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이윤 옮김 / 필로소픽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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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소리의 본질을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이라고 본다.
비트겐슈타인과 그의 러시아어 개인 교사였던 파니아 파스칼의 일화는 다각도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파스칼은 요양원에 있을 때 문병 온 비트겐슈타인에게 ˝마치 차에 치인 개가 된 느낌이에요˝라고 말했다가 ˝당신은 차에 치인 개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 수 없소. ˝라는 말을 들었다. 앓는 소리를 조금 과장한 것에 대단히 매정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지만 비트겐슈타인에겐 사소하지 않았다. 저자는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을 가정해 파스칼의 말이 ‘진실에 대한 무관심과 생각 없음‘, ‘다른 누군가에게서 얻은 묘사로 별생각 없이 그리고 사태가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고려없는 되풀이‘였기 때문에 비난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비트겐슈타인의 기준으로 표현해야 한다면 우리 말들은 대부분 개소리다. 인사치레와 중구난방 쌓인 지식과 어디서 들은 소문과 관용어와 추측과 비유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면 침묵하란 지침으로 산다면 세상살이가 참 벅찰 거다. ˝좋은 봄날이죠? ˝하는 인사에 ˝강릉 기타 등등 지금 여기저기 불 나서 난리인데 무슨 좋은 날 타령입니까? ˝대답한다고 해서 이 말의 진실성을 긍정할 수만도 없다. 각자 판단하는 진실의 방향, 말하는 방법, 감정 조율, 문해력, 문장력, 인과적 해석 등을 총동원해 제대로 말을 하자고 들면 우린 입을 떼기 어렵다.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반은 알고 반은 모르는 모호한 개소리 함정에 즉각 빠지기 쉽다. 아무리 많은 지식을 습득해도 개소리 기술이 더 고급할지 몰라도 이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개소리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자신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데도 말하기를 요구받는 경우가 그렇다. 따라서 어떤 주제에 대해 말할 기회나 의무들이 화자가 가진 그 주제와 관련된 사실에 대한 지식을 넘어설 때마다 개소리의 생산은 활발해진다. 이 불일치는 특히 공인의 삶에서 일반적이다. ˝


공인의 삶뿐만이 아니다. SNS, 각종 커뮤니티, 블로그 등을 통해 일반인들의 개소리들도 적잖이 노출되고 있다.
진실이 중요하다 강조하지만 개인의 자유, 발언권의 범위가 넓어질수록 세상은 큰 비난을 받을 거짓말, 불쾌함을 주는 개소리로 더 어지러운 거 같다. 오염된 언론, 가짜 뉴스, 조작된 인터넷 글 때문에 믿을만한 정보 찾기도 힘들다. 거짓말쟁이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치밀히 설계해 실행하고, 거짓말보다 덜 분석적이고 덜 정교한 개소리들은 진실이 뭐든 자기 목적에 맞도록 소재들을 선택하고 가공하며 무한히 증식한다. 보통 진실을 유일한 어떤 것이라는 통념으로 볼 때 이 무차별한 협공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파스칼의 저 예처럼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처럼 극도의 정확성을 추구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더 큰 문제는 정확히 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저자가 진단한 ‘진실과 기만 양쪽 모두에 대한 노력의 포기 아니면 계속되는 개소리‘라는 회의적 결말 외에 더 나은 것은 없나.

 

˝말하는 사람의 입맛에 맞는 것 외에는 어떤 것에도 신경을 쓰지 않고 마구 주장하는 개소리 행위에 과도하게 탐닉하다 보면, 사태의 진상에 주의를 기울이는 정상적 습관은 약화되거나 잃어버리게 된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과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같은 게임 속에서 반대편으로 활동한다. 그들 각각은 자신들이 이해하는 사실에 반응한다. 비록 한쪽의 반응은 진리의 권위에 저항하며 그 요구에 맞추기를 거부하지만 말이다. 개소리쟁이는 이러한 요구를 모두 무시한다. 그는 거짓말쟁이와는 달리 진리의 권위를 부정하지도, 그것에 맞서지도 않는다. 개소리쟁이는 진리의 권위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다. 이 점 때문에, 개소리는 거짓말쟁이보다 훨씬 더 큰 진리의 적이다.
사실을 전달하거나 은폐하려는 사람은 실제로 어떤 식으로든 확정적이고 인식할 수 있는 사실이 있다고 가정한다. 진실을 말하거나 거짓말을 하는데 그가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사물을 잘못 이해하는 것과 올바로 이해하는 것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며, 적어도 때로는 그 차이를 구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어떤 진술이 참이고 어떤 진술이 거짓인지를 규명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더 이상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직 두 가지 대안만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진실을 말하려는 노력과 기만하려는 노력 모두를 그만두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에 대한 어떠한 주장도 내세우기를 삼간다는 뜻이다. 두 번째 대안은 상황이 어떠한지를 기술하려는 주장, 그러나 개소리 밖에는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주장을 계속하는 것이다. ˝



저자는 회의적인 두 가지 대안을 말했지만 사실상 한 가지다. 진실을 말하려는 쪽도 기만하려는 쪽도 현실적으로 그만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무소유조차 주장이 되는 구조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밤낮없이 말하는 장이기도 하다. 거리에 나가서 많은 사람들이 진실이라 생각하는 성경이나 불경을 크게 읽고 있어보라. 얼마 되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잘못하고 있다는 눈총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객관적 실재에 접근할 수 있는 어떤 신뢰할 만한 방법을 가질 수˝ 없다고 간주하는 회의주의도 개소리 확산의 원천이다. 우리는 완벽한 ˝정확성correctness˝을 얻지 못하게 되자 ˝진정성sincerity˝이란 규율에 매달린다. 공동 세계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으니 자기를 정직하게 충실히 전달해 무엇을 이뤄보겠다는 대안인데, 우리는 진리 파악, 자신에 대한 옳은 기술은 고사하고 정작 자신 자체에 대해서도 정확히 모른다. ˝진정성˝을 강조할수록 그에게서 거짓과 개소리를 보려는 시선과 입들이 똥파리처럼 몰려드는 것을 막을 수도 없다.
절망스럽게도 개소리가 메아리로 돌아오지 않는 세상은 적어도 지구에는 없는 것 같다. 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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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8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5-08 17:47   좋아요 2 | URL
아, 드디어 내일이네요. 과연 개소리 좀 줄어 들까요. 그럴 리 없겠지...
매일매일 정말 징글징글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5-08 18: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 거짓말쟁이가 목적을 가진 살인자라면, 개소리쟁이(?)는 사이코패스라는 생각이 들어요..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파 르펜을 막아낸 듯 하지만, 세계적으로 개구라꾼들이 세력을 얻고 있으니... 어지러운 세상입니다..(무슨 삼국지 게임 오프닝 멘트같이 되었네요 ㅋ)

AgalmA 2017-05-08 18:35   좋아요 3 | URL
살인자와 사이코패스 비유 적절하십니다^^b
개소리쟁이, 개구라꾼 자꾸 발음하다 보니 저는 그저 ˝개굴˝하고 싶네요ㅜㅜ 개구라 떠느니 개구리처럼 울자 싶어서...

희선 2017-05-10 0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에도 개소리라는 게 있나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헛소리나 허튼소리보다 낫기는 하네요 지금은 인터넷 때문에 많은 사람이 별거 아닌 말을 하겠죠 실제 하지 않고 그걸로 마음을 푸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건 괜찮겠지만,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런 말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희선

AgalmA 2017-05-11 15:57   좋아요 0 | URL
맥스 블랙 [협잡의 만연] 정의에 따르면, 협잡humbug, 허튼소리balderdash, 쓸데없는 말claptrap, 말도 안 되는 얘기hokum, 실없는 소리drivel, 헛소리buncombe, 사기imposture, 엉터리quackery 등 다양한 구분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개˝를 접두어로 붙여 활용하듯 ˝불bull˝도 그런 셈이죠.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쓰인 단어 ˝bullshit˝은 ‘개소리‘로 번역되는 게 타당하죠.

언어는 전염성이 강해서 특정 틀이나 단어에 천착하게 되면 그 자장에 갇히게 됩니다. 욕을 쓰면 당장엔 속시원할 지 모르나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괴물이 되는 것과 비슷하게 되죠. 한국의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미러링‘이 도를 넘어서게 되자 메갈로 공격받듯이.
대부분 자신이 쓰는 언어에 대한 책임을 너무 간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 괴로운 상황을 만들고 있죠.


AgalmA 2017-05-12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며칠 정의당발 시끄러운 뉴스. 정의당을 ‘강간 당한 여성‘에 비유한 이광수 정의당 공동선대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흑마술 저주를 하겠다고 으름장. 이런 사람이 교수씩이나 하다니... 비트겐슈타인한테 얻어터질 ‘개소리‘ 생산자. 당신은 ˝강간 당한 여성이 어떤지 알 수 없소!˝
http://m.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301428&ref=www.google.co.kr

자신을 제대로 세울 생각은 않고 타인에 대한 협잡으로 가득하니 정의당은 날이 갈수록 회생 희망이 없어 안타깝다.
 
