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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인생의 박물관

Depeche Mode "I Feel You" (http://youtu.be/iTKJ_itifQg ) 이 노래 오프닝에 나오는 자동차 브레이크 소리를 BGM으로 들으며 시작~


 


저도 오르한 파묵이 자주 쓰는 "교통사고"가 어떤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 적 있어요. 터키 현대화 시기의 상징처럼도 읽히고(<새로운 인생>에서 그걸 잘 말해 주고 있었죠. 고속버스를 그렇게 쓰다니...정말 신선했죠) 오르한 파묵이 세계를 만나면서 새로운 세계로 가며 새로운 해석을 하게 되는 하나의 기점을 소재화 한 게 아닌가 싶었죠. 하루키 작품에 지속적으로 나오는 모티프 "우물, 실종, 지하세계" 같이 말예요. 파묵의 <새로운 인생>은 그래서 특히 하루키 생각을 많이 나게 했어요. 

프루스트 리뷰 제목을 "감각의 박물관"이라 짓고 싶었는데, 이미 다이앤 애커먼 책 제목도 있고 여기저기 많이들 쓰니 흐음, 프루스트를 빛내줄 단 하나의 제목이 아니라 난감...흐엉. 그렇게 프루스트 이론들은 꽃을 피웠을 테고.
리처드 도킨스가 <지상 최대의 쇼> 책 제목을 원래  <그저 하나의 이론>으로 하려고 했다가 케니스 밀러가 이미 그 제목을 써 버려서 "그저 하나의 이론"을 <지상 최대의 쇼> 1장 제목으로 쓴 것처럼(<지상 최대의 쇼>가 백 번 낫지!!! ㅎㅎ) 더 멋진 제목을 찾을 수 있으려나요😋

오르한 파묵이 글로 쓴 세밀화를 말씀하시니 프로스트의 이 세밀화는 어떠신지요^^ 

*
일본사람들의 놀이에서처럼 물을 가득 담은 도자기 그릇에 작은 종잇조각들을 적시면, 그때까지 형체가 없던 종이들이 물속에 잠기자마자 곧 펴지고 뒤틀리고 채색되고 구별되면서 꽃이 되고, 집이 되고, 단단하고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이제 우리 집 정원의 모든 꽃들과 스완 씨 정원의 꽃들이, 비본 냇가의 수련과 선량한 마을사람들이, 그들의 작은 집들과 성당이, 온 콩브레와 근방이, 마을과 정원이, 이 모든 것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추며 내 찻잔에서 솟아 나왔다.

ㅡ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묘사 부분입니다. 단 몇 문장으로 요즘의 현란한 그래픽을 능가하는 표현력👍🏻 종잇장처럼 접히고 일어나는 꿈 속 공간을 멋지게 재현한 영화<인셉션>이 스쳐 가기도 하죠^^?
이 부분은  프루스트를 논할 때 흔히 말하는 "의식의 흐름"이라 말하지 않고, 저는 "의식의 꽃"이라고 말하렵니다.


*
물고기자리님 <모든 소설은 인생의 박물관> 페이퍼글에 대한 먼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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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22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물고기자리 2015-12-22 23: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식의 꽃이라 할만합니다^^ 이 한 문장만으론 알 수 없지만 프루스트의 문장이 파묵과 비슷한 것 같아요. 파묵에겐 좀 더 투박한 간절함이 담긴 것 같지만요. 프루스트 역시 시각적인 성향의 사고를 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네요. (전 아갈마님도 그런 성향이신 것 같습니다ㅎ) 이런 유형의 생각들은 저처럼 깊은 우물에서 모든 감각을 동원해 생각을 퍼올리는 사람들과는 확실히 다른 종류의 것이지만 뭔가 기질적으로 유사한 동종 의식을 때때로 느끼곤 해요. 방법은 다르지만 닿고자 하는 곳은 비슷하달까요.. 뭐, 말도 안 되지만 그런 느낌입니다..ㅎ

