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불란서책방 (북페스트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불란서책방의 책을 소개합니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18 May 2026 02:44:20 +0900</lastBuildDate><image><title>북페스트</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752871435114436.png</url><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북페스트</description></image><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인문/예술</category><title>﻿시인이 영화를 본다는 것</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9889</link><pubDate>Sat, 16 May 2026 13: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988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032825&TPaperId=172798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15/50/coveroff/k51203282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시인이 영화를 본다는 것<br>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시적인 영화 에세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영화적인 시집이 될 것이라는 소개 문구가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압축한다. 강정은 1992년 등단 이래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해온 시인이다. 록밴드 '엘리펀트 슬리브'의 보컬이기도 하고, 연극 무대까지 넘나든 이 경계 없는 예술가가 이번엔 영화 에세이를 냈다. 244쪽의 이 책은, 영화를 이해하거나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br>시인이자 음악가인 저자는, 세상의 빛보다 어둠에서 더 선명하게 타오르는 영화들의 초상을 에세이로 써 내려간다. 영화가 남긴 진동과 침묵을 붙잡는 저자에게 영화의 모든 장면은 몸으로 기록된다. 꿈처럼, 혹은 고백처럼. 그에게 영화란 체험에 가깝다.&nbsp;<br>스크린 앞에 앉아 무언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잔상과 진동을 언어로 옮겨 적은 것이 이 책이다. 영화 '비평'도 아니고, 영화 '소개'도 아니다. 시인이 영화를 통과한 흔적, 그 체험의 기록이다. 강정의 글은 영화 앞에서 분석자의 자리가 아니라 목격자의 자리에 선다. 그 차이가 이 책을 여타의 영화 에세이와 다르게 만드는 출발점이다.<br>이 책이 다루는 영화들의 목록을 보면 강정이 어디를 향하는지가 단번에 선명해진다.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을 시작으로, 줄랍스키의 〈포제션〉, 레오 카락스의 〈홀리 모터스〉를 비롯해 유럽과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들 그리고 한국 영화 〈발레리나〉를 거쳐 마침내 〈조커〉에 이르기까지, 그가 선택한 영화들은 모두 인간의 내면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어둠의 이야기들이다.&nbsp;<br>〈포제션〉의 안제이 줄랍스키, 〈홀리 모터스〉의 레오 카락스, 〈거울〉의 타르코프스키. 이들은 모두 불편하고 낯설고 보기 쉽지 않은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다. 강정은 이 어둡고 거친 영화들을 의도적으로 고른다. 그 의도는 단순한 취향의 표명이 아니다.<br>"세상에도,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속에도 '어둠'은 항상 존재한다는 근본 사실을 상기"하며 그 어둠 속에서 인간 존재의 상처, 욕망, 구원, 사랑을 시인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간다.&nbsp;여기서 '어둠'은 단순히 암울하거나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어둠을 먹고 사는 물질적 환영"으로 정의하는 저자에게 '어둠'은 단순한 물리적 암흑을 넘어서 현실이 감추고 있는 것, 진짜 현실을 숨기고 있는 베일이며, 영화는 그 어둠 속에 빛을 비추어 인간의 얼굴을 다시 본다.&nbsp;<br>어둠이 없으면 영화도 없다. 스크린의 빛은 언제나 어둠을 배경으로만 존재한다. 극장의 암전, 필름의 공백,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어둠 — 강정은 이 물리적 사실을 영화 미학의 핵심으로 끌어올린다. 빛을 말하기 위해 어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논리다.<br>책에 수록된 영화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킬러, 조커, 괴물, 혁명가, 정신병자다. 이들은 사회의 정상 테두리 밖에 있거나, 그 테두리 자체의 모순을 폭로한다. 강정이 이 인물들에게 매혹되는 것은,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가장 정면으로, 가장 적나라하게 살아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정상성 바깥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정상성 안에 갇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nbsp;<br>거울 앞에 선 관객<br>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거울'이다. 강정이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에서 길어올린 이 이미지는 책 전체를 지배하는 메타포가 된다.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을 보고 저자는 "거울은 고요한 평면이나 그 안엔 온갖 시간과 사물과 사람의 잔영들로 요란스럽다. '사랑'을 비추면 '증오'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슬픔'을 던지면 '욕망'이 반사되기도 한다"고 기록했다. 저자는 영화 자체를 거울로 본다.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 내면의 가장 어두운 부분과 맞닥뜨리는 것이다.<br>영화를 거울로 보는 시선은, 영화를 단순한 오락이나 예술 감상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락으로서의 영화 앞에서 관객은 편안하게 수용하는 쪽에 선다. 거울로서의 영화 앞에서 관객은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 거울 앞에 서면 나를 보게 된다. 강정에게 영화 보기는 그래서 하나의 자기 대면이다.&nbsp;독자는 어느 순간, 스크린이 아니라 거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nbsp;<br>강정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영화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이 책이 단순한 영화 감상문과 구별되는 가장 핵심적인 지점이다. 영화에 대한 글이지만, 결국 그것은 인간에 대한 글이고, 더 좁혀 말하면 나에 대한 글이다.<br>조커라는 핵심, 그리고 질문<br>이 책의 심장부는 〈조커〉와 〈조커: 폴리 아 되〉를 다룬 두 편의 글이다. 강정은 이 두 편에서 책 전체의 논지를 가장 날카롭게 벼린다.조커는 "사회적 인습 바깥으로 배제되어야 할 존재"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사회적 인습과 규율 및 편견 등을 뒤엎는 예상치 못한 대중적 역린"이다.&nbsp;조커는 '나쁜 놈'이 아니다. 혹은 단순히 나쁜 놈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자, 우리 사회가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이다. 강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관객을 향해 직접 질문을 겨냥한다."거기, 판결의 총신을 겨누며 슬며시 웃거나 화내고 있는 자, 당신 또한 조커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nbsp;<br>이것은 도발이 아니라 진지한 물음이다. 우리가 스크린 위의 조커를 보며 공감하거나 두려워한다면, 그 공감과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외부의 무언가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내부의 무언가를 건드린 반응이 아닌가.<br>일관된 주제를 반복하면서 명확해지는 것은 "영화 자체가 조커"라는 저자의 깨우침이다. 영화는 관객을 유혹하고, 허구로 현실을 뒤바꾸며, 스스로 가면을 쓴다. 영화가 보여주는 환상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 자체를 지배한다.&nbsp;영화가 조커라는 명제는 이 책에서 가장 도발적이고 동시에 가장 설득력 있는 통찰이다. 영화는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흥분시키면서, 동시에 현실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조금씩 재구성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의해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강정은 이 역설을 시인의 언어로 날카롭게 포착한다.더 나아가, 영화와 현실 사이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것은 무대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 스크린 안과 밖의 경계가 흐릿해진 세계에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질문이 이 책의 마지막 울림이다.&nbsp;<br>음악과 자본주의, 이기 팝과 자무시<br>이 책은 순수한 영화 미학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강정이 뮤지션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이 책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펑크록 대부 이기 팝의 삶과 음악을 다룬 짐 자무시 다큐멘터리 〈김미 데인저〉를 보며 자본주의 사회의 절박한 문제들을 새로운 각으로 예리하게 설파하기도 한다.<br>이기 팝은 주류 바깥에서 스스로를 태워온 예술가다. 자무시는 그런 이기 팝의 삶을 카메라로 응시한 감독이다. 강정이 이 교차점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읽는 방식은, 영화와 음악과 사회가 하나의 텍스트 안에서 얽히는 강정 특유의 방법론을 보여준다. 어느 챕터에서도 강정의 글은 영화 이야기로 시작해 그보다 훨씬 넓은 곳에서 끝난다.<br>'죽지 않는 시인'의 의미<br>책 제목 『죽지 않는 시인의 영화』는 여러 겹으로 읽힌다. 영화 속 인물들은 죽는다. 조커도, 〈포제션〉의 인물들도, 〈발레리나〉의 킬러도. 그러나 그들이 필름 위에 새겨진 이미지는 죽지 않는다. 상영이 끝나도, 극장 불이 켜져도, 그 잔상은 관객의 몸 어딘가에 남아 계속 진동한다.<br>"영화는 망상의 거울이고, 그 거울은 결국 나 자신이다"라고 정의하는 필자는 스크린 위 죽지 않는 영혼들의 이야기 속에서 '죽지 않는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책 곳곳에 투시하고 있다. khan죽지 않는 시인은 강정 자신이기도 하다. 글이 살아 있는 한, 시인도 살아 있다. 강정은 영화를 씀으로써 자신을 쓴다. 이 책은 영화 에세이의 형식을 빌린 시인의 자화상이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 존재의 어둠을 들여다보고, 그 어둠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언어로 붙잡으려는 한 시인의 치열한 작업이다.<br>&nbsp;『죽지 않는 시인의 영화』에는 영화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잔광과 여운, 그 흔적이 한 편의 시처럼 놓여있다. 영화를 사랑하되 그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싶은 독자, 시인의 언어로 영화를 읽는 경험을 원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오래 남는 책이 될 것이다. 읽고 나면 영화관 불이 꺼지는 순간, 이제 조금 다른 무언가를 기다리게 될지도 모른다.<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15/50/cover150/k5120328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155047</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인문/예술</category><title>﻿시네필의 일기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9845</link><pubDate>Sat, 16 May 2026 13: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984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22039045&TPaperId=1727984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45/40/coveroff/k522039045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시네필의 일기장<br>봉준호 감독은 이 책을 추천하며 '시네필의 일기장'이라고 불렀다. 이 표현이 책을 정확하게 해석해준다. 한상훈은 30여 년간 극장을 제집 드나들듯 다닌 인물이다. 영화계 종사자도 아니고, 비평으로 밥을 먹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영화가 좋아서, 극장이 없으면 살 수 없어서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에게 극장은 직장이 아니라 집이었다. 살아가는 이유였고, 버텨내는 방식이었다. 이 책은 그 30년의 흔적이다.&nbsp;<br>책은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1부 「극장전」, 2부 「미치광이 같은 사랑」, 3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4부 「어느 가족」이 그것이다. 각 파트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화와 저자의 삶이 맞닿는 지점을 기록한다. 학술적 분석도 아니고, 세련된 영화 에세이도 아니다. 저자는 이를 일기 같은 문체로 풀어내며 독자에게 "왜 우리는 영화를 보는가, 영화의 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nbsp;<br>1부 「극장전」 극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룬다.<br>1부는 말 그대로 극장을 무대로 한 사건과 감정의 기록이다. 제목들이 이미 흥미롭다. '어느 걸작주의자의 강박증', '눈물이 주룩주룩 나, 스코티 그리고 매들린', '영화광은 어떻게 뱀파이어가 되는가'. 이 소제목들에서 이미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걸작에 집착하고, 히치콕의 〈현기증〉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영화에 피를 빨린다.<br>1부에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감독들이 대거 등장한다. 홍상수, 나루세 미키오, 존 포드. 특히 인상적인 것은 홍상수 감독과의 우연한 조우, 류이치 사카모토를 찾아서, 페드로 코스타 감독의 조언, 박찬욱 감독과의 인연 같은 챕터들이다. 세계적인 감독들과 우연히, 혹은 필연처럼 마주치는 이 일화들은 저자가 극장을 얼마나 집요하게 다녔는지를 방증한다. 극장에 항상 있었으니까 그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이 이 에피소드들의 진짜 의미다.&nbsp;<br>'할머니와 〈미나리〉' 챕터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를 가족과 함께 보는 경험이 어떻게 전혀 다른 감각을 만들어내는지를, 저자 특유의 솔직한 문체로 담아낸다. 이 1부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강박'에 가깝다. 좋은 영화를 봐야 한다는 강박, 좋아하는 감독을 한 번이라도 봐야 한다는 강박. 그가 남긴 글에는 멋진 미사여구가 없다. 때로는 너무 솔직하고, 때로는 벅차게 무너진다. 그 솔직함이 오히려 이 파트를 읽히게 만든다.<br>2부 「미치광이 같은 사랑」 영화와 자신을 동일시하다<br>2부는 저자가 가장 깊이 사랑하는 영화들에 대한 글을 모았다. 특히 저자가 자신과 동일시하다시피 하는 히치콕의 〈현기증〉과 주인공 '스코티', 그리고 저자의 인생 영화인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저자의 삶으로 분석된다.&nbsp;<br>〈현기증〉을 다룬 챕터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영원히 헤매다'는 이 책에서 가장 강렬한 글 중 하나다. 저자는 히치콕의 주인공 스코티가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그 환상을 쫓는 이야기를 자신의 삶과 겹쳐 읽는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 스크린 속 인물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 이것이 저자에게 영화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핵심 장면이다.<br>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다룬 '간절한 기도'는 또 다른 결이다. 핵전쟁의 공포 앞에서 한 남자가 신과 거래를 하는 이 영화를, 저자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자신의 실존적 절망과 연결 짓는다. 영화가 어떻게 삶의 어떤 감각을 대신 표현해주는지, 그 체험이 얼마나 강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글이다.나루세 미키오를 다룬 '흐르는 강물처럼', 스필버그의 〈파벨만스〉를 다룬 '진실과 마주하는 법', 후侯孝賢(허우 샤오시엔)의 〈안녕, 용문객잔〉을 다룬 '극장의 유령', 그리고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기생충〉까지를 아우르는 '내 기억 속의 영화 음악들'까지 이어지는 2부는, 저자의 시네필리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보여준다. 일본 고전 영화의 정서, 타이완 뉴웨이브의 공간감, 러시아 영화의 영성, 헐리우드의 자기고백 — 이 모든 것을 저자는 자신의 삶으로 흡수해 다시 언어로 내놓는다.&nbsp;<br>3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떠난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br>3부는 추모의 글들이다. 근래 세상을 떠난 배우들과 감독을 위한 추모의 글로 채웠다. 알랭 들롱, 지나 롤랜즈 등 기라성 같은 배우와 오시마 나기사, 데이빗 린치 같은 독보적인 감독들을 위한 존경과 감사를 담았다.&nbsp;<br>오시마 나기사를 추모하는 '영원히 젊은 영화를 만든 거장', 장 폴 벨몽도를 기리는 '내 기억 속에 〈네 멋대로 해라〉로 박제된 배우',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바치는 '포에버 시네마 천국', 존 카사베츠의 〈오프닝 나이트〉와 함께 지나 롤랜즈를 추모하는 글, 알랭 들롱을 향한 '그는 시네마였다', 그리고 데이빗 린치를 추모하는 '〈스트레이트 스토리〉, 나 그리고 어머니'까지, 추모의 대상은 다양하지만 글의 온도는 한결같다.&nbsp;<br>이 챕터들에서 주목할 것은 추모와 더불어 저자의 삶을 꺼낸다는 점이다. 데이빗 린치를 추모하는 글에 어머니가 등장하고, 장 폴 벨몽도에 대한 글에 저자 자신의 젊은 시절이 겹쳐진다. 추모는 결국 기억이고, 기억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다. 이 파트를 통해 저자는 영화와 삶이 얼마나 촘촘하게 얽혀 있는지를, 간접적이지만 가장 감각적으로 보여준다.<br>4부 「어느 가족」 책의 심장가장 밀도 있고 저자의 진솔함이 묻어나는 4부는, 영화를 주제로 삼은 글 중에서 독보적이라 할 만큼 독자의 심금을 울릴 만한 글을 모았다. 이 파트가 이 책의 진짜 핵심이다.&nbsp;영화와 저자의 삶이 가족사 안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평생 소원했던 아버지와의 첫 화해,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순간마저 영화로 기록되는 놀라운 광경, 그리운 어머니와의 애틋한 사연도 영화와 함께 펼쳐진다.&nbsp;<br>'아버지와의 첫 포옹' — 이 챕터 제목만으로도 이미 무언가가 밀려온다. 평생 어색하고 먼 관계였던 아버지와,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처음으로 무언가 닿는 순간을 저자는 담담하게 기록한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어머니의 16mm 필름'은 떠나보냄의 슬픔을 필름과 이미지의 언어로 풀어낸다.영화 〈벌새〉를 통해 청년기를 다시 바라본 이야기도 실렸다. '02호에 살았던 내가 1002호에 살았던 은희에게'라는 긴 제목의 이 챕터에서, 저자는 〈벌새〉의 주인공 은희를 통해 자신의 젊은 시절을 소환한다. 영화가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하게 해주는 그 경험 — 이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감각이다.&nbsp;<br>4부에서 이 책은 단순한 영화 에세이를 넘어선다. 영화가 어떻게 한 인간의 가장 내밀한 삶 속으로 들어와 상처를 보여주고, 화해를 이끌고, 이별을 견디게 해주는지를 — 이론이 아니라 실제 경험으로 — 써내려간다.<br>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이 책은 '시네필의 일기장'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 적잖게 담겨 있다. 그것이 이 책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강점이다. 영화에 대한 보편적인 통찰을 기대한다면 다소 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이 영화와 맺어온 30년의 관계를, 이렇게 날것 그대로 담아낸 책은 흔치 않다.&nbsp;<br>그는 스크린 속 땀과 고통을 자신의 삶에 포개어 읽었고, 그렇게 체화된 고통과 숨결은 그의 문장 속에 차분히 각인되어 있다. "영화가 삶을 바꿨다"는 익숙한 말보다, "삶이 끝까지 영화를 놓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더 어울리는 사람.&nbsp;<br>시네필이라면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불편할 만큼 솔직한 책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정도의 독자라면, 한 인간의 사랑이 이렇게까지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책이다. 어느 쪽이든, 읽고 나면 극장에 가고 싶어진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 역할을 다한다.<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45/40/cover150/k522039045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454044</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인문/예술</category><title>영화를 존재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9837</link><pubDate>Sat, 16 May 2026 13: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983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030720&TPaperId=1727983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958/40/coveroff/k962030720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영화라는 '존재'<br>영화란 무엇인가? 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은 사실 철학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까다로운 물음 중 하나다. 우리는 영화를 본다. 그러나 영화를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영화가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 사람은 드물다. 김성태의 『영화 — 존재의 이해를 위하여』는 바로 그 드문 질문 앞에 정면으로 선다. 개별 영화 작품의 분석이나 특정 감독론이 아니라, 영화라는 표현 형식 자체를 존재론적으로 파고드는 이 책은 한국어로 쓰인 영화 이론서 중 보기 드물게 영화의 존재론적 문제에 깊이 침잠하는 저작이다.&nbsp;<br>저자 김성태는 프랑스 파리 3대학 영화학과 박사로, 12년간 리용 2대학과 파리 3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자크 오몽 교수의 지도 아래 장-뤽 고다르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씨네21, 필름2.0 등에 영화 비평을 기고하고, 중앙대·한예종·서강대 등에서 후학을 가르쳤으며, 〈서울의 봄〉 원안 작업 등 창작 현장에도 직접 발을 담근 실천적 영화학자다. 이 책의 무게감은 그 두꺼운 학문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서양 이론을 소개하고 나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고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에 대한 독자적인 사유를 전개한다.