이 진흙뿐이라면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신이 진흙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자들은 누구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이제, 물은 저절로 수평을 찾아가고, 진흙은 진흙으로, 그리고 ... 라이아 세대의 추하고 약한 모든 존재는 고향에 와 있었다. - P493

우리가 단순한 등가물이자 신호[기호!]라고 생각했던 상징들은 생명을 갖게 되고, 의도하지 않았던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The symbols you thought were simple equivalences, signs, come alive, and take on meanings you did not intend and cannot explain). ...
어쩌면 이 글은 과학 혹은 예술에 대한 글이 아니라 정신에 대한 글,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나 또는 다른 이의 정신에 대한 글일지도 모르겠다(Perhaps this story is not about science, or about art, but the mind, my mind, any mind, that turns inward to itself). - P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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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2-07-20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 귄의 책이 집에 6권이 있는데, 아직 한 권도 안 봤습니다..ㅎㅎㅎ
르 귄 작품이 유명하다고, 재밌다고 해서 쟁여놨는데, 도통 볼 생각을 못하네요..ㅎㅎ

에로이카 2022-07-20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moo님, 누구에게나 그런 책들이 있지요. 책장에 꽂힌 채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지만 정작 나는 시선을 피하는… ㅎ
 
푸코의 맑스 - 미셸 푸코, 둣치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 디알로고스총서 1
미셸 푸코.둣치오 뜨롬바도리 지음, 이승철 옮김 / 갈무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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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1978년 인터뷰에서 푸코는 몇년 전 그가 규율권력(1975년)과 생명권력(1976년)에 대해서 쓸 때와는 달라져 있는 것 같다. 6장에서 뜨롬바도리는 푸코가 국지적 권력 작동의 문제만큼 국가권력의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않고, 본인이 제기한 권력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으며, 그 어떤 당적 실천에도 참여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비판적이다. 푸코는 간단히 응수한다. 그것은 내 관심이 아니라고.


아마도 뜨롬바도리 같은 이들의 질문은 계속될 것이고, 이런 대화를 통해 푸코와 맑스주의 간의 승부도, 양자간의  의미있는 종합도 가능하지 않으리라는 현실 인식이 있지 않았을까?, 그 다음 푸코의 행보는 권력에서 통치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경제위기와 통치위기의 중첩이라는 말이 2022년의 대한민국에서는 더 가까이 들린다. 

그런데 희망은 쉬이 보이지 않고, 반란도 안 보인다.

사람들이 아직은 잘 참고 있나 보다.

... 최근의 경제위기를 통해서, 그리고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 ...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극심한 대립과 갈등을 통해서, "통치"의 위기가 등장했다는 사실이 명확해진 것 같습니다. 여기서 "통치"라는 말은, 정부에서부터 교육 등등까지를 모두 포함한, 사람들의 행위를 지도하는 일단의 제도와 실천들을 의미합니다. 기존에 사람들의 "통치"를 보장해 주던 이러한 일단의 과정들, 기술들, 방법들이, 오늘날 사회주의 사회와 서구 사회 모두에서 위기에 봉착한 것 같습니다. 두 세계 모두에서 사람들은 그들이 지도되는 방식에 점점 더 불안해하고, 괴로워하며, 참을 수 없어 하고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일상생활에서의 분산된 저항형태로, 때로는 일상생활뿐 아니라 다른 보편적인 선택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한 반란의 형태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 P166

내가 보기에, 현대 사회는 중세 말기와 매우 유사합니다. 과거 15세기와 16세기 사이에 사람들에 대한 "통치"의 전면적인 재조직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의 등장과 거대한 국민국가의 형성, 절대왕정의 성립, 각 국가별로의 영토분할, 반-종교개혁 운동, 가톨릭 교회와 세속 사회 간 새로운 존재 양식의 등장 같은 사건들이 발생했지요.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은 개인적인 관계들과 사회적, 정치적 관계들 모두에서, 사람들을 통치, 관리하는 방식의 전면적 개편을 가져왔습니다. 내가 보기에, 오늘날 우리는 또 다시 통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든 관계들이 의문시되고 있으며, 이러한 문제제기를 이끄는 사람들은, (현존하는 어려움을 인식할 수밖에 없는) 관리자나 통치자가 아닙니다. 나는 우리가 "통치"의 문제를 광범위하게 재평가해야 하는 거대한 위기의 출발점에 서 있다고 확신합니다.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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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합리성 - 신자유주의 사회에 대한 에세이 프리즘 총서 40
피에르 다르도.크리스티앙 라발 지음, 오트르망.심세광.전혜리 옮김 / 그린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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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신자유주의와 굥의 신자유주의의 차이가 무엇인가?

