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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들판은 참 쓸쓸하다.

이등병의 머리처럼 밑동만 남은 논이 그렇고

바짝마른 콩자루들은 가축들의 여물이 되거나

장작더미와 함께 타들어갈 일 밖에 남지 않았다.

 

 

어쩌면 책을 읽기에, 사색을 하기에

가을은 가장 나쁜 계절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짧아서 뭘 해볼래도 금방 지나가 버리기 일쑤고

뺨을 스쳐가는 바람이 말을 거는 날엔 아무일도 손에 잡히지 않으니까.

 

 

쓸쓸하고 애틋한,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은 계절.

올 가을 마지막 주목신간은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에 의한 것들로만 골랐다.

여행, 사람, 글쓰기.

 

 

그 첫번째, <여행지에서만 보이는 것들>

주디스 페인 지음, 정미현 옮김, 문학테라피, 2013 10

 

 

 

 

 

내가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는

그때야 말로 내가 가장 나답고, 자유로운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유의 댓가는 혹독하다.

끊임없이 나를 관찰하게 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를 묻는다.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호기롭게 말은 하지만

두고 온 사람들이 그리워 매일 밤 베갯잇을 적신다.

 

 

여행을 할 때마다 매번 드는 생각이 있다.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내는 건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소중한 건 늘 옆에 있었다는 것을 난 왜 떠나야만 알 수 있는 것일까.

 

 

나의 오랜 질문에 답을 구하고 싶다.

이 책의 원제는 Life is a Trip(삶은 여행이다) 이다.

 

 

 

 

 

 

 

 

<달리는 인생>, 김창현, 오마이북, 2013 10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진보’가 피상적이거나 허망하지 않으려면,

이 땅을 함께 살아가는 나와 우리 이웃들의 구체적 삶과 행복을

바닥부터 치열하게 고민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는 모든 정치인이 사회 지도자가

이런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믿는다.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이윤기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2013 10

 

 

글을 쓰는 사람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

좋은 글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사람,

바로 나와 우리 모두를 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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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얼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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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이 결과는

모든 것을 공부, 성적으로 연관짓게 만든 시대의 탓이 아닐까 싶었다.

 

나에게 (외국) 문학은 늘 어려웠다.

중학교 때 처음 폭풍의 언덕을 읽었을 때도

대학교 때 소극장에서 파우스트 공연을 보고 나서도.

충격적이긴 했지만 감동은 없었다.

숙제라서 어쩔 수 없이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안절부절 못했다.

도대체 나에게 부족한 소양이 무엇일까.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난 매번 억지로 쥐어짜며 감상문을 써냈는데

더 최악은 매번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영영, 문학과 가까워질 수 없을 줄 알았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타이핑을 제대로 했는지 재차 확인했을 만큼)

길고 어렵고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만큼이나 화려한 이력을 가진 평론가가

문학 작가들의 초상화를 모으는 취미를 갖고 있단다.

처음엔 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표정한 표정의 얼굴을 한 액자가 온 집안에 걸려 있다고 생각을 해보시라!

 

"셰익스피어에서부터 토마스 베른하르트에 이르는 이 초상화들은

나와 내 손님들, 특히 문학에 관심 있는 손님들에게 큰 즐겨움을 안겨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의 예술적 수준을 따지기에 앞서,

내게는 예나 지금이나 각별히 소중한 작가들의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이 초상화의 수집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지만,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문학평론가의 이력에 한몫을 담당했다고 말이다."

- 작가의 말.

 

처음엔 역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뵈르네가 있으면 하이네도 있고 

음악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는 곱사등이 사상가였고...

이것저것 외워둬야 할 것만 같은 지식이 쏟아지자 머리가 아파왔다.

여자 앞에서 잰 체 하기 좋아하며 지적으로 보이고 싶은 남자들이 좋아하겠군,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난 이 책을 손에 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사실 이런 류의 책은 누구든 쓸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이 책은 특별하다.

단순히 어느 시대에 태어난 누가 무슨 작품을 썼고 하는 게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을 사랑해온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문학', '독일 문학' 이란 엄청난 소재를

무척 쉽게, 재미있게, 흥미롭게 독자들에게 전해준다는 것인데

이것은 전체를 꿰뚫는 통찰력, 관록, 글솜씨, 그리고

문학과 독자,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런 책을, 40여 명의 작가를,

그들을 우리에게 소개해준 능력있는 평론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쥔 독자들은 큰 행운이다.

