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데이터의 충격 - 거대한 데이터의 파도가 사업 전략을 바꾼다!
시로타 마코토 지음, 김성재 옮김, 한석주 감수 / 한빛미디어 / 2013년 1월
평점 :
절판




예전에는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나 관심의 대상이었던 IT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이미 너무도 깊숙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IT가 무슨 약자인지 모르더라도 이미 우리의 일상은 IT와 깊은 연계가 되어있고, IT 없이는 단 하루도 평온하게(!) 살아갈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휴대폰과 며칠 동안 떨어져 있는 것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이혼할 때 받는 스트레스와 비할 정도라고 합니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루 동안 이메일을 체크하지 못하는 것이 배우자와 이별하였을 때 받는 정도의 스트레스라고도 하네요. "테크노 의존증"이라고 알려진 강박증상은 전자기기를 손에서 뗄 수 없으며 정상적인 대인관계조차 불가능한, 이른바 "디지털 치매"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IT는 Information Technology의 약자로 문자 그래도 해석한다면 "정보 기술"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폭넓게 사용되는 동시에 컴퓨터 등을 이용한 통신 체계를 일컫는 말로 쓰입니다. IT가 우리 생활에 보다 깊숙히 침투하게 된 것은 뭐니뭐니해도 스마트폰을 통해서였는데요, 역사상 최고의 천재 중 하나로 불리우는 스티브 잡스가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컴맹조차 탈출하기 힘들었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통해 수많은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IT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하면서, 이제 소위 좀 "안다"는 사람들은 전문가 못지 않은 지식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의 보급과 발전으로 인해 보다 많은 정보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 있게 되었고, 윈도우 창의 검색 기능조차 사용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포털 사이트에서의 검색은 자유자재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Web 2.0의 등장 이후 가장 획기적인 한 걸음이 바로 IT의 일반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전문분야"로 분류되어 마치 전기공학처럼 일반인은 쉽게 접근하지 못했던 한 분야가 대중에게 급속도로 친근해진 것은 물론, 많은 관심 가운데 발전을 거듭하게 된 것 말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처음 이 책의 표지를 보았을 때부터 '이 책은 꼭 읽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제 전문분야도 아닐뿐더러, 가지고 있는 지식이 너무나도 적었고 게다가 읽는다 하더라도 제대로 이해할 가능성도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많은 고충(?)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의 희박한 기초지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들도 많았고, 뭔가 대단한 연구결과를 접하면서도 곧장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책을 많은 분들에게 소개하며 적극 추천하고 싶은 것은, 이제는 IT 관련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이 분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한 경쟁력이며, 어쩌면 피해갈 수 없는 중요한 관문일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새롭게 급부상하는 IT산업이 한 치 앞을 모르게 진화해나가는 직업군에 대한 답변일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서 소개합니다. 시로타 마코토 씨의 "빅 데이터의 충격" 입니다.



지금의 핫 키워드는 빅 데이터다

특별히 민감하게 IT에 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듣게 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그야말로 그 때의 대중적인 IT 산업을 대변하는 "핫 키워드"들인데요, IT지식과는 거리가 먼 저 역시도 클라우드 기술,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SNS), 바이럴 마케팅 등은 이미 친숙하게 들어왔습니다. 그것이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대충 경험상 이러이러한 내용일 것이다라고 유추할 수 있을 정도의 친숙함이었죠.
하지만 요즘 들어 부쩍 들리는 키워드는 다름 아닌 "빅 데이터"입니다. 아니 빅 데이터는 뭐고, 그럼 스몰 데이터도 있다는 건지, 말만 들어서는 어떤 개념인지 잘 알 수 없는 "빅 데이터".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수 많은 기업들 (대표적으로 페이스북과 트위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아마존이나 이베이 등) 이 바로 이 "빅 데이터"에게 그야말로 뜨거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분명 지금을 대변할만한 "핫 키워드"임에는 분명한 것 같습니다. 시로타 씨의 책은 바로 이 "빅 데이터"에 관한 책입니다.

"대용량 데이터를 분석해 가치 있는 통찰과 지식을 얻고자 하는 노력을 '빅 데이터'라고 부르며, 현재 IT 업계를 넘어 신문과 TV 뉴스 채널에 특집이 편성될 정도로 큰 물결이 되어 주목받고 있다." (서문 중)




"어째서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무료 서비스일까?", 그리고 더 나아가서 "모든 것이 무료임에도 어째서 이 기업들이 어마어마한 매출을 올리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던 여러분이라면 이 책에서 보다 충격적이고 대단한 진실을 만나게 될지 모릅니다. 월간 실사용자가 무려 10억명에 육박한다는 페이스북은 매일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축적됨과 동시에 가장 발달한 기술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의 모든 것을 보고(watching) 있는 빅브라더가 등장한 셈입니다. 우리의 예상과 달라진 것은, 빅브라더가 우리를 보고 있다기 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빅브라더에게 우리의 정보를 전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이 빅브라더가 가진 엄청난 능력이자 재력이 바로 "빅 데이터"입니다. 전 세계에 퍼져있는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올리는 포스팅과 사진, 비디오, 링크 등이 모여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데이터베이스를 축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이 "빅 데이터"가 단순히 어느 지방에서 어느 제품이 인기가 있는지 등의 일차원적 분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복잡한 구조로 가공되어 소비자의 쇼핑 패턴은 물론 구매 의지와 생활 패턴까지 파악할 수 있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미 많은 기업들이 이 기술을 도입하여 회사의 성장과 매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시로타 씨는 구체적인 기업과 그 전략 기술에 대해 소개하면서, 어떤 식으로 어떤 정보가 가공되고 있는지를 분석합니다. 또한 지금보다 빠른 시일 안에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에 대한 향후 가능성도 예측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ARS 혹은 전화상담사가 일일히 고객에게 전화하여 그 의견을 물어보고 답변을 기다려야 했다면, 이제는 패턴 분석을 통해 자동화된 프로그램으로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분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더이상 소비자의 짜증난 거부도, 성의없거나 거짓된 답변도,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뎌가며 일하는 직원들도 필요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3년 전 "클라우드"가 비즈니스에 엄청난 혁신을 가져왔다면, 이제는 "빅 데이터"가 새로운 혁신을 이어가고 있는 셈입니다.


빅 데이터의 활용 - 우리는 어떻게 간파되는가?

"분석과 관계 없이 실시간으로 발생하는 많은 데이터를 감시함으로써 '이상 값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목적일 때도 있다. (...) 특히 빅데이터 활용에서 기대하는 것은 (...) 대량의 데이터 속에서 어떠한 '패턴'을 발견하는 것이다." (147 페이지)

소비자의 구매 내역이나 방문 횟수, 방문 경로와 패턴, 혹은 소비자가 자발적으로 올린 짧고 긴 글에서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는 것. 이것이 빅 데이터가 추구하는 최종 목적입니다. 이것을 위해서는 1) 어떻게 정보를 수집하는가? 2) 어떤 정보를 수집하는가? 3) 수집한 정보를 어떻게 분석하는가? 4) 분석된 정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가 최대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빅 데이터는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예전부터 축적되어 왔고, 데이터베이스가 대단한 경쟁력이라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지금, "빅 데이터"에 대한 관심이 급부상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세번째 관건 "수집한 정보를 어떻게 분석하는가"에 대한 솔루션이 이루어져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하둡의 큰 장점은 지금까지 비용, 처리 시간 면에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많은 양의 비구조화 데이터 처리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 기업의 데이터 분석가나 마케터는 지금까지의 표본 데이터에 의존하던 분석에서 벗어나 연관된 모든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게 된다." (49 페이지)





