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산 책

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 단수』(2020, 문학동네)

하루키의 이전 작품들은 대부분 섭렵했어요. 아직 읽지 않은 소설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2013, 민음사) 뿐.

이번 신간 소설집 사며 2021 하루키 다이어리(1,000원), 하루키 유리컵_LP 코스터 세트(4,000원)를 받았... 샀다고 해야?

독립 서점에 입고되는 표지(동네책방 에디션)와 다른데 저는 일반 서점 용이 더 맘에 듭니다^^ 하루키 굿즈도 많이 가질 수 있고🤭🤭💦 컵은 지금도 너무 많지만ㅜㅜ 레코드 코스터 때문에 산 건데 만족스러워요. 다이어리는 겉표지가 보들보들해서 촉감 좋고 책같이 생겼어요ㅎ 매일 정성스레 기록을 남긴다면 나만의 책이 완성될 듯. 하루 한 페이지씩 배분되어 있는데 칸이 많지 않아 뭔가 명문장을 남겨야만 할 거 같은😅 1일 독서 기록장도 좋겠죠.

이 책 오는 동안 『고양이를 버리다』(2020, 문학동네)도 다 읽었고(배송 기다리기 싫어 e book으로 샀는데 일러스트가 맘에 들어 짧은 분량 용서해 준다!), 또 즐겁게 하루키 월드로 go go~


 

하루키는, 언제나 그렇듯 하루키 맛이 납니다ㅎㅎ


"열아홉 살 무렵의 나는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거의 알지 못했고, 당연히 타인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도 기쁨이나 슬픔이 뭔지는 대충 알고 있다고 내 딴은 생각했었다. 다만 기쁨과 슬픔 사이에 있는 수많은 현상을, 그것들의 위치관계를 아직 잘 분간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종종 나를 몹시 불안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_ 단편 「돌베개에」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2001, 새물결)

무엇이든 보통 사람보다 과하게 소장하고 있다면, 그는 죄책감보다 소유욕에 더 휩쓸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 반성과 함께 더 쾌적하게 읽고 싶은 저는 옛날 책 팔고 새 책으로 교환 완료. 계속 사겠단 소리냐!

 

레몽 크노 책이 모이고 있다.

『문체 연습』(2020, 문학동네)은 손바닥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시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시인들이 자주 이런 문체죠. 아무튼 재밌어요. 때가 잘 묻고 빨리 낡는 크라프트 재질 겉표지 안 좋아하는데(신영복 선생님 책이 주로 이랬음😑)...

 

레몽 크노 『떡갈나무와 개』(2020, 민음사)는 성장담을 운문 소설로 표현하는 발상은 좋지만 독서 쾌감을 주지는 않아 실망 중. 즐겁게 만족하며 읽을 독자는 많지 않을 듯; 그럼에도 『문체 연습』도 사고 말았죠.

 

 

 

 

 

사뮈엘 베케트 『동반자 /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 최악을 향하여 / 떨림』(2018, 워크룸프레스)

베케트 선집 모으는 목표점으로 슬슬 도달.

마음이 공허할 때 시집도 그렇지만 베케트도 자주 찾게 되는데 왜 일까? 이럴 땐 유재하도 자주 찾아 들어요.

 

 

 

 

* 그 외 11월 구매한 책 - 이 달은 문학동네와 문학과지성사 책을 주로 구매했구만🤓

안태운『산책하는 사람에게』(2020, 문학과지성사)

 

 

임승유『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2020, 문학과지성사)

 

한유주 『숨』(2020, 틈창작문고 13, 문학실험실)

에이드리언 리치 『공통언어를 향한 꿈』(2020, 민음사)

- 《악스트 Axt 》(2020.11.12, no.033) 에서 에이드리언 리치 내용을 읽고 궁금했습니다. 민음북클럽 가을 온라인 패밀리데이에서 사려고 했더니 더 싸게 중고 도서가 똭~🤗

앙드레 지드 『코리동』(2008, 베가북스)

- 서로 사랑하겠다는데 동성애가 뭐 어쨌다고 난리야~~ E.M. 포스터 『모리스』랑 비교해 보고 싶어요.

비에른 베르예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2019, 흐름출판)

메릴린 스트래선 『부분적인 연결들』(2019, 오월의봄)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2020, 와이즈베리) 

- 나만의 '올해의 책' 리스트를 정리 중에 샌델 신간이 나와서 서둘러 구매. 기대만큼 좋더군요.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 아니오. 능력주의 사고방식 아래 성공과 실패를 재단하는 성과주의 자본주의와 현대 사회의 부작용을 심도 깊게 알아봅시다.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이나 『오늘부터의 세계』에서 장하준 교수의 일갈을 호응하며 읽었던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내용입니다. 번역도 잘 되어 시원시원하게 읽힙니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보자 싶은 분들에게 연말 유익한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추천~

추천사들이 책 진입에 흥미를 더합니다^^

 


"이제 더 이상 능력주의를 완벽하게 실천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능력주의가 가진 장점의 시효는 다했다고 분석한다. 이 책의 상당부분은 능력주의 정책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범법적 방해사례(특히 대학 입학 관련한)를 많이 인용하여 실감을 높여준다.

그러나 정작 샌델이 심혈을 기울여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은 ‘실천적 문제’보다는 ‘심리적 측면’이다. 그는 능력주의가 과도해지면서 능력과 도덕 판단력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능력으로 편을 가르고, 한 편이 성과를 독점하면서, 능력과 성과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계급이 생기고, 이를 세습화하기 위한 범법적 시도가 출현하고, 이를 독차지한 사람들의 오만이 극치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탈락한 사람들은 부의 상실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잃고 굴욕감을 갖게 되어, 이것이 심화되면서 사회적·정치적 긴장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근원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능력주의는 사실 철학과 신학의 역사와 뿌리를 같이 한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이데올로기로 채택되어 현재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데 기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샌델은 이를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 서울대 명예교수 문용린

 

 

 

 

 

 

 

 

 

 

 

 

 

 

 

 

 

 

 

 

 

 

 

 

 

 

팀 오브라이언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2020, 섬과달)을 저는 올해의 소설 top 1으로 선정할 생각이에요. 그의 소설이 또 나와『카차토를 찾아서』는 종이책으로 주문😆🥰😊

와와~ 어서 읽고 싶다!!!

