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2015)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톰 하디 출연.
류이치 사카모토 & Alva Noto 음악.
ㅎㄷㄷ;
이렇게 되면 소설이 더 밀리는 거 같은데;
1월 14일 개봉~ 영화관 달려갈 일만 남음.
간만에 알라딘 영화예매권을 써 보자~
알라딘엔 OST가 안 올라와 있지만 겨울 느낌 물씬~



원작 소설을 읽을지 말지는 영화 보고 나서 결정해야겠다.

사냥꾼과 한겨울 설정이 겹치는 <언더 더 스킨> 경우 원작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좋았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이냐리투 감독만큼 깊이 아니 지독할 정도로 파고드는 감독도 드문데, 그의 선택만으로도 소설에 관심이 간다. 로케 장소를 5년간 찾아다녔다니....5년간 난 뭘 찾아다녔더라... 집-사무실, 집-사무실..... 아니면 꿈길에서 헤매고 있었는데...

이냐리투 감독 작품에서 남주인공을 연기한 이들이 대부분 남우주연상을 받는 건 흥미롭다. 캐릭터만이 아닌 인간 종으로서의 고민을 한껏 끌어내는 감독 특성 때문이리라. 배우들의 고민이 스크린을 시종 압도한다.

실화 바탕이든 19세기 아메리카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든, 저 공허하고 광활한 공간에 머물다 오고 싶다. 영화에 따라 영화관은 이제 21세기 교회당 역할도 하고 있다. 아주 시려서 눈물마저 얼려버리길.
<언더 더 스킨>을 봤을 때의 그 시림 같을까...<언더 더 스킨> 속 외계인 사냥꾼 로라도, <레버넌트> 속 19세기 사냥꾼도 낯설진 않다. 아무리 많은 진화를 거쳤어도 여전히 우리는 늘 이 땅에서 쫓기고 이상을 좇는 자들이었으니까.


 


• 그런데
포스터 광고 문구가 참 아쉽다. <응답하라 1988> 에 나올 법한 영화 포스터 문구 같다.
아이 죽음에 대한 복수 내용이라 타당하긴 한데, 아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테이큰> 대사가 떠올라 난감하다. 워낙 코믹하게 많이 쓰여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기보다 가벼워질 문제점이....최근엔 모바일게임 광고에 리암 리슨이 자기 패러디까지 해 점점 수습이 어려워졌다;
<레버넌트>로 디카프리오가 ˝앵그리 리슨˝ 뒤를 이어 ˝앵그리 디카프리오˝가 될까 우려스럽다.
정말 문장은 중요해. 진부하면 단문의 위력도 소용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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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6-01-11 0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재미있게 보러가기에는 심각해 보이는군요.^^;;

AgalmA 2016-01-11 03:13   좋아요 3 | URL
평이 두 갈래예요. 걸작이다 vs 지루해 죽는다 ㅎㅎ 전 사람들이 지루하다고 할수록 더 끌림. 조용할 테니까~

2016-01-11 0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1 0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1 0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름 2016-01-11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건 확실히 오리지널 포스터가 멋지네요 :-0 !!

AgalmA 2016-01-11 11:33   좋아요 1 | URL
장사해야 되니까 디카프리오 대문짝 사진까진 이해합니다. 남우주연상도 받았으니 그렇게 해줘도 되죠. 암요. 헌데 저 촌시런 문구는 지금이 21세기인가 싶어요.
오리지널 포스터는 바탕화면 해도 될 정도로 멋진 거 같아요^^

살리미 2016-01-11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첨에 포스터보고 이게 과연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이 맞나 했다는...ㅋㅋ
그나저나 상복없는 디카프리오가 이번엔 오스카상까지 노려볼 수 있으려나요? 듣자하니 전작들보다는 힘을 많이 뺀 연기를 했다던데...

AgalmA 2016-01-11 22:20   좋아요 1 | URL
이냐리투 감독 엄청 까다로운 걸로 아는데, 배급 홍보 관련해선 어쩔 수 없나봐요^^??
다들 디카프리오 연기를 언급하더군요. 디카프리오야 아역 때부터 연기 잘 했으니까 더 말할 필요 없죠:)

프레이야 2016-01-11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대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AgalmA 2016-01-11 22:20   좋아요 1 | URL
프레이야님도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에이바 2016-01-11 1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든글로브 감독상 남주상 받았더군요 ㅎㅎ

AgalmA 2016-01-11 22:24   좋아요 1 | URL
오로라님 말씀처럼 오스카상은 어떻게 될 지...골든글로브가 아카데미 예비격이라며요~ 디카프리오 응원~

해피북 2016-01-11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이 영화 제가 아는 사람이 봤는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연기 때문에 푹 빠져서 봤다고 하더라고요. 연기를 무척 잘한다면서 말이죠 ㅋ

AgalmA 2016-01-11 22:26   좋아요 1 | URL
이번에 개봉한 국내 영화 <히말라야>도 황정민 등 배우 연기가 탁월했다 하던데, 이냐리투 감독 영화는 무조건 믿고 봅니다. 디카프리오라 더 땡큐고요 :)

[그장소] 2016-01-21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용해지면 보겠네요..저는 ...ㅎㅎㅎ

AgalmA 2016-01-22 16:59   좋아요 0 | URL
마음이 복잡하면 극장 가는 것도 일입니다ㅜㅜ 요즘은 취소도 너무 쉬워서...
 