지능의 탄생 - RNA에서 인공지능까지
이대열 지음 / 바다출판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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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데닛 등 몇몇 분석가들은 인간의 뇌를 컴퓨터의 작동 원리로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데카르트가 인간의 뇌를 물의 흐름에 따라 음악을 연주하기도 하고 스스로 움직이기도 하는 물 분수에 비유했던 것이나, 프로이트가 뇌를 증기기관에 비교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는 뇌를 우리가 가진 가장 복잡하고 정밀한 기계인 컴퓨터에 비유˝한다. 즉 우리는 뇌를 판단 가능한 한계 내에서만 말할 수 있다. 저자는 뇌와 컴퓨터의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의 유전자에 대한 분석이 많아질수록 인간의 자유의지도 인간 진화 프로그램의 일환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우리를 낱낱으로 쪼개고 분석해보며 근원성을 찾고 있는데 깊이 파고 들어갈수록 역설을 만나게 된다. 마치 들뢰즈가 분석한 플라톤《소피스테스Sophiste상황처럼 말이다. 서양 철학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플라톤적 사유는 분류하고 선별하는 깊이와 체계를 보여준다.《소피스테스Sophiste》에서 플라톤은 거짓된 주장자(소피스트)를 몰아세우기 위해 환영의 존재를 정의하려 드는데, 환영을 파들어 갈수록 ˝환영이란 단순하게 거짓된 사본이 아니라 오히려 사본과..... 모델의 개념 자체를 의문시한 것임을˝(질 들뢰즈 논문 ˝플라톤주의를 뒤집다(환영들), 1966, 《의미의 논리》에도 수록됨)˝ 발견하게 된다. 이런 복잡함을 낳는 우리의 지능은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지능을 ‘다양한 환경에서 복잡한 의사결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정의했다. 이를 컴퓨터 용어로 다시 바꿔 쓰면 ‘자신(하드웨어)이 처한 환경에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소프트웨어)를 선택하는 능력이라고 쓸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또한 프로그램이다. 즉, 컴퓨터가 지능을 가지려면 프로그램을 선택하는 메타-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이다.˝


1977년 화성 탐사에 최초로 투입된 인공지능 로버 ‘소저너 호‘는 인공 지능의 진화과정과 한계를 보여주는 예였다. 화성에 도착한 지 80여 일 만에 건전지 고장으로 무용지물이 된 상태인데,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서 필요한 영양분(에너지)을 확보하고 안전하게 이동해 가는‘ 지능의 기본적인 조건이 발달되지 못한 걸 보여줬다. 2003년에 더 개선된 인공지능 로버 ‘스피릿 호와 오퍼튜니티 호‘가, 2012년에 ‘큐리오시티‘가 투입되었는데 스스로 탐사 가능한 자율적 의사결정 프로그램이 더 강화되었다. 앞으로 눈여겨볼 문제는 인공지능이 사회적인 의사소통과 물리적 협동이 가능한 진화를 보여줄 수 있을지, 자기복제를 목표로 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하는 점이다.


 


주체를 보존하는 자기복제를 하는 기계(생물 포함)는 DNA와 같은 자기 복제 과정 물질을 가지고 있으며, 세 가지 특성(유전, 변환과 제거를 하는 신진대사, 진화)을 가진다. 복사본이 원본과 원본의 정확한 복사본을 밀어내고 진화에서 더 잘 살아남을 수도 있다는 가설에서 또다시 플라톤의 ‘환영‘ 역설 상황을 떠올렸다. 신경세포가 화석에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진화 추측은 어렵지만 현존하는 동물들의 DNA 분석을 보면 우리의 조상 개념은 아주 한정적인 틀이라 생각된다. 6억 년 정도에 등장한 해면동물에서 시작해서 해파리와 같은 자포동물이 등장하고 캄브리아기(5억 4천만 년 전~2천만 년 전까지)에 현존하는 동물들의 원형이 등장했다. 절지동물, 선충류, 연체동물, 환형동물, 척추동물을 포함한 척색동물은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 우리는 병뚜껑을 여는 문어를 신기하게 생각하지만 그들과 우리는 유전자가 학습을 거치며 자신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제어하는 지능을 가진 공통 진화체이다. 또한 짝짓기나 ˝대부분의 동물들이 단 음식을 뿌리치지 못하거나 뜨거운 물건을 만지지 못하는 것, 고약한 냄새가 나는 물건을 피하는 것 같은 반사처럼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유전자에 의해서 미리 정해진 행동˝을 하는 공통점도 있다. 고전적 조건화*와 기구적 조건화** 등 많은 학습을 통해 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한 인류가 지구를 지배하게 됐지만 말이다.
* 고전적 조건화: 자극과 반응을 통해 학습하는 과정, 파블로프 실험이 대표적
**기구적 조건화: 특정한 행동과 그 결과 사이에 존재하는 연결고리를 신속하게 학습하는 과정, 스키너 상자가 대표적

지능을 담는 는 다음 구조 속에서 진화해왔다.
RNA로 시작한 생명체가 유전자와 단백질을 도입하고 더욱 복잡한 구조를 가진 생명체로 진화하면서 유전정보를 저장하는 DNA와 촉매로 작용하는 단백질 사이에서 역할 분담이 일어났다. 세포막으로 주위 환경에서 자신을 보호하며 다세포 생명체로 진화해가며 개체를 보호하고 이동시키며 산소와 영양분을 운반하는 일을 세포들이 분담한다.
유전자와 효소의 역할을 혼자 다 소화해내는 RNA 생명체인 단세포 생명체와 달리, 구조와 기능을 갖춘 세포들이 그에 필요한 단백질을 모으고 제어하는 다세포 생명체는 그 자체가 인간 사회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또 아미노산 순서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비암호화된non-coding DNA‘는 우주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암흑물질과 닮았다. 그 기능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런 기능이 없다고 생각해 ‘쓰레기junk DNA‘라고 불렀지만 그것은 암호 부위의 DNA에서 단백질의 양을 결정하는 조절요소로서 세포의 기능을 제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인간의 뇌가 학습과 기억을 분류하는 방법으로 다른 동물과 가장 큰 차이는 ‘언어‘다. 동물들에게 구글과 트위터가 없는 게 그 증거다. 그게 없어도 그들에겐 그들 나름의 좋은 삶이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뇌에서 일화적 기억을 형성하는 일은 ‘해마‘가, 절차적 학습은 ‘기저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뇌간에 있는 ‘도파민‘ 세포들은 뇌의 거의 모든 영역에 축삭돌기를 뻗치고 있으며 동기와 학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운동장애를 동반하는 파킨슨병은 뇌간의 도파민 신경세포들이 죽어가기 때문에 생기는 병이고, 코카인이나 메타암페타민 같은 약물이 중독성을 가지는 것은 뇌 안에 도파민의 농도를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 울프람 슐츠는 뇌간에 있는 도파민 신경세포들의 활동이 보상예측오류에 관한 신호를 뇌의 여러 부위에 광범위하게 퍼뜨린다는 것을 발견했다. 해마가 손상된 환자들은 미래에 대한 상상 능력이 저하되어 있다.


우리의 뇌는 끝없는 학습 상태에 있다. 어느 길로 가는 게 빠를까 생각하는 ‘심적 시뮬레이션‘ 과정을 거치는 ‘유식한 강화 학습‘, 면도나 청소 등 매일 반복하는 ‘무식한 강화 학습‘ 등을 통해 과거에 습득한 지식을 적절하게 수정하는 일을 계속한다. 강화 학습 이론에 따르면 ‘후회‘와 ‘안도‘와 ‘반추‘는 ‘유식한 강화 학습‘에 해당되고, ‘득의‘와 ‘실망‘은 ‘무식한 강화 학습‘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보상예측오류값이 양의 값인지 음의 값인지에 따른 개념이다. 유식한 강화 학습을 잠시도 멈출 수 없는 우리의 속성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후회하게 된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다-_- 안와전두피질을 포함하는 전전두피질은 인간의 뇌에서 가장 앞쪽 부위에 해당하는 영역으로, 감정이나 사고와 같이 비교적 고등한 심리과정에 관여하는데, 안와전두피질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은 후회하는 능력을 잃는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의 사회적 의사결정 중 인간이 협동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 ‘복수심‘과 밀접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인간이 집단을 형성하고 삶을 꾸리게 되면서 변절자를 처벌하는 전략은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선택한 상대방을 처벌하는 ˝이타적 처벌˝을 통해 우리는 만족감을 얻는다. ˝실제로 이타적 처벌을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의 뇌를 뇌 영상기법으로 촬영해보면 보상과 효용에 관련된 정보를 처리하는 기저핵 일부에서 활성이 증가˝한다.
사회적 의사결정에서도 뇌는 쉬는 부위가 없다.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동안에는 상대방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야 하니 시각피질은 당연히 풀가동해야 할 것이고, 상대방이 하는 말을 놓치지 않고 이해하며 적절한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청각피질과 언어 중추 역시 풀가동되어야 한다. 그뿐 아니라 마음이론*을 계속 적용해가면서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재귀적 추론을 가능케 하는 작업기억과 같은 관련된 기능을 유지해야 한다.
*마음이론: 다른 사람의 지식과 선호도를 예측하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추론할 수 있는 능력. 뇌에서 내측 전전두피질과 관련.

