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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tory girl》에 대한 대부분의 리뷰들은 앤디 워홀의 60년대 뮤즈였던 이디 세즈윅이란 인물의 안타까운 몰락에 초점이 그쳐버렸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다 보고 나서도, 그녀가 예술가였을까 하는 점이 고민이었다. 내 욕심에서는 감독이 영화를 못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컷은 팩토리에서 서부 영화를 찍는데 영화 속으로 앤디 워홀이 걸어 들어가 전화를 받던 것... 말이 히히힝대고 전화벨이 울리는 평행우주. 앤디 워홀의 전위성을 그대로 보여주던...

  

 

 

《Factory girl》에서, 시대 아픔을 노래로서 싸워나간 아이콘으로 밥 딜런을 갖다놓고, 앤디 워홀은 출세에 현혹돼 주변을 착취하는 예술가쯤으로 대비시켜버리는 데서, 과연 그렇기만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감독은 앤디 워홀에 대한 백과사전만 한 평전을 보고 이 영화를 찍었을까. 앤디 워홀이 예술가로 본격 입문하기 전에 신문 삽화 만화를 얼마나 멋들어지게 그렸는지 봤을까.  그의 모든 작품들 속의 예술적 끼를 보려고 노력이라도 했을까. 아니, 아니라고 본다. 감독은 각본에 그냥 충실했던 것 같다. 각본을 쓴 캡틴 모즈너도 심층에 대한 이해보다는 혹은 무시하고 이목을 끌만한 이야기를 만들기에 바빴던 것 같다. 오, 세상에. 이 영화는 예술은 그저 무대배경이고 나는 그 유명한 인물들의 일화를 찍었을 뿐이에요. 하는 영화다. 나는 앤디 워홀이라는 예술가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예술의 어떤 성질에 대해 얘기하고 싶은 것이다.

 

 

 

 

 

 

 

 

 

 

 

 

'재능'에 대해서 요네하라 마리가 말한 것에 대해 나는 동의한다. 재능을 꽃피우는 힘도 재능 속에 포함된다는 것. 이 말은 재능은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창작자들의 뛰어난 재능이 우리의 고정관념을 부술 때 예술적이다, 천재적이다라며 왕관을 씌워준다. 이러한 천재 예술가들 주변엔 늘 낙오자가 있기 마련인데, 이때 모차르트와 살리에르를 자주 거론한다. 헌데 천재와 주눅 든 이인자라는 컨셉은 극대화된 영화 속 픽션이다. 예술적 성취를 떠나 실제 삶에 있어선 살리에르는 궁정악장으로  노후까지 잘 먹고 잘 살았고, 모차르트는 알다시피 빚에 쪼들려 단명했다. 예전엔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로댕 같은 천재 예술가들에 비해 빛을 보지 못한 천재들이 더 많았다. 고흐, 에곤 실레 등등.

현대의 천재적 예술가들의 삶은 양상이 좀 다르다. 그들은 자신의 재능을 현재적으로 꽃피울 뿐만이 아니라 잘 팔 줄도 안다. 피카소나 앤디 워홀은 그걸 잘 알았고 즐겼다. 예술이 본격적으로 산업이 된 지금, 뱅크시 같은 예술가는 예술을 포장하고 우러르는 어리석은 세상을 끝없이 조롱한다. 그 조롱마저도 상품화되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점은, 이디 세즈윅과 앤디 워홀이 갖고 있는 예술가로서의 재능에 대한 자세다.

표출할 줄 모르는 자(이 말은 이미 재능 없음과 동일)와 쓰레기조차도 끝없이 재창조하여 제시하는 자.

피사체가 되는 것에 빠져 있는 자(스타)와 피사체를 만들며 즐기는 자(예술가).

 

나는 재능이 있는데 세상이 몰라준다! 고? 내 편협을 인정하고서도, 나는 우리나라 거리 화가들에게서 예술가를 느낀 적이 없다. 멋진 전시장이 아니라서, 알려지지 않아서, 가난해서 멋진 재료를 쓰지 못해서의 문제가 아니다. 그 붓끝엔 재능의 들끓음이 없다. 습관적이고 그 시간에 대한 집중만 있을 뿐이다. 담뱃갑 은박지에 그린 손바닥만 한 그림일지라도 이중섭의 재능은 발견된다. 이 경우는 타고난 재능이라 좀 억울할 수도 있다. 우리가 예술가에게서 보는 것은, 예술의 재능은 답습하고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탐구하고 발견해낸다는 것이다. 예술을 이끌어낼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는 것이다. 죽는 순간까지! 그러나 대부분은 중도에 포기한다. 이 길이 아니었나 보다고, 운이 안 따라 줬다고. 이디 세즈윅처럼 만신창이가 안 되어서 어쩌면 다행이라고 위안 삼으며, 이제 남은 생 동안 먹고살 일을 걱정한다. 여기서 모범이 되는 예술가가 바로 고흐다. 그의 초기 데생들은 요즘 웹툰 만화보다 더 나을 것도 없었다. 스포트라이트도 부도 없이 오직 자신의 재능을 광부처럼, 농부처럼 캐냈던 사람.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술 관점에서 본 국한된 해석이고, 요즘의 예술은 앤디 워홀 시대보다 더욱 기술과 아이디어와 비즈니스의 場이 돼가고 있다. 이미 예술도 레드 오션이다. 넘쳐나는 클리셰, 표절, 모방들(각종 리메이크와 콜라주), 상품화에 열 올리는 시장, 소비를 지식으로 아는 대중. 요즘의 예술은 아주 골치 아파졌다. 이 모든 것들을 편집하는 창작의 자세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앤디 워홀은 이걸 파악하고 그 스스로 가치·생산·소비를 완벽히 구축해 간 인물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겐 돌 맞을 소리일 수도 있지만, 우리 솔직해지자. 프롤레타리아들이 원하는 혁명은 도덕적 평등이나 부르주아의 몰락이 아니라 자신도 부르주아가, 욕망이 되고 싶다는 거다. 앤디 워홀은 그런 인간의 욕망을 뿌리 깊게 간파해 낸 사업가이자 예술가였다. 그는 미술뿐만이 아닌 잡지, 영화 등 활동 영역을 전 방위적으로 넓혔고, 사람들은 부와 명예를 좇아 워홀의 팩토리로 늘 몰려들었다. 그렇게 워홀은 온갖 매체들이 자신을 인터뷰하게 만들었다. 생산되자마자 가치로 바뀌고 상품이 되는 예술. 워홀은 상품이 되자마자 바로 다음 예술로 전진한다. 그것은 또다시 상품이 된다. 워홀은 끝까지 잡히지 않으려 했다. 그렇듯 워홀의 예술은 데리다가 말하던 '미끄러짐'이었다. 예술은 느긋하게 스웨터나 만드는 시간이 아니다. 앤디 워홀이 수 십 장씩 찍어낸 실크 스크린 작업이 쉬워 보인다면, 직접 해보라. 공간이 순식간에 고추장 공장이 되는 걸 경험할 것이다. 고추장일지 예술일지, 해석도 되기 전에 확률 싸움이 된다.

