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불란서책방 (북페스트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불란서책방의 책을 소개합니다.</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6 Sep 2026 21:24:11 +0900</lastBuildDate><image><title>북페스트</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752871435114436.png</url><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북페스트</description></image><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인문/예술</category><title>﻿버려진 것, 죽은 것, 무너진 것과 다시 관계 맺는 법</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478849</link><pubDate>Sat, 29 Aug 2026 15: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47884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02130043&TPaperId=1747884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5/82/coveroff/k102130043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물질이여 안녕, Ave Materia』을 관통하는 것은 단 하나의 동작이다. 파괴된 것을 밀어내지 않고, 그 위에 손을 얹는 것. 무너져가는 집, 곰팡이 슨 그림, 죽은 화가의 작업, 실패한 삶의 시도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고쳐서 원래대로 돌려놓는" 대신, 그 상처와 흔적을 재료 삼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물질에는 영혼이 있다. 낡은 나무의 결, 흙, 바닷물은 소재가 아니라 대화 상대다. 파리의 낡은 집 지하실에서 14년째 방치된 채 곰팡이가 슬어 있던, 이미 세상을 떠난 화가의 그림을 발견했을 때 그는 그것을 복원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손끝으로, 지문으로 그 위에 이어 그렸다. 물질 자체가 기억과 영혼을 품고 있기에 그와 손을 마주 잡고 대화를 이어 간다. 물질에게 건네는 다정한 인사와 함께. 그리하여 “망해버린 그림에도 이유가 따른다”는 현재를 살아내게 하는 주술처럼 가볍지만 무겁게 울린다.&nbsp;<br>그렇게 완성된 그림들 앞에서 독자는 곧 이 책의 두 번째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완성이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완성은 끝이 아니다. 부다페스트에서 24시간 동안 그린 그림은 완성되자마자 땅에 묻혔고, 두 달 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숟가락으로 흙을 파내 다시 꺼냈다. 프랑스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완성한 그림은 노르망디 바다에 그대로 흘려보냈다. “완성 = 소유”라는 통념을 뒤집는 이 행위들 속에서, 작품은 태어나고 흙과 물에 의해 변형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 순환의 과정 전체가 작품이 된다.<br>고통은 지워지지 않아도, 방향을 바꿀 수 있다<br>그러나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물질이나 예술이 아니라, 한 사람이 통과한 시간이다. 초월은 고통의 소멸이 아니라, 고통과의 공존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의 좌절과 방황, 그가 “죽는소리”라 부르던 시절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구덩이에서 덩굴이 자라듯, 지금의 창작이 거기서 자라났다. 이것은 극복의 서사가 아니다. 상처를 이겨내고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상처를 곁에 둔 채로 계속 살아가고 계속 만들어가는 이야기다.곰팡이 슨 캔버스, 땅에 묻힌 그림, 바다로 떠나보낸 마지막 작업. 이 낯선 장면들이 결국 가리키는 곳은 지극히 익숙한 자리다. 