'저희 제품을 구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래의 질문에 대답해주십시오. 저희 제품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점과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점은 무엇입니까?'
예전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동봉된 "고객의 소리" 카드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 급한 현대인들 중 시간을 내서 진심으로 제품에 장단점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것을 논리정연하게 정리해 회사로 다시 보낼 만큼의 여유를 가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행여나 어떤 의견이 도착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말 100% 진실인지는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수많은 변수를 통해 고객이 정직하게 응답하지 않았거나, 다른 업체에서 의도적으로 의견을 조작하여 보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하둡(Hadoop)의 등장과 사용으로 이 체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둡은 '대량의 자료를 처리할 수 있는 큰 컴퓨터 클러스터에서 동장하는 분산 응용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자유 자바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로 이미 수 많은 데이터 분석 기업들이 하둡을 기반으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위키백과). 즉, 쉽게 설명하자면 지금까지는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모은다한들 그것을 분석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없었는데, 하둡의 등장으로 회사가 원하는 정보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이 생겼으며, 그것을 사용하는 것에 따라 고객이 회사에게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 정보까지 가공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하여, 예전에는 "이 상품이 마음에 드십니까?"라는 대답에 "예"라고 대답해야 컴퓨터가 인식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이제는 어떠한 제품을 구매한 뒤 자신에 트위터에 "오 이 제품, 대박인데?" 라고 올린다면 그것이 그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로 분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5~6년 전, 외국의 가장 큰 온라인 쇼핑 사이트 "아마존"에서 자신의 "찜 리스트"를 다른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 있게 되어 일부 소비자들이 이것은 엄청난 개인정보침해라며 적극대항한 일이 있었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아마존의 방침이 변경되어 자신이 "찜 리스트"에 올려놓은 제품들을 제3자가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게 된 일이었죠 (공개를 원치 않는다면 직접 계정설정에 들어가 일일히 '비공개'로 바꾸어야만 했습니다). 당시 아마존을 애용하는 고객이었던 저는, 저의 "찜 리스트"가 공개된 것이 탐탁치는 않았지만, 이것이 왜 구체적으로 저렇게 화를 내고 싸워야만 하는 일인지 잘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뭐 내가 갖고 싶은 것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라는 생각이었는데요, 이러한 아마존의 개인정보취급방침에 격한 반발을 보인 것은 지인들 몰래 이런 저런 "포르노 비디오"들을 찜 목록에 추가한 사람들 뿐이 아니었습니다.




빅 데이터의 축적과 함께 가장 위협받게 되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개인정보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시급하게 알아가야 할 "빅 데이터의 충격"일지도 모릅니다. 고객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아내는 것은 기업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하고도 중요한 정보일 것입니다. 그것이 단 한 사람일 경우에는 그닥 중요하게 보이지 않아도 몇 천, 몇 만, 몇십만의 취향이라면 전혀 이야기가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페이스북이 그토록 우리가 "좋아하는(like)" 것에 집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페이스북에게 있어서는 심지어 몇 억 유저의 취향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이프 로그 활용 서비스는 그 양상에 따라서 사생활을 침해하고, 사용자의 불안감 등을 일으킬 수 있다. (...) 따라서 라이프 로그를 취득/보존/이용하는 사업자는 (...) 라이프 로그를 취급하는 데 일정한 배려가 필요하다." (184 페이지)




약 2년 전, 페이스북의 게시물을 근거로 한 이혼 판결이 내려짐으로써 보다 객관적이고도 명확한 "SNS의 사생활 관여"의 예가 공표된 듯 합니다. 또한 SNS의 특성과 그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유저들의 당황스러운 사건들도 뒤를 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오늘부터 1주일간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다~ 아이 신나라"라고 올렸다가 예전에 집 위치를 공개한 것을 근거로 빈집털이가 모조리 털어갔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미국에서는 심지어 아이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개하였다가 아이가 납치되는 사건까지 벌어졌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건들 역시 심각하지만, 그것보다 심각한 것은 아직도 수 천만, 수 억명의 사람들이 이러한 "무지의 위험성"에 노출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으로 "빅 데이터"는 우리의 이런 정보를 분석함으로써 엄청난 경쟁력을 얻습니다. 위의 예처럼 우리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정보"들을 어떻게 자신들에게 필요한 정보로 만드는지가 그 관건입니다. 사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계정을 삭제하고 안 하면 그만이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나의 정보가 "원치 않게" 기업에 도달하는 길은 다양합니다. 어떤 휴대폰을 사용하며 어떤 서비스를 주로 이용하는지, 인터넷 쇼핑몰에서 어떤 상품을 보았으며 어떤 상품을 구매하였는지, 신용카드 내역을 통해 어디서 어떤 음식을 자주 먹었으며 어느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지... 일일히 나열하기에는 끝이 없을 정도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우리에 대한 많은 정보를 "스스로" 노출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에 동의하지 않아 이 모든 노출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신분을 버리고 산 속에라도 들어가야 할 상황입니다. 바로 여기에 "빅 데이터"의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은 유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속하여 쉬지 않고 모든 정보를 수집해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빅 데이터"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 수록 기업들은 이 엄청난 양의 데이터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를 훌륭하게 가공하여 수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떠오르는 핫 잡 (Hot Job), 데이터 과학자

명문대를 나왔어도 대기업에 입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든 요즘, 세계 각국의 대기업들이 눈이 빠지게 찾고 있는 인재가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야말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엄청난 경제력을 보장하는 직업 말입니다.

"'현재 우리는 인재를 모집 중이다. 이베이보다 10% 높은 연봉을 지급하겠다.'
2011년 11월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하둡 월드' 콘퍼런스의 기조연설에서 JP 모건 체이스의 경영 책임자인 래리 파인스미스가 한 말이다. JP 모건 체이스가 다른 회사보다 높은 연봉을 제시해서라도 구하고 싶은 인재란 바로 '하둡'을 사용할 수 있는 엔지니어다." (46 페이지)




10년 단위로 세상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습니다. 더이상 기성 세대가 우리에게 대단한 조언을 해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무능력하거나 경험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 자체가 너무나도 빨리 진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마케팅이나 기업 경영에 있어 10년 전의 방식은 더이상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소용돌이 가운데 전세계적인 기업들이 찾고 있는 새로운 인재가 바로 "데이터 과학자"입니다. 이 생소한 직업을 시로타 씨는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데이터 과학자란 통계 해석, 기계학습, 분산처리 기술 등을 이용해 대량의 데이터로부터 비즈니스에 의미 있는 통찰을 끌어내고 의사결정자에게 알기 쉽게 전달하거나 데이터를 이용한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재다." (239 페이지)

아직까지 그 개념이 생소한만큼 "데이터 과학자"의 수요는 공급양을 훨씬 윗돌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이러한 IT산업의 흐름을 읽고 몇몇 대학원에 해당 학과가 설립되어 정기적으로 인재를 배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데이터 과학자의 수요는 공급의 약 2배 이상을 윗돌고 있다고 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저 제대로 공부를 마치기만 하면 취업이 보장된 "황금 직업"이 바로 "데이터 과학자"라는 말입니다.

이제 어떤 기업도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혁신적인 성장을 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세계 경제의 흐름 역시 아무리 수 많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그 미래를 점쳐보고 분석해보아도 점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세계가 너무 가까워진 만큼 더욱 파악하고 예상하기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대기업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데이터 과학자"들을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이죠. 미래를 예상하고 앞으로의 방향을 도모하는 정답이 다름아닌 "빅 데이터" 속에 있을 거라는 신념은 "데이터 과학자"들의 가치를 더욱 더 높이고 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양의 데이터에서 원하는 정보를 가공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미래의 획기적인 - 혹은 유일한 - 기업 경영의 열쇠라는 것에는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지고 있는 지식이 너무도 얄팍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혁신적인 최신 기술의 가능성 범위가 머릿속에서 전혀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이것 저것 찾아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이해 가능한 범위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약간의 좌절(?)도 느껴지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꾸준히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비록 중간에 이해할 수 없는 화성어로 기술에 대해 설명했다고 하더라도, 시로타 씨가 친절하게 "일반적인 민간인"도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한 예와 함께 설명하기 때문에 조금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다 보면 다시 궤도로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이런 서적들은 한번 놓치기 시작하면 영영 다시 돌아오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만, 우리에게 친숙한 기업들의 전략과 빅 데이터 사용의 구체적인 예, 그리고 빅 데이터 분석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굳이 IT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돕습니다. 또한 기술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우리의 생활과 직접 연결되는 개인정보 혹은 사생활 문제에 대한 언급 역시 끝까지 관심을 가지고 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상세한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결코 복잡하지만은 않은 것이 "빅 데이터의 충격"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의 의도는 다양할 것 같습니다. 단지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특별한 관심이 있어서, 혁신적인 비즈니스 전략을 위해서 아니면 IT 종사자이므로 혹은 순수한 궁금증으로 이 책을 펼치고 읽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확신하는 것은, 이 책이 이 모든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핫 키워드"인 "빅 데이터"에 관하여 정말 친절하고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리라는 것입니다. 비록 그 이해도와 활용도에 있어서는 읽는 사람에 따라 확연히 다를지라도 분명 입문자부터 고급사용자까지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는 책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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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부터의 혁명 - 우리 시대의 청춘과 사랑, 죽음을 엮어가는 인문학 지도
정지우.이우정 지음 / 이경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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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정말 진부한 이야기입니다만 책은 언제나 저의 스승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대학과 대학원에 다니면서 항상 새로운 멘토를 만나고, 새로운 것을 접할 때도 그랬지만, 이제 스스로의 힘으로 많은 것을 헤쳐나가야 하는 지금, 책의 존재는 저에게 있어 더욱 더 강인하고 강력한 것이 되었습니다. 책을 읽음으로 새로운 세계를 접하고,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며,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했던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할 수 있게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을 수용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죠.

