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63월 출판된 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신간도서 추천합니다.

 

“4월의 감미로운 빗줄기로, 3월의 가뭄을 뿌리까지 파고들어적시기를.

 

지난 토요일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몇 시간 동안.

꽃망울이 맺히고, 터지는 느린 속도가 눈에 보이는 듯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의 찬 기운과 약간의 비가 내리니,

예쁘게 필 꽃이 다시 움츠려 들었습니다.

못 다 핀 꽃은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여

최상이 아름다움으로 생을 완성하지 못합니다.

제 때를 만나지 못한 꽃들에게 인사를.

 

근간에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을 읽으며,

사유 없음으로 인한 진부한 악에 대하여 사유합니다.

인문서를 읽는다는 것은 내 안의 타자와 대화하는 것입니다.

내 안의 무수한 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균열이 의미있는 시간입니다.

여기에 박차를 가할만한 책들을 추천합니다.

 

칼 포퍼 역사법칙주의의 빈곤, 카 포터 지음, 이한구, 정연교, 이창환 옮김. 철학과현실사,

원제 The Poverty of Historicism (1957)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유명한 20세기 위대한 철학자 포퍼의 1957년 저작이 새롭게 출판되었습니다. 포퍼는 잠정적 진리, 모든 과학의 반증 가능성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전체주의의 혐의가 있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실천하는 지성인으로 끊임없이 사상적 투쟁을 벌였던 포퍼의 책을 4월에 읽고 싶습니다.

 

 

 

 

 

 

 

 

 

 

 

 

 

 

새로운 계급 투쟁, 슬라예보 지젝 지음, 김희상 옮김, 자음과모음, 2016. 3. 31.

원제 Der neue Klassenkampf: Die wahren Grunde fur Flucht und Terror (2015)

 

여전히 왕성한 다작을 보여주는 슬라예보 지젝에게 있어서, 글쓰기란 가장 급진적인 정치적 실천이기도 합니다. 그는 전방위적 지평의 사유를 전개하는 독보적인 철학자입니다. 라캉주의자 계급투쟁운동가인 지젝의 공산주의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공부하고자 합니다. 하나의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계급투쟁은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할지 근본적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때입니다.

 

 

 

 

 

 

 

 

 

 

 

 

 

 

나는 무관심을 증오한다, 안토니오 그람시 지금, 김종법 옮김, 바다출판사, 2016. 3. 30.

원제 Odio gli indifferenti (2011)

 

20여 년 전, 제가 쓴 최초의 논문은 그람시였습니다. 논문이라기 보다는 논문 흉내를 냈던 것이지요. 텍스트를 이해하지도 못했고, 최소한의 개념도 정리되지 못한 상태였지만, 안토니오 그람시에 빠져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헤게모니에 대한 그람시의 해석은 어줍지 않게 운동권 주변을 기웃거리던 나에게 하부구조에 대한 경직된 사고에 유연함을 부여하는 듯했습니다. 상부구조의 자율성. 거기에서 제 문제의 실마리를 찾고 싶었던 거지요. 저에게는 다시 그람시를 읽어야 할 필연적 이유들이 있습니다. 제 인생의 숙제로 남아 있는 그람시와 함께하는 4!!!

 

 

 

 

 

 

 

 

 

 

 

 

 

 

효율적 이타주의자, 피터 싱어 지음, 이재경 옮김, 21세기북스, 2016. 3. 31.

원제 The Most Good You Can Do: How Effective Altruism Is Changing Ideas About Living Ethically (2015)

 

이 책은 예일대학교 강연을 토대로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도덕기반과 윤리 속에서 좀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실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타심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이라고 피터 싱어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콜버그의 도덕 발달 단계처럼, 윤리와 실천은 상황에 대한 실천적 고민 속에서만 발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유가 바탕이 된 행동을 통해서만 타인을 도울 수 있습니다.

 

 

 

 

 

 

 

 

 

 

 

 

 

 

비상경보기 - 절실하게, 진지하게, 통쾌하게, 강신주 지음, 동녘, 2016. 3. 10.

