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읽은 책에 대한 단상
📚 안희경 외 『오늘까지의 세계』
ㅡ 한국에서도 이젠 이런 분석의 책을 묶을 역량이 된다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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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먼드 챈들러 『기나긴 이별』
ㅡ 칭찬은 리뷰에서 다 했으므로 ☞ https://blog.aladin.co.kr/durepos/11971950
📚 윌리엄 트레버 『윌리엄 트레버』
ㅡ 언젠가 다시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기도 한
리뷰 ☞ https://blog.aladin.co.kr/durepos/11971941
📚 이창래 『척하는 삶』
리뷰 ☞ https://blog.aladin.co.kr/durepos/11984954
📚 안토니오 타부키『페르난두 페소아의 마지막 사흘』
- 페르난두 페소아를 좋아한다면 자동적으로 향하게 되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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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배『한국 요괴 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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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슨 커리 『예술하는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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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ㅡ 1905년에 이런 소설이 나왔다는 것도 놀랍고, 첫 소설, 참신한 소재와 전개, 결말 모든 게 놀라웠던. 이 소설의 모티프가 된 호프만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도 차후 읽어볼 계획.
📚 미셸 푸코 『비판이란 무엇인가? 자기 수양』
ㅡ 윌 듀런트 『내가 왜 계속 살아야 합니까』를 펼쳤던 것보다 푸코의 이 책을 읽는 게 더 도움이 됐다.
이런 계보를 좇는 과정은 니체 『비극의 탄생』이 연상되어 새롭고 흥미로웠다. 그도 강조하다시피 푸코의 계보학은 기원의 탐사가 아니라 “모든 단조로운 목표로부터 벗어나 사건들의 특이성을 포착하는 것,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역사가 전혀 없다고 간주하는 곳에서 사건들을 찾아내려 하는 것, 〔…〕 변화의 완만한 곡선을 추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건들이 상이한 역할들을 담당하는 상이한 무대들을 재발견하기 위해 사건들의 회귀를 포착하는 것, 사건들의 결여지지점, 사건들이 일어나지 않은 순간을 한정하는 것”이다. 얇은 책인데, 생각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었다.
📚 리처드 브라우티건 『미국의 송어낚시』
ㅡ 어떤 사람은 브라우티건의 소설은 괴짜 소설이고 '반체제주의, 생태주의 문학'이란 찬사가 과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그는 소설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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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대가 지나갔다. 노인 부부가 타고 있었다. 차는 하마터면 길을 벗어나 강으로 빠질 뻔했다. 그들은 아마도 히치하이커들을 만나보지 못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나를 바라보며 차를 돌렸다.
나는 그때 다른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물고기 그물로 파리를 잡고 있었다. 난 스스로 놀이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건 이런 식이었다. ─내가 그것들을 쫓아다닐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이 내게로 날아와야만 했다. 그것은 내 상상 속의 놀이였다. 난 여섯 마리를 잡았다.
그 오두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옥외 변소가 있었다. 그 변소는 내부가 사람의 얼굴처럼 노출되어 있었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를 이곳에 지은 노인네는 여기에다가 9,745번이나 변을 보았는데, 이제는 죽었으니, 다른 사람은 나를 건드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정성을 다해 나를 지었다. 나를 이대로 놔두기 바란다. 나는 그 죽은 착한 사람을 기리는 기념물이 되었다. 이상할 것도 없다. 그래서 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이다. 만일 변을 보고 싶으면 사슴처럼 숲에 가서 하라.
“빌어먹을 놈.” 내가 변소에게 말했다. “난 다만 강 하류로 가는 차를 얻어 타려는 것뿐이야.”
-「빨간 입술」
📚 김완 『죽은 자의 집 청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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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란 결국 자력만으로는 차마 죽을 수 없어서 의료인 같은 제삼자에게 살인을 청부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선 슬슬 허용하는 쪽으로 법률을 가다듬었지만 적극적인 조력 자살에 대해선 ‘촉탁과 승낙에 의한 살인에 관한 형법17’으로 여전히 엄격하게 금한다. 네덜란드와 스위스, 캐나다 등은 명분과 조건을 정하고 일찍이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미국 오리건 주는 1997년부터 안락사를 허용했는데,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약 70퍼센트가 ‘자기 선택’에 의한 조력 자살을 찬성했다고 한다. 안락사를 허용하기 전에 사회학자들은 공공보험 인프라에서 소외된 채 노령을 맞은 가난한 자가 몰릴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실상은 오히려 경제력 있는 고학력자들이 우르르 자원했다. 혼자 살기 힘든 것도 인생, 혼자 죽기 힘든 것 또한 우리 인생이다.
(중략)
-「호모 파베르」
📚 루시아 벌린 『내 인생은 열린 책』
ㅡ 이번에 처음 만난 작가. 난 여성 특유의 섬세한 서술을 좋아하지 않는데, 몇몇 작품은 레이먼드 카버처럼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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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죽으면 저수지에 던진 돌멩이처럼 그냥 사라진다. 우리의 일상생활은 아무 일 없었던 듯 매끄럽게 정상으로 되돌아간다. 그런가 하면 죽고 나서도 오랫동안 주위에 머무는 이들도 있다. 생전에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은 제임스 딘 같은 경우가 있는가 하면 그냥 망자의 영혼이 이승을 떠나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친구 세라가 그렇다.
