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움직인 프레젠테이션
하야시 야스히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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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책 읽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특히 집에는 수 많은 위인전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는 멋모르고 보이는대로 책을 읽었기 때문에 잘 알지 못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린이들을 위한 위인전의 순진하기까지 한 표현법과 일방적인 영웅화는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사실마저도 합리화시켜버리곤 한 것 같습니다. 파란만장했던 위인들의 삶을 단 몇 페이지로 줄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당황스러운 이분법과 극단적인 평가를 생각해볼 때, 과연 어린이들이 이 책들을 읽는 것이 어떤 도움이 될까 싶기도 합니다.


갑작스럽게 왜 어린이 위인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가 하면, 오늘 소개할 책을 읽기까지는 단 한번도 제대로 생각해보지 않았던 논점이 조금은 억울해서(?) 입니다. 역사 속 대단한 인물들이 이루어 낸 업적에 대해서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성공한 것일까?" 생각하기 보다는 너무 화려한 미사어구 속 "신격화"된 위인들의 특권처럼 느껴졌었으니까요. 커다란 알을 깨고 나온 박혁거세의 알몸에서 어른들도 놀랄 만큼의 광채가 났다면, 그가 신라의 시조가 된 것도 무리는 아니었을테니까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현대인에게 있어서 "프레젠테이션"이란 더이상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닙니다. 학교에서, 회사에서, 그리고 가정에서까지 사실상 우리의 "프레젠테이션"은 멈추지 않고 있으니까요. 더군다나 훌륭한 프레젠테이션이 과거에는 연설가나 정치인 혹은 유능한 사업가의 전유물이었다면, 이제는 필수적인 개인의 역량으로서 요구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 사람은 워낙에 숫기가 없어서 말을 잘 못해"라고 웃어넘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못하는 것을 단점으로 평가하게 된 것이죠.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프레젠테이션을 겪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성공시키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판가름나기도 합니다.


아까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역사를 뒤바꾼 위인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바로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이 남달랐다는 것입니다. 물론 수 많은 관중 앞에서 훌륭한 프레젠테이션을 선사한 사람이 있는가하면 역사에 길이 남을만큼 최악의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오명을 남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은 무언가를 바꾸었고, 그것은 단순한 마법의 주문이나 우연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되고 연구되어 온 것이라는 것을 오늘 소개할 책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요리사는 물로 요리한다 (아무리 훌륭한 요리사라 할지라도 같은 기본재료를 사용한다는 유럽 속담)" 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몸에서 광채가 나고 어렸을 때부터 지나치게 총명했기 때문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수 많은 시행착오와 눈물겨운 노력을 거쳐 세상을 움직인 위인들. 그리고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의 세계로 함께 떠나볼까요.




하야시 야스히코 "역사를 움직인 프레젠테이션"



불가능을 가능케 한 사람들의 이야기


일본 광고계에서 인정받는 광고기획자 하야시 야스히코 씨야말로 프레젠테이션의 중요성과 위력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많은 분야가 그렇지만 광고계야말로 "이현령 비현령"이 통하는 극적인 분야일테니까요. 도대체 이태리 사람이었던 콜럼버스가 외국인으로써 (그것도 제대로 기반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스페인 여왕을 설득하여 자신에게 어마어마한 투자를 할 수 있게 만들었을까 궁금해진 저자는 콜럼버스를 시작으로 역사적으로 성공적이며 이례적이었던 프레젠테이션의 조사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찾아 떠났다는 것도, 그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는 것도 (그 자신은 죽을 때까지 그 땅이 인도라고 믿었습니다만)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가 어떻게 스페인 여왕 앞에서 자신의 계획을 소개하고 그녀를 설득할 수 있었는지의 과정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광고기획사의 입장에서는 광고주의 취향에 맞추어 계약을 따내는 일도 어려운데, 어떻게 한 나라의 여왕을 상대로 이런 무지막지한 조건으로 승리했는지 그 비결이 정말 궁금할 수 밖에 없습니다. 콜럼버스는 어떻게 생각하면 "얼토당토 않은" 자신의 계획을 전적으로 지원하는 것 외에도 엄청난 보수를 요구했고,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쯤되면 그가 어떻게 여왕을 만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자문위원회의 마음까지 돌려 결국 항해를 이룰 수 있었는지 정말 궁금해질 수 밖에 없죠.