 

철학자가 울리는 비상경보기라니요. 강신주의 거칠고 독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현재 한국사회를 민주주의 위기, 무너지는 삶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분들은 별로 없을 듯합니다. 비상경보기<경향신문> 등 여러 곳에 기고한 글을 60개로 추려 엮은 책입니다. 주인의 덕을 가지고, 온전히 내 삶의 주인으로 자기를 배려하며 함께 사는 민주주의를 꿈꾼다면, 꼭 한번 일독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의 아주 특별한 문학 강의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을 읽는다는 것, 삶을 산다는 것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책읽은수요일, 2016. 1.

 

테리 이글턴은 마르크스주의 문학 이론가이자 정치 평론가. 저자의 강의실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 느낌이다. 저자 자신이 수술대에서 메스를 가하듯, 놀라운 작품 분석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리한 감식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이 책은 - 원제 문학을 어떻게 읽은 것인가?”가 말해주듯이 - 문학을 읽는 방법론을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서 문학을 읽는 것과 삶을 사는 것, 모두 목적 없이도 의미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 책은 문학 작품을 함께 읽는 기쁨을 준다. 영문학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난해할 수 있다. 하지만, 문화권이 달라도, 세계의 고전이라 불리는 책을 함께 나누고, 이름만 알고 있는 책은 도전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모든 텍스트를 순진하게 읽는 사람들에게 책 읽기의 전략을 배울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저자는 분석이 즐거움의 적이라는 신화(8)를 무너뜨리는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목적이 없이도 의미 있을 수 있는 일

 

문학은 삶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다. 문학을 읽는 것과 삶을 사는 것, 모두, 목적이 없이도 의미 있을 수 있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 문학만을 문학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 어떤 글이든 문학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을 함의한다. 메뉴판과 설명서조차 문학적으로 쓰일 수 있고, 읽을 수 있다. “책만 보면, 언제 공부할래?”와 같이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표현이 있다.

 

십대 내내 나의 문학을 읽는 시간은 학교 공부가 끝난 다음에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은 거였고, 공부가 미진한데 소설을 읽는 일은 매번 죄의식을 불러 왔다. 아마 그런 죄의식이 삼십대까지 지배했던 듯도 하다. 직장생활과 대학원 공부를 병행하면서도 전공 서적 외에 다른 책을 읽는 일은 매번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불편한 마음을 불러 일으켰다. 목적 없는 무사무욕적인 행위를 하는 것에 대한 압박이 컸다. 문학 읽기의 죄의식과 함께, 십대 내내 숨 죽여 읽었던 책들이 오롯이 떠오른다. 삼중당 문고판의 한국 중단편 소설, 범우사에서 나온 세계 고전 소설, 학교 앞에서 책 외판원에게 할부로 구입했던 세계 고전 단편 선과 같은 것들이다.

 

학력고사가 끝난 이후에는 음악을 귀에 걸고, 문학을 읽으며 겨울밤을 밝혔다. 그 시간 안에서 세계의 시공간이 압축되는 경험을 했다. 고전 문학 속에서는 5분 동안 스쳐 가는 감정도 하나의 세계를 구성할 수 있음을 배웠다.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물리적 시간에 갇힌 생애사가 인생이 아니라, 한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만들 수 있음을 이해하는 일이었다.

 

책은 크게 다섯 장으로 구성된다. 도입부, 인물, 서사, 해석, 가치가 그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읽기가 인간의 삶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 명확하게 밝혀 둔다.

    

문학은 인간이 삶의 목적에 휘둘리지 않게 해주고, 삶을 더 잘 즐기도록 돕는다.”

 

훌륭한 작품은 훌륭한 그릇부터 구축한다. 문학의 형식과 무관하게 내용만을 읽는 독자들이 있지만, 글의 형식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이해하는 일, 즉 분석을 통해서 문학 작품을 더 잘 읽고, 이해할 수 있다. “형식이라는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모든 요소에 대한 주의 깊은 독서(17)를 해야 한다. 내용이 이야기되는 방식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문학 작품은 내용만을 담보하지 않는다. 내용에만 국한하는 것은 순진한 독서 행위다.

 

* 인물

 

감정이입만으로 인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인물과 분리하는 소격 효과없이 독자는 인물을 제대로 분석할 수 없다. 일정 정도의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캐릭터는 원래 한 개인의 특징이었는데, 지금은 개인 그 자체를 의미한다. 우리를 구분해주는 것은 우리가 공유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91)하다. 저자는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 세익스피어 오셀로,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T. S. 엘리엇의 황무지를 인용하여 인물의 유형은 개성을 보존하며 더 넓은 배경을 부여(108)함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의 특별함은 아무도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물 각자의 고유함이다. 더 이상 분절될 수 없는 개체로서 개인(in-dividual)은 배경과 분리될 수 없다.

