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이 깨졌고 과실이 상대에게만 있다고 생각할 때 순애보의 영화 대사처럼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고 한다면 상대는 광고 카피처럼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고 자신을 변호할 수도 있다. “네 탓이야.”라고 말하지 않고 제 마음이 변했다고 자인하는 것만으로도 칭찬(?) 받을 일이다. 대면도 하지 않고 카톡 한 줄로 끝나는 이별도 수두룩하다. 현실뿐 아니라 문학, 영화, 연극, 드라마, 음악 등 인간의 거의 모든 콘텐츠에는 사랑과 이별이 넘쳐난다. 모두가 원하지만 잘 안되고 필요한 만큼 얻을 수 없는 게 ‘사랑’이라 그렇다. 이 책의 저자 에리히 프롬도 “사랑처럼 엄청난 희망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다가 반드시 실패로 끝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라고 말하고 있다. 실패조차 할 수 없는 솔로도 가득하지만 요즘의 ‘사랑’은 그 가치가 ‘연애’, ‘결혼’의 가교처럼 여겨지는 것도 같다. 1900년 태생인 에리히 프롬도 당시 이런 문제점을 느꼈다. 그의 마지막 저서인 『사랑의 기술』은 1956년에 발행되어 34개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혀왔다. ‘기술’이라는 단어가 픽업아티스트의 용어 같기도 하지만 프롬이 ‘기술’이라는 단어를 쓴 건 깊은 뜻이 있다. 프롬은 사람들이 사랑을 ‘감정’으로만 생각할 때의 문제를 지적한다. 사랑할 줄 아는 자신의 ‘능력’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지’만 고심하고, ‘대상’의 문제로 전가하며 ‘인간의 애정 관계를 상품의 교환 가능성’처럼 여기며, 사랑을 ‘머물러 있는 상태’로 인식하기 때문에 정작 사람들이 사랑을 배우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사람의 원초적인 분리 불안은 고립의 공포와 고독에서 끊임없이 벗어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여러 합일의 형태들을 찾게 되는데, “과거나 현재에 있어서 사람들이 가장 자주 해결책으로 채택하고 있는 합일의 형태, 곧 집단-그 관습, 관례, 신앙-과의 일치에 바탕을 둔 합일”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다른 합일의 방식도 모색되었다.



📖

“분리 상태에서 생기는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으로서의 일치와 함께 현대 생활의 다른 요인, 곧 일상적인 노동과 일상적인 오락의 역할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간은 ‘평균화’되고 노동력 또는 사무원이나 관리자의 관료적 힘의 일부가 된다. 그는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그가 하는 일은 이 일을 관리하는 조직에 의해 지시된다. 계급의 높고 낮음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다. 그들은 모두 조직의 전체적 구조에 의해 지시된 일을 지시된 속도로 지시된 방식에 따라 수행하고 있다. 심지어 감정조차도 지시받고 있다. 쾌활함, 믿음직함, 모든 사람과 마찰 없이 지내는 능력까지도.

오락도 그리 격렬한 방법은 아니더라도, 역시 상투적인 것이 된다. 책은 독서 클럽에 의해 선택되고, 영화는 필름이나 극장 소유자에 의해 선택되고, 광고 슬로건도 그들에게 지불을 받는다. 휴식 역시 일정하다. 곧 일요일의 드라이브, 텔레비전 연속물, 카드놀이, 사교 파티 등이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월요일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활동은 일정하고 기성품화되어 있다. 이러한 상투적 생활의 그물에 걸린 인간이 어떻게 자신은 인간이고, 특이한 개인이며, 희망과 절망, 슬픔과 두려움, 사랑에 대한 갈망, 무無와 분리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단 한 번 살아갈 기회를 갖게 된 자임을 잊지 않을 것인가?”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자아도취가 아니라 자립적 인간의 자발적인 행동이다. 이 순수한 생산적 활동은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반한다. 프롬의 입장에서 프로이트 이론은 대단히 잘못되었다.



📖

“남녀 양극성의 문제는 사랑과 성에 대해 더 많은 검토를 요구한다. 나는 전에, 프로이트가 성욕을 사랑과 합일의 요구가 나타난 것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사랑에서 성적 본능의 표현─혹은 승화─만을 보려고 한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잘못은 더 심각한 것이다. 그의 생리학적 유물론과 일치하는 바, 그는 성적 본능을 몸속에 화학적으로 생긴, 고통스럽게 해방을 갈망하는 긴장의 결과라고 본다. 성욕의 목적은 이 고통스러운 긴장을 제거하는 것이고 성적 만족은 이러한 제거에 성공하는 것이다.

유기체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할 때 굶주림이나 갈증이 생기는 방식과 똑같은 방식으로 성욕이 생긴다고 하는 점까지는 이 견해가 타당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욕은 갈망이고 성적 만족은 갈망의 해소이다. 이러한 성욕의 개념을 갖는 한, 사실상 자위自慰는 이상적인 성적 만족이리라.

매우 역설적이지만 프로이트가 무시한 것은 성욕의 심리적·생물학적 측면, 남녀의 양극성, 그리고 결합에 의해 이 양극을 연결하려는 욕망이다. 아마도 프로이트의 극단적인 가부장주의는 이처럼 기묘한 잘못을 촉진했을 것이다. 가부장주의 때문에 그는 성욕을 본질적으로 남성적이라고 가정하게 되었고, 따라서 독특한 여성의 성욕을 무시하게 되었다.

그는 <성의 이론에 대한 세 가지 공헌>에서 이 사상을 전개하면서, 리비도libido는 남성 안에 있는 리비도든 여성 안에 있는 리비도든 관계없이 원칙적으로 ‘남성적 성격’을 가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린 소년 또한 거세된 ‘남성적 성격’을 가졌다고 말한다. 또한 소년은 거세된 남성으로서 여성을 경험하고, 여성 자신은 남성 성기의 상실에 대해 여러 가지 보상을 구하고 있다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도 똑같은 사상이 합리적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여성은 거세된 남성이 아니며, 여성의 성욕은 ‘남성적 성질’을 가진 것이 아니라 여성 특유의 것이다.

양성 간의 성적 매력은 부분적으로 긴장을 제거하려는 욕구에 그 동기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성의 극과 합일하려는 욕구이다. 사실상 색정적 매력은 결코 성적 매력에 의해서만 표현되지는 않는다. ‘성적 기능’과 마찬가지로 ‘성격’에도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있다. 남성적 성격은 침투, 지도, 활동, 훈련, 모험이라는 성질을 가진 것으로 정의된다. 여성적 성격은 생산적인 수용성受容性, 보호, 현실주의, 인내력, 어머니다움으로 정의된다. (각 개인에게는 두 성격이 혼합되어 있으나 ‘남성’ 또는 ‘여성’의 성과 관련된 것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임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프로이트 사상은 부분적으로 19세기 정신의 영향을 받았고 부분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몇 년 동안 유행한 정신을 통해 인기를 얻었다. 통속적 생각과 프로이트의 개념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빅토리아 시대의 엄격한 관습에 대한 반발을 들 수 있다. 프로이트 이론을 결정한 두 번째 요인은 자본주의 구조에 바탕을 둔 인간 개념이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중략)

프로이트의 사상은 19세기에 유행한 전형적인 유물론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사람들은 모든 정신적 현상의 근원을 생리학적 현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프로이트는 사랑, 증오, 야심, 질투 등은 여러 가지 형태의 성적 본능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프로이트는 근본적 현실은 인간 존재의 전체에 있다는 것, 곧 첫째,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인간의 상황, 둘째, 사회의 특수한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생활상의 실천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러한 유형의 유물론을 넘어서는 결정적 조치는 마르크스의 ‘유물사관唯物史觀’에 의해 취해졌고 유물사관에서는 신체나 식욕, 소유욕 등 본능이 아니라 인간의 전체적 생활 과정, 곧 인간의 ‘생활상의 실천’이 인간 이해의 열쇠가 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모든 본능적 욕구에 대한 충분하고 억압되지 않은 만족은 정신적 건강과 행복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명백한 임상적 사실을 보면 자신의 생활을 무한한 성적 만족에 바친 남자들─그리고 여자들─도 행복을 획득하지 못하고 대체로 신경증적 갈등이나 증상에 시달리고 있다. 모든 본능적 욕구에 대한 완전한 만족은 행복을 위한 기초가 아닐 뿐 아니라 정상적 정신조차 보증하지 못한다. 그러나 프로이트 사상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기에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자본주의 정신에 일어난 변화 때문이었다. 곧 자본주의 정신은 절약을 강조하는 데서 낭비의 강조로, 경제적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자기 억제로부터 끊임없이 확대되는 시장을 위한 바탕으로, 그리고 불안해하고 자동 기계화한 개인을 위한 주된 만족으로서의 소비로 변했다. 어떠한 욕망이든 충족을 지연하지 말라는 것이 모든 물질적 소비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성적 분야에서도 주류가 되었다.”


