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二 部

 


 

 

 


<Union Flag>

 

 

 

 第 一 章

​ 그래서 결국, 그 두 사람은 <찰리 포트남>의 팔을 한 팔에 하나씩 끼고서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는 길을 횡단해서 <닥터 험프리즈>가 살고 있던 그 <호텔 볼리바르>의 작은방으로 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 방의 벽에 붙여 두었던 그림도 얼마 없었을 때였다. 그래서 또 그때는 샤워 실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때였기 때문에 당연히 습기(濕氣)도 적었을 때였다.

 그런 것을 봤을 때, 생명이 없는 것들은 대체적으로 생명을 가진 인간보다도 훨씬 더 빨리 변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래서였던지 <닥터 험프리즈>와 <찰리 포트남>도 그때와 비교해서 별로 변한 것이 없었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또,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의 벽 같은 것도 사람 얼굴의 주름보다도 더 빨리 벌어지는 것 같았으며, 벽의 페인트 색도 사람의 머리카락이 변하는 것보다 급하게 퇴색해서 집의 노후화도 더 빨라지는 듯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서 또 인간에게는 눈에 띄게 변화하지 않는 긴 시간에 걸친 노년(老年)이란 높은 평면(平面)에서의 안정기(安定期)란 것이 있지만, 그러나 또 집이나 방 같은 것에서는 거기서 일시정지 한다는 일은 결코 없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또 그때 <닥터 험프리즈>의 경우에서는 이미 그 장년(長年)의 높은 평면에서 안정을 하고 있는 듯이 보이고는 있었지만, 그러나 또 <찰리 포트남>의 경우에서는 아직 그 아래의 완만한 경사면(傾斜面)에 있었다고 할 수 있었고, 그래서 또 그는 노쇠(老衰)와의 싸움에서 의지할 수 있는 무기(武器) 같은 것을 찾고 있었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 그가 젊었을 때는 건강함과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러나 그 후에 술에 의지하게 되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또 그는 그 두 오랜 지인(知人)이 세월의 흐름에도 거의 변화 같은 변화를 하는 것을 보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또 그 <닥터 험프리즈>의 경우에서는 <볼리바르>와 <이탈리안 클럽>을 왕복하는 걸음이 처음 만났을 때보다는 조금 더 느려졌다거나 <찰리 포트남>의 경우에서는 술에 만취했을 때, 마치 곰팡이처럼 우수(憂愁)의 그림자가 점재(點在)하는 듯 하던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는 것 정도였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 * *

 아무튼 그때 <닥터 에드>는 그 방에 두 사람을 데려다 주고는 집에 있던 차를 가지러 가기 위해서 혼자서 그곳을 나왔었다. 그리고 그때도 그는 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러자 항구에서는 그때까지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노동자들이 그 불빛 아래서 철야(徹夜)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파라나 강> 위에 떠있던 널찍했던 <바지선(barge船)>에는 철탑(鐵塔)이 서있었고, 그곳으로부터 쇠기둥이 오르내리며 <즈씽, 즈씽, 즈씽...> 하는 소리를 내면서 강의 밑바닥을 계속해서 두드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또 그 소리는 마치 그의 귀에는 아프리카나 그런 원주민들이 치던 북소리처럼 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또 그 옆의 다른 <바지선>에서는 긴 파이프가 늘여져 있어서 강바닥으로부터 모래를 계속해서 빨아올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수면 밑의 기계에 접속해서 <고토고토, 가타가타...>라는 소리를 내면서 해안(海岸)에서 약 <반(半)마일>정도 떨어져 있던 강의 입구까지 운반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또 그해 <쿠데타> 후에 들어 섰던 새로운 대통령에 의해서 임명 되었던 지사(知事)는, 그 항구를 정비해서 <차코>의 해안으로부터 흘수(吃水-배의 아랫부분이 물에 잠기는 깊이)를 좀 더 깊게 하려고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는데, 그것은 또 수도(首都)로부터 객선(客船)들을 더 많이 불러들이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하지만 또 그 후에 <코르도바(Cordoba-아르헨티나 중부에 있는 도시)>의 제2군(軍)에 의해서 다시 <쿠데타>가 일어났고, 그러자 그 지사(知事)는 해임되었으며, 그래서 그 계획도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래서 또 그 덕분에 <닥터 에드>는 편안하게 잠을 잘 수가 있어서 좋았다고 할 수 있었는데, 어쨌든 또 그 뒤에 들렸던 이야기에 의하면 <차코>의 지사(知事)는 자기 측의 항구를 정비하는데 드는 비용을 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었고, 그것은 또 수도(首都)에서 찾아오던 객선(客船)의 수가 건계(乾季)에는 이미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던 것이다. 거기다 또, 그곳에서 북쪽의 <파라과이>로 가는 승객들은 항상 더 작은 배로 갈아타야 했던 것도 문제가 되었다고 했는데, 그러자 또 그 뒤에도 여러 가지의 말들이 많았다고도 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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