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스터리츠 을유세계문학전집 19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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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때부터 감이 왔지만 놀라운 책이다.
W.G. 제발트 『아우스터리츠』는, 외젠 앗제의 사진 작품과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파트릭 모디아노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카프카, 보르헤스의 환상 단편들을 섞어놓은 듯한 소설이다.
내가 쓰고 싶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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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리벤지 포르노 : 젠더, 섹슈얼리티 그리고 동기
매튜 홀.제프 헌 지음, 조은경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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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재고의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추악함과 폭력에 대해 괴물이나 악(惡)이라고 규정짓고 더 이상 판단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에너지를 줄이려는 경제적 사고이자 고통을 차단하고픈 심정의 반영이다. 직접적인 피해자였으면서 나치의 만행을 깊이 들여다보았던 많은 유대인 지식인들은 대단히 용감한 사람들이었다. 고통스럽게 N번방을 추적한 추적단 불꽃도 용감했다. 그들이 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도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그 책을 덮으며 나는 다소 아쉬웠다. N번방과 그것을 향유했던 인간 심리와 메커니즘을 더 파헤쳐 봐야 계속해서 벌어지는 이 추악한 일들에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매튜 홀, 제프 헌 『리벤지 포르노』를 읽고 내 답답한 심정을 조금 대변해 준 거 같아 반가웠다. 얼마 전 나는 성매매 여성을 여성 노동자로 봐야 하는지 깊이 고민했다. 성매매 여성의 인권 개선을 위해 성매매를 합법화할 게 아니라 남성성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성매매 적폐를 직시하고 함께 부수어야 할 것이라고 나는 강변했다. 남성성의 권력에 의한 성 착취와 여러 문제는 지속적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커질 문제다. 매튜 홀, 제프 헌 『리벤지 포르노』도 그것에 주목하고 있다.

 

“리벤지 포르노”는 ‘당사자의 동의 또는 인지 없이 배포되는 음란물 화상 또는 영상’이란 뜻인데, 교제 대상이 아닌 생면부지의 해커나 돈을 노리는 협박자, 오락거리로 삼는 온라인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무차별로 공유되기 때문에 ‘디지털 성폭력’ 또는 ‘불법 촬영물’로 칭해야 한다. 매튜 홀, 제프 헌은 리벤지 포르노의 최대 공유 사이트인 ‘마이엑스닷컴’을 심층 분석했다. 마이엑스닷컴은 피해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사용자 콘텐츠 지침에 따라 검열한다고 하지만, 피해자의 삭제 요구에도 최초 저작권자의 저작권을 더 우선시하는 등 관련 자료를 지우거나 확대 공유하는 것을 막지 못하게 만든다. 즉, 공유를 조장하는 모든 리벤지 포르노는 “단순한 학대가 아닌 조직적인 틀 안에서 통제되는 조직적이며 강요된 학대”이다.

 

 

“리벤지 포르노그래피의 젠더/섹스적 힘의 관계는 가정 폭력이나 파트너 폭력과 마찬가지로 폭력 그리고 친밀함으로 이루어져 있다. 복수는 어떤 사람에 대한 지식, 그들의 과거, 이전에 행사한 폭력, 강점과 약점이 연합되어 발생한다. 직접적이며 육체적이고 성적으로 친밀한 파트너 폭력이 친밀함과 폭력의 역설(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가장 친밀하고, 가장 개방적이며, 취약성을 드러낸 사람이야말로 그만큼 가깝기 때문에 상처 입고, 피해 보고, 폭력에 희생될 수 있다.)을 이용하는 것처럼, 리벤지 포르노도 그 원리가 동일하다. 상대를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 그 힘, 즉 폭력을 행사하는 힘의 일부인 것이다.

이런 친밀함과 폭력이 주는 ‘친숙함’의 역설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이는 가정 폭력 그리고 파트너 폭력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지역적/초국가적, 공적/사적, 오프라인/온라인 사이의 복잡한 왕래로 인해 그 경계가 흐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섹슈얼리티와 친밀성, 섹슈얼리티와 폭력 그리고 폭력과 학대 자체의 오랜 역학까지 결부된다.

온라인에서의 복수는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소통적 친밀함, 공적 친밀함, 친밀한 파트너의 학대와 폭력, 가상의 친밀한 (이전) 파트너의 학대와 폭력, 그리고 가상의 친밀한 (이전) 파트너의 학대와 폭력이 대규모 리벤지 포르노 사이트에서처럼 한데 모이고 때로는 백과사전 방식으로 조직되는 현상을 나타내게 되었다.

리벤지 포르노그래피가 존재하고 유포되는 현상은 성적 학대를 정상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온라인 환경, 그리고 온라인에서의 좀 더 일반적인 폭력과 학대 역시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중요한 점은 그런 폭력과 학대를 실행하는 이들은 이런 행위를 단순하고 분명하게 합당하다 여기며, 지지하고 후원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온라인 게시판에서 남성의 목소리와 게시물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Herring, Johnson, & DiBenedetto, 1995)이 관행이 된 것으로 증명된다. 또한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특히 직접 대면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대상을 모욕하고 학대하는 남성의 힘은 그 성향이 더욱 쉽게 짙어지면서 악화된다(Lapidot-Lefler & Barak, 2012). 웹에 성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가 만연하고 학대를 조장하는 자료들이 대량으로 산재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바이며 이에 대한 광범위한 목록이 작성되어 있다. 로리 캔달(Lori Kendall, 2002)의 동성들이 모이는 ‘가상 세계의 선술집’ 연구, 팔미 올슨(Parmy Olson, 2012)의 해킹 네트워크, 어나니머스 그리고 다른 연관된 네트워크에 만연한 성차별주의와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연구, 로리 페니(Laurie Penny, 2014)의 『말할 수 없는 것들Unspeakable Things』에 정리된 사이버 성차별주의 목록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네트워크화된 여성 혐오는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이런 확산과 유포 현상은 어느 정도는 진짜 또는 가상의 청중, 간단하게 표현하면 가상의 동성 집단 앞에서의 사회적 압력peer pressure, 모방, 전염, 다중 미디어 교차 현상과 결합된 ‘온라인 탈억제disinhibition 효과’(Suler, 2004)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은 지나치게 드러낸 사생활과 과한 소통으로 인해 자업자득한 것이다. 게시자와 그가 올린 게시물에 참여함으로써 이 현상이 페르소나에서 페르소나로 단계적으로 악화될 수 있고 그러면서 복수와 보복이 지속적으로 촉발된다. 이런 경향이 분명 리벤지 포르노에 들어맞기는 하지만 그 발전 과정의 자세한 설명에 적용하고자 한다면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일정한 종류의 사이버 폭력, 사이버 학대, 사이버 성차별주의와는 대조적으로 리벤지 포르노는 완전히 익명화된다는 점에서 좀 드문 사례다.”

 

저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도 쉽게 예견할 수 있다시피 마이엑스닷컴 게시물의 90퍼센트가 여성이 대상이고, 10퍼센트가 남성이다. 게시자들은 합당한 ‘복수’라고 치장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폭력과 학대를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일탈적인 소수의 문제일까. 일반 게시판에서도 남성들은 '19금', ‘후방주의’ 등의 성적인 게시물을 게재하며 남성의 목소리와 게시물이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고 떳떳할 수 있도록 하나의 문화를 만든다. 오픈된 성 문화라는 게 과연 그런 것일까. 익명성이 커지면 ‘다른 대상을 모욕하고 학대하는 남성의 힘’은 더욱 악화된다. 성차별과 인종차별 등 온갖 혐오가 넘쳐나는 일베 사이트를 생각해 보라.