 

 





이런저런 책 비교

어느 『어린 왕자』와 이별하지🤔?  e book도 여러 권 가지고 있어서 정리를 좀 하고 싶었습니다.

알라딘 서점 『어린 왕자』 열린책들 리커버 특별판(2020)은 현재 품절입니다. 그림과 글이 눈에 확 들어오는 가독성, 휴대성, 아기자기함은 리커버가 참 좋은데... 그렇다면...

 

 

 

 

 

 

수전 팔루디 『다크룸』(2020, 아르테)

팔루디 부녀의 가족 서사와 헝가리 역사, 유대인 박해, 국가, 정치, 사회, 젠더 등 다방면을 아우르느라 전개가 지루한 감도 있지만 읽을만한 가치는 있어요. 케이트 본스타인『젠더 무법자』에서 제가 미처 읽어내지 못한 맥락도 짚어줬죠.

정체성은 우리가 획득하고픈 판타지.

올 초에 읽다가 분량 때문에 밀렸는데, '올해의 책' 평가를 위해 부랴부랴 다시 읽은 책 중 하나죠^^; 발등에 불 떨어져야 끝을 보는 내 습관을 어째야 하지;;;

벽돌책이라 e book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전자책은 정말 편해요~ 내게 전자책은 5G 속도. 아이패드 에어 4 크기가 좀 부담스럽긴 하군요😅 아이패드 미니는 크레마 사운드랑 비슷한 크기라 답답해 안 산 건데... 한국 독서 인구 생각하면 킨들 한국판은 어렵것지😔

 

 

 

 

 

 

적어도 위선은 아닌 : 루이-페르디낭 셀린 『 Y 교수와의 대담』vs『제멜바이스 / Y 교수와의 인터뷰』

 

 

적당한 발화는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요. 아무나 맘껏 떠드는 게 난무하는 온라인 세상이라도 다른 사람 말이 못 견디게 그리운 경우는 산속에서 홀로 1주일 이상 지낸 사람 정도 아닐까 싶어요. 코로나19 격리 중이라도 전 안 그럴 거 같지만 사람에 따라서겠죠. 웹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떠들면 떠들수록 더 떠들고 싶고 남이 떠드는 것도 퍽 궁금해하는 것 같거든요.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까지도 알게 되는 일이 다반사. 오죽하면 '안물안궁'이란 말까지 나왔겠어요. 하지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면 사람들이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일은 없었겠죠.

대개 우리는 말보다 먹는 게 더 그립죠. 전혀 안 궁금하겠지만 저는 어제부터 먹고 싶던 DUNKIN 도넛을 샀어요. 제 주변엔 DUNKIN 매장이 딱 한 군데 있는데 주인이 불친절해서 가기 꺼려지지만 도넛이 먹고 싶다! DUNKIN으로! 때문에 사소한 언짢음은 무시하는 거야! 하고 갔어요. 제가 갈 때만 주인이 있는 건지 왜 많고 많은 상냥한 아르바이트생을 여기선 볼 수 없는 건지 늘 아쉬웠죠. 저도 감정 노동하기 싫으니까 상대에게 바라지도 않지만 늘 냉기가 도는 건 좀. 주인은 계산대에서 자기 일을 하느라 제가 고른 것을 살가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즉시 포장해 줄 제스처가 아니었어요. 이럴 거면 셀프 포장대를 만들어 달라! 하여간 우리는 서부의 총잡이처럼 한참 뜸을 들였고 기다리다 못한 제가 포장을 요청하자 주인은 자신은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 포장을 해줬어요. 아, 여긴 되도록 오고 싶지 않다, 그 생각을 하며 나왔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오랜만에 먹는 DUNKIN은 여전히 맛있었어요😭

미드 《DEXTER》에서 덱스터는 출근하면서 도넛을 한 아름 사서 직장 동료에게 나눠줬죠. 자신의 냉정한 치부를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요. 동료 형사 독스는 알아챘죠. 그에겐 모종의 꿍꿍이가 있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런다는 것을.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대인 관계를 위해 서로에게 호의를 베풀고, 받는 사람도 어느 정도 다 알면서 기분 좋게 받아주죠. 언젠가 당신에게 신세 질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포섭도 있고. 원주민 부족 사이의 포틀래치(선물경제)처럼 이 교환 활동은 인류의 오랜 관습입니다. 요즘 한국 정치, 사회는 도를 넘어선 로비로 자주 포착되지만(하룻밤 유흥비 5천만 원...), 사람 관계에서 호의는 결코 나쁜 게 아닙니다. 자선과 구호라는 적극적 행위까지 가지 않더라도. 보통 사람이라면 타인에게 호감을 얻고 싶어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그의 양면성의 갭이 얼마나 크냐 인 거죠. 주변에 자잘한 친절을 베풀면서 뒤에서는 가공할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그의 친절은 소급되어 혐오로 낙인찍힙니다. 작가도 정치인도 인간으로서의 모습과 외부 정체성의 모습 사이에 갭이 크면 즉각 입방아에 오르게 되죠. 요즘 미투 운동이 가장 극명히 보여주고 있고요.

프랑스 문단에서 신랄한 입담으로 이단아 작가로 여겨졌던 루이-페르디낭 셀린은 적어도 이중적인 작가는 아니었다고 봐요. 셀린의 『 Y 교수와의 대담』(2016, 읻다출판사)을 읽으면, 말하고 싶은 대로 떠들어도 이렇게 스타일리시 하다니 감탄하게 됩니다. 매우 시끄러운 문체이지만 매력적이고 논리적입니다. 프랑수아 라블레만큼. 셀린은 자신의 문체를 토글 단추나 자전거용 2단 기어 같은 문체라고 말하지요ㅎ 프랑스 작가 군은 참 다양한데 이런 요란한(?) 달변가를 만나면 즐겁죠. 읽는 내내 맞장구 미소가 지어집니다.

1950년대 프랑스에서도 사람들이 책 안 사고 허접한 책만 읽는다고 개탄을ㅎㅎ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주우우욱이는데!˝ 연발하고요ㅎ

사람들이 걱정하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듯해요.

워크룸프레스에서 나온 『제멜바이스 / Y 교수와의 인터뷰』보다 번역이 좀 더 정갈하게 읽힙니다. 주석이 많은데 각 책이 겹치지 않아 셀린에게 관심이 많다면 둘 다 읽어보는 게 좋습니다. 한 권만 읽는다면 읻다출판사에서 나온 걸 추천하고 싶지만, 읻다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종이책 품절이고 e book만 있는 실정이고, 워크룸프레스는 「제멜바이스」와 여러 부록을 살펴볼 수 있는 특색이 있습니다.