 

* 서사

 

플롯은 서사의 일부일 뿐, 그 자체로 서사가 될 수 없다. 역으로 서사에 플롯이 생략된다면, 이야기는 추동력을 상실한다. 최근 가까이 지내는 분의 단편 소설을 피드백한 일이 있다. 평소에도 군더더기를 싫어하고, 직선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작가는 소설에서도 같은 모습을 유지했다. 정보로만 이어지는 글은 마치 트리트먼트나 개요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묘사로 가득한 글을 읽는 것도 힘들지만, 기록되어야 할 것들이 생략된 글이 오히려 더 피로하다. 저자는 고도를 기다리며, 구월에는 삼십 일이 있네, 젊은 예술가의 초상처럼 플롯 없는 서사(217)도 있다고 한다. “목적이 없어도 의미 있는 인생처럼 서사도 플롯 없이 항해할 수 있는지는 작가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 해석

 

세상은 온갖 기호로 가득하다. 기호는 해석을 요구하고, 주체에 따라서 그 의미는 다의적이다. 문학 역시 해석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를 생산한다. 작품에는 기표에 상응하는 기의가 하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문학 작품의 의미는 독자의 수준에 따라 변주될 것이다. 원래 예술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므로.

 

모든 문학 작품은 출생 시에 고아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성장해가면서 우리의 부모가 우리의 인생을 통제하지 않게 되듯이, 시인은 자신의 작품이 어떤 상황에서 읽힐 것인지 또는 그 작품을 독자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결정할 수 없습니다(222).

 

문학작품 해석의 다의성은 필연이다. 허구에 실제를 구사한 문학의 모호함이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작가는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모호한 표현을 하게 되고, 독자는 능력만큼 다양한 해석을 한다. 내용뿐 아니라, 문학이 형식 또한 해석을 요구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반 페이지를 훌쩍 넘는 하나의 문장, 육십 페이지로 이어지는 율리시스의 마지막 문장과 같은 경우, 문장의 형식이 우리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 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형식에 대한 해석이 요구되는 까닭을 불투명하고 복잡다단한 현대인의 삶(235)”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 가치

 

문학의 탁월함은 작품의 가치를 판단하는 문학비평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또한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위대한 작품으로 남는다. 문학 작품은 유기체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새로운 의미를 산출하기도 하고, 점진적으로 나아가면서 다양한 해석을 축적(339)”하기도 한다. 예술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른 문화의 예술을 이해하려면 그 문화권의 수학자들이 만든 법칙을 이해하는 것 이상의 무엇이 필요(346)하다. 즐거움이 문학 작품의 가치가 경탄에 있지도 않다. 경탄하지만 읽지 않는 책도 있고, 경탄하지 않으면서도 즐겁게 읽는 책이 있다.

 

니체 슬로 리딩(느린 독서)”

 

예술의 힘은 무한 창조에 있다. 제한된 색을 가지고 무수한 그림을 그리고, 정해진 음표 안에서 무한의 음악을 생산한다. 몇 가지 기호인 문자 안에서 문학은 끝없이 변주된다. 같은 단어조차 맥락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한다.

 

때때로 나이가 주는 선물이 있다. 삶이 뚜렷한 목적 없이도 흘러간다는 것, 삶은 예기치 않은 일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 그래서 삶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다는 걸 알게 된다. 이제 나에게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행위이거나, 게으른 자의 소일거리가 아니다. 단어와 단어 사이, 행과 행 사이의 의미를 헤아리기에 충분한 시간을 가진 나이가 되었다. 늙는다는 것은 (M. Foucault주체의 해석학에서 강조하듯) 세상적인 성공에서 한 걸음 떨어져서 자기 세계를 구축하는 장비를 마련하는 과정일 것이다. 니체의 느린 독서는 자기인식을 넘어 자기배려를 실천하는 것이다. 이 책 또한 그런 독서가 필요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덕후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덕후감 - 대중문화의 정치적 무의식 읽기
김성윤 지음 / 북인더갭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잉문학(잉여+ 인문학)에서 인문학으로

덕후감, 김성윤 지금, 북앤더갭, 2016. 1.

