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2월 4주

   

1. <아버지의 깃발> -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스토리를 보아도 단순한 전쟁영화는 아니다. 게다가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이라면 더더욱 영화는 단순하지 않다. 명배우이자 명감독이라는 두개의 탑(?)을 쌓은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단 한장의 사진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냉철한 시각으로 심리적이면서 극적으로 표현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비효과' 라는 단어가 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승리의 상징으로 정상에 성조기를 꽂았지만 해군사령관의 개념없는 행동과 대대장의 자부심 넘친 판단으로 승리의 깃발이라는 의미와 함께 어부지리로 영웅이 된 사진 속 주인공들은 전우들의 공로를 가로챘다는 죄책감과 만인의 영웅이라는 유혹 속에 갈등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영웅은 필요로 의해 만들어져야 했고,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은 미국을 포함한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났다. 

  이번 영화에서도 클린트는 <미스틱 리버>처럼 한순간의 일로 인해 겪는 인간의 내, 외면적인 모습과 인간관계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근데 약간 다른면이 있다면 개개의 작은 스토리들이 묶여져 있고 두서없이 산발적으로 등장한다. 기존의 클린트 영화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새로운 시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집중력이 떨어져 산만하고 복잡한 느낌이 든다. 또한 이오지마 상륙전투신은 스필버그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이번 영화에서 제작자로 참여한 스필버그는, 마치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오프닝 같은 이오지마 상륙전투로 유유하게 흘러갈 것 같던 클린트의 영화에 좀더 오락성이 가미되었다.    

 

  

2. <트로이> - 볼프강 피터젠 감독  

  <트로이>의 분위기는 남자들의 세계이다. 세계의 전쟁사에 빠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남자들의 야망과 여자이다. 특히 여자는 그 당시 전쟁의 전리품이자, 승리의 상징이고 지켜야 되는 전쟁을 하는 큰 이유였다. 

   사람이 가장 고독해지고 자신을 잘 알 수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극한이 있고 피가 넘실대는 전쟁터이다. 그 안에서 남자들만의 의리와 사랑의 교감은 상대의 영웅을 알아보는 겸손일 것이다. 많은 이해관계와 복잡한 이유가 전쟁 속에 있다. 병사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왕들은 더 많은 영토와 패권을 위해, 영웅들은 그 이름을 남기기 위하여 전쟁 속에서 그들은 점차 동화에 되어지고 미쳐간다. 그런 면에서 <트로이>는 남자의 본능 속에 있는 영웅주의와 의리, 파괴적인 본능을 자극한다.  

  사람은 이름을 남기고 싶어한다. 그리고 영웅이 되고 싶어한다. 이름을 남기고 영웅이 된다는 것은 같은 곳에 공존한다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 나라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옛적부터 지금까지 싸워왔다. 그 중 기억되는 것은 영웅들과 왕들의 이름뿐이다. 하지만 영웅이나 왕이라서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이름은 그들을 위해 죽어간 병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내가 무언가 되고 싶다면, 나를 돕고 따르는 자들을 축복하고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내 영웅론의 핵심이자, 이 영화가 내게 준 감명이다.  
 

  

  

3. <메가 마인드> - 톰 맥그라스 감독  

  영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미 외모지상주의나 엘리트, 특권주의는DreamWorks가 매우 싫어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영웅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선택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메트로맨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많은 사람들의 영웅으로 사는 것에 익숙했고, 악당 메가마인드는 그런 메트로맨을 보며 질투와 승부욕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나 메트로맨의 속내는 더이상 영웅으로 살고 싶지 않았고, 음악을 즐기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영웅으로서의 충분한 자질과 뛰어난 능력을 가졌고,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 영웅이었지만 자신이 원하던 삶이 아니었던 것이다.