유로피아나 - 짧게 쓴 20세기 이야기
파트리크 오우르제드니크 지음, 정보라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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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1+1이다 •
찌든 때(오염된 과거) 제거와 표백(새로운 인생)을 한 번에~ 하는 세제 광고는 아니다;
체코 소설가 파크리트 오우르제드니크 《유로피아나》를 읽으며 신선한 화법에 단번에 매료됐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죽은 각 나라별 병사 시체들을 이으면 몇 킬로가 되는가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공간을 종횡무진 오가는 플롯과 블랙 유머로 자신이 참전했던 2차 세계대전을 연결해 써 내려갔던 커트 보네거트 《제5도살장》 생각도 나고, 백과사전 식 나열과 실험적 글쓰기로 유명한 조르주 페렉 생각도 났다. 조르주 페렉도 전쟁 피해자인데,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고 어머니는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해 고모에게 입양되었다. 그 트라우마는 《W 또는 유년의 기억》에서 건조한 문체와 독특한 설정으로 표현되었다. 《W 또는 유년의 기억》은 소설 속 알레고리 읽기를 어려워하는 독자에겐 호감도가 떨어지겠지만, 보르헤스나 이탈로 칼비노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재미를 만끽할 소설이다.
커트 보네거트, 조르주 페렉 다 천재 글쓰기꾼으로 통하는데, 《유로피아나》를 읽어 보면 파크리트 오우르제드니크도 뒤지지 않는다. 역사 사실과 허구 일화를 교묘하게 섞어 어디까지가 진짜고 가짜인지 알 수 없어하며 읽게 된다. 역사가 사실 그렇고 소설이 원래 그렇기도 하다. 사람에 의해 전해지고, 그 의도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표현되는 성질을 생각하면 말이다. 게다가 이 소설은 아주 정색하는 말투로 신문 논설 같기도 한데, 그게 또 만연체다. ㅋㅋㅋ 다른 소설에선 또 어떤지 궁금하다. 만연체를 싫어하는 독자라도 전개가 재밌고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158 페이지)이라 어렵지 않게 읽으리라 본다.

 

 

 

 

 

• 내 이름은 역사만큼 어렵다? •

나는 작가 이름이 소설보다 어렵다;; 성은 당분간 계속 헷갈릴 듯. 《기억이 나를 본다》 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때는 발음이 어려웠지만, 오.우.르.제.드.니.크는 읽고 나서 바로 헷갈림. 오우...이런...르...제...길.... 역사 재해석 전에 기억 재구성부터 고민해야 할 듯_-)
짧은 소설인데도 읽는 내내 이런 저런 것들이 자꾸 겹쳐 보여 딴 생각을 참 많이 했다.

 

 

 

 

 

 

 

 

 

 

 

 

 

• 나는 1+1+1……이다 •

* 제임스 워드 《문구의 모험》 생각나는 대목

뜯어서 쓰는 화장실용 휴지는 1901년 스위스의 종이 제조업체에서 발명했는데 그날은 스위스 정부가 이탈리아 왕을 암살한 것으로 의심되는 어떤 무정부주의자를 이탈리아 정부에 넘겨준 날과 같은 날이었고 신문에서는 화장실용 휴지가 소박하지만 중요한 발명품이라고 보도했다.

ㅡ 파크리트 오우르제드니크《유로피아나》 -p24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생각나는 대목

영국에서는 1백만 명의 여성이 군수 공장에서 일했고 그중 평균 열여덟 명이 매일 실명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가스 중독으로 죽었다. 군수 공장에서 일하는 여자들은 머리카락이 오렌지색에 얼굴은 노란색이어서 사람들은 그들을 카나리아라고 불렀다. 그리고 의사들은 전쟁이 끝난 뒤 그 여자들 중 3분의 2가 불임이 될 거라고 추정했다.

ㅡ 파크리트 오우르제드니크《유로피아나》, p22

어떤 도시에서는 여자들을 대상으로 시신 화장법에 대한 특별 교육 과정을 열기도 했다. 나흘간의 교육에 열다섯에서 스무 명의 수강생이 편성되었다. 그들은 뼈 부수는 기계를 조작하는 법과 시신을 넣은 구덩이를 고르게 덮는 법과 나중에 그 구덩이 위에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흙을 체 치는 법을 배웠다.

ㅡ 파크리트 오우르제드니크《유로피아나》, p29

 

 

 


* 박상연 소설 《DMZ》를 각색한 영화 박찬욱 《JSA 공동경비구역》 생각나는 대목
카랑시에서는 1914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독일군과 프랑스군 병사들이 함께 캐롤을 부르면서 서로의 건강을 위해 건배했고 서로 소리치며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독일군은 프랑스군에게 정말로 개구리를 먹는 거냐고 물었고 프랑스군은 독일군에게 정말로 맥주를 마시면 턱수염이 자라는 거냐고 물었다.

ㅡ 파크리트 오우르제드니크《유로피아나》, p26



 

이 짧은 인용들에서도 수많은 정보와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이게 진짜야? 읽는 내내 눈으로 깜짝~깜짝~ 위에서도 당부했듯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사실에 바탕을 뒀지만 이 책은 소설이다. 하지만 왜곡을 목적으로 한 글이 아니라는 걸 주목해야 한다! 또한 사실을 충분히 섭렵했기에 이런 풍부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모를 리가.
《유로피아나》는 역사에 대해 알면 아는 만큼 또 모르면 모르는 대로 공부가 되고 재미를 준다.


요즘 ˝지대넓얕˝이 선풍이라지? 이 책은 바로 그런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은 아닌 거 같지만) 지식˝에 걸맞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방대하면서도 잘 요약된 정보로 가득한데, 역사 책을 소설 식으로 썼다고 해도 말이 되는 작품이고, 르포 문학의 새로운 모험을 보여주는 소설이라 할 수도 있다. 누가 보면 출판사에서 책 제공이라도 받은 줄 알겠네; 책이 너무 궁금해서 내 돈 주고 정가에 샀음-ㅅ-!


