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복잡한 세상을 만나다 -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지식인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완웨이강 지음, 이지은 옮김 / 애플북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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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통찰력.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저자는 어떻게 이런 통찰력을 가지게 되었을까 감탄하게 됩니다. 번지르르한 말로 자신의 이론을 펼쳐놓고 모든 것을 끼워넣는 것이 아닌, 다방면으로 분석해보고 가설을 세운 뒤 그것을 증명해보이는 저자의 넓고 깊은 지식과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에요. 

<지식인 복잡한 세상을 만나다>의 저자 완웨이강은 현재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연구원으로 활동중인 물리학자이자 칼럼니스트라고 합니다. 저자의 전공은 물리학이지만 철학과 사회학, 통계학, 교양학, 정치학 등 수많은 분야를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명문대학교인 콜로라도대학교의 연구원이면서 저자는 스스로 "어디 가서 직업이 물리학자라고 말하기에는 차마 부끄러운 성과를 내는 데 그치고 있을 뿐"이라고 평가합니다. 바꾸어 이야기하자면 자신의 진짜 경쟁력은 물리학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 걸쳐 문제를 다각적으로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라 할 수 있죠. 

몇 년 전 유행하던 팟캐스트 방송인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떠오르게 하는 이 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진정한 인재(엘리트)가 되려면 결국 인문학과 예술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또한 이 모든 학문들은 단지 으스대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있어 보이기 위한 소품들이 아닌 인생에 직결되는 지혜라고 강조하죠. 

사실 인성교육의 본질은 뛰어난 실용성에 있다. 
평생의 짝을 찾기 위한 연애의 기술 따위가 갖는 
실용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삶을 살아나가며 무엇을,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 
배우게 해준다는 뜻이다. (...)
자유학의 본질은 올바른 결단을 내리기 위한
학문이라는 데 있다.
(21 페이지)

또 다른 중요한 메시지는 (얼마 전부터 이미 많은 책들이 언급한 바 있듯이) 한 분야에서 뛰어난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것보다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제너럴리스트가 이 시대에 맞는 지식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한 가지 분야의 지식만을 활용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사실상 극히 적다(11 페이지)"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기 시작한 "전인적 교육"이나 "통합교육", "융합"과 같은 맥락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하나의 초식이 통하지 않으면 재빨리 다른 초식을 펼칠 줄도 알아야 한다.
똑같은 문제를 놓고 경제문제 또는 정치문제, 심지어 물리문제로
여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23 페이지)

때문에 자식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만 하는지 설득하는 데 있어 부실하고 어줍잖은 근거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면,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끊임없이 공부하며 자신의 지평선을 넓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책에 담겨 있으니까요. 

책을 읽다보면 조금은 의아할 수 있는 저자의 관점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인성도 여가도 모두 포기한 채공부에만 집중하는 중국 학생과 봉사활동도 하고 자신만의 취미생활도 계발해나가며 명문대에 진학하는미국 학생은 결국 비슷한 부류라는 주장은 얼핏 들어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전자는 "잘못된" 교육의 단면으로, 후자는 "바람직한" 전인적 교육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자는미국 학생이 그렇게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스펙을 쌓아나가는 것은, 그가 사는 사회 가운데서 그것이 인정받기 때문이라고 꼬집습니다. 공부만 잘하면 장땡인 중국 사회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적어도 그 정도는(?) 해줘야 인재라고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죠. 즉, 전자가 나쁘고 후자가 좋다는 것이 아니라 전자와 후자 모두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대치에 수동적으로 부응하는 아이들의 단면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480 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을 자랑하는 이 책의 내용은 쉽게 분류할 수 없는 분야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저자가 얼마나 많은 노력과 연구를 거듭했는지 대략이나마 알 수 있는 부분이에요. 사실 저자는 지식인(知識人)이 아닌 지식인(智識人)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후자는 전자를 통해 많은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지만, 지식을 아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자신의 경험과 지성을 더해 지혜롭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흔히 우리가 콘텐츠를 만들 때, 1차원적인 나열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른 장르 혹은 학문과 융합하여 새롭고 지극히 개인적인 콘텐츠를만들어야 한다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을 가진 다른 사람들이 쓴 책과는 달리, 이 책의 저자는 어느 한 이념이나 정책, 문화나 관습 등을 놀라우리만치 비판하지 않습니다. (거의) 모두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신랄하게 비판해도 전혀 놀랍지 않을텐데 지극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팩트만 정리하는 식이죠. 이것 또한 어떤 무언의 메시지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저자의 많은 지혜를 배우면서 반성하며 결심했던 것 중 하나는, 저 자신의 편협적인 배움이나 경험을 토대로 섣불리 가설을 세우거나 판단해선 안된다는 것이었어요. 예술인으로서, 엄마로서, 제가 아는 것은 지극히 일부분일 뿐인데 나이가 들어갈 수록 마치 그 일부분이 전부인 양 착각할 때가 많아지는 것 같아요.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전에 충분히 검증하고, 객관적인 이유가 될 수 있는 자료들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정말 두고두고 읽으면서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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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에 숨겨진 101가지 진실 - 개정증보판
김수헌 지음 / 어바웃어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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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엄마가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그랬을까요? 맘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살았던 때가 있었답니다. 흔히들 하는 변명처럼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거야"는 식이었죠. 어느덧 삼십 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니, 안 해서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참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답니다. 