  반면에 메가마인드는 어릴 때부터 원치 않게 악당의 역할을 맡아야 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악당의 운명을 받아 들여 메트로맨과 대립한다. 그리고 결국은 메트로맨을 제압하여 메트로 시티를 지배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허무함이 찾아 오고 몸과 마음이 근질근질하다. 그러던 중 메트로맨과 똑같은 능력을 가진 타이탄을 만들어 내어, 다시 악당 메가마인드로 살아가려 했지만, 영웅이 될 줄 알았던 타이탄은 도리어 자신보다 더 악랄한 악당이 된다. 보다 못한 메가마인드는 자신이 만든 타이탄을 제압하려 들고, 이 과정 속에서 메가마인드는 깨닫는다. 즉, 영웅과 악당은 시대나 상황,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삶을 선택하여 영웅이 되고 악당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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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 주세요.

 

- 책 읽고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이 시대의 지식인 강준만,   

  그의 책들은 비슷하지만 읽으면 분명 도움은 된다. 

 

 

 - 버트란트 러셀이 쓴 책인데 이제서야 제대로 번역이 된 것일까? 

   이 책이 선정될 확률은 많지 않지만 과학 도서가 선정된 적이 별로 없기에 기대해 본다. 

 

  

- 요즘은 이런 책이 눈에 끌리는데,  

  대담 형식의 대화집은 두 사람의 지식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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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2-13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상봉 교수의 대담집도 은근히 끌리네요, 이번 선정도서들도 읽어볼만한게 많아서
유력후보 도서가 떠오르지 않네요 ^^;;

EAST-TIGER 2011-02-15 19:33   좋아요 0 | URL
흠.. 인문/사회 분야의 선정되는 책들은 비주류는 잘 안 되는 듯;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 주세요.

 

- 이런 책은 직접 찾지 않으면 볼 수 없다. 그리고 읽는 사람들도 한정적이다. 그러나 이런 책이야말로 딱딱한 느낌 너머에 있는 양식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자"라는 심정으로 읽는다면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다.  

 

   

- 동양에 <시경>이 있다면 서양에는 <시학>이 있다. 과연 서양에서 보는 시는 무엇일까? 그것도 윤리학의 아버지이자 철학의 대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시간을 초월하여 알려준다면 안 볼 수가 있나? 

 

 

- "아름다움이란 뭘까?" 이 고민은 우리 시대 언론매체와 사람들에게 질문되어져야 한다. S라인과 얼짱이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아름다움'의 의미는 너무 한정적이다. 서울대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그는 적어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답을 알려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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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12월 5주



 

  영화 보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사람들은 영화를 보면서 재미와 감동을 느끼고, 간접적으로 등장인물들의 삶을 체험하면서 같은 고민과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영화에는 다양한 인간들의 삶이 녹아 있고,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는 소통이 있다. 그러니 영화는 계속 제작될 것이고 사람들은 계속 영화를 볼 것이다. 또한 영화산업은 선진국의 대표적인 산업 중 하나이고, 그 나라의 문화 수준과 경쟁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난 영화와 함께 살아왔다. 보는 것을 비롯하여 만들었고, 출연하기도 했다. 나는 비극이든 희극이든 영화 같은 삶을 살기 원했고, 지금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아니, 나는 지금 내 영화의 주인공이다. 혹시 내가 죽고 난 다음에 사후세계에서 내 삶을 스크린 통해 볼 수 있다면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을 것 같다.

 

  매년 많은 영화들을 보았지만 올해처럼 10편을 선정한 적은 없었다. 영화도 책처럼 정리해 두지 않으면 잊혀지기 마련인데, 다행이 내가 본 영화들 대부분을 블로그에 정리해 두었고 이렇게 인상적인 영화들을 선정하여 그때의 감동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선정해 보니 대부분 올해 개봉한 영화들이고 간혹 고전이 된 영화들도 있다. 특히 올해는 우리 나라 영화들이 인상적이었고, 좋아하는 감독들의 신작도 많았다. 선정된 영화들 외에도 인상적인 영화들이 더 있는데 자리가 부족하여 못내 아쉽다.