 

 

 

 

 

 

 

 

 

 

 

 

 

 

걸으며 책읽기 - 책광욕

산책 나갈 때 돈은 안 들고 가도 책 한 권은 꼭 품고 나갑니다. 걷는 템포에 따라 읽기 좋은 시집이 적격이죠. 요즘은 5시만 되어도 볕이 훅 줄어들어서 오늘 치 볕을 못 받았다 싶으면 맘이 급해집니다. 어서 나가야 돼! 햇볕 좋은 곳에 잠시 앉아 바람을 느끼고 볕을 쬐며 책 읽으면 힘들이지 않고 기분 전환이 됩니다. 일명 책광욕이라고ㅎ 이런 데서 휴대폰 들여다보고 있는 건 멋없어.

오늘도 그런 자리를 만났습니다.

 

다른 때와 다른 루트로 공원을 돌아다녔는데 기이한 광경을 만났습니다.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의자들이 아치형으로 둘러 있는데, 너대니얼 호손의 단편 속에 나오는 종교적인 비밀 회합에 퍽 어울릴 풍경이었어요.

여기 용도는 뭘까, 한참 빙빙 둘러봤습니다. 인민재판이나 자아비판을 하기에도 적당하지 않은 장소고, 공연을 하기에도 협소합니다.

여기서 야외 독서 모임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ㅎㅎ 낭독도 하고.

이런 풍경을 만나면 태초부터 변하지 않는 인간의 습성을 생각합니다. 공동체, 소통, 위계, 어울림... 상반된 성격의 돌과 나무가 함께 공존하듯이.

 

 

 

길목마다 부스러진 낙엽이 산속 모래알로 돌아가는 계절, 가을 낙엽은 너무나 사랑스러웠어요.

뮤리얼 루카이저 『어둠의 속도』(2020, 봄날의 책)와 어울렸고, 이런 시집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책을 산 나를 칭찬하고도 싶고ㅎ

 

 

 

 

뜻밖의 고생 - 팔고 사고 중고 좋아해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도 아니고 나는 중고책 좋아하세요? 하고 있네. 궁색 맞게 이게 뭐야😂😂😂

가을 독서 바람이 불어서 그랬는지 10월엔 중고책 주문이 폭발적이어서 한숨의 세레나데였죠. 요 며칠 또 하루에 1~2건씩 처리하고 있는데, 오늘도 집에 오자마자 중고 주문된 책 찾아 밑줄 긋기 지우고 쓸고 닦고 하며 책 손질 어언 1시간째... 휘유.

밑줄 긋기 안 한 책 사주면 정말 고마울 텐데....

왜 이런 고생을 하냐고요? 책 중고 판매 등록할 때 책 상태 설명이나 사진 첨부를 하지만 받는 분 생각해서 최대한 깨끗하게 보내는 게 좋죠. 저도 도서관에서 밑줄 그은 책 보면 싫었던 것처럼. 책 받은 분이 기분 좋게 바로 독서에 들어가도록 마음 쓰는 것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예의겠죠. 연필 없는 상황일 땐 볼펜도 썼는데 중고책 팔다 보니 아예 근절이에요ㅎㅎ; 귀퉁이 접는 것도 근절😂 내 책인데도 참 조심스러운 상황ㅎㅎ 이건 안 팔 거야 하는 책이라도 습관이 돼서 그냥 조심히 보게 돼요. 요즘은 밑줄 긋기, 메모는 하지 않고 북마크 같은 책 액세서리를 적극 활용합니다. 책쟁이들의 이런 고충을 파악했던지 알라딘이 북마크 종류를 엄청 판매하기 시작ㅎㅎ









※ 내가 책을 파는 이유(질문 주신 분이 있어서 생각도 정리)

1. 네임드 있는 작가나 유명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기 쉬우므로 이미 읽은 책이라면 처분합니다. 단 지속적으로 읽을거리가 많은, 삼독 이상 할 의향이 있으면 보류하고요.

2. 번역이 맘에 안 드는 책도 팝니다. 요즘은 개역판, 다른 번역으로 나오는 경우가 잦아 그럴 가능성 있는 책은 팝니다. 번역본일수록 초판은 큰 의미 없죠. 

3. e book으로 더 자주 읽을 거 같은 책은 종이책 팔고 e book으로 바꿉니다. 주석이 많고 까다로운 책은 제외. 두 권 다 다지고 있는 경우도 왕왕^^

4. 낡아서 새 책으로 교체해 소장하고플 때 팝니다. 5~6년만 지나도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색되거든요.

5. 묶음 배송으로 주문되어 한 권만 취소하기 난감할 때(이 책이 메인 주문이다 싶은 경우) 울며 겨자 먹기로 보낼 때도 있습니다ㅜㅜ

​11월 11일, 빼빼로데이 안중에도 없어요. 사무실에 가서 얻어먹으면 그런가 보다 합니다. 제 머릿속 이 책, 저 책 골목을 걷기 바쁩니다.

안녕, 신형철

안녕, 하루키

안녕히 가세요, 신영복 선생님

안녕, 쿤데라

 

 

 

 

 

 

 

무라카미 하루키 『장수고양이의 비밀』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생각난 김에 올해 중고 판매 운송장을 세어 보니 136장. 적어도 160권 이상 처리! 한 거 같아요. 그래도 부족하죠. 공간이!

민음사가 벽돌책의 고충을 아는지 e book도 출시해 주었는데,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는 이러면 안 사겠지 싶어 정가에 가깝게 올려놨는데 계속 주문 와서 아예 품목에서 내려버렸습니다. 읽지도 않은 새 책이라고ㅜㅜ; 그래서 읽기 시작. 번역가 김성도 씨 노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데리다 부인이 번역 허가에 힘 실어주지 않았다면 이 책이 못 나왔을 수도. 주석이 느무느무 귀찮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읽힙니다. 아아, 벽돌 책 끼고 이 계절 편안히 살고 싶어라.