작업의 노고만이 아닌 온갖 세파의 오물에 맞서야 하는 예술가의 삶 앞에서, 이디 세즈윅과 앤디 워홀은 그렇게 대비되고 있다. 나는 앞서도 말했다. 그들은 예술의 방법적 문제가 아니라 재능의 자세 문제라고.

망가진 이디 세즈윅이 앤디 워홀을 맹비난하며 울부짖을 때의 마지막 대사가 그래서 더 가슴 아팠다.

"당신이 우리 보스잖아." 

자신의 재능을 위해 노력하지도 못 했던 자의 변명.

영화에서는 없었지만 앤디 워홀을 동경했던 이디 세즈윅과 바스키아가 각기 어떤 식으로 자신의 예술을 성취했는가를 생각해보라. 안타깝게도 이디 세즈윅은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어떤 세파에도 자신의 예술을 꺾지 않는 인간이다. 예술가란 자리에 시인, 작가, 깨달은 자, 혁명가, 무엇으로 바꾸든 이 말은 손상되지 않는다. 그는 몰락할지언정, 그의 예술은 탈출하여 기필코 빛난다.

 

 

 

 

 

나는 이디 세즈윅이 예술가였는가에 중점해서 이 글을 썼다. 이 작품으로 이디 세즈윅의 삶을 가치 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 영화가 이디 세즈윅이나 앤디 워홀에 대해 더 고민했었다면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사람에 대해, 그것도 실존했었던 사람에 대해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막중한 일인가,를 절감케 했다.

그리고 앤디 워홀과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루 리드와 니코를 아우르는 스토리가 영화 관객으로서는 더 기대된다는 점. OST도 엄청 멋지게 만들어졌을 테니까! 가만-_-, 루 리드가 얼마 전 세상을 떴으니 곧 영화화될 수도 있겠군.. 흠.

 

 

ㅡ Agalma

 

 

 

 

 

 

 

 

 

 

 

 * 『21세기 자본』을 능가하는 『앤디 워홀 일기』의 두께;

     언제 다 읽을 지 모르겠다. 그러니 묻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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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2015-03-28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평을 했네요?^^

AgalmA 2015-03-28 21:00   좋아요 0 | URL
말은 이렇게 해도 마음은 아파요. 어쨌든 이 영화도 사람에 대한 발화이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일이 맘편한 일은 아니니까요.

곰곰생각하는발 2015-03-28 2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글을 읽으니 갑자기 묻고 싶네요. < 앤디워홀 읽기 > 잼나나요 ? ㅎㅎ

AgalmA 2015-03-28 21:41   좋아요 0 | URL
재미는 정말 취향 차이라 뭐라고 말해 드려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잭 케루악 <길 위에서>보다 문학성은 떨어져도 (흠흠, 이런 표현 좀 쓰겠습니다) 더 골때리고 웃겨요ㅋㅋ. 진정 비트시대 보고서! 데니스 호퍼, 조지아 오키프...그 시대 온갖 문화 아이콘들이 총출동까지 하니ㅎ

cyrus 2015-03-28 2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워홀의 평전이나 관련 도서는 워홀과 관련된 소소한 에피소드를 보는 재미로 읽어요. 달리나 워홀 같은 괴짜 아티스트의 이야기는 재미있어요. 팩토리걸에 자주 드나들었던 여자(이름이 생각나지 않습니다)가 워홀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워홀에게 총을 쏜 적이 있어요. 이 사건 이후로 남들 눈에 띄기를 좋아했던 워홀이 극소심해졌죠. 그런데 저 <워홀 일기>는 왠지 달리의 자서전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달리의 자서전을 보면 골 때리는 내용이 가득해요. 조금 나쁘게 표현하면 자뻑에 가까운 ‘개소리’라고 할 수 있어요.

AgalmA 2015-03-29 02:38   좋아요 0 | URL
네, 1968년의 그 습격 이야기 책에도 거론되더군요.
영화까지 나왔더군요. [나는 앤디 워홀을 쏘았다] (1996) - 그 여성의 이름은 발레리 솔라나스.
팩토리(공장)에서 쫓겨난 여성들...

달리 자서전은 못 봤는데, 이 워홀 일기도 자뻑이 없다고는 못 하겠습니다; 워홀의 대외적인 매너 평판은 좋았잖아요. 그 이면을 보여주는 일기라 그의 거침없음 속에서 반짝이는 예술가적 포착들이 아주 매력적입니다. 그저 구경거리로만 이 책을 접한다면, 읽다가 집어던지고 그런 걸 놓치기 쉽죠.

네오 2015-03-29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지 않는건 뭐라고 해야줘ㅋ~

AgalmA 2015-03-29 18:25   좋아요 0 | URL
아닌 게 아니라 까칠하다, 공격적이다 소리 상당히 많이 받고 있어요ㅎ... 이디 세즈윅에 대한 연민이 계속 남아서 이 글을 계속 맴돌고 있어요. 오늘도 북플 괜히 시작했다 푸념 반복...

네오 2015-03-29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 왜요?

AgalmA 2015-03-29 18:35   좋아요 0 | URL
북플 짧은 글쓰기가 마땅치 않아 서재로까지 와서 끄적대던 게 이젠 무한한 글고쳐쓰기 시시푸스 짓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ㅎ
책읽기, 글쓰기에 방해가 되고 있어요! 아하하ㅠㅋㅠ!!!

네오 2015-03-29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르는 돌을 부시세요^^

AgalmA 2015-03-30 04:14   좋아요 0 | URL
부서지는 게 한둘이 아니라 미련하게 이러고 있는지도. 노력해 볼께요. 고맙습니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동문선 현대신서 61
니콜라스 쿡 지음, 장호연 옮김 / 동문선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 논쟁이 되지 않기 위한 취향으로의 도피

  대화를 하다가 최근 출간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2015) 얘기를 했다. B가 아무 말없이 듣다가 조용히 물었다. “유시민이 누구예요?”  (잠시 정적)   서로 당황했다. 나는 놀라움을 가라앉히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 기초연금을 마련한 정치인 등등을 언급해나갔는데, 상대는 묵묵부답이었다정치인 유시민을 공격하는 부정적인 견해의 사람들은 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정치·사회를 깡그리 외면하고 산 B를 보며 화가 나면서 마음도 아팠다. 그동안 투표도 안 했단 건 뻔한 일이었고, B도 그렇다고 확인시켜 주었다. 지금은 신용불량자 상태지만 B는 젊은 나이에 무슨 무슨 협회 회장직도 했고, 종교계 출판 사업체도 운영했으며 자신도 책을 써보겠다고까지 하는지라 유시민씨의 책 얘기를 꺼낸 거였다. 교회에 주 3회 가는 것에 방해될까 봐 일도 가려서 하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지만, 전도 문제로 나와 큰 충돌이 있기도 했다. 이제 B와 나 사이에 정치·사회’에 대한 관심취향의 벽처럼 되어 버렸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2015) 목차에 나와 있던 취향을 두고 논쟁하지 말라가 우리의 인습에 대한 논증을 잘 펼쳐주었기를 바란다. 그럴 리 없겠지만 미진함이 느껴지면 쇼펜하우어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을 읽고 반격할 겁니다

