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리즘 철학 - 간결하고 매혹적인 철학에의 탐구
조중걸 지음 / 한권의책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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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머스 에디슨이 남긴 명언들 중 하나가 바로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입니다. 천재로서 필요한 영감은 1%에 불과하고 나머지 99%는 노력이라는 뜻으로, 노력이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필수불가결한 것인지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되고는 하죠. 하지만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은 이 명언의 교훈을 180도 뒤집어 놓았는데, 에디슨이 한 말은 사실은 "천재는 1%의 영감이 없으면 99%의 노력도 소용없다"였다고 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1%의 영감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니, 아무래도 이 말로는 학생이나 자녀에게 노력하라고 잔소리할 때 쓰면 안되겠네요.

 

아포리즘 (aphorism) 이란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로 금언 ·격언 ·경구 ·잠언 따위를 말합니다 (출처: 네이버 사전). "너 자신을 알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등이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아포리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소크라테스나 데카르트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더라도 이 짧은 문장들은 여러 번 들어 익숙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포리즘들이 태어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안타깝지만 여기서 철학에 대한 대부분의 오해들이 생기는 것 같고요.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철학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책이 나왔다고 해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오늘 소개할 조중걸 박사님의 "아포리즘 철학" 입니다.

 

 

 

 

이 책의 저자이신 조중걸 박사님은 화려한 프로필만큼이나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신다고 합니다. 라틴어, 헬라어, 불어, 독어, 영어에 능하며 철학책 한 권을 쓰는데 9일이 걸렸을 정도로 열정적이고 재능있는 작가일 뿐만 아니라 철학을 뛰어넘어 생물학, 예술사, 수학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유하는 자유사상가입니다. 대학교수의 자리도 거부하고 자신의 사상을 개척해나가는 조중걸 박사님에 대한 자세한 기사는 로엔처치 사이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인문학의 왕초, 조중걸 박사 읽으러 가기).

본격적인 서평에 들어가기 전 이렇게 저자를 "찬양(?)"한 이유가 궁금하신가요? 그것은 이 책이, 이렇게 많은 교육과 경험 그리고 지식을 가지고 있는 저자가 쓴 책이라고 할 수 없을정도로 간단명료하며 정곡을 찌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약간의 오해의 소지가 있어 조금 설명을 덧붙이는 것이 좋겠네요. 보통 어떠한 학문을 오랫동안 연구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 일반 사람들에게 그 학문을 설명함에 있어 상당히 난해한 양상을 보이기 마련입니다. 애써 쉬운 말로 설명하려고 해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선 결코 쉽게 들리지 않기 때문이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지적 수준의 차이가 크면 클 수록 오히려 소통이 어려워지고는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러한 장벽이 오히려 새롭게 학문으로 접근하려는 사람들에게 큰 방해가 되고 있는 것도 같아요.

하지만 이 책은 "인문학의 대가"가 집필한 책이라고 하기에는 이례적으로 담백하고 명료합니다. 난해한 표현이나 시적인 미사구를 과감하게 배제하고 설명하지 않는 전문용어의 사용 역시 극히 제한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지식만 가지고 책을 읽어나간다면 "읽으면서 더욱 난해해지는 것"이 아니라 "펼쳐져 있던 조각들이 하나씩 하나씩 맞추어져가는 느낌"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포리즘 - 핵심으로 시작하기

 

 

처음에도 설명했듯이 아포리즘이란 깊은 지식을 축약한 형식으로서 "진한 엑기스"에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엑기스만 보고서 그것이 원래 어떤 형태였는지, 어떠한 모습이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엑기스의 성분은 그 원래의 모습에 대한 단서를 제공해주지만 그것만으로 본체의 특성을 파악하는데는 무리가 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아포리즘을 제시한 뒤 그 배경과 사상을 소개해나가는 것은 상당히 효과적인 루트입니다. 친숙한 아포리즘을 통해 대강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고, 철학자에 대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으며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전체적으로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는 69개의 아포리즘을 따라가다보면 고대에서 근대, 그리고 현대로 흐르는 철학사의 흐름 역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의 아포리즘과 일맥상통하거나 정면으로 반박하는 아포리즘의 경우 저자는 이를 다시한번 확인시킨 뒤에 간단한 설명을 덧붙입니다. 때문에 다시 예전의 아포리즘으로 돌아가 읽어본 뒤 두 아포리즘을 스스로 비교해보면서 발상과 논리의 차이를 분석해보는 것 역시 철학적 사고를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철학은 하나의 활동으로서 일종의 검증 체계이다. 그것은 과정의 문제이다. 따라서 철학은 가르쳐지지 않는다. 가르쳐지는 것은 다만 철학하는 법일 뿐이다." (머릿말 중, 4페이지)

 