중요한 하나가 갈라치기, 바로 "내전"이다.

내전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의 주요 테마 중 하나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다르도와 라발은 이를 『처벌사회』와 연결짓고 있다.


『처벌사회』 보고 싶다. 다른 강의록들도.

왜 난장 출판사에서 펴내던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나?  

국내의 푸코 연구가 진도가 좀 나가려면 제일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 중에 하나가 푸코 강의록 번역 출판일 것 같다. 

난장 출판사가 책임감을 좀 갖고 노력해줬으면 좋겠다.

통치성에 관한 푸코의 분석은 사실 국가 지배의 폭력적 차원을 망각하게 하고 내전의 차원을 사라지게 만들 위험이 있다. 이 내전의 차원은 푸코의 1979년 강의 『생명관리정치의 탄생』 이전인 1970년대 초반, 특히 『처벌사회』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대단히 중요했다. "일상생활에서의 권력 행사는 내전으로 생각될 수 있어야 하고 거기서 우리가 포착할 수 있는 모든 도구와 전술, 그리고 이것들의 연합은 분명 내전의 관점에서 분석할 수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신자유주의 통치성은 신자유주의에 방해가 되는 모든 사회 세력, 모든 정적, 모든 제도적 장애물에 대항하는 항구적 전쟁을 요청한다는 것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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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2-07-06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리즘 총서는 번역이 구려서 구매하기가 꺼려지더라구요~~

에로이카 2022-07-06 08:53   좋아요 0 | URL
yamoo님, 안녕하세요? 저 프리즘 총서 꽤 많이 읽었는데, 프리즘 총서라서 그런 건가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어쨌든 이 책은 지금까지는 잘 읽고 있습니다.
 
새로운 세계합리성 - 신자유주의 사회에 대한 에세이 프리즘 총서 40
피에르 다르도.크리스티앙 라발 지음, 오트르망.심세광.전혜리 옮김 / 그린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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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출판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읽기 시작했는데, 번역이 매우 훌륭하다. 푸코의 신자유주의 비판의 가능태가 저자들이 이해한대로 실현된 것이라 볼 수 있을 듯하다. 다르도와 라발의 후속작들도 다 번역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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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5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7-28 15: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생자 행성 - 린 마굴리스가 들려주는 공생 진화의 비밀 사이언스 마스터스 15
린 마굴리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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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마굴리스(1938-2011)는 세포, 그 중에서도 핵 바깥의 세포질을 연구한 미생물학자다. 미생물학자?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4부에서 언급한 거머리의 뇌를 연구하는 학자같은 사람인가 보다 했다. 세상의 다른 것들에는 무관심한 채, 자신이 연구하는 아주 작은 것에 대해 엄밀한 진실을 추구하는 과학자. 니체의 말로는 하나만을 알고,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기를 바라는, (그러나? 그러므로?) “정신의 양심을 가진 자(정동호 역, p. 403)이고, 사르트르의 표현대로라면, 지식인이 아닌 지식기사이다. 요즘 말로 바꾸자면, 자신의 전문 분야가 충분히 넓은 세상이기 때문에 다른 모든 것들을 괄호친, 곧 관심 바깥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문제삼지 않는 자, 그 존재자들을 자신의 인식 지평 바깥에 둔 자이다. 이들은 자신의 앎의 지평 안에서는 무수한 물음표들을 만들어내고 대답을 제시하(려 노력하)지만, 그 바깥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는다. 질문이 제기되어도 그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미덕이 있다면, 곧 그들이 정신의 양심을 가졌다면, 이 경계 밖의 문제에 대해서는 겸손하다는 것이고, 단점이라면 그 밖의 문제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굴리스는 나의 이런 선입견에 멋지게 한 방 날렸다. 그녀는 미생물 연구를 통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 동물과 식물, 생명, 진화, 그리고 가이아의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들을 시도한다. 이와 더불어, 여전히 남아있는 질문들을 숨기거나 피하지 않고 명시하고, 그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한다.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미생물은 공간적으로 이 지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이 육지로 넘어올 수 있었던 것도 미생물이 자신들의 막 안에 액체를 유지함으로써 일종의 초바다(hypersea)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고, 광합성을 통해 대기를 산소로 채운 것도 이 미생물이다(192-193). 시간적으로는 인간이 출현하기 전부터 있었고, 인간이 출현한 다음에는 인간과 함께 그들 안팎에서 존재하며, 인간이 소멸한 다음에도 살아남는다. 그렇다면 미생물보다 큰 세상이란 우주밖에 없다. 그 순간 나의 인식 지평이란 참 초라해진다. 인간의 삶과 사유의 방식으로서의 철학의 역사가 모두 미생물 앞에서는 하찮아져 버린다. 오만을 반성하고, 그 앎의 상대성과 무지를 인식하게 되면, 쳐졌던 괄호는 풀리고 그 중 일부는 새로운 앎과 새로운 모름의 대상이 되어 인식 지평으로 편입되고, 괄호는 다시 쳐진다. 그리고 구약 성경의 창세기는 그리스 로마 신화나 단군신화, 나아가 오늘날의 SF의 위상과 동등한, 믿음직하지 않지만 재미는 있는 픽션이 된다.