 

 

• 재해석 되어야 할 이야기, 역사와 소설 •
역사는 언제나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말은, 철학이나 사회학 개념이 아니라 현실 그대로를 나타낸다. 현재 국내 정치 사회 상황을 보면 가장 절실한 문제이기도 하다.
기발하면서도 기이하기도 한 《유로피아나》는 역사를 살피며 작가의 생각을 선언처럼 문장 속에 잘 녹여냈다. 과장 좀 보태면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이 생각나기도 했다.

최근 소개된 공쿠르 수상작 《오르부아르》(피에르 르메르트, 2013 수상)는 1차 세계대전을, 《울지 않기》(리디 살베르, 2014 수상)는 에스파냐 내전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런 작품들이 꾸준히 나오는 그곳이 조금 부러웠다. 빠진 것이 없나 역사를 돌아보는 수행들이 건강하게 현재 진행형이라는 소리니까. 한국에서는 몇 해 전 5.18을 소재로 한강 작가가 《소년이 온다》를 써 큰 성과를 보여 줬지만, 6.25 전쟁 경우 《태백산맥》 이후로는 주목되는 작품 얘길 들은 바 없다. 자료 접근과 수집의 어려움도 있겠지만 실질적인 작업 여건(경제 사정)과 의욕 문제가 더 크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된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린 역사 앞에 너무 얼어 있는 건 아닌지. 무기력이면 더 심각하고.

 


 

인생에서 태어남과 죽음이 가장 큰 변화라면, 역사에서 생과 사가 요동치는 전쟁만 한 격변은 없다. 시간이 흐르며 전쟁을 겪은 세대가 사라지면서 전쟁은 옛이야기 같이 취급되고, 현 세대는 현재를 전쟁같이 살아가기 바쁘다. 물론 어딘가에서는 계속 전쟁 중이다. 끝없이.
역사 속 망령들을 끄집어 낸 현 한국에서는 ˝빨갱이˝를 다시 ˝종북˝으로 바꿔 칼처럼 휘두르는데, 이 귀신 놀음 속에 빠진 자들은 현재를 재해석하기는커녕 누구든지 잡히는 대로 시신 구덩이에 처넣을 기세다.

정신 나간 시대를 분노와 우울 속에 살면서 내가 파크리트 오우르제드니크 《유로피아나》를 펼친 것은 세상을 읽고 말하는 작가의 혜안으로 또 어떤 것이 있나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있음과 없음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자가 새로운 초점을 만들어 보도록 하는 소설, 그것만으로도 아니 그것이 진짜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이다.


현실을 경직되어 보지 않으면서 재미도 만점인 젊은 한국 소설도 속속 상륙해주길 바란다. 미래파나 후장 사실주의 같은 사조가 나타날 때 그들만의 리그라고 비난하지만, 내 보기엔 한국 문학 전반이 상처 핥기와 방어와 차단막 속에 도취되어 있는 인상이다. 각자 그들만의 리그 중이다. 이런저런 작품이 다 공생한다는 데 이의는 없다. 그러나 소재주의에 빠진 시야 좁은 작품이 너무도 많다. 그러니 표절 문제도 끊이지 않는다. 이런 풍조는 작은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단편 소설이 한국 문학을 주도해 온 탓도 있다고 본다. 등단 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무엇˝과 ˝어떻게˝는 같이 가는 법이다. ˝무엇˝이 목적이나 소재로 전락할 때 그 문학은 정말 ˝무엇˝을 말하겠는가. 작가도 사람인데 시대 풍랑 속에 혼자 요령껏 헤쳐 나와 보라고 하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유로피아나》가 세상의 파도를 글로 서핑타기 하는 모습은 그래서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도착할 것은 꼭 도착한다고 나는 믿는다

 


♪ Jon Brion - Something You Can`t Return To




 

 

• 사진은 서대문 형무소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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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미 2016-01-08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원뿔상품이군요^^ 책표지 보고 잡지인줄 알았어요 ㅎㅎ

AgalmA 2016-01-08 20:51   좋아요 0 | URL
소설 코너에 이 책 있는 걸 보고 생뚱맞게 느껴지긴 했어요ㅎ; 제목 아녔으면 문구도 그렇고 표지가 사회학 책 느낌이 나서^^;

물고기자리 2016-01-08 18: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러시깁니까?^^ 프루스트 덕분에 시력저하가 오려고 하는데, 와중에 자꾸 본의 아니게 영업도 하게 되는데, 이젠 만연체로 꿈도 꾸는데, Agalma 님은 색감과 구도가 인상적인 사진도 찍어 올리시고, 심지어는 다른 작가 님에게 매료되다니욧!ㅎ

AgalmA 2016-01-09 06:59   좋아요 1 | URL
프루스트 활자가 작은 건 아닐까요? 저도 프루스트 볼 땐 눈이 아파요ㅋ;; 만연체 꿈ㅎㅎ 저도 문장을 좀 만연체로 쓰는 편인데, 프루스트와 오우르지드니크 연타로 읽다보니 증세가 더 심각해졌;; 중간 중간에 일부러 단문의 다른 책을 읽어 눈 가글을 하기도;;
위 글도 만연체 안 되려고 엄청 수정했는데, 더러 보이죠;
사진이야 잘 찍으시는 분 많으니까 쑥스럽고요a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우르지드니크는 이번 한 번 매료지만 프루스트는 아직 만날 횟수가 많아서 유리하죠ㅎ;

cyrus 2016-01-08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토피아나》는 한 편의 문학적 꼴라주 같습니다. 한 편의 소설에서 또다른 여러 개의 소설들의 장면 일부를 떠올리게 하니까요. ^^

AgalmA 2016-01-08 20:59   좋아요 0 | URL
네. 문학 콜라주, 정말 그래요. 위에 인용들도 올렸다시피 스쳐가는 소설, 영화 등등이 엄청 많아요.

