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르지 말고, 인생을 안단테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김수연 옮김 / 에이미팩토리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시작할 때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라는 독일어. 그도 그럴 것이, 워낙에 문법이 복잡하기 때문에 문장 하나를 만드려면 생각해야 할 것이 한 두개가 아니랍니다. 그 때문에 초보들에게는 독작하는 것이 부담스러울뿐더러 혹시라도 창피당하지 않을까 불안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을거에요. 게다가 영어와는 달리 독일어의 동사는 후치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는 끝까지 주의 깊게 듣지 못하면 엉뚱하게 오해할 수도 있답니다. 듣고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자신이 스스로 말하려고 하면 더 난감해지곤 합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에서 점점 (어학원 다닐 돈이 없었는지라 사실상 야매로) 독일어에 익숙해지면서, 독일 특유의 유머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답니다. 흔히들 무뚝뚝하고 유머라고는 모를 것 같은 독일 사람들을 비꼬며, "독일 사람들은 오후 5시가 되면 웃으러 간다"라고들 합니다. 너무 무뚝뚝하고 고지식해서 웃는 것에도 시간을 정해놓는다는 농담인데, 그렇게 틀린 말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특유의 고지식함이 오히려 유머로 승화된 것이 바로 독일식 유머인 것 같아요.

 

독일식 유머의 큰 특징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시니컬한 말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토당토 않게 시니컬하게 말을 던지는가 하면 이상한 (하지만 은근히 납득가는) 논리로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 이것을 얼마나 교묘하게 해내냐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노력하는 천재였던 베토벤이 남긴 많은 편지들을 읽어보면 괴팍하기로 소문난 이 악성 역시 그러한 투박함 속에 유머러스함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이 넝마주이 남작아,

자네 눈이 나쁜게 차라리 고맙군.

앞으로는 가끔 내가 유쾌한 기분일 땐, 그 기분 좀 잡치지 말아주게나.

어제만 해도 츠메스칼 도마노베치스식 개똥철학을 듣고 나니 무척 울적해졌어. 악마에게나 잡혀가게."

(1798년 츠메스칼 남작에게 보낸 편지)

 

글로만 읽으면 마치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지만 베토벤과 츠메스칼 남작은 무척이나 각별한 사이였으며, 베토벤은 그에게 이런 장난스런 편지를 줄곧 보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편지는 이렇습니다.

 

"크리스티네,

내 초상화에 대한 얘기를 어제 들었소. 당신이 이 일을 좀 더 신중하게 처리하기를 바랍니다.

만일 그것을 F를 통해 되돌려준다면, 그 불유쾌한 B나 왕얼간이 요제프가 중간에 끼어들어 나를 골탕먹이는 일에 사용하지 않을까 걱정이에요.

그렇다면 정말 짜증나는 일이 아니겠소. (중략)

신문사에 글을 내어 이제부터 내 승낙 없이는 어떠한 화가도 내 초상화를 그릴 수 없도록 하겠소. (중략)

안녕, 악마가 당신을 데려가길."

(1798년 크리스티네 제라르디에게 보낸 편지)

 

마음에 들지 않는 초상화가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고 화가난 베토벤이 쓴 편지입니다. 개인적으로 베토벤의 편지 중 제가 가장 좋아하는 편지 중 하나네요. 뭔가 화가 난 상황에서도 욕지거리를 하거나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니라 특유의 시니컬함으로 펴부어대는 것, 독일 사람들의 큰 매력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장황하게 "독일식 유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한 이유는 오늘 소개할 책에서 도저히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유머이기 때문입니다. 저자인 호어스트 에버스 (Horst Evers) 씨는 스스로를 "베를린의 스토리텔러"라고 소개하는 독일의 카바레티스트 (우리나라의 "카바레"와 혼동하시면 큰일입니다^^ 고유의 장르인 카바레트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신 분들은 클릭! 해주세요^^) 이자 작가입니다. 전통적인 카바레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에서는 에버스 씨 같은 카바레티스트의 인기나 영향력은 정치인과 비교되기도 합니다. 인기 카바레티스트의 경우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많은 반향이 일어나고는 하니까요.

 

 

 

저자 Horst Evers씨

 

 

"서두르지 말고, 인생을 안단테" (원제: Für Eile fehlt mir die Zeit - 직역하면 "서두르기엔 시간이 없군"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는 에버스 씨의 따끈따끈한 신간입니다. 원본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생생한 번역에 읽는 내내 정말 유쾌하고 즐거웠답니다.

