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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스의 글쓰기』모리스 블랑쇼 지음, 박준상 옮김, 그린비, 2012. 12.

 

철학적 사유를 이끄는 글쓰기는 논리와 논거가 충실한 명징한 언어가 불가한 경계일 때가 많다. 블랑슈는 그의 내밀한 일상처럼, 여백과 침묵 속에서 사유의 단상을 구성한다. 형식 자체가 낯설어짐으로써, (죽음, 작품, 타자, 저자, 수동성, 밖이라는) 각각의 개념이 하나의 전체 맥락에서 흐트러지지 않는다. 철학과 문학이 확고한 개념으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가능성을 의심하는 지점에 서 있는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세계사의 구조』 가라타니 고진 지음, 조영일 옮김, 비(도서출판b), 2012. 12.

 

가라타니 고진은 맑스주의를 재해석하여 새로운 논쟁으로 이끌어간다. 그는 맑스주의 사적 유물론에서 강조하는 ‘생산양식’의 자리에 ‘교환양식’을 대치하여 역사를 새롭게 기술한다. 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이 전망이라고 한다면, 현재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로 획일화되고 있는 세계정세의 미래를 추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다.

 

 

 

 

 

 

 

 

 

 

 

 

 

 

 

『이상 평전』김민수 지음, 그린비, 2012. 12.

 

삶과 작품이 명확한 분석으로 포섭되지 않는 문제적 작가 이상의 평전이 새롭게 나왔다. ‘열린 텍스트’라는 전제에서 때로는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되는 이상의 작품에 대해서 저자 김민수의 『이상 평전』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한다. 여성편력, 퇴폐적 낭만주의, 외부자적 시선의 한가로운 산책으로 이해되던 이상의 생애와 작품은 ‘융합예술과 혁명성’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된다. 아마도 최첨단의 예술과 접촉하며 문화 생산자였을 새로운 이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공황 르포르타주』 이황 지음, 북퀘스트, 2012. 12.

 

‘공황 전문 기자’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한참 전에 한국일보 이황 기자는 40년을 공황 취재를 했다. ‘공황’은 바로 한국 현대사와 자연스럽게 연결었고, 그곳은 언제나 특종과 고발의 현장이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후일담까지 가득한 이 책을 통해서 2012년 대통령 선거의 선택과 정보 부재 (또는 편향)와 어떤 연결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휴먼 선집』최민식 지음, 눈빛, 2012. 12.

 

한국에 단 한 사람의 사진작가가 있다면, 나는 바로 ‘최민식’이라는 세 글자를 또박 또박 말할 것이다. 제 1세대 다큐멘터리 작가로서, 오로지 인간, 그것도 한평생 카메라에 포섭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현실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그의 사진에는 잉여가 없다. 오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의 딸조차 “가난한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아서 돈을 번다.”는 뼈아픈 검열을 했다고 하지만, 그의 시선은 모두 애정에 기반한다. 여전히 성실하게 셔터를 누르고 있는 최민식 작가의 글과 사진 속에서 깊은 힐링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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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적 우울증』사이토 다마키 지음, 이서연 옮김, 한문화, 2012, 11

 -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현대인의 마음의 병, 신종 우울증을 해부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우울증’이라는 자가 진단을 내린다. 자살을 시도했던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끔찍한 범죄와 연루된 사람들 또한 우울증으로 오랜 은둔 생활을 했다고 고백한다. 도처에 널려 있으나, 누군가는 감기처럼 앓기도 하고, 누군가는 극단의 선택을 하기도 한다. 십 년 전만 해도 평범하지 않았던 질병이 마치 감기처럼 이야기된다. 사람들은 모두 우울증의 전문가인 듯 이야기한다.