 

오늘 도착한 중고책 비에른 베르예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은 아주 깨끗한 상태였습니다. 자기 인장까지 찍고 포스트잇 플래그를 초반에 붙여 가며 읽다가 취향 아니셔서 팔아버리신 듯😅 그럼 다음으로 제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1월 알라딘 굿즈

♧ 2021 알라딘 탁상 일력 사라질까 봐 냉큼 구매. 올해 잘 썼던 큰 크기의 벽걸이 & 탁상달력 좋았는데 이 콘셉트 없어서 섭섭합니다. 작은 건 한 장씩 찢어야 되잖아😭😢 아까워😥😭

 

 

♧ 2021 알라딘 미니 다이어리

왔어요, 왔어요~ 2021 다이어리 장만의 계절이 왔어요.

 

가방 짐을 덜려니 다이어리 부피도 줄이고 싶었어요. 원래는 롤 마스킹 달력으로 알라딘 미니 노트를 꾸며보고 싶었으나 주간 스케줄도 따로 만들어야 하는 등 귀찮은... 그래서 미니 다이어리로 간편하게 가기로. 365일 데일리 다이어리라 알라딘 미니 노트보다 좀 두껍지만 사이즈는 동일합니다. 평소 들고 다니는 알라딘 더블 포켓 파우치에도 쏙^^ 왜 작년처럼 블랙 셜록으로 내지 않았는가! 불만이었다가 자주 볼 물건인데 밝은 색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해요. 내년은 다이어리 색깔 따라 핑크빛이길...💗

 

 

 

 

• 오프라인 알라딘 중고 서점 - 허탕, 이런 날도 있지

 

최상급 판정을 받아도 팔 책은 재고 많다고 퇴짜 당하고ㅜㅜ

살 책은 없어 알라딘 굿즈 구경만 실컷.

2021 알라딘 다이어리 장만하고 싶은 분은 굳이 5만 원 채우는데 골몰 말고 중고 서점에서 1만 원어치만 사고 다이어리 20% 할인받는 것도 현명한 선택 같아요.

실제로 보니 위클리 다이어리로 빨강 머리 앤 에이번리(핑크), 데님이 예뻤어요. 소프트 PU, 피너츠 보라색은 별로였고요.

도리언 그레이 수면 양말 찜~

어린 왕자 마스크 스트랩 찜~

가로형 인덱스 메모지 찜~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 2020-11-27 1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 달도 잘 읽고 가요. 뭔가 이달의 책처럼 잡지처럼 구독하는 느낌인데 사랑의 댓글밖에 드릴 것이 없네.. 추워서 그런지 좀 묵직한 책 읽고 싶어졌는데 여러권 힌트 얻어가요! 12월도 핑크핑크하시길...💗

AgalmA 2020-11-27 19:20   좋아요 2 | URL
저도 묵직한 책들 속에 느긋이 읽고 싶은데 여유가 없네요ㅠㅠ 다음달 정리하고 페이스를 좀 바꿔봐야겠어요.
과연 핑크핑크일지....휴.
하나 님도 몸과 마음 건강 잘 챙기시고요/

scott 2020-11-27 2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페이퍼 볼때 마다 감탄 하나님 댓글 처럼 책잡지 +굿즈 열람 구독하는 것 처럼 읽고 있어요.
죠기 하루키 유리컵 안깨지고 배달이 잘되었네요 ㅎㅎ
다이어리 싸게 사는 팁까지 ㅎㅎ
알라딘은 agalma님에게 구디백(1년동안 인기였던 굿즈 잔뜩 넣고) 같은것 줘야 합니다.

AgalmA 2020-11-28 17:54   좋아요 1 | URL
책을 많이 사다보니 덩달아 굿즈도 많이 사게 되었죠^^;; 이왕 가지고 있는 거 이런저런 정보 공유를 하면 좋지 않겠나 싶어 올리기 시작했는데, 도움이 되신다면 다행이죠!
맞아요. 컵 굿즈는 파손될까봐 늘 조마조마 하죠. 5번의 1번은 파손 상황이 생기다보니 더... 유리컵이 특히 그렇죠. 무사히 와서 다행이었어요.
굿즈왕국 알라딘은 이제 연말에 블랙프라이데이 굿즈 럭키백 해도 될 거 같아요ㅋㅋ

페크pek0501 2020-11-29 13: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 섬세함이라니... 감탄 감탄!!! 재밌게 구경했어요.
사야 할 책이 있는데 참고 12월을 기다리고 있어요. 왠지 12월엔 사은품이 다양할 것 같아서...
마일리지 차감이라도 해야죠. 탁상 달력을 갖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ㅋㅋ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을 꼭 살꼬예요.

AgalmA 2020-11-29 18:27   좋아요 2 | URL
12월엔 어떤 굿즈판이 벌어질지 저도 기대됩니다ㅎㅎ
마이클 샌델 사시면서 탁상 달력을 겟?
알라디너는 굿즈 가족^ㅋ^

scott 2020-11-29 13: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agalmaA님 페이퍼 보고 몇개 골라 놨어요. 한정판 양말에 눈독을 @ㅅ@

AgalmA 2020-11-29 18:29   좋아요 1 | URL
양말은 한정판이 아니라 일반 판매 품목이라 마음 급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ㅎ
알라딘 일반 양말은 그냥 그런데, 수면 양말 많이 써봤지만 알라딘 수면 양말은 폭신하고 따뜻해서 애정합니다 >_<)ㅇ!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된 맛집을 가면 메뉴가 단출하다. 자신 있는 시그니처 메뉴 몇 가지로 승부를 건다. 한국 사람들이 된장찌개, 김치찌개, 김치를 평생 즐겨 먹듯이 작가들도 평생 집중하는 주제나 소재들이 있다. 김치만 해도 응용할 게 많다. 볶음김치, 김치찌개, 김치전, 두부김치, 김치만두 등등 변형해 다양한 맛을 음미한다. 하루키처럼 재료가 변함없는 작가도 드물다. 하루키 (미식) 마니아들은 같은 재료로 만든 요리를 질려 하기는커녕 코드를 발견한 마냥 애호한다. 『여자 없는 남자들』 단편집은 그의 단골 '그녀와 그'들이 등장한다. 첫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부터 아내의 외도와 죽음이라 하루키가 이제 ‘아내’ 소재와 이별하기 위해 마지막 파티를 벌이는 걸까 했다. 아내의 외도로 인한 방황과 깊은 상처는 「기도」에서도 그로테스크하게 펼쳐진다. 이 방황은 장편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이혼을 요구받은 화가의 상황과도 닮았다. 「예스터데이」는 친구와 그의 아름다운 여자 친구에 끼여 난처했던 주인공의 '응답하라~' 시절 후일담으로, 마찬가지 비틀스 노래를 제목을 썼던 『노르웨이의 숲』에서 기즈키와 나오코 사이에 있던 와타나베 토오루의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독특한 캐릭터 기타루가 기즈키처럼 자살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끝이 암울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독립기관」은 하루키가 소설에서 자주 설정하는 캐릭터ㅡ비밀스럽고 고급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을 지녔고 매력적인 바람둥이 향취를 풀풀 풍기지만 한 여자만을 사랑한 순애보이기도 해서 비극적으로 죽는ㅡ 개츠비 유형의 안타까운 죽음을 그렸다.

