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종이책으로 다시 재독.
읽을수록 씹는 맛이 나는 책.

"시간은 공간 기하학과 함께 구성된 복합적인 기하학의 일부가 된다. 아인슈타인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간 개념과 뉴턴의 시간 개념을 합성한 논리가 바로 이것이다. 갑자기 머리에 섬광이 번쩍이듯 아인슈타인은 아리스토텔레스와 뉴턴 두 사람이 다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움직이거나 변화하는 단순한 사물 외에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뉴턴의 예상은 옳았다. 뉴턴의 참된 수학적 시간은 실제로 존재한다. 탄력 있는 종이, 휜 시공간, 중력장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시간이 사물과 관련이 없으며 규칙적으로 꾸준히, 그 어떤 것과 아무 상관없이 흐른다는 추측은 틀렸다."

"시간은 유일하지 않다. 궤적마다 다른 시간의 기간이 있고, 장소와 속도에 따라 각각 다른 리듬으로 흐른다. 방향도 정해져 있지 않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세상의 기본 방정식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우리가 세부적인 것들은 간과하고 사물을 바라볼 때 나타나는 우발적인 양상일 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주의 과거는 신기하게도 ‘특별한’ 상태에 있었다. ‘현재’라는 개념은 효력이 없다"

"세상을 사건과 과정의 총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세상을 가장 잘 포착하고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다. 상대성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사물과 사건의 차이는 ‘사물’은 시간 속에서 계속 존재하고, ‘사건’은 한정된 지속 기간을 갖는 것이다. ‘사물’의 전형은 돌이다. 내일 돌이 어디 있을 것인지 궁금해할 수 있다. 반면 입맞춤은 ‘사건’이다. 내일 입맞춤이라는 사건이 어디에서 일어날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세상은 돌이 아닌 이런 입맞춤들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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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9-10-16 0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공간에 관한 설명이 기존 설명과는 다르게 새롭게 보여집니다.^^:)

AgalmA 2019-10-16 01:08   좋아요 1 | URL
cyrus님의 리처드 뮬러 <나우 시간의 물리학> (사놓고 저는 아직 다 읽지를 못해서ㅎㅎ;;) 리뷰 보니 로벨리의 이 책과 비슷한 내용이 많더군요.
겨울호랑이님도 재밌어하실 내용일 거예요^^
 
[eBook] 인간 본성의 법칙
로버트 그린 지음, 이지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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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중. 재독하며 더 뚜렷이 느껴졌는데 로버트 그린은 내용을 좀 더 압축해야 한다. 책을 두껍고 무겁게 만드는 비슷한 내용의 문장이 너무 많다. 그의 모든 책에서 느껴지는 단점.

이 분야 저자들의 책을 읽으면 사고나 심리 작용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눈다. 대니얼 카너먼은『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제1형 사고 - 자동적이고 기계적이며 때로는 무의식적이고, 연상적인 일관성”을 띤 지각과 직관, “제2형 사고 - 통제되고 의식적인 노력이 더해지며 규칙에 지배받고 논리적인 일관성”을 띤 종합적 사고를 소개했고, 개리 마커스는 『클루지kluge』에서 빠르고 자동적이며 주로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첫 번째 종류의 사고를 ‘선조 체계ancestral system’ 또는 ‘반사 체계reflexive system’, 신중하고도 판별력 있게 천천히 진행되는 두 번째 종류의 사고를 ‘숙고 체계deliberative system’라고 나눴다. 로버트 그린『인간 본성의 법칙』에서는 ‘저차원적 자아와 고차원적 자아‘의 구분이 그와 유사하다.