 

한때 우울증은 유럽처럼 선진국 사람들이 실존적인 문제와 삶의 권태로부터 야기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생존 자체가 목적인 가난한 개발도상국에서 ‘우울증’은 왠지 사치스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먹고 살기 어려운 사람에게 마음을 돌보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쌍용 자동차 희생자가 스물세 명으로 늘어나면서, 더 이상 우울증은 개인의 심인적인 것으로 간과할 수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어떻게 개인을 불안으로 잠식하고,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에서 도피하여 운둔하게 하는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병은 원인을 알아야 제대로 치유 할 수 있다. 인지 치료를 통해서 우울증을 없애려는 ‘과학적’ 노력은 계속되면서, 정신 질환 신약 또한 꾸준히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개인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에 그 원인이 있다면 우울증은 정신 질환 약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고 해서 사라질 질병이 아니다. 정신의학자인 저자 사이토 다마키는 우울증이 개인적인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울증이 시스템에 의한 병리 현상이라면, 그 치유법 또한 달라질 것이다.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 신근영 지음, 북드라망, 2012. 11.

 

 융, 프로이드, 사바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 <데인저러스 매소드>는 융이라는 위대한 분석 심리학자를 이해하기 위한 단초가 되었을 뿐 아니라, 정신분석이 어떤 방식으로 환자에 접근하여 임상 치료를 하는지에 대하여 기초 지식을 갖을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이다.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세 명의 정신과 의사가 어떻게 무의식이 사로잡히고, 자신의 욕망과 충동에 페르소나가 덧씌우는지, 그 과정에서 세 사람이 각 각 어떤 통찰을 얻게 되는지의 과정에 집중하다 보니, 융의 전체 삶을 이해하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다. 구스타프 융이 아니마, 아니무스, 자기, 집단 무의식을 발견하는 학문적 여정을 함께하기에는 다소 부족하였다.

 

반면 『칼 구스타프 융, 언제나 다시금 새로워지는 삶』은 스스로 “걸어다는 정신병원”이었던 융의 삶 전체를 종횡무진 가로 지르며, 우리 모두 자기 삶의 치유자가 되어야 하고, 될 수 있음을 주장한다. 내 마음의 별자리인 ‘콤플렉스’를 발견하고 인정하는 치유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본질을 알게 되고, 우리는 통합된 자기를 완성할 수 있다. 나를 알고,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면 드러난 의식만으로는 자기를 알 수 없다. 답은 우리 안의 무의식속에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분석 심리학은 힘을 갖는다.

 

『대동서,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김태진 지음, 북드라망, 2012. 11.

 

‘대동 세상’을 꿈꾸었던 중국의 정치사상가 강유위(캉유웨이)가 백여년 전에 썼던 책, 『대동서』와 그의 삶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모두가 하나 되는 ‘대동 세상’을 꿈꾸었던 강유위의 생애, 사상, 당시 중국과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의 정치, 경제, 사회적 실상을 바탕으로 그가 주장했던 유토피아의 실체를 탐색하는 과정이 한편의 여행 안내서로 구성되어 있다.

 

신진 정치학자 김태진은 이상사회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담고 있는 『대동서』를 현

재의 시점에서 새롭게 읽는다. 계약결혼, 보편 세계, 경쟁 거부, 100년 전 주장이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점이 놀랍다. 밥벌이에 지쳐 삶을 산다는 것이 괴로운 - 불안하고 불온한 현대를 살아가는 - 사람들이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가이드북이 될 것이다.

 

 

 

 

앞의 북드라망에서 만든 ‘마이클’ 시리즈(나의 클래식 시리즈) 두 권의 책에 덧붙여 :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유쾌하게!” 라는 출판사의 기획처럼, 융 입문서로 훌륭한 책이다. 몇 년 전 수유 연구실에서의 짧은 경험 탓에 그들의 학문적 지향점을 힘차게 지지해주고 싶다. 공부는 친구와 함께, “대가 옆에서 대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처럼, 지식 공동체로 코뮨을 이룬 수유너머의 도반이 쓴 책이라는 점, 이 책들에 대한 믿음은 거기에서 나온다.

 

『상처 주는 학교- 우리 교육의 희망과 대안을 찾아』, 커스틴 올슨 지음, 노승영 옮김, 한울림스페셜, 2012. 11.

 

『미국의 공교육 개혁 - 빛과 그림자』를 보면, 우리의 상황과 미국의 실태가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 공교육을 개혁하기 위하여 미국에서 시행된 정책들이 어떻게 공교육의 그림자로 환원되었는지를 알게 된다. 그 책의 연장선에서 읽어야 할 책이 바로 『상처 주는 학교- 우리 교육의 희망과 대안을 찾아』다. 공교육에서 희망과 대안을 찾으려는 교육 전문가 커스틴 올슨 (Kirsten Olson)은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정책이 어떻게 학교를 상처로 물들이는지를 알아차리고 치유할 것인지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간다.

