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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보름과 경칩을 거쳐 봄이 왔습니다.

봄 눈도 내리고, 꽃샘 추위로 다녀가겠지만, 이미 와버린 '봄'을 어쪄겠어요.

모두... 좋은 봄이 펼쳐지기를..바라며 신간도서 추천합니다.

 

 


 

 

 누가 누구를 베꼈을까?, 카롤린 라로슈 지음, 김성희 옮김, 윌컴퍼니, 2015. 2.

 

취미로 그림을 시작했을 때, 화가 선생님은 마음에 드는 작품을 따라 그리게 했다. 좋은 작품을 그리다 보면, 자신만의 고유성을 찾을 수 있다고 하셨다. 모사를 하다 보니, 무엇을 그려야할지, 어떻게 그려야할지 결정하지 못했던 막막함이 조금씩 사라졌다. 저자 카롤린 라로슈는 작품 간의 상관관계를 통해서 미술사의 이해를 돕는다. 노암 촘스키는 세상에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다.”고 했다. 예술은 축적된 문화의 결과물이다. 이 책을 추천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미술사에 대한 호기심뿐 아니라, - 200여 점의 화보 때문이기도 하다.

 

 

 

 

 

 

 

 

 

 

 

 

 

 

 

롤랑 바르트, 마지막 강의롤랑 바르트 지음, 변광배 옮김, 민음사, 2015. 2.

 

한때 바르트에게 위로 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실연의 상처로 바닥이었다. 우연히 철학자 강신주의 강의를 듣고, 바르트가 쓴 사랑의 단상을 다시 읽게 되었다. 오래전 내게는 수사학으로 가득했던 책이었다. 탈구조주의를 공부하고 난 다음 읽게 된 책은 변주되는 기호로 가득했다. 바르트 철학은 끝없이 변주되는 사랑의 언어를 이해하게 해주었다. 바르트가 준비했던 바르트의 마지막 강의에 초대받고 싶다.

 

 

 

 

 

 

 

 

 

 

 

 

 

 

 

민주주의의 수수께끼, 존 던 지음, 강철웅, 문지영 옮김, 후마니타스, 2015. 2.

 

타는 목마름으로외치던 절박했던 민주주의가 서서히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한국 사회만의 상황은 아니다. 시대에 대한 고민을 함께해온 후마니타스가 내 놓은 신간 민주주의의 수수께끼는 민주주의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 민주주의의 역사를 분석한다. 앞으로 민주주의가 어떻게 나아가게 될 것인지를 이해하는 자료로 의미 있을 것이다.

 

 

 

 

 

 

 

 

 

 

 

 

 

 

쓰고 태워라, 샤론 존스 지음, 김민준 옮김, 자음과모음, 2015. 2.

 

제목만 보면, 넘쳐나는 사적인 글을 없애야한다는 말로 읽힌다. 하지만, 이 책은 존재론적인 질문을 하게 한다. 세계에 대한 이해는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이 필요충분조건일 것이다. 온전히 독자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질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왔고,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을 통해서 나를 한권의 책으로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성형, 태희원 지음, 이후 옮김, 2015. 2.

 

얼마 전 흥미롭게 보았던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자폐적 자아를 가진 한 천재 수학자의 이야기를 무게 있게 다루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도 좋았지만, 키이라 나이들리 역시 인상적이었다. 영화 외적으로 들었던 생각이 있다. 나이들리가 한국 여배우였다면 소속사에서 기어이 양악 수술을 하게 했을 거라는 우스게스러운 상상을 했다. 이미 한국사회에서 성형은 자기관리의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타자의 시선이 완성되는 곳이 자기 몸이다. 성형이 자기완성 프로젝트이자 의료 자본주의의 끝판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거기에 포섭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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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 코난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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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대립 속에 존재하는 21세기 서울,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2014. 12.

 


 

 이 도시를 굴러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면적 605.28, 인구 천만의 도시 서울에 대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대한 분석은 끝이 없다. 서울에 대한 분석은 한국 사회를 작동하는 모든 기제에 대한 분석을 동반한다. 서울과 서울 아닌 곳, 둘로 나뉘지는 21세기 한국은 서울에 대한 분석만으로도 사회 전체를 바라볼 수 있다. 대부분의 거대 도시가 가지고 있는 보편성 속에서도 서울만의 특수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고유명사 서울은 보통명사의 속성을 갖는다.