˝수많은 신경과학자들이 확인해준 것처럼 이런 진화의 결과 고등 포유류의 뇌는 세 부분으로 구성됐다. 그중 가장 오래된 부분은 ‘파충류 뇌’다. 파충류 뇌는 신체를 조절하는 모든 무의식 반응을 관장한다. 즉 본능의 영역이다. 그 위로는 ‘대뇌 변연계’라고 하는 오래된 포유류 뇌가 있어서 느낌과 감정을 관장한다. 그리고 다시 그 위로 ‘신피질’이 진화했는데 이 부분이 인지 능력과 인간의 언어를 통제한다.˝

개리 마커스가『클루지kluge』에서 적확하게 설명한 바지만 인간과 같은 고등 포유류의 뇌가 하나로 합쳐져 진화되지 않고 ‘본능, 느낌과 감정, 인지능력과 언어‘를 담당하는 세 부분으로 나뉜 채 진화한 사실은 구조적 문제로 우리의 성장만큼이나 허점과 실수도 불가피하다는 걸 시사한다.

인간의 내면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있다. ‘저차원적 자아’와 ‘고차원적 자아’가 바로 그것이다. 보통은 저차원적 자아의 힘이 더 세다. 저차원적 자아는 감정적 반응을 보이고 방어적 자세를 취하려는 충동을 일으킨다. 나만 옳다고 느끼고 내가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즉각적 쾌락과 오락거리를 찾으며 언제나 저항이 가장 작은 길을 택하게 한다. 남들의 생각을 그대로 채택하고, 집단 속에 나를 상실하게 만든다.
반면 우리가 고차원적 자아의 충동을 느끼는 순간들은 나 자신을 벗어나서 남들과 더 깊이 교감하고 싶을 때, 일에 완전히 몰두하고 싶을 때,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생각’을 하고 싶을 때, 인생에서 나만의 길을 가고 싶을 때, 나만의 개성이 무엇인지 발견하고 싶을 때 등이다.

내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있다고 믿지만, 그것은 우리의 행동이나 반응이 집단 내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얼마나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지 몰라서 하는 이야기다.

지금 상대가 경험하는 욕망이나 실망감은 나를 만나기 수년 전 혹은 수십 년 전에 이미 시작된 것들이다. 그러다가 때마침 나를 만나 내가 그들의 분노나 좌절의 편리한 타깃이 되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어떤 자질을 내게 투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나라는 개인을 보고 있는 게 아니다.

감정이 진화를 거듭해온 이유는 인지 능력이 진화해온 것과는 사뭇 이유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두 가지 모두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한 형식이기는 해도, 뇌 안에서 두 가지가 서로 매끄럽게 연결되지는 않는다. 동물의 경우는 몸으로 느낀 감각을 추상적 언어로 변환해야 할 필요성이 없기 때문에 감정이 원래 의도된 대로 무리 없이 제 기능을 한다. 하지만 인간은 감정과 인지능력이 서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내부에서 끊임없는 마찰이 발생하는 원인이 되고, 결국에는 자신의 의지를 벗어난 ‘두 번째 감정적 자아’까지 만들어진다. 동물은 잠시 공포를 느껴도 이내 그 감정이 사라진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느낀 공포를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그 공포를 점점 더 심화시키면서 위험이 사라진 한참 후까지도 계속해서 공포를 느끼고 있다. 그러다 급기야는 상시적 불안을 느끼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지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인간이 이토록 진보했으니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이 감정적 자아를 잘 길들이지 않았겠냐고 믿고 싶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가 선조들만큼 폭력적이거나 육욕에 휘둘리거나 미신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착각이다. 진보나 기술이 우리의 본성을 바꿔놓지는 않았다. 기술과 진보는 그저 감정의 형태와 그에 따른 비이성적 행동의 유형을 바꿔놓았을 뿐이다.