 

신자유주의 교육 정책이 도입되면서, 교육은 노골적으로 자본의 논리에 흡수되었다. 참된 배움과 인성을 기르기 위한 전인 교육은 사라지고, 정부는 평가 국가로서 자리매김했다. 학업성취도, 학교 평가, 책무성, 교원 평가 등이 등장하면서 가르치고 배우는 기쁨이 사라져가고 있다. 교실은 학습된 무기력으로 학습 동기를 잃어버린 학생과 존경이라는 상징 자본 없이 입시를 준비하게 하는 교사의 만남의 장이 되어 가고 있다. 교학상장(敎學相長)은 사라지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는 비틀린 관계가 학교를 지배하고 있다. 그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 책이다.

 

 

『뇌과학, 경계를 넘다- 신경윤리와 신경인문학의 새 지평』, 신경인문학 연구회 지음, 홍성욱, 장대익 엮음, 바다출판사, 2012. 11.

 

『뇌 과학, 경계를 넘다』는 뇌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하고 있는 학자들이 함께 바라본 미래학에 관한 연구서다.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에서 출발하는 이 책은 과학의 발전과 함께 비례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윤리적, 법률적, 사회적인 문제들을 다룬다. 뇌 과학은 뇌를 사회적 관계나 제도에서 분리하여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다. 뇌 과학자 뿐 아니라, 의학, 법학, 철학, 인지과학, 과학기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함께 고민해야 할 분야다. 뇌 과학은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의 생각과 통섭하지 않고서는 이해될 수 없는 학문 영역이다.

 

‘뇌에 문제가 있는 범죄자는 용서받을 수 있는가?’ ‘식물인간에게 인격이 있는가?’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약을 먹으면 안 되는가?’ ‘과연 인간의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 등의 물음은 뇌 과학적 지식만으로 답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뇌 과학, 경계를 넘다』는 다양한 정책과 법이 제정되는 과정에서 뇌 과학은 어떻게 활용되고 있으며,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계기를 제공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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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10 1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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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언(Declaration)』안토니오 네그리 · 마이클 하트 지음, 조정환 옮김, 갈무리, 2012.

 

“전 세계의 빚진 사람들, 미디어 된 사람들, 보안된 사람들, 대의된 사람들이여, 공통적인 것을 구성하라!”

 

전지구적 ‘세계화’를 ‘제국’이라고 규정하고, 자본 · 군사 · 정치적 네트워크를 해체하는 핵심 세력을 ‘다중’이라고 명명했던 이탈리아 좌파 정치철학자 안토니오 네그리가 펴낸 또 하나의 역작이 바로 『선언(Declaration)』이다. 그는 평생의 학문적 동지 마이클 하트와 함께 ‘아우토노미아(자율성, 자주성)’를 바탕으로 지배 권력에 대항하는 안티 세력을 전지구적으로 연결하는 ‘다중(Multitude)' 개념을 설정한다. 다중은 인민(people), 대중(mass), 노동계급 등이 다양하게 조직되어 행동하는 전지구적 연결이다.

 

“월스트리트를 점거하라.”

 

전위(前衛)에서 온몸으로 투쟁하는 실천적 지식인, 네그리와 하트는 2011년 전 지구적 연쇄봉기를 주도면밀하게 탐색하며 편지, 기고, 인터뷰 등의 다양한 이론적인 방식으로 봉기에 적극적으로 개입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최근에 탄생한 책 『선언』은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 1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되었다. 시위의 기운이 사라진 이후에 세상의 변화와 의식의 진화는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고민할 수 있는 책이다. 봉기의 끝은 또 다른 봉기로 이어지고, 좌절한 시위는 세상의 기운을 바꾼다. 시위는 - 한번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 매번 틈새를 뚫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변주의 여정이다.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틀어가기 위해 힘을 더하는 모든 이들이 일독해야 하는 책이다.

 

 

 

 『배흘림기둥의 고백- 옛건축의 창조와 진화』서현 지음, 효형 출판, 2012. 09.