 

 

§§ 옹호와 합리성 사이

  영국의 음악학자이자 음대 교수인 니콜라스 쿡 음악이란 무엇인가(동문선, 2004)는 의외의 내용이었다. 의도한 것이 아님에도 요즘 내가 고르는 책들은 거의 사회학 관련 책인데, 이 책도 내용상으로는 음악 사회학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본문 160여 페이지밖에 안 되는 짧은 분량이지만, 쿡은 음악과 음악에 관한 사고방식에 스며있는 사회적·제도적 구조에 대해 고찰 해나가고 있다. 음악의 전통적인 보수성을 생각해 볼 때, 자신이 몸담고 있는 음악 전반에 대한 쿡의 비판 의식은 도전적이다.

■ 음악은 국가나 지역의 정체성 형성(외국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전통 음악에 고집스럽게 집착하는 경우)에 도움을 주기도 하고, …… 리듬앤블루스와 로큰롤이라는 음악 형식은 1960년대 청년 문화 형성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p15)

 

  니콜라스 쿡은 음악을 비축하고 축적할 수 있는 미적 자본으로 명명해서 해석하기도 한다. 영국의 교과 과정과 중등교육 수료 자격고시 요강이 기초를 두고 있는 작곡하기·연주하기·감상하기생산·유통·소비자본주의 모델과 닮았다. 이러한 작곡하기·연주하기·감상하기라는 구분은 구별을 영속화하고, 연대기적 순서를 만들어냄으로써 가치의 위계질서로 이어진다. 아무리 뛰어난 식견이 있다고 해도 작곡가나 연주가가 아니면 우리는 음악가전문가도 아니다. 청자는 소비자로서 경제적으로 떠받치는 문화 과정에서 본질적으로 수동적인 역할”(p30)을 수행할 뿐이다. 우리가 경외하는 음악이 자연의 산물처럼 보이는 것은 음악의 특별한 성질 가운데 하나이며, 음악은 인간이 만든 문화의 산물, 음악적 가치들은 보편적이기는커녕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산물”(p31)이다.

 

  19세기 초 중산계층(부르주아)이 경제적·정치적·문화적 영역을 장악한 시대의 예술은 부르주아 주체성의 형성의 발전이었고, “감정과 정서라는 내적 세계를 탐구하고 찬양했다.

  음악 문화에 스며든 권위의 관계 속에서 연주자는 작곡가의 의도(권위)에 따라 해석해야 했고, 이 권위주의는 지휘자와 관현악단 연주자들 간의 관계에서 오늘날에도 발견되고 있다.

  음악적 활동에 있어서도 역사가 서술되는 방식에 의해 여성은 소외되었다. 쿡은 19세기 중반까지의 음악계의 여성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 ‥‥‥ 요점은 여성이 음악을 연주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집에서 연주했다는 것이다. 오페라 하우스 같은 예외를 제하면 여성들은 아마추어로 돈이 아닌 친구들을 위해 연주했다. 그리고 작곡은 거의 하지 않았다. 심지어 경이적인 재능을 타고난 멘델스존의 손위누이인 파니 헨젤조차 몇 곡의 노래만 남겼는데(동생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그들간의 편지를 보면 그녀가 당대의 사회적 기대 ㅡ 여기에서 작곡은 포함되지 않았다 ㅡ 에 순응하도록 압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 모두는 일종의 악순환을 낳았다.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작곡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체질적으로, 심지어는 생물학적으로 그들이 작곡을 할 수 없다는 식의 본질론적인 가정을 만들어졌다. 작곡을 했던 소수의 여성들은 연주 기회를 얻기 위해 남성의 가명을 쓰는 예가 많았는데, 실실제 이름으로 발표하면 연주 기회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 공개적으로 작곡을 한 더 소수의 여성들은 승산이 없는 상황이었다. 가령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생을 산 프랑스의 작곡가 세실 샤미나드의 음악에 대해 (남성)비평가들은 그녀의 음악이 남성들의 '사내다움(virility)'이 없다고 불평했고 혹시 그런 사내다움이 있다면 여성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또 불평했다. 이런 식으로 여성은 역사책이 무시한 영역(연주, 특히 아마추어 연주)에서 활동했고, 역사책이 인정한 영역(주로 작곡)에서 활동하려는 시도는 대개 좌절당했다.(p130~131).

 현재까지도 자주 쓰이는 '여권신장'이란 말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가. 누군가 인정을 해주지 않으면 권리가 없다는 소리처럼 들리는 단어. 여하간 니콜라스 쿡이 말한 그 시대나 최근 시대나 그리 나아진 것 같지 않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997년까지도 오케스트라에 여성을 제외했는데, 하프 주자만이 예외였다. 남성 하프 주자가 사실상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여성이 있을 곳은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주방이다”(p132)라는 발언은 권위주의를 넘어 성차별 이데올로기까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 문장도 수정이 필요해 보이는데, 고급 주방도 남자 요리사들의 무대인 걸 감안하면, 카라얀은 여성은 본인의 집 주방이라고 했어야 더 정확했을 것 같다.

  본문 중 아래 글은, 이데올로기적인 이러한 양상을 잘 보여준다.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텍스트에 슈만이 곡을 붙인 연가곡집 여인의 사랑과 생애가 이런 경연장에서 어떤 효과를 가졌을지 한번 상상해 보자. 가사의 구성은 허구의 자서전 형식인데, 이상적인 남성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여 그의 아이를 갖고 이어 남편이 죽자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잇지 못한 한 여인의 이야기다. 루스 솔리는 선견지명이 있는 논문에서 이 작품을 남성의 판타지, “남성 문화의 목소리로 여성을 인격화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녀는 이 곡이 19세기에 연주된 전형적인 상황을 묘사했다.

 

실제로는 남성의 감정을 전달하지만, 곡은 누군가의 집의 좁고 친밀한 방에서 한 여성에 의해 지인들이나 구혼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들 앞에서 연주된다. 그녀는 직업적인 가수가 아니라 누군가의 딸이나 조카일 경우가 많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이 남성의 응시 아래 유순하고 정적인 것으로 놓이는 익숙한 문화적 수사법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우리는 그녀가 마치 스스로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듯 자신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이런 판타지의 효과를 위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이것은 수행적 의미의 극단을 보여준다. 가수는 가부장적 여성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상연하고 그렇게 되어간다. (실제로 그녀의 미래의 남편이 청중 속에 있다면, 연주는 약속의 성격을 띠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인의 사랑과 생애를 부르는 것은 <아프리카에 축복을>을 부르는 것만큼이나 정치적 행위가 된다.