작년 한 해 동안 마음먹고 여러 분야의 책들을 가리지 않고 읽으려 노력했습니다. 한가지 방향을 고집하지 않은 덕분에 조금 더 폭넓게 많은 책들을 만날 수 있었고요. 거의 모든 책들이 저에게 새로운 것을 알려주었고, 그 중 많은 책들을 감명깊게 읽었지만 유독 마음 속에 남는 책이 몇 권 있습니다. 그리고 그 중 한 권이 바로 정지우 작가의 "청춘인문학"입니다. 소위 "청춘들의 멘토"로써 쓰디쓴 말이나 달콤한 말을 무책임하게 남용하는 일이 빈번한 요즘 정지우 작가의 뼈아픈 조언은 어떠한 "깨달음"을 주었다기 보다는, 처음으로 그것에 대해서 골똘이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선물해준 것 같습니다. 미사어구로 아름답게 포장하여 희망을 가지고 도전하게 하고, 그것이 실패할 때에는 정작 도울 방법을 모르는 책임감없는 멘토링이 아니라, 스스로가 그 과정과 답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독 이 책은 천천히 그리고 오래 다시 읽게 되었고, 읽은 후에도 많은 영향을 받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런 정지우 작가의 신간이 출시되었다는 소식은 무엇보다 반갑고, 궁금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그 혼자가 아니라 공동저자 이우정씨와 함께 집필했다고 하니 더욱 더 어떤 내용인지 알고싶어지더군요. 그런 궁금증과 기대가 컸던 만큼 그의 새 책 "삶으로부터의 혁명"을 받아든 순간 더욱 설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폭풍같은 침묵의 시간을 가지게 해 준 이 책을 여러분에게도 소개할까 합니다. "현대"라는 특수상황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수 많은 세월을 연구하며 통찰해온 작가가 던지는 두번째 뼈아픈 이야기 말입니다.





눈 먼 자들에게 이끌리는 현대

이 책은 '청춘인문학'의 후속작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청춘인문학'에서 등장했던 개념들이 상당 부분 재출연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반복 혹은 중복의 느낌보다는, 마치 '청춘인문학'을 읽음으로써 익숙해진 개념들을 조금 더 확장시켜 사유하는 것에 가까울 것입니다. 이미 저자는 '청춘인문학'에서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과 그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줄 수 없는 사회에 대해 비판하고 개선방안에 대해 심도깊은 조언을 한 바 있습니다. 사실 저 역시 그 한 권의 책을 읽고 저자 정지우 씨의 팬이 되었는데, 그가 사유하는 현대의 근본적인 문제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질적인 사회적 문제"와는 그 시작을 달리할 뿐만 아니라, 특정 정당이나 운동 혹은 사회적 방향을 옹호/비판하지 않고서 이성적인 중도의 길을 택한다는 인상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자신의 이상을 주장하고 더 나은 방향을 제시할 때는 현재 산재해 있는 문제의 주원인을 찾아 비판하고 책임을 묻는 것이 보통인데, '청춘인문학'은 누군가를 "마녀"로 만들어 "사냥"한다기 보다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설정으로 들어가 구체적이고도 실질적인 방안을 찾는 것에 집중하였습니다. 자신의 특정한 목표를 위해 사람들을 선동하려 쓴 글에 지친 현대인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삶으로부터의 혁명"에서 저자는 조금 더 심화된 "현대의 갈등"으로 파고들어갑니다. "청춘인문학"이 이제 사회에 나와 새로운 인생의 장을 시작해야 하는, 하지만 분열된 정체성 속에 갈 길을 잃고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청춘들을 위한 책이었다면, "삶으로부터의 혁명"은 청춘 뿐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매일 무의식중에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참담한 방황에 대한 성찰입니다. 그 어떤 시대보다도 많은 책이 출간되고 많은 강연회가 개최되며, 많은 멘토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 때가 공교롭게도 가장 혼란스러운 방황의 시대라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근래에 문자 그래도 "쏟아져나오는" 청춘의 멘토들에 대해 일침을 날립니다. 이른바 "열정 멘토"와 "체제 비판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어느새 공공연한 청춘에 대한 담론은 이 양자의 뚜렷한 대립구도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 청춘은 주로 이 따뜻한 목소리와 치열한 외침 가운데에서 흔들리며 청춘 시절을 보낸다. 이 두 가지의 이야기는 반복적으로 청춘에게 되풀이 되고 있으며, 계속해서 재생산되며 고유의 영역을 만들어가고있다." (29 페이지)
"그러나 진정한 인간 삶, 인생, 인생관에 대한 대답은 스님의 에세이나, 성공한 사업가의 자기 계발서보다는, 진지하고 합리적인 성찰을 하는 인문학에 있어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인문학 그 자체이다." (362 페이지)




100명이 있다면 그 100명의 인생이 모두 다른 것이 기정 사실인데, 현대는 오직 하나의 "성공 모델"을 지향하고, 그 범주 안에 들지 못하는 이들을 "낙오자"로 심판합니다. 이러한 현대의 "성공 모델"은 너무나도 획일화 되어있어서 조금이라도 다른 삶을 지향하는 것 자체를 "쓸데없는 짓"으로 규정하곤 합니다. 몇십만명 중에서 단 한 사람이 그러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면, 그 사실만으로도 자신 역시 그러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맹신을 부추기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현대는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닌 "사회가 말하는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정의라고 판단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이 세대 모든 이들의 소망이 된 '행복해지고 싶다'는 염원은 그처럼 거의 동일한 형태의 이미지를 갈망하는 것이다." (46 페이지)

예전에만 해도 어린아이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의사, 대통령, 경찰관, 우주비행사, 심지어는 동네 생선가게 아저씨와 꽃집 아주머니가 장래희망인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요? 아이들에게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가 물어보면 상당히 획일화 되어있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조금만 커도 벌써 "현실에서 멋지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어댑트(adapt)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것은 단지 어린아이들의 장래희망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데 있어 들이대는 잣대 역시 획일화되어있습니다. 꾸준히 공부하여 명문대를 진학하였고 고시에 합격하였다면 성공한 인생이지만 중학교를 자퇴하고 차고에 틀어박혀 밤낮 무언가를 발명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백수" 혹은 "잉여" 취급을 면할 수 없으니까요.




매 달 수 백, 수 천권씩 쏟아져나오는 자기계발서들 역시 같은 맥락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어떻게 하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기업에 입사할 것인가? 억대 연봉을 벌 수 있을 것인가? 40대에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여 성공할 것인가 등 자기계발서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역시 그 기저에 "현실에서 인정하는, 현실에서 말하는 성공"이 기본적인 조건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 사람들은 10대에도, 20대에도, 30대에도, 그리고 40대, 50대, 60대까지 "미쳐"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자는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를 지적합니다. 현대인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삶을 살고 있고,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진 몰라도 "현실"과 "삶"은 엄연히 다른 것이고, 이 두 가지의 개념의 혼동으로 인해 주체적인 삶의 길이 막혀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은 자기의 관점에서, 자기 삶의 입장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전체 현실'의 관점에서 강요받는 인생 형대이다. 여기에는 과연 나의 진정한 관심과 취향과 취미는 무엇인지, 내가 어떤 상태에서 가장 만족할 수 있는지, 나와 가장 어울리는 삶이란 무엇인지와 같은 질문은 빠져있다(...) 즉, 현실적 성공을 이루게 되면 '모든 것'이 만족되고 행복해질 것이라고 당연한 듯이 말해지는 것이다." (38 페이지)




현실의 이미지와 자신의 삶이 동일시되면서 "삶"이라는 것은 그 의미를 잃게 되었습니다. 개개인의 삶은 어떤 획일화된 기준에 따라 판단되고, 사람들은 일부 소수만 누릴 수 있는 이러한 이미지를 향해 너나할 것 없이 달려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낸" 일부 사람들의 성공담은 우리에게 다시한번 도전의 희망이 되거나 더 큰 좌절의 빌미가 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것이 불행하거나 성취되지 못한 삶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미 우리나라가 세계 자살 1위 국가라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서부터 황혼에 접어는 노인들까지 자살하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삶이 사멸된 오늘,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리고 있습니다.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의 손으로 스스로의 삶을 마감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악순환 속에 갇혀진 현대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그것의 원인과 해결방안을 모색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놀랍게도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를 억압하고 분열시키는 현실의 실체 말입니다.