그중 하나가 경제관념이에요. 우스갯소리로 "이솝우화 중 '개미와 베짱이'에 나오는 그 베짱이가 딱 나"라고 말하곤 하는데, 속마음은 마냥 편하지 않답니다. 뭔가 미래를 위해 저축도 하고, 개미코딱지 같은 재산이라도 관리를 시작해야 할텐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거든요. 

그러다가 이 책, <기업경영에 숨겨진 101가지 진실>을 만나게 되었어요. 단어의 뜻도 몰랐던 "공시"의 교과서라고 불리는 책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것은 개정증보판이고, 이미 5년 전 출간된 후 소위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가 되어 투자를 시작하려는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준 책이라고 합니다. 저처럼 주식의 "주"자도 모르고, 투자의 "투"자는 더더욱 모르는 사람도 흥미롭게 읽을만한 책이었어요!


공시 해설서의 개척자로서, 책을 더욱 많이 팔기 위해 
공시만 알면 주식투자로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식으로 광고할 수도 있었다.
또 조금만 공부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을 
자신만의 비법인양 포장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책 몇 권 더 팔자고 독자를 우롱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책의 필자로 드릴 수 있는 말씀은
공시를 제대로 이해하면 투자에서든 기업 경영에서든
더 나은 선택과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머리말 중)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신중하게 글을 써내려갔는지 느낄 수 있는 구절이었어요. 이 책이 나오기 전 기업 공시를 다루었던 책이 없었다고 해요. 저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공시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어떻게 읽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투자의 방향이 굉장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사실 주식이나 투자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을 뿐더러, 주식이 어떠한 원리로 거래되고 오르거나 내리는지 조차 몰랐기 때문에 초반에는 힘겨웠어요. 나름(?) 초보자들도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했으니 적어도 주식의 가장 기본적인 용어를 정리한 챕터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없더라고요 ㅎㅎ 대신 대부분의 용어들이 개별적인 챕터에서 자세히 다루어지기 때문에 일독을 하고 나면 어느 정도 개념이 정리되고 연관성을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미지의 세계였던 주식이 게슴츠레 하게나마 보여진다고나 할까요. 

불과 며칠 전에도 삼성증권의 주식이 유령회사를 통해 불법적으로 거래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죠. 이 책을 읽기 전이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을 뉴스였는데, 자세히 보니 이 책에서 다루었던 꼼수가 여럿 생각나더라고요. 그래봐야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처음으로 경제 관련 뉴스를 들으면서 흥미롭게 추적해본 경험이 되었답니다. 조금만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말이죠. 

이 책은 무엇보다도 저자가 끊임없이 파헤치고 연구한 실제 기업의 사례들이 수없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생동감있게 읽을 수 있어요. 가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던 낯익은 사건들이 나오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었던 합병이나 인수, 모자기업 관계 등을 유추해볼 수 있는 단서도 등장합니다. 무엇보다 서로 경제적인 이익을 따질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에 놓인 수많은 기업들이 때로 손해를 보고, 때로 리스크를 감당하면서 경영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경영 능력은 타고나는 것일까 싶을 정도로 저는 상상도, 엄두도 안 나는 세계였지만 말이에요. 


