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둠즈데이북 1~2 세트 - 전2권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
코니 윌리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아작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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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인구의 3분의 1, 아니 절반까지 죽었다. 그것은 쥐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천벌이었다. 최후의 날이 도래했다고 생각했다. 어디는 마을 전체가 몰살해 죽은 사람을 묻어줄 사람도 없었다. 속수무책으로 퍼지는 흑사병의 공포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도망치려했지만 그것은 더 병을 퍼뜨리는 일이 됐다. 그렇게 퍼진 흑사병은 마을과 마을, 도시와 도시를 박살냈다. 그 병이 진행되는 모습도 끔찍했다. 고열을 동반하면서 환자는 망각을 보고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겨드랑이나 사타구니 등에 큰 멍울이 생긴다. 그 멍울은 끔찍하게 커지고 어떤 감염자는 눈이 썩어들어가 손으로 긁어내야 했다. 1300년대 의사들은 멍울을 째보기도 했지만 터진 고름에 노출되어 병을 옮기거나 동맥을 건들여 죽이기 일쑤였을 것이다. 항생제라는 것은 커녕 아스피린도 없던 시절이다. 약초라는 걸 달여서 붙이거나 먹이는 게 전부였던 시기였다. 피부 밑의 핏줄이 터지면서 피부가 검게 변하면서 죽는다고 해서 흑사병으로 불렸다. 사람들은 이 공포스러고 괴기스러운 죽음에 좌절했다. 이런 떼죽음이 하늘의 분노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했고, 여자, 유대인들이 하늘의 분노를 불러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을 산 채로 태워죽이거나 목을 매달았다. 





흑사병은 그저 피부가 검게 변하면서 죽음에 이르는 병으로만 알았다. 코니 윌리스의 "둠즈데이 북(Doomsday book)"은 흑사병이 발병하던 초기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처참했다. 글이 줄 수 있는 상상력의 최대치를 살려내는 문장들이 여기저기서 바이러스처럼 뇌 속을 돌아다니는 것 같았다. 더러운 진흙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꽃이 핀다. 세상의 끝에서 인간다움에 대한 진실이 나타난다. 키브린은 성녀였고, 로슈 신부는 성자였다. 흑사병은 신의 천벌도 분노도 아닌 그냥 질병이었다. 무시무시한 병 앞에서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에 떨었다. 서로를 의심과 비난으로 쳐다보며 신의 분노를 잠재울 희생양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키브린은 이 병이 어디서 왔으며 어떻게 퍼지는지 알고 있었다. 아픈 사람들을 죽음의 사신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현대 지식을 총동원하며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그는 정해진 역사를 바꿀 수 없었다. 시간 모순 때문이다. 이미 벌어진 일은 미래에서 왔다고 할지라도 바꿀 수 없다는 것. 키브린은 역사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나마 희망을 걸었던 것은 중세시대를 뒤흔들었던 흑사병의 사망률은 2분의 1 혹은 3분의 1이었다는 것에 기댔다. 그러기에 최선을 다해 그들을 살리고자 노력했다. 


이미 과거는 정해져 있지만, 키브린은 그 결론과 관계없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사람들은 쉽게 진행되는 사건의 결론을 내고, 그에 따라 해야할 행동을 계산적으로 따지면서 이익을 쫓아 행동한다. 우리들에게 키브린은 묻고 있다. 지키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결말에 기대지 말고 나아가라고. 세상에 결정된 건 아무것도 없으며 무엇을 하든 나 자신을 변화시키며 나아가는 것. 그리고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기대며, 더 큰 자신이 되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책 앞머리에 있는 존 클린 수사의 기록이 그것을 말한다.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이 모든 일이 시간에 파묻히지 않도록, 그래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이 모든 일이 우리 후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이 땅 사악한 존재의 손아귀에 놓인 이곳에서 일어난 수많은 재앙을 보아온 나는, 이제 죽은 자들에 둘러싸여 죽음을 기다리며 그동안 내가 목도한 모든 일을 여기 적는다. 