 

  10편의 순위는 없으나 평점은 블로그 리뷰에 기록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평점을 적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매긴 평점이라 상관은 없겠지만, 그 평점이 아직 선정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편견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정리하는 순서대로 소개했기에 부득이 하게 번호를 달았다. 또한 어디까지나 올해 보았던 영화들이니 이미 고전이 영화들을 보며 오해가 없길 바란다. 내년에도 많은 영화들을 보고 연말에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1. 아바타 - 제임스 카메론 감독

 

  영화 포스터를 보면서 불만인게 왜 '제임스 카메론 감독 작품' 이라 하지 않고, '<타이타닉> 감독 작품' 으로 카피를 적었는지 모르겠다. 내 짐작이 맞다면 이것은 진짜 영화팬들을 우롱하는 상업적 카피일 것이다. 순간 화가 났지만, 상영되는 모든 영화들의 간판을 내릴 수도 있는 포스를 가진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가 개봉했다는 것은 내게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었다.

 

  <터미네이터>시리즈, <타이타닉>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신작은 역시 대작이었다. 할리우드의 자본과 기술력에 카메론 감독의 연출과 기획이 빛을 발했다고 할 수 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상황설정 속에서 희망을 찾으려는 카메론식 SF물은 이번에도 유효했다. 좀 특이한 것은 <터미네이터>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기계들에 제압당하는 인간들의 연약함이, 자연을 사랑하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나비족을 침범하는 욕심많고 무자비한 인간들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문득 이 영화의 주연배우들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종 영화제에서 <아바타>는 많은 상을 받을텐데, 배우들에 관련된 상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연배우들은 컴퓨터그래픽 기술에 재료에 였으니까. 카메론 감독에 의하면 속편이 나온다고 하니 다음은 어떻게 사람들을 놀라게 할지 기대된다.

 

 



 

2.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이준익 감독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님은 먼 곳에>의 이준익 감독. 개인적으로 나는 그가 감독한 사극을 좋아하는데, 대중적이지 않은 소재들을 선택하여 시대적 상황과 지금 시대적 상황을 연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연출력이 뛰어나다. 개인적으로 그가 정극보다는 사극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많이 제작했으면 좋겠다. 영화평을 보니 관객들이 이번 영화가 전작 <황산벌>, <왕의 남자>보다 공감하기 어렵다는 평이 있지만, 이준익 감독 특유의 사극을 엿볼 수 있는 수작이었다.

 

  영화는 꿈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세상을 바꾸려는 자와 만들어 가는 자가 대립한다. 이몽학은 대동계를 바탕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꿈을 가지고 한양으로 진격한다. 황정학은 대동계를 바탕으로 현실에서 이상사회를 만들려고 한다. 견자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이몽학을 뒤쫓지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죽은 꿈이다.

 

  세상을 바꾸려는 자는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여 현실을 깨려하고, 세상을 만들어 가는 자는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지만 더 나은 현실을 위해 부조리를 수정하려 한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기에는 기존의 반대세력을 이기기가 만만치 않고, 세상을 이상사회로 만들어 가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지지세력이 충분하지 않으면 뜻도 못 펼친다. 이는 항상 시대의 흐름 속에서 대세(大勢)라는 것이 보이지 않게 존재하고, 대세를 반대하는사람들보다 인정하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꿈이 있어도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있고, 꿈이 없어도 얼떨결에 꿈을 이루는 사람도 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시대의 섭리(攝理)라고 할 수 있다. 

