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紫禁城을 지키는 수호신 獅子>

中 國

<第 二 部 歷史>

3. 中国의 歷史的인 事件 年表


  BC141년/ 무제(武帝)의 즉위(即位) (~87). 익년(翌年)을 건원원년(建元元年)으로 함.(元号가 制定됨)

 


 ※ 무제(武帝)






 무제(武帝) 기원전 156년-기원전 87년
 재위 : 기원전 141년-기원전 87년
 전한(前漢)의 제7대 황제
 시호는 철(徹). 묘호(廟號)는 세종(世宗). 정식적인 시호는 효무황제(孝武皇帝)
 유방(劉邦)의 증손(曾孫)으로, 부(父)는 경제(景帝), 생모는 왕 씨(王氏)
 황태자 전(前)의 왕호(王號)는 교동왕(膠東王)
 평양공주(平陽公主) 등 3명의 동모자(同母姉)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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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정(遠征)>

 그 후, 무제(武帝)는 그러한 체제와 <문경(文景)의 치(治)>에 힘 입었던 다대(多大)한 축적을 배경으로, 당시 숙적이었던 흉노(匈奴)에의 원정을 개시했다. 그것은 또 유방(劉邦)이 목돌선우(冒頓單于)에게 패했던 이래, 한(漢)은 줄곧 흉노(匈奴)에 대해서 저자세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무제(武帝)에 들어서 다시 반공(反攻)을 획책했던 것이었다. 그러자 무제(武帝)는 우선, 일찍이 흉노(匈奴)에게 져서 서쪽으로 물러나 있었던 <대월지(大月氏)>에 <장건(張騫)>을 파견했다. 그리고는 그 대월지(大月氏)와 동맹을 맺어서 흉노(匈奴)에의 협공을 기도(企圖)했다. 하지만 그 동맹은 실패했고, 그래서 또 그 계획은 무위로 돌아갔다. 하지만 또 그때, 나름대로의 수확은 있었다고 할 것이었고, 그것은 또 그때 파견되었던 장건(張騫)에 의해서, 그때까지는 막연하게만 알고 있었던 북서부 지방의 정세를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또 그 후, 그 일은 대(對) 흉노 전(戰)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기원전 3세기의 진(秦)과 북방민족 도(圖)>
서쪽으로부터 WUSUN=烏孫, YUEZHI=月氏, XIONGNU=匈奴, DONG-HU=東胡



 ※ 월지(月氏=Yuèzhī)는, 기원전 3세기부터 1세기경에 걸쳐서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존재했던 유목민족과 그 국가 명 또는 터키계의 민족 또는 그 나라를 이름. 기원전 2세기에 흉노(匈奴)에게 져서 중앙아시아로 이동했고, 그로부터 대월지(大月氏)로 불리게 되었다. 그 시대에는 동서교역(東西交易)이 활발했다.

 ※ 장건(張騫-?부터 B.C.114)은, 중국 전한(前漢) 때의 외교가였고, 자(字)는 자문(子文)이었다. 그리고 인도 통로를 개척했던 사람이었고, 서역 정보를 가져왔으며, 동서(東西)의 교통과 문화교류의 길을 열었던 사람이었다.

 아무튼 그 후, 무제(武帝)는 위청(衛靑)과 그의 조카였던 곽거병(霍去病)을 장군으로 등용해서 흉노와 상대했고, 그 결과 몇 번이나 이겼다. 그러자 그때부터 서역(西域)은 한(漢)의 영향아래로 들어왔다.

 위청(衛靑-?부터 B.C.106)은, 중국 전한(前漢) 무제(武帝) 때의 무장이었고, 자는 중경(仲卿)이었다. 그리고 흉노정벌에서 많은 공을 세웠으며, 그 공으로 대사마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인물이었다.(후술 또는 생략)

 ※ 곽거병(霍去病-? 또는 B.C.140년부터 B.C.117)은, 중국 전한(前漢) 때의 명장(名將)이었고, 무제(武帝) 때에 위청(衛靑)과 함께 흉노토벌에 큰 공을 세웠던 인물이었다.(후술 또는 생략)

 그 후에 또, 무제(武帝)는 이광리(李廣利)에게 명해서, 대완(現 중앙아시아의 페르가나 지방)을 정복했고, 그곳에서 나던 한혈마(汗血之馬)를 확보(獲得)했다.

 이광리(李廣利-?부터 B.C.90)는, 중국 전한(前漢) 기의 무장이었고, 기원전 104년에 대완(大宛)에 원정하여 서역 여러 나라를 복속시켰던 공으로 해서후(海西侯)에 봉해졌다. 그러나 뒤에 흉노토벌에 실패하고 선우(單于)에게 피살되었다.

 
※ 페르가나(Fergana)는, 중앙아시아 파미르고원 북서부, 시르다리야 강 중·상류에 있는 지방으로,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였으며, 지금의 우즈베키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에 걸쳐있다.




<동그라미 안이 페르가나>



 ※ 한혈마(汗血之馬)는, 피땀을 흘릴 정도로 매우 빨리 달리는 말이라는 뜻으로, 아라비아에서 나는 명마를 이르는 말이며,
그리고 아래 그림은 관우(關羽)가 타던 적토마(赤兎馬)를 그린 것으로, 한혈마(汗血馬)를 이미지로 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또, 남월국(南越國)을 원정해서 군현(郡縣)에 소속시켰으며
 조선(朝鮮)에는 한사군(漢四郡)을 설치했다.(이견이 있음)

 남월(南越)은, 중국 한(漢)나라 때, 지금의 광둥성(廣東省)과 광시성(廣西省)과 베트남 북부지역에 걸쳐있었던 나라였으며, 기원전 203년 한나라의 관료였던 조타(趙佗)가 독립해서 세웠던 나라였다. 그리고 뒤에 한 고조(高祖)에 의해서 왕으로 봉해진 후, 93년간이나 계속되다가, 기원전 111년에 한 무제(武帝)에 의해서 멸망했다.






 ※ 한사군(漢四郡)은, 기원전 108년, 중국 전한(前漢)의 무제(武帝)가 한반도에 설치했던 4개의 행정구역으로, 낙랑군과 임둔군 그리고 현도군과 진번군을 이름. 뒤에 고구려에 병합됨.

 그 결과, 한(漢)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그러자 또 무제(武帝)는 태산(泰山)에서 봉선의식(封禪儀式)을 거행했으며, 스스로 자신의 공적을 하늘에 고(告)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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