    


신간 덕후감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이자 소장인 대중문화 연구가 김성윤이 그간 써왔던 비평 글을 모아 새롭게 구조화한 책이다. 대중문화 텍스트에 대한 분석도 좋지만, 대중문화 연구 자체를 메타적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유익함이 크다. 이 때문에 독자는 저자와 함께 고민의 지점을 찾을 수 있다. 텍스트에서 콘텍스트로, 콘텍스트에서 사람으로 옮겨가며 사회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저자의 고민을 오롯이 느껴진다. 마르크스 이론을 학습하고, 1990대 문화의 수혜를 받은 486세대 저자는 대중문화를 정치경제적 역사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언젠가 친구가 문화연구를 계속할 거냐고 묻길래, 난 한번도 문화연구자인 적이 없었고 오히려 역사유물론을 할 거라고 답한 적이 있었다(19).”

 

이 책은 크게 6장으로 구성된다. (새로운 대중들 : 팬덤의 사회학, 우리가 알던 세계의 종언, 사회를 유지시키는 마술, 이데올로기의 귀환, 정치적 소실점으로서의 신자유주의적 윤리, 정치의 표류 : 스펙터클 또는 유령의 정치) 각각의 장은 주제에 따라 분량도, 방식도 개별적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어떤 장을 먼저 읽더라도 크게 부담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주제가 갖는 시의성이다. 대중문화의 특성 상 기고했던 글을 모아 놓다 보니, 시기적으로 이미 과거에서 종료된 현상 분석도 더러 있어서 실제성이 조금 떨어진다.

 

전반적으로 어렵지 않게, 공감과 문제 제기가 가능한 글들이다. 특히 영화 <써니> 이후, tvn<응답하라 시리즈>로 이어지는 복고에 대한 비평 글은 새로운 성찰을 일깨운다. 레이건노믹스와 함께 신자유주의가 팽배해지자, 미국의 호황기였던 1960~7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었고, 지금도 방영되고 있다. 이를 공동체주의에 대한 향수, 보편적 추억의 공유와 같은 단편적인 이해로만 소비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현상이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고도의 경제 성장기였던 70~80년대 한국 경제에 대한 환상이 과거를 추억하게 하는 동력일수도 있다. 베트남 전쟁 파병, 탄광 광부와 간호사의 독일 취업, 한일 협정의 보상으로 일본에서 넘어온 자본을 통한 경제 성장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덮고, 과거를 아름다운 추억만으로 연출할 수 없다. 우리에게 호시절은 없다. 대중문화는 우리가 싫어하는 걸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172). 때문에 문화연구는 여전히 힘을 갖는다. 문화 현상의 이면을 읽어내는 힘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암울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은 계속 회전되어야 할 때, 가장 채택하기 쉬운 방법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152).

 

<6장 정치의 표류>에서 다루는 박정희의 유령, 노무현의 유령 : 국제시장변호인을 둘러 싼 해석 전쟁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 두 편의 영화가 모두 반() 정치적이지만, 지극히 정치적이라는 측면에 동의한다. 두 편 모두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와 인물을 다루고 있다. 인간 노무현을 다루겠다는 제작자의 선언 비슷한 입장에서도 이 영화는 절대 정치인 노무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국제시장의 아버지는 위로의 아버지의 아들로서, 아래 세대를 지켜야하는 아버지의 지위에서만 존재한다. 초월적 아버지의 아들이며, 적잖은 식솔을 거느린 가부장의 아버지(301) 외에는 주체의 존재론적 고민을 찾아볼 수가 없다. 주인공의 존재 방식은 오로지 희생적인 아버지. 두 편의 영화는 모두 텍스트적 징후로서 정치인 박정희와 노무현을 호출하고 있다. 하지만 두 인물의 삶과 정치적 지향점을 판단 중지하고, 이 두 영화가 동시에 같은 수준의 정치적 퇴행이라고 말하기엔, 괄호 안에 갇히는 사실( 혹은 진실)이 너무 크다.

 

소망의 거울

 

저자는 대중문화를 소설 해리 포터에 등장하는 소망의 거울에 비유한다. 우리는 거울과 나의 관계에 직시하듯, 대중문화와 자신의 관계에 직면해야 한다. 대중문화가 대중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선택에 따라 해석되는 콘텍스트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텍스트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텍스트와 텍스트, 생산자와 소비자, 텍스트와 사람 사이에서 촘촘하게 의미가 부여된다.