 프로이트는 “사랑을 리비도의 나타남이라고 보고 리비도는 다른 사람을 향하거나(사랑), 또는 자기 자신을 향한다(자기애)고 가정”했다. 자기애를 자아도취적 낮은 단계로만 해석한 프로이트 이론에 반박한 프롬의 지적은 옳다고 생각하지만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에 대한 그의 견해도 전통적 가부장적 해석에서 아주 벗어났다고 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사랑을 특정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태도’이자 ‘의지’로 해석하는 것에 동의한다. 프롬은 프로이트 외에도 현대 정신분석학자 H. S. Sullivan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

“설리반의 정신분석 체계에서 우리는, 프로이트 체계와는 대조적으로, 성욕과 사랑의 엄격한 구별을 발견한다.

설리반의 개념에서 사랑과 친밀감의 의미는 무엇인가? “친밀감은 두 사람을 감싸고 있는 상황의 어떤 유형으로서, 개인적 가치의 모든 구성 요소를 확인시키는 것이다. 개인적 가치의 확인에는 내가 제휴collaboration라고 부르는 관계가 필요하다. 제휴라는 말은 점점 더 동일해지는, 다시 말하면 더욱더 가까워지는 상호 만족 추구에 있어서, 그리고 점점 더 유사해가는 안전성의 효과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상대가 표명한 욕구에 대해 명백히 정식화된 방식으로 자신의 행동을 적응시키는 것을 나타낸다.

만일 우리가 설리반의 약간 까다로운 어법에 말려들지 않는다면, 사랑의 본질을 두 사람이 “우리는 자신의 명예와 우월감과 공명심을 유지하기 위해 게임의 규칙에 따르고 있다”고 느끼는 제휴 상태에서 볼 수 있다.

프로이트의 사랑 개념이 19세기 자본주의의 관점에 선 가부장적 남성의 경험을 기술한 것처럼, 설리반의 기술은 20세기 소외된 시장형 퍼스낼리티의 체험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두 사람만의 이기주의’, 곧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고 적대적이며 소외된 세계에 함께 대항하는 두 사람에 대한 기술이다. 사실상 설리반의 친밀감에 대한 정의는 원칙적으로 ‘공동 목표를 추구하는 데 상대방이 표명한 욕구에’ 모든 사람이 ‘행동을 적응시키는’ 협동적인 팀의 어떠한 감정에도 타당하다(여기서 설리반이 ‘표명한’ 욕구라고 말한 것이 적어도 두 사람 사이의 ‘표명하지 않은’ 욕구에 대한 반응을 포함하지 않고는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뜻이라면 주목할 만하다).

상호 성적 만족인 사랑과, ‘팀워크’로서 고독으로부터의 피난처인 사랑은 현대 서양 사회에서의 사랑의 붕괴, 사회적으로 유형화된 사랑의 병리학의 두 가지 ‘표준적’ 형태다. 사랑의 병리학에는 여러 가지 개별적 형태가 있지만 이것은 의식적인 괴로움에서 생기는 것이고 정신과 의사에 의해, 또한 점점 그 수효가 늘어나고 있는 비전문가들에 의해서도 신경증으로 여겨지고 있다.”


 우리는 다양한 사이비 사랑의 형태를 사랑이라 착각한다. ‘우상 숭배적 사랑’, ‘감상적 사랑’, ‘투사적 사랑’ 등 “다른 사람들의 가공적인 경험에 참여함으로써 대상적으로 사랑을 경험하든, 또는 사랑의 경험이 현재에서 과거 또는 미래로 옮겨지든, 이와 같이 추상화되고 소외된 사랑의 형태는 개인의 현실적 고통과 고독과 분리감을 완화해주는 마취제로서 작용한다.” 마치 상품처럼 가질 수 있다는 인식을 고치지 않는 한 그런 이에게 진정한 사랑은 성취될 수 없다.



📖

“우리의 세속적 생활이 의거하는 원칙은 무관심과 이기주의의 원리이다(후자는 흔히 ‘개인주의’ 또는 ‘개인의 창의創意’로 불린다). 참으로 종교적인 문화를 익힌 사람에게는 조력자로서의 아버지가 필요한데, 이를 아버지의 가르침과 원칙을 자기 생활에 받아들이기 시작한 여덟 살 난 어린아이에 비교할 수 있다.

현대인은 오히려 세 살 난 어린아이, 곧 아버지가 필요할 때는 아버지를 찾으며 울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놀이를 할 수 있는 한, 전적으로 자기만족을 느끼고 있는 어린아이와 같다.

이러한 점에서, 다시 말하면 신의 원칙에 따라 생활을 바꾸지 않고 갓난아이처럼 신인동형적 신상神像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중세의 종교적 문화보다는 오히려 우상 숭배를 하는 원시 부족에 더 가깝다. 다른 점에서, 우리의 종교적 상황은 현대의 서양 자본주의 사회에만 특유한 새로운 특징을 보이고 있다.

나는 이 책 앞부분에서 말한 것을 지적할 수 있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었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의 생명력을 퍼스낼리티 시장에서 자신의 위치와 상태를 고려하여 최고의 이익을 올려야 할 투자로서 경험하고 있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동료로부터,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현대인의 주요 목표는 자신의 기술, 지식 그리고 자기 자신, 곧 ‘인격의 패키지 상품’을 다른 사람─역시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과 공정하고 유익하게 교환하는 것이다. 인생에는 다른 게 없다. 오직 있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목표, 공정한 교환이라는 원칙, 소비한다는 만족만 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의 개념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가? 신의 개념은 본래의 종교적 의미에서 성공을 중심으로 하는 소외된 문화에만 적합한 의미로 바뀌었다. 근래 그것이 종교적으로 어떤 형태로 되살아났는가 하면, 신에 대한 신앙은 인간을 경쟁적 투쟁에 더 적합하게 만드는 심리적 책략으로 바뀌었다. 종교는 인간의 사업상의 활동에서는 인간을 돕기 위해 자기 암시 및 심리 요법과 제휴한다.”


 프롬은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요소로 ‘전 생애를 통한 훈련’, ‘정신 집중’, ‘인내’, ‘최고의 관심’을 거론했다. 또한 자아도취와 반대되는 겸손, 객관성, 이성의 발달도 사랑의 기술에 요구된다. 자본주의의 극복도 중요하다.



📖

“구두선口頭禪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종교적 이상을 수없이 되풀이하고 있지만, 우리의 관계는 기껏해야 현실적으로는 ‘공정성’의 원리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 공정성은 상품과 용역의 교환에서, 그리고 감정의 교환에서 사기와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질적 재화에서나 사랑에서나 ‘받은 만큼 준다’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보편적인 윤리적 격언이다. 공정성 윤리의 발달은 자본주의 사회의 특별한 윤리적 공헌이라고 말할 수도 있으리라.

이러한 사실의 바탕은 자본주의의 성격 자체에 있다. 전前자본주의적 사회에서 재화의 교환은 직접적인 힘이나 전통, 사랑 또는 우정이라는 개인적 유대에 의해 결정되었다. 자본주의에서 모든 일을 결정하는 요인은 시장에서의 교환이다.”▦


 프롬의 이 책은 그의 자전적 경험과 시대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가부장적 아버지와 애착적 어머니 영향에 대한 극복, 아내 헤니와의 사별과 애니스와의 사랑, 나치를 피해 도미한 사정과 냉전시대를 겪으며 정치 사회에 대한 실존적 고민 등은 그의 이전 저서에서 계속 반영되었다. 프롬은 1980년에 작고했는데, 그가 우려한 대로 이 시대는 더욱 피폐해졌다. 우리들은 사랑하는 능력을 많이 상실했다. 역자의 말처럼 “형이상학적 천착이나 종교적 설교, 도덕적 교훈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수 천년이 넘도록 많은 이들이 말하지 않았던가. 참된 자아를 찾으라고. 쉽게 얻으려 들지도 말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랑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유의 종말
제레미 리프킨 지음, 이희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몸, 재산, 인간관계, 추구하는 가치가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소유욕은 본능이지만 역설적이게도 무소유의 숙명이 ‘한 번 사는 인생 ……’ 운운하며 우리의 욕망을 부추겼는지도 모른다. 계몽주의 시대의 정치철학자 존 로크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몸, 노동, 정신 능력을 소유한다’고 주장했지만, “재산은 고정 불변의 개념이 아니라 통용되는 특정한 시대와 장소의 기호와 변덕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유동적 개념”이 되었고, 소유’보다 더 넓은 ‘접속’의 세계로 넘어오면서 우리의 존재 양상은 다른 국면을 맞게 되었다. “재산을 시장에서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능력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이다.”