  

  

서울에 대한 인문·사회과학적 분석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근대 이후, 지식인 산책자들은 경성 곳곳에서 인문학적 성찰을 가져왔다. 작년 딱 이맘때 출판된 류신의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민음사, 2014. 1.)는 소설가 박태원에 의해 탄생한 구보와 벤야민의 산책자적 시선을 차용하여 2013년 서울을 산책한다. 객관적인 사실에 의존하기보다는 저자가 경험한 서울 속에서 여전히 차고 넘치는 자본주의 속성을 섬세하게 호출한다. 구보와 벤야민을 향한 헌정과도 같은 이 책은 다른 시공간 속에서 벤야민, 구보, 류신 세 사람이 함께 산책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동 속도와 시선을 낮추면서 서울은 맨얼굴의 실체를 드러낸다. 도시 거주자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도시 산책자의 눈에 게스탈트적으로 한꺼번에 속살을 드러낸다.(http://blog.aladin.co.kr/educaso/6918092) 서울의 밑 낯을 보는 일은 '산다는 것'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탈주다.

 

 

넘쳐나는 서울에 대한 분석이 여전히 의미 있다는 것은 과잉 개발의 건조한 도시가 여전히 진화하는 생물과 같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따라서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해법도 다양해질 것이다. 경제학 교수 류동민의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류신과 다른 시점에서 서울에 접근한다. 시간과 공간, 구조와 개인의 교차점에서, 보편과 특수의 총체로서 서울을 바라본다. 경제학자의 인문학적 기술은 사이사이 분석을 요구한다. 낭만적 키워드나 (‘그땐 그랬지식의 어법을 사용하는) 추억의 말랑말랑함은 아니란 이야기다. 경제학과 민족지학이 결혼해서 한집에 사는 느낌이다. 류동민 교수의 감수성과 문체는 그가 얼마나 문학에 천착해왔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라는 부재는 구체적으로 저자의 관점을 드러낸다. 4개의 장을 구성하는 소제목은 좀 더 서울을 명확하게 한다. 배제와 물신, 남겨진 공간 & 사라진 공간, 등고선의 은유, 높이 날고 싶은 은유가 서울의 키워드다.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인 경험 하나가 떠오른다. 매번 서울에서 열리는 학회를 이번에는 참신하게(??) 지방에서 진행하자고 하여 전주에서 열렸다. 학회 참석한 교수님과 연구자들은 거의 여행자의 복장과 태도였다. 청명한 공기에 대한 찬사, 한상 번듯하게 차려진 음식에 대한 칭찬, 느린 삶의 방식에 대한 부러움,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아파트값에 대한 감동이 한참 이어졌다. 그리고 결론은 그래도서울을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한국 사회에서 서울은 여전히 성공한 사람들의 베이스캠프다. 몇 배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한번 벗어나면 재진입이 어려운 공간이다.

    

 

몇몇 공간에 대한 분석이 인상적이다. 스타벅스의 영업 방식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에 대해서 곱씹어 생각하게 한다. 다른 나라에서 문제가 되지 않은 스타벅스 컵 사이즈에 대한 논란이 한국에서 시작된 것을 보면, 고급문화를 지향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스타벅스를 선호하는 것 같다는 스타벅스 관계자의 말은 틀리지 않았나 보다. 한국의 소비자들은 스타벅스의 사이즈가 tall, grande, venti라는 것에 문제 제기를 했다. 스타벅스에는 아메리카노 short 사이즈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카페 short 사이즈와 스타벅스 tall 사이즈가 같다는 것. 나는 왜 한번도 그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냥 스타벅스 방식을 내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수용한 것이다. (이는 IKEA의 한국 상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봐도 알 수 있다. 한국인이 값싼 가구를 좋아할 것이라는 분석은 정확했지만, 인터넷 정보력은 세계적이라는 것을 간과해서 구매에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그냥 만만한 소비자는 아닌 모양이다.^^) 커피 한잔 주문하는데도 여섯 가지를 결정하도록 만듦으로써 정체성을 규정해주는 곳(39)”이 스타벅스다. 우리 동네 카페도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레드, 블루, 엘로우 중 선택하라고 한다. 그야말로 선택 과잉이다. 명동 신세계 백화점의 버버리를 입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반백의 노인들이라면 모를까, 연로하신 우리 부모님은 자녀들의 도움 없이 오늘날의 한국 카페에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커피 한잔 마실 수 없다.