 

십여 년 전 최순우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읽고 나서, 한동안 사찰의 배흘림기둥에 눈이 가던 시절이 있었다. 워낙 태생이 문자적 인간인지라, 나에게 배흘림 기둥은 심미적 안정감도 보다도 그 단어 자체의 울림이 더 크게 다가왔다. 글자에 알맞은 모양새를 갖춘 ‘배흘림 기둥’, 그리고 또 한번 배흘림기둥에 눈길이 머물게 만드는 서현의 『배흘림기둥의 고백- 옛건축의 창조와 진화』.

 

고(故) 정기용 선생님을 알게 된 이후, 자꾸 건축과 건축가에게 마음이 가던 차였다. 또한 아마추어를 위한 교양서들을 들추며, 여행을 꿈꾸는 시간들이었다. 서현의 『배흘림기둥의 고백- 옛건축의 창조와 진화』는 - 건축에 대한 애정은 가득하나, 무지로 똘똘 뭉친 나와 같은 - 초보자를 위해서 더없이 훌륭한 책이다. 『사라진 건축의 그림자』로 세상을 이름을 소개했던 이 책은 건축을 전공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서 이름을 바꾸고, 반복 설명도 서슴치 않는 ‘자상함’으로 성형하여 다시 독자와 마주한다.

 

저자가 왜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책을 고쳐 썼는지를 서문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숲의 나무가 환생하여 전통건축의 구조체가 된다. 이 책은 전통 건축의 각 부재들에게 던져진 과녁과 이들이 거쳐 가야 했던 과정을 설명한다. 건축사는 부재들을 뜯어고쳐가며 새로 조합해나간 진화과정의 서술이다. 매 순간 창조의 아이디어가 필요하였으니 그것은 창조와 진화가 교직되는 과정이었다.” 나무가 제 모습을 바꾸어 전통가옥으로 환생하고 진화하듯이, 서현의 책 역시 환생에서 진화 과정을 거친 샘이다. 건축이 “인간 의지의 물리적 표현”이라면, 이 책은 전통 건축을 사랑하고자 하는 소박한 독자의 바람으로 잉태했다. 철저한 합리성의 계산에서 건축물을 생산해야 하는 건축가의 언어가 시어를 읽듯, 철학서를 읽듯, 행간에서 숨을 고르게 만든다. 가을은 사물이 우리에게 걸어오는 무수한 말들에 귀 기울일 시간이다.

 

 

 

건축, 그 바깥에서- 잠재 공간과 현실 공간에 대한 에세이』엘리자베스 그로스 지음, 강소영 외 옮김, 그린비, 2012. 09.

 

이것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건축 밖의 공간에 대한 철학적 사유다.

 

엘리자베스 그로스는 육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페미니즘을 개척한 철학자다. 몸을 사유하던 그녀는 육체의 지평을 확장하여 ‘공간’을 다각도로 탐색한다. 이 책을 건축으로 접근했다면, 베르그송의 철학부터 다시 공부해야 할 판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인체 공학을 알고 난 다음에 몸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듯이, 현대 철학을 섭렵하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실체를 가진 건축을 인간과 접합하는 공간으로 확장할 수 있으리라. 몸이 그러하듯, 공간 또한 내부와 외현의 접점에서 존재를 드러낸다. 밖은 또 하나의 공간으로 건축의 한 몸을 이룬다. 건물의 안팎이 이분법을 해체하고 하나가 되듯, 건축과 철학 또한 이질성을 극복하고 하나의 의미와 은유로 읽어낼 수 있다.

 

경계 넘기에서 만날 수 있는 풍요로움이 가득한 책이다. 옮긴이가 경계 넘기의 달인들이다. “기존 분과학문의 경계를 가로 지르고 넘나들며 학문 간의 유기적 상호소통을 지향하는 탈 경계 인문학 연구단”이다. 이 연구단은 각각의 전혀 다른 전공을 가진 9명의 연구자들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2009년부터 탈 경계 인문학의 테두리 안에 ‘공간’ 범주를 도입하는 작업이 갖는 의미와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두꺼운 언어와 얇은 언어』 박명진 엮음, 문학과지성사, 2012. 09

 