 

 

*

내적인 굴곡이나 고뇌가 너무도 부족한 탓에, 그 몫만큼 놀랍도록 기교적인 인생을 걷게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 수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우연한 기회에 눈에 띄곤 한다. 도카이 의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 같은 사람들은 굴곡진 주위 세계에 (말하자면) 올곧은 자신을 끼워 맞춰 살아가기 위해 많든 적든 저마다 조정 작업을 요구받게 되는데, 대부분 본인은 자신이 얼마나 번거로운 기교를 부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퍼뜩 깨달았을 때, 사태는 때로는 비통하고 또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물론 죽을 때까지 그런 빛을 목도하지 않는, 혹은 목도하더라도 딱히 별다른 느낌을 받지 않는 축복받은(이라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사람들도 허다하게 존재하지만.

 

- 「독립기관」

 

 

「셰에라자드」는 하루키가 즐겨 쓰는 ‘감금’ 상태의 판타지가 펼쳐진다. 『1Q84』에서 아오마메가 아파트에 숨어 도움을 받던 상황을 변조해 더 펼쳐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셰에라자드」의 그는 모종의 이유로 도피해 숨어 있고, 도우미로 찾아오는 하바라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 단편에 이 책의 주제를 알려주는 문장이 있다.

 

*

그는 모든 자유를 빼앗기고 그 결과 셰에라자드뿐 아니라 다른 모든 여자에게서 멀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도 크다. 그렇게 되면 이제 두 번 다시 그녀들의 젖은 몸속에 들어갈 수 없다. 그 몸의 미묘한 떨림을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하바라에게 무엇보다 힘겨운 것은, 성행위 그 자체보다 오히려 그녀들과 친밀한 시간을 공유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셰에라자드는 그에게 그것을 넉넉히, 그야말로 무한정 내주었다. 그 사실이, 그리고 그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잃게 되리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그를 슬프게 했다.

- 「셰에라자드」

 

 

하루키가 소설 속에서 내내 그렸고, 가질 수도 영원할 수도 없는 상실의 매개는 ‘여성’이 대표적이다. 하루키 소설 속 그녀들은 대부분 당차고 남성 캐릭터보다 독립적이다. 그녀들이 외로움을 성욕으로 풀려고 하는 방법은 하루키의 남성적 접근의 한계 같아 좀 아쉽지만. 「사랑하는 잠자」는 카프카 『변신』을 오마주 했다. 그가 즐겨 쓰는 리틀 피플(난쟁이, 척추장애인) 형 여성 캐릭터가 계엄령 상황에서 열쇠 수리공으로 잠자의 집을 방문한다. 바깥 상황을 전혀 모르는 순진한 잠자는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고 발기하고 만다. 아아, 늘 이렇다니까. 「여자 없는 남자」는 하루키의 작품을 비방할 때 주로 등장하는 ‘중2병’ 스타일의 나약하고 낭만적 성향의 남성 캐릭터 재등장이다. 100% 완벽한 소녀를 만나고 그 기억을 간직하고자 하는 남자들 말이다. 하지만 이 특징은 되돌릴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이 잃고 마는 우리의 순수와 감수성에 대한 회한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

내가 여기서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사실이 아닌 본질을 쓰고 싶은 것이리라. 하지만 사실이 아닌 본질을 쓰는 일이란 달의 뒷면에서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하는 일과 다름없다. 캄캄하고 표지로 삼을 만한 것도 없다. 게다가 너무 넓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무튼 엠은 내가 열네 살 때 사랑에 빠졌어야 하는 여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은 한참 나중 일이고, 그때 그녀는 (유감스럽게도) 이미 열네 살이 아니었다. 우리는 만남의 시기를 착각했던 것이다. 만나기로 한 날짜를 착각하듯이. 시간과 장소는 맞다. 하지만 날짜가 틀렸다.

그러나 엠 안에도 아직 열네 살의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 소녀는 하나의 총체로서 ㅡ 결코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ㅡ 그녀 안에 존재했다.

 

- 「여자 없는 남자」

 

 

 

또, 또, 또냐, 구시렁대며 읽지만, 하루키가 읽어내는 인간의 외로움과 딜레마는 언제나 독자 내면을 거울처럼 비추니 우리는 그의 최면술에 빠져들고 만다. 그래서 나도 이 소설집을 읽었다. 그리고 6년 만에 나오는 신간 소설집 『일인칭 단수』도 바로 주문;; 목차를 보니『일인칭 단수』 구성도 『여자 없는 남자들』 과 비슷해 보였다. 소설을 읽는다기보다 이젠 그와 우리가 어떤 식으로 변화해가는지 함께 경험해가는 기분.

 

 

*

“뭐라고 해야 좋을까. 일단 진지하게 연기를 시작하면 그만둘 계기를 찾기가 어려워. 아무리 정신적으로 힘들다 해도, 그 연기의 의미가 마땅한 형태를 이루기 전에는 흐름을 멈출 수가 없거든. 음악이 어떤 특정한 화음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결말을 맞을 수 없는 것처럼…… 

- 「드라이브 마이 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11-24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7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을지로 수집
설동주 지음 / 비컷 / 202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라테를 마시며 "나 때는 말이야"가 수긍 가는 을지로 이야기를 읽는다. 을지로를 좋아해서 이 책이 나왔을 때부터 꼭 읽어보고 싶었다. 내가 떠나온 곳보다 서울에서 더 오래 살아 고향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서울 곳곳의 이야기가 생경하지만도 않다. 을지로 인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의 독특한 풍경, 영업이 끝난 조명 가게 조명이 고즈넉이 거리를 비추는 판타지 한 광경, 서울 중심가인데도 다른 시공간으로 온 듯한 기시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온 듯한 기분을 잊지 못한다. 첨단 도시와 구멍가게가 공존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이곳의 풍경은 서울에서 유일하다.

