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우시카와

의식의 저 먼 가장자리를 걷어차는 것

 


  "담배는 삼가주시겠습니까, 우시카와 씨?" 키 작은 남자가 말했다.
  우시카와는 책상 너머 상대의 얼굴을 잠깐 바라보고는 자신의 손가락 사이에 끼워진 세븐스타로 눈길을 돌렸다. 담배에 불은 붙어 있지 않았다. 
  "죄송합니다만." 남자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으로 한마디 덧붙였다.
  우시카와는, 내가 왜 이런 걸 손에 들고 있나 하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 미안해요. 담배는 안 되지. 물론 불은 안 붙일 겁니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가버린다니까."
  남자는 턱을 1센티미터쯤 끄덕였지만 시선은 털끝만큼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 초점은 변함없이 우시카와의 눈에 고정되어 있었다. 우시카와는 담배를 다시 갑에 넣어 서랍 속으로 치워버렸다.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은 키 큰 남자는 입구에 서서 문틀에 닿을락 말락 슬쩍 몸을 기대고, 마치 벽에 묻은 이라도 쳐다보듯이 우시카와를 보고 있었다. 아무튼 기분 나쁜 자들이라고 우시카와는 생각했다. 이 두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는 건 이번이 세 번째지만, 번번이 마음이 편치 않다.
  그리 넓지 않은 우시카와의 사무실에는 책상이 하나 놓여 있고, 키 작은 스킨헤드 남자는 우시카와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말하는 건 전적으로 이 사람이 맡았다. 포니테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침묵을 지켰다. 신사 입구에 모셔놓은 동물 석상처럼 꿈쩍도 않고 오로지 우시카와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삼 주입니다." 스킨헤드가 말했다.
  우시카와는 탁상 달력을 들고 거기에 적힌 메모를 확인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지난번에 만나고 오늘로 딱 삼 주가 지났네요."
  "그동안 나는 당신에게서 한 번도 보고를 받지 못했습니다. 전에도 몇 번 말씀드렸지만, 지금 일각을 다투는 상황이에요. 시간 여유가 없습니다, 우시카와 씨."
  "그거야 나도 알지요." 우시카와는 담배 대신 금빛 라이터를 손끝으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어물어물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그건 충분히 잘 알고 있습니다."
  스킨헤드는 우시카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시카와는 말을 이었다. "단지 말이죠, 나로서는 얘기를 찔끔찔끔 내놓고 싶지 않은 겁니다. 이거 슬쩍 저거 슬쩍 흘리는 건 별로 좋아하질 않아요. 어느 정도 전체적인 윤곽이 잡히고, 이런저런 사실들이 연결되고, 그 진위가 확인되는 선까지 가고 싶은 거지요. 섣부른 소릴 내놓았다가는 공연히 고생만 할 수도 있어요. 나 좋은 대로 하는 소리 같지만, 그게 내 나름의 방식입니다, 온다 씨."
  온다라고 불린 스킨헤드는 싸늘한 눈빛으로 우시카와를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이 자신에 대해 그다지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우시카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가 기억하는 한, 태어나서 이날 이때까지 어느 누구도 자신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져준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말하자면 그게 일반적인 상태였다. 부모에게도 형제에게도 사랑받지 못했고, 선생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 아내와 자식들도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았다. 만일 혹시라도 누군가 자신을 좋아한다면 그건 다소 신경이 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아무렇지도 않다.
  "우시카와 씨, 우리도 할 수만 있다면 당신의 방식을 존중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존중해드렸습니다. 지금까지는 말이죠. 하지만 이번 일은 얘기가 다릅니다. 모든 사실이 다 드러날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유감스럽게도 지금 우리에게는 없어요."
  "그래도 말이죠, 온다 씨, 그쪽에서도 여태 아무것도 안 하고 느긋하게 내 연락만 기다린 건 아닐 텐데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내 쪽의 활동과 병행해서 그쪽은 그쪽대로 여기저기 손을 썼겠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온다는 거기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은 수평으로 다문 채. 표정도 흔들림이 없다. 하지만 자신의 지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우시카와는 느낌으로 알았다. 그들은 조직을 풀가동해서 지난 삼 주 동안 아마도 우시카와와는 다른 루트로 한 여자의 행방을 추적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기분 나쁜 이인조가 또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뱀이 다니는 길은 뱀이 안다, 라는 말이 있지요." 우시카와는 양손을 펼치며 마치 재미있는 비밀이라도 털어놓듯이 말했다. "내가 바로 그 뱀이에요. 보시는 바와 같이 생김새는 영 시원찮지만, 코 하나는 아주 좋습니다. 희미한 냄새 하나로 저 깊은 속까지 슬슬 더듬어갈 수 있거든요. 하지만요, 애초 태생부터 뱀이고 보니 내 방식대로, 내 페이스대로가 아니면 일을 못 해요. 시간이 중요하다는 건 잘 알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죠. 그쪽에서 참아주시지 않으면 자칫 모든 일이 엉망이 되는 수가 있어요."
  우시카와의 손안에서 돌고 있는 라이터를 온다는 참을성 있게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얼굴을 들었다.
  "지금까지 파악한 것을 일부분이라도 말해주시겠습니까? 우시카와 씨의 입장도 잘 알지만, 나도 뭔가 구체적인 성과를 조금이라도 들고 가지 않으면 윗선에서 이해해주지를 않아요. 우리도 입장이 난처합니다. 게다가 우시카와 씨, 지금 당신이 처한 입장도 결코 마음 편치는 않을 겁니다."
  이자들도 궁지에 몰린 거라고 우시카와는 생각했다. 둘 다 격투기에 뛰어난 실력자라는 평가를 받아 리더의 보디가드로 발탁되었다. 그런데 그런 두 사람의 코앞에서 리더가 살해되고 말았다. 아니, 살해되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교단 내의 몇몇 의사들이 사체를 검안했지만, 외상이라고 할 만한 건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다만 교단 내 의료시설에는 간단한 기기밖에 없다. 게다가 시간 여유도 없었다. 전문의가 철저히 부검을 했다면 혹시 뭔가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이미 때늦은 얘기다. 사체는 벌써 교단 내에서 비밀리에 처리해버렸다.
  어쨌든 리더를 제대로 경호하지 못했으니 이 두 사람의 입장이 묘하게 되었다. 현재 그들에게는 사라진 여자의 행방을 추적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여자를 찾아내라는 명령이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단서를 잡지 못했다. 그들은 시큐리티나 보디가드 업무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전문적인 기능을 갖췄지만 행방이 묘연해진 사람을 추적하는 노하우는 없다.
  "알겠습니다." 우시카와는 말했다. "지금까지 밝혀낸 몇 가지를 말씀드리지요. 모두 다 말할 수는 없지만 일부분이라면 말씀드릴 수 있어요."
  온다는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도 좋습니다. 우리도 약간은 알아낸 게 있어요. 당신이 그걸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고 아직 모를 수도 있겠죠. 어떻든 서로 알고 있는 걸 공유하도록 하지요."
  우시카와는 라이터를 내려놓고 책상 위에서 양손가락을 깍지 꼈다. "아오마메라는 젊은 여자가 호텔 오쿠라의 스위트룸에 출장을 와서 리더의 근육 스트레칭을 했다. 9월 초, 도심에 거센 뇌우가 쏟아지던 날 밤의 일이었지요. 그 여자는 별실에서 한 시간쯤 스트레칭 시술을 한 뒤에 떠났고, 리더는 잠이 들어 있었다. 두 시간쯤 그 자세로 푹 자게 해드리라고 여자는 말했다. 당신들 두 사람은 그 말대로 했다. 하지만 리더는 잠든 게 아니었다. 그때는 이미 사망한 뒤였다. 외상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심장발작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직후에 여자가 사라졌다. 아파트도 미리 짐을 옮겨버렸다…… 방은 허물처럼 텅 비어 있었습니다. 스포츠클럽에도 그다음 날로 사표가 들어왔어요. 모두 다 계획적으로 착착 진행된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 아오마메라는 여자가 의도적으로 리더를 살해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온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까지는 이견이 없었다.
  "당신들의 목적은 이번 일의 진상을 명백히 밝히는 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그 여자를 잡아야겠지요."
  "아오마메라는 여자가 정말로 그분을 사망에 이르게 했는가. 만일 그렇다면 거기에는 어떤 이유나 경위가 있는가. 그걸 알아내야 합니다."
  우시카와는 책상 위에서 깍지 낀 자신의 열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마치 낯선 물건을 관찰하듯이. 그러고는 눈을 들어 앞에 앉은 남자를 보았다.
  "당신들은 이미 아오마메의 가족관계를 체크했을 겁니다. 그렇지요? 가족이 모두 '증인회'의 열성적인 멤버다. 부모는 아직도 열심히 전도활동을 하고 있다. 서른네 살 된 오빠는 오다와라의 증인회 본부에서 근무중이고 결혼해서 아이가 둘 있다. 오빠의 아내도 열성적인 ‘증인회’ 신자다. 가족 중에서 아오마메만 ‘증인회’를 떠나, 그들의 말을 빌리자면 '배교'를 했고, 따라서 가족과의 인연도 끊겼다…… 벌써 이십 년 가까이 이 가족은 아오마메와 접촉한 흔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아오마메를 감싸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죠. 이 여자는 열한 살 때 스스로 가족과의 인연을 끊었고, 그후로 거의 자기 혼자 힘으로 살아왔습니다. 외삼촌 집에서 한때 신세를 졌지만 고등학교 들어갈 때쯤에 사실상 독립했어요. 참 대단하죠. 의지가 강한 여자예요."
  스킨헤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그도 이미 파악한 정보일 것이다.
  "이번 일에 '증인회' 쪽이 관여했다고는 보기 힘듭니다. '증인회'는 철저한 평화주의, 무저항주의로 알려져 있어요. 그들이 교단 차원에서 리더의 목숨을 노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입니다. 그 점에는 동의하시지요?"
  온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은 '증인회'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건 이미 알고 있어요. 혹시나 해서 그녀의 오빠와도 얘기를 해봤습니다. , 이라는 차원에서. 하지만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확인 또 확인이라는 차원에서 손톱까지 뽑으셨군요?" 우시카와가 물었다.
  온다는 그 질문을 무시했다.
  "아, 물론 농담입니다. 썰렁한 농담이죠. 그렇게 심각한 얼굴은 하지 마시고요. 아무튼 그 오빠라는 사람은 아오마메의 행동에 대해서도, 행방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했군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나는 날 때부터 평화주의자라서 난폭한 짓은 전혀 하지 않지만, 그런 정도는 압니다. 아오마메는 가족과도 '증인회'와도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일은 어떻게 보건 아오마메의 단독행동은 아니에요. 네, 혼자서 그런 복잡한 짓은 못하지요. 교묘하게 세팅이 이루어졌고, 그 여자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냉철하게 행동에 옮겼습니다. 자취를 감춘 방식도 정말 감쪽같아요. 사람과 돈을 넉넉히 쏟아부은 일입니다. 아오마메의 배후에 있는 사람 혹은 조직이 어떤 이유에서든 리더가 죽기를 강하게 원했다. 그러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 점에 대해서도 우리는 의견을 함께할 수 있겠지요?"
  온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은."
  "그런데 그게 어떤 조직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다." 우시카와는 말했다. "그 여자의 교우관계 같은 것도 물론 조사하셨겠죠?"
  온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웬걸, 그 여자는 이렇다 할 교우관계 같은 것도 없었어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친구도 없고 아무래도 연인도 없는 것 같고요. 직장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는 했지만, 일단 직장을 벗어나면 누구와도 개인적으로 사귀지 않았어요. 최소한 내가 조사한 바로는, 아오마메가 누구하고 친하게 지냈다는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어요. 젊고 건강하고 생긴 것도 나쁘지 않은 여자인데, 왜 그랬을까?"
  우시카와는 그렇게 말하고 문 앞에 서 있는 포니테일 남자를 보았다. 그는 아까부터 자세도 표정도 전혀 변함이 없다. 애초에 표정이 없는 것이다. 그러니 바꿀 수도 없다. 저 사람에게도 이름이 있을까, 우시카와는 생각했다. 만일 이름이 없다 해도 별로 놀랍지 않을 것 같다. 
  "당신들은 아오마메의 얼굴을 직접 목격한 분들이에요." 우시카와는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죠? 그 여자에게 무언가 특별한 점은 없었습니까?"
  온다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말씀하신 것처럼 매력적인 젊은 여자입니다. 하지만 남의 이목을 끌 만한 미인은 아니에요. 매우 조용하고 침착했어요. 자신의 기술에 분명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딱히 주의를 끌 만한 점은 없었어요. 전체적인 인상이 매우 희미합니다. 얼굴의 생김새 하나하나가 잘 떠오르지 않아요. 신기할 정도로."
  우시카와는 다시 한번 입구의 포니테일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혹시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입을 열 기미조차 없었다.
  우시카와는 스킨헤드를 보았다. "최근 몇 달간 아오마메의 전화 통화기록도 물론 조사했겠지요?"
  온다는 고개를 저었다. “거기까지는 아직 안 했습니다."
  "그건 해야죠. 꼭 해봐야 합니다." 우시카와는 웃음을 띠며 말했다. "사람들은 다양한 곳에 전화를 하고 다양한 곳에서 전화가 걸려와요. 통화기록만 조사해봐도 그 사람의 생활 패턴이 저절로 보입니다. 아오마메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지요. 개인의 통화기록을 입수하는 건 간단한 일은 아니지만, 못 할 것도 없어요. 보세요, 뱀이 다니는 길은 뱀이 안다니까요."
  온다는 말없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아오마메의 통화기록을 살펴보니 몇 가지 사실이 드러나더군요. 여자치고는 몹시 드문 케이스지만, 아오마메는 전화 통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통화 횟수도 적고 통화 시간도 별로 길지 않아요. 어쩌다 긴 통화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예외적입니다. 대부분은 스포츠클럽과의 통화였는데, 그 여자는 반쯤은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일을 꽤 했어요. 스포츠클럽 카운터를 통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클라이언트와 직접 상담해서 일정을 짜는 겁니다. 그런 전화 통화가 상당히 많았어요. 내가 살펴본 바로는 그리 의심스러운 것은 없었습니다."
  우시카와는 거기서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손에 밴 담뱃진의 색깔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담배에 대해 생각했다. 머릿속으로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빨아들인다. 그리고 내뿜는다.
  "하지만 딱 두 가지 예외가 있었어요. 하나는 경찰서에 두 번 정도 전화를 했다는 겁니다. 112 신고전화가 아니에요. 경시청 신주쿠 경찰서 교통과였습니다. 그쪽에서도 몇 번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오마메는 자동차 운전은 하지 않았고, 보통 경찰은 고급 스포츠클럽 개인 레슨 같은 건 안 받아요. 그러니까 아마 그 부서에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있었을 겁니다.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어요. 또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그것과는 별도로, 어느 정체불명의 전화번호와 몇 번이나 긴 통화를 했다는 겁니다. 그쪽에서 전화가 왔었어요. 아오마메 쪽에서는 한 번도 건 적이 없고요. 이 번호는 아무리 찾아봐도 캐낼 수가 없었어요. 물론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치해둔 전화번호는 많지요. 하지만 그런 것도 손을 쓰면 금세 알아낼 수 있거든요. 하지만 이 번호는 아무리 알아봐도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자물쇠를 채워둔 거죠. 보통은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보통이 아니다?"
  "그렇지요. 틀림없이 프로가 관여하고 있어요."
  "또다른 뱀." 온다가 말했다.
  우시카와는 벗어지고 비뚤어진 제 머리통을 손바닥으로 슬슬 문지르며 히쭉 웃었다. "그렇지요, 또다른 뱀. 그것도 상당히 센 놈입니다."
  "최소한 그 여자의 배후에 프로가 있다는 건 점점 드러나는군요." 온다가 말했다.
  "그렇죠. 아오마메의 배후에는 모종의 조직이 있어요. 그리고 그 조직은 아마추어가 짬짬이 꾸려가는 그런 게 아닙니다."