<br>이 책은 크게 네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1부 「'영화'라는 존재 I — 다른 이미지」는 영화의 탄생과 특수성을, 2부 「존재의 진화 — 첨가되는 개념들」은 영화가 포착하는 세계의 다양한 양태를, 3부 「'영화'라는 존재 II — 영화들을 생산하는 기계」는 관객과 영화의 관계를, 4부 「'영화'와 현실 — 현실을 다루는 두 가지 방법」은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다룬다.&nbsp;<br>책의 출발점은 명확하다. 1895년 탄생한 '영화'는 기계도 상품도 이야기도 아니라 '움직이는 이미지'였다는 것이다. 영화들은 모두 '움직이는 이미지'를 만드는 '영화(시네마)'라는 형식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품이다. 저자는 이로부터 시작해, 영화의 고유한 표현 양식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세계를 구성하고 관객과 관계 맺는지를 단계적으로 해명해 나간다.&nbsp;<br>논지의 핵심은 하나다. 저자 김성태는 영화를 "움직이는 철학"으로 간주하며, 영화를 통해 베르그송의 지속, 들뢰즈의 시간, 라캉의 주체 등을 관통한다. 이것은 철학 개념을 영화에 단순히 '적용'하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라는 매체가 철학이 구체적 형상으로 실험되고 재현되는 장임을 밝히는 일이다. 철학과 영화가 서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하나의 사유 방식이라는 주장이다.&nbsp;<br>이미지의 존재론: 보이는 것과 있는 것 사이<br>1부의 논의는 영화 이미지의 특수성에서 출발한다. 1부에서 김성태는 영화가 현실을 모사한다기보다 다르게 재현하고, 다르게 보여주는 이미지라는 전제를 세운다. 특히 '움직임과 근대'라는 장에서 영화가 이미지와 움직임을 통해 근대를 구현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영화는 근대 시공간의 감각과 속도를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재배치하고 재조립하는 시간-운동 기계로 해석된다.&nbsp;<br>이는 단순한 기술사나 미디어론이 아니다. 영화의 탄생이 왜 19세기 후반이었는가, 왜 그 시기 인류는 운동하는 이미지를 포착하고자 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저자는 사진과 영화의 차이, 회화와 영화의 차이를 단순한 기술적 차이로 환원하지 않고,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로 읽어낸다. 영화는 움직임을 담은 것이 아니라, 움직임 자체가 되고자 했다. 이 미세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의 씨앗이다.<br>영화의 네 가지 얼굴: 세계를 포착하는 방식들<br>2부에서 저자는 영화가 세계를 보여주는 방식을 네 가지로 나누어 분석한다.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리얼리즘 전통의 카메라 시선), 조작된 상황을 보여주는 영화(서사적 개입과 연출의 정치성), 편집을 보여주는 영화(몽타주를 통한 인식 구조의 생성),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시간성과 이야기성의 결합)가 그것이다.<br>이 구분이 의미 있는 것은, 단순히 장르나 스타일의 차이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영화가 조망하는 측면에 따라 세계의 양태 자체가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다. 같은 거리, 같은 사람, 같은 사건도 카메라가 어디에 서서, 어떤 리듬으로, 어떤 편집의 논리로 포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로 드러난다. 김성태는 영화가 단순한 스토리텔링 장치가 아니라, 세계를 감각하고 구성하는 복합적인 지각 기계라는 존재임을 강조한다.&nbsp;<br>이 대목에서 책은 특히 영화 문법의 존재론적 의미를 깊이 파고든다. 몽타주와 롱테이크, 데꾸빠쥬, 플랑-세껑스 같은 개념들이 단순한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인식의 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저자 김성태는 영화가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존재의 의미가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관객의 시선을 조직하고 현실을 분절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세계의 존재 조건 자체를 바꾸는 기술적-미학적 개입으로 읽힌다. 에이젠슈타인의 충돌 몽타주와 바쟁의 롱테이크 미학이 단순히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세계와 현실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론적 입장이라는 독해는 설득력이 있다.&nbsp;<br>관객과 영화: 관계적 존재로서의 영화<br>3부는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다. 여기서 저자는 영화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관객과의 관계 속에서만 실재한다는 명제를 전개한다. 영화는 보는 이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의미는 관객과의 관계 안에서 생성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영화가 단지 '표현된 존재'가 아닌, '관계적 존재'로 이해되어야 함을 시사한다.&nbsp;<br>'영화관과 관객', '영화적 일루전', '영화적 상태', '영화적 공간과 최면' 등의 장은 영화 수용의 심리적·지각적 구조를 분석한다. 특히 '영화적 공간과 최면'에서는 영화가 감각적 설계와 편집을 통해 심리적·지각적 교란 상태를 어떻게 유도하는지를 분석한다. 어두운 극장, 스크린의 빛, 사운드의 포위, 편집의 리듬 — 이 모든 장치가 하나의 유사-최면 상태를 만들어내며, 관객은 그 속에서 영화적 현실을 실재처럼 경험하게 된다. 저자는 이 과정이 단순한 심리적 반응이 아니라 존재론적 변환임을 주장한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잠시 다른 존재 방식을 경험하는 일이다.&nbsp;<br>라캉의 주체 이론이 이 지점에서 개입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영화는 시선을 조직하고 주체의 위치를 구성한다. 카메라의 눈과 관객의 눈이 일치하는 순간, 관객은 영화 속 세계의 한 주체가 된다. 이 경험이 단순한 허구와 몰입을 넘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감각 자체를 잠시 재구성한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br>현실과 영화: 두 가지 전략의 대결<br>4부는 영화와 현실의 관계라는 가장 고전적인 논쟁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김성태는 "현실"이란 단일한 것이 아니며, 영화는 이를 여러 층위로 분할하고 새롭게 조직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전략과, 편집과 몽타주를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려는 전략이 영화사에서 어떻게 경합해 왔는지를 추적한다.&nbsp;<br>바쟁에게 영화가 '현실을 보존하는 기술'이라면, 김성태에게 영화는 "현실을 낯설게 만들고, 재구성하는 사유의 매체"가 된다. 이 대립은 리얼리즘 대 형식주의의 오래된 논쟁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층위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이미지는 현실을 담을 수 있는가, 아니면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현실을 변형하는가. 이 질문들은 영화론의 범주를 넘어 인식론, 나아가 존재론의 영역으로 진입한다.&nbsp;<br>개정판에서 새롭게 추가된 마지막 장 '몽타주 이후'는 이 모든 논의의 귀결점이다. 들뢰즈의 시간-이미지론을 떠올리게 하며, 영화는 재현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구성 장치라는 점에서 이 책의 사유는 다시 정점에 도달한다. 몽타주 이후의 영화는 어디로 가는가. 디지털 이미지, 스트리밍, 가상현실의 시대에도 '영화적인 것'은 여전히 유효한가. 이 질문에 저자는 직접적인 답을 내놓기보다, 독자 스스로 사유하게 만드는 열린 결말을 선택한다. 그 열린 공간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nbsp;<br>베르그송의 지속, 들뢰즈의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 라캉의 주체론, 바쟁의 리얼리즘 이론 등 20세기 영화철학의 핵심 개념들이 빠른 호흡으로 등장한다. 영화를 진지하게 사유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하나의 지적 자극이 될 것이다.<br>초판 절판 이후 2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영화에 관한 질문과 사유를 다시 제기하는 이 책은, 영화라는 이미지-기술의 집합체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 어떻게 관객과 관계 맺는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2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개정판이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영화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기술이 아무리 바뀌어도 낡지 않는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극장에서 OTT로 변해도, 이미지가 움직인다는 사실, 그것이 누군가의 시선과 만난다는 사실, 그 만남이 현실에 대한 감각을 흔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nbsp;<br>영화를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 이해하고 싶은 이들, 영화가 왜 우리에게 이렇게 강렬한 경험인지를 철학적으로 묻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안내자가 된다. 영화학, 철학, 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 읽고 끝낼 책이 아니다. 책 자체가 하나의 몽타주처럼 — 처음 볼 때와 두 번째 볼 때 전혀 다른 것이 보이는 — 여러 번 다시 읽힐 텍스트다.<br>영화를 보는 행위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그것은 잠시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존재 방식을 경험하는 일이다. 김성태의 이 책은 우리가 왜 어두운 방에 앉아 빛의 움직임을 응시하는지, 그 오래된 물음 앞에 다시 서게 만든다.<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958/40/cover150/k96203072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9584001</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인문/예술</category><title>영화의 ‘존재론’과 ‘역사적 기원’의 복원-영화의 역사-영화, 존재의 이해를 위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7494</link><pubDate>Fri, 15 May 2026 04: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749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62030720&TPaperId=172774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958/40/coveroff/k962030720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937532&TPaperId=1727749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56/93/coveroff/k562937532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김성태 저자의 『영화의 역사』는 단순한 연대기적 나열을 넘어, 영화라는 매체가 어떻게 인간의 사유와 기술, 그리고 예술적 형식을 변화시켜 왔는지를 깊이 있게 탐구한 역작이다. 이 책은 영화의 탄생부터 성장까지 그 방대한 흐름을 한국적 시각과 보편적 미학의 균형 잡힌 시선으로 담아내고 있다.<br>​&nbsp;빛과 그림자의 연대기<br>1. 영화, 기술과 예술의 필연적 만남<br>김성태는 영화의 역사를 서술함에 있어 가장 먼저 '기술적 토대'에 주목한다. 그는 영화가 다른 예술 장르와 차별화되는 지점이 바로 과학 기술의 산물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시네마토그래프를 통해 '열차의 도착'을 상영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인류가 시간을 박제하고 복제할 수 있게 된 혁명적 사건이었다고 평가한다.<br>저자는 에디슨의 키네토스코프와 뤼미에르의 시네마토그래프를 비교하며, 개인이 들여다보는 방식에서 공동체가 함께 경험하는 '극장적 체험'으로의 전환이 영화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분기점이었는지를 상세히 분석한다. 이는 영화가 초기부터 대중 예술로서의 운명을 타고났음을 시사한다.<br>2. 형식을 향한 탐구: 무성영화의 황금기<br>책의 중반부에서 김성태는 영화가 단순한 기록의 수단에서 '언어'로 진화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조르주 멜리에스의 마술적 상상력과 에드윈 S. 포터의 편집 기술, 그리고 이를 집대성한 D.W. 그리피스의 서사 구조는 영화가 어떻게 고유의 문법을 갖게 되었는지 보여준다.<br>특히 저자는 독일 표현주의와 러시아 몽타주 이론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nbsp;독일 표현주의는 인간의 내면적 공포와 불안을 왜곡된 세트와 조명을 통해 시각화한 과정을 설명한다. 러시아 몽타주는 에이젠슈타인 등이 확립한 '충돌의 미학'이 어떻게 관객의 이성과 감성을 자극하는 정치적 도구가 될 수 있었는지를 깊이 있게 다룬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독자는 영화가 단순히 이야기를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쇼트와 쇼트의 결합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지적 장치'임을 깨닫게 된다.<br>3. 리얼리즘과 현대 영화의 태동<br>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영화사 서술은 이 책의 백미다. 김성태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과 프랑스 누벨바그를 통해 영화가 어떻게 '스튜디오의 인공성'을 벗어나 '거리의 진실'로 나아갔는지를 서술한다.&nbsp;비전문 배우의 기용, 야외 촬영, 느슨한 내러티브 구조 등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가 단순한 스타일의 변화가 아니라, 전쟁의 참상을 겪은 인류가 현실을 직시하려는 윤리적 태도에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또한, 장 뤽 고다르와 프랑수아 트뤼포로 대표되는 누벨바그 운동이 어떻게 현대 영화의 문법을 해체하고 재구성했는지에 대해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br>4. 할리우드의 팽창과 한국 영화의 궤적<br>책은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제패한 할리우드 시스템의 명암도 놓치지 않는다. 장르 영화의 정형화와 스타 시스템이 가져온 대중적 영향력을 분석하는 한편, 그 안에서도 작가주의적 색채를 잃지 않았던 거장들의 분투를 기록한다.<br>김성태는 디지털 기술의 도입이 영화의 본질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필름이 사라진 자리에 0과 1의 데이터가 들어차고, 극장 대신 OTT 플랫폼이 대세가 된 시대에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다시 끄집어낸다.&nbsp;그는 기술이 변해도 인간의 삶을 투영하고 타인과 공감하고자 하는 영화의 본질적인 힘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가상현실(VR)과 인공지능(AI)이 영화 제작에 개입하는 오늘날에도,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라는 인문학적 가치에 있음을 역설한다.<br>우리 모두를 위한 시네마테크<br>김성태의 『영화의 역사』는 전문가만을 위한 학술서가 아니라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이 탐닉해 온 영상 언어의 뿌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친절한 지도와 같다.&nbsp;이 책은 인류가 쌓아 올린 빛과 소리의 유산을 향유하는 일임을 일깨워 준다. 방대한 사료와 깊이 있는 해석이 어우러진 이 저서는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필독서로, 영화 애호가들에게는 곁에 두고 오래도록 읽을 동반자로 손색이 없다.<br>"영화의 역사는 곧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의 역사이다."저자의 이 메시지는 책장을 덮은 후에도 오랫동안 독자의 마음속에 여운으로 남는다.<br>  <br><br><br><br><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956/93/cover150/k56293753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9569348</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인문/예술</category><title>할리우드 배우들부터 연기 초보자까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7490</link><pubDate>Fri, 15 May 2026 04: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749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62930037&TPaperId=1727749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3928/5/coveroff/k262930037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할리우드 배우들부터 연기 초보자까지, 수 세대를 거쳐 배우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은 연기의 고전.스타니스라브스키의 '시스템'을 미국에 뿌리내린 메소드 연기술의 산파, 리처드 볼레스라브스키의 가르침.<br>연기란 무엇인가 — 90년을 건너온 질문1933년 처음 출간된 리처드 볼레스라브스키의 『Acting: The First Six Lessons』는 거의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전 세계 연기 학교와 배우 지망생들의 필독서로 읽힌다. 연기에 관한 책으로는 스타니스라브스키의 저서와 함께 반드시 읽어야 할 고전 중의 고전으로 꼽힌다.&nbsp;<br>이 책의 구성은 독특하다. 저자 볼레스라브스키가 한 여배우 지망생을 가르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여섯 번의 수업 — 대화체로 쓰인 이 책은 딱딱한 이론서가 아니라 마치 실제 연기 수업 현장에 앉아 있는 것 같은 생생함을 전달한다. 독자는 어느 순간 자신이 그 수업을 듣고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br>그러나 이 책이 배우 지망생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볼레스라브스키 자신이 명확히 말하듯 — 이 책은 "연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보다는 그저 연기를 하길 바라는" 모든 이를 위한 책이다. 연기를 사랑하고, 배우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6개의 강의는 무대 위의 배우만이 아니라 삶이라는 무대 위에 선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br>The Six Lessons<br>여섯 번의 수업 — 집중에서 리듬까지<br>1st Lesson집중Concentration<br>2nd Lesson정서 기억Memory of Emotion<br>3rd Lesson극적 행동Dramatic Action<br>4th Lesson성격 구축Characterization<br>5th Lesson관찰Observation<br>6th Lesson리듬Rhythm<br><br>첫 번째 수업 〈집중〉은 연기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다. 무대 위에서, 카메라 앞에서, 완전히 현재에 존재한다는 것. 주의를 흩뜨리는 모든 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오직 지금 이 순간 이 상황에 몰입하는 능력 — 집중은 나머지 다섯 수업 모두의 전제 조건이다.<br>두 번째 수업 〈정서 기억〉은 메소드 연기의 핵심 개념이다. 배우가 무대에서 느끼는 감정은 꾸며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경험한 감정의 기억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 이것이 스타니스라브스키 시스템의 정수이자, 이후 리 스트라스버그를 거쳐 더스틴 호프만, 알 파치노, 메릴 스트립 같은 배우들에게 이어진 메소드 연기의 핵심이다.<br>세 번째 〈극적 행동〉은 배우가 무대에서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수업이다. 감정이 아니라 행동이 연기의 단위라는 것, 모든 장면에는 인물이 원하는 것과 그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는 것. 네 번째 〈성격 구축〉에서는 자신과 다른 인물을 어떻게 창조하는가를, 다섯 번째 〈관찰〉에서는 일상에서 인물의 재료를 어떻게 발굴하는가를 다룬다. 마지막 〈리듬〉은 연기와 삶 전체를 관통하는 보이지 않는 박자에 대한 이야기다.<br>✦ ✦ ✦메소드 연기의 계보 — 스타니스라브스키에서 할리우드까지리처드 볼레스라브스키는 스타니스라브스키의 제자이자 조수였다.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 배우로서 그 유명한 '시스템'을 직접 체득했고,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이를 전파했다. 볼레스라브스키가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할리우드 메소드 연기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br>그는 1923년 뉴욕에 '아메리칸 래버러토리 극장(American Laboratory Theatre)'을 설립했고, 이 극장에서 후일 그룹 씨어터(Group Theatre)의 핵심 멤버들이 배출되었다. 그룹 씨어터는 이후 리 스트라스버그의 액터스 스튜디오로 이어졌고, 액터스 스튜디오는 말론 브란도·알 파치노·더스틴 호프만·로버트 드 니로·메릴 스트립이라는 걸출한 배우들을 길러낸다. 볼레스라브스키의 이 얇은 책 한 권이 20세기 연기 예술의 지형 전체를 바꾼 셈이다.<br>그리고 이 책이 탁월한 이유는 이론의 압축에만 있지 않다. 볼레스라브스키는 연기를 삶과 분리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 "예술을 위한 삶을 살라. 삶을 위한 예술을 살지 말고." 여섯 수업은 단순히 무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살고 더 깊이 느끼고 더 깊이 관찰하는 인간이 되는 방법을 가르친다.<br>리처드 볼레스라브스키Richard Boleslavsky, 1889~1937폴란드 태생으로 러시아 제국에서 성장했다. 모스크바 예술 극장에서 스타니스라브스키에게 사사하며 그의 '시스템'을 체득했다. 이후 미국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에서 연기 교사, 연극·영화 연출가로 활동하며 스타니스라브스키 시스템을 영미권에 최초로 본격 전파했다. 1933년 출간된 『Acting: The First Six Lessons』는 그의 대표작이자 연기 교육의 고전으로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읽히고 있다.<br>이런 분께 강력 추천합니다-연기를 처음 배우는 모든 배우 지망생/메소드 연기의 뿌리가 궁금한 분-연극·영화학과 학생 및 관계자-삶을 예술적으로 살고 싶은 모든 이-집중·관찰·리듬에 대해 생각하는 분<br>배우를 위한 책이 아닌, 삶을 위한 책『연기 6강』을 읽고 나면 이상하게 주위를 더 자세히 보게 된다. 지하철 맞은편 사람의 표정, 카페에서 들리는 대화의 리듬, 어제 나를 기쁘게 했던 감정의 질감 — 그것들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볼레스라브스키가 가르친 집중, 정서 기억, 극적 행동, 성격 구축, 관찰, 리듬은 무대 위의 배우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무대를 더 깊이 살고 싶은 모든 이에게 유효하다.<br>190쪽이라는 간결한 분량 속에서 이 책은 거의 한 세기에 걸친 연기 교육의 정수를 전한다. 스타니스라브스키에서 볼레스라브스키로, 볼레스라브스키에서 그룹 씨어터로, 그룹 씨어터에서 액터스 스튜디오로 이어진 위대한 계보의 출발점. 불란서책방이 이 고전을 한국에 소개한 것은 배우를 꿈꾸는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자, 연기와 삶의 교차점에 관심 있는 모든 독자에게 드리는 선물이다.<br>90년을 건너온 연기의 고전, 드디어 한국어로메소드 연기 계보의 출발점. 배우 지망생부터 삶을 깊이 살고 싶은 모든 이에게 추천.