파묵의 `교통사고`는 아갈마 님이 말씀하신 것 그대로의 의미인 것 같아요. 터키 사회 자체와 그 배경 안에서의 개인적인 의미로도 생각해야 하는 것 같거든요. 브레이크가 말을 듣지 않는 상태에서의 사고이므로 시스템 안에서 요구하는 것들을 유지할 수 없을 때,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멈춰지지 않는 순간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어요. 개인적으로도 터키에서 작가나 예술가로 살아가는 건 그들의 통념으론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시스템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을 테고 그동안 나름으로 소중했던 것을 버림으로써 얻게 되는(희생절의 의미처럼) 자신에게 소중한 그 무엇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아니면 정말 끝이라는 의미로 해방되는 순간을 말할 수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 여러 의미들을 동시에 중의적으로 쓰는 것 같더라고요. 아갈마 님 말씀처럼 하루키의 우물이나 상실, 다른 세계처럼 말이죠^^

`박물관`은 제목에서 마음껏 쓰셔도 되지 않을까요?ㅋ 어차피 유일하긴 글렀으니 말이죠ㅎㅎ 먼댓글은 처음 받아봐서 댓글이 달린 줄도 모르고 있다가 어리바리했습니다.^^ 링크시켜주신 곡은 연결이 안 되어서 직접 찾아 들었는데 타이어가 마찰되는 것 같은 소리 때문에 고무 냄새가 나는 것 같아요. 강렬하네요ㅎ

AgalmA 2015-12-23 00:54   좋아요 1 | URL
시각, 청각, 촉감, 미각 아, 모든 감각이 총출동하고 있어서 제가 감각의 박물관! 하며 감탄한 것이죠ㅎ;
하지만 인식적인 것도 탁월해서 니체, 프로이트적인 통찰이 보이는 대목도 많아요. 리뷰로 잘 전달하고 싶은데 어려워요ㅜㅜ 왜 그렇게 많은 학자들이 프루스트를 인용했는가 이해되기도...

파묵과 하루키를 우리가 좋아하는 것도 어떤 동류 의식, 인식이 있어서란 생각이 들어요...그래서 참 반갑고 기쁘고...모두에게 모두가.

제가 요즘 pc로 글을 못 써서 매끄럽게 연결을 못 시키고 있어요. 불편을 드려 죄송;
도착할 건 도착하게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저도 아쉬운 게 한 둘이 아니네요ㅜㅜ


비로그인 2015-12-23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관련, 그리고 이웃 장르에 대한 섭렵이 비치는 글입니다.
그리고 문학을 진정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글이고요,

AgalmA 2015-12-24 04:41   좋아요 0 | URL
˝문학을 진정 사랑한다˝는 그 말씀이 무슨 상장같이 느껴지네요ㅜㅜ! 감사합니다.
흔적님의 치열한 섭렵에 저도 많이 배운답니다. 그 점도 감사드립니다.

비로그인 2015-12-24 07:26   좋아요 0 | URL
좋은 영향을 늘 느낍니다. 찬사는 저보다 agalma님이 들으셔야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어제는 밤늦도록 집안-거의 책-정리를 했고, 몇 권의 책과 이별 예정이거나 이별했고, 서재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카테고리를 만들었다. 놓고 있고 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불편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늘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환해졌다. 거울이, 겨울이 평생 나와 함께 하듯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르지.

어떤 일은 완수보다 시작(始作)이 조급함과 불안을 더 달래준다. 책을 읽는 일은 의무감이 아니라 떨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괴로움과 두려움보다 떨림이 더 많은 일, 독서. 나는 많은 책들 속에서 그런 연애의 떨림을 바라는 독서 난봉꾼ㅎ;;

묵은 포장을 풀고 작년에 신던 털신을 꺼내 신으며 발끝으로 전해지는 올겨울 온기를 음미했다. 날카롭고 낯선 새 신이 아니어서 편안함도 같이 전해졌다.
새해란 새 시작의 의미보다 뒤를 돌아보며 한때 혹은 계속 원해 왔던 과거를 다시 불러오려는 제의(祭儀)이자 구호(救護)의 재정립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프루스트가 ˝잃어버렸던 시간을 풍요롭고 창조적인 시간으로 바꾸˝(민음사 판, p15)려 한 이 책의 주제처럼 말이다.