이성을 획득하는 일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3단계로 된 과정을 잘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된다. 첫째, 앞으로 우리가 ‘약한 비이성’이라고 부를 것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약한 비이성은 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기분이나 느낌이 작용한 결과로서 의식보다 아래에 있다. 계획을 세우거나 의사결정을 내릴 때 기분이나 느낌이 사고 과정을 얼마나 깊이 왜곡하는지 우리는 자각하지 못한다. 기분이나 느낌은 생각의 편향을 만들어내고, 그 편향은 역사의 모든 단계, 모든 문화권에서 증거가 발견될 만큼 우리 안에 깊이 배어 있다. 생각의 편향은 현실을 왜곡해 실수나 잘못된 결정을 저지르게 함으로써 삶을 어렵게 만든다. 이들 편향을 알아두면 그 영향을 상쇄할 수 있다.
둘째, 앞으로 우리가 ‘강한 비이성’이라고 부를 것의 성질을 알고 있어야 한다. 강한 비이성이 나타나는 것은 흔히 어떤 압박으로 인해 감정이 격앙되었을 때다. 분노나 흥분, 원망, 의심 등을 생각하고 있으면 그 감정이 점점 격화되어 거의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 상태가 된다. 보고 듣는 모든 게 그 감정의 렌즈를 통해 해석되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중략)
셋째, 뇌의 사고 부분을 강화해줄 몇 가지 전략 및 연습을 실천해서 감정과의 끝없는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게 생각에 더 많은 힘을 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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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1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03 2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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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2번째 읽어도 역시 좋은 책이었다.
에드윈 리스트라는 깃털 도둑으로 인해 인간의 새 수집을 역추적하며 우리의 오랜 민낯을 목도한다. 지적 탐구, 탐미, 유행 등 각종 연유를 대며 자연의 정복자였던 인간의 모습 속에 이 박물관 침입자가 최초도 최후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는 과학의 목적성에 우호적 입장이지만 선의의 목적으로 내세우는 지식과 아름다움을 앞세울 때조차 그 이면엔 탐욕과 욕망이 더 강한 게 아닐까 싶고 인간 중심적 역사에서 참 고질적 문제이기도 하다.

나는 결국 직접 진실을 파헤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것이 플라이 중독자, 깃털 장수, 마약 중독자, 맹수 사냥꾼, 전직 형사, 수상쩍은 치과의사 같은 사람들을 만나, 은밀한 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아야 하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 나는 속임수와 거짓말, 위협과 루머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가도 좌절하기를 수없이 반복한 뒤에야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물론,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아름다움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이해하게 됐다.
나는 결국 5년의 시간을 보낸 뒤에야 트링박물관에 있던 새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로스차일드가 고용한 수집가들이 홍역이었다면, 괴저 같은 사냥꾼도 있었다. 트링박물관을 채우기 위해 아무리 많은 새를 잡았다고 해도 전 세계 곳곳의 정글과 늪지 그리고 강가에서 벌어진 살육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1869년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는 ‘문명인’들이 몰고 올 파괴적인 잠재력이 두렵다고는 했지만 역사가들이 말하는 "멸종의 시대"가 이렇게 빨리 실현될 줄은 몰랐다. 그 ‘멸종의 시대’에 지구 역사상 가장 많은 동물이 인간의 손에 처참히 죽어갔다.
19세기 마지막 30년 동안 수억 마리의 새들이 인간에게 살해됐다. 박물관 때문이 아닌, 그것과는 전혀 다른 목적, 바로 여성들의 패션 때문이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이아몬드 깃털을 자랑하던 1798년 프랑스에는 깃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술자가 25명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862년에 이르면 120명까지 증가하고, 1870년경에는 280명까지 급증했다. 너무 많은 사람이 깃털을 뽑고 가공하는 분야에 종사하다 보니, ‘미가공 깃털 상인 조합Union of Raw Feather Merchants’, ‘깃털 염색업자 조합Union of Feather Dyers’, ‘깃털 산업 어린이 노동자 보호 협회Society for Assistance to Children Employed in the Feather Industries’ 같은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겼다. 1890년대 프랑스에는 거의 4만 5000톤에 달하는 깃털이 수입됐다. 런던 민싱가에 있는 경매장에서는 4년간 극락조 15만 5000마리가 거래됐다. 같은 기간, 현재 가치로 약 28억 달러에 달하고 무게로는 총 1만 8000톤에 달하는 극락조가 거래되었다. 한 영국인 딜러는 1년간 새 가죽 200만 장을 팔았다. 미국의 깃털 산업도 상황은 비슷했다. 1900년대까지 8만 3000명의 뉴요커가 모자 관련 업계에 종사하며, 북미 지역에서만 매년 약 2억 마리의 새들이 죽어갔다.
야생 조류의 수가 줄어들자, 깃털 가격은 두 배, 세 배, 심지어 네 배까지 껑충 뛰었다. 짝짓기 철에만 자란다는 쇠백로의 최상품 깃털은 1900년대까지만 해도 1온스(약 28그램)에 32달러 정도였다. 당시 금 1온스의 가격은 20달러였다. 쇠백로 깃털 1킬로그램은 요즘 가치로 따져서 1만 2000달러가 넘었다. 깃털 사냥꾼이 숲에 달려가서 새들을 싹쓸이 해오기에 충분한 금액이었을 것이다.
왜가리와 타조 같은 새들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그때부터 전 세계 곳곳에 기업형 농장이 들어섰다. 하지만 왜가리 같은 새는 새장에서 기르기 힘든 종이기에 가느다란 면실로 위아래 눈꺼풀을 꿰매어 앞을 보지 못하게 하고 길들이기도 했다. 새들은 이렇게 부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아갔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할 당시,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배에서 가장 값나가고 보험료가 높았던 물건도 바로 깃털 상자 40개였다.

