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안나 카레니나 2 펭귄클래식 12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윤새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2년 3월
평점 :
판매중지


톨스토이의 아내는 레빈이 불가능한 인물이라고 했지만, 2부를 읽으니 안나의 남편 카레닌이 더 불가능한 인물로 보이네ㅎㅎ
2권 후반부에 가서야 톨스토이 의도ㅡ오블론스키의 외도, 셰르바츠카야 가족, 키티와 레빈의 설정ㅡ가 정확히 잡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화가 미하일로프 같은 인물이 과연 필요했는가? 레빈의 결혼 같은 감동적 순간이 있었지만 온갖 것을 말하고 싶어하는 톨스토이 때문에 너무 루즈한 이야기 전개가 된다는 게 1권에 이어 계속되는 실망이다. 톨스토이가 뛰어난 장편 소설가라는 생각은 안 든다. 도스토옙스키에 비해서도!

6.
‘이렇게 사람들이 미치는 거로구나.’ 그가 거듭 말했다. ‘이래서 자살을 하는 거구나······. 창피하지 않기 위해서.’ 그는 천천히 말을 덧붙였다.

브론스키는 문으로 가서 문을 잠갔다. 그리고 시선을 고정하고 이를 악물고는 책상으로 다가가 권총을 꺼내 살펴본 후에 자물쇠를 풀고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숙이고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약 이 분간 권총을 손에 들고 미동도 없이 서서 생각했다. ‘물론이지.’ 그는 흡사 논리적이고 연속적이며 명확한 추론 과정을 통해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결론에 이른 것처럼 말했다. 하지만 그가 확실하다고 여긴 ‘물론이지’란 말은 단지 족히 열 번은 되풀이해 회상하고 연상한 결과에 지나지 않았다.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 행복의 기억도 마찬가지였고 인생이 허망하다는 생각도 그랬다. 이러한 생각과 감정의 순서도 마찬가지였다.

‘물론이지.’ 세 번째로 그의 생각이 예의 홀린 듯한 기억과 사고의 회로를 향하자 그가 반복해 말했다. 그리고 권총을 가슴 왼편에 대고는 갑자기 주먹을 쥐려는 듯 손아귀 전체에 경련을 일으키더니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그는 총이 발사되는 소리를 듣지는 못했지만 가슴을 치는 강한 일격에 휘청거렸다. 책상 가장자리를 잡으려 했으나 권총을 떨어뜨리고 휘청대다가 주위를 놀란 눈으로 둘러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는 아래에서 올려다 보이는 책상의 휜 다리며 종이 담는 바구니, 호랑이 가죽 등을 쳐다보면서도 자기 방을 알아보지 못했다.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재빨리 응접실을 따라 다가오는 하인의 발소리 덕분에 정신이 들었다. 생각하려고 애쓴 결과 자신이 방바닥에 앉아 있음을 깨달았고 호랑이 가죽과 자기 손에 묻은 피를 보고서야 자신이 총을 쏘았음을 알아차렸다.

8.
‘안나는 브론스키와 살림을 차리겠지만 이 년쯤 지나면 그가 그녀를 버리거나 그녀가 새 남자를 찾을 것이다.’ 카레닌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면 나는, 비합법적인 이혼에 동의해 준 나는 그녀를 파멸시켰다는 죄를 저지르는 셈이다.’ 이런 생각을 수백 번은 하고 나서 그는 이혼 건이 처남이 말하는 것처럼 아주 쉽기는커녕 절대 가능하지 않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오블론스키가 하는 말은 하나도 믿지 않았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반론을 펼 수 있었지만 그저 듣기만 했다. 자신의 말에는 그의 인생을 조종하고 복종해야만 하는 광포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9.
"그러니까," 학교를 다닐 때 체득한 습관대로 말을 길게 잡아 끌면서 카타바소프가 말했다. "우리의 벗인 콘스탄틴 레빈은 정말 유능했답니다. 저는 지금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없거든요. 대학을 졸업할 때는 학문을 사랑하고 인간 문제에 관심이 있더니만, 이제 그의 반쪽은 자신을 기만하는 데 쓰고 다른 반쪽은 그 기만을 정당화하는 데 쓰고 있단 말입니다."

"결혼의 적으로 치자면 당신보다 더한 사람을 본 적이 없군요." 코즈니셰프가 말했다.