무너졌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물질과 손끝으로 나눈 10년의 대화 끝에서, 이 책은 그 사실 하나를 조용히, 오래 남는 방식으로 증명한다.<br><br>사진 @hahaheeho<br><br><br> <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0065/82/cover150/k10213004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00658224</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인문/예술</category><title>어느 젊은 예술가의 초상_촉각을 자극하는 색, 책_물질이여 안녕</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463963</link><pubDate>Fri, 21 Aug 2026 16: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463963</guid><description><![CDATA[그 사고가 일어났던 밤이었다. 세상은 마치 모든 것이 잠든 듯 고요했지만, 나는 침대에 누운 채 내 몸 전체를 덮고 있는 짙고 무거운 어둠을 또렷이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내 안에서 멈추지 않고 울려 퍼지는 한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있었다.“너는 이제 끝났어.”“너는 이제 끝났어.”“너는 이제 끝났어.”그 목소리는 단순한 속삭임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몸 깊숙한 곳, 뼛속까지 파고들며 내 존재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내 몸 깊숙한 어느 심연에서 울려 퍼지는 그 냉소에 가득 찬 소리가 반복되었다. ‘끝이 아니라고, 그게 아니라고.’ 나는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입술을 가다듬으려 애쓰며 고개를 저었다. 그 말의 공명은 곧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땅을 떠나야 하며, 언젠가 떠날 것이라는 절박한 갈망으로 변했다. 나는 그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갈망을 붙잡고 살아남으려 애썼다. 그리고 말 그대로 생존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P34)<br><br><br>“나는 손가락으로 색들을 어루만지면서, 그 색의 힘 속에 빨려 들어갔다.”<br>서른둘의 나이에 한국을 떠났다. 파리에서의 8년. 그녀는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다. 『물질이여 안녕』은 생사의 투쟁 속에서 흔들리던 시간을, 창작을 통해 돌파해 온 과정을 담았다. 예술이라는 가능성의 장에서 ‘살아 있음’이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증명하는 변신의 서사를 펼쳐낸다. 고독과 몰입, 진동하는 색. 버려진 사물, 죽은 화가와의 영혼의 만남,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하는 과정은 독자에게 창작의 환희와 진동을 고스란히 전한다.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것들에게 바치는 인사, 물질이여 안녕.<br>“예술이 아니었다면 끝내 세상에 매개될 수 없었을 사람. 예술이 사람을, 사랑을 구원한다는 것은 진짜다.”<br>파리 15구 막다른 골목, 지붕에 구멍이 뚫린 채 105년을 버텨온 집, 저자는 이 집을 "르 라브 라브(Le Lab Lab)"라 부르며 8년을 살았다. 이 책은 그 집에서 일어난 일들의 기록이다. 정원 지하실에서 발견한, 이미 세상을 떠난 인도 피리 연주자의 방치된 그림들을 되살려낸 영혼의 협업. 코로나 봉쇄 속에서 나눈 이방인 아티스트들과의 교류. 그리고 마침내, 오래된 나무판에 그린 그림 한 점을 노르망디의 바다에 흘려보낸 순간까지 그 창작과 실험,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을 컬러 도판 100여 컷과 함께 담아냈다. 트라우마와 정신적 고통, 이방인으로서의 생존,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려는 인간의 폭풍 같은 변신의 서사.&nbsp;<br>촉각으로 읽는 책이 책은 시각을 넘어 '촉각'으로 경험하는 책을 지향했다. 