 

 

“친밀성, 복수 그리고 폭력에 초국가성이라는 또 하나의 특징이 추가되어 복수의 형태와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국경을 초월해 이루어지는 복수에는 원거리 협박, 유괴, ‘명예 폭력’, 강제 결혼과 겹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복수, 폭력 그리고 친밀함은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사는 가족들, 이민, 가사, 가사 사슬(예를 들어, 가난한 여성이 부유한 나라에서 가사 노동으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더 가난한 여성을 고용해 고향에서 자신의 가족을 대신 돌보게 하는 현상.–편집자 주)의 국경을 초월하는 다양한 맥락 내에서 벌어지는데, 이들은 다중적으로 연결된 취약성을 지닌다.

이렇듯 광범위한 모호성과 위반의 맥락에서 폭력-친밀함, 온라인-오프라인, 공적-사적, 지역적-초국가적인 리벤지 포르노는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가부장제하에서 기술을 이용해 (몇몇) 남성들이 젠더화된 힘을 행사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남성성과 기술의 공동 생산 개념(예를 들어 땜질, 손재주, 기술 등이 남성성으로 젠더화되는 현상이나 간단하게 말해 남성들이 기술에 매료되는 것)은 다양한 현장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연구되었다(Mellstrom, 1995, 2004; Faulkner, 2000; Lohan & Faulkner, 2004; Balkmar, 2012). 남성, 남성성 그리고 정보통신기술과 다른 신기술이 가상 현실에서 네트워크화된 남성 그리고 남성성과 광범위하게 연결되었음을 보여주는 문헌이 급증하고 있다.”

 

 

리벤지 포르노가 겉보기에는 개인적으로 보이지만 저자들은 ‘기술 기반의 남성성을 드러내는 젠더 권력’의 한 양태라고 보고한다. 텔레그램과 가상 화폐 등을 이용했던 N번방도 성격이 다르지 않다. “마이엑스닷컴은 익명의 몇몇 미국인들이 필리핀에 있는 동료들과 공조해 운영하고 있으며, 소유주는 구체적인 리벤지 포르노 법률이 없는 네덜란드의 웹 솔루션스 B.V.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Steinbaugh, 2014).” 딥페이크(deepfake,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활용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도 디지털 성범죄로 심각해지고 있는데, 여기서도 최대 피해자는 여성이다. 이런 디지털 성범죄는 국경을 초월하는 국제법 없이는 해결하기가 몹시 어렵다. 미국에서는 몇 백 년이라는 형량이 내려지는데, 한국에서는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였던 손정우가 1년 6개월 형량을 마치고 만기 출소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속출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꺼낼 때 항상 나오는 반격이 있다. 일부(이용자 수를 생각하면 결코 일부가 아니지만) 일탈적인 남성의 범죄로 남성 일반을 폄하한다고 말이다. 여성들은 안 그러느냐고 말이다. 메갈리아가 여성 혐오를 남성에게 반사하여 적용한 ‘미러링’을 운동 전략으로 삼았던 걸 생각해 보라.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남성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성폭력 문제는 남성성의 문화에서 양산되고, 많은 사람들이 거기 휘말려 고통을 겪고 불가피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성매매 합법화 문제에 대해서도 내가 가장 안타깝게 여기는 점도 그것이다. 성매매가 자신의 자유의사이고 권리라고 말하는 여성들은 근본적인 문제를 보지 않았다. 착취와 학대의 남성성 젠더 권력을 그대로 수용하겠다는 소리다. 노예가 적절한 임금을 받으니 이 생활도 괜찮다는 형국이다. 자신의 욕구를 ‘표현의 자유’로 내세우며 리벤지 포르노든 지인 능욕 사진이든 아무렇지 않게 만들고 유포하는 많은 이들도 ‘자유’의 책임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다.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자유는 방종일 뿐이다. 윤리는 고리타분한 도덕 잣대가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도리이다. 개인의 이익이나 영달을 위해 하나하나 포기해갈 때 우리가 그토록 강조하는 인간의 의미는 점점 훼손된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몸과 정신이 그렇듯 우리 삶에서 현실과 온라인은 분리되어 않다. 현실에서도 사이버 공간에서도 윤리가 이토록 희박해지면 우리는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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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2020년이라고 쓸 때가 많아요😅

펼쳐 놓은 책은 많은데, 완독률이 저조한 2021년.

종이책과 e book 중 e book 완독률이 높아서 e book 구매에 더 주력할 거 같습니다. 빨리 읽고 싶은데 기다리게 하지 말고 e book과 종이책 동시 출간 좀!

 

 

 

 

반성한 뒤 3월 초반은 시작이 순조로웠어요.

 

 

 

 

 

 

 

 

마음의 정중동을 잡아보고자 오강남이 엮은 『장자』를 읽기 시작했죠. 자주 펼쳐보려고 e book을 살펴보니 종류가 상당히 많더군요. 안동림 번역의 현암사 종이책을 갖고 있어 다른 번역자의 현암사 걸로 샀어요. 현대적으로 풀어줘 고답적이지 않지만, 부동산 투기니 하는 시사적인 얘기들이 종종 나와 책의 깊은 맛을 살려주진 못하더군요. 기회가 되면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로 다시 읽어볼까 해요.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 키터리지』 참 좋아서 접근 가능한 다른 책들도 열심히 찾아보았죠. 알라딘 전자 도서관에 스트라우트의 데뷔 소설 『에이미와 이저벨』, 『무엇이든 가능하다』가 있어서 내리읽어 보았어요.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연결되기 때문에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더욱 흥미진진해집니다. 지금까지는 처음 읽었던 『올리브 키터리지』가 가장 좋았습니다. 『무엇이든 가능하다』에서 맛보기로 접한 루시 바턴 일가의 이야기가 궁금해 『내 이름은 루시 바턴』도 읽어봐야 할 거 같고, 최근 나온 『다시, 올리브』도 안 읽어볼 수 없겠어요!

빨리 읽고 싶어서 e book으로만 봤더니 이 작가의 종이책 하나 없는 건 어쩐지 아쉬울 거 같아요.

금정연 『난폭한 독서』 재밌었어요ㅎㅎ 언제까지 마감 징징, 밥벌이 글쓰기 싫어 swag 사연을 들어야 하는지... 그렇게 글로 푸는 게 금정연 씨의 글 동력인 건 알겠는데 이젠 질려요, 제발😭 비평을 힙합으로 하려는 사람아!

시간 되면 리뷰를 써 볼 생각입니다. 지금은 너무 바빠요ㅜㅜ

장자를 읽은 영향 때문인지 장자 연구가인 강신주의 책에도 관심이 가더군요. 벽돌책 『철학 vs 철학』도 읽기 시작했어요. 이틀 동안 9시간 읽고 겨우 26% 완독😑...

연대기를 따르면서도 소주제에 따라 다루기 때문에『러셀의 서양 철학사』보다 훨씬 재밌고 이해도 빠르게 됩니다. 강신주가 리처드 도킨스 『이기적 유전자』를 제대로 읽고 저런 말을 하나 싶은 대목을 만나 신뢰가 조금 깎였습니다. "도킨스가 유전자와 맹목적 의지에 복종"? 그 책을 두 번 읽은 제가 이해한 바로는 도킨스는 그 책에서 그걸 극복하자고 마무리를 지었어요^^; 이래서 독자는 비판적 독서를 해야 합니다.

인문학자의 발끈이 눈을 가렸겠죠. 자기 분야가 최고 지성이라 생각하는 학자들아, 제발 그러지 좀 말자.      

아무튼 6개월 집필로 결막염에 걸리고 개정판 쓸 땐 어깨 손상이 있을 정도였다는 강신주의 야심작인 이 책이 유익한 건 인정합니다. 선후 관계의 철학 비교, 동서양 철학을 견주어보는 부분이 특히 맘에 듭니다.