기록은 글쓴이와 함께 소멸되지 않아야 하고 노동은 그것을 행한 사람과 함께 무위로 돌아가지 않아야 하므로, 내 오늘 이 작업을 계속하기 위해 양피지를 남기니, 만일 단 한 사람이라도 살아남아 아담의 후예 중 그 누구라도 페스트로부터 도망쳐 내가 시작한 일을 계속 이어갈 수만 있다면... "   - 존 클린 수사, 1349년



우리는 계속 나아가야 한다. 인간의 길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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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우주를 보다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 에이도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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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에 대해 이렇게 아름답게 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지성일 것이다. 그 지성을 닮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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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 / 강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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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구름들이 무슨 색이지?"
"그야, 하얀색이지요, 주인님."
그가 살짝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래?"
나는 구름을 다시 보았다. "회색도 있네요. 눈이 올 건가 봐요."
"자, 그리트, 넌 더 잘할 수 있어. 네가 다듬던 야채들을 생각해 봐라."
"야채들이오, 주인님?"
그가 머리를 조금 움직였다. 그를 다시 짜쯩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내 턱이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네가 어떻게 흰색들을 분리해는지 생각해 봐라. 순무와 양파, 그것들이 같은 흰색이냐?"
갑자기 나는 깨달았다. "아니오. 순무는 흰색 안에 초록 빛깔이 있고, 양파는 흰색 안에 노란 빛이 있습니다."
"그래, 맞았다. 이제 저 구름 속에 어떤 색깔들이 보이지?"
"푸른색도 약간 있고요." 한동안 구름을 관찰한 후 나는 얘기했다. "그리고 ....... 음, 노란색도 있습니다. 그리고 약간의 초록색도 있네요!" 나는 너무 흥분해서 손을 뻗어 가리키기까지 했다. 살아오면서 내내 구름을 보아왔지만, 그 순간 처음으로 구름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28쪽

"네 주인은 특별한 사람이야." 반 레이원후크는 계속 말했다. "그의 눈은 황금으로 가득 찬 방만큼이나 가치가 있지. 그러나 가끔은 그도 자기가 그랬으면 하는 세계만 보곤 해. 실제로 세상은 그렇지 않은데 말이야. 자기의 그런 시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초래할 결과들을 이해하려 하지 않아. 그는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 작품만을 생각한단다. 네 생각을 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너는 조심해야......." 반 레이원후크가 말을 멈췄다. 그의 발소리가 계단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무얼 조심해야 하나요?" 나는 속삭였다.
"너 자신으로 남아 있도록 해라."
나는 턱을 들어올리며 물었다. "하녀로 남아 있으란 말씀입니까?"
"그런 말이 아니야. 그의 그림 속에 있는 여자들...... 그 여자들을 그는 자기의 세계에 가둬놓고 있어. 너 역시 거기에서 길을 잃을 수 있어."-235쪽

"너도 알겠지만,"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림에는 그게 필요해. 진주가 반사하는 빛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림은 결코 완성되지 못해."
나도 알고 있었다.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너무 이상해서 그림을 오래 볼 수는 없었지만, 진주 귀고리가 필요하다는 것은 즉시 알 수 있었다. 진주 귀고리가 없는 그림은 나의 눈과 입, 흰 슈미즈, 내 귀 뒤의 어두운 공간, 모든 것들을 따로따로 노레 했다. 진주 귀고리는 이 모두를 함께 모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으로 그림은 완성될 것이다.
하지만 그 진주 귀고리는 또한 나를 거리로 내몰 것이다. 반 라위번이나 반 레이원후크, 그 누구에게서도 그가 귀고리를 빌리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는 카타리나의 귀고리를 보았고, 내 귀에 달게 할 귀고리는 바로 그것이다. 그는 자기 그림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그 때문에 초래될 다른 문제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것을 사용했다. 반 레이원후크가 내게 경고했던 점이기도 했다. -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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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숲을 거닐다 - 장영희 문학 에세이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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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돈키호테를 구매했다. 아주 오랜 기억 속, 그러니까 중학교 때였던가, 그때 즈음 세계문학전집으로 읽었던 그 이야기를 온전히 다시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지금 소개하려는 책 '문학의 숲을 거닐다'(장영희)의 영향이 크다. 사실 우리가 본 고전의 대부분은 청소년을 위한 세계문학전집이나 교과서 등을 통하여 극히 일부분만 접하거나 각색된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제 어른이 되어 다시 고전을 잡는 일은 그래서 어렵다. 알고 있던 내용의 반전을 기대한다면 나쁘지 않지만, 반대로 시대를 넘어 소통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고전을 새롭게 접하는 일은 때론 비장한 마음가짐까지 필요하다. 하지만 그런 마음가짐을 먹는 데에 위의 책이 도움이 됐다. 


