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 - 이윤기가 말하는 쓰고 옮긴다는 것
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 만큼 우울한 일도 없다.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행이든 책이든 너무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늘 생각한다.

하지만 어찌 그를, 더구나 그의 '글쓰기'에 관한 글을 아무 사심없이 읽어나갈 수 있으랴.

 

 

책을 받아본 날, 정말 기뻤다.

이오덕 선생에 이어 글쓰기에 관한 또 하나의 큰 스승님을 대면한 기분이었다.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문장가'로 칭송받는 그의 이야기를,

문장 작법의 수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유난히 바쁜 시기였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진귀한 역사유물을 대하는 심정으로 책장을 넘겼다.

 

 

아아,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일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집중해서 읽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반복해서 읽은 부분이 여러곳이었고,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은 대충 넘기기도 했다.

처음에는 이미 작고하신 분의 글을 모아

다시 주제별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생긴,

어쩔 수 없는 부자연스러움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 읽고 난 뒤에는 더욱 절망적이었다.

차라리 '작문법'이란 옷을 입힐 것이 아니라

작가, 번역가 혹은 인간 이윤기에 대한 에세이였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나의 소양과 그릇이 부족해서였겠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 그래도 기억하고 싶은, 그의 작가와 번역가로서의 고민들

 

 

"'글쓰기'에 관한 한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

길고 짧은 소설을 차례로 써내고 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못하다.

나는 큰 빚을 진 사람이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많은 작가들에게 큰 빚을 진 사람이다.

부모의 사랑을 아래로 갚듯이 이 빚은 독자에게 갚아야 한다.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강박한다.

글쓰기가 하도 곤혹스러워서 물어본다.

나에게 글 읽기의 행복을 안겨준 저 많은 저자들은 모두 행복했을까?"

- 글쓰기가 곤혹스러워서 묻는다, 36~37 쪽.

 

 

"소설가 박인홍이 30대 초반에 마주했던 <벽 앞의 어둠>,

바로 그 어둠의 벽이었던 것이지요.

나는 박인홍보다 20년이나 늦게 이제 겨우 면벽합니다."

- 지금의 작가도 옛날 작가와 똑같다, 51쪽.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지요, 라는 질문을 나는 자주 받는다.

내가 글을 잘 써서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 것이 아니고,

글 쓰는 일을 아주 직업으로 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면 초단은 되어요,

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아 초보자의 입단은 번번이 좌절되고 만다.

되풀이해서 쓴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만 하면 초단은 된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느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 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제 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 껍진껍진한 입말로 글쓰기, 81~82쪽.

 

 

"외국어 번역 공부, 나는 참 어렵게 했다.

많이 고통스러워하고, 많이 절망했을 뿐, 한 번도 만족을 경험하지 못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을 많이, 그리고 오래 걸었다.

판화가 이철수는 길을 잃고 오래 걸으면 그게 곧 길이 되는 수도 있다고 위로하고,

시인 강연호는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고 격려하지만

그 위로와 격려는 들을 때마다 슬프다."

- 공부에 지름길을 왜 찾나, 116쪽.


 

"'지금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21세기의 새로운 이코노그래피 문화, 이미지 문화가,

유구한 글말 문화의 전통을 드난살이로 전락시킬 것을 위태롭게 여기어 마지않는,

걱정스러운 전망이 바닥에 깔려 있다.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이미지 문화는 고대 종교의 유구한 구전 문화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던

'뮈토스(옛 이야기)', 근 3천 년 가까이 그 뮈토스를 기록하고 발전시킨 문자 문화(문학)의 적자다.

이미지 문화는 뮈토스와 문학이라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자식들이지,

뮈토스와 문학의 어머니는 아닌 것이다."

- 호메로스, 살아 있었군요, 203쪽.

 

 

"'유심'과 '무심', 생활과 존재를 아우를 수 있어야,

삶은 강처럼 저절로 깊어지고 넓어질 것 같다.

문학 종사자가 아닌 사람들의 삶조차도.

책은 그래서 있는 것이다."