"현실은 바깥에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라기보다는, 주로 우리가 내면에서 우리 자신과 관계 맺는 방식과 더 관련되어 있다. 우리는 언제나 '현실보다 더 큰 현실'을 두려움으로 가지고 있다." (57 페이지)





기독교 근본주의에 대한 비판

정지우 씨의 현대비판에 있어 하나의 큰 쟁점이 되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근본주의입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옳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작가답게 그는 우리나라의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들을 근거로 직격탄을 날립니다. 문득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출판사측에서 "특정종교를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되어있으니 참고해달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나네요. 현대사회의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맹점에 대한 담론에서 저자는 독단과 "강요받는 인생"이 좌절과 실패의 주원인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기독교의 근본주의 (이것이 옳은 것이다) 는 확실히 포용하는 사회에서 큰 장애물로 비춰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한발짝 물러나 생각해보면 상황은 조금 다릅니다. 국적이나 인종, 직업에 대해서 격차를 두거나 차별하는 것은 어떤 관점에서도 올바르지 못한 것입니다. 미국인이 맞고 영국인이 틀린 것이 아니며, 소방관보다 경찰관이 우월한 것이 아니듯 사실 이러한 구분에 있어서는 전혀 옳고 그름의 잣대가 적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인종이며,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고, 다른 나라 사람입니다.
하지만 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애초의 종교의 목적 자체는 이 세상의 차원을 초월한 구원 혹은 해탈에 있습니다. 결국 종교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어떤 "신념"이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기초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나는 기독교이지만 다른 종교도 다 옳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의 의미가 상실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종교는 단순한 취미활동이 아니라 어떠한 사상을 믿고 의지하며 그것이 옳다고 인정하는 것인데, 단지 자신의 종교에 대한 신뢰와 유일성을 근거로 우리나라의 종교 문화가 후진국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59 페이지) 라고 주장한다는 것은 조금은 섣부른 판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천주교의 (심지어는 이슬람교까지) 경계가 모호해지며 서로 어우르고 이해하자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독일의 경우, 종교적인 벽을 허물자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까지도 대단한 인종차별주의자인 경우가 있으며, 네오나치운동을 옹호하기도 합니다. 결국 "유일신"을 주장한 신 때문에 나 자신이 옳다라고 현대인이 생각하게 되었다고 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있지 않은가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독단에 빠진 사람들은 그것이 신이건 종교건 국적이건간에 그 독단을 삶의 어느 부분에나 적용하려 하기 때문이죠.

저자가 지적한 우리나라 기독교의 더 큰 문제는 근본주의가 아닌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행동입니다. 명동 일대에 갈 일이 생기면 단 한번도 시끄럽게 포효(!)하는 "전도자"들을 보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비기독교인은 물론 기독교인들까지도 눈살을 찌뿌리고 진심으로 불편할 수 밖에 없는 광경입니다. 또 다른 예는, 우리나라에 기승을 부리고 있는 대부분의 사이비 단체가 성경을 교묘하게 바꾼 교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가장 친숙한 이야기를 사용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접근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크고 작은 사이비 단체들에게 남용되고 있는 성경으로 인해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배척하고 있는 단체들의 행위가 고스란히 기독교의 소관 혹은 책임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대중은 "아, 이것은 기독교의 이름을 빌리고는 있지만 확실히 기독교의 소행은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고 말해줄만큼 관대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원인을 사회나 환경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나 자신, 즉 내 안에서 찾고 해결하기를 힘쓰자고 권면하던 저자가 갑자기 "신이 문제" (308쪽) 라고 신에게 일방적인 책임을 묻는 것에 의아했습니다. 부패한 정권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도 아닌 자신의 안에서 삶을 되찾아야 한다고 하면서 '신'이 "실제로 근대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서로간의 학살과 생태계의 무차별적인 파괴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근거가 되었"으므로 "신을 버려야 한다"(319 페이지)라는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럽지 않나 생각됩니다.

하지만 저자가 일방적으로 종교가 나쁜 것이며 그곳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3부 마지막에서 그는 종교로 인한 지금까지의 사건들이 종교 자체가 아닌 그것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방법에 있었다고 마무리합니다.

"이는 우리가 거부해야할 것이 종교 자체라기보다는 '기존의 종교적 태도'라는 것이다. 계속 말해왔던 바,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호명 받아 자기의 감정을 절대시하는 맹목성이고, 자기 자신을 외적인 것(코드나 대지의 여신)으로 계속해서 집어 던지는 초월성이다." (324 페이지)






우리가 살아야 할 것은 현실이 아니라 삶이다

"다만 여기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반드시 '하나의 현실'에 완전히 포박되어, 그것에 의해 지배당하고, 그것으로 규정 당하고, 그로 인해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것만이 운명적으로 정해져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69 페이지)

"청춘인문학"을 너무도 감명깊게 읽었던 독자로써, 이번 "삶으로부터의 혁명"을 손에 쥔 그 순간부터 저의 기대는 대단했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에서 깊은 고찰과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자를 사로잡는 정지우 작가의 신간이니만큼 "청춘인문학"의 뒤를 이을 그의 작품이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들었던 생각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이 책은 홍수처럼 내 안에 들어와 폭풍같이 불어 그간의 쌓아두었던 것들을 해체시킨 뒤, 전보다 더 많은 생각할 과제를 내게 주었다."

"청춘인문학"을 읽은 뒤 처음으로 읽은 책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민하고 그야말로 사유하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책의 내용에 감명을 받고 끝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러한가, 지금의 나는 어떤가, 나에게 그것이 끼치는 영향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자기계발서를 읽고 실천해야겠다는 막연한 다짐이 아닌, 지금까지 믿어왔던 것에 대해 처음부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삶으로부터의 혁명"은 제게 더 큰 문제를 안겨주었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참동안 저를 바쁘게할 문제를요. 시대와 사회의 영향을 받지 않을래야 받을 수 밖에 없는 한 사람의 현대인으로써, 정직하다고 생각했던 저 자신조차도 참 많은 분열 속에 갈팡질팡하고 있었던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애초부터 분열된 자아 가운데 무언가 조화로운 설정을 기대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던 것이죠. 이렇게 글로 쓰고 나니 무언가 대단하고 드라마틱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사실은 그것보다 단순하면서도 명료합니다. 다소 진부한 말로 표현하자면 "나 자신이 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흥미로웠던 것은 저자가 어떤 체제를 비판하므로 다른 체제를 옹호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열혈 멘토들의 "무작정" 이론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체제 비판자"들의 책임전가 역시 용납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정해둔 압력 사회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본능과 낭만에 충실한 뉴에이지 역시 비판합니다. "그러면 어떡하라고!" 궁금해지는 그 무렵, 저자의 성찰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가 말하는 "나"와 내 "삶"을 찾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타자의 시선에서 벗어나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사실 인간은 혼자가 아닌 사회적 욕구를 가진, 사회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은 과학적 근거를 넘어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비관론에 사로잡혀 "어차피 인류는 악하고 추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면 이것이 더더욱 하나의 희망의 빛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적 획일화가 나와 다른 모든 것을 배척하고 적대시하는 집단이기주의로까지 발전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이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는 "공공의 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째서 우리가 여기에 왔고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고찰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제스처들이 하나하나 모여 사회적 이해가 바탕이 될 때, 치우칠만큼 치우쳐 극으로 달려가는 현대의 끝에서 방향을 바꾸어볼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요.

정지우 씨 혼자 집필한 "청춘인문학"과는 달리 이번 "삶으로부터의 혁명"은 한 명의 공저자, 이우정 씨가 있습니다. 이들은 흔히 나누어 쓰는 공저와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문장을 함께 작성하고, 생각하고, 퇴고했음을 저자의 말에서 밝힙니다. 이 책 전반에서 말하는 (타자가 아닌) 타인의 중요성을 그야말로 집필 과정에서부터 온전히 실천한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지 않은 논제를 가지고 서로 다른 두 저자가 의견을 모아 동의할 때까지 함께 사유하고 집필했다는 것이 이 책의 깊이를 역설해주는듯 합니다.