인간이 지나치게 사회적인 뇌를 갖게 되었을 때의 부작용인 의인화anthropomorphization‘도 설득력있는 분석이다.

 

˝의인화는 조금이라도 사람과 유사한 특성을 갖는 사물을 마치 사람처럼 취급하는 뇌의 과민 반응이다. 이것은 마치 사냥감을 물어오기 위해서 선택적으로 교배된 리트리버 같은 개들이 테니스 공까지도 물어오는 것과 유시하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많은 자연현상의 배후에 인간적인 의도가 숨어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진이나 대홍수를 신의 천벌로 여기는 태도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미신적 사고가 간혹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마치 깜깜한 밤길을 걸을 때 귀신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면서,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저자는 ˝자유의지란 나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하며, ‘자기‘라는 개념이 인간의 의사결정 과정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별도의 실체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고 나면, 굳이 자유의지의 존재에 대한 답을 기대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철학에서 자유의지가 관념적으로 커지는 것과 달리 매우 합리적이고 명쾌한 분석이다.
맨 앞에서 논의했다시피 마음이론이 고도화되어 자기인식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는 자기지시적 역설에 빠질 위험도 높아지고 부정적인 감정과 정신질환의 위험도 커진다.

결국 생명체의 지능과 앞으로 더욱 향상될 인공지능 간의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잘못된 기대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지능보다 지능지수에 포함되지 않는 개인의 독특한 능력(사회적 지능과 메타인지 능력)이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해왔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스포츠, 예술, 학문과 관련된 모든 활동은 인간의 사회적 욕구와 관련이 있고,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려는 욕망은 메타인지가 없이는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인공지능 개발에 있어서도 이 두 능력의 깊은 이해가 필수적이다. 인공지능에 대한 저자의 종합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다.

 

˝공지능과 관련된 기술이 발전하게 됨에 따라 인간의 사회적 지능 및 메타인지에 관련된 기능마저도 점차 인공지능의 한 부분이 되어갈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소위 기술적 특이점같이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완전히 대체하는 일은 당분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지능이란 근본적으로 자기복제를 핵심으로 하는 생명현상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비록 지적 능력의 여러 측면에서 기계가 인간을 능가하는 시점이 오더라도 인공지능을 장착한 기계가 자기복제를 시작하지 않는 한 인공지능은 인간을 본인으로 하는 대리인의 자리를 지키게 될 것이다. 유전자와 뇌 사이에 본인-대리인의 관계가 성립되었듯이 인간이 인공지능을 관리하는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인간과 인공지능 사이의 관계도 본인-대리인의 관계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걱정을 잠재우는 듯한 저자의 말에 안도되기도 하지만 유발 하라리가 기계와 인간의 합체를 예상하는 ˝호모 데우스˝를 말하는 시점에서 인간의 뇌도 생활도 큰 지각변동을 겪을 것이란 우려는 점점 다가오고 있다.

 

 

 

 

ps)

곧 국내 개봉(2017.5.9)하는 리들리 스콧 《에일리언 커버넌트》에 인공지능에 대한 게 나온다 그래서 더 열심히 읽었다. 헉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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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4 2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4 2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5-05 07: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5-05 14:24   좋아요 1 | URL
뉴스기사나 창작도 벌써 제법 하고 있잖아요. 제 생각엔 알고리듬에 따라 발전가능성은 무궁무진할 거 같거든요.
인공지능이 어떤 식으로 성장할지 정말 짐작이 안 됩니다^^

cyrus 2017-05-05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습을 포기한 딱 한 사람 있어요. 박 모 읍읍.. 아차! 한 사람이 아니군요. 박O모 회원들.

AgalmA 2017-05-05 14:25   좋아요 0 | URL
학습도 여러가지가 있으니까요ㅎㅎ; 잘못된 학습의 책임을 안 지려니까 더 문제죠ㅎ;
 
단어의 사생활 - 우리는 모두, 단어 속에 자신의 흔적을 남긴다
제임스 W. 페니베이커 지음, 김아영 옮김 / 사이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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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막연히 글쓰기, 말하기를 잘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말한다. 숱한 글쓰기 책, 명문이라는 책을 열심히 찾아서 보고 따라 할 생각만 하지 정작 자기 글을 자세히 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거울은 보지 않고 남과 비교만 하는 셈이니 노력에 비해 만족스러운 결과가 잘 나오지 않는다. 잘 쓴 글은 무한히 많으니까 비교는 끝이 없다! 우리를 보여주는 단어 거울을 이 책은 쥐여준다.

이 책은 ‘레이디 가가와 존 매케인의 트위터를 비롯하여 7만 건이 넘는 블로그 글, 2만 5천 명의 대입 논술, 1만 9천 건 이상의 인터넷 게시물, 인터넷 소개팅 사이트에 올라온 수천 건의 자기소개 글, 100여 쌍의 메신저 대화를 비롯하여 제인 오스틴, 셰익스피어, 실비아 플라스의 문학 작품과 <대부>, <유브 갓 메일>, <블루 벨벳> 등의 영화, 비틀스의 노래 가사, 법정에서의 수많은 증언들, 프로이트와 융의 개인적 편지, 줄리아니 뉴욕 시장(9/11 테러 당시 시장)을 비롯한 정치인들과 대통령의 말과 글, 일상 녹취 표본 조사‘ 등 수많은 자료를 오랜 시간 분석한 결과물이다.
저자 제임스 W. 페니베이커는 이 연구에 영향을 준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접근법에 있어서는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 인지 과학자 스티븐 핑커, 사회 언어학자 데보라 태넌, 인류학자 애나 비어즈비스카, 심리 상태에 대한 것에서는 프로이트, 루이스 고트샬크와 월터 와인트로브 같은 정신분석학자, 분석 작업에 있어서는 1960년대 필립 스톤의 제너럴 인콰이어러General Inquirer 프로그램 및 단어 분석 컴퓨터 프로그램 등이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지독한 트라우마 경험을 혼자서만 간직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건강 문제가 많다는 데 있었다. 감정을 표출하는 표현적 글쓰기가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크게 관련 있다는 사실은 연구 결과로도 입증되었다. 물론 ˝건강에 유익한 글쓰기는 긍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의 사용, 부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의 적당한 사용, 인지적 단어의 사용 빈도 증가, 대명사 사용 빈도의 변화˝ 등과 관련 있다. 이제 우리는 건강한 삶을 위해 이 책의 내용에 더 집중해 보자.

10만 년 전 인류는 말을 하기 시작했고 대략 5천 년 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굴 벽에 뭘 긁적이던 때를 지나 우리는 전자 허공에 트윗을 날리는 시대까지 왔다. 흔히 글쓰기 책에서 좋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부사, 형용사를 쓰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이 책은 차원이 다른 얘기를 한다. 통념과 달리 문장은 내용어(명사, 동사, 형용사, 부사와 같이 의미 표현이 주된 기능인 단어)보다 기능어(인칭/지시 대명사, 조사, 부정어, 접속사, 수사, 일반적 부사 등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보조적 단어)가 더 많은 걸 알려준다. ‘우리가 듣고, 읽고, 말하는 단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몇 개 되지도 않는 숨어 있는 단어인 기능어‘이기 때문이다. 기능어를 담당하는 전두엽 손상 환자들은 감정 표현과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읽는 능력, 즉 사회성이 떨어진다. 일례로 반말과 존댓말의 차이가 기능어에서 나온다는 걸 상기해 보라.

 

˝일반적인 원칙에 따르면 자기성찰적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나], [우리], [너(당신, 너희들, 여러분)], [그녀], [그들]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인칭 대명사를 자주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긍정적 및 부정적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자주 사용하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감정적으로 더 깨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대통령들이 연설에서 사용한 대명사와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분석함으로써 그들의 전반적인 사회적-정서적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다.˝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시각장애인에게 노란색을 설명하는 장면을 보자.

 

 

 

문재인 후보는 ˝이분들, 제가˝(인칭대명사)를 비롯 조사와 보조적 부사 등 기능어를 많이 써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안철수 후보는 내용어 위주로 말하는 스타일이다. 심상정 후보가 4차 대선 토론에서 안철수 후보 공약엔 기술만 보이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고 한 말, 도올 선생이 김어준 『뉴스 공장』에 나와서 안철수란 사람은 속을 모르겠다고 한 말에 나도 동감한다. 사회적-정서적 언어 사용이 적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 대한 설명과 안철수 후보에 대한 평은 무척 닮았다. 레이건의 공식 전기 작가였던 에드먼드 모리스에 따르면 ˝그는 [온화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레이건에 대한 TV 2부작 시리즈를 작업한 편집자 애드리아나 보쉬는 이렇게 말했다. ˝레이건은 자기성찰에 빠지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의 아들 론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듯이 말이에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던 사람은 없었어요. 그리고 아버지도 자기 자신을 알았던 적이 없죠.]˝
내가 지금 확증 편향적으로 판단하고 있는가? 나머지는 여러분 판단에 맡긴다.
다른 차원에서 내용어를 강조하는 이과 계열 사고방식에 왜 사람들이 호감을 가지지 않는지도 짐작된다. 당신 글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거나 재미를 못 준다고 고민한다면 어렵고 쉽고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이 문제일 수도 있다.