민음사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을 읽으며, 국일 미디어에서도 눈길이 멈췄던 대목에서 멈췄다. 멈추고 나서 그 사실을 떠올렸다는 게 더 정확하다. 언제나 내 눈이 밑줄이다. 번역이 천차만별이어도 이 문장이 담고 있는 어떤 진실은 원석처럼 거기 있었다. 누군가 알아보고 깎고 다듬기 전까지 원석은 빛나지 않는다. 보석은 지고한 손길에서 탄생하고,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기쁘게 받는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모두가 나눠 가질 수 있는 행복이며, 인간의 발명 중 가장 멋진 일 중 하나다.


*
잠든 사람은 자기 주위에 시간의 실타래를, 세월과 우주의 질서를 둥글게 감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면서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생각해 내기 때문에 자신이 현재 위치한 지구의 지점과, 잠에서 깨어날 때까지 흘러간 시간을 금방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순서는 뒤섞일 수 있으며, 끊어질 수도 있다. (민음사, p19)

**
잠든 인간은 시간의 실을, 세월과 삼라만상의 질서를 자기 몸 둘레에 동그라미처럼 감는다. 깨어나자 본능적으로 그것들을 찾아, 거기서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지점과, 깨어날 때까지 흘러간 때를 삽시간에 읽어 내는데, 종종 그것들의 열(列)은 서로 얽히고 끊어지고 한다. (국일 미디어, p10)



현실적으로든(읽다가 자게 만든다) 소설적으로든(나도 불면! 나도 몽상! 공감하게 만든다) 모든 불면자의 친구, 프루스트. 그가 회고하는 방들, 밤들, 사람들.
잃어버린 창조의 시간을 꿈꾸며 잠 못 드는 이가 마술사가 되는 겨울밤들을 상상해본다.
이 순간 나는 조금 행복하다. 아주 어둡고 추운 밤에도 어떤 꽃은 피어 있다. 내 한밤의 꿈처럼.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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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바 2015-12-17 20: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 파이팅이요. 저도 스완네 집 쪽으로는 읽었는데 다음 권부턴 책장에 있어요. 교수님이 완역해주시길 바라고 또 바랄 뿐... 이번에 나오는 3부도 일단 사둘거예요. 그래야 4부도 얼른 나올 것 같다는 생각...ㅎㅎ

AgalmA 2015-12-17 21:50   좋아요 1 | URL
최근에 민음사판 5권, 6권 나왔더군요. 우리 박차를 가해야 될 때가 왔어요^^

해피북 2015-12-17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는 `떨림이 중요하다`는 말이 깊이 공감되는 저녁입니다. 늘 읽어야하는데 하는 생각으로 책장에서 방치된지 오래인데 저도 먼지 좀 털어줘야겠어요. 으흐흐^~^

AgalmA 2015-12-17 21:55   좋아요 1 | URL
책 하면 뭐니뭐니 해도 떨림 아닙니까. 만남부터 읽는 내내 읽고 나서도^-^
다들 집에 프루스트 책들 가지고 있잖습니까ㅎㅎ 연말은 늘 프루스트 먼지청소 주간~~
올해 제 독서계획에 프루스트 완독이 2순위였는데 이렇게 흘러가게 할 순 없다! 작정했지요. 새 번역판 1권이라도 봐야지! 하면서^^ 읽다보면 또 2권, 3권 그렇게 이어질테고 :)

2015-12-17 21: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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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7 2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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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7 2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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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7 21: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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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7 2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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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7 21: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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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7 21: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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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7 22: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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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7 2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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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7 22: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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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7 2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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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7 2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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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7 22: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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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17 22: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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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2-18 04: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차를 가하려면 일단 말부터 ...있어야..할텐데..그쵸?