옛 속담에 "물고기를 주지 말고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과를 알려줄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결과에 도달할 수 있도록 그 과정을 가르쳐주라는 뜻으로서, 일반적으로 교육의 이상향으로 표현되고는 합니다. 저자의 말처럼 철학은 가르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일괄적인 교육에 익숙해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더 어렵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대학을 다닐 당시 음악에 철학적으로 접근한 학자들의 저서를 함께 토론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Ernst Kurth 등을 들 수 있는데요, 바그너의 작품세계에 대한 쿠르트의 접근은 난해하다못해 범우주적(?)이어서 처음 세미나 때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저 뿐 아니라 다른 동양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는데요, 그에 반해서 오스트리아와 독일 학생들은 상당히 적극적이었답니다. 듣고 보면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인데도 열심히 자기 의견을 피력하고, 모르는 것이나 애매한 것은 그냥 넘어가지 않는 경향이 있었죠. 모든 것을 다 이해한 후에 토론에 참여하려던 저와는 달리, 어렸을 때부터 철학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나 거리감이 없던 학생들은 철학의 의미가 "완전히 다 이해한 것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것을 이해해나가는 과정, 알아나가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철학은 곧 모든 것에 의문을 던지고 그것에 대해 사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 완결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죠.

 

 

 

철학에 대한 오해 그리고 장벽

 

 

참 바보같은 일이지만, 우리들은 어떠한 것을 제대로 알기 전 먼저 선입견을 가지고, 그 선입견에 따라 행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철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개월 전의 일이지만, 그간 읽었던 몇 권의 저서만으로도 그동안 제가 가지고 있던 오해가 대단히 일차원적이고 무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아직 철학에 대해서 무언가를 이해했다라고 할 수 있을만한 단계는 전혀 아니지만, 처음으로 알아나가는 과정에서조차 이러한 오해의 장벽에 부딪치게 된 것이죠.

 

흔히 무신론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독일의 철학가 니체의 "신은 죽었다 (때때로 '신은 없다'라고 오역되기도 합니다)"를 떠올립니다. 신의 존재를 정면으로 부정한 발언으로서, 오늘날의 기독교에서는 이 발언 때문에 니체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확실히 무신론자인 것만큼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발언이 가지고 있는 배경을 알게 된다면 이 짧은 아포리즘이 품은 뜻은 오해하고 있던 것과 180도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인식론상의 합리주의에 내재한 가장 큰 문제는 그것이 경험의 범위를 넘어선 곳에서도 이성을 적용시킨다는 데 있다. 신은 당연히 우리 감각인식을 넘어선 곳에 있다. 그러므로 신의 존재 유무는 우리가 이성의 작용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말할 때는 합리적인 인식론에 있어서의 신이 소멸됐다는 의미이다 (...) 이때 니체는 당신들의 신이 죽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지, 신 일반이 죽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181-182페이지)

 

비트겐슈타인 역시 우리의 인식 체계를 벗어난 형이상학, 미학, 신학 등을 이론적인 학문으로 정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주장 역시 오해되어 받아들여짐으로 그가 이러한 학문들을 부정했다고 비판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한 것은 우리의 인식은 단지 경험한 것을 거울로 비추어보는 것에 그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것"은 지적 탐구의 대상이 되지 못할 뿐, 그 존재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포리즘을 이해하고자 할 때는 그 맥락과 배경 또한 앞뒤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것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아포리즘이 짧고 명료하면 할 수록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바로 이러한 철학에 대한 장벽과 오해 사이에서 중재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철학, 그 보이지 않는 끝을 향해

 

 

철학이라는 학문은 시작하면 끝이 보이지 않는 블랙홀과도 같아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더 깊이 빨려들어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해가 될 듯 하다가도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와 있는 것이 비단 저 자신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위로를 받을 정도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학을 전공하지 않는 일반 사람이라도 한번 그 매력에 빠져들면 놓치고 싶지 않아하는 것은, 철학이 수 많은 천재들이 오랜 세월동안 일구어온 지식적 총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나긴 세월을 거쳐 수 많은 사람들 - 대부분 저 자신보다 뛰어나고 훌륭했던 사람들 - 이 살아가는 것에 있어 근본적인 의문을 가지고 자기 나름대로의 결론에 도달하려 평생 노력한 과정을 압축하여 습득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아포리즘은 이러한 압축된 과정을 다시한번 축약하여 탄생시킨 엑기스 중 엑기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적 아포리즘들이 매혹적인 이유는 그것이 간결하고 함축적이며 명석한 우아함을 가지기 때문이다. 심미적 우아함을 위해 간결함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290페이지)

 

그리고 이러한 아포리즘들을 통해 비추어보는 여러 철학자들의 세계는 신비롭고 흥미진진하기까지 합니다. "아포리즘 철학"을 통해 만나는 철학의 묘미는 무엇보다도 어렵지 않으면서도 명확한 설정입니다.

 

"필자는 배타적이고 아카데믹한 전문적 용어나 탐구양식을 배제하였다. 중요한 것은 전문적 지식이 아니라 건전한 상식이기 때문이다. 철학은 어렵지만 명제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 (291페이지)

 

"나의 잘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진정한 "소통과 이해"를 위한 철학 이야기. "아포리즘 철학"과 함께 새롭게 철학에 대한 호기심을 깨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부담스럽지 않은 짧은 챕터를 하나 하나 읽어나가다보면 어느새 철학의 매력에 푹 빠져버릴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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