한편 거짓말 등 자기기만적 언어를 쓰는 사람은 ‘비개인적(비인칭) 언어-[나]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 점, 감정적 언어를 많이 쓰고, 구체적이고 딱딱하며 묘하게 거리감 있는 언어‘를 쓰는 두드러진 특성이 있다.
1970년대에 로버트 위크런드의 자의식에 대한 연구에서 거울을 본 실험자들은 질문지에 더 정직하게 답했다. 자신에게 주의를 더 기울일 때 우리는 더 정직해지며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동기를 얻는다.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속이려는 사람의 특징 분석에서는 503호님 대통령 시절이 많이 생각났다. 그 특징으로 ‘˝실수가 저질러졌어.˝ 같은 수동 표현의 사용, 질문에 대한 대답 회피, ˝맹세컨대" 같은 수행적 표현 사용‘을 든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임기 중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성추문 스캔들로 곤란을 겪을 때 ˝다시 이렇게 말하는데(수행적 표현), 저는 그 여자, 르윈스키 양과 성관계를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503호님은 최순실씨 관련해 뭐라 말했더라... 굳이 안 찾아봐도 다들 기억하는 게 하나쯤 있으리라.




이 글을 마치며,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나]라는 단어, 더 많은 단어, 더 길고 복잡한 문장, 인지적 단어(왜냐하면, 야기하다, 영향을 끼친다, 깨닫다, 이해하다, 생각하다) 사용 빈도가 높다. 지금 내 글이 길어서 변명 조로 이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긴 글에서 우리는 글쓴이의 진실에 대한 호소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걸 알리고 싶어서다. 이 글 다 읽어야 이 진심도 전달되겠구나; 아, 자신이 어떤 문제나 책을 확실히 분석해봤다는 오만일 때도 어려운 단어가 나타난다는 걸 유념하시고ㅎㅎ; 아, 또 참참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인지적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한다. ˝여자는 남자보다 합리적이지 못하고 철학적 사고를 할 수 없다고 믿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뺨을 후려갈기는˝ 소식도 남기며 그럼 이만 안뇽/



                                                                                                                                                          

단어는 자동차가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알려주는 속도계와 같다. 속도계를 직접적으로 조작해선 자동차의 속력을 줄일 수 없다. 그 대신 우리는 속도계를 이용하여 자신이 운전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판단한다.

사회적 서열의 존재는 민주주의와 평등주의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어긋날지도 모르지만, 빠르고 효과적으로 서열을 정하는 우리의 습성은 이후 모든 상호작용을 더 원활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기원전 5세기에 쓰인 에우리피데스의 희곡에서 권력 있는 인물들은 [나]라는 단어를 적게 사용하고 [당신]이라는 단어와 [우리]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 같은 인물들이 극중에서 몰락하면 이들의 [나]라는 단어의 사용 비율은 치솟고 [당신]이라는 단어와 [우리]라는 단어의 사용 비율은 떨어진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마치 낙관주의로 진실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것처럼 보인다.

대명사는 본래의 특성상 사람과 상대방 사이의 관계에 따라 사용된다. 대명사와 다른 숨어 있는 기능어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식적으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감정 탐지기> 역할을 한다.

생각과 감정의 관계는 여러 세기 동안 철학과 심리학에서 뜨거운 논쟁거리였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은 논리와 감정도 근본적으로 다른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17세기 학자 데카르트는 한 발 더 나아가 감정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훼손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초기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 역시 감정과 열정이 어떻게 판단을 흐리는지 강조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근본적인 감정의 문제들이 성격과 행동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우리는 감정과 이성에 대해 매우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뇌과학에서 발견된 점들 덕분이기도 하다. 이런 새로운 관점을 가장 설득력 있게 대변하는 사람 중 하나는 안토니오 R. 다마지오다. 다마지오는 전두엽이 손상된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연구하고 글을 써온 신경과학자다. 전두엽은 원시적인 감정 담당 영역과 추상적 논리 및 언어와 관련된 영역에서 보내는 정보를 통합한다. 이 통합은 상당히 광범위하게 일어나므로 감정과 생각을 뚜렷하게 구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즉 감정은 생각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우리가 세상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 감정이 영향을 미친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기반으로 한 더글러스 바이버의 기법은 연애소설이 추리물을 비롯한 문학의 다른 장르에 비해 대명사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더 개인적이고 현재형 동사를 더 많이 사용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사실 바이버는 모든 문학 장르에 특유의 언어학적 특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AgalmA) 이를 바탕으로 페니베이커가 분류한 ‘형식적 스타일로 쓰는 사람들, 분석적 스타일로 쓰는 사람들, 서술적 스타일로 쓰는 사람들‘ 구분이 아주 재밌다. 어릴 때 생각하는 방식이 일생 동안 지속된다는 건 무서운 말이지만; 참고로 재밌는 서술형 글쓰기 스타일로 알라딘에서는 다락방님 등 몇몇이 떠오르네ㅎ

분석적이거나 단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 재미없는 물병을 묘사하거나 가든파티나 누군가의 배탈에 대해 말할 때 관형사, 조사, 부정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셰익스피어와 타란티노는 남자이고 남자처럼 글을 쓴다. 이들의 남녀 등장인물은 남자들의 스타일로 기능어를 사용한다. 두 작가가 기능어를 사용하는 비율은 거의 같지만 글의 내용과 범위는 분명히 다르다. 셰익스피어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현실에 기반을 둔 주제와 여자들의 관심사를 훌륭히 담아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능어 사용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셰익스피어는 타란티노와 마찬가지로 여자들의 마음속까지 들어가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군가 대화의 방향을 바꾼다면 그것이 그 사람 머릿속을 보여주는 강력한 표시라는 것이다.

높은 사회적 계층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어려운 명사와 관형사, 조사를 더 많이 사용하고 어려운 단어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낮은 사회적 계층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에세이에서 대명사, 조동사, 현재형 동사, 인지적 과정이 드러나는 단어들(대부분 회피성 어구와 관련이 있는 단어들)을 더 많이 사용했고 더 개인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정하기 정말 힘든 일이지만, 끔찍한 경험은 우리에게서 최고의 모습을 이끌어낼 수 있다. 트라우마는 그 본질상 몇몇 생명을 파괴하는 동시에 풍요롭게 할 수 있다."
(AgalmA) 이 책에는 9/11 테러 이후의 사람들의 심리분석이 담겨 있는데, 세월호 참사와 비교해 볼 부분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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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소년 2017-04-26 17: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AgalmA 2017-04-26 19:15   좋아요 1 | URL
길어서 좀 걱정했는데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입니다^^

cyrus 2017-04-26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정을 표출하려면 애매모호하게 표현하지 말고, 무엇이 자신을 불편하게 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그 감정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구체적이지 않은 감정 표출은 동감하기 힘듭니다.

AgalmA 2017-04-26 19:15   좋아요 0 | URL
자기기만적 표현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설명 중 ˝구체적이고 딱딱하며 묘하게 거리감 있는 언어˝ 사용에 대한 지적이신 거 같은데, 이건 영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 구체적이란 표현은 거짓말 하는 사람은 동사를 많이 쓰기 때문에 나온 거에요^^
각 상황마다 해석도 많이 요구됩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시간, 장소, 움직임˝에 대한 표현을 구체적으로 하죠. 우리가 세월호 조사에서 그 구체적 문제로 옥신각신했듯이.
나이, 지식, 계층에 따라서 명사, 조사 사용도 겹치거나 달라지는 게 많아 조합해서 생각해야 하죠.
심리학 분야다 보니 한 상황에 일괄적으로 적용하기 어렵죠

cyrus 2017-04-26 19:29   좋아요 2 | URL
제가 지적한 것은 AgalmA님이 설명한 ‘자기기만적 언어‘는 아니구요, SNS에서 볼 수 있는 글을 언급했던 겁니다.. ^^;;

예를 들면, 이런 거요.

˝너무 힘들다.˝
˝내가 힘들다는 걸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걸까?˝
˝오늘 그 사람 때문에 짜증난다.˝

이런 단조로운 문장으로 보면, 보는 제가 짜증납니다. 힘든 상황이 무엇인지, 자신을 짜증나게 하는 상대가 누군지 알면 동감할 수 있어요. 웃긴 건 왜 그런지 물어보면 ‘안알라쥼‘ 식으로 대답합니다.