  온다는 눈을 반쯤 내리깔고 그 아래로 흘끗 우시카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문 앞에 서 있는 포니테일과 시선을 마주했다. 포니테일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온다는 다시 우시카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요?" 온다가 물었다.
  "그래서." 우시카와가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질문할 차례입니다. 그쪽에서는 뭔가 짐작 가는 게 없나요? 이를테면 당신들의 리더를 말살하려 할 가능성이 있는 단체라든가 조직 같은 거요."
  온다는 긴 눈썹을 하나로 모았다. 코 위에 세 줄의 주름이 잡혔다. "그런 게 있겠습니까, 우시카와 씨? 우리는 어디까지나 종교단체입니다. 마음의 평안과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어울려 살며 하루하루 농사일과 수행에 힘쓰고 있어요. 대체 어느 누가 우리를 적으로 삼겠습니까? 그래봤자 무슨 이익이 있겠어요?"
  우시카와는 입가에 애매한 웃음을 머금었다. "어떤 세계에나 광신적인 인간은 있는 법이지요. 광신에 빠진 사람이 언제 어떤 생각을 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그렇잖습니까?"
  온다는 그 말에 담긴 빈정거림은 무시해버리고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짐작 가는 일은 우리 쪽에서는 전혀 없습니다."
  "'여명'은 어떻습니까? 그 잔당이 아직 근처를 어슬렁거리지는 않습니까?"
  온다는 다시 한번, 이번에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들은 '여명' 관련자들을 아예 후환이 없도록 깨끗이 짓뭉갠 것이다. 아마 흔적도 없이.
  "알겠습니다. 그쪽에서는 짐작 가는 바가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종의 조직이 당신들 리더의 목숨을 노렸고, 거기에 성공했다. 대단히 교묘하고 솜씨 좋게. 그러고는 연기처럼 하늘로 휘익 사라져버렸다. 이건 감출 수 없는 사실이지요."
  "우리는 그 배경을 밝혀내야 합니다."
  "경찰과는 무관하게."
  온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 문제지, 사법상의 문제가 아닙니다."
  "좋아요. 그건 당신들의 문제지, 사법상의 문제가 아니다. 얘기가 확실하군요. 아주 간단해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미리 물어볼 게 있는데."
  "그러시죠." 온다는 대답했다.
  "교단 내에서 리더가 사망했다는 사실을 몇 명쯤 알고 있나요?"
  "우리 둘이 알고 있습니다." 온다는 말했다. "시신을 내가는 걸 거들었던 사람이 두 명 더 있습니다. 내 아랫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교단의 최고 간부 다섯 분이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아홉 명이죠. 세 명의 무녀에게는 아직 알리지 않았지만, 곧 알게 될 겁니다. 곁에서 모시던 여자들이라 그리 오래 감춰둘 수는 없어요. 그리고 우시카와 씨, 물론 당신이 알고 있죠."
  "모두 합해서 열세 명."
  온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시카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한 의견을 말해도 괜찮을까요?"
  "그러시죠." 온다는 말했다.
  "이제 와서 새삼 이런 소리를 해봐야 별수 없겠지만, 리더가 사망한 그 시점에 당신들은 즉시 경찰에 연락했어야 합니다. 뭐가 어찌됐건 일단 그 죽음을 공표했어야 해요. 그런 엄청난 일은 계속 덮어둘 수 있는 게 아니죠.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비밀이라니, 그건 더이상 비밀도 아니에요. 당신들은 이러다가 완전히 궁지에 몰릴 수도 있어요."
  스킨헤드는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그런 판단은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주어진 명령에 따를 뿐이죠."
  "그러면 대체 누가 판단을 내리는 거지요?"
  대답은 없었다.
  "리더를 대신할 인물이?"
  온다는 역시 침묵을 지켰다.
  "뭐, 좋아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당신들은 아무튼 누군가 윗사람의 지시를 받고 리더의 사체를 비밀리에 처리했다. 그쪽 조직에서는 위에서 떨어진 명령은 절대적이란 얘기겠군요. 하지만 사법적 관점에서 보면 그건 명백히 사체손괴죄에 해당합니다. 상당한 중죄예요. 그건 물론 알고 있겠지요?"
  온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시카와는 다시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혹시 이 일로 경찰과 얽히는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리더의 사망에 대해서는 나는 전혀 아는 바가 없는 걸로 해주시죠. 형사범으로 문초당하고 싶지는 않군요."
  온다는 말했다. "우시카와 씨는 리더의 사망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저 외부 조사원으로서 우리의 의뢰를 받아 아오마메라는 여자의 행방을 찾고 있을 뿐이지요. 법률에 위반되는 일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예, 좋아요. 나는 아무 말도 못 들었어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우리로서도 가능하면 리더의 살해에 대해 외부인인 당신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오마메의 신변을 조사해서 고go 사인을 낸 건 우시카와 씨 당신이고, 당신은 이미 이 일에 깊숙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 여자를 수색하는 데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리고 당신은 입이 무거운 걸로 알고 있습니다."
  "비밀을 지키는 건 내 업무의 기본 중의 기본이지요. 그건 걱정할 거 없어요. 그 일이 내 입을 통해 외부로 새어나가는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만일 그 비밀이 새어나가고, 그 정보가 당신에게서 나왔다는 게 드러나면 이래저래 불행한 일이 일어날 겁니다."
  우시카와는 책상 위에 놓인 열 개의 퉁퉁한 손가락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그것이 자신의 손가락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하고 몹시 놀란 듯한 표정으로.
  "이래저래 불행한 일." 우시카와는 얼굴을 들고 상대의 말을 되풀이했다.
  온다는 슬쩍 실눈을 떴다. "리더의 사망은 어떻게든 감춰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비밀은 지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절대 안심하세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서로 협력해서 잘해왔어요. 나는 당신들이 대놓고 하기 어려운 일들을 뒤에서 떠맡아왔습니다. 때로는 힘겨운 일도 있었지만, 그에 대한 보수는 충분히 받았어요. 내 입에는 이중으로 단단히 지퍼를 채웠습니다. 나는 신앙심 같은 건 전혀 없지만, 돌아가신 리더께는 개인적으로 큰 신세를 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아오마메의 행방을 찾고 있어요. 그 배경을 밝혀내려고 무진 애를 쓰는 중입니다. 그리고 꽤 을 향해 다가가는 중이에요. 그러니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줘요. 머지않아 좋은 소식을 전해드릴 테니."
  온다는 의자에서 아주 조금 자세를 바꾸었다. 입구에 선 포니테일도 거기에 호응하듯이 다리의 중심을 다른 쪽으로 옮겼다.
  "당신이 밝힐 수 있는 정보는 현재로서는 그 정도인가요?" 온다가 말했다.
  우시카와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말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아오마메는 경시청 신주쿠 경찰서 교통과에 두 번 전화를 했어요. 그쪽에서도 몇 번 전화가 왔습니다. 통화한 상대의 이름까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어쨌든 경찰서니까 대놓고 물어봤자 알려주지도 않아요. 하지만 그때 내 이 못생긴 머리통에 번뜩 떠오르는 게 있었어요. 경시청 신주쿠 경찰서 교통과라면 뭔가 기억나는 게 있는데, 하고 말이죠. 아니, 꽤 오래 궁리를 했어요. 대체 경시청 신주쿠 경찰서 교통과에 어떤 기억이 있는 걸까. 무엇이 내 비참한 기억의 가장자리에 걸려 있는 건가, 하고 말이죠. 생각해내는 데 시간이 꽤나 걸렸어요. 나이 먹는다는 거, 참 싫지요. 기억의 서랍이 뻑뻑해져요. 예전에는 뭐든지 금세 술술 나왔는데 말이죠. 그런데 바로 일주일 전에 그게 뭔지 드디어 생각이 났습니다."
  우시카와는 거기서 문득 입을 다물고, 꾸민 티가 역력한 웃음을 지으며 스킨헤드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스킨헤드는 참을성 있게 그다음 말을 기다렸다.
  "올 8월에 일어난 사건인데, 경시청 신주쿠 경찰서 교통과의 젊은 여경이 시부야 마루야마초 인근 러브호텔에서 누군가에게 교살당했습니다. 완전히 발가벗겨지고 관제품 수갑이 채워진 채로요. 물론 이건 꽤 큰 스캔들이 되었죠. 근데 아오마메가 신주쿠 경찰서의 누군가와 몇 차례 전화 통화를 한 게 그 사건이 터지기 전 몇 달 동안에 집중되어 있어요. 당연히 그 사건이 일어난 뒤로는 한 번도 통화가 없었습니다. 어때요,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너무 절묘하지요?"
  온다는 잠시 묵묵히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러니까 아오마메가 연락을 취했던 게 그 살해된 여경이 아니냐?"
  "나카노 아유미라는 게 그 여경의 이름입니다. 나이는 스물여섯 살. 꽤 귀염성 있는 얼굴이에요. 아버지도 오빠도 경찰인 경찰 집안입니다. 성적도 꽤 우수했던 모양이에요. 경찰에서는 물론 필사적으로 수사에 나섰지만 범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어요.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실례일지 모르지만, 그 사건에 대해 혹시 뭔가 아시는 건 없을까요?"
  온다는 이제 막 빙하에서 잘라온 것처럼 딱딱하고 싸늘한 눈빛으로 우시카와를 노려보았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그는 말했다. "설마 우리가 그 사건에 관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우시카와 씨? 우리 쪽의 누군가가 그 여경을 저속한 러브호텔로 데려가 수갑을 채우고 목을 졸라 죽인 게 아니냐고?"
  우시카와는 입을 오므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죠, 그럴 리가요. 설마, 그런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했어요.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뭔가 그 사건에 관해 짚이는 게 있느냐는 거죠. 그냥 그뿐입니다. 예, 뭐든 좋아요. 어떤 사소한 실마리라도 내게는 아주 귀중하니까요. 알량한 지혜를 아무리 쥐어짜봐도 시부야 러브호텔 여경 살해사건과 리더 살해사건 사이의 관련성을 나는 찾을 수가 없어요."
  온다는 잠시 뭔가의 치수를 재는 듯한 눈빛으로 우시카와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멈췄던 숨을 천천히 토해냈다. "알겠습니다. 그 정보는 위에 전달하지요." 그는 말했다. 그리고 수첩을 꺼내 메모했다. "나카노 아유미. 스물여섯 살. 신주쿠 경찰서 교통과. 아오마메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죠."
  "그밖에는?"
  "또 한 가지, 꼭 물어볼 게 있어요. 교단 내부에서 누군가 맨 처음에 아오마메라는 이름을 꺼낸 사람이 있을 겁니다. 도쿄에 근육 스트레칭을 잘하는 스포츠 인스트럭터가 있다고 말이죠. 그래서 아까 당신도 지적했던 대로 내가 그 여자의 신변조사를 맡게 되었던 것이죠. 변명을 하자는 건 아니지만, 그야 물론 항상 하던 대로 성심껏, 철저히 조사했어요. 하지만 이상한 점이나 수상한 점은 하나도 없었어요. 구석구석까지 깨끗했죠. 그리고 당신들은 그 여자를 호텔 오쿠라의 스위트룸으로 불렀어요. 그다음은 그쪽에서도 아시는 그대롭니다. 애초에 대체 어느 누가 그 여자를 추천했던 겁니까?"
  "그건 모릅니다."
  "모른다고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그리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들은 어린아이 같은 얼굴을 했다. "그러니까 그쪽 교단 내부에서 누군가 아오마메 얘기를 꺼내기는 했는데, 그게 누군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런 얘기입니까?"
  온다는 표정을 바꾸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상한 말씀이네요." 우시카와는 그야말로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온다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얘기군요. 어디서 나왔는지, 언제 나왔는지도 모른 채 그 여자의 이름이 나왔고, 누가 추진했는지도 모르게 일이 저절로 굴러갔다, 그런 얘깁니까?"
  "사실을 말하자면, 가장 적극적으로 그 일을 추진한 건 리더 본인이셨습니다." 온다는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며 말했다. "간부들 중에는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몸을 맡기는 건 위험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었어요. 물론 우리 경호팀에서도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하지만 리더께서는 그리 신경 쓰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그렇게 진행하라고 직접 나서서 강력히 주장하셨죠."
  우시카와는 다시 한번 라이터를 집어들고 뚜껑을 열어 상태를 시험해보듯이 불을 켰다. 그리고 곧바로 뚜껑을 닫았다.
  "리더께서는 매사에 퍽 조심스러운 분이었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지극히 주의 깊고 조심성 많은 분이셨죠." 그다음에 깊은 침묵이 이어졌다.
  "또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가와나 덴고에 대한 겁니다. 그는 야스다 교코라는 연상의 유부녀와 교제중이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 그 여자가 그의 아파트에 찾아왔지요. 그리고 친밀한 시간을 보냈어요. 뭐, 아직 젊으니까 그런 일도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어느 날, 그녀의 남편이 돌연 전화를 걸어와서, 그녀가 더이상 그쪽에 가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걸로 뚝, 연락이 끊겼어요."
  온다는 미간을 좁혔다. "왜 갑작스레 이야기가 그쪽으로 넘어가는지 모르겠군요. 가와나 덴고가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건가요?"
  "아니, 거기까지는 나도 모릅니다. 단지 그 일이 전부터 좀 마음에 걸렸어요. 아무리 그래도, 어떤 사정이 있었건 여자 쪽에서 전화 한 통쯤은 해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만큼 깊은 관계였는데 말예요. 근데 말 한마디 없이 여자가 휘익 사라졌다. 흔적도 없이. 나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게 아주 싫어요. 그래서 일단 확인차 물어보는 것뿐입니다. 혹시 당신들 쪽에서는 짐작되는 게 없습니까?"
  "적어도 나는 그 여자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습니다." 온다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스다 교코. 가와나 덴고와 관계가 있었다고요."
  "열 살 연상이고 유부녀지요."
  온다는 그 이름도 수첩에 메모했다. "그것도 일단 윗선에 전하죠."
  "좋아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그런데 후카다 에리코의 행방은 어떻게 되었죠?"
  온다는 얼굴을 들고, 비뚤어진 액자를 바라보는 듯한 눈빛으로 우시카와를 보았다. “우리가 왜 후카다 에리코가 어디 있는지 알아야 합니까?”
  "그녀의 행방에는 관심이 없다?"
  온다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어디에 갔건, 어디에 있건, 우리와는 관계없습니다. 본인의 자유지요."
  "가와나 덴고에게도 더이상 관심이 없고?"
  "그쪽도 우리와는 별 인연이 없는 사람입니다."
  "한때는 이 두 사람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 같은데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온다는 잠시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의 관심은 현재로서는 아오마메라는 한 점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관심이 나날이 바뀐다?"
  온다는 아주 조금 입술의 각도를 바꾸었다. 대답은 없었다.
  "온다 씨, 당신은 후카다 에리코가 쓴 소설 「공기 번데기」를 읽어봤습니까?"
  "아뇨. 교단 내에서는 교의에 관한 서적 외에는 독서가 금지되어 있어요. 소지할 수도 없습니다."
  "리틀 피플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온다는 틈을 두지 않고 대답했다.
  "좋아요." 우시카와는 말했다.
  그걸로 대화는 끝이 났다. 온다는 천천히 의자에서 일어나 상의 옷깃을 바로잡았다. 포니테일도 벽에서 떨어져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우시카와 씨,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이번 일에서는 시간이 지극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온다는 아직 의자에 앉아 있는 우시카와를 똑바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한시라도 빨리 아오마메의 행방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도 물론 전력을 다하고 있지만, 당신도 또다른 측면에서 활발히 움직여줘야 합니다. 아오마메를 찾지 못하면 서로 간에 난처한 일이 벌어질 수 있어요. 어쨌든 당신은 중요한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니까."
  "중요한 지식에는 중요한 책임이 따른다."
  "그렇습니다." 온다는 감정이 결락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스킨헤드의 뒤를 따라 포니테일이 사무실을 나가며 소리도 없이 문을 닫았다.