             

 

 

📖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도킨스Richard Dawkins(1941~ )는 생명의 운동에서 인간 개개인은 매체에 지나지 않을 뿐 생명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유전자라고 주장했다. 이에 따르면 모든 개별적 생명체들은 유전자의 의도를 실현하고 있는 단계적 매체에 불과하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도킨스는 쇼펜하우어의 절반만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도킨스가 유전자와 맹목적 의지에 복종할 때, 쇼펜하우어는 의지의 간지를 극복하려고 한다. 종족 보존의 의지와 같은 맹목적 의지를 절실히 자각해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맹목적 의지로부터 자유를 꿈꾸었던 쇼펜하우어의 속내였다. 결국 그도 인문주의자였던 것이다.

- 강신주『철학 vs 철학』중에서

 

 

 

피너츠 일력이 3월 12일 비 온 거 맞춰서 재밌었어요ㅎ

 

 

 

♧ 일하랴 책 읽으랴 나는 고역인데, 우리 집에서 제일 신난 건 아보카도

아보카도 먹고 난 뒤에 돌덩이 같은 씨를 심으면 아보카도를 키울 수 있다는 말에 그럼 나도 해 볼래😲! 하고 심었죠.

종자 소유권 때문에 열매를 볼 수 없겠지만, 실제 아보카도 나무가 어떤지 보고 싶었어요. 잎도 만져보고 싶고☺

가을에 심었던 탓도 있겠는데 심은 지 3개월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었죠. 수경재배를 했다면 자라는 걸 한눈에 보기 쉬웠겠지만 이미 늦은 일. 흙 속 사정이 궁금해 파헤쳐 보니 그 단단한 씨앗을 뚫고 올라오는 걸 보고 깜짝@0@... 빨리 자라라고 씨앗을 반 쪼개주고 다시 흙에 묻었는데 한 달이 지나도록 잠잠해서

내가 잘못한 걸까😥

그냥 놔둘 걸 그랬나😰

자책했죠😓

더디게 싹이 나는 식물이니 좀 기다려보자 싶어 건조하지 않게 분무를 해주며 이제나저제나 했어요.

어느 날 새싹이 똭!

한겨울에 자라서 좀 비실비실해 보였지만 기특하더군요!

싹 나기 시작하면 폭풍 성장입니다

님들도 한 번 심어 보세요😊 식물 키우기는 큰 노력 없이도 잔잔한 기쁨과 감동을 매일 느낄 수 있어요. 단, 화분이 늘기 시작하면.... 책이랑 비슷한 수순😅

법정 스님이 난 키우기를 중단한 것처럼 살 수 없는 나의 유소유...

새싹이 난 이후로 2주 동안 12cm 넘게 자라고 앞으로도 더더 자랄 거 같습니다. 잭의 콩나무냐 뭐냐; 굉장한 성장력입니다. 생장점이 활짝 열려 있는 어릴 때라지만 아보카도는 정말 놀랍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자라서 뭐 할 거냐고 묻고 싶을 지경인데, 이 질문을 뱉자마자 부메랑이 되어 급히 피했습니다...🏃‍♀️

굴광성도 대단한데 빛 쪽으로 조금 휘었다 싶어 화분을 돌려주면 금세 바로 섭니다. 반응 속도가 동물 같아요. 줄기를 만지면 반들반들 근육 같기도 하고ㅎ 만지는 재미가 쏠쏠한 반려 식물☺

옆에 같이 심었던 녀석도 싹을 틔우고 있어서 발 동동 대기 중인데 이 녀석 대단히 신중하게 안 올라오네요ㅎ!

어릴 때는 관찰 일기를 이렇게 열심히 쓴 것 같지 않은데🤓a 나이 들수록 신기해하고 놀라워하는 관점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그게 또 자연스러운 거겠죠.

 

 1월 27일 / 2월 10일

 

 3월 14일

10년 넘은 치자나무와 맞먹는 키!

모처럼 화창해서 아보카도에게 생애 첫 햇볕을 보여줬죠. 좋았을까. 좋았겠지.

 

 




주말이니까 가볍게 에세이 타임~

김소영 『어린이라는 세계』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책이더군요.

착한 어린이가 되기 위해 나는 얼마나 노력했던가. 지금은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힘들어요.

📖

"누구 얘기든 이런 모험담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자기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들려주는 어린이의 더없이 진지한 태도 때문이다. 그 압도적인 기세 때문에 허풍이 섞여 있는 게 거의 확실한데도 도저히 의문을 제기할 수가 없다. 어린이의 ‘부풀리기’에는 무시할 수도, 웃을 수도 없는 매력이 있다.

어린이는 허세를 부리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착한 어린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어른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어린이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어린이를 상대로 한 범죄는 어린이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시작될 때가 많다. 잃어버린 강아지 찾는 걸 도와 달라거나 짐 옮기는 걸 도와 달라는 식으로, 어린이의 착한 마음을 이용해서 어린이를 유인하는 범죄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에 불이 붙는 것 같다. 슬프고 두려운 일이지만, 가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착한 어린이가 되려고 애쓰다 멍드는 어린이가 어딘가에 늘 있다.

그렇다고 어린이에게 착한 마음을 버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윤이 얼굴을 똑바로 보면서 “그럴 때 나눠 주면 안 되는 거야!” 할 수는 없다. 친구를 돕는 어린이에게 “너 진짜로 이거 원해서 하는 거야? 진짜로, 진짜로 진심이야?” 하고 캐물을 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나는 어린이의 착한 마음이 걱정스러웠다."

"아빠가 “이제 계산하게 아빠 줘” 하는데도 어린이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아빠가 다시 “사 줄게. 아빠를 줘야 계산을 하지” 하는 걸로 봐서는 혹시 아빠가 마음이 변해 안 사 줄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때 나는 오래 잊기 어려운 장면을 보았다. 앞치마를 두르고 계산대에 계시던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어린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따로 계산해 드릴까요?”

어린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은 어린이에게 책을 받아 아빠와 계산을 마친 다음 다시 어린이에게 “따로 담아 드릴까요?” 하고 물으셨다. 어린이 손님은 그렇게 해 달라고 했다.

“아유, 귀여워 몇 살이야? 아빠 드려야지.” 사장님은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돈을 내는 것은 아빠니까 아빠 편을 드는 게 나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어린이도 자기를 어르는 말에 넘어갔을지 모르고, 아마 그런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서점의 정중한 손님 대접이 어린이에게 얼마나 기억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이라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게다가 그렇게 하는 사장님의 모습에도 품위가 있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서점에서 받은 좋은 인상이 더 확실해졌고, 입구의 어린이 코너조차 친근하게 느껴졌다.

나는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 주는 품위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림책 작가 안노 미쓰마사는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에서 그것을 원근감의 차이로 설명한다. 멀리 떨어진 사물의 크기는 비교하기가 어려운 법인데, 어린이는 어른보다 두 눈 사이가 좁기 때문에 ‘비교하기 어려운 지점’이 어른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범위가 어린이 쪽이 더 좁다는 뜻이다. 어린이가 돌발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단지 통제 불능이어서가 아니라 감각이 다른 탓도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어린 시절 살던 곳에 가 보면 동네가 ‘좁아’ 보이는 것 역시 공간 감각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 내가 아무리 테이블 아래로 기어들다시피 해서 눈높이를 낮추어도 어린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볼 수는 없다. 공간의 구조나 사물의 위치를 알고 있는지 여부도 각자가 보는 방식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만일 어린이가 보는 방식으로 보고 싶다면 내가 작아지는 것보다 주변의 모든 것이 커진다고 상상하는 쪽이 낫다. 길을 걷다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누군가의 허벅지나 허리가 있다. 버스 타이어 지름이 내 키만 하다. 손을 씻으려면 세면대에 겨드랑이까지 걸쳐야 한다. 마트 계산대에서 내 물건이 제대로 처리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다…….