"아닙니다. 저는 결혼의 적이 아닙니다. 저는 노동의 분배에 찬성합니다. 아무 일도 못 하는 사람은 사람이라도 만들어야지요.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힘을 모아 그들이 깨치고 행복해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게 제가 이해하는 바입니다. 많은 망상가가 이 두 가지 일을 혼동하지요. 저는 그런 족속이 아닙니다."2)

"자네가 사랑에 빠지면 정말 기쁠 걸세!" 레빈이 말했다. "그렇게 되면 꼭 나를 결혼식에 부르게."

"난 벌써 사랑에 빠졌는걸."

"응, 오징어 말이지. 형, 있잖아요." 레빈이 형에게 말을 걸었다. "미하일 세묘니치는 영양 섭취에 관해 글을 쓴답니다. 그리고······."

"아니, 혼동하지 마십시오! 아무려나 상관없습니다만 문제는 제가 정말 오징어를 사랑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자네가 아내를 사랑할 수 없는 건 아니잖나."

"하지만 아내가 방해를 하지."

"왜?"

"이제 두고 보게. 자네는 농사짓는 걸 좋아하고 사냥을 좋아하지. 하지만 이제 두고 보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왜 제목이 <안나와 레빈>이 아닌가!
2권에서도 레빈이 분량 반을 차지하는데^^;
레빈만 나오면 이광수 농촌 계몽소설 분위기;;;

1.
"유럽에서 자생하는 숲과 닮아 보이게 하려고 자작나무를 꽂지만 난 그런 자작나무에 기쁜 마음으로 물을 주거나 믿을 수가 없어요!"

코즈니셰프는 그저 어깨를 들썩거림으로써 그들의 논쟁에 왜 자작나무가 등장했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뜻을 표했다. 하지만 아우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바로 이해했다.

"잠깐만. 이 일을 그렇게 재단해서는 안 된단다." 그가 지적했다.

그러나 콘스탄틴 레빈은 스스로 인정해 버린 결점, 즉 공공선에 대한 무관심을 정당화하고 싶었기에 말을 계속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콘스탄틴이 말했다. "개인의 이해관계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면 그 어떤 활동도 견고하지 않아요. 이건 일반적인 진실, 철학적인 진실이에요." 그는 ‘철학적’이라는 단어를 힘주어 반복했는데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처럼 철학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다는 걸 과시하려는 투였다.

코즈니셰프는 다시 한 번 빙그레 웃었다. ‘아우에게도 자신의 취향을 떠받치는 모종의 철학이 있군그래.’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철학은 놔두렴." 그가 말했다. "역사를 통틀어 철학의 주된 과제가 바로 사익과 공익의 필연적인 관계를 찾아내는 것 아니니. 그렇지만 핵심은 이게 아니야. 핵심은 내가 너의 비유를 정정해야 한다는 거지. 자작나무는 꽂은 게 아니라 씨앗을 뿌려 심은 거란다. 그러니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해. 중요한 제도를 존중하고 아끼며 역사를 가지고 있는 민족에만 미래가 있단다."

3.
"그때는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했지만 어쨌거나 행복은 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지금 느끼기에는 가장 큰 행복이 이미 뒤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 보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나쁜 쪽으로 변해 있었다. 살이 많이 쪘고, 여배우 얘기를 할 때는 악한 표정이 떠올라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꽃의 아름다움에 끌려 꽃을 꺾어 죽여버리고 그 꽃에서 예전 아름다움을 좀처럼 찾아보지 못하는 사람처럼, 자신이 꺾은 후 시들어가는 꽃을 보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사랑이 더 강렬했을 때에는 만일 강력히 원하기만 한다면 이 사랑을 마음에서 떼어내 버릴 수 있었을 테지만, 그녀에 대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듯한 이 순간에는 그녀와의 관계를 끊어버릴 수 없음을 알았다."

4.
"그래, 그리고 죽음에 대한 생각을 그만둔 건 아닐세." 레빈이 말했다. "정말이지 죽을 때가 됐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하릴없다고 보고. 자네에게 사실대로 얘기하지. 난 내 사상과 일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여기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네도 이걸 생각해 보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전부, 사실은 작은 행성에 돋아난 조그만 곰팡이에 지나지 않는 거야. 그런데 우리는 우리에게 사상이며 사업 같은 대단한 게 있다고 생각하지. 실은 다 모래알에 불과한데 말이야."