두툼한 유광 표지로 책을 감쌌다. 겉표지는 책등과 날개가 정확히 책에 밀착되도록 했다. 100여 컷에 이르는 컬러 도판은 미술관을 종이 위에 옮긴 듯한 배치로 구성되며, 각 작품 곁에는 그 작품이 탄생한 순간의 맥락이 함께 실린다. 이는 단순히 예술가의 회고록을 읽는 경험을 넘어, 독자가 책 자체를 하나의 오브제로 소장하도록 설계된 편집 방향이다.버려진 것들, 잊힌 것들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에 대한 아름답고 치열한 답변.물질이 말을 건다는 것, 죽은 자와 협업할 수 있다는 것, 그림이 스스로 태어난다는 것. 형린의 예술 세계는 우리가 잊고 있던 물질의 영혼을 깨운다. 진동하는 색. 버려진 사물, 잊힌 화가와의 영혼의 만남, 고독과 몰입, 작가만의 장르를 개척하는 과정을 글과 그림으로 전한다. 파리의 무너져가는 집에서 시작된 이 여정은 결국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책은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8권의 한 구절 — "그리고 마음을 미지의 기술로 풀어 보낸다" — 을 헌사로 열며 시작한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쓴다. "끈질긴 방황의 끝에 프랑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제야 손으로 직접 물감을 만지며 물질의 세계를 처음부터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의 삶을 "강도(Intensité)"라는 한 단어로 요약하는 저자는, 그 밀도 속에서 이 책을 써 내려갔다고 고백한다. "살아있는 그림은 신성을 건드린다. 붓만 스쳐도 생기를 전달한다"는 문장은 이 책이 지향하는 예술관을 압축해 보여준다.<br><br>죽은 음악가와의 협업, 14년 방치된 그림을 되살리다책의 백미는 파리 15구, 1900년에 지어져 지붕에 구멍이 뚫리고 샤워 중 감전 사고가 날 정도로 낡은 집에서 시작된다. 저자가 '르 라브 라브(Le Lab Lab)'라 부르며 7년을 살아낸 이 집에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인도 전통 피리 연주자이자 화가 故 장 폴 오부(Jean-Paul Auboux, 1945~2006)의 그림들과 마주친다. 14년간 곰팡이와 먼지에 덮인 채 방치돼 있던 캔버스를 손으로 닦아내며, 저자는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를 넘어선 촉각적 대화"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곰팡이가 갉아먹어 구멍 뚫린 캔버스와 벗겨진 물감의 흔적을 따라가며 새로운 형상을 그려 넣었고, 이는 〈댄서〉, 〈가이아〉 등 시간을 건너 두 예술가가 함께 완성한 협업작으로 남았다. "그는 그 누구보다 생생한 가르침을 전해준 스승이었다. 시간도, 생과 사의 경계도 장애가 아니었다"고 저자는 회고한다.눈을 가린 채 24시간, 그림을 땅에 묻었다 다시 꺼내다2023년 3월 부다페스트의 한 4D 사운드 스튜디오. 저자는 사운드 기반의 기계 존재 '홀로스(HOLOS)'와 함께 자정부터 24시간 동안 눈을 가린 채 5㎡ 크기의 대형 회화를 완성했다. 완성된 작품은 곧장 정원에 묻혔고, 두 달 뒤 세계 각지에서 모인 예술가들이 숟가락으로 흙을 파내 작품을 꺼내는 의식을 치렀다. 흙과 미생물이 표면을 바꿔 놓은 이 작품은 "인간과 기계, 물질이 함께 써 내려간 생명체"로 재탄생했다. 이 과정은 연작 '마테리아 오스쿠라(Materia Oscura, 암흑물질)'의 출발점이 됐으며, 책의 제목이 된 '물질이여 안녕(아베 마테리아Ave Materia)', 곧 물질에게 바치는 인사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완성한 사건으로 기록된다.8년의 여정, 그림 한 점을 바다로 흘려보내다2024년 5월, 저자는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작업 〈슬픔이여 안녕, Plus de Chagrin〉을 완성한다. 버려진 나무 마룻바닥에 수개월간 빗물과 물감을 섞어 만든 이 그림을, 그는 노르망디 해안(북위 48도 59분 28.7초, 서경 1도 33분 57.8초)에 직접 놓아 바다로 떠나보냈다. "그것을 바다에 보내는 순간, 예술은 소유가 아니라 순환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장면을 끝으로 파리에서의 여정은 마무리되고, 저자는 삶의 무대를 대만으로 옮긴다.