텍스트는 권력과 만나 담론을 생산한다. 담론을 생산하는 중심에 미디어가 있다. 미디어의 담론 생산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프레임을 밝혀낼 수 있다. 『두꺼운 언어와 얇은 언어』은 미디어 담론 전문가들이 우리 사회의 핵심 담론을 분석한 책이 다. 역설적으로 저자들 또한 ‘두꺼운 언어와 얇은 언어“라는 프레임으로 우리 사회의 사회·문화 현상을 분석한다. 두꺼운 언어는 전통적 미디어 담론이고, 얇은 언어는 디지털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일반 대중이다. 지성인의 언어는 점점 두꺼워지고,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대중의 언어는 점점 더 얇아진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렇게 두껍고 얇은 언어로 명확하게 이분화되지 않겠지만, 사태를 선명하게 분석할 수 있는 틀은 될 수 있다.

 

이 책이 가지는 두 가지 매력이 있다. 지금 우리에게 ‘신드롬’을 일으켰던 사건을 분석하기 때문에 흥미롭다. 케이팝 열광, 미네르바 사건, 남북한 문제를 분석하다보면,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 효과와 12월 대선까지도 담론으로 분석해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는 미셸 푸코 이후 미디어 연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담론 분석 방법을 익힐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가 될 것이다. 미디어가 어떻게 의제를 선정하고, 담론을 형성하여 권력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스스로 분석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게 될 것이다.

 

 

 『장준하 평전』김삼웅 지음, 시대의 창, 2012. 09

 

2009년 출판된 『장준하 평전』 개정판이 나왔다. 지난 8월 장마로 인한 산사태에 고(故) 장준하 선생님의 무덤이 파헤쳐졌다고 한다. 선생님의 장남 장호권은 그동안 진실 규명을 위해서 이미 진토가 되었을지 모를 부친을 세상 밖으로 내놓을 수 없었다고 한다. 어쨌든 세상은 이성적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기운이 존재한다. 장준하 선생님은 백골의 몸으로 진실을 밝히고자 스스로 무덤을 파헤치고 나선 듯하다.

 

장준하 선생님의 삶은 한국 근현대사와 따로 떼어내어 생각할 수 없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광복군으로 독립을 위하여 투쟁했고, 해방 후에는 김구 선생님과 함께 통일 정부를 수립하기 위해서 헌신했으며, 독재정권이 들어서자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투쟁하셨다. 이승만 박정희 독재 정권에 저항하기 위하여 진실을 알리고 담론을 생산했던 잡지 ‘사상계’는 민중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투쟁의 구심점이 되었다.

 

벌써 30여년이 흘렀지만, - 타살이라는 확신을 가지고도 - 선생의 죽음은 여전히 의문사로 남아있다. 더 늦지 않게 진실이 규명되기를 바라는 맘으로 선생님의 평전을 다시 읽는다. 개정판으로 새롭게 독자와 만나게 된 선생님의 평전을 젊은 벗들이 읽게 되고, 세상을 움직이는 정의가 무엇인지 재고(再考)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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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은 각자 다른 빛깔로 가을을 맞이할 것이고, 우리의 감성 또한 자연과 다르지 않을 터이니,

책 읽기와 사색하기...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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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 ‧ 강지은 옮김, 동녘, 2012. 8.

 

호주에서 이년 동안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동생은 외부의 시선으로 우리 사회를 본다. 동생은 혼자 머무는 것을 낙오처럼 생각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참으로 낯설다고 한다. 회사 생활에 지친 몸은 휴식을 요구하는데도, 직장인들은 밤늦도록 모임을 갖는다. ‘쉼’은 곧 ‘낙오’나 ‘나태함’이라는 생각이 우리 무의식에 자리 잡은 탓이다. 너나 할 것 없이 불확실성 속에서 불안하고 피로한 삶을 살면서도 현대인은 무력해짐을 견디지 못한다. 화장실에서 조차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고, TV를 보며, 정보를 검색한다. 찻집에서도 담소를 나누기보다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받거나, 랩 탑으로 검색을 하며 침묵 속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헤어진다. 매체가 변화하면서 삶의 패턴도 사유의 방식도 달라졌지만, 시류 속에 문제의식도 함께 묻혀간다.