📖

“재산의 역할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파급 효과는 엄청나게 크다. 근대 이후로 재산과 시장은 줄곧 동의어로 쓰였다. 실제로 자본주의 경제는 재산을 시장에서 교환한다는 발상 위에서 성립한 것이다. ‘시장’이라는 단어가 영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2세기였다. 시장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상품이나 가축을 교환할 수 있도록 마련된 물리적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8세기 말이 되면 시장이라는 용어는 공간적 지시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서 물건을 사고파는 추상적 과정을 묘사하는 데 쓰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과정에 너무나 깊이 얽혀 있어, 이제 우리는 인간사를 시장이 아닌 다른 틀로 이해한다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시장은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으로 파고들어 오는 힘이다. 우리 모두는 시장의 분위기에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시장이 잘 굴러가면 우리의 생활도 잘 굴러가는 것 같다. 시장이 건강하면 우리 마음도 밝아진다. 시장이 맥을 못 추면 우리는 상심한다. 시장은 우리 삶의 안내자이며 상담자이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새로운 경제에서는 물건이 아니라 개념, 아이디어, 이미지가 실리를 가져온다. 부는 이제 물적 자본에서 나오지 않는다. 부는 인간의 상상력과 창조력에서 나온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적 자본은 여간해서는 교환되지 않는다. 공급자는 지적 자본을 단단히 거머쥔 채 제한적으로 임대하거나 사용권을 빌려준다.

(중략)

예전에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시장의 주역이었지만 이제는 공급자와 사용자가 주역이다.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시장을 통한 거래는 줄어들고 전략적 제휴, 외부 자원의 공유, 이익 공유가 활성화된다. 기업들은 이제 서로에게 물건을 파는 것보다는 집합 자원을 공유하여 광범위한 공급자–사용자 네트워크를 통한 공동 경영을 선호한다.

경제 활동의 기본 구도가 달라짐에 따라 경제를 주도하는 기업의 성격도 당연히 달라진다. 시장이 중심이었던 시절에는 물적 자본을 많이 가진 기업이 판매자와 소비자의 상품 거래에서 주도권을 행사했다. 네트워크의 시대에는 가치 있는 지적 자본을 많이 보유한 기업이 장땡이다.”

“사유 재산이 한 인간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뜻했고 또한 ‘인간을 재는 잣대’로 오랫동안 간주되었던 세상에서, 소유의 의미가 퇴색하게 되면 인간 본성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이것이 더 중요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접속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계는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인간형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높다.”


 노동을 상품화하는 것이 산업 시대의 특징이었다면, 접속의 시대에는 문화 생산이 중요하며 놀이의 상품화가 특징이다. “제의, 예술, 축제, 사회운동, 영성 수련과 공동체 활동, 시민적 참여를 개인적 오락으로 유료화하는” 경향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여러 플랫폼에서 우리가 매일 즐거워하며 올리는 수많은 인증숏과 후기, 공유 피드를 생각해보라. 상업 영역이 서비스 중심에서 현재는 체험 중심으로 변화했다. 2050년이 되면 성인 인구의 불과 5퍼센트만으로도 기존의 산업이 운영 관리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우리의 삶은 더욱 상품화되고 공리의 영리의 경계선은 점점 허물어진 채 우리 대다수는 그저 소비자로 살아갈 것이다. 리프킨이 가장 주목하는 문제점은 ‘자본의 문화 잠식’이다.



📖

“인류 문명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문화는 줄곧 시장보다 우위에 있었다. 사람들은 공동체를 만들고 정교한 사회적 규약을 만들었다. 공유할 수 있는 의미와 가치를 재생산하고 사회적 자본의 형태로 사회적 신뢰를 구축했다. 사회적 신뢰와 사회적 교환이 어느 정도 발전한 다음에야 공동체는 비로소 상업과 교역에 뛰어들었다. 요컨대 상업 영역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서 파생되었다. 상업 영역은 언제나 문화 영역에 의존했다. 문화는 합의된 행동 기준을 낳는 원천이기 때문이다. 이 합의된 행동의 기준이 신뢰할 만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런 믿을 만한 환경 속에서 상업과 교역은 발생한다. 그런데 상업 영역이 문화 영역을 삼키기 시작하면-우리는 2부에서 이것을 자세히 분석할 것이다-상업적 관계를 낳는 사회적 토대 자체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의 적절한 균형을 회복하는 것은 어쩌면 접속의 시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어려운 과제인지도 모른다. 산업 시대에 자연 자원이 인간의 남용으로 고갈되어 버릴 위기를 맞이했던 것처럼, 문화 자원도 과도한 영리 추구로 인해 언제 고갈되어 버릴지 모른다. 상품화된 문화 체험에 점점 무게 중심이 놓이는 지구 네트워크 경제에서 문명의 생명수라 할 수 있는 풍요로운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고 끌어올릴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방법을 찾는 것이 새로운 세기의 으뜸가는 정치적 숙제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다른 산업에서 연예 산업이 조직되는 방식을 본뜨려고 애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음반업, 예술계, 텔레비전, 라디오를 아우르는 문화 산업은 물리적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경험을 상품화하고 포장하고 마케팅한다. 문화 산업이 재화로 쌓아두고 거래하는 것은, 현실을 모방한 세계와 의식을 고양시키는 세계로 잠시 접속할 수 있는 권리이다. 물건과 서비스를 상품화하던 것에서 경험 자체를 상품화하는 단계로 변모하는 글로벌 경제에서 이것은 더없이 이상적인 모델이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공급자와 사용자의 관계는 문화 기업이 그동안 관객과 맺어온 관계를 점점 닮아간다. 우리는 시간과 정신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가 상품으로 판매되는 지적 자본주의의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주고받는 물리적 상품의 제조와 거래(소유)는 특히 지리적 공간에 기반을 둔 시장에서는 여전히 우리 일상 현실의 일부로 존속하겠지만 차츰 경제 활동에서 주변적 지위로 밀려날 것이다. 경제 활동의 중심부에서는 인간의 경험이 판매되고 구입될 것이다. 소비자 개개인의 일상 경험이 무대의 순간, 극적 사건, 개인적 변신의 끝없는 연속으로 상품화되고 탈바꿈되는 새로운 시대의 선두 주자가 바로 영화 산업이다. 경제의 모든 영역이 지리적 시장에서 사이버스페이스로 이동하고 물건과 서비스의 판매에서 모든 인간 경험 영역의 상품화로 옮겨가기 시작하면 할리우드의 조직 모델은 상업 행위를 조직하는 전범으로 여겨질 것이다.”


 어떤 영화가 히트하면 너도나도 그것을 보러 가고, 모르는 건 유튜브나 위키피디아에서 찾으면서 10억 명 이상이 인터넷에 접속하고 있는 세상이지만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전화를 걸어본 경험이 없다. 이 세계는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의 격차보다 접속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격차가 더욱 크다.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 두 개의 뚜렷이 구별되는 문명 속에서 우리는 사이버 권력의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로 양분되고 있다. 요즘 뜨는 직업이 유튜버인 게 단순히 시류가 아닌 거다.

시장에서 교환할 수 있는 사유재산의 관념이 산업 시대의 근간이었고, 그것이 일상생활의 조건을 규정지으며 정치 담론을 지배, 인간의 지위를 판가름하는 잣대 노릇을 했지만, 접속의 시대는 상거래, 정치 참여의 방식, 의식 등은 네트워크 속에서 자라난다. 산업 시대에서 살았던 애덤 스미스의 경제 이론은 타인을 배제하고 재산을 모은 사람이 시장에서 승리하는 세계를 제시했지만, 네트워크 경제 시대에는 상호 관계의 네트워크 안에서 움직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규모의 경제가 속도의 경제로 바뀌면서 시장의 빠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소유하더라도 단기간 쓰고 파는 소비자에 맞춰 제품 주기는 더욱 빨라졌다. 경제 생산물의 무게가 가벼워진 만큼 우리의 소비 패턴도 빠르고 일시적이다.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4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 이상으로 전자 상거래는 성장했다. 1995년에는 불과 1,430만 명이었던 전자 상거래 이용자는 1997년 말 4천백만 명이 넘었다. 첫째도 위치, 둘째도 위치, 셋째도 위치에 달렸던 장사의 성패가 ‘지리적 시장에 기반을 둔 시대’에서 ‘사이버스페이스의 네트워크에 기반을 둔 시대’로 변화하며 부동산은 짐이 되거나 줄여야 할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예능 《골목식당》을 봐도 알 수 있듯 네트워크에서 인기를 끌면 지금의 소비자는 찾아간다. 요즘 현금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없듯이 돈도 탈물질화 추세가 진행된지 오래다. 1970년대 등장한 신용카드도 이젠 관리하기 귀찮은 물건이다. OO페이에서 어떻게 더 바뀔지 궁금할 지경이다. 비정규직도 이런 시장 변화의 수순이었다. 이제 기업에겐 물건보다 아이디어와 이미지가 성패다.