어린이와 어른의 척도가 이렇게 다른데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는 몸집이 커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볼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그동안 이런 생각을 안 해 봤을까? 어른이 되고서 “크니까 좋구나. 속이 다 후련하다!” 했을 법도 한데. 일단은 내가 천천히 자랐기 때문이다. 날마다 조금씩, 거의 느껴지지 않는 속도로 자라면서 어른들 중심의 세상에 적응해 왔을 것이다."




  

♧ 2021년 내가 산 책

 

아보카도가 열심히 자라듯 저도 책을 열심히 읽는 게 아니라 더 삽니다-,,-);;

품절이던 발터 벤야민 『서사, 기억, 비평의 자리』가 나왔길래 냉큼 샀습니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미발간 초기 원고 『검은 노래』와 함께 사면서 '소의 해' 기념 머그도 생겼죠.

 

 


 

 

 


 📘 사뮈엘 베케트 선집 『머피』(워크룸프레스, 2020. 12)

- 베케트의 초기작을 읽어보자!

 

📘 디디에 에리봉 『랭스로 돌아가다』(문학과지성사, 2021. 1)

- 프랑스 사회학자이자 철학자로 종종 인용되던 걸 봤는데, 푸코처럼 동성애자였군요. 노동 계급의 탈주자라 자칭하던 그가 고향으로 돌아가 어떤 회고를 남기게 되는지 매우 궁금!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쓴 『소멸』에서 주인공 프란츠가 부모와 형의 장례식 때문에 고향으로 가 나치에 협조한 조국 오스트리아와 가족의 속물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던 것과 비슷하려나 두근두근....

 

📘 김초엽×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사계절출판사 2021. 1)

- 최근 과학 분야 책을 또 열심히 파게 되는 분위기... 일 년에 두어 번은 꼭 그렇게 되더라고요🤔

좋은 책만 나온다면야 상관없죠♡

 

📘 루이-훼르디낭 쎌린느『밤 끝으로의 여행』(최측의 농간, 2020.5)

- 동문선에서 나온 초판본 가지고 있었는데, 초판 번역자였던 분이 개정해 다시 냈다고 해서 저도 다시 샀어요.

 

📘 로베르트 무질『특성 없는 남자 2』(북인더갭, 2013.4)

- 1권을 샀으니 자동으로 2권도 삽니다.

 

📘 롤랑 바르트『미슐레』(이모션북스, 2017. 4)

- 바르트 책은 생각나면 삽니다.

 

 

📘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이베드라 『돈키호테』(열린책들, 리커버특별판)

- 흰색 양장도 멋졌지만 리커버 박스 세트가 갖고 싶어 손해 보고 방출하고 새로 구입했어요😭 전자책도 있는데 정말 극성;;

미니 러그, 커피잔 세트는 돈키호테 굿즈로 나온 거 중에 최고 같아요😍👍

이런 건 질러야죠! 러그 때문에 알라딘 배송 중 가장 길쭉하고 큰 박스로 받았어요ㅎㅎ

돈키호테 책베개도 갖고 싶었지만, 같은 모양의 어린 왕자 책베개가 있어서 참았습니다ㅜㅜ

 

 

 

 

 

 

 

 

지난 달에 이어 이 달도 예술 분야 책 많이 사게 되었습니다.

📘 수지 호지 『디테일로 보는 현대미술』(마로니에북스)

📘 바바라 런던 , 짐 스톤 『깊고 충실한 사진 강의』(포토넷)

예술 분야 사은품 모딜리아니 불렛저널 예쁩니다🥰

 

 

 

 

🎁 3월 알라딘 굿즈

알라딘 3월 굿즈로 나온 알라딘 에코백 중 캔버스 쇼퍼백은 어마어마하게 크니 주의하세요⛔

서점 에코백 작다고 평소 투덜대던 나 같은 사람에게 "이래도 작다고 할 텐가?" 한방 먹이려고 작정하신 기획ㅎㅎ;;?

거짓말 살짝 보태 고양이처럼 몸을 말아 내가 들어가도 될 것 같아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그니처 에코백 블루는 두툼한 캔버스가 아니고 얇은 면 소재인데 봄, 여름에 쓰기 적당

 

 

 

 

 

 

신학기를 맞아 알라딘 문방구 20% 할인하길래 몇 가지 구매했어요.

피너츠 북엔드, 피너츠 박스 테이프, 본투리드 스티키 북마크, 스티키 메모지, 본투리드 드로잉 노트(삐삐 롱스타킹) 등.

이젠 피너츠 박스 테이프 붙여서 보낼 수 있겠어요ㅎ!

 

 페이보릿 띵즈 스티키 메모지 넘 귀여운 거 아닙니까😭😭😭

 

 

 

 최근 예쁜 양말을 발견했는데, 이런 예쁜 양말 굿즈를 알라딘이 참고해줬으면 합니다.

 

 

 

 

 

배송받을 책이 아직도 여럿 있는데, 그동안 또 열심히 읽어야죠. 휘유우우...

 

 

 

나온 지 얼마 안 된 조에 부스케 『달몰이』(2015, 봄날의 책)가 품절이더군요. 좋은 책인데...

조에 부스케는 삶과 삶을 채우는 고통을 동일시하는 혼돈에 빠지지 말라고 말합니다. 정작 고통 때문에 각자는 고유한 개성을 지니고, 자기 상처를 돌봄으로써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불구의 고통을 겪어야 했고 평생 그렇게 살아야 했기에 이런 사유가 가능했던 것 같고 더 설득력 있는데, 부스케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갑니다. 그는 존재 - 비존재 : 현실 - 비현실 구분이 불필요하다는 자각, 사건 속에 이뤄지는 삶을 들여다보며 초극하는 위버멘쉬로서의 각성을 이 소설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의식은 현실에서만 작동하지 않으며 그런 구분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작가는 생각했기에, 독자가 따라가기 힘든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서술되었는데, 이 소설의 주제를 생각하면 불가피했다고 생각합니다. 깊은 고뇌에서 나온 단단한 문장들의 연속이라 잠언록을 읽는 기분이 들죠.

 

 

 

 

 

 

질 들뢰즈와 옮긴이 류재화 씨 해설이 훌륭해서 제가 더 보탤 말이 있나 싶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모리스 블랑쇼(특히 『죽음의 선고』)가 많이 오버랩 되었는데 류재화 씨가 언급해줘서 반가웠습니다. 『죽음의 선고』를 읽으며 제가 느낀 인상은, 우리는 (죽음의)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을 뿐 결코 (죽음을)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그것을 보려고 하는 존재라는 것. 이것이 인간의 욕망과 탐구심의 장점이자 한계이겠지만, 애초에 인간이 제대로 볼 능력이 있는가? 현재진행형의 삶을 미끄러지듯 살면서 이 순간을 늘 놓치며 망각에서 헤매는 존재에 대한 깊은 탄식, 그것이 블랑쇼와 부스케의 글을 읽으며 제가 깊이 공감하는 점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닮은 책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최승호 『물렁물렁한 책』과 르 클레지오 『침묵』도 그렇습니다.

처음 읽었을 때도 그랬지만, 최승호 『물렁물렁한 책』(2000, 마음산책)을 다시 훑어보니 르 클레지오 『침묵』(1990, 세계사)과 참 흡사했습니다. 심지어 본문 그림마저도.