 

중고등학교 생물 시간 이후로 자연과학의 대상으로서 생명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없(는 걸로 기억한). 생물은 좋아하는 과목였지만, 그것은 나와 생명체들, 그리고 이들이 함께 살고 죽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공부였다. 이제 비로소 지금은 살아 있지만 언젠가는 죽을 나를 알기 위해, 나와 같이 살면서 세계를 만들고 있는(worlding) 생명들을 알기 위해, 그리고 이 생명들이 다른 힘들과 함께 이루는 가이아를 알기 위한 공부를 하게 된 셈이다. 그래도 시험을 위해 암기했던 정보의 조각들은 여전히 유용하다. 세포, , 세포질, 미토콘드리아, DNA, RNA, 염색체, 감수분열 등 이제는 내게 Inside Out빙봉과 같은 존재가 되어 기억 창고 속에 먼지가 가득 쌓였던 개념들이 다시 등장한다.

 

이 책은 단순한 생물 교양서가 아니다. 마굴리스는 연속 세포 내 공생이론(SET, serial endosymbiosis theory)”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비전공자들을 주눅들게 만드는) 이론을 확립한 미생물학자이다. 이 책에서 마굴리스는 이 SET과 가이아의 연관성을 학문적으로 정립하고자 한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도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설명한다. 마굴리스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이렇게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니까, 너도 어렵다고 중간에 책 덮으면 안 돼. 독자 너도 필자 나만큼은 노력해야지. 읽는 게 쓰는 것보다 어렵겠니?” 그런데 읽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읽었다. , 정리해보자.

 

1. SET: 공생자 행성의 공생자들

1967년 마굴리스는 SET을 세상에 선보인다. 간단히 요약하면, SET역사와 능력이 각기 다른 세포들의 융합, 곧 하나됨의 이론이다(67). 이 이론에 따르면, 하나의 세포는 공생하는 별개의 세포(박테리아)가 합쳐져서 새로 만들어진 개체이다. 이제 공생은 개체간 공생이 아니라, 개체내 공생이 되며, 완전히 새로운 성질을 지닌 개체가 생겨났다는 것은 진화가 일어났음을, 곧 공생발생(symbiogenesis)을 통해 진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세포 수준뿐만 아니라, 더 큰 동식물 개체 수준에서도 일어난다. 이 융합은 순서대로(serial) 일어난다. 진핵세포 안에서 단백질을 만드는 대사 과정은 세포 내로 들어온 호열산세균에서 유래한 것(1단계)이고, 그 다음에는 정자 꼬리 같은 것을 가진 유영 세균이 결합(2단계)하였고, 산소호흡을 하는 미토콘드리아 또한 세균 공생자가 진화한 것(3단계)이고, 조류와 식물의 엽록체와 색소체는 이전에는 독립생활을 하던 광합성 시아노박테리아가 합체(4단계)된 결과이다. 마굴리스에 따르면, 각 단계는 가설로 출발했지만, 현재는 2단계를 제외한 세 단계에 대한 검증이 완료되었으며, 2단계에 대한 가설도 곧 검증될 것이라고 자신만만해 한다(78-80).