 

대중자신을 경계하기

 

문화 연구가 교양 있고 비판적인 대중에게 행복을 약속해주는 좌파 담론이자 정치적 태도였지만, 그런 식의 행복이 독자 대중에게 자기 위안과 기만을 제공하는 헛된 것이라는 저자의 관점에 동의하면서, 대중에 대한 신화도, 맹목적인 자기 과신도 경계해야 함을 깨닫는다.

 

제목에 담기지 않았지만, 저자가 다루고 있는 것은 대중문화의 정치적 무의식 읽기. ‘덕후감이라는 낯선 단어가 일본어 오타쿠에서 오덕후, 덕후로 변형되어 한국에서 사용되고, 이를 출판사가 마케팅 전략으로 반영한 듯하다. 여기에 덕후감독후감을 연상하게 하는 효과 또한 발휘한다. 하지만, 책은 - 덕후에 대한 감상문이라기보다는 대중과 자신에 대한 거리두기와 비판을 가하는 진지한 연구가의 고민으로 가득하다.

 

최근 내가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독서 모임에서 느끼는 복잡한 심정과 맞닿아 있어서 내 생각을 정리하는데도 도움을 받았다. 이런 저런 고민을 키울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독서였다. 읽고 쓰는 행위에 대한 타인과 자신의 질문 속에서, 답을 찾는 과정에 있기도 했다. 평범한 독서 모임으로 알았는데, 연구회 성격이 강하다는 어려움을 토로하시는 회원이 계셨다. 몇 달이 가도 얼굴 보기 어려운 회원도 계시고, 발제가 부담스러운 청강생도 여럿 계신다. 애정과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맥이 풀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과연 읽고 쓰는 것에서 우리 회원들이 기대하는 것은 뭘까? 혹시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 위안과 기만은 아닐까? 그도 아니라면, 교양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지적 포장지가 필요한 것일까? 이 질문은 외부에 대한 시선에서 시작되었으나, 결국 나 자신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자학하고 싶지는 않다.

 

읽고 쓰는 행위는 자기 과시도 지적 유희도 아니다. 제대로 존재하기 위한 최선의 도구로서 읽고 쓸 뿐이다. 글을 쓴다는 것. 변화하는 의식의 한 지점을 박제하여 드러내는 일이 마음 편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통스럽기만 하다면 글을 쓰고 공개하고 평가받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쓰는 일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그것만큼 우리의 의식을 견고하게 만들고, 자기 인식과 배려의 윤리를 실천할 수 있는 기술이 없기 때문이다. 잉문학(잉여+ 인문학)에서 인문학으로, “학문애호가적 기질 인문학을 소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기 점검을 철저히 해야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163월 인문/사회/과학/예술 신간 추천합니다.

 

겨울을 이겨내고 봄을 맞이하는 일이 가볍지 않습니다.

1년의 시작은 1월일지 모르지만, 실질적인 시작은 3월입니다.

새 학교, 새 학급, 새 친구를 만나는 학생뿐 아니라, 그들을 자녀로 둔 부모, 교사의 심정도 을씨년스럽기는 마찬가지겠지요.

햇살은 봄이어도, 바람이 매운 초봄이란.

다시 마음 다잡고, 읽고 쓰는 일에 매진할 때입니다.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낸시 프레이저 외, 케빈 올슨 엮음, 이현재, 문현아, 박건 옮김, 그린비, 2016. 2.

 

이 책은 프리즘 총서 24권에 해당한다. 페미니스트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와 주디스 버틀러 등 여러 석학들의 의견을 함께 묶은 책이다. 낸시 프레이저의 책을 읽어 본 적은 없다. 다만 그녀가 의견을 주고받은 석학들의 이름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프레이저는 논쟁과 대화에 능숙한 정치철학자라고 한다. 정의(正義)가 각자에게 제 몫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했을 때, 불평등은 부정의와 동어반복이다. 우리의 삶이 힘든 것은 가난해서가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자존감의 상처는 필연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쟁점을 가지고 어떻게 논쟁하는지 꼭 읽어보고 싶다.

 

 

 

 

 

 

 

 

 

 

 

 

 

 

도덕감정론 애덤 스미스 지음, 김광수 옮김, 한길사, 2016. 2.