<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3928/5/cover150/k26293003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39280526</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저자, 출판권, 편집권 그리고 대주주_프랑스 출판계 이슈</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7487</link><pubDate>Fri, 15 May 2026 04: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7487</guid><description><![CDATA[Rentrée littéraire.<br>프랑스 출판계의 가장 활기찬 시기를 이르는 말. 매년 8월 말부터 10월 말 사이에 수백 권의 문학 신간이 쏟아져 나온다. 주요 문학상이 발표되는 11월 초까지 이어진다. 공쿠르 르노도 메디치 페미나 등.&nbsp;<br>작년 8월, 시즌을 시작하면서 "자기 연민에 빠진 셀카를 조심하라!"는 말을 남겼던 그라세 출판사 ceo 올리비에 노라가 모기업인 아셰트 그룹의 또 모그룹인 라가르데르의 뱅상 볼로레에 의해 최근에 해임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 동네에서는 거의 '지진'이라는 표현도 쓰고 있다. 저간의 복잡한 사정을 내가 다 이해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꽤나 정치적 입장(세계관)에 따라 갈리고 있는 것을 보면 이는 분명 이념적 문제일 듯하다.<br>작가와 출판인들의 말은 이렇다.<br>"오랫동안 산업 및 문화 활동을 중심으로 조직되어 온 아셰트와 그라세가 속한 그룹은 이제 이념적 성향이 공개적인 논의에서 명확히 드러나는 미디어 매체, 출판사, 플랫폼의 응집력 있는 전체로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의도적인 변화는 노동법이나 저작권법에 반영되지 않고 있습니다.<br>결과적으로 저자들은 자신들의 출판권과 작품이 자신들이 반대하는 편집 방침을 가진 주주의 통제하에 놓이게 됩니다. 직원들은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는 정치적 담론의 확산에 참여하게 되고, 출판사들은 자신들이 공감하지 않는 의미를 담은 작품들을 출간하게 됩니다. 직원들은 다원주의가 사라지고 단일 노선이 지배하는, 근본적으로 변화된 환경에서 일하게 됩니다.민주주의는 개인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선택하지 않은 대의를 위해 복무하도록 강요받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br>서점 직원, 홍보 전문가, 심지어 팀 전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케팅 활동에 휘말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프랑스 법은 이들을 위한 아무런 대책도 마련해 놓지 않았습니다. 그저 받아들이거나 떠나라는 선택지만 있을 뿐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수년간 쌓아온 근속 연수, 권리, 그리고 때로는 수십 년에 걸쳐 구축해 온 안정적인 직장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남는다는 것은 일종의 도덕적 부조화를 감수하는 것이며, 때로는 병가, 탈진, 그리고 조용한 의욕 상실로 이미 드러나는 실제적인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br>그라세 출판사는 우리의 집이었고, 특별한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는 의견 차이가 거의 없는 작가들이 평화롭게 함께 일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 오늘날 우리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 바로 문화와 미디어 전반에 걸쳐 권위주의를 강요하려는 이념 전쟁의 인질이 되기를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라세 출판사의 작가이거나, 그라세에서 책을 출간했거나, 그라세에서 출간 ​​예정인 책이 있지만, 다음 책은 그라세에서 출간하지 않을 것입니다"<br><br>올리비에 노라를 해임한 사람 벵상 볼로레. 이 사람의 말은 이렇다.<br>"이 분쟁은 메종 그라세의 매우 실망스러운 경제적 성과를 배경으로 발생했다. 2024년 1,650만 유로였던 매출액은 2025년 1,200만 유로로 감소했으며, 2024년 120만 유로였던 영업이익은 절반으로 줄어 2025년에는 60만 유로에 그쳤다. 이와 동시에 올리비에 노라(Olivier Nora)의 연봉은 83만 유로에서 101만 7천 유로로 인상되었는데, 아셰트(Hachette)가 지급한 이 보수의 절반만이 그라세 측에 청구되었다.<br>결과적으로 그라세의 겉보기 비용이 개선되었으며, 이에 따라 발표된 실적 또한 실제보다 부풀려지는 효과를 낳았다.하지만 그라세(Grasset)를 이끌었던 올리비에 노라의 사임은 엄청난 언론의 관심과 파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를 "지진" 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수백만 프랑스 국민의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심각한데, 어떻게 이 사건이 이토록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Grasset은 계속 운영될 것이며, 떠나는 사람들은 새로운 작가들이 출판되고, 홍보되고, 인정받고,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br>이는 단지 소수의 이기적인 집단, 즉 스스로를 모든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는 집단, 서로를 포섭하고 지지하며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집단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아셰트 경영진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경영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두려워하지 맙시다! 그라세는 계속될 것이며, 떠나는 사람들은 새로운 작가들이 출판되고, 홍보되고, 인정받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저는 가족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문학을 깊이 사랑해 왔으며, 더 많은 작가들이 더 넓은 독자층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 데 헌신하고 있습니다. 제 "이념 "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저는 기독교 민주당원이며, 아셰트의 경영진은 출판을 원하는 모든 작가들의 작품을 계속해서 출판할 것입니다."<br>한 마디로 영업이익은 줄고 ceo 연봉은 올랐는데 그라세가 반반 장부에 올리고 나머지는 아세트에서 댔다, 그래서 표면적으로 영업이익이 났다는 이야기다. 이 뻔한 이야기에는 그저 그렇다고 치고.<br>저자, 출판사직원, 그리고 출판사가 자신들의 출판권과 작품이 자신들이 반대하는 편집 방침을 가진 주주의 통제하에 놓이게 될때 노동법이나 저작권법에 이를 반영할 수 있는 법을 만들라는 게 핵심.<br>여튼 우리도 알만한 프랑스 작가들 300 여명이 그라세를 떠난다고 하는데 여기에 계약 문제 저작권 문제 상당히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description></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인문/예술</category><title>혐오는 감정이 아니라 ‘설계된 통치술’이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7476</link><pubDate>Fri, 15 May 2026 03: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747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42833109&TPaperId=172774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70/72/coveroff/k24283310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호모포비』가 분석한 3천 년의 배제<br>우리는 흔히 혐오를 개인의 미성숙한 감정이나 특정 대상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으로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프랑스의 법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다니엘 보릴로와 변호사 카롤린 메카리는 그들의 저서 『호모포비』를 통해, 동성애 혐오가 결코 우연적인 감정의 산물이 아님을 입증한다. 이 책은 170쪽이라는 짧은 분령이지만 압도적인 밀도로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까지 3천 년에 걸친 혐오의 뿌리를 추적하며, 이것이 어떻게 사회적·제도적으로 구조화되었는지를 날카롭게 해부한다.<br>1. 혐오의 기원과 가부장제의 공모이 책의 가장 강력한 통찰 중 하나는 동성애 혐오가 가부장적 세계관과 깊이 연루되어 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고대 그리스-로마와 유대-기독교라는 대조적인 두 세계를 분석한다. 먼저&nbsp;그리스-로마는 동성애를 사회적 통과의례로 수용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nbsp;유대-기독교는 잘 알려져 있듯 동성애를 철저히 부정하고 박해했다.&nbsp;겉보기에 정반대인 두 세계는 그러나 사실 ‘강력한 가부장적 질서’ 위에 세워진 사회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즉, 혐오는 이성애 우월성을 고착화하고 남성 중심의 가족 제도와 혼인 규범을 유지하기 위해 사회가 필요로 했던 시스템이었던 것이다.<br>2. ‘죄악’에서 ‘질병’으로: 혐오의 진화와 합리화저자들은 호모포비아를 크게 두 가지 층위로 분석한다. 첫째는 유대-기독교적 전통에 기반한 '종교적·도덕적 혐오'이며, 둘째는 근대 의학 및 법률이 만들어낸 '과학적·제도적 배제'다.과거에 동성애가 종교적 단죄의 대상인 ‘죄악’이었다면, 근대에 들어 심리학과 정신의학은 이를 ‘질병’으로, 법률은 ‘반사회적 범죄’로 재정의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은 단 하나의 사실은, 동성애가 언제나 ‘정상’의 범주를 확립하기 위한 ‘비정상’의 거울로 동원되었다는 점이다.<br>3. 차별의 위계화와 권력의 작동이 책은 호모포비아가 어떻게 ‘차이의 위계화’를 수행하는지 밝혀낸다. 저자들은 이 현상이 단순히 동성애자를 싫어하는 마음이 아니라, 이성애적 결합만을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것으로 설정하여 권력의 우위를 점하려는 적극적인 사회적 실천이라고 비판한다.&nbsp;특히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동성애자들이 유대인 희생자들과 달리 해방 후에도 그 어떤 인간적 권리도 부여받지 못했던 처절한 사실은, 혐오가 어떻게 역사적·이념적으로 공고하게 구축되었는지를 냉철하게 증명하고 있다.<br>4. 법의 역할과 민주주의의 완성법은 다수자의 도덕을 수호하는 도구가 아니라,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보루가 되어야 한다. 저자들은 동성애의 비범죄화를 넘어 평등한 시민권(결혼, 입양 등)의 획득이 왜 민주주의 완성의 필수 요건인지를 역설한다.&nbsp;결혼 제도를 남녀 간의 결합이 아닌 ‘성 중립적 공동체’라는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급진적이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성애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소수자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사회 관습의 코르셋에서 모두를 해방시켜 만인의 자유를 향상시키는 길이기 때문이다.<br>혐오의 언어 뒤에 숨은 거대한 차별의 역사를 직시하고자 하는 독자들,&nbsp;인권과 젠더 이슈에 민감한 20-30대 독자들에게&nbsp;일독을 권한다. 170페이지에 인류 역사의 단면을 닮아냈다. 역사책으로도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다.제도적 혐오의 구조 등 현대 사회의 차별 기제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싶은 독자에게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책이다. 그리고&nbsp;법이 어떻게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민주주의의 보루가 될 수 있는지 탐구하는 독자 또한 유익한 독서를 제공할 것이다.<br>"혐오를 알아야 혐오와 싸울 수 있다."<br>혐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제조된 것이다. 『호모포비』는 우리가 지켜야 할 인권의 최전선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정직한 지도라 할 수 있다. 혐오를 멈추는 것은 단순히 친절해지는 것이 아니라, 위계적 질서에 균열을 내고 모든 인간이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세상을 설계하는 일일 것이다.<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70/72/cover150/k2428331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707267</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인문/예술</category><title>위장과 뇌는 낯선 사이가 아니다_철학자의 뱃속</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7471</link><pubDate>Fri, 15 May 2026 03: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77471</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736108&TPaperId=172774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754/48/coveroff/k45273610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철학은 오랫동안 정신과 육체의 분리를 고집해 왔다. 이성은 욕구를 초월한다고 우리는 배워왔다. 사유는 고귀하고, 소화는 부끄러운 것이라고. 1989년 출판된 미셸 옹프레의 첫 번째 에세이는 이 모든 전통을 향한 유쾌한 공세다. 그 핵심 주장은 단순하면서도 전복적이다. 철학자들의 음식 선택을 통해 그들의 사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 당신은 당신이 먹는 것이고, 당신의 철학 또한 그럴지 모른다는 것이다.<br>철학자들은 생각할 때 대부분 자신의 몸을, 특히 먹을 때 몸속에 쌓이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을 잊는다. 그러나 사유와 위장 사이에는 복잡한 친화성과 고백의 그물망이 존재하며, 이것을 성찰이 무시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옹프레는 이 영역을 가스트로필로소피(gastro-philosophie), 즉 미식철학이라 부르며, 『철학자들의 뱃속』은 그 창립 선언문이다.<br>위장과 뇌는 낯선 사이가 아니다<br>이 책의 지적 도박은 옹프레 특유의 활기로 펼쳐진다. 디오게네스가 날것의 문어를 즐겨 먹지 않았다면 과연 그토록 문명과 그 관습에 적대적인 반대자가 되었을까? 『사회계약론』의 루소는 평소 식단이 유제품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검소함을 그토록 옹호했을까? 악몽이 게로 가득했던 사르트르는 갑각류에 대한 혐오를 평생 이론의 영역에서 치르며 살지 않았을까?<br>이것들은 가벼운 농담이 아니다. 진지한 철학적 방법론의 전제들이다. 옹프레는 한 사상가의 음식과의 관계 — 무엇을 먹고, 거부하고, 집착하고, 두려워하는지 — 가 전기적 각주가 아니라 인식론적 열쇠라고 주장한다. 식이 요법은 이 독해 방식에서 철학자들이 기록에서 지우려 애써온 자서전의 한 형식이다.<br>철저히 니체적인 이 에세이에서 옹프레는 대구, 보리 수프, 와인, 앙두이예트, 향이 든 커피, 심지어 오드콜로뉴에까지 철학적 존엄성을 되돌려 주기로 했다 — 이것들은 푸리에에서 마리네티까지, 칸트에서 실존주의자들까지, 기쁨의 학문에 이르는 뜻밖의 경로들이다. '식이적 이성 비판'이라는 부제는 칸트에 대한 의도적인 메아리다 — 칸트는 적절히도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사례 연구 중 하나로 등장한다.<br>철학자들의 메뉴<br>이 책은 각 사상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장은 맛과 거부로 그려진 철학적 초상화처럼 기능한다. 등장인물은 디오게네스, 루소, 칸트, 샤를 푸리에, 니체, 미래주의자 마리네티, 그리고 장폴 사르트르다. 각 장은 한 철학자의 신체적 습관 — 쾌락, 공포증, 과잉, 결핍 — 이 그들이 공언한 사상을 어떻게 표현하고 또 어떤 모순이 있는지를 밝힌다.<br>철학자들에 이르기 전, 옹프레는 유머로 가득 찬 서문을 통해 독자의 입맛을 열어준다 — 풍자적이고, 달콤 쌉싸름하고, 매콤한 맛의 전채 요리처럼. 이것은 독자가 이 에세이를 즐거운 잔치의 연속으로, 우리의 뇌라는 미각에 제공되는 훌륭한 정신적 요리로 이어서 읽을 수 있게 해준다.<br>서문은 또한 주목할 만하게도 자전적이다. 독자는 옹프레의 어린 시절 궁핍함, 대학생 시절의 음주, 그리고 스물여덟 살에 겪은 심장마비를 발견한다. 자신의 미식 자서전으로 책문을 열면서 옹프레는 스스로를 분석 대상에 위치시킨다.<br>식탁에 앉은 철학자들<br>디오게네스는 옹프레의 영웅이자 자연스러운 모델이다. 키닉 철학자는 "자기 시대의 불량한 양심"으로 정의되는 진정한 철학자의 상징적 형상이다. 그는 습관을 통해 순응주의를 폭로하려는 완강한 의지의 담지자다. 니체가 냉소주의를 "지상에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것"으로 정의한 데 힘입어, 우리는 디오게네스가 누볐던 영역으로 평온히 들어설 수 있다. 날것의 문어를 먹고 익힌 음식을 경멸하는 그의 식단은 단순한 기행이 아니라 먹는 행위로 실현된 철학적 태도 — 문명의 정제를 식사마다 거부하는 몸짓이다.<br>루소는 좀 더 회의적인 시선을 받는다. 옹프레는 이 18세기 작가를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 루소의 소박한 시골 음식에 대한 취향, 우유와 유제품에 대한 찬사, 전형적인 '고귀한 야만인'식 채집 습관을 비웃는 것처럼 보인다. 옹프레는 루소의 채식 성향과 유제품과 소박한 식사에 대한 애호를 그의 자연 이상화 및 금욕 철학과 연결하며, 두 가지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비평가들은 이 독해가 다소 편향되었다고 반론을 제기했는데, 루소가 좋은 와인을 즐겼다는 사실 — 장프랑수아 레벨이 기록한, 루소가 와인이 마음에 들지 않는 여관을 떠나 마음에 드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는 일화 — 을 완전히 누락했다는 점을 지적한다.)<br>칸트는 이 책에서 가장 유쾌한 놀라움을 주는 장이다. 냉철하고 금욕적이며 강박적인 건강염려증 환자를 기대했던 독자는 프로이센 도시의 거리에서 만취한 채 발견된 칸트와 마주치게 된다. 순수 이성의 철학자는 알코올과의 관계에서는 순수함과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옹프레는 또한 칸트의 후각 경시에 주목한다. 쾨니히스베르크의 현자는 후각을 너무 비자발적이고 사회적이어서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폄하했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은 동시에 모든 사람과 같은 것을 맡는 것 — 타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 감각을 공유하도록 강제하는 필연이며, 따라서 자유에 위배된다고 칸트는 주장했다. 옹프레에게 이 후각 철학은 통제되지 않는 감각적 경험에 대한 칸트의 더 넓은 공포를 완벽하게 반영한다.<br>사르트르는 이 책에서 가장 길고 가장 신랄한 초상을 받는다. 장폴 사르트르의 갑각류에 대한 혐오는 너무 극단적이어서 공포증에서 비롯된 환각까지 경험했다 — 시몬 드 보부아르는 『나이의 힘』에서 그가 정말로 바닷가재 한 마리가 자신을 뒤따라 다닌다고 확신했다고 기록한다. 옹프레는 사르트르에게서 음식이 철학자를 자기 몸의 영원한 적으로 지목한다고 결론 내린다. 자유와 급진적 선택의 실존주의 사상가가 일상적 신체의 삶에서는 합리화도, 극복도 할 수 없는 혐오에 예속되어 있었다. 알코올 중독, 온갖 종류의 약물에 절어 있고, 줄담배를 피우며 아무것이나 먹어대는 사르트르의 끔찍한 자기 관리는 옹프레의 분석에서 자아를 향해 체계적으로 선포된 전쟁처럼 읽힌다.<br>니체는 책 전체에 걸쳐 옹프레의 일차적인 철학적 선조이자 영감으로 등장한다. 부제가 칸트를 메아리치는 것도 니체적 몸짓이다. 니체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영양의 문제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신학적 호기심보다 더 중요하다고 썼다. 옹프레에게 소화의 영역을 철학적인 것으로 끌어올린 이 행위는 정직하고 체현된 철학 — 아무 곳도 아닌 곳에서 생각하는 척하지 않는 철학 — 의 창립 행위다.<br>방법론으로서의 미식철학<br>옹프레가 흥미로운 초상들 너머에서 제안하는 것은 철학적 전기의 진정한 방법론적 확장이다. 먹는 것의 예술은 결국 모든 것의 예술이다. 푸코는 이렇게 썼다. "삶의 예술로서 식이 요법의 실천은… 몸에 대해 정당하고 필요하고 충분한 배려를 갖는 주체로 자기 자신을 구성하는 하나의 전체적 방식이다." 윤리와 미학이 합쳐진 것 — 하나의 반추된 삶의 형식으로서의 식이 요법.<br>이 책의 근저에 있는 주장은, 텍스트와 논증과 체계에 집중해온 전통적인 철학사가 사유의 체현되고 욕구적인 차원을 체계적으로 무시해왔다는 것이다. 그 접근이 아무리 탁월하다 해도, 가장 풍요로운 정신도 기본적인 영양 연료 공급에 생존이 달려 있는 복잡한 신체 기계와 연결된 소화관이 없지는 않다.<br>구두장이가 가장 신발을 못 신는 법이 없어야 한다는 근본 원칙에 충실하게, 옹프레는 자신의 습관대로 높고 크게 윤리를 외치면서도 선언된 원칙들과는 천문학적으로 거리가 먼 일상을 살아가는 이중성을 추적한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철학적 정직함에 관한 책이다 — 사상가들이 실제로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지에 관한.<br>이 책은 옹프레의 첫 번째 주요 출판물이었고, 그를 프랑스에서 가장 읽기 쉽고 도발적인 대중 지식인 중 한 명으로 부상시켰다. 철학에 평소 거리감을 느끼던 독자들에게도 진정으로 접근 가능한 입구를 제공했다. 입을 통해 철학에 들어가는 예술.<br>비평적 반응은 호의적이었지만&nbsp; 일부 평론가들은 접근법의 재치와 독창성을 칭찬하면서도 일부 결론들이 다소 성급하게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 전기적 세부 사항에서 포괄적인 철학적 판단으로 너무 빠르게 넘어가는 순간들. 루소에 대한 처리는 특히 이념적으로 편향된 선택적 독해라는 비판을 받았다.<br>더 근본적으로, 일부 철학자들은 옹프레의 방법이 특정한 결정론의 위험을 안고 있지 않은지 의문을 제기했다. 한 철학자의 사상이 식단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그 사상을 설명하는 것인가, 아니면 단지 다시 묘사하는 것인가? 이 책이 이 질문에 항상 엄밀하게 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이 책의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 증명하기보다는 도발하고, 이미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상가들을 다시 보게 만드는 것 — 이번에는 조금 더 배가 고프고, 더 호기심이 많은 눈으로.<br>『철학자들의 배』는 근엄함을 거부함으로써 진실한 무언가를 밝혀내는 일조의 진정한 지적 재기로 가득한 책이다. 소화 불량이 두렵지 않도록, 적당한 분량씩 음미하며 천천히 섭취해야 할 책이다.<br>이 책은 철학사에 대해, 긴 대화에서 훌륭한 음식이 하는 역할과 같은 것을 해낸다 — 모든 것을 더 따뜻하게, 더 구체적으로, 더 생생하게 만든다. 디오게네스의 날 문어, 칸트의 프로이센식 음주, 사르트르의 환영 속 바닷가재 — 이것들은 위대한 사상들의 각주가 아니다. 옹프레의 손에서 이것들은 사상 그 자체가 된다, 더 정직한 각도에서 바라본. 철학자도 결국 모든 다른 동물처럼 먹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먹는지를 우리가 무시한다면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라 밝히고 있다.<br>리뷰: 미셸 옹프레의 『철학자들의 뱃속』(Le Ventre des philosophes — Critique de la raison diététique, Grasset, 1989)<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754/48/cover150/k4527361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7544826</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인문/예술</category><title>큐비즘의 거장이 평생에 걸쳐 적어 내려간 사유의 기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58612</link><pubDate>Tue, 05 May 2026 14: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5861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92036815&TPaperId=172586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39/3/coveroff/k89203681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낮과 밤』 — 조르주 브라크의 화가수첩<br>프랑스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조각가로,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큐비즘(Cubism, 입체주의)을 발전시키며 20세기 현대 미술에 깊은 영향을 미친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1882~1963)의 예술적 사유와 철학적 깊이를 엿볼 수 있는 특별한 책 『낮과 밤』이 출간됐다.