AgalmA 2017-04-26 20:04   좋아요 1 | URL
아하, 예를 들어주신 거 보면, 어린 나이에 따른 [나]라는 자기 집중 태도와 부정적 경향, 교육 수준에 따른 인지적 단어 사용 등등이 보이네요.
온라인 상에서 그렇게 표현하는 건 사회성도 나름 계산하는 거죠. 자신이 구체적으로 누구, 상황을 얘기했을 때 혹시나 역공 먹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감안하기 때문이죠. 두루뭉술 얘기해서 기분 전환이라도 하고 싶다는 소심함 일 수도 있으니 마냥 나무랄 수도 없죠^^;

cyrus 2017-04-26 19:42   좋아요 0 | URL
정말 꺼내고 싶은 속마음은 믿을 만한 친구나 가족에게 얘기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속상한 일을 겪으면 제 말에 진심으로 귀 담아듣는 사람에게만 말해요. 제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요. ^^

AgalmA 2017-04-28 03:17   좋아요 2 | URL
재밌는게 이 책에 커플 얘기도 나오는데요. 두 사람의 비언어/언어 일치도가 높을수록 사이가 좋다고 합니다. 언어 불일치로 테드 휴즈와 실비아 플라스 불화설이 나름 설명됨ㅎ;; 저자는 이게 정답은 아니라고 당부하기도.
아무튼 가족이라고 친구라고 다 소통되지 않는 것을 이해하게 됨요^^

이상한 것도 있는데 상대가 건성으로 들어주는데 언어적 일치도를 느끼는 게 더 높다는 것도 웃기죠. 그건 상대가 비판이나 공격적으로 되받아치지 않고 자기 얘길 긍적적으로 다 들어주는 것이라 생각해 더 안정감을 느낀다는 거죠. cyrus님도 이 책 꼭 읽어 보세요. 아주 재밌는 사례가 많다니까요

시이소오 2017-04-26 19: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의 지적인 리뷰를 읽으니 너무 읽고 싶어지네요.
말이라는게 참쉬운듯 하면서도 따지고들면 넘 어려워요. 언제쯤 저는 말을 잘하게 될런지 ㅠㅠ

댓글이 뜸했네요. 잘 지내시죵?
저도 그럼 이만 안뇽이요^^

AgalmA 2017-04-28 03:00   좋아요 1 | URL
ㅋㅋ 지적인 시이소오님께 제가 감히 말씀드려도 되나 모르겠사오나 시이소오님 재밌게 읽으실 책입니다. 심리학부터 문학 아주 두루두루 분석적이라 취향에 맞으실 걸요. 내용 퀄리티 떠나 제가 올해 들어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이요^^
님이 안뇽~이란 표현을 쓰시게 된 무의식의 비밀도 아시게 될 겁니다ㅎ

시이소오님 리뷰 글을 저도 뜸하게 봐서 저도 댓글 자주 못 써서 죄송한데 인사 주셔서 감사요^^/

말과 글쓰기는 이미 잘 하시는 걸로 아는데...^^?

겨울호랑이 2017-04-26 21: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글과 문장을 통한 프로파일링 같네요.. 유형별로 다른 분들을 연상해보면 ‘그렇구나‘ 싶은데, 저는 정작 어떤 유형인지 안 보이는게 제 문제인 것 같아요 ㅋㅋ AgalmA님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AgalmA 2017-04-27 03:52   좋아요 1 | URL
내용이 쏙쏙 들어오니 읽는 내내 적용해보고픈 게 많더라고요ㅎ
별자리, 혈액형 유형 검사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유형 분석이 훨씬 정확할 겁니다ㅋ
재미도 있고 얻을 것도 많은 책이지요^^

캐모마일 2017-04-26 23: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정독하고 갑니다.
책의 주제로 보면 부수적인 이야기입니다만
부사, 인칭명사, 길고 복잡한 문장들은 글쓰기책에서 가급적 삼가라고 하는 요소들인데,
기술에 집착하다보면 무미건조하고 성찰 없는 글이 될 수도 있겠군요...

AgalmA 2017-04-27 04:03   좋아요 1 | URL
문체를 위해 스타일로 꾸민다 하더라도 그 조차도 단어들은 그 사람의 지문처럼 남게 되죠. 즉 단문이고 금하라는 수식어를 넣은 글이더라도 글쓴이가 성찰적이라면 문장의 느낌은 다르죠^^
이 책은 심리학 책이라 작법 기술보다 더 깊은 본질을 보여줘서 아주 재밌게 읽었습니다^^

커피소년 2017-04-27 0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철수는 시각장애인에게 시각적인 부분인 색깔을 이야기 하고 문재인은 촉각으로 노란색을 이야기.. 시각을 사용하지 못 하면 다른 부분 특히 손의 촉각이 발달하게 될겁니다.. 시각장애인분들은 손으로 글을 읽으니까요.. 문재인의 시각장애인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평소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AgalmA 2017-04-27 04:03   좋아요 3 | URL
네, 김영성님이 정확히 보셨습니다. 상대를 생각한 접근 vs 자기 느낌 중심의 접근 차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인권변호사까지 한 사람은 이런 품성일 수밖에 없지 않나 생각도 했습니다^^

뷰리풀말미잘 2017-04-27 08: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읽고 저의 후잡한 언어생활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유익한 글을 써 주셔서 고마워요.

AgalmA 2017-04-28 02:40   좋아요 0 | URL
왜 그러세요^^; 다들 느끼게 될 점이긴 합니다만...
역시 이 책은 자기 언어 생활에 대해 반성하게 하죠? 저도 느끼는 게 많았어요. 고칠 점이 보였!다면 고쳐 나가면 되죠^^

오쌩 2017-04-27 22: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래서 아 다르고 어 다르다 하는 건가요? 이게 맞나...
사람의 언어사용에 꽤 많은 부분을 엿볼수 있네요. 예전에 미국 대통령 연설,토론으로 단어사용 수준을 평가한 기사를 본것 같기도 한데...
아갈마님 찰스평가 너무 박한거 아닙니까.^^

AgalmA 2017-04-28 03:15   좋아요 0 | URL
실생활은 물론 창작에서도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맞춤법, 문장 꾸미기 문제와 차원이 다르죠. 개인이 무의식적으로 쓰고 본질적으로 바꾸지 못 하는 부분을 지적하고 있으니까요.
이 책에도 미국 대통령 사례 분석이 꽤 나오는데요. 때가 때이다 보니 안 후보가 희생양이 되긴 했지만 마침 적절한 예라서 이리 되었습니다^^;
 
의심의 철학 - 이진우 교수의 공대생을 위한 철학 강의
이진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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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아리스토텔레스)이라든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파스칼)라는 오래된 정의가 있다. 바야흐로 생각보다 말이 난무하는 세태에서 그 정의들은 매우 낡아 보인다. ‘생각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다. 포퍼는 인간과 동물의 지식을 차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동물은 물론이고 우리 인간도 오류를 저지르는 불완전한 존재”(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라고 강조했다.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또는 반증주의처럼 가설을 사후 시험과 경험적 적용을 통해 검증하는 것이 인간의 독특한 사고 체계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과학적 방법론이다. 지식과 정보와 팩트가 강조되는 지금 시대에서 기술과 과학은 이제껏 그래왔듯 앞으로의 인류 진화에서 가장 중요한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포퍼는 ‘반증을 무조건 피하는 독단적인 태도는 근대 이전 과학의 특징이라고 말했지만, 근대로 끝났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아직까지도 도처에서 사이비 과학과 확증 편향을 만나고 있다. 이보다 더 위험스러운 것은 과학의 맹신으로 자기비판적 자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이다. 인공지능이나 유전 공학, 첨단의 기술에서 우리는 제어하기보다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자기비판적 자세가 결여될 때의 위험성을 통찰한 포퍼는 열린사회라는 정치철학 용어를 만들게 된다. “열린사회는 지배자가 어떤 비판과 반박도 허용하지 않는 전체주의와 대립되는 개인주의 사회이며 추상적 사회’(무비판적으로 전통적인 규범과 관습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이다.

 

열린사회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긴장을 수반한다. 비판과 토론, 그리고 더불어 합리적인 사고가 성숙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함으로써 자신의 오류를 제거하고 보다 나은 의견에 도달하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민주적 긴장이 열린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만든다.”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한국 국민들은 자신의 나라가 배신운운하며 주군의 권위를 강조하는 닫힌사회로 퇴보한 것을 보았다. 이 세계에 완벽한 유토피아도 완벽한 민주주의도 없는 것이 절망이 될 수 있을까. 한국의 촛불 집회는 절망이 끝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 예였다.

 

 

 

이토록 정치적 자유를 강조하는 우리도 경제 문제 앞에선 기가 꺾인다. 나 아렌트정치가 단순한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행정으로 축소된다면 정치 자체가 위태로워진다는 독창적 인식을 보여줬다. 아렌트는 인간의 활동적 삶을 노동·작업·행위로 구분하면서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하는 노동과 인공적 환경을 만드는 작업과는 달리 오직 행위만이 정치적 인간 조건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 ‘88만원 세대’, ‘잉여사회라는 신조어들이 설명하고 있듯이 우리는 정신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고립과 관계 결여 속에서 원자화된 대중으로 배제되고 축소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 흡수되고 만다면? ‘타인과 사회에 대한 무관심, 스스로 판단하지 않는 무능력속에서 아이히만과 악의 평범성이 탄생했다. 자기비판 의식은 이토록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얼마나 들여다보고 있을까.