설동주 저자가 짚어낸 을지로의 이미지는 내가 느꼈던 것과 동일했다.

 

*

"을지로의 간판은 직설적이다. 명함, 와이어, 프레스, 가공, 도장 같은 단어들이 이거 돼요, 이런 건 어때요, 하고 말을 건다. ‘이런 걸 할 수 있어요’라는 결과물을 바깥에 대문짝만 하게 걸어놓기도 한다. 틈새 없이 늘어서 있는 간판들은 이 골목 사람들이 차곡차곡 쌓아온 기술을 닮았다."

 

 

을지로의 낡은 상가들은 재개발로 무너져도 좋은 퇴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책이 전하는 이야기는 황정은 작가의 소설 속 암울한 청계 상가 풍경과 다르다. "1층에는 인쇄, 타일, 공구, 조명, 분식집과 다방, 오래된 맛집들. 2층과 3층에는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소담한 카페, 독특한 가게들. 마치 10년 전 찍은 사진과 어제 찍은 사진이 한 롤에 들어 있는 필름"처럼 어우러져 상생하는 생활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공구 소리와 쌍화탕 향기가 공존하는 곳. 기원, 이발소, 다방, 인쇄소들이 화석처럼 아직도 거기 있다.

 

*

윤소영 : 맞아요. 먼저 계시던 분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 저희처럼 새로운 사람들이 스며들면 좋겠어요. 변하긴 변하겠지만, 깊숙이 파헤쳐 보면 새로운 요소가 들어와 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는 정도지 모두 다 바뀌어버리는 변화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설동주 : 라이프스타일을 깨뜨리지 않는다는 말 참 좋네요.

 

김요한 :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추가로 이야기해보자면, 마지막 재료는 ‘시간’이라는 말 있잖아요. 이 건물이랑 골목, 가게 다 시간을 품고 있는데, 그런 공간과 대비돼서 저희 가게도 새롭게 보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은 시간을 품고 있는 것의 가치가 너무 낮게 평가되는 것 같아요. 이 가치가 잘 지켜지면 좋겠어요.

- 「윤소영(패션MD), 김요한(그래픽디자이너)이 만든 편집숍 <오팔> INTERVIEW 2(2019. 07. 24)」

 

 

여행의 의미가 단지 관광이 아니듯 우리는 세계를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만지고 경험하고 싶어한다.

 

*

윤병주 : 사진관 치고는 소품이 엄청 많은데, 제가 워낙 만지는 걸 좋아해요. 예전에 로마에 간 적이 있는데, 눈으로만 보기에는 이미 익숙한 것들이잖아요. 워낙 사진을 많이 찍어서 눈으로 보는 데에는 둔감해지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한 번 만져보면 느낌이 달라요. 그런 걸 좋아해요. 어디를 가든 눈으로만 보는 게 아니라 벽이라도 한 번 만져야 내가 여기 왔다 갔다는 느낌이 들어요. 비행기를 타고 갈 때 홍콩을 경유해서 가면 홍콩 가봤다고 하지 않잖아요. 안 만져보면 공항에만 있는 거나 다름없는 것 같아요. 경유한 걸로만 치면 세계일주 다 했겠죠.

(중략)

을지로는 지금 방향이 좋다고 봐요. 기존 가게들이 1층에 현존해 있고. 1층은 우리가 파고들지 않잖아요. 우리는 2,3층에 있는데, 우사단은 원래 있던 식당 쫓아내고 미용실 오래 했던 사람 나가게 하고 전혀 다른 게 들어오니까 완전히 변해버렸어요. 공존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을지로는 가능해요. 우리는 1층에 못 들어가요. 왜냐면 을지로는 1층 분들이 건물주인 경우가 많거든요. 덕분에 2,3층 월세가 싼 거예요. 그래서 을지로는 지속 가능할 것 같아요. 이런 방향이라면 젠트리피케이션도 방어할 수 있는 거죠. 경리단길이나 망원동도 정책적으로 1층은 건드리지 않고 2,3층에 젊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게 했으면 문제될 게 없었다고 봐요. 을지로가 앞으로의 롤모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윤병주 사진작가가 운영하는 사진관 겸 현상소 겸 살롱 <망우삼림>, INTERVIEW 3(2019. 07. 30)」

 

노동이 있는 곳에는 삶의 가치, 방향성에 대해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이 많다. 자본의 환경 변화에 따라 사라지는 직업에 대해 재빠르게 부응하지 않는 개인만을 탓할 수 있을까. 일은 재화의 가치만 가지지 않는다. 우리가 노력을 쏟은 만큼의 긍지와 애정도 있다. 지금 시대는 그런 재반을 간과하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장인이나 예술가로 추앙하면서 어떤 이는 대체 가능한 부품 같은 노동자로 치부하면서.

 

*

설동주 : 외부에서 노하우를 잘 알려주시나요? 영업비밀일 수도 있는데.

 

박철성 : 친절하게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죠. 그래서 리서치를 잘하는 게 중요한 거죠. 여기서 선수가 되려면 진짜 제일 바닥, 아무도 모르는 바닥의 바닥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더 고급정보를 알아야지. 예들어 어떤 사람들은 좋은 인디고집을 하나 알면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패 하나만 든 거예요. 그렇잖아요? 이 사업에 관해 패를 몇 개는 갖고 있어야 작가가 어떤 요구를 해도 해결해주죠. 하다못해 경쟁업체를 소개해주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일을 내가 리드하는 게 중요한 거지.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편하고 네트워크가 있는 데를 자꾸 가려고 해요. 거기가 최선이 아니라 하더라도 몸에 밴 습성, 편의성 때문에 그렇게 되거든요.

(중략)

그동안 인쇄산업은 수주산업화해서 살아왔어요. 사실 그 패러다임이 가장 큰 문제였던 거예요. ‘일이 있어야 일을 하지’, 이 말에는 누군가 일을 줄 거라는 전제가 있잖아요. 우리 아버지 세대는 일을 만들어서 하는 세대가 아니었던 거예요. 그런 걸 배워본 적이 없어요. 고도성장기 때 산업이 잘 돌아가니까 사람들은 도장도 필요하고 인쇄물도 필요하고 명함도 필요했던 거야.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누가 일감을 주는 상황에서 이제는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상황으로 가고 있어요.