- '유심히' 또는 '무심히' 바라보다, 292쪽.

 

 

 

 

* 뻗어가며 읽기

 

미셀 투르니에 <짧은 글 긴 침묵>, <예찬> 김화영 옮김

김화영, <한눈팔기와 글쓰기>, <소설의 꽃과 뿌리>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 수업]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인생수업 -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법륜 지음, 유근택 그림 / 휴(休)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제목 아래 써 있는 저 세줄의 글귀를 주의깊게 보았다면

이 책이 누구를 위해 쓰여졌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바로 인생의 가을 단풍기를 맞고 있는 50~60대,

우리 엄마아빠 세대들이다.

 

전쟁, 가난, 독재, 산업화, 민주화 라는 굵직굵직한

삶의 굴곡을 지나온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늘 가슴 한쪽이 저리다.

그들 인생이 진짜 그들만의 인생인 적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어서다.

 

가난한 집안에 보탬이 되기 위해

배움을 포기하고 자기의 꿈과는 상관없는 직업을 택하고,

못 먹고 못 배운 서러움을 자식들에게 되물려 주고 싶지 않아

밤낮으로 일만하다 보니 어느 순간 가족들과 멀어져 있고,

젊어서는 부모님 공양에

나이가 든 지금은 여전히 독립하지 못한 다 큰 자식들 때문에

일생이 전전긍긍한,

퇴직을 했어도, 자식들 시집 장가를 보내놓고도

즐길 줄을 몰라 하릴없이 방항하거나 손자들을 키워내야 하는

'평생 노동'에 시달리는 내 엄마 아빠들.

 

이 책의 핵심은 간단하다.

 

행복도 불행도 모두 내가 만드는 것이니

욕심일랑 버리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감사하며

나이에 맞는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는 것.

 

모든 자기계발서가 그렇듯이

이것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법륜스님에게 자문을 묻는 이도, 독자들도 이미 다 알고 있다.

우리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마음을 비우고 나 자신의 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러나 그것을 실천하며 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 특히 가장 가까운 가족들에 대한 번뇌가 늘어나고

그러다 보니 삶 전체가 불행해진다.

그러므로, 뻔한 줄 알면서도

우리는 법륜 스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하늘에서 보배의 비가 내리는데

중생은 다 제 그릇 따라 양식을 얻어간다."(253쪽)는 것처럼

같은 법문을 얻고도 크게 얻어가는 사람 적게 얻어가는 사람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서적, 물질적으로 방황하고 있을 우리 엄마아빠들이

이 책을 읽고 한순간이나마 위로를 받았다면

그것으로도 족할 것 같다.

 

사실, 중년을 위한 책이라고는 했지만 이것을 읽는 내내

자식으로서 나의 도리와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 사랑하는 엄마아빠의 행복한 날들을 기도하며

좀 더 너그러운 나의 봄꽃같은 시절을 기대하며,

기억하고 싶은 문구들

 

 

어머니가 옛날 얘기를 할 때는, 해결하는 답변이 필요한 게 아닝에요.

"친구가 보고 싶다." 그러면

"친구 찾아드릴까요?" 하지말고

"네, 어머니. 친구가 보고 싶으세요"

이렇게 이해하는 마음만 내면 됩니다.

- 65쪽, 치매, 무의식의 세계에서 옛날 영화를 보는 것

 

바다에 가면 파도를 볼 수 있습니다.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고 또 일어나고 사라지지요.

그런데 바다 전체를 보면 파도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만 물이 출렁거릴 뿐입니다.

바다 전체를 보듯이 인생을 관조하면 삶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그러나 파도 하나하나를 보면 분명히 파도가 생기고 사라지듯이

인생도 언뜻 보면 생하고 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실재가 아닌 인식의 문제일 뿐입니다.

- 76쪽, 삶과 죽음은 하나의 변화일 뿐.

 

감사합니다. 오늘도 살았네요.

이렇게 살아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돌보는 역할을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생명이 붙어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군가를 돌보는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 153쪽, 간병은 복을 짓는 일

 

자식은 부모가 도와주면 줄수록 손해에요.