 

이 책 또한 한길그레이트북스 142권이다. 세상이 하수선하면 할수록 다시 돌아갈 곳은 고전이다. 애덤 스미스를 안다고 착각하는 내가 일독해야 할 책이다. 주로 애덤스미스는 자유주의 경제학자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정의 없이 경제 행위를 설명할 수 없다. 애덤 스미스는 도덕철학체계 전반에 대한 고민 끝에 자유주의를 이야기한다. 위대한 사상가의 원전을 읽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결혼과 도덕, 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옮, 사회평론, 2016. 2.

 

버트란트 러셀의 위대한 저서를 다 나열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영어가 안되는 내가 단기 어학연수를 가서, 끼고 살았던 책은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었다. 얇은 책이니,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읽고 해석하리라 목표도 세웠다. 어려운 건 영어가 아니라, 러셀의 사상이다. 내겐 노동으로 부터의 소외가 빼앗아 간 여가를 되찾아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되었다. 자기계발의 시대에 자발적 게으름은 가능한가? (이번에 본 영화 <풍푸 팬더>에서 무술을 가르칠 줄 모르는 아버지가 아들 팬더에게 요구하는 것이 늦게 일어나기, 오래 자기 등등이다. 아이들은 여기에서 웃음이 터진다. 사실 우리가 꿈꾸는 삶이 그렇지 않은가?)

니체적으로 사유하자면, 결혼과 도덕은 시대의 담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에 대한 통찰을 위해서 다시 또 고전이다.

 

 

 

 

 

 

 

 

 

 

 

 

 

 

소비사회와 교육을 말하다, 지그문트 바우만

 

신간평가단이 되기 전부터 지그문트 바우만의 책을 꾸준히 읽어 왔다. 석학이 던지는 현대 사회에 대한 통찰은 놀랍다. 그는 정주하지 못하는 현대사회를 액체 근대로 규정하고, ‘도덕 불감증에 걸린 현대 사회가 어떻게 불평등을 극복할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최근 10대 청소년들의 진로 희망 조사에서, 1위 교사, 2위 공무원, 3위 의사, 4위 건물주라는 응답이 나왔다는 것은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생존 자체가 심적, 물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바우만에게는 이미 낯선 사회학의 주제는 없다. 시민은 사라지고 소비자만 남은 세계화 속에서 교육은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예술은 어떻게 거짓이자 진실인가조경진 지음, 사람의무늬, 2016. 2.

 

예술에 관한 책을 소홀히 읽었다. 매번 추천하지만, 선택되지 않는 것을 보면, 독서가가 줄고 있기도 하지만, 예술 분야의 도서 판매가 위협을 받을 듯도 하다. 올해는 예술 서적을 좀 더 집중해서 읽어볼 참이다.

이 책은 예술 체험의 구체적인 느낌과 과정에 집중한다. “우리 모두 예술이 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예술은 진실을 일깨우는 거짓이다.”라는 피카소의 말처럼, 예술은 우리 삶의 본질에 한걸음 더 다가서게 한다. 저자의 책을 읽은 적이 없어 아는 바는 없지만, 저자 소개가 참으로 진솔하다. 화가를 꿈꾸었던 공대생, 제대 후 예술학 전공, 철학과 박사를 거친 그가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지 호기심이 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 우주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출발점 사이언스 클래식 25
리사 랜들 지음, 이강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가?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리사 랜달(Risa Randal), 사이언스북스, 2016. 1.

 

우주와 과학의 미래를 이해하는 출발점이라는 부제에 꽂혀 이 책을 추천했다. 서문에서 이 책은 현재의 이론 및 실험 물리학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 하는 독자들, 건전한 과학적 사고의 원칙 및 현대 과학의 본질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를 위한 것(10)” 이라고 언급한다. 리사 랜달이 대중 강연을 열심히 하고,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과학서를 쓰는 것을 보면, 독자와의 대화가 과학을 발전시킨다고 보는 듯하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진화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논쟁은 불가피하다. 과학의 놀라운 성과를 대중과 공유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 또한 엿보인다.