 

 



 

3. 시 - 이창동 감독

 

  <오아시스>, <밀양>의 이창동 감독은 깐느 영화제와 인연이 많은데, 국내에서는 호불호가 분명한 것 같다. 그 이유로 그의 영화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항상 결론이 명확하지 않다. 다르게 말하면, 영화의 결론이 관객들의 상상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한편의 '시' 같은 영화를 만들어 내는 그의 영화는 곳곳에 함축적인 의미가 숨어있다. 그것을 하나하나 풀어간다면, 그의 영화를 보는 재미가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영화는 그의 영화의 진수를 보여준 '작품' 이었다. 특히 배경음악 없이 순수 자연음을 사용한 것은 또다른 '의미' 가 있다.

 

  우리 주변의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전부 자신의 이익과 만족을 위해 살아간다. 누구도 사회와 상황 속에서 고결한 희생이나 사과내지 용서를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낭만과 순수를 말하는 시를 비롯한 문학들이 설 곳이 없다. 시를 써도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고, 글을 써도 사람들이 읽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 시를 쓰거나, 글을 쓰는 사람도 사라져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의 아름다움 속에 죽어갔는가. 시를 가장 시답게 만드는 것은 인간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깨끗한 몸에서 깨끗한 마음이 나오듯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아름다운 시가 나온다.

 

 



 

4. 이끼 - 강우석 감독

 

  윤태호 작가의 동명만화인 <이끼>를 원작으로 제작한 강우석 감독의 <이끼>. 강우석 감독의 영화는 2000년대 이전과 2000년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2000년대 이전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제작하며 현실 사회를 풍자했다면, 2000년대 이후는 우리 사회 내의 부조리와 숨겨진 역사들을 영화로 고발했다.

 

  나는 강우석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투캅스>의 향수를 느낀다. 대표적으로 그가 2000년대 이후의 영화들 중 <공공의 적>시리즈는 <투캅스>의 외전에서 가깝다는 느낌이 강하고 스토리도 단조롭다. 반면에 <실미도>와 <한반도>같은 영화들은 원작을 기반으로 각색을 하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자신만의 스타일을 바꾸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이런 강우석 감독의 노력이 <이끼>에서 빛을 발했다고 생각한다. 관객들은 원작이 있는 영화를 보면 원작과 영화를 비교하는데, 그 이유는 이미 스토리를 알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내가 본 <이끼>는 원작과 비슷한 흐름이지만, 강우석 감독의 전작들과는 다른, 뭔가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을 되새겨보니 기존의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원작을 충분히 이해하여 각색에 좀 더 신경을 쓴 면이 영화에서 많이 보였다. 나는 이것이 강우석 감독의 새로운 변화이고, 앞으로 제작될 그의 영화들이 기대되는 이유가 되었다

  

  영화에 나타난 다양한 배역들이 서로 간의 소통을 중시했다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들을 조종했던 보이지 않는 손에 놀아나는 결과도 없었을 것이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 없이 개인과 집단의 욕심과 명예추구는 소통의 단절을 이끌고, 소통의 단절은 개인과 집단의 극단적인 행동을 유발하여, 사회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결과로 치닫는다. 우려되는 것은, 이 모든 것이 누군가가 계획한 바보놀음이라면 더욱 비참하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근래에 보았던 영화들 중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영화였다. 
 
 



 

5. 서부 전선 이상 없다 -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

 

  1930년에 개봉한 흑백영화를 지금도 볼 수 있다는 것은 굉장한 행운이다. 그리고 영화사의 명작들은 시대와 세대를 관통하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 루이스 마일스톤(Lewis Milestone) 감독에게 이 영화는 첫 유성영화였다. 영화를 보면 배우들의 클로즈업과 전쟁영화 치고 컷이 길면서 정지영상이 많은데, 아무래도 배우들의 대사가 관객들에게 더 잘 들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촬영한 것 같다. 마일스톤 감독의 또 다른 영화로 1960년에 개봉한 <오션스 일레븐>이 있는데, 이 영화는 2001년에 스티븐 소더버그(Steven Soderbergh)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다.