브라크라는 이름은 흔히 피카소의 그늘에 가려지기 쉽지만, 사실 두 사람은 대등한 협력 관계 속에서 미술사의 가장 혁명적인 운동 중 하나를 함께 일궈냈다. 1911년 어느 평론가는 "입체주의란 무엇인가? 당연히 브라크-피카소 화파다"라고 말했다. 브라크는 파블로 피카소와 만남으로 예술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으며, 두 예술가는 1907년에 처음 만나 함께 큐비즘이라는 혁신적인 예술 운동을 창시했다.&nbsp;<br>그리고 브라크는 단순한 화가가 아니었다. 그가 죽기 2년 전인 1961년, 브라크의 아뜰리에(L'Atelier de Braque)라는 작품 회고전이 루브르 박물관에서 열렸으며, 브라크는 생존 작가로 루브르에 전시된 최초의 화가라는 인류사에 단 한 번뿐인 영예를 누렸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20세기 미술사에서 얼마나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분명해진다.&nbsp;<br>35년에 걸친 내밀한 창작 노트<br>『낮과 밤』은 브라크의 그림을 직접 담은 도록이 아니다. 이 책은 1917년부터 1952년까지 조르주 브라크의 수첩에 기록된 단상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창작 행위와 예술에 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고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초가 된다. 약 35년에 걸쳐 간헐적으로 적어 내려간 이 짧은 메모들은, 완성된 논문이나 체계적인 이론서가 아니라 한 예술가의 내면이 살아 움직이는 현장 기록이다.&nbsp;<br>브라크는 완벽하게 정리된 그림보다는 작업하는 과정의 감정과 사유를 중시했기에, 그의 미술은 단순히 시각적인 작품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표현이기도 했다. 형태의 해체와 색의 변화를 통해 존재의 본질과 인간 감정의 복잡성을 탐구하는 예술을 보편적인 진리로 승화시키려 했던 그의 미학적 입장은, 창작노트 『낮과 밤』에서 짧고 간결하게 표현된다.&nbsp;이 짧은 문장들은 때로 격언처럼 읽히고, 때로는 수수께끼처럼 독자를 붙잡는다. 브라크는 명확한 답을 주는 대신, 질문 자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br>대립하는 두 세계 사이에서<br>책의 제목 '낮과 밤'은 단순한 시간의 구분이 아니다. 브라크가 펼치는 빛과 어둠, 존재와 무, 삶과 죽음의 상징적 대비는 인간의 인식과 예술의 본질을 파고드는 치열한 기록이다. 이 대립항들은 서로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통해서만 의미를 가지는 긴장의 관계를 이룬다.&nbsp;『낮과 밤』은 단순히 미적 성찰을 넘어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탐구하는 동시에 현실과 상상이 만나서 벌이는 끊임없는 인식의 게임을 보여준다. 브라크는 독자에게 세상을 구성하는 대립을 지각하고 탐구하도록 초대한다.&nbsp;<br>자연과 인간, 실재와 관념, 현실과 상상 등 우리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대립 사이의 균형에 관한 철학적이고 미학적인 성찰은 예술과 삶의 본질을 탐구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줄 것이다.&nbsp;흥미로운 점은 브라크가 이러한 대립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낮과 밤』에서도 그의 사고는 같은 어휘일지라도 시간의 흐름이나 상황 혹은 맥락에 따라 서로 상충하거나 모순을 내포하지만, 이는 언어의 자의적인 사용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하나의 생각에 갇히는 것을 지양하려는 의지일 것이다. 그것은 고정된 진리를 선언하기를 거부하는 예술가의 용기이다.&nbsp;<br>화가에서 예술 철학자로<br>브라크의 회화 세계를 알고 있다면, 이 책이 그의 캔버스와 얼마나 닮아 있는지 놀라게 된다. 브라크의 그림은 주로 견고한 구성, 낮은 채도, 고요하고 명상적인 정물화로, 형태, 색채, 구성의 실험을 통해 사물의 형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으며, 전통적인 미술 기법을 넘어선 새로운 예술적 접근을 제시했다.&nbsp;이 절제된 미학은 그의 언어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브라크의 텍스트는 그 자체로도 시적이고 은유적인 특성을 갖는다. 그는 언어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세계를 설명하는 동시에, 그가 선택한 개념의 층위는 그가 단순한 미술가가 아닌 예술 철학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nbsp;브라크는 초기에 구상적 표현을 통해 현실을 묘사했지만, 점차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변모하며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으려 했다. 브라크의 예술은 언제나 과정과 변화에 초점을 맞췄으며, 브라크의 예술적 성장과 변화의 과정 또한 이 책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br>독자에게 건네는 초대<br>매우 추상적이고 때로는 자기만의 언어로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전개하는 브라크의 메모는 그의 예술 세계의 이해와 지적 토론의 장으로 충분하다. 무엇보다 독자는 그의 간결하고 철학적인 메시지에서 자신만의 해석을 찾아가는 여정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nbsp;이 책은 미술 전공자나 예술사 연구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 창작의 고통과 기쁨을 아는 사람,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무언가를 감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브라크의 짧은 문장들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될 것이다.<br>『낮과 밤』은 예술적·철학적으로 중요한 작품으로, 오늘날까지도 인간의 존재와 예술에 대한 깊은 성찰을 촉구하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브라크가 수십 년에 걸쳐 홀로 수첩에 남긴 이 기록들은, 이제 한국 독자들에게도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nbsp;<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539/3/cover150/k89203681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5390362</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누구도 예상치 못한 소설-펠릭스 발로통_유해한 남자</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41813</link><pubDate>Mon, 27 Apr 2026 16: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4181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02833109&TPaperId=172418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70/69/coveroff/k202833109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펠릭스 발로통(Félix Vallotton, 1865~1925)은 주로 화가이자 판화가로 기억된다. 목판화에 신랄한 위트를 담아내고, 누드와 실내 풍경을 불안하리만큼 차갑고 고요하게 그려낸 스위스 출신의 나비파 화가. 그가 소설가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며, 『유해한 남자』는 그 숨겨진 재능을 증명하는 가장 빛나는 작품이다.<br>발로통은 1907년 1월부터 1908년 1월 사이에 이 소설을 집필했다. 1909년 출판사를 찾으려 했으나 실패했고, 1925년 임종 직전 작가 앙드레 테리브에게 원고를 맡기며 출판될 수 있기를 바랐다. 출판의 역사 자체가 하나의 작은 비극이다. 진지한 문학적 힘을 지닌 작품이 생전에 거절당하고,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독자들에게 닿을 수 있었으니.<br>소설이 1927년 『메르퀴르 드 프랑스』에 연재되며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테리브는 이 작품을 "자전적 요소들이 감동적이고 끔찍한 허구와 뒤섞인 소설"이라 묘사했다. "그의 옛 어두운 유머의 판화들처럼, 눈에는 환각적이고 영혼에는 황폐한 그림들처럼, 세계에 대한 자연주의적 시각이 드러나 있다".&nbsp;<br>범죄 현장 속의 고백<br>​소설의 구조는 우아하면서도 불길하다. 스물여덟 살의 젊은 화가 자크 베르디에는 자택에서 스스로 머리에 총을 쏘았다. 조사를 위해 파견된 경감은 현장에서 '하나의 사랑(Un amour)'이라는 제목의 소설 원고를 발견한다. 1인칭으로 쓰인 이 원고는 작가가 살면서 유발했거나 유발한 것으로 보이는 일련의 죽음들을 서술하며, 그는 점차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을 이끄는 어두운 운명을 짊어지고 있음을 깨닫고, 이 불길한 저주에 대한 책임감에 시달린 끝에 자살 외에 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br>학자들은 이 소설이 얀 포토츠키의 유명한 문학적 장치로부터 이어지는 '발견된 원고'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그 결과 이중 액자 구조가 탄생한다. 독자는 주인공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의 삶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이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서스펜스가 아니라, 어떻게 그곳에 이르렀는가에 대한 느리고 서늘한 공포를 만들어낸다.<br>자크 베르디에: 악의 안티히어로<br>주인공은 함께하기 편한 인물이 아니다. 자크 베르디에는 그다지 공감하기 어려운 성격의 소유자다. 끔찍할 정도로 자기중심적이고 비관적이며 변덕스럽고 우유부단하다. 어린 시절 그의 서투름은 두세 차례의 치명적인 사고와 어느 정도 연관되어 있었다.&nbsp;<br>그러나 발로통은 단순히 괴물을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무언가를 해낸다. 자크 베르디에는 악의 안티히어로다. 악을 집요하게 추구하던 이전 세기의 루시퍼적 인물들과 달리, 발로통은 악이 그림자나 향기처럼 따라다니지만 결코 그것을 원하지 않는 인물을 창조했다. 베르디에는 대체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는 파리로 상경한 지방 청년으로, 거의 우연히 미술사가로서의 소명을 발견한다. 그의 삶은 창녀촌, 살롱, 카페, 편집실이라는 대도시의 예측 가능한 풍경 속에서 펼쳐진다. 그러나 베르디에는 자신이 무언가 심각한 것을 숨기고 있음을 안다. 악은 그의 영구적인 손님이며, 그의 손을 통해 그를 찾아오는 다양한 존재들에게 전달된다.&nbsp;<br>이것이 이 소설을 단순한 자극적 이야기가 아닌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작품으로 만드는 지점이다. 주체성 없는 죄책감, 의도 없는 해악. 선택하지 않았지만 짊어진 저주에 대해 인간은 과연 책임을 질 수 있는가?<br>발로통이 탁월하게 구사하는 역설은, 베르디에의 불길한 삶이 베르디에 자신과 그의 고백을 듣는 독자 외에는 누구에게도 인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이 외부와 내부 사이의 간극을 만들어내며, 서사에 음울한 익살의 진동을 부여한다. 외부에서 보면 베르디에는 평범한 파리 지식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내부에서 보면 그는 운명의 올가미에 천천히 목이 조여들고 있다.<br>산문 속의 화가의 눈<br>『유해한 남자』를 같은 시대의 많은 소설들과 구별 짓는 것은 관찰의 질이다. 발로통의 시각 예술가로서의 훈련과 실천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그 품질.<br>이 소설은 비평가들에 의해 "유사 자전적"이라 묘사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파멸을 예고하는, 그 시선 자체가 죽이는 것 같은 영리한 젊은이의 이야기. 한 장면에서 주인공은 여성 모델이 실수로 난로로 넘어지는 데 가담(?!)하고, 그 후 그녀의 가슴 하나는 "형체도 없이 부어오른 덩어리, 일종의 점성 있는 용암"으로 변한다는 묘사가 등장한다. 이 대목은 발로통의 묘사적 정밀함을 잘 보여준다. 화가가 임상적 거리감으로 장면을 그려내듯, 외면하기를 거부하고, 위안을 거부한다.<br>화가와 작가가 섬세하고 생생한 묘사 속에서 하나로 합쳐지고, 언어적 압축의 강렬함이 돋보이는 이 언어로 쓰인 어두운 이야기 속에서,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등장하는 공포가 평범함과 나란히 놓이다가 결국 독자에게 주먹처럼 다가온다.&nbsp;<br>학자들은 또한 발로통이 이미지와 텍스트 양쪽에서 시각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관계를 위한 독특한 시각 언어를 발전시켰다고 지적한다. 그의 예술적 명성을 처음 확립시킨 파리 군중 장면들은 구경꾼이라는 현대적 유형의 중요성을 증명하며, 이는 도시적 관음의 매력과 복잡한 윤리를 나타내는 형상이다.&nbsp; 즉, 바라보는 것의 윤리 —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자의 태도 — 가 그의 판화와 소설 모두를 관통하고 있다.<br>블랙 유머와 균형 잡힌 어조<br>이 책의 진정한 놀라움 중 하나는 그 어조다. 자살, 우발적 살인, 성병, 강박이라는 소재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결코 끝없이 어두운 독서 경험이 아니다.<br>문체는 경쾌하고 부드러운 아이러니로 가득 차 있으며, 이 젊은이가 주변에 뿌리는 불행들을 읽다 보면 그의 순진함이 오히려 애처롭게 느껴져 결국 미소 짓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에게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모든 이들이 확실한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라고 믿으며 살아왔고, 당연히 그의 행동은 이 치명적인 상황들을 만들어낸다.&nbsp;<br>독자들은 발로통의 시각 작품을 통해 그를 알게 된 이후 그의 산문 속 재치에 놀라곤 한다. 한 독자는 이전에는 그의 회화와 판화만 알았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 그가 천재임을 확신하게 됐다며, 신랄하고 냉소적인 문체와 "블랙 유머로 가득 찬" 서사가 첫 페이지부터 사로잡는다고 평했다.<br>자전과 허구 사이<br>발로통은 단순히 자전적 예술가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적 어려움이 실행 가능한 상상의 재료를 제공할 수 있음을 냉정하고 체계적으로 인식하는 예술가다.&nbsp; 파리를 항해하며 사랑, 미술 비평, 그리고 근본적으로 이방인이라는 감각과 씨름하는 젊은 예술가인 주인공과 발로통 자신의 전기 사이의 연결고리는 분명하지만, 결코 조잡하지 않다. 소설은 경험을 단순히 옮겨 적지 않고, 아이러니와 형식적 기교를 통해 그것을 변환시킨다.<br>한 학술적 분석은 발로통의 소설들이 다양한 형식적, 도상학적, 문학적 관습을 '보호막'으로 사용하여 인간 본성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표현하면서도 스스로를 거리를 두고 보호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발견된 원고라는 구조는 바로 이 목적에 봉사한다. 고백을 죽은 자의 원고 안에 놓음으로써, 발로통은 친밀함과 거리감 모두를 성취한다. 독자는 비밀을 듣기 위해 가까이 몸을 기울이지만, 말하는 자는 이미 사라져 있다.<br>『유해한 남자』는 짧고 기묘하며 깊이 완성된 소설로, 발로통의 그림과 판화와 나란히 읽혀야 마땅한 작품이다. 함께 읽을 때 하나의 일관된 예술적 비전이 드러난다. 불안한 가정의 풍경, 폭력과 욕망을 향한 차가운 시선, 감상을 거부하는 유머. 이 작품은 누아르 소설, 사실주의 서사, 자전적 이야기 사이를 오가며, 사적인 불안이 거대한 사회적 불안과 공명하고, 비관적 인식들이 놀라운 서술의 힘으로 전달된다.&nbsp;<br>발로통이라는 화가를 알고 있는 독자에게 이 소설은 붓질 뒤에 숨겨진 인간을 밝혀준다.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접하는 독자에게도 이 작품은 충분히 독자적인 매력을 품고 있다. 죄책감, 운명, 그리고 너무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의 대가 — 혹은 너무 세심하게 관찰하는 것 자체의 대가 — 에 대한, 간결하고 신랄하게 아이러니컬한 성찰.<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70/69/cover150/k2028331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706979</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이 회고록은 고백인 동시에 선언문이고, 전투 명령이다_루이즈 미셸 회고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41800</link><pubDate>Mon, 27 Apr 2026 16: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24180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6372&TPaperId=172418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7/9/coveroff/k302136372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루이즈 미셸(Louise Michel, 1830~1905)은 교사이자 혁명가, 그리고 작가였다. 1871년 파리 코뮌의 영웅적 인물로, 1873년 뉴칼레도니아로 유형을 떠났다가 1880년 파리로 귀환하고 이후 런던에 정착하여 무정부주의, 여성의 권리, 그리고 억압받는 모든 이들을 위해 지칠 줄 모르는 활동가이자 강연자로 살았다. 소설, 시, 희곡, 민담, 자서전에 이르는 그의 문학적 유산은 방대하고도 독창적이다.&nbsp;<br>​동시대인들에게 붉은 성녀(la Vierge Rouge) 라 불렸던 그는 오늘날까지도 매혹의 대상으로 남아 있다. 파리 코뮌 당시 그의 고양된 기질을 비난하든, 그 영웅주의에 경탄하든, 정치적 판단력과 사회적 행동주의를 평가하든, 비관습적 교사로서의 면모에 감탄하든 — 그 이미지는 조금도 빛을 잃지 않았다.&nbsp;<br>1886년 처음 출판된 『루이즈 미셸 회고록』은 그 비범한 삶에 대한 루이즈 미셸 자신의 이야기다. 소설화된 전기와 이른바 평전들이 넘쳐난다. 각 저자들은 그의 글을 뒤지고, 빌리고, 지우고, 고쳐 쓴다 — 그런데 그렇게 하는 순간, 그 글의 원래 주인인 루이즈 미셸 자신은 뒤로 밀려난다. 저자가 재구성한 '루이즈 미셸'이 남게 되는 것이다. 마치 루이즈 미셸의 '삶'을 알리기 위해서는 그 삶의 주인공이 바로 그 루이즈 미셀이었다는 사실을 먼저 잊어야 하는 것처럼. 『루이즈 미셀 회고록』은 그 모든 것을 단번에 걷어낸다. 여기, 마침내 루이즈 미셸 자신의 목소리가 있다.<br>&nbsp;『회고록』에서 그는 시골에서의 어린 시절, 1870년 이전 교사로서의 초기 시절, 파리의 가난한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한 투쟁을 이야기한다. 1871년 코뮌 당시 최전선에 섰던 그는 베르사유 군사 재판소로부터 뉴칼레도니아 종신 유형을 선고받았고, 그곳에서 카낙 원주민들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사면된 뒤 귀환하여 혁명적 투사와 선동가로서의 삶을 이어가며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로 선언한다. 르클뤼 형제와 크로포트킨의 친구로서 프랑스와 유럽을 쉼 없이 누비며 거듭 감옥을 오갔고, 1883년에는 실업자 시위를 이끈 죄로 6년 중노동형을 선고받는다.<br>오트마른과 파리에서의 교사 생활을 다룬 부분은 19세기 유럽의 교육에 대한 귀중한 기록을 담고 있다. 파리 포위, 코뮌, 그리고 첫 번째 재판에 관한 장들은 주요 참여자의 시선에서 본 그 사건들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의 권리에 관한 장으로, 미셸은 그것을 독립된 투쟁이 아니라 남녀 모두의 권리를 위한 탐색의 일부로 바라보았다.&nbsp;<br>이 책에서 독자는 장난기 넘치는 청소년, 페미니스트 교사, 확고한 혁명가, 뉴칼레도니아의 유형수, 아나키스트 전사, 예술과 과학에 열정적인 탐구자, 그리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의 루이즈 미셸을 차례로 만난다. 또한 날카로운 펜과 날 것의 감수성, 무서울 것 없는 양심을 가진 사상가, 말하는 자, 글 쓰는 자로서의 루이즈 미셸을 발견한다.&nbsp;<br>회고록이란 장르의 책은 작가 자신에게 쉬운 장르가 아니가. 미셸 자신도 그 어려움을 고집스럽게 지켜냈다. 서술은 반드시 연대순을 따르지 않으며, 당대 사람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사건들을 불쑥불쑥 환기시킨다. 비평적 주석이 이해를 돕기는 하지만, 책의 구조적 느슨함을 완전히 보완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것은 루이즈 미셸의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 그는 다른 방식을 강요하려는 이들에 맞서 싸웠다.&nbsp;<br>​독자들은 루이즈 미셸의 문체에 종종 당혹감을 느낀다. 논리도 없이 이 주제에서 저 주제로 건너뛰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실은 그가 오트마른 지방의 저녁 모임에서 이야기하듯 쓴 것이다 — 하나의 주제가 다른 주제를 불러오고, 추억, 고통, 후회, 희망, 죽은 이들, 어머니, 친구 마리 페레가 이어지며, 그리고 미래를 향해 열린 채로 『루이즈 미셸 회고록』을 닫는 마지막 한 마디: "혁명!"&nbsp;<br>이것은 문학적 허술함이 아니다. 담아둘 수 없었던 삶의 질감이다. 그는 필명 뒤에 숨는 대신, 자신의 이름이 지닌 공적 명성을 글쓰기의 도구로 삼았다. 나아가 독자들을 교육하고 아나키즘으로 이끌기 위해 자신의 삶을 하나의 모범으로 내놓는 대담함을 보였다. 이 회고록은 고백인 동시에 선언문이고, 동시에 전투 명령이다.<br>1880년대 주로 옥중에서 집필된 이 책에는 최근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깊이 배어 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거듭 선언하면서 —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사회혁명에 더욱 헌신하게 만든다고 쓴다. 미셸의 서술 속에서 고통은 장애물이 아니라 연료다.<br>&nbsp;페미니즘, 계급, 그리고 여성의 이중 노예제<br>『회고록』은 19세기의 가장 강력한 페미니즘 문헌 중 하나다 — 미셸이 페미니즘을 독립된 투쟁이 아닌 더 넓은 혁명적 정치의 일부로 위치시키는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다.사생아로 태어난 그의 출생 — 그는 한 귀족의 하녀의 딸이었다 — 은 일찍부터 여성의 운명에 민감하게 눈을 뜨게 했다. 아버지가 죽자 성에서 쫓겨난 그는 필연적으로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지방에서 파리로 올라온 그는 "여성의 도덕적 향상을 위한 협회"를 설립해 여성들이 자신의 노동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왔다.<br>여성 교육에 대해 그의 비판은 신랄하다. 『회고록』의 가장 유명한 구절에서 이렇게 쓴다: "나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지성을 억압하려는 시도를 단 한 번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리석음 속에서 키워지는 소녀들은 더 쉽게 속을 수 있도록 일부러 무장 해제된다 — 그것이 바로 원하는 바다. 이는 마치 수영을 배우는 것을 금지하거나 사지를 묶어 놓은 채로 물속에 던져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nbsp;<br>​그의 글은 극도로 강렬하다. 미셸은 무엇보다 정당한 복수로 여기는 투쟁에 어떤 한계도 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 투쟁을 더 넓은 틀 안에 위치시킨다 — 필요하다면 무력에 의한 혁명의 틀 속에. 오직 새로운 사회만이 사람들의 의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nbsp;<br>미셸은 작가와 투사 모두를 체현하며, 그 삶과 작품은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수렴한다 — 평등을 위한 투쟁은 오직 전면적이고 총체적일 수 있을 뿐이며, 모든 사회 계층과 억압받는 모든 민족을 아울러야 한다는 것이다.&nbsp;<br>&nbsp;뉴칼레도니아: 제국을 가로질러 피어난 연대<br>​『회고록』에서 가장 놀라운 대목 중 하나는 뉴칼레도니아 유형 시절을 묘사한 부분이다. 지배자들이 유형을 형벌로 의도했던 곳에서, 미셸은 그것을 연대의 교훈으로 바꾸었다.<br>그의 마음은 산업화 시대의 비참한 사람들을 품기에 충분히 넓었다 — 서양과 다른 문화와 기원을 가진 민족들, 1871년 파리 코뮌 이후 유형당해 머물렀던 누메아의 카낙 원주민들까지. 루이즈 미셸은 온 마음으로, 온 지성으로, 온 연민으로 간절히 바랐다 — 어느 식탁에도 빵이 모자라지 않기를, 소녀들도 교육의 기회를 누리기를, 여성이 남성과 동등해지기를.&nbsp;<br>그는 자연의 아름다움에도 깊이 감동한다. 뉴칼레도니아 풍경에 대한 아름다운 묘사들을 남겼다. 이 회고록은 이념의 협소함을 거부하는 정신을 포착한다 — 아나키스트이자 박물학자, 시인, 말로 그림 그리는 자. 유형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았다.<br>『루이즈 미셸 회고록』이 1886년 2월 서점에 등장했을 때, 독자들은 이 유명한 코뮌 투사이자 아나키스트의 성장 서사에 대체로 주의 깊이 귀 기울였다 — 그리고 서술의 신선함에,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는 모든 것에 놀랐다. 