  두 사람이 가버리자 우시카와는 책상 서랍을 열고 카세트리코더의 스위치를 껐다. 기계 뚜껑을 열고 카세트테이프를 꺼내  라벨에 볼펜으로 날짜와 시간을 써넣었다. 그의 글씨는 생김새와는 달리 단정했다. 그러고는 세븐스타 담뱃갑을 서랍에서 꺼내 한 개비 뽑아 물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연기를 크게 들이마시고 천장을 향해 크게 뿜어냈다. 그리고 얼굴을 천장으로 향한 채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이윽고 눈을 뜨고 벽시계에 시선을 던졌다. 시곗바늘은 두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정말 기분 나쁜 자들이라고 우시카와는 새삼 생각했다.
  , 고 스킨헤드는 말했다.
  우시카와는 야마나시 산 속에 있는 '선구' 본부를 두 차례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뒤편 잡목 숲속에 설치된 특대형 소각로를 보았다. 쓰레기나 폐기물을 태우기 위한 시설이지만, 상당히 고온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인간의 사체를 던져넣어도 뼛조각 하나 남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몇 사람이나 되는 사체가 그곳에 던져진 것을 우시카와는 알고 있었다. 리더의 사체도 아마 그중 하나일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시카와는 그런 꼴은 당하고 싶지 않다. 언젠가 어딘가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될 테지만, 가능하면 좀더 온화한 죽음이기를 바란다.
  물론 우시카와가 그들에게 알려주지 않은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그는 손안의 카드를 모두 내보이는 사람이 아니다. 작은 숫자의 카드라면 슬쩍 보여줘도 된다. 하지만 큰 숫자의 카드는 철저히 덮어둔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보험이라는 게 필요하다. 이를테면 테이프에 녹음된 비밀 대화 같은 것. 우시카와는 그런 게임 수순에 능통하다. 그저 그런 젊은 보디가드와는 쌓아온 내공이 다르다.
  아오마메가 그동안 개인 인스트럭터로서 지도해온 사람들의 이름을 우시카와는 입수했다. 약간의 고생만 감수하면, 그리고 약간의 노하우만 깨치면 웬만한 정보는 모두 손에 넣을 수 있다. 아오마메가 담당한 그 열두 명의 개인 클라이언트의 신변에 대해 우시카와는 한차례 샅샅이 알아보았다. 여자가 여덟 명, 남자가 네 명. 사회적 지위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한 사람들이다. 살인 계획에 합세할 것 같은 인물은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다만 그중 한 사람, 칠십대의 부유한 여자가 있었고, 그녀는 가정폭력으로 집을 탈출한 여자들을 위해 세이프하우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자택의 넓은 부지 바로 옆 2층짜리 아파트에 불행한 처지의 여자들을 거두어 살게 해주었다.
  그 자체는 훌륭한 일이다. 수상쩍은 점은 없다. 하지만 무언가가 우시카와의 의식의 저 먼 가장자리를 걷어차고 있었다. 그리고 뭔가가 자신의 의식의 저 먼 가장자리를 걷어찰 때, 우시카와는 항상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집중 탐색해왔다. 그에게는 동물적인 후각이 구비되어 있고, 무엇보다 자신의 직감을 신뢰해왔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몇 차례나 목숨을 부지해왔다. '폭력'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번 일의 키워드가 될지도 모른다. 이 노부인은 에 대해 강하게 의식하고 있고, 그래서 그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우시카와는 자신이 직접 세이프하우스라는 곳을 살펴보러 나갔다. 그 목조 아파트는 아자부의 높직한 일등 주택지에 서 있었다. 오래되었지만 나름대로 풍취 있는 건물이다. 문의 격자 틈새로 바라보니 현관 앞에는 아름다운 화단이 있고 잔디 정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큼직한 떡갈나무가 정원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현관문에는 무늬가 새겨진 작은 판유리가 끼워져 있다. 요즘에는 이런 건물들이 확연히 줄어들어버렸다.
  하지만 건물의 느긋한 외관과는 딴판으로 경계는 유난히 삼엄했다. 벽은 높직하고 가시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다. 튼튼한 철문은 굳게 닫혔고, 그 안쪽에는 독일 셰퍼드가 있어서 사람이 다가가면 거칠게 짖었다. 방범용 카메라도 몇 대나 작동하고 있었다. 아파트 앞 도로는 거의 통행인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오래 서 있을 수는 없었다. 한적한 주택가이고 근처에 대사관도 몇 군데 있다. 우시카와처럼 수상쩍은 풍모의 남자가 이런 곳에서 어슬렁거렸다가는 곧바로 누군가의 눈에 띄게 된다.
  아무리 봐도 경비에 지나치게 공을 들였다. 아무리 폭력으로부터의 피난처라지만 이렇게까지 단단히 가드할 일이 있을 리 없다. 이 세이프하우스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알아내야 한다. 우시카와는 그렇게 생각했다. 제아무리 경비가 철저하다 해도 어떻게든 그걸 뚫어야 한다. 아니, 철저하면 할수록 그건 꼭 열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한 좋은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 알량한 지혜나마 쥐어짜서.
  그리고 그는 리틀 피플에 대해 온다와 나눈 대화를 되새겼다.
  "리틀 피플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적어도 한 박자쯤 틈을 두고 대답이 나왔을 것이다. 리틀 피플? 하고 그 울림을 머릿속에서 일단 검증해보고, 그러고 나서 대답이 나오는 게 보통사람들의 반응이다.
  그자는 리틀 피플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의미며 실체까지 알고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튼 처음 듣는 말은 아니다.
  우시카와는 짧아진 담배를 끄고 잠시 생각에 잠겼고, 그것이 일단락되자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참 전부터, 폐암에 걸릴 가능성에 대해서는 더이상 걱정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생각을 집중하는 데는 니코틴의 도움이 필요하다. 바로 이삼 일 뒤의 운명도 모르는 것이다. 십오 년 뒤의 건강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세 개비째의 세븐스타를 피우고 있을 때, 우시카와는 한 가지 작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거라면 잘될지도 모르겠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웬디스버거 2010-07-23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오~ 정녕 이것이 1Q84 3권인가효 +_+ 도착할 때까지 어케 기다려~

U_U 2010-07-23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드디어 나왔군요! 정말 기대됩니다 ^_^

Ally 2010-07-23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권 앞머리 재미나네요. 두근두근. 빨리 다 읽고 싶어요. ㅎㅎ

tomozo 2010-07-23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두둥, 마침내 사건의 실마리가 드러나는 건가요...

해라 2010-07-23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반구제기 2010-07-23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

BiNe™ 2010-07-23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9일까지 어떻게 기다리나...ㅠ.ㅠ

최유진 2010-07-24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매일 라디오로 광고 듣는 1Q84 ㅋㅋㅋㅋㅋㅋ

정유호 2010-07-24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덴고세트걸리길 간절히

Lee 2010-07-24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카에리 세트 번데기 통조림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떻해 ㅋㅋㅋㅋㅋ

김민영 2010-07-24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어흑

2010-07-25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학교에서야하다고 책수거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일권은읽었는데 이권못읽엇어ㅠㅠ

kak10000 2010-07-25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덴고선물 받아보고 싶네요^^

mcjw48 2010-07-27 0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카에리 셋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셋트인데 왜 번데기1개인가 각성하라 각성하라 ㅋㅋㅋㅋㅋ 차라리 봉지에 공기담아주지 ㅋㅋㅋㅋ

갱갱 2010-07-27 10:19   좋아요 0 | URL
푸하하.. 봉지에 공기 담아주는것도 재미있네요. 풍선? 번데기랑 같이 해서 셋트로. ㅋㅋ

MOPIPY 2010-07-27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권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3권에서의 기대가... 주문했는데 얼른 받아보고 싶어요... *^^*

쑤쑤a 2010-07-28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뒷편 이야기 엄청 궁금하네 ㅠ~ 빨리 왔음 좋겟다 ㅠ ~

EHtopia 2010-07-28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태엽감는 새>에 나왔던 '우시카와'와 동일인물 같군요.
하는 행동이나 하는 일도 비슷한 걸 보니 말이죠.
아니면 단순히 이름만 같은 건지도 모르겠지만요.
여하튼 재미있게 굴러가는군요~
 

 

 


  