AgalmA 2015-12-18 05:45   좋아요 1 | URL
책이 말 아니겠습니까^^ 五車書라는 말도 있으니 통 크게 수레를 가져와야 할까요ㅎ;;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정도면 수레급이긴 하죠ㅎㅎ 프루스트 평전도 샀다가 감당 못하고 보냈지요;;
아, 생각해보니 민음사 번역이 다 안 나온 걸 두고 말이 없다 말씀하신 게지요^^; 그동안 묵혀 둔 국일미디어를 읽으면 되지 싶어서 저는 조급하지 않던 중ㅎ;; 어차피 두 번역을 다 읽어야겠다 했으니까요.
감기는 좀 나으셨는지. 그장소님 약골이신 거 알고는 있었습니다만 킁킁))

[그장소] 2015-12-18 05:52   좋아요 0 | URL
에구..본전 못찾을 곳에서..ㅎㅎㅎ
한번만 봐 주십쇼~^^;;;
수레고 말이고 놓고 줄행랑 36계 할랍니다..!
저도 잘 익혀먹을까..녹여먹을까...
남는게 시간이라..
바쁜 분들껜 죄짓는 말인데..ㅋㅎ...
감기 약 먹고 칠일 안먹어도 일주일..이런다..
! 농담이고요..약이 영..고때뿐..ㅠㅠ

AgalmA 2015-12-18 06:52   좋아요 1 | URL
취향 차이일 뿐인데, 뭘 그렇게 땀을;;; 장르 소설 열혈 탐독에는 제가 땀을 좀;;;;
정말 그렇죠. 약은 먹으나 안 먹으나 비슷하고 주사가 좀 빠른 듯도 하고...앓고 난 뒤의 개운함을 어서 맞으시길 빌 뿐입니다/
귤과 따뜻한 차가 제겐 감기 마들렌^^

[그장소] 2015-12-18 06:33   좋아요 1 | URL
주사 이번엔 다들 주사를 권하는데 몸이 붓고있을땐 주사도 함부로 못맞아서..상처가나면
안된다고..침도 뭐도..암튼 그렇다네요..면역이 약해서..ㅇㄹㅈ
차는 종일..마시고..카페인 금지..중..ㅎㅎ;
저야 취향존중!^^
얼른 깨운해지고 시포요~
축농증인분들 어찌 사는지..참..ㅠㅠ;
감기 조심하세요 ^^♡

AgalmA 2015-12-18 06:51   좋아요 1 | URL
면역력 강화 음식을 찾아봐야 하는 우리ㅜㅜ...운동은 또 얼마나 안 하는지(저만은 아니죠ㅎ;;;? 이봐, 어디서 도매질이야! 하셔도 됩니다;;;)
카페인은 탈수 증상을 만드니 감기엔 정말 안 좋죠. 몸을 건조하게 만든니까...
크리스마스 케익을 아무 맛도 못 느끼고 드시면 안될 텐데 어쩌나요;;; 어서 쾌차~ 으쌰으쌰~~🍰

[그장소] 2015-12-18 06:56   좋아요 1 | URL
크리스네랑 마스네 생일은 같이 축하 안할려구요.
관례처럼 다들하니 인사는 하지만. .저한텐 별 의미없어요.. (카톨릭은 ..이제 그만 ㅋㅎ)
걍 빨간날...
집에서라도 좀 움직움직거렸던 때가 있었는데..
멸치근육이라도 좀 만들어보려구...걍 살기로했어요.
여기서 면역강화를 핑계로 먹기를 더 잘함..생계에 빨간불들어올 지도 모름..엥겔지수 높다고..ㅎㅎㅎ

AgalmA 2015-12-18 06:58   좋아요 1 | URL
언제나 생일축하는 핑계고 맛난 거 먹는 건수 올리는 거 아니던가요. 어떻게든 엥겔지수는 강력ㅎㅎ

AgalmA 2015-12-18 06:59   좋아요 1 | URL
근육 그장소님 상상이 안돼😅 하지만 건강한 미소는 상상됨. 어서 쾌차하세요 :)

[그장소] 2015-12-18 07:03   좋아요 1 | URL
계란한판 채우고 생일 안챙기고 있어서..
우핫~아무날도 아닌 날로 조용히지나가 주는게
선물인데...^^
Agalma 님! 고요를 침묵을 2종셋트 선물로 받아요..그날은..ㅎㅎㅎ

AgalmA 2015-12-18 07:08   좋아요 1 | URL
이장욱 시집<생년월일>이 문득 읽고 싶어지네요ㅎ

[그장소] 2015-12-18 07: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이~곧 접수토록하겠나이다~^^
이까짓 감기 ..ㅎ,,ㅎ ! ㅋㅋㅋ
고마워요 ~^^Agalma 님!!♡

[그장소] 2015-12-18 07: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생년월일

 

                          이장욱

 



  이전과 이후가 달랐다. 내가 태어난 건 자동차가 발명되기 이전이었는데, 해안도로를 달리다가 쾅! 가드레일을 들이받은 뒤에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더군.