그가 "어린 시절의 둥지"라 부르는 장은 큰 호응을 얻었고, 젊은 시절 붉은 성녀가 구혼자들을 물리쳤다는 이야기 또한 크고 작은 익살기를 머금고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교사 시절의 장난기 어린 에피소드들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nbsp;<br>이 『회고록』은 루이즈 미셸의 여러 면모를 종합적으로 담아낸다. 오트마른과 뉴칼레도니아의 민담들, 시, 소설들로 들어가는 입구 역할을 한다. 2021년에는&nbsp; 클로드 레타(CNRS/소르본 대학교 산하 연구소(UMR 8599) 소속 연구자로, 루이즈 미셸 전문가)가 편집·주석을 달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Folio Histoire 시리즈 304번으로 3월 4일 출판되었다.— 미셸이 출판사와 협상하여 지켜낸 원문을 최초로 복원한 판본이다.(Louise Michel, Mémoires, 1886, édition établie, présentée et annotée par Claude Rétat, avec dossier documentaire, Paris, Gallimard / Folio (« Folio histoire »), 2021, 576 p)<br>시대의 역사로서 기능하는 이 『회고록』그 모든 것을 직접 살고 나누기로 선택한 한 여성이 쓴 민중의 비참과 투쟁에 관한 기록이기도 하다.&nbsp; 루이즈 미셸과 평생 편지를 주고받았고 또 그녀를 위해 「남자보다 위대한」이란 시를 쓴 빅토르 위고 뿐아니라 시인 폴 베를렌도 1888년 그의 시집 『사랑(Amour)』에 「루이즈 미셸을 기리는 발라드」를 헌정하며 이 문학적 차원을 그의 생전에 이미 알아보았다.<br>루이즈 미셸의 『회고록』은 독특하고 필수적인 문헌이다 — 자서전인 동시에 선언문이고, 코뮌의 죽은 자들을 위한 만가(輓歌)다. 편안하거나 잘 정돈된 책이 아니며, 그 무질서함이 바로 그 정직함이다 — 이것이 전기 작가의 반듯한 책상에서가 아니라, 혁명적 삶의 내부에서 보면 어떤 모습인가 하는 것이다.<br>이 책에서 무엇을 얻는가? 루이즈 미셸과 그 동료들,&nbsp;이상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 했던 모든 이들에 대한 무한한 경탄, 그 이상이란 세상을 더 좋고 더 공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장엄한 유토피아!&nbsp;<br>19세기 프랑스사, 아나키즘과 페미니즘의 기원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든, 아니면 단순히 어느 시대에도 비견할 수 없는 하나의 인간적 목소리를 찾는 독자에게든, 『루이즈 미셀&nbsp;회고록』은 대체 불가능한 무언가를 제공한다 — 역사의 한복판에 서 있었고, 그로부터 한 세기 반이 지난 지금도 식지 않은 분노로 그것을 써 내려간 한 여성의 이야기.<br> <br><br><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7/9/cover150/k302136372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970959</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영화/연극</category><title>뱀파이어는 영화 자체, 관객은 흡혈의 대상</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93113</link><pubDate>Thu, 02 Apr 2026 21:5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9311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82934297&TPaperId=171931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70/78/coveroff/k982934297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김성태 저자의 『뱀파이어, 이미지에 관한 생각』(불란서책방, 2024)은 뱀파이어와 영화가 '이중적 질료성'이라는 공통 속성을 지닌다는 독창적 시각으로, 공포와 매혹의 존재인 뱀파이어를 통해 영화 이미지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구합니다.&nbsp;<br>"이중적 질료성"은 김성태의 책에서 핵심 개념입니다.&nbsp;<br>쉽게 말하면, 뱀파이어와 영화는 둘 다 "실체가 없지만, 특정 조건을 만나면 잠깐 존재를 얻는" 존재라는 공통점을 가진다는 것입니다.<br>​뱀파이어는 낮에는 존재하지 않다가 밤이 되면 육체를 입고 나타납니다. 영화 속 인물은 현실에 없는 이미지에 불과하지만, 스크린에 투영되는 순간 관객은 그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느낍니다.&nbsp;<br>둘 다 "허구 속 존재"이면서, 특정 조건(밤/스크린)을 만나야만 비로소 질료, 즉 몸·실체를 얻는다는 점이 같습니다. 이게 바로 이중적 질료성의 핵심입니다.<br>​저자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관객과 뱀파이어의 관계를 "흡혈"에 빗댑니다. 뱀파이어가 인간을 자신의 최면 속으로 끌어들이듯, 영화도 관객을 스크린 앞에 붙들고 현실감을 이식합니다.&nbsp;<br>그래서 "뱀파이어는 영화 자체이고, 관객은 흡혈의 대상"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이죠.<br>이중적 질료성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개념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꽤 정교한 '존재론적' '주장'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br>철학에서 질료(質料)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형상을 받아들이는 재료"를 뜻합니다. 조각상으로 치면 대리석이 질료이고, 그 돌에 새겨진 형태가 형상(形相)입니다. 그런데 뱀파이어와 영화는 질료가 두 겹으로 작동합니다.&nbsp;<br>평소에는 질료가 없는 순수한 관념(이야기, 이미지)으로 존재하다가, 특수한 조건이 주어지면 일시적으로 질료를 얻어 현실에 침투합니다. 이 "이중성"이 바로 저자가 말하는 핵심입니다.<br>흥미로운 지점은 이 침투가 완전한 현실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뱀파이어는 거울에 비치지 않고, 햇빛을 받으면 사라집니다. 영화 속 인물은 관객이 극장을 나서는 순간 다시 스크린 안으로 돌아갑니다. 둘 다 현실을 넘나들되, 결코 완전히 현실이 되지는 않습니다.&nbsp;<br>이 "경계에 머무는 존재"라는 특성이 두 존재를 더욱 묶어 줍니다.<br>또한 저자는 "매혹"이라는 공통점도 강조합니다. 뱀파이어는 공포스럽지만 사람들이 눈을 떼지 못하게 합니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관객은 스크린 위의 이미지가 허구임을 알면서도 울고, 웃고, 공포에 떱니다. 이 "알면서도 속는" 자발적 취약성이 흡혈의 메커니즘과 정확히 겹친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입니다.<br>결국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영화론입니다. 뱀파이어는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영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우리가 왜 어두운 극장에 앉아 낯선 이야기에 감정을 내어주는지, 왜 허구인 줄 알면서도 스크린 앞에서 무력해지는지 — 그 불가사의한 경험의 구조를 "뱀파이어성"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한 것입니다.<br>달리 말하면, 영화를 보는 모든 관객은 이미 한 번씩 뱀파이어에게 목을 내어준 셈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에도 기꺼이 극장에 앉는다는 사실이, 그 흡혈이 결코 불쾌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합니다.<br><br>이 책은 크게 두 개의 대부(大部)로 나뉘며, 그 앞에 짧은 서문 격의 글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전체 312쪽의 분량 안에서, 저자는 뱀파이어라는 존재의 역사적 기원을 추적하는 1부에서 출발하여 뱀파이어-영화라는 등식을 다양한 작품에 적용하는 2부로 넘어가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책은 "건너기 전의 다리 이 편에서"라는 제목의 서두로 시작합니다. 제목 자체가 의미심장한데, 저자가 앞으로 펼쳐갈 논의 전체를 "경계를 건너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뱀파이어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듯, 이 책 자체도 공포 문화사와 영화 철학 사이의 경계 위에 서 있음을 처음부터 예고합니다.​1부: 드라쿨레아에서 노스페라투로1부는 뱀파이어라는 존재가 어디서 왔는가를 묻는 역사적·문화적 탐구입니다. 저자는 19세기와 20세기를 각각 하나의 장으로 나눠 다룹니다.첫 번째 장에서는 뱀파이어 이미지의 기원을 중세 유럽의 공포 문화로 거슬러 올라가 추적합니다. 악과 마법, 마녀, 흑사병, 십자군 전쟁 등 중세인들의 실존적 공포가 어떻게 뱀파이어라는 형상 안에 응결되었는지를 설명하며, 특히 블라드 3세(Vlad the Dragon), 즉 역사 속 실존 인물 드라쿨 3세가 뱀파이어 신화의 토대에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를 분석합니다. 십자군 전쟁 이후 신의 침묵 앞에서 생겨난 공백, 페스트가 만들어낸 죽음에 대한 공포가 뱀파이어라는 초자연적 존재를 필요로 했다는 논지는 단순한 괴물 기원론이 아니라 일종의 문명 공포사에 가깝습니다.​두 번째 장은 이 공포의 형상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영화의 탄생과 어떻게 만나는지를 다룹니다. 브램 스토커의 소설 속 드라큘라가 런던으로 '건너오는' 장면을 분기점으로 삼아, 뱀파이어가 근대 도시 문명 속으로 침투하는 과정을 추적합니다. 이어 무르나우의 무성영화 〈노스페라투〉(1922)와 〈파우스트〉를 경유하면서, 뱀파이어가 영화라는 매체를 만나 어떻게 새롭게 변형·재탄생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최면 이미지의 힘"을 다루는 소절은 이중적 질료성 개념의 직접적인 서막으로, 카메라 앞에 선 이미지가 관객을 최면 상태로 이끄는 구조를 뱀파이어의 흡혈 행위와 겹쳐 읽습니다.​2부: 어지러진 사건의 지평선2부는 더욱 자유롭고 넓게 펼쳐집니다.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는 물리학적 개념, 즉 블랙홀의 경계면으로부터 은유를 빌려, 저자는 뱀파이어-영화의 속성이 구현된 다양한 영화 작품들을 하나씩 불러냅니다. 각 소절은 사실상 개별 영화론에 가깝습니다.여기서 거론되는 작품들이 흥미롭습니다. 뱀파이어 영화가 아니라 안토니오니의 〈Blow-Up〉,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그리고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을 연상케 하는 노스트로모(우주선 이름)가 등장합니다. ​저자는 이 작품들에서 뱀파이어적인 것을 찾아냅니다. 〈Blow-Up〉에서는 스크린 속에 존재하지 않는 공(Ball), 즉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사물을 뱀파이어적 허구성의 사례로 읽고, 〈샤이닝〉의 오버룩 호텔에서는 과거가 현재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초시간적 공포를 분석합니다. "나포당함, 끌려감"이라는 소절 제목은 영화 관람의 경험 자체를 뱀파이어에게 붙들리는 감각으로 표현한 것으로, 앞서 다룬 이중적 질료성 개념이 구체적인 작품 분석을 통해 검증되는 부분입니다.​2부의 마지막은 프리츠 랑의 〈마부제 박사〉 시리즈와 영화 일반을 직접 등치시키는 논의로 마무리됩니다. 마부제는 변신과 최면, 타인에 대한 지배를 능력으로 삼는 악당인데, 저자는 그가 뱀파이어-영화의 속성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캐릭터라고 봅니다. 영화 관객은 마부제의 피지배자이자, 스크린 앞의 흡혈 대상이라는 논지가 여기서 완성됩니다.​​정리하자면, 1부에서 뱀파이어가 어떤 문화적 필요에 의해 태어났는지를 밝힌 뒤, 2부에서는 그 뱀파이어성이 영화라는 장치 안에서 어떻게 반복·심화되는지를 개별 작품들을 통해 입증합니다. 단순히 뱀파이어가 많이 나오는 영화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영화 관람이라는 행위 자체를 흡혈의 구조로 해석하는 영화 존재론에 가까운 책입니다.​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070/78/cover150/k98293429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0707862</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루이즈 미셸이 말하는 루이즈 미셸</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91857</link><pubDate>Thu, 02 Apr 2026 09: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91857</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6372&TPaperId=171918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7/9/coveroff/k302136372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나는 18830년 브롱쿠르 성의 하녀 마리안느 미셸과 성주의 아들 로랑 드마히 사이의 사생아로 태어났지만 성주 조부모 밑에서 자라 사랑받으며 계몽주의 교육을 받고 독학으로 교사가 되었습니다. 세간에 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두 분은 서로가 진심으로 사랑한 사이였다.&nbsp;<br>나는 모든 종류의 글을 썼다. 시, 동화, 희곡, 소설 등. 1850년 빅토르 위고에게 내 첫 시를 보낸 이후 그가 죽기 전까지 편지를 주고 받았다. 내 편지의 서명은 그의 소설 레미제라블의 등장 인물 앙졸라였다. 1851년 드디어 나는 파리에서 빅토르 위고를 만난다.<br>1852년 나는 교사가 되었다. 당시 나폴레옹 3세 제정에서는 교사들의 충성서약을 의무화했지만 나는 서약을 거부하고 내 스스로 학교를 세워서 당시엔 금지되었던 라 마르세이예즈를 아이들과 함께 불렀고 세속교육과 남녀 평등을 가르친다.<br>나의 목표는 아이들 사이에서 인간성과 정의의 원칙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 1890년 런던에 망명하는 동안에도 국제자유학교를 세워 기능, 예술과 과학 과정을 무상으로 공급하는 혁신적 교육을 펼쳤다.<br>1856년 파리 몽마르트르에서 가르치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나의 영혼의 동반자 테오필 페레를 만난다. 그는 파리 코뮌 탄압 이후 2만 여명의 동지들과 함께 총살 당했다. 테오를 체포할 때, 그들은 나의 친구 병약한 마리를 그녀의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끌고 나갔다. 어머니에게 딸을 살리려면 아들의 이름을 대라고,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무의식 중에 몇 마디를 밷었다..그렇게 체포되었고 어머니는 몇 주후 완전히 실성하여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nbsp;<br>나는 사회 정의, 일자리 그리고 모두를 위한 교육을 위해 싸웠다. 장 조레스는 나를 세속의 성녀라 불렀다. 무엇보다 나는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나는 여성이었고 여성으로 말해야만 했다.&nbsp;<br>1871년 파리 코뮌의 아이콘이 되었다. 나는 바리케이드에서 무기를 들고 싸웠고 부상자들과 여성과 아이들을 돌봤다.&nbsp; 파리 코뮌 실패 이후 정부는 나를 잡겠다는 명목으로 어머니를 베르샤유 감옥에 가두었다. 나는 내 생명같은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자수했다. 어머니는 한사코 감옥에서 나가길 거부했지만 오랫동안 설득했고 어머니는 결국 내 말을 들어주었다.&nbsp;<br>파리 코뮌 군사법정은 한 마디로 나에게 전장이었다. 나는 마치 총을 쏘듯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다했고 그들 앞에서 당당했다. 나는 사형을 원했고, 겁장이들인 당신들이 나를 사형시키지 않으면 복수하겠다고 했다. 빅토르 위고는 내 모습을 보고 나를 위한 시를 남겼다. 남자보다 위대한.<br>결국 나는 사형 대신 누벨칼레도니 유배형이 선고되었다. 나는 그곳에서도 다른 유형수들과는 달리 원주민과 우정을 쌓고 그들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쳤다. 그리고 나 또한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웠고 또 책으로 엮었으며 반제국주의자로서 원주민 봉기를 지지했다. 당시 대부분의 유형수들은 원주민 봉기 탄압에 동조했었다.&nbsp;<br>​1870년 사면으로 파리로 돌아왔다. 수천 명의 인파가 역에서 나를 기다렸다. 나는 아나키스트로서 이후 수많은 강연에 참여한다.&nbsp;<br>1883년 엥발리드 실업자 시위에 이은 빵폭동 주도 혐의로 수감된다. 세 곳의 빵집을 약탈했다는 혐의다. 정부와 언론의 비열한 수작은 끝이 없었다.&nbsp; &nbsp;<br>폴 베를렌느는 이에 분개해서 나를 위한 시를 남겼다. 각 구절의 마지막은 '루이즈 미셸은 좋은 사람'이었다.<br>1886년 석방되었고 여전히 강연과 투쟁을 지속했다.<br>1880년 르 아브르에서 브르타뉴 지방의 한 남자로부터 권총 테러를 당해 머리에 총알 한 발이 박혔다. 나는 이걸 죽을 때까지 간직했다. 빼내는 건 너무 위험했다. 나는 이걸 훈장처럼 여겼다. 물론 나머지 17년 동안 고통스러웠다. 나는 내게 총을 쏜 자를 용서했다. 그가 감옥에 가지 않게 하려고 백방으로 뛰었다. 그의 잘못이 아니라 이렇게 만든 사회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의 가족을 돌보기 위해 모금도 했다.<br>나는 페미니스트로서 결혼 제도에 반대한다. 성매매와 결혼은 본질상 다르지 않은 거래관계라고 파악했다. 성매매에 강하게 반대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nbsp; 나는 사회 문제를 구조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경제적 불평등, 범죄, 빈곤을 개인의 잘못이 아닌 구조적인 문제로 바라보았으며, 사회적 억압이 이러한 문제들의 근본 원인이라고 판단했다.<br>​1905년 알제리 강연을 다녀오고 폐렴 치료를 위해 마르세이유 요양중 생을 마감한다.&nbsp;<br>내 장례식엔 경찰만 1만명이 동원되었다. 운집한 군중은 2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들은 나의 마지막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br>지금 내 이름이 붙은 파리 지하철 역이 있다. 단독으로 지하철 명으로 여성의 이름이 붙은 유일한 사례다. 그리고 전국에 수백개의 학교, 거리,문화센터, 공원, 광장에 내 이름이 붙어있다.&nbsp;<br>나의 삶은 고단했으나 나는 한번도 고단함을 느끼지 않았다. 나의 삶은 언제나 약자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상황들에서도 나는 언제나 희망을 보았다. 삶을 누렸다. 미래는 결국 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지금 해야할 것을 하는 것이다.<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7/9/cover150/k302136372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970959</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모두가 그 이름을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녀(연보 포함)루이즈 미셸</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71460</link><pubDate>Wed, 25 Mar 2026 01: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7146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6372&TPaperId=171714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7/9/coveroff/k302136372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루이즈 미셸 — "붉은 처녀"의 삶과 사상루이즈 미셸(Louise Michel, 1830~1905)은 19세기 프랑스의 아나키스트, 교사, 혁명가로, 파리 코뮌(1871)의 가장 상징적인 인물 중 한 명이다. "붉은 처녀(La Vierge Rouge)"라는 별명으로 불린 그녀는 여성이 정치와 혁명의 주변부에 머물러야 했던 시대에, 최전선에서 총을 들고 싸운 인물이었다. 그녀의 삶은 억압받는 자들에 대한 헌신과 끝없는 저항의 연속이었다.<br>출생과 성장 — 사생아에서 교사로루이즈 미셸은 1830년 5월 29일, 프랑스 오트-마른(Haute-Marne) 주의 브롱코르(Vroncourt)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영주의 아들과 하녀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지만, 영주 가문의 조부모 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책을 즐겨 읽고 시를 쓰는 문학적 감수성을 키웠으며, 볼테르와 루소 같은 계몽사상가들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교사 자격을 취득한 그녀는 1856년 파리로 이주해 몽마르트르 지구에서 학교를 운영했다. 당시 공립학교 교사가 되려면 황제 나폴레옹 3세에게 충성 서약을 해야 했는데, 미셸은 이를 거부하고 사립학교를 직접 세웠다. 그녀의 교실은 단순한 지식 전달의 공간이 아니라, 빈민과 노동자 자녀들에게 열려 있는 해방의 공간이었다. 그녀는 수업료를 받지 않거나 적게 받으며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쳤고, 이 시기에 이미 그녀의 사상적 지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br>파리 코뮌 — 혁명의 최전선에 서다루이즈 미셸의 이름이 역사에 깊이 새겨진 것은 1871년 파리 코뮌을 통해서였다. 보불전쟁(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배한 후, 파리 시민들은 임시 자치 정부인 코뮌을 수립했다. 코뮌은 불과 72일간(3월 18일~5월 28일) 지속된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 자치 정권으로, 이후 수많은 혁명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미셸은 이 투쟁에서 가장 열렬하고 용맹한 전사 중 한 명이었다. 그녀는 몽마르트르 여성 경비대를 조직하고 직접 총을 들고 바리케이드를 지켰다. 간호사로 부상자를 돌보는 한편, 직접 소총을 들고 전투에 참가했다. 코뮌의 이상, 즉 노동자의 자치, 교육의 무상화, 교회와 국가의 분리 등은 그녀의 신념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피의 주간(Semaine sanglante)"으로 불리는 코뮌의 마지막 진압 과정에서 수만 명이 학살되었고, 미셸은 체포를 피하지 않고 스스로 자수했다.<br>재판과 유배 — 꺾이지 않는 의지1871년 12월 재판에서 루이즈 미셸은 당당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녀는 법정에서 "나는 사회의 적이다. 그러므로 나를 늑대와 함께 가두어라"라고 선언하며,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그녀는 프랑스령 뉴칼레도니아(오늘날 태평양의 섬나라)로 유배형을 선고받았다.그러나 유배지에서도 그녀의 삶은 멈추지 않았다. 미셸은 현지 원주민 카낙(Kanak) 족과 교류하며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배웠다. 1878년 카낙 족이 식민 지배에 저항해 봉기를 일으켰을 때, 그녀는 그들의 투쟁을 지지하는 몇 안 되는 프랑스인 중 하나였다. 유배지에서도 학교를 세워 아이들을 가르쳤고, 식물을 채집하고 시를 쓰며 지적 활동을 이어나갔다. 그녀의 유배 생활은 그녀를 굴복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그녀의 사상을 더욱 깊고 넓게 만들었다.<br>귀환과 아나키즘 — 끝없는 투쟁1880년 사면령으로 파리에 돌아온 미셸은 더욱 급진적인 아나키즘 운동에 투신했다. 그녀는 표트르 크로포트킨(Peter Kropotkin) 같은 아나키스트 이론가들과 교류하며 무정부주의 사상을 발전시켰다. 1883년 파리에서 일어난 실업자 시위에서 빵집을 습격하는 군중을 이끈 혐의로 다시 투옥되었고, 이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망명 생활을 하며 강연과 저술 활동을 벌였다.그녀는 여성 해방 문제에도 적극적이었다. 여성 참정권 운동이나 부르주아적 여성 해방론에는 거리를 두었지만, 계급 해방과 여성 해방이 불가분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가난한 여성, 노동하는 여성, 식민지 원주민 여성의 삶에 주목하며, 혁명은 모든 억압받는 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br>마지막 삶과 유산루이즈 미셸은 70대에도 강연을 다니며 노동자와 빈민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1905년 1월 9일, 강연 여행 중 마르세유에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파리로 운구된 그녀의 장례식에는 수만 명의 시민이 몰려 애도를 표했다.&nbsp;루이즈 미셸은 억압에 맞선 저항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기억된다. 그녀는 여성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몸소 증명했으며, 교육·아나키즘·식민지 해방이라는 서로 다른 가치를 하나의 삶으로 엮어낸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녀의 삶은 "진정한 혁명가는 이념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br>루이즈 미셸 연보<br>1830년 5월 29일 오트-마른 지방 브롱쿠르 성에서 출생. 