 

순전히 취향의 문제이겠지만

나는 그가 좋다, 싫다, 진부하다, 넌더리가 난다,

모호하고, 철없고 갑갑하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 할 때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평론가란 직업을 선택한 자의 숙명이라고는 해도,

아무리 독설을 일삼는 자라 할지라도,

분명하게 자기를 드러낸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지독한 유대인 혐오자조차 작품과 따로 떼어 생각할 만큼 공정했고,

같은 유대인이라고 해서 무작정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그것이 우리가 그를 주저없이 거장이라고 부르는 원동력이리라.

 

역시 이 책의 매력은 그가 작가들과 작품들에 자신의 삶을 투영했듯이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들이 쓴 거의 모든 것들이

결국 자기묘사사로 귀착된다는 사실을 나는 괴테에게서 배웠다(33쪽)"

 

문학이니 희곡이니 시니 하는 것을 잘 모르는 나조차

그가 어떻게 괴테에 파우스트에 빠져들고

하인리히 하이네를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할 때면,

"계몽이 뭔지 근대사가 어땠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하이네를 피고석에 앉히고 들었나 놨다하며 헐뜯어" 댈 때면,

괜히 울분이 터졌다.

 

우린 분명 다른 시대를 살았다.

난 전쟁의 경험도 없고 민족 정체성의 혼란도 겪지 않았으니까.

청소년 시절,

그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으며 사랑과 죽음에 대해 깨달았다면

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통해 로미오를, 셰익스피어를 만났다.

 

그러나 그는(우리는) 알고 있었다.

사랑과 죽음은 하나이며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15쪽).

 

그가 사랑하는 이의 무덤 위에 작은 돌멩이를 하나씩 얹어 놓는

유대인에 관습에 대해 무덤덤히 얘기할 때나

(사랑한다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높이 평가하고 존경하는)

권터 그라스에게서 수녀와 뱀장어를 얻게 된 이야기를 들으며

잔잔한 미소가 번지는 건 그의 가장 큰 무기,

삶의 진실성과 위트, 그리고 관록의 어우러짐 덕분이리라.

 

오늘의 감상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 덕분에 독일문학이, 유대인들이 무척, 궁금해졌으니까.

그리고 수많은 유럽의 독자들이 그랬듯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다시 찾아 읽고 싶어졌다.

 

그 다음 다시 한 번 이 책을, 작가의 자서전을 읽어볼 참이다.

그때쯤엔 아마 얼마 전 고인이 된 이 거장의 삶을 더욱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겠지.

어쩌면 나도 그처럼 초상화를 모으든지 하는

괴상한(멋진) 취미를 하나 마련할 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김난주, 양억관, 양윤옥 같이

이름만으로 신뢰하며 작품을 사보는 번역가 목록에

다른 한 분을 추가할 수 있게 돼서 무척 기쁘다.

 

단언하건데, 아무리 원작이 좋았다 한들

독일문학이 세계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다한들

이렇게 매끄럽고 부드러운 번역이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지금 같은 설렘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을 다시 옳기면서, 저자는 자신의 문학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당신에게 문학은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한층 더 많이 느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오래오래 사랑한 것들에 대해

타인의 잣대가 아닌 스스로의 잣대를 신뢰하며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 옮긴이의 말.

 

번역하는 작품과 작가의 인생을 이해하려는 열정,

그리하여 최선을 다해 독자들에게 전해주겠다는 자부심.

얼마나 근사한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명복을 빌며.

김지선 번역가에게 감사하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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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가는 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야자키 하야오.

 

내가 본 애니메이션의 90퍼센트는 그와 그의 동료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특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년에 두어번은 꼭 본다.

눈 올 때 러브레터를, 장마 때 삼순이를, 봄에 연애시대를 보고 나야만

다음 계절이 맞이하는 것처럼, 그것은 나의 중요한 의식처럼 반복된다.

한마디로 그는 나의 애니메이션 세계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작가의 얼굴>에서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괴테에 대해 말한 것을 빌리자면,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누군들,

미야자키 하야오를 지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일까.

호주 일주를 할 때 그가 영화의 모티브로 삼았다는 장소들,

울루루카타츄타 국립공원이나 버슬톤, 로스 등에 도착해서

나는 알 수 없이 엄숙한 마음이 들곤 했다.