신랄하고 시니컬하기까지 한 정지우 씨의 글은 그런 첫인상과는 달리 대단히 희망적입니다. 바로 이 점이 수많은 체제 비판자들과 그를 구분하는 큰 차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독일어 표현 중 "Besserwisser"라는 말이 있습니다. 직역하자면 "더 잘 아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하는 말마다 잘난 척 하는 사람을 비꼬아 부를 때 쓰는 표현입니다. 대부분의 체제 비판자들의 행동이 이렇습니다. 자신의 주장만이 옳고 남들은 무조건 틀렸으며,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자신만 알고 있다는 것처럼 "잘난 척"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지만 정지우 씨의 글에 있어 특별한 점은, 그가 어느 특정한 편에 서지 않고 가장 객관적이라고 생각되는 시선에서 장단점을 파악하려 노력하는 데 있습니다. 물론 그도 인간인지라 때때로 편파적인 발언이 없을 수 없겠지만, 드러내놓고 한 쪽만을 비판하는 수 많은 다른 사람들과 확연한 차이가 드러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지난 "청춘인문학"의 서평을 쓰면서, 보다 많은 청춘들에게 읽혀져야 할 책의 디자인이 너무 옛스러운 것 아니냐(?)는 안타까움을 표현했었습니다. 이번 "삶으로부터의 혁명"은 훨씬 시선을 끄는 표지와 디자인으로 출간되어 뿌듯하기까지 했는데요, 고뇌하는 청춘은 물론 딜레마에 빠진 모든 세대들이 이 책을 읽고 저와 같은 생각할 과제를 얻어가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자신의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나는 과연 다른 사람이 아닌 나, 내 자신이 만족할 삶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질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결국 "삶으로부터의 혁명"은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유"로 귀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지금 우리들에게,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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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서울을 걷다
권기봉 지음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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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오스트리아에 살던 어린 시절, 공연으로 비엔나 외각의 작은 도시 Krems에 가게 되었습니다. 빈에 산지는 어느정도 되었지만, 한번도 차를 타고 밖으로 나갔던 적이 없었던지라 참 많이 설렜던 기억이 납니다. 기대가 가득했던 이유는 하나 더 있었는데, 그 당시 제가 가장 좋아하던 작곡가 루드비히 반 베토벤의 생가가 있었기 때문이죠. 가장 위대한 작곡가, 하지만 평생을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지내야 했던 그가 병약해져 인생의 마지막 가을을 보냈던 도시 크렘즈를 방문할 생각에 전날 잠을 설칠 정도였답니다. 그리고 드디어 크렘즈에 도착. 지금 돌이켜보면 공연이나 그 후 행사에 대해서는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답니다. 단지 이 작고 사랑스러운 도시의 좁은 길목을 걸으면서, 어쩌면 몇 백년 전 베토벤도 이 거리를 걸으며 악상을 떠올렸을까 궁금해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어떤 도시가 그만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지 않고, 어떤 도시가 사연이 없을까요? 도시의 크고 작음을 떠나 적고 많은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면서 도시는 세월의 흐름을 나이테처럼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나이테가 균일하고 곧을 때가 있는 반면 한없이 일그러져 고통의 흔적으로 남을 때도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그렇듯, 도시는 좋은 기억도 나쁘고 괴로웠던 기억도 품 안에 간직한 채, 그만의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도대체 "역사"란 무엇일까요? 누가 "이것이 이 도시의 역사다!"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수많은 베일과 거짓말에 가리워 정작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지극히 일부분만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가 우리가 생각하기 바라는 정보에만 의지하여 나름대로의 도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을지도요. 오늘 소개할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비록 유년시절과 20대는 대부분 비엔나에서 보냈지만,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또 지금도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이 도시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 말입니다. 
수 천년의 역사를 품은 도시 서울의 베일을 하나 하나 걷어가면서 그 새로운 모습을 만날 기대와 함께 읽기 시작한 "다시... 서울을 걷다"를 소개합니다. 


 


객관적 역사는 없다? 

이 책을 지은 권기봉씨는 서울 토박이가 아닙니다. 월악산에서 자란 그는 서울대학교에 합격하면서 서울로 상경하게 되고, 수 많은 역사의 흔적들을 간직한 이 도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실 서울로 온 98년부터 서울에 대한 글쓰기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그의 역사적 관심은 이미 이 책이 발간되기 몇십년 전부터 결실을 준비한 셈이네요. 




흔히 역사를 "사실적 측면(객관적 역사)"과 "기록된 측면(주관적 역사)"로 분류하곤 합니다. 그리고 회의론자들은 역사란 주관적인 측면만 가지고 있을 뿐 객관적으로 서술되거나 소개될 수는 없다고 단정짓곤 하죠. 저는 회의론자는 아닙니다만 어느 누구도 역사를 지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없다라는 의견에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인간의 태생적 한계인지라 우리는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잣대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저자 권기봉씨가 서울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우리에게 묻고자 하는 것도 이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 미사어구와 아름다운 포장으로 왜곡된 진실들을 되짚어가면서 어째서 그것을 올바르게 다잡는 것이 중요한지 생각하게 합니다.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않고 있다고 해서 그냥 지나쳐넘기고 있던 것들 말입니다. 

"과연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주장이며, 모순은 없는가. 일단 반민주적인 이승만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4.19를 "혁명"이라 표현한다면, 그런 민의의 결과로 탄생한 제2공화국을 뒤없은 5.16은 "군사정변"이나 "반역"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다. 반대로 5.16을 "혁명"이라 부르고 싶다면 4.19는 "폭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둘은 완전히 반대되는 성격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187-188 페이지) 

2012년 2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문을 연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 대해 저자가 설명한 글입니다. 5.16 혁명을 "민족중흥과 근대화 혁명"이라고 입구에 설명해놓은 것에 대한 비판입니다. 아직까지도 역사적 사건의 부당함을 인정하지 않고 은근슬쩍 좋은 미사어구로 아름답게 꾸며 왜곡하려는 현실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예일 것입니다. 정치적 성향이나 지지하고 있는 정당 혹은 특정 정치인과는 무관하게 잘못된 역사는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건만, 아직까지도 역사적 사실을 조금씩 다르게 포장하여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덧발라가는 행위로 인해 역사의 왜곡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자는 또한 무턱대고 네거티브 유산이라 단정한 뒤 역사를 소실시킨 안타까운 사연도 언급합니다. 바로 옛 서울시청의 철거 사건입니다. 

"사실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당시의 건물들을 철거한다고 해서 완전히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제아무리 조선총독부를 헐었다 할지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잔재들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제 때의 건물이라고 해서 옛 서울시청을 철거해버린다면 서울사를 넘어 한국사의 '1급 현장'을 한국인 스스로 지워버리는 셈이 된다. '서울의 오늘'을 있게 한 지하철 건설이나 강남 개발과 같은 굵직굵직한 역사적 결정들이 숱하게 내려진 공간이 바로 태평홀, 그리고 서울시청이기 때문이다." (124 페이지) 

어떠한 사건을 보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고, 무엇이 옳고 그르다를 판단하는 것은 난해한 일입니다. 한쪽에서는 아프고 괴로운 강점기의 흔적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할 것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저자와 같이 네거티브 유산도 유산이므로 지켜야 한다는 입장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저처럼 서울시청의 역사와 주요 사건들을 알고 있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는 저자의 비판으로 인해 비로소 관심을 가지고 함께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언론에서 이 사건에 대해 접한다고 하더라도 이렇듯 구체적으로 역사적 가치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 뿐더러 언론의 경우 대부분 중립적이기보다는 한쪽의 입장에서 보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 당파 싸움 속에서 오히려 사건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리기가 부지기수니까요.  





서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총 4부, 25개의 사연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제목이 참 마음에 와닿는 걸 느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제목 그대로 서울 시내를 "걷는"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것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것도 아닌, 좁디 좁은 골목까지 꼼꼼히 걸으면서 서울이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숨결을 찾아다니듯 저자는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서울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압구정의 땅값이 비싸고 서민들은 살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제서부터 왜 압구정 일대가 "돈 많은 동네"가 되었는지 알진 못했습니다. 잊을만 하면 다시금 터져나오는 재개발과 지역주민 사이의 첨예한 대립을 익히 들었으면서도, 재개발로 인해, 재개발을 위해 어떤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는지 구체적으로 궁금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소공동에 한때 수많은 화교들이 모여살던 "차이나타운"이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본 혹은 미국, 영국과 같은 강대국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차별당한 이야기는 알아도, 불과 50년 전 소공동의 화교들이 말못할 탄압으로 위협을 받았다는 것은 그만큼 부각되지 못했습니다. 창피한 과거는 그대로 묻어두자는 무책임함과 내 일 아니니 상관없다는 무관심 속에 묻혀진 사건들입니다. 