 

이는 단지 이전에는 몰랐던 것을 새로이 알게 된 것, 곧 비어있던 자리가 새로 채워진 것이 아니라, 이전에 그 자리에 놓여 있던 지식과 그 자리를 두고 다투는 싸움에서 이겼음을 뜻하는 것이다. 하나의 세포는 서로 다른 개체들이 순차적으로 합체한 결과이며, 진화가 이를 통해 발생했다는 공생발생의 기본적인 통찰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러시아 생물학자 콘스탄틴 메레슈코프스키(1855~1921)와 컬럼비아대 교수였던 아이번 월린(1883~1969) 등이 이미 공생발생의 주장을 편 바 있다(22-23, 56-57, 67, 77-78, 101). 그러나 당시에는 이들의 이론을 검증할 도구들이 없었고, 따라서 이들은 주류에 의해 무시당했다. 마굴리스는 자신의 핵심적 기여는 이 이론의 세부 사항들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하면서, 한때 배척당했던 이 이론이 정설로 되어가리라는 점을 확신한다(75). [해러웨이는 마굴리스가 이들의 입장을 증명할 수 있었던 것은 전자현미경, 핵산서열 분석기 같은 20세기말의 강력한 사이보그 도구들덕분이었다는 점을 상기시킨다(트러블과 함께하기, p. 114).] 물론 시간이 흐름에 따라 SET 역시 도전의 대상이 되었으며, 마굴리스도 결코 응전을 회피하지 않는다. 경합의 파트너들은 상대방의 논리를 잘 파악하고 있고, 자신의 이론이 옳기를 바라면서 그것을 상대방뿐만 아니라 과학자 공동체에게 설득시키기 위한 검증을 계속한다(81-92).

 

경합이 발생하고 해소되는 방식에 있어서 과학과 종교는 다르다. 입장 차이와 경합은 종교에서 억압 또는 회피되지만, 그것들은 과학의 존재방식 자체이다. 그것이 해소되는 방식도 다른 것 같다. 설명 대상인 존재의 초월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과학의 입장이다. 그 존재에 대해 물음표를 끊임없이 던지며, 그 물음에 대한 답들은 언제나 인식가능한 실재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종교는 대상의 초월성을 가정하므로, 보편적 인식 가능성에 기반한 논의를 전개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설과 검증이라는 진리 테스트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종교는 도덕을 구성할 수는 있어도 상식을 구성할 수 없다.

 

2. 25계 분류 체계: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경합에서의 승리는 연쇄적이고 확장적이다. 공생발생의 진화 이론은 기존의 진화 이론에 입각하여 고안된 분류체계, 곧 생명을 이름 붙이고 분류하는 방식도 새롭게 다시 쓴다. 우리는 막연히 유기체는 동물과 식물 두 가지가 있다고, 또는 여기에 병원균을 더하여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이를 교육받고 그것을 상식이라 생각하지만, SET에서 발전된 25계 분류(two-tiered five kingdom classification) 체계는 이 상식을 뒤엎는다.

 

분류학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기원전 300년대에 아리스토텔레스는 5백여 종의 동물을 분류했지만 눈에 보이는 동물만을 분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미생물은 아예 들어 있지도 않다. 로마의 플리니우스는 자연사에서 당시까지 보고된 모든 생물들의 목록을 작성하였는데, 여기에는 유니콘, 인어 등도 들어 있었다(108). 칼 폰 린네(1707~1778)는 생물의 속(genus)과 종(species)二名法[: Homo() sapiens()]을 창안하였고, 1만 종의 생물을 분류하였지만, 신의 창조를 믿었던 그는 진화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린네까지는 생물을 크게 동식물 두 종류로, 파스퇴르 이후에는 여기에 세균을 추가하여 세 종류로 구분하게 된다. 분류학에서 진화를 최초로 고려한 사람은 에른스트 헤켈(1834~1919)인데, 그는 동물과 식물의 공통 조상은 둘 중 하나가 아닌 다른 존재라고 생각했으며, 진화론을 받아들이면서 동물계와 식물계에 원생생물계를 추가하였다. 생물 분류체계는 이후 허버트 코플런드(1956)와 로버트 휘태커(1969)를 거치면서 더욱 세련화되었다.