 

현대인은 혼자 있는 시간조차 온라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문제는 그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항상 외롭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도 불안하다는 점이다. 바로 ‘유동하는 근대’이기 때문이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은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불안하고, 자기 계발을 하지 않는 시간이 공포로 다가오는 우리에게 큰 성찰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다. 저자는 『액체 근대』로 알려진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다. Marxism의 실천적 지성인인 바우만은 『근대성과 홀로코스트』(1989)을 통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의 독창적인 키워드인 ‘유동성’은 근대 사회가 해체되며 나타나는 불확실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개념이다. 주체적으로 살기를 꿈꾸는 독자를 위한 책이 될 것이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헨리 포드부터 마사 스튜어트까지 현대를 창조한 사람들』전성원 지음, 인물과사상사, 2012. 8.

 

나의 일상은 나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가? 컴퓨터를 들고 다니고, 물을 사먹고, 화면을 내 손으로 키웠다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매번 경이로워하며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익숙해진 일상이기 때문이다. 전성원은 일상을 근대화, 세계화의 발명품으로 보고, 핸리 포드에서 존 D 록펠러, 월트 디즈니, 마샤 스튜어트까지 일상을 만들어낸 열여섯 명의 발명가를 추적한다. 그들의 천재성이 사람들의 일상을 바꾸었던 사례를 치밀하게 분석한 책이 바로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과학서점을 들락거리고, 주변인의 시선으로 시위를 목격하였다는 저자 전성원은 다양한 분야의 살아있는 경험을 통섭으로 엮는다.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인 전성원의 자기소개의 일부인, “전태일이 세상을 떠난 1970년 출생”에서 그가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짐작하게 한다.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는 전성원의 섬세한 관찰자적 시선이 빛나는 책이다.

 

 

『다른 방식으로 보기』존 버거 지음, 최민 옮김, 열화당, 2012. 8.

 

가을이다. 이전과 다른 기온과 습도 속에서 세상이 조금씩 변화하듯, 우리의 내면 또한 다른 빛깔로 물들기 시작하다. 과연 우리가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감 중에서 가장 수동적이면서도 관음증적인 행위인 ‘본다’는 것을 새롭게 생각하기 위해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1972년 초판 이후 미술전공자의 필독서, 일반인의 교양서가 되어 왔으나, 새로운 역자와 편집자를 만나서 다른 버전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존 버거 사상을 누구보다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역자 최민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함께 흐르도록 엮음으로써, 이미지를 하나의 텍스트로 이해한 존 버거 사상에 한걸음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해주었다. 자신의 욕망을 타자화 하는 기술 복제 시대의 이미지,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남성적 응시에 대한 생각의 각도를 비트는 좋은 교재가 될 것이다. 일곱 편의 에세이로 이루어진 이 책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병행하여 다양한 질문을 제기한다.

 

 

『속 시원한 글쓰기』오도엽 지음, 한겨레출판, 2012. 8.

 

스탠포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가장 잘하고 싶은 일도, 가장 힘든 일도 ‘글쓰기’라는 답변이 1위를 차지했다. 어디 이것이 명문 이공 대학생만의 열망이겠는가? 현란한 언어 세계에서 지적 놀이에 탐익하는 것을 유희로 삼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글쓰기는 문자를 상징 수단으로 활용하는 모든 사람을 압박한다.

르뽀 작가이자 시인인 오도엽의 글쓰기와 관련한 속 시원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볼 수 있는 책이 출판되었다. 기름밥에서 출발하여 이제는 글밥을 먹고 있는 오도엽의 이야기는 관념으로 글밭을 일구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분명한 다름이 있다. 문(文)의 법은 몰라도, 세상살이의 법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오도엽은 속살을 드러내는 소통의 방법으로 이야기를 끌어 올린다. 어디 글쓰기에 왕도가 있겠는가? 그러나 나와 같은 고민의 울타리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글쓰기에 자신감을 붙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

 

 

 

『평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존 폴 레더라크 지음, 김동진 옮김, 후마니타스, 2012. 8.