자식을 위해서는 안 도와주는 게 나은데,

보는 내가 안타까워서 도와주는 겁니다.

자식을 위해서 도와주는게 아니라. 내가 못 견뎌서 도와주려는 거에요.

늘 얘기했지만 어릴 때는 돌봐주는 게 사랑이고

커서는 냉정하게 지켜봐주는 게 사랑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어릴 때는 내가 돌볼 여력이 없었고,

나이가 들어서는 내가 지켜볼 인내가 없습니다.

아이가 넘어져서 울고 악을 써도 자기가 일어날 때까지 가만히 지켜봐야 하는데,

가서 안고 어디 다쳤나 난리를 피웁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자식이 자립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부모가 없이도 혼자 살 힘을 키워주는 것이 진짜 부모의 자랑인 거에요.

- 170쪽, 돈 대신 등 두드려주는 사랑

 

남자의 성질을 보면 소 같은 데가 있습니다.

옛날에 산에 소 먹이러 갔다가 호랑이를 만났는데,

사람이 소 고삐를 놓고 도망가면 소도 도망을 가다가

사람과 소가 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힌답니다.

그런데 사람이 소 고삐를 잡고 옆에 딱 붙어서 격려하면

그 소가 뿔로 호랑이를 잡는다고 합니다.

그처럼 여자가 고삐를 잡고 격려해 주면 남자는 없던 힘도 냅니다.

- 184쪽, 실직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자기에게 주어진 처지를 받아들인 사람의 얼굴은 무척이나 편안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저 분은 나이 들어도 참 밝고 당당하게 사는 구나,' 여깁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잘 물든 단풍이 아름답듯이

늙음이 비참해지지도 않고 초라해지지도 않고 순리대로

잘 늙어가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 226쪽, 잘 물든 단풍은 봄꽃보다 아름답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든 게 노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부하듯 음악을 듣는 바람에 얻게 된 게 또 하나 있다.

나는 기타를 산 덕분에 음악을 열심히 들었고,

음악을 열심히 들었던 덕분에 소설가가 되었다.

기타를 치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게 됐고,

내게 음악적 재능이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음악적 재능을 흠모하게 됐고,

그러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게 됐고,

음악을 들으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좋아한다는 걸 깨닫게 됐고,

그렇게 소설을 쓰게 됐다.

혼자 있었고, 계속 소설을 썼고, 소설가가 됐다.

음악이 없었다면, 기타가 없었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됐을까.

- 70쪽, 터닝 포인트 뮤직

 

가끔 이런 공상을 하는 소설가가

자기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 음악에 대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음악도, 소설도 상당히 편협하게 좋아해온 나로선

그의 다단계같이 이어지는(그의 표현이다)

음악에 대한 이해와 몰두가 부러웠다.

 

그는 스스로를 엉뚱하고

'기호를 좋아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것으로 묘사했지만

글을 읽는 내내 그는 꼼꼼하고 감수성이 예민하며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의 음악사랑, 혹은 여전히 갈구하는 음악적 재능과

대중에게 사랑받는 좋은 작가가 되기 위한 그의 고민이 읽혀졌달까.

 

그래서 좋았다.

이런 솔직한 열망은

프로의 세계에선 절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일일테니까.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하며 선곡했다는 그의 곡들을 보자.

 

"오후에서 시작해, 꿈꾸는 달로 끝나는 선곡이었다.

그 사이에 바람이 있고 한가운데 시큼한 시간들이 있다."-159쪽

정말 철두철미하다.

 

책의 대부분은 그가 좋아했던 다양한 장르들, 뮤지션들, 곡에 대한 내용이다.

직접 찾아 듣고 싶을 만큼 흥분되는 묘사들도 여럿 있었다.

<맥주는 술이 아니지, 암 그렇고 말고>의 바비빌이나,

<우리가 먼저 외로움을 찾아가자>의 롤러코스터의 음악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보다 그의 이야기들이 더 좋았다.