"그렇지만 이보게, 그건 이 세계처럼 진부하고 오래된 얘기야!"

"오래됐지, 하지만 그걸 명확히 이해하면 갑자기 모든 것이 부질없어진다는 말일세. 오늘이나 내일 죽는다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이 부질없지 않나! 내 사상을 무척 중요하게 여긴다 해도, 설사 그 사상을 실현한다 해도 부질없단 말일세. 이 곰을 잡듯이 말이지. 그러니 사냥이나 일을 즐기며 사는 거야,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오블론스키는 레빈의 말을 들으며 희미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5.
"의무는 권리와 결부되어 있으니까요. 권력, 돈, 명예, 여자들도 그걸 추구하는 겁니다." 페스초프가 말했다.

"어쨌거나 이건 뭐 내가 유모가 될 권리를 추구하는데 여자에게는 보수를 주고 내게는 안 주려 한다고 화를 내는 꼴이겠구려." 노공작이 말했다.

투롭친이 큰 소리로 웃어댔고 코즈니셰프는 그 말을 자기가 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심지어는 카레닌까지도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남자는 젖을 먹이지 못하지요." 페스초프가 말했다. "반면 여자는······."

"그렇지 않소. 한 영국인 남자는 배에서 자기 아이를 먹여 키웠다오." 노공작이 딸들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자유를 마다하지 않고 말했다.
"그런 영국인 남자 수만큼 여성 관리도 생기겠지요." 코즈니셰프가 말했다.

"그렇군요. 그런데 가정이 없는 여자는 대체 어떻게 하지요?" 오블론스키는 줄곧 치비소바를 염두에 두고 페스초프에 동조하며 그를 지지하고 있었는데 이런 질문을 던지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연을 잘 들여다보면 그 여자가 자기 가정이나 언니네 가정을 내박친 걸 알게 될 거예요. 거기서 여자가 할 일을 찾을 수 있었는데도 말이죠." 예기치 않게 대화에 끼어들며 돌리가 가시 돋친 말투로 말했다. 오블론스키가 어떤 여자를 염두에 두고 말하는지 짐작한 눈치였다.

"우리는 원칙을, 이상을 지지하는 겁니다!" 쩌렁쩌렁 울리는 저음으로 페스초프가 반박했다. "여자는 독립할 권리, 그리고 교육받을 권리를 갖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런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에 주눅 들고 상심하고 있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보육원에서 유모를 하고 싶은데 안 받아줘서, 그래서 주눅 들고 상심하고 있다네." 다시금 노공작이 말했고 이 말에 투롭친은 크게 웃다가 아스파라거스의 통통한 끝 부분을 소스에 떨어뜨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러시아 문학이 빠져 있어서 아쉬운데 이번 편은 ‘유럽 문학‘으로 기획된 거 같고, 차후 속편에 러시아 쪽이 다뤄지지 않을까 싶다. 속편 번역 계획이 있긴 있는 거죠?!?!


신기하게도, 우리는 책을 읽을 수 없습니다. 다시 읽을 수 있을 뿐입니다. 훌륭한 독자, 중요한 독자, 활동적이고 창의적인 독자는 책을 다시 읽는 사람입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경 2019-11-0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문학 강의는 12년도에 이미 을유에서 번역되어 나왔습니다. 현재는 절판이지만요... 이번 역서는 세계문학 강의 모음(사실상 유럽문학론)을 번역한 걸로 보입니다.

AgalmA 2019-11-03 12:22   좋아요 0 | URL
네, 알고 있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신이 경멸했던 남편 카레닌과 마찬가지로 안나의 불행은 어긋난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위선과 기만을 보지 못했다는 점. 톨스토이가 그래서 키티 캐릭터를 배치했군.