 

  수평선은 생후 12년 뒤 내 눈앞에 나타났다. 태어난 지 만 하루였다가, 36년 전의 그날이 12년 전의 그날이다가,

 

  수평선이다가,

 

  저 바다 너머에서 해일이 마을을 덮쳤다. 바로 그 순간 생일이 찾아오고, 연인들은 슬픔에 빠지고, 죽어가는 노인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케이크를 자르듯이 수평선을 잘랐다. 자동차의 절반이 절벽 밖으로 빠져나온 채 바퀴가 헛돌았다.




- 시집, 생년월일 중 수록


AgalmA 2015-12-18 07:51   좋아요 2 | URL
전 역시 이장욱 소설가보다 시인이 더 좋더라는 :)


[답시]

자동차 안에서*
ㅡ불한당들의 세계사 5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낡은 자동차 안에 쪼그리고 앉아
라디오 채널을 돌리며
남쪽으로 가는
도로를 찾아보았네.

몇몇은 고독을 이기지 못해 엽서를 써서
우리에게 최종 결정을 내리라고 요구했지.

몇몇은 산꼭대기에 앉아 있었어.
밤에도 태양을 보기 위해서였지.

하나의 인생이 결코
사적이 아님이 확실한 곳에서도
몇몇은 사랑에 빠졌지.

몇몇은 어떤 혁명보다도
더 극단적인 각성을 꿈꾸었지.

몇몇은 세상을 뜬 영화배우들처럼 앉아서
이 세상에 살아남을
올바른 순간을 기다렸어.

몇몇은 자신들의 일을 위해서 죽지 못한 채
그냥 죽어갔어.

우리는 아무 말 없이
낡은 자동차 안에 쪼그리고 앉아
라디오 채널을 돌리며
남쪽으로 가는
도로를 찾아보았네.


(자동차 안에서* :볼프 본드라체크의 시. 이 시를 읽고 읽노라면 나는 마음이 편해진다. 아름다운 노래를 듣듯이, 나는 자주 이 시를 내 두 눈으로 쓴다. 내 몸이 갈 수 없는 곳에도, 아름다운 노래는 여전히 간다. 가서는 또 다른 노래가 되고, 노래가 되지 못한 것들은 별이 되거나 나뭇잎이 되어, 여전히 이 세상의 풍경이 일부가 되어, 나를 흔들고 내 속의 또 다른 노래를 흔든다.

박정대 <단편들> (세계사, 1997) 중


두 시인 사이는 별로 안 좋은데 우리끼리 이러고 있는 건 아니겠지ㅎㅎ;;;

[그장소] 2015-12-18 0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작가 시를 읽은지 얼마 안되서..소설을 먼저 알았거든요.
시를 더 잘 써요..확실히..^^
느낌도 좋고..

[그장소] 2015-12-18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안좋은데요?난 그런건 몰라서..둘이 싸울일이..있었나요?
그러든지 말든지..시로는 뭐 화해시키죠..화합의 장 이랄지..
우리끼리 파티랄지..^^

AgalmA 2015-12-18 07:59   좋아요 1 | URL
제 농담이었어요ㅋ;;

[그장소] 2015-12-18 08:00   좋아요 0 | URL
아...저 혼자 밥상차려 먹은거군요..그러니까..
아침 일찍 부지런 떨어서 ㅋㅋㅋ
덕분에 배 두둘기며 띵가띵가..놀아야겠어요~^^

AgalmA 2015-12-18 08:06   좋아요 1 | URL
그러나 저는 문득 치명상을...입고 이젠 자야겠어요.
좋은 하루 되시길. 그장소님. 뮤즈 같은 친구님 :)

[그장소] 2015-12-18 08:10   좋아요 1 | URL
해뜨니 환함을 덮고 주무시구려~
치명상은 눈감았다 뜨면 사라지고 말터~^^
잘 자요~(성시갱)
잠옷을 입자 ㅡ (이 제목이 맞던가?)ㅎㅎ
또 봐요!♡