 

과학은 절대 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오랜 시간을 견뎌대는 잠정적 진실이다. 절대적 진실을 찾기 때문에 훨씬 더 불확실설과 대면한다. 앎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과학은 진화한다. 귀납적으로 사유한다면, 과학은 예외가 나타나면 기각되는 잠정적 진실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 셜록 홈즈에게 그가 사용하는 수사 방법이 연역적인 것이 아니라, 귀납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면 좋겠다는 저자의 농담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론 물리학자인 저자 리사 랜달은 기본 입자에서 우주론까지 연구 범위가 따로 없다. 미시와 거시가 교차하며 우주를 알고자 노력한다. 극미의 스케일에서 우주 전체라는 광대한 크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서로 맞물리고 결합되는지 큰 그림(12)을 그린다. 리사 랜들은 1962년 생으로, 뉴욕 과학 영재를 위한 스투이버슨트 고등학교,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엘리트 과학자다. 2006년 대중을 위한 숨겨진 우주을 출판하면서 스타 물리학자가 되었다. 이후 2011년 이 책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가 출판되었다. 입자물리학 연구를 질적으로 바꿔 놓은 LHC의 성과에 집중하면서 과학 연구를 전 방위적으로 다루고 있다. 입자물리학의 기초에서부터 우주까지 시공간을 막힘없이 넘나든다.

 

이 책은 크게 여섯 장으로 구성된다.

 

1. 지식에 접근하는 몇 가지 서로 다른 방법의 비교

2. 물질세계를 이루는 물리적 구조

3. LHC의 작동 원리 및 실제 가동

4. 힉스 보손 탐색과 이 입자와 관련된 각종 모형

5. 우주, 정체불명의 존재인 암흑 물질, 입자 물리학과 우주론의 연관성

 

책을 읽다 보면, 굳이 각각의 장에 연연하며 순차적으로 읽을 필요는 사라진다. 동일한 주제가 중복되기도 하고, 확장되기도 한다. 과학 문외한 또한 항상 궁금했던 주제를 아주 쉽게 설명한다. 물론 이 책을 이해하는 일이 쉽지 않다. 개념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은 기대하지도 않는다. 이해하기 어려운 몇 가지 개념을 복기하며 보면 훨씬 편안하다. (예를 들어 이 책의 핵심 개념은 스케일(scale)이다. 스케일은 규모 또는 척도다. LHC(Large Hadron Collider)은 대형 하드론 충돌기 또는 대형 강입자 충돌기를 의미한다. 이 정도는 과학에 관심 없는 대중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나는 무엇보다 왜 이 책의 제목이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Konkin’s on heaven’s door)’인지 궁금했다. 저자는 이 제목을 밥 딜런과 락 그룹 그레이트풀 데드가 함께 한 콘서트에서 처음 들었다고 한다. 왠지 성경의 뉘앙스가 풍기는 문구다. 이 책의 표지와 제목만 접한 독자는 우선 이 책이 종교 서적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과학자가 정한 제목 치고는 참으로 역설적이다 싶었다. 역시나 리사 랜들은 철학, 종교와 달리 과학은 수동적이거나 맹목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 이 제목을 선택했다.

 

과학이 다루는 것은 수동적으로 얻은 지식이나 믿음이 아니다. 우주의 진리 그 자체가 목적이다. 과학자는 적극적으로 지식의 문을 두드린다. 이 문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영역의 경계에 해당한다. 우리는 묻고 탐구하고, 사실과 논리에 따라 우리의 견해를 바꾼다. 우리는 오로지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이나 실험적으로 확인된 가설로부터 추로한 것들만을 믿는다(104).”

 

 

- 스케일과 재다

 

과학은 불확정 요소를 가지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조직적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길이와 스케일이 다양해지면, 이론은 진화한다. 현상을 보다 근본적으로 설명하고, 통찰을 가져오는 것이 바로 과학의 진보이다. ‘생각하다의 라틴어 어원에는 무게를 재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어에서는 어떤 아이디어를 고찰하는 것을 재다(weigh ideas)’(57)라고 한다.

 

리사 랜들은 대표적인 과학자로 갈릴레오를 언급한다. 그는 가 아니라, ‘어떻게를 고민했다. 관측의 중요성을 알고 실천했기 때문에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발명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그 스스로 망원경을 만들고 이용해서 더 작은 세계와 우주를 관찰했다.