비로그인 2016-01-08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대문 형무소는 지난 2013년 가을 모 재야 단체가 주관한 역사 글쓰기 대회 시상식
에 참석했다가 나오는 길에 옆에서 보았습니다. 시상식장이 형무소 옆 그러니까 같은 울타리 안에
있었지요. 정신 나간 시대이지만 점차 세련된 야만이 극에 달하는 시대라고도 보입니다.

AgalmA 2016-01-08 21:02   좋아요 0 | URL
흔적님은 참 몸이 세 개라도 모자라시겠습니다.
형무소 안에 기념관 등등 해서 건물이 많더군요. 참 울적한 공간이라 눈 쌓인 겨울은 어떤 느낌일까, 다시 와야지 하고 있었는데 아직 실천을 못 했어요. 조만간 눈 오면 가봐야 할 듯...
한국에서 세련된 야만이요? 좀 어렵지 않을까요...수가 너무 보여서...

비로그인 2016-01-08 21:19   좋아요 0 | URL
듣고 보니 그런 듯 합니다... 우직한 야만이라고 해야 할까요? 소개하신 소설 읽어보고 싶네요...

AgalmA 2016-01-08 23:51   좋아요 0 | URL
우직도 글쎄요...야만 짜장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 지 야만이 참 빨리빨리 배달이 잘 돼서;; (중국집 비하 의도는 없습니다~)
시키지도 않은 야만 짓도 워낙 잘 해대니...
전세계적으로 보통 사람은 휘둘려 상하고...

CREBBP 2016-01-08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대문 형무소 사진,... 상처는 씻기지 않았지만 사진은 멋지구리 네요. 저도 유토피아나 샀는데 너무 얇아서 사기당한 기분이었는데 읽으면 나아지겠군요

AgalmA 2016-01-08 21:09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 얇아서 애걔~~했었는데, 요즘 시집 한 권도 8000원이고, 소설 내용의 깊이를 생각하면 비싼 건 아니라고 생각 들어요 :) 그간 읽어왔던 사회, 역사 이슈 거리를 정리하게도 해 주니까.....소설 참고서? ㅎㅎ

북다이제스터 2016-01-08 2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갈마님 글 보면, 세상에 제게 새로운 책이 정말 많다고 새삼 느껴집니다. 언제 이런 책 읽어 볼 수 있을지. 흑 ㅠ

AgalmA 2016-01-08 21:08   좋아요 1 | URL
저도 국내 출판된 것만 읽는 걸요; 원서로 실시간으로 더 다양한 책을 읽는 분들 생각하면 더 놀라웁겠죠.
아니, 과학, 뇌과학 책도 열심히 읽는 분이 이런 책 못 읽는다고 우시면 어쩝니까ㅎ;

서니데이 2016-01-08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로필사진이 자주 바뀌네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AgalmA 2016-01-08 23:52   좋아요 1 | URL
기분 내키는 대로 막 바꿉니다. 바꿀 수 있는 게 많지 않으니까ㅎㅎ
서니데이님도 주말 잘 보내시길요~

해피북 2016-01-09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와 소설, 영화까지 이야기 하셨으니 1 1 1 아닐까요 ㅎㅎ 이 <문구의 모험>이 궁금하긴했는데 어떤 책처럼 장황하게 늘어지는 이야기일까봐 망설이고 있는데요. 이 책 가독성이나 재미(뭐 크지 않아도 상관없지만요) 면에서나 괜찮을까요...아 아니 음 ...잔소리같은 이야기만 아니면 좋은데 말이죠 ㅎㅎ

AgalmA 2016-01-09 18:31   좋아요 0 | URL
111 ㅎㅎ 그....그렇군요! 리뷰 상품 이미 팔아서 고치긴 그렇고ㅎㅎ
<문구의 모험>은 아직 절반 밖에 못 읽었지만 잔소리ㅎ 같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작가가 문구를 만나고 쓰는 얘기는, 정보는 내가 더 많이 알지? 라기 보다 공감을 얻고자 하는 시시콜콜함과 조심스러움이 더 강하죠^^ 덕후들의 두 양태 중 후자쪽ㅎ 국내에 없는 문구 얘기들이 많아 생소하기도 해서 관심도가 떨어질 지 높아질 지는 독자 호불호에 있을 거 같고요. 문구와 시대적 에피소드들이 많아 인문학 책으로도 좋아요. 마케팅 팔림 현상으로만 볼 수 없는, 제겐 좋은 인상을 준 책이었어요^^
 

1. ˝실패˝에 대해서

《제 13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송승환 시인이자 평론가는 수상자 황병승 시인에게 《육체쇼와 전집》에서 자주 나오는 카프카를 연결하며 `문학의 필연적인 실패`에 대해 말했다. 작가도, 시인도 도달할 수 없는 극지를 향해가는 실패자들-시시포스라는 비유는 이젠 흔한 정답이다. 우리는 매끄러운 정답보다 풍부한 관점을 바라는 정탐꾼이자 탐욕자이기에 흥미로운 제기가 아니었다.
《육체쇼와 전집》 해설을 맡은 황현산 평론가는 황병승 시인을 ˝실패의 성자˝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호명이었지만, 나는 그 표현이 너무 과한 게 아닐까 싶었다.
해설에서 황현산 평론가는 근거를 직접 열거하며 설득하지 않는다. ˝독실한 마음가짐˝, ˝악마˝, ˝심판대˝ 시어들과 정황을 풀어놓으며 독자가 느끼길 바라고 있었다. 황병승 시인의 시처럼 황현산 평론가도 ˝환유˝를 쓴 평론이었다고 생각한다.