저와 비슷하게 빼박 예술인인지라 주식에 관심이 없는 신랑에게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해주었답니다. 중반 정도 읽고 나니 이 책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주식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물론 (집안 망할까봐) 실천에 옮기는 것은 아마도 먼 훗날이 되겠지만, 새삼 주식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무엇을 주의하고 공부해야 할지 어렴풋하게나마 생각해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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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면 - 괴짜 과학자들의 기상천외한 죽음 실험실
코디 캐시디 & 폴 도허티 지음, 조은영 옮김 / 시공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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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든 죽기 마련이지만, 그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몇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시대와 지역, 문화에 따라 죽음에 대한 생각에 차이가 있지만, 죽음을 가지고 농담을 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죠. 특히 대다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라면, "죽음"이란 주제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정말 골때리는 책이에요! 
<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면>. 원제는 And Then You're Dead. 직역하면 <그럼 당신은 죽습니다> 정도가될까요? 번역된 한글 제목보다는 원제가 이 책의 내용을 좀 더 잘 표현했단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의 어느 챕터를 읽는다 하더라도 결국 마지막에 당신은 죽거든요!

이 책의 공동 저자인 고디 캐시디와 폴 도허티는 각각 편집자/작가와 과학자입니다. 이들은 놀랍게도 마흔 여섯 가지의 기상천외한 죽음에 대해 연구를 했는데, 대부분 일반인은 흉내는 커녕 시도조차 해보기 힘든 죽음이에요 (이 책을 읽고 앞으로 자살하려는 사람들의 방법이 다양해질 거라는 걱정은 고이 접어두셔도 될거에요). 운석과 충돌한다거나, 블랙홀로 뛰어든다거나, 우주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등 공상과학에서 나올 법한 상황을 현재 가능한 과학적 추론과 가설로 설명해보이는가 하면, 고층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진 동전을 맞는다던가, 산 채로 땅 속에 묻힌다던가, 백상아리의 공격을 받았을 때처럼 아주아주 드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하지는 않은(!) 상황에서의 죽음도 실감나게 묘사합니다. 사실이 두 사람이 죽음의 과정을 묘사하는 것은 실감나는 것을 넘어 어떤 희열과 감탄마저 느껴지게 하는데요, 두 저자가 "세상에, 이런 죽음이라니, 이건 정말 어마어마하게 기발하잖아! 대박!" 하며 기쁘게(?) 써내려간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 몇 가지 죽음은 예전부터 궁금했던 내용이에요. 비행기에서 창문이 열리면 큰일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왜 큰일이고 창문이 열리면 모두가 속절없이 죽는건지, 살아남을 가능성은 아예 없는건지 궁금했었거든요. 또 왜 우주복을 입지 않고 달에 가면 안되는지, 운석이 떨어진다면 왜 머리에 맞기 한참 전에 이미 죽을 수 밖에 없는지 아주 상세하게 알 수 있답니다. 



좋은 소식은, 당신의 마지막 순간이 
아주 멋지게 마무리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지구에서 보면 당신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 빛으로,
어떤 별똥별보다 밝게 빛날 것이며 낮에도 보일 겁니다.
그리고 별똥별처럼, 적어도 처음에는
당신 몸의 그 어느 한 조각도 지구까지 내려오지는 못합니다. 
대신 이온화된 플라스마가 공중에 퍼지겠지요.
("우주에서 스카이다이빙을 한다면?", 111 페이지)

저를 포함한 친정 식구들은 블랙 코미디를 아주 좋아하는 편인데, 그래서 가족 중 누가 죽는다면 박제해서 안방에 전시해 놓을 거라고 농담을 하곤 해요. 누군가는 지나치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죽음에 대해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꺼내는 순간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런 저희 친정엄마가 제가 어렸을 때 (솔직히는 얼마 전까지도) 몇 번 궁금해하셨던 게 있어요. 만약 동화속에 등장하는 거인이 실제로 존재해서, 우리들을 잡아다가 거대한 믹서기에 넣고 주스를 만들어 먹으려 하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죠. 지금까지 나온 답변 중 가장 그럴싸한 건 "믹서기 중앙에 위치한 기둥을 꼭 붙잡는다"였는데, <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면> 저자들이 이 책의 속편을 낼 때를 대비해서 한 번 사연을 보내볼까 생각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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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첫 강의 시간관리 수업 - 하버드 청춘들의 꿈을 이루는 시간
쉬셴장 지음, 하정희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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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때부터 불공평으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한 것이 있다면 바로 시간입니다. 부자든 그렇지 않든, 대통령이든 어린아이든 똑같이 하루 스물 네 시간으로 살고 있으니까 말이죠. 아무리 권력이 있어도, 돈이 많아도, 노력해도 하루 스물 네 시간 이상의 시간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도 똑같이 스물 네 시간을 쓸 수 있기도 하죠. 