 

사랑하기 때문에 체벌하는 교사와 부모,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하는 군인처럼 딜레마적인 것도 없다. 영화 <그을린 사랑>에서 보듯이 전쟁은 보편적으로, 상시적으로 도처에서 일어나고 일어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인권과 평화는 ‘감수성’으로 접근해야 할 권리이며 환경이다. 평화에 관한 이론가이며 실천가인 레더라크를 대표하는 책 『평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는 모든 사람의 권리와 세계 평화 실현을 위한 책이다. 레더라크는 25개 국가에서 평생을 평화 구축에 헌신하였다. 1994년 유엔대학교의 ‘갈등과 거버넌스’ 학술 시리즈 중 한권으로, 미국평화연구소 등 세계 여러 평화연구자 및 활동가들을 위한 평화 구축 교재로 쓰였던 책이라고 하니, 학문적 깊이와 풍부한 경험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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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잊는데, 책만한 것이 없습니다.

책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만한 것이 없습니다.

낯선 공간에서 사물과 자연에 집중하듯, - 때로은 얇게, 때로는 깊게 -  책에 심취하고 싶은 한여름,

시간 도서 추천합니다^^*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여름언덕, 2012. 7.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을 즐겁게 읽었던 경험 탓에 주저함 없이 추천합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 상황들이 존재하지요.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저자 피에르 바야르는 다양한 상황을 통해서 의심을 사지 않도록 답하는 방법들을 제공합니다.

 

피에르 바야르는 현재 파리 8대학 프랑스문학 교수이고, 정신분석가입니다. 많은 프랑스의 저명한 철학자들이 그랬듯이 피에르 바야르는 문학비평에 정신분석학을 차용합니다. 새로운 해석으로 금기를 깨고, 텍스트의 해석을 통하여 새로운 창조의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저작 활동을 꾸준히 해오고 있습니다.

 

여행하는 것만이 어떤 도시나 나라를 발견하는 최고의 방법은 아니라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여행을 하고 와서 가미되거나 조작된 기억은 경험 이전보다 더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지속되지 않는 기억, 망각한 여행지의 추억을 가지고도 과연 그곳을 여행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적응하기 어려운 무더위에 여행을 꿈꾸었지만, 결코 떠날 수 없었던 분들께 강추합니다.

 


 

『안철수의 힘- 2012 시대정신은 `증오의 종언`이다』,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2012. 7.

 

『안철수의 생각』이 출판과 동시에 인터넷서점과 대형서점이 아니면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동이 났습니다. 2011년 이후 불고 있는 ‘안철수 바람’은 한국 사회의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고 있고, 대선을 통해서 한국인이 얻고자 하는 욕망이 무엇인지를 해석하는 강력한 키워드입니다. 민주주의 토대인 정당정치에 위반되고, 정치에 대한 경험이 일천하며, 혼자서 것이 아니라는 우려까지 안고 있는 ‘안철수’의 힘은 과연 무엇일까요?

 

인물비평의 대가이고 미시사 연구에서 장인정신을 보여주고 있는 강준만 교수님께서 안철수 지지 선언을 하며 내놓은 책이 바로 『안철수의 생각』입니다. 사실 안철수 이야기를 통해서 2012년 대선을 본격적으로 고민해보자는 제안이기도 합니다. 대통령 후보로서의 안철수 자질론, 진보와 보수 진영의 안철수 비판론, 정권 교체론과 박근혜 대세론 등 가장 뜨거운 화두를 거침없는 문체로 비평합니다.

 

안.철.수. 그는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태생부터 한국 사회의 ‘명품’이고, 뼛속까지 ‘진골’입니다. 사회, 문화, 경제, 상징 자본을 모두 소유한 분이지요^^ 그가 소유한 것 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무사무욕적일 수 있는 상징자본의 위력입니다. 그 점 때문에 그의 대선 진출이 개인의 야망이나 독선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무엇으로도 덧씌울 수 없는 그의 눈빛은 수도자의 그것처럼 맑기만 합니다. 정치경험이 없고, 정당정치에 위배된다 할지라도,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의 삶의 이력을 읽다보면, 유연함 속에 숨어 있는 고뇌와 결단에 찬 강직함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안철수의 생각』으로 진입할 계획입니다.

 


 

『프로테스트』 존 심프슨 지음, 이주명 옮김, 공명, 2012. 7.