 

 

그문트 프로이트는 자아는 자기 집주인이 아니다”(정신분석 강의)라고 했다. “정신분석학은 이제까지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한다고 믿었던 이성과 의식을 철학의 왕좌로부터 끌어내린다.” 칼 포퍼는 정신분석학이 검증 불가능하므로 경험과학이 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현재 뇌과학이 인간에 대해 많은 것을 설명하고 있는데 프로이트 다음 말은 그것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우연이란 없는 것이다”(일상생활의 정신병리학) 더구나 이 마음의 집은 상황이 복잡하다. 자아는 외부 세계, 초자아, 이드의 세 주인을 섬기느라 집주인으로 맘 편히 살기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는 걸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쾌락 충동을 가지고 있다가 될 것이다. 프로이트의 리비도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이성적이 될수록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경쟁, 지배, 파괴와 같은 공격 본능도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지성을 강화하는 본능과 공격적 충동을 내면화하는 본능은 그렇게 인류 문명을 이끌어 왔다. “쾌락을 추구하는 성 본능을 통해 공동체가 이루어진다면, 문명은 리비도의 산물이다.” 즉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을 결합시키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에로스이다.

 

에로스의 목적은 개인을 결합시키고, 그다음에는 가족을 결합시키고, 그다음에는 종족과 민족과 국가를 결합시켜, 결국 하나의 커다란 단위즉 인류로 만드는 것이다.”(문명 속 불만)

 

 

 

 

 

 

프로이트 자아는 자기 집주인이 아니다"라는 말은 르틴 하이데거 다음 말과 닮았다. “존재자의 존재는 그 자체 또 하나의 존재자가 아니다.”(존재와 시간) 이 말은 우리 존재의 의미가 (자연·부모·신과 같은) 다른 존재자에게로 환원된다고 해서 해명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걸 설명한다. “전통 철학이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키는 의식철학의 모델에 바탕을 두었다면, 하이데거의 존재론은 나와 세계의 의미를 통해 통합된 구체적 상황으로부터 출발한다.” 그 유명한 현존재(Dasein), 세계--존재(In-der-Welt-sein)는 이런 관계성의 맥락에서 나왔다. 이런 철학 기반의 하이데거가 현대 기술의 도구적 합리성에 회의적인 건 당연했다. 도구적 합리성을 대변하고 실현하는 사람들이 미국인과 유대인이라고 본 하이데거의 철학적 편견은 반유대주의와 반미주의로 드러난다.

 

   

 

하이데거의 애매모호한 사유를 비판했지만 스 호르크하이머-오도르 아도르노도 기술의 진보에 회의적이었다. “서양의 고대 문명이 신화에서 벗어남으로써 시작되었다면, 계몽의 이성은 신화와 대립적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인간이 계몽되면 될수록 더욱더 깊이 신화 속으로 빠져 들어가 새로운 종류의 야만상태와 직면한다고 보았다. 야만적 상태가 계몽의 필연적 결과라고 생각했다.(계몽의 변증법) 공포의 원천인 자연을 지배하기 위해 도구적 이성’(계몽)을 통해 자연을 '인식할 수 있는 새로운 도구로 만들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진단한 야만의 상태는 나쁜 경우 4차 산업 혁명의 미래를 예견한다도 하겠다. 이미 문화 산업에서도 욕구와 가치 충족에 급급한 우리는 전혀 승리자의 모습이 아니니까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폴 사르트르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존재와 무;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말은 그다지 힘이 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불안에 적극적으로 맞서는 방식(자유)’보다 불안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하는 수동적 방식(자기기만)’에 더 익숙해져 간다. 자신의 직업적 역할에 더 충실한 현대인의 모습, 관태기(관계 피로증)로 인해 타인과 있기보다 혼자 있고 싶어 하는 모습이 그것이다. 이를 대변하듯 사르트르는 타인들은 지옥이라고 말했지만 타자나를 바라보는 자’”라고도 말했다. 타인을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써 본다면 타자는 우리의 존재 근거를 밝혀주는 비밀도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너무 힘들어 신에게 달려간 사람에게는 이런 예약 문자가 전달된다. “은 죽었다.”(즐거운 학문) 리드리히 니체 이전에 신의 죽음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

 

헤겔은 이미 1803신앙과 지식(Glauben und Wissen에서 새로운 시대의 종교의 토대가 되는 것은 신 자체가 죽었다는 감정이다.“라고 말한다. 도스토옙스키도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라고 말함으로써 허무주의 시대의 도덕적 문제를 예고한다. 니체는 당대에 만연한 분위기를 도전적 언어로 표현했을 뿐이다.”

삶의 허무로 신을 찾는 이들에게 니체는 기독교가 바로 허무주의의 기원이라고 단언한다.” 니체 위버멘쉬 사상이 잘 말하고 있듯이, 내가 이 글 처음부터 지금까지 되풀이해 말하고 있듯이 우리 자신을 초극하려 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신에게 책임과 구원을 전가하는 존재로 전락한다.

 

 

 

예술은 덜 부담스럽게 날 행복하게 해주겠지 싶어서 찾아가도 아주 편하진 않다. 마르셀 뒤샹의 변기나 앤디 워홀의 브릴로 상자 뺨치는 예술 작품들이 우리를 맞이한다. 예술을 아름다운 자연의 모방’ 정도로 감상하고 싶은 당신은 티켓에서 다음 주의사항을 본다. “사회의 물질적 조건이 변화하여 우리의 지각 방식이 바뀌면 결국 예술도 변화한다.” 이러한 예술의 운명을 가장 정확하게 포착한 사람이 터 벤야민이다.

 

모든 예술에는 이제 더 이상 이전처럼 관찰되거나 다루어질 수 없는 물질적 부분이 있다. 그 부분은 현대 과학과 현대의 활동에서 가해져올 영향들을 더 이상 벗어날 수 없다. 물질이든, 공간이든, 시간이든, 20년 전부터 그것들은 오래전부터 띠어온 모습이 아니다. 우리는 엄청난 혁신들이 예술의 테크닉 전체를 변모시키고, 그로써 발명 자체에 영향을 끼치며, 결국에는 예술의 개념 자체를 가장 마법적인 방식으로 변화시키는 데까지 이를지 모른다는 점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된다.”(《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현대 예술은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수동적 태도에 만족하지 않는다. “창조성과 천재성, 영원한 가치와 비밀 같은 일련의 전승된 개념들을 폐기시킨다.” 아우라(Aura)의 붕괴.

“‘블록버스터란 단어가 원래 2차 세계대전 중에 쓰인 폭탄의 이름이라는 사실은 영화의 기능을 암시한다.” ‘대중의 정신을 분산시키고, 지각 구조를 변화시키고, 대중을 동원하는정치 의도가 교묘하게 깔려 있는 영화미디어에서 우리는 관음증적 관중 이상이 되고 있는가, 즐기는 소비자 이상이 되고 있는가.

   

 

 

이성이 이 세상과 역사를 지배한다고 해석한 헤겔을 를 마르크스는 비판했다. 그의 뜻을 저자는 풀어썼다.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이성이라는 철학적 전제를 설령 받아들인다고 하자. 그렇지만 인류의 역사가 온갖 명분으로 자행한 대학살, 착취, 잔혹한 전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관념론적 믿음은 종종 눈앞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불의를 역사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에 좀처럼 사회 변화의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헤겔의 논리를 뒤집어 인간의 정신이 물질적 조건으로 규정된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그가 본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공산당 선언)로 귀결된다. 슬프게도 노동의 분업으로 더 나은 세계가 열릴 것이라 진단한 마르크스의 비전은 지금 다르게 펼쳐지고 있다. 갖가지 분업으로 나뉜 노동을 기계가 접수하고 있는데 노동자가 건너갈 수 있는 다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지금 시대는 생산보다 더 복잡한 분배가 필요한데 여전히 사회 변화의 실천은 더디다.