    

 

대립이항의 분리 속에 존재하는 서울, 한국은 서울 아니면 모두 지방이다. KTX는 모두 서울에서 출발하고, 서울로 향한다. 서울은 지방을 외부로 분절되어 있고, 강북과 강남이 내부적으로 나뉘어 있다. 그 안에도 무수한 대립 항이 존재한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나, 해결하려는 사람은 드물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61)

 

아파트가 여전히 부의 상징인 점은 한국 사회의 매우 특이한 점이다. 다른 선진국은 개발 초기 아파트가 부의 상징이었더라도,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면 교외 전원주택으로 상류층이 대거 이동해왔다. 한국은 산업사회를 넘어선지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부자들이 아파트를 선호한다. 모 아파트 광고에서 이민정이라는 배우를 처음 봤던 기억이 난다. 데려다 준 선배에게 자기가 사는 아파트를 가리키자, 선배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아파트의 브랜드는 그녀의 사회·경제적 지위뿐 아니라,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고 성장했는지, 취향이 무엇인지를 총체적으로 드러내준다. 그 이후에도 아파트 광고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보여주는 자격증이라고 홍보해 왔다. 서울을 벗어나면 주변 외곽일 거라는 기대를 깨고, 이제 서울은 일터, 제주를 삶터로 닦아가는 상류층이 늘고 있다. 제주도 땅값을 뒤흔드는 그들은 시공을 포갤 수 있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지방과 바다를 넘어 제주도를 제2의 서울로 만들고 있다.

    

 

알고 있는 것을 글로 재현하는 저자의 어려움이 컸던 만큼, 읽는 독자의 감동은 컸다. “중의적이고 불투명한 글”, 그래서 발생하는 미학적 가치는 읽는 사람을 행복하게 한다. 문맥 사이 호흡도 길어지고, 말랑말랑하는 문장 속에서 맑스 경제를 떠올려야 한다. 때때로 저자가 읽은 문학과 영화가 곳곳에 적절하게 안배되어 있다. 저자가 자신의 경험에서 서울을 연구의 대상으로 변주했듯, 서울에 대한 개별적 경험은 보편적 문제의식에서 총체적으로 만난다. 잠시 서울에 머물고, 오래오래 지방에 살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은 서울을 현재로 호출한다. 누군가를 좋아해도 매번 서툰 우리는 때를 기다리는 설레임 속에서, 언젠가 사람이 떠나도 장소는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라는 명징한 확신을 한다. 서울은 그렇게 과거이자 현재로, 분석의 장소이자 느낌의 장소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은 공간 실천을 행동을 불러오는 특수성의 공간임에 틀림없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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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 어려운 시대에 안주하는 사토리 세대의 정체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 민음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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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관적인 세계, 비관적인 대안. 행복한 젊은이들

 

절망의 나라 행복한 젊은이들, 후루이치 노리토시 저, 이언숙 옮김, 오찬호 해제

    


2011. 3. 11. 오후를 잊을 수 없다. 금요일 저녁 식사 모임, 식당 TV로 일본 대지진 상황이 방송되고 있었다. 세상의 종말 같은 느낌이었지만, 우리나라도 심각한 피해를 입을 거라는 염려도 했지만, 인류는 이제 2011년 대지진 전후로 나뉠 거라고 생각했지만, 3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세계를 흔드는 가시적인 변화는 없는 듯하다.

 

 

20127. 일본 여행을 다녀왔다. 대지진 이후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염려스러웠다.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었다. 평온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처참한 대지진 우울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 수잔 손텍이 내전 중인 유고슬라비아와 보스니아를 여행하면서 고도를 기다리며연극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전쟁의 일상성이 아닐까 생각했다. 전쟁은 단시일에 끝나지 않는다. 수년간의 전쟁 속에서도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야 한다. 대지진 이후에도 일본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단 패러다임은 변한 듯하다. 미래를 준비하던 이들이 이제 현재만을 살게 되었다는 것. 소비가 증가했다.