마치 대단한 유적지에라도 서 있는 기분이었다.

수십년 전 여기 서 있었을 그를 상상하며

그가 보고 느꼈을 무언가를 찾듯 한참을 서성였다.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지! 하면서.

 

 

이처럼 나같은 문외한마저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그가

아이들을 위해, 50권의 책을 골랐다.

 

저자가 '승부의 세계'로까지 묘사하며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것들은

어린 왕자나 삼총사, 파브르 곤충기, 서유기 같은 것부터

파를 심은 사람처럼 우리나라 민화를 엮어 놓았다는

(나는 처음 들어보는) 책까지 다양하다.

 

책 한권을 네 다섯 줄로 맛깔나게 설명한 그의 능력도 감탄스럽지만

역시 나의 눈은 끄는 것은

그의 어린시절에 대한 회상과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을 위한 작가의 깊은 고민이다.

 

특히 지난 2011년 원전사태는 일본 사회는 물론

그에게도 중요한 전환점이 된 듯하다.

 

서브 컬쳐가 또 다른 서브 컬쳐를 낳는 시대(131쪽),

언제 터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상과 게임과 소비에 빠져들면서,

개를 키우고 건강과 연금 걱정을 하고 조바심을 내면서,

결국 경제 이야기만 해 온, 불안만큼은 착착 부풀어 올라

스무 살 젊은이와 예순 살 늙은이가 다르지 않게 된 시대(145쪽).

 

작가는 아이들이 즐겁게 보는, 그런 행복한 판타지 영화를

당분간은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에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해도 어쩐지 거짓말 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다 버린 것은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흥청거려도 온화하고 차분한 방향으로 키를 돌린다면,

그 방향에서 우리가 찾는 새로운 판타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판타지를 만들어갈 어린이들.

우리에게 새 희망을 보여줄 그들을 위해 그는 책을 고른 것이다.

 

그의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밀양 송전탑 문제로

한참 마음이 쓰이기 시작할 때였다.

 

과연 이 시대는, 사람은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경제논리, 전쟁논리에 이용당할 것인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끝없는 질문만 퍼부으며 답답해 하고 있을 때.

 

 

그는 힌트를 주었다.

 

아이들이 모닥불을 피우거나 나무에 오르는 일은 위험하다.

처음에는 아주 조심하며 오르내리지만 차츰 대담해진다.

그러다가 떨어진다. 실제로 해보면 아주 큰일이다.

그래도 모닥불을 피울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 정치가 어떻다느니 사회 상황이 어떻다느니

대중매체가 어떻다느니 세상 전체만 논할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이는 범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상당히 여러 가지 것들이 변하지 않을까(141쪽).

 

그리고 저자는 음성이 거의 담기지 않은, 한가로운 영화를 만들었다.

이젠 내가 답을 내야할 차례다.

인생에 단 한권이어도 좋을 책.

그의 말대로 어쩌면 우리는 시험을 치르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에 대한 설명 중 한 부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사람의 작품은 모두 보물이다.

서둘러 읽어서는 안 된다.

찬찬히 몇 번이고 읽고 소리 내서 읽고, 그러고 나서 마음에 울리는 것이나

전해오는 것에 귀를 기울이며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며칠 지난 후에 다시 읽고, 몇 년 지나고 나서도 읽고,

잘 알지도 못하는데 왜 눈물이 나는 것일까 생각이 들고,

어떤 때는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한데, 그 순간 또 쓱 사라져 버린다.

그런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46쪽, 주문 많은 요리점)

 

 

 

 

마지막으로, 내사랑 ‘하쿠’가 나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물위를 달리던 기차의 모토가 되었다는 제티.

- 버슬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201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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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게 노래>

김중혁 지음, 마음산책, 2013. 9

 

 

 

가만 보면 예술가들은 참 다재다능하다.

 

글만 쓰는 사람도 있고 음악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자처럼 글을 쓰며 음악을 (좋아)하는 이도 있다.

거기다 아마추어라기엔 상당히 '조예'가 있어서

(이렇게 책으로 묶어 낼 만큼)

추종자들은 그를 '음악 마니아'라고 부른다.

 

자유를 사랑하는 나는 여행할 때가 가장 행복하지만

변화보다는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편이었다.

소설도 좋아하는 작가 위주로만 읽고,

음악도 늘 듣던 것만 들었다.