비단 그뿐일까.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12월 중순부터였다. 한반도의 남쪽은 대통령 선거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고, 인권변호사 출신의 후보가 독재자의 딸을 역전하여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세간의 기대가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선거 결과는 독재자의 딸이 투표자 절반의 지지를 받아내며 대통령에 당선되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저기서 다시 '멘붕'의 도미노가 시작되었고, 그 많던 SNS와 블로그의 페이지는 한참동안 잠잠해졌다. 이후 개봉된 영화 '레미제라블'은 그 혁명적 내용 때문인지 시대의 '힐링 영화'로 등극하면서 멘붕을 당한 많은 이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였다. 



출처: http://www.arte365.kr/?p=3203출처: http://www.arte365.kr/?p=3203



대선의 결과보다 더욱 충격적인 소식이 내 주위에 전해졌다. 대학시절 아주 절친했던 내 후배의 죽음이다. 그의 선택을 매번 존중해 주었으나 그의 마지막 선택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삶이 그에게 준 충격이나 슬픔, 아픔 등이 얼마만했는지 알 길이 없었으나 그를 아끼고 좋아했던 많은 선후배 동기들은 크나큰 슬픔 속에서 그를 보내야 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보았던 이 책은 내 복잡하고 종잡을 때 없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는 길을 열어 주었다. 영문학자 장영희 씨는 영미 문학의 고전 작품들을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힘들고 어려운 삶을 이끌어주었던 매개체로 소개하고 있다. 항상 그래왔듯, 치유는 문학의 소명이자 임무이다. 문학은 항상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치열한 삶을 반영해 주었고, 그것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람들의 가슴에 남아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고 있다. 


삶을 살아가다 보니 젊은날 꿈꾸었던 것들은 이제 저 멀리 추억의 한편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 꿈을 지키기 위해 살았던 내 후배의 삶은 언제나 자신을 먼저 일으키고 희생하고 용기 내었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모든 것을 내려놓기 전, 그를 붙잡아 줄 무언가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몰려든다. 모두가 치유를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치유가 필요한 곳에는 그 빛이 닿지 않는다. 그런 이들에게 문학이, 그리고 문학을 이야기하는 이 책이 한줄기 따뜻한 빛이 되어 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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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
조지 오웰 지음, 도정일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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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내가 좀더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일만 하다가 도살장에 팔려간 말 복서가 생각난다. 사실 이 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 중의 하나다. 때로는 '성실' 때로는 '희생'으로 떠받들어지지만, 사실은 '무기력'의 다른 말일 수도 있고, '대안없음', '출구없음'의 비슷한 말이기도 하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체제와 시스템에 대한 무지는 결국 우리에게 성찰 없는 '희생'과 비판 없는 '성실'만을 요구할 뿐이다. 이런 체제가 바라는 것은 저항 없는 '무기력'의 상태이다.

길가에서 걸인이 굻어죽어도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유죄다. 하물며 생때같은 어린 목숨들이 고작 성적 때문에 제 목숨을 아스팔트 위로 던져버려도 꿈쩍도 안하는 나라에서 사는 우리 모두는 지금 무기력하다.


선거로 사람을 잘 뽑자는 이야기도, 나만 잘 하면 된다는 말도, 결국은 그 무기력 속에서 희망도 출구도 없는 세상을 향한 헛발질에 불구하다. 무지와 무기력은 결국 권력의 타락을 부추기고 방조하는 일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을 오가는 정치권력이 내온 결과는 처참할 뿐이다. 모든 불행한 일은 언제나 외부의 적(대부분 북한, 때때로 중국) 때문이라며 외치는 보수 언론은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쥐고 있다. 국 민의 충견이 아닌 권력의 충견 노릇을 하는 검경부터, 체제에 순화되어 법의 정의를 고민하기 보다 승진과 권력에 욕심을 부리는 판사들, 빈곤의 그늘을 키우기에 여념없는 부자들, 교육의 숭고한 가치를 버리고 지식 장사에 나선 사학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안주하며 자신의 욕심만 채우고 있는 정치가들. 이 모든 것들이 나와 당신이 만든 그 '성실'과 '희생'이 만든 댓가다.

권력을 탐해 그에 아부하거나 기생하려는 자들이 넘쳐나는 사회는 곧 전체주의 사회이며 파시즘 사회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무지에서 벗어나고 무기력을 깨지 않는다면 공포의 마왕이 하늘에서 내려와 모두를 집어삼키고 말 것이다. 끔찍한 미래를 막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은 무잇일까?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그 해답을 마련해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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