 

마굴리스는 칼린 슈워츠와 함께 이를 종합하여 1998년에 25계 분류를 발표한다. 이들은 먼저 1) (핵이 없고 공생발생을 거치지 않은 세균, 곧 박테리아인) 원핵생물과 (핵이 있고 공생발생을 통해 진화한) 진핵생물을 구분한다. 그리고 이 진핵생물을 다시 2) 원생생물, 3) 균류, 4) 식물, 5) 동물로 구분한다(99-100, 106-107). 마굴리스(와 칼 세이건)의 큰아들 도리언 세이건은 각 생명군을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그려냈다(그림 4, 100).



 

마굴리스는 이 25계 분류가 최종적 지식, 완성된 진리가 아님을 시인한다. 곧 문제가 있을 수 있고, 그것은 자연을 연구한 결과를 반영하여 계속 수정되어야함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5계 분류는 생물을 두 종류, 세 종류로 분류하는 기존의 상식이 허위임을 보여주기에는 충분한 상대적 진리임은 분명하다. 인상적인 것은 마굴리스가 기존의 분류법을 비판하면서 더 타당한 분류법을 고안하고자 노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명명과 범주화의 한계를 잘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의 모든 존재들에 대해 인간은 자신의 언어로 이름을 붙이고 분류한다. 그런데 그 중에는 잘못된 분류법에 기반해서 잘못 붙여진 이름들이 많다. ‘남조류’, ‘원생동물’, ‘고등동물’, ‘하등식물등이 대표적이다.

 

마굴리스는 언어가 존재와 사태를 명확히 정리하기보다는 혼란을 유발하고 속일 수 있다고 말한다(104). 맞다. 그러나 그렇다고 말로 정리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잘못된 이름과 잘못된 분류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명명과 분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더라도 그것보다는 상대적으로 올바른 분류 체계를 마련하여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해러웨이 선언문에 실린 캐리 울프와의 대화”(황희선 역, p. 308, 325)에서 언급된 그레고리 베이트슨의 유명한 말이 인용된다. (유명하다는데 나는 처음 봤다.)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98). 곧 공생발생하는 생명들이 실제의 땅이라면, 분류법은 그것을 종이에 옮겨놓은 지도이고, 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어떤 라벨링, 서랍에 넣고 정리(하고 안심)하기는 그 존재를 왜곡한다. 그러나 생물학자의 지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땅에서 사는 생명들은 계속 살아나간다. 이름 붙이려면 제대로 붙이는 것, 그게 인간에게는 최선이다. 하지만 지도 밖의 생명이 마굴리스의 입을 빌려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가 내게 붙인 이름 또는 부여한 속성이 나의 존재를 다 파악한 것은 아니라고. 이쯤에서 자연스레 해러웨이가 연상이 되는데, 이 이야기는 뒤에서 더 하자. (“반려종 선언”, 해러웨이 선언문, p. 123)

 

3. 가이아

마굴리스는 머리말에서 자신은 애초에 SET과 가이아 개념이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었음을 밝히며 이 책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생각은 바뀌었고, 이 책의 주요 목적은 양자간의 연관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가이아에 대해 논하는 마지막 8장이 제일 인상적이다. 섹스와 감수분열의 기원(6)과 초바다를 통해 생물권이 육지로 확대되면서 지구가 공생자 행성이 된 이력(7)도 흥미롭다. (20227월 초 현재 서울 서북부지역은 이른바 사랑벌레때문에 고생이라는데, 원서 6장 마지막 부분에서 사랑벌레(love bugs) 이야기가 나오는데, 184쪽의 번역에는 누락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논의가 마지막의 가이아 논의로 모아진다. 7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공생발생 논의가 요약되고, 이 논의가 가이아 이론으로 이행하는 연결부 역할을 한다.