📖

“기업들이 꼽는 아웃소싱의 장점은 여러 가지이다. 첫째, 아웃소싱을 하면 기업은 돈을 버는 데 집중하고, 조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긴 하지만 수익 창출과는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는 지원 기능을 외부 지원업체에 맡길 수 있다. 둘째, 아웃소싱을 하는 기업은 해당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역량을 가진 업체로부터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셋째, 값비싼 설비를 구입하거나 기업의 수익 창출에 직결되지 않는 주변적인 업무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쓸데없는 돈을 낭비하지 않아서 좋다. 끝으로, 리스처럼 아웃소싱도 상품의 주기가 점점 짧아짐에 따라 정신없이 바뀌는 시장 상황에 기업이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해준다.…… 아웃소싱 계약은 그러나 불순한 의도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웃소싱은 경영진이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즐겨 쓰는 수단이 되었다.”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 사고파는 것은 아이디어와 이미지이다. 이런 아이디어와 이미지의 물리적 구현물은 경제 과정에서 점점 부차적 존재로 밀려난다. 산업 시대의 시장에서는 물건을 교환했다면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물리적 형태 안에 담겨 있는 개념에 접속할 수 있는 권리를 거래한다.

새로운 상행위의 저력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바로 나이키이다. 나이키는 내용으로 보아도 그렇고 추구하는 바도 그렇고 이제는 가상 회사가 되어버렸다. 일반인들은 나이키를 운동화 제조업체로 알고 있지만 사실 나이키는 정교한 마케팅 원리와 유통망을 갖춘 연구 디자인실이라고 보아야 옳다.”

“사업 방식의 체인화라는 비교적 새로운 분야와 생명과학이라는 좀더 새로운 분야는 이 점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전자는 사업 방식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앞세워 거대한 점포 네트워크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한다. 후자는 유전자 특허를 앞세워 농부에서 연구원과 보건 전문가까지 폭넓은 사용자를 아우르는 전속 네트워크를 구축한다. 이 두 가지 예는 새로운 네트워크 경제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역학 관계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물품이 점점 정보 집약화, 쌍방향화하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면서 물품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물품은 제품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진화를 거듭하는 서비스로 탈바꿈한다. (중략) 서비스에 역점을 두는 추세는 제품을 혁명적으로 설계하려는 움직임에도 반영되어 있다. 이제 기업은 제품을 고정된 특징과 일회적 사용 가치를 지닌 고정된 품목이 아니라 온갖 유형의 업그레이드와 부가 가치 서비스를 실어 보낼 수 있는 ‘플랫폼’으로 여긴다. 새로운 제조업의 풍토에서 중시되는 것은 서비스와 업그레이드이다. 플랫폼은 이런 서비스를 실어 나르는 통에 불과하다. (중략) 고객이 정말로 구입하는 것은 물품에 대한 소유권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접속권이다.”

“불과 2,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팔아서 수익을 내던 정보 기술 분야의 많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로 변신하고 있다. IBM, 제너럴 일렉트릭, 제록스, 휴렛팩커드 같은 기업들은 물리적 제품만 팔아서는 이렇다 할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알맹이를 담는 통 혹은 플랫폼을 제작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점점 싸지고 제품의 질이 거의 엇비슷해지는 상황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서비스의 형태로 고객에게 노하우를 제공하는 것이다. (중략) 제품의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물품과 서비스의 이동 영역이 날로 확대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부족한 것은 사람의 관심이지 물건이 아니다. 잠재 고객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물건을 그냥 주는 것은 마케팅 전략으로 점점 각광을 받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여러 형태의 사회조직에 의존하지 않고 대부분 시장에 의존한다. 의식주 해결은 물론 놀이, 감정의 해소, 타인의 공감과 관심도 사이버 네트워크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그 플랫폼은 상업적 네트워크이다. 리프킨을 비롯 많은 미래학자들은 이 현상이 인간의 ‘최후의 심판’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고 전망한다.



📖

“다니엘 벨을 비롯한 많은 미래학자들이 예상하지 못한 두 가지 변화 때문에 최후의 심판은 가까운 시일 안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첫째, 사유 재산 체제의 보루였던 물품 자체가 순수한 서비스로 변형되면서 소유가 사회생활의 기본을 정의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둘째, 서비스 자체의 성격도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서비스는 물품과 비슷한 취급을 받았다. 독립된 단위의 거래로 계약되었다. 하나하나의 서비스는 독립된 시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전자 상거래와 정교한 데이터 피드백 시스템이 등장하면서 서비스는 서버와 클라이언트 사이의 장기적이고 다면적인 관계로 재창조되고 있다.”



 접속의 시대에서는 ‘근면’이 아니라 ‘개인성과 창조’가 부각되며, 일은 즐겁게 버는 ‘유희’여야 한다. 최근 밀레니얼 세대 열풍으로 그들의 문화적 특징이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제러미 리프킨의 이 책을 보면 그것은 접속의 시대가 낳은 특징에 불과하다. 공유하는 문화도 미디어 시장으로 인정사정 없이 끌려 들어가 상업화되는 걸 그들은 현재 우려하고 있는가. 기업은 재능 있는 젊은 작가, 화가, 지식인을 영입해 상품을 문화적 기호로 포장하는 임무를 맡기며 소비자와 지속적 관계를 도모하고 있다. 체험 경제의 선봉장인 관광 산업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업으로 떠올랐고 우리는 그것을 누리기 바쁘다. 인류의 공동 자산인 유전자도 기업이 특허로 사유화하며 마음대로 유전자 조작을 하는 것에도 속수무책이고, 함께 누리던 공공 재산이 줄어가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권리를 얻으며 살아가고 있다.



📖

“존 로크는 자아가 개인의 사유 재산이나 마찬가지라고 우리에게 가르쳤지만, 인간 행동을 연출적 관점에서 파악하면 이제 자아는 더 이상 개인의 사유 재산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어빙 고프먼이 말한 대로 자아는 ‘그가 공유하기를 갈망하는 사람에 의해 [한 인물에게] 부여된 감각’에 가까워진다.”

“기술 혁명이 막 일어나던 무렵이었던 1970년대 중반에 이런 지적을 했다는 것은 그의 남다른 통찰력을 말해 준다. 우리는 그 혁명이 전 세계적으로 미친 여파를 지금에야 겨우 감지하고 있다.

맥퍼슨은 우리의 머릿속에 지금 들어 있는 소유 개념은 대부분 17세기와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분석을 시작한다. 맥퍼슨에 따르면 근대적 소유 개념의 첫 번째 특징은 타인을 배제하는 권리다. 우리는 이 지엄한 소유의 원칙을 너무나 맹신한 나머지 더 먼 옛날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것의 혜택을 보거나 어떤 것을 이용하는 데서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도 엄연히 소유 개념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망각했다고 맥퍼슨은 지적한다.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는 공공 소유라는 소유의 두 번째 범주를 만들어 이 안에 공원, 도시 거리, 공유지, 수로를 집어넣었다. 개인은 누구든지 이런 공공 재산을 사용하거나 향유할 수 있는 데서 배제당하지 않을 법적 권리를 보장받았다. 사유 재산과 공공 재산이라는 소유의 두 형태는 사회의 모든 성원이 개별적으로 누리는 재산권의 일부분이었다. 사유 재산은 타인을 배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했고, 공유 재산은 타인으로부터 배제당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했다.