하녀였던 마리 안 미셸의 딸로 태어났으며, 아버지는 성주의 아들 로랑 드마이로 추정. 아버지없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자유주의적 교육과 사랑을 받으며 성장. 빅토르 위고와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br>1851년 쇼몽에서 교사 자격증 공부를 시작하고, 이후 센에마른 지방 라니로 이동.<br>1853년 오들롱쿠르에 자유 학교 개교. 제국에 대한 충성 서약 거부. 1855년 오트-마른 지방 미예르에 학교 개교.<br>활동가 시절<br>1856~1868년 파리에서 집필 활동과 사회운동을 하며 교사로 활동함. 주요 저서:『어둠 속의 빛, 바보도 미치광이도 없는 세상』,『유형 지의 책』, 『에르만의 책』(1861),『삶과 죽음을 관통하며』(1864)<br>1868~1869년 조르주 클레망소의 지원을 받아 최초의 민중 무료 급식소 설립.<br>1870년 정치 활동이 본격화. 제국 타도 투쟁에 참여하고, 여러 야당 신문에 기고하며, 쥘 발레스, 외젠 바를랭, 테오필 페레와 함께 공개 집회 개최.<br>1870년 8월 15일 블랑키주의자 외드와 브리도를 지지하는 시위 참여. 1870년 9월 스당 전투 패배로 프랑스군이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무너짐. 제3공화국 선포. 프로이센군이 파리를 포위함. 굴욕과 굶주림에 시달리던 파리 시민들이 항복을 거부함.<br>1870년 11월 18구 경계위원회 의장으로 선출. ‘위기의 조국 클럽’에 적극 참여.<br>1871년 2~3월 티에르가 행정부 수반으로 선출되고, 파리 시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몽마르트르 언덕의 대포를 회수하기로 결정.<br>1871년 3월 28일 민중 봉기가 파리 전역에서 승리하고, 파리코뮌이 시청에서 선포됨. 국민의회는 베르사유로 도피.<br>1871년 4월 3일 베르사유 정부군이 파리를 공격함. 루이즈 미셸은 국민방위군 복장을 하고 이시 요새, 클라마르, 뇌이 등지에서 전투에 참여. 부상자 구호 활동.<br>1871년 5월 22~28일 ‘피의 주간’. 베르사유 정부군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3만 명이 넘는 코뮌 지지자들이 학살됨.<br>1871년 5월 24일 어머니가 포로로 잡히자, 루이즈 미셸은 어머니를 석방시키기 위해 베르사유군에 자수. 베르사유와 아라스에 수감.<br>감옥과 유배 생활<br>1871년 11월 28일 루이즈 미셸이 깊이 사랑했던 코뮌 지도자 테오필 페레 처형.<br>1871년 12월 16일 루이즈 미셸, 군사법정에 출두해 스스로 사형을 요구함. 누벨칼레도니 유배형을 선고받음.<br>1871년 12월 21일 오베리브 감옥으로 이송되어 20개월간 수감 생활을 함. 주요 저서: 『새해의 책, 짧은 이야기들』 『어린이를 위한 이 야기와 전설』(1872)<br>1873년 8월 28일 로슈포르 항에서 ‘비르지니’ 호를 타고 누벨칼레도니로 출발함. 4개월간의 항해 끝에 누벨칼레도니에 도착.<br>1873년 12월 10일 뒤코 반도의 눔보에 정착함. 루이즈 미셸은 현지 원주민인 카나크 족에게 글을 가르치고 그들의 문화를 연구하며 교류했다. 1878년 그들의 봉기 때 이들을 지지함.<br>1879년 누메아에 학교를 개교함.<br>1880년 11월 파리 코뮌 가담자들에 대한 전면 사면령(7월)이 내려진 후, 유배자 전원 사면. 파리로 귀환.<br>사회 진보를 위한 투쟁<br>1880년 11월 21일 엘리제-몽마르트르에서 강연. 이후 수백 차례 강연 시작.<br>1881년 1월 4일 10만 명의 군중 앞에서 블랑키의 추도사를 낭독함. 1881년 7월 런던에서 열린 국제 무정부주의자 대회에 참석함. 주요 저서: 『마지막 파업』(1881) 『비참함』, 『청년 이본』, 『나딘』, 『프로메테우스』(1882) 『제국의 사생아』, 『민중의 딸』, 『농민들』 (1883),『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와 전설』(1884)<br>1882년 2월 24 일 마리 페레 사망.<br>1883년 3월 9일 에밀 푸제와 함께 앵발리드에서 실업자 시위(검은 깃발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유명한 시위)를 주도했다가 체포.<br>1883년 3월 체포된 후, 그해 6월에 6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nbsp;<br>1885년 클레르몽 중앙교도소로 이송됨. 1월 3일어머니 사망. 5월22일 스승이자 오랜 친구였던 빅토르 위고 사망,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함.<br>1886년 1월 17일. 대통령 특별 사면으로 약 2년 10개월 만에 출소. 르 발루아-페레의 빅토르 위고 거리 89번지에 거주. 주요 저서: 『카나크족의 전설과 서사시』(1885),『인간 미생물』,『회고록』 (1886),『새로운 시대』,『마지막 사상』,『칼레도니아 회상』(1887)<br>1888년 1월 22일 르아브르에서 연설 중 피에르 뤼카에게 총격을 받아 부상당함. 그러나 가해자에 대한 고소를 거부함. 주요 저서:『순환체계에 따른 백과사전 강독』,『붉은 수탉』,『새로운 세계』,『시대의 범죄들』<br>1890년 4월 30일 생테티엔과 비엔에서 강연.<br>1890년 7월 29일 런던으로 망명(~1905) 샤를로트 보벨과 함께 학교를 개교. 주요 저서:『점령』,『가불레트의 딸들』<br>1895년 세바스티앵 포르와 무정부주의 신문 《리베르테르》를 창간. 1896년 7월 27일 런던 국제 사회주의자 대회 참석. 무정부주의자들과 사회주의자들의 분열을 목격.<br>1897년 세바스티앵 포르, 샤를로트 보벨과 함께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강연 활동.<br>1898~1903년 장 비옹과 함께 프랑스 전역을 순회하며 강연하고, 이후 에르네스트 지로와 함께 알제리에서도 강연함. 인권 결사에 가입함. 주요 저서: 『코뮌: 역사와 회상』, 『꿈』, 『코뮌』(1898년)<br>1904년 5월 16일 폐렴으로 고통받으며 유언장을 작성함. 테오필 페레의 묘 근처, 르발루아-페레 묘지에서 어머니 곁에 묻히기를 요청. 주요 저서:『코뮌 이전』<br>1905년 1월 9일 마르세유의 오아시스 호텔(현재의 DUC 호텔)에서 별세. 1905년 1월 21일 르발루아-페레에서 장례식이 거행됨.<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7/9/cover150/k302136372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970959</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영화/연극</category><title>인간은 기계를 만들고 기계에 먹히며 기계를 먹는다 &amp;lt;미래의 범죄들&amp;gt;</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66920</link><pubDate>Sun, 22 Mar 2026 23: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66920</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032825&TPaperId=1716692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15/50/coveroff/k51203282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br><br><br>신체적 고통은 살아 있는 인간에게 가장 큰 문젯거리다. 고통을 자각하는 건 동물도 마찬가지이지만, 인간의 뇌는 물리적 고통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과 세계 구조 사이의 연결성을 의식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보다 치명적이다. 동물은 고통에 즉물적으로 반응하다가 극에 달하면 죽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고통을 없애거나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강구해왔다. 그래서 고통이 완화되거나 사라지기도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전이되기도 한다.<br>기계와 섞여 변형되는 인간의 몸<br>신체의 고통은 몸을 가지고 태어난 모든 만물에게 불가피하다. 바이러스나 병원체에 의해서든, 사고에 의해서든, 또는 애초에 몸이 지닌 자기 재구성 과정의 한 방식으로든 고통은 상시적이다. 고통에 대한 불안이나 암시는 정신적 스트레스로도 이어진다. 병에 걸리지나 않을까, 혹은 사고나 자연재해에 희생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은 삶의 기본 전제마저 되짚게 만들기도 한다. 그에 대한 대처 능력을 마련하려는 것 자체가 때로 더 큰 고통을 생산하기도 한다. 고통은 삶의 기본 조건과도 같다. 그래서 고통은 모든 철학과 과학의 주요 전제가 된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는 그로 인해 변형되는 인간의 물리적 형질 및 신체와 기계 문명 사이의 기묘한 접합 또는 분열 양상에 대해 줄곧 탐구해 온 감독이다.&nbsp;<br>그의 영화는 짐짓 뚱딴지같으면서도 초지일관하는 면이 있다. 작품 대부분이 SF나 B급 호러 사이 어디에선가 혼자만의 괴이한 공간과 물질(특히 인체)을 창조해 낸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SF나 호러 전문 감독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도 없다. B급 호러의 형식을 취한 초기 작품들도 특유의 신체 변형과 기계 문명의 뒤틀린 비전을 독특하게 뒤섞은 묵직한 메시지로 독창성을 드러냈었다. 그리고 그 괴이한 독창성이 온갖 편견과 숭앙의 갈림길이 되었다. “내 영화가 난해하다고? 이 사람아, 세상이 더 난해해!”라며 느긋하고 건조하게, 옆구리 쿡쿡 찌르는 듯한 일침을 나로선 꽤 즐기는 편이다.&nbsp;<br>그중 &lt;크래시&gt;(1996)는 내게 아직도 각별하게 남아있다. 크로넨버그가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G. 발라드의 문제작(1973년에 초판이 나왔다)을 그대로 영상에 옮긴 작품이다. 소설이 발표됐을 때도, 영화가 개봉됐을 때도 극심한 논란이 일었다. 역겹고 비틀리고 왜곡된 성 관념으로 인간을 모욕하는 작품이라는 악평도 드셌다. 결국 엽기적인 포르노그래피에 불과하지 않겠냐는 비난인 것인데, 영화화되기 직전 제임스 발라드는 이런 발언을 했다.&nbsp;<br>&nbsp;"나는 『크래시』 도처에서 자동차를 하나의 성적 이미지로써 현대 사회의 삶에 대한 총체적 은유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이 소설은 성적 내용과는 별도로 꽤나 정치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크래시』가 테크놀로지를 근간으로 한 최초의 포르노그래피 소설이라 여기고 싶다. 어떻게 보면, 포르노그래피는 가장 옥죄고 무자비한 방식으로 인간이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이용하고 착취하는지를 다룬 가장 정치적 형태의 소설이기 때문이다.”- 『크래시』 (제임스 발라드, 김미정 옮김, 그책, 2011) ‘들어가는 말’에서&nbsp;<br>50년 전에 쓰인 원작 소설과, 3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 자동차와 섹스하며 기존 도덕률을 무참할 정도로 까뭉개는 그 작품의 강렬도는 여전히 유효하고 치명적이다. 남녀가 대놓고 보란 듯 벌거벗은 채 살을 섞는 영상은 이제 포르노그래피 축에도 못 낀다. 세계의 모든 사건과 사고를 전하면서 서로를 “이용”하고 “착취”하는 가상 시스템의 전파력 자체가 무엇보다 농밀한 포르노그래피의 전시장인 것이다. 정치가, 언론이, 그리고 그 모두를 아우른 테크놀로지의 이념이 현재 그러하다. &lt;크래시&gt;는 그렇게 벌어지고 깨진 ‘틈’을 훤히 들여다보라고 쓰이고 만들어진 작품이다.&nbsp;<br>오래전부터 인간은 포르노그래피의 노예였다. 포르노그래피는 의외로 모든 걸 보여주지 않는다. 보지 말라고 눈 감게 하거나, 듣지 말라고 귀를 막는 게 포르노그래피의 진짜 목적이다. 내가 나임을, 그리고 당신이 당신 자신을 분명히 깨닫게 되는 순간, 망념의 쇼가 끝나고 진짜 인생이 시작될 테니까. 진짜 인생이 가득해지면 가짜로 꿀을 바르고 가짜로 피를 바른 것 앞에서 당신의 욕망은 세상의 ‘진짜’를 알려고 들 테니까. 그때, 세상은 멸망한다. 가치 판단은 없다. 멸망은 여전히 ‘근미래’다. 가깝지만, 아직 알 수 없는 미래. 이미 세상은 미래마저 잡아먹고 있다.<br>그런 의미에서 크로넨버그는 집요하고 줄기차다. 인간의 육체와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를 뒤섞은 그만의 독특한 과학적이고도 묵시록적인 은유 체계가 &lt;미래의 범죄들&gt;로 향했다고 할 수 있다. 인간 진화의 끝. 이 영화는 그가 평생(벌써 여든을 훌쩍 넘겼다) 만들었던 영화의 종합판으로 여겨진다.&nbsp;<br>노년 거장, 자신의 작품들을 종합하다<br>2022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대되어 기예르모 델 토로가 격찬했다는 뉴스 한편엔 영화 시작 10분 만에 극장을 뛰쳐나간 관객이 수두룩했다는 소식도 있다. 과연 크로넨버그 영화다운 반응이다. 한국 개봉은 아직 예정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개인적인 의견을 여담 삼아 얹자면, &lt;폭력의 역사&gt;(2007) 이후 그의 페르소나가 된 비고 모텐슨은 이 영화에서 실제로 외모가 크로넨버그를 연상케 한다. 말을 타다가 허리를 다쳐 영화 중 절반 이상을 누워있는 연기로 일관했다는 건 굉장히 아이러니하기도 적확하기도 하다. 그가 연기한 행위예술가 사울 텐서는 여러모로 크로넨버그 자신의 모습이라 여겨졌다. 괴이하고 묵시록적인 주제를 상상 그 이상의 영상 테크닉으로 충격을 안겨주는 예술가의 초상. 이 영화가 왠지 자전적이라는 느낌은 나만의 것일까.&nbsp;<br>영화는 어느 바닷가에서 시작한다. 옆으로 뒤집힌 채 바다에 반쯤 침몰한 배(유조선?)가 보이고 한 아이가 갯벌에서 숟가락으로 진창을 뒤적거리고 있다. 멀리서 아이의 엄마가 아이에게 외친다. “아무거나 먹으면 안 돼!” 아이는 일견 평범해 보인다. 이 대사가 뭘 의미하는지는 얼마 안 가 밝혀진다. 곧이어 아이가 화장실에서 플라스틱 쓰레기통을 비스킷인 양 야금야금 뜯어먹는 장면이 나온다. 참다못한 아이 엄마가 침대에 누워있는 아이를 베개로 눌러 질식사시킨다. 그러면서 인간의 장기 변화로 인한 식성 및 성격, 나아가 신체의 변형을 모티프 삼아 행위 예술을 구현하는 사울 텐서의 작업장이 나온다.&nbsp;<br>사울은 인간의 장기 형태로 꿈틀대는 침대에서 잠을 자는 중이다. 레아 세두가 연기한 조력자 카프리스가 곧바로 등장한다. 아무거나 먹는 아이와 사울의 퍼포먼스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밝히는 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생략하겠다. 그 이후 이야기들도 마찬가지다. 크로넨버그의 작품들은 스토리를 알려주는 것으로 힌트를 얻을 게 거의 없는 영화이다. 그의 작품은 직접 체험하는 것만이 제대로 된 감상법이라 할 수 있다. 그 체험은 단순히 객석에 앉아 눈과 귀를 열어 두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너무 황당하고 엽기적이어서 되레 내가 죽을 때까지 직접 확인할 수 없는 몸속 내장들을 들여다보는 느낌마저 든다. 그걸 어찌 일설로 다 안내할 수 있으랴.&nbsp;<br>인간은 욕망으로 진화하여 욕망으로 종말한다<br>크로넨버그는 2013년 &lt;코스모폴리스&gt;를 만든 적 있다. 하루 종일 거대한 리무진에서 생활하며 온갖 투자를 통해 뉴욕을 지배하는 젊은 자본가가 주인공인 영화다. 이 영화 역시 그저 상류사회의 호화판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끝나는 영화가 아니다. 크로넨버그는 일명 ‘바디호러’라 불리는 스타일의 영화 외에도 &lt;스파이더&gt;(2005), &lt;폭력의 역사&gt;(2007), &lt;이스턴 프라미스&gt;(2008) 등 인간의 심리 기저에 잠복한 폭력성과 피해의식, 그리고 그것들을 점점 극대화시키는 세계 전체의 체계와 자본의 음모 등을 끈적끈적하게 그려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와 카를 융의 애증 관계를 기묘한 심리 스릴러로 표현한 &lt;데인저러스 메소드&gt;(2012)는 그나마 온건(?)한 편에 속한다. 앞서 &lt;미래의 범죄들&gt;이 크로넨버그 영화의 종합판 같다는 건 그런 의미다.&nbsp;<br>기계 문명과 인간 사이의 죽이고 살리고 먹고 먹히면서 첨단과 파멸을 공유하는 설정, 그리고 그 안에 내재한 인간의 원시적 섹슈얼리티와 폭력성에 대한 진단, 자연적 진화를 지나 점점 다른 물질로 변해가고 있는 인간에 관한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통찰들. 그런 주제를 믿기 힘든 물질들을 재구성해 각성케 하는 영화를 보다가 뛰쳐나가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미 자신도 모르게 얽혀있는 세계의 첨예한 음모에 질려버린 탓일지도 모른다. 세계의 어느 심원한 밑바닥에서 캐어낸 진귀하고 색다른 구성체를 통해 인류의 미래를 끊임없이 반추하고 속도를 제어하는 각성의 진미를 느껴버린 사람 또한 별반 다를 것 없다. 세계는 이미 인간이 나아갈 바를 인간 스스로 정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 시발은 결국 인간의 욕망이었고, 그 종말 역시 인간의 욕망을 폭력으로 대체하는 인간의 오만에 의할 것이다.&nbsp;<br>기계들이 있고 인간이 있다. 인간의 과학적 확증과 오만을 통해 만들어진 기계들은 인간에게 편의를 제공해 왔다. 하지만 기계 문명이 진보할수록 거기서 발생한 본질적 폐해들이 거꾸로 증명된다. 그리고 그러한 역류가 악과 정의에 대한 새로운 표본을 제시하며 인간 자체를 병들게 한다, 문장이 복잡한가. 사실 자체가 복잡한 것인데, 인간 대부분은 그 사실 자체의 복잡성에 대해 숙고하는 걸 괴로워한다. 아무리 기계가 인간의 통증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 줄 수 있더라도, 모든 병이 그렇듯, 근본 치료는 인간이 왜 병들 수밖에 없는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거쳐야 할 것이다. 어쩌면 그 성찰 자체가 만병통치의 중심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 역시 인간에겐 궁극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이 복잡한 존재의 사슬을 잠시나마 일깨워주는 장면이 있다.<br>인간은 잘못 만들어진 로봇인가<br>​눈과 입을 꿰맨 채 온몸에 수십 개의 귀가 붙어있는 댄서가 춤을 추는 장면. 굉장히 명상적이고 종교적인 느낌마저 든다. 보지도 먹지도 못하게 구속된 육체로 수십 개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과연 어떤 소리일까. 춤은 격렬하기도 나긋하기도 하다. 댄서는 아무 표정이 없다. 물론, 수십 개의 귀는 사울이 인공적으로 장착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퍼포먼스가 그렇듯, 이것은 그저 하나의 쇼에 불과하다. 사실, 자본과 정치가 작동하는 체계도 쇼의 속성을 지녔다. 그리고, 영화도 당연히 쇼다. 그런데 그 쇼가 이미 몸과 정신에 내장된 실체처럼 세계라는 장기판을 들었다 놨다 하는 세상. 진실도 정의도 악도 폭력도 그렇게 꾸며지고 가공된다. 인간은 이제 만들어 붙여진 수십 개의 귀처럼 인간 스스로를 가공하고 고통을 위장한다. 위장함으로써 없애려 한다. 인간은 이제 잘못 만들어진 로봇과도 같다. 죽음을 물질화한 것을 먹고, 물질이 된 죽음을 살고 있는 것이다. 자각은 역시 각자의 몫이다.&nbsp;<br> <br><br>  &nbsp;  ​  &nbsp;    &nbsp;    &nbsp;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15/50/cover150/k5120328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155047</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영화/연극</category><title>영화를 보고 쓴다는 것은 </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66903</link><pubDate>Sun, 22 Mar 2026 23: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66903</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12032825&TPaperId=1716690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15/50/coveroff/k512032825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영화는 처음 어둠에서 탄생했다. 물론, 역사에 기록된 바로는 1895년 12월 28일 프랑스 파리에서 뤼미에르 형제가 처음 상영한 것이 최초의 영화로 기록되어 있다. (공교롭게도 ‘뤼미에르(Lumière)’는 ‘빛’을 뜻한다). 그들은 세상이라는 어두운 벽면에 새로운 문명의 빛을 쏘았다고도 할 수 있다. 정확히 130년 전이다.  &nbsp;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만이 아니다. 영화는 본래 어둠 속에 빛을 비추는 것으로 시작한다. 영화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영화가 지금도 그렇다. 영화 감상의 태도 및 생태계를 전면적으로 바꾸어 놓은 OTT 채널 감상 등 가정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nbsp;  어떤 물리적 조명(照明)의 유무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일종의 비유나 상징으로 여겨도 된다. 또는 그런 식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내 고집을 투사하는 것이라 봐도 부인하지 않겠다. 단지, 내게 영화란 어둠을 먹고 사는 물질적 환영이라는 사실만 강조하고 싶다.  &nbsp;  나는 영화 평론가도 아니고, 영화 종사자도 아니다. 그저, 오랫동안 시를 쓰고 때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영화와는 아주 가까울 수도 있고, 때론 상반되거나 빗나갈 수도 있는 예술적 지향을 지닌 사람일 뿐이다. 자신을 스스로 ‘어떠어떠한 사람’이라 규정하는 건 지나친 자기 비하나 자기 치장에 가까울 것이나, 내가 종종 이 세상의 중심에서 어느 정도 엇나간 위치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느낌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그 ‘엇나간 시선’으로 바라본 영화 모음집이자, 그 ‘엇나감’의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에 대한 감상이라 해도 무방하다.  &nbsp;  영화보다, 드라마보다 흥미진진하고 황당무계한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는 현실이다. 딱히 요즘만 그런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소위 ‘상식과 표준’이라는 것 자체를 오도하고 호도하는 일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래서 되레 ‘상식과 표준’의 본질을 따져 묻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상식과 표준’ 자체가 때론 인간을 억압하고, 눈 귀를 가리며, 사지를 친친 감아 버리기도 한다. 영화는 그 이상한 현실의 역설을 역상으로 되비추는 거름판과도 같다. 그래서 생각해 보는바, 영화는 오히려 더 현실보다 낯설고 고유한 방식으로 존재함으로써 현실이 가려버리는 어떤 흑막(?)들을 거꾸로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영화들은 그런 기준으로 내게 포착된 작품들이다.   &nbsp;  반복건대, 영화는 어둠에서 처음 탄생했다. 그 ‘어둠’은 현실이 감추고 있거나 현실을 감추고 있는 무언가의 흑막과도 같다. 누가 조작했는지, 혹은 어떻게 사람의 눈 귀를 가리면서 허상의 빛에 홀리도록 만들었는지를 새삼 따지는 건 별로 유효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세상에도,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속에도 ‘어둠’은 항상 존재한다는 근본 사실만 따져본다. 시공 포괄하여 세계는 어둠 속에서 작동한다. 삶과 세계의 이면과 후면이 모두 쉬이 판별할 수 없는 어둠 속인지도 모른다. 거기에 누군가 총을 쏘듯 빛을 쏜다. 현실에서 떼어낸 듯 여겨지는 어떤 형상과 소리와 이야기들이 허공에서 빛의 너울로 일렁인다. 현실을 투영했다는 그것으로 오히려 현실을 뒤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게 내가 영화를 감상하는 기본이다. 내게 영화는 망상의 거울과도 같다. 그러니까 그것은 나의 현실이기도, 나의 꿈이기도 하다. 그 모든 사념을 배반하는 심정으로 독자들은 이 책을 받아들이든, 거부하든 하시라.   &nbsp;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를 총 한 자루를 건네는 기분이다. 탄창엔 총알이 단 한 발 남았을 수도, 꽉 차 있을 수도 있다. 방아쇠를 당기면 진짜 죽을 수도, 다시 살 수도 있다. 죽든 살든, 새삼 현실도 영화도 더없이 낯설어진다면 이 책은 그나마 효능 있는 물건으로 누군가에게 남을 것이다.<br> <br>  &nbsp;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515/50/cover150/k51203282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5155047</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루이즈 미셸,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뜨거움</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60369</link><pubDate>Thu, 19 Mar 2026 20: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6036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6372&TPaperId=171603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7/9/coveroff/k302136372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오늘날까지도 1871년 파리 코뮌 당시 '붉은 처녀'로서 명성을 얻은 루이즈 미셸은 프랑스 좌파의 영웅으로 남아 있다. 카를 마르크스가 대영박물관에 앉아 팜플렛을 쓰고 있을 때, 미셸은 파리의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프랑스 정부군과 맞서고 있었다. 