 

 

마르크스는 역사는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의 활동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 세상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추구하거나 추구하지 않은 것의 총체라는 생각을 하며, 어쩐지 참담한 심경이 되어 이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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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04-24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이런.. 이번 리뷰는 ˝We are the Wolrld˝도 아니고, 제가 이름만 들어본 많은 이들이 많이 나오는 군요.. 많이 어렵네요. 어제 대선후보 TV 토론을 보면서 사람의 생각을 멈추게 하는 대표적 도구인 TV를 통해 우리가 판단을 하게 되는 상황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보다 좋은 마케팅 (정치인을 상품이라 본다면)을 위해 동원된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걷어 내고 그 안의 메세지를 발견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 안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기도 어렵고 설사 찾았다고 하더라도 기대보다 작은 허무감은 어쩔 수 없으리라는 생각도요. ^^:

AgalmA 2017-04-24 17:04   좋아요 2 | URL
어려운 부분은 많이 쳐냈는데도 그런가요ㅜㅜ; 리뷰가 너무 길어져서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비트겐슈타인은 빼버렸는데ㅎㅎ어쩔 수 없죠. 이 리뷰 쓰느라 제 책 읽는 시간을 더 뺏기긴 싫어요ㅎㅎ

대선토론이 이 나라 국민성 보여주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들더군요. 홍 막말 비롯 토론을 무슨 말싸움에서 이기기 쯤으로 생각하는 행태들을 보며 말하기도 잘 안되는 사람들이 많은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국정을 어떻게 하자는 건지. 합리성은 개뿔! 부정선거였다 해도 박근혜 씨가 당선될 정도로 표를 받은 것만 해도 이 나라의 ‘생각없음‘ 상태를 정말 잘 보여주죠.
합리적 사고도 비판되는 마당에 이 나라는 거기까지도 못 가고 있으니....
요즘 인터넷에서 페미니즘 논쟁들 보며 자기 편향 논리를 합리적 사고, 표현의 자유로 착각하며 떠드는 사람들을 보며 내 생각이 잘못된 건가 한참 짚어봐야 했다는...그 이상한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공부하고 글 쓸 생각을 하고 있는 터라 아주 피곤합니다.... 민주주의는 정말 피곤한 정치 체제입니다ㅎㅎ;;


겨울호랑이 2017-04-24 17:13   좋아요 2 | URL
^^: 부족한 것은 제 내공이 모자란 것이고, 앞으로 가야할 길을 보여줘서 저는 고맙지요.ㅋ 갈 길이 멀군요 ㅜㅜ

그래도 지난 번 대선 때 있었던 토론 낭독회보다는 조금 나아진 듯 해서 작은 성과라 생각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이번 대선 토론회의 의의를 찾고 싶네요. 개인 또는 사회가 더디게 발전한다고 해도 이처럼 뜨거울 불에 데이다 보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어느 정도의 방향성을 가지고 나가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이 역시 갈 길이 멀군요. ㅠㅠ

페미니즘과 관련해서는 제가 잘 모르기 때문에 말하기 조심스럽네요. 쉽게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상태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문제에 대해 공감하기 보다는 자신과 다른 사고방식은 무조건 문제다라는 극단적인 사고가 문제의 공론화를 방해하고 있는 것 같아요.. AgalmA님께서는 페미니즘 공부 중이시군요.^^:

북다이제스터 2017-04-24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근 이성이 아니라 애로스죠. ㅎ 긴 글이라 나중 세 번 정도 나눠 곱씹어야 할 방대하고 좋은 글입니다. ^^

AgalmA 2017-04-25 01:53   좋아요 0 | URL
저자는 쉽게 잘 전달하고 있는데 그걸 압축하려니 어렵더군요.
리뷰 쓸 때마다 늘 느끼는데 내용 이해보다 전달이 더 어렵습니다ㅎㅎ;
감사합니다^^
 
무엇이 지능을 깨우는가 - 유전자를 뛰어넘는 지능 결정의 비밀
리처드 니스벳 지음, 설선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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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은, 지능이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 가변성과 더 밀접하다는 설명과도 잘 어울려서 역시 명문장이다.
우선 유전에 대한 이해부터 하자. ˝유전율이란 개인의 어떤 속성이 유전되는 정도가 아니라, 조사 집단 내에서 어떤 속성이 유전되는 정도˝를 말한다.
일반 지능은 크게 유동 지능결정 지능으로 나뉜다. 유동 지능은 새롭고 추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추론 능력으로, 실행 기능(작업 기억, 주의 조절, 억제 조절 능력)이라고 불리는 정신 작용을 통해 발휘된다. 결정 지능은 ˝학습에 의해 축적된 것으로, 세상의 법칙이나 그 법칙을 알아내기 위해 필요한 절차에 관한 정보˝를 말한다. 유동 지능은 동작성 지능, 결정 지능은 언어성 지능(상식, 어휘, 이해, 공통성, 산수)으로 보고 이를 합친 것이 전체 지능이다. 저자는 ˝IQ가 유전되는 정도는 IQ가 변화 가능한 정도에 아무런 제약은 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오랫동안 지능의 결정적 차이를 강조해 왔는데, 지금은 좀 나아진 걸까. 아니니까 저자가 이런 책을 쓴 것이겠지~

 

˝사람들이 흑인과 백인의 지능에 선천적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한 것은 1000년도 더 된 일로, 무어족이 유럽을 침략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어족은 유럽 사람들이 추상적 사고 능력 없이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사실 1000년 전에는 남부 유럽 사람들도 북부 유럽 사람들에 대해 이 같은 의심을 품었다. 키케로는 영국인들을 가르치기란 너무 힘든 일이어서 로마인들은 영국인 노예를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율리우스 시저는 ˝그래도 험한 일을 시킬 값어치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자 이제는 거꾸로 대부분의 유럽인은 자신들이 아프리카인보다 타고난 지적 능력이 더 우수하다고 믿게 되었다. ˝


가정, 드라마에서 ˝너는 아빠 or 엄마 닮아서 머리가 나쁘다˝고 구박하는 걸 종종 본다. 혈액형 성격 유형설과 비슷한 상황인데 인종, 사회계층, 성별, 유전이 지능을 좌우한다고 보는 건 편견이다. IQ 차이를 낳는 모든 요인(유전자, 태아기, 주산기, 출산 직후의 생물학적 요인, 사는 동네, 학교, 양육 방식을 포함한 계층과 관련된 모든 사회적 요인)이 고려되어야 한다. 입양아 연구는 출산 후의 환경 요인이 유전 요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걸 보여줬다.
어릴 때의 정서적 외상은 뇌의 전전두피질을 손상시키는데, 이 영역은 유동 지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SES(사회 경제적 지위)가 낮은 가정의 양육 방식 때문에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하위 계층이기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가 함께 작용하여 전전두피질의 손상을 유발할 수도 있다.
미국의 소득 불균형으로 인한 계층 간 학업 성취도 차이는 개발도상국 수준인데 문해력, 수학, 과학 능력에서 두드러진다. 한국도 경제적 완충 장치들을 꾸준히 보완하지 않는다면 안심할 수 없다. ‘2002년 흑인의 가계소득은 백인의 67퍼센트였고, 흑인 가구의 재산은 백인 가구의 12퍼센트에 불과했다. 백인 미혼모 비율이 24퍼센트인데 비해서 흑인 미혼모의 비율은 72퍼센트였다‘. 중죄를 지은 전과가 있는 백인 지원자가 흠잡을 것 없는 흑인 지원자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현상은 육아 문제를 비롯 성적 특성을 차이로 두며 여성보다 남성을 더 선호하는 경향과도 유사하게 보인다.
또 백인의 경우 남성과 여성 간에는 평균 IQ 차이가 없지만 IQ 분포 최상위에 남성들이 더 많은 만큼 최하위에도 남성이 더 많아 남녀의 평균이 같아진다. 1980년 경 미국에선, IQ가 120 이상인 흑인 여성의 숫자가 흑인 남성의 두 배에 달했다.

교육에 대해 이 책은 많은 조사를 참조해 논의했다.
신임 교사보다 경험 많은 교사가 훨씬 뛰어난 건 모두 수긍할 것이다. 저학년일 때 특히 중요한데 모든 아이들이 경험 많은 교사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 저자는 갈등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한에서 성공적인 교사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으로 여건이 더 나아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수학과 과학 과목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교육, 학생들끼리의 협동 학습 기법이 효과적이라는 결과도 주목해야 한다.
마크 레퍼의 개인교습 원칙은 부모들에게도 유용하다. 사소한 오류 지적을 삼가고 아이가 통제권을 갖도록 도와주고, 도전해보도록 자극하고, 자신감을 불어넣고,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이용하며 호기심을 길러주고, 학습 과제를 실생활이나 영화, TV와 관련시켜 맥락화해주는 것. 문제는 이러한 교육 자세가 SES가 높은 가정에서 이뤄진다는 점. SES가 낮은 부모들은 질문보다 잘 복종하고 착하게 행동하는 법을 가르쳐서 평범한 노동자를 길러내는 경향이 있다. 1980년 대 연구 당시 ‘전문직 부모는 아이에게 시간당 약 2000단어를 말했지만, 노동자 계층 부모는 약 1,300단어를 말했다. 하지만 생활보호 혜택을 받는 흑인 가정 아동 경우는 하루에 겨우 600단어를 들었다‘, ‘전문직 부모 아이는 꾸중 한 번에 칭찬을 여섯 번, 노동 계층 부모 아이는 꾸중 한 번에 칭찬은 두 번, 생활 보호 대상자인 흑인 가정 아이들은 칭찬 한 번에 꾸중을 두 번 들었다. 이러한 차이는 인지 발달에 매우 중요한 차이를 가져온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개입 프로그램‘들이 설명되고 있다. 취학 전 조기 교육은 한국에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빈곤층을 비롯한 소외 계층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국가적으로 지원하면 유의미할 거 같다. 보육비 보조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취학 후에는 학습력이 떨어지는 방학 때 학업 성취도를 높여줄 프로그램도 갖춘다면 더욱 좋겠다. 지금의 보충학습과는 달라야 한다. 이것은 교육 효과만이 아니라 대인관계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국가적으로는 범죄율과 복지 의존율 감소를 얻게 된다. 물론 개입 프로그램이 모두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KIPP(Knowledge Is Power Program)‘ 프로그램의 성과를 볼 때 장기적으로 실행해 볼 가치가 있다. 가장 나은 방법은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이겠지만.