진정으로 비판적인음악학의 역할은 정치적 내용을 폭로하는 것, 슈만의 연가곡집의 연주처럼 순진하고 악의 없이 보이는 것이 실은 이데올로기를 감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비관하여 음악에서 철수하는 것으로는 달성되지 않는다. 반대로 음악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 그것은 음악의 세속성을 인정하는 개입이며, 그와 관련하여 해석자를 어떻게 위치시켜야 할지 알고 있는 개입이다. (p 150~150)

 

 

  우리는 슈만 연가곡집 여인의 사랑과 생애과 관련하여 푸치니 오페라 나비 부인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그러한 비판 해석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니콜라스 쿡의 지적처럼, 우리의 예술 이해 방식이 미적 식민주의가 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합리적 가치 판단에 임할 필요가 있다. 1990년 로렌스 크레이머의 새로운 음악학에 대한 주장도 새겨 들어볼 만하다.

 ■  새로운 음악학의 주된 핵심은 음악이 세상으로부터 자율적이라는 주장, 특히 음악이 진리와 미의 절대적인 가치에 직접, 매개 없이 접근할 수 있다는 주장을 거부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근거가 있다. 하나는 절대적인 가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모든 가치는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또 하나는 매개 없는 접근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개념과 믿음, 앞서 경험이 모두 우리의 지각에 관련된다.) 직접적으로 알려질 수 있는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따라서 이데올로기적인 것이며, 이때 음악은 이에 봉사하는 것으로 올려둔 것이다. 비판 이론처럼 이데올로기의 폭로를 최우선의 목료로 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인음악학은 이제 음악이 사회적·정치적 의미로 가득하다는 것, 크레이머가 선호하는 용어를 사용하자면 돌이킬 수 없이 세속적(worldly)’이라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p 139~140)

 

 

  이 외에도 이 책에는 베토벤에 대한 여러 이야기(9번 교향곡에서 식자공이 잘못 인쇄한 악보를 보고 해석자들이 베토벤의 뛰어난 악상이라고 호평한 에피소드, 베토벤의 남성적인 음악적 특성은 일종의 억압된 동성애 공포로 보는 해석), 슈베르트의 동성애 설 등 비평가들 사이의 논쟁들, 클래식 음악을 상위에 두고 대중음악을 민속음악이라는 하위 범주에 포함하는 사례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된 로렌스 크레이머, 수잔 매클러리, 리처드 미들턴, 조지프 커만, 자크 아틀리 등의 새로운 음악학에 대한 책이 국내 출간이 되어 있지 않아 아쉬운데, 역자가 소개한 크리스토퍼 스몰 뮤지킹 음악하기(효형출판, 2004)는 챙겨봐야 할 저서일 거 같다.

 

새로운 음악학에 대한 논의는, 뛰어난 연주자이기도 했던 아도르노부터 해서 1980년대부터 활발했다고 하는데, 그러한 시류가 아들을 낳고도 남았을 30년이 지난 이 땅에서, 나는 오지 않을 엽서를 기다리는 형국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부터 논증하고 비판할 각오가 충분히 되어 있다는 데도! 언어 공부를 해라는 계시가 매일 내려오는구나.

 

 

 

우리가 믿고 좋아한다고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때, 객관적인 합리성도 당연 갖춰야 하겠지만 그 믿음에 대한 비판마저도 건네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기 도취와 강요일 뿐이다. 논쟁의 긍정성은 그런 신뢰 속에 가능하다. 그러한 때, 깨달음이나 진실 같은 것이 반짝하다가 해지듯 가는 걸 본다.

 

  Agalma

 

 

 

 

 

 

 

 

 

 

 

 

 

 

 

 

 

 

 

 

 

 

 

 

 

 

 

 

 

 

 

 

 

헝가리 출신으로 1956년 러시아의 침공 후 서양으로 건너온 아방가르드 작곡가 죄르지 리게티는 1973~4년에《샌프란시스코 다성음악》이라는 관현악 작품을 썼다. 비슷한 시기의 많은 그의 음악들처럼 이것 또한 밀도가 높고, 곤충이 기어가듯 꾸불꾸불한 선율 라인을 가진 작품이다. 그런데 리게키는 색다른 은유를 사용하여 자신이 불가해한 음 대 음 패턴의 음악을 어떻게 잘 정돈된 한계 내에 수용하려 애썼는지 설명하고 있다. "서랍 속에 난잡한 상태로 있는 여러 물건들을 상상할 수 있다……. 서랍 역시 제한된 형식을 갖고 있다. 그 안에는 혼돈이 지배하지만 그 자체는 분명히 제한된다."(p88)

시간을 종이처럼 접을 수는 없다. 앞에 나온 악절을 뒤의 것과 비교할 때, 실은 음악을 시간의 경과로부터 벗겨내어 시간적 경험을 상상적 대상으로 변모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악보가 필요한 이유다.
여기에는 음악의 기본적인 역설이 있다. 우리는 음악을 시간 속에서 경험하지만 이를 다루고, 심지어 이해하기 위해 시간으로부터 끌어내 왜곡(falsify)해야 한다.…… 상상적 대상과 경험을 혼동하는 것은 근절하기 어려울 만큼 일반화되어 있다.(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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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2015-03-26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시민을 모르는 대한민국국민도 있으시네요,,뭐 각자의 세계관이 있는거니깐요,,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작곡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체질적으로, 심지어는 생물학적으로 그들이 작곡을 할 수 없다는 식의 본질론적인 가정을 만들어, 작곡을 했던 소수의 여성들은 연주 기회를 얻기 위해 남성의 가명을 쓰기도 했으나 주류 세력인 (남성)비평가들의 질타 또한 감수해야 하는 난관의 연속이었다˝ 이런 문장은 지금은 폐기처분해야할 대상이 아닌가요?

그리고 리케티의 그 우울함,,참,,스탠리 큐브릭이 좋아할만 하죠 ㅋ

AgalmA 2015-03-27 00:02   좋아요 0 | URL
대선졌을 때, 그런 이야기들 있었죠. 우리가 이길 걸 확신했다고. 분위기가 분명 그랬다고. 세상은 내가 모르는, 감지못한 시스템도 가득하죠.
이론과 일반화에 빠지지 않도록 그래서 우린 늘 경계해야 하는 걸 겁니다.

옮긴 문장이 저자에게 오해를 줄 수도 있을 것 같아 본문을 다시 수정했습니다. 댓글 수정은 안하셔도 돼요.
여성 문제에 관련해서는 (호의든, 적의든) 이런 나열들은, 사실로서 주홍글씨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탠리 큐브릭 영화에선 시계태엽오렌지 음악이 제일 좋았고, 제일 잘 쓰인 듯 합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인상적 장면들도 신디 셔먼 스타일의 대형사진 전시로 꾸며도 멋질텐데...오디오가이드는 사진 앞에 가면 그 영화 주제곡을 들려주는 식으로. 의상과 세트도 설치해서 영화 속 장면 가상체험도 하게 만들고. (생각해보니 이 아이디어 좋은데?...하며 끝냅니다.)