  기차역에서, 일가친지들이 증기를 내뿜는 기차를 뒤따라 달리고 있었다. 발길을 옮길 때마다 높이 쳐든 팔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차창 뒤에는 한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창문은 그의 겨드랑이까지 올려져 있었다. 젊은이는 흐트러진 하얀 꽃다발을 가슴에 꼭 끌어안았다. 얼굴이 굳어 있었다.
   젊은 여인이 겁먹은 아이를 안고 역을 나선다. 여인은 곱사등이였다.
   기차는 전쟁을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나는 텔레비전을 껐다.
   아버지가 방 한가운데 관 속에 누워 있었다. 사방의 벽이 사진들로 도배되다시피 뒤덮였다.
   사진 속에서 아버지는 자기보다 곱절은 더 큰 의자를 붙잡고 있었다. 유아용 원피스 차림에 구부정한 다리로 어정쩡하게 서 있다. 오동통한 다리에는 주름이 잡히고, 머리카락이 아직 나지 않은 두상은 둥그런 배 같다.
아버지가 새신랑일 적 사진도 있었다. 절반만 보이는 가슴의 나머지 절반은 어머니가 들고 있는 흐트러진 하얀 꽃다발에 파묻혀 있다. 두 분은 귓불이 닿을 만큼 머리를 가까이 맞대고 있다.
   아버지가 울타리 앞에 꼿꼿이 서 있는 사진도 있었다. 굽 높은 아버지의 신발 아래 눈이 쌓여 있다. 새하얀 눈 때문에, 아버지는 마치 허공에 서 있는 듯 보였다. 아버지는 한 손을 머리 위로 올려 경례를 붙이고 있다. 윗옷 옷깃에 룬문자(*하단 주)가 보인다.
   그 옆의 사진에서 아버지는 어깨에 곡괭이를 메고 있었다. 그 뒤로 옥수수 줄기 하나가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다. 아버지는 모자를 쓰고 있다. 넓게 드리운 모자 그늘이 아버지의 얼굴을 가렸다.
   그다음 사진에서 아버지는 트럭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트럭에는 소들이 실려 있다. 매주 아버지는 시내 도살장으로 소들을 실어 날랐다. 아버지의 얼굴은 여위고 모나 보였다.
   모든 사진의 한가운데에서 아버지는 하나의 몸짓으로 굳어 있었다. 하나같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언제나 아버지는 뭘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진들이 전부 엉터리였다. 이 많은 엉터리 사진들과 엉터리 표정들 탓에 방 안이 썰렁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옷이 나무에 얼어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내 옷은 검고 투명했다. 움직일 때마다 옷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마치 유리로 주조된 듯 앉아 있었다. 그러다 몸을 일으켜 아버지의 얼굴에 손을 댔다. 아버지의 얼굴은 방 안의 물건들보다 더 차가웠다. 바깥은 여름이었다. 파리들이 날아다니며 구더기를 깠다. 넓은 모랫길을 따라 마을이 이어졌다. 갈색으로 뜨겁게 달아오른 길은 햇빛에 반짝이며 눈을 알알 하게 찔렀다.
   묘지는 돌더미로 뒤덮여 있었다. 무덤들 위에 커다란 돌덩이들이 놓여 있었다.
   눈길을 아래로 떨어뜨리자, 구두코가 들려 밑창이 살짝 드러나 있었다. 지금까지 내내 구두끈을 밟고 왔다. 굵은 구두끈이 뒤로 길게 늘어져, 하나로 뒤엉켜 있었다.
   키 작은 남자 둘이 비틀거리며 영구차에서 관을 들어내어 낡은 밧줄 두 개로 무덤 속으로 내린다. 관이 흔들렸다. 남자들의 팔과 밧줄은 길어지고 또 길어졌다. 한참 가뭄인데도 무덤 속에는 물이 차 있었다.
   네 아버지는 사람을 많이 죽여서 양심의 가책을 느꼈어. 술 취한 남자 중 하나가 말했다.
   나는 말했다. 그땐 전쟁중이었잖아요. 아버지는 스물다섯 명을 무찔러 훈장을 받으셨어요. 여러 개의 훈장을 집으로 가져오셨어요.
   네 아버지는 순무밭에서 여자를 겁탈했어, 남자가 말했다. 다른 군인 네 명과 함께. 네 아버지가 그 여자 가랑이 사이에 무를 박았지. 우리가 그곳을 떠날 때, 여자는 피를 흘리고 있었어. 러시아 여자였어. 그뒤로 몇 주 동안 우리는 무기란 무기는 죄다 무라고 불렀지.
   늦가을이었어, 남자는 말했다. 서리를 맞아 거무죽죽해진 무 이파리들이 들러붙어 있었지.
   남자가 묵직한 돌 하나를 관 위에 내려놓았다.
   술 취한 다른 남자가 말을 이었다.
   새해에 우리는 독일의 어느 소도시에서 오페라를 보러 갔어. 오페라 여가수가 귀청이 찢어져라 노래를 부르더구나, 그 러시아 여자가 비명을 지른 것처럼. 우린 하나씩 차례로 홀을 빠져나왔지. 하지만 네 아버지는 끝까지 자리를 지켰어. 그뒤로 몇 주 동안 그는 모든 노래를 다 무라 부르고, 모든 여자를 다 무라 불렀지.
남자는 화주를 들이켰다. 그의 뱃속에서 쿨렁쿨렁 소리가 났다. 내 뱃속은 무덤 속 지하수처럼 화주로 그득하지, 남자가 말했다.
   그러고는 묵직한 돌 하나를 관 위에 내려놓았다.
   흰색 대리석 십자가 옆에 서 있던 장례관리사가 내 쪽으로 다가왔다. 양손을 윗도리 호주머니에 찔러넣은 채로.
손바닥만한 장미 한 송이가 윗도리 단춧구멍에 꽂혀 있었다. 장미는 우단처럼 곱고 부드러워 보였다. 장례관리사는 내 옆에 서서 한 손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주먹을 쥐고 있었다. 손가락을 곧게 펴려 했지만 펴지지 않았다. 슬픔을 이기지 못해 그의 두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그는 소리 죽여 흐느끼기 시작했다.
   전쟁터에서는 고향 사람들하고 잘 지내기가 쉽지 않은 법이죠, 장례관리사가 말했다. 고향 사람들은 명령을 따르지 않거든요.
   그러고는 묵직한 돌 하나를 관 위에 내려놓았다.
   이제 뚱뚱한 남자가 내 옆에 와서 섰다. 머리통이 고무호스처럼 길고 홀쭉한데다가 표정이 없었다.
   네 아버지는 몇 년 동안이나 내 아내하고 정을 통했어, 남자가 말했다. 내가 술에 취해 있을 때 나를 협박하고 돈을 빼앗아갔지.
   남자는 돌 위에 앉았다.
   쪼글쪼글 주름지고 비쩍 마른 노파가 가까이 오더니 땅바닥에 침을 탁 뱉고 나를 향해 욕을 한다.
   조문객들이 반대편 무덤가에 서 있었다. 나는 내 몸을 훑어보다가 사람들이 내 가슴을 쳐다보고 있는 걸 깨닫고 깜짝 놀랐다. 몸이 으스스 떨렸다.
   모든 눈이 나를 향해 있었다. 하나같이 공허한 눈이었다. 눈꺼풀 아래 눈동자가 찌르듯 날카로웠다. 남자들은 어깨에 총을 메고 있었고 여자들은 묵주를 달그락거렸다.
   장례관리사가 단춧구멍에서 장미를 잡아채더니 피처럼 빨간 꽃잎 하나를 떼어 입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나에게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제 내가 말할 차례였다. 모두 나를 응시했다.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눈目이 목구멍을 타고 머릿속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손을 입으로 가져가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손등에 잇자국이 선명했다. 이가 뜨거웠다. 입가에서 흐른 피가 어깨로 흘러내렸다.
   바람이 내 옷소매를 잡아채갔다. 검은 옷소매가 헉헉거리며 허공을 떠다녔다.
   한 남자가 지팡이를 커다란 돌에 기대어놓더니, 총을 조준해 옷소매를 쏘아 떨어뜨렸다. 내 얼굴 앞으로 떨어진 옷소매에는 피가 낭자했다. 조문객들이 박수갈채를 보냈다.
   팔의 맨살이 드러나 있었다. 공기 속에서 팔이 돌처럼 딱딱해지는 게 느껴졌다.
   장례관리사가 신호를 했다. 박수갈채가 그쳤다.
   우리는 우리 마을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우리의 업적은 우리가 몰락하지 않도록 지켜줄 것입니다. 우리는 모욕을 참지만은 않을 겁니다. 중상모략을 참지만은 않을 겁니다, 장례관리사가 말했다. 우리 독일 주민의 이름으로 너에게 사형을 선고한다.
   모두가 나에게 총을 겨누었다. 머릿속에 벽력같은 총성이 울렸다.
   나는 쓰러졌지만 내 몸은 바닥에 닿지 않았다. 사람들의 머리 위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나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어머니가 방들을 전부 깨끗이 치웠다.
   시신이 안치되어 있던 방에는 이제 기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 그것은 도살대였다. 그 위에 흐트러진 하얀 꽃다발을 꽂아둔 꽃병과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흰 접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살이 비치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손에는 커다란 칼을 들었다. 어머니는 거울 앞으로 다가가, 탐스럽게 땋아내린 은발을 그 커다란 칼로 잘랐다. 머리채를 양손에 받쳐 들고 도살대로 갔다. 머리채 한쪽 끝을 접시에 올렸다.
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검은 옷을 입을 거야, 어머니가 말했다.
   어머니가 머리채 한쪽 끝에 불을 붙였다. 머리채는 도살대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닿았다. 머리채가 화승처럼 타들어갔다. 불길이 너울거리며 활활 타올랐다.
   러시아에 있을 때 그들이 내 머리를 박박 밀었어. 그건 가장 가벼운 형벌이었지,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너무 배가 고파 비틀거렸어. 깜깜한 밤에 순무밭으로 기어들어갔지. 감시인은 총을 가지고 있었어. 날 보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쏴죽였을걸. 밭은 적막에 싸여 있었어. 늦가을이었고, 서리를 맞아 거무죽죽해진 무 이파리들이 들러붙어 있었지.
   나는 어머니를 쳐다보지 않았다. 머리채는 계속 타들어갔다. 연기가 방 안에 자욱했다.
   그들이 너를 죽였어, 어머니가 말했다.
   방 안을 채운 연기가 너무 짙어 우리는 더이상 서로를 보지 못했다.
   바로 지척에서 어머니의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두 팔을 뻗어 더듬더듬 어머니를 찾았다.
   별안간 어머니의 앙상한 손이 내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그 손이 내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눈을 크게 떴다. 방 안이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나는 흐트러진 하얀 꽃다발의 공球 속에 누워 있었다. 그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집이 뒤집히고 모든 것이 바닥으로 우르르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자명종이 울렸다. 토요일 아침, 다섯시 반이었다.

 




* 룬문자 : 고대 게르만 문자. 히틀러는 이 가운데 태양륜을 상징하는 갈고리십자가 모양을 독일 나치의 공식 표징으로 사용했다. 그러므로 여기서 룬문자는 나치의 갈고리십자가를 가리킨다.



***

 
  저지대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의 데뷔작. 작가 자신이 나고 자란 바나트의 풍경을 특유의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에 담아냈다. 표제작 '저지대'를 비롯해 1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유리처럼 투명하지만 금세 깨져버릴 듯한 유년의 기억, 그로테스크한 일상의 단편, 숨쉬는 공기에도 죽음과 불안이 배어나는 악몽의 세계가 서정적이고 시적인 언어를 통해 펼쳐진다.

  *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 독일 문학계를 열광시킨, 독창적이고 밀도 높은 시적 서술
  * 슈피겔 : 마음을 사로잡는 문학적 걸작
  * 컨템퍼러리 픽션 : 잔인하리만큼 솔직한, 지독히 슬픈! 헤르타 뮐러가 창조해낸 독창적인 목소리


 숨그네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헤르타 뮐러의 최신작. 이차대전 후 루마니아에서 소련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열일곱 살 독일 소년의 삶을 충격적이고 강렬한 시적 언어로 그려낸 작품이다. 철저히 비인간화한 상황 속에서 살아남고자 하는 삶의 한 현장을 섬뜩하면서도 아름답게 포착했다.

  루마니아 독재 치하에서 비밀경찰에의 협조를 거부하며 독일로 망명한 헤르타 뮐러가 자신처럼 망명한 시인이자 실제 수용소 생존자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의 구술을 토대로 작품을 썼다.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학적 증인"이라는 찬사를 받은 헤르타 뮐러의 대표작이다.

* 포쿠스 : 언어로 만든 예술품! 충격적이고도 강렬한 표현력으로 독자를 행복하게 만드는 <숨그네>를 끝까지 읽었다면, 당신은 결코 이 작품을 잊지 못할 것이다.
* FAZ : 마음에 오래 남아 잊히지 않을 독서 체험. 압도적으로 감동적이다.
* 르몽드 : 헤르타 뮐러에게는 초혼招魂의 힘이 있다. 그녀가 쓰는 언어의 광휘는 실로 눈부시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15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자 김기호 인터뷰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서

인터뷰 : 강지희 


 등단 후, 문단에서 작가들을 만날 때면 가끔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글이 사람을 닮는 걸까, 아니면 사람이 글을 닮는 걸까. 맞은편에 앉아 있는 작가의 얼굴과 몸짓, 목소리에서 그 사람이 썼던 문장들이 지나갔다. 그후로 글을 읽고 매혹을 느낄 때면, 작가가 더 궁금해졌다.

 제1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한 남자가 대학에 들어서며 호된 입사식을 거치는 이야기였고, 불수의근처럼 어찌할 수 없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였으며,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와 실종되는 사람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타로카드를 선택했을 때, 선택자의 질문이나 함께 뽑힌 다른 카드와의 맥락에 따라 그 카드의 의미가 무수히 달라지는 것처럼 소설은 다각도로 다가왔다.

 ‘피리 부는 사나이’에 대한 전설을 매력적으로 재해석한 21세기 판본 『피리 부는 사나이』는 얼핏 세계의 굵직한 테러의 배후를 찾아가며 이들을 문제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 동안 어떤 테러에도 무감했던 우리를 질책하며 들이받는다. 어떻게 당신은 사람들이 사라져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왔지? 이 세계는 이상해. 어쩌면 당신도 이상할지 몰라. 박진감 있게 서사를 끌어나가면서도 명쾌한 결말로 쾌감을 주기보다는 피리 부는 사나이의 존재를 다시 감추기를 선택한 신중한 이 이야기가 최근에 읽었던 어떤 작품보다 더 많은 말을 걸어왔기 때문에 나는 황홀하게 어지러웠다.

 인터뷰를 하기로 한 날은 낙엽의 쓸쓸함과 단풍의 화사함이 적절하게 교차하는 11월 초였다. 약속시간은 세시였지만 그보다 빨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할 것 같아 버스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종종걸음을 쳤다.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구두 옆에서 낙엽이 춤을 추며 맴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휙 돌아보자 멀찍이서 멋쩍어하며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가 왠지 그일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감은 맞았다. 알고 보니 우리는 같은 버스를 타고 왔던 것이다. 약속장소에 다다르기도 전에 우연히 마주쳤다는 데서 피어난 따뜻한 공감으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문학동네소설상’이라는 커다란 관문을 통과하신 걸 축하드려요. 어릴 적부터 꿈이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나요?

 그렇지는 않았구요. 오히려 중고등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친구들과 밴드를 하고 기타를 쳤기 때문에 음악에 대한 생각이 더 많았어요. 꽤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 같아요. 음악과 문학의 길 사이에서요.

 ―총 들고 찍은 어린 시절 사진을 보니까, 장난꾸러기였을 것 같아요. 유년 시절은 어땠어요?

 초등학교 시절에는 애들을 끌고 다니는 골목대장 스타일이었어요. 그런데 철이 들면서부터는 좀 조용해진 것 같아요. 고등학교 올라갈 때, 같은 중학교를 나온 친구들이 거의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뒤쪽에 앉아서 자는 편이 되었죠. 그래도 시험을 보면 점수는 잘 나오니까 아이들이 의아해했어요. (웃음) 아, 그냥 뒤쪽에서 같이 자던 친구들보다는 조금 더 잘 나온 거예요.


 ―대학을 들어가기 전에도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 같아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어요. 어머니께서 책을 즐겨 읽으셔서, 가끔씩 헌책방에 가시면 당신 책 외에 제 책도 한 아름씩 사들고 오시곤 했죠. 어린이용으로 나온 명작집 같은 것들도 많이 읽고. 그런데 작가들 인터뷰 보면 고등학교 때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했다는 식의 이야기도 많잖아요? 책을 좋아하긴 했지만 제가 고등학교 때 읽은 걸 생각해보면 그런 것에는 한참 못 미치니까 문학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하기는 좀 부끄럽죠. 그렇다고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그때 읽었던 책 중에서 유달리 좋아했던 작품이나 동경했던 소설가가 있었나요?

 그때 읽었던 작가는 아니고요. 대학 들어오고 나서는 동아리 밴드 활동을 하느라 매일같이 연습하고 공연 준비하고 공연하고 술 마시는 생활을 계속했어요. 그때는 아마 일 년에 책을 세 권도 안 읽었을 거예요. 수업에 내야하는 과제도 제대로 안 냈으니까. 성적도 완전 엉망이고. 그때는 당연히 이런 게 멋진 거다, 생각을 하고. (웃음) 그렇게 보내다가 스물세 살 때 공익근무를 하면서 다시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이때부터 문예지도 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죠. 아무것도 모를 때라 오히려 뭘 읽어도 나도 이만큼은 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보르헤스를 읽고 감탄을 넘어서 충격을 받았죠. ‘아, 이건 도저히 누구도 흉내낼 수가 없겠구나’ 생각했어요.