 

노래교실에서 "소설가!"라고 불리는 걸 좋아하셨던 그의 어머니나

마흔이 넘었어도 여전히 '이해'를 믿지 않는다는 고백,

아이리버로 함축되는 한 시절,

짐의 부피가 늘어나는 한이 있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

그리고 카페앞에 자주트는 음악 목록을 써붙이자는 대목에선

오호라! 통쾌했다.

 

책 한권을 읽고 그 글을 쓴 작가에 대해 상상해보는 일이 참 즐거웠다.

내 멋대로 한 사람의 세계를 규정짓는 일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앞으로 그의 행보를, 이야기를 눈여겨 볼 것이란 점에선 긍정적이리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가의 얼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작가의 얼굴 - 어느 늙은 비평가의 문학 이야기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지음, 김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마 이 결과는

모든 것을 공부, 성적으로 연관짓게 만든 시대의 탓이 아닐까 싶었다.

 

나에게 (외국) 문학은 늘 어려웠다.

중학교 때 처음 폭풍의 언덕을 읽었을 때도

대학교 때 소극장에서 파우스트 공연을 보고 나서도.

충격적이긴 했지만 감동은 없었다.

숙제라서 어쩔 수 없이 봐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안절부절 못했다.

도대체 나에게 부족한 소양이 무엇일까. 무엇을 놓치고 있을까.

난 매번 억지로 쥐어짜며 감상문을 써냈는데

더 최악은 매번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난 영영, 문학과 가까워질 수 없을 줄 알았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

(타이핑을 제대로 했는지 재차 확인했을 만큼)

길고 어렵고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만큼이나 화려한 이력을 가진 평론가가

문학 작가들의 초상화를 모으는 취미를 갖고 있단다.

처음엔 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표정한 표정의 얼굴을 한 액자가 온 집안에 걸려 있다고 생각을 해보시라!

 

"셰익스피어에서부터 토마스 베른하르트에 이르는 이 초상화들은

나와 내 손님들, 특히 문학에 관심 있는 손님들에게 큰 즐겨움을 안겨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의 예술적 수준을 따지기에 앞서,

내게는 예나 지금이나 각별히 소중한 작가들의 초상화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이 초상화의 수집은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지만, 내 인생의 일부가 되었다고.

더 정확히 말하자면, 한 문학평론가의 이력에 한몫을 담당했다고 말이다."

- 작가의 말.

 

처음엔 역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뵈르네가 있으면 하이네도 있고 

음악가 멘델스존의 할아버지는 곱사등이 사상가였고...

이것저것 외워둬야 할 것만 같은 지식이 쏟아지자 머리가 아파왔다.

여자 앞에서 잰 체 하기 좋아하며 지적으로 보이고 싶은 남자들이 좋아하겠군, 싶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난 이 책을 손에 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사실 이런 류의 책은 누구든 쓸 수 있는 소재다.

그러나 이 책은 특별하다.

단순히 어느 시대에 태어난 누가 무슨 작품을 썼고 하는 게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을 사랑해온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기 때문이다.

가장 큰 장점은 역시 '문학', '독일 문학' 이란 엄청난 소재를

무척 쉽게, 재미있게, 흥미롭게 독자들에게 전해준다는 것인데

이것은 전체를 꿰뚫는 통찰력, 관록, 글솜씨, 그리고

문학과 독자,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이런 책을, 40여 명의 작가를,

그들을 우리에게 소개해준 능력있는 평론가를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쥔 독자들은 큰 행운이다.

 

순전히 취향의 문제이겠지만

나는 그가 좋다, 싫다, 진부하다, 넌더리가 난다,

모호하고, 철없고 갑갑하고 하는 식으로 이야기 할 때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평론가란 직업을 선택한 자의 숙명이라고는 해도,

아무리 독설을 일삼는 자라 할지라도,

분명하게 자기를 드러낸다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지독한 유대인 혐오자조차 작품과 따로 떼어 생각할 만큼 공정했고,

같은 유대인이라고 해서 무작정 호의적이지도 않았다.