"서울시는 노후한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화교회관'을 지어 입주시켜준다는 말로 화교들을 회유했다. (...) 그러나 지어준다는 화교회관은 함흥차사였다. 두 달이 지나도 새 건물을 올린다는 이야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서울시와 한국 정부의 배신이었다. (...) 당장 새 가게를 내야 하는 이들도 있었기에 차선택이라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한화의 제안대로 땅을 모두 팔아버린 것인데, 이는 곧 소공동 화교 축출작전이 성공리에 완료되었음을 의미했다." (47 페이지) 



역사의 올바른 해석이 중요한 것은, 그 역사를 통해 현재의 우리들이 많은 것을 깨닫고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학살의 주범이었던 독일의 경우, 아직도 정신차리지 못하는 일부 네오나치들을 제외하곤 아주 젊은 세대들까지도 인종차별이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것인지 배우며 자라납니다. 전 세대가 인류를 상대로 저질렀던 끔찍한 범죄를 통해 그 심각성을 체험하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한국은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많은 탄압과 고통을 견뎌낸 우리 민족에 초점이 맞추어져 정작 우리 자신이 가해자였던 모습은 잊어버리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인종차별을 받았을 때의 고통은 오래 기억하지만, 또 다른 곳에서는 우리보다 힘든 사람들에게 폭력과 차별을 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공동의 화교들이 그랬고, 집없는 노숙자들과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 그리고 타지에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렇습니다. 부끄러운 역사를 직시하고 그것을 제대로 소화해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요? 저자는 역사가 왜곡되고 정당화를 위해 눈가리기를 반복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강조합니다. 

"오래되지 않은 역사조차 망각하는 순간, 학교교육에서조차 홀대하고 제외하는 순간, 나아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E. H. 카의 말을 귓전으로 흘려듣는 순간, 반동의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 (195 페이지) 

수많은 '우리들'의 이야기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보다 밀접한 관련이 있는 근현대사의 현장을 찾아 다시 서울로 나섰다. 권력자의 시각이 아닌 이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우리들'의 입장에서 다시 서울을 걸었다. (...) 얼핏 익숙한 듯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 낯설기만 한 곳을 걸으며 우리가 서울이라는 공간과 역사에 얼마나 무심한지 살펴보았다." (머리말 중, 6페이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역지사지에도 한계가 있고, 자신이 직접 처한 상황이 아니고선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뉴스 헤드라인과 인터넷에서 쏟아져나오는 '부조리함'과 '억울함' 그리고 '끔찍함' 속에 어쩌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든 것들에 귀를 닫아버리진 않았나 싶습니다. 어차피 내가 직접 당한 일도 아니고,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오는 것도 아닌데, '이번엔 내가 아니니 다행이군' 하면서 뚜껑을 덮어버린 것은 아닐까요. 그렇게 반복되는 무관심 속에 언젠가는 그 피해자가 나 자신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말입니다. 그리고 정작 내가 그 피해자가 되었을 때 다른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무너져내려가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알면서도 눈을 돌리고 알면서도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을 탓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도시, 서울. 수 천년의 역사와 수 많은 사건들을 나이테처럼 간직한 서울시에게 어두운 면이 있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도, 부끄러운 사건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서울시의 한 부분입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서울시의 어두운 면만을 부각시키며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마치 방랑자차럼 서울시 곳곳을 떠돌며 그 거리가 말해주고 있는 역사에 귀를 기울일 뿐입니다. 그 이야기가 때로는 어둡고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서울시의 한 부분으로서 인정하고 용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자처럼 서울을 "걸을 수" 있도록 마련된 서울시의 지도가 인상적입니다. 책 속에 등장했던 역사적 장소들과 이슈가 되었던 거리까지 보기 좋은 일러스트와 함께 소개되어 있는 이 지도를 들고, 날이 풀리면 저 역시 "서울을 걷고 싶다"는 마음이 드네요. 이 지도에는 이번 "다시, 서울을 걷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의 장소들도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두 권의 책을 읽고 서울에 대해 궁금해졌다면 직접 답사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지구의 지극히 작은 일부분 대한민국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중에 정말 작은 한 부분인 자신의 존재가 너무도 힘없고 무의미하게 느껴져 "내가 이렇게 해봤자 뭐가 달라지지"라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작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서울이 되고, 대한민국이 되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볼 때입니다. 지나온 역사를 소중히 생각하고 그것의 밝고 어두운 면을 편식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이게 되면, 분명 서울시 전체가 점점 변화하게 될테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되는 날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일견 어두운 그늘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그림자는 그것을 만든 사물을 더욱 뚜렷이 부각시킨다. (...) 이제 필요한 것은 검은 그림자들을 배제하고 단절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역사적이며 문화적인 맥락을 짚어내 씨줄과 날줄로 엮어가는 일이다. 모든 역사는 흘러간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의 가늠자'이자 '미래의 지표'로써 그 가치가 영원하기 때문이다." (334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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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창 -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다
임지선 지음, 이부록 그림 / 알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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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로에서 늦은 시간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버스 맨 뒤에 앉아 휘황찬란한 거리의 조명을 바라보고 있던 중 도로 한가운데 몇몇 사람이 모여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 중심에는 헬멧을 쓴 한 사람이 바닥에 누워 있었고 경찰관 두 분이 곁에 있었습니다. 어렵지 않게 방금 사고를 당한 오토바이 운전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사고가 난 뒤 이미 상당한 거리를 "날아"온 듯, 주위에 그가 타던 오토바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워낙 막히는 시간대라 조금 의아했죠. 속도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도로에서 어떻게 저런 접촉사고가 벌어졌을까 하고 말입니다. 한 쪽 신발이 벗겨진 채 바닥에 누워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간담이 서늘해졌습니다. 늦은 시간 탓에 잘 보이지 않았던 헬멧 아래 고여있는 피는 이미 그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픈 병은 자신이 앓고 있는 병이고 세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이 직면한 문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에게는 예민하고 집중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관심하다는 이야기겠죠. 우리가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졌다"라고 말하면서도, 기름값이나 전기세 등 스스로가 직접 느낄 수 있는 물가상승을 제외하고는 무엇이 구체적으로 어려운지 별로 알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니, 알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스스로가 살기도 버거운데 다른 어려운 사람들의 짐까지 떠안고 싶지 않아서일까요? 오히려 억울하고 힘든 이야기를 피하고 싶은 경우가 대부분이죠. 

여기, "진짜 서민"들의 어려운 삶이 무엇인지 말하고자 하는 한 기자가 있습니다. 삶의 최저선에서 매일 매일을 고군분투하며 연명해야 하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마이크를 잡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말합니다. "대한민국은 청춘을 위로할 자격이 없노라"고. 그리고 "현실은 시궁창"이라고. 가슴아프고 끔찍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 극복할 수 없다고 호소하는 그녀, 임지선 기자의 "현시창"을 소개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흔들리는 청춘, 흔들리는 대한민국.

경제가 어려워지고 서민들의 생활이 각박해질 수록 사람들은 "흔들리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회가 흔들리고, 사람들이 흔들리고, 청춘이 흔들리고 있노라고.  신문을 장식하는 크고 작은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반복될 수록 충격에도 익숙해지는 느낌입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 살기 위해 몸과 마음을 내던지고 어렵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뭔가 나 자신과는 동떨어진 것만 같은 이야기를 읽고 난 뒤 잠깐 생각에 잠길 수는 있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서 잊혀지기 마련입니다.

한겨레 사회부에서 기자로 일하면서 삶의 여러 모습을 직접 목격한 임지선 기자는 방관자의 모습을 한 우리에게 스물 네가지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가장 낮고 어려운 자리에서부터 삶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서부터 기력을 잃고 방황하는 청춘들의 이야기까지. 그리고 그녀는 말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라고. 그리고 이 이야기를 직시하고 인정하지 않는 이상, 현실은 나아질 수 없다고. 


"너무 많은 이들이 청춘을 위로하고 치유한다고 나서는 세상이다. 나는 스물네 건의 사연을 내보이며 이래도 세상이 이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건넬 수 있겠냐고 반문하려 한다. 이것은 철수와 영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나 혼자 잘살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이 미래에 대한 절망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만드는 사회는 '나쁜 사회'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7 페이지, 프롤로그 중)


총 네 가지의 테마로 나뉘어진 사연들은 제각각 우리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조명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여자이기 때문에, 뛰어나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가장 어두운 음지에서부터 현란한 조명 속 외로운 자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뉴스를 통해서 들었지만, 깊은 사정을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입니다. 전후사정을 알지 못하고 단신으로만 접하는 것과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임 기자는 바로 여기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황 씨가 죽을 때까지 걱정했던 학자금 대출은 고스란히 남았다. '이제 학자금 대출이자 내는 날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여동생은 물었다. 늘 자랑스러웠던 성실하고 착한 오빠가 남긴 것이 빚뿐이라는 사실을 동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승원 씨를 짓누르던 학자금 대출을 어머니와 여동생이 떠안지 않기 위해서는 사망 직후 3개월 안에 법원에 '상속포기 신청'을 해야 한다. 현실은 냉정하다." (20 페이지)

 


소외받는 소수의 이야기


그렇다고 "현시창"이 누구나 공감하고 공분할만한 사람들의 사연만을 담은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수의 이야기 역시 임지선 기자의 펜을 피해가지 않습니다. 대대적인 단속으로 생존의 위기에 처한 윤락가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렇습니다.