물고기자리 2015-12-18 15: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 읽은 책에도, 스쳐 지나가며 잠깐 본 어느 영화의 한 장면에서도 이 책 이야길 하더라고요. 1Q84에선 아오마메가 모처에서 은신해야 했을 때, 이 책을 완독할 기회일지도 모른다며 읽기 시작하는데 하루키가 말하는 이 책의 감상은 제가 카프카를 읽을 때의 느낌과 거의 흡사해서 깜짝 놀랐어요^^

자꾸 눈에 들어오는 건 읽을 시기가 가까워졌다는 뜻인 것도 같은데,, 조만간 제게도 기회가 오긴 오겠죠..ㅎ

AgalmA 2015-12-18 20:06   좋아요 1 | URL
자꾸 내 눈에 띈다는 것은 내 관심이 행동으로 진입하려는 조짐 아닐까요. 관심 없음 소 귀에 경읽기ㅎ;; 하지만 관심은 점점 쌓여서 결국 펼치게 만들고... 우리가 우연을 필연으로 느낀다? 만든다? 그렇게 되듯 말예요.
1Q84 1,2권만 읽고 기억에서 희미해져 버렸는데 그런 내용이 있었군요. 읽었던 책 얘기는 한때 사귀고 헤어진 연인의 몰랐던 혹은 공감하는 얘길 듣는 거 같아 기분이 이상해요...싱긋
 

 

 

 

 

 

 

 

 

 

 

 

 

 

 

#

  도스토옙스키의 증기기차 같은 문장을 재밌게 읽다가 갑자기 뭔가 두고온 물건이 생각난 듯이 시큰둥해졌다. 책을 덮고 다른 이동수단을 생각했다. 영화라는 수상스키도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따뜻한 난로 앞에서 웅크려 있어도 되는 책이 더 낫지, 했다. 10초도 안 걸려 정반대의 문(文)을 열고 프루스트를 탔다. 그런데 책장 너머 발터 벤야민이 자꾸만 지나갔다. 내가 프루스트를 읽고 있는지 발터 벤야민을 읽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아니, 내가 발터 벤야민을 원했던 건가, 의심했지만 단순한 내 착각만은 아니었다.

  페터 손디는 프루스트는 시간으로부터의 도피며 벤야민은 시간으로부터의 과거 탈환이라고 너무 매정하게 말했지만, 내가 흥미로운 건 그들이 어린이 시점으로 대상을 바라보고 묘사하는 방식의 유사성이다. 그리고 그 문체들은 언제나 나를 미소짓게 만든다.

 

 

 

 

 

  § 지극히 주관적인 Aglama 비교 - 침대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 1

 

  나는 베개의 예쁜 볼, 토실토실하고 싱싱한 우리들 어린 시절의 볼과 같은 그 볼에 나의 볼을 살짝 댄다. … (중략) … 이러한 방에서, 내가 눈을 치뜨고, 근심스레 귀를 기울이고,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심장을 두근거리면서 침상에 누워 있는 동안, 나의 사념은 정확하게 방 그대로의 꼴이 되어, 그 거대한 깔대기 모양의 천장 꼭대기까지 가득 채우려고 여러 시간 동안 흩어지기도 하고, 위로 늘어나기도 하면서 몇몇 밤을 잠 못 이루어 괴로워하던 끝에, 드디어 습관이 커튼의 빛깔을 변경시키고, 괘종을 침묵시키고, 본체만체하는 인정머리 없는 거울에 연민의 정을 가르치고, 쇠풀 냄새를 깨끗이 쫓아 내진 못했을망정 그다지 코를 찌르지 않게 하고, 눈에 거슬리는 천장의 높이를 현저하게 감소시키는 것이었다. 습관! 능란한 솜씨지만 매우 느릿느릿한 이 지배인은, 우선 우리의 정신을 몇 주일 동안 임시 배치 속에 가두어 두는 것으로 시작한다.… (중략) … 몸을 마지막으로 뒤치고, 확실성을 주관하는 천사가 모든 것을 나의 주위에 정착시켜, 나를 나의 방안, 이불 밑에 누이고, 서랍 달린 옷장, 책상, 벽난로, 거리로 난 창문, 두 개의 방문 따위를 어둠 속에서 대략 제자리에 놓았던 것이다.