그러나 근대로 넘어오면서 공유 재산은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고 맥퍼슨은 말한다. 공공재라는 관념은 정부에 남아 있고 공유 재산이 무엇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지만 모든 개인에게 포함의 권리와 배제의 권리를 동시에 보장하는 이중 소유 체제가 엄연히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러미 리프킨은 기계적 세계관에 바탕을 둔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에너지의 낭비가 가져올 재앙을 경고한 『엔트로피』(1980)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노동의 종말』(1995)은 정보화 사회로 일자리를 잃게 될 현대인에게 경고를 보냈다면 『소유의 종말』(2000)은 그러한 접속이 우리의 일상과 인류 문화를 휩쓸고 있는 실상에 대한 경고다. 이 책을 쓰는 데 꼬박 6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350권의 책과 1천 여편의 논문, 5만장의 색인 카드와 약 2천 개의 주석을 동원한 역량을 독서하는 내내 실감할 수 있었다. 그의 세계 동향 분석은 어떤 분석가보다 포괄적이다. ‘지리적 공간에 뿌리를 둔 문화적 다양성을 지켜나가는 것만이 인간의 문명과 건강한 공존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라는 한 문장으로 이 책을 설명하기엔 방대한 정보가 있다. 리뷰로 많은 걸 전달하려 했지만 직접 읽어야 이 책의 저력을 실감할 것이다.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답답하고 적절한 해석을 원하는 독자라면 일독해야 할 책이다. 코로나19를 겪는 지금도 그렇지만 점점 더 네트워크 접속의 문화가 정교해질 걸로 예상되는데 우리는 또 어떻게 변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레코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1년 7월
평점 :
품절


블렌딩보다 역시 싱글 원두가 좋다는 걸 알게 해주는 예가체프. 예가체프 맛의 비결인 벌집 모양 구조가 깨지지 않게 굵게 갈고, 일정하게 물을 돌려주며 2분~ 2분 40초 안에 추출을 끝내야 가장 맛있는 맛이 나온대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버 2020-11-27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샀는데 말씀하신대로 해봐야겠어요~ 정보 감사합니다^^♡

AgalmA 2020-11-28 18:23   좋아요 1 | URL
제가 평소 내리던 것에 비해 추출 시간이 짧은 편이었는데 확실히 이렇게 내리니까 예가체프 특유의 꽃향기가 살아나서 좋더라고요. 님도 맛있게 드시길^^
 

 

 

 

 

🌟내가 산 책

무라카미 하루키 『일인칭 단수』(2020, 문학동네)

하루키의 이전 작품들은 대부분 섭렵했어요. 아직 읽지 않은 소설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2013, 민음사) 뿐.

이번 신간 소설집 사며 2021 하루키 다이어리(1,000원), 하루키 유리컵_LP 코스터 세트(4,000원)를 받았... 샀다고 해야?

독립 서점에 입고되는 표지(동네책방 에디션)와 다른데 저는 일반 서점 용이 더 맘에 듭니다^^ 하루키 굿즈도 많이 가질 수 있고🤭🤭💦 컵은 지금도 너무 많지만ㅜㅜ 레코드 코스터 때문에 산 건데 만족스러워요. 다이어리는 겉표지가 보들보들해서 촉감 좋고 책같이 생겼어요ㅎ 매일 정성스레 기록을 남긴다면 나만의 책이 완성될 듯. 하루 한 페이지씩 배분되어 있는데 칸이 많지 않아 뭔가 명문장을 남겨야만 할 거 같은😅 1일 독서 기록장도 좋겠죠.

이 책 오는 동안 『고양이를 버리다』(2020, 문학동네)도 다 읽었고(배송 기다리기 싫어 e book으로 샀는데 일러스트가 맘에 들어 짧은 분량 용서해 준다!), 또 즐겁게 하루키 월드로 go go~


 

하루키는, 언제나 그렇듯 하루키 맛이 납니다ㅎㅎ


"열아홉 살 무렵의 나는 내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거의 알지 못했고, 당연히 타인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래도 기쁨이나 슬픔이 뭔지는 대충 알고 있다고 내 딴은 생각했었다. 다만 기쁨과 슬픔 사이에 있는 수많은 현상을, 그것들의 위치관계를 아직 잘 분간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종종 나를 몹시 불안하고 무력하게 만들었다."

_ 단편 「돌베개에」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 『천 개의 고원』(2001, 새물결)

무엇이든 보통 사람보다 과하게 소장하고 있다면, 그는 죄책감보다 소유욕에 더 휩쓸리고 있는 겁니다. 그런 반성과 함께 더 쾌적하게 읽고 싶은 저는 옛날 책 팔고 새 책으로 교환 완료. 계속 사겠단 소리냐!

 

레몽 크노 책이 모이고 있다.

『문체 연습』(2020, 문학동네)은 손바닥 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시소설이라고 해야 하나. 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시인들이 자주 이런 문체죠. 아무튼 재밌어요. 때가 잘 묻고 빨리 낡는 크라프트 재질 겉표지 안 좋아하는데(신영복 선생님 책이 주로 이랬음😑)...

 

레몽 크노 『떡갈나무와 개』(2020, 민음사)는 성장담을 운문 소설로 표현하는 발상은 좋지만 독서 쾌감을 주지는 않아 실망 중. 즐겁게 만족하며 읽을 독자는 많지 않을 듯; 그럼에도 『문체 연습』도 사고 말았죠.

 

 

 

 

 

사뮈엘 베케트 『동반자 / 잘 못 보이고 잘 못 말해진 / 최악을 향하여 / 떨림』(2018, 워크룸프레스)

베케트 선집 모으는 목표점으로 슬슬 도달.

마음이 공허할 때 시집도 그렇지만 베케트도 자주 찾게 되는데 왜 일까? 이럴 땐 유재하도 자주 찾아 들어요.

 

 

 

 

* 그 외 11월 구매한 책 - 이 달은 문학동네와 문학과지성사 책을 주로 구매했구만🤓

안태운『산책하는 사람에게』(2020, 문학과지성사)

 

 

임승유『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2020, 문학과지성사)

 

한유주 『숨』(2020, 틈창작문고 13, 문학실험실)

에이드리언 리치 『공통언어를 향한 꿈』(2020, 민음사)

- 《악스트 Axt 》(2020.11.12, no.033) 에서 에이드리언 리치 내용을 읽고 궁금했습니다. 민음북클럽 가을 온라인 패밀리데이에서 사려고 했더니 더 싸게 중고 도서가 똭~🤗

앙드레 지드 『코리동』(2008, 베가북스)

- 서로 사랑하겠다는데 동성애가 뭐 어쨌다고 난리야~~ E.M. 포스터 『모리스』랑 비교해 보고 싶어요.

비에른 베르예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2019, 흐름출판)

메릴린 스트래선 『부분적인 연결들』(2019, 오월의봄)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2020, 와이즈베리) 

- 나만의 '올해의 책' 리스트를 정리 중에 샌델 신간이 나와서 서둘러 구매. 기대만큼 좋더군요.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 아니오. 능력주의 사고방식 아래 성공과 실패를 재단하는 성과주의 자본주의와 현대 사회의 부작용을 심도 깊게 알아봅시다. 토드 로즈 『평균의 종말』이나 『오늘부터의 세계』에서 장하준 교수의 일갈을 호응하며 읽었던 분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내용입니다. 번역도 잘 되어 시원시원하게 읽힙니다.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보자 싶은 분들에게 연말 유익한 독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추천~

추천사들이 책 진입에 흥미를 더합니다^^

 


"이제 더 이상 능력주의를 완벽하게 실천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능력주의가 가진 장점의 시효는 다했다고 분석한다. 이 책의 상당부분은 능력주의 정책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하는 범법적 방해사례(특히 대학 입학 관련한)를 많이 인용하여 실감을 높여준다.

그러나 정작 샌델이 심혈을 기울여 이야기하고 있는 부분은 ‘실천적 문제’보다는 ‘심리적 측면’이다. 그는 능력주의가 과도해지면서 능력과 도덕 판단력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능력으로 편을 가르고, 한 편이 성과를 독점하면서, 능력과 성과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계급이 생기고, 이를 세습화하기 위한 범법적 시도가 출현하고, 이를 독차지한 사람들의 오만이 극치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탈락한 사람들은 부의 상실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잃고 굴욕감을 갖게 되어, 이것이 심화되면서 사회적·정치적 긴장을 유발하게 된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의 근원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능력주의는 사실 철학과 신학의 역사와 뿌리를 같이 한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이데올로기로 채택되어 현재의 세계질서를 구축하는 데 기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샌델은 이를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 서울대 명예교수 문용린

 

 

 

 

 

 

 

 

 

 

 

 

 

 

 

 

 

 

 

 

 

 

 

 

 

 

팀 오브라이언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2020, 섬과달)을 저는 올해의 소설 top 1으로 선정할 생각이에요. 그의 소설이 또 나와『카차토를 찾아서』는 종이책으로 주문😆🥰😊

와와~ 어서 읽고 싶다!!!