아이를 낳기 전에도 저는 기꺼이 "워커홀릭"이었습니다. 바쁘지 않으면 왠지 잘못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죠. 캘린더에 스케쥴이 빡빡하게 들어차있지 않으면 무능하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와있고 일주일에 사나흘은 밤샘 작업 정도 해줘야 "열심히 살고 있군"이라는 안도감(?)이 들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낳고 거의 모든 것이 변했죠. 일하고 있지 않으면 뭔가 꾸준히 자기계발을 했던 저인데 아이를 키우면 스스로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은 거의 없으니까요. "이젠 난 엄마가 되었고, 이게 나의 새로운 삶이야"라고 인정하기 까지 2년 넘는 시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그때까지는 우울증과 자포자기, 분노의 연속이었던 것 같고요. 

아들이 만 세 살이 되면서 슬슬 다시 일을 시작했고, 요즘엔 아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기까지 열심히 일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를 키우며 일을 하려니 시간에 쫓기며 살 수 밖에 없어요. 게다가 일정한 출퇴근이 있는 일도 아닌 창의적으로 작품을 쓰고, 콘텐츠를 계발하고 만드는 일이다 보니 아이를 재운 뒤에도 새벽까지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늘 잠이 부족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게 되더라고요. 더이상은 안되겠다 싶어 책의 도움을 구하기로 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인재라 불리우는 하버드의 사람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나가는 그들이 어떻게 시간을 관리하는지 알고 싶어 읽게 된 <하버드 첫 강의 시간관리 수업>입니다.




시간관리의 비법은 생산력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시간을 잘 다루는 시간해결사가 되고 싶다면, 
자신의 업무 중점을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모든 업무의 중점을 찾아낸 다음 구체적인 선택을 하면 된다. 
자신을 단속하고, 순조롭게 시간관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136 페이지)

사실 (저를 포함해서) 제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 "시간이 없다",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진짜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신이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유는 각양각색이었지만 자신이 도무지 감당하지 못할 일까지 짊어지거나, 계획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부족하거나, 아니면 그냥 바쁘다고 말하는 그 자체를 즐기기 때문에 정신없는 상태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죠. 그렇게 사는 것이 멋지게 보일 수도 있고, 예전의 저처럼 취향이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주위 사람들과의 평화와 자신의 건강을 유지하면서 오랫동안 그렇게 살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하루 24시간이라는 공평한 시간 중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하고, 얼마나 생산적으로 그 일을 해나갈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 뿐이라는 저자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 일하기 힘들다는 불평불만과 시간에 쫓겨 허덕이는 모습을 계속 유지할 것인지, 결단과 선택, 집중을 통한 계획을 통해 삶의 밸런스를 맞춰나갈 것인지 역시 저 자신밖에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어느누구도 대신 결정해줄 수 없고, 어느 누구도 저를 위해 살아줄 수 없는 것처럼, 그 책임은 전적으로 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이 책은 총 일곱 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세 번째 파트인 "나만의 시간관리표를 만들자"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구체적이면서도 쉽게 응용할 수 있는 시간관리 비법들이 나와있어 당장 실행해보기 좋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시간관리 비법이라도 배우는 데 한참 걸리고 적용하는 데 연습이 필요하다면 과연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까 싶어요. 부족한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 또 시간을 내서 배워야 하고 또 적응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이건 뭐 책을 잘 읽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하는 그런 느낌? (시중에 이런 책들이 다수 나와있는 것이 함정이긴 하지만...) 

대개 사람들은 굉장히 극적으로 생각하는지라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완벽주의를 버리라고 하면 매사에 설렁설렁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이 되어버릴 것만 같고, 거절하는 법을 배우라고 하면 매사에 No를 외치며 얄밉게 구는 사람이 될 것 같은 느낌에 꺼리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살지않아도 충분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쓸 수 있고, 그렇게 쓸 때 비로소 내 삶의 키를 스스로 잡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어쩌면 정신없이 살며 시간관리를 포기하는 것 역시,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고 싶지 않은 일종의 회피가 될 수도 있으니 말이에요.