최승호 책의 그림은 최여래, 르 클레지오 책의 그림은 시인 박상순.

두 책은 형체도 미래도 없는 반죽의 상태에서 태어나고 죽어가는 인간 존재에 대한 생각을 담은 책입니다.

최승호 시인이 르 클레지오의 이 책을 몰랐을까요. 저조차 아는데 과연?

두 책의 결은 분명 다릅니다. 최승호의 글은 바닥을 구르는 혼돈의 상태에서 내내 머무르고, 르 클레지오의 글은 떠돌며 섞이는 공의 경계에서 시종일관 밭 끝을 떼려 하고 있다고 할까요.

동양적 사유와 서양적 사유 대비라고 하기엔 지식 교류가 많은 지금은 적절한 구분은 아닌 것 같고 한국적 사유와 프랑스적 사유 전개라고? 인간 사유의 본질적 대비라고도 할 수 있겠죠. 최승호는 사물의 본질을 사물의 안과 경험에서 찾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사유이고, 클레지오는 초월적 세계에서 본질을 찾는 플라톤적 사유라고. 뭐가 되었든 이런 문체에 호응할 독자는 요즘 많지 않습니다.

책 내용의 유사함은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것인지도요. 돈과 지위와 권력 좀 얻어 보겠다고 비슷해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지.

 

 

 

르 클레지오 『침묵』 첫 페이지

 

 

최승호 『물렁물렁한 책』 첫 페이지

 

 

 

 

 

 

♧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나눠야 하는가

 

매달 벽돌책 1권을 돌파하는 게 올해 제 독서 목표 중 하나입니다.

제게 어떻게 읽어야 하나 독서 가이드를 요청하는 분이 종종 있습니다.

독서를 여가 생활의 부속품 정도로 여기는 문화는 잘못되었다 생각합니다. 오늘 책 좀 읽어주는 나😏✌ 하는 소셜스러운 자찬도 웃긴 일이에요. 그런 마인드로는 독서에서 얻을 게 없습니다. 읽는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게 잘못도 아니고,

사는 것도 복잡한데 책이라도 좀 편하게 읽고 싶은 맘은 제게도 있지만요. 귀한 시간 아무 책이나 읽는 건 안타까운 일이잖아요. 그렇게 천 권, 만 권 읽어서 책 많이 읽는 법이나 자랑하자고요?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목록을 나열하면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는 게 진정 독서가입니다. 더불어 좋은 독자가 좋은 독서 시장을 만들어주니 우리 좀 더 질을 따져가며 읽자는 겁니다.

제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건 '읽고 싶은 대로 읽지 마라'입니다. 독서와 교양 쌓기는 벼락치기 공부가 아니니 장기적으로 읽어가는 습관과 함께 균형도 중요합니다. 한 달에 단 몇 권을 읽더라도 내실을 따져야죠.

읽기 쉽고 진도 팍팍 나가는 문학, 에세이, 자기계발서가 한 달 독서의 70% 이상 차지한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독서 생활 초심자라도 이 상태가 계속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아요. 진지한 독서 생활자이고 독서 노트를 작성하고 리뷰까지 쓴다 해도 기억력 천재가 아니라면 읽은 내용의 상당수는 곧 휘발됩니다. 무게 중심을 잡아줄 기초 지식이 안배가 되면서 읽을 때 내용이 더 잘 이해되고 기억에 도움이 됩니다.

 

스티븐 핑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읽으면 핑커가 홉스, 칸트의 이론을 어떻게 현실 상황에 대입해 논리를 풀어가는지 보게 되죠. 이슬람 문화의 문제점도 짚어보고요.

 

📖

"이슬람 국가에서는 매년 1억여 명의 소녀들이 생식기 절단을 당한다. 성장한 뒤에는 강압적인 아버지, 남자 형제, 남편의 기분을 해친다는 이유로 산(酸)을 뒤집어써 외모를 망치거나 아예 죽을지도 모른다.) 이슬람 국가들은 노예제를 제일 늦게 폐지했고(사우디아라비아는 1962년, 모리타니아는 1980년), 지금까지 인신매매가 이뤄지는 국가 중 다수가 이슬람 국가이다. 많은 이슬람 국가는 마녀 행위를 법전에 범죄로 기재할 뿐만 아니라 흔히 기소한다. 2009년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한 남자가 모국어인 에리트레아어로 기록된 전화번호부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경찰이 그것을 오컬트의 상징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남자는 300번의 채찍질형을 받았고, 3년 넘게 감옥에 갇혔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종교적 미신뿐 아니라 과잉 발달한 명예의 문화도 폭력을 용인한다. 정치학자 칼레드 파타와 K. M. 피르커는 이슬람 과격파 조직들의 이데올로기에 ‘굴욕의 담론’이 관류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종교적 미신뿐 아니라 과잉 발달한 명예의 문화도 폭력을 용인한다. 그들은 광범위한 갖가지 굴욕을 — 십자군, 서구의 식민 역사, 이스라엘의 존재, 아랍 땅에 주둔한 미군, 이슬람 국가들의 뒤떨어진 성취 등등 — 이슬람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은 그런 행위에 책임이 있는 문명의 개인들에게 무차별로 복수해도 된다고 정당화한다.

(중략)

이슬람은 어쩌다 선두를 놓쳤을까? 어째서 이성의 시대, 계몽 시대, 인도주의 혁명을 갖지 못했을까? 일부 역사학자들은 코란의 호전적인 구절들을 탓한다. 그러나 서구의 집단 살해적 경전과 비교할 때, 코란의 모든 구절도 교묘한 주해와 진화하는 규범으로써 얼마든지 그 내용을 비틀 여지가 있다.

루이스는 그 대신 역사적으로 모스크와 국가가 분리되지 않았던 점을 지목했다. 마호메트는 영적 지도자인 동시에 정치, 군사 지도자였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신정 분리 개념 자체가 최근에 등장했다. 종교라는 안경이 지적으로 기여할 잠재력이 있는 사상들을 모두 거르다 보니, 새로운 사상을 흡수하고 통합할 기회가 사라졌다. 루이스가 지적했듯이, 철학과 수학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아랍어로 번역되었지만 시, 희곡, 역사 작품은 번역되지 않았다. 풍요롭게 발달한 그들만의 문명사가 있기는 했지만, 그들은 이웃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문명들에게 무관심했고 자신의 이교도 선조들에게도 무관심했다. 고전기 이슬람 문명의 계승자인 오스만 제국은 기계식 시계, 표준 도량형, 실험 과학, 근대 철학, 시와 픽션의 번역, 자본주의 금융 제도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점은 인쇄기를 거부했다는 것이다(코란이 아랍어로 씌어졌다는 점 때문에, 아랍어를 인쇄하는 것은 신성 모독으로 여겨졌다. 나는 4장에서 문해력이 뒷받침된 세계주의 사상이 유럽 인도주의 혁명의 촉매였다는 가설을 제안했다. 덕분에 사람들의 감정 이입 범위가 넓어졌고, 사상의 시장이 구축되어 그곳에서 자유주의적 인도주의가 솟아났다. 그러니 어쩌면 오래된 종교의 지배력이 이슬람 문명의 중심으로 새로운 사상이 흘러드는 것을 막아, 상대적으로 편협한 발달 단계에 고착시켰을지도 모른다. 이런 추측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2010년에 이란 정부는 대학 인문학 과정의 입학생 수를 제한했다.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인문학이 “종교적 원칙과 신념에 대한 회의주의와 의심을 촉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역사적 원인이 무엇이든, 오늘날 서구와 이슬람 문화 사이에는 넓은 간극이 있는 듯하다.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그 간극 때문에 문명의 충돌이라는 새 시대가 도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 유명한 이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라시아에 가로놓인 문명 간의 거대한 역사적 단층선이 다시금 불타오르고 있다. 서아프리카에서 중앙아시아에 걸친 초승달 모양의 이슬람 국가권 경계가 특히 그렇다. 폭력은 무슬림 사이에서도 벌어지고, 무슬림을 한쪽에 두고 반대쪽에는 발칸의 세르비아 정교도, 이스라엘의 유대인, 인도의 힌두교도, 버마의 불교도, 필리핀의 가톨릭교도를 두고도 벌어진다. 이슬람의 국경은 피투성이다.”