철학에서 예술로, 그리고 사랑까지서강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국제관계학 석사를 취득한 저자는 한때 "쓸데없다"고 여겼던 철학 공부가 파리8대학교에서 생태예술을 전공하며 새로운 언어로 되살아났다고 말한다. "그 구덩이 덕분에 지금 여기서 자란다"는 것이다. 특히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의 『카오스모스(Chaosmose)』는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언어를 제공했고, 이는 대규모 연작 〈카오스모스〉로 이어졌다. 책에는 2015년 파리에서 만난 대만인 사진작가 마이크(Mike Ou)와의 사랑, 그리고 2019년 결혼에 이르는 과정도 담겨 있다. "여린이가 결혼을 하다니"라며 믿지 못했다는 가족들의 반응 속에서, 저자는 이 세상에 '매이는' 기쁨을 배운다. "예술이 아니었다면 끝내 세상에 매개될 수 없었을 사람. 예술이 사람을, 사랑을 구원한다는 것은 진짜다"라는 저자의 고백이 책 전반을 관통한다. 가족들조차 믿기 어려워했던 그 결혼은, 떠돌던 삶이 마침내 한 장소와 한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매이는' 이야기로 완결된다.형린은 현재 대만 타이중 동해대학교의 레지던시 아티스트이자 강사로 활동하며 '르 라브 라브 2(Le Lab Lab 2)'를 운영하고 있다. 파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열대 숲 속 작업실에서 진주 안료를 만지며 〈아베 마테리아〉, 〈수미산〉 등 신작 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그의 작품은 파리, 부다페스트, 소피아, 런던 등지에서 전시됐으며, 파리의 아시아 전문 갤러리 '앙프레시옹(Impressions)'에서는 동명의 개인전 〈Ave Materia〉를 열어 연구서를 예술 작품으로 구현하기도 했다.이런 독자에게 권한다예술가를 꿈꾸는 이들, 창작의 본질을 고민하는 이들, 그리고 삶의 의미를 물질 세계와의 교감 속에서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깊은 울림을 전한다. 특히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드는 창작자와 전공자들에게는 슬럼프와 방황을 통과해 온 한 예술가의 여정이 동력이 되어줄 것이며, 종이의 질감과 도판의 색감처럼 물성을 소중히 여기는 독자들에게는 100여 컷의 컬러 이미지가 한 편의 화보집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예술을 감상의 대상을 넘어 철학과 비평의 관점에서 바라보고자 하는 독자에게도 이 책은 묵직한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하여 일상의 사소한 행위들로 자기 회복과 자기 생명력을 깨우고 환희의 세계로 나가길. 서로에게 다정하고 담대히 자기의 삶을 스스로 창조해 나가는 자유를 누릴 있기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21/pimg_63922926569834016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463963</link></image></item><item><author>북페스트</author><category>문학</category><title>밤에만 우는 새-슬픔의 긍지-콜레트</title><link>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370082</link><pubDate>Thu, 02 Jul 2026 16: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editionb21/1737008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931135&TPaperId=1737008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18/73/coveroff/k952931135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밤에만 우는 새가 있다. 나이팅게일이다. 그런데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라고, 한 프랑스 작가는 썼다. 옛날 옛적 나이팅게일은 낮에 울고 밤에는 잠을 잤다. 그러던 어느 봄밤, 포도나무 덩굴손이 다리를 휘감았다. 잠결에 묶인 새는 사력을 다해 풀려났지만, 그 후로 다시는 무방비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서 밤마다 깨어 노래한다.