20세기 중반, 과학자들은 박물관에 있는 오래된 알 표본들을 서로 비교해 DDT 살충제가 쓰인 이후부터 알껍데기가 얇아지고 알의 부화율도 줄었음을 밝혀냈다. 덕분에 이 살충제의 사용이 완전히 금지될 수 있었다. 좀 더 최근에는 150년 된 바닷새의 표본에서 뽑아낸 깃털 샘플을 사용해서 바닷물의 수은량이 증가했음을 알아냈다. 그것 때문에 다른 동물들의 개체 수가 감소하고, 수은에 중독된 물고기를 먹는 인간에게도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이 밝혀진 것이다. 과학자들은 깃털을 "바다의 기억"이라고 표현했다.
(중략)
"내가 보기에 그들은 진정성을 추구한답시고 발버둥 치는 거예요……. 사람들이 의미 있게 생각하는 것을 만들려는 거죠.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영국 낚시꾼들이 전 세계를 통치하던 식민지 파워가 있던 시대, 그리고 그것을 이용해서 뭔가 매력적인 것을 만들어 다시 시장에 내다팔 수 있던 시대에나 가능한 것이죠."
그가 말했다. "그 꿈은 이제 사라졌어요. 그런 시대는 사라졌다고요."
그가 덧붙였다. "내가 깃털을 사용할 때는 지식이 결과물로 따르죠. 우리가 깃털 하나를 뽑아서 망가뜨리면, 전에는 아무도 몰랐던 새로운 세상이 발견되는 것입니다." 박사의 말대로라면, 에드윈을 비롯해 깃털에 빠진 그 집단은 역사적인 페티시스트들에 불과했다.

나는 박물관에서 일어나는 절도 소식을 전해 들을수록, 박물관을 둘러싼 이 이야기 속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에는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나 리처드 프럼 박사, 스펜서, 아일랜드인 형사, 독일 체펠린 비행선의 폭격으로부터 새들을 지키고자 했던 큐레이터들, 새 가죽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 세상을 이해하는 틀을 키워주고자 노력했던 과학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수세기에 걸쳐 새들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에게 새들은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공통된 신념이 있었다. 그 새들이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신념과 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므로 같은 새라도 그 새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 계속 제공될 거라는 신념 말이다.
또 다른 쪽에는 에드윈 리스트가 속하는, 깃털을 둘러싼 지하 세상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혀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지위를 탐하며, 몇 세기 동안 하늘과 숲을 약탈해온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지식이냐 탐욕이냐. 이들 사이의 전투에서 탐욕이 승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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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9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30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eBook] 클루지
개리 마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갤리온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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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그러나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이란 뜻의 ‘클루지kluge‘ 개념을 통해 진화, 마음, 정신병 등이 클루지의 산물이라 추측하는 설득력 있으면서 도발적인 책.

