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쟌-바티스트 베시에이르(Jean-Baptiste Bessieres)
1768년 8월 6일-1813년 5월 1일
프랑스혁명전쟁·나폴레옹전쟁 기의 군인. 제국 원수. 뮤라의 친구.
뮤라와 란누가 나폴레옹의 여동생 카로리누와의 결혼을 둘러싸고 경쟁하고 있었을 때
그는 뮤라의 편을 들었다고 한다.
<생애>
그는 남 프랑스의 카오르(Cahors-프랑스남부 피레네 지역권에 있는 도시) 근교에서 태어났다.
<Cahors의 심벌에 해당하는 Valentre 다리>
그는 처음에는 동부 피레네軍에 소속된 후, 1796년 나폴레옹의 이탈리아원정 시에 그의 지휘 하로 들어갔다. 그는 이집트 원정에도 참가했고, 이후 나폴레옹과 함께 유럽으로 돌아와서 마렌고 전투에서는 기병을 지휘했다. 그러나 그는 1804년에 원수로 임명되었지만, 그 인사는 평판이 매우 나빴다.<그때, 마르몬은 “베시에이르가 원수라면, 이 지구상의 인간들은 모두가 다 원수가 될 수 있다”라고 혹평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그의 냉정하고도 용감한 자질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1805년부터 1807년까지의 전쟁(아우스트리트, 예나 아우어슈테트, 아이라우 전투 등)에서 친위기병을 지휘했다. 그 후, 그는 반도전쟁에도 참가했고, 메디나델리오세코 싸움에서는 단독으로 승리했다.
<Battle of Medina del Rio Seco>
1809년에는 대육군에 복귀했고, 이어서 아스페른 에슬링 전투와 바그람 전투 등에 참전했다.
그 결과로 동년, 그는 이스트리아公의 칭호를 받았다.
그는 또 그 후, 스페인전선으로 돌아가서 맛세나의 지휘 하에 들어갔다.
그러나 곧바로 다시 귀환되었고, 보로디노 전투에 투입되었다.
그는 또 모스크바 퇴각 전에도 참가했고
이어서 1813년 5월 2일에 행해졌던 뤼헬전투 바로 전날에 부상으로 사망했다.
그가 죽었을 때, 나폴레옹은 매우 슬퍼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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