-「동생을 지키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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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내 말을 무시했다. 분위기는 눅눅한 빵처럼 분노에 젖어 축축 늘어졌다. 렉스가 달려가 라디오를 껐다. 페레즈 프라도. 꽃분홍색을!
“정비소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바깥 계단에서 기다릴게.” 렉스가 말했다. “아니지. 그냥 가는 게 낫겠네.” 그리고 그는 가버렸다.
마리아는 그때까지 꼼짝하지 않았다.
놓쳐버린 기회. 한마디 말, 몸짓 하나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 모든 걸 망칠 수도, 모든 걸 회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도 그런 말을 하거나 그런 몸짓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떠났고, 그녀는 새 담배에 불을 붙였고, 나는 일하러 갔다.
-「엘버커키의 레드 스트리트」
📚 《악스트 Axt 2020. 9.10》
ㅡ 이번 호 내용은 전반적으로 심심했고, 관심 있던 팀 오브라이언 작가 관련 내용이 좋아 『그들이 가지고 다닌 것들』을 바로 구매. 팀 오브라이언 작품을 계속 출간할 계획이라니 기대된다.
황정은 『연년세세』를 나오자마자 사고 전작을 완독 못했지 싶어『디디의 우산』을 읽다가 예전에 다 읽었다는 걸 깨달았는데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아 이상했다. 곰곰이 생각할 게 많은 글은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갖다가 할 일의 목록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 책도 그런 경우였다. 아울러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영웅 서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다 보니(조지프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도 결국 사버렸다) 미뤄뒀던 《왕좌의 게임》 드라마도 이참에 봤다. 전체 줄기는 스타크 일가의 수난기다. 각자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는=인생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주인공만이 아닌 모든 인물이 빛나는 이야기, 나는 그런 이야기가 좋다. 악당 같지 않은, 가장 현실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조연 캐릭터 클리게인, 브론의 대사에 시종일관 웃음을 터트렸다. "호도르"는 가장 사랑스러운 캐릭터이자 놀라운 대사였다.
'왕좌'는 승리나 쟁취가 아니라 삶을 작동시키는 이유의 은유이다. 존 스노우 경우처럼 왕좌의 거부도 혹독한 인생을 만든다. 이유가 있든 없든 몰라도 알아도 삶은 괴롭다. 나는 많고 많은 '의미'가 언제나 궁금했지만 지긋지긋해지면 내가 정말 찾는 게 의미인지 의문에 빠졌다.
《왕좌의 게임》 시즌 8, 에피소드 6에서 티리언 라니스터는 새로운 시대의 왕을 뽑는 자리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은 군대, 황금, 깃발이 아니라 이야기라고 말한다. "훌륭한 이야기만큼 강력한 건 없고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으며 어떤 적보다 강하다." 우리가 정치인이나 대통령을 뽑을 때도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서사는 매우 강력하다.
윌 스토 『이야기의 탄생』은 이야기에는 무엇보다 인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인물 없는 이야기는 없으므로 당연하다. 당연한 말을 진리처럼 되새기는 건 우리가 그걸 자주 잊기 때문이다. 하지만("말에 '하지만'이 붙으면 앞 얘기는 다 개소리"란 대사는 어느 드라마였더라...)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가 어떤 스펙트럼을 담고(주제) 어떻게 전달하는(플롯과 묘사 등) 지가 우리가 이야기를 끊임없이 보는 이유다. 재미있어서 본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재미를 느끼는 포인트와 성향 차이가 있겠지만 재미는 아교이자 가교일 뿐이다.
《덱스터》 시리즈의 덱스터도 강력한 캐릭터다. 이 드라마를 보다가 테마송이 내가 자주 보는 범죄 프로파일링 방송의 배경 음악이었다는 걸 알았다. 범죄물로 손꼽힐만한 작품이라 창작자라면 차용하고 싶은 게 많다. 전쟁에서도 그렇듯 죽일 만한 사람만 죽이는 바운더리는 지켜지지 않는다. 그처럼 이 드라마는 연쇄살인마가 괴물이기만 한 지를 보여준다. 덱스터에게도 인간적 감정과 연민과 고뇌가 있다. 나쁜 인간에 의해서만 이 아니라 증거와 사실을 놓치고 무시하는 실수 속에서도 사람은 죽는다. 간과야말로 가장 큰 폐단 아닐까. 나쁜 결과는 좋은 결과보다 상상을 초월하고 어떻게든 등장한다. 악은 선의 뒷면인가, 선의 결여(아우구스투누스)인가. 선과 악은 불가분의 관계인데 그 구분은 어디서부터 나눠지는가. 이분법으로는 결코 답을 낼 수 없고, 어떤 문제든 존재론과 가치론의 벽에 부딪힌다.
푸코의 스승으로 유명하지만 국내에는 인지도 낮은 조르주 캉길렘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은 질병이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적 상황으로 존재한다고 본다. 이것은 푸코 이론의 큰 줄기가 되고 확장된다. 생명, 질병은 과학적 사실만으로 환원될 수 없고, 존재론은 불가피하게 가치론으로 이행한다. 우리에 의해서. 차원, 시간, 우주의 문제도 그렇지만 물질을 원자 너머까지 쪼개어 들어가도 낱낱이 포착할 수 없는 우리 한계의 문제에 봉착한다. 진정한 문제는 그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알 수 없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