 

과학에 대해 과학자마다 무수히 많은 자기만의 정의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의미를 넘어 서서 저자가 설명하는 과학은 독자의 명확한 이해를 돕는다. 과학의 엄밀한 규칙의 지배를 받으며 작용하는 물체를 기술하고, 그러기 우해 정량적 예언 능력을 갖춘 개념 틀을 구축하는 것이다(72~73). 과학은 언제나 온갖 관측을 설명할 수 있고 온갖 현상을 예측할 수 있는 가장 경제적인(가장 단순하며, 다른 변수를 필요로 하지 않는) 해석을 찾는다(73) 사실 이러한 측면 때문에 무수히 많은 변인들이 배제된다는 과학의 한계에 대한 오명을 벗기도 어려울 것이다.

 

- ‘무관심한 우주

 

우주는 우리에게 무관심하다. 좋은 나쁨의 척도가 될 수 없다. 객관적 과학에 필요한 것은 오로지 우주를 무관심한 것으로 다루는 것(84)이다. 이 지점에서 과학과 신학의 차이가 발생한다. 궁극적인 목적이 다르다. 종교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가치를 함의한다. 종교인들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물질세계에 관여한다고 말하는 것의 불편함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성찰하게 된다. 그것이 일상에서 나를 매우 불편하게 하기 때문에 더욱 통쾌했다.

 

경험을 기반으로 한 논리 중심의 과학과, 계시를 바탕으로 한 신앙은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102).”

 

- 입자의 성질, 질량을 이해하는 열쇠

    

내부 세계로의 여행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입자 물리학은 근본적인 구성 요소와 그들을 지배하는 물리 법칙을 이해하는 데(123) 있다. 입자를 밝히는 기술적 한계 너머에는 물리학 이론이 존재한다. 실험적인 결과를 바로 보여줄 수는 없지만, 이러한 이론들이 측정 가능한 스케일에 적용되는 아이디어들을 새롭게 고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148)고 한다. 대표적인 이론이 끈 이론으로, 기본 입자 대신 기본 끈을 채용해 물질의 기원을 설명(147)한다.

 

입자 충돌과 검출을 하는 LHC는 입자의 성질, 질량을 이해하는 열쇠다. 힉스 메커니즘은 힉스 장이 아닌 곳에서 입자들의 질량이 0이었다가 0이 아닌 값이 되는지를 설명해준다. 질량을 갖지 않고 날아다니는 입자들이 힉스 장과 관련하여 상전이가 일어나면 질량을 가지게 된다. 반면 빛의 속도로 날아다니는 것이 점점 느리게 움직이다. 암흑 물질은 중력의 영향을 받지만, 빛을 흡수하지도 방출하지도 않는 물질(183)이다. 암흑물질을 포함해도 지구상의 물질 중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27%에 불과하다고 한다. 나머지는 73%는 암흑 에너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결국 옳고 그름의 판단은 믿음이 아니라 실험(190)일 것이다. 과학의 힘은 거기에 있다.

 

저자는 LHC가 발명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입자의 내부 세계를 알게 되었다고 확신한다. LHC가 처음 구상된 것은 1984, 최초 충돌 성공은 2009년이다. 걸린 기간만큼 수많은 과학자들이 관여했고,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었다.(LHC의 가격 90억 달러, 실험에 참가한 과학자가 약 1만명이라고 한다.)

 

위험으로 가득 찬 이 세계에서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스케일이다. 이 입자의 척도를 사회에 적용하여 위험 요소를 최소화하는데 활용한다. 기후, 금융과 같은 세계에도 스케일이 적용된다. 100%는 아니지만, 확률로 재앙을 예측하고 대비한다. 과학은 불확실성을 어디까지 허용할지 범위를 정하는(304) 것이지 완벽한 측정을 할 수는 없다.

 

-  영감과 상상력, 그리고 무한한 노력

 

저자 리사 랜들은 과학자이기 전에 작가인 듯하다. 예술적, 문학적 감수성 없이 쓸 수 없는 대단한 필력을 자랑한다. 또한 수도자의 자세와 별로 다르지 않은 그녀의 삶을 태도를 알 수 있다. 몰입과 집중, 더 진실에 다가가고 싶은 강렬한 지적 욕구를 지닌 한 과학자의 삶과 마주하게 된다. 과학도 철학과 마찬가지로 세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자아에 대한 탐색이다. 인간의 탐구 정신은 지구의 가장 작은 입자에서 시작하여 무한의 우주 끝에 존재하는 물질까지 탐구한다. 이러한 성과를 추동한 것은 인간의 영감과 상상력이고, 그 과정에는 인간의 엄청난 노력이 있다.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는 과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