맥락 기억은 저장된 정보에 접근하기에 적합한 우편번호 체계를 만들어낼 수 없었던 자연이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만들어낸 투박한 임시변통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 체계에도 몇 가지 명백한 장점이 있다. 우선 맥락 의존적인 기억은 컴퓨터처럼 모든 기억을 똑같이 취급하는 대신에 우선순위를 매긴다. 그래서 자주 일어나는 것, 우리가 최근에 필요로 했던 것, 지금과 비슷한 상황에서 이전에 중요했던 것 등을, 한마디로 말해 우리에게 가장 유용할 가능성이 큰 정보를 가장 빨리 머릿속으로 불러낸다. 나아가 맥락 의존적인 기억은 빠르게 병렬로 탐색될 수 있다. 이것은 뉴런이 디지털 컴퓨터의 메모리칩보다 수백만 배 느리다는 점을 보상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우리는 (컴퓨터와 달리) 우리 자신의 내부 하드웨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기억 속에서 찾기 위해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에게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일이지, 뇌 속 특정 세포 집단을 찾아내는 일이 아니다.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확실히 아는 사람은 없다. 내게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추측은 기억 저장 위치를 알려주는 지도가 어느 중심부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들어오는 조회가 맞으면 우리 뇌의 기억들이 그냥 ‘알아서’ 반응하는 식으로 자율적으로 작동하리라는 것이다. 물론 찾는 것이 어디에 있는지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과 일치하는 것을 뽑아내는 방식에서는 항상 ‘옳은 기억’이 반응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왜냐하면 제공하는 단서가 적을수록 기억은 더 높은 ‘적중률’을 보일 것이며, 결국 정말로 원하는 기억은 원치 않는 기억들 사이에 묻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맥락 기억에 고유한 단점은 신뢰성과 관련된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뇌 속의 위치가 아니라 단서를 중심으로 매우 강력하게 조종되기 때문에 쉽게 혼동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오류의 경향이 있는 기억과 추론 능력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적 연관이 없다. 과거 사건들에 대해 완벽한 기록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미래에 대해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는 것은 원칙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예컨대 컴퓨터에 기초한 기상예측 체계는 바로 이런 식으로 작동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과거에 대한 신뢰할 만한 자료를 바탕으로 미래를 추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 체계가 지니고 있는 기억의 질을 떨어뜨린다면 그것은 예측을 향상시키기보다 오히려 훼손할 것이다. 나아가 기억을 왜곡하는 경향이 유난히 강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행복하다거나, 추론을 더 잘한다거나, 미래를 예측하는 예리함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통계 자료를 근거로 상관관계를 따지자면 오히려 그 반대가 맞을 것이다. 왜냐하면 평균 이상의 기억력과 일반 지능 사이에는 상당한 상관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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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설득의 심리학 (개정판) 설득의 심리학 시리즈 1
로버트 치알디니 지음, 황혜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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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스 R. 선스타인 & 리처드 H. 탈러는
『넛지 : 똑똑한 선택을 이끄는 힘』에서 ˝넛지는 선택 설계자가 취하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사람들에게 어떤 선택을 금지하거나 그들의 경제적 인센티브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고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그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는 로버트 치알디니 『설득의 심리학』이
『넛지』보다 더 광범위하게 설명하고 있다.