 

 

  발터 벤야민『베를린의 어린시절』 

 

「열」

 

  체온을 재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완전히 나 혼자 있는 것을 너무 좋아했는데, 베개를 갖고 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덕과 산이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시기에 나는 베개로 만든 산등성이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그 산등성이들로부터 생겨 나오는 힘과 결탁했다. 그리하여 종종 그러한 산면 한가운데 동굴이 입을 떡 벌리고 있는 것처럼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그러고 나서 머리 위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뻥 뚫린 저 어두운 심연에 귀를 가져다 댄 다음 안의 침묵에 대고 종종 뭔가 말을 하면 그것이 이야기가 되어 되돌아 나왔다. 가끔은 손가락을 온갖 모양으로 뒤섞어 연극의 한 장면을 연기해 보기도 했다. 또 손가락을 전부 합쳐 '백화점'을 세우기도 했다. 중지 두 개로 만든 '카운터' 뒤쪽에서는 두 개의 새끼 손가락이 손님에게-즉 나에게-열심히 대꾸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 그러한 즐거움도 줄어들고, 그와 함께 손가락들의 연기를 감독할 힘도 약해져갔다. 결국 나는 호기심도 없이 손가락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을 뿐이었는데, 그것들은 불이 집어삼키고 있는 도시의 주변 지역을 어슬렁거리는 게으르고 수상쩍은 불량배들을 흉내내고 있었다.

 

 

 

 

 

  § 지극히 주관적인 Aglama 비교 - 어머니가 있는 마법의 나라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 1

 

  프랑수아즈로 말하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이해할 수 없고도 쓸데없는 구별을 바탕삼은, 오만하고도 풍성한, 세밀하고도 강경한 법전을 소유하고 있었다(그 때문에, 이 법전은 영아 학살이라는 잔인한 법규와 나란히, 염소 새끼를 그 어미 젖 속에 넣고 끓이거나, 동물의 넓적다리 힘줄을 먹는 일을 지나친 동정심으로 금하는 고대 법전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우리가 내린 어떤 분부를 막무가내로 하지 않겠다고 프랑수아즈가 갑자기 고집부리는 것으로 미루어 판단해 보건대, 이 법전은 프랑수아즈의 주위 사람들이나 마을의 하녀살이 중의 어떠한 것도 그녀에게 암시해 줄 수 없었던 사회적인 복잡성과 사교계의 세련성을 미리 알고서 꾸며진 듯싶었다. 따라서 누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곡해하기 쉽고도 우아한 아주 오래된 프랑스의 과거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옛날 궁정 생활이 영위되던 흔적이 남아 있는 오래 된 저택을 이웃해서 화약 제조소가 있고, 테오필 성자의 기적 또는 네 아들 에몽을 나타낸 정묘한 조각의 주위에서 노동자가 일하는 공장지대 안에, 그러한 옛 프랑스의 과거가 있듯이. 이 법전의 조문에 의하면, 프랑수아즈가 나 같은 하찮은 인물을 위하여 스완 씨 면전에서 엄마를 방해하러 간다는 건 화재가 난 경우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서는 거의 있을 수가 없는 일…(중략)…프랑수아즈는 5분 남짓 봉투를 물끄러미 보았다. 마치 용지의 조사와 서체가, 곧 내용의 성질을 알려 주고, 법전의 몇 조에 비추어 봐야 하는가를 그녀에게 가르쳐 주기라도 하듯이. 그러고 나서 프랑수아즈는, '이러한 자식을 둔 부모는 얼마나 불행할까!'라고 말하는 듯한 단념하는 모양으로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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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자기 전에 어머니의 입맞춤을 어떻게든 받기 위해 쪽지를 전하려는데, 하녀 프랑수아즈 마음 속에 있는 오래된 프랑스 마을과 법전을 통과해야 하는 시련이라니ㅎㅎ.