(중략)

나는 무에서 시작하는 걸 새로운 창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존에 있는 것을 발전시키거나 그 안에서 예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해요. 새로 그리는 건 누구나 언제든 할 수 있어요. 이 공간을 하얀 페인트를 칠한 다음에 자기가 그리고 싶은 걸 그릴 수 있어요. 하지만 그러면 이 공간에 있던 일종의 영혼은 사라지는 거야. 이곳에도 공간의 특성이 있어요. 저쪽에 홈이 파여 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어요. 금고가 있었는지 아니면 건축이 이상해서인지 모르겠는데, 그것 때문에 이 공간이 재미있어져요. 또 여기가 지하다 보니 하중을 받치려고 위에 H빔을 넣었는데, 이런 것들이 공간의 정체성이나 재미를 주죠. 만약 층고가 높고 이 기둥이 없었으면 여긴 그냥 인쇄소 자리예요. 그런데 기둥하고 층고 때문에 일반 상용 인쇄기가 못 들어왔던 거야. 그래서 점빵의 오늘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여기가 밋밋했으면 점빵의 느낌이 덜 살았을 거예요. 재미가 없는 거죠. 공간만의 이야기가 없으니까.

 

- 「리소 인쇄를 이용해 디자인 제작을 하고 있는 레터프레스 전문 인쇄공방 <디자인점빵> 박철성, NTERVIEW 5(2019. 08. 02)」 

 

 

비하인드 이야기가 많은 <에이스포클럽> 인터뷰는 작은 단편처럼 재밌었다.

 

 

*

설동주 : 해방 직후면 말 그대로 반세기네요. 이전 사장님은 또 여기서 20년을 지내셨고요.

 

권민석 : 강산이 두 번 변할 수 있는 시간. 20년 장사라니 말이 쉽지, 다방 운영하기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그 인생이 얼굴과 말투에 묻어 있더라고요. 사람에 웃고 사람에 지친 그 얼굴. 그래서 ‘젊은 사람이니 열심히 살아라. 이화다방을 잘 부탁한다’던 마지막 한마디가 잊히지 않아요.

(중략)

저희 오픈 준비하느라 공사할 때도 별의별 물건들이 다 나왔어요. 가짜 부동산 투자 서류, 위조지폐 만드는 틀, 6·25 참전용사증, 갖가지 의학서적 등등. 예전에는 무슨무슨 종파 몇 대손 모임 할아버지들이라거나 종묘제례 올리시는 분들이 제사 끝나고 와서 담소 나누시고 그랬대요. 다방 안쪽 방에서 종묘제례에 쓰이는 한복도 나오고, 그분들이 같이 찍은 사진도 나왔어요. 진짜 매력적인 곳이죠.

(중략)

아, 공사하느라 벽을 뜯었더니 시멘트 위에 칼로 그린 그림 같은 게 나온 적도 있어요. 사람이 앉아서 뭔가 하고 있는 모습. 누구 작품일까 알아봤는데, 옛날에는 미장이들이 미장 칼로 장난삼아 벽에 그림 그리기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위에 시멘트로 문지르건 타일을 대건 할 테니까. 하지만 얼마나 예술적이에요. 미장한 직후에는 흘러내려서 이렇게 그리기도 쉽지 않을 텐데 굳기 직전에 미장 칼로 그린 거잖아요. 남겨놓고 싶었는데… 아쉽죠.

 

- 「1959년부터 을지로를 지켰던 ‘이화다방’을 개조·계승한 카페 겸 바 <에이스포클럽> 권민석, INTERVIEW 6(2019. 07. 25) 」  

 

 

이 책은 을지로 골목 탐방 지도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 뒤에 부록으로 명소 소개를 꼼꼼히 정리해 놓았다. 중구에서 을지로 투어를 무료로 하고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방산시장에서 청계 대림상가까지 해설사의 설명과 함께 총 20개 지점을 둘러보며 을지로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본다. 지하철 을지로 4가 역 6번 출구에서 출발해 방산시장 비닐·제지와 초콜릿·베이킹 거리, 성제묘, 염초청 터, 향초·디퓨저 DIY 상가, 포장 인쇄골목을 지나 중앙아파트, 을지로 예술가 작업 공간을 거쳐 청계 대림상가, 조명거리, 마지막으로 을지로 3가 노가리 호프에서 끝난다. 중구청 도심산업과에서 사전 신청을 받으며, 4명 이상이면 해설사가 배정된다. 평일과 토요일 오후 3시에 운영되고, 참가비는 무료다."

내가 아는 명소도 있고 모르는 곳도 있는데 오래오래 운영되어 단순히 '힙지로'로 불리며 트렌드로만 소비되지 않았으면 싶다. 친구를 데려가면 아니, 여기 이런 데가 있어 하고 놀라게 하기 좋은 곳이고 비밀스러운 아지트가 많지만, 요즘은 힙스터들 때문에 어렵게 된ㅎ

 

 

저작권 때문에 수록된 사진과 그림은 생략. 정감 가는 사진과 그림이 많아서 읽는 내내 눈호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한유주 연작소설집 틂 창작문고 13
한유주 지음 / 문학실험실 / 2020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토마스 베른하르트 좋아하시더니 이젠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충분히 자기 스타일로 소화해내신 듯. 「개와 걔」는 유디트 헤르만 「붉은 산호」느낌이 강하게 나지만.
무척 동감이라 단숨에(이러면 안 될 거 같은 책이지만) 다 읽었다. 내가 쓰고 싶고 읽고픈 소설을 읽은 건 참 오랜만이다. 자살과 죽음 사이의 수수께끼를 나도 많이 생각하므로. 나는 그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했지. 내게 그 죽음은 이제 2년이 되어간다. 아주 길었고 아직도 멀었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개의 죽음은 ... 영영 덜 잊을 죽음 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가 인터뷰나 에세이보다 더 리얼한 ‘작가는 무엇인가‘


문학의 힘이란, 저는 늘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걸 만들어내려는 의지가 얼마나 강한가에 달려 있다고요. 그랬기 때문에, 작가가 글을 쓰기 위해서 특별한 의식儀式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었거든요.