나와같다면 2015-09-12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
유시민의 항소이유서를 읽었을 때의
그 전율을 아직두 기억합니다

AgalmA 2015-09-14 00:32   좋아요 0 | URL
그 나이에 참 멋진 글였죠.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며 수정한 예문이 있지 않았나 싶은데;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던 터라 확인이 어렵네요a;;;

에이바 2016-10-16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보고 뮤지킹 음악하기를 눌렀더니 이 책도 절판... ㅠㅠ 아 페이퍼 정말 알차고 좋아요. 망명 음악, 나치 음악에도 여성 음악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회 전반에서 지워진 여성의 목소리들은 되살릴 사료도 기억도 없다는게 정말 안타깝고 눈물이 나요. 내재화된 코르셋이 사회적 압력과 함께 여전히 삶을 조이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아 생각했던대로 얇지만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에요. (울면서 보관함에 다시 넣는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아갈마님께 또 반하는 날이에요...

AgalmA 2016-10-16 14:03   좋아요 0 | URL
저도 에이바님이 쓰신 망명 음악, 나치 음악 글 보고 정말 좋다 했는데^^...
구조적 문제를 보지 않고 여성들이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 라든지 유전적으로 열등하다 식 논리는 어느 분야에나 포진해 있어서 그런 인식이 자신도 모르게 내재화되어 있는 걸 우리는 알아채야 할 겁니다. 이 책은 그걸 알려줘서 좋았어요.
제가 에이바님께 반하는 게 더 많다고 싸움 걸진 않을께요ㅎㅎ!
 

전주영화제에서 비비안 마이어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었다. 그녀의 사진 230여점밖에 수록되어 있지 않아 아쉽지만 이 책은 꼭 소장하고 싶다. 미혼으로 보모로 일하며 50여년 묵묵히 수십만 장이 넘는 사진을 찍은 숨은 예술가. 지나친 비유가 아니라면 어떤 사진에선 나는 앙리 카르띠에 브레송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사라졌고, 경매 시장에서 그녀의 필름을 발견한 존 말루프만 횡재한 격이지만, 비비안 마이어가 이렇게라도 알려진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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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이야기
이경희 지음 / 열화당 / 2000년 9월
평점 :
품절


§ 뉴욕에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동(洞) 이름을 알았던 사람

장률 감독 <경주>(2014)에 이런 장면이 있다. 술자리에서 플로리스트가 동북아 세계 연구로 저명한 북경대 교수(박해일)에게 친근하게 말도 붙일 겸 자신의 관심사이기도 한, 북경시의 대표 꽃은 뭐냐고 묻는다. 박해일이 미안해하며 모르겠다고 답하자 동석해 있던 북한학 교수가 정색을 하며 말한다. “그게 뭐가 중요해! 북한의 국화(國花)는 알기나 해? 모르지? 여기 있는 사람 아무도 모를걸. 그건 바로 (탕탕, 탁자를 내리치며) 진달래꽃!”

나도 몰랐고 관심도 없던 사실이라, 재중동포인 장률 감독이 이 소재를 쓴 것에 내심 부끄러움을 느꼈다. 헌데 이 정보에도 틀린 점이 있었다. 원래 북한의 국화(國花)가 진달래꽃이긴 했지만 91년 김일성 주석에 의해 목란(남한:함박꽃나무)으로 바뀌었다. 장률 감독은 이 사실을 알고서 북한학 교수를 비꼬기 위해 이 장면을 넣은 걸까, 그도 놓친 걸까?

이 장면이 내게 남긴 것은, 자신의 관심사에 시종 몰두해 있다 해도 인간은 여타의 사실을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백남준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정확히 알았고, 그것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려고 한 예술가였다.

 

 

 

 

비디오 아트 창시자라는 백남준의 세계적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예술세계에 큰 흥미가 없었다. 백남준이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던 아방가르드 시대를 한참 지나 도착한 그의 모니터와 VCR 예술은 내게 혁신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새로움과 충격을 최고로 치는 문화 수용자도 아니어서, 내게 그의 작품은 어떻게 받아 들일까 늘 찜찜한 여지가 있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을 갈 때마다 중앙 홀에서 마주치는 백남준 《다다익선》 작품을 그래서 머뭇대며 지나쳤다. 이 작품은 건축가 김원 씨와 공동으로 2년 넘게 걸려 만들어졌다. 백남준 작품 중 가장 큰데, 개천절 10월 3일을 뜻하는 1003대의 모니터로 만들어졌고 1988년 설치되었다.

1992년 그의 회갑 년에 맞춰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백남준 비디오 예술 삼십 년 회고전을 준비할 때 일화가 있다. 백남준이 유치원 친구이자 이 책의 저자인 이경희 씨에게 국립현대미술관에 전하는 Fax(그 당시 가장 빠른 통신수단)를 보내며, 굳이 “막계동”이라고 언급한 것에서 그의 면밀한 성품을 살필 수 있다. 이경희 씨는 서울에 사는 본인도 모르던 “막계동”이란 주소지를, 중학생 이후 계속 해외에서만 거주한 그가 명시한 것에 신기해했다.(p103) 잡지와 신문을 가장 빠른 정보 매체로 여겨 집착하다시피 탐독한 백남준이 허투루 첨가한 것은 아니었다.

 

백남준 하면 국립현대미술관의 먼지 쌓여가는 모니터 기념탑을 떠올리던 나는, 여러 전시장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두루 접하면서 그동안 내 편견이 백남준이라는 예술가를 홀대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되었다. 또한 예술에 대해 한국인이 다분히 정적이고 심미만을 편애하고 있지는 않은지 고찰도 하게 됐다.

개념미술의 창시자이기도 한 뒤샹이 1917년 레디메이드(외부 세계에서 가져온 사물이 미술로 주장, 제시되는 미술 개념)로서 소변기 《샘》을 ‘전시’가 아닌 ‘진술’로서 예술화했듯이, 백남준의 예술작업들도 그 연대였다고 생각한다. 뒤샹의 그 시도가 당시 조롱과 논란거리였듯이 백남준의 다양한 예술 작업들도 국내에서 수용하기 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실질적으로는 그의 세계적 유명세 덕이 컸으리라 본다. 뛰어난 연주자임에도 불구하고 피아노를 치는 게 아니라 부숴버리고, 첼리스트 샤롯 무어맨과의 행위예술 《TV Bra》, 《TV Cello》, 바이올린을 줄에 묶어 질질 끌고 다니는 등 그의 초기 아방가르드 작업이나 이후 다양한 비디오 아트 작업들을 살펴보며, 최근 한국 예술계 작업이 그보다 더 뛰어난 성취들을 보여주고 있는가 하면 소수를 제외하고는 글쎄...