 

“한 컷의 만화가 웅변보다 강하다.”를 입에 달고 살던 이십대가 있었습니다. 텍스트를 읽는 것은 격식과 성의를 필요로 하지요. 그 단계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을 고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무심한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던 시절, 우리가 선택한 것은 만화와 걸개그림이었습니다. 후배 몇 명은 전공을 접고, 그 길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새로운 길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삶의 무게가 감당하기 어려울 때, 저는 최민식, 김홍희 선생님의 사진집을 꺼내듭니다. 그곳에는 슬픈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는 ‘종이 거울’이 있으니까요. 한 장의 사진에는 중의적인 삶의 실천들이 고스란히 들어납니다. 보는 자의 적극적인 해석을 요구하는 사진의 확장까지 포함한다면, 한권의 책이 무색할 정도입니다. 4.19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김주열 열사’의 사진이었듯이, 들여다보는 자의 실천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신간으로 주목하게 된 책 『프로테스트』는 사진으로 보는 억압과 반항의 현대사 65년을 담고 있는 ‘사진으로 보는 역사책’입니다. 세계 최고의 포토저널리스트인 존 새도비(John Shadovy), 톰 스토다트, 마즈 니센 등이 세계 곳곳에서 담은 시위 현장의 사진 200컷이 담겨 있습니다. 헝가리 혁명, 미국 시민권 운동, 폴란드의 자유노조 운동, 광주 민주화 항쟁, 영국 광부노조의 파업, 중국 톈안먼 광장의 민주화 요구 시위, 중국의 압제에 대한 티베트 인들의 항의시위, 북아일랜드 신구교 분쟁, 핵무기와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 여성인권 등의 생생한 현장으로 독자를 안내합니다.

 

지금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 ‘역사’는 필요합니다. 억압과 저항의 역사를 읽다보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미리 내보다는 건강한 인간이 될 수 있겠지요. 냉전, 독재, 권위주의, 편견에 맞서야 한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프로테스터가 되어야 합니다. 그 단초를 세울 수 있는 책입니다.

 

 


  

 

『죽은 자의 권리를 말하다- 한국 최초의 법의학자, 검시제도를 논하다』문국진 지음, 글로세움(북스온), 2012. 8.

 

지문까지 모두 손상된 채 논두렁 하수구에서 몇 배로 부풀어 오른 시체를 보고 난후 검사의 길에 들어섰다는 어느 검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살아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도 인권을 보장 받지 못합니다. 국가 권력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그 지점입니다. 언론에 사생활이 폭로되는 범죄 희생자들을 접할 때마다, 우리 사회 관음증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들 또한 - 비록 죽은 자 일지라도 - 보장받아야 할 천부인권을 소유한 ‘인간’임에도 죽은 자의 권리에 대한 우리사회의 불감증이 느껴집니다.

 

드라마 <싸인>으로 ‘법의학’에 관한 관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죽은 자의 침묵 속에서, 법의학자들은 시체의 죽음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를 듣고,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의문의 죽음을 당한 변사체는 부검을 통해서 정확한 사인을 밝히고 억울한 죽음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안전은 그 일을 소명으로 받아들여주는 법의학자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억울한 죽음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법의학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안락한 삶을 접고, 법의학자로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의학도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우리나라의 사후 인권은 후진국 수준이라고 합니다. 생계형 범죄에서 지능형 범죄로 범죄의 성격이 바뀌면서, 사건을 해결하기는 훨씬 어려워졌습니다. 원한 관계가 없는데도, 이유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어지는 연쇄 살인, 성범죄 등으로 사회적 신뢰는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 책은‘법의학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평생을 법의학자로 살아온 문국진 고려대 명예교수의 경험에 기초합니다. 외국의 사례를 통해서 국내 검시제도의 문제점을 살펴보기도 합니다. ‘검시를 통해서 죽은 자의 권리를 지킨다.’는 저자의 강직한 신념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저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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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연 2012-08-05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rotest는 저도 주목하던 책인데.. 미처 내용을 확인 못해서 결국 추천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흥미로워보입니다

더불어숲 2012-08-09 1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트장님이 흥미롭다 하시니, 다음 리뷰 도서로 채택되길 희망하게 되네요.ㅎ
함께 읽고 싶고, 소개하고픈 책이 도처에 널려 있다는 기쁨이 새록새록 돋아납니다.
억압과 저항의 힘을... 함께 느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