6.
브론스키의 연애는 도시 전체에 알려졌고(그와 카레니나의 관계를 모두가 어느 정도는 추측하고 있었다), 젊은 사람들 대부분은 그를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연애의 가장 어려운 점, 즉 카레닌의 높은 지위로 인해 그 관계가 사교계의 주목을 받는다는 점 때문이었다.
안나를 ‘정숙하다고 부르는 데’ 이미 오래전부터 지겨워하며 질시해 온 젊은 여자들은 그들의 짐작이 사실로 드러나자 기뻐하면서 이제 그녀에 대한 사회의 의견이 변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를 엄중히 모멸하려고, 때가 되면 던질 진흙덩이를 벌써 준비해 두었다. 나이 든 사람들과 지체 높은 사람들은 다가오는 사교계의 스캔들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브론스키의 어머니는 아들의 연애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만족스러워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이해하기에 상류층 사교계에서 일어나는 연애 사건처럼 젊은 호남의 매력을 완성시켜 주는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아들 얘기만 늘어놓던, 그녀 마음에 꼭 들었던 카레니나가 결국은 다른 아름답고 단정한(브론스키 백작부인이 이해하기에) 여자들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이 단지 연대에 남아 있기 위해, 그래야 카레니나와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출세에 중요한 자리를 거절했다는 사실, 그리고 이 일이 높은 자리에 앉은 명사들의 심기를 건드렸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된 후로 그녀는 견해를 바꾸었다. 또한 그녀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이 관계에 대해 알게 된 바로 볼 때, 이건 그녀가 격려할 만한 멋지고 조화로운 사교계의 연애가 아니라 베르테르적인 절망적인 정열이어서 사람들 말로는 그를 어리석은 행동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7.
지난 팔 년간 아내와 행복하게 사는 동안 외도하는 여자들과 배신당한 남편들을 보면서 카레닌은 몇 번이나 이렇게 생각했는지 모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놔두는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왜 해결하지 않는 것인가?’ 그런데 막상 재앙이 자기 머리 위에 떨어지자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지 생각하긴커녕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너무나 끔찍하고 너무나 부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8.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이 위선이었거든요.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이 아니라 머리로 생각해 낸 일이었거든요. 타인이 나한테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러니 내가 싸움의 원인이 되고, 아무도 내게 부탁하지 않은 일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러니 이 모든 것이 위선인 거죠! 위선이에요! 위선······!"

"무슨 목적으로 그런 거죠?" 바렌카가 조용히 물었다.

"아, 정말 멍청한 짓이에요. 역겨워요! 내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는데······. 모든 것이 다 위선이에요!" 양산을 폈다 접었다 하며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왜 그랬느냐고요?"

"사람들 앞에서, 나 자신에게, 또 하느님 앞에서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요. 모든 사람을 속이고 싶어서요. 아니, 이제 더 이상은 거기 넘어가지 않겠어요! 나쁜 사람이 될 거예요. 그래도 그게 거짓은 아니잖아요. 위선자는 아니잖아요!"

"대체 누가 위선자라는 거죠?" 꾸짖는 투로 바렌카가 말했다. "지금 당신은 마치······."

9.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옴으로써 키티가 살아온 세상 전체가 달라졌다. 깨달은 것과 절연하지는 않았지만 키티는 그동안 되고 싶은 대로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자신을 기만했음을 알게 되었다. 그건 마치 눈을 뜨게 된 것과도 같았다. 그녀가 다다르고 싶어 했던 그 높은 경지에서 위선과 자만심 없이 계속 머무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았다. 그 외에도 키티는 이 고통의 세계,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세계가 주는 하중을 느끼게 되었다. 그 세계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힘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펭귄 클래식 고전문학 시리즈의 장점은 양질의 서문을 읽고 작품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
5시간 반 정도에 1권의 반 읽었다. 한 권 읽는데 12시간 걸리니 완독은 5~6일 정도 걸리겠다. 3권짜리 장편은 늘 이 정도 걸리는 듯.『전쟁과 평화』보다 읽기 쉬워서 다행.
1부 18단락 안나와 브론스키 첫 만남까지 정말 지루했다. 남들이 극찬해도 톨스토이의 세세한 서술은 정말 내 취향 아님-_-








1.
타인과의 다툼에서 우리는 수사법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우리 자신과의 다툼에서는 시를 빚어낸다.
(W. B. 예이츠)
ㅡ 리처드 피비어 (서문)「톨스토이의 첫 번째, 그리고 진정한 장편소설」

2.
『안나 카레니나』 강의록에서 나보코프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아이를 둔 기혼부부는 신성한 계율로 영원히 결합된다고 톨스토이는 본다." 그의 소설은 의도에 따른 시대착오적 발상이며, 러시아 니힐리스트들의 사상에 대한 예술적, 사상적 도전으로 계획되었던 것이다.
ㅡ 리처드 피비어 (서문)「톨스토이의 첫 번째, 그리고 진정한 장편소설」

