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7월 4주

 

 

 

 

 

 

  

  

 

1.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 조엘 코엔 감독  

  영화에서 OST는 단 한곡만이 엔딩 크레딧에서만 나온다. 배경음악 없이 단지 배우들의 대사와 주변환경에서 나오는 소리 뿐이다. 또한 시거와 모스, 에드는 너무 맹목적이다. 시거는 모스를 찾기 원하고, 모스는 그로부터 도망치기를 바라고, 에드는 적당히 뒤쫓을 뿐이다. 그리고 2백만 달러가 든 가방은 영화 후반부에 모스의 손을 마지막으로 사라져버린다.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뭔가 심오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영화 포스터가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살인마 시거가 갈 수 없는 곳은 없다. 그런 시거를 뒤로한 채 2백만 달러가 든 돈가방을 들고 모스는 어디론가 도망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도 시거의 시야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결국 어딘가에서 개죽음 당하든 그건 상관없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선택할 수 없던 일이니까. 시거는 오늘도 산소통을 들고 그런 사람들과 마주치기를 원한다. 모스는 승산없는 도망을 칠 것이고, 에드는 그 둘을 바라보며 의미없는 고민을 한다. 의미는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2. 추격자 - 나홍진 감독 

  영화는 희대의 살인범 유영철의 살인극에서 모티브를 잡았다고 한다. 요새는 쥐도 새도 모르게 어린이부터 성인 여자까지 납치해서 그냥 죽이는 것도 아닌 온갖 망나니 짓에 시체토막 내는 시대라, 이 영화가 우리 사회의 불안요소를 나름 표현했다고 본다.

  영화 내용은 대충 짐작이 가겠지만 초, 중반까지 잘 나가던 스토리 라인이 후반부에 이상하게 되어버린다. 약간 억지스러운 건지, 아니면 장치였는지 모르겠지만 후반부에 슈퍼마켓에서 벌어진 장면은 엑스트라 연기도 그렇고 내용도 썩 좋진 않았다.  차라리 다른 방법으로 스토리를 전개했거나 수정했으면 좋았을 걸.

  영화는 쉼없이 전개된다. 장소도 큰 변동이 없다. 그리고 배우들은 열심히 뛴다. 요즘 영화에서는 경찰들의 나태함을 보여주고 공직사회의 단상을 표현하는데 나는 그것이 유감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을 언제까지 유효할까? 지금은 자기의 목숨하나 지키기도 어려운 시대이다.
윗물이 맑든 더럽든 아랫물은 계속해서 윗물로 부터 온다. 그렇다면 스스로 정화시킬 수밖에... 전직 경찰과 포주 사이에 서 김윤석은 그렇게 스스로 정화하려고 한다.  

   

 

 

 

 

 

 

 

3. 악마를 보았다 - 김지운 감독 

  영화를 보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살인마 장경철 앞에서 여자들은 너무나 무기력했고, 범죄 수법과 묘사가 무척이나 섬뜩했다. 놀랍게도 내가 이런 장면들에 익숙해졌는지 무뚝뚝하게 보았지만, 옆에 있던 관객들은 짧은 탄식과 비명을 질렀다. 내용은 어렵지 않으나 너무 엽기잔혹극으로 기울어져 보기가 민망하다. 

  근래 사회 내 성범죄가 급속도로 증가하여 나이와 장소에 관계없이 여성들이 위험상황에 직면해 있다. 성범죄는 그 피해로 여성 한 사람의 인생이 파탄날 수 있는 잔인한 범죄이기에, 정부차원에서 더욱 큰 관심과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범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기에, 정부 이전에 시민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자신과 관계없다고 방관하거나 무시하기에는, 지금의 사회 내 범죄들이 너무 잔혹하고 엽기적이다.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 관심을 가지며 돕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 내에 범죄자들은 그 틈을 타서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들을 빼앗을 것이고, 피해자 가족들의 눈물에 안타까움을 느끼거나 침묵, 방관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그 피해의 주인공이 나 자신이나 가족이 될 수 있고, 이는 심각한 사회 치안 문제와 개인 도덕성 문제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영화로 제작되었고 개봉했기에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이 영화를 보고 모방범죄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에서 살인마에 목숨을 잃은 여성들처럼, 우리 사회 내 여성들이 스스로 약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들 스스로가 경각심을 가져, 우리 사회 내 이런 유사한 범죄들이 생겨나지 않도록 여성을 비롯한 약(弱)자들을 도왔으면 한다. 

