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토텀
찰스 부코우스키 지음, 석기용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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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도 있음~ 우리나라 나이브한 백수 소설들 이 소설을 보고 반성해야 한다. 절절해서 눈물이 나올 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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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7 0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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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면,

한 예로 나는 Astor Piazzolla를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것이다.

감상이 아니라 경험하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Astor Piazzolla는 탱고를 감상하게 만든 선구자이지만)

그러나 이 기준을 이미 써먹은 사람이 있다.

왕가위 감독은 영화 춘광사설(해피투게더)에서 모두에게 경험하게 했다.

 

ㅡ 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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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 2014년 15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의숲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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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김애란에서 황정은으로 이어지는 흐름...한국인이 살아오고 있는 시대를, 자신을 대신해 말해주길 바라는 지점을, 이 단아한 사람들이 말하고 있고 그 진행방향과 나란히 가고 있다는 건 현대적일까, 현재적일까, 기록적일까.

늘 새로운 것을 원하지만,

상상보다는(짊어질 체력도, 용기도 없으니) 곡진한 현실에 더 무게중심을 두는 한국문학의 추는 백년 뒤에도 여전할 것이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부르주아가 탐미하던 소수 문학이 아닌 작은 사람들을 대신해 울어주는 것이 문학의 깊은 뿌리니까. 사실 문학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다. 대중 문화들 전반이 그러하니까. 이 좁은 나라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말하기엔 너무나 획일적이고, 폭력적이며, 이기적인 기운이 있다. 그들은 시는 이런 것이고, 소설은 이런 것이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배우고 읽는다.

도대체 그것은 무엇일까. 깊은 피해의식....하지만 이건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그 시대를 고스란히 드러내어 말하는 것이 100년 뒤에는 그 독특함으로 인해 계속 사랑을 받는다. 고전문학이 여전하듯이. 그러나 한국에서 100년 전 한국문학을 누가, 얼마나 자발적으로 읽고 있는지...

그럼에도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가 현재까지 가장 오래 남을 수 있었다는 건 매우 흥미롭다. 서양에선 위기가 오면 언제나 이 시대의 감수성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돌아갈 수 있는, 새로 출발할 수 있는 시원始原은 어디있지?. 식당만 가도 그들은 드라마로 채널을 돌리고, 술집에선 허송한 이야기만 오간다.

단지 이 모든 게 취향의 문제인가......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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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들 - 윌리 로니스의 사진 그리고 이야기들 내 삶의 작은 기적
윌리 로니스 지음, 류재화 옮김 / 이봄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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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루시다』에서 롤랑 바르트는 어떤 한 장의 사진에 관해서는 이야기 할 수 있어도, 사진의 본질에 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 속에 들어있는 찌르는 메시지 "푼크툼"이란 지극히 개인적이고 유일무이하다는 것이다.

 

 

 

 

『그날들』의 사진작가 윌리 로니스는 자신의 "푼크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과 멘트는 크리스마스에 펼쳐보는 카드처럼 따스하고 아름답다. 무엇을 볼 것인지 강요하지 않는 사진의 정직성과 순수성이 곳곳에 배여 있다. 당신만의 또다른 "푼크툼"을 발견하도록.

 

 

ㅡ Agalma

 

 

 

 <그날들>(2015)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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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의 제왕
이장욱 지음 / 창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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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욱 『고백의제왕』에서 해설자 권희철씨가 블랑쇼를 초대했고,

작가의 말에서도 나는 블랑쇼가 유령처럼 끼어드는 걸 느꼈다.

 

 


 

 

"이렇게 쓰고 싶다는 감정과 이렇게 쓰고 싶지 않다는 감정 사이를 헤매면서 이 이야기들을 썼다." (이장욱 『고백의제왕』)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이 거기에 더 이상 있지 않을 순간에 대해 얘기했지만, 거기에 언제나 있어서 그러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할 것임을 알고 있었고, 자신들의 영원성을 그 끝으로 가져가는 것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블랑쇼 『기다림 망각』)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자신에게 가장 가까워지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장욱 『고백의제왕』) 

"나를 듣기 위해 나를 들어서는 안 되고, 나를 들리도록 내주어야 합니다."  (블랑쇼 『기다림 망각』) 

 

"있는 것은 타자라는 관념이 아니라 당신이며,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말이다.

언젠가는 당신도 말도 사라지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삶은 삶일 수 있을 터이다." (이장욱 『고백의제왕』)

"말하고 있는 각각의 말 속에서 망각이 이미 말한다는 사실은, 각 단어가 망각되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망각이 말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말을 스스로를 감추는 것과 조화를 이루도록 붙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진정한 말은 망각에게 휴식을 허락하며, 그 휴식 가운데 망각은 모든 진정한 말이 망각에 이르기까지 말하도록 내버려둔다. 망각이 모든 말 가운데 놓여 있기를."  (블랑쇼 『기다림 망각』)

 

 


 

§§

소설집은 내 맘에 들지 않았다. 유령들과 자유자재로 몰려다니던 시와 달리 모든 단편에서의 그는 유령들에 함몰지경이었다.

그의 시가  공중정원이었다면 그의 소설은 관광지로서의 카타콤이다.

소설을 쓰고 나서 '이렇게 쓸 수 밖에 없었다'라고 좀비처럼 나타나지 말고,

코끼리 군을 시켜 엽서로 시를 보내줄 때처럼 없는 자신을 대신해 자신을 보여주던 그때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소설을 쓰는 것 자체가 그에게 이미 그럴 수밖에 없는 길이라면 그 또한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만서도.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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