황병승 시인은 한국 시에서 흔히 쓰는 은유보다 환유를 잘 쓰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은유와 환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네ㅇ버 사전을 참조해 설명하면,
은유는 사물의 상태나 움직임을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수사법이고, ex) 내 마음은 호수
환유는 어떤 사물을, 그것의 속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다른 낱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수사법이다. ex)숙녀-하이힐, 우리 민족-흰옷

흔적님 서재에서 [이름과 정체성, 그리고 의미] 페이퍼- http://blog.aladin.co.kr/anuloma01/8099469를 보고 나는 아, 하게 되었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묻는 물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황병승 《육체쇼와 전집》
<보람 없는 날들> 중
˝`이봐, 대체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해? 대체 네가 누구란 말이지? 젖가슴을 다 내놓고 시름에 빠져 있는 꼴이라니! 이것 봐, 너에게 안겨 있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해? 너는 짐꾸러미를 끌어안았다. 딱하기도 하지......`˝
˝네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고 있는 거야?!˝

<Cul de Sac> 중
˝그러면 선생은 누구의 형제(영혼)입니까˝

<부식철판> 중
˝당신은 언제나 당신 자신에 대해 아는 척했다.˝

황현산 평론가는 두 질문에서 유사성을 느꼈고 그래서 ˝실패의 성자˝가 나온 것이리라. 황현산 평론가가 가져 온 ˝성자˝는 발화자로서의 유사성이 아니라 수행자로서의 ˝위치˝에 대한 비유였을 것이다. 연극에서 인물 스스로가 자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환경과 위치에서 나온 행동으로 그가 규정되듯 말이다. 이보게, 완전히 그럴까. 아래 시어들은 어떻다고 생각하나.

<신scene과 함께 여기까지 왔다> 중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게˝

역시 실패인가. 표현한 자와 보려고 한 자의 의도가 같든 다르든, 누가 누구에게 매혹되고 설득 당한 것이든 나는 정답에 관심 없다. 실패라도 상관 없다. 그것이 무엇이 됐든 나는 또 이동한다. 다르지만 비슷한 것으로. 다음은 ˝아무 데(서)나˝이다.


2. ˝아무 데(서)나˝ 공유자들 - 우리는 나를 누구라 어디에 있다고 말하는가

황병승 <솜브레로의 잠벌레> 중
˝나는 매일 아침 아무 데서나 태어나니까˝

이수명 <그대로> 중
˝흘러 다니다가 아무 데나 붙어버린다˝, ˝아무 데서나 내려오는 비를˝, ˝아무 데서나 새는 비를˝

이원 <우리는 지구에서 고독하다> 중
˝아무 데나 펼쳐지는 책처럼˝

˝아무˝, ˝아무리˝, ˝아무(것)도˝ 등도 포괄된다. 시인들이 시어로 얼마나 많이 쓰는지, 작가들이 얼마나 천착하고 끌어내려 하는지 놀랄 일은 아니다. 우리도 이 세계에서 끊임없이 그걸 느끼며 말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바로 ˝아무도˝들이니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쩌면 ˝아무 데(서)나˝ 공유자이길.
우리는 나를 누구라 어디에 있다고 말하는가.
나야말로 아무 데서나 이러고 있군.


끝으로 ˝아무것도˝의 대가인 토마스 베른하르트 뷔히너 수상 연설문 <그리고 결코 아무것도 끝내지 못하리라>를 덧붙인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연극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밑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그런 연극 말입니다.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처럼 이 연극에 덤벼들지만 결국 아무 역할도 해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게 된 이후로 연극의 흐름은 더 빨라졌고, 그리하여 중요한 대사를 제대로 읊어보지도 못한 채 놓쳐버리고 맙니다. 이 연극은 우선 전적으로 육체의 연극입니다.˝( 《제 13회 미당문학상 수상작품집》 p 141~ 142)

우리는 얼마나 살아 있는가. 그렇게 보이길 바라는 연극 말고 삶에 대해. 정녕 연극과 삶은 동일한가.
황병승 시인은 육체로 더 가까이 내려 왔다. 다음은 어디인가. 실패 속에서 어떤 부활을 꿈꾸는가.
현실처럼 예언처럼 ˝결코 아무 것도 끝내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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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12-28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극 말고 삶에 대하여,가 덧붙었네요. 페이퍼, 요즘 잡고 있는 생각과도 연관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요.

AgalmA 2015-12-28 21:38   좋아요 0 | URL
고치는 게 늘 일인 사람이라^^;;; 생각 따라잡기가 늘 버겁습니다ㅜ
생각과 시간이 늘 맞물려 가지요. 어쩔 수 없이...

yureka01 2015-12-28 2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헙....육체쇼와 전집...이 시집 가지고 있습니다.표지보니 반갑네요 ㄷㄷㄷ

AgalmA 2015-12-28 21:38   좋아요 0 | URL
yureka01님은 시를 엄청 아끼고 좋아하시니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

비로그인 2015-12-28 2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읽은 `사람, 장소, 환대`에서 가면이라는 말, 수행적 연기라는 말이 눈에 띄었는데
연극이란 말을 듣게 되네요..저의 경우 은유에 대해 특별한 불편한 감정을 느낄 이유는 없지만
환유, 아니 은유와 환유의 관계는 흥미거리입니다. 연기가 꾸민다는 의미이기보다 치르어야
할 통과제의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지요. 황병승 시인의 언어는 어떤 근본적인 차원
을 생각하게 하는 듯 합니다. 기본적인 어휘, 수사 등에 대한 고려가 눈에 띕니다... 잘 읽었습니다.
재미와 의미이지요...