  만약 당신이 영화 속의 김수현이라면 굳이 이런 우려들이 필요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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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6월 5주

  

<포화 속으로> - 이재한 감독 

  정기적인 것은 아니지만, 6월에는 6.25 전쟁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들이 자주 개봉한다.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달이자, 오래 전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고 의로운 피를 흘렸던 6월. 반 세기가 지나서 이젠 잊혀진 전쟁처럼 느껴졌지만, 2010년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 준 한 해였다. 그리고 그 날의 비극을 잊지 말라는 죽은 자들의 외침이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시 학도병들은 수적 열세를 극복하기 위한 남한군의 고육지책이었다. 그들은 총 쏘는 방법만 배우고 현역 군인들과 같이 즉시 최전선에 배치되었다. 생각하면 얼마나 기가막힌 일인가? 사춘기의 청소년들을 전쟁터로 데려가 총 한 자루 쥐어 주고 최전선에서 잘 훈련된 북한군을 상대로 조국을 위해 싸우라고 하다니! 전쟁에는 이유불문이 없다하더라도 그들은 너무 어렸다.

  시대가 많이 변했기에, 영화에서 학도병들이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 모습들을 오늘날의 청소년들이 보면 어색한 기분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에 상관없이 군대를 가본 남자들이라면 공감 할 것이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국방의 의무란 무엇인가? 군복만 입었다고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 속 깊이 가족과 친구들을 비롯한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겠다 다짐하고, 나라의 안전과 보호를 위해 목숨도 바치겠다는 투철한 정신이 의무를 만든다. 좋은 싫든 군대에 와서 이것을 깨달았다면 국방의 의무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군인이다. 


 

 

 

 

 

 

 

 

    

 

<서부전선 이상없다> - 루이스 마일스톤 감독 

  1930년대 만들어진 전쟁영화라고 믿겨지지 않을만큼의 구성의 탄탄함이다. 일단 시나리오는 지금까지 제작된 전쟁영화들의 교과서와 같다. 전쟁의 참상과 병사들 개개인이 바라보는 전쟁의 회의적 시각, 비극을 짐작하게 하는 복선 등. 이 영화에는 전쟁영화의 기본적인 요소들이 정확하게 담겨져 있어 더욱 실감난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도 수준급이었고, 특히 그들이 말한 대사들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특히 주연급 배우들은 거의 첫 데뷔작일 듯 싶은데, 전쟁과 어울리지 않는 꽃미남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1930년대 배우들이라 지금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이 없다. 이외에도 긴장감을 주는 배경음악과 타격감이 느껴지는 효과음은 영화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는 동명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반전(反戰)영화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전쟁은 평범한 집배원을 하사관으로 만들고, 학문에 열중해야 할 학생들을 병사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명분을 부여한다. 즉, 자국 내에 전쟁이 발발하는 순간부터 개인의 꿈과 야망은 잠시 접어두고, 조국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날아오는 총탄 속에 바쳐야 하는 것이다.

  전쟁은 권력자들이 보기에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생각하겠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는 일이다. 물론 자국 내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가족과 친구들의 생존을 위해 맞서 싸워야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사전에 막는 것이다. 국민들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데 국가 위정자들의 판단 속에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국민이 져야 하는가? 나는 이 대답을 정확히 말하기 힘들지만, 한 가지 예로 전쟁이 발발하면 가장 먼저 도망가는 것은 국가 위정자들이었고, 맞서 싸우는 사람들은 합법적인 군복무자들과 국민들이었다. 이건 우리 나라 역사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다.   