3.
톨스토이의 소설에는 중립지대가 없다. 그의 글쓰기는 미하일 바흐친의 표현을 빌자면 ‘날카로운 내적 대화주의로 특징짓는다.’ 그 뜻은 톨스토이가 자신이 제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에 대한 자기 태도를 둘러싸고 인물들 간에, 또 독자들이 취할 만한 태도까지도 매 순간 의식한다는 말이다. 그는 자신이 묘사하는 세계, 그리고 묘사를 읽을 독자와 계속해서 내적 논쟁을 벌인다. 바흐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 두 가지 (거의 대부분 논쟁적 어조를 띠는) 대화화를 글 양식 안에 단단하게 짜 넣는다. 가장 ‘시적’인 표현에서도, 또 가장 ‘서사적’인 묘사에서도 그렇다." 그처럼 서로 다른 태도가 은연중에 충돌함으로써 우리는 톨스토이의 글에 즉각적으로 주목하게 된다. 그저 무관심하게 물러나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ㅡ 리처드 피비어 (서문)「톨스토이의 첫 번째, 그리고 진정한 장편소설」

4.
톨스토이는 작품을 완성하기 직전까지도 남편이 이혼을 해주고 그래서 아내가 애인과 결혼하게 할 구상이었다. 결국 이단아들은 사회에서 거부되고 오로지 니힐리스트 사이에서만 환영을 받게 될 것이었다. 소설의 완전히 다른 측면, 다시 말해 레빈과 키티 이야기는 초기 원고에는 없었다. 셰르바츠키 가족도 없고 오블론스키 가족도 거의 등장하지 않으며, 오르딘체프라 불렸다가 레닌이라고도 불린 레빈은 부차적 인물에 불과했다.
.
.
(중략)
.
.
레빈은 당신이군요, 료바. 재능만 없을 뿐이지." 소피야 안드레예브나가 『안나 카레니나』 1부를 읽고 남편에게 한 말이다.(그리고 그녀는 "레빈은 불가능한 남자예요!"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톨스토이가 자신의 개성을 주인공들에게 많이 부여하기는 했지만 그중 레빈이 톨스토이에 가장 가깝다.
ㅡ 리처드 피비어 (서문)「톨스토이의 첫 번째, 그리고 진정한 장편소설」

5.
톨스토이의 친구 중에는 라친스키라는 편집자이자 교육자가 있었는데 그는 톨스토이에게 『안나 카레니나』에 구성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두 가지의 ‘테마’가 참으로 근사하게 나란히 전개되지만 그 사이에 관계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의 비판에 톨스토이는 1878년 1월 27일자 편지를 통해 흥미로운 답을 내놓았다.

"『안나 카레니나』에 대한 당신의 판단은 내가 보기에 틀렸소. 반대로 나는 내 소설의 구성이 몹시 자랑스럽다오. 그러나 아치 천장은 쐐기돌이 안 보이게 짜 맞춰져 있지요. 내 노력의 대부분은 거기에 들어갔소. 구성의 응집력은 플롯이나 인물들 관계(만남)에 있지 않소. 그건 내적 응집력이라오······. 잘 보시오. 그러면 찾을 수 있을 거요."

그로부터 이 년여 전 스트라호프에게 쓴 편지에서 톨스토이는 이미 그 은닉된 응집력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내가 쓴 모든 것, 혹은 거의 모든 것은 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 서로 긴밀히 연결된 생각들을 묶어내려는 필요성에 따라 움직인 결과다. 그러나 말로 표현된 각각의 생각은 그 주위의 연결망에서 떼어내면 심하게 피폐해지고 의미를 상실한다. 그 망 자체는 생각이 아니라(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른 무엇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그 망의 본질을 말로 표현하기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건 간접적으로만, 즉 말을 이용해 인물이나 행동, 상황을 묘사하는 정도로만 가능하다."

이게 아마도 톨스토이가 자신의 예술관을 가장 완벽하게 정의한 말일 것이다.
ㅡ 리처드 피비어 (서문)「톨스토이의 첫 번째, 그리고 진정한 장편소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추풍오장원 2019-12-10 1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펭귄 클래식 서문들 정말 좋죠. 위대한 개츠비 펭귄판 서문도 정말 명 평론입니다.

AgalmA 2019-12-11 21:38   좋아요 0 | URL
예, 다 좋죠, 펭귄클래식 전집을 ebook으로 다 가지고 있어서 자주 보는데 <공산당 선언>, <감정교육> 다 좋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