 

  인상적인 것은, 1930년대 만들어진 전쟁영화라고 믿겨지지 않을만큼의 구성의 탄탄함이다. 일단 시나리오는 지금까지 제작된 전쟁영화들의 교과서와 같다. 전쟁의 참상과 병사들 개개인이 바라보는 전쟁의 회의적 시각, 비극을 짐작하게 하는 복선 등. 이 영화에는 전쟁영화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정확하게 담겨져 있어 더욱 실감난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도 수준급이었고, 특히 그들이 말한 대사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특히 주연급 배우들은 거의 첫 데뷔작일 듯 싶은데, 전쟁과 어울리지 않는 꽃미남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1930년대 배우들이라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이 없다. 이외에도 긴장감을 주는 배경음악과 타격감이 느껴지는 효과음은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6.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 박광수 감독

 

  <칠수와 만수>, <그 섬에 가고 싶다>, <여섯개의 시선>의 박광수 감독. 그는 이 영화로 춘사대상영화제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 청룡영화제에서는 감독상을 받았다. 1970년대의 암울했던 시대상과 전태일의 삶을 교차 편집하면서, 흑백과 칼라로 과거와 현실을 구분했고, 나중에는 흑백을 칼라로 전환하면서 강렬한 이미지를 주었다. 빠른 전개로 지루하지는 않았으나 책의 내용이 많이 요약된 것 같아 아쉽다. 최근에 신작 소식이 없는데 그의 근황이 궁금하다.

 

  영화를 보다가 나는 몇 번이나 울분을 참지 못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사회에 외쳤는데, 돌아오는 것은 냉대와 압박, 거짓된 위로였다. 그래서 자신의 온 몸을 불태우며 죽음으로써 부당함을 알린 그의 모습에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눈물을 흘렸다. 22살의 청년은 이 시대 억압 받는 사람들을 위해 싸웠고, 불꽃처럼 온 몸을 불태우며 그들을 위해 죽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말하면서..

 

 



 

7. 그린 존 - 폴 그린 그래스 감독

 

  <본 슈퍼리머시>, <본 얼티메이텀>, <플라이트 93>의 폴 그린그래스(Paul Greengrass)감독. 나는 그의 사회성 짙은 문제의식과 실화 같은 연출력이 마음에 든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의 연출력은 빛을 발했고, 다소 많은 이야기를 꺼내 정리가 잘 안 된 부분도 있지만 충분히 수작이다. 그는 9.11테러 이후의 미국에 대한 냉철한 시각을 가졌고, 앞으로 1~2편 더 이에 관련된 영화가 제작될 것 같다.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 평가되는 이라크 전쟁의 실상을 영화가 잘 보여준다.대량살상무기를 찾으려 했지만 없었고 사담 후세인 대통령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사실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며 전쟁을 유도한 것도 언론매체의 호들갑 때문이었다. 정말 어디에 근거한 정보인지는 모르나, 석유와 사원(temple)뿐인 중동지역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란이 핵보유를 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사실로 받아 들여졌지만, 이라크와 아프카니스탄은 솔직히 별 다른 언급이 없었다. 다만 부시 부자는 이라크를 무척이나 싫어했고 전쟁의 명분은 거기에 있었다.

 

  만약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당시와 이후라도 이점을 좀 더 생각했다면, 이라크 포로들에게 행한 만행과 무분별한 폭격사고, 이라크 국민, 국론분열은 지금보다 심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국제적 이미지와 신뢰가 실추되어, 중동지역과 유럽지역 나라들의 관계가 심각한 수준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과연 미국이 말하고 지향하는 세계 평화는 무엇일까?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 내에서도 이것에 대해 고민하고 소신 있는 발언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어느정도 있다는 사실이다.