 

<엘라의 계곡> - 폴 해기스 감독 

  전 세계에  교양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 10명 중 5명 이상은 잘못된 일이라고 말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그것을 복구하고 되찾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흘렀다. 실제로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 감독의 <화씨9/11>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파병된 병사들은 전쟁을 통해서 점차 반인륜적인 행동을 서슴치 않았고, 포로와 약자에 대한 인정과 자비는 희미해져갔다. 실제로 미군들이 포로들을 학대하고 성적 수치심을 주는 사진들이 언론을 통해 공개 되었을때, 많은 사람들은 이 전쟁이 무척이나 잘못되었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전쟁터는 선량한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기 쉬운 곳이며, 악인을 영웅으로 만들기도 쉽다. 그 곳에서는 오로지 승리를 위한 반칙과 승리자의 만행만 존재한다. 아쉽게도 영화에서 나오는 병사의 말처럼 그 곳에 핵폭탄이 떨어져 모든 것이 가루가 되야 이 전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군복무를 마쳤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지만, 군대라는 곳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특히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인 우리나라는 더욱 더 그렇다. 그들의 인성이나 적성은 솔직히 크게 상관없고  공통적으로 약 2년의 시간만 지나면 자동적으로 전역을 한다. 그러기에 각 병사들의 심신이나 의지에 상관없이 전역 하는 그 날까지 모두가 한 생활관에서 공동생활을 하게 된다. 다들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단체생활을 통해 서로를 도울 수 있다고 좋은 취지로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단체생활이 익숙하지 않고 극단적으로 내성적이거나 심약한 병사들은 진정 하루하루가 힘들고 죽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 군대이다. 또한 계급사회에서는 상명하복이 당연한 의무이다. 그렇다면 이미 병사들의 인권이란 사실상 무늬 뿐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 군대는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편해진 것은 결코 아니다. 군대는 엄연히 남성위주의 사회상이고 웃음과 기쁨보다는 슬픔과 우울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하물며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군의 군부상황은 어떨까? 총탄과 폭격이 난무하여 자신과 옆 전우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인권이나 인성, 자비심을 기대하기에는 너무 큰 기대감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포로들은 좋은 먹이감이다. 인간 본성이 가진 폭력과 잔인성은 전쟁에서 표출되기 너무 쉬우며,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침없다. 누가 그들을 전쟁으로부터 구원할 것인가? 아쉽게도 지구의 종말이 오지 않는 이상 이 땅에서 전쟁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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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5월 4주

 

 

 

 

 

 

 

   

<아무도 모른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미혼모인 엄마가 4남매를 남겨두고 오사카로 떠난 사이에 4남매의 생활은 침식되어간다. 아키라 외에는 집 밖에 나갈 수 없는 규칙은 엄마가 없는 상황에서도 한동안 유효했다. 그러나 너무 힘든 생활고와 무의미한 날들에 반발하여 4남매는 조용(?)하고 즐거운 외출을 한다. 비극적인 일로 동생이 의자에서 떨어져 뇌진탕으로 죽게된다. 살릴 수도 있었지만 일단 돈이 없을 뿐더러, 병원에 가도 보호자가 없고,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져 4남매가 헤어지게 될까봐 갈 수 없다. 영화에서는 남매들의 결말을 지어지 않았지만 그들의 삶을 보고 있는 자체가 안타깝다. 감독은 그런 남매들의 뒷모습을 엔딩신으로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1988년 일본에서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된 영화인데 이런 상황은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사회복지 계열의 종사자라면 꼭 봐야할 영화라고 생각한다. 중간중간 의미있는 영상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아키라 역의 아기라 유아는 소년 가장의 역할을 잘 연기했다. 특히 어린나이지만 감정연기가 뛰어났다. 그는 2004년 칸느 영화제에서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윈터스 본> - 데브라 그래닉 감독

  영화는 깔끔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주제로 전개되었고, 감독은 자신이 하고 싶을 말들을 잘 전달했다. 그러나 영화가 끝났을 때 뭔가 허전함이 들었다. 진짜 리와 그녀의 가족에게 평화가 찾아 온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일까? 어린 여동생이 아버지의 기타를 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리의 표정은 밝지 않다. 