문화적 차이에 따른 특이점을 짚은 내용이 가장 흥미로웠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를까 늘 궁금했다. 저자의 다른 책 《생각의 지도》에서도 거론된 내용인데, 이 책에서도 짚고 있다.



유대인의 우수성에 대한 추론들도 재밌었다. 유대인의 IQ와 지적 성취 요인으로 박해의 영향, 바빌론 유수로 신바빌로니아 왕 네브카드네자르 왕이 우수한 유대인을 끌고 간 영향, 상인이나 사업가의 딸이 학식이 뛰어난 학자나 랍비와 결혼을 많이 했다는 설, <탈무드>를 이해할 정도로 똑똑하니 성공했다는 설 등은 신빙성 없는 추측이고, 저자는 19세기부터 기록에 등장한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직업적 특수성을 주목한다. 기독교인들에게 금지된 대부업과 무역, 조세 징수업, 부동산업으로 그들이 부를 축적하고 자손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 유대인 전체 지능을 향상시킨 요인이라고 본다. 신경신호 전달과 신경 분기를 촉진하는 ˝스핑고지질˝이 문제인 고셰병 환자에 아슈케나지 유대인이 많다는 것도 흥미롭다.

저자는 아시아인과 유대인의 높은 학업성취도에 있어 서양의 개인 독립성과 구별되는 전통적인 가족 간 결속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아시아인과 유대인의 중요한 차이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이기도 한 점인데, ˝일본과 한국이 속한 유대 전통에서는 지식이 지식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반면 ˝유대인은 지능, 지적인 삶, 성취에 가치를 둔다는 사실˝. 서양인들이 실용적, 공리적 측면을 더 추구한다고 생각하던 내 인상과는 다른 견해였는데, 자세한 비교를 보니 그럴 듯했다.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ㅎ; 동양과 서양 차이, 이를테면 자신이 잘하는 것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능력 성취형 서양인, 자신의 부족함을 노력으로 극복하려는 동양인 그런 구분이 저자의 사례 비교로 증명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의 제기가 발생할 소지도 보인다.

책 말미에 지능 향상법이 한 챕터로 정리되어 있다. 모차르트 음악이 지능을 향상시킨다는 증거가 없다는 건 재밌었다. 극단적인 환경에 가둔 쥐에게 음악은 새로운 자극이었을 뿐 그러한 동물 연구로 지능 향상법 반열에 오를 수 없다는 것. 그래도 태교 음악은 팔리겠지...

나는 내 IQ를 모른다. 이 책을 보고 나니 더 궁금하지 않아졌다. 호기심이 꺼지지 않도록 내가 내 좋은 선생이 되어야겠다 싶으며 끝. 

 

 

※지능에 대해 이상한 소리하는 사이비 책이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논리, 조사 등이 충실하니 결정론적인 것만 가려 읽는다면 읽어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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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4-17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요즘 제가 머리 나쁘다는걸 확인하고 있는 순간들입니다.ㅎㅎㅎㅎ(나이탓도 있고..원래 지능도 딸리는 것의 합집합이 된 기분이랄까요..ㄷㄷㄷ)

AgalmA 2017-04-17 17:30   좋아요 1 | URL
아, 깜빡하고 언급을 못했는데 나이와 관련있기도 합니다. 아이 때는 유동지능이 활발한데 나이들수록 결정지능이 더 강화됩니다. 결정론적인 사고를 많이 하게 되니 꼰대나 보수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게 뇌과학적으로 그렇다는^^;; 다행히 yureka01님은 보수나 꼰대가 아니시니 엄청 긍정적인 상태 아닌가요!

북다이제스터 2017-04-17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의 지도> 저자네요.
예전 워낙 잼 있게 읽은 책입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인이 추상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좀 의외입니다. <플루언트> 이론과 다르네요.
하긴 모든 이론은 주장일뿐이니깐요. ^^

AgalmA 2017-04-17 21:40   좋아요 1 | URL
이 책을 통해 ˝다중회귀˝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여러 독립변인 또는 예측변인과 어떤 목표변인 또는 결과변인의 상관을 동시에 구하는 방법이라고 하죠. 저자는 인과 관계를 밝히는 실험 연구가 다중회귀를 사용한 연구보다 더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연구자가 아무리 객관성을 확보하려 해도 자기선택적 속성을 완벽히 배제할 수 없을 겁니다. 마치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결국 어떤 주장을 펼치든 확고한 증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신빙성의 싸움이라고나 할까...^^;

영어와 추상성의 관계가 깊나요?
저는 대륙적 차이를 생각하게 됩니다. 흔히 영미권 철학을 분석 철학, 독일과 프랑스권 철학을 대륙 철학으로 크게 나눠 보잖아요.
영국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과 프랑스 데카르트 주지주의 철학의 차이처럼. 깊이 공부하지 않은 저로선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고 확실히 다르긴 한 거 같거든요. 프랑스 철학은 도대체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투덜대는 사람들의 느낌을 알 것도 같고ㅎㅎ
이 책에서 동양인 사고방식 평 읽고 나니 뜨끔하기도 해서 좀더 분석적이고 논리적으로 공부해주겠써 오기 발동!ㅎㅎ

북다이제스터 2017-04-17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중회귀 말씀에 일단 AgalmaA님 전공은 사회과학 계통은 아니신 듯....ㅎㅎ 제가 그림과 철학을 잘 모르 듯이요. ^^
영어가 추상성이 높단 말은 우리나라 말과 비교해서 그렇고 말씀처럼 서양권 내에선 큰 차이가 없는 듯도 합니다. ^^

AgalmA 2017-04-17 22:07   좋아요 1 | URL
제가 사회과학쪽이면 지금보다 똘똘하게 말하고 더 잘 살았을 듯ㅎㅎ 아, 이럼 문과 비하가 되나....흐음.

북다이제스터 2017-04-17 22:55   좋아요 1 | URL
제 짧고 서툰 농담에도 항상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cyrus 2017-04-17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차르트 효과‘를 검색해보면, 재미있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요. 효과를 입증했다는 실험 결과를 인용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무효함을 입증한 실험 결과를 인용한 사람이 있어요. 저는 후자에 동의합니다.

AgalmA 2017-04-17 23:04   좋아요 0 | URL
‘모차르트 효과‘는 ‘물은 알고 있다‘와 비슷하게 여겨집니다. 실험들을 보면 음악만 듣고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볼 수 없어요. 중간변수가 상당히 있거든요. 시간차, 실험에 대한 기대부응(피실험자의 자기 선택), 아이 경우 뇌발달이 이미 진행되는 상황 등등.
비슷한 예로 흑인이 음악 재능이 뛰어나다 여겨지지만, 이 책에서는 여러 환경적 어려움 때문에 엔터테인먼트로 재능을 발달시킨 거라는 견해^^

페크pek0501 2017-04-18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전자냐 환경이냐. 인간은 어떤 것에 더 지배를 받는가. 궁금한 점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커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많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꼭 유전자 때문이라고 볼 수 없겠지요. 범죄를 저지르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는 환경(나쁜 교육 환경, 가난한 환경 등)이라는 변수가 있으니 말이에요.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많이 다른 우리 두 아이를 키우면서 유전자의 힘은 세다, 라고 느낍니다.
한 아이는 아빠를 닮아서이고 한 아이는 나를 닮아서라고 느껴질 때 그래요.
사실 같은 환경이랄 수는 없겠지요. 맏이와 둘째, 라는 자리가 다르고 또 학교에서의 환경도, 경험도 각각 다를 테니까요.
모든 걸 종합한, 완벽한 분석은 어려울 듯싶어요.

님의 글을 읽으니 흥미로워서 댓글을 길게 쓰게 되네요. ㅋ

AgalmA 2017-04-18 23:51   좋아요 0 | URL
pek0501님은 인간 심리에 관심이 많으시니 이런 논의에 당연히 흥미를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위에 언급한 ‘개입프로그램‘이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가정 상황(물질적, 정신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대학 때까지 꾸준히 살피는 표본 조사도 있는데 지능향상만이 아니라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동기부여를 많이 얻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저체중으로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지능에 영향을 미치니 변수가 참 많습니다.
같이 생활하다 보니 아빠나 엄마를 닮는 것이지 태어날 때부터 성격적인 걸 유전받는다는 것에 저는 동의할 수 없겠습니다^^
신체상의 장애나 질병 유전으로 인한 영향은 고려되어야 겠지만요.

요즘 인공지능 얘기도 대두되니 더 흥미로운 얘기가 많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