AgalmA 2015-12-28 23:13   좋아요 0 | URL
<사람, 장소, 환대> 점점 더 기대되는 말씀^^
˝연기가 꾸민다는 의미이기보다 치르어야 할 통과제의˝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본문에도 추가했는데, 연극을 보면 캐릭터는 그 스스로가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처한 환경과 위치에 따라 파악되고 규정된다는 점에서 말씀하신 것과 비슷하다고 봅니다.
대상화가 많이 부각되지만, 관찰자(관객)도 중요한 삶의 기본 요소라 볼 수 있겠죠.

네, 재미에서 의미를 찾고, 의미에서 재미를 찾는 연속입니다 :)
 
단편들 세계사 시인선 81
박정대 지음 / 세계사 / 199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시인도, 나도 지금 이 시를 읽으며 모종의 부끄러움을 느낀다면 이 시는 제대로 도착한 것인가. 아무것도 몰랐던 예언자 같이? 모든 사람과 사물이 그토록 변하고 흩어질 동안 너는 그러했으며 그러할 것이라고. 그때도 지금도 우리는 중심을 모른다고, 앞으로도.
100년 뒤에는 이런 고민 안 하겠지. 나에 한해서는.

루시드 폴 - 목포의 눈물(http://youtu.be/khO1519UqLw)을 들으며 또 자야겠다. 내 비난은 거기까지 잘도 따라 오겠지. 걸음걸음 으깨어질 그것.



ㅡAgalma



*
나 자신에 관한 調書

ㅡ박정대




1
일찍이 나는 떠도는 하나의 섬이었다, 눈물의 망망대해에서 보면

2
살아 있다는 느낌ㅡ고요함이 나를 찌른다, 나는 살아 있다

3
죽은 자들의 책 속에는 이상한 향기가 난다

4
녹슬은 펜과 뼈와 광기ㅡ의 오랜 세월이 작은 혁명을 완성한다

5
나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서 이 글을 쓴다

6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곳으로 시간의 마차는 사라져간다

7
나는 자살한다, 남들에게 무익하니까, 나 자신에게 위험하니까

8
다시 생각해보아도 정열은 부질없는 것

9
영혼과 육체는 처음부터 일치할 수 없었던 것

10
밤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내 두통의 원인이었다

11
거미들은 새벽에도 왜 외롭다고 소리치지 않는 것일까

12
광기가 나를 완성하지 못한다면 내가 광기를 완성하리라

13
눈에 보이는 것들의 불가사의ㅡ그 속을 꿰뚫어본다

14
불가사의한 것들이 우리를 끌고 간다

15
나는 더이상 움직이지 않겠다, 움직인다는 것은 외로운 것이다

16
산다는 것은 물론 표현한다는 것과는 어느 정도 반대되는 것이다

17
이 밤에 잠들지 못하고 펜을 움직이는 내 손이 저주스럽다

18
정신이 타락하면 육체는 몰락한다

19
그러나 몰락한 육체 속에서 정신이 꽃피는 경우도 있다

20
위대한 작가는 작품 속에서 스스로 침묵할 줄 아는 사람이다

21
겨울은 우리를 따스하게 한다, 그것은 정신의 힘이다

22
패배하지 않는 정신의 힘ㅡ나는 그것을 믿는다

23
의미 있는 침묵이란 정당성을 획득할 때 가능하다

24
나는 지금 치명적으로 젊다

25
행복이란 단순한 육체노동 속에서 온다

26
나는 지금 유배되어 있다, 어디에 유배되어 있는지 모르는 채

27
추억은 우리들의 등뒤에 서 있다, 푸른 비수처럼

28
담배를 피운다, 눈이 쓰리다, 눈물이 반드시 슬픔의 형식은 아니다

29
언어는 육체다

30
시인이란 인생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를 시인한 사람들이다

31
외로움은 표현으로부터 온다, 욕망이 생으로부터 오듯이

32
階段이라는 말속에는 정말로 몇 개의 계단이 있는 것 같다

33
폭력이란 외로움의 극단적 자기표현이다

34
극심한 혼돈은 질서에의 열망과도 비례하는 것이다

35
산다는 것은 끝없이 굴복한다는 것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36
물방울들은 서로의 몸에 경계선을 두지 않는다

37
강물을 바라본다, 흘러가는 것들이 시간이 깊다

38
그대들 안녕하신가, 멀리 혹은 가까이에 있는 섬들이여

39
산다는 것이 때로는 고립 위로 떠오르다

40
불란서와 러시아에 이 밤의 사랑을

41
나는 벌레들을 함부로 죽였다, 그것이 나의 죄다

42
밤하늘의 별들을 모두 셀 수는 없을 것이다

43
또다시 밤을 꼬박 샜다, 오 미친 짓이다

44
열에 들뜬 몸으로 나는 지금 심연으로 가는 길을 안다

45
절망적인 생각들을 몰아내야 한다, 최후까지

46
나는 헛살았다,라고 중얼거린다, 중얼거리기만 하는 내가 못내 분하고 억울하다

47
왜 이리도 죽음의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가

48
답답하다, 끊임없이 답답하다

49
......