 소년소녀가장이나 고아들은 일찍부터 치열한 삶을 살아간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나름대로의 생존 방식을 깨닫고 숙련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을 낯설게 느끼고 무시와 냉담을 야속하게 느낀다. 그들을 적절한 시기와 때에 도와주지 않는다면, 사회의 불안요소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사회 구성원 대부분은 사회 내 범죄와 사건의 공범이다. 

  미성년자를 일찍 성인으로 만들고, 연약한 인간을 강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이 처한 환경과 상황의 영향이 크고, 생존 방식을 개척함으로써 '야생'적 기질을 부여한다. 자립심이 강한 것은 좋지만 자폐적인 언행이 동반되면 곤란하다.

  지금 우리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 정부 정책과 함께 개인 스스로의 결단에서 비롯된 구체적이고 진심 어린 '사회 복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회 복지'의 사각지대는 없어야 한다.
 

 
  

 

 

 

 

 

 

 

<무산일기> - 박정범 감독 

90년대만 해도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오게 되면, 국가 차원의 환영 행사와 정부에서 넉넉한 정착금과 좋은 여건을 마련해 주었는데, 2000년 이후부터는 너무 많은 탈북자들이 남한으로 오게 되어, 환영 행사는 커녕 정착금과 여건 마저 예전만 못하다. 실제로 지상파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로 탈북자들의 현실을 알리기도 했고, 언론에서도 탈북자들의 남한 생활에 있어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보도하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공감했던 몇 가지 사실들은, 같은 동포이자 민족인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서 쉽게 정착하기란 어렵다는 사실과, 남한 사회 내에서도 약 300만 실업자들이 있으니, 탈북자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란 당연히 어렵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기성 교회들을 비롯한 사회 내 인권단체들이 탈북자들의 희망이 되어주기에는 어렵다는 사실이었다. 이는 비단 탈북자 뿐만 아니라 사회 내 소외계층에게도 해당된다.

  이러한 사실들은 국가 정책이 잘못되어서가 아니고, 기성 교회들과 인권단체들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해서 생긴 일은 아니라고 본다.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도 히스패닉과 이민자들에게 국가 차원의 차별대우 정책을 공공연하게 시행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그것을 반대하는 인권단체들의 시위는 멈추지 않고 있다. 핵심은 인간이 자신보다 낮게 여기는 인간을 향한 본능적 비호감과, 역사적으로 계속되어 온 사회 내 유산계층의 배려없는 횡포라 할 수 있다.     

  어찌하랴! 인간은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을 돕기보다는 이용하는 것에 익숙하고, 안타까워 하면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거나 헌신하는 성실함과 꾸준한 용기가 없다. 같은 남한 사람들도 서로를 밟고 뒤통수 치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데, 하물며 사회 내 소외계층에게 눈을 돌려 그들을 진심으로 도울 수 있을까? 근래에 정치계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복지 신드롬'을 우려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앞으로 북한에서 더 많은 탈북자들이 나오겠지만, 그들이 남한행을 택할지는 미지수이다. 얼마 전에 서해상에 표류한 북한 주민들 중 상당수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겠다고 하자, 일부 남한 사람들이 그들을 보며 "멍청이들! 굶어 죽으러 다시 북으로 가?"라고 말했는데, 남한에서 '152'로 시작되는 탈북자 전용 주민번호가 계속 시행되는 이상, 북한이 국가와 국민들을 파멸로 몰아넣는 독재정권을 계속 존립하려는 이상,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든 편안한 생활을 보장 받을 수가 없다  