 

 

 

 

 

 

 

§§ 백남준을 알아본 사람 & 백남준의 말

우리에게는 번역가로도 유명한 김화영 교수가 ‘비엔날레 드 파리’에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를 접하고 해외의 평가와 함께 그의 말들을 기사로 써 서울에 알렸다고 한다. 김화영 교수는 백남준이 1984년 귀국 시 국내 TV 첫 출연 때 대담자 중 한 사람으로 출연도 했는데, 유감스럽게도 프로는 대중의 혹평을 받았다. 자신의 예술만큼이나 자유롭고 자 하는 백남준과 예술을 일종의 엄숙주의로 생각하는 한국 지식인들 사이의 조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결과라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의 신문 기고 글 《백남준의 말하는 방식》은 그런 점을 잘 짚고 있다.

 

“나는 그의 비디오 예술을 높이 평가하지 않지만 그의 말하는 방식만은 높이 평가한다. 그의 말은 솔직하고 억압적이지 않다. 때로 그의 말은 해학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억압적으로 느껴지지 않게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높은 경지에 이른 사람들이 잘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백남준은 그의 비디오 예술을 스스로 쇼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쇼는 구경거리라는 뜻이다. 구경거리라는 말을 그는 별다른 부끄럼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의 구경거리는 위락적이며 소비적인 구경거리가 아니라 세계를 새롭게 보게 한다는 점에서 충격적이며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반성적인 구경거리다 … 나는 할리우드에서 재미있는 쇼를 만들면 재미없는 쇼를 만든다는 그의 말은 그의 쇼가 비판적 쇼임을 입증하는 것인데 그런 말을 할 때도 억압적이 않고 진솔하게 느껴질 정도로 소박하다.

예술을 엄숙한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지배적인 사회에서 그는 아무 부끄럼 없이 예술이란 지루한 삶을 맛나게 하는 양념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은 서구 부르주아의 지루하고 권태로운 삶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삶이므로 예술은 양념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반론이 성립 안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백남준의 말에서 감동한 것은 말하는 방법의 자연스러움과 솔직함이다.

그의 말에 찬성하건 안 하건 그가 말하는 것을 듣거나 보고 있으면 즐겁다. 그 즐거움은 그가 비억압적으로 말하고 있는 데서 생겨나는 즐거움이다. 내 의견에 대해 뭐라고 말해도 좋다. 나는 내 생각을 그대로 말할 따름이라는 것을 그의 말은 드러낸다. … 그는 옳은 소리를 억압적으로 되풀이하지 않는다. 옳은 소리를 목청 높여 말하는 사람들의 말하는 방식은 억압적이다. 다시 말해 위선적이다. …

나는 누구나 비억압적으로 말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나는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 다시 말해 백남준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살고 싶다. 그것이 내가 꾸는 예술의 꿈이다.”(p44~46) 

 

 

 

김현 평론가가 격찬한 백남준의 생각과 말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다음은 백남준 회고전 《비디오 때, 비디오 땅》 카탈로그에 실은 그의 '비디오 예술론에 해당하는' 글이다.

 

 

“비디오에 대한 철저한 연구는 말[馬]에 대한 연구와 함께 시작해야 한다. …

약 삼천만 년 전, 유인원들은 야행동물이기를 그치고, 그들의 숲을 떠나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하였다. 그 순간부터, 가장 빠른 통신수단은 가장 빠른 운송수단만큼 빨랐다. 이 뜻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텔렉스와 초음속 콩코드기가 같은 속도라고 상상해 보면 될 것이다. 실제로 말은 텔렉스와 콩코드의 기능을 겸하였다. 오늘날 우리들 결정의 90% 이상이 당사자 간의 직접 접촉 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고려할 때 이러한 사실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

전화는 약 백 년간을 존속해 오고 있다. 그것은 우리 생활의 모든 면에 영향을 주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버드 대학의 카스 칼바에 의하면, 이 기간 동안 이 중요한 물건에 대한 논서가 단지 네 편만 저술되었을 뿐인 반면, 마야 어나 바빌로니아 어와 같은 사장(死藏) 언어에 관하여는 수없이 많은 연구가 행해졌다.

기원전 700년, 한 중국의 황제는 한 대신에게 백만 불을 주면서 하루에 1000마일을 달릴 수 있는 말을 구해 오라고 하였다. 그 대신은 온 왕국을 3개월 동안 뒤졌으나 헛일이었다. 마침내 그가 원했던 말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이미 늦은 일이었다. 그 말은 그 전날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은 울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눈물을 닦았다. 그는 오십만 달러를 죽은 말값으로 지불하고 시체를 대궐로 가져왔다. 당연히, 황제는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났다. 그러한 배반행위라면 중국 대신은 교수형에 처해질 것이었다.

그러나 그 대신은 황제에게 극도로 침착하게 말하였다. ‘전하, 사람들은 말할 것이고, 소문은 바람처럼 날아다닐 것입니다. 그들은 만약 전하가 죽은 말값으로 오십만 달러를 치렀다면, 살아 있는 말에는 얼마를 낼 것이냐고 말할 것입니다.’

생각했던 대로, 즉시 황제는 그가 원하던 1000마일을 달리는 말을 얻었다. 실제로, 한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가 나타났던 것이다. (기원전 290년 디앙 쿠오 추의 이야기에서)

정보기술이 개선됨에 따라 오보(誤報)의 기술도 보조를 맞추어 개선되고 있다. 거짓이란 항상 진실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며, 살인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가 덕담(德談)보다 더 흥미로운 것이다. 가짜 예술품의 발견은 새로운 천재 예술가의 발견보다 더 좋은 일면 기사가 된다. … 영혼의 신비로운 새(鳥)인 소문(所聞)은 호모 사피엔스가 발명해낸 최초의 라디오였다. 왜, 어떤 소문은 다른 소문보다 빨리 퍼지는가를 결정하는 어떠한 규칙도 없다. 마찬가지로 선전의 세계를 통치하는 어떠한 규칙도 없다.

소문은 신진대사의 제2의 작업을 구성하며, 거기에서는 신기함이 진실보다 더 중요한 요소이다. 모든 것은 단순히 작은 놀라움에 달려 있다. …

몽고 역사의 전문가인 일본인 이와무라 씨의 견해에 따르면 말은 기원전 100년경에 처음으로 길들여졌다고 한다. 기원전 1000년경 인간이 갑작스럽게 진보한 이유를 말(馬)을 ‘발명’한 데서 찾아볼 수 있는데, 그 말은 전쟁과 수송의 기본사항을 변화시킨 것만이 아니라 통신도 변화시켰다. 나는 청동기시대의 발전은 말의 길들이기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

어쨌든 지금 우리는 비디오(Video) - 비다(Vida) - 비디올로지(Videology) - 비디오광(Vidiots)의 ‘영광스러운’ 시대를 살고 있다. 다음에는 무엇이 나올 것인가. 가장 강렬한 통신력 PSI(Psychic Power), 즉 심령력이다. 자국의 목표를 위해 이 능력을 이용할 수 있는 국가는 지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될 것이다. (영국은 석탄의 힘을 이용한 최초의 국가였고, 미국은 원자력의 경우에 그러했다.) … (p99~102) 

 

 

백남준은 1990년 이어령 문화부 장관과의 대담에서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서양인에게 한국 문화를 팔기 위해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 활동을 옮기다 보니 그들에게 설득력이 있었던 모양이고, 결국 백남준이가 하니까 한국의 것으로 여길 게 아닌가. 한국에서 민족 예술이란 말이 유행인데, 좋은 예술을 하기도 어려운데 거기에 민족 예술이란 말까지 넣어서 어떻게 할 것인가. 민족이란 뜻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한국 사람이 하는 작업은 민족 예술인 것이다. 피카소는 스페인 민족의 미술을 고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선 스페인의 혼과 역사가 절로 배어 나온다.”(p213~p214)

 

 

 

§§§ 그리고 나는 ‥‥‥

내가 간과한 단점들과 오류도 분명 있겠지만, 최소한 백남준은 그의 말과 동등한 예술과 행동을 보여줬던 것 같다.

