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프리다>(Frida, 2002),
· 감독 : 줄리 테이머(Julie Taymor) · 주연 : 셀마 헤이엑(Salma Hayek-Jimenez)
멕시코 출신의 여성화가 프리다 칼로는 불꽃 같은 생애와 예술혼으로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그녀에 관한 책이 백 권 넘게 출간된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가혹한 운명의 한계를 초인적으로 뛰어넘은 그녀의 생애는 영화보다도 더 영화적인 힘을 갖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드라마틱한 사건의 연속이었던 그녀의 삶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이다. 자유분방하고 대담한 사랑, 그림에 대한 타오르는 열정, 죽음 직전까지 갔던 참혹한 교통사고, 남편의 끝없는 외도와 불임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생애는 어떤 영화적 장치 없이도 충분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낸다. 때문에 영화는 프리다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충실하게 재현한다. 혁명의 격동기 멕시코의 정치, 사회와 민족 정서를 강력한 색채로 스크린에 담았다. 육체적 고통 속에서 무너지면서도 끝내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던 프리다의 생애와 작품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그림이 어떤 의도로 탄생하였는지에 대하여 보여준다.
1907년 태어나 멕시코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성장한 프리다는 여섯 살에 소아마비를 앓는다. 한때 의사가 되기를 꿈꾸던 소녀는 교통사고로 3주 동안 깨어나지 못했고, 9개월 동안 전신 깁스 상태로 침대에 누워 지낸다. 두 팔 만이 자유로웠던 소녀는 침대에 누워서 가장 많이 관찰했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주제인 자신에 관한 자화상을 그린다. 스물한 살 연상인 리베라와의 결혼은 남편의 외도로 인한 질투, 분노, 고독, 상실감의 연속이었다. 1940년대 말, 발가락이 썩어서 결국 오른쪽 다리를 잘라내는 절단 수술까지 감행한 프리다는 하루의 대부분을 누워서 지냈다. 그러나 그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멕시코 공산당에 입당하여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녀는 마지막 일기장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외출이 행복하기를,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를”
<프리다>는 그녀의 삶과 작품을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과 그림을 뚜렷한 경계 없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연출기법을 사용하는데, 작품과 프리다의 삶 사이의 균형을 잘 잡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초현실주의로 분류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꿈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그린다.” 라고 말했다. 유럽의 회화적 전통에 맞서 멕시코 전통 미술을 차용한 프리다는 생명의 탄생과 죽음, 사랑과 증오와 같은 대립적인 요소를 그림의 주제로 사용하였다. 이분법적 소재는 뚜렷한 윤곽선과 선명한 색채로 표현되었다. 그 결과 그녀의 그림에는 사랑에 배신당해 아파하고, 육체적으로도 고통스러운 한 여성의 내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많은 페미니스트가 프리다에 천착하는 이유는 남성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으로 본인의 육체와 존재를 능동적으로 관찰하고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사용하는 강렬한 원색의 색채 대비는 남아메리카의 분위기를 표현하면서, 격정의 삶을 살았던 프리다를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프리다와 같은 고향 출신이기도 한 배우 셀마 헤이엑은 프리다가 다시 살아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프리다와 헤이엑 둘 다 작은 체구, 검은 머리와 눈동자의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지만, 신체 결함에도 불구하고 열정과 강인함 속에서 드러나는 프리다의 여성성을 헤이엑이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헤이엑의 기묘한 눈썹, 연약함 속에서도 절대 쓰러지지 않는 강인함은 프리다가 자화상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그림과 프리다의 감정변화에 맞춰 흘러나오는 음악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감독의 반려자이기도 한 작곡가 엘리엇 골든탈이 멕시코 음악을 잘 살려냈다. 그림을 연속적으로 배치하여 한 장면도 놓칠 수 없게 만든 편집과 배경으로 깔리는 OST는 관객의 시각과 청각을 함께 자극하여 영화 보는 재미를 배가한다. 프리다의 일생과 작품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창조하거나 부여하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영화 <프리다>를 통해서 무덤 같은 삶에서 죽음으로 생명을 얻고, 순간을 영원으로 살다간 한 여인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