 ―사실 프로필을 보기 전에 작품을 먼저 읽고 있던 중이었는데, 문학이나 철학을 전공하셨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문학과 철학을 가지고 설전을 벌이는 장면이 있지요. 대학에 들어갈 때 어떻게 전공을 선택하시게 됐나요?

 저는 경제나 경영학과에는 관심이 없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인문학부를 지원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별생각 없이 국문과를 선택한 거였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잘한 선택이더라구요. 무심코 선택했는데 제가 흥미 있어하는 분야였던 거죠. 그리고 제2전공은 원래 철학이 아니라 신문방송학이었어요. 그런데 철학수업을 듣다보니 국문학이나 신문방송학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상당 부분 철학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실용학문인 신문방송학에 비해 철학이 좀더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느꼈죠. 그게 좋아서 제2전공을 철학으로 바꿨어요.

 ―문학과 철학을 전공하면서 제일 크게 느꼈던 즐거움은 어떤 것이었나요?

 누구나 내가 왜,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고민을 하잖아요. 그리고 삶의 자세나 가치관을 가질 때, 그것을 설정하기 위해서 어떤 근거가 있어야 하구요. 그 근거를 찾기 위해서는 뭔가 알아야 하는데, 그 앎에 가까이 갈 수 있게 도와줬던 것 같아요.

 ―그런 즐거움 이면에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가지는 고민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예. 저 자신은 수업을 들으면서 즐거웠는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걱정을 많이 해주더라구요. 지희씨도 그러지 않았어요? (함께 격하게 동감) 하나 정도는 실용적인 전공을 하라는 충고도 많이 하고. 그래도 별로 그런 말들이 신경쓰이진 않았어요. 부모님도 속으로는 걱정을 하셨을지 모르지만,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저를 신뢰해주셨고.

 ―작품 속에 미디어 아트 전시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고, 고흐의 <까마귀가 나는 밀밭>에 대해서도 여러 번 언급됩니다. 미술에 대해 평소에 관심이 많으신가요.

 오히려 미학 쪽에 관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것은 왜 아름다운 것이고, 이건 아닐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고, 그래서 책을 읽고 수업을 듣기도 했죠. 그 미디어 아트 전시는 당시에 실제로 보러 가서 경험했던 거예요. 고흐는 다들 좋아하는 화가고……

 ―기존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자들과 비교해보면 어린 나이에 등단한 편이신데, 등단작이 천 매가 넘는 장편소설이라는 것이 놀랍습니다. 아주 긴 호흡이 필요한 일이었을 텐데요.

 학생일 때는 수업도 있고 과제다 시험이다 해서 흐름이 끊길 때가 많았죠. 몇 달 방치해놨다가 나중에 다시 보면 이건 뭐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그럼 지우고 다시 쓰고, 뭐 그랬죠. 졸업하면 좀 나아질까 했는데 별로 그렇지도 않더라구요. 그래도 이 작품을 마무리해야 뭐든 다른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작년 말부터 올해 8월 말까지는 계속 여기에만 매달렸어요. 그런데 제가 한번 꽂히면 끝까지 가는 버릇이 있어서…… 우연히 보게 된 드라마도 앞뒤 줄거리가 궁금할 정도로 흥미로우면 찾아서 처음부터 다 봐야 되거든요. 그런 게 소설 쓰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하죠.

 ―주로 어디에서 글 쓰는 동력을 얻으시나요?

 글 쓰는 일이 즐거울 때는 별로 많지 않아요. 오히려 도망치고 싶을 때가 훨씬 많아요. 그래도 다른 사람에게 좋은 반응을 듣거나, 드물게 스스로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면 힘이 나죠.

 ―소설을 쓸 때 제일 신경쓰는 것은 어떤 부분인가요?

 독자로 하여금 그럴듯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실을 그리든 환상을 그리든. 그러기 위해서는 디테일한 요소들을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사건의 인과관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나, 인물에게 일관된 성격을 부여하는 것, 등등. 말로 하자면, ‘이건 말이 안 되잖아’라든가 ‘얘 갑자기 왜 이래’ 같은 말을 피하고 싶은 거죠.

 ―사실 작품의 주인공이 저와 같은 04학번이라, 2004년에 대학에 입학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이야기할 때 그 당시를 떠올리며 감정이입이 많이 됐었어요. 이 소설 속에서 특별히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읽어본 주위 친구들은 소설의 주인공에 저를 많이 대입시키려고 하는데, 저는 소설 속 인물들 대부분에 제 모습이 조금씩 투영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주인공이나 우진은 물론, 이반, 수연, 정현 같은 인물들 속에도 모두 저의 일부가 존재해요. 그래서인지 특별히 애착이 가는 인물 하나를 꼽기는 어렵군요.

 ―소설을 읽으면서 예기치 않게 오해를 사거나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강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도덕의 차원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하는 건 굉장히 상식적인 거예요. 내가 상처를 받고 싶지 않은 만큼, 다른 존재에게도 그러고 싶지 않다는 것. 그런데 이 세계에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그런 일이 생기잖아요. 그걸 깨달았다가도 잊어버리고. 그러기를 반복하면서 회의를 느끼고…… 아마 그런 고민들이 무심결에 많이 표현됐던 것 같아요. 하지만 결국 요즘도 마찬가지예요. 깨닫고 잊어버리고, 또 후회하고……

 ―그런데 실제로는 00학번이신 걸로 알고 있는데, 어째서 소설에서는 2004년으로 시간을 옮겨놓으신 건가요.

 9·11테러 이후 제일 크고 중요한 테러 사건이 마드리드 열차 테러와 런던 지하철 테러 사건이에요. 그중에서도 런던 지하철 테러 사건은 9·11 테러 이후 자본주의의 중심이라고 할 만한 도시가 또 한번 대규모 자살 테러의 표적이 된 사건이었고, 범인들이 같은 영국 시민이었다는 사실 또한 큰 충격을 주었죠. 소설의 시간적 배경을 2004년부터 2005년으로 설정한 것은 주인공이 런던에서 이 사건을 겪게 하기 위해서, 라는 이유가 커요. 2004년은 우리나라에서도 충격적인 사건이 많이 벌어진 해이기도 했고요. 실제 런던 지하철 테러는 2005년 7월에 일어났는데, 소설상의 날짜는 조금 달라요. 마드리드 열차 테러도 그렇구요.

 ―소설 속에도 나오지만 2004년에는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탄핵소추안 가결이 있었고, 유영철 연쇄살인사건을 비롯한 강력범죄들이 난무했지요. 악의에 찬 광기와 분노 그리고 공포와 의심이 도시의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던 시기라고 쓰셨는데요. 이 사건들에 대한 충격도 있지만, 그것보다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게 진행되는 일상에 대해 일종의 괴리감과 분노를 느끼셨던 것처럼 느꼈어요.

 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2004년이 다른 해보다 특별히 문제가 많았던 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우리가 모르는 동안에도 사건들은 끊임없이 발생하니까요. 어쩌면 우리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을 수도 있고……

 ―조금 조심스러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들은 고통스러운 역사를 직접적으로 경험한 세대는 아닌 것 같아요. 전쟁이나, 민주화투쟁과 같이 한 시대를 묶어주는 깊은 상처를 체감했다고 보기는 힘들죠. 실제로 젊은 작가들 중에는 극도로 추상적인 세계를 구현하며 실험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도 있고요. 이번 당선작을 읽으면서 사회역사적인 맥락을 재현하겠다는 욕구가 뚜렷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글을 쓰면서 그런 고민을 많이 하셨나요.

 작가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인 이상 현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죠. 표현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드렸던 9·11테러나 런던 지하철 테러 같은 것들은 먼 곳에서 발생했지만 전 세계가 동시적으로 충격을 경험한 사건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사건이 언제라도 이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 규모는 다르지만 유사한 폭력들이 지금 바로 옆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있는 문제가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논리로 사람을 설득하는 것의 어려움, 불가능성 이런 걸 많이 생각해요.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을 아무리 이성적으로 근거를 대서 이야기해도, 누군가를 설득하기란 굉장히 힘들다고 느꼈어요. TV에서 하는 <100분 토론> 같은 것들을 봐도, 사실 나와서 각자 자기 이야기만 하다 끝나잖아요. 그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고,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할 때도 밤새 어떤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해도 결국 서로 다르다는 것만을 확인하고 끝날 때가 많죠. 그러니까 논리가 아니라 감정, 마음에 와 닿는 뭔가를 통해서만 사람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고민이 프롤로그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느 날부터 귀마개를 하지 않았을 때도 소리가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그때 주인공은 사람들이 내게 들려주기 위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떠들고 싶기 때문에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하잖아요.

 그렇죠. 지금 말한 설득의 문제,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소통에 대한 문제겠죠. 소통에 대한 문제도 그렇고, 소설 속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를 찾으려는 것도 그 가능성이 열려 있을 뿐 그것이 정말 이루어질지 어떨지는 확신할 수 없는 것인데, 중요한 것은 그것을 하려는 의지라고 생각해요. 물론 의지와 결과는 대개 아무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그에 대한 의지나 희망마저 없다면 우리 인생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잖아요.

 ―친구가 축제에 초대해줘서, 제가 일학년 때 실제로 서강대 축제에 가서 타로카드점을 본 적이 있었어요. 작품에서 주인공 ‘나’와 수연이 학교 축제 때 타로카드점을 보는 장면은 굉장히 중요한 전환점으로 나오죠. 타로카드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셨나요?

 사실 타로카드를 잘 알거나, 거기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점이라든가 꿈 같은 초현실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이 재미있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순 속에서 살아가죠. 예를 들어 기독교를 믿으면서도 점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저 자신도 소설 속에 나오는 말처럼 논리와 과학을 더 신뢰하면서도 꿈을 꾸면 그 꿈의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하거든요.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거예요. 그렇게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막연한 모순 속에서 살아가다가도, 때때로 지극한 우연의 일치나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선명한 깨달음이 올 때가 있잖아요. 그 꿈이 이런 뜻이었구나, 그 점이 이런 의미였구나 하고 말이에요. 물론 실제로 그런 의미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죠. 그 역시 의미 부여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만으로도 뭔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인생에 드물게 찾아오는 순간이니까.

 ―그럼 운명 같은 것에 대해서 믿는 편이신가요?

 기본적으로 절대자나 신에 대한 믿음은 있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과연 내가 누구에게 기도를 하는 것인가’ ‘내가 운명을 믿는다면 이 운명은 어디로부터 오는가’ 하는 생각도 해요. 엄밀히 말하면 믿을 수 없으면서도 믿고 싶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작품 속에서 인물이 런던에 가는데, 왠지 작가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영국으로 여행이나 어학연수를 가신 적이 있나요?

 그렇게 느끼셨다니까 굉장히 기분이 좋은데, 사실 가본 적은 없어요. 여행도 많이 다녀보진 않은 편이에요.

 ―작품명이 ‘피리 부는 사나이’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 전설에서 모티프를 따오신 건가요?

 피리 부는 사나이 자체가 굉장히 기묘한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이 피리 부는 사나이 전설에 대해서 아베 긴야라는 사학자가 연구한 책이 있어요. 그 책을 보면 이 전설이 역사적인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며 사료도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그 사료들을 가지고 여러 학자들이 각기 다른 학설들을 내놓은 걸 정리해놓았더군요. 전설 자체보다, 거기에 대해 사람들이 다양한 추측을 하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저도 생각해보게 된 거죠. 사라진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다음에는 이렇게 생각이 연결되는 거죠. 오늘날 도시에서 실종된 사람들 중에 끝내 찾아내지 못하는 실종자 수가 적지 않다는데,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1212년 수천 명의 독일 어린이들을 이끌고 어린이 십자군에 참가했던 인물인 니콜라스를 ‘피리 부는 사나이’에 비유했다는 주장이 있더라구요. 소설 속 ‘니콜라스’도 혹시 이런 맥락에서 가지고 오신 건가요?

 맞아요. 만나기 전에 조사를 많이 하셨구나. (웃음)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구원이자 재앙이었잖아요. 소설에서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는 모든 테러와 사건 들이 ‘파괴’로 나아갈 것인지 새로운 ‘창조’가 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어떻게 보면 작가의 세계관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도 있는 부분이었는데요.

 예.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가 그 마을의 구원이자 재앙이었다면 소설 속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구원인지 재앙인지 알 수 없는 존재죠. 피리 부는 사나이를 바라보는 각기 다른 시각들만 존재하고 그것들 또한 어느 편이 옳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어요. 결국 명확한 판단은 유보되고 그것을 찾기 위한 의지만을 확신할 수 있다는 게 어쩌면 작가의 세계관일지도 모르겠네요.

 ―주인공의 경우에는 결국 런던에서 발생한 테러로 인해서 가장 소중한 친구를 잃게 되잖아요. 그리고 주인공이나 친구나 전혀 테러의 원인이 될 수 없는 무관한 사람들이구요. 그 부분에서는 테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거든요.

 우선 그 말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들이 전혀 테러의 원인이 될 수 없는 무관한 사람들이라는 것. 테러뿐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폭력 사건들은 대부분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키죠. 즉 누구라도 희생자가 될 수 있고 그것이 무차별범죄의 무서운 점이잖아요. 그런데 니콜라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근본적인 폭력이 존재하며, 폭력을 통해서 폭력으로 가득 찬 세계를 바꾸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죠. 주인공은 그 이야기에 어느 정도 감화되었다가, 눈앞에서 친구를 잃자 다시 혼란에 빠진 거라고 생각해요. 머릿속으로는 니콜라스의 생각을 이해하지만, 가슴속에는 친구를 잃은 슬픔이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어떤 느낌이나 반응을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기본적으로는 재미있다는 말을 듣고 싶죠.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이 소설로 인해 독자들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고, 그들의 삶에 어떤 작은 영향이라도 미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작품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증명하는 것들’과 ‘시간의 흐름을 거스르는 것들’에 대해 쓴 부분이 있었어요. 요즘 본인의 시간의 흐름을 증명하는 것들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아무래도 육체적인 변화에서 그런 걸 많이 느끼죠. 똑같은 일에 예전보다 더 피곤함을 느낀다든가. 초췌한 얼굴, 늘어나는 뱃살…… (함께 폭소)

 ―사실 조금 추상적인 이야기를 들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 질문을 좀 바꿔서, 요즘 어떤 책들을 읽으세요?

 독서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 얼마 전에 나름대로 읽어야 할 세계문학작품 리스트를 작성했어요. 그걸 따라서 하나씩 읽어나가고 있죠. 가장 최근에 읽은 건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었어요. 다음으로 존 쿠체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조금 읽었는데 연락이 와서 아직 그 상태예요.