 

 

최근까지 이슬람 세력의 테러가 세계적 공포였지만, 코로나19로 세계의 근본적인 문제는 인간의 인식과 신념(이라고 말하기도 뭐 한 무엇)이라는 게 확연해졌죠.

핑커의 책을 읽으며 다른 책에서 언급되었던 것도 생각하면서 저도 해석을 하게 됩니다. 이야기의 재미에 빠지기보다 이런 논리적 사고를 하는 게 우리에겐 더 필요합니다. 사람은 분석에 따른 법칙보다 자의적 상상에 의존하고, 고정관념에 따른 직관을 따르기 쉽죠. 책에 따라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는 게 독서가 아닙니다. 독서는 내용의 흡수가 아녜요. 항상 '왜?', '정말 그럴까?'가 따라다녀야 합니다. 그 과정을 거친 뒤 내 생각이 정립되어야 하고요. 읽는 시간뿐 아니라 이런 생각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독서는 많은 시간과 고독을 요합니다.

다방면 분야 독서를 하는 제 생각엔, 이상적인 독서는 한 달 통계에서 인문학, 사회학, 과학, 예술 분야 통틀어 60~70% 이상, 문학과 에세이 등을 40~30% 되게 하는 게 최적의 독서예요. 이렇게 읽으면 다음 독서 목록은 자동으로 떠오릅니다. 좋은 책을 읽으면 본문에서 언급되었던 책이나 연관 책을 읽어야겠다 싶으니까요. 그저 그런 책은 이런 목록을 만들어주지 않아요. 그냥 읽고 끝나죠.

힘들어도 이런 과정이 독서이고, 분명 내 성장으로 돌아옵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읽는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 아까운 시간에 시간 때우기 독서라뇨@@;

 

 

핑커와 씨름할 때 서니데이 님 선물을 받았어요😍🎁

예쁜 거 좋아하는 제 호들갑에 신년 선물로 반짝반짝 수세미를*ㅁ*) 예뻐서 이걸 어떻게 쓰지 싶어요😭

"좋은 인연은 만나는 것도 이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라는 님 말씀을 저도 살아갈수록 더 공감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얻을지가 아니라 나눌까를 고민하는 사회가 되어야 세상은 좀 더 살만해지겠죠. 스티븐 핑커 같은 학자들이 세상을 너무 긍정적으로만 본다 할 게 아니라요.

이타심이 종을 위한 자연선택의 작동 원리, 자기 보상 심리이기만 할까요. 모든 것엔 단면만 있지 않습니다. 당근 마켓에서 가끔 무료 나눔 하는데요. 대단한 걸 나누는 게 아니더라도 팍팍한 삶에서 랜선 마음도 위로를 줄 수 있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에는 제 작은 행위가 서로의 고독을 위로해 줄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타심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홀로 가지기만 하는 게 아니죠. 나부터 시작하면 선한 천사는 어디서든 만날 수 있지요.

그런데, 당신! 알라딘 서재부터 자주 나타나라! 하실 수도 있어요(_ _); 제가 천사는 아닌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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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3-14 15: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희집 수세미 편하게 잘 써주세요.
거품도 잘 나고 써보면 좋은 점 많습니다.
사용설명서 참조하시면 좋겠습니다.
a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AgalmA 2021-03-14 18:19   좋아요 2 | URL
아직은 구경용 전시용으로만 이용하고 있습니다ㅎ; 이 수세미들 보고 있으면 기분이 환해져서 좋아요. 좋은 선물 정말 감사드려요. 거품을 언제 구경해야 될까 고민입니다ㅎㅎ;;;
서니데이님도 환한 주말 되세요^-^

북다이제스터 2021-03-14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보카도, 넘 신기합니다.
그렇게 씨앗뿌려 자라게 할 수 있네요. ^^

AgalmA 2021-03-14 18:20   좋아요 1 | URL
싹이 나는 건 더디지만, 생각보다 쉽게 키울 수 있어서 넘나 좋아요. 잎이 정말 싱그러워요.
아보카도 드시면 씨앗 버리지 말고 한 번 키워보세요. 조경으로도 굿입니다!

blanca 2021-03-14 15: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보카도! 충격적이네요. 와, 저기서 진짜 아보카도 열매가 나오면 눈물날 듯. <달몰이> 읽어보고 싶네요.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정말 재미있어요. 인간 내면의 속물성이 진짜 얼마나 실감나게 나오는지. 정말 주변 이야기가 같아요.

AgalmA 2021-03-14 18:26   좋아요 0 | URL
인터넷 찾아보니 열매를 맺었다는 후기는 없더라고요. 돌연변이가 아닌 이상 시판용 아보카도로는 열매를 볼 수 없는가 봐요.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달몰이> 좋았어요. 독자 취향에 따라 취향 저격 소설일 겁니다. 전쟁을 겪은 작가가 쓴 소설은 뭐가 달라도 다르더라고요.
루시 바턴 이야기 분명 재밌을 거 같더라고요. 루시 바턴과 동네 사람 누가 또 엮일까 몹시 궁금합니다. <에이미와 이저벨>에서 잠깐 나왔던 학교 수위 아저씨가 루시 바턴과 그렇게 엮일 줄 몰랐어요ㅎㅎ;
<올리브 키터리지>에서 단편 [약국]과 [다른 길]은 정말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단편이었어요ㅜㅜ 문학의 힘을 절절히 느끼게 해줬죠. 대단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작가!

DYDADDY 2021-03-14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철학 vs 철학은 전자도서관에도 있으니 편하게 읽으세요. (블로그 잘 읽고 있습니다.. ^^)

AgalmA 2021-03-14 18:28   좋아요 1 | URL
알라딘 전자 도서관에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가는 책도 있나요? 찾아보니 <철학 vs 철학> 없더라고요ㅜㅜ
아무튼 감사합니다.

scott 2021-03-14 1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아갈마님 봄이라고 책쇼핑 굿즈 아이템 수집은 저얼대 줄지 않습니다. 아보카도를 키우실정도라니 아갈마님 진정한 식물 사랑 전 감귤과 파인애플까지 키워봤는데 딱한번 열매(정말 작은) 맺고나서는 잎만 나오는 나무가 되어버렸는데 ㅋㅋㅋ[ 인문학, 사회학, 과학, 예술 분야 통틀어 60~70% 이상, 문학과 에세이 등을 40~30% 되게 하는 게 최적의 독서] 라는 말에 동감합니다. 서니데이님에 수재 뜨개질은 수세미가 아닌 주변을 화사하게 만들어주네요 고흐의 노랑 해바리가 아래 모딜리아니 작품 !역쉬 아갈마님 포스팅은 名品!