그것이 우리가 그를 주저없이 거장이라고 부르는 원동력이리라.

 

역시 이 책의 매력은 그가 작가들과 작품들에 자신의 삶을 투영했듯이

독자들로 하여금 자기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따라오도록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들이 쓴 거의 모든 것들이

결국 자기묘사사로 귀착된다는 사실을 나는 괴테에게서 배웠다(33쪽)"

 

문학이니 희곡이니 시니 하는 것을 잘 모르는 나조차

그가 어떻게 괴테에 파우스트에 빠져들고

하인리히 하이네를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할 때면,

"계몽이 뭔지 근대사가 어땠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하이네를 피고석에 앉히고 들었나 놨다하며 헐뜯어" 댈 때면,

괜히 울분이 터졌다.

 

우린 분명 다른 시대를 살았다.

난 전쟁의 경험도 없고 민족 정체성의 혼란도 겪지 않았으니까.

청소년 시절,

그가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으며 사랑과 죽음에 대해 깨달았다면

나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통해 로미오를, 셰익스피어를 만났다.

 

그러나 그는(우리는) 알고 있었다.

사랑과 죽음은 하나이며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15쪽).

 

그가 사랑하는 이의 무덤 위에 작은 돌멩이를 하나씩 얹어 놓는

유대인에 관습에 대해 무덤덤히 얘기할 때나

(사랑한다고 말할 자신은 없지만 높이 평가하고 존경하는)

권터 그라스에게서 수녀와 뱀장어를 얻게 된 이야기를 들으며

잔잔한 미소가 번지는 건 그의 가장 큰 무기,

삶의 진실성과 위트, 그리고 관록의 어우러짐 덕분이리라.

 

오늘의 감상은 여기까지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책 덕분에 독일문학이, 유대인들이 무척, 궁금해졌으니까.

그리고 수많은 유럽의 독자들이 그랬듯이

로미오와 줄리엣을,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다시 찾아 읽고 싶어졌다.

 

그 다음 다시 한 번 이 책을, 작가의 자서전을 읽어볼 참이다.

그때쯤엔 아마 얼마 전 고인이 된 이 거장의 삶을 더욱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겠지.

어쩌면 나도 그처럼 초상화를 모으든지 하는

괴상한(멋진) 취미를 하나 마련할 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김난주, 양억관, 양윤옥 같이

이름만으로 신뢰하며 작품을 사보는 번역가 목록에

다른 한 분을 추가할 수 있게 돼서 무척 기쁘다.

 

단언하건데, 아무리 원작이 좋았다 한들

독일문학이 세계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크다한들

이렇게 매끄럽고 부드러운 번역이 없었더라면

나는 결코 지금 같은 설렘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을 다시 옳기면서, 저자는 자신의 문학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당신에게 문학은 무엇이냐'고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한층 더 많이 느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오래오래 사랑한 것들에 대해

타인의 잣대가 아닌 스스로의 잣대를 신뢰하며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울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 옮긴이의 말.

 

번역하는 작품과 작가의 인생을 이해하려는 열정,

그리하여 최선을 다해 독자들에게 전해주겠다는 자부심.

얼마나 근사한가.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명복을 빌며.

김지선 번역가에게 감사하며.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으로 가는 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책으로 가는 문 - 이와나미 소년문고를 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미야자키 하야오.

 

내가 본 애니메이션의 90퍼센트는 그와 그의 동료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특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일년에 두어번은 꼭 본다.

눈 올 때 러브레터를, 장마 때 삼순이를, 봄에 연애시대를 보고 나야만

다음 계절이 맞이하는 것처럼, 그것은 나의 중요한 의식처럼 반복된다.

한마디로 그는 나의 애니메이션 세계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작가의 얼굴>에서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가 괴테에 대해 말한 것을 빌리자면,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누군들,

미야자키 하야오를 지향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일까.

호주 일주를 할 때 그가 영화의 모티브로 삼았다는 장소들,

울루루카타츄타 국립공원이나 버슬톤, 로스 등에 도착해서

나는 알 수 없이 엄숙한 마음이 들곤 했다.