 

 





이런저런 책 비교

어느 『어린 왕자』와 이별하지🤔?  e book도 여러 권 가지고 있어서 정리를 좀 하고 싶었습니다.

알라딘 서점 『어린 왕자』 열린책들 리커버 특별판(2020)은 현재 품절입니다. 그림과 글이 눈에 확 들어오는 가독성, 휴대성, 아기자기함은 리커버가 참 좋은데... 그렇다면...

 

 

 

 

 

 

수전 팔루디 『다크룸』(2020, 아르테)

팔루디 부녀의 가족 서사와 헝가리 역사, 유대인 박해, 국가, 정치, 사회, 젠더 등 다방면을 아우르느라 전개가 지루한 감도 있지만 읽을만한 가치는 있어요. 케이트 본스타인『젠더 무법자』에서 제가 미처 읽어내지 못한 맥락도 짚어줬죠.

정체성은 우리가 획득하고픈 판타지.

올 초에 읽다가 분량 때문에 밀렸는데, '올해의 책' 평가를 위해 부랴부랴 다시 읽은 책 중 하나죠^^; 발등에 불 떨어져야 끝을 보는 내 습관을 어째야 하지;;;

벽돌책이라 e book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전자책은 정말 편해요~ 내게 전자책은 5G 속도. 아이패드 에어 4 크기가 좀 부담스럽긴 하군요😅 아이패드 미니는 크레마 사운드랑 비슷한 크기라 답답해 안 산 건데... 한국 독서 인구 생각하면 킨들 한국판은 어렵것지😔

 

 

 

 

 

 

적어도 위선은 아닌 : 루이-페르디낭 셀린 『 Y 교수와의 대담』vs『제멜바이스 / Y 교수와의 인터뷰』

 

 

적당한 발화는 어느 정도를 말하는 걸까요. 아무나 맘껏 떠드는 게 난무하는 온라인 세상이라도 다른 사람 말이 못 견디게 그리운 경우는 산속에서 홀로 1주일 이상 지낸 사람 정도 아닐까 싶어요. 코로나19 격리 중이라도 전 안 그럴 거 같지만 사람에 따라서겠죠. 웹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떠들면 떠들수록 더 떠들고 싶고 남이 떠드는 것도 퍽 궁금해하는 것 같거든요. 궁금해하지 않았던 것까지도 알게 되는 일이 다반사. 오죽하면 '안물안궁'이란 말까지 나왔겠어요. 하지만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면 사람들이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는 일은 없었겠죠.

대개 우리는 말보다 먹는 게 더 그립죠. 전혀 안 궁금하겠지만 저는 어제부터 먹고 싶던 DUNKIN 도넛을 샀어요. 제 주변엔 DUNKIN 매장이 딱 한 군데 있는데 주인이 불친절해서 가기 꺼려지지만 도넛이 먹고 싶다! DUNKIN으로! 때문에 사소한 언짢음은 무시하는 거야! 하고 갔어요. 제가 갈 때만 주인이 있는 건지 왜 많고 많은 상냥한 아르바이트생을 여기선 볼 수 없는 건지 늘 아쉬웠죠. 저도 감정 노동하기 싫으니까 상대에게 바라지도 않지만 늘 냉기가 도는 건 좀. 주인은 계산대에서 자기 일을 하느라 제가 고른 것을 살가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즉시 포장해 줄 제스처가 아니었어요. 이럴 거면 셀프 포장대를 만들어 달라! 하여간 우리는 서부의 총잡이처럼 한참 뜸을 들였고 기다리다 못한 제가 포장을 요청하자 주인은 자신은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 포장을 해줬어요. 아, 여긴 되도록 오고 싶지 않다, 그 생각을 하며 나왔지요. 그러거나 말거나 오랜만에 먹는 DUNKIN은 여전히 맛있었어요😭

미드 《DEXTER》에서 덱스터는 출근하면서 도넛을 한 아름 사서 직장 동료에게 나눠줬죠. 자신의 냉정한 치부를 숨기기 위한 방편으로요. 동료 형사 독스는 알아챘죠. 그에겐 모종의 꿍꿍이가 있고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그런다는 것을.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는 대인 관계를 위해 서로에게 호의를 베풀고, 받는 사람도 어느 정도 다 알면서 기분 좋게 받아주죠. 언젠가 당신에게 신세 질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포섭도 있고. 원주민 부족 사이의 포틀래치(선물경제)처럼 이 교환 활동은 인류의 오랜 관습입니다. 요즘 한국 정치, 사회는 도를 넘어선 로비로 자주 포착되지만(하룻밤 유흥비 5천만 원...), 사람 관계에서 호의는 결코 나쁜 게 아닙니다. 자선과 구호라는 적극적 행위까지 가지 않더라도. 보통 사람이라면 타인에게 호감을 얻고 싶어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그의 양면성의 갭이 얼마나 크냐 인 거죠. 주변에 자잘한 친절을 베풀면서 뒤에서는 가공할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그의 친절은 소급되어 혐오로 낙인찍힙니다. 작가도 정치인도 인간으로서의 모습과 외부 정체성의 모습 사이에 갭이 크면 즉각 입방아에 오르게 되죠. 요즘 미투 운동이 가장 극명히 보여주고 있고요.

프랑스 문단에서 신랄한 입담으로 이단아 작가로 여겨졌던 루이-페르디낭 셀린은 적어도 이중적인 작가는 아니었다고 봐요. 셀린의 『 Y 교수와의 대담』(2016, 읻다출판사)을 읽으면, 말하고 싶은 대로 떠들어도 이렇게 스타일리시 하다니 감탄하게 됩니다. 매우 시끄러운 문체이지만 매력적이고 논리적입니다. 프랑수아 라블레만큼. 셀린은 자신의 문체를 토글 단추나 자전거용 2단 기어 같은 문체라고 말하지요ㅎ 프랑스 작가 군은 참 다양한데 이런 요란한(?) 달변가를 만나면 즐겁죠. 읽는 내내 맞장구 미소가 지어집니다.

1950년대 프랑스에서도 사람들이 책 안 사고 허접한 책만 읽는다고 개탄을ㅎㅎ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주우우욱이는데!˝ 연발하고요ㅎ

사람들이 걱정하는 문제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듯해요.

워크룸프레스에서 나온 『제멜바이스 / Y 교수와의 인터뷰』보다 번역이 좀 더 정갈하게 읽힙니다. 주석이 많은데 각 책이 겹치지 않아 셀린에게 관심이 많다면 둘 다 읽어보는 게 좋습니다. 한 권만 읽는다면 읻다출판사에서 나온 걸 추천하고 싶지만, 읻다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종이책 품절이고 e book만 있는 실정이고, 워크룸프레스는 「제멜바이스」와 여러 부록을 살펴볼 수 있는 특색이 있습니다.

 

 

 

 

 

 

 

 

 

 

 

 

 

 

걸으며 책읽기 - 책광욕

산책 나갈 때 돈은 안 들고 가도 책 한 권은 꼭 품고 나갑니다. 걷는 템포에 따라 읽기 좋은 시집이 적격이죠. 요즘은 5시만 되어도 볕이 훅 줄어들어서 오늘 치 볕을 못 받았다 싶으면 맘이 급해집니다. 어서 나가야 돼! 햇볕 좋은 곳에 잠시 앉아 바람을 느끼고 볕을 쬐며 책 읽으면 힘들이지 않고 기분 전환이 됩니다. 일명 책광욕이라고ㅎ 이런 데서 휴대폰 들여다보고 있는 건 멋없어.

오늘도 그런 자리를 만났습니다.

 

다른 때와 다른 루트로 공원을 돌아다녔는데 기이한 광경을 만났습니다.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의자들이 아치형으로 둘러 있는데, 너대니얼 호손의 단편 속에 나오는 종교적인 비밀 회합에 퍽 어울릴 풍경이었어요.

여기 용도는 뭘까, 한참 빙빙 둘러봤습니다. 인민재판이나 자아비판을 하기에도 적당하지 않은 장소고, 공연을 하기에도 협소합니다.

여기서 야외 독서 모임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ㅎㅎ 낭독도 하고.

이런 풍경을 만나면 태초부터 변하지 않는 인간의 습성을 생각합니다. 공동체, 소통, 위계, 어울림... 상반된 성격의 돌과 나무가 함께 공존하듯이.

 

 

 

길목마다 부스러진 낙엽이 산속 모래알로 돌아가는 계절, 가을 낙엽은 너무나 사랑스러웠어요.