 ―이십대를 너무나 멋있게 마무리하시게 됐는데, 삼십대에 꼭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이십대 때는 좋아하는 몇 가지 것들에 몰두하느라, 다양한 것들을 경험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삼십대 때는 좀더 많은 것을 보고, 겪고, 그러면서 분명한 인식이나 시각을 가지고 스스로의 삶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 과정을 통해 좋은 소설을 쓸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죠. 저는 이제 시작하는 소설가니까 아무것도 확실한 건 없지만, 적어도 소설을 쓸 때마다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글과 삶이 하나가 됐으면 좋겠구요.

 ―상금 받으신 걸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어디론가 여행을 가신다거나.

 아직 계획은 못 세웠는데, 여행이라면 크레타 섬을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 있어요.

 ―와, 멋져요. 안 그래도 무인도에 갈 때 가지고 갈 세 가지를 물어보고 싶었는데, 크레타 섬이 무인도는 아니지만 슬쩍 물어봐도 되죠?

 일단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할 것 같은데…… (웃음) 그걸 제외한다면, 오랫동안 읽을 수 있도록 아주 길고 이상한 책 한 권과, 뭔가 쓸 수 있는 도구,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나를 이해해주고 나 역시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같이 있다면 좋겠죠. 사실 이런 사람은 무인도에 가지 않는다 해도 절실히 필요해요. 만나기 쉽지 않다는 게 문제죠. 


  사실 직접 만나기 전에 그의 수상 소감에서 ‘나는 이미 해놓은 말들을 자주 후회하는 사람이다. 미처 하지 못한 말들을 후회하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보고 지레 겁을 먹었다. 인터뷰어에게 가장 무서운 사람은 말을 아끼는 사람이 아닐까. 하지만 실제로 만나본 그는 지적일 뿐만 아니라 푸근하기까지 했다. 인터뷰 후에 식사를 하면서 그는 ‘낮술의 효용론(밤늦게 술을 마시면 다음날 하루를 날리게 되지만, 낮에 술을 마시면 저녁때 깨서 하루를 번 것 같은 기분이 된다는)’을 설파해 우리를 정신없이 웃게 만들었다. 그리고 모르는 사람에게서 잘못 온 문자에도 친절한 답장을 해주어 생긴 일화들도 이야기해주었다. 어떤 질문에도 차분하고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그가 말을 후회한 적이 많다면, 그것은 아마도 소통에 대한 회의 때문이 아니라 소통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대치가 너무 높아서였을 것이다.

 만나기 전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나는 그의 걸음걸이가 무엇보다 궁금했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처음에는 ‘고개를 조금 숙이고, 되도록 발소리를 내지 않으며, 팔도 거의 움직이지 않고 좁은 보폭으로’ 걷지만, 나중에 어느 순간부터는 ‘거리의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사방을 둘러보며 성큼성큼’ 걷는다. 그는 걸음걸이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었다. “그것은 몸이 기억하고 있는 역사였다. 걸음걸이에는 내가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이 층층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런 식으로 걸어왔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렇게 걸어갈 것이다.” 내가 훔쳐봤을 때 그는 천천히 사뿐사뿐 걸었다. 세상에 절대로 서둘러서 해결될 일이란 없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세렝게티 초원의 평화로운 기린들처럼 그렇게 걸었다. 그래서 어쩐지 그 걸음을 믿고 따라가고 싶어졌다. 피리를 부는 대신 기타를 치는 이 작가가 한 발자국씩 걸으면서 우리를 홀려 모르는 세계로 데려간다면, 기꺼이 매혹되어 그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곳이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리듬과 우연과 소통을 사랑하는 그가 데려갈 곳은 어쩐지 따뜻한 곳일 것만 같아서. 


* 김기홍 : 198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강대에서 국문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 강지희 :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동대학원 석사과정 재학중.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평론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 자료제공 : 문학동네 출판사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aufheben9 2009-12-26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자는 김기홍인데 오타가 있네요. 김기호.
이건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소설상과 작가상이 동일한 것인가요? ^^'
 

* 이 작품은 네이버 오늘의 문학 2009년 5월 8일자 「에소릴의 드래곤」의 후속작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작품의 이해를 위해 「에소릴의 드래곤」을 먼저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http://navercast.naver.com/literature/genre/394 

이번에 공개하는 작품은 전체 원고의 1/4이며, 미 편집본입니다.



 샹파이의 광부들

                                                                                                        - 이영도



마침내 일부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다. 샹파이 난쟁이들이 조피크산을 뚫은 것이다.
문균법 때문에 초기엔 은밀히 후원하다가 공사 후반기엔 아예 대놓고 법률을 위반해가며 샹파이 난쟁이들을 후원했던 모험 상인들은 잔을 무더기로 깨트려가며 건배를 나누었다. 몇몇 상인들이 왕의 법정에 서게 되었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악명 높은 조피크산의 허리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어떤 평가에 따르면 그것은 국경에 아무런 변화 없이 왕국이 두 배로 늘어난 것과 같은 위업이었다. 단축된 시간도 영토가 될 수 있으므로 그것은 썩 통찰력 있는 지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가끔은 통찰력보다 더 우수할 때도 있는 능력인 동화력을 갖춘 이들은 그 역사적인 위업에 우려를 느꼈다. 그들은 샹파이 난쟁이들이 애초에 그 난쟁이 잡는 공사에 나선 이유를 잊지 않았다. 샹파이 난쟁이들은 가장 긴 터널을 가지고 싶어했다. 터널은 난쟁이의 자존심이다. 자레올 난쟁이의 카로당 터널을 언제나 부러워 했던 샹파이 난쟁이들은 터널 공사비를 지원하겠다는 은밀한 제안을 받자 후원자들의 정체도 묻지 않고 조피크 터널 회사 설립에 동의했다.
그리고 조피크 산을 관통한 터널은 카로당 터널보다 짧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순진한 난쟁이들이 영악한 상인들에게 이용당한 사건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동화력을 가진 이들은 근심에 빠진 눈으로 샹파이 난쟁이들을 주시했다. 욕심 많은 난쟁이들이 현명한 신들이나 영리한 영웅들에게 이용당할 수는 있다. 옛날 이야기엔 언제나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하지만 천성적 토목 건설자인 난쟁이들이 거리 계산을 잘못하는 경우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그들은 찜찜함을 견딜 수 없다는 어조로 말했다. “분명히 무슨 사단이 일어나고 말 거야.” 그리하여, 샹파이 난쟁이들이 모든 사람들을 경악시킨 선언을 했을 때, 그들은 슬퍼하긴 했지만 크게 놀라진 않았다.
완공을 축하하기 위해, 그리고 애석하게도 가장 긴 터널을 가지지 못하게 된 것을 위로하기 위해 상인들의 대리인이 찾아왔을 때 샹파이 난쟁이들은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연히 어리둥절해진 대리인은 조피크 산이 이미 뚫렸는데 어디를 팔 작정이냐고 물었다. 샹파이 난쟁이들은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냐는 듯이 대답했다. 땅 위.
“예? 뭐라고요? 어디?”
“땅 위에 터널을 파겠다고.”
근사한 농담을 떠올리려 애쓰던 대리인은 결국 두 손 들고 말았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소리이니 받아치기도 어려웠다. 대리인은 겸허하게 질문했다. 허공에 구멍을 뚫겠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헛소리냐고. 돌아온 대답에 대리인은 기절할 뻔했다. 지금껏 구멍을 팠던 샹파이 난쟁이들은 조피크 산을 통과한 시점에서 공법을 바꾸었다. 벽과 천장 만들기로. 물론 그것은 빈 공간을 터널로 만드는 유일한, 그리고 당연한 방법이다.
하지만 바깥에서 볼 때 그것은 왕국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장벽이 생겨난다는 의미였다.
샹파이 난쟁이들은 카로당 터널보다 몇백 미터 쯤 더 긴 터널에 만족할 생각은 없었다. 모방자는 언제나 착안자보다 수월한 법이다. 두 번째 지상 터널에 추월당하는 일을 결코 참아낼 수 없었던 샹파이 난쟁이들은 조피크 산에서 뻗어나갈 수 있는 데까지 장벽을 이어나갈 결심이었다. 샹파이 난쟁이들은 마구잡이로 어음을 교부하여 가장 높은 값으로 토지를 사들였다. 당연히 토지 소유자들은 거침없이 공사 예정지를 팔아치웠고 샹파이 난쟁이들은 그 땅 위에 계속 튼튼한 벽과 육중한 천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모험 상인들은 그것을 저지할 수 없었다. 문균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경영권과 결재권을 모두 난쟁이들에게 넘겼던 탓이다. 그들은 충혈된 눈으로 돌아오는 어음을 보다가 밧줄이나 독약병을 쳐다보곤 했다.
거상들이 어이없게 몰락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였지만 왕국이 장벽으로 절단된다는 것은 안보 차원의 문제였다. 결국 왕이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책임자의 지위가 올라갔다는 의미이지 책임을 지는 것이 손쉬워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섣불리 조피크 터널 회사를 파헤쳤다간 먼지를 좀 뒤집어쓰는 것이 아니라 왕국 경제 구조 전체가 오물을 뒤집어쓰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상인들의 탐욕에 격분하고 그들을 몽땅 체포할 수 없다는 사실에도 격분한 다음 왕은 내키지 않는 기분으로 초법적인 수단을 동원했다. 모든 것에 우선하는 왕의 칙령이 반포되었다.
짐은 조피크 터널 회사의 사원들에게 그들 자신의 명예욕 외엔 아무 것도 만족시킬 수 없고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불편과 고통만을 안겨주는 그 언어도단적인 굴착 공사를 당장 중단하는 것이 좋다고 권고한다.
많은 이들이 애석해하는 사실이지만, 좋은 의도가 더 강력한 전달력을 지닌다는 것은 낭만적인 오해일 뿐이다. 현자나 지자들의 충고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진실은 분명히 거짓보다 강하다. 진실을 소리 높이 외치는 일은 언제나 현명한 일이며 또한 옳은 일이다. 하지만 진실과 좋은 의도는 다르다. 많은 이들의 행복을 고려하여 좋은 의도에서 반포된 왕의 칙령은 실로 곤혹스러운 결과를 가져왔다. ‘다른’ 난쟁이들이 발끈하고 나선 것이다.
난쟁이들이 합법적인 수단을 통해 가장 긴 터널을 추구하는 것이 왜 잘못이냐? 장래에 우리가 더 긴 터널을 뚫으려 할 때도 방해할 거냐?
첫 번째 문장도 상당히 강력했지만 난쟁이들이 아무런 가식 없이 솔직하게 강세를 둔 두 번째 문장은 실로 파괴적이었다. 현재 공사 중인 샹파이 난쟁이들을 제외하면 그 어떤 난쟁이 씨족도 굴착 공사를 하고 있지도, 계획하고 있지도 않다는 점은 반론 근거가 되지 않았다. 터널은 난쟁이의 자존심이므로. 결국 자레올 난쟁이와 다른 난쟁이들을 혐오하는 아쿠다 난쟁이를 제외한 모든 난쟁이 씨족들이 샹파이 난쟁이들을 거들고 나섰다. 34년 전 목걸이 전쟁 이후 처음으로 난쟁이 대회가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제출되자 왕의 정부는 뒤집어지고 말았다. 난쟁이 대회에서 벌어질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일들 중에는 전투 추장의 선발도 있다. 난쟁이 전투 추장은 가문이나 씨족에 관계없이 모든 난쟁이 전사들을 동원하여 지휘할 수 있다. 한 마디로 세계 최강의 부대를 소환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존재다.
심도 있는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자명했다. 샹파이 난쟁이들도 최악의 부담만은 피하고 싶었기에 대화에 동의했다. 왕의 신료들은 샹파이 난쟁이들에게 줄 선물을 급히 꾸렸다. 하지만 샹파이 난쟁이들이 지명한 협상 대리인이 공개되자 신료들은 그 선물을 벽에 집어던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샹파이 난쟁이들의 협상 대리인은 왕으로 불리는 자였다. 따라서 그 위격이 떨어진다는 말은 절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대리인은 지상과 터널이 어울리지 않는 것만큼이나 협상과 어울리지 않는 자였다. 사람들은 그 왕이 자기 외의 다른 존재와 말을 해봤는지, 아니, 말을 할 수나 있는지 의심했다.
샹파이 난쟁이들의 협상 대리인은 뱀의 왕, 바실리스크였다.