오스트리아에서는 "'Everybody's Darling' ist 'Everybody's Deppat'!"이라는 말이 있답니다. Deppat 은 빈 사투리로 "머저리", "바보"라는 뜻인데, 모두에게 사랑스러운 사람(Darling)은 모두의 머저리라는 것이죠.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이 되라고 교육받은 저에게는 다소 충격적인 말이었지만, 20대 후반이 넘어가면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모두에게 막 대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에게 싫은 소리 듣기 싫고 착하단 이미지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이리저리 끌려다니면 모두에게 머저리처럼 보일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에요.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해서 "시간"에도 끌려다녀선 안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택하고, 집중하고, 결단한 뒤에는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의 가치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성숙함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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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닥터 1 - 자폐증 천재 외과 의사의 휴먼 성장 스토리
박재범 지음 / 비단숲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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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국에 들어온 이후 제가 본 한국 드라마는 단 두 개. 
첫번째가 <뿌리깊은 나무(2011)>였고 두 번째가 <시그널(2016)>이었으니, 정말 5년마다 한 번씩 보고싶었던 드라마가 있었던 것 같아요 (둘 다 조진웅 씨가 등장한 건 안비밀 ㅋ). 어마어마한 인기를 누린 작품도 5분 이상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손발이 오글오글거리고 공감이 되지 않더라고요. 덕분에 드라마에 있어서 저는 지인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아싸(아웃사이더)"가 될 수 밖에 없었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드라마 <굿 닥터(2014)>의 대본집이 출간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문득 이 책을 읽고 싶어졌답니다. 다른 드라마였다면 별로 관심이 없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방영 이후 무려(?) 미국으로 수출하여 제작된 드라마라고 하니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제목에 "닥터"가 들어간 것에 걸맞게 미국 드라마는 <닥터 하우스(2002-2014)> 제작진이 참여했다는 것을 읽고 더욱 원작이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소설이 아닌 오리지널 대본집이라는 것이 정말 매력적이었고요!


궁금해서 검색해보고서야 알게 되었지만, 이 드라마는 배우 주원 씨가 서번트 신드롬을 앓는 주인공을 연기해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였다고 해요. 그외에도 기라성 같은 국내 드라마 배우들이 출연해서 탄탄한연기력을 바탕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워낙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지라 읽으면서 손발이 오그라들면 어떠지(...)하는 걱정이 있었는데, 굉장히 몰입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어요! 
사실, 가장 중요한 부분에서 끝나며 다음 화를 기대하게 하는 드라마가 아닌 완결된 대본으로 보는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컴팩트하게 지나갔던 작품이랍니다. 20회가 숨가쁘게 흘러갈 정도로 지루하지 않게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수많은 캐릭터의 이름을 언제 다 외우나(...) 싶었는데, 나중엔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더라고요. 

이 드라마가 왜 그렇게 사랑을 받았고, 미국에서도 제작되었는지 알 것 같았답니다. 물론 서번트 신드롬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하필 다른 것도 아닌 외과 의사로 성장해나간다는 특별한 설정이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그것이 아니더라도 이 드라마는 참 따뜻한 것 같아요. 가족이나 이웃을 사랑하라는 교훈적인 내용이 담겼거나, 예전 방식의 권선징악이 강조된 것도 아닌데,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결국은 연민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이고, 이유를 불문하고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한 사람의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풀어내고 있지 않나 싶었답니다. 

박재범 작가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굿 닥터> 리메이크의 성공을 통해 깨닫게 된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보편 타당한 인간의 감정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것이다. 상식적이면서 자연스러운 공감을 주는 스토리는 그 어떤 색이나 자극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통용된다. <굿 닥터>에서 제시하는 보편타당함의 가치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예의, 사회의 약자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서 기인한다. (4 페이지)"

이것이야말로 <굿 닥터>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드라마에서 주인공과 갈등을 빚는 수많은 캐릭터들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것은, 그들 역시 연민과 사랑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작가가 조심스럽지만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박재범 작가는 작가가 된 이후 다짐한 것이 '세상에 그다지 큰 득은 못 줘도, 해가 되는 작가는 되지 말자'였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수많은 드라마들을 보면, 드라마 작가로서 정말 대단한 결심을 한 것이라 생각해요. 자극적인 요소가 난무하고, 극단적이고 패륜적인 스토리까지 등장하며 시청률을 올리려 하는 드라마가 너무나도 많으니까 말이죠. 그의 이 한 마디가 그의 드라마만큼이나 따뜻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본을 읽는 재미! 
아무래도 캐스팅과 플롯, 대략의 상황 등이 설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쓰는 대본이다 보니, 중간중간 "박시온" 대신 "주원"이 지문에 들어가 있는 것도 재미있었고, 어린아이에게 흉기로 무차별 공격을 가한 범인이 병원에 침입했을 때, 드라마 지문에서 "범인"이 아닌 "범인새끼!!"로 분노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상당히 귀여워(?) 보였답니다. 

궁금해서 유투브에서 몇 개 클립을 찾아보았는데, 대본집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더라고요. 드라마를 보신 분들도, 저처럼 드라마를 보지 않으신 분들도 정말 재미있고 행복하게 읽을 수 있는 따뜻한 <굿 닥터>.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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