<br>​이 우화를 쓴 사람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다. 1908년, 그녀는 이 짧은 콩트 한 편으로 자신의 첫 단편집 제목을 정했다. 『슬픔의 긍지(포도나무 덩굴손)』(Les Vrilles de la vigne).&nbsp;<br>콜레트는 1873년 부르고뉴의 작은 마을 생소뵈르앙퓌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쪽 다리를 잃은 퇴역 군인이었고, 어머니 시도는 정원 식물과 동물들을 아꼈던 사람이다. 이 어머니의 존재는 평생 콜레트의 글에서 떠나지 않는다.<br>스무 살에 그녀는 열네 살 연상의 작가 겸 출판업과 음악비평을 하던 앙리 고티에 빌라르와 결혼한다. 필명 ‘윌리’. 사교계에서 이름값 있던 이 남자는 젊은 아내를 방에 가두고 매일 글의 분량을 채우게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렇게 나온 게 클로딘 연작이다.&nbsp;<br>1900년부터 1903년까지 네 권. 학교 다니는 소녀의 발칙한 성장담은 파리를 흔들었다. 옷깃 디자인이 ‘클로딘 칼라’라는 이름을 얻었을 정도로 당대의 아이콘이 되었다. 책은 모두 윌리의 이름으로 나갔다. 남의 이름으로 자기 이야기를 쓴다는 것.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콜레트의 출발점은 또렷해진다. 그녀의 문장은 처음부터 자기 것이 아니었다. 빌려준 사람의 서명 아래 묻혀 있었다.<br>풀려난 새<br>1906년, 콜레트는 윌리와 이혼한다. 인세는 전 남편이 챙겼다. 그녀에게 남은 건 글솜씨뿐이었고, 그걸로 당장 먹고살 길이 없었다. 그래서 무대에 올랐다. 뮤직홀 마임 배우로, 종종 가슴을 드러내는 파격적인 공연으로 물랭루주에 소동을 일으키기도 했다. 귀족인 마틸드 드 모르니, 일명 ‘미시’와의 관계도 이 시기에 시작된다.<br>이 무렵 콜레트는 잡지 세 곳, 『르 메르퀴르 뮈지칼』, 『르 메르퀴르 드 프랑스』, 『라 비 파리지엔』의 청탁을 받아 짧은 글들을 발표한다. 처음부터 한 권의 책으로 기획된 글들이 아니었다. 1905년에서 1907년 사이 띄엄띄엄 쓴 산문, 콩트, 대화체 스케치가 1908년 한데 묶여 『슬픔의 긍지(포도나무 덩굴손)』이 된다.<br>이 시점에서 나이팅게일 우화로 돌아가야 한다. 묶여 있다가 풀려난 새는 더 이상 예전의 잠을 잘 수 없다. 콜레트의 이혼과 정확히 겹치는 그림이다. 윌리 밑에서 보낸 시간을 ‘순진하고 무방비한 잠’으로, 거기서 빠져나온 뒤의 글쓰기를 ‘깨어 있는 밤의 노래’로 치환한 것이다. 그녀는 이 비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렇게 적는다. “나는 더 이상 행복한 잠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더 이상 포도나무 덩굴손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잃은 것과 얻은 것을 한 문장 안에 나란히 놓는다. 어느 쪽도 부풀리지 않는다.<br><br><br>줄거리 없는 책<br>『슬픔의 긍지』를 처음 펼치는 독자는 종종 당황한다. 이야기가 끝까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스물두 편의 이야기. 분명한 장 구분도 없다. 표제작 같은 우화가 있는가 하면, 개와 고양이가 주고받는 대화체 글도 있다. 가족 풍경과 해변 마을 스케치를 섞어놓은 글도 있다.<br>이 책을 소설처럼 읽으면 실패한다. 콜레트는 이야기를 짓지 않았다. 기억과 감각의 단편을 늘어놓았다. 책 앞쪽은 우화와 알레고리에 가깝고, 뒤로 갈수록 관찰과 성찰의 톤으로 옮겨간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1인칭의 내밀한 목소리 하나뿐이다. 누가 읽어도 이건 콜레트 자신이 말하고 있다는 걸 안다.<br>후대 독자 중에는 이 책을 콜레트 입문서로 권하는 이들이 많다. 짧은 형식이 그녀의 본령이라는 평가가 따라붙는다. 실제로 그녀가 가장 빛나는 지점은 장편의 서사 구조보다 짧은 산문의 밀도에 있었다. 자연, 동물, 사랑, 자유. 이 책에는 콜레트라는 작가를 이루는 모든 재료가 작은 다발로 묶여 있다.<br>권두에 놓인 「포도 덩굴손」은 이 책 전체를 읽는 열쇠로 거듭 언급된다. 프랑스 고등학교 문학 교재들이 이 짧은 텍스트 하나를 두고 따로 분석을 붙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순한 동물 우화가 아니라는 것이다.<br>문장을 보면 이유가 드러난다. 잠든 새의 다리를 휘감는 덩굴손을 콜레트는 시고 떫은 산미가 톡 쏘면서도 갈증을 가시게 하는 식물로 묘사한다. 