누나가 손뜨개로 만들어준 니트 바지의 무릎을 ‘어찌 되나 보려고’ 일부러 가위로 잘라봤던 아이.(p86)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면 학교를 안 가는 그에게, 너는 종이로 만든 아이냐, 가족들에게 놀림을 받아도(p96) 제 스스로 결정했던 학생.

귀국 때 첫 인터뷰에서 “…… 내 유치원 친구 이경희를 만나고 싶습니다.”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했던 자유로운 사람.

미술관으로는 악평 받았던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과 바보상자와 기계들을 ‘빛의 정원’으로 바꾸었던 예술가.

작품명을 ‘환경, 농업, 경제학, 인구, 예술, 교육, 민족주의, 영혼성, 통신, 건강, 교통, 건강, 교통, 연구와 개발, 자서전…’(p106) 등 딱딱하게 표현했지만, 인간 사회를 끝없이 살피던 휴머니스트.

그리고 우리들의 사유와 행동은 얼마나 자유로운지 레이저빔을 쏘며 묻고 있는 자.

故 백남준(1932~2006)

 

 

 ㅡAgalma

 

 

 

 

 

 

 

 

 

※ 이 책은 이경희씨의 술회적인 부분이 많아 백남준 예술에 대한 전문적인 책을 찾아보니 터무니없이 적어 놀랐다.   

    절판 책도 너무 많고… 앤디 워홀과 비견되는 예술가가 자국에서 이런 지경이라니.

    백남준 사망 이후 출판된, 부인 구보타 시게코 <나의 사랑, 백남준>과 이경희 씨 최근작 <백남준, 나의 유치원친구>는 가장 측근으로서 어떻게 다를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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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3-1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서 김소월의 시며..진달래꽃을 너무 애송하기에..벌어진 일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했어요. 한 때 경주는 저도 봤는데..왜..몰라.알지..하다가.헉~ 했어요.분명 Aglma님 말처럼 90년대 초 책엔 진달래로..그때문에 격는일들이..있었다는걸..이상문학상 수상작에 나와요.이 후 남북 회담등 90년후반엔 모란 이 기억에 남아있어요.
안다면 아는데..어...랏 싶은..뜨끔했네요.
아르코를 정기구독하는데..안그래도 이번 과천
현대미술관서 백남준의 작품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고..무엇이 그의 의지를 잇는것인가..하는
ㅡㅎㅎㅎ

AgalmA 2015-03-11 22:09   좋아요 1 | URL
그 소재로 소설도 있었군요. 목란(함박꽃나무)도 유의할 게 있더군요. 함박꽃이면 작약, 모란을 가리키고, 함박꽃나무는 산목련ㆍ개목련을 뜻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정확히는 모란이 아닙니다.
서울 시내권 전시만 살피다보니 저는 용인에 백남준 아트센타가 있는 것도 모르고 있었어요;

[그장소] 2015-03-1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가나뉘어 그렇지..목란과 모란 ..이러는게 아닐까요? 작약과 모란은 다릅니다만..같은 과이긴 하죠.. 종의 문제 같네요.
아.네..갑자기.제목 생각이 안나서.ㅎㅎ 인상적인 내용여서 기억하고 있었으면서. 너무 한번에 이것저것 읽고 썼나봐요. 줄거리는 기억하는데...제목이..기억안나요.일어나기싫어서..이럼..ㅠㅠ

AgalmA 2015-03-11 22:40   좋아요 1 | URL
네, 둘다 쌍떡잎식물 강인 건 맞는데, 모란은 미나리아재비목, 함박꽃나무는 목련과네요.
알라딘서재에 식물 마니아 있으면 좋겠어요. 이웃하고 맨날 이것저것 물어보면 좋을텐데ㅎ

읽었던 이상문학상 정리하신다고 들은 거 같은데. 천천히^^...각 회차 별로 1등 뽑아주셔도 재밌을 듯? 수상작과 개인적 취향의 차도 있지 않을까 싶으니까요

[그장소] 2015-03-11 23: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문학상은 정리중이고요. 열심히..
식물마니아 그러네요.대충 보면 이름만 알아도 어디냐 합니다. 모란이 미나리아재비목, 함박꽃나무..목련.
ㅎㅎㅎ풀이냐 나무냐..인데..ㅎㅎ
오늘따라 오타 심해서..계속 지우는 횟수가 더 많아요.

이상문학..ㅎㅎ 이미 대상작을 뽑아놓은걸..
제가 그럴 주제는 못되고요.취향은 극명하게 드러나겠네요..ㅎㅎㅎ
 

 

 

 

 

 

 

 

 

 

 

 

 

 

 

 

 

 

 §

 오늘은 음악으로 만든 마법의 방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해주세요.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며 이루 말할 수 없이 울적해지는 와중에 이 글을 올립니다.

 

 

 

우울

 

 

우울한 성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삶에 기쁨이 없어 어두운 우울 속에 고통스러워하기 때문에 그렇게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감각이 어떤 한도 너머까지 확장되었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접어들어, 다른 정신의 상태보다 훨씬 쉽게 닻을 내릴 수 있는, 영혼의 쓸쓸한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우울의 지배적인 특징은 숭고의 감정이다. 마찬가지로 그가 민감하게 느끼는 미 역시 그를 사로잡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경탄의 감정을 불어넣어 그를 감동시킨다. 그가 내부에서 향유하는 기쁨은 아주 복잡한데, 그렇다고 해서 그 강도가 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숭고에 의해 생겨난 감정은 매혹적인 미의 유혹보다 훨씬 매력적이다.

 

 

ㅡ 임마누엘 칸트 『미와 숭고의 감정에 대한 고찰』, Ⅱ, 1764

 

 

 

 

 

 

★ Library Tapes ★

 

 미니멀한 앨범 커버와 사진의 초점 흔들림이 그들 음악의 특색을 반영하는 듯하죠.

 

 Library Tapes [Höstluft] (2007)

 

 

음악이라기보다 음향에 가까운 Library Tapes의 투닥투닥 빗소리와 바람소리 속에, 당신에겐 어떤 상념이 지나갔나요?