 

우리가 아무리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도, 생명은 훨씬 더 폭넓은 계(system)를 이룬다. 우리 피부 바깥(그리고 안쪽)에 있는 수백만 종들은 물질과 에너지 측면에서 믿을 수 없을 만큼 복잡하게 서로 의존하고 있다. 지구의 이 이질적인 존재들은 우리의 친척이자, 우리의 조상이자, 우리의 일부다. 그들은 우리의 물질을 순환시키고, 우리에게 물과 양분을 준다. ‘(the other)’이 없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우리는 살아 있는 물을 통해 공생하고, 상호 작용하고, 상호 의존하던 과거와 연결된다.” (196-197)

 

마굴리스는 가이아에 대한 논의를 고유감각(proprioception)”이라는 의학적 개념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곧 몸의 상태에 대한 몸의 느낌이다. 눈을 깜박인다는 것, 주먹을 쥐고 있다는 것, 속이 불편해서 토할 것 같다는 느낌들 같은 것까지 다 고유감각이다. 지구는 인간의 의식과 같은 것이 없지만, 이러한 생리적으로 조절되는고유감각 체계(proprioceptive system)를 갖고 있다. 제임스 러블록은 이 행성의 조절 체계가 지구의 생명을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했다. 1970년대 초 어느날 그는 이 지구 대기의 화학적 이상을 감지하여 항상성을 유지하는 경향을 보이는 인공두뇌 시스템의 작명을 파리대왕의 저자인 윌리엄 골딩에게 부탁한다. 그래서 탄생한 이름이 바로 가이아이다. 러블록과 마굴리스는 가이아 연구 초기부터 서로 의견 교환을 하면서 그것의 개념적 내실을 다져왔다. 가이아는 서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활동하는 천만 종 이상의 생물들, 그들이 살고 있는 지구, 에너지원인 태양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출현(창발)한 전 행성적 체계이다(210-211). 그것은 끊임없이 새 환경과 새 생물을 만들어내는 조절이 이루어지는 행성 표면을 가리킨다(212).

 

가이아 이론은 과학적인, 더 구체적으로는 지구생리학적인 가설로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지구의 생명 집합으로 이루어진 살아 있는 몸의 속성들을 보여준다”(218). 그러나 리처드 도킨스나 J. Kirchner 같은 이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가이아 이론에 대해 비판적이다. 러블록과 마굴리스는 생명 전체가 자신이 이용하는 환경을 최적화한다(optimize)애초의 개념화에 내재되어 있던 목적론적뉘앙스를 제거하면서, 가이아 개념 자체의 정당성을 끝까지 고수한다(203, 219-220). 왜냐하면 생물의 다면적 역할을 고려하지 않고는 지구의 기온과 대기의 구성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의 일관된 입장에는 가이아 이론이 유용한 과학이라는 인식이 놓여 있다.

 

마굴리스는 도킨스 같은 과학자들의 비판보다는 가이아 개념이 대중화되면서 생긴 비과학적 활용에 대해 더욱 비판적이다. 곧 가이아를 신통기의 서술대로 대지의 여신같은 어떤 개체적 생명체로 인식을 한다든가, 이러한 인격화에 기반하여 지구를 강간의 위험에 노출된 여성으로 비유하는 페미니스트 담론에 내재되어 있는 왜곡 가능성을 경계한다(211). 종교, 언론 등에 의해 조장되는 이러한 대중적 곡해에 반대하면서, 마굴리스는 가이아가 인간에게 악의를 드러내지도 인간을 따로 돌보지도 않으며, ”기온, 산성-알칼리성, 기체 조성 조절 같은 지구 규모의 현상의 약칭일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다(212).

 

4. 홀로바이온트의 함께-세계 만들기와 가이아의 두꺼운 현재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순전히 해러웨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해러웨이는 반려종 선언트러블과 함께 하기의 여러 곳에서 자신이 마굴리스로부터 강하게 영향받았음을 명시적으로 밝힌다. “울프와의 대담”(324-5)에서는 자신의 이론적 입장을 구성하는 여러 갈래들로 1) 하이데거-아감벤의 생명정치, 2) 푸코의 생명정치, 3) 페미니즘, 4) 마굴리스로부터 영향받은 시스템에 관한 생물학적 사유를 지목하는데, 이 중 마굴리스의 영향이 가장 두터운 갈래라고 말한다. 트러블과 함께 하기는 마굴리스의 공생발생(symbiogenesis) 개념을 공동제작(sympoiesis, -)” 또는 함께-세계 만들기(worlding-with)”, 그리고 하나도 아니고 개체도 아닌 채로 서로 얽혀 있는 실체를 홀로바이온트로 변용한다(61-63, 107-114). 또 해러웨이는 르 귄, 라투르, 스탕제르 등의 논의를 조합하여 마굴리스가 고안하고자 했던 가이아의 비의인화된 형상의 모습을 툴루세와 카밀 이야기를 통해 재현하고자 한다(73-81).