"타임스퀘어에서 시작한 그들의 질주는 바로 옆 골목 안 집창촌의 스산한 길목에서 끝이 났다. 알몸에 피칠갑을 하고 귀신 분장을 한 여성들은 유리방 앞에 다다라 모두 미끄러져 넘어졌다. '다 같이 죽겠다'며 바닥에 뿌려놓은 석유 때문이었다. 빨간 물감에 석유가 섞여 번들번들해진 알몸의 여성들은 바닥을 뒹굴며 통곡했다." (157 페이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몸과 여자로서의 존엄성 그리고 도덕까지 내던져야 하는 윤락가 여성의 삶은 비참합니다. 자신을 속박하는 무서운 "삼촌"들에 종속되어 노예처럼 살아가야 하는 것이 그녀들의 삶. 최소한의 인권 역시 그녀들에게는 사치인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 보는 남자와 한 방에 갇혀 때로는 잔혹하게 살해당하면서도 죽어서까지 낙인찍힌채로 무시당하는 것이 그녀들입니다. 그렇다고 확실히 도덕적으로 판단받지 않을 수 없는 그녀들의 삶의 방식을 지켜보면서 임 기자는 그것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발버둥치는 삶의 모습을 관찰합니다. 정당하건 정당하지 않건, 살아보겠다고 몸부림치는 그녀들의 비참함을 고발합니다. 그녀들의 절규가 유리방 안에서 공허하게 울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도록 말입니다. 


"이 날은 스물여섯 살인 그의 군 입대일이었다. 그는 훈련소 입소를 거부했다. 한국 사회에서 군대를 거부하는 일은 '감옥행'을 의미한다. 종건 씨는 일몰을 바라보며 조용히 기도했다. '제가 담대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215 페이지)


사법고시를 합격한 뒤 사법연수원까지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그가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침몰시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양심적 병역거부"로 철창 신세도 마다하지 않는 그는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대표적인 이단이자 사이비 종교로 널리 알려진 단체죠.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할것이다"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군대에서 총을 잡는 것을 거부하는 교리 때문에 이미 여호와의 증인에 속한 남자들이 종교적 이유로 감옥에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합니다. 이들은 "총만 잡지 않는다면 더 오랫동안 군대에 가도 괜찮다"고 호소하지만 현역으로 결정되는 이상 종교적인 이유로 예외가 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임 기자는 역시 이 테마에서도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단체의 타당성이나 부당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철저한 제3자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팩트를 나열합니다. 처음에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말에 잠시 눈살을 찌뿌리다가도 종교단체에서 떠나 확실히 법칙에만 매여 모두를 천편일률화하려는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도달하게 됩니다. 법은 외곬수일 수 밖에 없다지만 이렇듯 "개인"을 무시하고 "전체"를 강요하려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생각해볼 수 있게 됩니다. 



흔들리는 청춘, 흔들리는 나라


"현시창"이 특별한 것은 여기 있습니다. 비참하고, 억울하고, 끔찍한 현실을 지적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죄를 돌리지 않습니다. 수많은 언론들이 하는 것처럼 이른바 "공공의 적"을 조성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나 죄에 있어서 그 책임을 물을 "희생양"을 만들고 그에게 모든 죄를 씌우며 만족감을 느끼곤 합니다. 때때로 그 "희생양"이 극히 일부의 책임만을 가지고 있었다던가 혹은 아예 무죄한 사람이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는 것이 군중심리입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게 되면 교수형대에 매달아야 할 죄인을 찾아나서고 형이 집행되는 순간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원시적인 행위가 지금 (인터넷 덕분에 너무 편해진) 우리의 여론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임 기자는 호소합니다. 특정한 어떤 사람에게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어쩌면 그녀는 역으로 우리에게 되묻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욕하기 전에, 과연 '나 자신'은 이 일을 위해 무엇을 하고있느냐?"고 말입니다. 정치인이나 관련 책임자를 욕하고 탓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그들만의 책임일까요? 어쩌면 우리나라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혹은 알려고 하지 않고)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그저 비판할 대상만 찾아 입과 손가락만 부지런했던 우리들 역시 그 비참한 현실의 일부분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잘 알지 못하면서, 혹은 더 좋은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서 그저 이러쿵저러쿵 욕만 했던 부끄러운 모습 말입니다.


"'현시창'을 '현실을 직시하라, 그리고 창을 들라'라고 새롭게 고쳐읽는다. 그리고 '지금(현)' '노래부르며(시)' '창의적으로(창)' 오늘의 현실을 이겨나가자고 제안한다." (저자의 말 중)

 

청춘이 미래를 보지 못하고, 청춘이 암담한 현실에서 살아가는 나라가 건강할 수 없습니다. 흔들리는 청춘은 흔들리는 대한민국을 뜻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흔들리는 청춘을 도와 서로를 위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나은 미래를 원하고, 문제가 개선되기를 원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입니다. 미화시키려 하지 않고, 누군가만을 탓하려 하지 않고, 비건설적인 태도를 버리고 진정 나아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도록, 출발점을 다지는 것입니다. 임 기자가 말한 것처럼, 위로하기 전 힘들더라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총 스물 네 개의 괴롭고 힘든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몇몇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걸까?' 답답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 현실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 합니다. 무작정 '어렵고 힘들다'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어렵고 어떻게 힘든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해야 변화할 수 있는지를 함께 고민해야 할 시간입니다. 선거에 한 표를 행사하며 모든 것을 다 맡겨버린 후 안되면 욕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함께 생각하고 지켜볼 때 비로소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요? 

나라의 가장 중요한 행사라 할 수 있는 대선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여론도 뜨거워지고 언론플레이도 가중되기 마련입니다.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대한민국 국민들이 더욱 더 첨예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판단할 수 있는 성숙한 국민의식을 가질 수 있기만을 바랍니다. 스스로도 책임전가하며 탓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을 통해, 부족한 저 자신의 시야를 조금은 더 넓혀준 임지선 기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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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말하라 - 대중을 사로잡는 소셜 리더들의 소통 전략
미미 고스 지음, 김세진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빈 국립음대에서 작곡과를 다닐 때의 일입니다. 작곡과 음악이론, 지휘, 음향이 한 과로 묶여져 있던 덕에 본인의 전공이 아니더라도 관련분야의 수업이나 리허설 등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참 많았는데요, 오히려 과 수업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 소중한 기회였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도 학교 오케스트라를 동원한 지휘과의 오페라 리허설은 확실히 대단한 스펙터클이었는데, 오페라 극장에서 직접 관람하더라도 오케스트라와 상당이 떨어져 있을 수 밖에 없는 아쉬움을 충족시킬 수 있는 더할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습니다. 편곡, 특히 오케스트레이션을 하다보면 각 악기들이 어떤 음역대에서 어떤 테크닉을 구사할 때 어떤 소리가 나는지 확실하게 알아야 하는데, 오케스트라 리허설은 그런 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실험실"이었으니까요. 원하는 악기들 옆에 자리하고 앉아 악보를 함께 보면서 이것 저것을 관찰하다 보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들이나 수업 시간에 배우지 못했던 것들을 "산 경험"을 통해 익힐 수 있었습니다.


서론이 길어져버렸는데, 그 때 오케스트레이션 말고도 배운 소중한 지혜가 있었습니다. 지휘 수업의 특성상 오케스트라는 하나지만 지휘자는 매 시간마다 교대하게 되었는데, 각 지휘자마다 리허설을 이끌어나가는 스타일이 다 달랐기 때문에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지켜보는 것도 대단히 흥미로웠습니다. 그러던 중 지휘과 교수님께 중요한 말을 듣게 되었는데요, 바로 "최대한 짧게 이야기하라!" 라는 것입니다.
친절하지만 단호하고 친근하지만 위엄있는 포지션을 소화해야하는 지휘자에게 오케스트라와의 커뮤니케이션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집단 앞에서 한 사람이 어떻게 효과적으로 이끌어나가느냐가 좋은 지휘자가 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니까요. 교수님의 조언은 이어졌습니다.