 

 

90년대 초반까지도 함께 우리나라와 세계의 평화와 인권을 염려했던 친구들 중 많은 이들이 종교 속에서 구원 받았고, 명상과 수련을 통해서 삶의 평화를 얻었다. 그들의 얼굴엔 미소가 번진다. 정치를 삶에서 배제한 대부분의 지인들은 일단.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다. 내향적으로 끼리끼리 무리 짓기과정 속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 자기 충족화의 삶을 살아간다. 우리 나이가 되면 인간은 두부류로 나뉜다. 생존을 목적으로 살거나 개인의 안위를 사는 사람이 존재한다. 그 경계선에서 흔들리는 나와 같은 회색분자들은 위, 아래에 존재하는 클래스를 보면서 흔들린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즈음, 읽게 되는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은 참으로 반가운 책이다. 어느 시대보다 최고의 풍요속에 살고 있는 저항하지 않는 젊은이들, 모두 함께 누리는 듯하지만, 과거보다 더 불평등한 시대를 살아가는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도쿄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과정에 있는 1985年生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젊은이의 탄생과 종언에 대한 분석에서 시작하여 작은 공동체 안으로 모이는 젊은이들, 일본을 위해 일어서는 젊은이들, 종국에는 절망의 나라에 사는 행복한 젊은이를 차례로 분석한다. 젊은이의 젊은이 분석과 일본을 한국과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세상 많은 일들이 그렇지만, 젊음 또한 상대적이다. 신인류. 젊은이의 개념이 시대별로 어떻게 변천했는지를 탐색한다. 얼마 전 뉴스 앵커의 스물여덟 어린 나이에라는 표현을 들었다. 언제부터인지 스물여덟을 어리다고 표현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도대체 알 수 없는 젊은이들, X 세대가 등장한 것도 이십 여 년이 지났다. 하지만 젊은이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어도 그 전형에는 변함 없는 속성이 있다. ‘버릇없는 젊은이, 당연한 듯 보이는 세상을 향해 문제를 던지는 것은 시공을 초월한 모든 젊은이들의 공통분모이자 전유물이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 실제적인 사례가 풍부한 민족지학적 연구라는 점이다. 저자의 젊음에 대한 상투적인 표현이 필요할 듯하다. 역시 젊다. 상황이 나쁘다하더라고, 다행스러운 것은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자신의 자세에서 희망을 찾는다. 쉽게 쓰였고, 매번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의 에필로그 뒤에 붙어 있는 주석 453개는 저자가 얼마나 성실한 사회학자인지 알게 한다. 핵심 질문은 간단하다.

 

첫째, 절망의 나라에서 행복해야 하는가?

둘째,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진다면?

셋째, 적어도 우리가 낭만적일 수만은 없는 이유는?

 

해제를 쓰신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괴물이 된 이십 대의 자화상의 저자) 오찬호씨와 같은 질문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저항이 사라진 젊음에서 문제의식을 갖게 하는 일본의 젊은이들이 있고, 개인의 행복을 향해 끼리끼리 집단으로 들어가 버린 일본 사회의 문제를 우리도 누릴(?) 수 있을까? 체념의 행복이 한국에서는 불가능할거라는 불안이 몰려온다. 국가 없는 국민에 대한 공포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을 잠식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결국 생존을 위해 살아가다 쓰러지는 젊은이를 훨씬 더 많이 보게 될까봐 두렵다. 그들이 맘껏 저항할 수 있게 하기 위한 미래 역량은 무엇일까? 생물학적 어른으로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책 끝머리에서 우리 의 목표가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한다. 삶의 모든 과정은 나를 알고, 세계를 이해하는데 유용하다. 결국 삶을 미학적으로 가꾸기 위해서는 존재론과 인식론이 필요하다. 세상을 이해하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노암 촘스키의 말처럼 세상에 새로운 아이디어는 없다. 읽고 쓰고, 사람과 부대끼는 접속을 통해서 세계는 나에게 다가온다. 이 땅에서도 저자 후루이치 노리토시처럼 세계와 접속할 줄 아는 불행한젊은이를 기대해보련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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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월. 마른 바람이 맵지만, 그래도 1월 다르고 2월 다르네요.

길어진 오후, 따듯한 햇살만으로도 살아야하는 이유는 충분한 듯합니다.

신간 서적을 살펴보다 보면 저절로 읽고 싶은 '강력한' 욕망이 일어납니다.

함께 읽고, 쓰는 도반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장자 강의- 혼돈의 시대에 장자를 읽다전호근 지음, 동녘, 2015. 1.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시대의 장자의 선택은 소요유(逍遙遊), 정처 없이 떠돌며 노니는 것. 그렇지만 소요유가 함의하는 메타포는 그렇게 간단한 독해는 아닌 듯하다.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분들이 돌고 돌아 다시 장자에게 돌아가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그는 단순한 체념에서 세상을 등진 철학자가 아니라, 자신만의 비전을 가진 혁명가다. 혼란과 불안의 시대, 장자를 다시 읽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사진 인문학- 철학이 사랑한 사진 그리고 우리 시대의 사진가들이광수 지음, 알렙, 2015. 1.