<세포내 공생: 린 마굴리스에 대한 오마쥬> (트러블과 함께 하기』, p. 108)

 

가이아 안에서 우리는 물질대사를 하며 우리 밖에 있는 것들을 흡수하여 몸을 키우며 살다 죽는다. 그 후에는 분해되어 퇴비(compost)가 되어 우리가 죽은 후에도 살아 있는 것들의 물질대사를 통해 그들의 몸을 구성하게 된다. 따라서 나는 지금 물질대사를 하는 생명체이지만, 그렇게 지금 나를 구성하는 물질들은 과거에 나 아닌 타자를 구성하였고, 내가 죽은 후 미래에는 또 다른 타자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위의 인용구(196-197)에서 마굴리스가 이야기했던 바가 개체들이 살다 죽으면서 전체를 구성하는 가이아의 시간대, 곧 툴루세인 것인다. 이 두꺼운 현재(thick now) 안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친밀한 타자들과 부분적으로 연결되면서 살다 죽고, 분해되어 흡수되고, 자기 아닌 다른 것의 일부를 형성한다.

 

마굴리스는 인간의 오만을 질타한다


인간은 자연을 끝장낼 수 없다. 인간은 오직 스스로에게만 위협을 가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인간이 사라진 후에도 자연은 불협화음과 화음을 적절히 섞어 가면서 계속 노래부를 것이다”(226-227).

자연으로 먼저 들어간 마굴리스를 대신해 해러웨이는 그 이야기를 계속해나간다. 그리고 해러웨이는 더 많은 사람들, 반려종들, 사이보그와 함께 킨이 되어 실뜨기와 존재론적 안무를 하며 함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

 

5. 나가며

마굴리스는 미생물학자이지만, “거머리의 뇌를 연구하는 학자처럼 그 아주 작은 것에만 관심을 갖고 다른 모든 것에는 무관심한 학자가 아니다. 거머리 뇌 학자는 아주 큰 세계에 무관심하지만, 마굴리스는 자신이 알고 있는 미생물에 대한 지식을 가이아에 대한 호기심과 지식으로 확장시킨다. 그녀가 연구하는 미생물은 공간적으로 지구를 가득 채우고 있으며, 시간적으로는 인간의 역사보다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존재해온 위대한 존재, 인간보다 더 큰 세계이다. 이 작은 미생물에 대한 앎이 인간보다 더 큰 가이아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과 틀리다고 믿는 것을 분명히 구분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적 사실에 의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앎도 믿음도 바뀔 수 있지만 현재의 그것들이 기초하고 있는 탄탄한 근거들보다 더 강한 증거가 있어야만 바뀔 수 있다. 영토의 변화를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는 지도는 폐기되어야 하고 다시 그려져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린 지도에 대한 믿음보다 그 지도가 그리고자 했던 저 바깥에 있는 그대로의 실재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야 가능할 것이다. 나이들수록 그런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텐데 존경스럽다. 닮고자 노력하고, 그 노력이 결실을 거둘 수 있으려면 인간-비인간 타자에 대한 관심, 그들과의 부분적 연결, 타자에 대한 진정한 존중과 그의 호의를 통해 서로가 상대방에게 소중한 타자가 되는 과정이 필수적이다. 학자로서의 야심과 인간으로서의 겸손함을 같이 갖는다는 것은 대단한 미덕인데, 마굴리스도 해러웨이도 이 둘 모두를 갖춘 훌륭한 여성, 존경스러운 지식인이다.

 

: 번역

전반적으로 잘 읽히는 번역이다. 딱 한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읽다가 글의 맥락이 이상해서 원서를 확인해보고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77쪽 마지막 줄부터 787행까지의 부분(공생 발생은 러시아의 ~ 특성들을 많이 잃었다)703행과 4행 사이에 있어야 하는 부분인데, 엉뚱한 곳에 번역이 되어 있다. 원래 영어 책의 43쪽에 나오는 부분인데, 3장의 첫째 문단 다음에 이어져야 하는 부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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