뮤리얼 루카이저 『어둠의 속도』(2020, 봄날의 책)와 어울렸고, 이런 시집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책을 산 나를 칭찬하고도 싶고ㅎ

 

 

 

 

뜻밖의 고생 - 팔고 사고 중고 좋아해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도 아니고 나는 중고책 좋아하세요? 하고 있네. 궁색 맞게 이게 뭐야😂😂😂

가을 독서 바람이 불어서 그랬는지 10월엔 중고책 주문이 폭발적이어서 한숨의 세레나데였죠. 요 며칠 또 하루에 1~2건씩 처리하고 있는데, 오늘도 집에 오자마자 중고 주문된 책 찾아 밑줄 긋기 지우고 쓸고 닦고 하며 책 손질 어언 1시간째... 휘유.

밑줄 긋기 안 한 책 사주면 정말 고마울 텐데....

왜 이런 고생을 하냐고요? 책 중고 판매 등록할 때 책 상태 설명이나 사진 첨부를 하지만 받는 분 생각해서 최대한 깨끗하게 보내는 게 좋죠. 저도 도서관에서 밑줄 그은 책 보면 싫었던 것처럼. 책 받은 분이 기분 좋게 바로 독서에 들어가도록 마음 쓰는 것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예의겠죠. 연필 없는 상황일 땐 볼펜도 썼는데 중고책 팔다 보니 아예 근절이에요ㅎㅎ; 귀퉁이 접는 것도 근절😂 내 책인데도 참 조심스러운 상황ㅎㅎ 이건 안 팔 거야 하는 책이라도 습관이 돼서 그냥 조심히 보게 돼요. 요즘은 밑줄 긋기, 메모는 하지 않고 북마크 같은 책 액세서리를 적극 활용합니다. 책쟁이들의 이런 고충을 파악했던지 알라딘이 북마크 종류를 엄청 판매하기 시작ㅎㅎ









※ 내가 책을 파는 이유(질문 주신 분이 있어서 생각도 정리)

1. 네임드 있는 작가나 유명한 책은 도서관에서 빌리기 쉬우므로 이미 읽은 책이라면 처분합니다. 단 지속적으로 읽을거리가 많은, 삼독 이상 할 의향이 있으면 보류하고요.

2. 번역이 맘에 안 드는 책도 팝니다. 요즘은 개역판, 다른 번역으로 나오는 경우가 잦아 그럴 가능성 있는 책은 팝니다. 번역본일수록 초판은 큰 의미 없죠. 

3. e book으로 더 자주 읽을 거 같은 책은 종이책 팔고 e book으로 바꿉니다. 주석이 많고 까다로운 책은 제외. 두 권 다 다지고 있는 경우도 왕왕^^

4. 낡아서 새 책으로 교체해 소장하고플 때 팝니다. 5~6년만 지나도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색되거든요.

5. 묶음 배송으로 주문되어 한 권만 취소하기 난감할 때(이 책이 메인 주문이다 싶은 경우) 울며 겨자 먹기로 보낼 때도 있습니다ㅜㅜ

​11월 11일, 빼빼로데이 안중에도 없어요. 사무실에 가서 얻어먹으면 그런가 보다 합니다. 제 머릿속 이 책, 저 책 골목을 걷기 바쁩니다.

안녕, 신형철

안녕, 하루키

안녕히 가세요, 신영복 선생님

안녕, 쿤데라

 

 

 

 

 

 

 

무라카미 하루키 『장수고양이의 비밀』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생각난 김에 올해 중고 판매 운송장을 세어 보니 136장. 적어도 160권 이상 처리! 한 거 같아요. 그래도 부족하죠. 공간이!

민음사가 벽돌책의 고충을 아는지 e book도 출시해 주었는데, 자크 데리다 『그라마톨로지』는 이러면 안 사겠지 싶어 정가에 가깝게 올려놨는데 계속 주문 와서 아예 품목에서 내려버렸습니다. 읽지도 않은 새 책이라고ㅜㅜ; 그래서 읽기 시작. 번역가 김성도 씨 노력이 어마어마했습니다. 데리다 부인이 번역 허가에 힘 실어주지 않았다면 이 책이 못 나왔을 수도. 주석이 느무느무 귀찮지만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읽힙니다. 아아, 벽돌 책 끼고 이 계절 편안히 살고 싶어라.

 

오늘 도착한 중고책 비에른 베르예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들>은 아주 깨끗한 상태였습니다. 자기 인장까지 찍고 포스트잇 플래그를 초반에 붙여 가며 읽다가 취향 아니셔서 팔아버리신 듯😅 그럼 다음으로 제가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11월 알라딘 굿즈

♧ 2021 알라딘 탁상 일력 사라질까 봐 냉큼 구매. 올해 잘 썼던 큰 크기의 벽걸이 & 탁상달력 좋았는데 이 콘셉트 없어서 섭섭합니다. 작은 건 한 장씩 찢어야 되잖아😭😢 아까워😥😭

 

 

♧ 2021 알라딘 미니 다이어리

왔어요, 왔어요~ 2021 다이어리 장만의 계절이 왔어요.

 

가방 짐을 덜려니 다이어리 부피도 줄이고 싶었어요. 원래는 롤 마스킹 달력으로 알라딘 미니 노트를 꾸며보고 싶었으나 주간 스케줄도 따로 만들어야 하는 등 귀찮은... 그래서 미니 다이어리로 간편하게 가기로. 365일 데일리 다이어리라 알라딘 미니 노트보다 좀 두껍지만 사이즈는 동일합니다. 평소 들고 다니는 알라딘 더블 포켓 파우치에도 쏙^^ 왜 작년처럼 블랙 셜록으로 내지 않았는가! 불만이었다가 자주 볼 물건인데 밝은 색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해요. 내년은 다이어리 색깔 따라 핑크빛이길...💗

 

 

 

 

• 오프라인 알라딘 중고 서점 - 허탕, 이런 날도 있지

 

최상급 판정을 받아도 팔 책은 재고 많다고 퇴짜 당하고ㅜㅜ

살 책은 없어 알라딘 굿즈 구경만 실컷.

2021 알라딘 다이어리 장만하고 싶은 분은 굳이 5만 원 채우는데 골몰 말고 중고 서점에서 1만 원어치만 사고 다이어리 20% 할인받는 것도 현명한 선택 같아요.

실제로 보니 위클리 다이어리로 빨강 머리 앤 에이번리(핑크), 데님이 예뻤어요. 소프트 PU, 피너츠 보라색은 별로였고요.

도리언 그레이 수면 양말 찜~

어린 왕자 마스크 스트랩 찜~

가로형 인덱스 메모지 찜~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나 2020-11-27 1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 달도 잘 읽고 가요. 뭔가 이달의 책처럼 잡지처럼 구독하는 느낌인데 사랑의 댓글밖에 드릴 것이 없네.. 추워서 그런지 좀 묵직한 책 읽고 싶어졌는데 여러권 힌트 얻어가요! 12월도 핑크핑크하시길...💗

AgalmA 2020-11-27 19:20   좋아요 2 | URL
저도 묵직한 책들 속에 느긋이 읽고 싶은데 여유가 없네요ㅠㅠ 다음달 정리하고 페이스를 좀 바꿔봐야겠어요.
과연 핑크핑크일지....휴.
하나 님도 몸과 마음 건강 잘 챙기시고요/

scott 2020-11-27 2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agalma님 페이퍼 볼때 마다 감탄 하나님 댓글 처럼 책잡지 +굿즈 열람 구독하는 것 처럼 읽고 있어요.
죠기 하루키 유리컵 안깨지고 배달이 잘되었네요 ㅎㅎ
다이어리 싸게 사는 팁까지 ㅎㅎ
알라딘은 agalma님에게 구디백(1년동안 인기였던 굿즈 잔뜩 넣고) 같은것 줘야 합니다.

AgalmA 2020-11-28 17:54   좋아요 1 | URL
책을 많이 사다보니 덩달아 굿즈도 많이 사게 되었죠^^;; 이왕 가지고 있는 거 이런저런 정보 공유를 하면 좋지 않겠나 싶어 올리기 시작했는데, 도움이 되신다면 다행이죠!
맞아요. 컵 굿즈는 파손될까봐 늘 조마조마 하죠. 5번의 1번은 파손 상황이 생기다보니 더... 유리컵이 특히 그렇죠. 무사히 와서 다행이었어요.
굿즈왕국 알라딘은 이제 연말에 블랙프라이데이 굿즈 럭키백 해도 될 거 같아요ㅋㅋ

페크(pek0501) 2020-11-29 13: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 섬세함이라니... 감탄 감탄!!! 재밌게 구경했어요.
사야 할 책이 있는데 참고 12월을 기다리고 있어요. 왠지 12월엔 사은품이 다양할 것 같아서...
마일리지 차감이라도 해야죠. 탁상 달력을 갖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ㅋㅋ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을 꼭 살꼬예요.