고통과 쾌감을 한 단어 안에 욱여넣는다. 자연 묘사 하나에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시각이 동시에 걸려 있다. 같은 책의 다른 글에서도 이런 감각의 밀도는 일관되게 나타난다. 콜레트의 문장이 ‘관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노골적인 장면 묘사 때문이 아니라, 풍경 하나조차 몸으로 받아들이는 이 감각의 과잉 때문이다.<br>새가 풀려난 뒤에도 자유를 공짜로 얻지 않았다는 점도 짚을 만하다. 다리는 끈에 얽히고, 날개는 힘을 잃었다고 묘사된 그 새는 사투 끝에 빠져나온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묶였던 흔적을 몸에 새긴 채로 얻는다. 이혼 후 무일푼으로 무대에 서야 했던 콜레트의 현실과 이 문장 사이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br>가벼운 작가라는 오해<br>콜레트는 생전에도 평가가 엇갈렸다. 사랑과 욕망을 다루는 작가라는 꼬리표 때문에 일부 비평가들은 그녀를 ‘가벼운’ 작가로 분류했다. 작가 캐서린 앤 포터는 뉴욕 타임스에 지드와 프루스트가 생존해있을 때도 이미 콜레트는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프랑스 소설 작가”라 불렀다. 1935년 벨기에 왕립 아카데미 회원, 1945년 공쿠르 아카데미 회원, 1949년에는 그 아카데미의 회장. 1948년에는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다.<br>그녀를 둘러싼 그림이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점도 정직하게 짚어야 한다. 비시 정권 시기 친나치 매체에 글을 기고했고, 일부 작품에는 반유대주의적 서술이 남아 있다. 자유와 해방의 작가라는 이미지와 이 사실은 쉽게 포개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프랑스가 그녀에게 국장으로 예우했다는 것. 그는 점령기 파리의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람, 그의 남편을 살려냈다.&nbsp;<br>그녀가 기고한 글들은 전시 일상을 살아가는 여인들의 애잔한 풍경들이었다. 선동적인 글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기 작가들 사이에서도 해석은 엇갈린다. 어느 한쪽으로 깔끔하게 정리되는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말년의 콜레트를 돌봤던 사람은 그의 연하 남편, 그리고 장 콕토같은 주변의 수많은 작가들이었다. 미국 작가 트루먼 카포티는 오직 콜레트를 보려고 대서양을 건넌다.&nbsp;<br>1954년, 콜레트는 파리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가톨릭교회는 두 번의 이혼 전력을 이유로 종교장을 거부했다. 대신 프랑스는 여성 문인으로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국장을 치러주었다. 거부와 인정이 같은 죽음 위에 동시에 내려앉은 셈이다.<br>『슬픔의 긍지』를 백 년도 더 지난 지금 읽는 이유는 이 책이 그리는 그림이 여전히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이름 뒤에서 쓰던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되찾는 과정, 그 과정이 결코 매끈하지 않다는 사실. 자유를 얻은 뒤에도 예전의 무방비한 평온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감각. 이건 백 년 전 파리의 한 여성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br>콜레트는 이 모든 걸 설명하지 않고 보여준다. 나이팅게일 한 마리가 덩굴손에 묶였다가 풀려나는 짧은 우화 하나로. 그녀는 이 책에서 자신이 더 이상 행복한 잠을 잘 수 없다고 썼지만, 동시에 더 이상 무엇도 두렵지 않다고도 썼다. 그 둘 사이의 거리가 이 작가의 평생을 관통하는 거리이기도 하다. 『슬픔의 긍지』는 그 거리를 처음으로 자기 이름으로 기록한 책이다.<br> <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218/73/cover150/k952931135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218730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