  같은 말과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이렇게 박한데, 다른 말과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어떨까? 그들의 "무산일기"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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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4월 4주

 

 <레이> - 테일러 핵포드 감독

  '소울의 아버지' 레이 찰스(Ray Charles Robinson)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신은 자연보다 연약한 인간에게 그에 따른 보상으로 많은 것들을 선물했는데, 그 중 음악은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또한 내가 신에게 감사할 것은, 음악이 체계화 되어 있지 않을 때, 이 땅에 음악천재들을 보내사 그들로 하여금 음악을 음악답게 만들게 했고, 그들이 대부분 죽고 나서야 나는 이 땅에 태어나 그들이 만들어 놓은 음악을 거저 들으며 홀로 감탄하며 듣고 있다.
 

  살면서 어디선가 그의 음악을 들었겠지만, 내가 '레이 찰스' 라는 이름을 처음 알게 된 해는 2007년도 일 것이다. 그 당시 군대에서 막 전역한 나는 그동안 했던 일을 잠시 접어두고, 예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던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은 그때나 지금이나 Jazz였다. 평소에 미디어작업 하면서 BGM으로 썼던 음악들이 대부분 Jazz였기에, 자연스럽게 Jazz음악을 많이 들었고, 언젠가 내가 이 음악들을 연주할 거라고 마음먹었다. 전역 후 나는 지금 생각해도 무서울 정도로 Jazz를 들었고(지금 생각해도 당연했다), 그때 음악 통해 만난 유명한 아티스트들 중에 레이 찰스도 있었다.  

  내가 만난 레이 찰스는... 아마 신이 인간을 축복하지 않는 이상, 다시는 그런 보이스(Voice)와 편곡력을 가진 아티스트를 내 생애 만나기 힘들 것 같다. 그를 알고 난 후 그의 음악들은 내가 즐겨듣는 음악들 중 하나가 되었고, 성탄절이면 그가 부른 'Christmas Song' 을 듣는다.  

 

  

 <버드> -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

  BeBop의 황제이자 Jazz계의 천재 찰리 파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Jazz를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찰리 파커는 진짜 전설이다. 이 세상에서 34년을 살면서 바람처럼 불꽃처럼 살았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 악마와 거래를 한 듯한 파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음악가로서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고뇌와 자신만이 알고 있고 해야 하는 해답 속에서 헤매는 모습이 잘 전달 된다. 영화적으로 특이한 것은 다른 전기영화와는 달리 회상이나 매개체를 이용한 스토리 전개가 특이했다. Jazz광인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라는 점도 보는 즐거움이었다.   

  아마 Jazz를 한다고 하는 사람은 모두 찰리파커의 제자일 것이다. 나도 그렇다. 그의 부인 챈 파커의 말이 기억난다.

"음악과 그는 분리 될 수 없다. 그것 외에는 그가 아니니까." 
 

 

<샤인> - 스코트 힉스 감독 

  이 영화는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David Helfgott)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지만, 스토리가 잘 짜여진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충보면 아버지의 극성을 딛고 성공한 어느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내가 이 영화를 짧게 요약한다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던 한 남자의 삶의 과정을 보여준 영화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감동받은 점은 제프리 러쉬(Geoffrey Rush)의 연기다. 나는 배우가 연기하는 것만 봐도 영화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의 연기는 영화 내내 완벽했고,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캐리비안의 해적>시리즈의 '캡틴 바르보사' 였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데이빗이 메이저 콘체르토에서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3번을 연주할 때, 중간중간 피아노 소리없이 손가락으로 건반만 찍는 소리가 나는데, 그것은 데이빗의 연주가 열정을 동반한 스트레스이자, 무감정 속에서 나오는 기계적 반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은 재미와 감동이 없다면 어떤 일도 지속적으로 할 수 없고, 자유가 없다면 더더욱 할 수 없다. 그가 미쳐버린 것은 자유를 향한 의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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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 3월 4주