50
한때 내 영혼의 상류에서 육체의 하류까지 범람하던 사랑이여

51
르 끌레지오ㅡ두 개의 계단과 두 개의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고독에 관하여 그는 말했다

52
담배 냄새가 역겹다, 나는 문득 생을 토하고 싶다

53
산다는 것을 포기하고 밤새도록 소설 나부랭이들을 읽다

54
살아 있는 정신은 아름답다

55
거미좌의 별들은 참으로 깨끗하게 빛난다, 사글세의 하늘에서

56
술을 마시지 않고 견딘다는 게 거의 악몽처럼 느껴진다

57
보들레르에게 악수를 청해본다, 그의 퀭한 눈

58
아편복용자처럼 운다, 밤새도록 나의 펜은

59
나는 필사적으로 나의 외로움을 이해하려고 노력해본다

60
두통이 나를 물어뜯는다, 새벽부터 나의 고통은 시작된다

61
꿈을 꾸기가 두렵다, 두렵다 세상

62
갈 수 있을 것이다, 두통을 넘어서 어디로든

63
갈 수 없을 것이다, 두통이 너무 심하다

64
나의 고통과는 얼마나 무관하게 이 세계는 흘러가는 것인가

65
에잇, 엿먹어라 세상!

66
너는 날씨 속에 있다, 아주 천박한 날씨 속에

67
작은 새들이 지구를 몰고 또 내 방 창가로 날아온다

68
하늘을 본다, 새떼들이 지금 윤회의 한가운데를 날고 있다

69
나는 언제나 당당하게 행복의 한복판에서 살고 싶었다

70
가을은 10월을 데리고 방랑자처럼 돌아왔다

71
가을은 또 11월을 데리고 부랑자처럼 떠돌 것이다

72
무위여, 파도는 한없이 부서지며 또한 무수한 바다를 이루었던 것을

73
책, 책, 책, 울며 날아가는 눈먼 박쥐들의 시간

74
아무 것도 아닌 것들을 위하여, 나는 감히 글을 쓴다

75
나의 영혼은 지금 시와 소설로 분단되어 있다

76
글 속에 나타나는 위대함이란 절실함 속에서 온다

77
글을 쓸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자기검열에서 비롯된다

78
상상력이란 무용한 것이다, 무용함이 때때로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79
산다는 것은 하나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애쓰는 것

80
혹은 하나의 문체를 완성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애쓰는 작가들의 삶

81
이 세계는 글로 쓰여진 한 장의 종이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82
모든 것들의 내부는 어둡다

83
동물들 속에서 가장 무서운 사랑을 나는 보았다

84
그저 잠정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던 이별-그것은 영원한 것이다

85
나를 이루지 못하고 떠나가는 무수한 외곽의 시간들을 보다

86
자신의 音樂을 발견한 자는 하나의 영원을 획득한 것이다

87
이 세계의 질서는 말에 의해 구축되고 말에 의해 파괴되리라

88
먼저 쓰고 그리고 사고하라

89
생선들의 뼈, 낡은 부두, 시간, 붉게 밑줄 쳐진 희망,
고장난 시대의, 하역장, 가로수들의, 헌책방의, 세월, 부두의, 갓내음의, 부서진, 목포에서, 목포에서, 바닷가에서, 꽃처럼 피어오르는, 고기의, 비늘의, 어둠의, 별빛, 부서지는, 포말의, 비릿한 포말의, 가슴의, 가슴의, 한없이 부서지는 목포에서, 목포에서

90
빌더무우트라는 사나이, 그가 한순간 겪었던 진실에 대하여
그것도 육체의 진실에 대하여 목포는 아직도 말할 수 있다
말이 필요 없었던 반다
그리하여 살고 있었던.
바람과의 일치, 비와의 일치를 말하는 반다의 육체
진실이 육체 속에 일치로 스며 있는 그러한 여인네와
그러한 남자들에 대해 목포는 여전히 말할 수 있다
반다가 살고 있었던 카를로바츠 또는 목포

......

그러한 목포는 지금 무엇으로부터 멀리 있는가

91
나는 때때로 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

92
그곳으로의 망명, 이라고 나는 써본다 너 나 사랑하니, 라고 나는 써본다 새들은 페루를 지나 목포에 가서 죽다, 라고 나는 써본다 장밋빛 노을이 시들면 어둠은 잉크병을 들고 통째로 마시고 있었지 치사량이야, 라고 나는 써본다 너 나 사랑하니, 라고 나는 써본다 그곳으로의 망명, 이라고 나는 써본다 그곳, 아아 너는 혹시 아니 그곳...... 그곳으로의 亡命

93
담배연기, 푸른, 니코틴의 외투

94
푸른 천막, 담배연기, 푸른, 젖은, 깃발, 펄럭이는 영혼의 의혹

95
집착을 버려라, 지구에서 미끄러 떨어지면 우리는 또다른 아름다운 혹성으로 갈지도 모르니까

96
우리는 블레이크의 시를 완성했다
우리는 이제 차디찬 사람들을 경멸할 수 있다

97
갱지 같은 하늘에는 검은 태양이 떠오르고 있다

98
나는 나를 부정하는 적의조차 완성하고 싶었다

99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양은 몸서리치며 정오의 꼭대기를 향하여 간다, 떨어진다

100
그대들, 살아 있으라
살아 있으므로 너희는 세계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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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컴맹 2015-12-19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원은 거스름돈일까요
98번 적의를 완성하려는 시도처럼 보면 과대포장일까요 ㅋㅋ 링크가 들어가지지 않으니 괜한 핑계를 달고 있군요
때론 책보다 전기를 통해 숙독이 잘되니 이 또한 어떤 중독임엔 틀림없습니다

AgalmA 2015-12-20 07:56   좋아요 1 | URL
그때 책값이 4천원이었는데, 5천원 주고 받은 거스름돈요ㅎ 빳빳한 신권이라 웃으며 넣어뒀죠.
영수증에 찍힌 날짜를 보며,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먹으며 레오니 아주머니 댁을 화악 떠올리듯 그 당시의 일들이 생생히 살아나더군요. 이 시집 빌려 읽었다가 이 날 샀었지 하며 음반을 사서 밤새 들었던 일....등등.