 

가요를 들어온 지난 20년 동안 카세트테이프에서 시디플레이어,

엠피쓰리에 아이팟 까지 음악을 감상하는 도구들은 눈부시게 진화해 왔건만

내 폴더의 80%는 여전히 서태지, 부활, 김경호로 채워져 있는 것처럼.

그래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유롭게 변화하는 이들을 보면

추억에 얽매이기보다 현재를 즐기는 이들을 보면 늘 부럽다.

 

더불어, 정체성이 분명한 제목도

노란색 실로폰 케이스 같이 산뜻한, 헤드폰 모양의 표지도 좋다.

궁금하다. 그의 음악취향이, 그리고 글이.

 

 

2. <아빠에게 말을 걸다>

신현림 신동환 지음, MY, 2013. 9

 

 

 

 

시인 누나와 의사 남동생이 전하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도 내 아빠에게

참으로 좋은 딸이고 싶을 뿐!

 

 

*여기서부턴 그냥 덧붙이는 이야기

 

지난 달 에세이 분야 신간도서에 선정된

<작가의 얼굴-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에서

작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는 괴테 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대부분의 위대한 자각들이 쓴 거의 모든 것들이

결국 자기묘사로 귀착된다는 사실을 괴테에게서 배웠다...

그는 참으로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 했고,

동시에 우리 모두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이유인지도 모른다."

 

결국 자기(묘사)로 귀착되는, 삶의 가장 진솔한 부분에 대한 갈증.

내가 에세이를 즐겨 읽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어줍짢은 실력으로 첫 책을 곧 출간할 예정이다 보니

남의 글이나 기획자의 능력에 대해 평가하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낀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처럼 '문학의 교황'이라 불릴 자신도,

아니 그럴듯한 평론가가 될 일도 없겠지만

어쨌든 주어진 임무를 다하고 싶어 사족을 보탠다.

 

아쉽지만 이번 달에는 눈길을 끄는 신간이 별로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쪽으로 쏠린 느낌이었다.

달달한 사랑이야기 아니면

가볍게 욕심 내지 말고 살라는, 진부하기까지 한 설법들.

 

물론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이 사랑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는 평생 자문해야 할 문제다.

가을이야 말로 이 두가지 주제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기계발서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시대라서 그런가.

가장 자유로워야 할 에세이마저 대중들이 좋아하는

몇 가지 주제에 갇혀있는 것만 같아 즐겁지가 않았다.


아는 척, 다른 척 하지 말고

누구를 가르치려고도 위로하려고도 말고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순 없을까?

남이 듣고 싶은 이야기 말고

그냥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문학은, 에세이는 자유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자유로워야 할!


어쩌면 이것은 잘못 없는 책들이 아니라

책을 준비하는 나에게, 내 삶에 던지는 질문일 것이다.

한 지인 작가님이 말 한 것처럼

뻔한 것들의 일부가 되어 애먼 나무들만,

자원만 축내는 것은 아닌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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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 영혼이 쉴 수 있는 곳을 가꾸다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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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일까. 인연일까.

 

같은 시대를 보낸 오랜 지기한테나 기대할 수 있는 깊은 위로를 받은 느낌.

헤르만 헤세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대학이후 십삼년을 보낸 서울, 도시를 떠나 산골로 돌아온

나에게 설렘과 숙제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이 작가가 하늘과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에 대해 갖는 위대한 애정은 놀랍기만 하다!

그가 태양과 구름, 산, 호수, 나무, 풀 그리고 살아 있는 존재들에 대해 묘사하고 찬미하면,

그의 말을 통해 진실한 감정과 사색의 음향이 들려온다.

그리고 이미 익숙해진 것들조차 새롭고 고귀해진다."

- 발터 라테나우의 서평, 217쪽.

 

그렇다.

나무, 잡초, 선인장, 복숭아 나무와 흙,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다 탄 뒤 남은 재까지.

마치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된 뒤에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갖게 되는 것처럼

모든 자연에 열려 있는 그의 가슴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친숙한 것들조차 새롭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아마 한 번도 자신의 정원을 가지는 걸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에게조차

'살면서 한번쯤은...'하는 꿈을 갖게 할 만큼,

결코 가볍지 않은 그의 생활이 그저 낭만적으로 보일 만큼.

그의 말은 살아서 숨을 쉬고 춤을 추고, 당신도 어서 해보라며 손짓을 한다.

 

스스로 부딪히고 경험한 것들이 갖는 진실성.