마치 대단한 유적지에라도 서 있는 기분이었다.

수십년 전 여기 서 있었을 그를 상상하며

그가 보고 느꼈을 무언가를 찾듯 한참을 서성였다.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지! 하면서.

 

 

이처럼 나같은 문외한마저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그가

아이들을 위해, 50권의 책을 골랐다.

 

저자가 '승부의 세계'로까지 묘사하며 신중하게 고르고 고른 것들은

어린 왕자나 삼총사, 파브르 곤충기, 서유기 같은 것부터

파를 심은 사람처럼 우리나라 민화를 엮어 놓았다는

(나는 처음 들어보는) 책까지 다양하다.

 

책 한권을 네 다섯 줄로 맛깔나게 설명한 그의 능력도 감탄스럽지만

역시 나의 눈은 끄는 것은

그의 어린시절에 대한 회상과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을 위한 작가의 깊은 고민이다.

 

특히 지난 2011년 원전사태는 일본 사회는 물론

그에게도 중요한 전환점이 된 듯하다.

 

서브 컬쳐가 또 다른 서브 컬쳐를 낳는 시대(131쪽),

언제 터질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영상과 게임과 소비에 빠져들면서,

개를 키우고 건강과 연금 걱정을 하고 조바심을 내면서,

결국 경제 이야기만 해 온, 불안만큼은 착착 부풀어 올라

스무 살 젊은이와 예순 살 늙은이가 다르지 않게 된 시대(145쪽).

 

작가는 아이들이 즐겁게 보는, 그런 행복한 판타지 영화를

당분간은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에니메이션을 만들려고 해도 어쩐지 거짓말 같은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다 버린 것은 아니다.

세상이 아무리 흥청거려도 온화하고 차분한 방향으로 키를 돌린다면,

그 방향에서 우리가 찾는 새로운 판타지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 새로운 판타지를 만들어갈 어린이들.

우리에게 새 희망을 보여줄 그들을 위해 그는 책을 고른 것이다.

 

그의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밀양 송전탑 문제로

한참 마음이 쓰이기 시작할 때였다.

 

과연 이 시대는, 사람은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하는가,

우리는 언제까지 경제논리, 전쟁논리에 이용당할 것인가,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끝없는 질문만 퍼부으며 답답해 하고 있을 때.

 

 

그는 힌트를 주었다.

 

아이들이 모닥불을 피우거나 나무에 오르는 일은 위험하다.

처음에는 아주 조심하며 오르내리지만 차츰 대담해진다.

그러다가 떨어진다. 실제로 해보면 아주 큰일이다.

그래도 모닥불을 피울 수 있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 정치가 어떻다느니 사회 상황이 어떻다느니

대중매체가 어떻다느니 세상 전체만 논할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이는 범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상당히 여러 가지 것들이 변하지 않을까(141쪽).

 

그리고 저자는 음성이 거의 담기지 않은, 한가로운 영화를 만들었다.

이젠 내가 답을 내야할 차례다.

인생에 단 한권이어도 좋을 책.

그의 말대로 어쩌면 우리는 시험을 치르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에 대한 설명 중 한 부분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이 사람의 작품은 모두 보물이다.

서둘러 읽어서는 안 된다.

찬찬히 몇 번이고 읽고 소리 내서 읽고, 그러고 나서 마음에 울리는 것이나

전해오는 것에 귀를 기울이며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보고,

며칠 지난 후에 다시 읽고, 몇 년 지나고 나서도 읽고,

잘 알지도 못하는데 왜 눈물이 나는 것일까 생각이 들고,

어떤 때는 어쩐지 알 것 같은 기분이기도 한데, 그 순간 또 쓱 사라져 버린다.

그런 아름다운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46쪽, 주문 많은 요리점)

 

 

 

 

마지막으로, 내사랑 ‘하쿠’가 나오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물위를 달리던 기차의 모토가 되었다는 제티.

- 버슬튼,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 2010.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