 

1부 사진의 인문학 목표를 보고 나니, 사진을 보고 철학을 읽고 싶은 욕이 솟구친다. 벤야민, 바르트, 하이데거, 칸트, 엘리아데, 구하, 레비스트로스, 데리다, 사이드, 들뢰즈, 푸코, 보드리야르 철학을 보여주는 사진은 어떤 것일지 호기심이 인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5~76, 미셸 푸코 지음, 김상운 옮김, 난장, 2015. 1.

 

사적인 감흥과 노고를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처음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세기말의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영국에서 지내던 친구가 선물해준 책이었다. 우리는 그 시절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선언적인 말에 취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푸코의 성의 역사광기의 역사, 지식의 고고학도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문선에서 박정자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이 책은 나에게 이해하지 못해도 동의할 수 있음을 경험하게 했다. 그 이후, 대학원에서 이 책으로 공부한 기억이 선연하다. 다시 정독하고 싶은 책이다.

 

 

 

 

 

 

 

 

 

 

 

 

 

 

 

미국 이후의 미국 - 그들이 그럼에도 강한 이유, 박선규 지음, 미다스북스, 2015. 1.

 

저자의 화려한 이력 때문에 이 책을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종군 기자, 미국 의회 보좌관, 청와대 대변인, 차관 등 다양한 경험을 한 저자가 경험과 관찰을 통해 풀어낸 미국의 핵심 역량을 보는 일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2014년 한국이라는 공간 속에 함께 했거나, 타국에서 한국에 채널을 두고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세월호라는 세 글자로 집단 기억을 형성했다. 저자의 세월호를 어떻게 넘어야 하나라는 질문은 우리 모두의 질문이기도 하다. 이 정권 아래에서 절대 넘어설 수 없겠지만, 우리는 끝까지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할 것이다.

 

 

 

 

 

 

 

 

 

 

 

 

 

 

 

나는 시민인가- 사회학자 송호근, 시민의 길을 묻다, 송호근 지음, 문학동네, 2015. 1.

 

한국인의 인성이 공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에는 상식적인이유가 충분히 있다. 상대평가로 자신의 사회적 좌표가 정해지고, 불평들이 만연하다 보면 친구 간의 우정도, 직장 내의 동료성도, 지역 사회의 연대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시민 정신이 약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 책에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공유 코드를 가지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는 시민에 대한 저자의 성찰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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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교 이야기 -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믿음과 분쟁의 역사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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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틀림’이 아닌 ‘다름’, 반목이 아닌 평화의 관계의 가능성 『세 종교 이야기』

 

홍익희 지음, 행성:B 잎새, 2014. 8.

 


 

 

 

날라리 천주교 신자인 나는, 오늘 오전, 마주보고 앉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동료와 잠깐 종교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해서는 안되는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 둘은 절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채, 팽팽한 평행선을 달렸다. 그녀의 질문은 내가 수십 년은 족히 들어 왔던 똑같은 질문이었다. 천주교는 유일신을 섬기지 않고, (마리아를 믿는 종교라는 표현까지 썼다.) 천주교의 성경은 기독교 성경과 다르다는 것이다. 중학교 세계사의 교과 지식을 곁들여 얘길 했더니, 종교는 지식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그녀는 성당 주변에 가본적도 없고, 성당의 성경을 본 적도 없다. 워낙 많은 사람들의 반응이 그래왔던지라, 맘이 상하지는 않았다. 마무리는 내가 최근에 읽는 책이 홍익희 선생님이 쓴 『세 종교 이야기』인데, 종교인이든, 아니든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내가 사주지 않는 한, 그녀가 이 책을 가능성은 일단 1% 미만인 걸로 정리하자.

 

 