유니언광장까지, 서로의 길이 갈라지기 전까지 몇 블록을 함께 걸었어요. 작별인사를 할 때, 무용수가 몸을 숙여 제 옷깃에 인 보풀을 뜯어주었죠. 그 순간은 부드럽고 친밀하다고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저기, 벽에서 내렸어요, 그가 작게 말했어요. 뭘요? 제가 물었죠. 선생님 소설을 읽고 나서요, 벽에서 그림을 내렸어요, 더이상 바라볼 수가 없어서. 그랬어요? 제가 말했어요. 무방비 상태였죠. 왜요? 처음엔 저도 이유를 몰랐어요, 그가 대답했죠. 이사를 다닐 때마다, 도시를 옮겨다니면서도 가지고 다닌 그림이었거든요, 거의 이십 년 동안. 하지만 얼마 후엔, 선생님의 소설을 읽고 나서 비로소 무언가 분명해졌다는 걸 이해했습니다. 그게 뭐였을까요? 저는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 못했네요. 무용수는,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나긋하고 우아한 동작으로 팔을 뻗어, 두 손가락으로 제 뺨을 한 번 쓰다듬어준 다음 돌아서서 사라졌어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처음에는 그의 동작이 혼란스럽다가 나중에는 불쾌했어요. 겉으로만 보면 다정한 행동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 행동에 어떤 업신여김이, 심지어 모욕적인 무언가가 담겨 있었던 것만 같았죠. 무용수의 미소가 점점 더 가식적으로 느껴졌고, 그가 수년간 그 동작을 준비해온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며, 나와 우연히 마주칠 때를 기다려온 거라고. 그럴 가치가 있었을까요?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했던 게 아닐까요? 저한테만 한 것도 아니고, 그날 밤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한 건데? 제가 좀더 은밀한 방법으로—이를테면 그의 일기나 편지를 몰래 읽고—그 이야기를 알게 된 거라면, 아마 그런 일은 그를 잘 모르는 저로서는 불가능했겠지만, 달랐겠죠. 혹은 그가 여전히 고통스러운 감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저에게만 그 이야기를 했다면 달랐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거든요. 저녁식사 후에 그라파를 한 잔씩 나눠줄 때와 다름없이 미소를 띤 채 활기차게 이야기했는데 말이에요.

제가 들었던 소리에 대해 아무에게도, 심지어 수년 동안 제 상담의였던 릭트먼 박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그후로 얼마 동안은 아이 소리가 들리지 않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비명소리는 제게 남았어요. 가끔 글을 쓰다보면 제 안에서 갑자기 그 소리가 들려서, 생각의 흐름을 놓쳐버리고 멍해질 때가 있었죠. 그 비명소리에 조롱 비슷한 것이 숨어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듣지 못한 어떤 배경음 같은 것. 혹은 아침에 일어날 때, 잠에서 빠져나와 깨어 있는 세계로 넘어오는 바로 그 순간에 그 소리가 들릴 때도 있었어요. 그런 아침이면 뭔가가 목을 휘감고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잠을 깼죠. 뭔가 보이지 않는 무게가 집안의 물건들에, 찻잔, 문손잡이, 컵에 붙어 있는 것 같았어요. 처음엔 알아차리기 힘들지만, 어떤 동작을 하든 아주 조금씩 더 힘이 들고, 그런 동작들을 마친 다음 책상에 가서 앉을 때쯤엔, 이미 제 안에 남아 있던 힘이 모두 슬그머니 빠져나가버린 상태였죠. 한 단어를 쓰고 다음 단어를 쓰기까지의 쉬는 시간이 길어지고, 힘들게 떠올린 생각을 글로 옮기려는 그 결정적 순간이 흔들리며, 무관심이라는 어두운 공간이 열리는 거예요. 아마 그게 제가 작가로 살면서 가장 자주 싸워야 했던 상황 같네요. 일종의 부질없는 관심, 혹은 무기력한 의지라고 할까요. 사실 그런 상태가 너무 꾸준했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쓰이지도 않았어요—침묵에 굴복하라고 나를 부추기는 힘 같은 것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그런 순간에 발목이 잡힐 때가 종종 생긴 거예요. 그런 순간이 점점 길어지고 폭도 넓어지면서, 그 너머를 보는 것이 아예 불가능해져버릴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마침내 그 너머에 이르렀을 때, 구명보트처럼 어떤 단어가 찾아오고,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이어져도, 약간의 의심을 품은 채 그 단어들을 바라보기 시작한 거죠. 그런 불신은 제 작품에만 한정된 건 아니었어요. 스스로에 대한 깊은 불신을 인식하지 못한 채 작품만 의심하는 일은 불가능하니까요.

작업은 계속 엉망이었어요. 이전보다 훨씬 느려진 것은 물론, 이미 써놓은 것들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고, 과거에 쓴 것들이 모두 잘못되었고 방향이 틀렸다는, 그 모두가 거대한 실수였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없었죠. 그동안은 나의 작업이 사물들의 숨은 깊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반대가 사실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 거예요. 제가 제 글의 소재가 된 사물들 뒤로 숨었던 거라고, 그것들을 이용해 평생 동안 다른 사람에게 저의 은밀한 결점이나 결핍을 숨겨왔고, 글을 씀으로써, 심지어 저 자신에게도 숨겨왔던 거라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결핍은 더 커졌고, 더이상 숨길 수 없을 지경까지 와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작업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어요. 어떤 결핍이냐고요? 글쎄, 영혼의 결핍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아요. 힘과 활력의 결핍, 연민의 결핍이요. 그리고 그런 결핍에서 이어진, 결과로서의 결핍. 글을 쓰는 한, 그런 환상들이 떠나지 않았어요. 직접 결과를 목격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겠죠. 저는 기자들에게 자주 받았던 질문, 책이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라는 질문(질문의 진짜 뜻은, 정말로 당신이 쓰는 무언가가 다른 사람에게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겠죠)에 이렇게 답하곤 했어요. 반격의 여지가 없는 질문을 기자에게 되던졌죠. 무슨 일이 생겨서 지금까지 읽은 모든 문학작품이 머릿속에서 지워진다면, 머리와 영혼에서 지워진다면, 본인이 어떤 사람이 될지 한번 생각해보라고요. 기자가 그런 황량한 상태를 그려보는 동안 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어요, 그렇게 또다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을 피한 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