그녀의 동시대 인물들이 이제 막 식민주의를 비난하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뉴칼레도니아의 죄수 신분으로 1878년 카나카(Kanaka) 봉기에 참여했다.&nbsp;<br>그녀가 남긴 이 회고록은 인간의 꿈을 향한 기념비로 서 있다. 변방의 보잘것없는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가 자유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자유까지 교조적 이론이 아닌 마음에 이끌려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음을 , 미셸은 자신의 회고록과 삶을 통해 증명했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br>1830년 5월 29일 사생아로 태어난 루이즈 미셸은 오트마른(Haute-Marne)에 있는 반쯤 허물어진 요새화된 저택에서 어머니와 친조부모의 손에 자랐다. 그녀의 친할아버지 에티엔 샤를 드마이(Etienne-Charles Demahis)는 귀족의 후손이었으나, 1789년 프랑스 혁명에 대한 공화주의적 지지의 표시로 자신의 성을 '드 마이(De Mahis)'에서 덜 화려한 '드마이(Demahis)'로 바꾸었다.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인인 마리 안(또는 마리안) 미셸과 더 이상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그의 아들 로랑 사이에서 루이즈가 태어났을 때 브롱쿠르(Vroncourt) 마을의 시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루이즈는 마치 적통인 드마이 가문의 손녀처럼 양육되었고, 친조부모가 사망한 후 여교사가 되어 처음에는 오트마른에서, 나중에는 파리에서 가르쳤다. 그녀는 혁명적인 꿈을 꾸기 시작했고, 루이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2제국이 황혼에 접어들 때 급진적인 활동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다. 1870년 보불전쟁과 프로이센의 파리 포위 공격 당시, 그녀는 수 세기 동안 불만을 품은 빈민들이 거주해 온 몽마르트르 지역 혁명 단체의 주요 일원이었다. 1871년 3월부터 5월까지, 파리 시민들이 정부가 자신들의 공화국을 훔치려 한다고 믿고 반란을 일으킨 파리 코뮌 기간 동안, 미셸은 사건에 더욱 깊숙이 개입하며 봉기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br>‘피의 일주일’ 1871년 5월 베르사유 정부군이 코뮌을 진압했을 때, 미셸은 붙잡혀 재판을 받고 유배형을 선고받았다. 그녀는 1873년 죄수 호송선을 타고 뉴칼레도니아로 이송되었다. 6년 동안 수도 누메아 인근의 형벌 식민지에서 가혹한 조건 속에 살았으며, 이후 수도에서 제한적인 자유를 누리며 지냈다. 여론의 압박에 따라 정부가 코뮌 가담자들에게 내린 1880년 일반 사면령 이후, 그녀는 프랑스로 돌아와 대중의 환호를 받았다.<br>미셸이 귀국했을 때 거대한 대중 집회가 그녀를 맞이했으나, 그녀가 혁명진영 내에서 자리를 잡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녀는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에 무지했고, 급진 세력 내에서 권력과 영향력을 얻은 인물들은 자신들의 지위를 그 어떤 '전설'에게도 내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프랑스 노동자 계층으로부터 얻는 대중적 지지는 여전히 엄청났으며, 이후 몇 년간 파리와 지방, 그리고 해외에서 열린 그녀의 강연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소란을 이룰 정도였다.<br>1882년 미셸은 치안 문란 죄로 체포되어 2주간 감옥에서 보냈다. 이어 1883년 봄, 앵발리드에서 열린 ‘빵과 일자리’시위 직후, 그녀는 무정부주의를 상징하는 검은 깃발을 들고 파리 전역에서 군중을 이끌었다. 그녀는 폭동을 일으키고 추종자들에게 빵집 약탈을 선동한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 재판에서 실질적인 변론을 거부한 그녀는 6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3년 후 사면된 그녀는 단호하게 강연과 집필 활동을 이어갔으며, 급진적인 대중은 그녀를 '위대한 시민(la grande citoyenne)'으로 예우했다. 1890년부터 1905년까지 영국에 머물며 유럽을 돌며 강연 투어에 나섰으며 1905년 그녀가 사망했을 때도 강연 투어 중이었다. 그녀의 장례식은 수만의 인파가 참여한 가운데 프랑스의 3대에 걸친 혁명 정서가 거대하게 쏟아져 나오는 계기가 되었다.<br>루이즈 미셸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어린 시절 억압받는 이들에 대해 품었던 막연한 동정과 이후 유토피아적 혁명에 바쳤던 막연한 헌신을 거쳐 무정부주의라는 신념에 도달했다고 선언한다. 그녀는 훗날 자신의 무정부주의로의 전향이 죄수 호송선 비르지니(Virginie)호를 타고 뉴칼레도니아로 가던 넉 달의 항해 중에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녀는 자신을 개종시킨 나탈리 르멜(Natalie Lemel)과 여정을 함께했었다. 미셸은 회고록에서 1883년 1월 무정부주의자들의 '리옹 선언문'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고 기술한다. 그녀는 회고록에 "나는 그곳에 기록된 모든 사상을 공유한다"라고 적으며 해당 문서의 전문을 인용했다.<br>하지만 미셸의 무정부주의는 이론적이라기보다 감성적이었다. 사실 그녀는 당대와 과거의 혁명 저작물들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녀가 라메네(Lamennais)를 읽은 것은 확실하며, 프루동(Proudhon)을 읽었을 가능성도 크다. 블랑키(Blanqui)나 바쿠닌(Bakunin)의 사상은 당시 널리 퍼져 있었기에 당연히 알고는 있었겠지만, 그들의 저작을 직접 읽었을 가능성은 낮다. 마르크스주의는 회고록에서는 거의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데, 이는 그녀가 마르크스주의를 본격적으로 접한 것이 회고록 출간 수년 후인 1890년대였기 때문이다.&nbsp;<br>그녀는 소유권에 대한 관점, 착취에 대한 인식, 과학의 역할에 대한 주장, 그리고 인류의 근본적인 선함에 대한 비전에서 전적으로 일관성을 유지했다. 마찬가지로 사회 혁명에 대한 염원에서도 그녀는 그 형태와 성격에 대해 일관적이었다. 즉, 혁명이란 불의와 착취에 대항하여 민중이 일으키는 자발적인 봉기여야 한다는 점이었다.&nbsp;<br>민중의 자발적 봉기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간접적으로나마 그녀가 많은 무정부주의자가 택했던 테러의 승인에서 한 발 비켜나가게 한다. 암살은 도구로서 아주 가끔만 언급한다. 한 번은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살해하는 것을 논했고, 또 다른 때는 아돌프 티에르를 암살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두 사람을 살해하기 위한 어떤 구체적인 준비는 하지 않았다. 이와 유사하게, 그녀가 폭발물을 사용한 유일한 사례는 동상을 폭파하려다 실패한 시도뿐이었다. 그녀는 "폭군 살해는 폭정의 머리가 하나이거나 기껏해야 적은 수일 때만 실용적이다. 그것이 히드라(머리가 여럿인 괴물)일 때는 오직 혁명만이 그것을 해낼 수 있다"라고 적었다. 그녀는 혁명의 모든 지도자가 혁명을 완수하는 과정에서 전사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도 언급했는데, 그래야만 민중이 살아남은 참모진과 다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러면 어떻게든 무정부주의적 꿈이 실현되리라는 것이었다.<br>E. H. 카(E. H. Carr)의 적절한 표현을 빌려 "낭만주의 교리의 논리적 결말"이라고 불리는 무정부주의는 정의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하지만 그 핵심—개인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모든 형태의 정치 조직에 대한 혐오, 인간의 타고난 선함에 대한 믿음—은 미셸의 생각과 너무나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져서, 미셸이 무정부주의를 찾은 것인지 무정부주의가 미셸을 찾은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회고록을 집필할 당시 그녀는 진보가 필연적이며, 정부는 그 어떤 정부든 악하다는 점을 확고하게 믿었다. "권력은 악이다"라는 그녀의 진술은 모든 무정부주의 체계의 핵심을 형성한다.<br>그녀는 역사를 자유로운 인류가 어떻게든 노예화되어 온 이야기로 보았으며 과거에 대한 관심은 미래에 대한 희망만큼이나 컸다. 과거에 대한 그녀의 비전이 비록 신화와 괴물로 가득 찬 낭만적인 것이었을지라도, 그것은 미래에 대한 그녀의 낭만적인 꿈과 쉽게 조화를 이루었다. 그녀에게 과거와 미래는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었다.<br>안타깝지만, 미셸의 희망—그리고 역사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무정부주의라는 낭만적인 꿈은 미래의 물결이 아니라 쇠퇴해가는 세력이었다. 수치상으로 볼 때 프랑스에서 무정부주의가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1890년대의 폭력 사태 이후부터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전까지의 기간이었으나, 그 수십 년 동안 무정부주의의 단순하고 직접적인 힘은 노동자 자치조직, 다양한 노선과 전략을 품은 노동총연맹(CGT), 그리고 정파 간의 내분 속으로 흡수되어 버렸다. 루이즈 미셸이 꿈꾸었던 무정부주의, 즉 사회 혁명과 착취의 종말로 이어지는 형태 없는 민중 봉기는 세부 사항과 방법론을 둘러싼 화해 불가능한 말다툼 속으로 사라졌다. 그 꿈은 흩어지더니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br>미셸은 이론가가 아니었던 것처럼 조직가도 아니었다. 시위와 조직을 구상하는 초라하고 어두운 방들은 미셸을 위한 곳이 아니었다. 그녀는 1882년 한 연설에서 "모든 혁명이 불충분했던 이유는 그것들이 정치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조직이 불필요하다고 믿었는데, 가까운 시점에 가난하고 착취당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날 것이며, 압도적인 수와 의지의 힘, 그리고 그들 명분의 정당성을 통해 구체제가 자신들 앞에서 시들어 버리게 될 것이라고 단호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nbsp;<br>이론가도 조직가도 아니었던 미셸은 프랑스 급진파들 사이에서 또 다른 역할을 채웠다. 베를렌은 그녀를 "잔 다르크에 가까운 인물"이라 불렀다. 무정부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분명 낭만주의자였던 빅토르 위고는 어느 시의 초고 제목을 '루이즈 미셸'이라고 지었으며, 「남자보다 위대한(Viro Major)」으로로 제목이 바뀐 이 긴 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br>"아는 이들은 알리라... 모두를 위해 바쳐진 당신의 나날들, 밤들, 심려들, 눈물들을, 타인을 돕느라 스스로를 잊어버린 당신을, 사도의 불꽃과도 같은 당신의 언어들을, 비인간적인 모든 것들을 향한 당신의 긴 증오의 시선을, 그리고 당신의 두 손으로 녹여주던 아이들의 발을..."<br>위고는 미셸이 영웅적이거나 도덕적이지 않은 일은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위고는 미셸이 다음과 같은 존재라고 결론지었다.​"...두 정신이 뒤섞인 존재 ...거대하고 폭풍우 치는 심장 밑바닥에서 보이는 별과 같은 것들의 신성한 혼돈 ...불꽃 속에서 보이는 광채<br>당신은 여인의 몸을 하고 있지만, 그 영혼은 위대한 남성(Viro Major)보다 더 거대하다."<br>모든 운동에는 예언자와 입법자, 죄인과 변절자, 순교자와 성인이 필요하다. 프랑스 무정부주의자들에게 미셸은 순교자이자 성인—즉, '붉은 처녀'였다.<br>미셸의 지적 호기심은 엄청났고 지식에 대한 갈증은 갈구해도 끝이 없었다. 그녀의 회고록 전반에는 음악, 악기, 교수법, 동물 학대, 여성의 지위, 카나리아 제도에서 통용되는 화폐, 곤충, 카나크 원주민 인류학, 날씨, 식물학 등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주제들이 흐르고 있다. 목록은 끝이 없다. 어린 시절 그녀는 자신의 탑 방에 동물 해골을 수집했다. 파리에서 여교사로 지낼 때는 바쁜 수업 일정에도 불구하고 물리, 화학, 역사, 심지어 법학 수업까지 청강했다. 감옥에서는 책과 시를 썼고, 뉴칼레도니아에서는 동식물의 목록을 작성하고 파파야 나무의 황달병 예방 접종을 실험하기도 했다.<br>그녀가 회고록에서 드러낸 내면의 삶은 분명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전설, 맹수, 민속 영웅들이 그녀의 환상 속에서 뒤섞였으며, 그녀는 자신의 환상과 현실을 결코 구분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초기 생애가 "꿈과 학업으로 이루어진" 시기였으며, 이는 삶의 두 번째 부분인 "투쟁의 시기"를 위한 준비였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파리 포위전과 코뮌이라는 깨어 있는 현실 속에서도 자신이 꿈속에서 보았던 대로 행동했다. 꿈과 행동은 하나였으며, 그녀의 마음속에서 이 둘은 외견상 구분이 불가능했다. 어린 시절에 놀이처럼 상연했던 교수대 연극의 연설을 그녀는 1871년 재판관들 앞에서 실제로 쏟아냈다.<br>사람들은 자신만의 드라마를 만들고 그 안에서 주연을 맡기 마련인데, 미셸은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는 인상을 주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드루이드 여사제, 발키리, 베스탈 처녀(성스러운 처녀)로 여겼으며, 기이한 악령과 신비로운 환영 등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그녀의 실재 삶 속을 지나갔다. 1860년대의 어느 날, 그녀는 친구 빅토린과 함께 어린 시절 집 근처의 깊은 숲속을 걸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숲속을 거의 소리 없이 가로지르며 늑대 한 마리가 그들 곁에서 발맞추어 걸었다고 한다. 늑대가 정말 그곳에 있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1860년대에는 오트마른 지역조차 늑대의 수가 적었으나, 그 맹수는 미셸의 마음속에 분명하고 진실하게 존재했다.<br>본문의 주요 준비 과정이 감옥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셸이 공적인 기록이 있는 사건들을 서술할 때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뉴칼레도니아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투옥되지 않았을 때조차 매일 경찰 요원들의 감시를 받았다. 그들의 보고서가 남아 있기에, 1881년부터 1883년까지 그리고 1886년부터 1889년까지의 그녀의 삶은 객관적이지는 않을지언정 뒷받침할 만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어린 시절과 여교사 시절에 대해서는 그녀의 기억이 거의 유일한 기록이다. 그녀가 묘사하는 일부 태도들은 오직 그녀의 입을 통해서만 진실로 남을 것이다. 아마도 미셸은 환상을 구축한 뒤 그것을 실현하며 살았거나, 혹은 회고적으로 환상을 활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회고록 집필자 외에 자기의 삶을 다시 한번 살 기회를 얻는 사람은 거의 없다.<br>미셸은 회고록이 빠지기 쉬운 자기과시로부터 놀라울 정도로 자유로우며, 심지어 자신의 중요성을 소홀히 다루기까지 한다. 그녀는 코뮌 기간 여성 감시 위원회의 일원이었다. 파리 포위 공격(파리 포위전-보불전쟁) 당시 그녀는 조르주 클레망소의 도움 덕분에 약 200명의 아이를 보살피며 일상적인 복지를 책임졌고 그 일을 아주 잘 해냈으나, 그녀의 회고록에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비록 그녀의 재판 중 하나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되기는 하지만). 뉴칼레도니아 유배에서 돌아온 후, 그녀는 런던에서 열린 크로포트킨의 국제 회의에 프랑스 대표로 참석했다. 그녀는 그 여행을 언급하기는 하지만, 그곳에서의 자신의 역할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br>때때로 그녀의 회고록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장엄한 몸짓으로 매혹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그것이 정확한 사실이 아닌 경우도 있지만, 1886년의 이러한 서술들은 루이즈 미셸이 자기의 삶을 진정으로 바라보았던 방식이거나, 혹은 타인에게 드러내려 했던 방식을 나타낸다. 그 효과란 그녀에세 선전의 의미일 것이며 어쩌면 그녀 스스로도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물론 이 회상록은 미셸의 사랑하는 어머니가 세상을 뜬 상황에서 쓰였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쉰여섯 살의 이 혁명가는 모든 것을 혁명에 희생했다. 아마도 자신이 처한 현재의 모습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녀는 어린 시절의 자아를 훗날의 혁명가 모습으로 소급하여 만들 수밖에 없었을지도. 이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nbsp;<br>할아버지의 볼테르적 가르침 덕분에 처음부터 단호하게 반교회적이었다고 자신을 묘사하려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겉보기에 적절히 종교적인 아이였다. 경건한 고모의 열렬한 가르침을 통해 그녀가 신비주의적 가톨릭에 매료되었던 흔적들이다. 이는 훗날 혁명가로서 열정에 모종의 신비로운 에너지를 발휘한다.&nbsp;<br>프랑스로 돌아오자마자 미셸은 곧바로 급진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 기간 중 그녀의 친구 마리 페레(Marie Ferré)가 사망했으나, 미셸에게 사건의 정점은 리옹에서 열린 '66인의 재판(Trial of the Sixty-eight)'이었다. 정부는 크로포트킨과 고티에를 포함한 많은 지도자를 파멸시킴으로써 무정부주의 운동을 꺾으려 했다. 미셸은 재판 초기에 영국에 있었으나 마지막 단계에 참석했고, 비록 기소되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수감자들과 동일시했다. 66인의 유죄 판결 이후 그녀는 무언가 해야 한다고 느꼈다. "내가 왜인지 모르겠지만 허용된 자유를 사용해 지구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뻗어 나갈 새롭고 거대한 인터내셔널을 소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겁함의 공범이 되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순교를 갈구하고 있었고, 1883년 4월 앵발리드에서 그것을 찾아냈다. 정부는 야만적으로 반응했고, 형식적인 재판 끝에 그녀에게 6년의 독방 구금형을 선고했다. 이는 범죄에 비해 너무나도 불균형한 형량이었기에 보수적인 신문들조차 항의할 정도였다.<br>어머니의 쇠약해진 건강은 더욱 악화되었다. 미셸은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유죄 판결 이후에도 최소 두 차례 어머니를 병문안할 수 있는 가석방 허가를 받았다. 클레르몽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도 어머니를 뵙기 위한 외출이 허용되었는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절차였다. 미셸의 전기 작가 에디스 토마스(Edith Thomas)는 이 에피소드를 논하며 19세기가 "우리 시대보다 훨씬 더 인도적인 시대였다"라고 평했다. 미셸은 1884년 12월 초, 당국이 그녀를 어머니와 가까운 파리 교도소로 이감해 준 것에 감사를 표했다. 나흘 후 내무부 장관은 미셸이 두 명의 경찰관 감시하에 어머니의 임종을 지킬 수 있도록 허가했다. 그녀의 회고록만으로는 알기 어렵지만, 미셸은 1884년 12월 11일부터 1885년 1월 3일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거의 한 달 동안 어머니 곁에 머물렀다.<br>미셸의 감정은 항상 격렬했다. 그녀의 회고록 페이지 곳곳에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점철되어 있으며, 어린 시절을 묘사할 때는 친척들에 대한 헌신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이후 젊은 여성 시절에는 자신을 따라 파리까지 온 줄리 롱샹(Julie Longchamps)과 깊은 우정을 쌓았다.&nbsp;<br>세월이 흘러도 제자들에 대한 미셸의 애정은 식지 않았다. 첫 번째 재판 당시 정부가 그녀에게 제자가 없었다고 주장하자 그녀는 격분하며 반박했는데, 정작 그보다 훨씬 더 큰 거짓말들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고 내버려 두기도 했다. 그녀는 성실하고 상상력 풍부한 교사였던 것으로 보이며, 외부의 증거들도 그러한 판단을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누메아에서 카나크족을 가르치는 데 쏟은 그녀의 헌신은 회고록에 자부심으로 담겨 있다.​미셸의 동정심은 사회의 모든 약자, 즉 가난한 이들, 노인들, 죄수들, 그리고 여성들에게 집중되었다. 그녀는 초기 페미니즘(protofeminism)을 발전시켰으나, 이는 곧 더 포괄적인 급진주의로 융합되었다. 미셸은 사회 문제를 명확히 직시했으며, 여성뿐만 아니라 많은 집단이 착취당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리하여 여성에 관한 회고록의 한 장은 사회 혁명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여성과 남성 모두가 "좋은 동반자로서 인생을 함께 걸어갈 것"을 호소하는 톤으로 변한다. 혁명이 일어난 후에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인류 전체의 권리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어느 인종이 으뜸인지를 두고 인종들이 다투지 않게 되는 것처럼, 어느 성별이 우월한지"에 대해 더 이상 논쟁하지 않을 것이다. 동물을 향한 잔혹 행위에 대한 미셸의 혐오감은 약자와 착취당하는 자들에 대한 동정심과 연결되어 있다.<br>&nbsp;"새끼가 짓밟힌 새부터 전쟁으로 보금자리가 파괴된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br>​그녀의 회고록에서 어머니에 대한 감정 다음으로 가장 격렬한 감정은 테오필 페레(Théophile Ferré)를 향해 있다. 그녀는 그와 그의 처형에 대해 자주 언급하지만, 그 감정이 인간 페레를 향한 것인지 아니면 탄압이 초래할 수 있는 결과의 상징으로서의 페레를 향한 것인지 판단하기는 어렵다. 혹자는 페레를 그의 연인으로 보기도 한다. 페레의 누이 마리(Marie)와 미셸의 따뜻한 우정이 테오필에 대한 감정의 결과인지 아니면 그와 별개인지는 불분명하나, 미셸과 마리 페레의 삶은 영구적으로 얽혀 있었다. 마리는 미셸이 집회에 참석하거나 유배 중일 때, 혹은 여행이나 투옥 중일 때 미셸의 어머니를 돌보는 것을 도왔고, 두 사람은 수년 동안 활발하게 서신을 주고받았다. 미셸이 자신의 시집과 스크랩 자료들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마리 덕분이었으며, 그중 상당수가 회고록에 포함되었다. 블랑키 서거 기념일 시위 직후 미셸이 체포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가 사망했다. 미셸은 회고록에 마리의 장례식 기록과 앙리 로슈포르가 보낸 찬사의 편지를 수록했다.<br>​하지만 미셸의 정서적 삶의 중심은 어머니였다. 미셸은 어머니가 "공유하지 않았던" 자신의 견해 때문에 어머니가 겪은 고통의 대부분을 자신이 초래했음을 인정했다. 평생 어머니는 딸의 빚을 갚기 위해 애썼고 애정과 소소한 선물들을 쏟아부었다. 그 보답으로 루이즈는 자신의 불행을 어머니에게 숨기려 애썼고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을 편안하게 해드리고자 노력했다. 미셸은 "우리 혁명가들은 가족에게 행복을 거의 가져다주지 못한다"라고 한탄한다. 어머니를 추모하기 위해 미셸은 어머니의 장례식 기록 전문을 실었다. 그녀가 깨닫지 못한 사실은, 어머니의 시신을 따라 파리를 가로질러 르발루아 페레 묘지까지 행진했던 수천 명의 사람이 어머니뿐만 아니라 루이즈 자신에게도 경의를 표하고 있었다는 점이다.<br>실질적으로 미셸의 회고록은 어머니의 죽음 시점에서 끝을 맺으며, 그녀는 상실로 인해 황량해진 정신 상태로 이듬해 출판을 위해 원고를 완성했다. 현실은 가변적이며, 회고록 저술가가 해야 하듯 자신의 마음의 과정을 되짚어보는 것은 회상이 소환되는 순간에 존재하는 햇빛이나 그림자를 통해 과거의 사건을 바라보는 일이다. 혁명적 대의에 대한 미셸의 헌신과 미래에 대한 낙관주의는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그림자 아래서도 확고했으나, 만약 그녀가 슬픔의 충격 속에서 회고록을 쓰지 않았더라면 잃어버린 과거에 대해 향수와 슬픔을 덜 드러냈을 가능성도 있다. 이 또한 우리 몫이 아니다.<br>미셸이 이 회고록을 쓰기 시작한 것은 1883년에 시작된 그녀의 세 번째 수감 기간 중이었으나, 자료 수집은 그보다 일찍 이루어졌다. 그녀는 어린 시절에 시작한 오트마른의 역사와 같은 초기 저작물들도 가지고 있었으며, 뉴칼레도니아 항해 중에 기록했으나 지금은 사라진 '일기'에 대해 감질나는 언급을 남기기도 했다.<br>1885년 어머니가 사망한 후, 미셸은 일종의 신경 쇠약을 겪었으며 이는 그녀의 회고록이 파편화되고 일관성이 떨어지게 된 분명한 이유 중 하나였다. 두 부분으로 나뉜 본문 전체에 대략적인 연대기적 개요가 흐르고는 있지만, 이야기와 일화들은 단계적인 서사보다는 단어 연상에 따라 나타난다. 또한 이 회고록은 사실적인 기록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본문은 그녀의 꿈에 대한 감정적인 묘사, 행동을 촉구하는 고무적인 부름, 그리고 다수의 시로 가득 차 있다. 그녀는 "생각나는 대로"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다른 아이디어로 가볍게 옮겨간다. 때때로 그녀는 자신이 독자에게 야기할 수 있는 문제들을 인식하고 있는 듯 보인다. 