사실 우리도 때때로 생각이나 신념이 이미 내린 결정이나 이미 저지른 행동과 모순되지 않도록 하려고 자신을 속인다. (중략)
심리학자들은 인간 행동을 지배하는 일관성 원칙의 위력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 1957), 프리츠 하이더(Fritz Heider, 1946), 시어도어 뉴컴(Theodore Newcomb, 1953)과 같은 초창기 이론가들은 일관성에 대한 욕구를 인간 행동의 중요한 동기 중 하나로 보았다.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성향은 정말 우리가 평소에 하기 싫어하던 일까지 하게 할 정도로 강력한가? 여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그리고 유지하는 듯 보이려는 욕구는 매우 강력한 설득의 무기 중 하나로, 경우에 따라 우리 자신의 이익과 정반대되는 행동까지 하게 한다.

프리드먼과 프레이저의 발견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아무리 사소한 요청도 함부로 승낙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승낙이 우리의 자아 개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Burger & Caldwell, 2003). 처음의 승낙은 그와 유사하지만 훨씬 규모가 큰 요구는 물론이고, 실제로 그와 거의 관련이 없는 수많은 다양한 요구에도 승낙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자들은 그런 식의 갑작스런 부족 현상이 정치적 혼란이나 폭력 사태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주장을 가장 강력하게 펼친 사람은 바로 제임스 C. 데이비스(1962, 1969)이다. 데이비스는 사회ㆍ경제적 조건들이 일정 기간 꾸준히 발전하다가 짧은 기간 동안 갑자기 악화될 때 혁명이 발생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혁명가가 될 확률이 높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착취를 가장 심하게 겪은 하층민이 아니다. 이런 사람들은 궁핍한 자신의 삶을 자연 질서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들보다는 오히려 어느 정도는 윤택한 삶을 경험한 사람들이 혁명가가 되기 쉽다. 어느 정도의 사회ㆍ경제적 발전을 경험하고 더 많은 혜택을 기대한 상황에서 갑자기 많은 것들을 빼앗기면, 사람들은 그것을 전보다 더 원하고 되찾기 위해 폭력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한 예로 미국에서 독립혁명이 일어났을 때,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아메리카 식민지는 서구 사회에서 생활 수준이 가장 높으면서도 세금은 가장 낮은 지역이었다. 역사학자 토머스 플레밍(Thomas Fleming, 1997)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혁명을 일으킨 것은 영국이 (세금 인상을 통해) 이런 풍요와 번영을 훼손시키려 했을 때였다.

앞의 내용에서 우리는 설득 상황에서 결정을 내릴 때 우리가 가장 자주 참고하는 단편적인 정보들을 살펴보았다. 그런 정보들을 자주 참고하는 이유는 우리를 바른 결정으로 인도해주는 가장 신뢰할 만한 정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설득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할 때 상호성, 일관성, 사회적 증거, 호감, 권위, 희귀성이라는 요소들을 그토록 자주, 그리고 자동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각각의 원칙이 어떤 경우 상대의 부탁을 수락해야 할지, 수락하지 말아야 할지에 대해 매우 믿을 만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상황을 철저히 분석할 만한 의지나 시간, 에너지나 인지적 능력이 없을 때 우리는 이런 단서들만 참고해 결정을 내릴 확률이 높다. 또한 바쁘고 압박감이 심하며 불확실하고 무관심하고 정신이 산만하고 피곤한 경우에도 되도록 최소한의 정보에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결정을 내릴 때는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최선의 단편 정보(single-piece-of-good-evidence)’에 의존한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보면 결국 다음과 같은 불안한 결론에 이른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도록 해준 정교한 정신 능력 덕분에 우리는 너무 복잡하고 빠르고 정보가 넘치는 환경을 만들어냈고, 그 때문에 우리가 오래전에 뛰어넘은 하등동물들의 의사결정 방식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정보 시대’라 불려도 ‘지식 시대’로 불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보는 바로 지식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다. 정보를 처리하고, 평가하고, 흡수하고, 이해하고, 통합하고 보유해야 지식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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