 

 

 

 

 

 

 

 

★ Pearls Before Swine ★

 

 Pearls Before Swine 미국의 싸이키델릭 포크밴드로, 60년대 후반~70년대 초 활동했는데요.

 알라딘에도 그들의 음반이 다수 있더군요.

 

   

 

 

 

 

 

   

 

 

 음악을 들으며 그들의 멋진 앨범 커버를 좀더 감상해 보실까요?

 

 

 

 

 

 

 

 

[히에로니무스 보슈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 지옥편 이 사용된 앨범커버]

Pearls Before Swine [One Nation Underground](1967)

저기 중앙에 모자를 쓴 사람 모습의 얼굴이 보슈의 얼굴이라고 하죠.  자신의 얼굴을 그림 속에 넣는 건 화가의 특권 같은...

 

 

 

Pearls Before Swine [Complete Esp-Disk Recordings] (2006)

 

 

 

[피터 브뤼겔 <죽음의 승리> 가 사용된 앨범커버]

Pearls Before Swine [Balaklava](1968)

피터 브뤼겔의 <죽음의 승리>는 앨범 커버로 자주 이용되죠.

 

 

 

[존 에버렛 밀레이 <오필리어의 죽음>이 사용된 앨범커버]

Pearls Before Swine [Beautiful Lies You Could Live In] (1971)

 

 

 

 

[자크 다비드 <마라의 죽음> 사용된 앨범커버]

Pearls Before Swine [Constructive Melancholy: 30 Years of Pearls Before](1999)

이 그림은 김영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초판본 북커버로 쓰여서 제겐 그걸로 더 인상적...

얼마 전에 중고도서로 팔았는데, 소장용으로 갖고 있을 걸 그랬나 좀 아쉽기도?

 

 

 

 

 

 

 

 

 

 

 

 

 

Sopor Aeternus & the Ensemble of Shadows

 

 Sopor Aeternus는 라틴어로 "Eternal Sleep"(영원한 잠)이란 뜻입니다.

 커버 속 인물은 이 원맨밴드의 주인공  Anna-Varney Cantodea 안나 바니 칸토디아 입니다.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는 등 기행(奇行)의 신비에 싸인 뮤지션

 알라딘에 앨범이 제법 있어서 놀랐습니다.

 기괴한 곡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이곳 정서상 선곡은 차분한 걸로 골라 봤습니다.

 

 

 

 

 

 

 

 

 

 

Sopor Aeternus [Dead Lovers Saranbande: Face One] (2000)

 

 

 

 

 

 

 

 

 

 

 

정차식

 

 국내 1세대 인디밴드 레이니선(RainySun)의 리더이자 보컬이었던 정차식의 솔로앨범.

 국내에서 그로테스크 뮤지션으로 1인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뮤지션!

 

 

 

 

 

 

 

 

 

 

 

 

 

 

 

 

 

 

 

 

Rene Aubry ★

 

원래 예정은 Rene Aubry [Derives](1989)에서 Le Festin De L'ogresse (식인귀들의 향연)을 들려 드리고 싶었는데 유튜브에 음원이 없는 관계로, Rene Aubry [Steppe] (1990)에서 The Dark Wind를 선곡했습니다. 
Rene Aubry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아래 웹페이지를 참고하세요.

http://www.kangnmusic.com/rene_aubry.php

 

 

 

 

 

 

 

 

 

 

 

Rene Aubry [Steppe] (1990)

 

 

 

 

아름다움이란 마음의 상처 이외의 그 어디에서도 연유하지 않는다. 독특하고 저마다 다르며 감추어져 있기도 하고 때론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이 상처는, 누구나가 자기 속에 간직하여 감싸고 있다가 일시적이나마 뿌리 깊은 고독을 찾아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은신처처럼 찾아들게 되는 곳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아름다움에 바탕을 둔 예술은 미제라빌리슴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내가 보기에 자코메티의 예술은 모든 존재와 사물의 비밀스런 상처를 찾아내어, 그 상처가 그들을 비추어 주게끔 하려는 것 같다.

ㅡ 장 주네 『자코메티의 아틀리에』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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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03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악은 잘 모르더라도 보스와 브뤼헐의 그림을 표지로 한 앨범은 소장하고 싶어요. 명화 표지로 만든 앨범 커버가 제가 좋아하는 취향입니다. ^^

AgalmA 2015-03-03 20:57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저도 커버 땜에 엄청 소장하고 싶어했는데, 국내 구매는 어려워 아마존에서 해외구매까지 해야하나 고민하다 여러날 지나고 그래요^^;

에르고숨 2015-03-03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랑켄슈타인> 황금가지 판이 섭섭하겠어요.ㅎㅎ 그로테스크-우울-상처(자코메티)에 이어 내심 괴물(베이컨)까지도 기대했는데 말입니다. 이힝, 이렇게 제 취향을 은근히 밝히면셔, 크릉. 찬찬히 음악을 듣다가- 칸트의 저 문장을 갖기 위해 <아름다움과 숭고...>를 찾아 보관함에 넣었습니다;

AgalmA 2015-03-04 03:00   좋아요 0 | URL
! 황금가지 깜빡했네요. 좋은 지적 감사~ 도서관에 문예출판사 밖에 없어 이걸로 읽고 있자니 마구 화가 나네요ㅜ ... 이 좋은 작품이 이렇게밖에 번역이 안되다니...어휴.
베이컨까지는ㅎ; 그로테스크가 공포로 심화되지 않도록 나름 안배를...
언젠가 추의 미학으로 베이컨을 초빙해 볼까 합니다만. 뭐라고? 우리 베이컨씨를 그렇게 써먹다니! 할 수도 있겠죠;;; 베이컨씨야 숭고고 법이고 써먹을 데가 어디 한 두군데라야 말이죠. 이번에 출간된 베이컨 인터뷰집 읽어보고 싶더군요
칸트씨도 참 여기저기 안 들어가는 데가 없어서 꼭 완독하고픈 독서군이죠...고달픈 독서가들 신세여!

양철나무꾼 2015-03-04 0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완전 제가 좋아하는 성찬이군요. 마이클코넬리의 보슈로부터 시작해서 정차식에 르네 오브리까지...르네 오브리는 지금부터 26년전 수.작.때 B.G.로 썼었어요. 감회가 새롭네요~^^

AgalmA 2015-03-04 02:49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요즘 안 보이셔서 무슨 일 있으신가 걱정했잖습니까(걱정을 버럭으로;)! 코넬리 작품은 <시인>, 취재수첩 <범죄의 탄생> 밖에 안 읽어서 코넬리의 보슈 매력은 잘 모르겠어요ㅎ
르네 오브리...네, 예전에 은근 인기 많았죠. 프랑스 음악 경향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 <아멜리에> 음악담당 얀 띠에르상도 그렇고...아무리 생각해도 전 프랑스에서 태어났어야 했어요ㅜㅜ!

수이 2015-03-05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잠자코 하나부터 열까지 그냥 듣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