아른 레간데는 울적한 기분을 달랠 수 없었다. 일어나리라 예상한 일이 일어난 것에 불과하지만 그 방식이 몹시 괘씸하고 짜증스러웠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짐을 뒤지다가 약혼녀가 숨겨둔 파혼 편지를 발견하는 것은 확실히 어디다 대고 말하기도 뭣한 일이었다.
주변에 옷가지들을 늘어놓은 채 반라 상태로 앉아있던 아른은 다시 편지를 들여다보았다. 문장력을 칭찬할 정도는 아니지만 꽤 정성 어린 편지였다. 데일은 못된 여자는 아니었다. 아른은 행간마다 스며있는 양심의 가책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아른 또한 합리성을 존중하는 상인 가문의 남자였다. 데일이 그에 대한 의리를 지키겠다고 말하면 오히려 그녀를 꾸짖었을 것이다.
‘하지만 왜 옷상자 속이냐고. 젠장. 불러내서 눈을 들여다보고 당당하게 말한다거나 할 수는 없었어? 그런 식으로 쉽게 쉽게 살 수만 있을 것 같아?’
아른은 더 짜증났다. 용기를 내지 못한 데일만을 꾸짖을 수는 없었다. 그가 먼저 파혼을 통고할 수도 있었다. 숙녀에게 파혼의 불명예를 안길 수 없다는 것은 치사한 변명이다. 난쟁이들 때문에 가산을 탕진하다시피 한 남자가 약혼자에게 파혼을 통고했다면 누가 그녀가 모욕을 받았다고 말하겠는가. 결국 그에게도 레간데 가문이 파산 직전임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아른은 씁쓸한 기분으로 데일을 용서하고 자신을 용서했다.
아른이 간직할지 말지 결정하지 못한 채 편지를 도로 접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실이 들어섰다. 아직 벌거벗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지만 아른은 그녀의 등장에 놀라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한 집에서 자란 가노 실은 그에겐 움직이는 탁자나 옷걸이나 다름없었다. 실 또한 무덤덤한 표정으로 걸어와 살짝 무릎을 구부렸다. 아른이 말했다.
“네가 이 편지 숨겨두었지?”
“당연하죠.”
“얼마나 받았냐?”
“새 옷 살 정도는 안 돼요.”
“내가 너한테 옷값 제대로 안 줬냐? 일 년에 두 번은…… 젠장. 그만두자. 그래, 지금쯤 다 읽었을 거라 생각하고 용서를 빌러 왔어?”
“아뇨. 장원 문지기가 협상단을 찾아온 손님이 저택 입구에 도착했다고 보고했어요. 보나마나 옷도 제대로 안 입고 청승 떨고 있을 것 같아서 옷 입혀드리려고 온 거예요.”
아른은 그 정확한 예견에 그리 상처 입진 않았다. 대신 의아함을 표시했다.
“누가 도망친 것이 아니라 찾아왔다고? 우리 협상단에?”
실은 아른에게 일어나라는 손짓을 하고는 옷을 집어들었다.
“예. 좀 이상하긴 하지만, 사실 안 와도 좀 이상하죠. 왕의 사절이거든요.”
“아아. 결국 어느 영감님이 죽을지 결정이 났군. 하마터면 협상단장도 없는 협상단이 될 뻔했는데 다행이네. 그래, 그 운 없는 영감님은 누구야?”
아른의 말처럼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협상단이 출발하기 직전까지도 협상단장을 맡을 왕의 사절이 결정되지 않아서 할 수 없이 여행 시간이 많이 걸리는 실무진과 수행 인원만 먼저 출발한 상태였다. 사절이 결정되는 대로 합류한다는 약속이었지만, 나머지 협상단 전원이 협상이 열릴 페렘시 근교의 이 장원에 도착할 때까지 왕의 사절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른과 협상단원들은 협상을 시작하지도 못한 채 엄청난 수모를 당할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실은 대답 없이 아른에게 옷을 입혀주다가 지나가는 말처럼 말했다.
“임금님이 화가 많이 나셨나 봐요.”
“그러셨겠지. 아무도 나서지 않아서. 하지만 이런 경우에 화를 내는 것도 좀 그렇지.”
“아니오. 샹파이 난쟁이들에게 화가 나신 것 같다고요.”
아른은 그것도 당연하다고 말하려다가 문득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실을 살폈다. 다른 사람이라면 실이 평소처럼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다고 말하겠지만 그녀와 함께 자란 아른은 실이 웃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것에 가까운 상태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 아른은 어리둥절해졌다.
“사절이 누군데? 누가 왔는데?”
“카쉬냅 백작 더스번 칼파랑이에요. 괜찮아요?”
바짓자락을 밟고 휘청거리는 아른을 부축한 실이 말했다. 아른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더스번 경? 사악한 더스번 경이 사절이라고? 그게 말이 돼?”
아른은 왕이 밥을 먹기 위해 철퇴를 뽑아들었다거나 목욕을 하기 위해 전차에 올랐다는 말을 들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통념을 고려한다면 더스번 경의 사절 임명은 정확히 그런 경우에 해당했다. 아른이 알기로 더스번 경은 회담장에 데려다놓으면 회담 상대의 목을 베고 회담장에 불을 지른 다음 그대로 상대방의 본거지로 달려갈 짐승이었다. 그리고 그 동안 자제력이란 말은 떠올리지도 못할 것이다. 제네갈 공작의 아들, 즉 왕의 조카를 하반신 불구로 만들어버린 작자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긴 하다. 불경하게도 왕이 미치지 않았나 의심하던 아른은, 문득 자신이 왜 파혼 통고를 받았는지 떠올렸다. 저쪽 사절은 바실리스크였다.
아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웃음의 먼 조상 쯤 될 듯한 표정이었다. 그 상황을 기뻐해도 되는지는 아직 불확실했지만 어쨌든 통쾌하기는 했다. 아른은 샹파이 난쟁이들이 그 소식을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했다. 뒷일을 감당할 자신은 조금도 없었지만, 어쨌든 궁금하긴 했다. 정말로.
재빨리 달려나가려던 아른은 문득 움직이는 옷걸이나 탁자의, 평소엔 인식하지도 못했던 특징을 깨달았다. 만나기도 전부터 자신에게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 더스번 경에게 감탄하며 아른이 말했다.
“넌 따라오지 말고 여기 있어. 실. 어, 경은 평판이 좀…… 알지? 성녀를 욕보였다는 소문도 있잖아.”
실은 안도했다. 평생을 함께 한 아른도 거의 본 적이 없는 커다란 안도감이었다.
“고마워요. 그 분, 칼은 안 가지고 다녀도 여자는 가지고 다니는 분 같더라고요.”
실의 말이 일종의 비유라고 생각했던 아른은 더스번 경을 직접 본 후 복잡한 기분에 빠졌다. 더스번 경의 손엔 칼 대신 곡괭이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어깨엔 인사불성 상태의 여자가 얹혀 있었다.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전설에 따르면 죽음은 오래 전 더스번 칼파랑을 자신의 수하에서 자신의 동업자로 격상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더스번 경의 몸 어딘가엔 그 타당한 계약을 증거하는 기묘한 점이 있다고 한다. 아른은 평소 그 이야기를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치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주망태가 된 여자를 객실 침대에 던져놓고 협상단원들이 기다리는 회의실로 돌아온 더스번 경이 자리에 앉자 아른은 자신도 모르게 경의 드러난 피부를 살폈다. 그리 밀도 높은 관찰은 되지 못했다. 경의 얼굴 대부분은 수염으로 덮혀 있었고 경의 거대한 몸은 육중한 갑옷이 가리고 있었으므로.
협상단원들의 인사를 받은 경은 곡괭이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 되바라진 난쟁이들이 허공에 굴을 뚫겠다고 했다고?”
협상단원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왜 검이나 창이 아니라 곡괭이인지도 이해할 수 없었는데 그걸로 자신의 관자놀이를 긁는 경의 모습이 꼭 자살하려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뜨악한 시선을 느낀 더스번 경이 대단찮은 일이라는 듯 설명했다.
“난쟁이들의 굴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들어서 가져왔소. 굴이면 곡괭이가 어울릴 것 같아서.”
“저, 란데셀리암을 쓰러트린 명검 샤란다이트는 혹시 가져오지 않으셨습니까? 괜찮으시다면 견식하고 싶은데요.”
“샤란다이트? 그게 뭐…… 아, 사란디테. 보고 싶으면 객실에 가보쇼.”
“예?”
“사란디테는 칼이 아니라 그 때 나와 함께 싸운 여자 이름이오. 지금 객실에 있는 주정뱅이가 바로 그 여자지. 란데셀리암하고 싸울 때 내가 들고 있던 걸 보고 싶으면 그건 여기 있소.”
협상단원들은 아연한 기분과 뭔가 분한 기분을 동시에 느끼며 다시 경의 곡괭이를 쳐다보았다. 이후로 아무도 경의 곡괭이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협상단 내의 지위는 중간 정도지만 모험 상인들의 그룹에서 왔기에 실질적인 책임자에 가까웠던 아른은 헛기침을 했다. 경이 자신을 쳐다보자 아른은 머리를 숙여보이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하시는 것 같군요. 더스번 경.”
“그렇소. 누구더라? 아, 아른. 샹파이 난쟁이들의 터널에 무슨 문제가 있다는 소리는 이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소. 하지만 왕이 보낸 작자가 나를 찾아냈을 때 난 저 실연중독녀를 달래느라 진탕 취해 있었거든. 틀림없이 상세히 설명해줬을 텐데 기억이 가뭇없어. 하지만 즉시 여기로 와서 당신들을 만나라는 이야기만큼은 똑똑히 기억났소. 사란디테는, 흐음. 우리가 퍼마시고 있던 곳이 성소는 아니었소. 정신 나간 여자 혼자 거기에 내버려두고 올 수도 없었고 내가 없으면 혼자 퍼마시다가 사고를 칠 것 같아서 그냥 둘러메고 여기로 온 거요. 그러니 사정 좀 설명해주시오. 뭐가 문제요?”
아른은 최대한 정확하게 상황을 전달했다. 그 결과로 더스번 경은 멍한 표정이 되고 말았다.
“바실리스크? 그럼 그 녀석을 죽이면 되는 거요?”
아른은 협상단원들의 표정을 보고는 그들 모두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참을성 있게 말했다.
“아뇨. 그게 저쪽의 회담 대표입니다.”
“아하. 별명인가 보군. 눈빛이 고약한 녀석인가 보지.”
“아니오. 진짜 뱀의 왕을 말하는 겁니다.”
더스번 경은 뚱한 얼굴로 아른을 쳐다보다가 혀를 찼다.
“그 난쟁이들이 조피크산에서 그걸 찾아내었을 수는 있소.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산이니까. 그리고 난쟁이들이 바실리스크를 생포했을 수도 있소. 워낙 희한하고 비밀스러운 재주가 많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바실리스크는 말을 못 하오. 말을 못 하는데 무슨 회담 대표가 된다고?”
“역시 말을 못 하는군요?”
협상단원들 사이에 새로운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샹파이 난쟁이들이 바실리스크를 협상 대리인으로 내세웠다는 것이 알려진 직후부터 떠돌던 가설이 있었다. 샹파이 난쟁이들이 원하는 건 회담의 결렬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로 거론되는 것은 상인들의 알력에서부터 적국의 간섭까지 다양하지만 어쨌든 현상만 놓고 보면 꼭 그렇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만에 하나 바실리스크가 말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엄청나게 위압적인 회담 상대자를 내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는 있다. 하지만 바실리스크가 말을 못한다면 그것은 회담 파탄의 의지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 때 더스번 경이 말했다.
“말을 할 수야 있지. 하지만 해선 안 되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더스번 경은 곡괭이를 뒤집어 잡고는 그 자루로 자신의 어깨를 탁탁 쳤다.
“바실리스크는 말을 할 수 있소. 말 할 일도 없는데 왜 그런 재주가 있는진 나도 모르겠소. 하지만 분명히 말을 할 수야 있소. 하지만 바실리스크는 말을 하면 눈을 잃게 돼. 그 유명한 즉사의 눈 말이오. 그러니 왜 말을 하겠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아른이 사실이자고 묻자 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실리스크는 언제나 그래. 눈을 포기했으니 살려달라고 말하지. 그렇소. 살려달라고 말하는 걸 내 귀로 들었단 말이오. 평생 처음 하는 거라 좀 서툴긴 하지만 알아들을 수는 있소. 그 직후 바실리스크는 장님이 되지.”
아른은 ‘바실리스크는 언제나 그렇다’는 말 앞에 ‘하필이면 이 시대에 태어나 더스번 경과 맞닥뜨릴 정도로 운이 없는’이라는 말을 덧붙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더스번 경이 내놓은 새로운 정보에도 불구하고 협상단원들은 여전히 ‘바실리스크 협상 대리인’을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아른이 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자 실은 간단히 그 사태를 정리했다.
“그러면 샹파이 난쟁이들은 바실리스크가 눈을 포기하고 대화에 나설 정도의 설득력을 보여주길 바라는 것이군요. 바실리스크가 아니라도 눈을 포기하는 건 불가능할 텐데. 깐깐하네요.”
아른은 멍한 기분으로 깐깐하다는 말은 턱없이 부족한 말이라고 생각했다. 생떼라고 하는 것이 어울릴 듯했다.


-----------------------------------------------------------------------------------------------------------


황금가지 출판사의 환상 문학 단편선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가 출간되었습니다. (이영도, 김이환, 김보영 외 지음)

“뭐 재밌는 얘기 없어?”
어느 날 커피 잔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지루한 일상을 뒤집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가득한 한국식 기담!

10인의 젊은 환상 문학 작가들이 또 한 번 뭉쳤다!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에 선정되었던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에 이어 황금가지에서 야심차게 기획한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에는 더욱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기묘한 환상 문학 단편들이 수록되었다. 베스트셀러 소설가인 이영도가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인기리에 게재했던 「에소릴의 드래곤」 후속작인 「샹파이의 광부들」을 비롯하여, 네이버 '오늘의 문학' 화제작 「노인과 소년」, 1억 원 고료의 SBS 제1회 멀티문학상 주인공인 김이환이 선보이는 표제작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 등 다양한 배경, 다양한 주제의 다채로운 작품 10편이 펼쳐진다. 이매진 단편 공모전, 황금드래곤 문학상, 과학기술 창작문예, 디지털 작가상, KT&G 상상마당 문학공모전 등 화려한 입상 경력을 자랑하며 온·오프라인 안팎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작가들의 재기발랄한 단편들을 만나 보자!