이 책을 읽으며 '노동'에 대해 강조한 이오덕 선생의 말을 여러번 떠올렸다.

 

"글은 자기가 겪은 일을 정직하게 쓰는 것이 기본이라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정직하게 쓰기만 하면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다시 또 남들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가치가 있는 글을 쓰려면 가치가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가치가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글쓰기가 어렵다면 바로 이것이 어려운 것이다."

- 이오덕, <무엇을 어떻게 쓸까>, 31쪽.

 

그가 정원으로 들어간 것도

가치 있는 글을 쓰기 위해,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가치 있는 생각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전쟁과 현대 문명이 만들어내는 기계적이고 소모적인 세상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충동으로 가득 찬 시대의 흐름에 영혼의 고요함으로 맞서"기 위해서(204쪽).

 

내가, 우리가 그토록 도시를 떠나고 싶었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오로지 소비만이 추앙받는 곳에서 제대로 살 자신이 없었다.

온갖 소음과 쓸데 없는 일들에 치여 나를,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살까봐 두려웠다.

그저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싶었다.

우리 모두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고 믿었다.

시대의 아픔을 견디고자 했던 대문호에게도, 미천한 도시인에게도

'자연'은 그래서 그 자체로 축복이고 치유다.

 

 

 

 

그래서 떠나왔다.

내 아이가 맘 껏 걸음마를 할 수 있는 잔디밭이 있고,

밥상에 올릴 푸성귀를 직접 키우고 가꿀 수 있는 텃밭과

개 한마리와 닭 다섯마리와 토끼 한마리가 있는 집으로.

 

집안 어디에서든 산과 나무와 하늘이 보이고

몇걸음만 옮기면 누런 들판이 나오며

언제고 불쑥 대문을 열어제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주로 사는 곳.

변성기를 지나는 중학생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

온동네가 잠잘 준비를 하는 진짜 시골로 말이다.

 

아마 내 아이에겐 이곳이 첫 고향이 될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그곳을 떠난 뒤에도 두고두고 그리워하게 되겠지.

그리하여 저자가 그랬듯이 나중에 다 자라서 세상 여기저기를 나갔다가도

언제든 ‘고향’이라 부르며 돌아올 수 있는, 영혼이 머물 수 있는 진짜 집.

 

나도 저자처럼 정원을 가꾸어볼 생각이다.

그리고 쉬지않고 '가치있게 사는 법'을 고민하며 살아갈 생각이다.

 

그는 토마토 이외의 모든 먹을거리는 아내에게 맡겼지만

아마 나는 그 반대가 될 것 같다.

 

"집 안에 저장해둔 씨앗과 구근을 살펴보고

정원에서 사용할 공구들을 점검하며,

잡초 한 포기 자라지 않게(12~13쪽)"

제대로 정원을 가꾸는 일은 남편에게 맡겨두고

그가 정성들여 키우고 가꾸는 밭을 들여다보며 맘껏 흐뭇해 하리라.

 

그래도 가끔은 그 일에 열심히 동참할 것이다.

이오덕 선생이 말했듯이, 헤르만 헤세가 삶으로 증명했듯이

일을 하는 것이 없는데 글만 자꾸 쓴다면

그 글이 제대로 될 수가 없으니까.

 

 

 

 

리뷰 작성 기한일을 지키고 싶은 마음에

이사와 명절, 돌배기 아이를 돌보는 틈틈히 분주히 읽었지만

한 번에 한 챕터 씩,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보겠다.

 

넘쳐나는 자연의 힘, 그 사이에서 맘껏 유희하고 싶은 내가

어떤 게으름뱅이 정원사가 될 지 한껏 기대하며.

멋스런 셔츠에 우수에 찬 눈과 고집스런 주름을 갖고 있던 그를 떠올리며.

 

"재미 삼아 정원사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몇 달밖에 안 되는

따뜻한 기간에 많은 것들을 관찰할 수 있다.

원한다면, 혹은 누군가의 부탁으로  정원을 가꾸게 된다면

온통 즐거운 것만 보게 된다.

키우고 열매 맺는 것을 보고 형태를 다듬어가는 가운데 넘쳐나는 자연의 힘,

자연 속의 형상들과 색채 사이에서 유희하고 싶은 느낌과 환상,

여러 면에서 인간적인 여운을 주는 작고 소소한 즐거운 생명(17~18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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