 

 

  발터 벤야민『베를린의 어린시절』 

 

「반짇고리」

 

  우리는 '잠자는 미녀'를 찔러 백 년 동안 잠에 빠지게 했다는 물레 가락이 어떠한 것인지는 더이상 알지 못했다. 하지만 백설 공주의 어머니인 왕비가 눈이 내리는 날이면 창가에 앉아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도 바느질감을 갖고 창가에 앉아 계시곤 했다.

 

 

 

 

   

   § 지극히 주관적인 Aglama 비교 - 아침 풍경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스완네 집 쪽으로 1

 

  그것은 시골 방이었다 … (중략) … 그 냄새는 과수원에서 찬장으로 옮겨진 그해의 모든 맛있는 젤리, 잘 익은 맛있는 젤리다. 철따라 변하지만, 세간과 하녀처럼 그 집의 특유한 냄새, 따끈한 빵의 보드라움으로 서리의 짜릿함을 조절하는 냄새, 마을의 큰 시계처럼 한가로우나 시각을 어기지 않는 꼼꼼한 냄새, 빈둥거리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질서 있는 냄새, 돈담무심하면서도 선견지명이 있는 냄새, 세탁물의 냄새, 아침 일찍 일어나는 냄새, 신앙심의 냄새, 평안을 즐기고 있는 것같이 보이지만 실은 불안의 증가밖에 가져다 주지 못하는 평안을 즐기는 냄새, 그리고 거기서 살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는 이의 눈에는 詩의 큰 저수지 같아 보이나 실은 산문적인 것밖에 즐기지 못하는 냄새. 그러한 고모의 방 공기는 매우 영양이 되는, 자양분이 많은 침묵의 미묘한 구수한 냄새로 포화되어 있어서, 나는 항상 일종의 왕성한 식욕과 더불어 그곳으로 가곤 하였는데, 부활제 전 주일의 아직 쌀쌀한 이른 아침에는 더욱 그러했다.

 

 

 

  발터 벤야민『베를린의 어린시절』 

 

 「겨울날 아침」

  난로에 불이 지펴졌다. 이내 불꽃은 마치 석탄으로 가득해 옴짝달싹할 수 없는 너무나도 작은 서랍에 갇혀 있는 듯한 모습으로 내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 검게 그을린 따뜻한 과일, 막 여행에서 돌아온 가까운 지인처럼 여전히 친숙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변해버린 과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난로의 열이라는 어두운 나라를 순회하는 여행으로, 그로부터 사과는 이날 하루가 나를 위해 준비해준 모든 것의 향기를 뽑아냈다.

 

 

 

 

 

 

 

 

 

 

 

 

 

 

 

 

 

 

 

 

 

[발터 벤야민에 대해 ㅡ 지나간 것으로부터 희망의 불꽃] - 페터 손디

 

프루스트는 시간으로부터 완전히 도망치기 위해 과거를 찾아 나선다. 그러한 노력은 오직 과거가 현재와 일치해야만 실현될 수 있는데, 유사한 경험들만이 그것을 가져올 수 있다. 그것의 진정한 목표는 온갖 위험과 위협으로 가득 찬 미래-그것의 궁극적 위험은 죽음이다-로부터의 도피이다. 이와 반대로 벤야민이 과거에서 되찾으려고 하는 것은 다름아니라 미래이다. 그의 기억이 되찾으려고 하는 거의 모든 장소는 「베를린의 어린 시절」의 한 곳(「수달」)에서 표현하고 있는 대로 "앞으로 다가올 것의 흔적들"을 담고 있다. 따라서 그의 기억이 어린 시절의 사람들을 "미래를 예언하는 소명을 다하고 있는 모습"(「두 개의 수수께끼」)으로 바라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루스트는 과거의 메아리를 주의 깊게 듣는다. 벤야민은 어느새 과거가 되어버린 미래의 첫 음을 듣는다. 프루스트와 달리 벤야민은 시간성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없다. 그는 사물들을 탈역사적인 정수精髓 속에서 보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 대신 그는 역사적 경험과 불현듯 찾아오는 깨달음을 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거, 하지만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열려 있는 과거로, 그리고 미래를 약속하는 과거로 되돌려 보내진다. 벤야민의 시제는 완료형이 아니라 온갖 역설로 가득 차 있는 미래완료형인 것이다. 미래인 동시에 과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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