AgalmA 2020-11-29 18:27   좋아요 2 | URL
12월엔 어떤 굿즈판이 벌어질지 저도 기대됩니다ㅎㅎ
마이클 샌델 사시면서 탁상 달력을 겟?
알라디너는 굿즈 가족^ㅋ^

scott 2020-11-29 13: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agalmaA님 페이퍼 보고 몇개 골라 놨어요. 한정판 양말에 눈독을 @ㅅ@

AgalmA 2020-11-29 18:29   좋아요 1 | URL
양말은 한정판이 아니라 일반 판매 품목이라 마음 급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ㅎ
알라딘 일반 양말은 그냥 그런데, 수면 양말 많이 써봤지만 알라딘 수면 양말은 폭신하고 따뜻해서 애정합니다 >_<)ㅇ!
 
[eBook] 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래된 맛집을 가면 메뉴가 단출하다. 자신 있는 시그니처 메뉴 몇 가지로 승부를 건다. 한국 사람들이 된장찌개, 김치찌개, 김치를 평생 즐겨 먹듯이 작가들도 평생 집중하는 주제나 소재들이 있다. 김치만 해도 응용할 게 많다. 볶음김치, 김치찌개, 김치전, 두부김치, 김치만두 등등 변형해 다양한 맛을 음미한다. 하루키처럼 재료가 변함없는 작가도 드물다. 하루키 (미식) 마니아들은 같은 재료로 만든 요리를 질려 하기는커녕 코드를 발견한 마냥 애호한다. 『여자 없는 남자들』 단편집은 그의 단골 '그녀와 그'들이 등장한다. 첫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부터 아내의 외도와 죽음이라 하루키가 이제 ‘아내’ 소재와 이별하기 위해 마지막 파티를 벌이는 걸까 했다. 아내의 외도로 인한 방황과 깊은 상처는 「기도」에서도 그로테스크하게 펼쳐진다. 이 방황은 장편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이혼을 요구받은 화가의 상황과도 닮았다. 「예스터데이」는 친구와 그의 아름다운 여자 친구에 끼여 난처했던 주인공의 '응답하라~' 시절 후일담으로, 마찬가지 비틀스 노래를 제목을 썼던 『노르웨이의 숲』에서 기즈키와 나오코 사이에 있던 와타나베 토오루의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독특한 캐릭터 기타루가 기즈키처럼 자살할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끝이 암울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독립기관」은 하루키가 소설에서 자주 설정하는 캐릭터ㅡ비밀스럽고 고급스러운 라이프 스타일을 지녔고 매력적인 바람둥이 향취를 풀풀 풍기지만 한 여자만을 사랑한 순애보이기도 해서 비극적으로 죽는ㅡ 개츠비 유형의 안타까운 죽음을 그렸다.

 

 

*

내적인 굴곡이나 고뇌가 너무도 부족한 탓에, 그 몫만큼 놀랍도록 기교적인 인생을 걷게 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 수는 그리 많지는 않지만 우연한 기회에 눈에 띄곤 한다. 도카이 의사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 같은 사람들은 굴곡진 주위 세계에 (말하자면) 올곧은 자신을 끼워 맞춰 살아가기 위해 많든 적든 저마다 조정 작업을 요구받게 되는데, 대부분 본인은 자신이 얼마나 번거로운 기교를 부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숨기는 것도 없고 꾸미는 것도 없이 있는 그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어디선가 꽂혀들어온 특별한 햇빛을 받아 그들이 자기 삶의 인공성을, 혹은 비자연성을 퍼뜩 깨달았을 때, 사태는 때로는 비통하고 또한 때로는 희극적인 국면을 맞이한다. 물론 죽을 때까지 그런 빛을 목도하지 않는, 혹은 목도하더라도 딱히 별다른 느낌을 받지 않는 축복받은(이라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사람들도 허다하게 존재하지만.

 

- 「독립기관」

 

 

「셰에라자드」는 하루키가 즐겨 쓰는 ‘감금’ 상태의 판타지가 펼쳐진다. 『1Q84』에서 아오마메가 아파트에 숨어 도움을 받던 상황을 변조해 더 펼쳐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셰에라자드」의 그는 모종의 이유로 도피해 숨어 있고, 도우미로 찾아오는 하바라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이 단편에 이 책의 주제를 알려주는 문장이 있다.

 

*

그는 모든 자유를 빼앗기고 그 결과 셰에라자드뿐 아니라 다른 모든 여자에게서 멀어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도 크다. 그렇게 되면 이제 두 번 다시 그녀들의 젖은 몸속에 들어갈 수 없다. 그 몸의 미묘한 떨림을 느낄 수도 없다. 하지만 하바라에게 무엇보다 힘겨운 것은, 성행위 그 자체보다 오히려 그녀들과 친밀한 시간을 공유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셰에라자드는 그에게 그것을 넉넉히, 그야말로 무한정 내주었다. 그 사실이, 그리고 그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잃게 되리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그를 슬프게 했다.

- 「셰에라자드」

 

 

하루키가 소설 속에서 내내 그렸고, 가질 수도 영원할 수도 없는 상실의 매개는 ‘여성’이 대표적이다. 하루키 소설 속 그녀들은 대부분 당차고 남성 캐릭터보다 독립적이다. 그녀들이 외로움을 성욕으로 풀려고 하는 방법은 하루키의 남성적 접근의 한계 같아 좀 아쉽지만. 「사랑하는 잠자」는 카프카 『변신』을 오마주 했다. 그가 즐겨 쓰는 리틀 피플(난쟁이, 척추장애인) 형 여성 캐릭터가 계엄령 상황에서 열쇠 수리공으로 잠자의 집을 방문한다. 바깥 상황을 전혀 모르는 순진한 잠자는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고 발기하고 만다. 아아, 늘 이렇다니까. 「여자 없는 남자」는 하루키의 작품을 비방할 때 주로 등장하는 ‘중2병’ 스타일의 나약하고 낭만적 성향의 남성 캐릭터 재등장이다. 100% 완벽한 소녀를 만나고 그 기억을 간직하고자 하는 남자들 말이다. 하지만 이 특징은 되돌릴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이 잃고 마는 우리의 순수와 감수성에 대한 회한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

내가 여기서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사실이 아닌 본질을 쓰고 싶은 것이리라. 하지만 사실이 아닌 본질을 쓰는 일이란 달의 뒷면에서 누군가와 만나기로 약속하는 일과 다름없다. 캄캄하고 표지로 삼을 만한 것도 없다. 게다가 너무 넓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무튼 엠은 내가 열네 살 때 사랑에 빠졌어야 하는 여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은 한참 나중 일이고, 그때 그녀는 (유감스럽게도) 이미 열네 살이 아니었다. 우리는 만남의 시기를 착각했던 것이다. 만나기로 한 날짜를 착각하듯이. 시간과 장소는 맞다. 하지만 날짜가 틀렸다.

그러나 엠 안에도 아직 열네 살의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 소녀는 하나의 총체로서 ㅡ 결코 부분으로서가 아니라 ㅡ 그녀 안에 존재했다.

 

- 「여자 없는 남자」

 

 

 

또, 또, 또냐, 구시렁대며 읽지만, 하루키가 읽어내는 인간의 외로움과 딜레마는 언제나 독자 내면을 거울처럼 비추니 우리는 그의 최면술에 빠져들고 만다. 그래서 나도 이 소설집을 읽었다. 그리고 6년 만에 나오는 신간 소설집 『일인칭 단수』도 바로 주문;; 목차를 보니『일인칭 단수』 구성도 『여자 없는 남자들』 과 비슷해 보였다. 소설을 읽는다기보다 이젠 그와 우리가 어떤 식으로 변화해가는지 함께 경험해가는 기분.

 

 

*

“뭐라고 해야 좋을까. 일단 진지하게 연기를 시작하면 그만둘 계기를 찾기가 어려워. 아무리 정신적으로 힘들다 해도, 그 연기의 의미가 마땅한 형태를 이루기 전에는 흐름을 멈출 수가 없거든. 음악이 어떤 특정한 화음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올바른 결말을 맞을 수 없는 것처럼…… 

- 「드라이브 마이 카」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0-11-24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11-27 18:1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