AgalmA 2021-03-14 18:31   좋아요 1 | URL
오, 파인애플을 키우셨다니! scott님은 도대체 안 하시는 게 뭡니까ㅋㅋ 취미수집가 같으니라고ㅎㅎ!
제가 문학을 좋아해서 인문학 류 배정을 조금 줄였어요ㅋㅋ;;;
서니데이 님 수제 수세미들은 안구 정화 확실히 해줍니다^0^*
모딜리아니 길쭉이 인물들 예전에는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저 그림은 놓치기 싫더라고요ㅎㅎ;; 열심히 사고서는 정작 쓰고 있는 건 칙칙한 검정ㅠㅠ

하나 2021-03-14 17: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아보카도 신나게 자라고 있네요! 🌱씨앗부터 키우는 마음은 또 엄청 각별할 거 같아요. 4월 중순쯤 되면 치자꽃이 필까요? 치자꽃 자랑도 꼭 보고 싶습니다 ^^ 달몰이는 일단 쟁였구 (˝고민 엔드˝ ㅋㅋㅋ)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넘나 좋구, 쉼보르스카 검은 노래도 좋을지 궁금합니다. 강신주 리라이팅 클래식 장자편도 괜찮게 읽었어요. 물론 비판적 읽기 전혀 안될 때 읽었고 지금도 아직 안됩니다. (그러니까 책 편식하지 말자! 😂)

AgalmA 2021-03-14 18:36   좋아요 2 | URL
묘목 때부터 키우고 있는 것들이 10년 넘어가니 얘들은 나랑 죽을 때까지 가는고양! 싶더라고요.
치자는 꽃보다 향으로 먼저 눈치채게 되더라고요. 꽃이 피면 즉시 향이 퍼지니까요. 봉오리만 계속 보면서 오가다 정작 꽃이 벌어졌을 때는 모름ㅎㅎ;;;
강신주 선생에게 제가 뭐라 할 깜냥은 안 되지만, 왜 인문학자들은 과학 분야만 언급하면 쌍심지를 키고 반감성 글을 쓰는지 참...

라로 2021-03-14 17: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 저희도 아보카도 먹고 남편이가 그 씨앗 한 달 넘게 물 위에 올려키우고(제 서재 사진도 있는,,친구 공개였나?? 가물가물^^;;), 어쩌고 해서 심었는데 아직까지는 잘 자라요. 하지만 아직 아보카도 안 올라왔어요. 커져서 옮겨 심었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럴까요?? 암튼 아갈마님의 아보카도도 응원합니다.
그런데, 궁금한 거 있는데요, 저 금박의 돈키호테가 잡은면 금박 우수수 떨어져서 이불 덮고 책 읽으면 금박이불 된다는 글을 봤는데 정말 그래요??? 저도 저거 거의 살 뻔 하다가 그 글 읽고 주춤요.ㅋㅋ

AgalmA 2021-03-14 18:57   좋아요 2 | URL
이쑤시개 수경재배 그거 하셨던 건가요ㅎㅎ 어차피 흙에 옮겨야 하니까 저는 바로 흙에다 심자 했는데, 싹 나오기까지 숨 넘어 가겠더라고요ㅎㅎ 무지막지하게 빨리 자라 도대체 분갈이를 어떻게 해야하지 싶어요. 이러다 천장까지 가는 건가 싶고ㅎ;; 라로 님 댁 아보카도도 잘 자라니 저희집 애도 잘 자라겠죠? 활기가 넘치는 식물이더라고요^^
지금 <돈키호테> 읽을 타이밍이 아니라서 아직 비닐 개봉을 안했는데요. 저는 이렇게 비닐 있는 책은 비닐을 찢어서 버리지 않고 중간을 조심히 잘라 커버처럼 붙여 버려요. 그래서 금박 묻을 일은 없을 거 같은데요^^;

라로 2021-03-15 23:54   좋아요 1 | URL
딩동댕~~~!! 바로 그 수경재배 했어요,,아마 두 달은 한 것 같아요.ㅋㅋㅋ 아갈마 님은 집안에서 키우시죠? 저희는 밖에서 키워요,,근데 동네에 토끼들이 많아서 걱정이죠. 저희집 개도 그렇고,,,언젠가는 저희처럼 밖에 모셔야 하지 않을까요???^^;;;
아! 그런 방법을!!! 정말 책을 사랑하시는,,,,저는 성격이 너무 급하고,, 사기 전과 후의 마음이 다른 건지?? 반성합니다.ㅠㅠ

AgalmA 2021-05-13 00:27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어서 죄송해요^^; 이게 다 식물탓;
봄 되어서 아보카도를 바깥 베란다에 두었는데, 보들보들한 잎이 여기저기 타서 속상했어요ㅜㅜ
같이 심었던 아보카도인데 이제야 새 순이 나는 게 있어요. 사람처럼 식물도 성격도 생김도 참 무궁무진하구나 한답니다 :)

2021-03-14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3-14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제트50 2021-03-15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제능 검은 색 일색이더니, 보라보라도 예쁩니다^^
저는 올리브 나무를 들일 예정입니다~~^^

AgalmA 2021-05-13 13:12   좋아요 1 | URL
올리브 나무는 사시사철 초록초록한 식물이어서 죽었을 때도 한참 지나야 눈치챌 거 같더라고요ㅎㅎ;
잘 들이셨나요? 저도 식물 무쟈게 샀는데, 앞으로 올 게 사실 더 걱정이에요ㅠㄱㅠ
 
[eBook] 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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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책 발견! 밤새워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네요. 이 책 안 읽은 사람 없게 해주세요🙏 우리가 가진 각종 미망을 깨면서도 그 필요성도 꼭꼭 짚으며, 인류의 절망스러운 종말보다 행복한 불멸을 생각하는 저자의 자세가 존경스럽습니다. 자유의지를 확률 문제로 짚어주는 대목이 가장 재밌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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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3-01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 책 굉장히 고민하고 있었는데 ㅋㅋㅋㅋ (좋아보이는데 요즘 뭔가를 쓰고 있어서) 이러시면 저는 주문합니당! 어쩌면 저는 이런 한 방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 아갈마님께서 올해의 책이다? 이거는 고민하지 않는 거죠 모 🙄

AgalmA 2021-03-14 14:32   좋아요 1 | URL
님 책 읽는다는 소리보다(맨날 하는 거잖아) 뭔가를 쓰고 계신다는 소리가 더 반갑네요^^
고민 엔드? ㅎㅎ

파이버 2021-03-01 18: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AgalmA님께서 올해의 발견이라고 하신다면 보관함에 넣을 수 밖에… 자유의지를 확률문제로 생각한다는게 궁금하네요!

AgalmA 2021-03-14 14:33   좋아요 1 | URL
‘자유의지‘ 설명 부분은 읽으면 바로 이해가 되어서 나는 왜 이 생각을 한 번도 안한 거지? 싶더라고요ㅎㅎ;;

Cinema Paradiso 2021-03-03 09: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안녕하세요~

저는 AgalmA님의 알라딘 친구이기도 한 시네마라고 합니다. 처음으로 글을 남겨봅니다 :)

저는 책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온라인 살롱 <북카페 아트시네마> 카톡방을 운영하고 있어요.

최근에 알라딘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분들이 다 같이 모여 대화를 나누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고, AgalmA님도 함께 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에 글을 남깁니다.

<북카페 아트시네마>가 AgalmA님의 새로운 지적 유희의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북카페 아트시네마
https://open.kakao.com/o/g34W35Eb


AgalmA 2021-03-14 14:35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혼자서도 무척 바쁘게 지내서 시네마 님께서 제안하신 곳에서 좋은 활동을 잘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ㅜㅜ;;
초대 감사합니다. 조만간 방문할게요.