  

<코치 카터> - 토마스 카터 감독

  이 영화를 말하자면 기존의 상투적인 스토리적인 감동물 영화는 아니다.  늘 문제아들을, 아니면 실패자들을 집결시켜 하나로 뭉치게 하고 결국 승리라는(어디까지나 보편적으로 사회가 인정하는) 것을 얻는 것으로 영화가 막을 내리곤 했지만 이 영화는 인생에 대한 진정한 승리의 의미에 대해 말한다. 

  흔히 디펜딩 챔피언이라니 스테디 챔피언이라는 말이 있다. '반짝' 스타가 아닌 영원한 챔피언..  이 영화에서는 이기는 것과 지는 것을 떠나 진정 자신의 인생에서 자신이 챔피언이길 원한다. 좋은 추억거리라고, 내 인생의 전성기였다고, 인생에 있어 최고의 날이었다고..사실 우리 인생에서 좋은 추억과 전성기는 지금이어야 하고 그래야만 한다. 그러므로 늘 현존해있어야 하고 그것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 부단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승리가 꼭 영원한 승리를 의미하지 않고 패배가 영원한 패배가 되지 않는다. 때론 승리가 패배일 수 있고 패배가 승리일 수 도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고 그 끝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에 달려있다. 이 영화는 진정한 인생 가치로 방황하는 이들에게 도전을 주는 영화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 - 류장하 감독 

  영화의 내용을 보면 헝그리 정신과 상투적인 스토리로 시골 관악부를 관악대회 우승하는 스토리로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이 영화는 한 남자의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고 변화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다. 

  영화를 통해 보았던 한 남자의 변화는 우리 자신의 일상생활에서도 가능한 이야기다. 일명 회귀성 스토리를 가진 영화들은 외부적으로는 과장과 우연성이 짙은 사건들이 깔려 있다.  <꽃피는 봄이 오면>도 역시 그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꿈을 잃어버리고 인생을 체념한 채 시간만이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네 삶과 다를 바 없지만 그것을 음악으로 승화시키고 순수한 사람들을 만남으로 잃어버린 꿈을 찾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단순한 결심이 아닌 자연스러운 치유를 통한 완고한 결심이 되는 것이다.  

  그는 봄을 기다린다. 영화 중에 남자가 어머니한테 전화를 거는 장면은 내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되었다.

“엄마, 나 모든 것을 다시 할래..”

“야 너는 늘 처음이었어. 언제 무엇을 했다고 그러니?” 

  무언가를 많이 한 것 같지만 우리는 이 자리에 있고 늘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가 진정한 꿈을 찾을 때 우리는 기다린다. 
    

 

 

<블랙> - 산제이릴라 반살리 

  항상 불굴의 의지는 일반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해낸다. 기적을 믿지 않거나, 이해관계가 철저한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고 말하지만, 그들은 이미 기적과 불가능을 극복한 경험이 있고, 누군가의 삶을 통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경험과 상황들을 자신들이 배운 지식으로 그것들의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나는 그들의 방어들에 대해서 지식이 정체되어 있다고 표현하고 싶다. 지식은 표면적 이해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이 우주선을 쏘아 올리고 죽을 병도 고치지만,  사람이 우주선 밖의 우주를 보고 놀라워 하는 것과, 죽을 병이 나아 이전보다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도 지식이다.

  어둠을 어둠으로만 이해하면, 어둠 속에 빛이 있다는 것을 이해 할 수 없다. 장애를 장애로만 이해하면, 차별은 생길 수 밖에 없다.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 치열하듯이, 장애인이 장애를 극복하는 과정 역시 치열하다.그 과정에는 지식은 좋은 친구가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배우는 지식은 우리의 삶의 어느 일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어디에든 적용되고 그 폭은 무한하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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