 

 



 

8. 부당거래 - 류승완 감독

 

  <아라한 장풍대작전>, <주먹이 운다>, <짝패> 등등.. 우리나라 액션영화의 젊은 거장 류승완 감독. 나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화려하고 리얼한 액션에 눈이 즐겁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정두홍 무술감독이 늘 함께하기에 더욱 그렇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일반적으로 액션영화들이 그렇지만, 스토리가 단순하고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내용도 인상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류승완 감독도 이런 점에서 예외가 아니었으나, 이번 영화에서는 확실히 달라진 면을 보였다. 스토리도 괜찮았고 전달하려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자기 계발과 고뇌한 흔적도 느껴질 정도였으니.. 그의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그의 차기작이 기대되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정의롭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정의를 지켜줘야 할 사람들이 불법과 폭력을 사용한다면, 신호등 없는 도로처럼 무법천지가 될 것은 분명한 일이다. 어찌하다 이런 사회가 되었는지를 탓할 수 없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우린 모두 공범이고 일정한 책임을 나눠 가지고 있다.

 

 



 

9. 세 얼간이 - 라쿠마르 히라니 감독

 

  예전에는 인도영화를 볼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요새는 많이 볼 수 있게 되어 나름 흥미롭다. 그만큼 인도영화도 세계 영화계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갖췄다는 증거일 것이고, 실제로 영화를 보면 상당히 괜찮다는 느낌이 든다. 아쉽게도 대중적인 지지를 받는 영화들의 주제가 비슷하다는 경향이 있지만, 배우들의 연기나 제작의 아이디어는 수준급 이상이다.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인도영화를 보면 순수함이 느껴진다. 할리우드나 우리 나라 영화계에서 느껴지는 심각함이나 복잡함보다는, 단순하고 거부감 없는 주제를 같은 주제의 다른 나라의 영화들보다 훨씬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딱 보면 인도영화라고 느껴질 만큼의 제작과 연출은 정말 강점이다. 아직까지는 인도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지만, 지금까지는 내가 본 인도영화들은 대체로 좋은 인상을 주었다. 

 

  인도 사회는 아직도 카스트 제도가 유지될 만큼 신분제 사회이다. 그리고 신분제 사회의 문제점은 불평등과 치열한 신분상승욕구일 것이다. 영화 한 편만을 보고 그 사회의 문제점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영화는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인도 사회는 변화의 시기에 있는 것 같고, 우리 나라와 비슷하게 교육열과 성공주의를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한 것 같다. 그만큼 인도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장했다는 증거일 것이다.

 

 



 

10. 작은 연못 - 이상우 감독

 

  <칠수와 만수>,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죽이는 이야기> 등 개성있는 연출가 이상우는, 거의 50세가 되어서 이 영화로 첫 감독 데뷔를 했다. 영화에서 피난 가는 장면과 미군의 무차별 사격을 받고 난 후 장면에서, 감독은 마치 바다 속을 유영하는 듯 한 고래와 고래 새끼를 삽입했는데, 유유히 흘러가는 시간과 묻혀진 진실의 역사를 살리고자는 상징적 의미를 담은 것 같다. 다작의 연출가는 아니기에 그의 작품을 언제 또 보게 될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를 통해 어떤 사람들은 반미감정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나는 반미감정보다 인간의 연약함과 비정함을 보았다. 연약한 인간들이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는 것과, 공동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때로는 아무렇지 않게 비정한 선택을 한다는 것, 이 두 가지 사실은 인류 문명을 오늘까지 이끌었고, 세계 역사의 글귀마다 기록되어 있다. 

 

  역사는 남겨진 자들이 평가하지만, 왜곡된 사실과 거짓된 역사들은 남겨진 자들도 때론 지나쳐 폐기처분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근래에 이 영화를 비롯한 '진실을 밝히려는 영화'들의 등장은,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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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 근래에 독일 역사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 명사들의 인터뷰, 조금은 도움되지 않을까? 제발 똑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 고인 시인의 산문집, 언젠가 그의 사후에 그의 책들은 좋은 가치를 받을 것이다. 

 

- 강의록을 정리한 네그르의 제국강의, 상당히 흥미로운 글들이 예상된다. 

 

- 두 지성인의 대화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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