“땅 위에 터널을 파겠다고.” 세상에서 가장 긴 터널을 원하는 난쟁이들과 파산 위기에 놓인 상인 조합의 한 판 승부! 난쟁이들이 회담자로 내세운 상대는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뱀들의 왕, ‘바실리스크.’ 그러나 인간 쪽 협상단장 또한 인간이라고 하기에 무색할 정도로 악명 높은 남자인데……. 한국 환상 문학의 대부 이영도의 재치 넘치는 입담이 빛을 발하는 단편!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소개되었던 「에소릴의 드래곤」의 미공개 후속작. _ 「샹파이의 광부들」

 “한 달에 한 번, 누군가는 죽어야 했다.” 학생을 제물로 바쳐 유지되는 학교. 학교 밖 숲에는 어른이 되지 못한 자퇴생과 괴물 아기들이 우글거린다. 누군가의 희생을 딛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없는 그곳에서 제물이 될 학생은 투표로 결정된다. 다음 번 차례는 누구? 난 죽고 싶지 않아! _ 「학교」

“아빤 반드시 널 천국으로 보낼 거다.” 죽은 자들이 살아서 돌아온 ‘위대한 귀환’ 사건 이후, 천국이 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다만, 천국에 가려면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천국 점수를 많이 쌓아야 한다는데……. 천국 점수를 받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기묘한 사회에서 그저 평범하게 천국에 가고플 뿐인 한 아빠의 고군분투 이야기. _「천국으로 가는 길」

“진정 위대한 발명은 지우개나 바구니 같은 거죠.” 미래와 과거를 연결해 주는 신비한 돌을 매개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인류 최악의 악당이 나타났다! 그를 막기 위해서 한 여류작가가 한국의 최고 인기 배우를 찾아온다. 소설의 끝에서 밝혀지는 인류 최대의 발명품이란 과연? _ 「뮤즈는 귀를 타고」

“누가 내 장미를 꺾었지?” 오랜 세월 찾지 않았던 고모의 댁을 엄마 심부름으로 방문한다. 기억 속의 정원에는 여전히 코를 찌를 듯 독한 향기를 흘리는 검붉은 장미가 가득하고, 사촌 오빠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아준다. 그러나 집에서는 어딘지 섬뜩한 기운이 흐르고 고모는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데……. 장미 정원에 감추어진 끔찍한 비밀을 둘러싼 현대판 ‘미녀와 야수.’ _ 「장미 정원에서」

 “네가 그 노래하는 꽃이구나. 소문으로 들었지.” 아베의 정원에서 천덕꾸러기 같은 토란은 몰래 걷고 노래하는 법을 배운다. 꽃들은 그저 얌전히 나비가 선택해 주길 기다리라는 아베의 꾸지람에도 토란은 자유롭게 걷고 노래하는 것이 행복할 뿐이다. 어느 날, 밤 산책에서 도토리를 만나게 된 토란은 아베의 정원에 무언가 비밀이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걷고 노래하고 살아 있다고 소리치는 이 세상의 모든 꽃들을 위한 따뜻한 이야기. _ 「노래하는 숲」

---------------------------------------------------------------------------------------------------------------

목차

학교 _ 박애진
노래하는 숲 _ 은림
노인과 소년 _ 김보영
천국으로 가는 길 _ 김선우
커피 잔을 들고 재채기 _ 김이환
은아의 상자 _ 정보라
뮤즈는 귀를 타고 _ 임태운
장미 정원에서 _ 김지원
소설을 쓰는 사람에 대한…… _ 정희자
샹파이의 광부들 _ 이영도

---------------------------------------------------------------------------------------------------------------

참여 작가

* 박애진 :

「왜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지?」로 제1회 이매진 단편 공모전에서 판타지 부문을 수상했다. 전자책으로 중편소설 『아도니스』와 단편선 『신체의 조합』을 출간했다. 월간 《엄마는 생각쟁이》에 「만 원」을 게재했으며, 작가의 발견 제2권 『누군가를 만났어』에 「선물」외 4편을 수록했으며,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에 「문신」을, 『앱솔루트 바디』에 「집사」를, 『유, 로봇』에 「파라다이스」를 수록했다.

* 은림 :

제1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할머니 나무」로 단편 부문을, 제2회 황금드래곤 문학상에서 「할티노」로 중편 부문을 수상했다. 단편집 『윈드 드리머』에 「샨 데 크레안」을, 『환상서고』에 「Sistory」를 수록한 바 있으며 북토피아에서 전자책 『할티노』를 출간하기도 했다.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에 「할머니 나무」를 수록했다.

1999년부터 silverforest라는 필명으로 MMORPG 『프로젝트 A3』의 시나리오 및 설정을 담당한 바 있으며, 타롯ㆍ트럼프ㆍ룬 카드를 꾸준히 창작ㆍ발표하고 있다. 그 외에도 개인지를 비롯한 각종 동인지, 출판물의 표지 디자인 및 캐릭터 디자인도 하고 있다.

* 김보영 :

2004년 제1회 과학기술 창작문예에서 「촉각의 경험」으로 중편 부문을 수상했다. 2006년 웹진 크로스로드에 「땅 밑에」를 게재했다. 2005년 북토피아에서 전자책 『멀리 가는 이야기』를 출간했고, 2006년 작가의 발견 시리즈 제2권 『누군가를 만났어』에 「종의 기원」과 연작 단편 「미래로 가는 사람들」 4편을, 같은 해 과학소설 전문무크 《Happy SF》 제2호에 「진화신화」를, 『2006 과학기술 창작문예 수상작품집』에 「우수한 유전자」를, 창비 청소년 문학 제5권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에 「마지막 늑대」를 수록했다. 현재 교보문구에서 장편 『7인의 집행관』을 연재 중이며, 네이버 ‘오늘의 문학’에 이 책에도 수록된 「노인과 소년」을 게재했다. 

* 김선우 :

70년대 중반에 태어났지만 마음은 20대에 머물고 있다. 직장에서 업무로 인한 글쓰기에 지쳐 말라죽어가고 있으나 굴복하지 않고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 단편 게시판에 동화 패러디 「호랑이의 항변」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폐선된 웹진 워터가이드의 선장 두 명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거울 창간호에 「Stand By」를 발표하며 시간의 잔상 필진으로 합류했다. 작가보다 유능한 무의식이 꿈을 통해 이야기하는 것들을 실체화하고 싶어한다.

* 김이환 :

장편소설 『에비터젠의 유령』, 『양말 줍는 소년』, 『오후 다섯 시의 외계인』을 출간했다. 『한국 환상 문학 단편선』에 「미소녀 대통령」을 수록했다. 장르문학 포털 사이트 드림워커ㆍ조아라ㆍ문피아ㆍ모기, 환상문학 창작 동호회 딤비 등에서 활동했다. <절망의 구>로 제1회 SBS 멀티문학상을 수상했다. 

* 정보라 :

러시아ㆍ폴란드 문학 전공 대학원생 겸 프리랜서 번역가. 역서로는 『똘레랑스』, 『계피색 가게들』, 『모래시계 요양원』, 『구덩이』, 『창백한 말』이 있으며, 「호(狐)」로 제3회 디지털 작가상 모바일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다.

* 임태운 :

1985년 2월 경기도 일산 출생. 수컷. 2005년 KT&G 상상마당 문학공모전에서 중편소설 「싹쓰러슈 데이」로 동상을 수상했다. 2007년 웹진 크로스로드에 단편소설 「앱솔루트 바디」, 「채널」을 게재했고 같은 해 한국전자출판협회 제2회 디지털 작가상에서 SF 장편소설 『이터널 마일』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박상준의 SF 창작강좌 1기 수강생으로 이루어진 창작모임 ‘절판서에 바치는 장미’에서 활동한다.『앱솔루트 바디』에 표제작 「앱솔루트 바디」를, 『유, 로봇』에 「무기여 잘 가거라」를 수록했으며 전자책 『황제를 암살하는 101번째 방법』을 출간했다.

* 김지원 :

쌍둥이좌, B형. 변덕과 불안정함의 극치라고들 하지만, 게을러서 아무 영향도 받지 못하는 것 같다. 방탕한 대학원생에서 백수였다가 현재는 외국 유학생들에게 화학을 가르치고 있는 불량 시간강사. 시급인생의 슬픔으로 번역도 하고 글도 쓴다. 마감 사수, 스피드 번역, 급한 번역 순식간에 처리해 드립니다: 24시간 대기중. 필명은 정지원. 글의 기본은 로맨스요, 양념은 판타지라고 생각하고 있으나 마이너한 취향을 탈피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어쨌든 글은 읽어서 즐거워야 하고, 그런 글을 쓰고자 한다.

장편소설 『여름의 끝』, 『깊은 밤을 날아서』, 『푸른 바다의 노래』, 『인연』, 『봄바람』 등을 출간했으며 『한국환상문학단편선』에 「카나리아」를 수록했다. 번역자로도 활동하고 있어 『렘브란트의 유산』과 『나폴레옹의 영광』을 번역ㆍ출간했다.

* 정희자 :

온라인에서 소설, 서평, 음악, 노벨 게임 등을 공개하며 활동 중이다. 희자라는 필명으로 웹진 크로스로드에 「지구의 아이들에게」를 게재했고, 『앱솔루트 바디』에 수록했다. 『유, 로봇』에 표제작 「유, 로봇」을 수록했다.

* 이영도 :

1972년에 태어났다. 두 살 때부터 마산에서 자라난 마산 토박이로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3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 1997년 가을 컴퓨터 통신 하이텔에 판타지 장편소설 『드래곤 라자』를 연재했다. 1만 3000여 매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용자들의 폭발적인 부흥의 전기를 마련했다. 1년 후 내놓은 『퓨처워커』는 한층 심도 있는 주제와 새로운 구성으로 전작을 뛰어넘는 작품성을 인증 받았다. 그 후 『폴라리스 랩소디』를 출간하며 완성된 작품 스타일을 보여 주었는데, 이 작품은 기존의 반양장 형태의 서적 외에도 500부 한정으로 고급 양장본으로 제작되어 단번에 다 나갈 정도로 많은 이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 외에 『피를 마시는 새』, 『눈물을 마시는 새』 등의 작품이 있다.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으헝 2009-09-10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파김치 2009-09-1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아...이영도의 단편으로 알게 되었는데, '학교'라는 단편도 실리네요. 거울에서 봤었는데, 굉장한 수작이라 보는 내내 두근거렸어요. 우와, 기대되라//ㅁ///

road 2009-09-10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외쳐라! 2009-09-10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

우왓 2009-09-10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영도님도 좋지만... 김이환 님! 김이환 김이환! 꺄호! 김지원 님의 글도 기대할게요! 모든 작가님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파이 2009-09-1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김이환!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김이환! 이영도! 이영도! 김이환!
헥헥헥헥;;;;

Bahn 2009-09-11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모든 좀비의 주인이 그 손을 들어 서점을 가리키니, 기백만의 좀비들이 현금을 들고 일어나 책을 사더라.

2009-09-12 0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직도 난 곡괭이 한 자루로 드래곤을 잡은 이야기를 믿을수 없음

아니 세계 최강의 개미가 적절한 도구를 들고 고양이한테 덤벼들었다고 해서 개미가 이길수 있을리가

김대기 2009-09-14 0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세계 최강의 개미가 적절한 도구를 들고 적절한 전략을 통해 적절하게 싸우면 고양이에게 이길 수 있습니다.

messiah_0 2009-09-14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영도님!!!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드래곤편 쪽은 책으로 안 나오나요? ;ㅁ;

ekffufkqorak 2009-09-27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오------역시 세계최강은 아니고 아시아 최강!

goldgriffon 2009-12-16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람은 사자도 이기고 악어도 이기고 코끼리도 이기는댑쇼 다 적절한 도구 덕분이죠뭐

ㅇㅇ 2010-08-26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카쉬냅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soo 2011-04-24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영도!

이경진 2011-07-18 0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타자꺼만 따로 모아서 출판해줘!!!!

쿠오오 2011-11-08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이영도!
네크로맨서여 우리 좀비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개구리 2012-05-26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영도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추천 이 책!


김영모의 빵 케이크 쿠키
김영모 지음, 동아일보사

'제과 명장(名匠)이 밝히는 제과제빵의 정석'
제과 업계의 살아있는 전설, 김영모의 제과인생 30년을 결산한 책. 모든 음식이 그렇듯 홈베이킹도 일반 가정에서 뿌리를 내려야 진정한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그의 신념과 평생을 연구하고 개발해온 그의 레시피를 널리 전하고 싶다는 오랜 소망을 이루기 위해 만들어진 책이다. 전체를 크게 빵, 케이크, 쿠키로 나누고, 특별한 날 상차림으로 크리스마스, 어른 생일, 아이 생일, 발렌타인데이를 두어 분위기에 맞는 케이크와 초콜릿 만들기를 담았다.
각 부문 및 과정별 상세하고 친절한 설명으로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제과제빵 분야의 스테디셀러이다.
- 실용MD : 조현정

최고 평점 도서

쉽게 따라하는 오븐엔조이 홈베이킹
미애 외 지음, 시공사

네이버 카페 '오븐엔조이'에서 활동하는 각 부문 최강 블로거 네 여자의 베이킹 노하우를 총망라한 책. 빵·케이크·쿠키 레시피뿐만 아니라 간단하게 만드는 브런치, 특별한 날 준비하는 초콜릿 파트도 마련되어 있다.
평점 : 9.0 / 10.0 (마이리뷰 : 14편)

꼬마마녀의 별난 빵집
곽인아 지음, 정경선 사진, 케이펍(KPub)

Daum 블로거 '꼬마마녀'가 초보자의 눈높이에 맞춰 홈베이킹을 설명한다. 자세한 과정 사진의 친절함, 재밌고 쉬운 과정 설명, 건강재료와 도구 구입처에 대한 정보까지 초보자는 물론이고 누가 봐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다.
평점 : 9.0 / 10.0 (마이리뷰 : 13편)

홈베이킹 백과사전
브레드 가든 지음, 웅진리빙하우스

홈베이킹 전문기업 '브레드가든'에서 14년간 연구한 노하우를 책으로 묶었다. 수많은 클래스를 통해 아마추어와 프로패셔널 베이커 사이에 공히 검증된 브레드가든의 정확하고 친절한 레시피와 노하우를 공개한다.
평점 : 8.0 / 10.0 (마이리뷰 : 8편)

베스트셀러 시나리오 북




똑똑한 여우들의 영양만점 홈베이킹
이지혜 지음


엄마표 시판과자 만들기
내복곰 지음


이양지의 특별한 홈베이킹
이양지 지음

누적 베스트셀러




김영모의 빵 케이크 쿠키
김영모 지음


샌드위치
웅진닷컴 편집부 엮음


빵 쿠키 케이크
정주연 지음

이 책의 결정적 순간

콩지의 착한 베이킹
박현진 지음, 멘토프레스

무엇보다 오븐이 없이도 이처럼 광범위한 베이킹이 가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는 사실에 가장 큰 의미가 있다고 자부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업의 기회가 콩지에게 주어진 것에 대해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며 또한 굉장히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 어떤 일에 그 영광의 첫발을 내딛는다는 것은 누가 봐도 가슴 벅차고 의미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 본문 중에서

추천 vs 추천

정말 간단하네요^^
빵을 좋아해서 만들어 먹고 싶은 맘에 오븐을 위시하여 각종 제빵 관련 된 것들을 사놨는데, 그만 레시피들이 넘 복잡해서 심히 좌절했더랬습니다. 혹시나 하는 맘에 '후다닥 베이킹'을 구입해서 따라해봤는데, 정말 간단해서 빵 만드는 일이 더이상 부담스럽지 않게 되었고, 레시피 자체가 너무 달거나 느끼하지 않아서 우리 입맛에도 맞는거 같습니다. 강추드립니다. - inyoungl 님




계량컵 하나로 후다닥 홈베이킹
김경희 지음
베이커리 입문서
베이커리 입문서로 손색이 없습니다. 외국의 베이커리 잡지를 보며 따라해 보다가 실패도 적잖이 했고, 나름대로의 레시피도 있지만, 새로운 레시피가 가득 담긴 책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계량저울이 필요없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베이커리 레시피 책은 왠지 저울을 사용하여 정확히 계량하지 않으면 안 될것 같은 강박관념도 있었고, 무언가를 만들때마다 주방에 죽~늘어놓고 하는것도 지저분했었는데, 이런 책이 나왔다니 딱 제 스타일입니다. - 뭉게구름 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