 

 

 

 

일상의 소소한(?) 일들을 적어나가는 형식의 에세이 한 편 한 편은 나름의 기승전결을 가지고 진행됩니다. 가끔은 기발하고 가끔은 재미있지만 가끔은 "제발 이 일은 현실이 아니길!" 이라고 외치게 되는 재앙같은 에피소드를 읽어나가면서, 이것이 과연 그가 직접 경험한 일인지 아니면 재미를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인지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이야기가 현실인지 그렇지 않은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결국 에버스씨가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겪은 경험담이 아니라,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 다른 사람의 위선을 비웃으면서 우리 자신도 고수하는 위선의 가면들, 불공평한 현실에 대처하는 불공평한 우리들의 모습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이 비판에 마음 상할 일이 없는 것은 아마도 그의 지나치게 "악의없고 선량한" 접근방식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놀림을 당하면서도 오히려 웃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에버스 씨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인이나 이웃들이지만 이들 역시 에버스 씨의 (때로는 눈물나는) 신랄함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문화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일 수도 있겠네요. 동거녀 (독일어로는 Lebenspartner, 즉, 인생의 동반자라고 한답니다) 와 그녀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에 대해 쓸 때도 뭔가 애틋하거나 미화하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아마도) 그들의 실제 모습보다 극대화시켜 회화화 한 느낌이 드는 정도니까요.

 

천신만고 끝에 그가 그라사우 (바이에른의 소도시) 에서부터 베를린까지 가지고 온 도자기 접시를 본 그녀의 여자친구가 말합니다.

 

"우웩,뭐가 이렇게 안 예뻐! 당장 지하 창고에 갖다 놔."

나는 내가 아는 절박한 단어들을 총동원해, 일주일 동안 어떻게 이 접시를 끌고 바이에른 주 전역을 돌아다녔는지 설명했다. 그러자 자애로운 여자 친구가 공감하며 말해주었다.

"아...... 그랬구나? 그러면 지하 창고로 내려가는 계단 몇 개쯤은 대수도 아니겠네. 그런데 잠깐! 이거 무슨 냄새야?"

나는 다시 한 번, 하지만 이번엔 훨씬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 넓은 바이에른 주의 산골마을들을 이동하는 내내 이 접시를 끌고 다녔고, 그것을 위해 팬티와 티셔츠가 희생돼야만 했다고 알려주었다.

여자친구는 비당하게 말했다. "베를린 장벽을 만들 때도 우린 많은 희생을 치렀고, 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투자했어. 그것을 완성하는 데는 분명 7일보다 더 거렸승ㄹ 거야. 그렇지만 그런 이유로 베를린 장벽을 계속 그대로 놔둬야 했을까?"

나는 장시간 설명으로 짐짓 쉰 목소리로, 분단과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장벽이자 민간인 대상의 발포 명령을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과 아무런 죄도 없는 '도자기 접시'를 비교하는 것은 범주의 오류라고 중얼거렸다.

나의 논리적인 응수에, 여자친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조용히 다시 말을 꺼냈다.

"네가 접시를 지하 창고에 갖다 놓는 동안,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께." (48~49 페이지)

 

단순한 접시를 가지고 그들이 벌이는 논쟁은 엉뚱하다 못해 기발하기까지 합니다. 사소한 것 하나에도 신념을 가지고 주장을 굽히지 않는 에버스 씨. 아마 그런 그의 모습에서부터 세상의 너무 당연한 일에 "왜?" 라는 궁금증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두번째 봄으로 이어지면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이러한 그의 엉뚱한 모습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자신의 딸이 너무 똑똑해질까봐 교육을 방해하는가 하면 옆집 아버지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위키백과를 조작하기도 합니다. 아주 작고 사소해보이는 일도 그에게는 대단히 철학적인 주제로 변신하곤 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짜증나고, 화나고, 불편한 일들이 오히려 우스운 일들로 바뀌는 것이 유쾌하기까지 합니다.

 

작년 한국으로 들어온 이후 한국의 문화에 대해 참 많은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중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시도 때도 없는 욕설" 이었습니다. 예쁘장한 얼굴의 중고등학생서부터 46단 콤보로 육두문자를 날리는가 하면, 욕설이 섞이지 않은 문장을 찾는 것이 오히려 힘들 정도로 지나친 욕의 일반화는 예나 지금이나 참 불편한 부분입니다. 물론 나름 적응해서 많이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독일어권에서는 심한 욕설을 쓰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니컬을 넘어 야유를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가끔 남을 놀리거나 비판하느라 싸우는 것을 보면 창의적이다! 라는 생각마저 들곤 합니다. 개인적인 취향과 문화의 문제이지만 굳이 욕을 하고 싶고 화를 내고 싶은 경우가 있다면 이런 식으로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합니다 ㅎㅎ

 

 

 

 

애초에 이 책의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되도록 많이 적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만, 본의 아니게 이것 저것 이야기하다보니 글이 다시 길어져버렸네요. 하지만 더 빨리, 더 멀리, 더 높이에 지친 당신이라면, 삐딱하게 부지런한 개미들을 비웃는 현대판 베땅이 호어스트 에버스 씨의 책을 읽으면서 잃어버렸던 유머와 여유를 되찾아보는 것은 어떨까요? 한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읽는 동안 그것이 실소이건 폭소이건 아니면 비웃음이건, 시종일관 입가에 미소를 띄고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바쁘고 각박한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이 자신을 위해 마련할 수 있는 최소한의 휴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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