원문에서 그녀는 "나의 세 번째 체포에 관해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앞선 두 번의 체포 과정을 서술해야겠다"라고 쓰기도 했다. 회고록은 향수와 고양된 감정, 서사와 예언 사이를 격렬하게 오간다.<br>1888년 1월, 미셸이 르아브르에서 연설하던 중 광신적인 가톨릭교도 브르타뉴인이 그녀를 쏘았다. 왼쪽 귀 뒤에 박힌 총알 부상은 잘 아물지 않았고, 한동안 그녀의 건강은 위태로운 상태였다. 그러나 자신의 원칙에 충실하게도, 미셸은 가해자의 재판에 출석하여 그가 악한 사회에 의해 미혹된 것이라 주장하며 선처를 호소했고, 결국 그는 무죄로 풀려났다.<br>루이즈 미셀은 1890년 노동절 시위 참여를 준비하던 중 행사 전날 체포되었다.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인 그녀는 감방의 가구들을 부수었고, 당국은 그 행동을 구실 삼아 그녀를 정신 이상자로 몰아 수용하려 했다. 불분명한 이유로 내무부 장관 콩스탕이 직접 개입하여 수용 절차를 중단시키고 그녀를 석방했다.<br>미셸은 즉시 영국으로 떠났고, 1890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그곳에서 보냈다.&nbsp;<br>1904년 러일 전쟁 발발 이후 그곳의 사건들은 그녀의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미셸은 이 무모한 전쟁이 사회 혁명의 시작을 가져올 기회라는 점에 기뻐했다. 그녀는 1904년 2월과 3월 초 프랑스에서 더 많은 강연을 했으나, 그 후 중병에 걸렸다. 그녀는 회복되었고, 대중이 치명적일 것이라 예상했던 그녀의 병세가 널리 알려진 후 전설적인 인물을 보기 위해 과거처럼 엄청난 군중이 몰려들었다. 아마 사람들은 이제 전설을 보러 온 것일 뿐이었겠지만, 어쨌든 수많은 이들이 모여 그녀에게 박수를 보냈다. 연말에 그녀는 알제리로 떠났고, 프랑스로 돌아오던 중 마르세유에서 병이 났다. 이 병이 그녀의 마지막이었다. 1905년 1월 9일, 그녀는 마르세유의 호텔 드 로아지스(Hotel de l'Oasis)에서 사망했다.<br>그녀의 죽음은 그녀가 좋아했을 법한 장관 중 하나가 되었다. 적기와 수많은 꽃, 그리고 노동조합, 사회주의 단체, 무정부주의자, 반종교 단체 대표 등 2,000명의 조문객과 함께 장례 행렬은 마르세유에서 묘지까지 1킬로미터에 달했다. 추모식이 프랑스 전역과 런던 등지에서 거행되었다. 1월 20일 그녀의 유해는 이장되어 파리로 옮겨졌고, 이틀 후 르발루아 페레(Levallois-Perret)에 있는 어머니 곁에 묻혔다. 언론은 이것이 빅토르 위고의 사망 이후 최대 규모의 장관이었다고 전했다. 같은 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러시아 군중이 차르에게 청원서를 전달하려다 벌어진 대학살은 또 다른 '피의 일요일'로 영원히 각인되었다<br>​오늘날 미셸의 고향인 브롱쿠르(Vroncourt)에는 그녀의 동상이 서 있고, 마을을 지나는 거리에는 그녀의 이름이 붙어 있다. 르발루아 페레에 있는 그녀의 묘지는—1905년에 묻힌 곳이 아니라 1936년 인민전선 시절에 옮겨진 새 묘지이다—여전히 익명의 손길이 놓아둔 꽃들로 채워져 있다. 그녀의 이름을 딴 지하철역과 거리도 만들었지만, 둘 다 파리 시 경계 바로 바깥에 걸쳐 있다. 그녀는 이제 전설이다. 그녀가 그 전설의 일부를 스스로 만들어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다. 루이즈 미셸은 영웅적이었으나, 그녀 자신이 말했듯<br>"영웅적인 것은 없다. 사람들은 그저 사건에 매료될 뿐이다."<br>흔히 하나의 사건에 대해 여러 버전의 서술이 존재했는데, 이는 드문 경우이지만 큰 틀에서 항상 서로 일치하면서도 각기 새로운 세부 사항을 덧붙이고 있었다. 몇몇 시들은 서사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아 생략했다. 게다가 미셸의 시가 여러 편 수록되어있다. 물론, 에디스 토마스는 미셸의 "가장 훌륭한 시는 단연코 그녀의 삶"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br>미셸은 분명 이 회고록의 후속편을 쓸 의도가 있었다. 이 책을 출간하고 10년이 지난 후에도 그녀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으나, 결국 실현되지는 못했다. 따라서 그녀의 시와 편지들을 제외하면, 여기에 실린 『루이즈 미셸 자필 회고록(Mémoires de Louise Michel écrits par elle-même)』이 혁명가이자 시인, 그리고 몽상가였던 매혹적인 여성의 가장 주요한 자전적 기록이다.<br>1886년 이 회고록을 출간했을 때 그녀는 쉰여섯 살이었으며, 여전히 많은 세월이 남아 있었다. 그녀가 언급했던 두 번째 회고록을 쓰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녀가 남긴 이 회고록은 인간의 꿈을 향한 기념비로 서 있다. 변방의 보잘것없는 사생아로 태어난 아이가 자유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자유까지 기꺼이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음을 교조적 이론이 아닌 마음에 이끌려, 미셸은 자신의 회고록과 삶을 통해 증명했다. 무엇이 가치 있는 삶인가.<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7/9/cover150/k302136372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970959</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출간!) 우리가 기억해야 할 단 한 명의 프랑스 여성 루이즈 미셸</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55612</link><pubDate>Tue, 17 Mar 2026 13: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5561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6372&TPaperId=1715561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7/9/coveroff/k302136372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2024년 12월에서 다음 해 1월로 넘어가는 어디쯤에서 이 책을 번역하기로 맘먹었습니다.&nbsp;분량이 만만치 않아서 좀 힘들겠다고는 생각했습니다. 어서 해야지 해야지 하고 마음만 분주했습니다. 2025년 4권의 책을 만들면서 틈틈히 번역을 했고 지난 해 12월 말에 초고를 만들었습니다.<br>3개월 동안 달려왔습니다. 이제 책이 손에 들어왔고요.음, 루이즈 미셸의 삶을 들여다보면 볼 수록 삶이란 어쩔 수 없는 고통이라겠지만 그 고통이란 또 삶을 빛나게 할 것이란 걸 확신하게 됩니다.<br>루이즈 미셸은 결과가 아니라 신념을 지키는 삶 그 자체가 이미 승리임을 온몸으로 웅변합니다.&nbsp;타인의 시선과 평판에 매몰되지 않고 세상의 기준이 아닌 오직 자신의 기준으로 삶을 정의하는 태도, 길들어진 풍요 속에 머물지 않고 위험하더라도 자유로운 인간으로 남기 위해 온 존재를 걸었던 여성의 이야기는 온갖 역경에도 세상이 정해준 한계를 거부하고 스스로 삶을 창조할 용기를 얻으려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이야기일지도.  &nbsp;  날카로운 비수 같은 문장과 부드러운 위로와 공감으로 채워진 이 회고록은 누구라도 그 어떤 곤경에 처했다 하더라도 루이즈 미셸에게 기대볼 수 있는 최고의 멘탈 지침서로도 손색없습니다.  &nbsp;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뜨거움’, 누군가를 위해 죽음을 불사하거나 불가능한 이상에 투신하는 열정이야말로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추월하는 시대에 되새겨야 할 미덕이 아닐까요.&nbsp;루이즈 미셸처럼 비합리적일 만큼 뜨거운 정의감과 생명에 대한 애정을 가진 인간의 기록을 읽으며 우리의 본질을 확인해봅니다. <br><br>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7/9/cover150/k302136372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970959</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인문/예술</category><title>낯설고 기이한 프랑스 문화와 그 흔적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10451</link><pubDate>Tue, 24 Feb 2026 07: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10451</guid><description><![CDATA[문화의 힘은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에서.  &nbsp;  간혹 한국에 오래 살고 있는 프랑스인들을 만날 때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프랑스에 대한 오해와 고정관념이 상당하는 것이죠. 프랑스적인 것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프랑스적인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nbsp;  낯설고 기이한 프랑스 문화와 그 흔적들  &nbsp;    &nbsp;  프랑스적인 것, 우리와 동질적인 프랑스적인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프랑스적인 것을 찾으려는 시도로 프랑스 도서를 번역 출간합니다.   &nbsp;  불란서책방은 프랑스라는 국가적 정체성과는 무관하게 문화적 이질성을 탐색합니다. 20세기 초중반 한국 사회에 유입된 문화적 이질성의 상징적 의미를 담은 불란서라는 단어가 현실에서 소비된 경로나 양태는 부정성도 긍정성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불란서책방은 문화적 이질성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을 하려 합니다. 그것이 곧 우리 문화의 내성과 진수를 보여줄 수 있는 바탕이 되겠죠.   &nbsp;  감각을 번역합니다.  &nbsp;  불란서책방은 잊힌 목소리, 낯설지만 아름다운 것, 오래된 질문과 새로 태동하는 감각을 번역합니다. 그 목소리와 감각들이 책의 형태로 다시 숨을 얻고, 독자가 그 페이지 사이에서 오래 머물며 빛을 발견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책이 건네는 한 줄의 빛을 믿으며, 그 빛을 가장 온전한 형태로 전하는 일을 이어가려 합니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224/pimg_775287143504010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10451</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바리케이드에 핀 붉은 꽃_루이즈 미셸</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06786</link><pubDate>Sun, 22 Feb 2026 15: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0678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6372&TPaperId=171067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7/9/coveroff/k302136372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역사는 당대의 관습에 도전한 인물들로 가득 차 있지만, '붉은 처녀'로 알려진 루이즈 미셸(Louise Michel)만큼 반항 정신과 정의에 대한 헌신을 강력하게 구현한 인물은 드물다. 미셸은 1871년 파리 코뮌 당시의 혁명적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교육, 성평등, 아나키즘을 열렬히 옹호한 인물이기도 했다.<br>용기, 희생, 불굴의 의지로 점철된 그녀의 삶은 사회 정의와 평등을 위한 투쟁의 영원한 증거가 된다. 파리 코뮌에서의 혁명적 역할부터 뉴칼레도니아 유배 생활, 교육에 대한 변함없는 옹호와 폭넓은 기여에 이르기까지, 루이즈 미셸은 영감을 주는 인물로 역사에 기록되어 남아 있다.<br>1871년의 파리 코뮌은 혁명 운동사의 중대한 전환점이며, 루이즈 미셸은 그 중심에 있었다. 1830년 프랑스 브랑쿠르(Vroncourt)의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난 미셸은 오랫동안 정의감과 진보적 이상에 대한 헌신을 키워왔다. 이러한 가치들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의 혼란스러운 여파와 나폴레옹 3세의 제2제국 몰락 과정에서 전면으로 부각되었다.파리가 포위되고 시민들이 극심한 고난에 처하자 통치 계급에 대한 불만이 폭동으로 번졌고, 이는 1871년 3월 파리 코뮌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미셸은 코뮌의 가장 열정적인 지도자 중 한 명으로 부상했다. 그녀는 정치적, 군사적 노력 모두에 깊이 관여하며 혁명적 이상에 대한 두려움 없는 헌신으로 명성을 얻었다.<br>그녀는 코뮌의 방어를 책임지는 조직인 공안위원회에 합류하여, 평등과 정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미셸은 특히 성평등과 노동계급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 목소리를 높였으며, 이는 모든 사람의 존엄성과 잠재력에 대한 그녀의 평생 신념을 반영한 것이었다.<br>그녀의 역할은 정책 수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미셸은 바리케이드에서 무기를 들었으며, 특히 코뮌의 반란이 처음 불붙었던 장소인 몽마르트르를 방어했다. 그녀의 용기와 헌신은 동료 코뮌 대원들에게 영감을 주었고, 그녀는 굴하지 않는 운동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1871년 5월 '피의 일주일' 동안 코뮌이 잔혹한 탄압에 직면했을 때도 미셸은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켰으며, 이는 대의에 대한 그녀의 굴하지 않는 헌신을 증명했다.코뮌 함락 후 미셸은 체포되었다. 그녀는 재판에서 "나를 살려둔다면, 나는 결코 복수를 부르짖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유명한 선언을 했다. 이러한 저항은 억압의 세력에 굴복하지 않는 그녀의 정신을 요약해 보여준다. 그녀의 형량은 먼 식민지인 뉴칼레도니아로의 추방이었다. 1873년 미셸의 뉴칼레도니아 유배는 그녀의 삶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이는 그녀의 혁명적 정체성을 더욱 공고히 했다.<br>유배 생활은 그녀의 정신을 꺾기는커녕 지적 성장과 연대의 시간이 되었다. 그녀는 프랑스의 식민 통치에 맞서 싸우던 원주민 카낙(Kanak)족과 유대를 형성했는데, 그들의 투쟁은 정의와 평등에 대한 그녀 자신의 신념과 깊이 공명했다. 1870년대 카낙 봉기에 대한 미셸의 지지는 파리에서든 태평양에서든 모든 형태의 억압에 반대한다는 그녀의 폭넓은 헌신을 반영했다.<br>뉴칼레도니아에 머무는 동안 미셸은 이후 그녀의 활동을 정의하게 될 이데올로기인 아나키즘을 받아들였다. 그녀는 유배 기간 동안 광범위한 글을 썼으며, 진화하는 정치적 신념을 명확히 하고 주변 사람들의 경험을 기록한 저작들을 남겼다. 이 글들은 유배지의 상황을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 정의와 혁명 이론에 관한 폭넓은 담론에도 기여했다.미셸은 1880년 사면을 받아 프랑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때 그녀는 아나키즘을 완전히 수용했으며 억압받는 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계속하기로 결심했다. 뉴칼레도니아에서의 시간은 그녀의 결단력을 약화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전 세계의 불의에 맞선 투쟁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녀의 이해를 깊게 만들었다.<br>루이즈 미셸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가장 일관된 주제 중 하나는 교육의 변화시키는 힘에 대한 믿음이었다. 파리 코뮌에 참여하기 전에도 미셸은 교사로 일하며 무상 세속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녀는 교육을 권한 부여의 수단이자, 개인들, 특히 소외된 공동체의 사람들이 자신들을 억압하는 구조에 도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보았다.코뮌 활동 기간 동안 미셸은 이러한 이상을 반영한 정책들을 옹호했다. 접근 가능하면서도 세속적인 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그녀의 우선순위였는데, 지식은 종교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모두가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분야에서의 그녀의 활동은 교육을 개인적 성장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혁을 위한 도구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미셸의 활동은 교육을 넘어 더 넓은 사회 정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그녀는 성평등, 노동자의 권리, 빈곤층의 곤궁을 대변하며 일관되게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의 편에 섰다. 프랑스 귀국 후 그녀의 연설과 저술은 이러한 대의를 더욱 증폭시켰고, 그녀를 아나키스트 운동의 저명한 인물로 만들었다.<br>루이즈 미셸의 유산은 그녀의 생애를 훨씬 넘어 이어진다. 그녀의 용기와 이상은 수많은 운동과 개인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그녀를 저항과 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투쟁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그녀는 여전히 프랑스의 아이콘으로 남아 있으며, 학교, 거리, 심지어 지하철역에도 그녀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그녀의 자서전 '루이즈 미셸 회고록(Mémoires de Louise Michel)'을 포함한 저술들은 그녀의 삶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제공하며 혁명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계속해서 연구되고 있다.<br>루이즈 미셸의 영향력은 프랑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교육, 평등, 정의에 대한 그녀의 옹호는 전 세계적으로 공명을 일으키며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에 영감을 주고, 역경에 맞서는 회복탄력성의 힘을 상기시킨다. 혁명가, 페미니스트, 혹은 아나키스트 중 어떤 모습으로 비치든 미셸은 불굴의 저항 정신을 구현한다. 루이즈 미셸의 삶은 용기와 지성, 그리고 정의에 대한 흔들림 없는 헌신이 담긴 놀라운 이야기다.<br>파리 코뮌에서의 지도력부터 뉴칼레도니아 유배, 교육에 대한 옹호, 그리고 폭넓은 유산에 이르기까지, 미셸은 사회 운동사의 거인으로 우뚝 서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평등과 정의를 위한 투쟁이 결코 쉽지 않지만 언제나 추구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저항과 희망의 상징으로서 루이즈 미셸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영감을 주며, 그녀가 소중히 여겼던 원칙들에 뿌리를 둔 세상을 상상하고 그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br>루이즈 미셸&nbsp;알라딘 북펀드<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7/9/cover150/k302136372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970959</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사회</category><title>루이즈 미셀 저격 사건</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05308</link><pubDate>Sat, 21 Feb 2026 18: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10530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02136372&TPaperId=1710530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7/9/coveroff/k302136372_3.jpg" width="75" border="0"></a>&nbsp;<br/><br/>1871년 12월 16일 베르사유의 군사법정(제4군사법정)에서 파리 코뮌 관련 혐의로 재판을 받은 루이즈 미셸의 최후 진술은 일명 “사형요구 연설”입니다. 이 연설에서,&nbsp; “나를 풀어주지 말고, 함께 싸운 동지들과 같은 운명을, 더 나아가 사형을 달라”“내가 당신들 앞에 있는 것은 혁명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를 살려준다면, 나는 패배한 자들을 위해 복수를 외치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당신들이 다시 자유의 투사들을 죽이려 한다면, 나는 내 형제들처럼 죽기를 원합니다. 만약 내 목숨을 요구한다면, 나는 그것을 아낌없이 바칠 것입니다.”​​그녀는 자신이 저지른 것은 ‘범죄’가 아니라 민중의 편에 선 정치적 행동이며, 그 책임을 온전히 지겠다고 선언합니다. 이러니, 빅토르 위고가 그녀에게 헌사는 시를 썼겠죠. 제목은 &lt;남자보다 위대한&gt;.오늘의 그 누군가의 재판을 보니, 맞습니다. 분명 어떤 남자보다는 위대합니다.<br>또 하나의 일화, 루이즈 미셸 저격 사건.<br><br><br>1888년 1월 22일 루이즈 미셸은 르아브르(Le Havre)에서 강연하던 중, 피에르 뤼카(Pierre Lucas)라는 인물이 쏜 6.5mm 구경의 권총 탄환 두 발 중 한 발을 왼쪽 귀 뒷부분에 맞았습니다. 당시 의사들은 총탄 제거 수술을 권유했지만 뇌 근처의 총탄을 제거하는 수술이 매우 위험했기에 루이즈 미셸은 수술보다 총탄을 그대로 두는 것을 선택했습니다.1905년 1월 9일 마르세유에서 폐렴으로 사망할 때까지 약 17년 동안 머릿속에 그 총탄을 지닌 채 활동을 이어갔고 사망 후 진행된 부검에서 실제로 두개골 내부에 박혀 있던 총탄이 발견되었습니다. 뇌 조직을 직접적으로 손상시키지는 않았으나, 뼈와 밀착된 상태로 약 17년 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죠.그녀는 머릿속에 박힌 총탄으로 인해 평생 간헐적인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이를 "나를 쏜 불쌍한 자가 준 선물"이라 말했습니다.루이즈 미셸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이 사건의 법정에 나타나 자신을 쏜 범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단지 시대의 피해자일 뿐"이다. "그는 나를 죽이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불행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을 뿐"이라며 가해자의 무죄 석방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nbsp;"나는 이 총탄을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였다"루이즈 미셸은 자신에게 총을 쏜 피에르 뤼카(Pierre Lucas)를 단순한 범죄자가 아닌,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회 구조가 만들어낸 '희생자'로 본 것이죠.&nbsp;그녀는 판사에게 "그를 처벌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또 다른 불행을 만드는 것"이라며 무죄를 주장했고 결국 뤼카는 정신 이상 판정을 받아 감옥 대신 수용 시설로 보내졌습니다. 뤼카가 수용 시설에 갇히자 그의 가족이 생계가 막막해졌다는 소식을 들은 루이즈 미셸은 자신의 적은 강연료와 인세를 쪼개어 뤼카의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냈고&nbsp; 뤼카에게는 위로의 편지를 보내 그가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고 합니다. 가해자를 증오하기보다 그 가족의 고통을 먼저 살핀 루이즈 미셸.&nbsp;1905년 1월 9일(혹은 10일), 그녀가 마르세유에서 사망한 후 시신은 파리로 운구되었습니다. 그녀의 장례식은 1월22일, 국가장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파리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인파가 몰렸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파리 시내에만 최소 10만 명에서 12만 명의 시민들이 그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일부 기록에서는 운구 행렬을 지켜본 인파를 포함해 25만 명 이상으로 추산하기도 합니다.)<br><br><br>마르세유에서 파리 리옹 역에 도착한 그녀의 관은 붉은 깃발과 검은 깃발(아나키즘의 상징)로 뒤덮였습니다. 노동자, 여성, 빈민층뿐만 아니라 당대의 지식인들이 대거 참여하여 "루이즈 미셸 만세!"를 외쳤다고 합니다. 장례식 당일 파리의 공공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인파가 몰려 경찰조차 통제 포기 상태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녀의 유해는 파리 외곽의 르발루아-페레(Levallois-Perret) 묘지에 안치되었습니다. 혹 이곳을 들르신다면 꼭 찾아보시길. 루이즈 미셸과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친구 마리 페레와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br>루이즈 미셸 회상록&nbsp;#루이즈미셸<br><br> <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97/9/cover150/k302136372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970959</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