요즘 pc로 글을 작성 못해서 글 편집이 매끄럽지 않아서 저도 불만입니다. 내년까진 안 가야 할텐데;
전기라 하심은 전기집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레이 몽크가 쓴 비트겐슈타인이었어요^^
적의를 반항이나 자유로 읽어도 되지 않을까요 :)
 
스포츠와 여가
제임스 설터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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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형 컨버터블 `들라주`로 느리게 드라이브 하는, 생각해보면 제임스 설터의 소설은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지겨워하면서도 삶을 치장하는 데 노련한 왕년의 스타 같은 눈썰미. 그것은 밉지 않으면서 어쩐지 처연하다. 소설 속 욕망들도 그렇게 다가온다. 여가나 백일몽 같이 기회를 살피며 충동적이다.
나는 투우에서 투우사와 황소의 현란하며 긴 대결, 지치고 노한 황소에게 내리꽂는 창, 열광들 그 모든 게 끔찍했다. 그것은 에로스적 사랑과도 닮았다.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영화 <그녀에게>에서도 그런 비유가 있었고, 조르주 바타유는 투우와 에로티즘을 연결해 소설을 쓰기도 했다. 설터의 표현은 좀 더 건조하고 예리하다. 19금 표현 수위가 많아 다소 낮은 것으로 가져왔다.

*
그건 그저 하나의 달콤함 사건, 어쩌면 환상의 끝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무해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그 모든 일이 일어났음에도 그토록 서로 분리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일까? 고립된 느낌, 나아가 살기殺氣까지 느껴진다. (p85)

프랑스 곳곳을 돌아다니는 인물들의 모습에서 제임스 조이스의 주인공들이 한밤 내내 돌아다니던 풍경들이 겹쳤다.
나-딘-안마리를 서술하는 격자식 구성, 시점 변화도 흥미롭다.
˝닳아 없어지지 않는 암석면 같은, 이미 지나갔으나 줄곧 어른거리는 프랑스의 이미지들˝(p125) 같은 묘사와 비유는 문장 사이사이 빛난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며 느끼게 되는 심상처럼 그런 단면을 보여주는 화법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 소설은 거의 풍작이다.
소설을 읽고 있으면서 이 사람은 참 소설가 같군, 바보 같은 감탄을 여러 번 했다.

˝고요하다는 점에서만 탁월한 겨울의 나날˝(p97), ˝아침이 점차 추워지는데 나는 아무 대비 없이 그 속으로 들어간다˝(p66) 처럼 그의 소설을 또 읽게 되는 밤.

조이스 캐롤 오츠가 이 소설을 나보코프 <롤리타>와 비교한 건 타당했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결혼을 했든 안했든 서로에게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추파를 던지기도 한다. 주인공은 딘과 안마리를 관음증적으로 관찰하며 자신의 욕망을 이리저리 대입해본다.
이 책 덕분에 사놓고 읽기를 미뤄두고 있던 <롤리타>를 좀 더 빨리 펼칠 것 같다~
겨울밤 독서로 꽤 괜찮았다.


ㅡAgalma

몇 가지 것들을 나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기억한다. 양복 주머니에 넣고 잊어버린 동전처럼 시간이 흘러 조금 퇴색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세부들은 오래전에 변형되었거나 재편되어 다른 세부들이 전면에 드러났다. 실제로 몇 가지는 분명히 진짜가 아닌데, 그렇다고 덜 중요하지는 않다.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를 바꿔야 한다. 최종적으로 나타나는, 더 이상 변화하지 않는 그 양식에 진짜 의미가 있다. 실제로 내가 줄곧 변화를 시도할 경우 그때까지 조화롭던 모든 일이 오래된 신문지처럼 내 손 안에서 부서져버릴 위험이 있는데, 그것은 생각만 해도 참기 어렵다. 무수한 과거가 우리에게 들어왔다가 사라져간다. 다만 그 안 어딘가에 다이아몬드처럼 소비되기를 거부하는 파편들이 존재할 뿐이다. 용기를 내어 그것들을 수집한다면 우리는 진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p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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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병통치약 2015-12-16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소설 에로틱의 걸작, 포르노 그래피 등등 이란 말에 혹해서 사 읽었는데 눈이 쫑긋해지지는 않고 몸이 늘어지던데요 ㅋㅋ 롤리타는 읽는 재미는 있던데 말이죠. 소설은 잘 모르겠습니다. ^^

AgalmA 2015-12-17 02:55   좋아요 0 | URL
ㅎㅎ 제가 느리게 드라이브 하는 들라주 얘길 괜히 한 게 아닙니다. 예전 미키루크 같은 배우들이 출연하던 에로틱 영화 보면 굉장히 느슨하잖아요. 이 소설의 인물들은 그런 은근한 제스춰로 서로에게 뭔가 여지를 주잖아요. 주인공이 딘과 안마리 사이를 관음증적으로 관찰하고 서술하는데 그걸 포르노 그래피적이라고 보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