루시아 2021-03-10 0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읽은 사람이 한사람도 없게 해주세요 라는 간절함이 느껴져서 저도 끼려합니다.^^

AgalmA 2021-03-14 14:37   좋아요 0 | URL
꼭 소원처럼 빈 건 아닌데ㅎㅎa;;;(홀로 중얼거림에 가까웠다고나 할까요)
귀 기울여 들어주셨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Cinema Paradiso 2021-03-14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syo님, Mailbird님은 이미 들어오셔서 같이 대화 나누고 있습니다. 편한 맘으로 한번 들러주세요 :)
 

역시 스케일이 다른 브라이언 그린!
인간의 시작과 끝을 종합하는 구성이다 보니 채사장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제로 편>과 피할 수 없이 비교하게 되네요ㅎ;; 이 책 다 읽고 채사장 그 책 다시 읽어봐야ㅎㅎ
인간의 유한성을 깊이 새기고 시작하는 건 학식 뛰어난 사람의 기본 자세인 듯.

아, 자유의지를 양자역학의 ‘확률‘로 생각하면 명확해지는군!










우리는 창조 과정을 제어하고 유한한 모든 것을 극복한다는 마음으로 그림과 조각, 음악 등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낸다. 헤라클레스와 거웨인, 그리고 헤르미오네가 지금도 영웅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물론 전해 오는 이야기일 뿐이지만) 이들이 죽음을 ‘정복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는 과학을 통해 현실 세계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과거에 선조들이 신의 영역으로 치부했던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인간 특유의 창조력을 십분 발휘하여 태생적인 약점을 보완한 것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인간의 삶이 "두 어둠 사이에 빛이 새어 들어오는 작은 틈"이라고 했는데, 이 표현은 생명 자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과학자들은 현실 세계를 지배하는 수학 법칙이 우리의 행동 규범이나 아름다움의 기준, 인간관계, 그리고 이해와 목적을 추구하는 노력과 무관하다는 것을 입증했지만, 언어와 이야기, 예술과 신화, 종교와 과학은 냉정하고 엄격한 우주의 역학 법칙을 이용하여 일관성과 가치, 그리고 의미를 찾아왔다. 물론 이런 과정이 영원히 지속된다는 보장은 없다. 모든 생명은 일시적이며, 우리가 애써 이해한 내용도 언젠가는 모두 사라질 것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절대적인 것도 없다. 그러므로 가치와 목적을 추구하는 여정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영감과 해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태양의 가호 아래 잠시 동안 존재하면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고귀한 임무다.

이 대담에서 러셀이 펼쳤던 주장은 우리의 여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적 증거에 비춰 볼 때 지구는 비참한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우주 전체도 결국은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다. 이것이 존재의 목적이라면 나는 그 목적을 추구하고 싶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신을 믿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신학과 관련된 내용은 나중에 다루기로 하고, 지금 당장은 러셀이 말한 ‘우주적 죽음’에 초점을 맞춰 보자. 그가 이런 주장을 펼친 것은 19세기에 발견된 어떤 물리 법칙 때문이었다.
1800년대 중반에 발명된 증기 기관
steam engine
은 유럽의 산업 혁명을 주도하면서 주 동력원으로 떠올랐고, 그 덕분에 대부분의 수공업이 기계공업으로 대치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증기 기관의 열효율(소비된 연료와 유용한 일의 비율)이 심하게 낮다는 점이었다. 나무와 석탄을 태워서 얻은 열의 95%가 폐기물로 방출되어 환경을 오염시켰으니, 제아무리 편리한 기계라 해도 대책 없이 남용했다간 지구 전체가 폐기물로 덮일 판이었다. 그리하여 일부 과학자들은 효율을 높이기 위해 증기 기관의 물리적 원리를 깊이 파고들기 시작했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 그 유명한 ‘열역학 제2법칙
the second law of thermodynamics
’이 탄생했다.
이 법칙을 일상적인 용어로 풀어쓰면 다음과 같다. "제아무리 기발한 방법을 동원해도 폐기물이 양산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열역학 제2법칙(이하 제2법칙)이 중요하게 취급되는 이유는 증기 기관뿐만 아니라 모든 만물에 적용되는 범우주적 법칙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건 없건, 내부 구조가 어떻게 생겼건 간에, 모든 물질과 에너지는 무조건 제2법칙을 따른다. 이 법칙에 의하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은 소모되고, 퇴화하고, 쇠퇴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일상적인 언어로 풀어 놓고 보니, 러셀이 그토록 부정적인 주장을 펼친 이유가 피부에 와닿는 것 같다. 생산적인 에너지가 무용한 열로 전환되면서 미래는 끊임없이 악화된다. 현실을 유지하는 배터리가 꾸준히 소모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과학을 좀 더 깊이 이해하면 지금까지 말한 내용이 다소 모호해진다. 우주는 빅뱅 후 지금까지 제2법칙에 순응해 오면서도 아름다움과 질서를 창출했고, 질서의 최상급인 생명체까지 탄생시켰다. 그러므로 제2법칙을 잘 활용하면 러셀이 말했던 암울한 미래를 피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당신은 공원 벤치에 앉아서 상념에 잠겨 있고, 그 옆에 적당한 크기의 바위가 놓여 있다. 둘 다 자기 일 외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때마침 내가 그 앞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커다란 나뭇가지가 부러지더니 나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당신은 용수철처럼 벤치에서 일어나 강한 힘으로 나를 떠밀었고, 덕분에 나는 사고를 모면할 수 있었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생명의 은인에게 입이 마르고 닳도록 감사 인사를 한 후 어떻게든 보답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향후의 일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방금 전의 상황을 찬찬히 되짚어 보자. 당신의 몸을 구성하는 입자는 옆에 있던 바위의 구성 입자와 동일한 법칙을 따르고 있으므로, 당신이나 바위나 자유의지를 발휘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당신은 나를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고, 바위는 내가 다치건 말건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 이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당신의 몸에 있는 입자들은 아주 특별하고 정교하게 배열되어 있어서 사람을 구하는 영웅적인 행동을 할 수 있지만, 바위의 입자는 배열 상태가 이 정도로 정교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영웅이 될 수 없다.
당신은 내가 벤치 앞을 지나갈 때 손을 흔들거나 말로 인사를 건넬 수도 있고, 끈이론의 방정식이 드디어 풀렸다는 희소식을 전해 줄 수도 있으며, PT체조를 하거나 날쌔게 몸을 날려 나를 구하는 등, 수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내 얼굴에서 반사되어 당신의 눈에 도달한 광자와 부러지는 나무에서 생성되어 당신의 귀에 도달한 음파, 그리고 당신의 피부를 스치는 바람 등 안과 밖에서 생성된 다양한 자극에 영향을 받아 당신의 몸 안에 있는 입자들이 폭포처럼 흐르면 생각과 느낌, 행동이 유발된다. 물론 이들 자체도 또 다른 입자의 흐름이다. 다행히도 부러진 나뭇가지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 입자의 특별한 흐름이 당신으로 하여금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자극에 대한 바위의 반응은 별로 극적이지 않다. 광자와 음파, 그리고 압력이 와닿아도 바위의 입자는 약간 흔들리거나 온도가 조금 올라가고, 강풍이 불면 위치가 조금 달라진다. 이것이 전부다. 바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주 단순하다. 당신이 특별한 이유는 내부의 복잡한 배열이 다양한 행동을 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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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3-02 1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물리학자가 철학자가 되려는 건 나쁘지 않지만 공부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좀 무리라고 생각 들었습니다. 책 읽으며 카를로 보벨리가 계속 생각나고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ㅠ

AgalmA 2021-03-14 14:40   좋아요 1 | URL
브라이언 그린이 철학자처럼 굴었다고 생각되지 않던데요^^; 나이가 들고 이런저런 경험을 하다보니 이런저런 소회가 들어서 썼다 싶던데요. 그린이 칼 세이건 같은 인간미 넘치는 글 개성은 아니라 좀 안 어울려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