 

"많은 사람 앞에 서면 쓸데없는 말들을 하고 싶다는 유혹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어떻게 가장 적은 말로 가장 효과적인 전달을 할 수 있느냐가 바로 지휘자의 능력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다시 지휘자들을 살펴보니 분명해졌습니다. 처음 리허설을 시작할 때 어떤 사람은 "좋은 아침입니다. 라 보엠 제 2막부터 시작합니다." 라고 간결하게 말하는 반면 "에, 모두들 안녕하셨어요? 에, 그러니까 오늘 저희가 연습할 곳은, 에, 악보를 보시면, 그러니까 2막있죠? 거기서부터 하겠습니다" 라고 불필요하게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많은 사족을 붙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신기한 것은 오케스트라가 주의력과 집중력을 잃는데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죠.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은 그 순간 편한 자세로 고쳐앉거나 잡담을 하고, 휴대폰을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정보만을 간결하게 전달하는 지휘자 앞에서는 워낙 리허설도 컴팩트하게 진행되는 탓에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전혀 없었고요.

 

같은 말도 돌려 돌려 말하고, 혹시나 오해할까 두리뭉실 말하기를 즐겨하던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집중하지 않는 것을 뭐라고 탓할 것이 아니라, 나 자체가, 내 말 자체가 바뀌어야 하겠구나! 라고 처음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후로도 자꾸 쓸데없는 가지로 뻗어나가는 성격은 많이 고쳐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어쩌면 "한 마디의 위력"에 대해 처음 들은 것은 그 때 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말해야 할 것인가!"가 궁금해진 (저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위해 명쾌한 해답을 제시할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단 한 마디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 긴 연설이 아닌 단 몇 분 간의 짧은 대화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은 사람들. 그들의 말에는 어떤 힘이 있었기에 큰 일을 이룰 수 있었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그 스킬을 터득할 수 있을지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가르쳐주는 미미 고스의 "한 마디로 말하라"를 만나보시죠.

 

 

 

 

 

평범함을 버리고 비범함으로 무장하라

 

이상하게 말을 듣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머러스하면서도 지적이고 대쪽같아 보이면서도 친근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죠. 아무리 대단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너무 틀에 박힌 모습으로 이야기한다면 평범한 대중들은 집중력을 잃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저속하거나 상황에 맞지 않는 태도나 어투 역시 지식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죠. 그렇다면 어떻게 대중들에게 이 많은 사람들 가운데 바로 나를 어필할 수 있을까? 하버드 케네디 대학원의 유능한 강사이자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미미 고스는 "평범한 말이 아닌 결정적 한 마디를 하라"고 조언합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는 미디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분명하고도 간결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24 페이지)

 

 

 

 

청중이 드러내놓고 지루함을 표현하거나 투덜거리며 자리를 뜨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사실 청중들은 쉽게 지루해합니다.
예의상 자리를 지키며 듣는 척을 한다고 해도 실상은 별로 집중하지 않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어떤 확실한 목적이 있어 청중들 앞에 서서 강연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극복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난제 중 하나가 바로 "어떻게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로 하여금 집중하게 할 수 있을까?"인만큼, 효과적인 소통 전략을 연구하는 것은 리더로써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미미 고스는 모든 것의 열쇠가 결정적 한 마디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자신감과 진취적인 기상을 담아 자신의 메시지와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을 앞에서 발표할 때는 열정은 주제에, 관심은 청중과 한두 개의 핵심 문장에 쏟아야 한다." (83 페이지)

 

한두 개의 핵심 문장을 청중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전략이 필요합니다. 미미 고스는 책 전반에 걸쳐 다각도로 "결정적인" 것이 무엇인지 설명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말이 있죠.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어떤 억양으로 어떤 제스쳐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 파급력은 천차만별이 된다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 성공과 실패의 길이 나뉘게 되는 것이고요.

 

평범한 문장: 저는 세금을 납부하고 있으니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결정적 한 마디: 저는 이 마이크를 위한 세금을 냈습니다.
(51 페이지)

 

 

 


자신이 아닌 청중을 위한 연설을 하라

 

독일어권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아왔기에 전공은 음악이었지만, 독일 문학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읽어야 할 책부터 오페라 등의 예술의 근원 또한 문학이었기 때문인데요, 대학원에 들어가 영미권 전문서적을 읽게 되면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내용이 어렵고 존경받는 책일 수록 독일어로 쓰여져 있을 경우 복잡하고 어려운 반면, 영어로 쓰여진 책들은 오히려 문장이 간결하고 읽기 쉽게 되어있었다는 것인데요, 물론 모든 책들을 이렇게 단순하게 나눌 수는 없겠지만, 전반적인 인상이 그랬습니다. 독일어에 비해 영어 실력이 많이 뒤쳐졌지만 전문서적을 읽으면서는 별로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 것도 이런 이유였습니다. 진리는 표현할 수 없다는 마인드의 독일어권과는 달리 "어떻게 해서든 쉽고 편하게 독자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실력이다!"라는 실용주의의 대비가 극명했기 때문입니다.


문화가 다르고 트렌드가 다르기에 이 두 문화권을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연설에 있어서만큼은 충분히 고려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려운 전문용어와 복문을 사용하는 사람의 연설을 들으면서 "정말 똑똑해보인다"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뭔가 "있어보이는" 말투가 그 지식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것이 그 사람의 의견에 공감하는데 있어서도 도움이 될까요?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한두 문장, 몇 분 그리고 몇십 분의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해하지 못할 수록 집중력도 떨어지고 결국은 관심마저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을 움직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은 간결한 몇개의 단어로 축약될 수 있었습니다. "I have a dream"이라는 쉽고도 평범해보이는 한 문장은 킹 목사의 신념과 만나 역사에 기록될 결정적 한 마디가 되었습니다.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을 설득한다고 할지라도 도달하기 어려운 효과가 단 몇 분의 연설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슬로건 역시 간결했습니다. "Yes, we can." 이 한 마디는 기적을 꿈꾸던 빈민가 출신의 젊은 정치가를 미국의 대통령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공약이 아닌 머릿속에 각인되는 강렬한 메세지가 미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인 셈입니다.

 

 

 

 

"사업을 하든, 세임을 하든 상대에게 스토리를 들려주고 공감대를 일깨워라. 그들이 당신을 이해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게끔 유도해주도록 하라. 상대의 마음속에 떠오른 그 감성을 정확히 짚어주는 한 마디로 상대를 자극하고 당신의 이야기에 반응하게 하라." (124 페이지)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상대방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무용지물입니다. 이것은 넓은 층을 상대로 한 발언일 때 더욱 상기되어야 하는 사실입니다. 나를 기준으로 한, 나의 지식 혹은 지혜를 뽐내기 위한 연설이 아닌, 상대방의 시선에서, 상대방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 그것이 결정적 한 마디가 지녀야 할 필수조건이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연설하는 것은 자기 자신일지 몰라도 그 연설의 완성은 그것을 듣고 공감해주는 청중임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의 힘

 

바야흐로 SNS의 전성시대입니다. 예전에는 주절주절 자신의 의견을 적어내려가는 것이 유행이었다면, 요즘은 140자라는 제한 안에서 얼만큼 간결하고 효과적으로 자신을 표현하는가가 관건입니다. 세상이 빨라지고 모든 것의 속도가 올라갈 수록 사람들 역시 인내심을 점점 잃어가기 마련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굳이 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달라고 하려면 결정적 한 마디가 필요합니다. "낚시성 문구"가 아닌, 신념과 정보를 훌륭히 대변해주는 한 마디가 사람들의 마음에 꽃힐 때, 비로소 궁금함과 흥미를 가지고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게 될테니까요.

 

 

 

 

"한 마디로 말하라"의 장점은 많은 예문들을 통해 결정적 한 마디를 위한 감각을 키우고, 저자의 조언을 곱씹으며 자신의 신념을 정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실, 한 마디로 말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자부심과 책임감이 필요합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이 무한하고 공간이 무한하다고 생각하면 중언부언하거나 생각나는대로 말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제한을 주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압축하고 다듬는다는 것은 그만큼 연설에 대한 책임감이 커지는 것을 뜻합니다. 확고한 의견을 가지고 정확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더욱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죠.

 

꼭 사업가나 정치인이 아니라 연설할 기회가 없다고 할지라도, 인간관계에 있어서 결정적 한 마디의 힘은 큽니다. 그것이 가족이든, 연인이든, 동료든 혹은 친구든 확실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곧 상대방을 배려하는 일일테니까요. 저 자신도 워낙 한 번 말을 하기 시작하면 길어지기 십상이고 자꾸 곁가지로 뻗어나가는 버릇이 있는지라 이 책을 읽으며 많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한번 든 습관을 고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미미 고스가 제안하는대로 연습하면서 자신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다듬는다면,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날이 머지 않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 책이 빠르게 더 빠르게 돌아가라고 재촉하는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많은 분들께 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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