종교에 관한 이야기는 매력이 없을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들이 있다. 종교는 보편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지식과 관점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종교인이 아니라면,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사실 타종교의 교리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종교를 비교하는 것도 의미가 없지만, 종교 간에는 서로 다름이 존재할 뿐, 누가 맞고 틀린지를 가릴 대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천 년 동안 얽혀있는 종교의 역사를 살펴본다면 조금 다른 태도로 타종교를 수용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세 종교의 역사에 대해서 나름 ‘상식’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렵지 않은 책이지만, 읽다보면 내 무지함을 구석구석에서 발견한다. 고전은 읽지 않았지만, 읽은 것 같은 책이라는 우스게 소리가 있듯, 이 책을 통해서 종교 또한 대체로 아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정말 모르는 분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깨침이 생겼고, 세 종교에 새롭게 접근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 종교 이야기』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간의 믿음과 분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9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세 종교의 기원, 유대교의 탄생과 정착, 기독교의 탄생과 정착, 이슬람교의 탄생과 정착을 다루고 마지막으로 세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 반목과 갈등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한 가지에서 시작하여 각각의 영역을 분석하고, 다시 하나로 모아 오는 구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읽을 수 있는 강점이 있는 책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에서 나온 이 세 종교는 모두 동일한 구약성경을 경전으로 삼는다. 저자의 말처럼 예루살렘은 기독교인만의 성지가 아니다. 한때 평화롭게 지내기도 있던 세 종교는 성전(聖戰)이라는 미명 아래, 오래 반목과 전쟁을 지속해오고 있다. 역사적 배경을 종합적으로 살펴보고 난 연후에야 종교 간의 분쟁을 이해할 수 있다. 이해의 지점은 화해가 열리는 시발점이기도 하다.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에 대한 공명이 마음을 울린다. “역사를 보면 정치든 사상이든 관용성을 보이며 상대를 포용하면 융성했고 서로 반목하고 대립하면 어김없이 쇠퇴를 불러왔다. 종교도 마찬가지였다.”(5쪽) 종교뿐 아니라, 우리 삶의 타산지석이 될 만큼 뼈 있는 말씀이다. 세월 호 참사 이후 희망이 없는 한국을 방문하셨던 교황 프란체스코가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은 종교를 초월한 서로 간의 사랑이었다.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으며 신앙이 없으면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7쪽)는 그의 말씀은 가히 혁명적이다. 교황의 말씀은 천주교인에 한해서만 해당하지도 않았고, 천주교인만을 구원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았다. 종교를 초월하여 수용해야 하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 한명은 기독교인이다. 그런데도 아직 세상이 이 정도라면, 이것은 우리 기독교인의 탓이라고 (나를 세례해주신) 박중신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삼십년 전 들었던 이야기인데, 그 말씀은 슬프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나에게는 가끔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보는 이○○ 목사님이 계신다. 나 또한 개신교 이모를 따라서 새벽 예배를 보러 가는 것에 불편함이 전혀 없다. 형식을 중시하는 성당 미사에 비해서 간소한 개신교 예배가 때론 더 좋기도 하다. 반대로 목사님은 경건한 성당 미시가 좋을 때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칠순을 넘어섰지만 워낙 진보적인 청년의 심장을 간직하고 사시는 분인지라, 그분과는 어떤 종교 이야기를 나누어도 불편함이 없다.

 

 

몇 주 전 이 책과 더불어 역사에 대하여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시민단체 특강에서 미시사학자 백승종 선생님의 ‘이순신’에 관한 역사 강의를 들었다. 그가 연구한 이순신은 이전에 내가 알던 이순신이 아니었다. “달빛만 고와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섬세한 시인이 가슴에 살고 있는 (불멸의 이순신이 아니라) 불면의 이순신”이었다. 7년 동안 스물세번의 전쟁에서 모두 승전하였지만, 전쟁이 없는 시간이 훨씬 길었고, 대부분 노비출신인 병사를 먹여살려야하는 아버지 같은 자리에 이순신이 있었다. 탁월한 문장가, 선비적 감수성을 가진 그는 “경영의 귀재”이기도 했다. 수유연구실의 고미숙 선생님을 통해 들여다보았던 연암 박지원의 모습이 예전 내가 알던 인물과 달랐듯이, 이순신 역시 광화문 동상처럼 장엄한 군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역사를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의 사물을 다차원적으로 줌인, 줌아웃하면서 바라보는 일일 것이다.

 

 

역사 교육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우문(愚問)에 백승종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역사는 우선 재미가 있고, 교훈이 있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데 꼭 거쳐야 하는 공부라는 것이다. 그 답변은 『세 종교 이야기』에도 그대로 해당한다. 이 책은 재미가 있고, 교훈이 있으며, 나의 종교관에 대해서 되짚어 볼 수 있는 소중한 책이었기에 일독을 권할만하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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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도둑 2015-01-02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숲님, 잘 지내시죠?
여전하시네요...^^ 정말 보기 좋아요.
오랜만에 들어와서 찬찬히 리뷰를 읽었네요,,,`
지나간 시간들이 그립네요...
며칠 전에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13권의 책을 샀어요.
조금 설레더군요,...
아주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었어요....
예전의 그 설레임을 다시 찾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