"기획력이란 개인의 꿈과 야심을 상대, 즉 클라이언트와 공유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해 내는 능력을 말한다. 상대방에게 무엇이 이익이 되는지 공감하게 하고 이해시킬 수 있어야 비로서 '팔리는 기획'이 된다." (31 페이지)





이런 프레젠테이션의 이치를 깨달은 사람은 비단 콜럼버스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저자는 총 네 명의 위인과 그들의 프레젠테이션을 소개하면서 "효과적인 프레젠테이션의 필수조건은 무엇인가?" 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단 몇십, 몇백, 몇천만원이 걸린 광고를 따내는 문제가 아니라 러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전국을 통일하며, 사라졌던 올림픽의 부활을 기도하는 엄청난 스케일의 목적을 이룬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들을 효과적으로 요약합니다.


"프레젠테이션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한 3요소는 '호흡'과 '눈높이' 그리고 '타이밍'이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청중과 눈높이가 맞지 않고 호흡이 일지하지 않으면, 그리고 더 나아가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프레젠테이션은 실패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108 페이지)





그리고 이들은 이러한 프레젠테이션의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꿰뚫어보고 있던 사람들이었기에 거사를 성사시킬 수 있었다고 저자는 중요합니다. 프레젠테이션에 실패하고 그 실패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또 다른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해나가는 과정을 마치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듯 전개하는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마치 역사 속으로 들어가 함께 일의 진행을 지켜보는 느낌마저 들곤 합니다.

그들의 성공 뿐만 아니라 실패와 시행착오를 함께 겪어나가면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함께 생각하고 고민하길 권장합니다. 나라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까? 그리고 어떤 카드가 내게 남아있을까? 

결국 이런 질문들을 풀어나가면서 "불가능을 가능케 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프레젠테이션,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얼마 전 철학적 글쓰기에 대해 서평을 쓰면서 철학적인 사고를 체계적으로 계발한다면 오히려 철학적 글쓰기가 즐겁고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말을 인용했었습니다만, 프레젠테이션에 있어서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 이 말은 "피할 수 없으니 차라리 즐겨라"라는 자포자기의 의미가 아니라 "피할 수 없다는 그 사실을 즐겨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알맞지 않을까요? 아무리 즐기려 해도 막막하기만 한 프레젠테이션 준비에 가슴이 답답했다면, 이 책을 통해 저자가 제시하는 흥미로운 프레젠테이션 준비 방법을 시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돼"라고 푸념하는 사람일 수록 오히려 노력에서만큼은 대단히 게으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만가지 변명을 늘어놓는데는 선수지만, 그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막막하기만 한 프레젠테이션 준비의 발상전환을 위해 저자는 4명의 프레젠테이션에서 네 개의 다른 접근법을 시도합니다. 물론 그들의 상황과 시대적 배경이 달라서일테지만, 이 네 가지 방법은 분명 우리 일상에서도 충분히 적용하고 시도해볼만한 것입니다.


"프레젠테이션에서 주장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익'이다. 자신의 제안을 채용하면 고객인 기업에게 어떤 이익이 약속될까. 그것을 명확히 하는 것이 프레젠테이션이다." (216 페이지)


내가 아닌 상대를 움직이는 것. 상대로 하여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프레젠테이션의 기본적인 목표를 잊지 않고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스스로 반문을 제기하며 자신의 기획을 다듬어간다면 분명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요.



과묵한 승자가 되어라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는 말도 많고 잘난 척도 많이 하지만 결국은 별 영양가 없는 내용만 주욱 늘어놓는 사람들을 비꼬아 이야기하는 것인데, 프레젠테이션에 있어서만큼은 확실한 주관을 가진 "과묵한 승자"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말을 아끼고 적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필요한 말 - 상대방을 움직일 수 있는 말 - 을 골라 할 수 있는, 그리고 변명이나 구차한 이유를 들어 상대방으로 하여금 신뢰를 잃게 만들지 않는, 그런 프레젠테이션을 구사할 수 있다면 분명 더 많은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끊이지 않고 안방 채널을 점령하고 있는 사극 드라마를 볼 때마다 "이미 역사적으로 아는 이야기인데 왜 사람들이 저렇게 궁금해 하면서 볼까?" 궁금해지곤 했습니다만, 아마 그것은 왕건이 고려를 세웠다는 역사적 사실이 감동적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고려를 세울 수 있었는지의 과정이 매력적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카리스마와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피력하였던, 성공적인 프레젠테이션이 바탕이 되었고 말입니다.


조금은 엉뚱하고 특이한 발상에서 시작한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세상은 "남보다 조금 더 많이, 조금 더 혁신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바뀌어가고 있지 않나 다시한번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후세 사람인 우리가 역사 속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행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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